"<지배와 패권>, <맬서스 트랩>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동물'인 이상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현상학적, 생물학적, 생리학적, 무의식적 진실에 해당한다. 이 함정을 깨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이상 세상은 그 어떤 세력이 집권한다고 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이 함정을 깰 수 있는 '열쇠'를 지금껏 진보는 단 한차례도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를 고민했던 사람들은 결국엔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좌절>하고 <변절>했다. 바로 그것이 야권이 여권에 맞서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에 해당한다.작성자고미생각작성시간13.10.03
답글어째서 '염치'의 개념이 '진정성'의 개념보다 더 상위일까? 진정성은 자신의 마음을 우선시한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이 알아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염치란 '자신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같이 아울러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내가 중요하면 남도 중요하다는 <기본>에 따라 나와 남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바로 염치란 말이다.
'진심과 논리'면 남들이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결코 <존엄>의 세계로 갈 수 없다. 그것이 노무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이다.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10.03
답글노무현이 취임 전이나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도 끝까지 강조했던 것이 '자존감' '자부심'이었다. 스스로가 남에게 떳떳하게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 무엇을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염치>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결벽증이 있었던 사람이 노무현이다! '염치'에 대한 결벽증이 '진보 혹은 진정성'에 대한 결벽증보다 훨씬 더 상위 개념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노무현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존엄'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과거에 노무현과 어떤 인연이 있었듯 노무현의 사람이 아니다. 이른바 친노세력이라는 사람들은 이를 명심할 일이다!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10.03
답글그러므로 개인과 공동체가 만나는 접점의 가치, 인간이 진보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가치! 그것이 바로 <존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존엄한 자>로 바로 설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양보하고 소통하고 사멸하는 것이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남에게 떠넘기지 말고, 죽음을 회피하려 들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라는 것이다.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해 죽음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 그것이 결국은 존엄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가르친 사람이 예수라는 말이다.
허나 지금의 세계 기독교는 이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다. 그것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10.03
답글다행히도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세계 유일의 <공론장>이 노하우업이다! 그 '실마리'란 무엇일까?
첫째,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하지만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결국 개인과 집단이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둘째, 정치란 '책임과 신뢰'를 찾아가는 방법을 <공동체>가 고민하는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판단 기준>을 <분별>할 줄 아는 소양이 필요하다.
셋째,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바로 <존엄>이다. 존엄이 분별과 합리를 낳고, 분별과 합리가 '염치'를 낳는다. '염치'가 있어야 <책임과 신뢰>가 싹튼다.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