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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말한 첫번째 일성이 뭐였을까? “회개하라”였다! 그런데 회개란 무엇일까? 예수를 믿고 착하게 사는 것? 그렇게 해서 천당 갈 차표를 확보하는 것?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기독교가 길을 잃은 핵심적인 이유다.

    지금 인류의 위기는 한마디로 말해 '존엄'의 위기다. 왜 존엄이 위기일까? 존엄을 남이 세워주는 것, 돈이 세워주는 것, 권력이 세워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도 종교도 정치도 다 병든거다. 공교육? 사교육? 다 헛다리 짚는 얘기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시간 13.12.05
  • 답글 그렇기 때문에 김동렬은 틀렸다. 옳은 소리를 하였어도 결국 그는 틀렸다. 왜일까?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존엄'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람의 '존엄'을 건드린다는 것, '정답'을 찍어주면 안된다면서도 자신이 정답을 찍어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 이렇게 이중잣대를 대는 것은 결코 일관성있는 태도가 아니다.

    위계와 권위를 배격한 노무현의 삶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존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김동렬은 틀렸다! 일관성이 무너지면 결국 방향성도 상실하는 법이다. 그의 판단과 행보가 항상 갈짓자로 뒤엉키는 이유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12.05
  • 답글 남들이 가는 길로 생각없이, 관성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소신과 분별의 안목으로 '좁은 길'로 들어가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가게 되는 좁은 길이 '고통'의 길일지라도 이를 '거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진보의 삶'이요, '회개의 삶'이다.

    '제게서 이 쓴 잔을 거두어주소서........ (한참 동안의 침묵) 허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태 26:39)

    그러므로 회개란 결국 '죽음'의 길, '고통'의 길, '불편함'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부활이라는 얘기다. 관성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회개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정녕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아니하다' 이것이 예수 복음의 핵심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12.05
  • 답글 존엄은 남이 세워주는 것도 아니고 외부로부터 끌어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와 남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존엄이며, 이것이 회개이다.

    회개와 부활은 '변화'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그 변화는 '관성'으로 얻을 수 없다. 허나 지금의 기독교는 예수가 복음을 선포했을 때의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다. 존엄의 길로 인류를 인도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 잘못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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