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읽는 시간 외 1/정정근

작성자풍금소리|작성시간26.06.12|조회수21 목록 댓글 7

장미를 읽는 시간

봉오리가 벙글면
정원은 만개의 기척으로 술렁이고
사람들은 축제를 벼른다

그러나
절정은 비명처럼 짧다

문득 고개를 숙이는 순간
냉철한 정원사는
가차없이 가위를 댄다

잘린 가지 끝에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향기
마지막을 아는 것처럼

가장 높이 올랐다 추락한 자만
제 몸의 가시로 써낼 수 있는
온전한 몰락

피었다, 고로 잘렸다
한 줄의 고백서


목련, 그 눈부신 멍 자국

1
마른 가지에 콕콕 찍힌 붓끝은
겨우내 찧은 붓방아의 흔적이다

야물게 오므린 작은 주먹 속에
차마 터뜨리지 못한 사연들

그 아픔 신열로 삭아 하얗게 멍들면
사람들은 감탄 하나씩을 꺼내지

'~척'하는 병으로 쓴 가면,
한 사흘 꽃이다가

대지의 빛깔로 돌아가면
언제 봤냐는 듯 눈길 돌릴 거면서

2
뼛속의 방
차마 뱉지 못한 뭇장들이
부풀어 오르면
사람들은 고결한 모습만 보지만
내 눈에 비친 것은
눈부신 멍 자국이다

세파를 둘러쓴 아낙의 얼굴로
눈에 채이고 발길에 뭉개질 때에야
제 참 고백을 완성하는
목련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빛깔로 돌아가기 위해
온몸의 열기를 밀어올린
뜨거운 얼룩

낮은 곳에서 온전히 익어가는
나무의 한 철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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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박철웅 | 작성시간 26.06.14 벙글면, 꽃이 피면 질 일만 남는다던가요.
    아니, 이 밤이 지나면 또 꽃이 피겠지요.
    피다가 피다가 또 피다가 지겠지요.

    피었다, 고로 잘렸다.

    돌아보면, 나도 참 여러 번 잘린 것 같군요.
    꽃도 아닌 것이...
  • 답댓글 작성자김금래 | 작성시간 26.06.15 피었다 잘리니 원은 없겠네요 ㅎㅎ

    그리고 철웅샘은 꽃입니다요 시가 보들보들하잖아유 ㅎㅎ
  • 작성자봄빛 | 작성시간 26.06.15 제 몸의 가시로 써낼 수 있는 온전한 몰락!
    멋진 작품들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풍금소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고맙습니다.
  • 작성자박재화 | 작성시간 26.06.16 '피었다! 고로 잘렸다!'..., 하, 이 기막힌 절규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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