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에 다시 탯줄 세우고
- 춘천 군자리 겨울 산에서 -
이복자
뿌리마다 파란 이끼꽃 피우고,
겨울 산은
놀랍도록 탱탱하고 보드라운 살결
야생초의 줄기조차 보송보송한 분 냄새로,
하나 뽑으면 심장 소리 튀어나올 듯
세상모르는 겨울 잠 한가운데,
하늘로 뚫린 거룩한 숨소리
탯줄로 이어진 맨살의 심성(心性)이
잉태의 마지막을 나와 훅- 내뱉은 입 냄새,
잇몸뿐인 아기 입 냄새 흥건하여
밀려드는 어머니의 젖비린내
마른 내 배꼽으로 울 울 울 가득 채워지고,
양수 헤치고 나와 처음으로
한 줌 손바닥에 뜯어 올린 이것,
찬 줄 알았던 이끼꽃이
쓰다듬을수록 보들보들 따뜻함에
코끝 추위는 내 것이 아니어서 내치고,
배꼽에 다시 솟아난 탯줄 세우고
나무 꼬챙이 한 손에 들어
툭 툭 어머니 뱃살 건드려 본다.
아,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나와
울음 울기 직전의 순간, 짧은 그 순간이 이랬으리라.
까마득히 잊었던, 그러나 소홀함 없이
세상의 짐 홀딱 벗어버린 순수덩어리 맨살로
풋풋한 겨울 산, 풍기는 어머니의 젖비린내 속에서
툭 툭 모태(母胎) 태동은 여전히 익숙한 것을 . . .
--------------------------
태풍이 온단다
이복자
꼭 사랑 둥지를 흔들며 온다
온다고 하면 스산한 창문 앞 서성이며
숨죽이는 것도 버거운데 곧 도착할 거란다
소낙비 같은 사랑을 만나 뜨거운 여름이었던 가슴에
태풍, 이별처럼 때리는 아픔을 예감하는 것은
손 놓고 돌아선 뒤 관심의 눈빛 저만치 멀어져갈 때처럼
비바람 휩쓸리는 자리로부터 시린 채 흘러갈 시간이
사정없이 모호한 길을 떠나는 것이다
태풍 맞는, 외로운 사랑은 자생이 쉽지 않아
등에 업혀 볼 비비고 칭얼대다 선잠 든 아기처럼
따뜻한 둥지에 들고 싶은 몽환, 애틋한
칠삭둥이 삶같이 석 달은 부족한 듯한 삶인데
평온을 깨우는 것은 흔들어대는 현실,
어설픈 길 또 어디로 어떻게 열릴지 모르는
손(孫) 끊길 듯 가난한 둥지에 태풍이 온단다
오라, 방주는 선한 사랑을 업고 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