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교훈글-감독난피(甘毒難避)

작성자도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21 목록 댓글 0

 

감독난피(甘毒難避)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간사스러운 말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달콤하게 여겨 쉽게 받아 들인다.

또 뇌물은 피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甘 : 달 감
毒 : 독 독
難 : 어려울 난
避 : 피할 피

출전 : 여곤(呂坤)의 신음어(呻吟語)


명나라 시대의 여곤(呂坤)은

자신이 저술한 신음어(呻吟語)에서,

 

고독(苦毒)과 감독(甘毒)에 관하여

한 글귀를 남겨놓고 있다.

 

고독이피 감독난피(苦毒易避 甘毒難避)라.

쓰디쓴 독은 피하기 쉬워도,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는 뜻으로서,

 

충직한 말은 독약이라도 되는 양 피하기가 일쑤이지만,

비위 맞추어주는 간사스러운 말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달콤하게 여겨 쉽게 받아드린다.

마찬가지로 뇌물이 독인 줄도

모르고 잘 챙기는 이가 많다.

 

그 모든 것이 달콤한

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마디로, 충고는 피해가기 쉽지만,

뇌물은 피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직언(直言)과 직간(直諫) 및 충고(忠告) 등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일수로

즐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듣기 꺼려한다.

이를 고독(苦毒)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잘 알고 있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글귀

(忠言, 苦於耳 利於行)가 머리를 스쳐간다.

 

즉, 충직한 말은 귀로 듣기에는 괴롭지만

행동에는 이롭다는 뜻이다.

 

서로 의미가 상통되는 말이지만,

특히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일수록 듣기를 거려한다.

그래서 이를 고독이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입맛(口味)을 당기게 하는 뇌물과

이권(利權) 등에 관한 것은 주저하지 않고

챙기는 사례가 오히려 많다.

 

뇌물과 이권이 숨겨진 그 내막(內幕)과 거래 속에는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정당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며

사술(邪術)과 속임수가 암음(暗陰)처럼 깔려있다.

때문에 언젠가는 들통 나게 되어있고

시시비비에 말려들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그것이 독이 돼서 돌아온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비밀로 숨기면 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춘추시대 자한(子罕: 魯國人)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경세통언(警世通言)을 남겼다.

 

그것이 2,5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참으로 불멸의 명례(名例)가 아닐 수 없다.

 

정다산(丁茶山) 선생도 그의 예화를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소개하고 있다.

어느날 밤 자한은 밤늦게까지

집무실에서 잔무 처리 중이었다.

 

그때 관내에 사는 주민 한 사람이

방문객으로서 찾아왔다.

"용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방문객은 말하기를,

"나는 옥(玉)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옥석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옥석 가운데

이것을 드리고자 가지고 왔다"면서

큰 옥괴(玉塊)를 내놓는 것이다.

직석에서 자한은 말했다.

"그대는 옥석을 보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나는 청렴을 보배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만약 그대가 이 옥석을 나에게 주고,

그것을 내가 받는다면,

그대는 평생 소중히 여기는 '옥석'을 잃게 되고,

 

나는 나대로 평생의 보배로 여기며

살아가는 '청렴'을 잃게 된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가 평생의 보배를 잃게 될 뿐,

득이 되는 것이 없다

(我若取玉, 君失玉寶, 我失廉寶. 君與我, 兩失無得)."

이처럼 설득하여 도리어 방문객의 낯을 세워서 돌려보냈다.

그러나 방문객은 혼자말로

"밤이라 보는 이도 없는데...?"

 

자한은 또 말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다(天知 神知 君知 我知)."

자한은 뇌물 앞에서도 떳떳했다.

그리고 서로의 명분을 세웠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화민성속(化民成俗)의 사례인 것이다.

 

화민성속에 관해서는 대학 서문

(大學 序文) 말미에도 밝혀져 있다.

 

"먼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며

백성들을 교화하고 풍속을,

 

순화하라는 글귀가 그것이다

(修己治人, 化民成俗)."

조선왕조 제21대 영조대왕(英祖大王)께서는,

즉위 후에도 대학을 여러 번 읽었다.

 

동양 제왕사(帝王史)에 있어서

제왕이 집적 글의 서문까지 써서

남긴 분은 영조대왕 뿐인가 싶다.

영조대왕께서는 자서문(自序文)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학의 여덟 가지 조목 중애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을

아직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하물며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를

어찌 바라볼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19세, 29세, 63세에도

七十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대학의 원 서문을,

 

저술한 주자(朱子)를 추모하면서

대학을 읽고 또 읽었노라고 했다.


사람을 다스리는 치자는 누구나

선정(善政)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덕정(德政)은 더 어렵다.

왜냐하면 덕정은 덕으로써 어진 정치를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以德施仁).

다시 말해서 인정(仁政)이란, 비유한다면,

산 위의 암석 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외진 곳 소나무에 까지 수분을 공급해 주는

물의 습기(濕氣)처럼 모든 곳에 이르러야 한다.

 

이 말의 뜻은 수유사덕(水有四德)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물의 네 가지 덕성(德性)이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의미한다.

 

물의 인덕(仁德)은 차별 없이

모든 생류(生類)에 수분을 공급함이요,

 

의덕(義德)은 스스로 맑아지는 자정렬(自淨力)이요,

예덕(禮德)은 위를 채운 다음에

아래로 흐른다는 윤하(潤下)의 법칙이요,

 

지덕(智德)은 바다로 유입하기 위해

백곡천회(百曲千廻)도 불사함이다.

물은 윤하의 본질을 불변의 법칙으로 하기 때문에

겸손하면서도 만류(萬類)에 대한 영양공급과,

 

자정력과, 영상유하(盈上流下)와, 천류불식(川流不息)의

4 가지 불절(不絶)의 맥락을 이어간다.

 

따라서 부력(浮力)을 과시할 수도 있고

운등치우(雲騰致雨)라는 우로지택(雨露之澤)으로써

우주를 쉴 새 없이 생동케 한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太極旗)의 감괘(坎卦)는

북쪽을 가리키며 물의 윤하법칙을 의미하고,

 

이괘(离卦)는 남쪽을 가리키며

불의 염상법칙(炎上法則)을 뜻한다.

 

그리고 건상곤하(乾上坤下)는

우주질서가 수화(水火)의

염상윤하(炎上潤下) 법칙을 뒤 바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한반도의 국토상은

남북으로 수화상통의 자오방(子午方) 국토로서

살아 숨 쉬는 활성국토(活性國土)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인간이란 우주시간 개념에서 보면,

무극(無極)이라는 시간대 속에서 순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생애를 감독(甘毒)으로

자기만족을 채우려 든다면,

 

이는 대지를 재 가려는

'자 벌래(尺虫)'에 지니지 않는다.

인유사분(人有四分)이라 해서 사람에게는

성분, 직분, 명분, 세분(性分 職分 名分 勢分)을 다하면서

살아가라는 명제(命題)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옳은 길을 바로 가르치는

고독(苦毒)을 기피하고,

 

하늘을 가리는 감독(甘毒)에 취해서

어영부영한다면 참으로 불상(不祥)한

인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감독을 피해가지 못하는 이유는

순간적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유혹의 감독을 물리칠 수 있는 것도

순간적 결기(決機)만 있으면 된다.

 

인간 생애의 행불행(幸不幸)은 모두가

순간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경언(經書)에 이르기를 천소이조자 순야요,

인소이조자 신야라

(天所以助者 順也, 人所以助者 信也)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순(順)은 천인(天人)관계에 있어서는

순리에 따라서 생존하라는 뜻이며,

 

인세(人世)관계에 있어서는

신의를 지켜가며 생활하라는 뜻이다.

 

순천신인(順天信人)이외에

더 큰 보람의 행도(行道)는 없을 것이다.

 

-옮긴 글-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바람에 띄운 그리움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