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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미스 閔

작성자자작나무숲|작성시간26.06.12|조회수16 목록 댓글 0



閔은 80년대 봉천동 봉황대 호스티스였다
외대 불문학과를 다니다 휴학하고
학자금 마련을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돈 벌기 제일 만만한 데를 고른 것이 그곳이었다
싸롱 면접이 입시처럼 꽤나 까다로웠다

술접대는 주로 양주였는데
술을 잘 못 마셔서 애를 먹었다
민은 후암동 산동네에 동료들과 함께 방을 얻어 살았다
생일초대에 간 적이 있었는데ᆢ
소작농의 일곱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안면도에서 온 옥희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빠 대신 동생들 학비를 벌어야 하는 동해에서 온 성자
사고 치고 쫓겨나 노숙자가 된 불광동 홍자는 사내 아이도 하나 있었다
다들 사연깨나 구구절절 많았다

그 당시 봉황대는 회사 임원급들이 주로 이용하던 고급 술집이었다
테헤란로에서 봉천동까지 수백 개의 룸살롱이 줄지어 성황을 이루던 때
건설사들이 중동 특수로 달러를 벌어들이던 시절이다
2년 정도 불사의 땅에서 돈을 벌어 귀국하면 집 한 채를 마련하던 기회의 시절이었고
열심히 일하면 지금보다는 10배는 희망이 보이는 그런 세상이 있었다

밤문화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
호스티스들은 팁이 주 수입원이기 때문에 손님 접대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나름 의리가 존재했던 시절이라 쉬는 낮시간 대에 따로 만나서 점심식사도 하고
좋은 날에는 집으로 초대를 해서 축하해 주며 함께 즐기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던 밤의 불새들이었다
밤 문화임에도 정과 의리가 존재해서 서로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기도 했다
굳이 신분 따위는 따지지 않았다

불새들이 가족을 위해 불구덩이 테헤란路로 날아들던 시절
지금쯤 그들도 손주들을 주렁주렁 거느리고 모두 할마시가 됐겠지

민양은 파리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땄고 소O본O 학부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며 정착했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다
본인이 원하던 꿈을 이룬 셈이다
그 시절 호스티스들은 목적과 소신이 뚜렷하게 있었다

어느 하늘아래 있는지 모르지만
봉황대 전사들 모두 건강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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