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칸터널
세이칸터널은 전체 길이가 53.85㎞(해저부 23.30㎞, 육상부 30.55㎞)이다.
일본인들은 이 터널을 '존539(zone539)'라고 부르기도 한다. 터널의 길이에서 따온 말이다.
시점은 아오모리(靑森) 히가시츠가루군(東津긵郡) 이마베츠초(今別町) 하마나(浜名)이고, 종점은 홋카이도(北海道) 카미이소군(上磯郡) 시리우치초(知內町) 유노사토(湯の里)다.
터널이 지나는 곳은 해저면으로부터 최소 수심 100m, 최대 수심이 140m에 이른다. 그나마 수심이 얕은 곳을 골라 공사하다보니 츠가루 해협의 직선거리(19㎞)보다 4.3㎞가 길어졌다.
세이칸터널은 현재 일반 열차가 다니고 있지만 당초에는 신칸센 운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또 터널내의 정점이라 불리는 두 곳에는 각각 세계 최초의 해저역인 요시오카역과 타피역이 만들어져 있다.
세이칸터널을 지나는 모든 열차의 운행상황은 하코다테역 근처에 있는 지령센터(관제실)에서 집중관리하고 있다. 각 열차의 위치나 설비상황이 정확히 패널에 나타나 열차의 기관사와 센터의 관제사는 무선으로 언제나 통화할 수가 있다.
터널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각 방재시설로부터의 정보도 모두 자동적으로 지령센터로 모인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열차를 정지시키고 지령원의 조작에 의해 터널내의 소화장치 배연장치 조명 등을 작동시킨다.
세이칸터널에는 승객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신 방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정차상태의 열차 화재는 매분 7곘의 물을 40분간 계속 뿜어내는 소화설비를 통해 진화하고, 화재시의 정전 방지를 위해 하코다테와 아오모리의 각 전력회사로부터 4개 루트로 전기를 확보하고 있다.
40년만에 대역사 완공
일본이 세이칸터널 공사에 착수한 것은 1964년. 1988년 철도가 개통되기까지만 24년이 걸렸으며 1조5000억엔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 터널의 구상은 이보다 훨씬 전인 태평양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격적인 지질조사가 시작된 것은 1946년. 일본인들은 동해에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빠른 해류와 태풍의 영향을 피해 홋카이도와 혼슈를 연결하는 안전한 수송대책을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다.
그러다 1954년 츠가루 해협을 지나던 연락선 '토야마루'가 태풍에 침몰, 1430명의 승객이 수장되는 참사가 터지고 전후 일자리 창출과 경제부흥의 요구와 맞물려 이 대형 토목공사는 급물살을 탄다.
해저면에서 100m지하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뿜어져나오는 고압의 용출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으며, 굴착이 가능한 적절한 지반을 찾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1987년 터널은 완성됐고 이듬해 3월 츠가루 해협선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40여년만에 세기의 대사업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신칸센 개통 '청신호'
현재 터널의 소유권은 일본철도건설공단에 있다. 하지만 유지보수와 열차운행에 대한 전반적 관리는 JR홋카이도 하코다테 지사가 맡고 있다.
세이칸터널은 매년 승객 감소로 인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터널이 생기기 전 연락선으로 이동하던 승객 수는 1년에 207만명. 하지만 터널 개통 직후 308만명을 기록한 승객수는 계속 감소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163만명만이 터널을 이용했다.
승객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항공노선과 페리선박 등의 교통분담률이 커지면서 터널의 갖는 매력이 상당 부분 감소했기 때문.
게다가 연간 17억엔(한화 170억원)에 이르는 터널 유지보수비도 재정 압박을 더하고 있다. 터널에 고이는 물만 해도 분당 29곘에 달해 배수시설 등의 유지에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 버블 경제의 영향으로 추진이 미뤄져오던 이 구간에 대한 신칸센의 착공이 최근 결정돼 터널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게 된 점이다.
대략 10년 후에는 신칸센이 개통될 것으로 보이며, 그땐 화물이나 승객의 수송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하코다테·아오모리=이원구기자
세이칸터널은 전체 길이가 53.85㎞(해저부 23.30㎞, 육상부 30.55㎞)이다.
일본인들은 이 터널을 '존539(zone539)'라고 부르기도 한다. 터널의 길이에서 따온 말이다.
시점은 아오모리(靑森) 히가시츠가루군(東津긵郡) 이마베츠초(今別町) 하마나(浜名)이고, 종점은 홋카이도(北海道) 카미이소군(上磯郡) 시리우치초(知內町) 유노사토(湯の里)다.
터널이 지나는 곳은 해저면으로부터 최소 수심 100m, 최대 수심이 140m에 이른다. 그나마 수심이 얕은 곳을 골라 공사하다보니 츠가루 해협의 직선거리(19㎞)보다 4.3㎞가 길어졌다.
세이칸터널은 현재 일반 열차가 다니고 있지만 당초에는 신칸센 운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또 터널내의 정점이라 불리는 두 곳에는 각각 세계 최초의 해저역인 요시오카역과 타피역이 만들어져 있다.
세이칸터널을 지나는 모든 열차의 운행상황은 하코다테역 근처에 있는 지령센터(관제실)에서 집중관리하고 있다. 각 열차의 위치나 설비상황이 정확히 패널에 나타나 열차의 기관사와 센터의 관제사는 무선으로 언제나 통화할 수가 있다.
터널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각 방재시설로부터의 정보도 모두 자동적으로 지령센터로 모인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열차를 정지시키고 지령원의 조작에 의해 터널내의 소화장치 배연장치 조명 등을 작동시킨다.
세이칸터널에는 승객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신 방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정차상태의 열차 화재는 매분 7곘의 물을 40분간 계속 뿜어내는 소화설비를 통해 진화하고, 화재시의 정전 방지를 위해 하코다테와 아오모리의 각 전력회사로부터 4개 루트로 전기를 확보하고 있다.
40년만에 대역사 완공
일본이 세이칸터널 공사에 착수한 것은 1964년. 1988년 철도가 개통되기까지만 24년이 걸렸으며 1조5000억엔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 터널의 구상은 이보다 훨씬 전인 태평양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격적인 지질조사가 시작된 것은 1946년. 일본인들은 동해에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빠른 해류와 태풍의 영향을 피해 홋카이도와 혼슈를 연결하는 안전한 수송대책을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다.
그러다 1954년 츠가루 해협을 지나던 연락선 '토야마루'가 태풍에 침몰, 1430명의 승객이 수장되는 참사가 터지고 전후 일자리 창출과 경제부흥의 요구와 맞물려 이 대형 토목공사는 급물살을 탄다.
해저면에서 100m지하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뿜어져나오는 고압의 용출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으며, 굴착이 가능한 적절한 지반을 찾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1987년 터널은 완성됐고 이듬해 3월 츠가루 해협선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40여년만에 세기의 대사업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신칸센 개통 '청신호'
현재 터널의 소유권은 일본철도건설공단에 있다. 하지만 유지보수와 열차운행에 대한 전반적 관리는 JR홋카이도 하코다테 지사가 맡고 있다.
세이칸터널은 매년 승객 감소로 인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터널이 생기기 전 연락선으로 이동하던 승객 수는 1년에 207만명. 하지만 터널 개통 직후 308만명을 기록한 승객수는 계속 감소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163만명만이 터널을 이용했다.
승객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항공노선과 페리선박 등의 교통분담률이 커지면서 터널의 갖는 매력이 상당 부분 감소했기 때문.
게다가 연간 17억엔(한화 170억원)에 이르는 터널 유지보수비도 재정 압박을 더하고 있다. 터널에 고이는 물만 해도 분당 29곘에 달해 배수시설 등의 유지에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 버블 경제의 영향으로 추진이 미뤄져오던 이 구간에 대한 신칸센의 착공이 최근 결정돼 터널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게 된 점이다.
대략 10년 후에는 신칸센이 개통될 것으로 보이며, 그땐 화물이나 승객의 수송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하코다테·아오모리=이원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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