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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화 설화

신선 이야기 (4) - 천둥의 신 뇌공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3.08.07|조회수285 목록 댓글 0

천둥의 신 뇌공(雷公)

뇌공(雷公)은 전설 속에서 하늘의 천둥을 치는 신이다.  

오랜 옛날 황제(黃帝)가 중앙의 천제로 동서남북의 사방을 통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제가 바로 뇌신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번은 황제의 모친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눈부시게 번쩍이는 커다란 흰 빛의 덩어리

북두칠성의 주위를 돌며 사방의 교외를 대낮같이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모친은 이 신기한 번갯불에 감동을 받았는데 후에 바로 황제를 낳았다. 모두들 황제가 사실 신기한 번갯불

화신이기 때문에 그의 천직은 바로 뇌우(雷雨)를 주관하는 것이라 말했다.

황제는 일개 뇌신(雷神)에서 중앙의 천제가 되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거쳐 수많은 적들을 물리쳤다.

그와 남방 치우족(蚩尤族)의 전쟁은 매우 힘들었다.

이 치우족은 81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저마다 구리로 된 머리에 구리 이마로 되어 있었고 목은 돌로 만든 것

같았으며 그들의 몸은 사나운 야수와도 같았을 뿐 아니라 무예도 고강하여 못할 것이 없었다.

처음에 황제가 치우와 전쟁할 때는 계속 패배하여 군대의 손실도 매우 컸다. 후에 서왕모가 황제의 역량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을 보고 구천현녀(九天玄女)를 인간계에 보내어 황제가 치우와 전쟁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구천현녀는 황제에게 치우족에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비밀히 전수해 주고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동해의 바다에 유파(流波)라고 하는 산이 하나 있는데 해안에서부터 7천리를 가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하고, 이

유파산 위에 괴수가 하나 사는데 그의 외형은 마치 소와 같지만 그의 전신은 흑색으로 소뿔이 없고 다리가

하나뿐이라고 했다.

이 괴수는 양서류의 동물로 어떤 때는 산 위에 있고 어떤 때는 바다 속에 있다. 그 괴수는 물 밖으로 나가거나

물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반드시 큰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게 한다.

그 괴수의 두 눈에서는 아주 밝은 빛을 뿜어 깜깜한 밤중에도 주위를 밝게 비출 수 있으며, 소리 지를 때는 목소

리가 아주 우렁차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와 같아 백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 괴수의 이름은 기우(虁牛:

외발 짐승 기)이다.

만약에 그 괴수를 죽여서 그의 가죽으로 북의 가죽을 씌우면 그 북소리가 우렁차고도 우렁차 북 하나의 소리는

6?沮� 전해지고 80개의 북소리는 오백 리까지 퍼져 연이어 두드리면 3천 8백리 밖까지 울려 퍼져 적이 두려워

간이 콩알만 해질 것이라 했다.

황제는 2백 명의 사병을 보내어 그들에게 구천현녀가 전수한 방법에 따라 유파산으로 가 기우를 잡으라고 명령

했고 하루의 기간을 들여 사병들은 기우를 죽여 그의 가죽을 벗겨 왔다.

황제는 기우의 가죽으로 북의 가죽을 만들었지만 두드려보니 그다지 우렁차지 않았다. 구천현녀는 한 가지

물건이 북과 어울려야 하는데 이것과 북이 어울리면 곧 위력이 드러날 것이라 말하여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어느 날, 그들은 뇌택(雷澤)지방에 와 정면에 커다란 흙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구천현녀는 사병들에게

흙더미를 파내게 하였고, 몇 척 깊이로 파내니 뼈 더미가 나왔는데 이것은 사람의 뼈 같지도 않고 동물의 뼈

같지도 않았다.

구천현녀는 그들에게 이것은 뇌신의 뼈로 그는 앞 시대에 살았는데 그의 머리는 용과 같았지만 그의 얼굴은

오히려 사람과 같았고 그가 배를 두드리면 천둥소리가 났기 때문에 그를 뇌신이라고 불렀다고 알려주었다.

그의 뼈로 기고(虁鼓)를 두드려야만 신기한 위력이 생겨난다고 했다.

황제는 구천현녀의 말에 따라 뇌수(雷獸)의 뼈를 들어 가죽을 다 입힌 기고를 두드리니 귀청이 떨어질 듯이 그

소리가 과연 대단히 우렁찼다. 이리하여 80개의 기고를 만들어 동시에 일제히 북을 두드리니 적들은 소리를

듣고 놀라서 모두 달아났다. 후에 황제는 과연 치우를 대파했다.

황제가 신이 된 후에 뇌신을 한 명 봉하여 그에게 천둥을 치고 비를 내리는 일을 주관하게 했고 사람들은 그를

뇌공이라고 불렀다. 이 뇌공은 힘이 비할 데 없이 세고 무사처럼 생겼으며 온몸에 근육이 울룩불룩하고 단단

하게 나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자와 약간 비슷했고 아래턱은 길고도 뾰족했다. 그의 발에는 매와 같은 발톱이 자라 있었는데

단단하면서도 예리했다. 이 뇌공은 왼손에는 쐐기를 들고 오른손에는 북채를 잡고 머리위에서부터 모두 다섯

개의 북을 걸어 연결시켜 몸까지 늘어뜨렸으며 그의 왼쪽 발 위에도 북을 하나 달아 놓고 있었다.

뇌공이 방망이로 힘껏 이 천고들을 두드릴 때 나는 둥둥 소리가 바로 우리가 듣는 뇌성이다.

뇌공의 형상은 후대에 와서 조금 변화가 있었는데, 입이 뾰족한 게 마치 새의 부리와 같았다.

다른 뇌공의 형상도 닭과 약간 비슷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전하는 바로는 당나라 때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모친에게 매우 효성이 지극했다. 어느 날 그의 모친이

병이 나자 효자는 닭을 한 마리 잡아 모친의 몸보신을 해주려 했다. 뜻밖에도 그가 뜰에서 닭을 잡고 있을 때

우르릉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번개가 내리쳐 효자가 번개에 맞아 죽었다.

효자는 죽은 후에 천당에 갔는데, 천제는 그의 효심을 매우 칭찬하며 그를 뇌신으로 봉했다. 이 뇌신은 머리가

요괴 같고 입은 닭의 부리와 같으며 한 쌍의 날개는 매우 민첩했다. 그의 왼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오른

손에는 북채를 들고 있었다. 그는 하늘로부터 매달려 내려온 다섯 개의 이어진 북을 밟고 하늘로 올라갔다.

오랜 옛날, 사람들은 자연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신력이 비할 데 없이 높은 뇌공을 만들어냈다. 후대에 와서

사람들은 또 뇌공에게 수많은 사회적 직책을 더했는데, 예를 들어 그가 정의를 대표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형벌

을 집행할 수 있고 번개로 죄 있는 악인을 죽일 수 있으며 심지어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으므로 민간에서는

뇌공이 정의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여겼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각지마다 뇌공의 사당이 있다. 몇몇 지방의 뇌공 사당에는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동(廣東) 뇌주(雷州)의 영방산(英傍山) 위에는 뇌공의 사당이 하나 있다. 사당 안에는 뇌공의 신상이 모셔져

있는데, 머리에는 관면(冠冕: 임금이나 관리가 쓰던 모자)을 쓰고 좌우 양쪽에는 위풍당당한 천장(天將)이

시립하고 있어 매우 장중했다.

사당의 뒤쪽에는 뇌공의 12개 화신이 천지의 12개 방위와 서로 대응하고 있었고 또 뇌공, 전모(電母), 풍백

(風伯), 우사(雨師)의 상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이 사당 안에는 평범한 인간의 상이 하나 있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이 뇌신 사당에서 모시는 뇌공의 부친인 진홍(陳鉷)이라고 한다.

전하는 바로는, 진홍은 원래 사냥꾼이었고 아들이 없었으며 귀가 아홉 개 달린 개 한 마리만 있었는데 매우 영민

했다고 한다. 매번 진홍이 사냥을 나갈 때마다 그 개는 아홉 개의 귀를 이용해서 운을 점쳤는데 만약에 귀 하나가

움직이면 짐승을 한 마리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 대체로 귀가 서너 개 흔들려 진홍은 서너 마리의 짐승을 잡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진홍은 또 사냥을 나가면

먼저 귀 아홉 개 달린 개의 귀로 점을 치러 갔는데 아홉 개의 귀가 다 흔들리는 것을 보고 진홍은 매우 기뻐

하며 마음속으로 이번에는 분명히 수확이 매우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가시덤불이 가득 자라난 곳에 갔는데 귀가 아홉 개 달린 개는 그 곳을 계속 돌며 떠나기를 아쉬워했다.

진홍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흙 속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구덩이를 팠다. 뜻밖에도 그 곳에는 족히 1척(尺)

됨직한 거대한 알이 하나 있었다.

진홍은 이 이상한 알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밤 하늘에는 뇌우(雷雨)가 끊이지 않더니 알이 쪼개지고

안에서 남자 아이가 한 명 나왔다. 그의 손에는 글자가 새겨 있었는데, 왼손에는 ‘뇌(雷)’자가, 오른손에는

‘주(州)’자가 새겨져 있었다.

진홍은 또 밤중에 신선이 몰래 방으로 들어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을 발견했다. 현지 사람들은 이 아이가

뇌공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성장하고 난 후에 뇌주(雷州)의 자사(刺史)가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모두들 그를 뇌공으로 여겨 제사지내고 그를 위해 사당을 지었다.

 

 

*무쇠를 사용하는 14대 자오지 환웅(치우천황)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철을 찾기위해 양자강 유역을 헤매며 돌아

다니다가 마침내 서북(섬서성 연안)으로 내쫓겨 죽은 황제에 대한 본문 기사는 왜곡기사이지만 대륙향토사료를

있는 그대로 음미해 본다는 뜻에서 그대로 번역 소개한다.

참고: 다음의 인민일보 기사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치우는 비교적 일찍이 청동기 문명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황제는 석기시대 문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동두철액(銅頭鐵額)으로 무장한 철 기마병을 보면 도망만 다녀야

했다. 이래서 치우는 고대 대륙 사에서 무신(武神)으로 유명하게 된 것이다.

黃帝文化遠及南方(황제문화 멀리 남방에까지 미치다)<인민일보>

  
-新華社杭州2 月19日電(記者愼海雄)我國的歷史敎科書中,一提起5000年前的黃帝文化,指的都是北方黃河

流域文化 其實,黃帝的活動與黃帝文化的范圍決不囿于北方 我國歷史文化硏究工作者經過多年的考證認爲,

黃帝文化的范圍應該包括中國南方一些地區

(기존의 교과서에 보이듯이 5천년전의 황제문화의 범위가 북방황하 유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남방 일부

까지 포함하고 있다)

  
黃帝被公認爲中華民族的祖先 据史料記載,黃帝號軒轅氏,是我國原始社會部落聯盟的領袖,曾打敗炎帝和蚩尤,

統一了中原, 浙江師范大學敎授洪波等傳家認爲,從史料硏究和實地考證看,南方長江流域也有黃帝活動的足迹,

幷積淀着深層次 多層面的黃帝文化

(중국민족의 선조로 공인받은 황제(호는 헌원)는 원시사회 부락연맹의 영수로 염제와 치우를 쳐부수고 중원을

통일했는데, 절강 사범대학 교수 홍파 등 전문가는 사료연구와 실지고증을 통해 남방 양자강 유역이 황제가

활동한 발자취라 보고 있다)

    
傳家認爲,根据史料 傳說和實地考察的情況分析,5000年前黃帝曾經在浙江永康的石城山生活過,幷且以石

城山爲中心,足迹遍及浙江的金華山, 仙華山, 仙都山,安徽黃山, 江西廬山 廣東鼎湖山等地,在南中國撒播了

華夏文明的種子

(전문가는 근거사료를 통해 전설과 실지고증의 정황분석을 통해 5천년전의 황제가 일찍이 절강 영강의 석성산

에서 생활했으며 석성산을 중심으로 절강의 금화산, 선화산, 선도산, 안휘 황산, 강서 여산, 광동 정호산 등지 등

남중국에 화하문명의 종자를 두루 뿌리고 족적을 고루 미쳤다고 인정한다)  

  
据民間傳說, 黃帝在與蚩尤的戰爭中, 曾一度失利,原因是蚩尤部落較早掌握了靑銅器,而黃帝使用的仍然是

石器 爲了改變這一不利局面,黃帝派部落成員四處尋覓可以冶煉兵器的礦源,終于在永康發現了寶藏,從此黃

帝的一支在這里扎根

(민간전설에 근거하면, 황제는 치우와의 전쟁중에 일찍이 전술적 잇점를 결정적으로 빼앗겼으니 그 원인은

바로 치우부락은 비교적 일찍이 청동기 문명을 장악했으나 황제는 석기만을 사용한 데 있었다.

이 불리한 국면을 바꾸기 위해 황제부락 구성원은 사방으로 흩어져 병장기를 야련할 광산 자원을 찾았으며,

마침내 영강에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여 황제의 한 지파는 이 곳에서 혈연의 뿌리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 구절을 보면 역설적으로 황제헌원이 치우를 잡아죽였다는 기록은 엉터리며 오히려 청동기 무기를 쓴

철기마병의 치우에게 돌도끼 등으로 무장한 황제의 무리가 대륙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음을 여과없이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안원전 번역 (원문인용:「북경청년보」2002년 2.20 (책임편집:李東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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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  
[연합뉴스 2004-12-10 16:06]  =단군신화 원형도 중국에서 비롯 해석 =고구려에 이어 고대사 해석 논란

(상하이=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 = 2천여년전 진나라 말엽에 방사 한종(韓終)의 인솔하에 초(楚)나라 라(羅)씨

로(盧)씨 씨족 3천여명이 한반도 동남부로 이주했으며, 이들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 그리고 후의 신라국

건립했다는 가설이 중국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우한(武漢) 소재 중난민쭈(中南民族)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소의 양완쥐안(楊萬娟) 교수는 2천년 전을

거슬러 올라 역사적 문헌고증을 한 결과라며 이같은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또 당시 한반도에 건너갔던 방사

한종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桓雄)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구려 역사를 놓고 한국과 중국이 역사왜곡 논쟁을 하는 와중에 나온 이같은 가설은 지방에 있는 한 중국인의

주장이라 하지만 향후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양 교수의 주장은 현지 신문인 호북일보(湖北日報)

9일자에 보도했다. 양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고대 삼국의 하나인 신라의 뿌리는 현재 중국 후베이(湖北)성

샹판(襄樊.고대에는 襄陽과 樊城)에서 비롯된다는 것.

양 교수는 우선 한국의 지명(주로 동부지역) 가운데 많은 곳이 현재 후베이성에 존재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점

에서 `어떤 역사적 연관'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갖게됐다고 한다. 해당 지명은 강릉(江陵), 양양(襄陽), 단양

(丹陽), 한강(漢江), 태백산(太白山)이다. 양 교수는 올 6월 단오제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 강원도 강릉지방

을 방문했다.

薩� 춘추전국시대 북방은 주(周)나라, 남방은 초(楚)나라가 있었고 초나라 건국지는 단양(丹陽)으로 한강(漢江)

상류지역이다. 초나라는 그후 세력을 넓혀 강릉(江陵)으로 도읍을 옮겨 단양 일대를 지배했다. 한강은 현재 산시

(陝西)성 친링(秦嶺) 남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에서 발원해서 동남쪽으로 흘러 우한에서 창장(長江.양자강)

으로 합류하는데 그 하류지역이 한양(漢陽)이라고 양 교수는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단군설화의 중국 연관성도 주장했다.

한국 단군설화가 숭배하는 토템이 곰과 호랑이인데 초나라 토템 역시 곰이라는 것이다. 초나라 왕족 성은 슝(熊.

곰)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두 지역(三危와 太白)이 오늘날 쓰촨(四川)성과 간쑤(甘肅)성 교차지에 있는

민산(岷山)과 한국 강원도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양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대로 `태백이 묘향산이라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환웅이 천부인(天

符印.거울, 칼, 방울) 3개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무속신앙의 무구를 가리키는 것인데 초나라는

무속신앙이 성행했고 초나라 후예 묘족(苗族)은 아직 각종 무속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묘족은 지금도 단오절에 마늘과 쑥으로 잡귀를 쫓는다고 한다.

양교수는 이러한 것이 단군신화가 고대 초나라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단군신화와 한국의 일부 지명(주로 강원도)이 중국 고대 초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설이다.

양 교수는 초나라 사람들이 한반도에 조직적으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은 한종(韓終) 이라는 방사가 중요한 역할

을 했다고 주장했다.

진시황때 서복(徐福)이라는 방사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 것처럼 당시 한종은 한국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때 데리고 간 사람들이 라(羅)씨족과 로(盧)씨 씨족이다. 라국(羅國)과 로국(盧國)은 현재 후베이성 샹판 근처

있었는데 기원전 690년 초나라에 정복되어 각각 라(羅)씨와 로(盧)씨성을 하사받고 남쪽으로 강제 이주당해

오늘날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와 후난성 펑황(鳳凰)현 일대에서 속국으로 지냈다고 한다.

양 교수는 이런 내용을 좌전(左傳) 등 고문헌에서 찾아냈다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진시황 말기 한종이라는 방사가 이들 라국과 노국 사람 3천여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갔으며 이들이 한국에

정착해서 각각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을 세웠고 진한이 신라(新羅.새로운 라국)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의 초기 국가명칭이 `사로국'인 것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이 부분 논증과정에서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한국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인용

하고 있다.

한국(韓國)이라는 명칭도 이런데서 연유됐다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특히 신라가 일찍부터 한자를 사용한 것도

진나라 말기 중국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의 라(羅)씨와 로(盧)씨 본가는 후베이성 샹판 지역이라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일부에서 한국의

로씨의 본이 산둥(山東)성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산둥에 세운 나라(盧子國)를 세운 사람

들은 한반도로 건너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런 가설로 인해 신라문화의 원류는 초나라 문화 특히 라(羅)

와 로(盧)씨 문화이고, 그 결과 현재 한국의 경상북도 북부나 강원도 일대에 초나라 지명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양 교수의 결론이다.


檀君神话是韩国开国神话,在中国和韩国的许多古籍中都有记载。内容是这样的:古时,有天神桓因知道庶子桓雄想下凡,

于是“下视三危、太白”,并给了桓雄三个“天府印”作为天上神仙的标识。桓雄率领三千之徒,降到太白山顶的神檀树下,

建立“神市”,他命“风伯”、“雨师”、“云师”等,主管三百六十件人间大事。其时,有一熊一虎同住于一个洞穴中,它们请

求桓雄天王把它们变成人,天王给它们一炷艾和二十枚蒜,并嘱咐,吃了艾和蒜之后躲藏起来,一百天之内不能见阳光。

熊照办,只蹲了二十一天,就提前变成了一个女人;虎没有照办,故未能变成人。桓雄天王与熊女结婚,生下檀君,

这个檀君,就是古朝鲜的开国君主。

단군신화는 한국의 개국신화인데, 중국과 한국의 많은 옛 서적에 기록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천신인 환웅이 서자인 환웅이 세속에 내려가고자 함을 알고 아래로 삼위와 태백을 내로다 보고 또 환웅

에게 3개의 천부인을 주어서 하늘 위 신선의 증표로 삼게 하였습니다. 환웅은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가 신시를 세우고 풍백, 우사, 운사 등에게 명하여 360가지 인간 세상의 큰 일들을

주관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마리가 한 굴에 살고 있어, 그들은 환웅 천왕이 자신들을 사람

으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였는데 천왕은 그들에게 쑥 한 묶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분부하기를 이 쑥과 마늘을

먹은 뒤에 몸을 감추어 100일 내에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곰이 힘써서 21일이 되자 곧 한 여인으로

변하였습니다.

범은 견디지 못하고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환웅천왕은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고, 이 단군이 고조선의

개국 군주입니다.

学者们认为神话故事中所谓熊、虎相处于一个洞穴,反映了以熊和虎为图腾的氏族之间的关系。楚人早期是以熊为图腾

崇拜的部落。楚人姓芈,少系业务氏熊,在鬻熊之后,历代有三十多位国君以熊为姓,其最早居地又多以熊命名,

如“有熊”、“熊山”、“穴熊”等。

학자들은 신화의 고사 중에 나오는 곰과 범이 한 굴에 살았다는 것은 곰과 범이 토템상의 씨족관계임을 반영한

다고 인식합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일찌기 곰을 토템으로 삼아 숭배하는 부락이었습니다. 초나라 사람은 ...

육웅의 후예로서 역대 30여명의 왕이 웅(곰)이란 성을 사용하였고 그 최초 거주지는 유웅, 웅산, 혈웅 등과 같이

곰이라는 이름을 많이 붙였습니다.

关于“三危”、“太白”,韩国学者多认为“太白”指朝鲜平安道境内的妙香山,“三危”指中国敦煌附近的三危山。中国学者对

古三危地方的说法不一致,我同意古三危在川甘交界处,岷江、岷山一带的说法,认为檀君神话中的“三危”是指中国

古三危,“太白”应该指韩国江原道和庆尚北道交界处的太白山。中国史籍中,有关三危记载最多的是公元前2000多年尧

舜将三苗的一支放逐到三危,荆楚腹地在上古时曾属三苗地,楚苗同源这已为楚国史研究的学者们所公认。三苗的部

落酋长蚩尤曾北上中原,与黄帝逐鹿。在中国各地的苗族都将蚩尤视为始祖,而苗祖蚩尤和“风伯”、“雨师”关系密切。

楚国大诗人屈原在《楚辞·远游》中也提到“风伯”、“雨师”、“雷公”(也称“云中君”、即“云师”)。楚辞中的“风伯”、“雨师”、

“雷公”(云师)和檀君神话中的“风伯”、“雨师”、“云师”一样,都是天神可以左右的对象。

삼위와 태백에 관하여는 한국의 학자들이 많이 태백은 북한 평안도 경내에 있는 묘향산이고 삼위는 중국 돈황

부근의 삼위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학자들의 옛 삼위 지방에 대한 설명은 불일치 하는데

저는 옛 삼위는 사천성과 감숙성의 경계에 있는 민강, 민산 일대에 있다는 설명에 동의하며, 단군신화 중의

삼위는 중국의 옛 삼위를 가리키며 태백은 마땅히 한국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인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역사 서적 중에 삼위에 관해 기록이 가장 많은 것은 서력 기원전 2000여년 경의 요순이 삼묘의 한

갈래를 쫓아내어 삼위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형초의 중심지는 상고시대에는 일찌기 삼묘의 땅에 속하였고 초와

묘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은 초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공인하는 바입니다.

삼묘의 부락 추장인 치우는 일찌기 북으로 중원에 올라가 황제와 더불어 탁록에서 다투었습니다. 중국 각지의

묘족들이 모두 치우를 시조로 알고 있고 묘족의 조상인 치우와 풍백, 우사는 관계가 긴밀합니다.

초나라의 위대한 시인인 굴원은 <<초사. 원유>>중에서 풍백, 우사, 뇌공(운중군, 즉 운사라고도 부릅니다)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초사 중의 풍백, 우사, 뇌공(운사)과 단군신화 중의 풍백, 우사, 운사는 다같이 천신의 좌우

측근이 되는 대상입니다.

檀君神话中天神授予桓雄三个“天符印”,中韩都有学者认为这“天符印”是巫师做法的法器。韩国江原道的巫俗是韩国

保留最多、最完整的地方,由巫师主持的巫祭在“端午祭”中,是重要内容之一。江原道的地理位置比较特殊,它

三面环山,一面临海,太白山脉由北向南纵贯全道,形成了一个封闭的包围圈,使它与外界相对隔离,许多古风古俗得

以完整地保存下来。在中国古代巫风一度盛行,而以春秋战国时期的楚苗为甚。现在苗族地区仍有许多巫师。

단군신화 중에서 천신이 환웅에게 3개의 천부인을 주었는데,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은 이 천부인이 무당이

사용하는 종교 도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 강원도의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많고 가장 잘 정리된 것인데,

무당이 주관하는 제례는 단오제 중에서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강원도의 지리 위치는 비교적 특수하여

삼면이 산으롤 둘러 싸여 있고 한 면은 바다에 면하여 있으며, 태백산맥은 북에서 남으로 강원도 전부를 꿰뚫고

있으며 하나의 페쇄적인 포위권을 형성하여 바깥 세상과 서로 격리되게 하며 많은 옛 풍속들이 완전하게 보존

되어 내려왔습니다.

중국 고대에 무속이 성행했었는데, 춘추전국 시대의 초묘가 심했습니다. 현재도 묘족 지구에는 많은 무당들이

있습니다.

神话里天神之子桓雄给熊和虎“灵艾一炷,蒜二十枚”让它们变人形,这在楚俗里也有反映。端午时挂艾草、蒜头以僻邪驱

瘁,是楚国风俗,至今也还存在。

신화 속에서 천신의 아들 환웅은 곰과 범에게 신렬스런 쑥 1묶음과 마늘 20개를 주어서 그들이 사람 모습으로

변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초나라 풍속 중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단오 때에 쑥, 마늘을 걸어두어 사악한 기운

을 쫓는 것이 초나라의 풍속인데 지금까지도 존재합니다.[文化特性面面观]韩国文化与中国楚文化联系蠡探 한국

문화와 중국 초나라 문화의 연관성 탐구 -> 해설 : 주창웅-> 출처 http://www.cnhubei.com/ 首页>>湖北日报>

>文化生活>>本页 (2004-12-09 07:57:34) 杨万娟 양만연
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의 [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2004/12/10 15:24 송고)에 의거하여 추적한

중국어 기사 원문을 위와 같이 초벌 번역하였습니다. 일부 번역상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4년 12월 12일(日) 오후에 아시아연방론 카페지기 주창웅 드림. http://cafe.daum.net/asiavision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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