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리(漢鍾離)-종리권(鍾離權)
한종리(漢鍾離)는 복성으로 성이 종리(鍾離)이고 외자 이름은 권(權)으로 연대(燕臺)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한(漢)나라 때 생활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오대(五代) 때 태어났다고도 한다.
한종리는 막 태어났을 때부터 세 살은 된 아이 같았고 머리가 둥글둥글하고 이마가 넓고 눈구멍이 깊었으며
눈썹이 길고 코가 오똑하고 귀가 두껍고 입술이 넓고 턱이 네모지며 볼은 발그스름했다. 7일째가 되자 그는 다
큰 아이처럼 밥을 먹고 뛰어다니는 게 매우 빨라 다른 아이들이 아무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후에 그가 장성하여 대장군이 되고 나서 한번은 전쟁 중에 패전하여 그 홀로 말을 타고 황야로 도망했다.
그는 한 외국인 승려의 인도를 받아 몸에 흰 사슴 가죽옷을 걸치고 손에는 짙푸른색 지팡이를 짚은 동화(東華)
선생을 만나 그에게 수도하여 신선이 되는 방법을 학습하고 난 후 화양진인(華陽眞人), 왕현보(王玄甫) 등 신선
의 가르침을 얻어 결국은 신선이 되어 종남산(終南山) 학정봉(鶴頂峰)의 동부(洞府: 신선이 사는 곳)에서 거주
했다.
아마도 한종리가 대장군을 할 때의 전쟁활동에 대해서 백성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한종리가 민간에 출현하는 형상은 종종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모습이 아닌 보통의 농부나 혹은 기예를
팔아 생활하던 사람, 즉 손에는 빈랑나무 잎으로 만든 커다란 부채를 든 붉은 얼굴의 뚱보로 그려진다.
그 날은 정말로 아주 무더운 날이어서, 한종리가 가슴을 걷어 올리고 배를 내놓아도 더워서 못 견딜 정도였다.
듣자니 계림(桂林)의 칠성암(七星岩)이라는 곳이 동굴 속에서 놀기 좋을 뿐 아니라 아주 시원하다고 하여 그는
계림까지 갔다.
한종리는 아주 기쁘게 칠성암으로 와서 마침 그와 수많은 여행객들이 함께 동굴로 들어가려 하는데 한 무리의
시위들이 옆을 가로 막았다. 이미 동굴 속에서 놀고 있던 백성들도 밖으로 내몰렸다. 어찌된 일인가?
이국구(二國舅: 왕후의 둘째 형제)께서 놀러 오셨으니 평민 백성들은 모두 피하며 길을 내주라고 말을 했다.
모두들 듣고는 화를 억지로 참았다. 한종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국구는 무슨. 내가 모두를 위해 화를 내서 네
위풍을 뽐내지 못하고 오히려 창피를 당하게 해주마!
오, 왔구나! 누구지? 알고 보니 조(曹)씨 집안의 둘째였다. 모두들 그를 ‘조이(曹二)’라 불렀다.
조이에게는 누나가 한명 있는데 왕비가 되어 그는 자칭 이국구라 불렀다. 이때 그는 생기발랄하게 동굴로 들어
가 유람하려고 했다.
한종리는 손에 있는 부채를 들어 그를 향해 가볍게 한번 부쳤다. 휙……! 한바탕 큰 바람이 불어 조이를 십여
걸음 뒤로 물러나게 해 엉덩방아를 찧었고 여행객들은 모두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시위들은 황급히 조이를 부축해 일으켜 눈치 빠르게 말했다.
“보세요, 대국구(大國舅: 왕후의 첫째 형제)께서도 오셨습니다.”
무엇이 또 국구가 더 있단 말인가? 온 것은 조이의 형이었다.
“둘째 동생, 네가 놀러 왔으면 놀고 갈일이지 어찌 백성들은 전부 내몰았는가?”
한종리는 말을 듣고 이 대국구는 말 하는 것이 조이와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다. 조이가 화를 냈다.
“형, 평민 백성들은 온몸에서 악취가 나서 내가 질식할까봐 그렇죠!”
이렇게 말하며 그는 또 앞으로 갔다. 한종리는 또 가볍게 부채를 부쳤다. 조이는 십여 보를 뒤로 물러나 또 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프기는 아팠지만 한 뚱보가 소란을 피운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한종리를 가리키며 욕을 했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 네가 감히 나 이국구 나리를 못살게 굴다니. 살고 싶지 않은 게로구나?”
한종리는 해죽거리며 말했다.
“나리는 나리대로 즐기고 저는 저대로 즐기고 있을 뿐이지요, 우물물이 어찌 강물을 범하겠습니까?”
“그럼……그러면 왜 낡은 부채로 나를 두 번이나 넘어지게 했느냐?”
“이상하군요. 저는 제 부채로 부채질을 했을 뿐인데 나리께서 어찌 넘어지시었소?”
조이는 더욱 화가 났다.
“내……내가 놀러 왔으니 너,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 꺼져! 나 이국구 나리가 특별히 유람하러 왔단 말이다. 오……
오늘은 칠성암, 남계산(南溪山), 탑산(塔山), 천산(穿山)에서 놀고, 내일은 독수봉(獨秀峰), 첩채산(疊彩山),
복파산(伏波山), 상비산(象鼻山)을 보고, 내일모레는 화산(畵山), 나사산(螺螄山), 벽련봉(壁蓮峰), 월량산
(月亮山)을 유람할 것이니 삼일 동안은 이쪽 지방에서 너희들이 유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행객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화가 났다. 한종리가 말했다.
“그건 안 되지! 당신 너무 심하군!”
조이가 말했다.
“심하다고? 흥, 여봐라. 이 놈을 잡아서 부채를 빼앗아라!”
대국구가 큰 소리로 저지했다.
“이 사람을 잡지 마라! 백성들을 업신여기면 안돼!”
“좋아, 네가 저 뚱보와 결탁해서 나를 망신주려고?”
바로 이때 한종리가 앞으로 가 서서 말했다.
“계림의 산수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들 두려워하지 마시고 동굴로 들어가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여행객들은 간이 커져 전부 안으로 들어갔다. 시위들이 막으려고 하자 한종리가 부채를 몇 번 부치니 모두
멀리로 나자빠졌다.
조이는 노기충천하여 자신이 직접 한종리를 붙잡으러 왔다. 한종리는 큰 발걸음을 내디뎌 동굴 안으로 들어
갔고 조이는 그를 쫓았으며 대국구는 또 다시 조이의 뒤를 쫓았다.
“동생, 거기 서! 너 어서 거기 서지 못해!”
조이가 어찌 그의 말을 듣겠는가. 한종리는 동굴 속으로 들어 갈수록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되는
데로 손을 휘두르자 손에 있던 부채가 날아가 석벽 위에 붙었다. 한종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말했다.
“조이, 네가 만약에 저 부채를 떼어 올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나가고 너 혼자 놀게 해주마.”
조이는 속으로 생각해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앞으로 가 힘껏 떼어내니 손가락에서 모두 피가 나도
소용없이 그 커다란 부채는 석벽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대국구가 말리며 말했다.
“동생, 벗겨내지 말게.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너……바로 너, 팔이 밖으로 굽다니!”
조이는 모두의 웃음소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시위들을 이끌고 가버렸다. 한종리와 여행객들은 이때서야 유쾌
하게 동굴 안을 한 번 유람하고 그 대국구와 아주 친밀하게 한담했다.
후에 이 대국구는 팔선(八仙) 중의 한 명이 되었고 사람들은 통상 그를 조국구(曹國舅)라고 불렀다.
한종리의 그 빈랑으로 만든 부채는 스스로 올라가 가볍게 만져 떼어 내려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부채의
자국은 계림 칠성암의 석벽 위에 남아있다.
못 믿겠다면 여러분이 계림을 유람할 때 칠성암에 가서 ‘출미구(出米臼)’ 맞은편의 석벽을 찾으면 반드시 부채
면적이 새까매 페인트칠을 한 것 같은 빈랑 부채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월이 너무 오래 된
연고로 부채 손잡이의 흔적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손잡이 없는 빈랑부채(無把
葵扇)’라 부른다.(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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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 칠성암 ‘출미구(出米臼)’ 맞은편의 석벽의 ‘손잡이 없는 빈랑부채(無把葵扇) 유적지와 종리권 이야기
종리권 鍾離權 八仙之一 팔대선인 중 한명
元代全眞敎奉爲「正陽祖師」,北五祖之一。其說始於五代、宋初。相傳姓鍾離名權,號「正陽子」,又號
「雲房先生」。
원대전진교「정양조사」로 봉함,북오조가운데 하나。팔선중의 수좌.、송초。전하길 성은 '종리' 이름은
'권',호號「정양자」,또는 號「운방선생이라 불리움.
《列仙全傳》說:鍾離權,燕台人,號雲房先生,爲漢朝大將,在徵討吐蕃中,被上司粱翼女+戶嫉,只配給他
老弱殘兵三萬人,剛到達目的地就被吐蕃軍劫營,軍士落荒而逃。
《열선전전》에의하면:종리권은,연대인이다,호는'운방선생',한조의 대장이고,토번을 징토하던중,
상사였던 량익의 질투를 받았다,배급받길 노약잔병으로 삼만인을 할당 받았다, 토번군겁영의 목적지에
도달해보니,군사의 태반은 도주하고 없었다
鍾離權也逃至一山谷,而且中途還迷路了。
종리권은 어느 산곡으로 피하였다,그러던중 돌아올 길을 잃어 버렸다。
可是「吉人自有天相」,遇上一胡僧,將他帶至一小村莊說:「這是東華先生的住處。」然後告別而去
그렇지만「길인자유천상이라 길인은 하늘이 돕는법」,우연히 호승을 만났다,촌장이 말하길:「저 장원이
동화선생 거주처로다。」고 가르쳐준 연후 고별하고 사라졌다。
過了一會兒,忽聽有人說:「這必定是那碧眼的胡人多嘴的緣故。」見一老人披著白色的鹿求+衣,扶著靑色
的藜杖,問鍾離漢道:「來者可是漢大將軍鍾離權 ? 爲什마(무엇)不來宿於山僧之所?」鍾離權大驚,知道遇
上了異人,於是誠心學道,向老者哀求學習救世之道。
지나던 어떤 아이에게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홀연히 듣고 있던 사람이 말하길:「 벽안의 호인 뽀족한 부분이
많은 탓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흰빛이 나는 록구(녹빛 갓옷)를 걸쳐 입은 노인을 보았다,청색의 려장을 든,
종리권이 묻기를:「손님이 한 대장군 종리권이 아니오? 왜 산승지소에 하룻밤 묵지 않고 오는 것이오?」
종리권 대경하여 가로되,길위에서 이인을 만났구나,그리하여 성심을 다하여 배움을 청하였다,
세상을 구할 방법을 노인에게 구하였다。
老者傳授鍾離權「長眞決」,及金丹火候和靑龍劍法。鍾離漢後來遇見華陽眞人,又遇上仙王玄甫,學得「長生
決」。最後在山+空山+同山紫金四皓峰居住,得到「玉匣秘訣」,修成眞仙。玉皇大帝封他爲「太極左宮鎭人」。
늙은이는 종리권에게 전수하였다.「장진결」,금단화후화와 청룡검법을 전하였다。종리한 후에 다시 화양진인
을만났다,다시 왕현보 만나 선인이 되어 올라갔다,「장생결」등을 배워 익혔다。최후에 공동산 자금사호봉에
거주하여,「옥갑비결」을 깨달아 득도하여,선인이 되었다。옥황대제가 「태극좌궁진인」에 봉하였다。
拐(手제거)一說鍾離漢爲唐朝人,與呂洞賓同時,自稱「天下都散漢鍾離權」,後人或以「漢」字屬下讀,故一
稱「漢鍾離」。王重陽創立全眞敎,奉「鍾離漢」爲「正陽祖師」,位列北五祖之二(王玄甫,鍾離權,呂洞賓,
劉操,王重陽)。
일설에 따르면 종리한은 당조인이라 한다,여동빈동과 동시대인이다,자칭「천하도산한종리권」이라 한다,
후인이 혹은「한」자 속하여 읽는다,그래서 칭하길「한종리」라 읽기도 한다。왕중양이 전진교를 창립하고,
「종리한」을 봉하길「정양조사」로 하였다,오조 중에 두 번째 지위이다.
(왕현보,종리권,여동빈,유조,왕중양)
팔선중 수장격인 종리권은 기원전 1223~249년 주(周)나라 때에 살았고 불로장생선약의 비밀과 연금술에서의
변성하는 분가루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보통 배를 드러내 놓고 있는 뚱뚱보나 때로는 손에 복숭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래도 언제나 그의 문장인 부채를 쥐고 있으며 그 부채로 죽은 자의 영혼을 소생시킨
다고 믿어지고 있다.
"요정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젊고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하여 철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낙향하였다.
하루는 명상을 하며 시골길을 걷고 있노라니 한 젊은 여인네가 무덤가에 앉아 슬피 울면서 이제 막 떼를 입힌
무덤의 흙에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여인이 하는 말이 돌아간 자기 남편이 자기 무덤의
흙이 마르기 전엔 재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자기를 뜨겁게 사모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녀는 가급적 속히 마르기를 바라기에 무덤에 부채질을
하여 숩기를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종리권은 그 여자를 도와 주었다. 그녀의 부채를 건네 받고는 신령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고 부채로 무덤을 부치니 무덤이 완전히 말라 버렸다.
그 과부는 즐거운 듯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부채를 놔두고 떠나 버려서 그 부채가 종리권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
던 것이다. 그의 젊은 부인이 그 부채를 보자 그게 어디서 난 것인지 알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자초지종 사연을 듣자 그녀는 발끈 성을 내며 자기 같으면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며, 그런 몹쓸 짓을 한
과부는 필경 후안무치 요물임에 틀림없다고 항변하였다.
이 말을 듣자 이 술사는 그녀의 심정을 떠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강력한 주문을 외니 그는 죽을 사람처럼 되었고 동시에 미끈한 청년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곤 뭣 모르고
있는 과부에게 사랑한다고 수작을 걸었는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와 결혼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 놈팽이가 자기 약혼녀에게 죽은 남편의 골수를 한 잔 가득 떠 달라고 하자 그 과부는 사랑하는 이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 관 뚜껑을 열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녀의 죽었던 남편이 갑자기 살아나는 게 아닌가? 그동안 그녀를 열모하던 젊은이도 어디론가 꺼져 버렸다.
어찌나 수치스러운지 그녀는 그만 목을 메어 버렸고,
종리권은 집에 불을 놓아 버렸는데, 부채와 <도덕경(道德經)>만 들고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