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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화 설화

동,서를 잇는 신화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3.08.14|조회수199 목록 댓글 0

동이민족의 본질

배달국 시절, 동이족의 조상인 복희, 여와는 한(漢) 대에 들어와 황제헌원과 함께 삼위일체로 모셔져 지나화를

시도하고, 여와 보천 신화와 반고 신화를 만들어 역사 굳히기를 시도한다.

중국신화에서 제일 뒤늦게 생겨난 신화는 바로 천지개벽 신화이다.

여와 보천 신화는 동이족의 실존인물이라 일단 출처확인을 제외한다 치고, 그럼 반고 신화의 출처는 어디일까.

「환단고기」의 반고가한의 납목동굴 기록을 제외하면, 상고 이래의 중국 신화 속에는 본래 근본적으로 <반고>

인물이나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심지어 『산해경』, 『천문』,『제왕세기』와 같이 전문적으로 고금상하의 괴이한 일들을 수집한 신화

저작에도 보이지 않는다. 동한 시대의 저명한 학자인 왕충(王充) 역시 반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반고 신화가 중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시절 오 나라 서정(徐整)이 지은 『삼오역기(三五歷記)』『오운역년

(五運歷年記)』가 최초였으며, 남북조 시대 양(梁)의 임방(任昉)이 지은 『술이기(述異記)』에서가 그 다음

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책은 이미 없어졌고 송(宋) 나라 때 편찬된 백과전서인 ‘태평어람’(太平御覽)과 청

(淸)나라 때 마숙(馬 )이 지은 역사(繹史)에 일부 내용이 인용됨으로써 반고신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다.  

산해경을 번역소개한 정재서 교수(이대 중문학)는 반고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자들 중에는 반고신화가 바빌론 등의 거인신화와 닮은 점이 많은데다가‘산해경’(山海經)과 같은 오래된 신화

에서 보이질 않고 훨씬 후대의문헌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신화가 서방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설사 전래되었다 하더라도 신화는 그것이 뿌리를 내린 지역의 풍토와 문화에 맞게 다시 이야기되기 마련

이다. 반고신화는 바빌론 등의 거인신화와 표면상 비슷해 보이지만 속 내용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반고의 신체변화는 자연사에 의해 이루어진데 비하여 티아맛 등은 다른신의 살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첫 번째 차이이다.

중국신화는 혼돈에서 거인으로, 다시 거인에서 세상이 저절로 생겨난 것으로 설명하지만 인도신화에 뿌리를 두고

발전한 서구 신화는 ‘최초의 희생’에 의해 세상이 탄생되었다고 믿는다.

창조신화는 원시 인류의 우주와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관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양 세계에서는 천지만물의 근원인 태극(太極)에서 음양(陰陽)의 두 가지 기운이 생겨나고, 이 기운이 금(金)

(木) 수(水) 화(火) 토(土)의 다섯 가지 기운 이른바 오행(五行)을 낳고 다시 이 기운들의 조합에 의해 만물이

생겨난다는 관념이 일반적이다.

반고신화의 첫 머리에서 태초는 달걀 속과 같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태극이 마치 노른자와 흰자가 있는 달걀의

모습과 닮은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태극과 달걀은 둘 다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동양세계

에서는 이처럼 자연발생의 원리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서구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생각보다도 외부의 충격이나 반대의 힘에 의해 변화,

발전이 생긴다는 이른바 변증법적 관념이 지배해왔다.
가령 마르크스는 식민지 상태에 놓인 인도의 불행에 대해 깊이 동정하면서도 ‘미이라가 들어 있는 관이 깨져야

신선한 공기가 들어가듯이’ 인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침입이 불가피함을 주장하였다.

서구 학자들이 동양 근대사를 설명할 때 단골로 써먹었던 ‘충격_반응_근대화’의 도식 즉 서구문명의 충격에

의해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동양사회가 근대화되었다는 논리도 바로 이러한 변증법적 세계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화학자 브루스 링컨은 서구 거인신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가해자인 신들이 살해된 신의 신체를 ‘절단’ 혹은

‘분리’하는 행위를 들었다.

반면 반고신화에서 신체 변화는 ‘통째로의’ 상태에서 제각기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서구의 분석적, 논리

적인 사고방식과 동양의 통합적, 상관적인 사고방식의 싹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고신화의 신체화생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원시 인류가 인간의몸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대우주인 자연과 소우주인 인체가 서로 감응하는 상동(相同) 관계에 있다는 생각은 고대 동서양의 인류가 다

함께 지녔던 관념이었다.

그런데 이 오래된 관념이 동양에서는 서구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근대에가까운 시기까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조선의 명의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인체의 혈액을 지하수에, 모발을 초목에, 이를 쇠와 돌에

비유하고 있으며 청나라 때에 그려진 인체 그림인 ‘내경도’(內經圖)에서는 산과 들, 숲 등의 자연으로인체의 각

부분을 채우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신체는 단순하지가 않다. 그것은 자연의 정신이 투영된 또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최근 생태학 분야에서 관심을 끌었던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설’ 역시이러한 인체와 자연의 동일시 관념에

근거하여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간주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고자 했다.

우리의 몸은 요즘 많이들 얘기하듯이 무슨 욕망의 주체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주와 인간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통로이자 양자가 복잡하게 얽혀진 존재이기도 하다.

거인 반고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는 눈앞에 보이는 저 산과 들에도 있고, 내 몸의 혈맥 속에도, 심장 속에도

있으리라. 우리가 그를 부르면 그는 언제든 현신(現身)할 터이다.-

반고는 현재 지나족의 창세신이기에 앞서 중국 서남부의 묘족, 요족, 여족 등 동이족들의 부족신

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하신(何新)은 저서 『신(神)의 기원(起源)』에서 반고 신화가 동한 중엽이후에 서남에 경유하여 유전된 인도신화

단정한다.

반고는 현재 지나족의 창세신이기에 앞서 중국 서남부의 묘족, 요족, 여족들의 부족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는 반고 고사의 출현은 그것이 유전된 시기와 지역이 불교와 인도의 문화가 중국에 들어온 시기와 지역에

서로 합치된다고 결론 내리고, 이 이야기가 당초 고대 앗시리아 도성의 폐허에서 발견된 바빌론의 천지개벽에

관한 창세 서사시가 역수입된 것이라 결론내리고 있다.

이 서사시에서 가장 원시적인 혼돈의 신인데 그는 바다와 하늘의 여러 신을 낳았다. 그가 죽은 뒤 시신이 분화

되어 천지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동쪽으로 인도에 전해진 뒤에 범천(梵天)의 고사로 변천되었는데,
범천 브라흐마(Brahma)의 한자 음역은 반(盤)이며 그는 알 속에서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창조신 이름도 이었음을 들어 그것이 에서 나오지는 않았을까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중원대륙의 중심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가지치고 나아간 중동 지방 니므롯의 역사를 계속 살펴

본다.

구스(Cush)의 아들 니므롯(Nimrod)은 창세기 10:8, 역대기 1:10, 미가서 5:6 등 구약에 세 번 언급되고 있다.
창세기와 역대기는 족보의 문맥 내에서 그를 언급하고 있고 미가서는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오랫동안 "니므롯의

땅"으로 불려온 곳과 관련해 그를 언급한다. 그와 그의 강력한 인물들을 둘러싼 많은 전설과 구전들이 전해지고

있다.

윌리엄 맥버니(William S, McBirnie)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전설들이 종종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상기시킨다. "그들이 비록 부풀려지고 환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전설은 종종 실제 사실의 상세한 기술

이며, 전승들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 실제 사실이다."

구스(Cush)는 바빌론을 세웠고 그의 아들 니므롯은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세워 첫 번째 왕이 되었다.
전설은 니므롯(Nimrod)이 니느웨(Nineveh) 시를 건설했다고 전한다. 이는 앗시리아인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주장으로 그들은 니느웨가 니누스(Ninus)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도시명인 니느웨는 니누스(Ninus)의 거주처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니누스는 바빌론의 건국자 벨루스(Belus) 또는 벨(Bel)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말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반론은 없다. 벨(Bel)은 앞서 말한 바대로 니므롯의 아버지 구스(Cush)였다. 그러므로 전설에 의하면 앗시리아

니누스(Ninus)는 또한 바빌로니아인 니므롯이다. 역사에서는 앗시리아의 건국자이자 첫 왕인 니누스 왕의

묘사를 니므롯과 동일하게 하여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리스 역사학자 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가 기원전 1세기 경에 쓴

「역사 장서(Bibliotheca historica)」에 따르면,

-역사에 언급된 앗시리아의 가장 오래된 왕 니누스(Ninus)는 엄청난 활동을 실행했다. 무용(武勇)에서 비롯된

호전적인 성향과 승리를 위한 야망으로, 그는 상당한 수의 젊은이들을 오랫동안 힘들게 훈련시켜 자신과 같이

용감하고 힘차게 무장시켜 전쟁의 피곤함으로부터 익숙하게 하고 위험에 직면해 용감히 대처하도록 했다.-

니므롯의 군사적 개척은 니누스 왕에 대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발견된다.
A.D. 1세기경의 로마 역사가 유스틴(Justin)은 「트로구스 폼페이우스(Trogus Pompeius)」에서 다음과 같이

개관(槪觀)한다.

-니누스(Ninus)는 앗시리아의 왕이었다. 그는 이웃과 처음 전쟁을 수행했으며 전쟁술을 채 터득하고 있지 못한

앗시리아에서 리디아(Lydia)에 이르는 모든 국가들을 정복했다. 니누스는 지속적인 지배권 弩?� 통해 자신이

획득한 지배권의 위대함을 더 한층 강화했다. 훨씬 강화된 무력으로 이웃을 정복하여 다른 종족에로 나아갔으며,

모든 새로운 승리는 또 다른 길을 닦아주어 모든 동방 사람들을 정복하는 초석이 됐다.

12세기 죠하르(Zohar)에 기록된 랍비(율법학자) 전승은 또한 니므롯이 세계정부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랍비들

니므롯의 군대가 그로 하여금 세계를 정복하게 해 주었음과 동시에, 그를 지배자로 선포하도록 해주었으며,

세상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니므롯은 누구인가?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흉상(胸像)과 부조(浮彫)에서 구스의 아들 니므롯은 입술이 두껍고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검둥이였다.

니므롯의 물리적 용맹은 두 개의 희브리 단어 니므르(Nimr), 라다(Rada) 또는 라드(Rad)에서 나온 그의 이름

에서 밝혀진다. 니므르(Nimr)는 "표범(Leopard)"을 의미하며, 라드(Rad)는 "정복하는 것(to subdue)"을 의미

한다. 니므롯은 표범의 성격을 누그러뜨려 사냥에 사용했던 강력한 사냥꾼이었다. 재미있게도, 표범은 일 세기

전에 인도에서 사냥여행에 사용되고 있었다. 니므롯은 또한 말을 길들여 사용한 것으로 이교도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했다.

바로 이러한 위업덕분에 그는 군사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방종교들은 신화적인 반인반마의 켄타우르스(Centaur) 인물상(人物像)에서 니므롯이 말을 지배한 것을 기념

한다. 사냥을 하는데 말과 표범 둘 모두를 사용하는 것으로 니므롯은 '강력한 사냥꾼(mighty hunter)'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창세기 10장 8절에 니므롯을 "강력한 자(mighty one)"로 부른다. mighty에 대한 희브리어는

"거인(giant)"이다. 히슬랍(Hislop)은 그 오랜 신화적인 거인들의 부풀려진 공적들을 더듬어 올라가면, 모든 것이

니므롯과 그의 전사들로 유래가 밝혀진다고 말한다. 희브리식 이름들은 종종 이름지어진 자의 물리적 성격을

드러내 줄 뿐 아니라, 니므롯의 경우에서 보듯이 영적인 조건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니므롯을 뜻하는 희브리식 단어는 "반란(Rebel)"을 뜻하는 마라드(marad)이다. 랍비들은 그가 모반했던 이유로

니므롯으로 불렸다고 말한다.

메릴 엉거(Merrill Unger)는 저서「고고학과 구약(Archeology and the Old Testament):1954」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니므롯은 신에 대한 반란과 동의어였다고 말한다. 니므롯은 최고신과 천상의 주인에 항거하여 전쟁

수행했다.

랍비 전승인 죠하르(Zohar)에 의하면 니므롯은 천상의 최고 높은 왕과 고위 층 천사들과 저급 층 천사들에 항거

싸웠다고 전한다. 니므롯에 대한 희브리 묘사는 이 "신 앞의 강력한 사냥꾼(mighty hunter before the Lord)"

에 대해 훨씬 더 불온한 사실을 폭로한다.

강력한(mighty)이라는 말은 오만할 정도로 세력을 쓰는 개념을 포함한다. 사냥꾼은 비유적으로 문자 그대로

동물을 잡는 것과 구분해 복병을 숨겨두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앞(before)이란 말은 "전쟁에 임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출정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같이 하여 "신 앞의 강력한 사냥꾼(mighty hunter before

the Lord)"이라는 말은 노기가 충천해, 최고신에 대항해 전쟁을 벌인 것을 말한다.

니므롯은 이웃 종족들과 전쟁을 벌였을 뿐 아니라, 강력한 사냥꾼(mighty hunter)이라는 희브리 묘사가 의미

하고 있듯이, 인간의 영혼을 통제하기 위해 신에 대항해 싸웠다.

우리는 창세기 10:8-9절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모반자 니므롯은 인간의 영혼을 통제관장하고 오만하게 세력을 쓰기 위해 노기충천해 신에 대항해 싸웠다."
랍비들은 "니므롯이 사람들을 유혹해 우상숭배로 끌어들였다"고 간단히 결론짓는다. 강력한 사냥꾼인 왕 니므롯

그의 전사들은 고대 이교도 종교들 사이에서 많은 이름으로 신성시 된 바와 같이 고대인들에 의해 신격화되

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니므롯의 의미 중 하나가 표범의 정복자를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집트의 태양신 오시

리스는 표범의 가죽을 걸친 두툼한 입술의 사나이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는 球퓐蹈� 관련한 모든 물리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에는 표범이 없기 때문에, 니므롯은 점박이 새끼사슴으로 그려진다.
더욱이 그것의 그리스식 이름은 네브로스(Nebros)다.

그리스 판 구약인 셉츄어징트(Septuagint)는 니므롯의 이름을 "네브로드(Nebrod)"로 번역해 놓았다.
그리스인은 네브로스(Nebros)라는 말을 니므롯에 대한 동의어로 사용했다. 그리스 신 바쿠스(Bacchus)는

또한 디오니소스(Dionysus)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종교적 죄악 또는 컵을 운반하는 자"는 점박이 새끼사슴

으로 상징된다.

바쿠스(Bacchus)는 "구스(Cush)의 아들"을 의미한다.

바쿠스(Bacchus)의 또 다른 이름은 "아이티오파이스 (Aithiopais)" 또는 "에티옵스(Ethiops)의 아들"인데,

"에티옵스(Ethiops)"는 앞서 말한대로 구스(Cush)였다.

따라서 구스의 아들인 바쿠스는 니므롯을 말하는 것이다.

바쿠스는 또한 영생하는 소년인 예호바(Jehovah)의 아들로 알려졌다. 로마신 쥬피터(Jupiter)에게도 동일한

이름이 주어졌다. 쥬피터 신은 그리스 신 바쿠스 또는 니므롯의 로마식 버젼이다.

반역을 의미하는 로마의 군신 마르스(Mars)는 또한 반역자 니므롯과 동일하다.

마르스의 아내는 여신 벨로나(Bellona)인데 때때로 그의 누이로 알려졌다.
칼데아(바빌로니아 남부) 말에서 벨로나(Bellona)는 "벨의 애도자(The Lamenter of Bel)"를 의미한다.

니므롯은 구스(Cush)로부터 벨(Bel)이라는 이름을 상속받았다. 바로 여신의 이름으로부터 우리는 벨로나

(Bellona)가 남편 니므롯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음을 안다. 니므롯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5개의 머리를 가진

브라흐마(Brahma)와 관련한 힌두이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슬랍(Hislop)은 5개 머리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는 노아가 동양 종교들 사이에서 2개의 시대를 건너뛰어 산 것을 상징해 2개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알려졌

다고 말한다. 하나의 머리는 대홍수가 휩쓸기 전을 되돌아보는 늙은이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대홍수 뒤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브라흐마의 5번째 머리는 니므롯(Nimrod)을 나타내며, 네 번째는

구스(Cush), 세 번째는 함(Ham), 그리고 노아가 2개의 머리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구스(Cush)를 묘사하는 그림을 보면, 왼 손에 점박이 새끼 사슴을 안고 오른 손에는 5개 줄기로 이루어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이러한 형상은 상징적으로 점박이 새끼 사슴이 구스의 가지인 니므롯 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담쟁이 가지에 있는 5개 줄기가 홍수로부터 5세대 째인 니므롯을 상징함을 앞에서 알아보았다.
히슬랍(Hislop)은 니므롯이 검둥이라는 관점이 그를 숭배하는데 걸림돌로 드러나면 어디서든지 쉽게 제거되어

흰둥이로 둔갑했다고 말한다.

칼데아 윤회(환생) 이론에 따라, 니누스(Ninus)가 흰 얼굴빛을 가진 유복자로 다시 나타났으며,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과부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는 등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즉시 가르칠 예정이었다. 신화학(神話學)의 흰 피부 태양신들을 얼마나 깊게 연구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는 그들 모두가 바빌론으로부터의 검둥이 반역을 대표하고 있음을 본다.

 

앗시리아의 바알(Baal)신 니므롯과 성적 열애의 상징으로 신성시 된 기독교 성모의 모델 니므롯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

 

 

고고학자 헨리 래이야드(Henry Layard:1817-1894)는 저서 「니느웨와 그 유적(Nineveh and Its Remains)」

에서 강력한 사냥꾼 오리온은 니므롯으로 별들 사이에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반인 반마 신 켄타우르스(Centaur), 이집트의 반인 반마 신 콘스(Khons)는 모두 니므롯이다.

사실상, 황도대 12궁도의 모든 별자리는 바로 다양한 현시(顯示)로 나타나는 니므롯 또는 그의 아내에 다름

아니다. 전사들의 왕이며 영적인 반역자인 니므롯(Nimrod)은 많은 이름으로 신성시되었다.

니므롯 신앙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형태들 중 하나는 바빌로니아 종교에서 보인다. 전사로서 니므롯은 피흘림

처절한 삶을 살았다. 사후에 그는 피를 흘리는 방혈(放血)의식으로 신성시되고, 존경받았는데,
반역을 뜻하는 그의 이름은 피를 갈구하는 바빌로니아 신 메로다크(Merodach)와 의미상 동일시되었다.

메로다크(Merodach)과 마르두크(Marduk)는 같은 신으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아이들을

희생 번제(燔祭)로 바쳤다.

기독교인들은 니므롯이 천상세계에서 루시퍼의 반란에 부추켜져서 천상세계의 신과 싸우기 위해 음모를 꾸며

바벨탑을 쌓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벨탑은 악카드 왕조에게 빼앗긴 언어와 영토를 되찾기 위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전개한 니므롯이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기념하기 위해 축조한 독립 기념관 격인 언어 해방탑이었다.

게다가 앞에서 자세히 언급한 것처럼 루시퍼는 본래 빛 또는 광명과 관련한 것으로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

이다.

니므롯은 중근동 세계의 개혁자이자 새로운 세계질서의 건설자이며 새로운 세속질서의 창시자로 카발리스트

들은 모세5경의 토라가 4가지의 다양한 자료를 취합해 얼기설기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그들의

사상적, 신앙적 뿌리를 니므롯인 마르두크에 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솔로몬의 치세 동안, 앗시리아는 오래 전부터 니므롯을 바알(Baal) 신으로 섬겨오고 있는

중이었다. 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남, 북국으로 나뉘었으며 12개 부족 중 북쪽의 10개 부족은 200년

동안 마르두크의 또 다른 이름인 바알(Baal) 신 신앙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남쪽 동포에게 사악한 사마리아 사람

들로 낙인찍힌다.

이들 10개 부족의 유태인은 자신들 신앙의 뿌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방신이기도 한 바알(Baal) 신의 신비

의식에 체질화되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B.C. 721년, 이들 북쪽 동포 10개 부족은 앗시리아의 바빌론으로

몽땅 끌려가 노예처럼 사는 바빌론의 포로 시대를 맞이한다.

이 기간 중 유태인은 바알(Baal) 신의 본고장에서 미트라 교를 통해 그리스 신과 로마 신, 이집트 신의 뿌리인

마르두크의 원형을 만나 죠하르와 카발리즘의 본질을 체득하게 된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본래 유럽에서

예수가 등장하기 전 맨 처음 알려진 성모는 유색인종인 미트라교의 성모와 인도 크리슈나의 성모 그리고 겔트

족의 흑성모(黑聖母)가 있었다.

그 중 특히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오딘 신의 고위 여사제 흑 성모는 마리아를 성모로 여기는 바울 종파의

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뒤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그들이기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바티칸과 전 세계의

기독교를 쳐 없애기 위해 프리메이슨이라는 강력한 조직으로 중세 이후 투쟁해 온 것이며, 유기적으로 움직

이는 다국적 유태인 조직을 풀 가동해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각종 혁명과 세계전쟁을 일으켜 막후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 카발리스트들의 눈에 예수는 유사(Pseudo) 예언자로밖에는 보이지 않기에 자생적으로 준 기독교국가

가 된 한국을 보면 그저 어안이 벙벙한 경이로움뿐이다.

남성신과 여성신의 교의는 니므롯의 아내에 의해 생각된 것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복희, 여와신의 복사품을 볼

수 있다.

니므롯이 제 신들의 아버지로 숭배되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신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앗시리아의 역사에 니므롯을 말하는 니누스(Ninus)의 아내로 언급되어 나온다.

니므롯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피� 사냥꾼이었다.

고대 니느웨(Nineveh)에서 복구된 가장 유명한 조각품 중의 하나는 사냥에 나선 니누스와 그의 아내를 보여주고

있다. 세미라미스(Semiramis)의 등위에는 화살로 가득차 흔들거린다. 바빌로니아 종교에 있어 모든 신의 이름을

보면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알 수 있다.

가령 벨(Bel)로서, 벨루스(Belus)와 바알(Baal)은 제 신들의 아버지 니므롯이며, 또한 니느웨 사람들의 이름인

벨티스(Beltis)는 제 신들의 어머니를 의미한다. 벨티스(Beltis)는 또한 바알(Baal)의 아내 바알티(baalti)와 같은

말이다.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 시절에 '벨루스(Belus)와 벨티스(Beltis)' 둘 모두의 명칭은 위대한 바빌론

신과 여신으로 결합되었다.

벨티스(Beltis)는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다. 로마의 역사가이자 도덕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Valerius Maximus:d. 20 A.D.)는 백성들의 반란을 진압한 가운데, 한 제례의식에 갑자기 나타나 유혹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준 세미라미스(Semiramis)의 일화를 들려준다.
그 제례의식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유혹적인 자태를 보여주는 바빌론에 세워진 한 조상(彫像)에 의해 영구화되

는데, 시간이 지나, 그녀는 관능적 신앙의 상징이 되었으며, 바빌론은 성적인 숭배지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적인 비밀제의(祭儀)를 치루는 그 뒤의 모든 신비교단들은 그러한 성적 비밀의식이 모두 그녀로부터 비롯했

음을 말한다.

고대의 비문들은 니누스(Ninus) 또는 니므롯(Nimrod)은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Semiramis)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그 둘은 모든 형태의 성적인 방종을 만끽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은 심지어 양성을 가진 자로 추측되기도 한다.

언어의 혼란이 오고 나서, 바빌론의 거주자들이 해외로 흩어졌을 때, 니므롯(Nimrod)과 세미라미스(Semira

mis)는 다양한 언어의 무수한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산의식(多産儀式)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세미라

미스(Semiramis)는 그녀의 남편보다 무려 42년이나 오래 산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더 히슬랍(Aiexander Hislop)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신앙을 만들어냈

는데, 이는 많은 종교들의 어머니-어린아이 신들 속에 영향을 주었다.

-이집트에서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의 이름으로 숭배된다. 인도(India)에서는

심지어 오늘날까지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로, 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oius)로,

로마에서는 훠튜나(Fortuna)와 쥬피터-퓨어(Jupiter-puer) 또는 소년 쥬피터(Jupiter)로, 그리스에서는 가슴에

아기를 안은 위대한 어머니 세레스(Ceres) 또는 소년 플루투스(Plutus)를 손에 잡고있는 평화의 여신 아이렌느

(Irene)로, 심지어 티벳, 중국, 일본에서는 신성한 어머니 싱무(Shing Moo:聖母)는 팔에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으로 대표된다. 날개 달린 소년 신인 비너스의 아들 큐핏(Cupid), 자유의 여신 훼로니아(Feronia)와 그녀의

젊은 아들 쥬피터(Jupiter) 등-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모든 '어머니 여신'의 기원은  세미라미스(Semiramis)로 귀착된다. 히슬랍(Hislop)에

의하면 그녀는 억제되지 않은 정욕과 음탕함의 전형이었다.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제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인 온화한 처녀 리아(Rhea)로 숭배되었으며 비너스(Ven

us)로 동일시되었는데, 성교, 성병을 의미하는 버니어리얼(Venereal)은 비너스에서 온 단어이다.

우리는 당시 신전에서 어머니 여신을 숭배하는 음탕한 제례의식을 묘사한 할리(Halley)의 글에서 고대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성병(Venereal disease)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성적 열애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었다. 그녀를 숭배하는데는 음탕함이 필요했으며, 그녀를 숭배하는

신전에서 행해지는 신성한 매춘은 바빌로니아 여성들 사이에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그녀를 모시는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남성숭배자에게 위락 받을 수 있는 멋진 은거처 또는 별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들 매춘 여사제들

더하여, 모든 처녀, 아내, 과부들은 이러한 성적 봉사 의식을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집전 해야만 했다.-

히슬랍(Hislop)은 '어머니 여신'이 '제 신의 아버지'의 아내임과 동시에 어머니임을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교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설명해주는 몇 몇 신화들을 조사했다.
그는 난잡한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니므롯이 죽은 뒤 임신하게 됐다고 시사한다. 당혹스러움을 덜기 위해,

그녀는 태양의 빛 줄기에 의해 처녀잉태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자궁에는 약속된 구속(救贖)의 씨가 있었다. 그 위법적인 사내애가 태어나자, 그녀는 사람들에게 니므롯

환생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 여신이 동일인의 아내임과 동시에 어머니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 아이를 구세주로, 자신을 성모(聖母)로 신격화했다.

 

니므롯의 사후 신성을 건네받은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환국(桓國)의 광명신앙은 슈메르

후예들에 의해 중동에서 세미라미스에 의해 새로운 옷을 걸치고 루시페리안(빛) 교단으로

나타나 이름을 바꾸어 각기 이집트, 로마, 그리스 등으로 밀고 들어간다.

 

 

니므롯이 죽자, 그의 모든 속성은 그녀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에게 넘어갔다. 그녀의 증언 한마디에

의해 바빌론의 신비는 결정되었으며, 다양한 이름의 여신은 여왕 세미라미스(Semiramis)가 성채와 바빌론

탑을 완성하는 영광을 가졌다는 기록을 전한다.

예를 들어 "태어났을 때에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시벨레(Cybele)는 "탑으로 왕관 쓴 여왕"으로 알려졌다.

리아(Rhea)는 "탑을 잉쪄� 여신"으로 알려졌다. 리아(Rhea)는 앗시리아인에 의해 아스타르트(Astarte) 또는

비너스로 알려졌다.

아시트-타르트(Asht-tart)는 "탑을 만든 여성"을 의미한다. 구약에 나오는 아시토레쓰(Ashtoreth)는 "벽을 에워

여인"이란 의미에서 아스타르트(Astarte)와 동일하다.

에베소(Ephesus)의 다이아나(Diana)는 그녀의 머리 위에 탑으로 만들어진 왕관을 썼는데 그녀는 또한 세미라

미스(Semiramis)와 동일시되었다. 다이아나(Diana)는 또한 "탑 만드는 자" 또는 "둘러싼 성채를 만드는 자"를

뜻하는 타우로폴로스(Tauropolos)로 알려졌다. 전쟁동안 다이아나는 보호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녀는 그들의

성채였다.

굳세고 강건한 것을 상징하는 빛의 제국 환국(桓國)의 광명신앙은 빛의 신앙인 태양신 숭배의 원형이었다.

뒤에 슈메르국의 후예들이 중동에서 세미라미스에 의해 새로운 옷을 걸치고 루시페리안(빛) 교단으로 나타나

이름을 바꾸어 각기 이집트, 로마, 그리스 등으로 밀고 들어간다.

구약 기록자들은 후일 바빌론의 포로시절 영향 받은 니므롯과 연관된 모든 이야기를 자신들의 혈족 안으로

살며시 끌어들여 노아의 후손으로 끌어 붙여 놓았다. 세미라미스의 태양신 숭배는 전 세계의 태양신 숭배의

원형으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징기스칸의 치하에서 타타르 왕자들은 그들의 혈통을 태양광선으로 임신한 천상의 처녀로 말한다.

인도(India)에서는, 신들의 적을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태양신 수리아(Surya)의 어머니가 태양광선이 자궁

안을 비춘 뒤 임신했다고 말해진다.
마찬가지로 "빛을 깨우는 자" 또는 "빛을 나르는 자"를 의미하는 오로라(Aurora)는 비밀리에 빛으로 임신했

다고 알려진다.

오로라(Aurora)와 오리온 신과의 결혼은 바빌로니안 종교의 창시자이자 제 신들의 아버지 니므롯과의 또

다른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페르시아의 비문에 따르면, 위대하고 강력한 사냥꾼인 오리온은 니누스(Ninus)

또는 니므롯이었다.

물론 니무롯은 사후에 신성시되었으며, 별자리 속에 자리잡았다. 이같이 하여 우리는 오리온의 아내 오로라가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 임을 알아보았다.
오로라(Aurora)는 비너스가 그랬듯이 새벽의 여신으로 알려졌다. 비너스는 난마처럼 얽힌 속에서도 루시페

리안(빛) 종교에게 또 다른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비너스는 물론 하늘에 떠 있는 새벽 별이다. 로마인의 비너스는 우리가 앞서 살펴 본대로 세미라미스와 일치

하는 아스타르트(Astarte)와 동일하다.
앗시리아의 비너스는 뒤에 "처녀 어머니"를 나타내는 처녀좌 버고(Virgo)가 되었다.

비너스는 또한 니무롯의 서로 다른 이름 바쿠스(Bacchus)와 타무즈(Tammuz)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엘레레

우스(Eleleus)로서 바쿠스는 "빛을 나르는 자"를 의미한다. 새벽별인 비너스 역시 "빛을 가져다주는 것" 또는

"빛을 나르는 자"로 알려졌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전설과 이시스 전설에는 세미라미스의 연원을 보여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제 우리는 오시리스는 니므롯이고 이시스는 세미라미스임을 안다. 니므롯이 비극적으로 죽었듯이 오시리스

역시 비극적으로 죽었다. 피어슨은 「프리메이슨 조직의 전통」에서 모든 신비주의 종교는 그의 죽음을 애도

하고 있다고 확언한다.

-모든 곳, 모든 형태 속에서 그들의 신비주의 의식은 장례식처럼 애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의 신화적인

죽음과 다소 신성하고 영웅적인 인물의 부활을 기념한다. 전설의 세부묘사와 죽음의 양식은 그것을 행하는

나라마다 다르게 변화되었다.

각 전설은 몇 몇 특정인의 폭력에 의한 죽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들 특정인은 몇 몇 신화에는 신으로, 다른 곳

에서는 반인반신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위대한 전사 또는 농사 일, 예술, 과학에 혜택을 준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죽음의 결과,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있게 되어 그것을 찾는 탐색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전체 또는 일부를

찾거나 또는 일부를 대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처음엔 슬픔과 탄식이었으나 끝은 기쁨과 환희였다.

이것이 바로 이 지상에서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행해진 신비의식이 담고있는 전설의 간단한 요약이다.-

시리아의 탐무즈(Tammuz)와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는 오늘날까지 신비종교들 속에 탄식의 전설을 고스

란히 간직하고 있는 신이다.  탐무즈(Tammuz)의 제례의식은 핵심적으로 오시리스의 그것과 같다.

우리는 오시리스가 니므롯(Nimurod)에 대한 이집트식 이름이며, 탐무즈(Tammuz)가 시리아식 이름이라는 걸

알고 있다.

탐무즈와 오시리스 모두는 폭력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둘 모두는 애도되었으며 보통 여성들에 의해 애도되었다.

유태인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마이모니데스(Maimonides:1135-1204)는 "타무즈가 죽었을 때, 바빌론 신전에서

엄청난 애도 행사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

바빌로니안 여성들이 탐무즈(Tammuz)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동안, 유태인 여성들은 예루살렘에서 동일한

애도의식을 배워 집전했다. 이들 유태 여성들이 탐무즈(Tammuz)를 애도하고 있을 때 이미 B.C. 606년에

바빌로니아 포로기간 중 바빌론으로 보내졌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도 니므롯인 탐무즈(Tammuz)를 애도했을 뿐 아니라, 솔로몬 성전에서 애도의식을 거행

했다. 그리고 나서 B.C.586년에 두 번째로 니므롯의 땅에 포로로 보내졌다.

 

힌두교도들이 그들의 미래의 구원자이자 이 시대의 샴발라의 마지막 왕인 '스리칼키 아바타라

(Sri Kalki Avatara)-미륵불'가 샴발라의 맥을 통해 온다고 하는 '카일라스'로 불리는 지구의 조종

(朝宗)산인 수미산(須彌山)-쿤륜의 비의(秘義)

 

그러면, 여기에서 잠시 동양 특히 동북아의 우리 성모신화로 방향을 바꾸어보자. 복희와 여와의 모델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으므로 지면상 줄이고 동북아시아에서 자리잡았던 우리 조상의 성모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기로

해 보자.

현지어로 '카일라스'로 불리는 지구의 조종(朝宗)산인 수미산(須彌山)-곤륜산에 달의 호수인 '락사스 탈'과 해의

호수인 '마나사로바' 일명 '마나스' 호수가 있는 것은 실로 흥미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해의 호수 변에 '치우 곰파(사원)'가 있다는 것은 배달국의 치우신앙의 뿌리가 수미산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또 가우리(고리: 고려) 쿤드 호수의 이름은 뭔가 석연치 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함경에 의하면 카일라스는 향산(香山), 향취산(香醉山)으로, 붓다의 탄생설화를 전하는 '팔상도(八相圖)'라

전하는 '도솔내의상(도率來儀相)'에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이 마나스 호수는 불교의 아뇩다지(阿縟達池) 또는

아나달지(阿那達池)로 마야부인이 성욕(聖浴)을 하고 석가를 낳은 성지이며, 석가와 동시대 인물 자이나교의

창시자 니간타 나타푸타가 깨달음을 얻은 이래 자이나 교도들의 성지로 자이나교도인 간디가 묻힌 곳이며,

힌두교의 시바신이 임어 해 있는 힌두교도들의 성지이다.

본래 카일라스(수미산)는 시바신이 차지하기 전, 고대 브라흐만 교 시대의 최고신이며 또한 번개의 신이었던

인드라 신의 궁전이었다.

이는 카일라스(수미산)가 우주의 중심축이자 세계의 중심인 메루(Meru) 산이라는 불변의 원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바신이 인드라 신을 몰아내기 전, 태양신의 형태로 인도로 들어간 사실을 반영한다는 점

에서 환국(桓國)과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빛의 신이었던 인드라 신이 제석천(帝釋天)으로 변해 불교로 넘어가 버리고 그 자리를

슈리아(Suriya)라는 격이 한 단계 낮은 방위 신이 빛의 신으로 힌두교의 판테온(만신전)에 들어앉았다.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見 김 규현 著 도피안사 刊)

또 라마승들은 윤회의 원리인 칼라챠크라(Kalachakra)가 그들 자신들의 가르침의 본체라는 이유로 보디사트

바들(보살들)이 사는 비밀장소로 곧장 인도하는 과학이라고 말한다.

과학적, 예언적, 신비적인 밀교 기록의 대요는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알려지지 않은 영적 체계로 알려져 있는

데, 티베트 민족종교인 본(Bon) 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석가를 비롯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부처들은

샴발라(Shambhala:이상향인 샹그릴라의 티베트어)에서 입문했으며, 그들 각자는 한결같이 칼라챠크라의

원리를 발표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의 보다 더 깊은 원리들은 구전으로 남아있지만 이에 대해 한 번도 기록된 적도 없고, 불경스럽게

자세히 파고 든 적도 없다고 말한다.(「Shambhala」by Victoria Lepage)

샴발라는 고대 환국(桓國)의 이상적 세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시 언급할 때가 있을 것이라

본다.

빅토리아 리페이지(Victoria Lepage)는 자신이 볼 때, 우리 문명이 착수해야 하는 새로운 통합원리의 탐색은

보다 높은 도적, 비의적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는 바로 이 근원-샴발라로 이르게 할 것으로 확신하며,

환국(桓國)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샴발라가 새로운 밀레니움의 엄청난 아이콘(Icon:우상)이 될 거라고

말한다.    

카일라스(수미산)인 쿤륜산이 태양신의 고향으로 전 세계의 유사 태양신을 만들어 낸 고향인 것은 수많은

학자들이 이미 고증한 바이거니와 아나달지(阿那達池)인 마나스 호수는 황하의 수원이자 4대강의 발원지로

예수, 석가, 공자는 모두 이 산을 조종(祖宗)으로 해서 왔다.

명(明)대의 철인 주장춘(朱長春)의 「진인도통연계(眞人道統聯系)」는 바로 이러한 비교(秘敎)적 메시지를

상세히 전하는 대표적인 오칼트(Occult) 문서이다.

이 문서는 쿤륜산을 조종으로 해서 첫째, 유발산(儒拔山)으로 해서 니구산(尼丘산) 72봉우리로 뻗어 공자와 그

72 문도를 배출했다는 것과 둘째, 불수산(佛秀山)으로 해서 석정산(釋定山) 499 봉우리로 뻗어 석가모니와 그

제자 499나한을 배출했다는 것과 셋째, 12봉우리 감람산으로 해서 예수와 12 제자를 배출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천개벽의 말법 시대에 백두산으로 해서 금강산 일만 이천 봉 기운으로 미륵이 출세하고 일만 이천

도통군자를 배출한다는 실로 신비롭기 짝이 없는 비의(秘義)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비의(秘義)는 힌두교도들이 그들의 미래의 구원자이자 이 시대의 샴발라의 마지막 왕인 '스리칼키 아바

타라(Sri Kalki Avatara)'가 샴발라의 맥을 통해 온다고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 민족뿌리신앙이자 인류최초의 봉선 천제신앙을 3신 상제를 신앙하는 이신설교

(以神設敎)의 소도보본신앙 곧, 신교(神敎)라 했고 장도빈은 신인교(神人敎)라 함&황제-전욱-

고신-요-순의 5제가 태양신을 숭배한 동이족

 

이와 같이 미륵불 신앙의 종주국인 한민족은 또한 고래로부터 본래 담마(진리)를 추구하는 빛의 민족, 광명민족

으로 흰색을 좋아하는 백의 민족이었다.

마치 엘리야와 같이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어 천계로 올라간 최치원은 일찍이 우리민족의 도를 무어라 칭하기

에는 너무나 신비한 감이 있어서 이를 유, 불, 선 3교를 포함한 "현묘지도" 즉 현현묘묘한 도라 말하고 한마디로

축약해 우주공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도, 즉 "풍류도"라 했다.

이 풍류에 대해 정인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풍류란 '부루'라는 우리 고유어의 음에서 나온 말이다. 부루는 '벌(평야)'이란 말에서 온 것인데 '나라'라는 뜻

이다. 이 부루는 고조선의 고어로서 건국한 나라를 가리키며, 그 뒤 국경의 강 이름과 국도의 땅 이름으로 바뀌

었던 것이다. 신라 같은 나라에서는 나라이름에까지 이 말을 붙였다.

신라의 '라'가 망라사방(網羅四方)이란 뜻이었는데 부루교의 '부루'가 그 참뜻이었다는 사실이고, 그리고 그

말이 나라이름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최 치원은 부루교를 '나라의 현묘지도'라 했는데 이 말은 결코 나쁘

게 말한 것이 아니라 칭송한 말이었다.

나라에 도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당연히 국교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르기를 풍류라 한다(曰風流)"라

것은 위의 국도의 '국'자를 다시 훈독한 것이다.

최치원은 이 도가 곧 나라의 도, 즉 국교란 사실을 알았으나 부루가 곧 '국'이란 사실은 몰랐다. 그래서 현묘지

도가 풍류도란 사실을 전하기만 하고 그 본래의 훈(訓)을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대로 최 치원에게 공이 있었으니 가령 신라의 화랑도를 일러 풍월(風月)이라 하여 그것이 본시

부루교에서 유래된 것을 암시하여 준 것이다.

지금 악(樂)의 훈을 풍류라 하고 '풍류를 친다'는 것을 타풍류(打風流)라 하는데, 악(樂)을 풍류라 하는 유래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이 부루(부를 취(吹)  또는 내부를 허(噓))에서 온 말임을 알 수 있다.

악(樂:음악)과 원(原:평야)이 갖는 뜻은 서로 다르나 그 발음이 같으므로 향찰에서는 서로 같이 사음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국내(國內)와 낙랑(樂浪)이 서로 엇갈려 같은 말로 사음된 것과 같은 것이며, 낙랑의

낙(樂)을 풍류라고 사음하고 국(國)을 풍류라고 사음하여 두 글자가 서로 넘나들어 결국 풍류가 두 가지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풍류도의 본 바탕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깎이고 보태져 배달도니 화랑도니 하는 것으로 그 꼴을 바꾸었다.

단재 신채호는 이것을 3신 상제를 신앙하는 이신설교(以神設敎)의 소도보본신앙 곧, 신교(神敎)라 했고

장도빈은 신인교(神人敎)라 했다.

신라의 화랑을 고구려에서는 선인도랑이라 했는데 각기 문무로 나누어 참전과 조의라 했다. 또한 백제에도

문무도가 있어 경당의 6예 제도를 통해 젊은 화랑들을 교육시켰다.

  일찍이 화랑제도는 배달국 환웅시대로부터 시작해 11대 도해 단군 때 정착된 것으로 당시에도 국자랑 제도가

있어 천지화랑, 천왕랑이라 했으며 단군시대에는 하늘의 상제님에게 천제를 지내는 제단인 소도보본단을 지키

금강역사격으로 '삼신시종지랑", 줄여서 삼랑이 있었다.

「삼국유사」<아도기라전>을 보면 아도화상의 어머니 고도령(곱드네>곱단이)이 석가 불 이전에 한반도에

전불(前佛) 시대의 자취가 있으며 신라에만도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신유림(천왕사),

서청전(담엄사) 등 7대 가람(사찰)터가 있었다고 말하고 동서에 석가 불이 4대 부처라고 나온다.

그런데 「화엄경」'입법계품'을 보면 무상연화불, 불사불과 무상승불, 비사부불 및 제사불, 비바시불, 시기불,

구규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등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부처가 인연 법에 의해 왔다 갔음을 말하고 있다.

용수의 「대지도론」을 보아도 석가불 이전에 지상에 다녀간 부처들의 명호(이름)가 구체적으로 나오고

「대방광불화엄경」을 보면 법기보살이 천 이백 명의 보살권속과 더불어 그 속에 함께 살면서 진리를 강독한다

했으며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 중흥 비문에도 담무갈이 일만 이천 보살을 데리고 수도하였다 했다.

그 뿐 아니라, 중국 화엄종의 지도자 청량국사의 『청량소(淸凉疏)』에도 담무갈이 금강산에서 1만 2천 보살을

데리고 수도한다 하였다. 한반도의 금강산이 전불시대의 강론 중심지임을 보여준다. 석가 불이 부탄, 인도를

배경으로 출세하기 이전의 전불 시대에는 성지순례의 중심지가 한반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우리 동이족의 주무대가 바로 대륙이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당시로 볼 때는 이방

지대였다.

황제헌원-전욱고양-제곡고신-요-순의 5제가 태양신을 숭배한 동이족으로 태양신의 이름을 취하고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황제로부터 요(堯), 순(舜), 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이 같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맹자는 순이 동이(東夷)인이며, 주(周)나라 문왕(文王) 역시 동이인이었으나 서쪽으로

서이(西夷)사람이 된 것을 언급하고 있다.

「맹자 이루(離婁) 하」에 "순(舜)은 제풍(諸風)사람이니 동이인"이라 하였고 "맹자는 문왕은 기주(岐周)에서

나서 필영(畢 )에서 죽었으니 서이(西夷)의 사람"이라 했다.

「맹자(孟子)」集註8권을 보면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에서 살다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족 사람이다

(舜生於諸風 遷於負夏卒於鳴條 東夷之人也)" 했다.

집안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해와 달의 여신과 함께, 해 속에는 발이 셋 달린 유명한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져

있는 그림과, 달 속에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 나온다.

이 삼족오는 「부도지(符都誌)」에서 환국이 위치했다는 천산 부근의 마고성(麻姑城)인 듯이 보이는 실크로드

요충지, 뚠황(敦煌)의 명사산(鳴沙山) 천불동(千佛洞) 막고굴(莫高窟)에서도 보인다.

「산해경(山海經)」<해내북경>에 열고야(列姑射)와 야고국(射姑國)이 보이며 그 주(註)에 속의 막고야

( 姑射)산이 이 산이라 했으며 「장자(莊子)」<소요유> 곽박, 동차이경의 남·북고야산이 이 산이라 했다.

 

태양신인 복희와 달의 여신 여와는 니므롯과 세미라미스 그리고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모델 을

만들어냄.

 

태양신인 복희와 달의 여신 여와는 니므롯과 세미라미스 그리고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모델 을 만들어냈다.

「산해경」에 달신의 이름은 상의(常儀)로 나오는데, 고대에 의(儀)는 아(娥)로 읽었으므로 다른 기록에서는

상아(常娥)로도 기록했다.

상(常)과 상(尙) 역시 고대에 통용되었으므로 「여씨춘추: 여불위 著」에서는 상의(尙儀)라고도 표기되고 있다.  

우리 동이민족의 신화에 은하수의 오작교(烏鵲橋) 신화가 있다. 해마다 7월 7석이 되면 세상의 까막까치가

모두 은하수에 올라가서 오작교(烏鵲橋)를 만든다.

그러면 은하수 건너편에서 서로 바라만 보던 견우(牽牛), 직녀(織女)가, 일년에 한번 잠시 만난다는 설화다.

까치가 날아가 오작교가 없어지면 안되니까, 사랑하는 연인은 그 전에 헤어져야 한다.

그들의 아쉬운 눈물은 그만 비가 되어 지상에 내린다. 민간에서는 이날 밤 마당에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는 본래 해와 달을 상징한 것으로 까마귀는 본래 태양 속에 있는 삼족오를

상징하는 것이다.

달은 본래 음력으로 매달 1일(合朔)에 해가 뜰 때 뜨고, 7일에는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뜨고, 15일(望)에는 해가

질 때 뜬다. 태양신 신앙의 뿌리민족인 우리 동이민족이 이런 태양신 신앙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국내의 여러 학자들은 북부여의 해모수와 해부루의 해(解)가 바로 태양을 가리키는 해라고 말한다.

박 용숙 교수는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인류최초의 조상 나반과 아만이 처음 만난 아이사타(비)(阿耳斯陀)에

대해 「삼일신고(三一神誥)」에 최초의 남신과 여신이 아이샤타(阿耳斯陀)에서 만나 혼인했다고 기록되어있음

들어 아이샤타는 '아슈타르테', '이슈타르'의 음기(音記)로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이슈타르'를

'아이슈타'로 부른 사실을 연관시키고 있다.

「환단고기」의 내용과 「삼일신고(三一神誥)」의 내용이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에 반하는 것으로, 북애자의 「규원사화」와 대야발의 「단기고사」와 일치하고 있거나 상호 보완적인

면을 보아도 민족사서로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박 교수는 그밖에도 많은 신진 사학자들이 있겠지만 국내에서 이 중재, 김 상일, 안 창범, 윤 내현 교수 등과

같이 민족사의 진보적인 학설을 내놓고 있는 인사다.

신 채호, 박 은식, 문 정창, 이 유립, 장 도빈,  최 동 등의 민족사학의 거목도 처음에는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혁신적 진보사학자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공로를 과소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일제로부터  식민사관을 이어받은 강단사학파가 학계를 주름잡은 갓 해방된 조국의 현실 하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실증주의 사관에서 빗나간 진보적인 학설이란 것이 마치 과학자가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듯이 전위적

이고 실험적인 것이어서 곧바로 왜곡된 학계의 주목을 사로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군조선을 포함한 삼위 성조시대의 상고사에 관한 기존의 국내 강단 사학자의 연구서들을 보면 마치

레미콘 안에 모래, 자갈, 시멘트 넣고 천편일률적으로 돌리는 것처럼, 이 책이 그 책이고 그 책이 이 책인 참

으로 한심한 실정이다. 이는 단군 조선을 인정하지 않은 이 병도의 휘하의 식민지 사관에 둘러싸여 의도적으로

민족 상고사에 대해 방관, 회피한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사학의 괴수 이 병도가 말년에 죽기 바로 전, 단군의 존재를 인정하고 죽은 것과 그렇게 인정하게

만드는데 영향을 준 최 태영 박사 등이 민족 상고사 연구에 매두몰신하는 것은 그나마 민족을 위해 큰 다행이

었다.

또 근자에 단군학회가 구성되어 단군 조선을 본격적으로 학술적인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과 정 영훈의

『국사교과서의 상고사 서술 변천과정과 문제점』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상고사 연대의 중고교 교과서 반영이

발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아주 다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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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의 상고사 서술 변천과정과 문제점』정영훈) 74년판 국사교과서는 즐문토기(빗살무늬토기) 제작

인이 들어온 시기를 서기전 3000년경으로, 79년 판부터는 기원전 4000년경으로, 82년 판부터는 시기는 적지

않고 원시무문토기와 융기문 토기의 신석기 시작시기를 B.C. 6천년 경부터로, 90년 판부터는 신석기 시작을

B.C. 6천년 경으로 적고 있다./

 

철기시작시기도 74년 판은 위만 유입기로부터 시작했다고 했다가 79년판에는 산뚱반도, 북 중국 방면의 동이

족이 전국시대의 혼란을 피해 만주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시작한 것으로 했다. 82년 판에서는 79년 판과 동일

하나 동이족을 예맥족으로 바꾸었고,90년 판부터는 B.C. 4세기 경부터 시작했다고 명기했고, 96년 판에서는

B.C. 300년부터 기원전후 300년을 초기철기시대로 비정했다.(그러나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철기

시대는 14대 치우(자오지)천왕 시대인 B.C. 2707-B.C.2598로 비정(批正)된다.)/  

 

민족기원의 문제는,

 

74년 판에 민족주체를 맥족과 한족으로 청동기 문화를 성립시킨 무문토기 문화의 주인공인 알타이어계 퉁구스

으로 적다가,

79년 판에서는 언급하지 않던 '동이'를 거론하고 '한족'과 '예맥족'을 부각시켰다.

 

82년 판에서는 인종상 황인종이며 언어학상으로 알타이어 계에 속하며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

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하나의 민족단위를 이룩하고 있었고,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적어 주류종족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으며, 예맥 족에 대해서는 "산뚱 반도

중국 북동부 지방에까지 널리 분포하여" 살다가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해 중국전국시대의 혼란을 피해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고 적고 있다.

 

90년 판부터는 민족 형성기간을 더 올려 잡아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던"

신석기 인들이 "오늘날 우리민족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고 명시하여 90년 판에 보이는 신석기시대의 빗살

무늬峨繡??� 시베리아, 몽고지역에서 왔고 청동기 문화는 북방계-스키토시베리안계라는 서술을 삭제시켰다.

 

예맥 족 얘기도 삭제시키고, 대신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표시해 주는 지도에, 중국 산동반도와 발해만 지역에서

만주-한반도까지를 포함하여 동이 족의 분포지역을 표시하고 <주>에서 "동이 족의 분포는 고대의 한민족이라

수 있는 예, 맥, 부여, 고구려, 북옥저, 읍루를 아우르는 지역"이라고 모호하게 기록했다가 96년 판에서는,

크게 바뀌지 않고 다만"우리 조상들은 대체로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이며,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는 과정

에서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수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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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왜곡된 중화사관과 일제 황국사관에 안주해 서로가 서로의 왜곡된 기존 학설만을 베끼고 인용하는 소위

현실안주하기에 비하면 이들 몇 몇 소수 학자들의 혁신적인 진보학설은 마치 생명과학자가 부단 없이 무언가를

실험하고 모색하듯 아주 신선한 학문적 성취를 보여준다.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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