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최치원난랑비서(崔致遠鸞郞碑序)라면 너무나 유명한 명제로서 한국사상을 연구하는 사람
이라면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내용은 우리 나라에 현묘지도(玄妙之道)인 고도교(古道敎), 불교(古佛敎), 유교(古儒敎)
3교일체의 화랑도(풍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본원적 고유사상이며 고유종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도권 학자들
은 난랑비서(鸞郞碑序)의 내용을 인정치 않는다.
곧 한국의 현행 불교, 유교, 도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한국에 이미 古佛敎, 古儒敎, 古道敎
三敎一體인 天敎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고, 고유사상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다.
왜냐하면, 난랑비서의 내용은 시대적 발전과정에 맞지 않고, 다른 민족보다 먼저 나라를
세우고 종교를 창설했다는 사실은 조작이며, 원시시대에 성립종교란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 또한 우리 민족은 소수 민족으로서 고유종교를 창설할 수 있느냐 하는 의심,
그것이 난랑비서를 부정하는 근본원인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구미에 맞게 자의에 따라 난랑비서를 곡해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사상도 종교도 없는 민족이 되고, 남의 사상과 남의 종교에 의해
사라가는 더부살이 민족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조(설날 아침), 한식, 단오, 추석 등 명절과 기일제사와 미풍양속이 모두 중국에서 전래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교(巫敎)만이 우리 민족의 것인 양 자랑한다.
곧 우리 민족은 주체사상도 자주의식도 주인의식도 없는 민족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은 국토를 중국과 일본에 뺏겨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못하고, 내 나라를 내
나라라 주장하지 못하며, 내 민족을 내 민족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비굴한 민족이 되고 있
는 것이다. 不正이 正義룰 지배하고, 惡이 善을 지배해도 거기에 저항하거나 부정하지 못
하는 비열한 민족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우리 나라 교육계의 실정이며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2. 최치원난랑비서의 원문과 그 해석
최치원난랑비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崔致遠鸞郞碑序曰 國有玄妙之道曰 風流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 제4, 24 진흥왕 37년조).
다음은 최치원난랑비서에 대한 일반적 국역이다.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는 현묘한 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가르침을 설치한 근원은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도불유)三敎를 포함한 것
으로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 또한 그들은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니 이는 魯나라 司寇(공자의 벼슬)의 敎旨이며,
또한 모든 일을 거리낌없이 처리하고 말 아니하면서 일을 실행하는 것은 周나라 柱史
(노자의 벼슬)의 宗旨였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행실만 신봉하여 행
하는 것은 竺乾太子(가비라성의 석가)의 敎化이다.
(金鍾權 譯,<三國史記>, 광조출판사, 1979, p.69. 崔虎 역해,
<三國史記>홍신문화사, 1994, p.84. 李丙燾 역주,<三國史記>, 을유문화사, 1992, p.74)
이러한 해석에 따라 한국사와 한국사상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화랑도는
도불유(유불선) 사상을 “흡수하였다. 종합하였다. 수용하였다. 절충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를 자랑같이 주장한다.
(예컨대, 문교부, 「고등학교 국민윤리」, 1982, pp.51-52,
김형효의 논문, “한국정신사의 국민윤리학적 인식”,
민동근의 논문 “한국의 전통적 윤리사상의 발견”, 류동식의
저술,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백세명의 논문 “한국사상의 미래와 장래” 등이다).
다음은 위의 원문에 대한 필자의 국역이다.
최치원 난랑비서에 이르기를 나라에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한다.
이는 종교창설의 원천으로써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도불유)
三敎의 思想을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함은 노(魯) 나라 사구(司寇 :
공자의 벼슬)의 교지(敎旨)와 같고,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함은 주(周) 나라 주사(柱史 : 노자의 벼슬)의
종지(宗旨)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
태자(竺乾太子 : 가비라성의 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위의 두 가지 국역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검토해보면, 크나큰 차이를 발견
하게 된다. 그 차이의 요지를 지적하면,
필자의 국역에서 말하는, 화랑도는 원래 현묘지도로서 천부적으로 도불유(유불선) 삼교
일체(三敎一體)의 사상을 원래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實乃包含三敎)는 것이다.
이를 비유하면 공자의 교지와 노자의 종지와 석가의 교화를 묘합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일반적 국역에서 말하는 화랑도가 도불유 사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공자의 교지와 노자
의 종지와 석가의 교화를 받아들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국역은 화랑도의 도불유
사상을 선천적 고유사상으로 보는 것이고, 후자의 국역은 화랑도의 도불유 사상을
후천적 외래사상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전자의 국역은 화랑도를 원래부터 종교로 보는 것이고, 후자의 국역은 화랑도의
전신을 무속이나 두레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예컨대, 이병도, 유동식).
최치원난랑비서에 대한 이상과 같은 국역의 차이는 사소한 문제 같지만 크나큰 중대문제
인 것이다.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원래부터 종교가 있었고,
주체사상이 뚜렷한 민족이며, 후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주체사상이나 주체
종교가 없는 민족으로 보인다.
전자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그 사상이 심오하고 광범한 원융무애의 대범한 민족이며,
후자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외래사상만을 수용한 열등민족 같이 보인다.
전자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긍지와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며, 후자에 의하면, 우리 민족
은 비루하고 초라한 민족같이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이 최치원난랑비서에 대한 국역의 차이는 우리 민족의 사상사와 정신사에 충격적
혼란을 초래하고 교육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가져오게 된다. 이하에서 필자의 국역을
중심으로 화랑도는 원래부터 도불유 삼교일체의 합리적인 성립종교임을 논증한다.
위의 원문에 표현된 개념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밝히면,
그것은 난랑(鸞郞) 즉 화랑=현묘지도=풍류(風流)=설교지원(設敎之源)의 교(敎) 즉
종교=선사(仙史)의 선(仙) 즉 신선사상=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이다.
다기 말하면, 화랑도, 현묘지도, 풍류도,종교, 신선사상, 실내포함삼교가 상호 등식관계
로서 동계사상이다. 이를 보면 화랑도는 현묘지도로서 실내포함삼교한 三敎一體 思想
이다.
實乃包含三敎란 근본적으로 도불유(道佛儒) 3교의 사상을 이미 자체 내에 지니고 있
다는 뜻이다. 즉 현묘지도인 화랑도는 도불유 三敎一體 사상이며,
그 사상은 후천적 외래사상이 아니라 선천적 고유사상이라는 것이다.
곧 우리 나라에는 외래종교인 도불유 삼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前불교, 前유교,
前도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미궁에 빠졌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화랑도의 사상인 것이다.
여기에서 화랑도는 하나의 떳떳한 합리적 성립종교라는 사실이 들어났다고 할 수 있고,
우리민족은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도 가장 먼저 합리적인 성립종교와 사상을 지닌 민족
이었다는 사실이 들어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三敎一體의 思想을 부연 해설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도불유 3교사상을 함축한 일물삼면(一物三面)적인 체일용삼(體一用三),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이란 뜻으로 화랑도는 어느 종교보다도
더욱 심오하고 광대무량한 종교라 할 수 있으니,
화랑도를 나누면 도불유가 되고, 도불유를 귀일하면 화랑도가 되어 화랑도는 도불유의
본체가 되고, 도불유는 화랑도의 변용인 쓰임이 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그 사상을 비교해 보면, 화랑도는 노자의 도교나 석가의 불교 및 공자의
유교 등 그 본체가 되고, 이들 종교는 화랑도의 변용인 쓰임으로서 한국에 역수입(逆收入)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랑도는 이들 종교의 개별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도교(古道敎), 고불교(古佛敎),
고유교(古儒敎)가 되며, 화랑도를 설한 환인, 환웅, 환검은 고선(古仙), 고불(古佛),
고성(古聖)이 되고, 동시에 삼선(三仙 : 神敎的으로 표현하면 三神), 삼불(三佛),
삼성(三聖)이 된다. 여기에서 환인, 환웅, 환검은 三聖, 三佛, 三神人으로서 신화적 존재
가 아니라 역사적 실재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들어난다.
3. 최치원난랑비서의 왜곡사유와 그 해설
그러나 국사학자와 한국사상 연구자 및 기독교인 특히 실증사학들은 최치원난랑비서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왜곡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사료된다.
첫째, 원시시대에 합리적인 성립종교가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둘째, 화랑도가 노석공(老釋孔)의 도불유(道佛儒) 보다 선행종교라면 어떻게 이들 사상을
수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셋째,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이고 식민지였는데 노석공의 도불유 사상을 어떻게 창설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넷째,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먼저 나라를 세웠다거나 종교를 창설했다 함은 우국심
에서 조작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상의 문제가 지금까지 규명되지 않음으로써 우리민족은 고유철학도 고유종교도 없는
미개민족 같이 멸시돼왔고, 金石之文인 “최치원난랑비서”가 고의적으로 왜곡되고 있
는가 하면, 선대의 고도한 철학과 과학도 부정되고, 그에 대한 기록도 위서로 몰리게
되었다고 본다. 이하에서 요약 해설한다.
1)
도불유 사상은 대자연의 운행원리인 天道에 바탕을 두고 설하여진 사상이다.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 의해 조작되거나 창작될 수도 없는 사상이며, 중국이나 인도에만
국한해서 존재할 수 있는 사상도 아니다. 시대와 장소,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사상이다.
그러므로 본 문제는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이 대자연의 운행원리인 천지인일체(天地人一
體)의 원리에 의해 설해졌고, 노자의 도교와 석가의 불교와 공자의 유교는 화랑도의 지류
로서 역수입되었음을 밝히면 자연히 풀리게 된다.
2)
최치원 선생이 史學에 대해서 博學한지 의문이 되고, 後代人이 기록한 先代의 史實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치원 선생보다 더 박학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신라가 낳은 유일한 대문호이며 대사상가이고 道師이다.
이러한 사람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면, 어느 누구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난랑비서가 후대인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風流設敎之源 備詳仙史”라 하여
<仙史>라는 古書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史家들의 史書가 모두 編者보다 先代에 관한 기록들이지만 거기에 전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격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史家들의 史書를 믿어야 한다면 당연
히 난랑비서의 기록도 믿어야 하고, 더욱이 한국사상을 말하는 사람치고,
최치원 난랑비서를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 없음을 볼 때, 난랑비서의 기록을 믿지 않을 수
없다.
3)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 화랑을 처음으로 받들었다는 기록을 어떻게 믿겠
느냐 하는 문제이다.
만약 이 기록을 못 믿는다면, 그 보다 14년 전 진흥왕 23년 9월에 가야(伽倻)가 반(叛)할
때, 이사부(異斯夫)와 함께 출정하였던 사다함(斯多含)을 화랑이라 하였으니, 그것도
믿을 수 없고, <삼국사기> 전체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흥왕 37년이라는 연도문제는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는 진흥왕이 즉위하자 민가의 양자(良子) 가운데 아름다운
자를 뽑아서 원화(源花, 女花郞)를 받들었다 하였고, <태백일사>를 보면 삼한고속
(三韓古俗)에 소도제천의식이 있었고, 그 소도가 있는 곳에 경당(扃堂)이 있어 미혼자제
에게 충ㆍ효ㆍ신ㆍ용ㆍ인의 오상(五常)과 독서ㆍ습사ㆍ치마ㆍ예절ㆍ가락ㆍ권박 겸
검술 등의 육예(六藝)를 가르쳤으며, 여랑(女郞)을 원화(源花), 남랑(男郞)을 화랑(花郞)
또는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 처음으로 화랑을 받들었다는 연도는 무시
해도 좋다는 것이다. 이래서 <삼국사기>의 기록을 어느 면에서 불신하게 된다.
4. 최치원난랑비서의 왜곡
그러면 원융무애한 화랑도가 어디에서 왜곡되고 있는가? 그것은 최치원난랑비서에 대한
한문의 왜곡에 있다고 단언한다.
곧, 난랑(鸞郞), 설교지원(設敎之源)의 설교(設敎),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의
포함(包含), 그밖에 차여(且如)를 왜곡하고 있다.
첫째, 난랑(鸞郞)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서 난새와 화랑의 복합명사이다.
자전(字典)에 의하면 란(鸞)자는 “난새(란)”자로서 난새는 봉황(鳳凰)의 일종인 영조(靈鳥)
라 하고, 닭 비슷한데 털빛은 붉은 바탕에 다섯 가지 색채를 섞였으며, 소리는 다섯 가지
음에 맞는 새라 하였다. 또한 푸른 빛이 짙은 봉황을 이른다고도 하였다.(東亞漢韓大辭典).
<죽서기년:竹書起年>에는 봉황은 생충을 먹지 아니하고 생초를 딛지 않는다 하였고,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는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 아니하고 대나무 열매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봉황은 살생을 아니하는 인조이고 뜻이 고결한 성조임을 말
하고 있는 것이다.
화랑들도 오색찬란하게 구슬로써 장식하고 분을 곱게 바르며 아름답게 옷을 입고 때로
산과 물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도의를 닦고 노래를 즐긴다. 그뿐만 아니라 겸손하여 지위
가 높으면서도 윗자리에 앉지 않으며, 검소하여 부지런하면서도 사치하지 않으며,
인자하여 세력이 있되 쓰지 아니한다.
이를 삼미행(三美行) 또는 삼덕행(三德行) 또는 삼이사(三異事)라 한다.
이와 같이 화랑의 생태와 성격이 봉황과 너무나 비슷하다.
그러므로 난랑은 화랑을 봉황(鳳凰)에 비유한 복합명사로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
이다.
그런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랑(鸞郞)을 어느 개인의 이름 곧 고유명사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치원난랑비서”에는 난랑이 고유명사임을 시사하는 내용이 어디
에도 없다. 그리고 난랑이 비문의 표제가 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라면 인명사전이나
어느 사서에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난랑은 어느 개인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최치원난랑비서의 난랑은
어느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화랑을 봉황(난새)에 비유한 보통명사이다.
화랑(花郞) 또는 선랑(仙郞)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데,
난랑(鸞郞)도 그와 같은 격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난랑비서는 최치원 선생의 저작으로 그 시대는 신라의 국운이 쇠퇴일로에 있을
때다. 국풍의 진작과 부흥이 요청되는 때다. 그러므로 난랑비서는 화랑을 성조인 봉황에
비유함으로써 화랑도의 진작과 부흥을 위해서 쓰여졌고, 그 비가 세워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설교지원(設敎之源)의 설교(設敎)는 “종교를 일으키다. 종교를 창설하다”의
뜻이다. “가르침을 설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왜곡인 것이다.
자전에 의하면 설(設)자는 “세우다, 설립하다, 설치하다, 만들다, 베풀다(은혜를), 늘어
놓다”의 뜻이며, 교(敎)자는 “가르칠(교), 본받을(교), 종교(교)”자이다. 그리고 “성인이신
도설교(聖人以神道設敎)”라는 예문을 들어 설교(設敎)의 교(敎)는 “종교(교)”로 풀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장삼식 편, <大漢韓辭典>, 敎자).
따라서 설교(設敎)는 “종교를 일으키다. 종교를 세우다. 종교를 창설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1982년도 판, 문교부 검정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서는 설교(設敎)를
왜곡하여 “가르침을 설치하다”로 국역하고 있었다. 이렇게 국역할 경우 어떤 장치를 설치
한다면 그 의미가 성립되나 전혀 성립되지 아니한다. 또한 설교(設敎)를 “가르침을 베풀다”
로 국역하는 학자도 있으나, 이 경우는 “지을설(設)”자 대신 “말씀설(說)”자를 써야 옳은
표현이 된다.
셋째,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의 포함(包含)을 포함(包涵)으로 왜곡하고 있다.
사전에 의하면 포함(包含)이란 “원래부터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는 뜻이며, 포함(包涵)은
“밖으로부터 널리 받아들여 지니고 있다”의 뜻이다.
따라서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란 “근본적으로 3교의 사상을 이미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함(包含)을 포함(包涵)으로 왜곡하여 화랑도에 내포되고 있는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밖으로부터 받아들인 후천적 외래사상으로 왜곡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차여(且如)는 “다시 말하면····과 같다, 이를테면····과 같다. 이것은····과
같다”는 뜻이다. “또는, 그런데”라고 풀이함은 왜곡인 것이다.
자전에 의하면, 차(且)에는 “또(再), 다시(再)”라는 부사의 뜻이 있고, 앞의 내용을 대표
하는 “이것(此)”이라는 대명사의 뜻이 있다. 여(如)에는 “같다, 비등하다”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차여(且如)는 “다시 말하면····과 같다, 이를테면····과 같다. 이것은····과 같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차여(且如)의 여(如)를 무시하고, 차여(且如)를 “또는, 그런데”로
왜곡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최치원난랑비서를 왜곡하여 근거도 없이 신선도(천교)를 무교(巫敎)로
(유동식), 화랑도를 두레의 일종으로(이병도) 취급하는가 하면, 외래의 도ㆍ불ㆍ유 사상을
"수용하였다. 흡수하였다. 종합하였다, 혼용하였다"고 곡해하고 있다.(백세명 그 외 다수)
조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이상 종합하여 말하면,
첫째, 최치원난랑비서가 왜곡되고 있었다.
곧, 난랑(鸞郞), 설교(設敎), 차여(且如), 포함(包含)의 의미가 왜곡되고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에는 외래의 도불유 삼교가 전래되기 전, 원래부터 이미 古불교ㆍ
古유교ㆍ古도교 삼교일체의 天敎가 있었다.
셋째, 한국 사회의 타락 원인은 제 민족의 역사과 사상과 종교를 왜곡하여 부정함으로서
스스로 제 민족을 무시하고, 제 나라를 불신하여 사회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수라장
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의 문제가 완전히 증명되려면,
다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1) 불교는 인도에서, 유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부정되고,
한국과 한민족에서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
2) 자연법칙에 의한 도불유 3교사상의 탄생을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
3) 설주인 환웅천황이 역사적 인물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문제는 우선 인터넷에 실려있는 다음의 논문을 보아주기 바란다.
1) 환웅천황은 아미타불이시다.
2) 천지인 사상과 도불유의 탄생.
3) 우리 나라의 백두산은 도불유 사상의 발상지이다.
4) 화랑도의 외래 도불유 삼교 수용설 비판,
5) 개천절은 개벽천지 기념행사이다.
참고문헌 : 졸<천지인 사상과 한국 본원사상의 탄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한국 본원사상 연구 30년, 안 창 범(安 昶 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