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교 신화 설화

메소포타미아 - 신앙, 신화, 의식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4.12.20|조회수162 목록 댓글 0

[메소포타미아] 신앙, 신화, 의식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는 문자에  의한 기록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종교이다.

수메르인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생성된 이 종교는 인생의 갖가지 문제에  대한 정신적, 윤리적인 지도원리가

되었고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가장 깊은 곳의 신비에 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 종교가 남긴 다채로운  숱한 신화는 훗날의  종교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메르인의 뒤를 이어받은 바빌로니아인, 다시  그 뒤를 이은 앗시리아인은 수메르인의 신화를 신들과 종교상의

관습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했다.

물론 쉐르 이후의 신관이나 시인의 수메르 시대의 것을 맹목적으로  답습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든 면에서

배어 있는  수메르인의 종교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거의 없었다.
 
법과 이야기가 교차되는 복잡한 이 종교는 그때까지 항상 인간을 괴롭혀 온 근본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대결하려

했다.

우리들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가.

이 물음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현대과학의 빛에 비추어  보면 터무니 없는 오류이겠지만 솔직하고 깊이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는 납작한 원반이고 그 주위는 광대한 공간이며 그것을 다시 활처럼 휜 하늘이 둘러

싸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안-키(An-ki ; 하늘과 땅), 즉 우주의 모든 것이다. 

 

땅  위, 하늘 밑의 공간에는 릴(Lil)이라는 이름의 물질이 충만해  있다. 천지의 주변에서는 위도 아래도 옆도 무한히

계속되고 바다가 쉼없이 일렁이고 있고 우주를 불가사의한 방법에 의해 고정시켜 놓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은 물의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물은 근원적이고  불멸의 것이며  만물의 원천

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우주, 다시 말하면 활 모양의 하늘과 원반 모양의 땅은 물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 양자  사이에 퍼져 있는 대기는 "아버지인 하늘"과 "어머니인 땅"을 격리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환하게  빛나는

많은 별,  태양, 달을 만들어 내어 인간의 창조와 문명의 전설을 위한 무대를 장만해 주었다.

 

고대의 사상가나 현인들이 우주의  창조와 그 구조를 인간과 관련시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인간의  사회, 인간의 행동은  모두 인간이 지도권을 쥐고 있다.

 

따라서 우주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존재가 지배하고 있을게 뻔하다.

다만 하찮고  생명에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는 보통 보이지 않을 뿐인 것이다.

우주를 관장하는 이 강력한 존재는 지상의 인간계의 지배자보다도 큰 힘과 실현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을 것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만일 죽기라도 한다면 이 세상은  형편없는 혼란

상태에 빠져버릴 것인데 그 수습의 방도는 막막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변광대한 힘을 가진 이 불멸의 존재가 신, 수메르어로 말하면 "딘기르"였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는 그야말로 무수히 있으므로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신이

많지 않으면 안된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신을 만들어냄으로써 이 문제를 무난히  해결해 버렸다.

남아있는 기록들을 보면 기원전 2500년에는 이미 수백 주(柱)의 신이 명부에  올라 있고 그것이  저마다 이름과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있다.
 
현인들의 풍부한 상상력이 낳은 수메르 신들은 수가 많고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원활하고

조화를 이룬 활동상을 보이고 있다.

신들은 그  중요성, 영향력, 권력에 의해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 우주의 4대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신, 즉 하늘의 신 '안', 대기의 신 '엔릴',  물의 신 '안키',  위대한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닌후르사그'

였다.

 

이 넷은  가장 고귀한 신으로  우주의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창조하고  그것들을 자기들의  자손인 모든 행정관적인

신에게 관리케했다. 창조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면 그것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입밖에 내기만 함으로써 실현시킬

수 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고방식이 발전하여 하나의 신조가 생긴다. 신 또는 여러  신들의 말은 그 자체가 무(無)에서 모든 것을  창조

하는 힘을 갖는다.

이것은 근동(유럽에 인접한 동양의 여러나라-터키,레바논,이스라엘,요르단,이란,이라크 등)의 전역을 통해 받아들여

지고 있던  신조의 하나이다.

 

가장 강력하고 현명한 신이라  하더라도 지상에 있어서의 행동은 인간과 비슷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부부인연을 맺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때와 경우에 따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활달해지기도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고상해지기도 하고 비열해지기도 하고

냉혹해지거나 자비로와지기도 한다.

그들은 대개 정직과 예의를 존중하고 거짓이나 나쁜 짓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들에 관한 신화에서 판단하면  흠잡을 데가 없을만큼 결백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다.

신들이 필요하다면 여행도 할 수가 있었다.

태양의 신은 때로는 걷는 수도 있었으나 전차를 한 대 갖고 있었다. 태풍의 신은 구름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고 달의

신은 배를 마음대로 조종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적인 세부 문제는 그다지 구애되지 않았고 다신교에 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신이라 하더라도 큰 병에 걸리는 일도 있고 먹거나 잠을 자거나 주거를 구하거나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싸워서 적을 죽이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

단, 죽음이란 저승에서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러한 모순 투성이의 신들을 의심해 본다는 것은 아마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로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도시 우루크가 수메르를 지배하고 있던 기원전 4000년기의 초반 무렵에는 하늘의 신 안이 수메르의

신의 제 1인자였던 것 같다.

안이 최고 신이었다는 것은 약간 기이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창조에 관한 신화에서는 바다가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원신인 바다의 여신 "하늘과 땅을

낳은 어머니"인 님무가 신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차라리 당연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 서열은 그 원형이 된 메소포타미아의  정치기구가 그러했듯이 남성우위였다.

그래서 안이 신들 위에 군림한 것이다.

그러나 안은 우르크의 쇠퇴와 함께 위신을  많이 상실했는지 신화나 찬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게 된다.

안의 권력과 특권은 거의 그대로 대기의 신  엔릴에게로 돌아갔다.

엔릴은  마침 그 무렵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의  정치상, 종교상의  중심지가 된 도시 니푸르의 수호신이었다.

 

기원전 2500년 이후의 약 1000년 동안 엘릴은 수메르의 수많은 신 중에서 지고의 지배자였으며 바빌로니아인도

앗시리아인도 어느 정도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엔릴이라는  이름은 수메르의 복합어로서 "대기의 지배자"라는  뜻이다.

엔렐은 "아버지인 하늘"이 "어머니인 대지"와 헤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있다. 헤어진 후  곧 "어머니인 대지"는 

엔릴의 자식을 낳았다.

그런 연유로 해서  엔릴은 "신들의 아버지",  "우주의 왕", "모든 땅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다.

엔릴은  "땅의 씨앗"을 대지로부터 솟아오르게 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출현케 하고 곡괭이를 발명하여 인간에게 

주어 농업을 발전시켜 번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신들은 엔릴의 축복을 받으려고 안달을 했다.

어떤 신화에 의하면 큰 힘을 가진 물의 신 에리두의 수호신 엔키는 호화주택 "바다의 집"을 지은 후, 엔릴이 사는

니푸르의 신전 에쿠르에 가서 축복해 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달의 신 난나의 이러한 신화도 있다. 난나는  저 유명한 도시 우르의 수호신이었으므로 우르를  언제까지나 안정된

상태에 두기를 원했다. 그래서 난나는 배에 많은 선물을 싣고 니푸르를 방문하여 그것을 엔릴에게  바치고 관대한

축복을 청했다고 한다. 시인들이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엔릴을 찬양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엔릴, 그 뜻은 멀리 사방에 미치고
   그 말씀은 고상하고 존엄하며
   그 결정은 변함없어
   먼 훗날까지의 운명을 결정한다.
   눈을 들면 일망무제,
   휘두르는 장대는 땅의 중심을 더듬는다.
   아버지인 엔릴이 우뚝 솟은 거룩한 단에
   듬직하게 앉을 때
   땅의 신들은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늘의 신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엔릴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우주 법칙"의 체계인 "메(Me)"를 정한 신이다. 메라는 기계와 도량이 큰 개념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얼마나 독창적이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심원한 관념을 생각해 낸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메는 어지러운 세계에  살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

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우주와 그 모든 부분은 일단 창조된 후에는 영원히 질서정연하게 낭비없이 움직이며 분열된다는가 악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그렇게 믿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엔릴이 생각해 낸  메는 우주의 모든 것, 모든 일을 지배한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인간도 푸른 하늘, 풍요한  대지, 암흑의 저승,  광란하는 바다, 그러한 모두가 신들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다.

 

 메는 세계와 그 문명의 각 국면에 하나씩,  도합 100이상 있었다. 신과 인간, 토지와 도시, 궁전과 신전,  사랑과 법,

진실과 허영, 전쟁과 평화, 음악과  미술, 숭배와 의식, 그리고 모든 기능과 직업에 각기 다른 메가 있었다. 

엔릴은 이러한 메에 대해 신들의 권리와 의무와 특권에 한계와 지배력을, 권위와 구속력을 정하여 신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신들에 관한 메소포타미아의 주요한 전설 중에는 메가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몇가지 있다.                   
(그러면서도 종교의식의 면에서는 이들 교묘하게 구성된 신화가 거의 무시되고 있었다. 서너 가지의 예외를 제한다면

신화는 문학적 의미를 갖는 표현형식이었던 것이다.

즉 신화가 만들어진 것은 우주나 종교에 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마음의 양식이 될

무엇인가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들은 대개의 경우 사랑을  한다든가 전쟁을 한다든가 창조에 종사하고 있을 때의 신들의 유쾌한 이야기다.)

 

어떤 신화에 의하면 엔릴이 몰락한 것은 어떤 메에 위반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행위가 원인이었다. 

최고의 힘을 가졌으면서도 자기의 격렬한  욕정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 엔릴의 좌절의 원인이 되었다. 

인간이 창조되기 전, 신만이 니푸르의 거리에  살고 있던 시절의 어느날, 운하의 물가를 걷고 있던 엔릴은 젊고

아름다운 여신 닌닐이 미역을 감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당장 그녀를 손에 넣기로 마음먹었고, 닌닐이  자신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호소했지만 그는 그녀의

청을 거절했다. 이 비열한 행위는 엔릴 자신이 우주의 운행을 질서있게 유지하기 위하여 마련한 그 메에 위반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신들은 자기들의 지도자인 엔릴을  저승으로 추방했다.

불쌍한  것은 닌릴이었다. 그녀는 엔릴과의 사이에 달의 신 난나를 낳게 되지만 엔릴의 뒤를 따라 저승으로 내려

간다.

 

인류와 문명을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엔릴이 저승으로 추방되었을 때, 메는 이미  바다의 여신 남무에게서 

태어난 물과 지혜의 신 엔키에게 맡겨져 있었다.

엔키는 그것을 그의 깊은 바다 밑 신전 아브스에 안전하게 숨겨 두었었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실제의  자잘한

사항은 엔키가 결정한 것이다. 그는 우선  수메르, 그리고  어쩌면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세계의 몇몇 땅에 갖가지

수준의 번영을  할당했다. 이어서 대지를 풍요하게 하고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것을

준비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에 맑은 물을 부어 넣고  소택지에 물고기나 갈대의 씨앗을 뿌리고 대지에 비를 내리고

밭에는 곡물이 열리게 하고 가축의 오두막을 지었다. 이처럼 극히 생산적인 일이 헛되지 않도록 엔키는 전담하는

신들을  임명하여, 만들어  낸 것을 감독케하고, 아마도 거룩한 메에 따라서라고 생각되지만, 그것들이 올바로

사용되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엔키는 현명했고 그에게 맡겨진 메는 그 도시 에리두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계속 간직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상실하는 계기가 된 것은  이 경우는 욕망이 아니라 이난나가 원인이었다. 

이난나는 그리이스의 아프로디테, 로마의 비너스의 원형이라고 할 여신으로서 그 이름은 "하늘의 여왕"을 뜻하며

사랑과 해산과 풍요의 신으로서 메소포타미아 전토에서 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난나는 또 훨씬  옛날부터 우루크의 특별한  수호신으로서, 그녀는 그 도시를 수메르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문명 세계의 문화상의 중심지로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거룩한 메를

손에 넣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을  엔키로부터 뺏앗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녀는 자기의 "하늘의 배"를 타고 닌슈부르라는 종자를 데리고 엔키의 신전 아브스를 찾아갔다.

엔키는 그녀를 따듯이 맞이하고 보리과자와 대추야자 술의 호화로운 연회를  베풀었다.

주인역인 엔키는 손님 이상으로 주연을 즐겼다. 술에 취한 그는 그녀에게 한번에 두 세개씩 메를 건네주기 시작했다.

 

점토판에 파놓았든가 아니면 어떤 명확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난나로서는 더 바랄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그녀는 귀중한 선물을 받아들고 자기의 배에 싣고는 술에 취한 엔키가

자기의 실수를 깨달을세라 우루크를  향해 급히 배를 몰았다. 

술에서 깬 엔키는 메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종복인 이심무드에게 물었더니 놀랍게도 자기가 이난나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엔키는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메를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이심무드에게 지시를 내려 바다의  괴물을 딸려서 에리두와 우루크 사이에 있는 7개의 관문으로 향하게  했다.

이심무드는 배와 그 짐을 압류하되 이난나는 자유로이 돌아가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엔키의 계획은 이난나를 따르고 있던 닌슈부르의 용감하고 믿음직한  활약에 의해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이난나와 그 배는 무사히 우루크에 도착했다.

우루크 사람들은 자기들의 도시를 수메르 제일의 도시로 만들어 줄 귀중한 메가 배에서 내려지는 것에 대해 환호

했다.

 

엔키는 또 여신 닌후르사그와의 사이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이 여신이 본래는 "어머니인 대지" 였다고 생각한다.

그를 곤경에 몰아 넣은 것은 술이 아니라 음식이었다. 그는  먹은 것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속의  예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이 신화의 무대는 딜루문이라는 곳이다. 시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딜루문 사람들은 병에 걸리는 일이 없고

또한 늙은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딜루문에는 신선한 물이 없었다.

그래서  태양신 우투가 엔키의 명령을 받고 그곳에 물을 솟게 하였다. 그후로 오만가지 종류의 식물이 번성했다.

 

닌후르사그는 이 낙원에서 8그루의  특별한 식물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단히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즉 여신을 몇 대에 걸쳐서 차례로  엔키에 의해 임신케 함으로써 비로소 그 식물을 성장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엔키는 그 식물이 탐이나서 종복인  이심무드에게 뽑아 오게 하였다.

닌후르사그는 엔키가 식물을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노하여 엔키에게 죽음의 저주를 걸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들의 자리를 떠난다. 저주의 결과 엔키는 신체의 8개 기관에 병이 났다.

임종이 다가오고 동료 신들은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닌후르사그가 나타나지 않는 한 엔키에게는 무엇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 영리한 여우가 있었다. 여우는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닌후르사그를

신들이 있는 데까지 데리고 왔다.

닌후르사그는 8주(柱)의 신을 만들어 엔키의 환부 하나하나를 치유케 하여 사경을 헤매던 그의 목숨을 건진다.

 

수메르에는 이외에도 흥미를 끄는 신화가 있다.  바로 대홍수 이야기이다.

훗날의 악카드에도 이와 비슷한 신화가  있고 성서의 이른바 노아의 홍수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메르의 홍수 이야기가 적힌 점토판은 오직 한 장인데 그것도 3분의 1의 파편에 불과하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악키드 신화로 메꾸어 가면 이야기는 대략 아래와 같다.

 

인간과 동식물이 창시되고 나서 세월이 흘러 다섯 개의 특별한 도시에 왕이 있게 되었을 무렵  신들은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멸망케 하려고 결의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진 이유를 서술한 부분은 없어졌지만 아마도 인간이  순종하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일부의 신은 너무나  가혹한 이 선고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중의 하나인 엔키는  겸허한 태도로 신에

순종하고 신을  공경한 인간 지우스드라(악카드 신화에서는 우트나피시팀)에게 홍수를 귀띔해주고 큰 배를

만들어 홍수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생명과 "인류의 씨앗"을 구하려고 일렀다.

지우스드라는 엔키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 파멸을 모면했다. 그 부분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7일 낮과 7일 밤 동안
  홍수는 땅을 휩쓸고
  큰 배가 거대한 물 위에서
  모진 바람에 시달린 끝에
  태양의 신 우투가 모습을 나타내어
  하늘과 땅에 빛을 보냈다......

 

원문은 이 뒤에  다시 끊기고 다음에는  지우스드라가 신들 중에서도 한층 격이 높은 두 신인  안과 엔릴 앞에 엎드

리고 있는 장면이다.

안과 엔릴은 신을 두려워하는 그의 겸허한 태도에 크게 만족하여 그에게 "신과 같은 생명"과  "영원한 숨"을 부여

하고 그들 낙원 같은 딜루문,  즉 "해가 솟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운명을  근엄하고 순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을 숙명론적인

인생관으로부터 해방시켜 마음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 크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인생관은 그들이 신들에게 부여한 화려한  역할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 인생관에  의하면 인간은 찰흙, 또는 찰흙과 살해된 신의 피로 만들어져 있으며, 만들어진 목적은 단지 하나,

신들이 일상의 잡무로부터 해방되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공물과 주거를 제공하여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였다.

수메르인은 인간이 불가해한 신의  노여움 앞에서는 그야말로 무력하여 인간의 생활은  불안과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고 숙명론자처럼 믿고 체념하고 있었다.  또한 죽음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은 못되었다.

왜냐하면  죽으면 인간의 영혼은 어둡고 음산한 저승으로 떨어질 뿐이다.
                          

서양의 신학자를 몹시 괴롭혔던 도덕적  문제- 그 종잡을 수도 없고 알기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수메르의 사상

가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그 문제란 인간의  자유의사라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아주 쉽게  해결해 버렸다. 인간은 신들의 노예나 하인이

되기 위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신의 결정에는 설사 그것이 아무리 불가해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순순히 따랐다.

또  그들은 사악과 불순, 고난과 재화를 세상에 초래하는 신들을 변덕스럽다거나 삐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어날것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 "다툼",  "두려움", "슬픔", "근심 걱정", 같은 바람직

하지 못한 인간의 성격과 버릇이나 "홍수", "도시의 파괴" 같은 무서운 재해에도  앞에서 말했던 메(Me)가 있는

것이다.

수메르인은 성서의 욥처럼 부당한 재난을 입더라도 까닭을 알 수가 없는 그  불행에 대해 논한다는가 불평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어떤 현명한 사람이 슬픈 어조로 말했듯이 "어머니가 낳은  아이에서 죄없는 자 없으므로"

자기가 불량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긋이 참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신들, 특히 가장 높은 신들이  보통 사람의 말을 들어  도와 주리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기대하는 쪽의 잘못이다.

엔릴이나 엔키 또는 그와 동급인 신들은  하찮은 인간과 그 인간들의 고통에 주의를 돌리기에는 너무 멀고 높아

근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대신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개인적인 신, 즉 한 사람의 인간과 그 가족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이라는 관념

이 발달한다.

사람들이 기도와 소원성취를 빈 것은 자기를 낳아준 이 "아버지"에 대해서였다. 비록  사소한 것이라도 어쨌든 도움

을 얻을 수가 있다면 그것은  이 개인적인 신이 주선해 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확실한 미래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저승에의 하강

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이 그린 최후의 거처의 양상은 불명료하고 모순되는 점이 많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말하면 저승은 대지 밑의 광대한 우주공간으로서 대지 위의 또 다른 큰 공간인 하늘과 한쌍을

이루는 것이다. 지상의 주요 도시에는 그곳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지만 사자의 

영혼은 보통 매장된 땅속으로부터 저승에로 내려간다.

영혼이 저승에  도착하려면 나룻배를 타고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 7개의 문을  마련한 궁전 안에는 이 음산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는 네르갈과 에레슈키갈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재판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7주의 아눈나키, 하늘의 "죽은" 신 등 여러 신이 따르고 있다.

또한 순라꾼 역할을 하는 갈라라고 불리는 일단의 "악마"가 있다. 갈라를 제외한 전원에게는 식물, 기구, 의료,

그밖에 인간의 생활을 장식하는 모든 것이 필요하다. 

죽음에 있어서조차 엄격한 선후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왕이나 고관의 영혼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 한다. 

새로 들어온 고귀한 신분의 사자는 전부터 그곳에  있는 귀인들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승에서의 행동에도 일정한 규범이 있고 그것을 관장하는 것은 죽은 후에 신이 된

전설상 불후의 영웅인 길가메시이다. 저승은 지상이 낮일 때는 음침하고 어둡다.

그러나  태양은 지상에서 진 다음에는 사자가 있는 곳을 지나고 달도 태음력의 끝무렵이 되면 마찬가지로 저승에

나타난다. 저승에 도착한 사자에게는  태양의 신 우투에  의한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판결이 좋은 것이면 사자의 영혼은 만족할 만한 장래를 약속받은 셈이 된다. 이러한 희망의 빛이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저승에 있어서의 생활은 좋아봤자 지상에서의 우울한 생활의 재판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복된 다음 세상을  맞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속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으므로 어떤 일정한 계기에 종교의식에  참가함으로써

신을 찬양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거룩한 신전 속에서 신관들이 행하고 있었다.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신을 섬기는 장소는  간소하고

조그만 사당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의 대도시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그같은 많은 건물로 된 광대한 신전으로 

발전해 갔다.

이 복잡한  구조의 신전에는 행정관이며 동시에 정신적 지도자인 대신관, 때로는 대여신관을 우두머리로 하는  많은

직원이 필요했다.  대신관 밑에는 각기 특정한 신분을 가진 갖가지 신관이 있다. 대신관 바로 밑의 고위 신관들은

일상적인 의식을  거행한다.

신관에게는 이 밖에도 주문을 외고 길흉을 점치는 자,  또는 음악으로 신들을 위로하는 자, 제물의 의식을 담당하는자 

등이 있다. 신전에는 신관 이외에도  관리, 노동자, 사환등이  무수히 있어서 신전의 밭을 경작하는 일과 사무에 종사

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대도시의 각 신전에서는 매일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있었다. 고기, 야채, 물,  맥주, 술 따위를 바치고

향료, 향목을 피우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신관이 행하며 일반 시민이 거기에 참가하는 일은 드물었다. 일반 신도는 숱한 시제(時祭)나 월례

축제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때의 의식은 일상적인 의식에 비해 훨씬 극적이고 장엄했다. 제례 중에서도 제일 중요시된 것은 봄에 거행된

신년제이다. 이 제례에서는 의식이 며칠 동안 계속되는데 중심적 의식은 새해 아침에 행해지는 "거룩한 결혼"이다.

여기에서는 왕이 우루크의 초기 지배자 두무지(성서에는 탐무즈라는 이름으로 나온다)의 역할을 맡는다.

 

이 의식은 두무지가 우루크의  수호신인 이난나와 결혼했을 때 최초에 행했다고 전해지는 의식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왕과 여신의 거룩한 결혼에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다.

땅을 계속 기름지게 하기 위해, 그리고 여신과 결혼을 하므로써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테마를  가지고 숱한 노래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테마란  인간인 왕과 여신의 거룩한 결혼은 어쩔 수 없는 연모의 정에서 시작되어 필연적인 쓰라린 파탄과

참사로 끝난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 의하면 두무지와 이난나의 결혼은 두무지에게 무섭고 애처로운

비극을 안겨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파멸을 초래한 것은 그가 그것으로 인하여 불사신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희망을 걸었던 여신과의  결혼이며, 그를 저승에 떨어뜨린 자는 그가 그토록 격렬하게 그 사랑을 구하고 결혼까지

한 상대인 여신 이난나였다.  아무래도 두무지는 아내인 여신의 야심과 긍지를 간파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 경위는 다소 불길한 이야기 풍으로 고대의 시인에 의해 엮어졌다. 그것은 대충 아래와 같다.

 

이난나는 두무지와 결혼한 후, 이미  하늘의 여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의 여주인으로도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저승에서 질투심이  강한 저승의  여왕 에레슈키갈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이난나는 여신이었으나 친절한  엔키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영구히 죽었을 것이다.

엔키는 그녀에게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물"을 끼얹어 소생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난나의 위기는 이것

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승의 메에 의하면 일단 저승의 문을  들어선 자는 설사 신이라 하더라도 대신 누군가를 데려오지 않으면 살아

있는 자의 세계로 되돌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소생한  이난나는 저승의 작은 악마인 갈라 일당의 감시를 받으면서

저승을 떠나왔다.

갈라는 만일 이난나가 대신할 자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녀를 다시 저승으로 데려 오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이난나와 감시자인 작은 악마는 함께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면서 그녀 대신으로 저승에 데려갈 수 있는 신을

몰색했다. 최초로 방문한 두 도시의 신은 허술한 옷을 입고 그녀 앞에 엎드렸다.

갈라는 이 무서워 떨고 있는 신을  붙잡고 싶어 했으나 이난나가 그것을 제지했다. 그런데 이난나와  작은 악마의

일행이 그녀의 도시 우루크에 당도해 보니 두무지가 훌륭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언제나 자기만 내세우고 뽐내던 아내가 없어졌어 그는 우쭐한 기분의 취한  상태였다. 이난나는 이 배신행위를 보고

화가 치밀어 작은 악마에게 그를 연행하라고 말했다. 두무지는 이난나의 오빠,  즉 처남인 태양의 신이며 엄정한

재판관이기도 한 우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우투는 동정하여 그를 뱀으로 변하게  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갈라는 그를 사로잡아 참혹하게 죽여서 저승으로 끌고 갔다.

이리하여 두무지는 영구히 이난나의 대리로서  저승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마음씨 착하고 헌신적인 여신인 그의

누이 게슈티난나가 1년의 절반 동안만 그를 대신해주기로 한다.

 

해마다 되풀이 된 "거룩한 결혼"의 의식은 장래의 운명에 관해 안심시켜 주는 것을 마음속으로부터  구하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현대인이 한해의 재난을 피하고 무사히 수확이 끝난 것을 축하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명랑하게

떠드는 감사제와 비슷한 의식이었다. 기원전 1000년기에 바빌론의 도시에서  행해진 축제에는 "거룩한 결혼" 외에

확실치는 않지만  아키투라는 수메르인의 행사가 몇 가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옛날에는 잔존하지 않았던 상징적이고 주술적인 의식이 여러 가지 더해져 있다.

그 하나가 소재의 일부를 수메르 신화에서 빌린 천지 창조에 관한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의 낭독이다.

 

이  바빌로니아판 천지 창조담에서는 주인공이 바빌론의 국가신 마르두크로 되어 있다.

이것이 앗시리아 시대에  와서는 그 역을 담당하는  것은 그 국가신 앗슈르로 바뀐다.

이 신 바빌로니아 시대의 신년 제례에  관한 지식은 주로 기원전 3세기의 신관이 쓴 사료에 의한 것이므로 확실히

그 이전의 시대에는 적용시킬 수가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다음에 서술하는  신년의 갖가지 의식은 대체로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의 신년 제례는 춘분이 포함되는 달인 니산의 1일에 시작되어 11일간 계속되었다.

처음 4일간의 대부분은 대신관에 의한 기도, 마르두크는 신들 중에서 최고위에 있다고 찬양하는 서사시, 입이

두 개의 인형을 만드는 일 등에 할당되고 있다.

이 인형은 사악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6일째에 목이 베어지고 불속에 던져진다.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에 의하면 우선 처음에는 희미한 혼돈 만이 있었다. 감수인 아브스와 바다인 티아마트는

힘을 합하여 우주와 신들을 창조했다.

그러자 아브스는  이윽고 신들에 대하여 음모를 꾸몄다.  그래서 매우 현명한 엔키가  그를 죽였다.

그러자 노한  티아마트가 신들과 계속  싸웠다. 결국 엔키의 아들인 마르두크가 자기가 싸우겠다고 자청했다.

" 툭 불거진 근육과 번개같은 눈초리, 그리고 씩씩한 뭄차림..... 타고난 지도자"인 마르두크는 티아마트를 이길 경우

신들의 우두머리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 자리에 모인 신들이 의논한 끝에 마르두크가 제기한 조건을 받아들여 그의 말이 그대로 법이  되는 힘을 그에게

부여하기로 했다. 마르두크는 티아마트의 신체의 반쪽으로 하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별과 달의 위치를  정하고 티아마트에 가담한 어떤 신의 피로 인간을 창조했다. 

신들은 마르두크의 무훈을 찬양하여 공동으로 그를 위해  장엄한 신전을 세우고 대규모적인 연회를 베풀었다.

신들은 이 연회석상에서 마르두크에게 오십가지의 명칭을 수여하겠다고 선언했고, 드디어 그는 신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후 자기들이 한 일에  만족한 신들은 그로부터는 편히 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세계를 인간에게

인계하게 된 것이다.

 

바빌로니아의 신년 제례에서는 관례로 되어  있는 기도와 공물에 이어 5일째 다른 의식이 거행되었다.

우선  맑은 의식에서는 신전에 거룩한 물을 뿌린후  거룩한 기름으로 깨끗하게 한다.

다음에 한 마리의 양의 목이 베어지고 피가  흐르는 그 몸통이 신전의 벽에 붙여진다.

이것은 남아 있는 부정을 빨아 들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그리고는 죽인  양을 밖으로 들고 나가 제물

로서 강속에 던진다.

그 다음에는 가까운 보르십파에서 찾아올 마르두크의 아들 나부를  맞기 위해 황금의 천개(관의 뚜껑)를 준비한다.

여기에서 제례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왕이 거대한 신전 에사길라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왕에게  있어서는 굴욕적인 의식이 거행된다. 이것은 왕이 신들의 비천한 하인에 지나지 않으며 신들에

대해 그 국민을  행복하게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왕으로 하여금 명심하게 하는 순서로 짜여 있다.

식에서는 우선 대신관이 칼 등의 그 지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을 왕에게서 거두어 그것들을 마르두크의 상 앞에

놓는다. 이어서 대신관은 왕의 귀를 끌어당겨 왕을  신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왕에게 부정적인 고백을  하게 한다.

즉 왕은  바빌론과 그 국민을 어떤 면에서도 잘못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때 대신관은 왕에게 왕위를  상징하는 것을 돌려 주고나서 왕의 얼굴을  때린다. 만일 왕의 눈이  눈물로 가득

차게 된다면 그것은  왕이 마르두크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 날 저녁이 되면 왕은  신과 대신관 앞에서 받은 굴욕 따위는 깨끗이  잊은 듯한 태도로 황소의 제물을 중심으로

하는 의식에 참가 한다. 신년 제례의 그 이후의 날의 행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6일째와 7일째에는 바빌로니아의  몇몇 주요한 도시로부터 신의 상이 육로로 혹은 운하를 통해 바빌론 시에까지

운반되어 온다.  8일째에는 왕이 "마르두크의  손을 잡고" 그를 방문해 준 신들에게 형식적으로  소개한다.

그 후 모여든 신들과 함께 온 신관들에  의하여 마르두크가 신들의 우두머리임이 엄숙하게 선포된다.

그리고는 보석을 박은 호화로운 전차에 태워진 마르두크를 앞세우고  화려한 행렬이 거리를 누빈다. 마르두크

다음에는 왕,  그 뒤에 다른 도시에서 온 신들이 이어진다. 이 화려한 행렬은 에사길라 신전을 떠나 훌륭하게

장식된 "거룩한 길"을 따라 전진하여 이사타르문을 지나 도시 바깥으로 나가 유프라테스강  근처에 있는 아키투

신전에 도착한다.

일행은 여기에서 꼬박 3일간을 지낸  후 바빌론의 에사길라 신전으로 되돌갔을 것이다.

그리고 바빌론에서는 또 다시 큰 행사가 베풀어진다. 다음해에  있을 왕의 "운명의 신고"이다. 왕은 영토를 상징

했으므로 이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종교가 메소포타미아인의 생활에서 분명히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려한 신전,  인상적인 조각, 장식적인 

석비와 장식판, 아름다운 상감세공, 매력적으로  새겨진 원통형의 인장은 종교에서 생겨났고 그 영향 밑에서

발전했다. 

매우 인상적인 그 의식은 수천년에 걸쳐  고대세계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은 강대하고 불가해한 자연의 힘이 인간을 두려움에 떨고 있던 고대에 있어

서는 종교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생활에 장래의  전망과 질서를 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성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