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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화 설화

불교의 뿌리역사와 혜초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2.12.24|조회수74 목록 댓글 0

천축국(天竺國)과 불교(佛敎)  

 

 

 천축국(天竺國)은 불교(佛敎)를 계승해 온 나라일 뿐, 천축국에서 불교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본래 불교의 발상지는

곤륜산(崑崙山) 자락인 이전원(伊甸園)인 현재 화전(和田) 지구에서 생겨났으며, 기원전 8937년경의 범천왕(梵天王)과 환인씨(桓因氏)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기원 후 5세기 이후부터 인도에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15세기경 일본인들이 지도를 작성하면서 인도에 다섯 천축국(天竺國)이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인도 북부에 북천축국(北天竺國), 중부에 중천축국(中天竺國), 서부에 서천축국(西天竺國), 동쪽에 동천축국(東天竺國), 그리고 남쪽에

남천축국(南天竺國)이 있었다는 지도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 인도에 천축이 있었다고들 믿고 있다.

이 지도는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통전(通典), 통지(通志), 후한서(後漢書) 등 어떤 사서(史書)를 보더라도 인도에 천축국(天竺國)이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인도는 인디아로서 인드라의 강역에 불과했다. 인드라는 인타(因陀)라는 말로서 환인씨(桓因氏 B.C.8937년)가 있던

동이지 땅을 말한다. 환인씨나 연등(燃燈), 석가(釋迦)는 지금의 인도에서 출생한 사실이 없다. 동이지(東夷地)는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일대에 있는 곤륜산(崑崙山) 자락을 타(陀) 또는 타( )라고 했다. 타(陀, )란 험하고 비탈

지다는 뜻이고 환인씨가 동방으로 이동해와 신시를 건국했던 곳의 땅은 낮은 언덕으로 멀리서 보면 활처럼 굽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동이지(東夷地)란 뜻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이곳 동이지(東夷地)를 기준하여 서쪽을 요서(遼西), 동쪽을 요동(遼東)이라 했다.

 


관련지도(東夷地 일대)

 

* 요동. 요서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요동(遼東) 요서(遼西)의 기준을 실크로드가 있는 천산(天山)으로 삼았다. 인류의 발상지가

천.백(天.白)이고 인류의 건국지가 바로 천산(天山)이기 때문에, 요서(遼西) 요동(遼東)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상고시대의 최초의 동경(東京)은 서안(西安)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요동 요서의 기준을

서안(西安)으로 삼았기 때문에, 서안에서 1천리 떨어진 낙양(洛陽)이 동경이었다. 그러던 것이 전란이 극심해지자

북경(北京)으로 동경을 옮겼다. 그 후 요동·요서의 기준을 난하 주변인 갈석산으로 있게 되자, 동경은 봉천(奉天) 즉

심양으로 옮겼으나, 명(明)나라 후기에는 일본(日本)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는 서안(西安)을 서경(西京)

이라고 기록하는 사서가 많아졌다.

 

 한마디로 요동 요서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보면 오른쪽으로 언기(焉耆)가 보이는데,

중국민족사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적고있어 고증 할만하다. 

 

 " 연연…隨水草畜牧其西則焉耆之地. 東則朝鮮之地. 北則渡沙漠窮瀚海. 南則臨大적… "

"연연족은... 물과 풀을 따라 목축을 했는데, 그 서쪽은 언기의 땅이다. 그 동쪽은 조선의 땅이다…"

 

 그러므로 불교 경전인 법화경(法華經), 금강경(金剛經),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密多經),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그리고 아함경(阿含經) 등 각종 고대 경전에, 타불( 佛) 또는 타불(陀佛), 타이( 夷)와 아이(阿夷), 파이(婆夷)라고

기록된 것은 모두 동이지 땅에 있는 동이(東夷)들을 말하는 것이다. 인도에 퍼진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 어는

최초의 동이들이 사용했던 언어의 방언이었다. 

 

천축국(天竺國)과 조선천독(朝鮮天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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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오천축국전의 중천축국(中天竺國)과 남천축국(南天竺國) / 인용문

기행문출처 : 인용문이므로 참고만하시기 바랍니다. 

 

 

중천축국(中天竺國)

 

 이 파라나시국으로부터 보름쯤 걸려 중천축국(中天竺國)의 왕이 사는 성(城)에 도착하다. 이름이 카냐굽자(Kanyakubja)다. 이 중천축국의 경계는 매우 넓어 백성들도 많고 번잡하다. 왕은 9백 마리의 코끼리를 가졌고 기타

대 수령(大首領)들도 각각 3백이나 2백 마리씩의 코끼리를 가졌다. 그 나라 왕은 항상 스스로 병마(兵馬)를 거느리고

싸움을 하는데 이웃 나라와 교전하면 이 중천축국의 왕이 늘 이긴다. 그러므로 이웃 나라들은 스스로 코끼리가 적고

군사가 적음을 알아 곧 강화를 청하고 매년 공물(貢物)을 바치고 서로 대진하여 싸우지 않으려고 한다. 
  

 의복 ·언어 ·풍속 ·법률 등은 다섯 천축국이 서로 비슷하다. 다만 남천축국(南天竺國)의 시골 백성들의 언어가 좀

다르다. 벼슬아치의 종류는 중천축국과 다르지 않다. 이 다섯 천축국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고 매를 때리는

형벌과 감옥이 없다.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벌금을 물리고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 위로 국왕

에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매를 날리며 개를 몰아 사냥하는 일을 보지 못하겠다. 도로에 도적이 많다.

물건을 빼앗고는 곧 놓아주며 다치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만약 물건을 아끼다가는 다치는 수도 있다. 
  

 토지가 매우 따뜻하여 온갖 풀이 항상 푸르고 서리나 눈이 없다. 음식물로는 쌀 양식과 떡 ·보리가루 ·버터 ·우유

등이 있는데 간장은 없고 소금이 있다. 모두 흙으로 만든 남비로 밥을 지어 먹고 쇠솥 등은 없다. 백성은 별도의

부역과 세금을 감당하지 않고 다만 곡식 다섯 섬만 왕에게 바치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운반해 가고 논

임자가 보내지는 않는다. 그 나라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부자는 적다. 왕과 벼슬아치의 집안 및 부유한

사랑들은 전포(龍布:모직물로 된 천의 일종)로 만든 옷 한 벌을 입고, 기타 사람들은 아래옷 한 가지만 입으며,

가난한 사람은 그나마도 반 조각을 걸친다. 여자들도 그렇다. 
  

 그 나라 왕이 관청에 나와 앉으면 수령과 백성들이 모두 와서 왕을 사면으로 둘러 싸고 앉는다. 그런 뒤에 각기

도리(道理)를 논하는데 소송이 분분하여 매우 시끄러워도 왕은 듣고만 있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천천히 판정하기를 "네가 옳고, 네가 틀렸다." 하면 모든 백성들은 왕의 이 한 마디 말을 결정적인 것으로 알고

다시는 거론하지 않는다. 그 나라 왕과 수령들은 불교를 매우 공경하여 믿는다.

  

 만약 사승(師僧)을 대하게 되면 왕과 수령들은 땅바닥에 앉으며 의자에 앉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또 왕과 수령들은

외출하여 다른 곳에 갈 때에도 자기의 의자를 가지고 따라오게 하여 그 곳에 도착하면 곧 자기의 의자에 앉고 남의

의자에 앉지 않는다. 절과 왕의 궁전은 모두 3층으로 짓는다. 그리하여 제 1층은 창고로 쓰고, 위의 두 층에 사람이

거주한다. 여러 수령의 집들은 모두가 초가(草家)로 중국 사람들의 집과 같이 빗물이 추녀로 쏟아지도록 지어진

것이며 또 단층이다.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으로는 전포·코끼리·말 등이며 그 땅에서 금과 은은 생산되지 않아 외국으로부터 들여온다.

또 낙타·노새·당나귀 ·돼지 등의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그 곳의 소는 모두 흰데 일만 마리 중에 혹 한 마리 정도가

붉거나 검은 것이 있다. 양과 말은 아주 적어 왕만이 2∼3백 마리의 양과 6∼70필의 말을 소유하고 있다. 이 밖에

수령과 백성들은 모두 다른 가축은 기르지 않고 소만 기른다. 우유와 버터를 짜 먹기 때문이다. 그 곳 사람들은 착하여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 가게에서 고기 파는 곳을 볼 수 없다. 이 중천축국에서도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함께 행하여진다. 또 이 중천축국 경계 안에 4개의 탑이 있는데 갠지즈 강 북안에 그 중 3개의 큰 탑이 있다. 
  

 첫째 탑은 사위국( Savasti)의 기원정사 안에 있는데 절도 있고 스님들도 있는 것을 보았다. 둘째 것은 비야리성의

암라원 안에 있다. 탑은 남아 있으나 절은 황폐되고 스님은 없다. 셋째 것은 가비야라국에 있는데 곧 이 곳은 부처가

태어난 성(城)이다. 무우수(無憂樹)가 있다. 그 성은 이미 황폐되어 탑은 있으나 스님은 없고 백성도 없다. 탐은 이

성의 번 북쪽 끝에 있는데 숲이 거칠게 우거져 길에 도적이 많다. 따라서 그 곳에 예배 보러가기는 매우 어렵고 힘들다. 
  

 네째 것은 삼도보계탑(三道寶階塔)이라고 한다. 중천측국(中天竺國)의 왕이 사는 성 서쪽 7일 동안 걸어갈 거리에

있는데 두 갠지즈 강 지류 사이에 있다. 이 곳은 부처님이 도리천으로부터 삼도보계 (三道寶階)를 밟고 내려와 염부제

(閻浮提)로 내려온 곳이다. 탑 왼쪽은 금으로, 오른쪽은 은으로 장식하고 가운데는 유리를 박았다. 부처님은 가운데

길에 범왕(梵王) 왼쪽 길에, 제석(帝釋)은 오른쪽 계단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내려온 것이 바로 이 곳으로 탑을 세웠다.

절도 있고 스님들도 있는 것을 보았다.


남천축국(南天竺國)

  

 중천축국(中天竺國)으로부터 남쪽으로 3개월 남짓 걸어가면 남천축국(南天竺國)의 왕이 사는 곳에 도착한다. 그 나라

왕은 8백 마리의 코끼리를 소유하고 있다. 영토가 매우 넓어 남으로는 남해에 이르고, 동으로는 동해에 이르며, 서쪽

으로는 서해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북천축국·서천축국·동천축국의 경계에 접한다. 
  

 의복·음식·풍속은 중천축국과 비슷하나 언어가 좀 다르다. 토지는 중천축국보다 덥고 그 곳에서 나는 물건으로 전포·

코끼리·물소·황소가 있다. 양도 조금은 있으나 낙타·노새·당나귀 등은 없다. 벼 심은 논은 있으나 기장·조 등은 없다.

그리고 솜과 비단류는 천축국 어디에도 없다. 왕을 비롯하여 수령 (首領)·백성들은 불교를 매우 공경한다.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모두 행하여 진다. 
  

 그 곳 산속에 하나의 절이 있는데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야차신(夜叉神)을 시켜 지은 것이고,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산을 뚫어 기둥을 세우고 3층으로 누각을 세웠는데 사방이 3백여 보(步)나 된다. 용수(龍樹)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절에 3천 명이나 되는 스님들이 있었고, 혼자 공양하는 쌀이 15섬이나 되며 매일 3천 명의 스님들이 먹어도

쌀이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절도 황폐되어 중도 없다. 용수는 나이가 7백 세나 되도록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다. 그 때 나는 남천 축국의 여행길에 있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오언시(五言時)로

읊었다.


여수(旅愁)

月夜瞻鄕路 浮雲飄飄歸    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월야첨향로 부운표표귀   함서참거편 풍급불청회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아국천안북 타방지각서   일남무유안 수위향림비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편에 보내려 하나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돌아보지도 않네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나를 위하여 소식 전할까

 

(이상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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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시는 혜초승(僧)이 남천축국에 있으면서 旅愁를 5언시로 읊은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린 내용이다. 고향을 그리면서도 남천축국의 사정을 잘 묘사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향인 계림(鷄林)이 하늘 끝 북쪽 이라고 한 사실이다.

남천축에서 바라보는 하늘 끝 북쪽은 어디일까? 신라의 위치는....


당(唐)나라의 요사겸(姚思廉)이 지은 양서(梁書)에 의하면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대월지국(大月支國)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은 3만리(三萬里)

이다. 일명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한다."

고 하였는데 통전에서는 월지국(月支國)을 월씨국(月氏國) 이라고 하였다. 감숙성 돈황 남쪽에서흉노에게 쫓겨 서역인 토노번까지 도망을 갔다고 한다.

이들은 본래 월지국(月支國)이었으며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하였다.

 

 천축국은 서장성의 남쪽 인도북부 항하(恒河)에서 동북으로 감숙성의 남쪽인 기연산(祁連山: 북천축,雪山), 그 아래로 청해성(靑海省) 운남성(雲南省), 광서성(廣西省), 광동성(廣東省) 복건성(福建省) 귀주성(貴州省), 등 중국대륙의 서부

남부 동부에 걸쳐 있었던 五천축국(五天竺國)을 말한다.

그 지역은 3만여리(三萬餘里)였다고 한다.한반도 전체가 3천리(三千里)임을 비교해 보면 10배가되는 강역이라고

보아야한다.

여기서 남천축국은 큰바다(大海)에 접해 있다고 했으니 지금의 중국대륙 최남단인 남해(남해)이다. 남해에서 바라보는 북쪽의 하늘 끝은 감숙성 돈황인 것이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이들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동이지(東吏地)인 아미타지(阿彌陀地)는 지금의 돈황으로 당시에는 세계최고의 문화수준을 자랑하는

정신문명의 땅이며 고조선(古朝鮮)이래 秦나라, 新羅, 漢나라가 도읍을 했던 곳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부처가 남쪽에는 없다는 말이다. 돈황의 아미타지(阿彌陀地)에 부처가 있다고 말한다.

 

 결국 혜초의 문서가 돈황에서 발견되었으면 혜초는 그곳에서 수행을 하였을것이다. 노자도 周나라 왕실이 곧 망할것을 예견하고 더 수행하여 득도하기 위해서 돈황으로 갔으며 돈황에는 500나한 이라는 깨달은 자들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수행자들이 그 곳에 있었다. 돈황은 동이지(東夷地) 이며 최초로 불교가 발생한 곳이기도하다.

석가모니도 이곳에서 득도했으며 수많은 깨달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신라관련지명
   
금성은 금성군(金城郡)으로서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옛 난주(蘭州)와 서영(西寧)의 두 주(州)를뜻한다. 

또한 금성현(金城縣)은 감숙성(甘肅省) 고란현(皐蘭縣) 西南이라고, 중국지명대사전 543쪽에 기록되어 있다. 

계림(鷄林)은 옛 신라의 이름이며,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9년에 시림(始林)이라 했으며, 감숙성(甘肅省) 성현(成縣)

西南으로 되어있다.

경주(慶州)는 수나라 때 다시 찾아 홍화군(弘化郡)이라 했다. 당나라 때에는 안화군(安化郡)이라 했다가 다시 순화군

(順化郡)이라 했다. 그후 다시 찾아 경주(慶州)라 했으나, 송나라는 경주안화군(慶州安化郡)이라 했다. 그후 승격시켜

경양부(慶陽府)라 했는데, 그곳은 감숙성 경양현(慶陽縣)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이지(東夷地)와 관련있는 漢字

 

타(陀) =  아(阿) = 동이지(東夷地)

아미타지(阿彌陀地) = 동이지(東夷地)

단국(口國= 에운담 + 나라국) : 한경(韓經 : 임균택  著)에서 말하기를 에운담(口) 字는 탑리목분지의 형상을 본뜬 글자

( = 곤륜구 : 昆侖丘)라고 하고 동이지(東夷地)를 뜻하는 아(阿)를 덧붙여 창세기의 아담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 에운담(口) 字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단을 뜻하는 글자로 쓰이다가 나중에 제터 단(壇) 字로 바뀌었다.

 

(8937)

참고서적 :  율곤 이중재 著 " 불교의 뿌리역사/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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