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 - 백조 선녀(天鵝仙女)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의 결정판[만주족(滿族)]
백조 선녀(天鵝仙女) [만주족(滿族)]
아주 오래 전에 하늘 위에 세 명의 아주 아리따운 선녀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은 친자매였다.
첫째의 이름은 은고륜(恩固倫)이었고 둘째의 이름은 정고륜(正固倫)이었으며 막내의 이름은 불고륜
(佛固倫)이었다.
세 선녀는 하늘 위의 궁전과 오색 구름에서 노는 게 싫증나있던 차에, 듣자니 지상에 과륵민산연
아림산(果勒敏珊延阿林山: 만주어로 장백산(長白山:백두산)을 가리킴)에 천지(天池)가 있는데 연못의 물이 거울처럼 맑고 투명하며 천지 주위에 날짐승과 들짐승, 나무와 화초가 종류대로 다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놀고 싶어했다.
어떻게 해야 하늘에서 내려갈 수 있을까? 막내 선녀 불고륜은 총명하고 영리하여 채취해 온 흰 구름
으로 깃털을 만들고 깃털을 걸친 팔을 날개로 삼아 몸을 흔드니 한 마리 새하얀 백조로 변했다.
두 언니도 그녀가 한 것을 배워 하늘에서부터 날아 내려가 과륵민산연아림산의 천지 옆으로 내려갔다.
세 명의 백조선녀는 인간 세상에 내려와 공교롭게도 세 명의 사냥꾼에게 발견되었다. 이 세 명의
사냥꾼은 친형제로 모두 활을 쏘고 짐승과 싸울 줄 알았고 항상 과륵민산연아림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형제 셋은 백조가 내려앉은 곳으로 달려가 천지 옆으로 쫓아가서 세 마리의 백조가 세 명의 아리
따운 선녀로 변하여 옷을 벗고 천지의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삼 형제는 놀라 어리
둥절해졌다. ‘이 나이 되도록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들은 본 적이 없는걸!’
큰 형이 말했다. “저 아가씨들을 우리 아내로 삼으면 얼마나 좋을까!” 둘째가 말했다. “두려워서 하지
못할 뿐이지.” 막내는 제일 어렸지만 머리 회전이 가장 빨랐다. 그가 말했다. “우리 저 아가씨들의
옷을 몰래 가져와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있게 하자.” 큰 형과 둘째는 막내가 말한
방법이 좋다고 생각되어 함께 살금살금 천지 옆으로 가 세 아가씨의 옷을 가져왔다.
세 명의 선녀는 천지에서 목욕하고 씻으면서 즐겁게 놀다가 해가 산 아래로 뉘엿뉘엿 지려고 할 때
큰언니 은고륜이 말했다. “우리 이제 돌아가야겠다.” 정고륜과 불고륜이 말했다. “가자!” 그러나 뭍
으로 올라와 보니 옷이 보이지 않았다.
세 선녀는 조급해 울기 시작했다. 이때 삼 형제가 세 자매의 앞에 와 큰 형은 자신의 옷을 벗어 은고륜
의 몸에 걸쳐주었고, 둘째는 자신의 옷을 벗어 정고륜의 몸에 걸쳐주었으며, 막내는 자신의 옷을 벗어 불고륜의 몸에 걸쳐주었다.
세 형제는 세 자매를 데리고 천지를 떠나 숲 속에 와서 마른 장작을 놓고 들사슴, 들소, 멧돼지
고기를 구웠다. 또 돌칼을 꺼내 구워 익힌 고기를 작은 조각 조각으로 잘라 세 자매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다 먹고 나서 큰 형은 큰언니를 이끌고, 둘째는 둘째 언니를 이끌고, 막내는 자매의 막내를
이끌고 각자 자신의 작은 움막으로 들어갔다.
세 자매는 하늘 위의 생활에 싫증이 나 있었던 데다 여태까지 이렇게 따뜻한 짐승가죽 옷을 입어
본적이 없었고 이렇게 맛있는 구운 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었으며 더욱이 남편의 애정을 받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인간 세상의 생활을 떠나기 아쉬워 아예 눌러 앉게 되었다.
세 자매는 인간 세상에서 일 년을 지내며 불을 붙이고, 고기를 굽고, 가죽옷을 짓는 것을 배웠으며
또 통통한 아이도 한 명씩 낳았다. 그들과 남편은 서로 사랑했고 매우 행복하게 지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년이 흘러, 하루는 큰언니가 두 동생에게 말했다. “하늘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일
년인데, 우리는 이미 사흘을 나와 있었으니 옥황상제께서 아시는 날이면 하늘의 벌을 받게 될 거야.
늦기 전에 빨리 돌아가자!”
두 자매도 잘못했다가는 남편과 아이도 함께 벌을 받을 수 있으니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세 자매는 남편이 숨겨 놓은 옷을 찾아 내 입고 팔을 올리니 바로 두 발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지상의 세 아이는 두 살이 조금 넘어서 막 옹알옹알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세 마리의 백조가 머리 위
에서 왔다갔다하며 날아다니자 일제히 작은 손을 펼치고 말했다.
“백조다, 백조야!”
삼 형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는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이 “백조, 백조가 날아갔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옷을 찾아보니 옷도 보이지 않자 세 선녀가 하늘 위로 돌아간 걸 알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 백조가 바로 너희들 엄마란다. 알겠니?”
만주족이 엄마를 아낭(鵝娘: 백조 엄마)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바로 이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이 세 아이는 송화강(松花江)을 따라 목단강(牡丹江)과 만나는 곳까지 가서 그곳이 넓다고 생각하여
그곳에 거주지를 정했다. 후에 형제 세 명의 후손의 수는 갈수록 많아져서 세 갈래로 나누어졌는데
각각 모두 자신의 성(姓)이 있어 세 가지 성으로 나뉘었다. 따라서 이 지방을 ‘삼성(三姓: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의란현(依蘭縣)이며, 가목사(佳木斯) 서남부에 위치한다.)’이라고 불렀다.
세 선녀는 하늘 위로 돌아간 후 밥을 먹어도 맛이 없고 물을 마셔도 달지 않아 밤낮으로 인간세상의 생활을 그리워했지만, 솔직한 감정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 이렇게 999일이 지나서 마침 서왕모(王母娘娘)가 반도회(蟠桃會)를 열어 신병(神兵)과 신장(神將)의 수비가
삼엄하지 않을 때를 틈타 세 자매는 어떻게든 인간 세상으로 가서 한번 봐 이렇게 늘 마음에 걸려하며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걸 면하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세 자매는 역시 하늘 위의 흰 구름을 따다 깃털을 만들고 세 마리 백조로 변해서 날아 내려가 과륵민산연아림산 위에 도착했다. 그들은 남편과 아이를 찾았으나 모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여름에 묶던 작은 움막으로 가도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겨울에 바람과 추위를 피하려 팠던
지하 움에도 이미 예전에 흙으로 가득 메워 있었다.
자매 셋은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울면서 송화강(松花江)을 따라 날아갔다. 뜻밖에도 한 밀림
속에 백여 가구가 모여 거주하는 부락이 있었다. 수소문해보고 나서야 이 곳이 삼성이라 불리며
그들이 마침 이들 세 자매의 후손임을 알았다.
천상의 999일은 지상의 999년이라 그들의 남편은 이미 인간 세상에 없을 뿐 아니라 아들 역시 일찌
감치 죽어서 이미 몇 대가 이어져 왔는지도 몰랐다. 세 자매는 삼성의 사람들이 비록 자기들 남편
처럼 용감하지만 삼 형제처럼 화목하게 잘 지내지는 못하는 걸 보았다. 그들은 천성이 싸우는 걸 좋아
해 종종 서로 칼을 휘두르고 몽둥이로 쳐서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렀다. 싸움은 갈수록 험해지고
원한은 새길수록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싸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세 자매는 매우 초조했다. 날아 돌아가면서 생각
하다가 보니 어느새 천지에까지 날아왔다. 그들은 겉옷을 벗고 천지로 들어가 한편으로 고민을 생각
하며 목욕하기 시작했다.
한창 씻다가 셋째 선녀는 까치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날아와 천지의 상공 위로 날아와서는 입안에
물고 있던 것을 그녀의 옷에 뱉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물 속에 너무 오래있기 싫었던 터라
헤엄쳐 뭍으로 올라왔다. 옷소매 위에 잘 익은 붉은 열매가 놓여 있었는데 크기가 특이하고, 투명
하게 빨갰다.
그녀는 산에서 삼 년을 살았지만, 이런 열매는 본 적이 없어 주워 입에 물고 옷을 다 입고 큰언니와
둘째 언니가 뭍에 올라오면 보여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붉은 열매가 입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주르륵하고 목구멍에서 미끄러져 뱃속으로 들어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큰언니와 둘째 언니는 옷을 다 입고 하늘로 돌아가려 했는데 막내는 몸이 무거워져 무슨 말을 해도
날 수가 없었다. 큰언니와 둘째 언니는 그녀가 붉은 열매를 잘못 먹어 임신한 걸 알고 그녀에게 조급
해하지 말고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그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설득했다. 말을 마치고는 먼저 날아 가버
렸다.
셋째 선녀는 인간 세상에 남아 목마르면 천지의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짐승을 잡아먹고 열매를
따먹었으며, 추우면 불을 피우고 하여 12개월이 지나 눈썹이 짙고 눈이 큰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낳자마자 바로 말을 할 줄 알았고 조금 지나자 온 땅을 뛰어 다녔으며 몇 일이 지나자 열 일고여덟살
정도 된 아이만큼 크고 잘생겨졌다.
셋째 선녀는 아이가 이렇게 빨리 자라는 것을 보고 이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금이라는 걸 알고 말했다. “얘야, 네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주어
로 금이라는 뜻이다.)로 하렴.”
그녀는 또 눈앞의 포고리산(布庫里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이름은 포고리옹순(布庫里雍順)이라고 하자.” 그녀는 온종일 싸우고 있는 삼성(三姓) 사람들이 생각나서 또 말했다. “하늘이 너를 낳은 것은
네가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을 중지시키고 전란을 수습하여 백성들을 통솔해 안정된 날을 보내도록 하는 거야. 알겠니?”
애신각라 포고리옹순(愛新覺羅 布庫里雍順)은 고개를 끄덕였고, 셋째 선녀는 송화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야, 너는 이 강을 따라 내려가거라!” 말이 끝나자 그녀는 한 마리 백조로 변해 날아갔다.
애신각라 포고리옹순은 천지 옆의 작은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고 버드나무 가지와 잎을 꺾어
둥그렇게 둘둘 감아 머리 위에 쓰고 난 후 뗏목에 뛰어 올라 위쪽에 단정히 앉아 산구(山口: 산봉우리
가 이어진 낮은 곳)를 따라 송화강으로 들어갔다. 작은 뗏목은 99개의 만(灣)을 뚫고 99개의 사주(灘)
를 지나 99일의 표류를 거쳐 삼성 지방에 도착했다.
작은 뗏목은 좌초되었는데 강가에서 물을 긷던 처녀가 그를 보고 마을로 달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모두들 앞다투어 보러 와, 그가 버드나무 가지와 잎으로 만든 것을 머리에 쓰고 뗏목 위쪽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 모습이 마치 천신과 같아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포고리옹순은 강의 상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위쪽에서 왔소.”
모두들 그가 하늘에서 왔다고 생각하자 포고리옹순은 어눌하게 당부의 말을 생각해내 여세를 몰아
말했다. “나는 선녀가 낳은 천동(天童)인데 당신들을 관리하러 왔소.” 모두들 그의 늠름하고 당당한
체구를 보고 확실히 군중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포고리옹순은 또 물긷던 처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가씨가 나를 먼저 보았으니 그녀의 집에
가도록 하겠소.” 모두 그를 처녀의 집으로 들어가게 했고, 처녀의 부모는 듣기에 포고리옹순이 아직
결혼을 안 했다고 하니 처녀를 그에게 시집보냈다.
몇 명의 목곤달(穆昆達: 만주어로 족장의 뜻임)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주혼자가 되어
당일에 혼례를 거행했다. 그들은 돼지를 조상의 영전에 산 제물로 바치고 정원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예를 올리고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이때 이후로 다시는 싸우지
않았다.
포고리옹순은 삼성지방에서 살며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도록 권고했다. 각 가정간에 분쟁이 발생
하면 그를 통해 화해하여 모두들 화목하고 즐겁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추대하여 부락의 우두머리
로 추천하였다. 그는 삼성지방의 사람들을 인솔하여 악다리성(鄂多哩城)을 건설했다.
포고리옹순이 바로 만주족의 조상이며 그의 전설도 오늘날까지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이 전설은 만주어로 된
오래된 문서 및 <청사고(淸史稿)>에 기재된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히 말로 구전되어 온 것이다.)
이성명(李成明) 이야기, 장기탁(張其卓) 동명(董明) 수집 정리, 요녕(遼寧) 수암현(岫岩縣)에 전래됨.
장기탁(張其卓) 동명(董明)이 지은 <만족삼노인고사집(滿族三老人故事)>에서 발췌.
상제님의 효유(가르침)와 장백산(백두산) 요괴를 없앤
소녀 일길납의 천지(天池) 신화 [만주족(滿族)]
*이 신화는 풍백, 우사, 운사가 등장하고 상제님까지 등장되는 동이족 신화로 가치가 있다. 만주족의 신단인 북경의
천단공원에 가면 우사,운사,풍백등이 나오고 상제님이 신단에 모셔져 있음과 동시에 또한 만주족이 단군성조를
모셨다는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복희, 염제, 신농씨, 黃帝, 소호금천씨, 전욱고양씨, 제곡고신씨, 요, 순, 하, 은, 주, 진(秦),
한(漢), 서한(西漢), 동한(東漢), 후한(後漢), 삼국(三國), 위(魏), 촉(蜀), 오(吳), 진(晋), 서진(西晋), 동진(東晋), 남조
(南趙)는 송(宋), 제(齊), 양(梁), 진(秦), 후양(後粱), 북조(北趙)는 북위(北魏),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 그리고 수(隋), 당(唐), 무주(武周), 오대시(五代時), 북송(北宋), 남송(南宋), 거란(契丹), 요(遼), 서요
(西遼), 금(金), 몽고(蒙古), 원(元), 명(明), 후금(後金), 청(淸) 등은 모두 고조선(古朝鮮)이 뿌리라고 밝히고 있다.
옛날,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장백산(長白山)에 매년 7월 15일이 되면 높디높은 산봉우리 위에 짙은
연기가 뿜어져 오르고 뒤이어 큰불이 하늘 높이 치솟아 분출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번 분출되면 49일간 계속된 후에야 불길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해 연기처럼 깨끗이 사라
지고 나서, 온 산의 수목이 모두 불타고 온 언덕의 화초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날짐승이 자취를
감추고 들짐승도 발길을 끊었다.
장백산 아래에 사는 주민들은 할 수 없이 이곳을 멀리 떠나 다른 지방으로 이사가서 살았다.
장백산은 왜 불을 뿜어내고 나중에는 어떻게 꺼지는 걸까? 이것을 알려면 천지에 얽힌 고사(故事)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옛날에 오로지 불만 먹는 요괴가 있었는데 어디를 가든 그곳의 불은 모조리 먹어 치웠다.
불이 없어지니 그곳은 곧 차디찬 세상으로 변했다.
이 해에 불을 먹는 요괴가 장백산 아래에 왔다. 하늘 위의 번갯불도 그에게 먹혀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산 위의 들불도 그에게 먹혀 날씨가 추워졌다. 그는 또 이 일대 민간에서 사용하는
불을 먹어버려 이 곳의 백성들이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따뜻함도 얻지 못해 모두 얼어죽었다.
백성들은 이 악행을 일삼는 요괴를 매우 증오하여 모두 연합해 눈덩이와 얼음 덩어리로 그를
때렸다. 왜냐하면 그가 이런 차가운 것을 가장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후에 불을 먹는 요괴는 마침내
사람들에게 잡혀서 꼼짝 못하게 묶였고 모든 산아래 사람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장백산을 몇 백
장(丈) 깊이로 파서 요괴를 산 안에 깊이 묻었다.
그러나 그 불을 먹는 요괴는 죽지 않고 오히려 지하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불을 먹고 더욱 무섭게
변했다. 보복을 위해 매년 그를 묻은 날―7월 15일이 되면 짙은 연기로 산봉우리를 공격하고 난 후
일년간 먹은 지하의 불을 모두 분출해냈다.
불은 산림, 화초, 날짐승, 들짐승을 불태워 없애고 소와 양, 농촌, 촌락을 통째로 삼켰다. 불을 뿜은
지 81일이 지난 후 불 뿜기가 끝나고 연기를 다 토해내고서야 서서히 멈추었다. 다음해에 그는
여전히 예년처럼 연기와 불을 뿜어냈다.
그래서 장백산은 민둥산으로 변하여 거의 모든 생명이 멸종했다. 불을 뿜는 날에는 몇 백리 안의
사람들을 모두 불에 태워 죽일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그 외의 시간은 항상 물방울이 얼음이 되는
몹시 추운 날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장백산을 멀리 떠나 활동 범위가 갈수록 작아졌다. 생존을 위해 그 해 봄에 수령이 모든
백성들을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이 때 나이가 17세 정도밖에 안 되는 일길납(日吉納: 두견화)
이라는 소녀가 군중 앞에 걸어나오며 말했다.
“백성들의 생존을 위해, 우리의 보물인 산을 되찾기 위해 신인(神人)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그
요괴를 제거해 버리겠어요.”
사람들은 기쁘면서도 그녀가 걱정이 되어 가장 빠른 말을 골라 그녀에게 주고 모든 백성들이
아름다운 두견화를 받쳐들고 그녀를 배웅했다. 소녀는 꽃을 지나 쾌마(快馬: 빠른 말)를 타고 고향을
날 듯이 떠나갔다.
의지는 화살과 같고 말은 날 듯이 하여 소녀는 아주 여러 날을 달려 높디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는데 그곳은 바람 신(風神)이 사는 곳이었다. 소녀는 말을 묶어 두고 바람 신에게 절하고 말했다.
“제발 저희 민족을 도와주세요! 바람으로 장백산의 불을 불어 꺼주세요!”
바람 신은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여 불 먹는 요괴가 불을 뿜는 날에 장백산에 산이 요동하고 땅이
흔들릴 만한 바람을 불기 시작했는데, 불이 꺼지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갈수록 더 거세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바람 신은 힘들어서 입을 벌리고 계속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안되겠다. 소녀야! 너는 비의 신(雨神)을 찾아가, 와서 도와달라고 하거라!”
일길납은 낙심하지 않고 다시 쾌마를 타고 큰 바다로 질주해 비의 신을 만났다. 소녀는 비의 신에게 사정하며 말했다.
“제발 우리 민족을 구해주세요! 물을 뿌려 장백산의 불을 꺼주세요!”
비의 신은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여 다음해 불 먹는 요괴가 불을 뿜는 날에 장백산에 억수같은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는 불 위에 떨어지자마자 안개가 되어서 날아가고 불은 여전히 갈수록
거세졌다. 비의 신이 말했다.
“안되겠다. 소녀야! 너는 눈의 신(雪神)을 찾아가서, 와서 도와달라고 하거라!”
일길납은 이것으로 그만두지 않고 그 다음해 봄에 또 다시 쾌마를 타고 서북쪽의 대빙산(大氷山)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눈의 신을 만나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발 우리 민족을 구해주세요! 눈으로 장백산의 불을 얼려서 꺼주세요!”
눈의 신은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여 불 먹는 요괴가 불을 뿜는 날에 장백산에 눈을 내렸지만 그
눈은 불에 떨어지기도 전에 전부 녹았고 불은 여전히 뿜어져 나왔다. 눈의 신이 말했다.
“안되겠다. 소녀야! 너는 아무래도 다른 신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
소녀는 온갖 노고를 다 겪었고 수많은 길을 달려갔으며 엄청난 피땀을 흘렸지만 아직도 요괴를
처치하지 못한 것에 상심하여 울었다. 그녀가 어떻게 그녀의 민족을 대하고 그녀의 수령을 대하며
그녀의 부모를 대할 것인가. 소녀는 말을 타고 달리며 생각했다.
이날 그녀는 호숫가에서 한 마리 백조를 만났다. 소녀는 말에서 내려 백조에게 사정하며 말했다.
“내게 높이 날 수 있는 날개 한 쌍을 빌려 주세요. 제가 하늘 궁정으로 날아가서 상제(天帝)를 만나
장백산의 요괴를 없애 달라고 하게요.”
백조는 이 충성스럽고 선량한 소녀를 매우 동정하여 자신의 날개 한 쌍을 일길납에게 빌려주었다.
소녀는 바로 높디높은 하늘 궁정으로 날아갔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날았는지, 얼마나 많은 구름을
뚫었는지 모르는 어느 날 그녀는 마침내 하늘 궁정에 도착해 상제를 만났다. 일길납은 상제 앞에
무릎꿇고 간절히 부탁했다.
“상제님, 제발 우리 민족을 구해주세요! 장백산의 요괴를 없애 주세요!”
상제도 매우 감동 받아 말했다.
“너 자신도 요괴를 없앨 능력이 있단다!”
소녀는 더할 수 없이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만약에 제가 정말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전부 꺼내겠어요!”
상제가 말했다.
“너 목숨을 내걸 수 있겠니?”
“그 어떤 것도 걸 수 있어요.―저의 피, 저의 땀 그리고 저의 생명까지도요!”
소녀는 단호히 말했다.
“좋아. 내가 너에게 가장 차가운 얼음 한 덩이를 줄 테니 요괴가 입을 열고 불을 뿜을 때 너는 요괴의
뱃속으로 뚫고 들어가라. 반드시 요괴의 심장을 얼려야만 요괴를 없애고 불을 끌 수 있단다!”
상제는 요괴를 없애는 방법을 소녀에게 전부 알려주었다.
일길납은 상제에게 감사의 절을 하고 상제가 그녀에게 준 얼음 덩어리를 안고 하늘 밖으로 날아서
나왔다. 이 해 7월 15일에 높디높은 장백산이 또 짙은 연기를 뿜어내고 이어서 요괴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활활 타는 불을 높은 하늘로 분출해 냈다.
일길납은 요괴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품고 맹렬히 아래로 날아갔다. 점점 가까워지자 짙은 연기에
질식해 그녀는 눈도 뜨지 못했고 불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태웠다. 그녀는 힘을 충분히 모아 방향을
똑똑히 보고 곧장 불구덩이를 뚫고 들어가 요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가 무너질 듯한 큰 소리가 나더니 연기가 그치고 불길이 멎고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렸다. 바람 신이 와서 온 하늘의 짙은 연기를 불어 날려버렸다. 비의 신이 와서 큰비로 불을
뿜는 산구(山口)를 가득 메웠다. 눈의 신은 와서 눈으로 빨갛게 달궈진 산봉우리를 냉각시켰다.
그래서 산은 푸르러지고, 풀은 녹색이 되고, 꽃은 빨개지고, 새가 지저귀며, 호랑이가 포효하고,
사슴은 펄쩍펄쩍 뛰고……장백산은 다시 원래의 모양을 회복했다. 요괴가 불을 뿜던 산구는 이미 비의 신에 의해 물로 가득 채워졌다. 사람들은 일길납을 기리기 위해 이 연못에 감동적인 이름―천지(天池:
하늘 연못)를 지어 주었다.
일길납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죽지 않았다. 요괴를 없앤 후 다시 하늘 궁정으로 날아가 상제의 은혜를 감사했다.
상제는 이 충성스럽고, 선량하고, 용감한 소녀를 매우 아껴 서왕모(王母)와 상의하여 딸로 받아들
였다. 그때 서왕모는 여섯 명의 선녀만 있었는데 일길납이 있게 되니 선녀가 일곱 명이 되었다.
일길납은 비록 몸은 하늘 궁정에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오히려 지상에 있었다. 매년 7월 15일
깊은 밤이 되면 그녀는 자매들을 데리고 구름과 안개를 타고 장백산에 내려와 천지에서 목욕을 했다.
일설에 따르면, 어느 해 7월 15일에 일곱 선녀가 천지에 내려올 때 한 사냥꾼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는 맨 앞에 가는 그 선녀가 바로 일길납임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매우 기뻐 황급히 산을
내려가 산 아래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
모두들 듣고 온 산에 횃불을 밝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천지로 쫓아갔다. 그들은 이별한지
몇 년째 된 일길납을 보고 그녀를 장백산에 남아 살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천지에 달려왔을 때는 연못의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고 연못가에 신선한 꽃과
신기한 풀이 버려져 있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일곱 선녀는 온 산의 횃불을 보고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곧 급히 옷을 입고 하늘 궁정으로 돌아갔다.
이때 이후로 서왕모는 천기가 누설될까 두려워 다시는 선녀들이 장백산에 내려가서 목욕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일길납은 장백산과 마을사람들을 잊지 못하여 장백산을 향해 한 웅큼의 씨를
흩뿌렸는데 이것이 수백 가지의 진기한 약재로 자라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재해를 이기고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주(佟疇), 증층(曾層) 수집․정리. 길림(吉林)에 전해짐. 1980년 제9기 <민간문학>에서 발췌.
만주족은 북경의 천단에서 보듯이 동이족의 원방각 천제의식을 계승하여 동황태일 단군성조를 모시는 동이혈통이다.
천단의 신단구성을 보면 상제신위 옆에 풍백,우사,운사 신위를 모신다.우리 전래 신화에 나뭇꾼과 선녀의 이야기는
만주족 백조선녀 신화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같은 동이혈통의 병렬적 유사신화구조를 읽을 수 있다.
만족(man zu) Manchu ethnic minority group 인 구 : 9.846.776(1990)
/동북3성과 랴오닝(遼寧)성에 가장 많이 분포하여 있으며, 그 외에도 북경(北京),천진(天津),신장(新疆), 상해(上海),
성도(成都), 광주(廣州), 은천(銀川),서안(西安)등의 대도시 및 중소도시에 두루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넓게 분산
했지만 또 작게 모여 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5개의 만족자치현과 약간의 만족마을이 있다.
/ 언어와 문자 : 만語(알타이어系 만-통구스어族). 1599년 누얼하치에 의해 몽고문자를 이용한 "만"문자가 만들어
졌으나, 한족과 동화되면서 약간의 단어와 몇 마디 말 외에는 모두 소멸되었다. 만문은 16세기말 몽고문자를 참조하여
창조되었다. 그리고 경제, 문화, 생활상에서 한족과 왕래가 밀접했기에 만족인들은 한문을 잘 이용했다.
/ 종 교 : 만족은 처음부터 다신교인 샤머니즘을 믿었었고, 지금까지도 민간에서는 샤머니즘을 신봉하고 있다.
/ 의식주 : 만족은 원래 농업과 수렵, 채집 등 여러 가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식생활도 오곡을 비롯해 돼지
고기와 각종 야채등 많은 부식들과 간식꺼리가 있다. 그리고 남녀 할 것 없이 술과 담배를 즐긴다.
만족은 주로 농업생산에 종사했으며 성시에 살고 있는 산재민들은 대부분 공업과 문화과학사업에 종사했다.
역사발전 중 만족인민들은 조국의 창립과 문화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만족(즉 만주족)은 대대로 동북지역에
살았으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원인으로 지금은 거의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1990년 현재 만족 인구는 982만여명이다. 주요 분포지는 동북 3성으로 7,185,46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요녕성
(遼寧省)이 4,952,859명으로 가장 많다. 그 나머지는 하북 내몽고 영하(寧夏) 감숙 복건 산동 신강 등의 성구(省區) 및
북경 천진 상해 성도 광주 항주 서안 등의 대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다.만족은 원래부터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만주어는 알타이어계 만주퉁구스어족 만주어지(滿語支)에 속한다. 현재 대다수의 만족들은 중국어와 중국문자를 그들의 공식 언어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사료에 의하면 만족의 조상은 2천여년전의 숙신(肅愼) 및 이후의 읍루(相婁) 물길(勿吉) 말갈(靺鞨)과 여진 등의
고대 민족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남북조수당 시기에(4~7세기) 숙신읍루인의 후손들은 그들의 민족 명칭을 물길 말갈이라 했다. 물길은 경제적 발전
으로 인구도 신속히 증가하여 수십개의 부락을 세웠는데, 그 중에는 속말(粟末) 흑수(黑水) 백산(白山) 등 7개의 큰
부락연맹이 있었다. 그 후 사서에서는 물길을 다시 말갈이라 고쳐 불렀다.
7세기 말에 대조영(大祚榮)은 속말 말갈을 중심으로 송화강(松花江) 상류, 백두산 북쪽 기슭 일대에 지방정권인
"진국(震國)"을 세웠다. 713년 당왕조는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하고 다시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
에 제수하였다. 이로부터 "진국"은 국호를 "발해"라 하였다. 발해국의 정치 군사 제도는 당왕조를 그대로 모방하였으며
한자를 사용하였다. 국왕이 새로 즉위할 때마다 당왕조의 책봉을 받아야 했다. 당 고종(高宗) 때에 발해국은 당왕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거의 매년 사신을 파견하여 황제를 배알하고 조공을 바쳤으며, 이와 동시에 여러 차례 당의
수도 장안(長安) 태학(太學)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중원지역의 정치 경제제도와 우수한 과학기술 문화의 영향으로
발해국의 농업과 수공업은 신속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제철과 견직은 대단히 유명하였다.
개원(開元) 13년(725년), 즉 발해의 건국을 전후하여 당왕조는 흑수(黑水, 즉 흑룡강) 말갈 지역에 흑수군(黑水軍)을
조직하고 흑수부(黑水部)를 설치하여, 흑수 말갈 각 부의 수령에게 도독(都督) 자사(刺史) 등의 관직을 제수하였다.
그 집권자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당왕조는 728년에 다시 그 도독에게 황족의 성씨인 이(李)씨 성을 하사하고 운휘장군
(雲麾將軍) 겸 흑수경략사(黑水經略使)에 제수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그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장사(長史)를 설치하여
그들을 감독 보좌하게 하였다. 유주도독(幽州都督)에 예속된 흑수부는 흑룡강 유역에 세워진 당왕조의 직속 지방기구
가 되었다.
요(遼)가 발해국을 멸망시킨 후에 발해 주민들을 남쪽으로 이주시키자 나날이 흥성하던 흑수 말갈부는 그곳을 보강
하기 위하여 세력을 남쪽으로 확장하였다. 발해국을 뒤이어 번성을 누린 흑수 말갈을 거란인들이 "여진"이라 부르기
시작한 후로 이 명칭은 점점 말갈의 대명사가 되었다.12세기 초엽에 유명한 아골타(阿骨打)는 완안부(完顔部)를
중심으로 여진인들을 규합하여 요를 물리치고 금(金)을 세웠다. 그들은 세력을 계속 확장하여 요와 북송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남송과 대치하였다.13세기 초에 몽고가 금을 멸망시키고 원(元)을 세우자 여진인들은 원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원왕조는 흑룡강성 의란(依蘭)을 중심으로 송화강 유역과 흑룡강 중하류 및 우수리강(烏蘇里江) 유역에 분포하던
여진인들에 대하여 그들의 풍속을 따르며 다스리는 정책을 폈다. 처음에는 5만호부(五萬戶府)를 설치하여 관할하다가
뒤에는 흑룡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동정원수부(東征元帥府)를 설치하고 계속하여 두 개의 천호부(千戶府)와 한
개의 만호부(萬戶府)를 증설하였다. 당시에 이 여진인들은 대체로 원시사회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원대 말기에 이르러 원래의 여진 사회는 해체되고 노예제 사회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15세기 초에는 명왕조가 동북지구를 관할하면서
여진의 각 부도 모두 명왕조에 귀속되었다. 명왕조는 여진인의 분포 지역 내에 384개의 위소(衛所)를 설립하였다.
여진 각 부의 수령들을 각각 도독 도지휘사(都指揮使) 지휘첨사(指揮僉使) 천호(千戶) 백호(百戶) 진무(鎭撫) 등의
관직에 임명하고 칙서(勅書) 인신(印信) 의관 금전을 하사하였으며, 조공과 마시장의 시간과 대우를 규정하였다.
그리고 노아간위(奴兒干衛)의 여진 수령 홀자동노(忽刺冬奴)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흑룡강과 항곤하(恒滾河)가 합류
하는 특림(特林) 지방에 중앙 왕조 직속의 지방행정과 군사기구인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를 설치하였다.
이상의 조치들은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진과 한족 등의 교류를 촉진시켰다.
명대에 여진인들은 점점 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러한 장소 이동의 과정 중에 그들은 건주(建州) 해서(海西)
동해(東海)의 3부로 나누어졌다. 건주여진은 무순(撫順) 동쪽으로 이주하여 혼하(渾河) 유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동으로는 백두산 동쪽과 북쪽 기슭, 남으로는 압록강변에 이르렀다. 해서여진은 이주한 후에 휘발하(輝發河) 유역에
분포되어 살면서 북으로 송화강 중하류 지역에 이르렀다. 동해여진(명나라에서는 그들을 野人女眞이라고도 불렀음)은 건주 해서 이동과 이북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송화강 중류에서 흑룡강과 우수리강 유역에 이르
렀으며, 동으로는 해안까지 다달았다.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은 정착한 후에 농업을 위주로 하면서 신속한 발전을 이룩
하였으나, 동해여진은 그러지 못하고 발전 속도가 완만하였다.16세기 중엽에 이르러 경제 문화적으로 신속한 발전을
이룩하였던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은 그들 부락 사이의 빈번한 전쟁으로 서로를 침탈하고 살육하는 참혹한 국면에 처
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였다.
건주여진 좌위(左衛)의 수령 노이합적(努爾哈赤)은 역사적 조류에 부응하여 군대를 일으켜 여진의 각 부를 점령하고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였다. 통일 과정 중에 노이합적은 군사 정치와 생산기능을 갖춘 팔기제도(八旗制度)를 창건
하였는데, 이것은 청대(淸代)의 기본적인 사회제도가 되었다.1616년에 노이합적은 "영명칸(英明汗)"이라 칭하고
금나라(즉 後金)를 세웠다. 여진 각 부의 완전한 통일을 따라서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바탕으로 일부의 동해여진과
다른 민족을 흡수한 사람들은 오랜 공동생활을 거치면서 하나의 새로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1635년에 황태극(皇太極)은 여진이라는 옛 명칭을 버리고 만주(滿洲)라고 명명하였으며, 그 후에는 일반적으로
그들을 만족(滿族)이라 칭하게 되었다.1635년 황태극은 여진이라는 이름을 "만주"로 고쳤는데, 이것은 만족 민족
공동체가 정식으로 형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듬해에 황태극을 황제라 칭하고 중국역사상 최초의 만족 정권인
대청(大淸)을 세웠다.
1644년 청나라는 군대를 거느리고 중원으로 들어와 단시간내에 전국을 통일하였다. 그 후 통치 계층은 명왕조 멸망의
교훈을 받아들여 일련의 행정 개혁 조치를 취하고, 이로써 계층간의 갈등과 민족간의 갈등을 완화하여 사회적 발전을
촉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