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封禪)
중국에서 수입 방영하는 드라마 중 봉신방이란 고대 설화를 바탕으로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봉신이란 중국인들이 믿는 도가적 이야기인데, 이러한 것은 막연히 설화에만 그친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그 맥이 이어져 있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본래 동이족들의 이야기
이자 범 아시아적으로 퍼져 구전되어진 고대 이야기 문화이자 실재 왕조들과 연관 된 것들입니다.
아래는 사마천의 사기에 언급된 봉선에 관한 기록으로 봉신,봉선의식이 무었인지 알 수 있습니다.
봉선(封禪)
古者封泰山 (고자봉태산)
옛날 선인들이 태산에 지내는 제사를 봉(封)이라 하고
禪梁父(선양보)
태산의 낮은 봉우리인 양보산(梁父山)에 지내는 제사를 선(禪)이라 합니다.
封泰山者(봉태산자)
태산에 봉하는 방법은
築土爲壇(축토위단)
흙으로 제단을 쌓아
金泥玉簡(금니옥간)
그 위에 금분으로 겉을 칠한 궤( )와 폭이 좁은 옥편(玉片)에
以祭天(이제천)
하늘에 바치는 제문을 적어서
報天之功(보천지공)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한 것입니다.
天處高(천처고)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니
故崇其土(고숭기사)
높은 형상의 땅을 정하여
以象高也(이상고야)
제사를 올리는 것이며,
禪梁父者(선양보자)
양보(梁父)에 선(禪)한다는 것은
掃地而祭(소지이제)
형상이 낮은 곳을 택하여 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以象地之卑(이상지지비)
땅에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以蒲爲車(이포위차)
갯버들로 수레를 만들고
菹稽爲藉(저계위자)
수초와 볏짚으로 멍석을 만들어
祭而掩之(제이엄지)
제사를 지낸 후에 그것들을 모두 땅에 묻어
所以報地(소이보지)
땅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는 것입니다.
三代受命而興(삼대수명이흥)
하상주(夏商周) 삼대가 흥하게 된 것은 천명을 받아
獲佑于天地(획우천지)
하늘과 땅의 도움에 힘입어서라고 생각하여
故隆此美報也(고륭차미보야)
아름다운 보은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이렇듯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上之嘉黍(호상지가서)
호상( 上)땅에서는 한줄기에 여러 개의 이삭이 달린 기장이 출현 하였고
北里之嘉禾(북리지가화)
북리(北里)의 땅에서는 또한 여러 개의 이삭이 달린 벼가 나와서
所以爲盛(소이위성)
이로서 태평성대가 찾아왔고
江淮之間(강회지간)
강수와 회수사이의 땅에서는
一茅三脊(일모삼척)
띠가 세 개의 등줄기를 갖고 있는 것이 생겨났는데
謂之 '靈茅'(위지영모)
그것은 소위 신령스러운 띠풀이라는 뜻의 영모(靈茅)라 했습니다.
王者受命則生焉(왕자수명즉생언)
왕된 사람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야만 이런 일이 생겨난다고 했으며
所以爲藉(소이위자)
옛날 사람들이 기록해 둔 서책에는;
東海致比目之魚(동해치비목지어)
동해에서는 비목어가
西海致比翼之鳥(서해치비익지조)
서해바다에는 비익조가 몰려든 것과 같은
祥端之物(상서지물)
상서로운 조짐은
有不召而致者(유불소이치자)
모두가 사람이 불러서 온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나고 나타난 것인데
十有五焉(십유오언)
이런 일이 무려 열 다섯 번이나 있었다고 했습니다.
以書史冊(이서사책)
이것을 사서에 기록하여
爲子孫榮(위자손영)
자손이 번영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今鳳凰麒麟不來(금봉황기린불래)
그런데 지금은 봉황이나 기린은 나타나지 않고
而 數至(이치호수지)
오히려 날라드는 것은 흉악한 소리개와 올빼미들 뿐입니다.
嘉禾不生(가화불생)
한 줄기에 이삭이 여러 개 달린 기화(嘉禾)는 생겨나지 않고
而蓬藁繁植(이봉고번식)
번식하는 것이라고는 잡초와 쑥대풀 뿐입니다.
如此而欲行封禪(여차이욕행봉선)
사정이 이러함에도 봉선을 기어이 행하시고자 하신다면
恐列國有識者(공열국유식자)
열국의 제후들과 식자들이
必歸笑于君矣(필귀소우군의)
주군을 보고 비웃지나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古之受命者(고지수명자)
옛날에 하늘로 부터 명을 받기 위해서는
先有楨祥示征(선유정상시정)
먼저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야 하고
然後備物而封(연후비물이봉)
연후에 제물을 준비하여 태산(泰山)과 양보산(梁父山)에 봉선(封禪)을 했기 때문에 그 의식이
매우 성대하게 된 것입니다.
<이글은 풍몽룡 원작의 동주열국지를 번역하다가 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인 제환공이 자기의 세력을 믿고
태산에 봉선의 의식을 행하려 하자 관중이 간하며 말한 부분입니다. 봉선의 뜻을 정확히 규정해 놓은 것 같아
옮겨 놓습니다. 어디 사서에 실려 있는지는 아직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 (박산인)
봉선 의식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태사령의 직책에 있었음에도 무제(武帝)가 거행
한 태산(泰山)에서의 봉선의식(封禪儀式)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 받지 못했다.
태사령은 천문 관측, 역법의 제정, 국가 대사와 조정 의례의 기록 등을 담당하는 관리였다.
그는 이것을 괴롭게 여기다가 분사(憤死)하게 되며 아들 사마천에게 ‘사기’를 기술하라는 유지를
남긴다. 봉선 의식이 무엇이기에 사마담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게 했는가?
봉(封)이란 옥으로 만든 판에 원문을 적어, 돌로 만든 상자에 봉하여 천신에게 비는 일이고,
선(禪)이란 토단을 만들어 지신에게 비는 일이다. 즉 제왕이 천지를 제사지낸 의례를 말한다.
봉선의 목적은 새로운 왕조의 탄생과 왕위 교체의 정당성을 신에게 천명 받았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공업을 과시하는 의식이다. 이는 곧 왕권의 신성성을 표출하며 한의 신하
에게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의식이다. 사마천은 태사령의 직책을 이어 받아 무제의 봉선
의식에 참여하며 아버지가 못다 했던 한을 풀어야 했다.
그는 사기의 서(書)에 봉선서라 하여 봉선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서는 정치와 문화, 제도 등을
기록한 문화제도사적인 서술이다. 한 분야에 대해 상고로부터 무제집권기까지의 유래와 변천을
적었다.
순(舜)에서 시작하여 무제에 이르기까지의 봉선 의식은 끊이지 않았다. 봉선서에서 "자고 이래
로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된 자가 어찌 봉선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는 봉선
의식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강력한 왕권에 신성성을 부여하며, 인간인 왕이 神이 되기 위해 치러
야 하는 통과의례라 생각된다.
봉선을 행한 대표적인 장소는 태산으로 72명의 황제들이 제사를 지냈다. 그 중 진시황과 한 무제
의 봉선의 내용이 주목을 끈다.
진시황은 BC 219년 동쪽으로 순행(巡行)을 단행한다. 이 때 순행에서 태산(泰山)에 올라 제단을
쌓고 천신과 지신을 제사하던 봉선 의식을 행했다. 봉선은 오직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특권적
제사라는 점에서 사마천은 사기에서 봉선대전(封禪大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황제의 봉선은 불로장생을 기원한 의식으로 여러 방사(方士)들의 농간과 유생들을 배척한 독단
적 의식이었다. 진시황이 봉선제를 행한 다음 하산하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나무 아래서 피신하는
일이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유생들은 그가 지낸 봉선제를 비웃었다.
이것은 소위 그 덕행이 갖추어지지 않고는 봉선의 예를 억지로 행할 수 없다며 사마천은 평가를
하고, 한 무제는 귀신의 제사를 숭상하였다고 하며 기술하고 있다.
무제는 제위 중 5회의 대규모 봉선을 거행했을 정도로 의식에 빠져 있었다. 이것은 무제 통치의
이면사를 그리려는 사마천의 의도가 아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제는 전한의 전성기를
누렸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황권 또한 막강하였다. 그런 무제가 봉선과 방술에 빠져
방사(方士)의 농간에 놀아나는 모습을 여러 페이지에 기록한 것은 일종의 복수가 아니었을까?
무제는 공손홍, 이소군, 소옹, 난대 등 방사들을 가까이 했다. 방술과 불로장생설, 귀신을 부리는
그들의 거짓된 모습에 빠져 수많은 제사를 지내며 권력을 신비화하고, 신격화 시켰다.
물론 무제가 단순히 봉선 의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교묘하게 신성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봉선대전에 대해 천지가 황제에게 지상의 통치권을
독점적으로 수여한다는 표징을 보여주어야 의식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를 고려하여 무제는
봉선대전에 맞춰 이국 땅에서 가져온 기이한 새와 짐승을 태산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기린과
봉황이 출현했다며 천지가 감응해서 지상의 독점적 지배력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전한 이래로 봉선대전을 중요시했기에 사마천은 봉선서를 기술했을 것이다. 그는 태사령으로서
아버지 사마담이 갈망했던 봉선을 거행하였다. 방사와 사관의 의도를 관찰한 후에 제사 지낸
사실을 순서대로 논술하여 그 내용을 여기에 담았다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여 봉선서에 주목해
보자. (구본건)
* 신선(神仙)
장생불사술(長生不死術)을 체득하여 속세를 떠나 산속에 살며 공중을 날 수 있는 이상적인 선인
(仙人). 중국 전국시대 말(BC 3세기) 산둥반도[山東半島(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제(齊)·연(燕)
나라 지방에서 생긴 신선설이 그 뒤 음양가(陰陽家)의 설을 받아들인 방사(方士;신선의 도를
닦은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도가사상(道家思想)과 결합하여 성립된 도교(道敎)에 의해 상상(想
像)되었다.
《사기》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18년 편>에 <제나라 사람 서불이, 바닷속에 봉래(蓬萊)·
방장(方丈)·영주(瀛州)의 삼신산이 있으며 그곳에 신선이 살고 있으니, 바라옵건대 재계(齋戒)하
고 동남녀(童男女)와 함께 찾으러 가게 해달라는 상소에 따라 그로 하여금 동남녀 수천 명을
동원하여 바닷속에 들어가 신선을 찾게 하였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진(秦)나라 때 바닷
속 삼신산에 신선이 있다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도 이 신선을 존중하여 봉선(封禪)하였으며 사우(祠宇)를 설치하였다.
신선은, 처음에는 선인(僊人)이라 하였다.
<선>의 뜻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높은 곳에 오를 선>으로 나와 있고, <천(遷)>도
<높은 데에 오르다>로 되어 있다.
선(僊)의 본뜻도 <비양승고(飛揚升高)>로서 모두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인(僊人)이란,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 모습을 바꾼 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仙)자도 《석명(釋名)》 <석장유(釋長幼)>에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선(仙)이라 한다.
선(仙)은 천(遷)이며, 산으로 옮겨 들어간다>로 되어 있으므로, 속세를 떠나 산속에 살며 수행
을 쌓고 승천한 사람을 신선이라 생각하였다. 육조시대(六朝時代)에는 복용하는 선약(仙藥)의
효험에 따라 신선을 여러 단계로 나누었다.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천선(天仙)·지선(地仙)·시해선(尸解仙)으로 구분하고,
신선이 되는 방법으로 도인(導引;호흡운동)·방중술(房中術)·약물·부적·정신통일 등이 있다고
했다.
중국에는 많은 신선이 있었으며, 《장자(莊子)》에는 800년이나 생존했던 팽조(彭祖)와 곤륜산
에 살고 있었다는 서왕모(西王母)의 이야기가 나오며,
《사기》의 <봉선서(封禪書)>나 《한서(漢書)》의 <효사지(效祀志)>에는
안기생(安期生)·선문자고(羨門子高)·송무기(宋毋忌)·정백교(正伯僑)·극상(克尙) 등과 그들을
인간에게 중개하는 방사로는 노생(盧生)·한중(韓衆)·이소군(李少君) 등이 나온다. 신선 이야기를
적은 최초의 책은 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저술한 《열선전(列仙傳)》으로,
이 책에는 적송자(赤松子)·마사황(馬師皇)·황제(黃帝)·악전(握佺) 등 70여 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서 나온 갈홍(葛洪)의 저서 《신선전(神仙傳)》에도 광성자(廣成子)·노자(老子)·팽조·위백양
(魏伯陽)·하상공(河上公) 등 92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남당(南唐) 심분(沈汾)의 《속선전(續仙傳)》, 전촉(前蜀) 두광정(杜光庭)의 《선전습유
(仙傳拾遺)》 등에도 선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청(淸)나라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신이전(神異典)>에는 상고 때부터 청나라 초기까지의 신선 1153명이 망라되어 있어, 중국에
얼마나 많은 신선이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인도의 신선은 산스크리트로 리시(rŞi), 팔리어로는 이시(isi)라 하고 <성선(聖仙)> <성인>
<현자> 등으로 한역(漢譯)되고 있으나, 이것은 중국의 신선에 대한 관념이 불교경전 속에 융합
되어 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마누법전》에는 말리티선(仙) 등 34명의 위대한 선인, 즉 대선
(大仙;마하리시)이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대선 7명의 이름도 자주 나오고 있다. 원시불교 경전의
시구 <송(頌)>에서는 석가세존(釋迦世尊)과 여러 부처도 선인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