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란 무엇인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존 M.조던은 최근 MIT 에센셜 시리즈 중 하나로 최신 로봇 기술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룬 “로봇(Robots)”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2년 전인 2016년, 뉴스쿨 대학의 철학교수인 제드 아담스와 자신의 책에 언급한 몇 가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는 로봇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일지, 그리고 인간이 로봇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인간에 대해
어떤 것을 알 수 있는지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아래는 그들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제드 아담스:
당신은 책에서 우리가 로봇의 예를 들기는 쉽지만, 로봇의 보편적인 정의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이 로봇과 인간의 차이를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죠.
왜 로봇을 정의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말해줄 수 있나요?
존 조단:
음, 책을 최종적으로 편집할 때 내가 이에 관한 내용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어쨌거나 나는 사람들이 인공적인 생명체에 대해 가져온 호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인공적인 무언가가 인간이 가진 특성을 흉내내려 할 때 우리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이파이 분야를 예로 들어 보지요.
에디슨이 다이아몬드 디스크를 만들자, 사람들은 이를 플레이하며 마치 방안에 오페라 가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레코드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녹음된 소리 외에도 기계가 인식능력이나 근력을 보일때 이를 사람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
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치타 로봇이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달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인간은 분명 어떤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근력이 아닌 사고능력을 말할때도,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슷한 인지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지요.
나는 사람들이 부족한 정보들을 채우는 과정을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아마 이런 실험을 들어 보았을 겁니다.
아홉 개의 점이 있으면, 사람들은 점이 없는 열번 째 자리에도 마치 점이 있는 것처럼 보게 된다는 실험 말입
니다.
에디슨의 레코드에도 같은 현상이 있었던 겁니다.
사람들은 분명 오페라 가수가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와 비슷한 소리가 나자, 객관적으로는 그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였음에도 마치 그 소리를 오페라 가수의 소리로 받아들인겁니다.
우리는 지금 기계에 대해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제드 아담스:
책에서 당신은 로봇의 정의가 어떻게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지에 대한 일리있는 설명을 소개합니다.
스탠포드 디자인 연구소의 공동창업자이자 학장인 버나드 로스가 말한, “나는 로봇이라는 표현이 그 시대
사람이 하는 일과 기계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될때, 그 기계는 로봇이라는 특별한 분류에 포함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사람들이 그 작업을 당연히 기계가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될 때 쯤, 그
기기는 ‘로봇’에서 ‘기계’로 격하된다.” 로스는 로봇의 정의가 상대적이라고 말한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지금 에디슨의 레코드에서 실제와 전혀 다른 소리가 난다고 판단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현상
일 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에디슨이 만든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뛰어난, 더 넓은 음역대와 더 적은 노이즈를 가진 소리를
재생할 수 있으니까요.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로봇 청소기 룸바를 지금은 인간을 연상시키는 놀라운 로봇으로 생각하지만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게 되면
그저 평범한 기계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룸바를 구식으로 만들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존 조단:
한가지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입니다.
1.5 미터 정도의 키에 180kg 이 나가는 윌로우 개러지의 PR2 내가 생각하는 최초의 로봇입니다.
가격은 4억 5천만원에 달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을 시킬 수 있습니다.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면, 빨래를 개도록 만들 수 있지요.
물론 이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지 루카스와 아놀드 슈와츠제네거의 영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빨래를 개는 건 너무
하찮은 일로 생각합니다.
로봇이라기 보다는 그냥 기계라 생각하는 것이죠.
여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특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이 세상을 멸망시킬 가능성은 아예 언급되지 않습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 않지요.
영화에 한 달 동안 훈련시켜야 겨우 빨래를 갤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한다면 누구도 그 영화를 보지 않겠지요.
사실 그것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말이지요! 즉, 실제 로봇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람들이 상상하는 로봇 사이
에는 이렇게 큰 간극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어떤 실질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드 아담스:
과학소설 또한 로봇에 대해 현실적인 인식을 갖는데 방해하겠네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럼 무엇이 현실적인 기준이냐는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실제 로봇을 만들면서 알게된 것은 빨래를 개는 것과 같은 하찮은 일이 실은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
라는 것이지요.
로봇이 빨래를 개는 일이 대단한 일인 만큼, 빨래를 개는 로봇을 만든 인간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존 조단: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Gap 에서 한 시간에 8달러를 받고 일하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셔츠를 개는 로봇이 나타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요?
즉 한편으로는 로봇이 드디어 인간이 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일 한 가지를 덜어주게 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직업 하나를 없앨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과 결부시켜 왔습니다.
만약 로봇이 충분히 많은 일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로봇이 그 일을 충분히 잘 하게 되어 사람이 할 일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보
편적인 기본 소득을 생각해야할 수도 있고, 모두에게 장애수당을 줄 수도 있으며, 세계가 가진자와 못가진
자로 나뉠 수도 있겠지요.
로봇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던지는 이런 질문들은 철학적이면서 학문적이지만, 동시에 실용적이면서
심지어 실존적이지요. 내가 직업이 없다면,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게 될까요?
제드 아담스:
흠, 이 정체성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네요. 현실의 로봇이 우리 인간이 가진 자아 개념에 미치는 가장
중요한 영향은 무엇일까요?
존 조단: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은 바로 증강(augmentation)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이 로봇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무언가와 대결하는 것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몸을 로봇으로 강화시킨 사람에 대해 스포츠 대회의 참가 요건을 어느 선에서 잘라야 할
까요?
언젠가 더 빨리 달리는 사람, 더 빨리 달리면서 공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올겁니다.
약물을 통해 정신력이 강화되거나 육체적 능력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항상 문제는 이 “강화된” 인간이 얼마나 뛰어날 것인가이지요.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이미 로봇 월드컵이 존재합니다.
IBM 딥블루가 체스에서 사람을 이긴 것처럼 로봇이 축구에서 인간을 이기는 때가 언제쯤일까요?
물론 이는 한 참 먼 일로 느껴지네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매년 조금씩 더 나은 로봇이 나오고 있고 언젠가는 이들이 인간을 뛰어넘을 겁니다.
과연 축구로 브라질을 이길 로봇팀이 나올까요?
어쩌면 로봇을 몸에 부착한 이들이 몸싸움을 더 잘하고, 더 빨리 뛰고, 덜 피곤하고, 더 강한 슛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차게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야 할겁니다.
제드 아담스:
우리가 로봇이나 신체 증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공적인 무언가에 대한 어떤 욕망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람들이 자연의 어떤 것보다 인공적인 무언가를 더 원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존 조단: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이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로봇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기술을 매개체로 이루어지는 인간 관계에 대한 책이지만요.
이 책은 고독이 어떻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문자를 보내고 트위터를 함으로써 고독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늘 바쁘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요.
하지만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고독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반-인공적인 인간이 다른 반-인공적인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이상하게 들릴겁니다.
터클은 이 주제에 대해 매우 깊게 파고들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들은 튜링 테스트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겁니다.
그들에게 튜링 테스트는 자기 소셜 미디어의 뉴스피드 입니다.
제드 아담스:
흥미로운 의견입니다.
튜링 테스트는 보통 컴퓨터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을 의미하는데, 당신은 컴퓨터가 과연
우리에게 다른 인간만큼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군요.
이는 우리가 로봇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듭
니다.
당신은 특별한 예로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개발한 스낵봇을 이야기합니다.
스낵봇은 사무실에서 사람들에게 간식을 배달하면서 사람들에게 한마디 씩을 던지는 로봇이죠.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무실 직원들은 다른 직원이 건강한 간식을 골랐을때 로봇이 그에게 하는 칭찬에 대해 질투를 느꼈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우리 인간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존 조단:
이 이야기는 로봇이 우리에게 반응할때 우리는 그 로봇을 마치 다른 인간처럼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줍
니다.
또한, 그 로봇이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봇의 칭찬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게 된다는 것도 알려주지요.
마이크로소포트의 코타나, 혹은 아마존의 알렉사 등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인공지능 대화 로봇들은 사람이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질문했을 때 자신들이 지적인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특별하게 정해진 대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 대화로봇이 “마이크”, “수”, “알렉사”와 같이 사람을 연상하는 이름이 아니라 “R2-D2”,
“F-300”과 같은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사람의 이름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이들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겁니다.
제드 아담스:
당신은 마치 우리가 사람에게 하듯이 자신을 대해달라고 요구하는 로봇을 만드는 일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존 조단:
음성을 이용한 상호작용은 음성 인식 기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버라이존 센터로 가는 길을 찾을것”이라고 말하는 대신, “알렉사, 버라이존 센터로 갈 수 있는지
말해줄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동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이 목소리로 길을 지시할 경우, 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지금 우회전 하고 있잖아!” 내비게이션이 진짜 인공지능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마치 다른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죠.
스낵봇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 분야는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
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반면, 인간이 어떻게 로봇을 이해하는가에 대한 연구는 훨씬 적지요.
제드 아담스:
인간이 로봇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을 가진 신시아 브리지얼의 로봇
키스멧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로봇이 얼굴 표정을 가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흥미로운 시도라 생각됩니다.
존 조단:
혹시 브리지얼의 새 로봇인 지보를 본 적이 있나요?
이 로봇은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벗었습니다.
마치 애플이 만든 책상위 조각상 같지요. 검정 색과 흰 색의 구형으로, 인간이나 동물과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위에 놓인 구는 당신이 이야기할 때 마치 고개를 움직이는 듯 하지만, 초기의 눈과 귀가 달려 있던 모델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키스멧과 지보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지요.
무생물은 어떻게 감정을 인간에게 전달할까요?
모든 인간적 특성을 다 없앤 것은 매우 큰 변화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목소리를 이용한 인터페이스처럼 약간의 인간성은 남아 있습니다.)
제드 아담스:
지보의 탈인간화는 당신 책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곧, 자연적인 능력을 로봇공학적으로 어떻게 흉내낼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기위해 새의 날개짓을 흉내내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항공학을 통해 이를 이루었다는
당신의 지적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존 조단:
라이트 형제는 천재입니다.
비행기를 발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을 날기 위해 필요한 과학인 항공학 자체를 발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인지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발견 중에 어떤게 있을까요?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낙서에 나온 것처럼 날개를 펄럭여 하늘을 날려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아직 이런 상태입니다.
뇌 속의 회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채로 그저 반도체로 이를 흉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하지요.
언제쯤 반도체가 신경세포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될까요?
언제쯤 인공지능이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다가 무서운 것이 나타나면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요?
정신과 신체는 하나로 연결된 것입니다.
제드 아담스:
로봇공학이 심신문제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 묻고 싶네요.
로봇공학 분야에서 인지 능력을 다루는 방식에는 전통적인 인공지능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 체화(embodiment)가 포함되지만, 인간과 동물의 체화와 로봇의 체화가 가진 차이라면, 인간과 동물은 자신의 신체를 느낀다는
것이겠지요.
인간은 자신의 신체에 극도의 관심을 쏟지만 로봇은 전혀 그러지 않지요. 당신은 로봇의 몸체에 신경을 쓰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경우가 인간과 기계가 증강된 신체의 방식으로 공생할때일 것이라 말했습니다.
존 조단:
외골격 로봇을 생각해봅시다.
그 로봇은 내 일부일 수 있고, 혹시 내가 그 기계 안에 들어가 있을 경우 그 기계는 사실상 내가 됩니다.
런던 마라톤에서 외골격을 입고 마라톤을 완주한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가 코스를 완주하는데는 1주일이 걸렸지만, 중요한 것은 하반신이 마비된 여성이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떤 뜻일까요?
그 기계가 마라톤을 완주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가 이를 조종해 완주하게 한 것도 아니지요.
그녀는 기계로 몸을 증강했지만, 여전히 인간입니다.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이 아닌지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앞으로 점점 더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드 아담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이분법을 고수하다 보면, 우리는 항상 인간대 로봇이라는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예들은 보다 복합적이군요.
안경이나 달팽이관 이식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의 확장이라 할 수 있겠죠. 표면적인 유사성이나 차이는 잘못
된 결론을 내리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과도 연결되는 군요.
라이트 형제의 항공학은 날개를 펄럭이는 방법을 흉내내는 방법이 아니라 새와 비행기가 모두 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한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인간의 감각, 생각, 행동과 로봇 버전의 감각, 생각, 행동을 관통하는 원리를 발견한다면 이들이
사실상 같은 것임을 알게 되겠지요.
지금 로봇공학에서 이런 인간의 감각, 생각, 행동과 관련한 특별한 발견이 있나요? 예를 들어 라이다(LIDAR)
는 자연적인 감각을 대신할 발견이라 할 수 있을까요?
존 조단:
아니요. 하지만 위(Wii)에 들어있는 햅틱 인터페이스는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햅틱 장치를 통해 대서양 양 편의 두 사람이 서로 악수를 나누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팔을 잃은 테네시의 한 전기공은 로봇 의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환상 사지(phantom limb) 현상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의 마음과 신체에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경으로 작동하는 의수도 있습니다. 인공 신경을 개발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있지만, 나는 언젠가는
우리가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드 아담스:
한 가지 문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무언가가 개발되는데 얼마나 걸릴지와 같은 예측이
틀리기 쉽다는 점입니다.
당신의 책에도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나오지요.
미국방성에서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을 위해 주최하던 다르파(DARPA) 첼린지의 경우 2004년에는 한 대도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그래서 프랭크 레비나 리차드 머네인 같은 이들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기술은 절대 기계가 할 수 없다고 썼지요.
하지만 바로 다음 해에 무려 다섯 대가 그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어떻게 1년 만에 그런 급격한 발전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존 조단:
라이다(LIDAR)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05년 다르파 첼린지에 참가한 차들은 라이다 기술의 덕을 많이 보았지요.
여기에는 자동차가 자신이 주행할 지역의 지도를 미리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현장의 정보를 바탕으로 즉석
에서 움직이느냐의 문제도 있습니다.
구글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내부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주차장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이 문제를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공개된 버전에서는 기존의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주행
합니다.
지도 상의 점과 센서에 나타나는 점을 비교하는 방식이지요.
지도와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고, 자신이 정상적인 상태인지를 계속 확인합니다.
이 방법은 많은 양의 계산이 필요합니다.
한편, 테슬라가 하는 방식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는 훨씬 더 많은 훈련 데이터가 필요한,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첫번째 방식에서는 더 정확한 지도를 만
드는 것이 핵심 과제인 반면, 두번째 방식에서는 더 많은 훈련 데이터를 모으고, 더 오래 주행시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방식이 미래의 로봇공학에 더 적합할까요?
제한된 데이터에 많은 센서를 가지는 방식일까요? 아니면 일반적인 센서에 많은 훈련이 필요한 방식일까요?
테슬라는 지금까지 수억 마일을 주행했습니다.
테슬라의 차들 중에 사슴과 부딪힌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구글은 대략 1-2백만 마일을 주행했을
겁니다.
구글은 사슴과 몇 번이나 부딪혔을까요?
사슴이 갑자기 나타났을때 이에 반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훈련 데이터가 필요할까요?
이들이 택한 이 두 가지 방식이 미래의 로봇공학이 나아갈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드 아담스:
자세한 지도가 필요한 첫 번째 방식과 그렇지 않은 두 번째 방식 사이의 선택을 보니 내부의 표상을 고려
하지 않을때 로봇공학의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있다는 로드니 브룩스의 급진적인 제안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이 브룩스의 제안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지금 시점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나요?
존 조단: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모든 로봇은 특정한 작업을 하는 로봇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드니 브룩스의 공장 로봇인 백스터에게 유방암 X선 사진을 판독하게 해서는 안되겠죠.
IBM 왓슨이 다르파 첼린지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기도 어려울겁니다.
왓슨은 사실 문을 여는 것 같은 단순한 동작도 할 수 없죠. 문제는 이러한 작업에 매우 정교한 알고리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왓슨은 스팸 필터 역할도 잘하지 못할겁니다. 체화나 물리적 로봇은 잊어버리세요. 중
요한 것은 퀴즈쇼 제오파디에서 우승한 왓슨은 신용카드 사기를 잡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로봇 지능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할 이야기입니다.
제드 아담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로봇은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어쩌면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군요.
이들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로봇을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겠지요.
당신은 책에서 “첨단 기술의 뿌리가 공학보다 과학 소설에 더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과학소설이 우리가 로봇을 두려워하는 한 가지 이유일까요?
존 조단: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로봇을 두려워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 제품을 만드는 폭스콘 공장에는 약 5만대의 로봇이 있습니다.
그들은 로봇의 수가 백만대로 늘어날 것이라 이야기하지요.
지금 폭스콘의 직원 수는 140만명입니다.
미래에 이 직원들은 어떻게 될까요? 유리 스크린을 금속 케이스에 밀봉하기 위해 꼭 사람 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죠.
머리나 팔, 다리가 있는 로봇일 필요도 없습니다.
즉, 로봇의 발전은 사람들의 직업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는 이런 경제적인 두려움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골드만 삭스는 2000년 당시 600명의 주식 트레이더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단 두 명만 남았지요.
트레이딩은 높은 인지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주유소 직원이나 은행 계원과는 전혀 다른 직업입니다.
이제 방사선사나 트럭 운전사가 그런 위험에 처했습니다.
자율주행 트럭을 개발 중인 오토는 콜로라도에서 50마일 정도의 거리를 자율주행 트럭으로 맥주를 배달했
습니다.
이미 공도를 달린 자율주행 트럭이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과거에는 인간의 근력이 기계로 대체되었고,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막노동꾼이나 농부 등이 영향을 받았고, 컨테이너 선이 등장하자 항만 하역노동자들의 일이 사라졌지요.
하지만 지금은 외과의사들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방사선사와 주식 트레이더들은 언제 사라질까요?
이제 당신이 화이트 칼라냐 블루 칼라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대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드 아담스:
로봇은 언제쯤 대규모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존 조단:
우리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 그 영향을 보았습니다.
이는 철강 산업이 미국에서 사라진 것처럼 거시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일입니다.
모두가 철강 산업을 다시 살리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는 없지요.
피츠버그에서 철강을 다시 만들자고 지난 50년 동안 이루어진 투자와 무역 거래들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피츠버그에는 철강 공장이 없습니다.
의료산업과 첨단 기술 연구 산업만이 있지요.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이민자들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선거 전에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들이 있었는지 생각해봅시다.
페이스북에는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가 더 많았고 트위터 트래픽은 대부분 가짜 계정에 의해 만들어졌습
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선거에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과한 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이크 펜스가 말하길…”이라는 기사가 있고, 어떤 봇이 이 기사를 내 뉴스피드로 가져왔을때, 내가
이 기사를 클릭하느냐 아니냐가 진짜 튜링 테스트입니다.
나는 이런 가짜 뉴스에 기반해 의견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민주주의는 위협을 받게 됩니다.
로봇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만 하더라도 자율주행 자동차는 30년에서 50년 뒤에 나올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컴퓨터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릴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온 시점에서 1년도 걸리지 않았지요.
피츠버그는 자동차가 매우 운전하기 힘든 도시지만, 고객을 대상으로 시험주행하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있
습니다.
곧 우버의 자율주행차에 요금을 내게될 겁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처음으로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을지 물었을때 누구도 우버를 생각하지
않았을겁니다.
10년 전 중급 컴퓨터 서버 시장은 델의 것이었습니다.
아마존이 컴퓨터를 팔아 그 시장을 장악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요? 아마존은 델과 HP를 잡아먹었습니다.
중급 서버 시장 자체가 없어져버렸죠. 경쟁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속도로 튀어나옵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아주 어려워 보이던 일이 사실은 매우 쉬운 일이었음을, 그리고 정말 쉬워보
이던 일이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체스는 어려운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체스는 쉬운 문제였고,
병을 드는 일이 어려운 일이었죠. 무엇이 어려운 문제이고 무엇이 쉬운 문제인지는 끊임없이 바뀝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어떤 것을 로봇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실 어떤 것도
로봇이라 부를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피하기위해 아예 처음부터 로봇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제드 아담스:
당신은 우리가 “로봇”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을때 무언가를 잃게 된다고 생각하나요?
존 조단: 나는 그 용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모든 시도를 인정합니다.
“개인 비서”는 알렉사가 하는 일을 정확하개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증강인류인지, 인공지능인지 묻지만 사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지금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50년 뒤에는 병원을 다니며 의료용품을 공급하는 로봇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들을 로봇이라 부르지는 않을겁니다.
제드 아담스:
그럼 당신은 로봇이 실제 가능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소설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말하는 건가요?
유령처럼 말이죠. 우리가 유령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가 전적으로 가상의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유령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죠. 로봇 역시 같은 운명을 가지게 될까요?
존 조단: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선보였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사실 아이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초소형 슈퍼컴퓨터였죠.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부르
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무엇이었냐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군사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군사용 드론은 사실 로봇이지만 그렇게 불리지 않습니다.
사실 군대에서는 이들을 드론이라고도 부르지 않습니다.
UAV(Unmanned Aerial Vehicle, 무인항공기)라 부르고, 별다른 논쟁 없이 군사장비에 포함되었습니다.
의회도 드론에 의한 사망자 수나 드론 무기의 비용편익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드 아담스:
그 경우에는 로봇이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것이 적어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의문을 가지게만들 수 있겠네요.
결국 우리가 로봇에 대해 이야기할때 사람들은 그 단어에 신경을 쓴다는 말이 되겠군요.
존 조단:
그 용어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중립적인 이름을 다시 만드는 것이죠.
그들은 네이팜 탄을 네이팜 탄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분명 이 무기를 부르는 어떤 약어가 있을겁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이런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바꾸면 끔찍한 현실을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름은 중요합니다.
제드 아담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 책을 다 읽은 뒤 관련된 책을 더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몇 권의 책을 권한다면 어떤 책을 권하실건가요?
존 조단: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제2의 기계시대,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이클
루이스의 “완화계획: 우리의 마음을 바꾼 우정”, 그리고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Her 를 권하고 싶습니다.
(퍼블릭세미나, Zed Ad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