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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역사

동유럽 안내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2.12.14|조회수294 목록 댓글 0

체코공화국(The Czech Republic, Česká republika)

 

 동유럽을 여행한 사람들은 체코가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마치 중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거리들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프라하성은 방문자들을 중세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음악과 인형극 그리고 낭만과 역사가 살아 숨을 쉬는 체코에서 유럽 중세의

문화의 편린들을 찾아보십시오.

 

체코의 정식 명칭은 체코공화국입니다. 원래는 체코슬로바키아연방공화국이인데, 1993년 1월 1일에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체코의 전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3분의1정도인약7만 9천 제곱킬로미터로 그 가운데 산지는 약30퍼센트입니다. 그 주위의 국가를 보면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북동쪽은 폴란드, 그리고 남동쪽은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1000~1600미터의 산맥으로 둘러싸인 보헤미아 분지와 모라비아로 나뉩니다. 지리와 역사 사정이 다른 2~3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도인 프라하(Praha,Prague)를 중심으로 한 서부의 보헤미아(체코어로는 체히) 지역과 브르노(Brno)를 중심으로 한 동부의 모라비아(체코어로는 모라바) 그리고 서남쪽의 실레지아(체코어로는 슬레스코, 독일어로는 슬레지엔)가 그것입니다. 그 밖의 주요 도시로는 오스트라바(Ostrava)와 즐린과 플젠도 있습니다.

체코의 자연환경은 산과 완만한 고원, 저지대, 동굴, 협곡, 넓은 평원, 습지, 호수, 연못, 그리고 댐 등 정말 아름답고 다채롭습니다. 그러나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지독한 대기 오염과 극도의 산성비 오염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는 19세기에 이루어진 무분별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경작을 위해 오래 동안 나무를 베어냈는데도 체코 전국토의 3분의 1은 여전히 숲으로 남았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의 숲은 대부분 경작이 불가능한 산악 지역에 있습니다. 수목한계선(1400m) 이상으로는 초원, 관목림, 지의류 등이 있습니다. 야생동물로는 곰, 늑대, 스라소니, 야생고양이, 마르못, 수달, 담비, 밍크 등이 있습니다. 숲과 습지에는 꿩, 오리, 야생거위 등 조류들이 서식하고, 적은 숫자이나 독수리, 콘돌, 물수리, 황새, 뇌조 등도 있습니다.

체코의 대부분 지역은 대체로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대부분 지역에 연중 강우량이 500밀리미터 이상인데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옵니다. 대륙성과 해양성 기후의 중간 기후 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습기가 많은 대륙성 기후이므로 여름엔 따뜻하고 비가 많으며, 겨울엔 춥고 눈이 많이 내립니다. 완만한 기온 변화를 보이는데, 가장 더운 달은 7월이고 가장 추운 달은 1월입니다. 12월에서 2월까지는 저지대도 영하로 떨어지고 산악지방은 이보다 더 춥습니다. 사실상 건기라는 것은 없습니다. 겨울에는 40에서 100일정도 눈이 내리고(산간지방은 130일 정도) 저지대에는 안개도 자주 낍니다.

체코는 지리적으로 꽤 다양한 편입니다. 서쪽의 체히 지방에는 엘베 강과 블타바 강이 흐르는 분지 지역이 낮은 산릉으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체코 안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네즈카산(Sněžka, 1602m)이 이곳에 있습니다. 체코의 수도이자 체히의 수도인 프라하는, 블타바 강과 라베 강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동부의 모라바 지역은 산악 지형으로 모라바 강이 흐릅니다. 모라비아 서쪽의 일부는 실레지아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지역이며, 나머지는 현재의 폴란드입니다.

체코는 내륙 국가인데 영토 내를 흐르는 강은 북해, 발트해, 흑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체코 영내 외에 함부르크 갑문 중간에 3만 제곱미터의 영토가 있습니다. 베르사유조약으로 슬로바키아와 분리되기 전에 체코에 귀속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토는 2018년에 독일에 다시 귀속된다고 합니다.

체코의 총인구는 2005년 기준으로 1026만 명입니다. 그 가운데 약 12퍼센트에 달하는 117만 명이 수도인 프라하에 거주합니다. 체코를 구성하는 민족으로는 체코인이, 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독일인, 그리고 헝가리인 등이 있는데,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이 각각 94퍼센트와 3퍼센트를 차지합니다. 폴란드인들은 폴란드와의 경계 지역인 오스트라바에 소수가 거주하고, 보헤미아에는 약 6만 명의 독일인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주 언어는 체코어입니다. 그러나 독일어도 비교적 잘 통합니다.

간단하게 체코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체코는 9세기 말부터 14세기 초까지 프르셰미슬 왕조가 다스렸습니다. 그 뒤에 룩셈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중에 카렐 1세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세로 즉위하였습니다. 15세기 이후 후스파의 종교 개혁이 격렬하게 전개되어서 1618년 30년 전쟁(1618~1648)이 일어났습니다.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 지배가 강화되었고, 그대로 신성 로마제국의 제위를 독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체코를 1918년까지 지배하였습니다.

그 뒤에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였으나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까지 지배를 받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로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습니다. 1993년에 평화적으로 슬로바키아와 분리하였고, 1999년 3월 12일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4년 5월 1일 유럽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습니다.

체코는 기독교와 깊은 연관이 있었는데,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탄압을 받아왔으며, 1989년 11월 민주화 혁명 이후에 비로소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국가에 비해 종교적 성향이 강하지 않아서 전 인구의 약 40퍼센트 정도만 종교 생활을 합니다. 종교 별로 보면 카톨릭 신자가 약39퍼센트, 신교도가 2.5퍼센트, 그리고 후스파가 약 1.7퍼센트 정도입니다.

한국과 체코의 시차는 써머타임 실시 기간인 3월 말~10월 말은 7시간이 늦으며, 그렇지 않은 10월 말~3월 말에는 8시간이 늦습니다.

통용되는 화폐는 코룬(KORUN) 이고 보조 화폐 단위로는 할레르(HALER)가 잇습니다. 2007년 기준으로 1 유로가 28 코룬 정도인데 수수료가 높아 25~26 코룬 정도가 될 것입니다. 미화 1달러는 약 20코룬 정도입니다. 외화를 코룬으로 환전하는 것은 자유로운 편인데,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이 가장 환율이 좋습니다. 일반 사설 환전소에서도 환전을 할 수 있습니다만 다소 높은 환율 이외에 환전 수수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암시장에서는 절대 돈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 행위 자체가 불법일 뿐만 아니라 법정 화폐가 아닌 엉둥한 지폐를 받을 수도 있고, 골목으로 유인되어 소매치기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체코의 전기는 220V AC 50Hz이며 주거지에 따라 120v를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220V입니다.

체크의 통신 시설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최근에 통신시설의 현대화를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하여 많이 개선되었으나 아직도 기계식 교환기 사용 지역과 전자식 교환기 사용 지역이 공존합니다. 기계식 교환기 사용 지역에서는 전화신규개설이 어렵지만 점차 전자식으로 교체되어지고 있습니다.

국제전화 요금이 매우 비싸므로 급한 경우가 아니면 국제전화를 가급적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럴 대에는 공중전화카드를 구입하여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공중전화는 동전 또는 전화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데, 주로 전화카드가 많이 사용됩니다. 카드는 담배가게나 신문가판대 또는 우체국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축제]

1.1-- New Year Day

4.16-- 부활절(Easter monday) (매년 일자 변동)

5.1-- 노동절

5.8-- 해방기념일

7.5-- Methodius Day(기독교 선교기념일)

7.6-- Jan Huss Day(종교개혁가 얀 휴스 추모일)

9.28-- Czech National Day

10.28-- 독립기념일

11.17-- Freedom & Democracy Day

12.24-26-- 크리스마스 휴일


간단한 체코어


안녕하십니까? : Dobry den (도브리덴)

감사합니다 : Dekuji (제꾸이)

미안합니다 : Prominte (쁘로민떼)

여보세요 : Prosim (쁘로씸) * 식당·호텔등에서 사람을 직접 부를 때 사용.

이것은 얼마입니까? : Kolik to stoji? (꼴릭 또 스또이)

안녕히 계십시요 (가십시요) : Na shledanou (나 스클레다노우)

-로 갑시다 : Pojdme na- (뽀이데메 나-)

-가 어디에 있습니까? : Kde je- ? (그데 이에-)

어떻게 합니까? : Jak se dostanu - ? (약 쎄 도스타누-)

-를 주세요 (음식주문시) : Dejte mi (떼이때 미-)

(나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 Nerozumim(네 로주밈)

당신 영어할 줄 아십니까? : Mluvite anglicky? (믈루비떼 앙글리츠끼)

나는 체코어를 못합니다 : Nemluvim cesky (네 믈루빔 체스끼)

예 : ano(아노),

아니오 : ne(네)

천만에요/괜찮습니다 : Neni zac(네니 자츠)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 Kde je toaleta? (그데 예 또알레따)

- 남자용 : muzi(무지) / pani(빠니)

- 여자용 : zeny(졔니) / damy(다미)

맥주집 : hospoda (호스뽀다)

전 화 : telefon(뗄레폰)

반갑습니다. - Sbohem (즈보엠)

안녕히가세요- Na shledanou (나 스클레다노우)


기본 숫자


1 (jeden, 예덴)

2 (dva, 드바)

3 (tri, 뜨리)

4 (ctyri, 취뜨리)

5 (pet, 삐엣)

6 (sest, 셰스트)

7 (sedm, 쎄듬)

8 (osm, 오슴)

9 (devet, 데비엣)

10 (deset, 데셋)

11 (jedenact, 예데-나쯔뜨)

12 (dvanact, 드바-나쯔뜨)

13 (trinact, 츠리-나쯔뜨)

14 (ctrnact, 취뜨리-나쯔뜨)

15 (patnact, 빠뜨-나쓰뜨)

16 (sestnact, 셰스트-나쯔뜨)

17 (sedmnact, 쎄듬-나쓰뜨)

18 (osmnact, 오슴-나쯔뜨)

19 (devatenact, 데받떼-나쓰뜨)

20 (dvacet, 드바-쩨뜨)

30 (tricet, 뜨리-쩨뜨)

40 (ctyricet, 취뜨지-쩨뜨)

50 (padesat, 빠데-사트)

60 (sedesat, 셰-데사트)

70 (sedmdesat, 쎄듬-데사트)

80 (osmdesat, 오슴-데사트)

90 (devadesat, 데바-데사트)

100 (sto, 스또)

200 (dveste, 드비에-스띠에)

300 (trista, 뜨리-스따)

1,000 (tisic, 띠시쯔) 2,000 (dva tisice, 드바 띠시쯔)


프라하 관광

프라하 성(Prazsky Hrad)

 

건축의 도시 프라하의 심장이 되는 곳이 프라하 성입니다. 그곳은 중앙의 성 비트 성당, 카프카의 작업실이 남아있는

골든 레인,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등이 모여 이루어진 로열 타운입니다. 프라하 성에는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고딕에 이르는 천년 이상의 건축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870년 무렵에 처음 건축되기 시작된 이래 여러 차례 변천하여 14세기 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18년

이후로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의 정문 앞에서는 매시 정각에 근위병들의 교대식이 행해집니다.

 

카를교(Karluv most)

 

 블타바 강 위에 서정과 낭만이 가득한 황혼을 배경으로 펼쳐진 다리가 카를교입니다.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프라하의 명물입니다. 이 다리는 보행자 전용으로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언제나 노점상과 거리의 예술가 그리고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이 다리의 가장 큰 특징은 조각상이 양측 난간에 15개씩 늘어서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 산탄젤로 성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에서 힌트를 얻어 1683년부터 프라하의 기독교 순교 성자인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비롯하여 기독교 성인 30인의 사암 조각상을 다리 난간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다리가 세워진 뒤로 카톨릭은 중세 생활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점차 입지를 굳혀 갔습니다. 17~19세기에 걸쳐 제작된 이 동상들은 성서를 주제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천문시계(Orloj)

 

15세기 프라하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하누슈가 프라하의 명물인 이 천문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발하고도 아름다운

시계에 대한 소문이 유럽 여러 나라로 퍼지자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쇄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를 독점하고 싶은 프라하 시에서는 하누슈 교수가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뒤에 하누슈 교수는 자신이

만든 시계를 만져보려고 시계탑 위에 올라가 시계에 손을 댔는데, 그때 이후로 시계바늘이 멈추어서 400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뒤 1860년에 수리를 하여 현재까지 이르렀습니다.

 

 

슬로바키아(Slovenská Republika)


 슬로바키아인은 원래 산악 민족이며, 특히 남부 평야 지대의 주민은 거의 모두가 헝가리계 주민이다. 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인의 민족 국가로서 발족했지만, 헝가리인, 독일인, 루테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로마인, 러시아인, 유대인도 뒤얽혀 살고 있다. 지명에도 슬로바키아어뿐만 아니라 헝가리어나 독일어에서 유래한 이름이 많이 있다.

슬로바키아는 서쪽으로 체코, 북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헝가리,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맞닿았습니다. 수도는 브라티슬라바이며 슬로바키아어가 공용어입니다. 슬로바키아의 국가는 ‘타트라스의 폭풍우’라고 합니다.

1919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 합병된 상태에서 독립을 완수하기 이전에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즉 1920년의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여겨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범슬라브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슬로바키아인은 헝가리인과 독일인의 거주지를 포함한 상태로 체코와 합병한 형태로 독립을 완수했습니다. 1939년부터 잠시 동안 자체 정부가 있었으나 다시 체코슬로바키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평화롭게 분리 독립했습니다.

전국토의 면적은 49,036제곱킬로미터고, 인구는 약 543만 명입니다. 1인당 GDP는 15700달러입니다.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대부분이며 정교회, 이슬람교, 개신교도 소수 존재한다.

남북 모두 수교국이며 대한민국은 1993년 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 나라에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공장 해외 지부가 있다. 기아 자동차가 진출해 있으며 질리나 쪽에 많다

 

 

폴란드(Rzeczpospolita Polska, 波蘭)


폴란드는 서쪽으로 독일, 남쪽으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그리고 북쪽으로 리투아니아, 러시아, 발트 해와 맞닿았습니다.

 그 지리적인 위치와 넓은 평야라는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경선도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현재의 수도는 바르샤바입니다. 과거에는 크라코프였습니다. 이외에 브로츠와프, 그다니스크, 우치, 슈체친 등의 도시도 있습니다.

전 국토 면적은 약 31만제곱킬로미터고, 총인구는 약 3852만 명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습니다. 1인당 GDP는 약 16600달러입니다.

폴란드의 역사는 파란만장합니다. 10세기 말에 피아스트 왕조의 시조 미에슈코 1세가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1047년에는 폴란드의 카지미에슈 1세는 국가 통일을 이룩햇습니다. 1241년 몽골의 침략에 항전하다 슐레지엔 대공 헨리크 2세가 전사하였습니다. 1386년 야기에우오 왕조가 세워져 이 나라와 리투아니아를 군사연합으로 묶었습니다. 1572년 왕조가 단절되자 다른 나라 왕실에서 왕이 선출되었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제정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의해 3분되어 점령되었습니다. 그리고 1918년 11월에 공화국으로 독립하였으나, 1939년 나치 독일의 침공을 당했습니다. 물론 이로써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세계대전이 종식된 뒤에 폴란드는 1945년부터 1989년까지이 소련의 위성국이었는데, 1990년에 구소련블록의 국가로서는 최초로 자유선거가 치러져 비로소 민주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2년의 국세조사에 의하면 인구는 약 3,698만 명으로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약 97%가 폴란드인입니다. 이전에는 다민족국가였으나 제2차 대전의 결과 현재와 같은 거의 단일민족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외의 소수파로서는 우크라이나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 벨라루스인(주로 동부에 거주), 독일인(주로 구독일령의 서부에 거주), 러시아인, 카라임족, 타타르족, 체코인 등이 있습니다.

폴란드어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체코어 등과 같은 슬라브어파에 속하는 언어인데, 표기는 라틴문자로 합니다. 현재도 40대 이상의 폴란드인들은 러시아어를 압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배우고 있고, 제2외국어로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배우는 학생도 많습니다. 폴란드는 국제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입니다. 지금은 폴란드에서도 한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졋습니다. 바르샤바에는 한국어를 배우는 세종대왕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국민의 약 95퍼센트가 로마가톨릭의 신자이고 그 가운데 75퍼센트는 아주 독실합니다. 그래서 과거 공산주의 체제에도 로마가톨릭 교회를 탄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산권 유일의 로마가톨릭 국가였습니다. 그 밖에 감리교 등의 개신교, 그리스정교, 이슬람교의 신자도 있습니다. 유대교도 있으나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로 그 숫자가 350만 명에서 9천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폴란드는 민주화를 이루는 15년 동안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나, EU 국가의 경제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합니다. 실업률이 약 15퍼센트로 매우 높아 서유럽으로 노동 이민을 간 사람이 많습니다.

 폴란드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는 요한 바오로 2세, 퀴리 부인, 쇼팽 등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바오로 2세는 당시 공산주의 국가 출신으로 맨 처음 교황이 된 사람이자 이탈리아계가 아닌 교황으로서도 첫 인물이어서 유명했는데, 2005년에 선종했습니다.

 

 

헝가리공화국(Hungary, Magyar Koeztarssag)


헝가리는 참 특이한 나라입니다. 이는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종족적 연원을 보면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마쟈르족의 나라입니다. 동유럽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헝가리. 그러나 이들의 조상이 멀리 아시아에서 왔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 헝가리인의 조상은 마자르족으로서 원래 우랄산맥 부근,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유목 민족이었습니다. 이들은 896년 추장 아르파트의 뒤를 따라 중앙아시아로부터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웠습니다. 따라서 헝가리는 슬라브, 게르만, 라틴 등의 인도-유럽인종으로 구성된 유럽이란 바다 속에서 마치 아시아인종의 섬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헝가리인들은 스스로를 마자르족의 나라라고 하며 마자르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헝가리의 정식 국가 명칭도 헝가리 대신에 Magyar Koeztarssag(마쟈르공화국)이라고 합니다. 헝가리는 인구가 1천만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가 10명 남짓이나 될 만큼 인재가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헝가리의 전 국토 면적은 남한과 비슷한 약 9만 3천 제곱킬로미터입니다. 유럽의 중앙에 자리잡은 헝가리 국토는 강낭콩 모양으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일곱 개의 국가와 국경을 맞댔습니다.

헝가리 국토는 기본적으로 세 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평원 지역을 들 수가 있습니다. 동부, 중부, 남동부의 낮게 자리를 잡은 대평원 지역과 북서부 지역의 작은 평원이 그것입니다. 둘째로는 헝가리에서 가장 높은 1015미터의 케케스테토(kekezsteto) 봉우리를 포함한 북부의 산악지역이 있습니다. 끝으로 서부와 남서부 지역의 트란스다뉴비아(Transdanubia) 구릉지역이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가장 큰 강인 다뉴브(Danube, 헝가리어로는 두나라고 합니다)와 티짜(Tisza)는 국토를 삼분합니다. 그리고 드라바(Drava)는 크로아티아(Croatia)와 맞닿은 남서부 국경을 형성합니다.

헝가리에는 약 1000개가 넘는 호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발라톤(Balaton)에는 곳곳에 온천수가 흐릅니다.

헝가리 국토의 거의 70퍼센트는 개간되었고 14퍼센트가 숲으로 남아 있습니다. 숲의 대부분은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로 이루어졌는데 일부가 전나무로 이루어졌습니다. 숲에는 주로 사슴, 산토끼, 멧돼지, 수달 등이 서식하고 있는데, 들고양이, 호수박쥐, 파노니안도마뱀 등의 희귀종도 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들이 많이 서식합니다. 특히 수많은 강과 호수 그리고 습지에 사는 물새들이 많습니다. 5곳의 국립공원과 1000개 남짓의 자연보호구역이 있습니다.

헝가리의 기후는 비교적 온난한데 남부의 지중해성 기후, 동부의 대륙성 기후, 서부의 아틀란틱 기후로 3개의 기후대로 나뉩니다. 남부의 트란스다뉴비아 지역은 여름은 길고 겨울은 온난하며 습기가 많습니다.  대평원은 계절적 다양함을 잘 드러내는데, 겨울은 춥고 바람이 많으며 여름엔 일반적으로 덥고 건조합니다. 부다페스트와 서부 트란스다뉴비아 지역은 여름엔 매우 덥고, 겨울은 비교적 짧고 구름 끼는 날이 잦으며, 때때로 화창하게 개인날도 나타납니다. 헝가리의 평균기온은 섭씨 11도인데, 1월이 영하 2도로 가장 춥고, 7월이 28도로 가장 덥습니다.

인구는 약 1천 40만 명으로, 그 수도인 부다페스트에는 약 2백 만 명이 거주합니다. 그 구성 인종을 보면 전체의 90퍼센트가 헝가리인이고, 5퍼센트는 집시, 2퍼센트는 독일인, 그리고 1퍼센트가 슬로바키아인입니다. 그들의 종교를 보면 전체의 68퍼센트가 로마카톨릭이고, 21퍼센트는 칼벵파이고, 6퍼센트가 루터파입니다. 나머지 5퍼센트는 기타 종교인들입니다.

헝가리가 자리잡고 있는 카르파티아 저지대는 수천 년 동안 사람이 거주해온 지역입니다. 맨 처음 기원전 수세기 전에 지금의 헝가리 땅인 카르파티아 분지에는 켈트족이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는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이 살았습니다. 1200년 전에 이곳에 마쟈르족(Magyars)이 이주해온 것입니다. 즉 유목생활을 하는 마자르족이 8세기 중엽에 이 지역에 들어왔습니다. 기마술로 유명한 마자르족은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955년에 독일인에 의해 저지당하고 맙니다. 이 패배로 혼돈에 바진 마자르족은 나중에 로마제국과 연합하게 됩니다.

1000년에 마자르의 왕 스테판(Stephen)이 로마 교황이 보낸 왕관을 받고서 기독교인의 왕 스테판 1세로 등극하여 헝가리왕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국왕 스테판은 국체를 강화하느라고 무자비하게 땅을 빼앗고, 시골구석까지도 카톨릭으로 개종시켜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1038년 그가 죽기까지 헝가리는 점점 서구화되어갔고 다양한 민족을 가진 신생 크리스트교 문화국가로 바뀌었습니다.

그 뒤 2세기 반 동안은 아르파드(Arpad) 왕가의 통치기간으로 새로운 왕국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간이 되엇습니다. 이 기간은 왕권을 노리는 숙적들 간의 끊임없는 세력다툼으로 점철되었고, 국토는 막강한 이웃나라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헝가리의 이러한 쇠락은 1301년 아르파드의 마지막 왕인 앤드류3세(Andrew 3)가 죽은 뒤에야 정리가 됩니다.

앤드류 3세가 죽은 뒤에 헝가리는 다시 번성하게 됩니다. 찰스 로버트(Charles Robert)를 비롯하여 유능한 통치자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나날이 번성하여 메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에 이르러서는 황금시대가 도래되어 헝가리는 유럽을 이끄는 중추 세력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490년 메티아스의 죽자 다시 쇠락하게 됩니다. 그의 후계자인 블라디슬라브(Vladislav)는 왕권을 유지하기에는 자질이 없어서 국가 재정은 바닥나고 시대에 역행하는 법률은 소작농을 농노의 처지로 전락시켰습니다.

1526년에 헝가리군은 모하치전(Battle of Mohacs)에서 오스만 투르크(Ottoman Turks)에게 패하고 맙니다. 이 패전으로 헝가리는 비교적 풍요롭고 독립적이었던 시대는 끝나고, 분단과 외세의 지배에 놓이게 됩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는 헝가리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 되엇습니다. 1699년에는 마침내 헝가리인들은 오스만 투르크에게 강력히 대항하여 물리쳐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외세 배격도 헝가리를 독립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그 왕조의 한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헝가리는 합스부르그의 지배 아래 경제와 문화는 상당히 발전되었으나 아울러 강력한 국수주의가 생겼습니다.

1849년 라요스 코수스(Lajos Kossuth)는 헝가리의 완전한 자유와 합스부르그의 퇴위를 선언하였습니다. 합스부르그는 신속한 진압과 일련의 야만적 보복으로 화답했습니다. 결국 헝가리는 다시 정복된 지역으로 왕조에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헝가리인들의 강력한 저항과 합스부르그의 패배로 둘은 협상을 합니다. 그 결과 1867년에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의 이중 군주제가 탄생했습니다. 이것을 이른바 오흉제국이라고 합니다.

이 이중체제의 시대에 헝가리는 경제와 문화가 매우 발전합니다. 그러나 정치 면을 보면 왕조 내에 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흉제국은 독일과 연맹하여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참혹한 결과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전후에 곧바로 공화정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이 때 헝가리 공산당이 권력을 잡았지만 5개월 뒤에 루마니아 군에게 정권을 넘깁니다. 1920년에 연합국은 트리아뇽조약(Treaty of Trianon)에 의해 전후 복구 계획을 세웠는데, 이로서 헝가리의 국토는 크게 줄었습니다. 헝가리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에게 자신의 국토를 되돌려 받으려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에서도 패하고 맙니다.

종전후인 1947년 공산당이 정권을 잡게 되엇는데,  당내의 심각한 불화로 숙청과 스탈린식 재판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다가 1956년에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반소련 봉기로 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무력 행사를 통해서 정권을 통합한 뒤에 야노스 카다르(Janos Kadar)는 소비자 지향적인 구야쉬 공산주의 프로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실효를 거두어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 지역에서는 가장 발전되고 자유롭고 부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실업에 대한 불안, 치솟는 물가상승, 쌓이는 빚 등으로 1988년 마침내 카다르는 축출되고 맙니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없애는 것으로 공산주의 붕괴를 가속화 한 뒤, 1989년에 헝가리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헝가리는 그 뒤로 약 40년 남짓 전에 이미 실시했던 자유선거를 실시합니다. 물가 상승률을 둔화시키고 금리를 낮추는 데에는 일부 성공하는 듯 했으나 그 밖의 많은 경제 문제로 경제 발전 속도는 늦춰졌습니다. 1998년에 헝가리는 경찰과 범죄조직이 연계된 보복 살인과 폭파 사건으로 몸살을 앓았고, 1999년에도 조직범죄와 연결된 비슷한 폭파 사건이 더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산화알루미늄의 슬러지를 모았던 대형 저수지가 터져서 엄청난 환경 재앙과 인명 손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쟈르인들이 이곳에 나라를 세운 뒤로 그들 대부분은 계속된 고난을 겪었습니다. 13세기에는 몽고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황폐해졌고,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으며, 이어서 오래 동안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한때는 동유럽의 강자로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바도 있었으나 수백 년 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로는 많은 영토를 잃엇습니다. 과거 헝가리의 영토였으나 빼앗긴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의 일부 지역에는 아직도 상당수의 헝가리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헝가리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합니다. 유럽에서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는 헝가리어 이외에 핀란드어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 민족이 중앙아시아의 어느 같은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현재의 언어계통수를 보면 한국어도 헝가리어와 마찬가지로 알타이어족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헝가리인들은 성명을 쓸 때에 한국과 같이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씁니다. 헝가리의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를 보기로 살펴봅시다. 그의 이름을 표기할 때에 헝가리인들은 리스트(성)를 먼저 쓰고 그리고 페렌츠(이름)를 그 뒤에 씁니다. 그리고 헝가리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보면 주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음식물도 한국의 것과 닮은 것들도 많고, 어느 것은 맛도 매콤하여 쉽사리 구분하기 힘듭니다. 이를 볼 때에도 헝가리는 유럽 속의 아시아의 나라라는 느낌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데 지금의 헝가리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인이나 일본인 또는 몽골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선조가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이들 헝가리인들의 외모는 오히려 유럽인과 비슷합니다. 아마 마쟈르인들이 천년 남짓 동안 유럽의 한가운데에 살면서 여러 가지로 유럽화가 되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등과 뒤섞여 살다가 혼혈이 이뤄져서 그런지 외모는 여느 유럽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제로 헝가리 인구 가운데 마자르족 원래의 모습을 지닌 사람은 전체 인구의 5퍼센트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헝가리 인구의 90% 이상이 유럽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아시아인종, 몽골로이드의 고유한 특징인 몽골반점이 나타납니다. DNA에 의한 유전만큼은 어쩌지 못했나 봅니다.

헝가리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 슬라브족의 나라로 둘러싸여 있어 언어적으로나 혈연적으로 슬라브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헝가리 평원에 이들이 정착하기 이전에 이곳에는 슬라브족이 살았습니다. 한편 헝가리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의 영향으로 정치 문화적으로는 게르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식당이나 관광지에 가면 영어보다도 독일어가 더 잘 통용됩니다.


부다페스트(Budapest)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파리", "도나우 강변의 진주" 라고 불릴 만큼 유적도 많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많은 관광지가 있다. 원래 부다(Buda)라는 오래된 도시가 있었으나 이어서 다뉴브강 건너에 페스트(Pest)라는 도시가 발달했고 1873년에 두 도시가 합쳐서 부다페스트(Budapest)가 된 것이다. 부다 지역에는 오래된 왕궁과 성 등이 있으며 페스트 지역에는 국회의사당, 오페라하우스 등이 있다. 페스트 지역의 시가지는 정말로 파리만큼이나 화려하고 고풍스런 건물이 많다. 부다페스트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기에 주로 건설되었으며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 뒤지지 않을 만큼 멋있게 건설되었다고 한다.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환전소이다. 우리나라 서울 중심의 커피숍 만큼이나 한 건물 건너마다 환전소가 있다. 이는 헝가리가 아직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헝가리 통화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다페스트 시내에는 보행자 전용도로와 넓은 광장이 많이 있다. 관광지를 중심으로 보행자 전용도로가 있으며 이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관광객들은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시내를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또한 곳곳에 무슨 광장, 무슨 광장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사람, 애완견을 데리고 쉬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각종 음악회 표나 시내 관광 상품을 파는 학생들도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한편 헝가리 음식은 우리에게도 아주 잘 맞는다. 특히 "구야시" 스프는 얼큰한 맛이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하다. 구야시(독일이나 체코에서는 "굴라쉬"라고 한다)는 쇠고기에 감자, 토마토 등 야채를 넣어 끓인 스프인데 헝가리 사람들은 이 스프와 빵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헝가리 사람들은 요리를 할 대 우리나라의 고추와 비슷한 "파프리카"를 사용하여 얼큰한 맛을 낸다. 관광지 여기저기에서는 말린 파프리카를 팔기도 한다. 파프리카는 그 생김새가 고추와 꼭 같으며 맛은 조금 덜 매울 뿐이다. 또한 헝가리에서는 거위를 많이 기르는데 시내 곳곳에서 파는 거위간 요리는 값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지리 및 기후


역사


경제

GDP: 732억 달러

일인당 GDP : 7400달러

연간 성장률: 4.4%

물가 상승률: 18%

주요산업 : 광업, 야금 및 농업

주요 교역 상대국: 독일과 다른 유럽 연합국가


문화

헝가리의 예술품과 건축물들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다. 이 나라는 수려한 민속 전통을 가진 나라로, 자수, 도자기, 천장화및 벽화, 나무나 동물 뼈 조각등에 그것이 잘 녹아 있다.  음악 작품 또한 풍부해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의 광시곡과 페렌츠 얼켈(Ferenc Erkel)의 오페라에서 집시 및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범위 또한 매우 광범위하다. 문학은 이 나라 역사에 있어 기념적인 사건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허세 부리는 송가, 자유를 갈망하는 시, 대담한 리얼리즘 이야기, 귀에 거슬리는 논쟁등이 만들어 지게 했다. 축구는 단연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체스 또한 인기 있다.헝가리인들은 믿음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이들은 이러한 경향 때문에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로마 카톨릭이거나, 칼빈파 또는 루터파라고 말한다. 이 나라에는 그리스 카톨릭 및 정교도 신자도 소수이지만 있으며, 부다페스트에는 유대교도들의 모임도 번창하고 있다.헝가리 음식의 놀라움을 맛보기란 어렵지 않다. 원래부터 과일과 야채가 풍부해서 이곳에서 식사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기본 식사는  지방이 많은 고기 (돼지고기를 선호한다.) 또는 바짝 익힌 생선, 전분가루, 보기 좋은 장식용 피클등이다. 이런 식사로: 폴콜트 (porkolt) (스튜, 외국에서는 '굴라쉬'라 부른다.); 굴야스 (gulyas) (걸죽한 쇠고기 스프); 할라쯜(halaszle) (파프리카가 첨가된 매운 생선 스프)등이 있다.  요카이 발브레즈 (jokai bableves) (콩 스프), 하이데그 규몰레슬레브 (hideg gyumolcsleves) (신 체리로 만든 차가운 과일 스프) 또는 팔라씬타 (palacsinta) (크레페)등을 맛본다면 만족할 것이다.  훌륭한 와인을 찾가도 어렵지 않으며.(그러나 아주 좋은 것을 찾아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맥주도 괜찮고, 브랜디(팔링카 (palinka)) 는 독하다.



축제 및 행사

헝가리의 주요 축제로는 부다페스트 봄 축제(3월)를 들수 있는데 2주에 걸친 문화 행사로, 국내 및 국제 공연, 회의, 전시등이 열린다. 다른 주요 행사로는:  새로운 헝가리 영화를 선보이는 부다페스트 영화제(2월,); 참회 화요일인 부소야라스 (모하스; 2월); 고대 음악과 춤을 선보이는 소프론 축제 주간 (6-7월); 일년중  최대의 축제인 민속 예술 축제 (나기칼로 : 8월); 헝가리 최고의 재즈 축제인 재즈의 날들(데브체첸; 9월) 등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미국, 캐나다, 대부분의 유럽국가 사람들은 비자가 필요없다.; 독일과 프랑스 국민은

ID 카드만 보여주면 된다.  호주, 뉴질랜드 및 아시아 국가 국민들은 30일에서 90일까지 유

효한 비자를 받아야만 한다.

예상질병 : 없음

시간: GMT/UTC + 1시간 (겨울); + 2시간 (여름)

전력: 220V, 50 Hz

관광산업: 연간 2000만명


경비 및 환전

통화: 포린트 Forint (Ft)

환율: 1달러 = 182포린트

관련비용:

저럼한 식사: 3-5 달러

음식점 식사: 8-10달러

저렴한 숙소: 5-8달러

호텔: 10-15달러

헝가리는 외국 관광객에게는 비교적 저렴한 곳이다. 민박을 하고, 중저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2등급 기차를 이용하면, 하루 25달러 정도면 충분히 쓸 수 있다. 호스텔, 기숙사를 이용하거나  캠핑을 하고, 셀프 식당을 이용하거나 노점 음식을 사먹는다면 실질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현금 및 여행자 수표는 은행과 여행사에서 30,000 포린트까지 환전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1-2%의 수수료가 붙는다. 우체국에서는 현금은 환전이 가능하나 수표는 불가능하다.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한 현금지급기는 전국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달러나 독일 마르크같은 외국환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좋다.  신용카드는 음식점, 상점, 호텔, 렌트카, 여행사, 주유소등에서 사용 가능하다.헝가리에서는 팁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웨이터, 미용사, 택시 운전사, 또, 의사나 주유소 직원에게까지 약 10%의 팁을 지불한다. 팁을 주지 않거나, 너무 적게 주면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음식점에서는 테이블 위에 돈을 남겨두지 않는다;  음식값을 계산할 때 웨이터에게 얼마의 팁을 주겠다고 말하면 된다. 값을 흥정하는 것이 헝가리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벼룩시장이나 개인이 파는 민속 공예품 등을 살 때는 정중하게 값을 흥정해 보는 것도 괜찮다.


여행 시기

5월과 6월에 비교적 비가 많긴 하지만, 헝가리의 봄은 유쾌함 그 자체이다. 헝가리의 여름은 따뜻하고 화창하며, 비교적 길지만, 7월 말부터 8월까지 리조트는 매우 붐빈다. 파리나 포마와 같이 부다페스트도 8월에는 멈춰버린다. (이 시기에 일어나는 유일한 일이기에 여기서는 '오이 기르는 기'라고 불린다.) 가을은 아름답다, 특히 부다페스트 주변 언덕과 북부의 고지대가 그러하다.  11월은연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달 중 하나이다. 겨울은 춥고 을씨년스러워 박물관 및 기타 관광지들이문을 닫는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계절은 피할 것이다.: 여성의 반은 겨우내 모피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다.


주요 여행지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는 다뉴브 강가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들어앉아 있다. 이 곳은 헝가리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시작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돋보이게 하는 진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넓은 길, 낙엽 떨어진 공원, 여러 건축 형태의 조화 등으로 인해 '동유럽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수도의 전성기였던 - 대부분의 도시가 건설된 그 과도기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시는 잘 정비되어 있고, 복잡하지 않아 걷기에 아주 좋다. 벽으로 둘러쳐진 성 지구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물들과 박물관이 소재한 곳이다. 두 개의 독특한 지역으로 나뉘는데: 중세에 평민들이 살았던 구시가; 13세기 성이 지어졌던 곳인 왕궁이 그것이다.  구 시가에는 아름답게 채색된 거리, 장식 많은 교회 그리고 유명한 어부의 요새 등이 있다. 어부의 요새는 1905년에 전망대로 지어졌으며, 중세에 이 벽을 방어하는 책임을 졌던 어부 조합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 요새에서는 시내 전경을 감상 할 수 있으며,일곱개의 빛나는 포대(9세기 카파시안 저지대에 들어온 일곱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하는)와 말을 타고 있는 스테판의 동상이 있다. 구시가 바로 서쪽이 왕궁이다. 지난 7세기 동안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고, 또 새롭게 디자인된 이 왕궁에는 헝가리 예술을 대표하는 많은 소장품을 지닌 국립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개의 박물관이 있다.이 도시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오부다(Obuda) 이다. 이 지역은 로마의 폐허와 세기의 변화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 인상적이다. 이 곳에도 훌륭한 박물관이 있는데, 그중 키첼리 박물관은 감동적인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실은 엠파이어, 비더마이어, 아르누보 형식의 가구들로 치장되어 있다. 오부다의 북쪽은 로마시민의 마을인 아퀸컴(Aquincum)이 있는데 가장 헝가리적이다. 1세기에 세워진 이 마을은 사치스런 단층집들과, 우물, 법정등을 갖춘 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마을이었다. 많은 것이 남아있진 않지만, 커다란 공중 목욕탕, 시장, 태양의 신 미테라스를 위해 지어진 사원과 함께, 그 흔적들을 찾아 볼수 있다. 아퀸컴 박물관은 모든것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려고 시도했으나 - 불행히도 헝가리식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3세기의 물오르간, 토기 거푸집, 바닥의 모자이크, 조각품, 야외의 석관등을 볼수 있다. 다뉴브강 크루즈 승선, 로맨틱한 다리 혹은 강가를 산책하는 것, 고서점과 보석상을 둘러보는 것, 많은 온천중 한곳에서 '물맛보기' 등이 부다페스트의 또다른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페스트(Pest)나 부다 언덕(Buda Hills)에서는 저렴한 숙소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성지구에는 싼 먹거리들이 많이 있다. 에체리(Esceri) 벼룩시장(시내 남쪽 16지구에 있는)은 동유럽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으로 소련군 시계에서부터 프레드 아스타레(Fred Astaire)의 모자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부다페스트에는 오페라, 연극, 발레, 춤 에서부터 락, 팝, 재즈, 디스코에 이르기까지 저녁에 즐길만한 것들도 많이 있다.


발라톤 호수


부다페스트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직사각형 모양의 호수는 약 600sq km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중 하나이다. '이 나라의 놀이터'라 불리는 발라톤(Balaton)은 두 개의 상이한 지역으로 나뉜다.: 높게 솟은 호텔과 작은 강변을 있는 리조트 지역인 남쪽과; 역사적인 마을과 경관, 산악 하이킹, 좋은 와인이 유명하고 덜 북적대는 북쪽이 그것이다.남쪽의 시오폭(Siofok)은 발라톤의 가장 큰 리조트이다. 이곳에서 즐길만한 것은 음식, 술, 수영, 일광욕등 다양한다. 강변과, 인파에 지쳤다면,  18세기와 19세기의 농가, 곳간, 수공품점, 바로크식 교회들이 완벽하게 보존된 휴양의 중심가인 가까운 산토부츠타(Szantodpuszta)나, 큰 집들, 나무가 늘어선 길, 강 양쪽의 독특한 경관을 모두 볼 수 있는 펑키 카페등이 있는 서쪽으로 좀 더 떨어진 케츨리(Keszthely)로 가벼운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북쪽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리조트는 발라톤푸레드(Balantonfured)이다. 19세기에는 정치인 및 문화계인사들의 모임 장소였으며, 그 후에는 작가들이 이곳을 차지하였으며, 1900년 즈음하여서는 새로 떠오른 중산층들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다. 이곳은 복잡하지만 평화로운 곳으로 남아있으며, 멋진 산책로, 수많은 예술가 박물관, 온천등을 이곳의 볼거리로 꼽을 수 있다.  이곳 남쪽에는 역사적인 도시인 티하니(Tihany)가 있고, 동쪽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훌륭한 하이킹 코스,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바다쵸니(Badacsony)가 있다.


페츠 (Pecs)


남부 트란스다뉴비아의 다뉴브강과 드라바강으로부터 등거리에 위치한 페츠는 헝가리의 가장 흥미로운 도시중 하나이다. 온화한 기후의 이도시는 화려한 과거, 훌륭한 박물관들, 수려한 터키의 기념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 도시는 또한 음악, 오페라, 발레등으로 이름이 높으며, 헝가리 최고의 특산품을 자랑한다. 이 도시의 상징은 이슬람 사원으로, 터키 지배당시 지어져 아직까지 남아있는 가장 큰 건물이다. 팔각형의 청동돔을 가진 이 사원은 16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터키 세력이 물러간 후 카톨릭 교회가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 벽에 세겨져 있는 기도자들의 모습, 독특한 S자 모양의 아치, 돔에 그려진 기하학적 프레스코화등....이슬람적 요소들이 현재에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근처의 유대교회당은 또다른 페츠의 독특한 기념물이다. 1869년에 로맨틱 스타일로 지어진 이 교회당에는 참나무로 조각된 주랑과 기도석, 천정화, 화려한 결약의 궤등이 있다.  최고의 박물관 중에 빅토르 바쌀리 박물관(Victor Vasarely)과, 졸나이(Zsolnay) 도자기 전시관이 있다. 바쌀리는 1960년대 유행하던 옵아트의 아버지로, 전시되어 있는 그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이 오래되긴 했지만, 대부분이 감성이 살아있고, 생생하며, 미우 풍자적이다. 1851년 세워진 졸나이 도자기 공장은 반세기 이상 유럽 예술과 디자인의 선두주자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타일들이 전국의 빌딩을 치장하는데 쓰였으며, 범-헝가리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탄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후에 공산당이 이 공장을 세라믹 인슐레이터를 만드는 공장으로 개조하였다.) 박물관은 졸나이가의 집이었으며, 그들의 개인적 취향이 많이 담겨져 있다.; 지하층은 유명한 조각가인 아메리고 토트(Amerigo Tot)의 전시실이다.


에게르 (Eger)


모든이들이 에게르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아름답게 잘 보존된 바로크 건축양식이 이 도시를 편안하게 하며, 지중해적 느낌마저 준다. ; 유명한 불스 블러드 와인의 고장이며; 북쪽 고지대의 가장 아름다운 두 지역과 맞닿아 있다. 헝가리인들은 에게르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이 고장이 170년간의 헝가리 지배에서 처음으로 터키를 무찌른 곳이기 때문이다. 교통이 통제된 도시 구석구석에 175개의 보호 건물과 기념물들을 비롯한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어, 걸어서 관광하기에 안성마츰인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13세기의 에게르 성이다. 다른 관광지로 수많은 예배당이 있는데 특히 에게르 성당과 꼭대기에 이르는 100개의 좁고 가파른 달팽이 계단이 있는 40미터 높이의 미나레(Minaret)가 유명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파논할마 (Pannonhalma)


이 고요한 마을은 파논할마 사원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약 1000년전 베네딕트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사원은 여러번 파괴된후 재건되었고, 그로인해 현재는 터키, 로마네스크, 고딕 건축양식이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다. 푸줏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아름다우며, 약 30만권 정도를 소장하고 있는 신고전주의 도서관이 있다. (헝가리에서 가장 큰 사설 도서관이다.) ; 헝가리 문학의 초기 작품을 포함한 고문서들; 16-18세기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작품으로 치장된 주랑, 상층 의 붉은 대리석 아치형 문, 프랑스 투어스의 주교인 성직자 성 마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 등이 있다. 성마틴 오른쪽 옆을 내려다보면 라틴어로 '1578년 베네딕트 파다리 왔다감' 이라고 씌여진 오래된 낙서가 있다. 파논할마는 현재도 사원으로 사용되므로 가이드 투어만이 가능하다. 서부 트란스다뉴비아 기요르(Gyor)에서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리아포츠 (Mariapocs)


작은 마을인 마리아포츠는 중요한 성지순례 장소이다. 순례자들은 교회의 자랑인 놀라우리만치 정교한 눈물 흘리는 블랙 마돈나 성상이 안치된 그리스 성당으로 몰려든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91년에 이 놀라운 석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달려왔었다. 그래서 지금 현재 교회가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 아는 사실이지만 이 석상은 진품이 아니라 19세기의 모조품이다. 진품은 비엔나의 성 스테판 성당에 모셔져 있다.


호르토바지 국립 공원 (Hortobagy National Park)


520 sq km에 이르는 이 국립공원은 유럽에서도 새를 관찰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과거 20여년 동안 310종 이상의 새가 이곳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습지와 늪지대 및 염분을 함유한 목초지에는 여러종류의 백로, 해오라기, 노랑부리 저어새, 황새, 딱새, 독수리등이 살고 있다. 1m의 키에 몸무게가 20kg이나 나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새중의 하나인 느시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부분을 둘러보려면 가이드가 필요하며, 말, 마차, 또는 걸어서 여행이 가능하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대평원의 데브레센(Debrecen)에서 40km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다.


레저스포츠

산들이 많은 크로아티아의 해안에서 떨어진 길고 울퉁불퉁한 지형의 섬들은 요트를 타기에 아주 좋다. 수심이 깊은 수로, 고풍스러운 정취가 있는 항구, 요트타기에 좋은 바람이 있다. 특히 엘라피티(Elafiti) 섬과 코르마티(Kornati) 섬 주위는 바다 카약타기에 아주 좋다. 크로아티아에서 다이빙은 아직 초보 수준이며, 막 다이빙과 관련된 상점들이 흐바르(Hvar)와 라브(Rab) 섬에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구가 있다면 맑은 물에 있는 많은 수중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바다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리스니약과 파클레니차 국립공원 두 곳을 권한다. 하이킹에 아주 좋은 지역이 있다.


헝가리 가는 길

호르토바지 지역에서는 새관찰, 말타기등을 즐길 수 있고; 마트라 언덕(Matra Hills)과 토카이(Tokaj) 근처 젬플렌(Zemplen) 언덕에서는 하이킹을 할 수 있고; 티짜(Tisza) 강에서는 카누를; 에그텔렉(Aggtelek)에서는 동굴 탐험을 즐길 수 있다. 발라톤호에서는 초경량 비행기로 경치를 구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변에서는 싸이클을, 강물에서는 윈드써핑을 즐길 수 있다.


국내 교통편

국영항공사인 말레브 헝가리안 에어라인(Malev Hungarian Airlines)이 미국을 비롯해 30여개의 유럽 국가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직항을 운행한다. 카이로, 라르나카, 텔 아비브 등 지중해를 오가는 항공편도 있다. 헝가리는 주변 7개국과 육로 및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볼란(Volan)버스 (스티어링 휠 버스를 의미한다. - 스티어링 휠이 벗는 버스의 반대개념)가 유럽 18개국으로 정기노선을 가지고 있고, 마자르 알람바스탁 (MAV) 는 런던, 스톡홀름, 성 피터스버그, 이스탄불, 로마등까지 고속열차를 운행한다. 자동차로는 15개 정도는 헝가리와 주변국민들에게만 개방 되지만 60여개의 지점으로 입국이 가능하다.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국경을 넘을수도 있으며, 4월에서 11월 초까지 비엔나와 부다페스트간을 운행하는 선박을 이용 할 수도 있다.


현재의 헝가리는 1919년에 독립하였다. 1946년에서 1989년까지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헝가리 공화국(헝가리어: Magyar Köztársaság 머저르 쾨즈타르셔샤그 듣기 (도움말·정보)) 또는 헝가리(헝가리어: Magyarország 머저로르사그 듣기 (도움말·정보), 문화어: 마쟈르, 통용: 홍아리(洪牙利)(중국에서는 흉아리(匈牙利)))는 중부 유럽에 있는 내륙국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이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와 함께 비셰그라드 그룹의 일원이자,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다.



건국 1000년 • 통일 헝가리 왕국


면적 93,030 km² (108위)


인구 10,074,000명 (80위)


GDP $1698.75억 (48위) $17,405 (40위)


통화 포린트 (ISO 4217:HUF)


국제 전화 +36


 

역사


탄생과 번창


 전승에 의하면 헝가리는 9세기에 파노니아 평야에 머저르인들을 이끌고 들어온 아르파드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 성왕 이슈트반 대왕이 1000년에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초기 헝가리의 역사는 폴란드와 보헤미아를 포함한 삼각형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과도 많은 접촉이 있었다.


헝가리는 점차 거대한 독립 왕국이 되어 포용력이 큰 중부 유럽 문화를 발달시켜 유럽 문명에 일조했다. 헝가리의 문화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비롯한 이웃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기까지


 헝가리의 황금기는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고 16세기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의 나머지 땅마저 지배하게 되어 끝이 났다.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땅을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에 있던 헝가리는 1867년 오스트리아와의 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자치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18년 10월 31일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전쟁 전의 영토와 인구의 대부분을 중부 유럽의 신생 독립국들에게 내주었다.


  호르티 집권부터 2차대전까지


 1919년에는 공산 혁명이 일어나 헝가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루마니아가 침공해 소비에트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前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군 제독이었던 미클로시 호르티를 집권시켰다.


호르티는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강요로 동맹 관계를 맺었다. 히틀러는 헝가리에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헝가리를 침공하여 호르티를 나치 합작자로 대체해야 했다. 그 때문에 나치 독일은 호르티는 물론 아들까지도 감금했고, 소련군이 풀어주게 된다.


 

공산 정부의 통치


 히틀러의 패배 후 소련군이 진주한 헝가리는 다시 공산 정부 아래에 들어갔다. 1956년 헝가리는 반란을 일으켜 바르샤바 조약 탈퇴를 선언했다(헝가리 반공시위). 그러자 소련군이 개입, 독자 노선 추구를 이끈 임레 너지 총리를 사형시키며 반란을 무력 진압했다. 1980년대 말 헝가리는 바르샤바 조약 폐지를 주도하고 다당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소련 해체 이후부터 지금까지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헝가리는 서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며 199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헝가리는 지금까지도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여 2007년에 반정부 폭동이 일어난 바 있다.


  정치


 대통령의 임기는 의회가 5년마다 선출하며, 주로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총리를 임명하거나, 의회 선거의 날짜를 잡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실질적인 행정권은 총리에게 있다.

행정 구역 부다페스트를 수도로 정했다.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부다와 페스트를 합쳐서 정해진 이름이다.


 

지리


 93,030 평방 제곱 킬러미터의 면적을 지니고 있는 헝가리는 중앙 유럽에 있다. 남북 250km, 동서로는 524km이다. 2,258km의 국경을 이루며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남서부로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접한다. 북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있고 북쪽에는 슬로바키아가 있다.


 헝가리의 현재 국경은 처음 1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것으로 1920년 트리아농 조약 이후 헝가리 제국은 원래 영토의 71%를 잃었고 인구의 58.5%도 사라졌다. 나치군과 연합하여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와 맞닿고 있는 일부 지역에 대한 영토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영토를 모두 잃었다.


  민족


 2000년 현재 인구의 84.4%가 핀-우그리아어파의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헝가리인(마자르인)이다. 집시라고 불리는 로마인이 5.3%를 차지한다. 기타 민족(독일인, 루마니아인, 터키인, 슬라브계의 슬로바키아인, 세르비아인, 슬로베니아인, 우크라이나인, 크로아티아인, 유대인)도 거주한다. 부다페스트에는 화교도 거주한다.


인구


 FAO가 발표한 헝가리 인구 변화(천 명 단위)이 나라는 다른 동유럽 나라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2006년 Eurostat 추산에 따르면, 이 나라의 組(조)출산율은 천 명당 9.6명, 사망률은 천 명당 13.5명, 합계출산율은 2005년 현재 천 명당 1.28명이다.



언어

공용어는 헝가리어이다. 지식인들은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어를 할 줄 안다.

또한, 헝가리는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이것은 언어적으론 영어로의, 경제적으론 독일로의 급속한 편입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


 

종교

 주요 종교는 로마 가톨릭으로 인구의 2/3 정도가 신봉한다. 일부는 정교회, 개신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다. 헝가리 개신교회 최대 교단은 개혁교회이다.


 

대한 관계


 헝가리는 북한과는 1948년 수교하였으나, 공산권 국가였으므로 한국과는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결국 1989년 남한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다. 동유럽의 공산권 국가 중 남한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는 헝가리이다. 1989년 수교 직후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가 동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였으며, 이후 대한민국과 헝가리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 벌러똔 호수(Lake Balaton): '헝가리의 바다'라고도 불리는 벌러똔 호수는 그 규모가 약 600km^2에 이르며 중서부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로 알려져있다. 호수의 길이는 총 77km이며 폭은 4~14km에 이른다. 깊이가 약 12~13m에 달하는 띠허니(Tihany)의 협만을 제외하고는 수심이 3~5m 정도이지만 최근에는 강수량이 적어 수면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최대의 휴양지로 알려져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의 휴양객들로 여름에는 항상 북적거린다.


* 뻔논헐머의 대수도원(Archabbey of Pannonhalma): 부다페스트와 비엔나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뻔논헐머에 위치해 있으며, 996년에 세워진 헝가리 최초의 가톨릭 교육 기관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으로서 설립된 지 1,000년이 되는 1996년에 주변의 자연 환경과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 홀로꾀(Holloko): 홀로꾀는 카스피해 연안에서 이주해온 터키계 쿠만인의 후손으로 알려진 뻘로쯔(Paloc)인들이 살고 있으며 헝가리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직도 근대화 이전의 헝가리 민속과 생활,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있으며, 1987년 유네스코 인류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갈까마귀를 뜻하는 "홀로(Hollo)"와 돌을 의미하는 "꾀(ko)"가 합성된 이 마을명은 전설에서 따온 것인데, 13세기경 당시 꺼취쉬 언드라쉬(Kacsis Andras)라는 영주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웃 지역 영주의 부인을 납치하여 자기 성에 가두게 된다. 그 부인의 유모는 꿈에서 마녀에게 부탁을 하고 그 마녀는 까마귀로 변하여 부인이 갇혀 있는 성으로 날아가 성을 이루고 있는 돌맹이를 하나하나 물어서 그 성을 허물고 부인을 구출했다고 하는데, 이 전설은 다수의 변형된 이야기로도 전해지고 있다.

 


 아바르 국 1


5세기 중반, 유럽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훈제국이 생기를 잃고 물러 나고 난 후에 약 100년 후에 다시 동쪽에서 몰려 와서 훈만큼은 아니 지만 유럽 전체를 소용돌이로 휩쌓이게 한 유목민족의 국가가 [ 아바르 ] 국이다.


아바르국가 역시 여태 나온 유목국가처럼 완벽한 실체는 밝히지지 아니 했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바르국은 몽골로이드로 튀르크계 보다도 몽골족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 물론 아바르국이 튀르크, 마자르 ( 헝가리 ), 몽골, 그리고 알란 ( 이란 ) 등의 잡다 한 혼성으로 구성이 되었지만 여러 국가 체계나 관직명, 이름 등에 서 튀르크에 가깝지 아니 하나 결론을 내리는 듯 하다.


(사실 몽골족의 세계 정복 이 후에 튀르크와 몽골은 언어상으로나 여러 가지에서 뒤섞여 아주 구분이 힘들어 지게 된다. )


아바르 국의 중심부는 훈족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헝가리에 있었고 아바르국의 유적에서 몽골의 인골이 다량으로 출토된 바가 있다. 그래서 아바르는 돌궐과 중국의 북위에 멸망을 당한 [ 연연 ]의 잔 존 세력이 서쪽으로 이동을 해 와서 아바르국의 주체가 되지 아니 했 나 짐작을 하지만, 이것도 추측일 따름이다. 아바르국은 558년 돌연 러시아 동쪽에서 불쑥 나타나 그곳에 자리 잡았던 앞서 말한 사바르 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좀 더 카프카스

지방으로 진출을 하여 알란족과 오우르족을 복속시켰다.


( 알란족 : 알란은 풀어 쓰면 아리아이다. 대부분의 유럽어족은 아 아리아족에 속하는데 유럽은 크게 나누어 게르만, 라틴, 슬라브 세족으로 구분이 된다. 그리고 이란이란 국명이 바로 아리아를 이란 식으로 명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란족이라 함은 아리아족의 옛날 종족 명칭이라 생각 을 하면 된다. )


여세를 몰아 아바르는 비잔틴 ( 동로마 )제국을 압박하여 정착지와 연공을 요구하였다.


당시의 동로마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였다. ( 유스티니아누스는 보 통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라 불리우며 [ 하기야 소피아 성당 ]을 건 립하였고 동로마를 로마제국의 전성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의 재임시에 이탈리아 반도도 수복하였고 스페인 남부와 아프리카 북 부 등을 대부분 다시 수중에 넣었다. 하지만 최근의 평가는 대제에 미치지 못하는 냉혹하고 교활한 독재자로 평가되고 있다. )

그는 아바르의 압박에 대한 대처 보다는 로마제국의 영역을 예전 처럼 다시 확장하는 허황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에 아바르의 조 건을 수락하는 듯 하면서 실제로는 인근 슬라브계를 선동하여 투 나강 부근에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었다.


아바르 국 2

 

이를 간파한 아바르는 562년 손쉽게 이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투나강 변을 정복하였다. 이로서 비잔틴과 접경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서유 럽 쪽에도 진출하여 지금의 헝가리까지 확장하였다.


그 부근에는 게르만계의 롬바르드족이 있었는데 이 롬바르드는 아바 르를 피해 이탈리아 반도로 돌진하였다. ( 당시에 이탈리아는 비잔 틴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 결국 로마제국의 수도와 이탈리아 반도를 수중에 넣어 기고만장했던 유스티니아누스의 대로마제국의 부흥 은 잠시의 꿈으로 그쳐 버렸고 다시 이탈리아는 게르만의 롬바르드족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이때의 아바르족의 왕은 바얀이다. ( 바얀은 몽골식의 이름이다 ) 이 시기가 아바르의 전성시절이라 볼 수 있는데, 서쪽으로는 헝가리에서 발칸 북부, 그리고 동으로 돈강에서 서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방대 한 영토를 향유하게 되었다.


아바르국은 유럽에서 약 200년간 명맥을 유지했는데 주된 목표가 비잔틴의 공략이였다. 이에 비잔틴과 사이가 나쁜 [ 사산조 페르시아 ]와 주로 동맹을 하 여 수시로 천연의 요새라 일컬어지는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사실상 한번도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최후이며 가장 큰 공격은 아바르와 사산조와 공동으로 626년 콘스탄티노플의 공략이였다. 이 공략은 해군에 미숙함 때문에 실패로 끝나는데, 성공적으로 방어 에 성공한 비잔틴은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수백년간 미사를 드리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아바르는 쇠망의 길로 들어 서게 된다.


바얀칸의 사후에 비잔틴은 아바르족의 통치 하에 있는 여러 부족들 을 선동을 하고 혼란을 조장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가르족이 발칸반도를 차지한 것이고 지금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체코족이 독립 을 하였다.

630년 이후의 아바르국은 정복적인 국력은 상실한 상태로 100년 이상 지속하게 된다.

691년 유명한 샤르르마뉴 ( 독일식으로 칼 마르텔 대제 )가 남아 있는 아바르국을 공략하여 패퇴한 아바르는 프랑크족 ( 샤르르마뉴 의 종족명이며 국가, 현 프랑스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 )의 치하에 들어 갔다. 곧 몇년 후에 반항을 하였지만 칼 마르텔의 아들 피펜이 대규모 진압 작전에 들어가서 805년 완벽하게 망해 버린다. 일부 잔존세력은 동쪽으로 달아났지만 곧 기독교화 되어 민족의 존재가 상실이 되었다.



아바르 국 3


아바르는 멸망했지만 훈제국이 주로 전쟁 기술만 유럽에 전달된데 비해 아바르는 문화적으로나 여러 가지 유럽에 많은 영향을 끼쳤 다. 아바르의 군사조직이나 관직명은 유럽에 그대로 차입이 되었고 프 랑크의 메로빙그조의 시대의 예술은 아바르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 타난다고 한다. ( 중앙아시아 튀르크 문화 )


그리고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동부 유럽에서 넓게 시베리아까지 흩어져 있는 슬라브 족이였다.

( 슬라브는 로마시대 때부터 항상 2등 민족이였다. 영어로 노예를 뜻하는 slave가 슬라브 족에서 연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노예나 군대에 주로 종사했다. )

 

슬라브는 이때 비로소 민족의식이 생겨 나고 시베리아 부근에서

동부유럽에 대규모 유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유명한 당시의 역사가는 말한다.


[ 과거에는 두려움에 산림지대의 근거지에서 떠나 보지 못한 슬라

브족은 아바르족을 접하면서 전쟁기술을 익혔고 금, 은, 말을

소유하게 되었다 ]


즉 아바르족은 슬라브족을 이용하길 주로 곡물을 조달시키기 위해

농경에 종사하도록 하였으며 그리고 국경지대에 첨병으로 배치시켰

던 까닭이기 때문이였다.


헝가리 동북부-토카이, 세계유산과 세계 전통와인의 고향

에게르, 용기얻어 터키군을 완파한 레드와인의 고장

 헝가리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평원이 있고 도나우 강과 발라톤 호수 그리고 고풍스런 부다페스트의 건축 등으로 인해 여행자 

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여정을 즐길 수 있는 목적지다.

또한 전통적 와인 생산국의 하나이다. 프랑스에 버금가는 와인, 전통민예와 음악, 조각 등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관광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와인이라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연상하지만 루이 15세 가 가장 좋아했던 와인은 헝가리, 토카이 와인이다.


세계 제2차세계대전 이후 불행하게도 공산화 과정을 밟으면서 질보다 양을 중시한 생산을 하다보니 전통국의 계통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풍부한 경작지와 이상적인 기후, 오랫동안 간직한 와인 양조기법을 바탕으로 지난날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관광입국으로서의 세계여행객 유치를 위해 와인은 둘도 없는 귀중한 관광자원으로 되고 있다.

헝가리의 포도경작면적은 8만3,000ha로 와인생산량은 1,340hl로 그리 적은 양이 아니다.

헝가리내 와인 생산지는 22개로 그중 토카이의 경작면적은 5,800ha, 에게르가 5,160 ha로 헝가리의 대표적 산지이다.





토카이 와인


토카이라고 하면 으레  토카이와인을 생각한다. 토카이 와인은 세계적 최고급으로 그 황금빛 윤기는 프랑스나 러시아의 황실에서도 사랑받던 고급 와인이다. 루이 15세가 퐁파두르 부인에게 “이 술은 와인의 왕이며, 왕들의 왕이다”라고 극찬하면서 세계적 와인으로 등장했다.


도나우강 서쪽은 로마시대부터 포도생산이 시작됐고 도나우강 동쪽으로 확장된 것은 10세기경으로 프랑스 이주자에 의해 개척됐다. 16세기중반에 이르러 이 지방에서 황금빛 아수주가 세계최초로 귀부(貴腐)와인으로 개발됐다. 귀부의 뜻은 포도를 나무에 오래 매달아 놓고, 포도껍질에 곰팡이가 끼면 포도열매의 수분이 증발, 포도껍질이 수축되므로 건포도와 같이 당분이 농축된다.


이때 포도껍질에 낀 곰팡이를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ra)라고 한다. 이 현상을 프랑스어는 ‘Pourriture noble(뿌리튀르 노블)’, 영어로는 ‘Noble not(노블 롯)’, 일본에서 ‘귀부(貴腐)’라 불렀다. 따라서  우리도 ‘귀부 병’이라 부른다. 즉, ‘귀하게 썩었다’는 뜻이다.  귀부병 포도에 대한 구전이 내려오고 있는데 1650년경 이지역 수도원원장이었던 셉시 라츠코 마테가 터키군의 침략이 두려워 포도의 수확을 늦추게 하니 포도송이에 귀부병 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포도당이 더욱 맛이 내 독특한 향을 내는 토카이 와인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 3시간 반 부다페스트 동북지방 보드로그(BODROG)강과 티사(TISZA)강이 합류하는 좁은 지역이다..  토카이 지방에 들어서면 녹색지대가 많이 보이며 완만한 언덕과 평지에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토카이는 세계유산이다. 국도변에 있는 디스노케( DISZNOKO) 농장부터 찾아가기로 했다.최초의 방문지로 헝가리정부관광청에서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와이너리이다.


150헥타르의 넓은 밭으로  1730년 당시에는 초일류 포도밭으로 기록돼있다. 1992년  프랑스계 와인기업이 인수해 사회주의 시대 건물을 철거해  판매소와 레스토랑을 갖춘 양조장을 건설했다.


사회주의 붕괴이후에는 대규모 양조장이 많이 생겼지만 이 지방에는 아직도 소규모업자들이 많이 있어 오후에는 현지 중소업자 10곳과 교류와 더불어 와인 프리젠테이션 시간도 가졌다.


토카이 와인은 프랑스 소떼른 지방의 와인과 매우 흡사한데 늦수확으로 포도밭에서 귀부병에 걸린 포도송이를 따서 며칠간 소쿠리에 담는다. 당도가 최고도에 달하면 즙을 받아낸다. 이즙을 와인(DRY WINE)또는 머스트(MUST)에 블렌딩해 발효과정을 거쳐 토카인 와인을 얻는다. 이 과정을 거친 와인은 ‘아수’란 표시를 할 수 있다.토카이 아수는 당분이 높기에 식후주로 애용되고 있다.


이은 스케쥴로 PATRICIUS 와이너리에서 토카이 푸르민트(FURMINT DRY) 2007, KATINKA 2005, PUTTONYOS 아수 2002의 와인 테스팅이 있었다.


에게르 와인


에게르는 토카이보다 부다페스트쪽으로 위치해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150km동북쪽에 있는 헝가리 제2의 포도산지로 질펀하게 펼쳐진 대평원의 한 자락을 잡은체 화산토가 일궁 얕은 구릉지에 발달해 있다. 에게르는 바스크의  훌륭한 전통문화르 이어 내려오는 에그조틱한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고 도시규모를 갖춘 곳이다.


에게르는 레드와인이다. 에그리 비커베르(EGRI BIKAVER)를 연상시킨다. 헝가리 와인의 대명사이다. 비커베르는 짙은 적색으로 몇 종류의 포도를  섞어서 만든다. 그 해의 와인 수확상태에 따라 섞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 뜻은  ‘수소의 피’를 가리키며  용기를 의미한다. 16세기 헝가리가 오스만 투르크군에 점령당했던 시대부터 내려오는  와인이다. 당시 8만명의 투르크군이 에게르를 공격해 왔을때 성곽을 지키던 병사와 시민이 에게르의 적포도주를 다 마시게 됐다. 병사들의 옷과 입에서 혈색이 보여 투르크군은 수소피를 마시고 공격해 오는 줄 착각해 퇴진, 에게르가 공격에서 해방됐으니 그 때부터 ‘수소의 피’로 불리우게 됐다.


이 와인은 케코프랑코쉬(KEKFRANKOS),케코포르토(KIKOPORTO),까베르네 소비뇽(CABERM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의 4가지 블렌딩해 얻어낸다. 


에게르 중심부에서 12km 떨어진 노츠비아 마을에 있는 투메레르(THUMMERER )셀러를 찾았다. 100년전 화산암을 뚫어 만들었다고 하며지하 셀러,빛이 바래있는 포도악착기의 모습은 남다른 감명을 받았다. 이 와이너리 주인인 빌모스 투메레르(VILMOS THUMMERER)씨는 ‘1995년 최고의 와인생산자’로 선정됐다. 85 헥타르의 와이너리에는 18년전부터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년간 25만병의 와인을 생산해 인근 폴란드, 스위스, 슬로바키아, 벨기에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화이트가 20%, 레드가 80%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이 집 딸이었으며 내부견학과 와인 테스팅, 헝가리안  댄스팀도 대기시켜 놓아 민속춤을 가까이 볼 수 있게 배려를 베풀어 주었다. 여기서 시음한 것은  에그리 ㅂ;커베르로 매우 환상적이었다. 입안에서 느끼는 훌륭한 밸런스 등으로 모든 면에서 탁월한 와인으로 동행한 영국, 러시아, 슬로바키아의 와인미디어 관계자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취재협조 헝가리정부관광국(Hungarian National Tourist Office)


<헝가리 토카이 에게르에서-金錫武>

 


 알아두면 편리한 헝가리어 기초회화 및 지명 발음  기초회화(헝가리어) 


 http://blog.naver.com/songssam25/120014788763


일단...헝가리어 자판이 아니라서...점이 하나, 혹은 둘 있는 글자를 구분해서 올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a의 경우 위에 점이 있는 것은 ㅏ, 점이 없는 것은 ㅓ로 발음합니다.

c는 대부분 ㅊ로 발음하면 맞습니다.

영어에는 ch가 있지만 헝가리어에는 cs,cz가 있습니다.

e의 경우 위에 점이 있는 것은 장음으로 ㅣ(이), 없는 것은 ㅔ로 발음합니다.

gy은 ㄷ-ㅈ 의 중간쯤으로 발음합니다.(y-입실론)

s는 에쉬, sz은 에쓰로 발음합니다.

ly는 ㅣ(이)로 발음합니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l : r , b : v , p : f 의 발음을 잘 구별하시면 좋겠죠.

헝가리어는 쓰는대로 발음하니까 이런 기본적인 발음만 아시면 대략 간판이나 메뉴판 정도는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주요 장소 및 지명 발음



헝가리 Magyarorszag(머져르오르삭)  부다페스트 Budapest (부더뻬쉬뜨) 

국 회 Orszaggyuleshaz (오르삭쥴레쉬하즈)  영빈관 Allamivendeghaz (알러미벤데그하즈)  호텔  Szaloda (쌀로더) 

어부의 요새 Halszbasztya(헐라스바스쳐)  영웅광장  Hosok tere (회쇡떼레) 



기본 회화


안녕하십니까?

* Jo napot kivanok (요 나폿 끼바녹:정중한 인사), good afternoon에 해당합니다.

*Szia(씨어:일반 대중적인 인사-손아랫 사람이나 친구사이에 사용)

* Szervusz (쎄르부쓰:가까운사이) 

감사합니다.     *Koszenem szepen (쾨쇠뇜 씨뻰:정중한 답례)  *Koszi (꾀씨:격식이 없는 인사로 친밀한 사이에)

미안합니다.     *Bocsanat (보촤넛) *Elnezest (엘니제쉬뜨-실례합니다에 가까움) 

유감입니다.     *Sajnalom (셔이날롬)

여보세요! - 식당에서 직원을 부를 때.        *Legyen szives(레젠 씨베쉬)

만나서 반갑습니다.

*Orulok,hogy talakoztunk (외륄뢱 호지 털랄코즁크)

얼마입니까? *Mennyibe kerul ? (멘뉘베 께륄 ?)

매우 비쌉니다. *Ez nagyon draga. ( 에즈 너죤 드라거)

매우 쌉니다.    *Ez nagyon olcso. (에즈 너죤 올초)

시원한 맥주 한 잔 주십시오. *Egy hideg sort kerek. (에지 히덱 쇠르뜨 끼렉) 

계산서 주십시오. * Kerem a szamlat. (끼렘 어 쌈랏)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Hogy hivnak ? (호지 히브넉?)

이름이 뭐예요? *Mi a neve? (미 어 네베 ?) 

이것은 무엇입니까 *Mi ez? (미 에즈?) 

지금 몇시입니까? *Mennyi az ido? (멘뉘 어즈 이되 ?)

어떻게 지내십니까? *Hogy van? (호지 번 ?) 

오늘 저녁 무엇을 하십니까? *Mit csinal ma este? (밋 취날 머 에쉬떼 ?) 

안녕히계십시오(가십시오) *Viszontlatasra (비손뜨라따쉬러)

~가 어디에 있습니까? *Hol van-? (홀 번 -?)

~ 를 주세요.(음식주문시) *Kerek- (끼렉~) 

(나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Nem ertem (넴 이르뗌) 

(당신은) 이해하십니까? *Erti (이르띠 ?)

당신 영어할 줄 아십니까? *Beszel angolul? (베씰 앙골룰 ?) 

나는 헝가리 어를 못합니다. *Nem beszelek magyarul.(넴 베씰렉 머져룰) 

Yes. *Igen(이겐) No *Nem (넴) 

천만에요/괜찮습니다. *Szivesen (시베쉔)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Hol van WC(vece) /toalett? (홀 번 베쩨/ 또알렛)

-남자용 Forfiak 또는 Urak (페르피억/우럭) 

-여자용  Nok 또는 Holgyek (페르피억/횔죅)

맥주집 *sorozo (쇠뢰죄)


숫자

egy (에지-1) ketto (겟뚜-2) harom(하롬-3) negy(니지-4) ot(욋-5) hat(헛-6) het(힛-7) nyolc(뇰츠-8)
kilenc(킬렌츠-9) tiz(티즈-10) tizen-egy(티젠에지-11) 이하 19까지는 동일한 방법으로..

husz(후쓰-20) huszon-egy(후쏜에지-21)이하 29까지는 동일한 방법으로..

harminc(허르민츠-30) negyben(니지벤-40) otben(욋트벤-50) hatban(허트번-60) hetben(히트벤-70)

nyolcban(뇰츠번-80) kilencben(킬렌츠벤-90) szaz(싸즈-100) ezer(에제르-1,000) tizezer(티즈에제르-10,000)

szazezer(싸즈에제르-100,000) milio(밀리오-1,000,000)


예를 들어서..6,253,489 = Hatmilio kettoszazotbevharomezer negyszaznyolcbankilenc

육백이십오만삼천사백팔십구는

   허트밀리오겟뚜싸즈외트벤하롬에제르 니지싸즈뇰츠번킬렌츠로 쓰고 읽습니다.



[출처] 알아두면 편리한 헝가리어 기초회화 및 지명 발음|작성자 새로운 도전


  


1. 주요 지명 및 용어


헝가리 Magyarorszag(마쟈어르오르삭)마자르족의 나라

부다페스트 Budapest (부더뻬쉬뜨)

호텔 Szaloda (쌀로더)

어부의 요새 Halszbasztya(헐라스바스쳐)

영웅광장 Hosok tere (회쇡떼레)



2. 헝가리의 표기상 우리와 유사점


가. 인명 : 우리나라와 같이 성이 먼저 오고, 이름이 나중에 옴.

      예) 호른 쥴라(Horn Gyula: 호른이 성, 쥴라가 이름)

나. 연도 : 우리나라와 같이 1997.1.1. 로 년 월 일로 표기

다. 주소 : 주소 역시 우리나라와 같은 순서

      예) 부다페스트 6구역 안드라시가 109번지 (1062 Budapest Andrassy ut 109)

라. 칭호 : "마티아시 왕"의 표기시 King Mathew 대신 Mathew King (Matyas Kiraly) 순서로.


3. 기본 회화


안녕하십니까? : Jo napot kivanok (요 나폿 끼반녹:정중한 인사) Szervusz (쎄르부쓰:가까운사이)

감사합니다 : Koszenem szepen (쾨쇠뇜 쎄뻰:정중한 답례) Koszi (꾀씨:친밀한 사이)

미안합니다 Bocsanat (보촤너트) / Elnezest (엘네제쉬뜨) / Sajnalom (셔이날롬)

여보세요(식당,호텔 등에서 사람을 부를때) Legyen szives(레젠 씨베쉬)

만나서 반갑습니다 Orulok,hogy talakoztunk (외륄뢱 호지 떨랄꼬즈뚱끄)

얼마입니까 Mennyibe kerul ? (멘뉘베 께륄 ?)

계산서 주십시요 Kerem a szamlat. (께렘 어 쌈랏)

이름이 무엇입니까? Mi a neve? (미 어 네베 ?:약간 가까운 사이)

이것은 무엇입니까 Mi ez? (미 에즈 ?)

지금 몇시입니까? Mennyi az ido? (멘뉘 어즈 이되 ?)

어떻게 지내십니까? Hogy van? (호지 번 ?)

안녕히계십시오(가십시오) Viszontlatasra (비손뜨라따쉬러)

-가 어디에 있습니까? Hol van-? (홀 번 -?)

-를 주세요(음식주문시) Kerek- (께렉-)

(나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Nem ertem (넴 에르뗌)

(당신은) 이해하십니까? Erti (에르띠 ?)

나는 헝가리 어를 못합니다 Nem beszelek magyarul.(넴 베쎌렉 머지어룰)

Yes Igen(이겐) No Nem (넴)

천만에요/괜찮습니다 Szivesen (시베쉔)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Hol van WC(vece) /toalett? (홀 번 베쩨/ 또알렛)

-남자용 Forfiak 또는 Urak (페르피억/우럭)

-여자용 Nok 또는 Holgyek (페르피억/횔죅)


0 nulla(눌러)  1 egy(에지)  2 ketto(껫뙤)  3 harom(하롬)     5 ot(외뜨) 

6 hat(허뜨)    7 het(헤뜨)  8 nyolc(뇰츠)  9 kilenc(낄렌츠) 10 tiz(띠즈)



4. 음식/식사 용어

메뉴 etlap (이뜰럽) 오렌지 Narancs (너런취) 콩 Bab (버브) 식 수 Asvanyviz (아슈바니 비즈) 맥주 Sor (쇠르)

감자튀김 Sult burgonya (쉴뜨 부르고녀)  수프  Leves (레베쉬) 소고기 Marhahus (머르허 후쉬) 계란 Tojas (또이아쉬)

빵  Kenyer (께녜르)  소고기 스테이크 Bifsztek(비프스텍)  감자 Krumpli (끄룸쁠리) 돼지고기 Szerteshus(쎄르떼쉬 후쉬) 

야채 Zoldsag (죌드삭)   토마토 Paradicsom (뻐러디촘)  양파 Voroshagyma (뵈뢰쉬 허지머) 우유 Tej (떼이) 소금 So (쇼)

마늘 Foghagyma (포그허지머) 오리 Kacsa (꺼처) 시금치 Spenot / Paraj (쉬뻬놋) 생선 Hal (헐)   Sonka (숑꺼) 버터

오이 Uborka (우보르꺼) 햄  Vaj (버이) 치즈 Sajt (셔이뜨)  기름 Olaj (올러이)  커피 Kave (까베)  크림 Krem (끄레임)

티 Tea (떼어)  설탕 Cukor (추꼬르)  수저 Kanal (꺼날)  나이프 Kes (께이쉬)  포크 Villa (빌러)  컵 Pohar (뽀하르) 

영수증을 주십시오 Szeretnek fizetni (쎄레뜨닉 피제뜨니) 


헝가리 요리는 매우 다양하며 후추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매운 음식이 많다. 대표적인 요리는 쇠고기를 모나게 썰어서 감자, 양파, 파프리카를 넣고 푹 끓인 스튜의 일종인 Gulyas이다. 헝가리인들은 빵과 Gulyas만으로도 식사를 한다.

파프리카(Paprika)는 헝가리의 향신료로서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버찌 파프리카는 매우 매우며, 토마토 파프리카와 황색.적색의 가늘고 긴 파프리카는 일반적으로 단맛이 나기 째문에, 샐러드나 찜 등에 쓰인다.

샐러드의 일종인 Ecetes Paprika는 고기 요리에 잘 어울리며 매우 맵다. Paprikas Csirke는 뼈가 붙은 닭고기에 파프리카를 넣어 삶은 요리이고, Sertes Porkolt는 돼지고기를 모나게 썰어서 파프리카를 넣고 삶은 요리이 다.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고 삶은 것은 Marha Porkolt인데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요리이다. 주 요리에 곁들여 먹는 요리로는 달걀과 밀가루 로 만든 국수요리인 누들과 감자, 일종의 경단과 같은 단프링이 있다.


- Halaszle는 잉어에 칼집을 내서 파프리카로 맛을 낸 스프이고, 그 밖에도 물고기 요리로서 잉어 프라이인 Rantott Ponty, 송어(Pisztrang)요리, 민 물송어(Fogas)요리도 먹어볼 만 하다.

부다페스트의 고급 레스토랑에만 있는 포아그라 Libamaj는 집오리의 간 요리인데 400포린트 정도면 먹어볼 수 있다. Toltott Kaposzta는 헝가리식 롤캐비츠이다.

Turos Taska는 달콤한 흰 치즈로 채운 패스츄리이고 스폰지 케익인 Somloi Galuska는 초콜렛, 밤, 크림의 혼합물에 초콜렛을 럼 술로 녹여 만든 양념 이 가득채워져 있어 무척 진한 맛을 낸다. 크라상 모양의 Burkiffli는 호도 와 설탕, 밤이 들어 있는데 들고 다니면서 먹기에 편하다.


- 식당은 Etterem(또는 Vendeglo)라고 부르며 1급과 2급으로 나뉜다. Csarda 는 전통적인 선술집 스타일의 레스토랑이고 Bistro는 값이 저렴한 식당이 다. Halaszcsarda는 민물고기요리 전문점이다. 식당에서는 Gulyas와 신맛이 나는 체리 스프인 Meggyleves를 맛볼수 있으며 채식가는 기름에 튀긴 치즈 인 Rantott Sajt, 기름에 튀긴 버섯요리인 Rantott Gombafejek, 버섯스튜요 리인 Gombaporkolt를 주문해 먹기도 한다.


- Kifozde에서는 열접시 이상의 식사는 거의 제공되지 않으며 항상 다른 사 람과 함께 식탁을 사용해야 한다. Salatabars에서는 신선한 샐러드 대신 맛 있는 혼합물을 판다. 주문은 거의 헝가리어로 해야하며 패스츄리와 커피를 주문하고 싶 때에는 Cukraszda로 하면된다. Espresso는 커피의 한 종류이 다.

저녁 6시 이후에는 짚시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식사를 즐길 수가 있고 1급 식당에서는 주문한 것 이외에도 빵, 감자, 천연수 등을 가져와 계산에 포함시키므로 계산시 주의한다.


- 식사는 풀코스로 먹어도 400포린트 정도면 충분하고 요금의 10% 정도를 팁으로 주는 것이 관습이다. Diaketterem은 대학의 학생식당으로 40포린트만 있으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Onkiszolgalo는 셀프서비스 레스토랑으로 역시 50-60포린트 정도면 충 분히 식사할 수 있다. 헝가리는 와인으로 매우 유명한데 특히 흰 토카이(Tokaji) 와인 Aszu와 빨 간 Egri Bikaver(에게르 황소의 피), 발라톤 호반의 산지에서 생산되는 백 포도주 Badacsonyi Szurkebarat는 맛이 매우 좋다.

가게에서 한병에 약 150 포린트면 살 수 있다. 헝가리 특산물인 살구, 버찌로 만든 과실주 Palinka 도 식사전에 마시면 식욕을 돋구어 준다. 맥주는 별로 맛이 좋지 않으며 대 부분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하여 마시고 있다. 헝가리에서 만든 독한 증류수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마신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공화국(독일어: Republik Österreich 레푸블리크 외스터라이히[*], 통용: 오지리(墺地利))은 중부 유럽,

알프스 산맥 동부에 있는 나라이다. 빈(독일어로 Wien, 영어로 Vienna)을 수도로 정했고, 독일어를 공용어로 정했다.


국가: 산의 나라 강의 나라


수도 빈

공용어 독일어 (나머지는 지역적으로 쓰임.),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헝가리어

정부 형태 공화정

대통령 하인츠 피셔

국무총리 알프레드 구젠바워

독립 • 1945년 독립 나치 독일로부터 독립

면적 83,871 km²

인구 8,206,524명

GDP (PPP) • 전체$2670억 (35위) • 일인당 2005년 $32,962 (9위)

국제 전화 +43

역사



고대역사


 선사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여러 민족의 이동이 많았다. BC 8세기 무렵부터 할슈타트문화의 중심이 되어 정착한 켈트인이 BC 2세기에는 노리쿰왕국을 세웠다. 기원 전후 로마인도 다뉴브강 남쪽 연안에 이르러 노리쿰을 속주로 편입시켰고 뒤늦게 빈도보나(지금의 빈)를 건설하였다. 게르만인도 1세기에 이 지방으로 진출했다. 로마제국은 그 대응책에 고심하면서 4세기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 훈족의 서진(西進)으로 435∼453년 아틸라의 지배를 받았으나, 그가 죽자 게르만부족들의 재편성과 자립화가 진행됐다. 그러나 동방으로부터 슬라브족을 동반한 아바르족이 진출하였고, 5세기 말 로마인이 철수했다.

중세역사


 서쪽에서 5세기 후반 이래 왕국을 형성하고 있던 프랑크족은 6세기 로마교회와 손을 잡고 점차 남동쪽으로도 진출하여 카롤링거왕조의 카롤루스대제(재위 768∼814) 영도 아래 8세기 말 바이에른을 복속시키고 다시 동진하여 791∼796년 아바르족을 괴멸시켜 여기에 오스트마르크를 설치했다. 9세기 말부터 서진을 시작한 마자르인은 10세기에 이곳으로 진출하였다. 카롤링거왕조가 단절된 뒤 동프랑크왕국을 계승한 작센왕조 오토 1세(재위 936∼973)는 955년 마자르인을 격파하고 오스트마르크를 재건, 962년 신성 로마 제국이 탄생하였다.


 


 사촌인 바이에른공과 싸워 이겨 황제가 된 오토 2세(재위 961∼983)는 976년 바이에른으로부터 오스트마르크를 분리시켜 변경백(邊境伯)의 영지로 삼아 이것을 바벤베르크가에게 하사했다. 바벤베르크의 군주들은 동방식민을 추진해서 경제발전을 꾀하였고, 서임권을 둘러싼 황제와 교황의 분쟁을 이용해 세습을 관행화하였으며, 슈타우펜가와 벨프가의 분쟁에서도 프리드리히 1세(재위 1152∼90)로부터 1156년 세습공령으로의 승격을 획득했고, 아울러 영역 내에서의 재판권을 인정받았다. 1192년 슈타이어마르크공령도 병합하여 남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했으나, 1246년 헝가리와의 전쟁에서 최후의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재위 1230∼46)가 전사함으로써 오스트리아는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 1246∼73)를 맞게 되었다.


 주변 지역의 분쟁에 개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접 제후들의 무력개입을 초래했으나, 보헤미아(뵈멘)왕 오토카르 2세는 1251년 빈을 점령하고 아드리아해까지 진출해 동유럽에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1256년 독일의 대공위시대(1256∼73)에 때맞추어서 황제위를 요구하였다. 이에 반대한 독일 제후들은 1273년 알자스와 스위스 등지에 기반을 둔 합스부르크백작 루돌프를 황제로 선출했다. 황제 루돌프 1세(재위 1273∼91)는 제국영토의 반환을 거부한 오토카르를 1278년에 죽이고 오스트리아를 합스부르크가의 영지로 확보했다. 그러나 제후들은 너무 강대해진 합스부르크가에게 계속해서 황제위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1291년 이래, 특히 14세기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스위스독립전쟁으로 고초를 겪었을 뿐 아니라, 카를 4세(재위 1347∼78) 밑에서 번영한 룩셈부르크가와도 대립, 1356년 금인칙서(金印勅書)에서도 7선제후(七選帝侯)에서 배제되어, 룩셈부르크왕조가 후스전쟁(1419∼36)으로 단절되고 알브레히트 2세가 1438년 즉위한 뒤에야 합스부르크가가 황제위를 독점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1453년 대공령으로 승격하였다.


 합스부르크가의 아들들에 대한 분할상속 전통은, 결과적으로는 결혼정책으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으나 영토분할과 계승권분쟁이 생김으로써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데에는 방해가 되었다. 1477년 부르군트공주와 결혼한 황제 막시밀리안 1세(재위 1493~1519)는 1495년 독일제국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좌절되었다. 1496년 그의 아들 필립이 스페인 왕녀와, 1515년 그의 손자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헝가리 왕녀와 결혼했다. 이 결혼정책은 프랑스와의 대립을 장기화시키면서 프랑스와 동맹관계에 있는 오스만 제국와 대립을 가져와 합스부르크가는 동·서로부터 압박을 받게 되었으나, 필립의 장남 카를 5세(재위 1519~1556)가 프랑스왕과의 전쟁에서 이겨 1519년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합스부르크세계제국이 출현했다.


 


근대역사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룩한 세계제국도 1521년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분할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1세(재위 1556~1564)는 농민전쟁에도 직면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북상으로 헝가리왕 라요시 2세(재위 1516~1526)가 1526년 모하치에서 죽자, 보헤미아·헝가리 두 왕국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1529년 빈을 포위당해 겨우 격퇴하고 1531년 독일왕이 되었으며 헝가리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북서부를 지배했을 뿐이었다. 페르디난트 1세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화의(和議) 뒤 1556년 카를 5세로부터 제위를 승계받았으나 종교쟁의에는 간섭할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가의 내분 뒤 페르디난트 2세(신성로마황제, 재위 1619~1637)가 1617년 보헤미아왕이 되어 반종교개혁을 강행하자, 1618년 30년전쟁(1618~1648)이 일어났다.


 30년전쟁은 단순히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탄생의 태동이기도 하였으며 체크민족주의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열강의 간섭 속에서 오스트리아의 군주들은 개신교에 대항한 반종교개혁을 통해 농노제를 다시 확립하였고, 서방에서는 영국과 결탁해 루이 14세의 침략을 막았으며, 동방에서는 1683년 오스만 제국의 빈 포위를 반격하여 헝가리 전토를 확보하였다. 권력집중을 도모하고 영토통합을 꾀하였으며, 산업육성·농민보호에 힘썼으나 스페인계승전쟁에서는 해외 진출을 단념하고 스페인왕위를 포기하였으며,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 영토를 확보하였다. 오스트리아계승전쟁(1740~1748)에서는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빼앗겼으나 영토분할을 막기 위한 프라그마티셰 장크치온이 인정되어, 마리아 테레지아(재위 1740~1780)에게 상속시켰다.


1756년 프랑스와의 동맹에 성공했으나 7년전쟁(1756~1763)에서도 슐레지엔을 수복하지 못했고, 오히려 헝가리귀족과 타협해 동방에서의 러시아진출과 독일에서의 프로이센 발흥을 도운 셈이 되었다. 전중·전후의 부흥을 위해 행정·재정을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 요제프 2세(재위 1765~1790) 치하인 1781년 <농노해방령>과 <관용령>을 발포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1790년 요제프 2세의 죽음으로 개혁정책도 좌절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에 직면한 합스부르크가는 영토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폴레옹이 대관하기에 앞서서 1804년 오스트리아황제라고 칭했고, 슬라프코프에서 참패한 1806년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K.W.N.L. 메테르니히는 1810년 황녀 마리아 루이자와 나폴레옹의 결혼을 추진하는 유화정책을 취했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교묘히 해방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빈회의(1814∼1815)를 주최하고, 복고·정통·연대를 기조로 반동체제를 국내적·국제적으로 확립해 자유의 움직임을 탄압했다. 메테르니히체제 아래에서도 산업발전에 따라 시민의 힘이 강해졌다.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의 영향으로 빈 등지에서 3월혁명이 일어나 메테르니히는 망명했다. 혁명의 전면에 하층시민이 부상하자 산업시민층은 혁명에서 후퇴해 10월 말 반혁명의 승리로 끝나고, 1851년 이후로는 신절대주의 A. 바흐 체제가 되었다. 혁명 뒤에는 농민해방을 정착시키면서 산업 근대화를 추진시켰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영토의 기반을 동·중유럽에 두었기 때문에 전형적인 다민족국가가 되었고 혁명은 여러 민족의 독립운동을 표면화시켰다. 헝가리 토지귀족의 독립운동은 러시아군대의 원조로 1849년 진압되었으나, 체크의 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는 슬라브 여러 민족에 영향을 주었다. 크림전쟁에서의 외교적 실패와 고립화 속에서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운동은 1859년 독립전쟁으로까지 고조되었고, 그 패전으로 바흐체제는 붕괴되었다. 위기에 직면한 오스트리아는 여러 민족의 요구를 참작, 1860년 연방주의적인 10월 칙서(Oktoberdiplom)를, 1861년에 2원제의회를 인정하는 2월헌법(Februar-Patent)을 반포하여 부르주아적 권력의 강화를 시도했지만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에서 완패하자 헝가리 토지귀족과 제휴, 그 왕국을 인정해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제국을 성립시켰다. 이 노선은 반발하는 슬라브 여러 민족의 요구를 억압하고 1873년 공황을 거쳐 1879년 독일-오스트리아동맹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운동의 고조와 함께 노동운동도 성장하였다. 이 해에 <모든 민족과 정당을 대표하는 황제내각>이 성립되자, 이로 인한 독일인과 체크인의 민족적 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보헤미아에서는 <언어령(Sprachenverordnung)>이 되풀이되었지만 대립은 일상생활로까지 번져 격화를 거듭하였다. 1888년 결성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은 1907년 보통선거제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1909년 민족별로 분열되자 민족주의가 고양되어 혼란에 말려들었다.


 


세계대전


 발칸으로의 진출은 범슬라브주의와 대립되었고, 1914년 사라예보사건을 계기로 제1차세계대전에 돌입했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제국은 해체되고 1918년 사회민주당 주도로 공화국이 성립되어, 국민의회 결의에도 <독일계 오스트리아는 독일공화국의 한 구성요소>라고 명기되었으나 이 합병은 전승국들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특히, 산업이 앞선 보헤미아의 상실, 전후 경제혼란과 1929년 대공황에 따라 그리스도교사회당이 대두하였다. 1932년 C.E. 돌푸스내각은 사회당, 공산당과 더불어 합병을 주장하는 나치를 탄압했다. 독일민족주의자들은 나치에 가담해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을 단행하고, 1939년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나치독일이 패배하는 가운데, 1945년 3월 빈에 소련군이 진주하였고, 전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 점령 아래 유럽에 대한 경제원조로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고자 한 경제지원책인 마셜플랜을 받아들였으며, 4개국회의를 거쳐 1955년 오스트리아국가조약으로 자유영세중립국으로 주권이 회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유럽 연합의 회원국으로 지내고 있다.


  지리


오스트리아는 알프스 산지가 3분의 2로 되어있다.


서쪽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북서쪽은 독일, 북쪽은 체코, 동쪽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쪽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등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오스트리아의 행정 구역입니다.

오스트리아는 9개 연방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 (()안은 주도.)

니더외스터라이히 (장크트푈텐) 오버외스터라이히 (린츠) 부르겐란트 (아이젠슈타트)

슈타이어마르크 (그라츠) 케른텐 (클라겐푸르트)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티롤 (인스브루크) 폴라를베르크 (브레겐츠)


  주민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인(97%)이 대부분이다. 

독일인 외에도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루마니아인, 체코인, 러시아인, 보스니아인, 기타등의 동유럽인, 아랍인, 타이족, 터키인, 집시, 기타 민족이 거주한다.


 종교


오스트리아에서는 84%가 로마 가톨릭을 믿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존재했던 1918년까지는 국교였다. 또한 6%의 개신교도 존재하는데,루터교,개혁교회,감리교,침례교등이 있다. 그외 그리스도교 교파로는 37개의 교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동방정교회가 있다. 이슬람교도 존재하는데 터키사람과 이란사람이 믿는다.


  언어


독일어가 공식적인 공용어이며, 지역적으로 슬로베니아어,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가 쓰이고 있다. 러시아어와 영어도 쓰이나, 영어가 그중 많이 쓰인다. 이 나라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기도 하다.


 경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가 입은 피해는 매우 극심한 상태였다. 게다가 종전 후 4개국에 의한 분할점령, 소련에 의한 생산설비의 철거, 그후 오랫동안 계속된 동서 양 진영의 대립에 휘말려 경제부흥이 늦어졌다. 그러나 1949년부터 시작된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을 바탕으로 유럽부흥자금에 의한 원조가 제공됨으로써 이와 같은 경제상태에서 벗어나 급속도의 재건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특히 1955년의 독립 이후 소련에 접수된 재산이 반환되는 등 자극요인에 힘입어 오스트리아 경제는 고도성장을 달성하여, 전쟁 이전을 능가하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에 산업구조는 고도화하고 중화학공업을 비롯하여 수출도 크게 신장되었다. 더욱이 1951년 이래 연평균 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서유럽에서 독일·이탈리아에 이은 고성장을 이루었으나, 197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3% 정도로 성장이 둔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다 1993년에는 세계적인 경제 정체 등으로 인하여 -0.5%로 떨어졌고 1994년부터 경기가 호전되어 2.5%의 성장률을 나타내었다. 이후에는 1995년 1.7%, 1997년 2.5%, 1998년은 3.3%, 1999년 2.3%, 2000년 3.4%로 안정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주요산업은 제철업, 금속가공업, 관광산업이다. 오스트리아 경제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대의 특색은 자본주의를 기조로 하면서도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국영화가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치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실시된 옛 독일 자산의 국가관리도 큰 작용을 하고 있다. 토지이용은 산지가 많기 때문에 경지율은 17%에 불과하여 목초지 25%를 합쳐도 식량생산에 이용할 수 있는 토지는 국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1997). 그러나 식량자급률은 꽤 높다. 농장당 농지면적은 24ha로 그다지 크지는 않고 농지면적 10ha 미만인 농장이 거의 반을 차지하며 소규모 영농(營農)이 많이 행하여지고 있다. 1997, 1998년의 농업부문 성장률은 0%로서 정체를 보였다.


  경지는 동부의 저지(低地)에, 목초지는 서부의 산지에 많이 분포해 있고 경지의 2/3는 곡물을 심는 밭이다. 주요 작물은 밀·호밀·보리 등의 맥류를 비롯하여 감자·사탕무·목초류 등이고 과일로는 포도·사과·자두 등이 생산된다. 가축으로는 소·돼지를 비롯하여 양·염소·닭도 많이 기르고 있는데 최근 들어 큰 가축으로는 소가 불어나고 말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낙농산물의 일부는 수출되기도 한다. 국토의 45%(386만ha)를 산림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임업은 오스트리아의 중요 산업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 6위의 침엽수목재 수출국으로서 대부분(85%)을 수출하고 있다. 산림은 중·남부 지역에 많고 목재를 비롯한 제지·화학 공업용 원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광물자원의 혜택도 꽤 많이 받고 있다. 예로부터 개발이 진행되어온 철광은 유럽 최대의 노천굴 광산으로 유명한 슈타이어마르크주(州)의 에르츠베르크가 주산지이며 바로 남쪽의 도나비츠에는 대규모 제철공장이 있다. 그러나 최근 동구국가들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국내수요를 위해서만 채광할 뿐이며 많은 광산들이 휴광상태에 있다. 석탄은 매장량이 많은 편이나 수입하는 쪽이 값싸기 때문에 최근에는 폐광상태의 탄광이 눈에 띄고 있으며 국내 수요의 1/3에도 못 미치는 공급량을 나타내고 있다. 그밖에 암염·흑연 등의 생산량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석탄 생산량이 적은 대신 수력발전이 발달하였으며 유럽에서 중요 수력발전국의 하나로 부근 여러 나라에 전기를 수출한다. 석유는 매장량이 약 3억 1000만 톤으로 추정되며, 천연가스는 인근 산업단지나 발전소 등으로 공급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공업생산의 대부분은 국영 ‘오스트리아 공업광산 관리회사’에 통합되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주요 생산부문은 철강·화학기계·전기기기·식품 등이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된 LD제강법(製鋼法)을 비롯하여 제철기술이 발전되어 있으며 제품뿐만 아니라 기술수출도 여러 나라를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석유화학·제철·자동차 등 중화학공업 분야에는 국영 대기업이 많이 진출하였으며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한때 활기에 찬 제지나 섬유공업 등은 정체상태에 머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전통적 미술공예품을 제작하는 각종 수공업도 전문화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제조업은 2000년 현재 전체 고용의 20.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 밀접지역인 빈과 인근지역에 산업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남부지역은 주로 기계공업, 화학공업, 전기·전자공업이, 서부지역은 섬유·유리공업이 발달하였다.


  이상과 같은 오스트리아의 산업구조는 크게 나누어 철강·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학공업부문과 식품·섬유·제지를 중심으로 하는 경공업부문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2대 지주로 삼고 있으며, 이와 함께 소규모 영농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생산과 공예품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전자본주의적(前資本主義的) 공업생산이 널리 남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FTA(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유럽자유무역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제는 수출이 국내총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대외의존형 구조로서, 무역면에서 EFTA 국가들과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00년의 무역실적은 수출 617억 5000만 달러, 수입 680억 1000만 달러로 적자를 기록하였다. 주요 수출국은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국가들로서 전체의 62.6%를 차지하며 그중에서도 독일이 34.8%를 차지한다. 주요 수입국은 역시 EU 국가들로서 전체의 68.4%를 차지하며 그중 독일이 41.7%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전기 제품, 기계, 철강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전기제품, 기계, 섬유제품 등이다.


  한편 오스트리아를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도 해마다 늘어 이에 의한 외화수입이 국제수지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 알프스산맥이 동서로 국토를 길게 관통하고 있어 예로부터 산악관광이 발달하여왔으며 동서교통의 요충지였고, 특히 도나우강(江)의 수상교통은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지금도 국영 ‘도나우선박회사’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철도는 동부 지방에 발달해 있으며 반 정도는 전철화(電鐵化)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로교통이 급격히 발달하여 빈~잘츠부르크~인스부르크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통되었다. 철도보다 버스를 많이 이용하는 경향을 보이며, 알프스 지방에서는 등산전차·리프트·케이블카 등의 관광시설이 발달되어 있다. 1999년 현재 숙박업·요식업 종사자는 전체 고용인구의 4.7%를 차지한다. 관광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현재 6.4%로 EU 국가 중 제일 높다.


  빈을 비롯한 6개 주요도시에 공항이 있고 국영오스트리아항공회사(AUA)가 국내 및 유럽 여러 나라에 취항하고 있다. 우편·전신·전화도 모두 국영이고, 경제계의 대표적 기관으로는 연방산업회의소가 있다. 노동조합으로는 1945년에 결성된 오스트리아노동조합(OGB) 총동맹이 있다. 초당파적(超黨派的) 조직인 OGB의 주된 목표는 완전고용의 실현에 있으며 전 근로자의 약 60%가 가입하고 있다.


  문화

 

오스트리아는 음악으로 유명하다. 그 유명한 작곡가이자 연주자,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제일 먼저 세상빛을 보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등도 오스트리아에서 수많은 연주회를 가지고 방문했었다. 오스트리아의 현대 문화환경은 풍부한 유산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산은 건축과 시에서는 중세부터, 의학과 과학에서는 18, 19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마찬가지로 빈 화랑들은 많은 옛 대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편이다. 오스트리아는 음악분야에서 가장 높이 인정되는 문화적 공헌을 했으며 이 전통은 계속되고 있다. 유명한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란츠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가(家) 등이 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폰 베버른 등은 현대음악의 창시자에 속한다. 문학에서는 종종 독일어 문화의 정체지역으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19세기 고전기 이후의 프란츠 그릴파르처, 요한 네스트로이, 페르디난트 라이문트 등과 20세기 초기의 후고 폰 호프만슈탈, 아르투르 슈니츨러 같은 작가들은 독특한 오스트리아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20세기 후반에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가로 슈테판 츠바이크, 로베르트 무질, 페터 한트케 등이 있다. 오스카르 코코슈카와 알프레트 쿠빈은 오스트리아 현대미술의 최초의 창조자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완전히 재조직된 빈 국립 오페라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와 함부르크와 뮌헨의 오페라와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빈 교향악단은 세계의 음악도시에서 연주했다.

대한 관계

 

남북 모두 수교국이다.

오스트리아-짤쯔부르크/할슈타트/짤쯔감머구트 

오스트리아라는 말만 들어도 귓가에 달콤한 클래식이 흐르는 듯하다. 지난해 모짜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1년 내내 모짜르트 관련 문화 행사가 오스트리아에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몇 주년’ 행사 때문에 반짝 음악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올해도 지난해 못지 않은 문화의 향기가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모짜르트를 빼놓고선 얘깃거리가 없어지는 짤쯔부르크와 바다처럼 넉넉한 크기의 호수를 끼고 있는 짤쯔감머구트, 그 안의 숨겨진 소도시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할슈타트를 두루 돌아보는 일정으로 동유럽의 아름다움에 젖어 보자. 오스트리아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비엔나는 마지막 날을 위해 남겨 둔다.

짤쯔부르크 Salzburg

짤쯔부르크는 모짜르트의 고향이다. 마짜르트 박물관과 생가는 이곳에 들른 사람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코스. 또한 모짜르트 광장에서 모짜르트 초콜릿을 먹어 보자. 짤쯔부르크의 8할은 천재적인 작곡가 한 사람으로 뒤덮인 듯하다. 시내에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잡은 호엔짤쯔부르크 성은 잠시 중세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이곳은 마치 독립된 마을 하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짤쯔부르크의 상징물이다. 중유럽에서 현재까지 파손되지 않고 보존된 성들 중 가장 큰 성으로 웅장한 성의 그림자가 매우 아름답다. 성 안에는 의식 홀과 황금 홀, 1501년에 만든 수동식 파이프 오르간 등이 있다. 이 오르간은 하이든, 모차르트가 쓰던 것이다. 또한 건축물 내부에는 박물관이 있어 중세의 고문기구, 무기류, 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외관도 아름답지만 내부에 구경거리가 많아 흥미진지하다


(고구려 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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