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馬山-禁制> 고조선 해외(海外) 동단(東端)은 멕시코(Mexico)
1. ‘저울판’ 쪽에 붙어있는 삼소(三蘇)의 우소(右蘇)인 백마산(白馬山)-금제(禁制)
우리 고대사에서 고구리(高句麗)의 건국(建國)에 신화적(神話的)으로 등장하는 속칭 어별성교(魚鼈成橋)로써
‘엄사수(嚴(氵虒)水)를 넘음’으로써 아시아(Asia)선가(仙家)-종주국(宗主國)에서 ‘세계헌법’을 바꾸면서 입국(立國)
하였다는 이야기만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문헌적으로 남당유고(南堂遺稿)의 ①추모경(芻牟經)과 ②고구리(高句麗)초략(抄略)이외에도 ①삼국
사기(三國史記) ②삼국유사(三國遺事) ③북부여기④왕충(王充)의 논형(論衡) 속에도 기록되어 있는 저명(著名)한
‘대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비(碑)>가 발견이 되었는데, 이 속에서도 역시 어별성교(魚鼈成橋)의 이야기가
첫머리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기하게도 강단(講壇)은 일제강점(日帝强占)시에 발견이 된 일사(逸史)-모음집인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위서(僞書)>취급하면서, 이 환단고기 속에 있는 ‘북부여기’를 일사(逸史)로써 정당한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비>를 보면,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원문(原文)
顧命世子儒留王 爾興治大朱留王 紹承基業 還至十七世孫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 登祚
: 고명(顧命)을 세자 유류왕(儒留王)에게 내려서 그 도(道)를 대주류왕(大朱留王)에게 다스리게 하여 기업(基業)을
이어서 돌아서 17세손(世孫)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 평안 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18세(歲)로
왕위(王位)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은 고구리(高句麗) 19대(代)이고, 부자(父子)관계로 이어지는 세손(世孫)으로 세어보아도
고주몽(高朱蒙)-동명성왕으로부터 11세손(世孫)이 됩니다.
그런데, “왜 <광개토태왕비>에는 17세손(世孫)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 광개토태왕비에 맨처음 나온 어별성교(魚鼈成橋)로 엄사수(嚴氵虒水)를 넘으신 분이 바로 해모수(解慕漱)-
성제(聖帝)이기 때문입니다.
< 북부여기>에 의하면, 고주몽(高朱蒙)의 아버지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까지의 세계(世系)가 ①해모수(解慕漱)-
②모수리(慕潄離)-③고해사(高奚斯)-④고우루(高于婁)-⑤ 고두막(高豆莫)-⑥고무서(高無胥)로 6세(世)가 됩니다.
즉 세손(世孫)으로 보아서 광개토태왕은 고주몽(高朱蒙)-동명성왕에서 부터 11세손(世孫)이고, 해모수(解慕漱)-
성제(聖帝)에서 고무서(高無胥)단군 때까지가 6세손(世孫)이기 때문에, (11+6=17세손(世孫))이 되어서 ‘광개토태
왕비’에 언급된 어별성교(魚鼈成橋)를 한 당사자는 바로 해모수(解慕漱)-성제(聖帝)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광개토태왕비’는 왜 해모수(解慕漱)-성제(聖帝)의 17세손(世孫)임을 강조한 것일까?
쉽게 고주몽(高朱蒙)-동명성왕의 11세손(世孫)임을 밝히면 더욱 알아보기 쉬 울터인데, 어찌해서 해모수(解慕漱)-
성제(聖帝)인 ‘북부여 시조(始祖)’까지 올라가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잘아다시피 태왕(太王)의 비문(碑文)은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碑)이고, 태왕의 업적은 당신의 공식적인
칭호 그대로 인 것입니다.
즉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인 것이지요.
이 의미는 강(罡)이 ‘북두칠성’을 의미하고, 이는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하는 호수(湖水)’에 대한 이칭(異稱)임을
고려하면, 국강상(國罡上)이란 의미가 ‘국가(國家)들의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통해서’ 란 의미가 있고,
광개토경(廣開土境)은 ‘막히어가는(=경색(梗塞)되는) 땅의 경계(境界)를 넓게 연다’는 의미가 있고,
또 평안(平安)은 ‘군사적(軍事的)인 살상(殺傷)이 적음을’ 그리고 호태왕(好太王)은 문자그대로 ‘좋은 태왕(太王)’
이란 뜻입니다.
즉 광개토대왕은 ‘천독(天毒)들의 배달화백을 통한 통합력’을 바탕으로 군사적(軍事的)인 살상(殺傷)을 가장 적게
하면서 크게 막혀가는 ‘고구리(高句麗) 영향권의 경계’를 다시 열어서 통하게 한 태왕(太王)이란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태왕(太王)께서는 동부여(東夫餘) 쪽으로 즉 오늘날 만주(滿洲) 동(東)쪽으로 출병(出兵)한 기록이 비(碑)에
2군데 등장합니다.
첫째는 영락(永樂) 8년( A,D. 398년)의 기사(記事)입니다.
이 기사(記事)는 바로 2년 전인 영락(永樂) 6년(A.D. 396년)에 고일본(古日本)과 내통한 맥제(百濟)의 수도(首都)
였던 하남(河南) 위례성인 - 현 하남성의 형양시(滎陽市)와 호수(湖水)인 궁남지(宮南池)와 제수(濟水) ‘사이’를
연결 짓는 아리수(阿利水)가 소도(蘇塗)인지라, 견척박성(遣刺迫城)-권(權)을 발동해서 (이는 소도(蘇塗)를 지키는
육부군(六部軍)에게 막강한 군사력을 인계하면서, 소도(蘇塗) 속에 숨은 적(敵)을 밖으로 몰아내는 권리를 뜻합니다.)
밖으로 내보낸 후에 항복(降伏)을 받아낸 유명한 사건 바로 2년 후인 것입니다.
좌계는 동부여(東夫餘)를 오늘날의 ‘캐나다(Canada)지역’으로 비견하고 있는데, 태왕(太王)의 비문(碑文)해석과
관련해서 <영락(永樂) 8년( A,D. 398년)의 기사(記事)>의 위치비정이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좌계는 일단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원문(原文)]
八年戊戌, 敎遣偏師, 觀, 帛愼土谷. 因便抄得, 莫斯羅城, 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 朝貢論事
: 영락(榮樂) 8년(A.D, 498년) 무술(戊戌)에 왕(王)은 별동대(別動隊)(=편사(偏師))를 (진군(進軍)하라는) 명령을
내려셨다.(=교(敎)). (그러면서 태왕(太王) 당신께서는) 숙신(肅愼)의 토곡(土谷(을 - 이를 오늘날의 베링(Bering)
해협으로 봅니다. - 관조(觀照)하셨다.
이로 인해서 (별동대가 초략(抄略)해온) 막사라성(莫斯羅城)과 가태라곡(加太羅谷)의 남녀(男女) 300여명을 얻었
는데, 이 초략(抄略)을 통해서 (숙신(肅愼)의 토곡(土谷) 넘는 지역에 대해) 조공(朝貢)에 관한 일을 논(論)할 수
있게 되었다.
[의미해설]
일단 좌계는 위 문장에서 비문(碑文)의 원문(原文)은 식신(息愼)과 같은 <식(息)>과 유사한 이체(異體)의 글자가
쓰여져 있는데, 대부분의 해석과 같이 이를 숙신(肅愼)으로 봅니다.
그런데 좌계는 이 숙신(肅愼)을 오늘날 ‘캄차카 반도’에서 ‘콜림스키(Kolymskiy)산맥’에 걸친 지역이라고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수차 이 싸이트(site)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 참고: ‘캄차카 반도’에서 ‘콜림스키(Kolymskiy)산맥’을 볼 수 있는 ‘러시아 지도’
http://www.ezmapfinder.com/kr/map-52511.html
따라서 숙신(肅愼)의 토곡(土谷)이면, 바로 오늘날 미주(美洲) 대륙과의 사이에 있는 ‘베링 해협’이라고 보는 것은
좌계로써는 당연하였던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대륙(大陸)이란 땅의 계곡(溪谷)’이 있는 곳이지요.
‘캄챠카 반도’에서 ‘콜림스키(Kolymskiy)산맥’을 연결하는 지역을 숙신(肅愼)으로 파악하고 ,
그 북쪽을 북옥저(北沃沮) 그리고 남쪽을 남옥저(南沃沮)로 비정(比定)하는 것입니다.
(*)참고 : 이에 대해서는 이 싸이트(site)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南堂]① 불함산(不咸山),읍루(挹婁),옥저(沃沮),숙신(肅愼) (*)
태왕께서는 직접 이 별동대(別動隊)와 함께 미주(美洲)대륙을 건너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때의 병력은 “전 병력을
합쳐보았자 10,000명 이하 - 어쩌면 3,000명~ 5,000명 정도이고, 그 주축은 경기병(輕騎兵)과 개(犬)들이 끄는
썰매-부대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숙신(肅愼)의 토곡(土谷)을 넘어갈 때에는 매우 신기하게도 마소(馬牛)같은 가축(家畜)을 엄금하는 어떤
통제가 강하게 내려오는 흔적이 우리의 역사에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고리조(高麗朝) 때까지 삼소(三蘇)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삼소(三蘇)는 ‘죽음의 힘을 다시 소생(蘇生)시키는 것’을
뜻하는데, 좌소(左蘇)가 백악산(白岳山)으로써 오늘날 서안(西安)의 피라미드(pyramid)에 비견할 수 있고,
북소(北蘇)는 기달산(箕達山)인데 이 기달산(箕達山)은 신산(神山) 즉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섬(島)’의 이칭(異稱)
이기 때문에, 조선조(朝鮮朝) 정조대왕 때까지 있었던 완달산(完達山)산맥과 가목사(佳木斯) 산맥 사이에 있는
대해만(大海灣) - 귀허(歸虛)로 지칭하는 곳의 5신산(神山)의 총칭(總稱)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소(右蘇)는 바로 백마산(白馬山)인데 그 위치는 바로 오늘날 러시아 지도를 보면, 숙신(肅愼)지역에서 ‘캄챠카
반도’가 대륙과 이어지는 부분에, 펜치나 만(灣)(Penzhina Bay)이 깊숙히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 ‘펜치나 만’
쪽으로 이런 (∩) 모양으로 돌아오는 강이 하나 있습니다.
이를 오늘날 ‘펜치나 강’ 혹은 ‘레카 펜치나 강 (reka Penzhina river)’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레카 펜치나 강’이 감싸면서 도는 산(山)이 바로 우소(右蘇)인 백마산(白馬山)으로 보는 것입니다.
(*)펜치나 만(灣), 레카 펜치나 강 (reka Penzhina river)을 살필수 있는 ‘러시아 지도’
http://www.ezmapfinder.com/kr/map-52511.html
이 삼소(三蘇)의 개념은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추모(芻牟)의 다이아몬드-코스’를 밟으면서 고조선(古朝鮮)이
세계체제로써 움직이는 근간인 정치(政治)-지리학(地理學)의 개념인 ‘삼한(三韓)관경(管境)’과 관련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이 삼한관경은 지세(地勢)를 ‘저울판’과 ‘저울대’ ‘저울추’로써 균형을 맞추는 이치(理致)를 뜻하는데, 유의해야할
것은 이 ‘저울’의 모델(model)은 서구(西歐)에서 온 양쪽에 접시를 올려놓고 티(T)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형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물건을 다는 접시’가 하나있고, 여기에 끈을 맨 저울대가 길게 나가고, 저울추를 달아
매는 전래(傳來)되는 ‘접시 하나인 형태’의 저울인 것입니다.
전통적인 저울은 저울판에 저울대가 ‘끈’으로 묶여있는데, 저울판 쪽의 끈을 매는 부분이 있으며, 이것이 저울대
쪽의 끈을 묶는 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개경(開經) 주변에 있는 삼소(三蘇)는 단지 ‘저울대에 묶인 줄’에 해당하는 삼소(三蘇)이고, ‘저울판을 묶는 줄’에
해당하는 삼소(三蘇)와는 전혀 다르고, 따라서 개경(開京)에서 훨씬 멀리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이 삼한관경은 고조선의 정치-지리학적인 독특한 개념이고, 또 삼한관경의 ‘저울판’, 저울대, 저울추가 겹겹히 중복
해서 사용할수 있는 개념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군 달문때 신지(神誌) 발리(發里)께서 가장중요한 삼한관경
으로 서경(西京)을 ‘저울판’, 개경(開京)을 저울대, 서울(목멱산(木覓山)을 저울추로 삼은 개념입니다.
삼소(三蘇)의 개념은 중첩된 삼한관경 가운데,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이미 ‘가장 중요한 삼한관경’이라고 지적한
것을 신지(神誌) ‘발리(發里)께서 더욱 강조하신 둔 삼한관경 의 개념인 것입니다.
삼한관경의 개념에 대해서는 고조선(古朝鮮)의 세계체제의 본질(本質)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시간이
나면 좀더 깊이 있게 거론해야할 내용인 것입니다.)
좌계는 관경사국(管境四國)시절에 우리 조상들이 미주(美洲)대륙에 동부여(-오(吳) 월(越)맥제, 막사라(莫斯羅)-
신라(新羅), 부상(扶桑)-가락국(駕洛國)이 있었다는 가설(假說)을 품고 있습니다.
2. 왜 우리 선조(先祖)가 미주(美洲) 대륙에 들어갔을 때에는 인디언들이 전염병(傳染病)으로
몰살하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은 서구인 들이 미주(美洲)를 개척할 때에 원주민들은 백인(白人)들이 몰고 온 질병(疾病) 때문에 90%
이상이 죽어가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질병(疾病)의 대부분은 바로 마소(馬牛)와 같은 가축(家畜)이 인간에게 옮긴 병(病)들인데, 미주(美洲) 대륙은
가축(家畜)으로 키울만한 짐승이 자생(自生)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디언들의 면역(免疫)체계에는 가축이 옮긴 균에
대한 항체(抗體)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백인(白人)들이 대거 미주(美洲) 대륙에 들어오자,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거의 종말(終末)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전혀 다른 대륙으로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을 옮기게 되면, 기이하게도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원래
의 대륙에는 발현(發顯)되지 않은 D.N.A가 작동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독성을 내뿜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韓國)에 있는 ‘칡넝쿨’을 미국에 옮겨 심었더니, 한국의 풍토에서는 멀쩡하던 ‘칡넝쿨’이 미국의
거대한 나무들을 목 졸라서 .죽이는 식으로 변종이 되어버린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축(家畜)이 미주(美洲)대륙으로 이동하게 되면, 가축(家畜)의 몸 자체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병균
(病菌)을 더욱 독(毒)하게 만들어서 내보는 신기한 현상이 있는듯 합니다. 따라서 잠재해 있던 병균(病菌)이 더욱더
기승(氣勝)을 부려서 인디언들을 90%이상 몰살시키는 독으로 변해버렸던 것이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고조선(古朝鮮)은 단군왕검 때부터 <삼한(三韓)관경(管境)>의 개념에서 ‘저울판’쪽에 붙은 삼소
(三蘇)에서 백마산(白馬山)은 오늘날 ‘펜치나 강(Penzhina river)’이 이런(∩)모양으로 돌아서 ‘펜치나 만(Penzhina
Bay)’쪽으로 한 가운데 있는 백마산(白馬山)의 지기(地氣)가 가축(家畜) - 특히 말(馬)이 자신이 보유한 병균을
미주대륙에 건너가더라도 순화(淳化)시키는 지세(地勢)가 있는 것에 유의해였던 것입니다.
이곳은 베링(Bering)해협(海峽)으로 미주 대륙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말(馬)
들을 몇 년 쯤 야외(野外)에 묵힌 말만 미주(美洲) 대륙으로 거너가게한 철저한 금제(禁制)를 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 백마산(白馬山)은 이른바 마굿간이 실내(室內)-마구간인 <구(廐)>가 아니라, 눈비를 가리는 천막 정도만
있는 야외(野外)-마구간으로써 ‘산골짜기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거<(阹)>에 살게 하면서, 사람과 짐승이 사실상
분리(分離)되어 기거(寄居)하는 사육형태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운지방이기 때문에, 말(馬)에 잠복되어 있는 병균(病菌)들도 점차 죽어갈수 밖에 없는 환경이고, 또 춥기 때문에,
말들은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서 ‘조로마리’ 주법(走法)이나 사람을 입에 물고 언덕에 끌어올리는 훈련 - 이른바
육부군(六部軍) 기마(騎馬)성모(聖母)들께서 ‘말(馬)들에게 <됴>’를 들어는 장소로 단군왕검(檀君王儉)때부터 이미
기획되어 있었고, 신지(神誌) 발리(發里)께서 더욱 강조하였던 성지(聖地)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백마산(白馬山)에서 길들이지 않은 말(馬)을 비롯한 가축(家畜)들은 미주(美洲)대륙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는 금제(禁制)가 신기하게도 우리 역사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시절부터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조선 시절 이를 망각하고, 미주(美洲)대륙에 가축(家畜)을 지닌 채로 대거 이주(移駐)하였다가 미주 대륙
의 원주민(原住民)들이 ‘전염병’으로 쓰러지는 일이 대량으로 발생하자, 다시 이 지역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던 것입
니다.
좀 엉뚱하지만, “왜 백인(白人)들이 미주(美洲)대륙에 건너갔을 때에는 미주(美洲)-인디언(Indian)들이 전염병에
의해서 몰살당하였는데, 동부여(東夫餘)를 비롯한 월(越)-맥제(百濟), 부상(扶桑) 가락국, 막사라(莫斯羅)-신라
등이 건너갔을 때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단군세기(檀君世紀)의 기록을 세심히 검토하면, 놀랍게도 ‘백인(百人)들이 경험했던 사실’과 똑같은 경험을
이미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했음이 21세 단군 소태(蘇台) 시절의 기록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 단군세기 21세 단군(檀君)소태(蘇台) 중에서
[원문(原文)]
壬辰四十九年 蓋斯原 褥薩高等 潛師襲鬼方滅之 一群養雲二國遣使朝貢於是 高等于握重兵 經略西北之勢甚强盛 遣
人請爲右賢王 帝憚之不允 屢請乃許 號爲豆莫婁
[해석(解釋)]
: 임진(壬辰) 49년 (B.C. 1289년)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等)이 병력(兵力)을 이끌고 해상(海上)을 통해
(=잠사(潛師)), 귀방(鬼方)을 습격하여 멸(滅)하였다.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 두 나라가 조공(朝貢)을 할 때에, 고등(高等)은 중병(重兵)을 장악하여 서북(西北)
지역을 경략(經略)하였는데, 그 세(勢)가 심히 강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청(請)하기를 우현왕(右賢王)으로 임명할 것을 청(請)하였으나 제(帝)는 탄식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누차 청하매 허락하면서 두막루(豆莫婁)라고 (그 지역을) 불렀다.
- 각설
단군세기(檀君世紀) 기록가운데, 가장 경악(驚愕)할 만한 기록이 바로 이 기록입니다.
먼저 “욕살(褥薩) 고등(高等)이 있었던 개사원(蓋斯原)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 기록내용은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고등(高等)이 있었던 개사원(蓋斯原)지역과 고등(高等)이
멸한 귀방(鬼方)이라는 지역 ‘사이’에 바다가 있어서 ‘바다를 건너는 작전’인 잠사(潛師)가 언급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잠(潛)은 ‘자맥질하다’ ‘잠수(潛水)하다’에서 보다시피 물(水)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잠사(潛師)는
‘해군(海軍)을 움직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처럼 ‘바다’를 건너서 서북(西北)쪽으로 중병(重兵) - 즉 중장비(重裝備)를 갖춘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점령(占領)하면서 “자기 자신을 우현왕(右賢王)으로 임명해달라.”고 간청(懇請)을 해서 소태(蘇台)단군이 할 수
없어서 허락하면서 ‘개사원(蓋斯原)이 아닌 새로운 관할지역’의 명칭을 두막루(豆莫婁)로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입
니다.
그런데 두막루국(豆莫婁國)에 대해서는 위서(魏書) 권(卷) 100에 <高句麗 百濟 勿吉 失韋 豆莫婁 地豆于
庫莫奚 契丹 烏洛侯>을 열거하는 가운데 나오는 국명(國名)입니다.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豆莫婁
豆莫婁國,在勿吉國北千里,去洛六千里,舊北扶餘也。在失韋之東,東至於海,方二千里。
: 두막루국(豆莫婁國)은 물길(勿吉)의 북쪽 1,000리(里)에 있다. 낙양(洛陽)으로 부터 6,000리 떨어진 (이 곳에서
부터 영향력을 펼치는) 옛날 북부여(北夫餘) 지역이다. 실위(失韋)의 동쪽인데, 동(東)쪽으로는 바다에 이른다.
‘가로 세로 곱한 너비의 한 변(邊)으로 계산하자면(=방(方)’ 2,000리의 너비를 지녔다.
[의미해설]
일단 위서(魏書)를 해석함에 있어서 <去洛六千里>을 많은 사람들이 ‘국제외교에서 쓰는 문화적 용어’인 것부터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낙양(洛陽)에서 6,000리 떨어진”이란 의미이긴 하나, 결코 그곳에 두막루국(豆莫婁國)이 위치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거락육천리(去洛六千里)라는 표현은 뒤에 나오는 말의 ‘국제외교에 관한 문화적인’ 수식어(修飾語)인 것이지요.
왜냐하면, 낙양(洛陽)이 중국 천자국(天子國) 제도(帝都)를 상징하기 때문에, “천자국(天子國)의 영향력이 미치지
범위를 <去洛六千里>”로써 쓰는 것이 하나의 관례(慣例)라는 것입니다.
이런 ‘중국의 천자국(天子國)의 영향 밖에’ 두막루(豆莫婁)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실제 거리가 낙양
(洛陽)으로부터 6,000리가 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去洛六千里> 다음에 <舊北扶餘也>가 나오면, 이는 옛날 북부여(北夫餘) - 즉 대한국(大漢國)의 관할에서 그 승계
권자인 ‘고구리’에게 넘어간 것을 ‘국제외교의 문화적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한 ‘국제외교의 문화적인 표현’이 자리잡은 것은 위(魏)가 한(漢)의 천자국(天子國)을 승계하긴 하였으나,
고구리(高句麗)의 영향력 안에서 속칭 한사군(漢四郡)에 해외(海外) 투자를 하는 댓가인 <천자국(天子國)-프리미엄>
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그 당시에 해내(海內) 천자(天子)와 해외(海外) 경영의 관경사국(管境四國)이 서로 자존심
이 안상하게 하는 수사학적(修辭學的) 표현인 것입니다.
따라서, 위 위서(魏書)에서 물길국(勿吉國)의 위치에 대해서 “물길국(勿吉國)은 고구리(高句麗)의 북(北) 쪽에
있으며 옛날 숙신국(肅慎國)이다. (勿吉國,在高句麗北,舊肅慎國也)”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물길국(勿吉國)은 오늘날 ‘캄챠카 반도’와 그 뿌리가 되는 ‘콜림스키(Kolymskiy) 산맥’ 주변임을 임을 알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레카 펜치나 강 (reka Penzhina river)이 이런(∩) 모양으로 백마산(白馬山)을 돌아가는 지역이
‘물길국(勿吉國)’으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좌계는 이 물길(勿吉)이 우리말에서 수로(水路)를 뜻하는 ‘물-길’을 한자(漢字)로 옮겨놓은 것으로 봅니다.
즉 <펜치나 강(Penzhina river)>이 한 바퀴 돌아서 펜치나 만(灣)(Penzhina Bay)으로 돌아가는 것을 ‘매우 중요한
물길(水路)로 인식한 흔적’이 나라이름에 남아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막루(豆莫婁)가 이런 물길(勿吉)의 북쪽 1,000리이면, 북옥저(北沃沮)로 흔히 묘사되는 아나디르(Anadyr)
강이 아나디르(Anadyr) 항(港)을 통해서 결국 미주(美洲) 대륙으로 건너갈 수 있는 베링(Bering)해협(海峽)이 있는
지역으로 두막루국(豆莫婁國)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습니다.
(*) 아나디르(Anadyr)강과 아나디르(Anadyr)항(港)이 있는 두막루국(豆莫婁國)를 살필 수 있는 ‘러시아 지도’
http://www.ezmapfinder.com/kr/map-52511.html
그런데, 실위국(失韋國)의 동(東)쪽이기 때문에, 자연 이 실위국(失韋國)의 위치는 오늘날 콜림스키(Kolymskiy)산맥
서(西) 쪽 지역이 될 것입니다.
과연 “위서(魏書)에 그렇게 쓰여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失韋
失韋國,在勿吉北千里,去洛六千里。路出和龍北千餘里,入契丹國,
: 실위국(失韋國)은 물길(勿吉)의 북쪽 1,000에 있다. “낙양으로 부터 6,000리 떨어진”-(다시말하면 중국 천자국
(天子國)의 영향권의 한계를 벗어나) 화룡(和龍)쪽으로 나가는 길(=노출(路出)에서 북(北)쪽으로 1,000여리를 가게
되면, 거란국(契丹國)에 들어가게 된다.
(*)주의말씀:
위 문장의 구두점(句讀點)은 ‘失韋國,在勿吉北千里。’로 찍히고, 그다음 ‘去洛六千里, 路出和龍北千餘里,入契丹國。’
로 찍혀서 두 문장(文章)으로 되어야만 올바른 문장 구분이 됩니다.
즉 ‘去洛六千里’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천자국(天子國)위상(位相)을 계승한 나라의 영향권이 미치는’이란 표현을
하는 수식어(修飾語)이기 때문에. 뒤에 오는 본문(本文) 앞에 붙어서 하나의 문장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의미해설]
화룡(和龍)은 북위(北魏)가 고구리(高句麗)에 워낙 광대한 지역을 천자국(天子國)의 투자를 받아서 그 ‘프리미엄’을
돌려주었기 때문에, 한사군(漢四郡)이 나중에 압축된 대륙택(大陸澤)에서의 ‘투자조정회의’로 부족하기 때문에
영주(營州)에 ‘해외(海外) 투자 협력소’로 둔 화룡성(和龍城)을 뜻합니다.
이곳에서 1,000리를 올라가야 거란국(契丹國)이 되기 때문에, 결국 화룡성(和龍城)은 발해(渤海) 북안(北岸)이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아무튼 위 문장은 거란국(契丹國)까지 들어온 것을 전제(前提)로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거란국(契丹國)은 오늘날의 지리 개념으로는 대흥안령 산맥 주변에 자리잡은 나라이기 때문에, 결국 실위국
(失韋國)으로 가는 사행(使行)길은 대흥안령 산맥 남(南)쪽의 오른편 쪽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又北行十日至啜水,又北行三日有蓋水,又北行三日有犢了山,其山高大,周回三百餘里,又北行三日有大水名屈利,
又北行三日至刃水,又北行五日到其國。
: 또 북(北)쪽으로 10일(日)을 가면 철수(啜水)에 이르고, 또 북(北)으로 3일을 가면 개수(蓋水)에 이른다.
(여기서)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독료산(犢了山)에 이르는데 이 산은 높고 커서 한 바퀴 도는데 300리가 걸린다.
또 북(北)으로 3일을 가면 ‘큰 강물’이 나타나는데, 이름을 굴리(屈利)라고 하고, 또 북(北)쪽으로 3일을 가면
인수(刃水)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그 나라의 국경(國境)에 도착한다.
[의미해설]
철수(啜水)의 철(啜)은 ‘마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철수(啜水)는 ‘마음놓고 마실수 있는 물’이란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눈강(嫩江)의 상류(上流)에 대한 명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3일을 가서 만나는 개수(蓋水)는 우리 사서(史書)에 추모(芻牟)가 세계헌법을 수립하는 ‘엔딩-룰(ending-
rule)’로써 건너는 개사수((蓋斯水)를 의미하며, 이는 오늘날의 흑룡강(黑龍江)을 뜻합니다.
여기서 3일을 가면 만나는 독료산(犢了山)은 그 뜻이 ‘송아지(=독(犢))의 임무를 마친(=료(了)) 산’이란 의미인데,
‘송아지’가 제천(祭天)할 때 바로 이 산에서 바쳐졌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위치는 오늘날 ‘스타노보이(Stanovoy) 산맥’인데, 이를 우리 사서(史書)에 불함산(不咸山)으로 칭하는 곳의
주봉(主峰)을 뜻한다고 봅니다.
스타노보이(Stanovoy)산맥의 산(山)들은 가파르기 보다는 원만(圓滿)한 산세(山勢)를 형성하면서 은근히 높은 특
징이 있는데, 그 주봉(主峰)이 2,412미터인데, 이 주봉의 고대 명칭이 독료산(犢了山)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한 바퀴 도는데 300리가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왜 독료산(犢了山)이 제천(祭天)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가?”
이는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화백민주주의’를 이 지구(地球)에 정착시킴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을 삼한관경
(三韓管境)으로 ‘세계헌법’을 고치면서 이 불함산(不咸山)을 넘어서 엄사수[嚴(氵虒)水] 게임(game)에 임하셨기
때문에, 그 고마움으로 독료산(犢了山)을 제천하면서 태뢰(太牢)를 받치는 장소로 하였다고 추측됩니다.
그런데, 이 스타노보이(Stanovoy) 즉 불함산(不咸山)은 레나(Rena)강의 지류(支流)인 알단(Aldan)강들이 북류
(北流)하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알단(Aldan)강들은 크게 이런(⊃)모양으로 합류되어서 서행(西行)하게 되는데, 결국 바이칼(Baikal)쪽에서 동북류
(東北流)하면서 흘러오는 레나(Rena)강과 오늘날 야쿠츠크(Yakutsk)에서 알단(Aldan)강이 서류(西流)하는 방향에
따라서 꺽이면서 합류하게 되는데, 이를 위서(魏書)에서는 대수(大水) 굴리(屈利)라고 이름하였던 것입니다.
굴리(屈利)는 “굽히는 것이 이(利)롭다.”라는 의미이니깐 레나(Rena)강이 알단(Aldan)강을 만나서 동북류(東北流)
하던 것이 다시 서류(西流)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수명(水名)인 것이지요.
물론 이 굴리(屈利)강인 레나(Rena)강은 서류(西流)하다가 다시 굴리(屈利)하여 북류(北流)해서 북극해(北極海)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실위국(失韋國)으로 사행(使行)길로 나선 사람은 서류(西流)하는 레나(Rena)강을 건너서 북행하였는데,
이 때 만나는 강의 이름이 인수(刃水)에 도착하는데, 이는 ‘칼날(=인(刃)같은 강’이란 뜻인데, 오늘날의 야나(Yana)강
을 뜻합니다.
강의 이름이 ‘칼날의 강’이라고 붙여진 까닭은 여러 지류가 삼각형(△) 형태로 모아져서 북극해(北極海)로 직류하는
모습이 마치 ‘칼날이 북극해’로 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야나(Yana)강에서 서북류(西北流)하는 지류의 이름이 안디챠(Andycha)인데 이를 서북류(西北流)하도
록 하는 산맥이 바로 체르스키(Cherskogo)산맥인데, 이 산맥이 실위국(失韋國)의 국경(國境)이라는 것입니다.
(*) ①철수(啜水)=눈강(嫩江)상류, ②개수(蓋水)=흑룡강 ③ 굴리(屈利)=레나(Rena) ④인수(刃水)=야나(Yana)임을
확인할수 있는 ‘러시아 지도’
http://www.ezmapfinder.com/kr/map-52511.html
有大水從北而來,廣四里餘,名蒌水。國土下濕
: ‘큰 강’이 북쪽을 따라서 가게 되는데, 너비가 4리(里)에 이르는데, 이름이 루수(蒌水)이다.
국토(國土)는 낮고 습(濕)하다.
[의미해설]
체르스키(Cherskogo)산맥이 실위국(失韋國)의 국경(國境)이라고 할수있는데, 오늘날의 ‘러시아 지도’를 보면,
인디그리카(Indigrika)강의 원류(源流)가 체르스키 산맥 우측에서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인디그리카(Indigrika)강의 원류(源流)들은 인수(刃水)인 ‘야나(Yana)강’에서 북행(北行)해서 5일동안
갈때 지나치는 강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큰 강’이 북쪽을 따라서 가게 되는데, 너비가 4리(里)에 이른다. (有大水從北而來,廣四里餘)는 루수(蒌水)
라는 강은 이 인디그리카(Indigrika) 강이 아니라, 바로 그 우측(右側)에 있는 콜리마(Kolyma)강 임을 알 수가 있습
니다.
루수(蒌水)의 루(蒌)는 ‘산(山) 쑥’을 의미하는데, 위서(魏書)가 쓰여질 때만 해도 이 강주변에 ‘산 쑥’이 유난히
많기에 이름이 루수(蒌水)로 붙여졌을 것입니다.
이 콜리마(Kolyma)강 주변은 수많은 소택지(沼澤地)가 있어서 그야말로 “땅이 낮고 습(濕)하다(國土下濕)”는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주변에 수많은 소택지(沼澤地)를 지닌 콜리마(Kolyma)강 인 루수(蒌水) : 러시아 지도
http://www.ezmapfinder.com/kr/map-52511.html
따라서 실위국(失韋國)은 결국 오늘날의 콜리마(Kolyma)강 주변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여기서 동(東)쪽인 ‘콜림스키
(Kolymskiy) 북단(北端)’을 넘는 것은 자연히 아나다르(Anadyr)강이 흐르는 지역이고 이곳이 두막루(豆莫婁)임이
확실한 것입니다.
이처럼 두막루국(豆莫婁國)의 위치가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위서(魏書) 두막루(豆莫婁) 조(條)를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豆莫婁
豆莫婁國,在勿吉國北千里,去洛六千里,舊北扶餘也。在失韋之東,東至於海,方二千里。
: 두막루국(豆莫婁國)은 물길(勿吉)의 북쪽 1,000리(里)에 있다. 낙양(洛陽)으로 부터 6,000리 떨어진 - 즉 천자국
(天子國)의 영향력이 펼쳐지는 곳 밖의 - 옛날 북부여(北夫餘) 지역이다.
실위(失韋)의 동쪽인데, 동(東)쪽으로는 바다에 이른다. ‘가로 세로 곱한 너비의 한 변(邊)으로 계산하자면(=방(方))’
2,000리의 너비를 지녔다.
其人土著,有宮室倉庫。多山陵廣澤,於東夷之域最爲平敞。
: 그 사람들은 (배(船)가 큰 수레바퀴인 선(單)을 이고 다녀서) ‘수륙(水陸)을 전환하는 토착(土著)생활’을 한다.
(이 토착(土著)함에 있어서) 궁실(宮室)과 창고(倉庫)까지도 (이동(移動) 가능하였다.)
산릉(山陵)이 많고, ‘넓은 연못’이 있다고 할지라도 동이(東夷)의 지역에서 최고(最高)로 평탄(平坦)하게 (건물(建物)
의 모습을 다른 지역(地域)에) 드러나게(=창(敞))할수 있었다.
[유의(有意)]
위 해석에서 <有宮室倉庫。多山陵廣澤,於東夷之域最爲平敞>부분은 그 앞의 토착(土著)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문
(說明文)인 것입니다.
즉 고구리(高句麗)에서 ‘구(球)모양의 도시’라는 의미의 환도(丸都)가 결국 초대형 자이로스코프(Gyroscope) 속에
건물을 집어넣은 뒤에 이를 오늘날 축구공처럼 32면체 부구(浮具)에 싸서 환도(丸都) 전체를 ‘베아링(bearing)이
들어간 복대(腹帶)-걸이’로 감싸서 이를 말(馬)들이나 혹은 ‘고무 부구’로 만든 돛에 의해서 끌게 함으로써 데굴데굴
굴러다녔음을 설명하는 문장인 것입니다.
만약에 이를 토착(土著)에 대한 설명문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결국 국가(國家)이면 당연히 갖추어야하는 <有宮室
倉庫>: “궁실(宮室)과 창고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또 “동이(東夷)의 땅에서 가장 평탄(平坦)한 지역이다.”가 쓸데
없이 붙어있는 문장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東夷之域最爲平敞>을 단순히 동이(東夷)의 지역에서 최고 평탄(平坦)한 지역으로 해석하게 되면,
이는 동이(東夷)의 지역에서 강소성(江蘇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모순(矛盾)에 쳐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는 토착(土著) 기술의 핵심인 환도(丸都)에 궁실(宮室),창고(倉庫)등들 32면체 부구(浮具)에 싸서 데굴~
데굴~ 굴리면서 다니는 것이 이 두막루(豆莫婁)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었음을 거론하고 있는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地宜五穀,不生五果。其人長大,性強勇,謹厚,不寇抄。
: 땅에는 오곡(五穀)이 두루 났으나 ‘다섯가지 과일’은 (날씨가 추운 관계로) 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키가 크고 체구(體軀)가 컸으며, 성질은 강용(强勇)하였고, ‘끈기성’이 두터워서 (다른 세력들이)
침구(侵寇)하고 초략(抄略)치 못하였다.
其君長皆以六畜名官,邑落有豪帥。飲食亦用俎豆。有麻布衣,制類高麗而幅大,其國大人,以金銀飾之。
이곳 군장(君長)은 모두 육축(六畜)의 이름을 관리(官吏)로써 했으며, 읍락(邑落)마다 호걸(豪傑)스런 통솔자가
있었다. 마시고 먹는 것은 ‘고기를 담는 그릇인 조(俎)’와 ‘국을 담는 두(豆)란 그릇’을 모두 사용하였으며, 옷은
삼베로 있었다. 고구리(高句麗)에 제도(制度)에 한 류(類)가 됨으로써 영향력의 폭(幅)이 커졌는데,
이 나라의 대인(大人)은 금은(金銀)을 장식하였다.
用刑嚴急,殺人者死,沒其家人爲奴婢。俗淫,尤惡妒婦,妒者殺之,尸其國南山上至腐。
: 형벌(刑罰)은 엄격하고 시급하게 실시되었는데, 살인자는 죽였으며, 그 가족(家族)은 몰수(沒收)되어 노비(奴婢)로
삼았다. 풍속(風俗)은 음탕(淫蕩)해서 ‘자유연애와 개방적인 성(性) 문화’여서 심하게 질투(嫉妬)하는 것을 혐오
(嫌惡)하여, 질투하는 자를 죽였다. 그 시체(屍體)를 나라 남쪽의 산 위에 두어서 ‘섞을 때’까지 두었다.
[의미해설]
이 두막루국(豆莫婁國)의 남산(南山)이면 ‘펜치나 강(Penzhina river)’이 이런(∩) 모양으로 ‘펜치나 만(灣)’으로
들어가는 이른바 백마산(白馬山)을 뜻합니다.
이는 위(魏)나라 시절, 다시 말하면, 고구리(高句麗) 때까지, 이 백마산(白馬山)이 ‘서로 시기(猜忌) 질투(嫉妬)하는
기운’을 없애는 어떤 기운(氣運)이 있음을 믿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서로 시기 질투하는 기운을 완전히 상생(相生)협조하는 기운으로 바꾸는 기운이 올라오기 때문에 질투(嫉妬)가
심한 사람들을 - 그것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상관이 없이 - 이곳 정상(頂上)에서 썩도록 해서 그런 기운이 영원히
없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이는 놀랍게도 ‘자신은 항체(抗體)가 있어서 건강(建康)하게 지나지만, 남에게 전염시키는 사람’ 현상을 질투(嫉妬)
와 같이 취급한 관념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자기들 끼리의 애정(愛情)’은 건강(建康)한 정서(情緖)이지만, 그 애정(愛情)이 남과의 사랑을 막는 것은 병(病)의
전파(傳播)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 백마산(白馬山)의 금제(禁制)>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制類高麗而幅大> - 이 두막루(豆莫婁)에서 백마산(白馬山)의 금제(禁制)는 “고구리(高句麗)에 제도
(制度)에 한 류(類)가 됨으로써 영향력의 폭(幅)이 커졌다.”라고 밝히고 이는 것입니다.
女家欲得,輸牛馬乃與之。或言本穢貊之地也。
: 여자(女子)를 집으로 들이고 져 하면 (=남자가 결혼하고 져 하면), 우마(牛馬)를 수입(輸入) 수출(輸出)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혹은 말해지기를 (이 두막루(豆莫婁) 지역이) 본래의 예맥(濊貊)의 땅이라고도 한다.
이 역시 두막루(豆莫婁) 지역의 사람들이 ‘우마(牛馬)’를 수입하고 수출하는 거래구역이 ‘베링(Bering)해협’을 기준
으로 해서 그 좌측의 아시아(Asia)대륙과 우측의 아메리카(America)대륙의 중간거래를 독점(獨占)하고 있었는데,
이런 독점(獨占)이 가능한 것은 미주(美洲)대륙 쪽으로 건너가는 가축(家畜)에 대해서 ‘백마산(白馬山)-금제(禁制)’
가 가해지는 엄격한 법도(法度)가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 각설(却說)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두막루(豆莫婁)란 지역은 본래 오늘날 베링(Bering)해협 좌측(左側)의 아나디르(Anadyr)
강(江)이 흐르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단군세기의 21세 단군 소태(蘇台) 때에, “개사원(蓋斯原) 욕살 고등(高等)이 개사원(蓋斯原)에서 서북(西北)
지역으로 중병(重兵)을 장악하여 서북(西北)지역을 경략하는 것의 세(勢)가 심히 강성(强盛)하였다.
(高等于握重兵 經略西北之勢甚强盛_”고 하면, 원래 고등(高等)이 위치하였던 곳은 서북(西北)의 반대방향인 동남
(東南)이 될 것입니다.
3. 고조선 해외(海外) 동단(東端)인 개사원(蓋斯原)
문제는 두막루(豆莫婁) 지역의 동남(東南)을 ‘세계지도’ 속에서 찾아보면, 오늘날 ‘멕시코(Mexica)’지역으로 나온다
는데 있습니다.
(*) 두막루(豆莫婁)의 동남(東南)이 멕시코(Mexica)임을 보여주는 세계지도
http://search.daum.net/search?w=tot&t__nil_searchbox=btn&q=%BC%BC%B0%E8%C1%F6%B5%B5%20
따라서 21세 단군 소태(蘇台) 시절인 임진(壬辰) 49년 (B.C. 1289년)에 있었던 개사원(蓋斯原)의 위치는 바로
오늘날 멕시코(Mexico)의 고원(高原)지대 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等)은 <소태(蘇台)-단군, 임진(壬辰) 49년 (B.C. 1289년)>에 무엇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서 귀방(鬼方)을 멸(滅)하기 까지 하는 해상(海上) 작전(作戰)을 감행하였던 것일까?
귀방(鬼方)은 갑골문에 등장하는 기록을 보아서 황하(黃河)가 궤(几)자 모양으로 흐르는 모양에서 아랫부분 즉 -
태행산맥 서(西)쪽에서 사막(沙漠)의 먼지가 계속 쌓이는 ‘황토고원’을 뜻하는데, 이곳에 하(夏)나라 때에는 훈육
(獯鬻)족이 살았으며, 은(殷) 나라 때에는 귀방(鬼方)이라고 칭해졌고, 한(漢)나라 때에는 흉노(匈奴)가 자리잡은
곳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이 귀방(鬼方)은 유목(遊牧)하는 사람들이 가축(家畜)을 끌고 와서 목축(牧畜)하는 삶을 살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던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멕사코(Mexico) 지역을 비롯한 미주(美洲) 대륙의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주(美洲) 대륙의 인디언(Indian)들은 마소(馬牛)와 같은 가축을 키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병(病)은 대부분이 가축(家畜)에서 옮겨지고, 백인(白人)의 경우에는 이런 병(病)에 대해서 항체(抗體)
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미주(美洲)대륙의 인디언(Indian)들에게는 아무런 항체가 없었기 때문에, 90% 이상의 인디언
(Indian)들이 백인들이 몰고 온 전염병에 의해서 몰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주(美洲) 대륙의 고고학자들은 멕시코(Mexico)지역에서 ‘돼지’를 잠깐 키운 흔적이 발견이 되는데,
그 후에는 이 ‘돼지’마져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멕시코(Mexico)지역의 문화적인 아이콘(Icon)에는 “달(月)속에 토끼가 있다.”는 등등 동양의 신화(神話)-
체계와 같은 것이 발견이 되는데, 이들은 까마득한 고대(古代) 즉 동양의 은(殷)나라 시절에 메조-아메리카 문명의
기초(基礎)를 만든 올텍(Oltecs)문명이 거석(巨石) 피라미드(pyramid)를 만들어왔으나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입
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올텍(Oltecs)문명을 이끄던 사람이 사라졌으면 그 문화적인 공통성도 사라져야하는데,
폐허(廢墟)로 있었던 곳에, 올텍(Oltecs)문명의 문화적인 요소를 그대로 계승한 아스테카 문명(Azteca)과
마야(Maya)문명이 연결되고 있는 기이한 과정이 해명(解明)이 안된 채 이어지는 것입니다.
, “왜 갑자기 아시아(Asia)적 신화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으면서 ‘돼지’까지 키운 올텍(Oltecs)문명이 사라졌는가?
또 이들이 사라졌는데, 아스테카 문명(Azteca)과 마야(Maya)문명은 어찌해서 그대로 (Oltecs)문명을 잇고 있는가?! ”
에 대한 역사적 과정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1세 단군(檀君) 소태(蘇台) 시절 때의 개사원(蓋斯原)은 오늘날 멕시코(Mexico)에서 ‘신들의 고향’으로
치는 ‘테오티우아칸’ 지역이 뜻하는 중미(中美) 고원(高原)지대로 봅니다.
북미(北美) 대륙인 동부여(東夫餘)를 가섭원(迦葉原)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이 중미(中美)전체를 개사원(蓋斯原)
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개사원(蓋斯原)의 중추(中樞)는 바로 오늘날 ‘테오티우아칸’인 개사성(蓋斯城)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개사원(蓋斯原)인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에 대한 네이버(naver) 백과사전의 설명
http://100.naver.com/100.nhn?docid=334409
그렇다면, 고조선의 해외(海外) 동단(東端)인 ‘개사원’ 지역은 언제쯤 개척된 것일까?
이는 ‘단군세기’에 보면, 17세 단군 여을(余乙)때 이미 초기의 개척(開拓)이 완성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원문(原文)및 해석(解釋)]
己巳元年
: 기사(己巳) (B.C.1552년)이 원년(元年)이다.
庚申五十二年 帝與五加 歷巡國中 至蓋斯城之境
: 경신(庚申) 52년 (B.C. 1501년) 제(帝)가 오가(五加)와 더불어 국중(國中)을 역순(歷巡)하다가 개사성(蓋斯城)의
지경(地境)에 이르렀다.
有靑袍老人 獻賀曰 長生仙人之國 樂爲仙人之氓 帝德無衍 王道無偏民兮隣兮 不見愁苦 責禍以信 管境以恩 城兮國兮
不見戰伐
: 청포(靑袍)를 입은 노인(老人)이 하례(賀禮)을 드리는 ‘노래’를 올렸다.
“장생(長生)하는 선인(仙人)의 나라! 선인(仙人)으로 노마드(nomad: =맹(氓))로 이주한 삶 즐겁다네.
제덕(帝德)은 헛되이 넘치지 않고, 왕도(王道) 또한 편벽(偏僻)하지 않으니, 우리 백성이여! 우리 이웃이여! 시름과
고통을 보지 못하였네! 믿음으로 책화(責禍)하고, 은혜로 관경하니 이 성(城)이여! 이 나라여! 전벌(戰伐)을 보지
못하였네!!
帝曰嘉納嘉納 朕之修德日淺 恐無以報民之輿望
: 제(帝)가 답(答)하여 말하기를 “기꺼히 받아들이노라! 기꺼히 받아들이노라! 짐(朕)이 수덕(修德)한 날이 적어서 백
성의 여망(輿望)에 보답치 못할 것이 두렵구나!”라고 하였다.
[의미해설]
중미(中美)를 개사원(蓋斯原)이라고 칭하고, 또 오늘날 테오티우아칸((Teotihuacán)인 개사성(蓋斯城)의 공통이
바로 개사(蓋斯)인데, 이 <개사>가 비교언어학적으로 볼 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추모(芻牟)들이 세계헌법을 고치고, 넘어야하는 오늘날의 흑룡강(黑龍江)을 개사수(蓋斯水)로 칭함을
보아서 이 <개사(蓋斯)>는 ‘훌륭히 마감을 하며 건너가다’는 의미를 띠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개사성(蓋斯城)인 ‘테오티우아칸’은 “이 세상을 훌륭히 마감하며, 우주의 본질의 세계로 건너가는” 제단(祭壇)의
성(城)이란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중미(中美) 지역은 오늘날 ‘파나마 운하’가 있는 지역을 통해서 태평양과 대서양이란 서로 전혀 다른 ‘바다’를
육지(陸地)를 통해서 ‘넘어갈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단군 여을(余乙)때의 기록을 보면, 원년(元年)이 언제인지를 뜻하는 기록과 또 붕어(崩御)함과 동시에 태자
동엄(冬奄)이 입(立)한 기록 이외에는 위에 나타난 기록이 전부입니다.
이를 보아서 여을(余乙)단군께서는 원년(元年)인 기사(己巳) (B.C.1552년)에서 경신(庚申) 52년 (B.C. 1501년)에
이르기 까지 51년 동안 오직 한가지 일 - 오늘날 ‘테오티우아칸’의 일부(一部)를 건설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51년 동안 생각컨데 오늘날 ‘테오티우아칸’의 태양(太陽)의 피라미드와 달(月)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으로 보입
니다.
(이는 나중에 보다시피 이곳의 신화에서 “신(神)이 분신자살(焚身自殺)하여 ‘태양’이 된 ‘나나우아친(Nauahuatzin)
과 달이 된 테쿠시스테카들(Tecuciztecatl)이 분신자살 이전에 이미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가 세워졌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2개의 피라미드(Pyramid) - 즉 개사성(蓋斯城)을 세울 때에는 우마(牛馬)의 힘을 활용해서 돌(石)을
나르고 활용하였음이 분명한데, 일종의 낙성식(落成式)을 거행할 때에 청포(靑袍)를 입은 노인(老人)이 부른 내용을
보아서는 이 때까지에는 아무런 전염병(傳染病)이 번져나가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장생(長生)하는 선인(仙人)의 나라! 선인(仙人)으로 노마드(nomad: =맹(氓))로 이주한 삶 즐겁다네 (長生仙人之國
樂爲仙人之氓)”
- 이 만약에 질병(疾病)이 전염되었다면, “오래사는 선인(仙人)의 나라!”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지요.
위 ‘노래 가사’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에,
고조선(古朝鮮)의 선가(仙家)-과학자(科學者)가 동원이 되어서 건설되었음을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노래를 부른 청포(靑袍)-노인(老人)인데. 이 분은 “낙위선인지맹(樂爲仙人之氓)!”이라고 표현
하였는데, 이는 자기자신이 선인(仙人)인 동시에 맹(氓)임을 밝힌 것인데, 이 맹(氓)은 ‘다른 지방이나 나라에서
이주(移住)해온 사람’을 뜻합니다.
즉 “고조선의 선가(仙家)-과학자로써 ‘테오티우아칸’의 두 피라미드(pyramid)를 건설한 것이 즐겁다.”라고 노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 노래를 이름짓자면 ‘테오티우아칸 일월(日月) 피라미드 낙성식(落成式)-가(歌)’라고 이름붙일수 있는데,
이 ‘낙성식의 노래’는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는 <王道無偏民兮隣兮 不見愁苦> - "왕도(王道) 또한 편벽(偏僻)하지 않으니, 우리 백성이여! 우리 이웃이여!
시름과 고통을 보지 못하였네!"로써 이주(移住)해온 고조선의 선인지맹(仙人之氓)과 원주민(原住民) 상호간에
아무런 차별없이 ‘배달화백’으로 민주적 통합이 잘되었음이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責禍以信 管境以恩 城兮國兮 不見戰伐 > - “믿음으로 책화(責禍)하고, 은혜로 관경하니 이 성(城)이여!
이 나라여! 전벌(戰伐)을 보지 못하였네!!”가 노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테오티우아칸’에 자리잡은 아즈테카(Azteca)문명이 나중에 형성된 습속(習俗)인 “꽃의 전쟁”으로써
전쟁포로를 잡아다가 농구(籠球)놀이로써 ‘피라미드’ 제단(祭壇) 위에서 심장(心臟)을 바칠 남녀(男女)를 선정한
뒤에, ‘신성가족’을 맺는 결혼과 ‘신성한 인간’으로써 대접을 받고, 이윽고 그 심장(心臟)을 바치는 의식(儀式)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
전벌(戰伐)이 전혀 없는 성(城)을 청포(靑袍) 노인(老人)이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심장(心臟)을 바치면서’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려는 매우 신기한 습속(習俗)이 원래 ‘테오티우
아칸’에는 전혀 없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테오티우아칸 낙성식의 노래’가 불리워진 것이 경신(庚申) 52년 (B.C. 1501년)인데, 이 지역을 총괄
하고 있었던 욕살(褥薩) 고등(高等)께서 “전염병(傳染病)이 번져나가니깐, 원주민(原住民)에 대해서 ”같은 인류로써
죄악(罪惡)을 저질렀다.
돼지를 뺀 모든 가축(家畜)과 일부 남아있는 사람이외에는 모든 삼한인(三韓人)들은 이런 말세(末世)의 원인을 준
귀방(鬼方)을 철저히 그 죄(罪)값을 물어야하고, 또 ‘가섭원’으로 넘어오는 두막루(豆莫婁)를 차단하여야한다.“는
‘삼한인의 총제적 철수(撤收)’에 따른 전역(戰役)이 일어난 것이 임진(壬辰) 49년 (B.C. 1289년)입니다.
따라서 (B.C. 1501년 - B.C. 1289년= 212년)으로 계산됩니다.
또 단군 여을(余乙)때 공사기간인 51년까지 합치면, 결과적으로 (212년+51년=262년)이 되어서 의외로 원주민(原住民)
들만 전염병(傳染病)에 걸려서 죽는 기이한 현상을 욕살(褥薩) 고등(高等)께서 목도(目睹)한 것은 백인(百人)들이
미주(美洲)대륙에서 원주민들이 주로 전염병으로 죽는 것이 파급되는 현상에 비해서 매우 늦게 억압되면서 진행되었
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고조선(古朝鮮)의 선가(仙家)의 예방의학이 매우 발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원주민(原住民)만 전염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현상’을 목도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철수를
감행함은 물론, 그것이 가축(家畜)에 그 원인이 있다고 귀방(鬼方)을 멸(滅)하고, 두막루(豆莫婁)를 차단하는 것‘
자체가 바로 고조선-문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 민족이 미주(美洲)대륙에 들어가서 동부여(東夫餘), 월(越)맥제, 막사라(莫斯羅)-신라(新羅) (=삽량주
(歃良州) 신라), 부상(扶桑) 가락국 등을 건설하고 활동을 할 때에 ‘백인(白人)들이 들어갔을 때와는 달리 가축(家畜)
에 의한 전염병(傳染病)의 옮김으로 대규모-인디언 원주민(原住民)의 살상현상이 없었던 까닭은 바로 그 첫 이주
(移住)때에 "원주민(原住民)만 죽는 전염현상’에 대한 개사원(蓋斯原) 욕살 고등(高等)이 철수(撤收)를 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처방(處方)을 확인해서 백마산(白馬山)-금제(禁制)를 철저히 이행하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숙신(肅愼)-토곡(土谷)을 건너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4. 메조-아메리카 지역의 신화체계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미(中美) 지역 즉 개사원(蓋斯原) 지역의 ‘신화(神話)체계’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올텍(Oltecs)문명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아시아(Asia)인들이 틀림이 없는데, 갑자기 이들이 사라지고,
그 후에 이은 아즈테카(Azteca)와 마야(Maya)문명을 세운 사람들은 신화체계를 신기하게도 전승(傳承)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학자들은 이 중간의 미씽(Missing)고리에 대해서 궁금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화체계를 음미해보면, 고조선(古朝鮮)의 순방(淳庬)체제의 바탕과 접맥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개사성(蓋斯城)인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이 <신(神)들의 고향(故鄕)>으로 자리매김하는 까닭은 그 뜻
자체가 이 신전(神殿)의 이름을 ‘테오티우아칸’임을 전(傳)한 ‘아즈텍’인들이 그 뜻이 ‘신(神)이 된 자들의 땅’이란
뜻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테오티우아칸’에서는 ‘우주(宇宙)를 왕래하는 신(神)들이’ “ 이 지구(地球)를 멸망시키고 다시 구원(救援)함에
어찌 작용했는가?”를 신화(神話)적으로 나타내고 자신들의 ‘피라미드(pyramid)’에서 기리는 ‘성(聖)스런 의식’이
베풀어지기 졌기 때문에, ‘신들의 고향’으로 자리매김 한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메조아메리카’ 지역의 신화(神話)는 우리의 역사를 관통하는 신화(神話)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
니다.
메조아메리카 신화에서는 이 지구(地球)가 ① 돌(石) 사람들의 멸망 ② 바람에 의한 천인(天人)들의 멸망,
②물에 의한 인류의 멸망 ④불에 의한 인류의 멸망이란 4개의 선세(先世)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멸망의 원인이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와 케찰코아틀(Qyetzakciatk)의 갈등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는 인도(印度)나 우리 신화에서 가장 중요시여기는 북두칠성 중에서 각 별마다 성선
(聖仙: Rishi)이 있고, 또 부인이 되는 여성선(女聖仙: Kritticca)가 중심이 된 성선(聖仙)가족들이 별마다 있음에 비
해서 아즈텍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는 ‘북두칠성’이 하나로 뭉뚱거려진 신(神)으로 나타납니다.
북두칠성이 뭉뚱그려진 신의 이름이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인데, 이는 ‘연기를 내는 거울’이란 뜻을 지닙
니다. 거울은 모든 것을 비추어서 나타나게 하고, 연기는 이런 과정을 흐릇하게 해서 보일락 말락하게 감추는 신비
(神秘)를 의미합니다.
이 연기(煙氣)는 ‘담배 연기’로 아이콘(Icon)에 표상됩니다.
즉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는 ‘신비(神秘)속에 자신의 능력을 전부 공개하지 않는 북두칠성의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smoking mirror’로써 이야기하는데, 아래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 모습에 등(背)에 맨 원형이 ‘거울’
이며 그 밑에 ‘화살통’ 같은 것이 ‘담배’입니다.
(*)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http://en.wikipedia.org/wiki/Tezcatlipoca
한편,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은 코아틀(caatl)이 ‘쌍둥이’와 ‘뱀’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코아틀(coatle)은 결국
우리표현으로 말하면, 쌍수룡(雙首龍)-‘미라가 둘인 뱀’ 즉 ‘무지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케찰(Quetzal)은 색갈과 꼬리가 화려한‘케찰-새(鳥)’를 의미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봉황(鳳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케찰(Quetzal)-새(鳥)를 볼수 있는 곳
http://en.wikipedia.org/wiki/File:Quetzal01.jpg
즉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은 <쌍수룡(雙首龍)이 딸린 봉황(鳳凰)>이란 이미지(Image)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의 모습을 볼수 있는 곳
http://en.wikipedia.org/wiki/Quetzalcoatl
(*)참고: 이는 ‘아즈텍과 마야 신화, 칼토베/이응균.천경호 공역,범우사,1998.12.15 초판’을 참고한 것입니다.
워래의 내용을 그대로 소화(消化)해서 실었으나,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쌍수룡(雙首龍)이 딸린 봉황(鳳凰)>로
정체를 밝힌 것은 좌계의 해석학입니다. (*)
아무튼 4개의 선세(先世)가 멸망하자, 신(神)들은 하늘을 들어 올리게 되는데, 그동안 갈등(葛藤)하고 적(敵)으로
자리매김한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우주목’이 되어 이 들어 올린 하늘을 떠받치는 천지(天地)의 축(軸)이 되면서
현세(現世)를 맞게 되었다고 메조-아메리카의 신화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게서(前揭書) p79 제목 ‘천지재건’의 내용임(*)
중요한 것은 메조-아메리카 지역에 전승(傳乘)되는 이런 신화(神話)가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북두칠성’과 ‘봉황’으로
상징되는 배달화백(倍達和白)의 저류(低流)에 있는 신화(神話)와 깊은 접맥(接脈)이 발견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메조-아메리카 신화에서는 이처럼 4번의 인류의 멸망을 거친 후에, 현세(現世)는
그런데, ‘연기나는 북두칠성 거울’인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와 ‘쌍수룡(雙首龍)이 딸린 봉황(鳳凰)’인 케찰
코아틀(Quetzalcoatl)이 북극해에서 북극성까지를 떠받치는 천지(天地)의 축(軸)인 ‘우주목’으로써 자리매김을
하면서부터 현세(現世)가 시작됩니다.
이 때까지는 이 지구(地球)에 태양과 달이 없는 어둠의 상태였는데, 여기에 밝음을 다시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신(神)
들이 분신자살(焚身自殺)’을 해야만 그 ‘죽은 신’이 태양과 달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神)들이 ‘죽음’이란 댓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神)으로써는 대단한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신들은 서로가 말한 것이지요. “이리로 오시오,신들이여! 누가 이 짐을 떠맡겠오? 누가 새백을 가져올 태양이 되고져
하오?” (.전게서(前揭書) p 94)
이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맨처음 자원(自願)한 여신(女神)이 바로 테쿠시스테카들(Tecuciztecatl)인데,
이 여신(女神)은 대단한 미모(美貌)이며 건강(健康)하고 동시에 또 부유(富裕)하여서 ‘미(美)의 오만(傲慢)함’을 가득
지니고 있던 신이었던 것입니다.
(*) 달(月)의 신(神) 테쿠시스테카들(Tecuciztecatl)의 모습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e/Maya_moon_goddess.jpg/200px-Maya_
moon_goddess.jpg
그런데 다른 신(神)들은 신(神)들 가운데 '고통받는 농포(膿疱/고를,천연두)를 뒤집어쓴 임파선종(bubonic)을 앓고
있어서 얼굴이 온통 고름 투성인 병약(病弱)하기 짝이 없고, 가난(家難)하면서도 겸손(謙遜)한 나나우아친(Nanahua
tzin)을 - 나나우틀(Nanauatl)이라고도 함-추천(推薦)하게 됩니다.
이 ‘나나우아친’은 ‘안드로메다=규성(奎星)의 어느 별에 ’신(神)들이 우주여행‘을 함에 있어서 먹이가 되는 옥수수가
숨어있는 <토나카테페틀 산(Mout Tibacatepetl)>에서 ’옥수수‘를 끄집어낸 업적(業績)을 이루었기 때문에, ’혼자서
일을 다 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겸허함‘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신이었던 것입니다.
이 <토나카테페틀 산>에 ‘옥수수’가 있음을 맨 처음 안것은 바로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인데 그는 ‘검은 개미’가
이 산(山)에서 ‘옥수수’를 캐오는 것을 보고 ‘붉은 개미’로 변신(變身)하서 바위산 내부로 들어가서 그 속에 거대한
‘옥수수 농장(農場)’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옥수수를 신(神)들에게 먹여보고는 ‘케찰코아틀’은 밧줄로 산의 둘레를 묶은 후에 그것을 들어올리려고 신력
(神力)을 - ‘케찰코아틀’의 정체가 ‘쌍수룡(雙首龍)이 달린 봉황(鳳凰)’이기 때문에 이런 신력(神力)을 낼수 있읍니다.
- 다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자 예언(豫言)의 부부(夫婦)-신인 옥소모코(Oxomoco)와 시팍토날(Cipactonal)이 이 산(山)의 ‘옥수수’를 얻어
려면 어찌해야하는가 점을 쳤더니, “가장 병약(病弱)한 ‘나나우아친’만이 이 생명의 바위를 깨트릴수 있다”는 엉뚱한
신탁(神託)을 내리게 됩니다.
‘나나우아친’은 4명의 비(雨)와 번개의 신(神) - 파랑, 하양, 노랑, 빨강 ‘틀락록(Tlaloc)’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이 ‘틀락록(Tlaloc)’은 재판관(裁判官)의 신이 짐승으로 별할 때의 모습인 ‘표범’과 ‘재규어’의 모습인데, 바로 강(江)과
호수(湖水)의 여신(女神)이면서, ‘고귀(高貴)한 녹색(綠色)부인’이라는 미칭(美稱)을 받는 찰리우이틀리쿠에(Chalch
iuhtlicue)의 남편(男便)들 되는 신(神)입니다.
‘메조-아메리카’ 신화(神話)에서 비(雨)와 번개를 장악한 재판관(裁判官)의 신(神)이 색갈별로 넷(4)으로 나위어
있지만, 부인(婦人)인 ‘강과 호수(湖水)’의 신(神)이 ‘고귀한 녹색 부인’이 하나(1)로 되어 있는 것은 바로 강(江)과
호수(湖水)는 모두 연결되어 하나로 되고, 연결되지 않으면 지하(地下)수로(水路)로도 ‘하나’로 연결된다는
메조-아메리카 사람들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雨)와 번개의 재판관 신(神)은 ‘인류가 물에 의한 멸망으로 <물고기-인간>으로 변한 것을 자신의
피(血)를 수혈(輸血)시켜서 부활(復活)시킨 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화(神話)의 구조는 “소도(蘇塗)인 호수(湖水)는 강(江)에 의해서 하나로 이어진다.”는 순방(淳庬)
체제의 기본 패러다임(paradigm)과 일치하고, 더군다나 재판관인 패자(沛者)가 <표범>이나 <해치>계열로 표상
(表象)되고 이들이 하는 ‘경우판단’의 개념이 잡단정서에 매몰(埋沒)되어서 탈출 못하는 것에 대한 각성(覺醒)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구조와 또한 잘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나나우아친’은 4명의 파랑, 하양, 노랑, 빨강의 비(雨)의 신이자 번개의 신인 ‘틀락록’에게 부탁해서 이들이
연합으로 번개를 내리쳐서, ‘토나카테페틀’ 산(Mout Tibacatepetl)을 절단시켜 ‘옥수수 농장(農場)’이 개방되게
하는 업적을 이루게 합니다.
따라서 신(神)들이 병약(病弱)한 ‘나나우아친’이 태양이 되는 후보(候補)로 추대한 까닭은 이 ‘나나우아친’이 자기
능력이란 독선(獨善)에 빠지지 않고, 주변의 힘을 끌어들여서 모두가 당당한 업적을 세워서 함께 ‘윈-윈(win-win)’
하는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결국 ‘테오티우아칸’에는 자원(自願)한 ‘건강미(健康美)가 가득한 여신(女神)’인 테쿠시스테카틀(Tecuciz
tecatl)과 병약(病弱)한 남신(男神) 나나우아친(Nauahuatzin)을 위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이 두 신(神)을 ‘영원한
부부(夫婦)’로 맺어지게 하는 의식(儀式)을 치루게 됩니다.
이 의식이 일어난 후에, <신(神)을 죽음에 이루게 하는 불(火)>을 피우게 되는데, 먼저 분신자살(焚身自殺)을 하게
되면, 태양(太陽)이 되고, 뒤 따러 하게되면 달(月)이 되는 것이 우주(宇宙)의 법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神)들이 ‘나나우아친’을 이 희생(犧牲)제의(祭儀)에 추천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육안(肉眼)은 세상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며, “이 세상의 진실을 보는 심안(心眼)은 낮에는 태양을 통해서
보고, 밤에는 달(月)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 메조-아메리카 신화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즉 ‘나나우아친’이 태양이 되면, 일(work)을 할 때에, ‘남의 능력을 끌어들여 함께 일하고 이를 나누는’ 관점(觀點)
에서 낮에 모든 사람들이 세상일을 파악하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테쿠시스테카틀’과 ‘나나우아친’은 ‘최후(最後)의 봉납물’을 바치게 되는데, ‘테쿠시스테카틀’은 부유(富裕)
했기 때문에, ① 케찰새의 깃털 ② 황금(黃金) 덩어리 ③ ‘붉은 산호(珊瑚)가 달린 옥(玉)송곳을 바칩니다.
반면, ‘나나우아친’은 가난하였기 때문에,①갈대 뭉치 ② 자신의 피가 묻은 용설란(龍舌蘭) 까시 ③ 향(香)으로써
자신의 상처(傷處)를 덮고 있던 ‘부스럼 딱지’를 ‘최후의 봉헌물’로 내놓게 됩니다.
‘테쿠시스테카틀’이 먼저 자원(自願)을 하였기에, 그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녀는 무서워서 4번이나 뛰어
들지 못하여서 ‘나나우아친’에게 기회가 왔는데, 그는 즉시 불 속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나나우아친은 결의를 다지고 눈을 굳게 감았다. 그는 어떤 공포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
는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물러서지 않은 채 불 속으로 몸을 던젔다. 결국 그의 몸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나나우아친’의 영웅적인 죽음을 본 ‘테쿠시스테카틀’은 곧바로 불속으로 몸을 던지고, 뒤이어 독수리와 재규어가
뛰어든다.독수리의 깃털은 검게 그을리고, 재구어의 가죽은 검은 점으로 얼룩진다.
(전게서(前揭書) p96 인용)
(*) 참고 : ‘독수리’의 깃털이 검은 이유, 또 ‘재규어’에 반점(斑點)이 있는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
이 신화(神話)의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나나우아친과 테쿠시스테카틀의 죽음 후에 다른 신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를 보기 위해 기다린다.
점차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자 신들은 목을 길게 빼고 용감한 나나우아친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몇몇 신들은 동쪽을 가르키며 나나우아친이 그쪽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것은
옳았다. 그들은 나나우아친의 출현을 본 최초의 목격자가 되었다.
사방으로 빛을 발하는 무서온 태양신 토나티우로 부활한 나나우아친은 이제 더이상 병약하고 겸손한 신이 아니었다.“
(전게서(前揭書) p96)
이윽고 ‘테쿠시스테카틀’이 변한 달(月)도 떠올랐는데, 맨 처음에는 태양처럼 매우 밝었었다.
그러던중 신(神)들 가운데 하나가 테푸시스테카틀의 얼굴을 향해서 토끼를 던지고, 이 때의 상처로 달의 표면은
태양보다 희미해졌다.
보름달이 떠있는 동안은 달의 정면에 앉아있는 토끼를 볼 수 있다.
(전게서(前揭書) 98)
- 각설
묘한 것은 “달(月)속에 토끼가 있다.”는 신화(神話)-소(素)에서 아시아(Asia)쪽에서는 계수(桂樹)나무와 함께 등장
하는데, 중미(中美) -특히 ‘아즈테카’ 쪽에서는 그냥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달(月)속에 ‘토끼’가 박혀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중미(中美)의 달(月) 속의 토끼 모습
http://www.monstropedia.org/images/7/73/Moon_rabbit.jpg
- 각설(却說)
나중에 아즈테카(Azteca) 문명에서 ‘테오티우아칸’에서 인간의 심장(心臟)을 바치는 의식(意識)이 생기기 이전
(以前)의 순수한 신화(神話)체계로만 이 신화(神話)를 우리는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은 고조선(古朝鮮)의 순방체계에 따르면, 군주(軍主)의 권한 - 즉 군사(軍士)를
①친위군(親衛軍) ② 소도(蘇塗)를 중심으로 천독(天毒)을 지키는 ‘벅수 군’ ③ 영역(領域) 수비군으로 자유자재로
편성할 권리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피라미드(pyramid)란 성지(聖地)를 수호하는 ‘현지의 벅수군’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군모(軍母)가 결국 나중에 ‘테쿠시스테카틀’로 신격화(神格化)된 여인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벅수군’의 상징이 달(月)이기 때문에, 이는 고조선(古朝鮮)의 순방(淳庬)체제에 너무나 당연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군모(軍母) ‘테쿠시스테카틀’은 당시 전염병(傳染病)이 만연하는 현상에 이를 퇴치(退治)하고자, 신성결혼을
조건으로 동반(同伴)-분신자살(焚身自殺)을 하는 신기한 처방(處方)을 내리게 되고, 이 때 ‘천연두(天然痘)를 비롯
한 가장 끔찍한 전염병’을 앓고 있던 ‘나나우아친’이 과감히 이 신성결혼과 함께 분신자살(焚身自殺)에 응하였던 것
으로 신화가 생긴 유래를 설명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목격한 욕살(褥薩) 고등(高等)은 경악해서 개사원(蓋斯原)의 전염병(傳染病)의 근원이 되는 귀방(鬼方)을 응징
하기 위해서 대번에 태평양을 건너서 기습-섬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기습(奇襲)-섬멸을 한 까닭은 당시 고조선의 가장 유명한 도읍 - 오늘날 서안(西安) 피라미드(pyramid)에
지구촌(地球村)의 여러 지역 가령 예를 들면 이집트(Egypt)의 피라미드(pyramid) 등등에서 순례(巡禮)를 오고 있었
는데, 다른 곳을 먼저 공격하면, 이 귀방(鬼方)이 있는 곳과 백악산(白岳山)(=서안(西安) 피리미드)쪽이 가까운지라,
전염병을 퍼트린 장본인인 귀방(貴方)의 사람들이 말(馬)을 타고 도주(逃走)할수 있기 때문에, 먼저 기습-섬멸해
버린 것으로 판단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삼한인(三韓人)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는 중미(中美)에서 알래스카 까지 태평양 쪽 해안(海岸)의 사람
들을 모두 모아서 가축(家畜)과 동시에 철수(撤收)시키면서 두막루(豆莫婁) 쪽을 차단(遮斷)하였던 것입니다.
즉 ‘테오티우아칸’에서 ‘나나우아친’과 군모(軍母) ‘테쿠시스테키틀’의 분신자살(焚身自殺)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개사원(蓋斯原) 욕살 고등(高等)이 일으킨 소태(蘇台) 단군 때의 두 대륙을 연결시키는 군사작전(軍事作戰)의 원인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이 태평양을 건너는 대규모 군사작전이 벌어질 때에,
묘하게도 그 시기는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 두나라가 고조선(古朝鮮)에 조공을 바치러 오던 시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문(原文)및 해석(解釋) 재인용]
壬辰四十九年 蓋斯原 褥薩高等 潛師襲鬼方滅之 (*)一群養雲二國遣使朝貢於是 (*) 高等于握重兵 經略西北之勢甚
强盛 遣人請爲右賢王 帝憚之不允 屢請乃許 號爲豆莫婁
[해석(解釋)]
: 임진(壬辰) 49년 (B.C. 1289년)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等)이 병력(兵力)을 이끌고 해상(海上)을 통해
(=잠사(潛師)), 귀방(鬼方)을 습격하여 멸(滅)하였다.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 두 나라가 조공(朝貢)을 할 때에,(*)
고등(高等)은 중병(重兵)을 장악하여 서북(西北)지역을 경략(經略)하였는데, 그 세(勢)가 심히 강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청(請)하기를 우현왕(右賢王)으로 임명할 것을 청(請)하였으나 제(帝)는 탄식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누차 청하매 허락하면서 두막루(豆莫婁)라고 (그 지역을) 불렀다.
- 이 기록이 중요한 것은 이 <일군국(一群國)이 숙신(肅愼)으로 부터 5만리 떨어진 곳>에 있는 환국(桓國)-12연방
(聯邦) 중에 하나인데, 이 나라의 위치를 추적하면, 결국 오늘날의 ‘수에즈(Suez)운하’의 ‘소금 강’인 염수(鹽水)가
됩니다.
이 일군국(一群國)이 바로 고조선의 해외(海外) 서단(西端)인 지역이고, 또 광개토태왕께서 비리(卑離)-정벌(征伐)
을 하실 때에 최종적으로 간 곳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음 회에는 따라서 ‘고조선의 해외(海外) 서단(西端)’에 대해서 논(論)하기로 합니다.
그래야만 “개사원(蓋斯原) 욕살 고등(高等)이 일으킨 사건이 얼마나 고조선(古朝鮮)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 전반에 대해서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음미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의 해외(海外) 서단(西端)인 <一群國>은 수에즈(Suez)!
1. 비리국(裨離國)과 일군국(一群國)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미 전회(前回)에서 보았듯이 단군세기 ‘21세 단군 소태(蘇台) 시대’ 때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等)
께서는 오늘날 ‘테오티우아칸’에서 달(月)로 표상이 되는 ‘벅수군’의 군모(軍母)인 ‘테쿠시스테카틀(Tecuciztecatl)’
이 신성결혼을 제안하면서 ‘얼굴에 천연두(天然痘)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의 고름’이 가득한 ‘나나우아친(Nanahua
tzin)’과 함께 분신자살(焚身自殺)하자, 고조선의 양심을 지키고 져 거병(擧兵)합니다.
고등(高等)은 이런 전염병의 진원지인 귀방(鬼方)의 유목민(遊牧民)들을 몰살시키는 기습을 단행하고, 이윽고
개사원(蓋斯原)에서 오늘날 ‘알라스카’ 지역까지 태평양 쪽에 있던 모든 삼한인(三韓人)들의 가축(家畜)과 사람들을
대동(帶同)해서 완전 철수하면서 오늘날 베링(Bering)해협 좌측에 있는 아나디르(Anadyr)강 주변의 두막루(豆莫婁)
를 점거해서 두 대륙를 차단(遮斷)시킵니다.
(*) 21세 단군 소태(蘇台) 시대 단군세기(檀君世紀) 기록
壬辰四十九年 蓋斯原 褥薩高等 潛師襲鬼方滅之
: 임진(壬辰) 49년 (B.C. 1289년)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等)이 병력(兵力)을 이끌고 해상(海上)을 통해
(=잠사(潛師)), 귀방(鬼方)을 습격하여 멸(滅)하였다.
一群養雲二國遣使朝貢於是 高等于握重兵 經略西北之勢甚强盛 遣人請爲右賢王 帝憚之不允 屢請乃許 號爲豆莫婁
: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 두 나라가 조공(朝貢)을 할 때에, 고등(高等)은 중병(重兵)을 장악하여 서북
(西北)지역을 경략(經略)하였는데, 그 세(勢)가 심히 강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청(請)하기를 우현왕(右賢王)으로 임명
할 것을 청(請)하였으나 제(帝)는 탄식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누차 청하매 허락하면서 두막루(豆莫婁)라고
(그 지역을) 불렀다.
[의미해설]
중요한 것은 위의 오늘날 멕시코(Mexico)에 해당하는 개사원(蓋斯原)을 비롯한 미주(美洲) 대륙의 전 삼한인(三韓人)
들이 철수하면서, 두막루(豆莫婁) 차단 전략이 펼쳐들 때, 고조선의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 즉 오늘날의
서안(西安)-피라미드(Pyramid)에 조공하려고 온 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이란 나라가 바로 환국(桓國)12연방
(聯邦) 가운데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두나라 가운데, 일군국(一群國)이 진서(晉書) 권 97 열전 제67 사이전(卷九十七 列傳第六十七 四夷傳)에서
‘숙신(肅愼)’으로부터 계산하면 5만리 떨어지고, 또 ‘말(馬)로 500일을 가야하는 나라’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런 마행(馬行)500일로(日路)가 걸리면서 숙신(肅愼)으로 부터 5만리 되는 거리에 있는 일군국(一群國)이라면
‘실로 까마득한 거리’여서 이집트(Egypt)의 홍해(紅海)의 北端에 지리비정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당시의 고조선(古朝鮮)의 중심 도읍은 오늘날 ‘서안(西安) 피라미드(pyramid)’인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
이었고, 또 오늘날 멕시코(Mexico)에 해당하는 개사원(蓋斯原)에 17세 단군 여을(余乙)께서 일월(日月) 피라미드를
완성한 관계로 이 멕시코(Mexico)와 연결을 위해서 넘어가는 ‘베링(bering)해협’ 쪽과의 연결성을 위해서 20세
단군 고홀(固忽) 시절인 병신 36년 (B,C. 1346 년)에 이미 만주(滿洲)의 “영고탑(寧古塔)을 수축하고 이궁(離宮)을
지었다(丙申 三十六年 修築寧古塔 作離宮)”는 기록이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좌계는 환국(桓國)의 정체를 ‘고대 피라미드(pyramid)문명을 서로 연결시키는 느슨한 연방(聯邦)’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일군국(一群國)의 위치는 오늘날 이집트(Egypt)의 기자 피라미드(Giza-pyramid)에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인
홍해(紅海)가 끝나고 수에즈(Suez)운하(運河)가 시작디는 최북단에 있었던 국가의 명칭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집트(Egypt)의 기자(Giza)의 피리미드 문명에 있던 사람들이 고조선의 백악산(白岳山) 아사달이나
혹은 보조(輔助) 도읍인 영고탑(寧古塔)으로 오려면, 그 출발지는 아무래도 홍해(紅海)가 시작되는 수에즈(Suez)
쪽이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2. 환국(桓國)의 동서는 6만 6천리
그런데, 속칭 <환국(桓國) 12연방>이 거론되어 있는 것은 원동중(元董仲)선생께서 찬(撰)하신 삼성기전(三聖紀全)
하편(下篇)의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삼성기전(三聖紀全) 하편(下篇) 원문(原文) 및 해석(解釋)]
古記云 波奈留之山下有桓仁氏之國 天海印之地 亦稱波奈留之國 其地廣 南北五萬里 東西二萬餘里
: 고기(古記)에 말하기를 파내류(波奈留)산의 아래에 환인씨(桓仁氏)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天海)의 동(東)쪽에도
역시 파내류(波奈留)라고 칭(稱)하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땅이 넓어서 남북(南北)이 5만리되고,
(*)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에서) 각각(各各) 동서(東西)가 2만여리였다.
[의미해설]
위 문장의 해석에서 가장 유의해야할 사실은 <파내류(波奈留)-산(山)>을 중심으로 한 환인씨(桓仁氏)의 나라가
있었고, 지금 바이칼[(Baikal)=북해(北海)]인 천해(天海)의 동쪽에 역시 <파내류(波奈留)-국(國)>으로 칭하는
나라가 역시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파내류산(波奈留山)이라고 칭하는 거산(巨山)이 두 곳에 있었고, 이 산(山)의 이름을 붙인 나라 파내류국(波奈留國)
이 역시 두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환인씨(桓仁氏)란 말과 파내류(波奈留)란 말이 같은 뜻임을 드러내는 문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사(逸史) 모음집인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해석 가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모든 해석자들이 오역(誤譯)을
하는 부분이 바로 ‘환국(桓國)의 크기’를 논(論)하는 이른바 <其地廣 南北五萬里 東西二萬餘里> - “그 땅이 넓어서
남북(南北)이 5만리이고, 동서(東西)가 2만여리이다.”하는 부분입니다.
얼핏 보면, 환국(桓國)의 영토 혹은 영향권은 동서(東西)가 좁고, 남북(南北)이 그 2배 이상인 듯한 인상 즉 상하
(上下)로 길쭉한 느낌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역(誤譯)에서 생긴 ‘잘못된 인상’입니다.
일단 파내류산(波奈留山)이 두 곳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하나는 오늘날 ‘파미르 고원(高原)’을 중심으로 한 산인데,
수미산(須彌山) 혹은 곤륜산(崑崙山)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늘날 ‘파미르 고원(高原)’을 뜻하는 고대의 명칭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파내류산(波奈留山)이라고 하면, 단순히 ‘파미르 고원’ 뿐만이 아니라, 이는 ‘파미르 고원’의 중요지맥 -
즉 천산(天山)-산맥을 포함하는 용어여서 보다 산맥을 크게 파악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한문(漢文)으로 쓰여진 고대의 기록에서는 산맥과 산을 모두 산(山)으로 기록하는데, ‘산맥의 포함’정도에 따라서
명칭이 틀려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하나의 파내류산(波奈留山)’이라는 것은 천해(天海)혹은 북해(北海)라고 하는 오늘날 바이칼(Baikal)의
동쪽에 있는 산맥이기 때문에 바로 백두산이 폭발하기 이전의 산 - 즉 태백곤륜산(太白崑崙山)을 중심으로 해서
그 지맥(支脈)이 뻗어나간 곳까지 포함하는 산맥-群을 뜻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이칼(Baikal)동쪽의 파내류산(波奈留山)은 태백곤륜산의 어떤 지맥이 뻗은 곳까지를 계산하는가?
이는 아래 ‘중국전도’에 보다시피 오소리강(烏蘇里江)과 송화강(松花江)이 만나는 완달산(完達山) 산맥까지를 포함
해서 파내류산(波奈留山)으로 파악하는 것이 자연스런 地勢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선조(朝鮮朝) 정조대왕(正祖大王) 때까지만 해도 오늘날 동(東)쪽의 완달산(完達山)산맥. 서쪽의
가목사(佳木斯)산맥, 그리고 북쪽의 청산대령(靑山大嶺) 산맥으로 감싼 곳에서 대해만(大海灣)이라는 귀허(歸虛)가
있었고, 이런 3개의 산맥을 장백산(長白山)이라고 칭했음이 세종지리지에 실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튼 동(東)쪽의 파내류산(波奈留山)의 동쪽 언저리 지맥(支脈)은 ‘아래 중국전도’에서 보다시피 태백곤륜산
(太白崑崙山)이 물(水)에 의해서 산세가 끊어지지 않고, 동쪽으로 가장 많이 뻗은 곳이 되는 것입니다.
(*) 태백곤륜산(太白崑崙山)의 물에 의해서 끊어지지 않고, 가장 동쪽으로 지맥(支脈)을 뻗은것이 완달산(完達山)-
산맥임을 볼수 있는 ‘중국전도’
http://www.coo2.net/files/lim030203-6chi.gif
오늘날 축구 골(goal)대인 기둥(post)가 2개인데, 이것이 동서(東西)로 있을 경우, 이 기둥에서 동서로 각기 50m
되는 지점이라면, 동쪽 기둥에서 50m, 서쪽 기둥에서 50m로 동서(東西) 거리를 잡음이 당연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서(西)-파내류산(波奈留山)의 끝인 천산(天山)으로 부터 2만여리, 동(東)-파내류산의 끝인 완달산
(完達山)-산맥으로부터 2만여리로 잡고, 그 가운데 있는 두(2) 파내류산 사이의 거리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
위 삼성기전(三聖紀全) 하편(下篇)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의 2만여리(二萬餘里)의 여리(餘里)를 굳이 구체적인 里數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3,000리 정도는
붙여도 되는 것이 우리의 ‘숫자로 된 크기 감각’인 것입니다.
또 하나 주의(注意)할 것은 ‘대륙(大陸)의 크기’를 논(論)하는 이수(里數)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1리(里)를 400m로
보는 것에 비해서 500m~ 700m 정도로 그 크기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명대(明代)의 만리장성인 산해관(山海關)에서 가욕관(嘉峪關] 까지의 거리가 6,300km 인데,
이를 만리(萬里)로 나타냈으니 1리(里)가 630m가 되는 셈인 것입니다.
즉 ‘대륙(大陸)의 크기’를 재는 것이 가는 길이 구불거리고, 또 워낙 길기 때문에, 실측(實測)거리로써 재기도 힘들
거니와, 또 정확히 말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에, 대략을 말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이수(里數)의 크기가
커지고, 일반적으로는 마행(馬行)하는 일수(日數), 혹은 범선(帆船)으로 가는 일수(日數)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마행(馬行)과 범선(帆船)의 일수(日數)를 구체적인 이수(里數)로 바꾸다보니,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동서(東西) 2만여리’의 2만여리는 <2만3천리>로 환치해도 되기 때문에,,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의 양쪽
지맥 - 즉 천산(天山)과 완달산(完達山)에서 각기 ‘바깥 쪽’으로 2만3천리씩 ‘동서 길이’가 확보되기 때문에, 일단
‘동서(東西) 거리’에서 4만 6천리가 확보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두 파내류산(波奈留山) ‘사이’의 거리를 얼마큼 잡아야하는 것입니다.
좌계는 이를 ‘대륙을 계산하는 이수(里數)’로 2만리로 봅니다.
그리고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의 거리는 대략 2만리이다.”라는 것이 고대인들에게는 하나의 공리(公理)였고,,
오히려 ‘대륙을 재는 거리’는 이에 맞추어서 정해졌을 개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성기전 하편에 “환국(桓國)은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의 밖을 향하여 동서(東西)가 2만여리이다.”라고
한 것은 (2만리 + 2X(2만3천리 = 2만리+4만6천리=6만6천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환국(桓國)이 “남북(南北)이 5만리이다.”한 것보다 1만 6천리나 크기 때문에, 환국(桓國)의 ‘영향권’ 범위는
남북(南北)보다 동서(東西)가 더 길쭉한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날 지도에서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西)-파내류산(波奈留山)의 지맥인 천산(天山)의 위치를 일단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서(西)-파내류산(波奈留山)의 끝 지점인 천산(天山)의 ‘칸-텡그리-봉(=한등격리봉(汗騰格里峰: 6995m)는
오늘날 아래의 <중국령으로 된 ’신강유이오 자치구 지도‘>를 보면, <중국령(中國領)>의 서쪽 끌이 별(丿)로 되어
있는 부분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 또 아래 ‘신강유오이 지치구 지도’에 보면, 천산(天山)의 칸-텡그리-봉(=한등격리봉(汗騰格里峰: 6995m)의
바로 좌측(左側)에 이식-콜(Ysyk-kol)호가 이색극호(伊塞克湖)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키르기스스탄
(Kyrgyzstan)’이란 나라 속에 있는데, 이를 <길이길사-사탄(吉尒吉斯-斯坦)>으로 표기 되어있습니다.
(이 <이식-콜(Ysyk-kol)호>를 지닌 ‘키르기스스탄(Kyrgyzstan)’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비리국(卑離國)의 위치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 ‘신강유오이 자치구 지도’
① 천산(天山)의 칸-텡그리-봉(=한등격리봉(汗騰格里峰: 6995m)이 중국령(中國領)이 별(丿)자된 부분의 중간쯤임
을 보여줌.
② 이식-콜(Ysyk-kol)호가 이색극호(伊塞克湖)로! ‘키르기스스탄(Kyrgyzstan)’이 표기됨.
http://parkchina.com.ne.kr/map/singang.JPG
이제 천산(天山)의 위치를 지도에서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완달산(完達山)과의 관련시켜 이를 공리(公理)인
‘2만여리’로 보고, 각기 그 밖으로 2만3천리를 뻗을 때에, 환국(桓國)의 동서(東西)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 ‘아시아(Asia)지도’는 지도(地圖)의 경도(經度)가 북극(北極)쪽으로 갈수록 벌어지는 유형이 아니고,
경도(輕度)와 위도(緯度)를 휘게 함으로써 <실제거리>를 반영할 수 있는 지도입니다.
[1] 아래의 ‘아시아 지도’에서 천산(天山)의 바로 좌측에는 ‘키르기스스탄(Kyrgyzstan)’이 약간 ‘푸른 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천산(天山)이 이 ‘푸른 색’ 바로 오른편에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 아래 ‘아시아’ 지도에서 유의할 것은 북극(北極)쪽으로 갈수록 경도(經度)가 ‘부채살 꼭지’처럼 모이기
때문에, 실제 동(東)쪽의 거리상으로 ‘느끼는’ 동쪽 끝은 ‘캄챠카 반도’ 아래에서 청령열도(蜻蛉列島)와 연결되는
‘쿠릴 열도(Kuril Islands)’라는 사실입니다.
(*) 아시아(Asia)지도
① ‘푸른 색’의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우측의 천산(天山)과 완달산(完達山) 사이를 2만리로 잡을 수 있고,
② ‘쿠릴 열도(Kuril Islands)’가 실제 거리 개념으로는 가장 동(東)쪽으로 여겨짐.
http://blog.naver.com/wngml5431/40110714927
그런데, 이처럼 환국(桓國)의 동서가 6만6천리로 잡음에 있어서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의 동서 극점(極點)은 서쪽이
천산(天山)이고, 동쪽이 완달산(完達山)인데, 문제는 이로부터 각기 2만3천리 씩 동쪽 혹은 서쪽으로 나가게 되면
그 위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1]서(西)쪽은 위 아시아(Asia)지도에서 ‘파란 색갈’의 ‘키르키스스탄’의 오른쪽에서 두 파내류산의 거리인 2만리를
기준으로 해서 2만3천리를 서행(西行)해서 보면, 홍해(紅海)를 건너 뛰어서 기자(Giza)의 피라미드가 있는 나일 강
(Nile river)쪽까지 포함하게 됩니다.
[2] 동(東)쪽은 완달산(完達山) 산맥에서 쿠릴-열도(Kuril Islands)을 지나 위도(緯度)-선(線)을 따라가면서 -
즉 이런(↗) 방향으로 휘어가며 2만 3천리를 동행(東行)하다보면, ‘캐나다 록키(Rocky)산맥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산(天山)을 넘어서 2만3천리를 갈 때에, 나일(Nile)강이 포함된다는 것은 ‘기자(Giza)의 피라미드(pyramid)’
문명이 포함되기 때문에, 환국(桓國)의 정체가 ‘전 세계 피라미드(pyramid)의 연합체’라는 가설(假說)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속 삼성기전(三聖紀全) 하편(下篇)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 계속되는 삼성기전(三聖紀全) 하편(下篇)의 기록 (*)
摠言桓國分言則 卑離國養雲國 寇莫汗國 句茶川國一羣國 虞婁國(一云 畢那國) 客賢汗國 句牟額國 賣句餘國(一云
稷臼多國) 斯納阿國 鮮禾卑國(一稱 豕韋國 或云 通古斯國) 須密爾國合十二國也 天海今曰北海
: 통 털어서 말하자면 환국(桓國)이라 하고, 나누어 말하면, 즉 ①비리국(卑離國), ②양운국(養雲國),
③구막한국(寇莫汗國), ④구다천국(句茶川國), ⑤일군국(一羣國), ⑥우루국(虞婁國)(이를 필라국(畢那國) 이라고도
한다.) ⑦객현한국(客賢汗國), ⑧구모액국(句牟額國), ⑨매구여국(賣句餘國)(이를 직구다국(稷臼多國)이라고도 한다.)
⑩사납아국(斯納阿國), ⑪선패국(鮮稗國)(한편으로 시위국(豕韋國 )이라고도 하고, 혹(或)은 통고사국(通古斯國)이라
고도 한다) ⑫수밀이국(須密爾國)이니 합(合)하여 12국이다. 천해(天海)는 지금의 북해(北海: Baikal)을 뜻한다.
위 기록에서 일차적으로 유의해야할 것은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의 각각 지맥인 서(西)쪽인 천산(天山) 밖의 나라가
확인이 되는가? 동(東)쪽인 완달산(完達山) 밖의 나라가 확인이 되는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점이 확인이 안 되면, 두 파내류산(波奈留山)의 지맥(支脈) 거리를 ‘하나의 공리(公理) ’로써 2만리를
잡고, 그 밖으로 2만3천리를 뻗어서 합계 6만6천리로 계산한 추론이 제시된 문단(文段) 안에서 검증(檢證)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환국(桓國)의 동서 길이 6만6천리의 ‘대륙 이수(里數)’로 파악하는 근거는 하나의 공리(公理)로써 두 파내류산
(波奈留山)의 거리를 2만리로 잡았는데, 이 두 파내류산(波奈留山) ‘밖’의 국명(國名)이 양쪽에서 발견이 안 되면,
환국(桓國)의 동서 길이가 실질적으로 6만6천리가 되는 것을 ‘자체적으로 납득’할수 있는 논거(論據)가 없는 글이
됩니다.
그런데 이 환국(桓國) 12개국 가운데서 태백(太白)-곤륜산(崑崙山) 동쪽의 2만여리 범위 안(內)에 있는 나라 명칭이
실제 나옵니다.
그것이 ⑪선패국(鮮稗國)입니다.
이 선패국(鮮稗國)의 패(稗)란 글자는 벼(=도(稻))를 키우게 되면, 함께 올라오는 ‘잡 벼’인 우리말로 ‘피’라는 화본과
(禾本科)의 일년초를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비(卑)로 쓰거나 혹은 <화비(禾卑)>라고 잘못 기재(記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북극 주변에서 ‘얼음’위에 자라는 ‘이끼’를 <선(蘚)>이라고 하는데, 아마 선패(鮮稗)는 이 ‘이끼’종류 가운데
피(稗)처럼 유난히 길게 자라고, 유난히 이를 먹고사는 순록(馴鹿)이 좋아하는 ‘이끼’일 개연성이 큽니다.
즉 선패국(鮮稗國)이라는 지명 자체가 북극 주변의 나라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패국(鮮稗國)에 대해서 “한편으로 시위국(豕韋國)이라고도 하고, 혹(或)은 통고사국(通古斯國)이라고
도 한다.”는 주(註)를 달고 있는데, 이 2개의 주(註)에 등장하는 나라이름 가운데 시위국(豕韋國)은 바로 위서
(魏書)에 실위국(失韋國)으로 묘사한 나라의 변음(變音)이 확실합니다.
즉 오늘날 말로 하자면, 북극해(北極海)로 들어가는 콜리마(Kolyma)강 인 루수(蒌水)를 중심으로 있었던 나라인
실위국(失韋國)이 놀랍게도 이미 환국(桓國)시절부터 있었던 ‘매우 오래된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 시위국(豕韋國)의 또 다른 표현인 “혹(或)은 통고사국(通古斯國)이라고도 한다.”를 통해서 아시아(Asia)
대륙과 아메리카(America)대륙이 ‘통(通)하게 하는 나라’라는 이미지(Image)를 줌을 통해서 실위국(失韋國)의
변음(變音)임이 시위국(豕韋國)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국(桓國) 시절에는 고조선(古朝鮮) 소태(蘇台)단군 때, 두막루(豆莫婁)라고 이름지어진 오늘날 ‘아나디르
(Anadyr)’ 강 유역 즉 베링(Bering)해협 왼쪽 지역까지 이 시위국(豕韋國)으로 별칭되는 선패국(鮮稗國)의 범위
안에 통합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패국(鮮稗國)을 통해서 환국(桓國)시절에 이미 베링(Bering)해협을 넘어서서 미주(美洲)대륙을 건너갈수
있는 ‘건널목’ 국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위에 소개한 실측(實測)거리를 반영한 ‘아시아 지도’를 보면 ‘완달산(完達山)산맥’이 ‘노란 색갈’로 나타나는데,
베링(Bering)해협인 숙신(肅愼)-토곡(土谷)까지의 ‘동(東)쪽 거리’가 대륙(大陸)이수로 5,000리를 절대 넘지 못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반도가 오늘날 이수(里數)로 남북 3,000리로 치는데, 이런 3,000 길이를 뛰어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완달산(完達山)으로 부터 동(東)쪽으로 5,000리가 넘는 곳에 베링(Bering)해협 왼쪽 아시아(Asia)땅이 있음을
알게 하는 지도
http://blog.naver.com/wngml5431/40110714927
·따라서 우리가 “환국(桓國)의 동쪽은 ‘캐나다 록키(Canada Rocky)산맥’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삼성기전
하편의 기록으로 보아서 정당한 ‘지리감각’인 것입니다.
또한 위 아시아(Asia)지도를 바탕으로 할 때에, 천산(天山)에서 - 이는 ‘지도’에서 천산(天山)이 있는 부분이 ‘푸른색’
으로 칠해진 ‘키르키스스탄’을 통해서 인지(認知)할 수 있음 - 서(西)쪽으로 2만3천리이면,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기자-피라미드(Giza-pyramid)가 있는 나일(Nile)강이 환국(桓國)의 동서(東西) 범위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거시적(巨視的)으로 환국(桓國)의 영향권의 범위를 잡아보면, 위 아시아(Asia)지도에서 “ ‘캄챠카 반도’의
뿌리가 되는 숙신(肅愼)의 백마산(白馬山)에서 대륙(大陸)-이수(里數)로 5만리가 되는 진서(晉書)의 일군국(一群國)
의 위치는 홍해(紅海) 북안(北岸)에 이른다. ”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판단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1] 두 파내류산의 ‘사이’인 공리(公理)거리 2만리 [2]천산(天山)으로 부터
홍해(紅海) 북단까지의 거리 2만리 [3] 완달산(完達山)에서 숙신(肅愼) 백마산(白馬山)까지 1만리를 잡으면
(2만리+2만리+1만리=5만리)로 계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계산은 홍해(紅海) 북안(北岸)에 이르기 까지는 천산(天山)을 넘고, 또 이란(Iran) 북부에 있는 ‘카스피
바다’ 남(南)쪽으로 해서 이 바다를 받치고 있는 ‘엘부르즈(Alborz) 산맥’을 넘어서고 또 ‘페르시아 걸프 만’ 위에 있는
자그러스(Zagros) 산맥을 넘어서 ‘페르시아 걸프 만(灣)’ 위로 해서 ‘아라비아 사막’을 건너 홍해(紅海) 북안으로
가는 길이 여러 산맥과 사막을 건너기 때문에, 좀 더 구불구불하게 갈수 밖에 없음을 고려한 것입니다.
또 천산(天山)을 넘어서기 까지 숙신(肅愼)의 백마산(白馬山)에서오는 길은 ‘보다 직선’이어서 거리가 훨씬 짧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고려한 것입니다.
일단 “일군국(一群國)의 위치가 홍해(紅海) 북안(北岸) 부근에 있었을 것이다.”라는 판단의 근거는 진서(晉書)에서
숙신(肅愼)-백마산(白馬山)으로 부터 대륙 이수(里數)로 5만리가 되고, “마행(馬行)으로 합산하면 500일이 걸린다.”
는 기록에 의한 것입니다.
500일이면, 대략 1년 7개월 걸리는 장기간 여행길입니다.
그런데, 개사원(蓋斯原) 욕살 고등(高等)께서 “미주대륙의 원주민의 떼죽음으로 가게한 전염병의 원인이 가축이다.”
고 판단해서 황하(黃河)가 궤(几)자 처럼 흐르는 귀방(鬼方)을 섬멸하고, 두막루(豆莫婁)로 대거 철수(撤收) 이동
하였을 때에, 이 때 고조선에 조공(朝貢)하러온 일군국(一群國) 사람들이 “과연 1년 이상이 걸리는 육로(陸路)를
통해서 조공(朝貢)하러 왔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범선(帆船)을 타고 조공(朝貢)하러 왔을 개연성이 훨씬 큰 것입니다.
마행(馬行) 즉 마차(馬車)에 짐을 싣고서 여정을 떠날 때에는 이 마차(馬車)를 모는 사람들이나 말(馬)이나 모두
잠을 자고 쉬는 시간에는 이동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범선(帆船)은 돛에 의해 바람을 타고 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배에서 잠을 자되, 계속 갈수가 있기 때문에,
훨씬 빨리 갑니다.
3. 일군국(一群國)은 수에즈(Suez) 운하 속의 호수(湖水)를 끼고 있었다.
‘컬럼버스’가 대서양(大西洋)으 횡단하는데 2달이 걸렸는데, 이때의 돛 씨스템(system)은 매우 발달한 것이기
때문에, 환국(桓國) 시절의 ‘돛 씨스템’이 풍력(風力)을 덜 받아 ‘컬럼버스’의 배보다 늦은 것으로 계산해도 홍해
(紅海)에서 ‘서안 피라미드’가 있는 지역까지 범선(帆船)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7~8개월이면 충분히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일군국(一群國)의 위치를 오늘날 홍해(紅海) 북안(北岸)의 어떤 지역에서 범선(帆船)으로 올수 있는
위치로 파악하는 것은 역시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일군국의 위치를 오늘날 홍해(紅海)의 북안(北岸)에서 범선(帆船)이 왕래할 수 있는 지역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일군국(一群國)의 위치로 가장 타당한 위치를 오늘날 홍해(紅海)의 서북단(西北端)에 있는 수에즈
(Suez) 항(港)에서 조금 더 올라간 염호(鹽湖)인 ‘그레이트 비터 호’(Great Bitter lake)’를 둘러싼 고대국가라고
생각합니다.
(*) 일군국(一群國)으로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수에즈(Suez)북쪽의 염호(鹽湖)인 ‘그레이트 비터(great bitter)
호(湖)’를 볼 수 있는 곳.
http://cfs8.blog.daum.net/image/20/blog/2009/06/01/21/34/4a23ca0b0ec34
이 ‘그레이트 비터 호’는 아래 이집트(Egypt)지도를 보면, 나일(Nile)강이 북류(北流)하면서 삼각주(三角洲)를 형성
하는 좌단(左端) 어깨에 ‘기자(Giza)’가 있고, 정동(正東)으로 가면, 이 ‘그레이트 비터 호’의 남단(南端)이 만나게
되어서 매우 근접(近接)한 지역임이 드러납니다.
또 이러한 ‘기자(Giza)’의 우측에 오늘날 이집트의 수도(首都)인 ‘카이로’가 있고, 이 ‘카이로’ 밑의 25Km 남(南)쪽에
고대 이집트 문명의 수도였던 ‘멤피스(Memphis)’가 삼각주(三角洲)의 꼭지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기자(Giza)의 동쪽에 멤피스(Memphis)가 또 멤피스의 동쪽에 ‘그레이트 비터 호’가 거의 일직선
(一直線) 상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 [‘기자(Giza)’→ ‘멤피스(Memphis)’,→‘그레이트 비터 호’]로 동쪽을 향함을 알수 있는 이집트 지도
http://www.arthim.com/egypt/e10003.jpg
- 각설(却說)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그레이트 염호(鹽湖)와 홍해(紅海)의 수에즈(Suez)’는 연결함은 물론, 지중해(地中海)
까지 ‘수에즈(Suez)운하’로 연결된 것은 이미 B.C 2천년 이전이었습니다.
즉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감사의 말씀 : 아래 글을 퍼온 곳의 주소: http://blog.daum.net/kshil/13736639
이집트 고대사 특히 ‘수에즈 운하’와 관련된 연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BC 2천년 아마도 12대 왕조 파라오 세누스렛3세(Pharaoh Senusret III, BC1878 -BC1839)시대에 이미 나일강과
홍해를[고대 염호(Bitter)들의 북쪽까지 이르는] 연결하는 와디 튜미랏(Wadi Tumilat)을 관통하는 서쪽-동쪽의
강을 파냈을 것이다.
이로 인해 펀트(Punt)와 직접적인 해상무역이 가능해졌고, 간접적으로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해 주었다.
하트셉수트(Hatshepsut)의 펀트(Punt) 원정대의 부조에는 펀트에서 돌아오는 원정대를 싣고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당시 홍해와 나일(Nile)사이가 항해할 수 있는 수로가 있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해준다.
BC 13세기 람세스(Ramesses)시대에 실존했다는 증거도 있다.“
- 각설(却說)
위 기록의 푼트(punt)지방은 - 펀트(punt)라고 한 것은 잘못된 발음입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속칭되는 오늘날 ‘소말리아’지방을 의미합니다.
(*) 참고: 푼트(punt)와 관련: “수에즈 운하는 2500년 전 완성됐다”는 글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92364031
그런데, 이 ‘그레이트 비터 호(Great Bitter lake)호 위에 까지 연결된 수에즈(Suez)운하(運河)는 설혹 2,000년 전에
이미 “뚫혀 있었다.”다고 할지라도, 이 운하를 관리하지 않으면, 좌측의 ’사하라 사막‘과 우측의 ’시나이 반도‘의 사막
에서 엄청난 모래를 실어나르는 바람에 의해 메꾸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레이트 비터 호’에는 일군국(一群國)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홍해(紅海) 북단(北端)인 수에즈(Suez)항
(港)과 계속 연결될 수 있음은 물론, 이 호수(湖水)에 선박들이 대거 숙박(宿泊)하더라도 잘 보호되는 지형인 것입
니다.
(*) ‘그레이트 비터 호’의 위치
http://geology.com/world/egypt-satellite-image.shtml
이 ‘그레이트 비터 호’는 이집트 사람들은 <검은 호수>라는 의미로 ‘만잘라(Manzala (also Manzaleh))호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라군(lagoon)호‘라고도 부른 신성한 호수였던 것입니다.
(*) 만잘라(Manzala)호수의 항공 사진
http://en.wikipedia.org/wiki/Lake_Manzala
그런데, 이처럼 환국(桓國) 때부터 일군국(一群國)이었고, 또 고조선(古朝鮮)에 늘 조공(朝貢)을 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 ‘그레이트 비터 호수’가 있는 ‘수에즈(Suez)및 만잘라(Manzala)호수를 고조선의 해외(海外) 서단(西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해외(海外) 서단(西端)의 위치를 일군국(一群國)으로 잡는 것은 ‘삼성기전 하편’의 환국(桓國)의 동서(東西)
길이가 ‘실질적으로는 6만6천리임을’ 거론한 이야기에 맞기도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 일군국(一群國)의 위치
를 ‘기자(Giza)의 피라미드’에 가까운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잡음으로써 환국(桓國)의 정체를 ‘피라미드(pyramid)
의 연합으로 볼 수 있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삼성기전 하편’에 있는 환국(桓國) 12연방에 거론된 국가들은 모두 ‘피라미드 문명권’이고, 이들 끼리는 의외로
서로 ‘네트워킹(Networking)’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피라미드(Pyramid)나 지구라트(Zigturat)는 ‘인공(人工)으로 만든 산(山)’을 의미하는데, 환국(桓國)의 경우,
이런 ‘인공으로 만든 신전(神殿)’이 아닌 ‘자연(自然)의 신성한 산(山)’ 자체를 가진 경우도 역시 환국(桓國)의
일원(一圓)이 된 경우가 발견이 됩니다.
이미 밝혔듯이 선패국(鮮稗國)의 경우, 그 위치가 베링(bering)해협 좌측 지역으로 인데, 이 곳 지역에서는 아직
까지 피라미드(pyramid)와 같은 인공물이 발견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남쪽에 ‘펜치나(Penzhina)’이 이런(∩) 모양으로 돌아나가는 백마산(白馬山)이란 성산(聖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환국(桓國)의 일원(一圓)될 자격구비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4. 피라미드(pyramid)문명의 본질로 본 아무르(Amur)와 수에즈(Suez) connection
피라미드(Pyramid)문명이 인공(人工)-산(山)이든 혹은 천연(天然)의 산(山)이든 상관없이 이를 성(聖)스럽게 생각
하고 ‘활용하는 차원’이 문명의 공통요소로써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피라미드-문명은 인간의 ‘영혼의 사회성’을 믿습니다.
그래서 피라미드나 지구라트 같은 인공(人工)-성소(聖所)나 혹은 천연(天然)의 성산(聖山) 속에 들어가서 중요한
의식(儀式)을 진행시킵니다.
그것은 ‘사회가 계층적 구조’를 가지고, 그 정점(頂点)에 있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 사람이 죽거나,
혹은 자발적 양위(讓位)를 결심하였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우주 영혼-네트워크(network)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가?“를 ’저울대‘에 의해서 철저히 그 정당성을 묻는 것이 종교적인 진정성의 차원에서 행사됩니다.
이집트(Egypt)의 경우는 이 ’영혼의 무게 달기‘ 의식을 영혼이 깃드는 심장(心臟)의 무게를 재는 의식으로써 판별
합니다.
영혼이 맑으면 가볍기 때문에, 우주의 영혼-네트워크에 합류(合流)하게 되는데 이처럼 ’저울대‘의 판가름에 의해
영혼이 우주 네트워크에 합류하였음이 인정이 되어야만, 그 자식(子息)들이나 지정된 후계자(後繼者)가 지상(地上)
의 권력을 세습(世襲)할 권한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행위를 할 때에는 권력의 피통치자가 되는 사람이 피라미드 혹은 성산(聖山) 내부에 들어가서 독특한
에너지(energy)-장(場)에 접속함으로써 ‘영혼의 무게 달기’의 심판관인 신(神)들의 아바타(Avatar: 대리(代理)하는
신(神))으로써 ‘자리매김’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개념으로 말하면, 세습의 정당성을 ‘민주통제’하기 위해 영혼의 무게달기 의식으로써 종교적 열망
으로써 진행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 혹은 성산(聖山)의 ‘에너지(Energy)-장(場)’에 접속되어 대리(代理)하게 되는 신(神)이
다루는 범주가 ‘인간 사회’의 조화(調和)와 건강성 만을 대리(代理)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 사회와의 조화까지 접신(接神)되어서 민주 통제하는 대상이 됨은 물론, 균(菌)의 수준에 까지 내려
가서 ‘균(菌)들의 조화와 건강성’까지 대리(代理)해서 민주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국(桓國) 시절 선패국(鮮稗國)의 ‘백마산(白馬山)’이 왜 성산(聖山)이 될 수 있는가?”를 이러한 ‘피라미드
문명’의 본질로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가축(家畜)에 의한 질병이 인간에게 옮겨지는 것을 이 ‘백마산(白馬山)에서 근본적으로 치유(治癒)’함은 물론,
이 성산(聖山)에 들어와 접신(接神)한 사람들이 대리(代理) 신(神)의 자격이 되어서 ‘단군(檀君)의 승계’의 정당성
까지 ‘영혼의 무게 달기 의식’을 통해서 판별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튼 일군국(一群國) 위치가 ‘기자(Giza)’의 피라미드로 대변되는 이집트(Egypt)문명권에 바싹 다가 붙어있으
면서 범선(帆船)으로써 고조선(古朝鮮)과 왕래함은 물론 마행(馬行)으로도 연결되어서 교류(交流)가 왕성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문화인류학적인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는 많이 발견이 됩니다.
이 싸이트(site)의 ‘자료실’ 컬럼의 ‘솔본 님’의 <글-창고>에 보면,
“[동이문명 추적] 만주 또는 아무르의 수수께끼” 이란 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르의 얼굴'(The Face Of Amur)라는 이름을 붙힌 [아무르 시카치알란 유역의 인면토기 / B.C 3000]
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 솔본 선생께서 소개한
[고대 아무르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토기/ B.C 3000]
http://sati.archaeology.nsc.ru/gen-i/Virtual/Amur/Images/Big_pic/amur018.JPG
또 [아무르 강 유역 꼰돈에서 발굴된 여인상, 일명 아무르의 비너스 또는 이집트 네페르티의 조각상과 유사하다
해서 '꼰돈의 네페르티'라고 불리운다 / B.C 4000~3000]는 여인상 역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http://sati.archaeology.nsc.ru/gen-i/Virtual/Amur/Images/Big_pic/amur027.JPG
솔본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이하 인용 -
아무르가 왜 검은 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주 퉁구스인들에게 검은 색은 성스러운 것이고
이 성스러운 뱀과 관련하여 위대한 뱀 '무두리'(Muduri)의 전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것은 바로 이 거룩한 뱀 무두리였던 것이죠.
그래서 신화학자들은 이 만주 무두리를 가리켜 '우주의 뱀'(Cosmic Serpent)이라고 부릅니다.
이렇듯 성스러운 뱀의 이름은 수메르에도 알려져있습니다. 바로 '미르'(mir)라는 신령한 뱀입니다.
mir [SNAKE]
1. a mythical snake
2. a snake-like weapon
[The Pennsylvania Sumerian Dictionary]
이 수메르의 뱀 '미르'와 우리의 용 '미르'가 어떤 관계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만주의 '아무르'는 팔레스타인의
유프라테스강의 서안에도 등장합니다. 바로 구약성서에 기록된 모압인들의 땅 Amurr이지요.
The people of Amurru were intermixed with the Hurrians. The geographical region called Amurru was in
Northern Palestine with its capital at Hazor, and included the neighboring Syrian desert.
[출처: Bible Dictionary]
==> 아무르의 사람들은 후리안(히타이트의 선조로서 몽골로이드 혼혈)인들과 혼혈이다.
'아무르'라고 불리우는 지역은 하쪼르를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북쪽과 시리아의 사막을 포함한다.
이것은 우연인 것일까요?
좀 더 살펴 봅시다.
The Amurru who troubled the Egyptians of the 18th Dynasty inhabited a kingdom that included the coastal
plain of Syria between Ugarit and Byblons. Amurru made up the northernmost of the three districts forming
the "Land of Retenu". Two kings from the Amarna period were Abdi-Ashirta and his son Azir
[[출처: Bible Dictionary]
==> 이집트의 18대왕조를 괴롭힌(?) 아무르인들은 시리아 해변의 평야와 우그라이트 그리고 바빌론에 왕국을 세웠다.
아무르인들은 레테누의 땅을 삼분했으며 아마르나(이집트에서 아무르인들을 지칭한말)의 두 왕은 압디-
아실타와 그의 아들 아지르이다.
위의 해설은 대단히 완곡한 것입니다.
유프라테스강 서안의 아무르인들은 이집트를 500년간 점령했더랬습니다. 바로 힉소스를 포함한 이들이지요.
이집트 18대 왕조를 정복한 팔레스타인의 아무르인들은 19대 왕조에 람세스를 등장시키고 20대왕조에 이르면
드디어 이집트에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죠.
아울러 아무르인들이 세운 모합의 왕 중에는 바로 만주 아무르의 위대한 뱀 무두리와 똑 같은이름의 'The King
Muduri'가 등장합니다.
-이상 인용마침 -
‘솔본 선생’은 아무르(=흑룡강(黑龍江)) 사람들이 이집트와 메쏘포타미아 지역에 진출(進出)한 ‘학자들의 글’을 다른
곳에서도 증언(證言)하고 있습니다.
“[동이문명탐험]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하 인용 -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속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왜 이런 사진은 공개되지 않는 것일까요?
위 미이라의 주인공은 바로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입니다. 그리고 여신은 바로 하토르(Hathor)이지요..
이들이 셈족이나 아프리칸으로 보이십니까? 만일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인이었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 왕조시대 직전 이집트인들은 동방에서 온 새로운 종족에 의해 정복당했다"
-영국의 이집트 학자 브라이언 에머리-
"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비흑인 침략자"
- 플린더스 페트리-
그러면서 이집트에서 ‘파라오(Parao)의 부인(婦人)이 되면서 ’사랑의 여신‘이자 ’창조의 여신‘이기도 한 ’하토르 여신‘
의 모습이 ’동양인의 특징‘ 이 나타남을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이 제공합니다.
(*) 동양인의 얼굴을 한 ‘하토르 여신상’
http://www.egypte-antique.com/Hathor_45.jpg
- 이하 인용마침. -
이처럼 ‘흑룡강’에서 홍해(紅海)까지 연결되는 흔적이 양쪽에 모두 남이있는 증좌(證左)를 적시(摘示)하였는데,
진서(晉書)는 그 길이 대륙(大陸)거리로 5만리 걸리고, 마행(馬行)으로 500리 걸리는 길의 루트(roote)까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아인’의 얼굴이 누가봐도 분명한 ‘하토르 여신’의 모습은 ‘피라미드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하였을까?“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여신(女神)이기도 합니다.
묘하게도 ‘피라미드 벽화’에는 이 아시아(Asia)에서 온 ‘하토르 신전’에서 전구(電球)를 든 부조(浮彫)가 발견이
됩니다.
(*) 하토르 신전 벽화에 있는 대형 전구(電球)를 볼수 있는 곳.
http://blog.daum.net/mkca007/5301390
이 전구(電球)는 ‘피라미드 문명’에서 ‘영혼의 무게 달기 의식’을 치루려면, 계승권의 정당성을 신(神)의 아바타
(Avatar)로써 접신(接神)해서 ‘민주통제’하는 일종의 감응(感應)장치로 피라미드에서는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금동(金銅) 신발을 신음으로써 전기(電氣)에너지와 각종 피라미드에
들어오는 ‘별빛 에너지’ - 그리고 그속에서 부르는 주문(呪文)등에 의해서 신(神)의 대리가 되는 접신(接神) 장치
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 ‘몽당연필 님’의 블로그에서 ‘셰숀크 2세의 장례용 샌들’을 볼 수 있는 곳.
http://blog.naver.com/tsfmom?Redirect=Log&logNo=140029171131
이런 사실은 ‘흑룡강 주변의 아시아 인’들이 ‘피라미드 안의 비밀의식’을 치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식을 전한
‘접신(接神) 에너지 장(場)’임을 ‘하토르 여신’의 친정(親庭)쪽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파라오(=왕(王))’ 역시 피고(被告)로써 이 ‘에너지 장’ 속에서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 하는데,
이 때 ‘왕의 미이라’의 입을 열게하는 ‘우푸아우트(Upuaut)’란 의식용 ‘운석(隕石)철(鐵)로 만든 쇠막대기’가 바로
‘북두칠성’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입열기 의식’에서 실제 입을 열어서 말하는 사람은 ‘죽은 왕(王)의 영혼’에 접신된 내부의 참배(參拜)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게지만, ‘우푸아우프(Upuaut)’가 북두칠성 모습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입열기 의식>에서 사용되는 <운석(隕石)철(鐵)- 막대기>가 북두칠성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
(*) 참고 : 클릭하면,<책 표지>가 뜨게 되는데, page를 넘기는 것은 마우스(mouth)의 가운데 ‘바퀴’는 움직이거나,
혹은 자판의 우측의 (↓)표시를 클릭하면, 됩니다.
‘우푸아우트(Upuaut)’의 모습은 ‘더이상 넘길수 없는 마지막 페이지 (↓)을 12번 클릭하면 나타납니다. (*)
http://www.gizapyramids.org/pdf%20library/bauval-gilbert_de_28.pdf
결국 이런 이야기는 이집트(Egypt) 피라미드(Pyramid)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전한 것이 다름 아닌 ‘하토르
여신’으로 표상된 ‘한반도-만주 지역’의 사람들이 두 지역을 왕래하면서 접신(接神)-기술을 왕래시켰음을 의미합
니다.
그런데, 이집트 쪽에서 연결되는 나라가 바로 일군국(一群國)이며, 그 위치가 오늘날의 수에즈(Suez) 항(港)의
북쪽의 ‘그레이트 비터 호(=만잘라(Manzala)호)’라는 것입니다.
(*) 참고: 이런 에너지 장을 통해 접신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 곳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1. [순방]천문(天文)에 드러난 ‘두 피라미드(Pyramid) 세계’ -[C]
2. [순방] 실달성(實達城)피라미드(Pyramid)의 비밀-[D] (*)
그런데, 이집트(Egypt)문명과 ‘한반도-만주’로 연결되는 해로(海路)및 육로(陸路)의 거점(據點)인 일군국(一群國)의
위치가 오늘날 ‘그레이트 비터 호’로 비정된다는 것은 이집트(Egypt) 사람들의 세계관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이집트 인들은 나일(Nile)강의 동(東)쪽에 주로 무덤을 만듭니다.
이는 태양신이 동쪽에서 떠오르면서 ‘죽음을 넘어서 다시 소생하는 것’과 관련되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덤’들이 있는 곳의 동쪽 가장 끝에 바로 ‘검은 호수’라는 의미를 지닌 ‘만잘라 호(Manzala lake)가
있는 것입니다.
“검다”는 색감(色感)은 “깊이가 있다.”는 느낌으로 성(聖)스럼을 표현함에 있어서 인류가 공통으로 활용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5. 왜 고조선(古朝鮮)은 환국(桓國)들에게 조공(朝貢)을 받는가?
피라미드 문명이 ‘영혼의 사회성’을 가장 중요시여기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개개인의 영혼’의 구원(救援)보다도
‘이집트(Egypt)의 피라미드 문명 전체’의 죽음 까지도 소생(蘇生)시키는 것이 바로 만잘라 호(Manzala lake)라는
인식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파라오(Pharaoh)의 계승권은 “주로 그 ‘자식’들에게 주어지는데, 이 ‘파라오’의 핏줄 전체가 ‘민주통제’에서
벗어날 경우는 어찌해야하는가?”하는 피라미드 문명 본질의 한계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 역사를 보면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 배달화백으로 ‘피라미드’의 최고 군장(君長)의
혈족이 아닌 다른 집단과의 통합과 병행(竝行)해서 ‘새로운 파라오(Pharao)를 외부에서 선출할수 있는 배달화백
(倍達和白)을 ’세계헌법‘으로 제시하는 이른바 배달국(倍達國)시대를 거친 것으로 되었습니다.
배달화백은 피라미드(pyramid)와 같이 밀실(密室)에서 ‘영혼의 사회성’을 밀도(密度)있게 체험하는 그 정도가
부족한 흠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황제(黃帝)가 “제권(帝權)은 피라미드 문명의 후계자에게만 종속되어야만 영혼의 순수성이 더욱 보장된다.”
고 주장으로 ‘세계헌법’을 관철을 할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비서갑(斐西岬)의 여주(女主) 형천(刑天)께서 거부권(拒否權)을 행사하자, 이를 황제가 머리와 사지를 잘라
냈지만, 형천(刑天) 여신(女神)께서는 부활하시어 “아이에게 젖주는 젖을 눈(目)으로 하고, 태(胎)줄의 입(口)으로
말하노니, 특정집안, 특정 피라미드 문명에게만 세상의 권력과 영혼을 위탁하는 것은 인류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반발하여서 결국 탁록대전이란 쓰디쓴 경험을 한 후에 고조선 시대로 넘어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고조선은 두 ‘피라미드 문명’을 한계를 철저히 경험하면서 이를 동시 초극하는 쪽으로 문명의 방향을 튼 ‘선가
(仙家) 종주국(宗主國)’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왜 고조선(古朝鮮)때에 ‘뭇 피라미드 문명’들 기자(Giza)는 물론 ‘수메르 문명’, ‘우르 문명’이 왜 조공(朝貢)을
하러왔는가?”를 해명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바탕을 보여주는 단서가 됩니다.
‘배달화백’과의 건전한 연결고리를 고조선(古朝鮮)으로 부터 배우지 않으면, 자신들도 제2의 ‘탁록대전’을 겪게 됨을
인지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집트(Egypt)는 ‘태양이 떠오르는’ 가장 끝의 오늘날 ‘그레이트 비터 호수(Great Bitter lake)’에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할수 있는 성호(聖湖)를 만들고는 여기에 실달성(實達城)-피라미드 문명과 조화를 아픈
탁록대전의 경험을 통해 완성한 고조선(古朝鮮)의 지혜를 그대로 물려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환국(桓國)은 고조선(古朝鮮)의 ‘선행(先行) 문명’으로 여기고 배우기 위해서 조공(朝貢)을 하였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6. 배달화백을 할수 있는 적지(適地)인 만잘라 호(Manzala lake)
그런데, ‘Great Bitter lake’는 깊어서 43m나 되고, 또 호수 표면적이 변동이긴 하나 대략 200km² 에서 250 km²로
잡는 거대 호수입니다.
(참고: The lake’s surface is 140 ft (43 m) below sea-level, and covers about 78 mile² (200 km²). )
그런데 이 ‘그레이트 비터 호’는 2008년 기준으로 남북으로 47Km이고, 동서로 30키로 됩니다. (As of 2008 it is 47km
long and 30km wide)
그런데 어떤 자료는 이를 250km²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래 ‘수에즈 운하 지도’에 보다시피 ‘리틀 비터 호수
(Littel Bitter lake)’까지 포함해서 그 표면적을 나타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리틀 비터 호수(Littel Bitter lake)’와 ‘그레이트 비터 호수(Great Bitter lake)’에는 만(灣)처럼 생긴 것이
이집트(Egypt)쪽으로 약간 들어가면서 있습니다.
(*) 만(灣)이 있음을 보여주는 항공 사진
http://www.mapsofworld.com/egypt/maps/suez-canal-map.jpg
(*) ‘수에즈 운하 지도’
http://www.britains-smallwars.com/Canal/Map.htm
배달화백은 ‘작은 공동체의 통합’과 동시에 ‘큰 공동체의 통합’을 하여야하는데, ‘자연스럽게 ’작은 공동체의 통합‘은 ‘
리틀 비터 호수(Littel Bitter lake)’에서 ‘큰 공동체의 통합’은 ‘그레이트 비터 호수(Great Bitter lake)’에서 하면되는
천혜(天惠)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배달화백을 할 때에는 명적(鳴鏑)화살을 쏘는 사대원로(射臺垣路)가 ‘하나의 방죽’으로 호수(湖水)를 둘러치고,
또 그 밖에 ‘검토분야’인 정목(政目)간에 ‘말발’을 이동하기 위해서 백마(白馬)를 타고 달리는 백마원로(白馬垣路)
라는 2개의 방죽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이 일군국(一群國)의 호수(湖水)는 워낙 커서 호수(湖水)를 에워싸는 사대원로(射臺垣路)와 백마원로(白馬
垣路)는 만들지 못하고, 이집트(Egypt)쪽의 만(灣)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를 각기
‘작은 호수’와 ‘큰 호수’쪽으로 ‘알맞은 거리’만큼 뻗어나가도록 일군국(一群國)은 쌓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두 호수(湖水) 주변을 빙~ 둘러서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를 쌓았다면, 이는 분명히 ‘아래 구글(google)
지도에 보이는 2개의 염호(鹽湖)를 사대원로(射臺垣路) 안쪽에 집어넣고 쌓았을 것입니다.
또 이런 그 밖에 또 배달화백에 참여하 사람들이 ‘쉬면서 거주하는 마을’을 둔 최외곽의 자미원로(紫薇垣路)를 쌓았
다면, 이집트(Egypt)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일군국(一群國) 왕성이 있었다면, ‘전시(戰時)에 국왕(國王)이 ’전쟁지휘권‘을 잃는 왕성(王城)은 ’그레이트 비터
호수‘와 ’리틀 비터 호수‘ 사이의 조여주는 곶(串)에서 ’그레이트 비터 호수‘쪽에서 옴폭 들어간 만(灣)에 세워졌을
것입니다.
또한 전시(戰時)에 왕(王)이 전쟁지휘권을 지닌 왕성(王城)은 ‘그레이트 비터 호수’ 북안(北岸)에서 운하(運河)가
나가는 지역의 좌측에 세우는 것이 가장 ‘전쟁 지휘’를 유리하게 하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성곽구조가 합당한 것임을 아래 ‘수에즈 운하에 대한 구글(google)지도’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면, 이 두 호수 ‘사이’를 조여주는 곶(串)과 섬(島)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흥미있는 것은 ‘리틀 비터 호수(Little Bitter lake)’의 오른 편에 보면, ‘애즈 슈웨이즈 호(As Suways lake)’가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레이트 비터 호’ 의 북동(北東)쪽 어깨 위에 ‘알 이스마일리야(Al Ismailiya)호’가 있음이 발견이 됩니다.
이는 외부(外部)와 물(水)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사해(死海)와 같이 ‘수영(水泳)을 못하는 사람’도 둥둥 뜨게 하는
호수(湖水)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 구글(google)지도
① 두 호수 사이의 곶(串)과 섬(島)
② 애즈 슈웨이즈 호(As Suways lake) 그리고 ‘알 이스마일리야(Al Ismailiya)호’
http://maps.google.co.kr/maps?hl=ko&lr=&q=Suez+canal+map&um=1&ie=UTF-8&hq=&hnear=%EC%88%
98%EC%97%90%EC%A6%88+%EC%9A%B4%ED%95%98,+%EC%9D%B4%EC%A7%91%ED%8A%B8&gl=k
r&ei=1XXCTMCJI4eGvgP-kLy7CA&sa=X&oi=geocode_result&ct=title&resnum=1&ved=0CB0Q8gEwAA
아무튼 우리는 일군국(一群國)이 배달화백(倍達和白)을 이집트 문명에 전하는 고조선(古朝鮮)의 해외(海外) 서단
(西端)인 지역임을 기억하면, ‘리틀-비터 호’까지 활용하여야하기 때문에, 이 호수(湖水)를 이집트인들이 ‘검은
호수’라고 발음한 만잘라 호(Manzala lake)라고 칭하는 것이 더욱 합당함을 알게 됩니다.
즉 일군국(一群國)은 ‘만잘라 호수’를 에워싸고 있었던 나라였던 것입니다.
- 각설(却說)
아무튼 “환국(桓國)이 ‘피라미드 연방(聯邦)’을 의미하고, 또 환국(桓國)의 영역이 동서(東西)로 ‘대륙 이수(里數)’로
볼 때에 6만6천리에 이른다.”라고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일군국(一群國)의 위치를 확실히 찾을수 있게 함은 물론,
환국(桓國)12연방 가운데 있는 우루국(虞婁國)과 수밀이국(須密爾國)이 어디인가를 쉽게 비정하게 할 수 있게 합
니다.
많은 사람들이 ⑥우루국(虞婁國)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Ur)’로 또 ⑫수밀이국(須密爾國)은 수메르(Sumeru)문명
의 ‘수메르(Smeru)’로 비정하고 싶어도 환국(桓國)의 영역이 그동안 동서(東西) 2만여리에 한정된다고 해석해 왔기
때문에, 이 나라들이 그 밖에 있고, 이러한 불일치 때문에 자신 있는 비정을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속칭되는 곳에 있었던 이들 우루국(虞婁國)이나 수밀이국(須密爾國)은 물론
이집트(Egypt) 문명까지도 환국(桓國)이 동서 6만6천리임을 올바로 해석할 때에는 환국(桓國)의 동서(東西)의 크기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위치 비정’에 무리(無理)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환국(桓國) 12연방 가운데,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나라는 위에 설명한 선패국(鮮稗國), 수밀이국(須密爾國),
우루국(虞婁國)의 3나라인데, 나머지 나라 중에서 ①비리국(卑離國) ②양운국(養雲國) ③구막한국(寇莫汗國)
⑤일군국(一群國)의 위치에 대해서는 신기하게도 진서(晉書)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진서(晉書)에 나와 있는 [1]비리국(卑離國) [2]양운국(養雲國) [3]구막한국(寇莫汗國) [4]일군국
(一群國)의 위치를 확실히 안다면, 우리가 모르는 지역은 환국(桓國)12연방 가운데서 (12-(3+4)=5)가 되기 때문에,
다섯 나라가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6. 진서(晉書)를 쓴 중국대륙 사람들이 지닌 ‘깊은 수수께끼’인 오환국로(五桓國路)!
중요한 것은 환국(桓國) 12연방의 국명이 고조선(古朝鮮) 시대는 물론 훨씬 후인 관경사국(管境四國)시절 때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그 연속성 때문에, 환국(桓國)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고, 이런 면에서 진서(晉書)의
기록은 깊히 ‘따져보아야 할 사료(史料)’인 것입니다.
진서(晉書)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裨離國在肅慎西北,馬行可二百日,領戶二萬。
: 비리국(裨離國)은 숙신(肅愼)의 서북(西北)지역인데, 말(馬)로써 200일을 가(可) 가는 곳인데,
20,000의 호구(戶口)를 거느린다.
[주의(注意)]
숙신(肅愼)의 위치가 대략 오늘날 ‘캄챠카 반도’의 뿌리와 콜림스키(Kolymskiy)산맥을 연결하는 백마산(白馬山)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에, 그 서북(西北) 쪽이라는 기록(紀錄)을 보면, 현대인들은 당황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서북쪽이면 위서(魏書)에서 실위국(失韋國)이라고 표현하고, 삼성기전(三聖紀全) 하편(下篇)에서
환국(桓國)12연방 가운데 하나인 시위국(豕韋國)이라고도 표현한 선패국(鮮稗國)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의
중심강이 콜리마(Kolyma)강이므로, 그 서북(西北)쪽이면, 곧 북극해에 다다르게 되고, 이는 말(馬)로 200일을 가기
는 커녕 단 길어야 2주 정도면 북극해(北極海)에 막혀서 더 이상 갈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입니다.
고대(古代) 아시아(Asia)인들은 북극해(北極海)에서 ‘보이지 않는’ 천지(天地)의 축(軸)이 ‘황금말뚝’이-이는 북극
오러라를 뜻함- 올라가는 것과 곤륜산(崑崙山) 혹은 수미산이라고 하는 ‘티벳 고원’이 똑같이 ‘하늘을 이고 있는’
천지(天地)의 축(軸)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숙신(肅愼)의 서북(西北)이라는 말은 ‘티벳 고원(高原)의 서북(西北)’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숙신(肅愼)에서 말(馬)로 200일 가는 ‘티벳 고원’ 서북(西北)쪽을 ‘고대 아시아(Asia)인들은’
<裨離國在肅慎西北>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원문(原文)]
養雲國去裨離馬行又五十日,領戶二萬。寇莫汗國去養雲國又百日行,領戶五萬餘。
一群國去寇莫汗國又百五十日,計去肅慎五萬餘裡。其風俗土壤並未詳。
[해석(解釋)]
: 양운국(養雲國)은 비리(裨離)로 부터 말(馬)로 또 50일을 가야되며 20,000 호구(戶口)를 거느린다. 구막한국(寇莫
汗國)은 양운국(養雲國)으로 부터 또 100일을 가야하는데, 50,000 호구(戶口)를 거느린다. 일군국(一群國)은 구막
한국(寇莫汗國)으로 부터 또 150일을 가야한다.
숙신(肅愼)으로부터 (최종 일군국(一群國)까지의) 간 것을 계산(計算)하면 5만여리가 되는데, (비리국(卑離國)을
비롯한 4나라에 대한) 그 풍속(風俗)과 토양(土壤)에 대해서는 모두 알려진바 없다.
- 각설(却說)
위 진서(晉書)의 기록에서 일군국(一群國)까지 마행(馬行)으로 일수(日數)를 전부 합치면
(200일+50일+100일+150일=500일)이 됩니다.
따라서 숙신(肅愼)으로 부터 일군국(一群國)까지의 여행길을 ‘마행(馬行)500일로(日路)’라고 이름붙일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진서(晉書)에는 비리국(裨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일군국(一群國)에 대해서 “
그 풍속(風俗)과 토양(土壤)에 대해서는 (*)모두(*) 알려진바 없다. (其風俗土壤(*)並(*)未詳)”고 하면서 마행(馬行)
으로 500일 됨과 또 거리가 대륙 이수(里數)로 ‘5만리(萬里)’가 됨을 왜 기록하고 있는가?
이는 당시 고구리(高句麗) 사람들이 오늘날 캐나다(Canada)지역인 동부여(東夫餘)를 바탕으로 미주(美洲)대륙의
희귀(稀貴) 물자(物資)를 숙신(肅愼)에서 모아서 중국대륙과 교역(交易)및 조공(朝貢)관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이 미주(美洲)대륙의 물자들이 오직 중국대륙에만 교류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지역으로 교류(交流)되는 것임을 진(晉)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동부여(東夫餘)를 비롯한 미주(美洲)대륙의 휘귀 물품이 서역(西域)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로마(Roma)’인 대진국
(大秦國)과는 ‘또 다른 끝’까지 교역됨을 눈치 챘었던 것이지요. 중국대륙에 공급되지 않는 미주(美洲)대륙의 상품이
대진국(大秦國)이 아니라면 “어디에 까지 가는가?” 하는 지적 호기심에 질문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한 고구리(高句麗)
사람들이 대답한 것을 듣고 옮겨 적은 것임이 바로 일군국(一群國)까지의 여정(旅程)을 그린 <진서(晉)書)>의 기록
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진서(晉書)의 비리국(裨離國) 조(條)에서 위 마행(馬行)500일로(日路)를 설명한 글 다음에 이어지는 다음 문단
(文段)에 의해서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泰始三年,各遣小部獻其方物。至太熙初,復有牟奴國帥逸芝惟離、模盧國帥沙支臣芝、於離末利國帥加牟臣芝、
蒲都國帥因末、繩全國帥馬路、沙樓國帥釤加,各遣正副使詣東夷校尉何龕歸化。
: 태시(泰始) -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연호-3년(A.D 267년)에 (상기(上記)의) 각나라들은 소부(小部)들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헌납하였다. 태희(太熙) 초(初)(=A.D.290년)에
다시 모노국(牟奴國)의 국수(國帥) 일지유리(逸芝惟離)와 모로국(模盧國)의 국수(國帥) 사지신지(沙支臣芝)와
어리말리국(於離末利國)의 국수(國帥), 모신지(牟臣芝)와 포도국(蒲都國)의 국수(國帥) 인말(因末), 승전국(繩全國)
의 국수(國帥) 마로(馬路), 사루국(沙樓國)의 국수(國帥) 삼가(釤加)는 각각(各各) ‘높은 사람의 뜻’인 예(詣)를-‘
국수(國帥)의 뜻’을 뜻함-지니게 하여 보내어 동이(東夷) 교위(校尉)인 하감(何龕)에게 귀화(歸化)시켰다.
[의미해설]
여기에 보면, 모노국(牟奴國),모로국(模盧國),어리말리국(於離末利國),포도국(蒲都國),승전국(繩全國),사루국
(沙樓國)등이 나타나는데, 이들 나라 명칭은 적어도 좌계는 처음 듣는 국명(國名)이고, 단지 포도국(蒲都國)은 “
포도(葡萄)가 많이 나는 나라인가?” 하는 느낌만 올뿐 , 그 위치는 알 수 없는 국명(國名)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비리국(裨離國)을 비롯한 4개의 나라에 협력하고 있는 소국(小國)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국왕(國王)들의 ‘어떤 높은 뜻’이 담긴 서신(書信)을 -이를 예(詣)라고 합니다. -
가지고 와서 ‘동이(東夷)와 교류(交流)하는 전담 직책’인 진(晋)나라의 <동이(東夷) 교위(校尉)>하감(何龕)에게
배속(配屬)시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적힌 진서(晉書)의 비리국(裨離國) 조(條)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서융(西戎) 편이다는데 있습
니다.
이 진서(晉書)의 서융(西戎)편(編)에는 ① 토곡혼(吐谷渾)、②언기국(焉耆國)、③구자국(龜茲國)、④대완국(大宛國)、
⑤강거국(康居國)、⑥대진국(大秦國)의 6개의 조(條)에 걸쳐서 각 ‘나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토곡혼(吐谷渾)은 글자의 뜻 자체가 ‘골짜기에 토(吐)해냄이 혼융(渾融)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중국대륙에서
서역(西域)으로 감숙주랑(甘肅走廊) 끝에 있는 돈황(敦煌)을 중심으로 해서 오늘날 청해성(靑海省)과 ‘신강 위구루
자치구역’이 있는 사막지대에 이르는 ‘티벳(Tibet)지역을 말합니다.
문자 그대로 ’티벳 고원‘의 사람과 중국대륙을 혼융(渾融)해서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의 ’큰 골짜기(=대곡(大谷))‘
으로 토(吐)해내는 것입니다.
(*) 감숙성 지도.
http://parkchina.com.ne.kr/map/gamsuk.JPG
그리고, 언기국(焉耆國)의 위치는 아래 ‘신강 자치구 지도’에서 ‘타클라칸 사막’이 있는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철도(鐵道)가 지나는 곳에 개도하(開都河)가 흘러들어 가는 박사등호(博斯騰湖)가 그려져
있는데, 바로 이 호수 북(北)쪽이 지금도 언기(焉耆)라고 적혀있어서 이곳이 언기국(焉耆國)이 되는 곳입니다.
또 구자국(龜茲國)은 이런 언기국(焉耆國)에서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 ‘윗부분’을 타고 서행(西行)하는 철도를
따라가다 보면, [217]도로와 교차(交叉)되는 곳에 고차(庫車)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구자국(龜茲國)이
도읍이 있었던 곳입니다.
(*) 언기국(焉耆國)과 구자국(龜茲國)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신강 위그루 자치구 지도’
http://parkchina.com.ne.kr/map/singang.JPG
그 다음 조(條)에 나오는 대완국(大宛國)은 ‘위 신강 자치구 지도’에서 한등격리봉(汗騰格里峰: 6995m)로 적혀있는
‘칸-텡그리 산’ 즉 천산(天山) 좌측에 [이색극호(伊塞克湖=(Ysik-kol lake)] 밑에 보면, 납타하(納佗河)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카라-다르야( Kara Daryya) 강으로써 천마(天馬)가 난다는 유명한 ‘페르나가(Fernaga)계곡’
이고, ‘움푹패인 곳’을 한자로 완(宛)이라고 하는데, 이 ‘페르나가(Fernaga)계곡’이 워낙 움푹패여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대완국(大宛國)인 것입니다.
(*) ‘칸 텡그리(汗騰格里峰: 6995m), 좌측(左側)이식콜 호(Ysyk-kol=이색극호(伊塞克湖)) 남측(南側) 납타하(納佗河)
계곡에 있었던 대완국(大宛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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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거국(康居國)은 진서(晉書)에 “강거국(康居國)은 대완(大宛)의 서북(西北)쪽으로 2,000리를 가야 가히
그 접경(接境)에 이른다.(康居國在大宛西北可二千里)”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대완국(大宛國)의 위치가
오늘날 ‘키르키스스탄’이라면, 강거국(康居國)은 ‘카자크스탄(Kazakhstan)’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대진국(大秦國)은 잘 알다시피, 로마(Roma)를 뜻하는 말입니다.
문제는 비리국(裨離國) 조(條)에서 마행(馬行)으로 500일로(日路) 가는 것은 숙신(肅愼)에서 천산(天山)을 넘어서
서행(西行)하여서 가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대륙에서 이른바 씰크-로드(silk-load)를 가기 위해서 들려야하는
진(晉)나라 사람들이 잘 아는 대완국(大宛國), 강거국(康居國) 쪽으로 가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무려 마행(馬行)
500일로(日路)로 가는 무역품들이 “천산(天山)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천산(天山)남로(南路)에 있는
언기국(焉耆國)과 구자국(龜茲國)에는 ‘감숙주랑’을 통해서 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불쑥 나타나서 지나갈 뿐만이
아니라, 언기국(焉耆國)과 구자국(龜茲國)을 거쳐서는 홀연히 다른 곳으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대체 어디서 흘러나와서 어디로 흘러나갔는지? 또 어떤 길로 천산(天山)을 어찌 넘었는가?”하는 것이
당시 진(晉)나라 사람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오늘날 ‘수에즈(Suez)’인 일군국(一群國)까지는 마행
(馬行)500일로(日路)로 고구리(高句麗) 사람에게 확인받아서 기술한 것이 위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이 진서(晉書)의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진서(晉書)의 편제(編制)에 적혀있는 비리국(裨離國)은 동이(東夷) 편(編)에 한 조(條)로써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1]부여국(夫余國)이 동이(東夷)편(編)의 한 조(條)가 되고, [2]그 다음 마한(馬韓) 진한( 辰韓) 변한(弁韓)이
한 조(條)가 되고 [3] 숙신씨[肅慎氏]가 한 조(條)가 되고, [4] 왜인(倭人)이 한 조(條)가 되고 [5]맨 나중에 비리
(裨離)가 한 조(條)가 되는데, 여기에 괴상하게도 마행(馬行)500일로(日路)에 천산(天山)을 넘어서 5만리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는 것입니다.
이미 진(晉)나라 사람들이 숙신(肅愼)이 오늘날 베링(Bering)해협 좌측에 있고, 또 “무언가 바다를 건너서” 오늘날
미주(美洲)대륙의 물자(物資)를 실어오는 교두보(橋頭堡)임도 알고 있었음을 뜻하고, 이를 통한 교역(交易)이
천산(天山)을 넘어서 가서 마행(馬行)으로 500일로 걸리는 과정의 중요국가 명칭이 [1] 비리국(裨離國)
[2] 양운국(養雲國) [3] 구막한국(寇莫汗國) [4]일군국(一群國)이 있었음을 단지 그 국명(國名)만을 알고 있었
음을 뜻합니다.
또 진(晉)나라는 이들 천산(天山)을 넘어있는 4개국이 만든 교역로(交易路)를 통해서 이로부터 조공(朝貢) 공정상
이익을 두둑히 받기도 하였고, 이런 4 나라의 휘하(麾下)에 모노국(牟奴國)이며, 모로국(模盧國)이며, 어리말리국
(於離末利國)이며, 포도국(蒲都國)이며, 승전국(繩全國)이며,사루국(沙樓國)이 있는 것 역시 이런 소국(小國)의
국수(國帥)들의 -이는 ‘나라의 통솔자’란 의미로 왕(王)을 뜻합니다.-
예(詣)를 지닌 정사(正使)들과 부사(副使)들을 <동이(東夷)-교위(校尉)>에 배속시켜서 업무협조까지 하고 있었기에
역시 알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정작 숙신(肅愼)으로 부터 어떤 코스(course)를 통해서 언기국(焉耆國)과
구자국(龜茲國)을 나타나는지? 또 천산(天山)을 넘어 갑자기 사라지니깐 도대체 어디로 가지?”는하는 의아감은
물론이고, 4나라의 풍습(風習)도 전혀 모르고, 그저 ‘투자’하고 그 ‘댓가만’ 듬뿍 받으니깐 “동이(東夷)들이 교역하는
행위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것은 좋지만, 하~!!! 영 알수 없는 일이야!!”하고 있었다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진서(晉書)에 적혀있는 “숙신(肅愼)의 서북 - 즉 티벳(Tibet)의 곤륜
산맥 서북(西北)쪽으로 있으면서 또 숙신(肅愼)의 백마산(白馬山)으로부터 마행(馬行)으로 200일(日) 걸려서 있다.
(裨離國在肅慎西北,馬行可二百日)”는 비리국(裨離國)은 천산(天山)을 넘어있는 비리국(卑離國)임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서(晉書)에서는 오늘날 씰크-로드(silk-road)로 가기 위해서 천산(天山)남로(南路)의 두 나라 언기국
(焉耆國)과 구자국(龜茲國)뿐만 아니라, 감숙주랑(甘肅走廊)이 ‘타클라칸 사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토곡혼
(吐谷渾)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이 기록된 내용을 보아서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중국대륙에 있는 사람들은 이 천산(天山)넘어 있는 비리국(卑離國)이 중국대륙이 서역(西域)과의
교류를 하는데, 주도적(主導的)인 역할을 함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서(晉書) 이전에 쓰여진 위지(魏志)에는 중국대륙-한반도-만주-청령열도(일본열도)를 내부는 물론
그 밖의 해외(海外)에도 산재(散在)해 있는 마한 54국명의 목록이 나타나 있는데, 그 가운데, 비리(卑離)를 국명
(國名) 끝에 붙이는 나라가 아래와 같이 무려 8개국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 위지(魏志)의 마한(馬韓) 54개국 목록
有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
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①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
②卑彌國、(①과 같으나 서로 동서(東西)의 다른 지역에 있는 같은 국명(國名)을 쓰는 비리(卑離)라고 봐야함)
③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④内卑離國、感奚國、萬盧國、⑤辟卑離國、臼斯烏
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⑥牟盧卑離國、臣蘇塗國、(A)莫盧國、古臘國、臨素半國、臣雲新
國、⑦如來卑離國、⑧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凡五十餘國
이런 8개의 비리국(卑離國) 가운데, 현재 확실히 아는 비리국(卑離國)은 천산(天山)넘어 있는 숙신(肅愼)에서
마행(馬行)으로 200일 걸리는 진서(晉書) 비리국(裨離國)이 하나입니다.
진서(晉書)에서 비록 국명(國名)의 어미에 비리(卑離)라는 꼬리를 달진 않았지만, 비리(卑離)-네트워크(network)에
가입되어 있음이 확실하면서, 역시 천산(天山)을 넘어 있는 것이 분명한 나라가 하나 등장하긴 합니다.
그것은 “태희(太熙) 초(初)(=A.D.290년)에 4개 나라의 휘하(麾下)에 있으면서 국수(國帥)의 예(詣)를 지닌 채,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를 동이(東夷) 교위(校尉)인 하감(何龕)에게 배속시킨” 여러 나라들 가운데.
모로국(模盧國)의 국수(國帥) 사지신지(沙支臣芝)의 나라가 위 마한 54개국 가운데, (A)모로국(莫盧國)인 것이지요.
마한(馬韓)54개국 가운데, 비리국(卑離國)이 2번 등장하는데, 천산(天山) 넘어 있는 나라는 비리국(卑離國)은 바로
진서(晉書)에 비리국(裨離國)이라고 <비>를 비(裨)라고 쓴 비리국(卑離國)이 하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환국(桓國) 다시 말하면, ‘피라미드’나 성산(聖山)을 지니고 있는 비리국(卑離國)이라고 볼 수 있고,
나머지 하나의 비리국(卑離國)은 북부여의 불이성(不二城) 근처에 있으면서, 해외(海外)와의 모든 교역을 총괄해서
북부여에게 보고하는 비리국(卑離國)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리국(卑離國)은 삼한인(三韓人)들이 해외교역을 하는 네트워크(network)이니깐 통합을 위해서는
북부여에 비리(卑離)-네트워크(network)의 정보를 통합해서 보고하고,
또 북부여의 하명(下命)을 전달하는 비리국(卑離國)이 있는 것이 보다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비리국의 2 나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산(天山)넘어 있는 비리국(卑離國)을 이 나라를 환국(桓國)때 부터
있었던 ‘오래된 비리국(卑離國)’이라서 <비리(卑離)-환국(桓國)>으로 존칭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북부여의 불이성(不二城) 근처에서 이 마행(馬行)500일로(日路)에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비리국(卑離國)을 ‘북부여’의 제(帝) 혹은 단군(檀君)에게 시중(侍中)들기 때문에,
이를 비리(卑離)-시중국(侍中國)으로 구분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비리환국(卑離桓國)이 어디에 있었길 래, 그토록 진(晉)나라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혀(=설(舌))를
내두른 것일까?
이 환국(桓國)-비리국(卑離國)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은 숙신(肅愼)에서 일군국(一群國)까지 마행(馬行)
500일로(日路)를 규명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1) 우리는 숙신(肅愼)의 백마산(白馬山)의 위치를 알고 있고, 또 이 백마산(白馬山)을 성산(聖山)
으로 여기는 선패국(鮮稗國)이 환국(桓國)임을 알고 있습니다. [2] 또 일군국(一群國)이 홍해(紅海) 북안(北岸)에서
범선(帆船)을 타고 들어가서 쉬기엔 안성맞춤인 ‘그레이트 비터 호’임을 알고 있습니다.
[3]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천산(天山)넘어의 비리국(卑離國)만 안다면, “마행(馬行)500일로(日路)가 의미하는
교역로(交易路)가 어떤 루트(roote)를 통해 가는지?”를 파악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진서(晉書)에 일군국(一群國)과 비리환국(卑離桓國) ‘사이’에 구막한국(寇莫汗國)과 양운국(養雲國)이
있음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마행(馬行) 500 일로(日路)는 결국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수 있습니다.
서(西)(이집트) - ①일군국(一群國)-②구막한국(寇莫汗國)-③양운국(養雲國)-④비리환국(卑離桓國)-
⑤선패국(鮮稗國)- 동(東)(베링(Bering)해협
이런 이야기는 ‘마행(馬行)500일로(日路)’가 실제로는 5환국(桓國)을 연결한 길(=로(路))이기 때문에,
오환국로(五桓國路)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오환국로(五桓國路)! - 이는 베링(bering)해협과 수에즈(Suez)가 수로(水路)로나 육로(陸路)로나 환국(桓國)시절
때부터 연결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오환국로(五桓國路)란 씰크-로드(silk-load)보다 더 중요한 세계최고의 교역로(交易路)를 다음 회(回)
에서는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환국(桓國)때 부터 있었던 오환국로(五桓國路)가 있었기 때문에, 개사원(蓋斯原)의 욕살 고등(高等)께서 귀방(鬼方)
을 멸하고, 두막루(豆莫婁)로 철수할 때에, 비리환국(卑離桓國)과 일군국(一群國)이 고조선에 조공(朝貢)을 바치러
오면서 당시대로서는 ‘세계사적인 급변’을 이 두 나라는 알게 된 것입니다.
또 오환국로(五桓國路)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흑룡강에서 이집트의 ‘하토르’여신은 일군국(一群國)을 거쳐서
‘이집트 피라미드 왕조(王朝)’를 개혁하는 혁명(革命)을 완성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좌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