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족 생물

고대 대륙 종족들을 보는 시각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3.06.11|조회수64 목록 댓글 0

문화인류학적 종족의 이합집산과 그 혼혈과정-동이족에서 수를 불린 화하족 한족과 동이족의 곁가지를 대국적

으로 보는 법

 

 

도표(임혜상 중국민족사 上 9쪽 도표 다시 그려 넣음)

화하계----한족,만주족,회족,몽고족,장족,묘요족,라면족,북탄족
동이계----한족,만주족
형오계----한족,묘요계
백월계----한족,묘요계,북탄계
동호계----한(漢)족,만주족,몽고족
숙신계----한(漢)족,만주족,몽고족  
흉노계----한(漢)족,회족,몽고족
돌궐족----한(漢)족,회족,몽고족,장족
몽고족----한(漢)족,만주족,몽고족
저강계----한(漢)족,회족,장족,라면족,북탄족
장계------한(漢)족,장족,라면족
묘요계----한(漢)족,라면족,북탄족
라면계----한(漢)족,장족,묘요족,라면족,북탄족
북탄계----한(漢)족,묘요족,라면족,북탄족
백종--한(漢)족,회족,장족,라면족
흑종--한(漢)족,북탄족

한((漢)족---화하계,동이계,형오계,백월계,동호계,숙신계,흉노계,돌궐계,몽고계,저강계,장계,묘요계,라면계,북탄계,백종,흑종
만주족---화하계,동이계,동호계,숙신계,몽고계
회족----화하계,흉노계,돌궐계,저강계,백종
몽고족---화하계,동호계,숙신계,흉노계,돌궐계,몽고계
장족----화하계,돌궐계,저강계,장계,라면계,백종
묘요족---화하계,형오계,백월계,묘요계,라면계,북탄계
라면족---화하계,저강계,장계,묘요계,라면계,북탄계,백종
북탄족---화하계,백월계,저강계,묘요계,라면계,북탄계,흑종




이상의 도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중국학자들이 민족을 분류하는데 있어 한(漢)족 위주로 얼마나 철저하게 견강

부회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번 위의 도표를 보라.

적어도 동이족에서 서이족이 나왔고 서이족에서 서하족으로 탈태(脫胎)를 해 화하족이 되었다면 그 뿌리되는

동이족이 최소한 지금의 한(漢)족과 대등한 분류를 해서 두 번째 만주족의 자리에 있어도 부족한 판이다.

사마천이 혼혈족인 한(漢)족을 지나 대륙의 골간 민족으로 잡으려 할 때에 막상 주인되는 동이족을 차마 그 뿌리로

삼을 수 없어 동이족의 주변민족을 모두 흩어 한(漢)의 구성성분으로 삼는 발판을 마련했다.

도표에서 보다시피 동이족에서 벌어져 나아간 각종 형오, 백월, 동호, 숙신, 흉노, 돌궐, 몽고, 저강, 장, 묘요계는

별도로 뚝 떼어내 각개격파로 동이와 대등하게 분리시키고 단군조선의 숙신 마저 뚝 떼어내 별도의 종족처럼

만들어 버렸다.

오히려 한(漢) 족의 역사를 다듬기 위해 숙신의 일개 지엽인 만주족을 한족과 대등한 차원에서 옆에 끼고 오히려

동호, 숙신, 동이가 몽고, 화하와 함께 만주족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분류했다.

*현대 中國 語學者 朱星도 "漢族의 명칭이 시작된 것은 매우 늦어서 漢 武帝, 宣帝 이후에 비로소 '漢族'이라고

칭하게 되었다.(漢族的名稱起的紿●晩到漢武帝, 宣帝以後才開始稱漢族)"(古漢語槪論)고 하였고,

傅波는 '漢族'의 形成에 대하여 "秦의 통일이 漢族 형성의 기초를 정하였으나. 漢族의 형성 또는 漢族의 명칭이

시작된 것은 마땅히 漢나라가 건국된 이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民族 앞에 붙은 '漢'字가 무엇에서

유래되었는지를 풀이할 수가 없으며, 실제상으로 秦漢 이전에 결코 통일된 민족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秦的統一爲漢民族的形成奠定了基礎, 但漢族的形成或說漢族之稱伊始, 應在漢朝建之後, 否則將無法解釋民族

前冠以'漢'字由何而來, 而在實際上秦漢以前也幷沒有形成一個統一民族.)"(漢民族形成前的東北與中原)라고 認證한

바와 같이 秦의 統一이 漢民族 形成의 基礎는 되었으나, '漢族'이라는 명칭의 시작은 漢朝의 建立後라고 밝혔다.

<漢字와 東夷族의 淵源:陳 泰 夏>

위의 도표를 제대로 정리해 그리면 동이, 숙신, 묘요, 동호, 형오, 백월 등의 동방 동이족 밑에서 화하족이 그려져야

함은 아주 당연한 것이나 존주 사대사관이 주나라를 천자로만 모실 줄 알았지 동이의 숙신이 천자국 이었음은

몰랐고 묘요, 형오, 백월, 양자강 유역의 9이 제족이 천자국임은 몰랐다.

우리 동이민족이 얼마나 엄청난 민족이었는지는 다음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 번 귀를 기울여 보자.

임혜상이 지나족의 양대 뿌리라 말한 화하계와 동이계 다음으로 세 번째 줄기를 차지하는 민족은 형오(荊吳)계이다.

형오계는 누구인가?

형오계는 한(漢) 족을 구성하는 세 번째 민족으로 양자강(長江) 중류의 이(夷)족이다. 이들 지방은 전통적으로 동이

묘요계의 근거지임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이들은 뒤에  우리 동이족인 초(楚)와 월(越)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형(荊)은 기록상 은(殷) 대에 있어 형초(荊楚)로 불리던 종족인데, 양자강(장강) 유역의 중류에 살고있던 민족

이었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오히려 만이(蠻夷)를 좇아 사니, 제 하(諸夏) 또한 이들을 형만(荊蠻)이라 불렀으며, 지나족으로

볼 때는 화하계 이외의 별다른 일개 파가 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북으로 향한 것으로 인해 제 하(諸夏)의 소국을 집어삼켜 멸했으며 중원패권을 경쟁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완전히 화하계에 동화되어 한(漢) 족의 세 번 째 기원민족이 되었다.

오(吳)나라 사람 또한 형만(荊蠻)이니 그 군장(君長)은 자칭 주(周) 왕실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춘추시대 말기에 중국과 통하기 시작했으며 그 개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화하(華夏)의 영향을 받은 연고로 아주

빠르게 월(越)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후에 초(楚)나라로 빨려 들어가 아울러 화하계에 동화되었다.

형(荊)은 묘요(苗 )와 함께 그 터전이 서로 아주 가까우니 또한 혈통상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임혜상은 형오계가 한족과 묘요계가 그 구성성분이라 해 놓고 도표에서 보듯이 묘요족은 정작 화하계,형오계,

백월계,묘요계,라면계,북탄계가 혼합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확장해 싸 안는 관계로

그 근본은 모두 동이족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형오계가 한족과 묘요계를 아우르고 묘요계는 화하계,형오계,백월계,묘요계,라면계, 북탄계를 아우르고 있으니

화하계는 다시 한족,만주족,회족,몽고족,장족,묘요족,라면족,북탄족을 아우르고

백월계는 다시 한족,묘요계,북탄계를 아우르고 몽고족은 화하계,동호계,숙신계,흉노계,돌궐계,몽고계를 아우르고,  

라면족은 화하계,저강계,장계,묘요계,라면계,북탄계,백종을 아우르니 결국 형오계 하나만 해도 전 종족을 아우르고

있음을 본다.

다음으로 한(漢)족을 구성하는 4번째 기원민족은 백월(百越)계이다. 월(越)은 다시 말해 월( ) 자(字)이다.(월( )

중국인들이 때까치 말하듯 한다고 비하한 남만격설(南蠻 舌)의 동이 민족으로 광동, 광서에 살았으며 백월

(百越)이라 불렀다)

월은 수많은 칭호가 있어 그 종류가 밝혀진 것이 많다. 춘추시대에는 월(越)나라에 의지해 있었으며, 전국시대에는

양월(楊越)이 있었고, 진한(秦漢)시대에는 구월( 越:사발, 주발 구), 민월( 越:터전은 복건성, 종족이름 민), 남월

(南越), 낙월(駱越:검은 갈기 흰 말, 종족 명 낙)이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산월(山越)이 있었다.(지금은 소수민족

장족으로 불린다)

잠사와 누에치기를 전공한 동이족은 실크를 처음 생산한 민족이다. 화려한 실크를 두른 월의 후예 장족. 상고시절

에도 이렇게 입었다고 생각해 보라.

소재지는 지금의 중국 동남부 및 남방의 각 성(省)이다. 월의 종족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화하계에 동화되었으므로 또한 한(漢)족을 구성하는 한가지   기원종족이 되었다.

월족은 묘요(苗 ) 및 북탄(  :오랑캐 북, 나라이름 탄으로 운남, 귀주, 사천거주)과 함께 서로 인근에 있어

언제나 또한 (혈통적으로) 관계가 있다.
광서장족 자치구에 거주하는 장족은 중국 전체 장족의 90% 정도인데, 이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코가 크며

광대뼈가 나온 것이 특징이다.

장족은 집을 지을 때 못을 사용하지 않으며, 땅이 습하기 때문에 집 바닥을 땅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만든다.

거울을 부적처럼 여기는 장족은 집 앞에 거울을 걸어 놓는 풍습을 지니고 있다.

귀신들이 자신의 흉한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고는 놀라 달아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림 시내에서도 대문

이나 담벼락에 거울을 걸어 놓은 장족의 집을 종종 볼 수 있다.

장족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으로도 유명하여 매년 음력 3월 3일에  장족의 축제 중에서 가장 큰 행사로

일컬어지는 노래 축제를 연다. 실크 자수 제품 또한 장족을 상징하는 특산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혜상이 말하는 바 소위 중국민족의 눈으로 볼 때 만주족은 동호계와 숙신계가 주요 2 종족이고 여기에

화하계와 동이계 그리고 몽고계 등 3가지 민족이 곁가지로 구성된 것으로 되어있다.

동호(東胡)계와 숙신계는 중국학자들이 동이민족으로부터 떼어내 독립시켰지만 당연히 동이민족이다.

첫 번째인 동호는 중국 동북부에 있어 숙신과 비교해 한(漢) 족에 근접해 있어서 동화 또한 비교적 빨리 이루어졌다.

진(秦) 이전에 산융(山戎), 북적(北狄)이 되었는데, 화하족은 이들을 동호(東胡)라 칭했다. 한(漢) 초에 흉노에게

멸망되어 오환(烏桓)과 선비(鮮卑)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흉노가 쇠퇴한 후에 동호가 다시 성(盛)해졌다.

오환은 삼국시절에 조조에 의해 멸망당해 동화되고 말았다.
선비는 흉노의 옛 땅에 자리를 바꾸어 살았다.

5호(五胡)의 난 화(華)때에 중국으로 들어가 전연(前燕),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 서진(西秦), 남량

(南凉)을 세웠으나 후에 북조(北朝)의 후위(後魏) 및 북주(北周)가 되었으며 일부는 서쪽으로 옮겨가 서역에서

<토곡혼국(土谷渾國)>을 세웠다.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중국으로 들어가 살다가 모두 동화되고 말았다. 그러나 북방에는 오히려 유연(柔然)

이 있어 후에 돌궐(突厥)에게 토멸되었다.

당나라 이후 해(奚) 및 거란(契丹)이 뒤를 이어 흥기했다. 해(奚)는 거란(契丹)에게 합병되었으며, 거란은 뒤에

요(遼)나라를 건국했는데 중국에 자리잡아 모두 한(漢) 족에게 동화되었다.

참고로 신당서 북적(北狄)편을 보면 거란은 본래 동호(東胡)족으로 그들의 선조가 흉노에 의해 격파되자

선비산(鮮卑山)에 의지해 자리잡았다고 나온다.

만주족의 2번째 구성성분인 숙신(肅愼)계는 그 주거지가 비교적 화하 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숙신(肅愼)이라는 이름의 역사 기록은 아주 이른 옛날부터 보인다, 위진(魏晉)시대에는 읍루( 婁)라 불렀으며,

남북조 시대에는 말갈(靺鞨), 당 시대에는 발해(渤海)를 건국했다.

송(宋) 때에는 여진이라 칭하여 금(金)나라를 세워 중국의 반쪽을 점거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 후에 곧 한(漢)족에게 동화되었다.

여진 :

여기에서 발해에 대한 중국학자와 우리의 국통 가름에 대한 사관차이가 드러난다. 고구려를 이어 건국한 발해를

읍루, 말갈의 뒤를 이은 것으로 분류하고, 발해를 이은 국통을 고려로 잡지 않고 형제국인 여진으로 잡으면서

발해에 대한 종주권 견해가 엇갈린다. 유득공이 발해고 서문에서 민족사 미정립을 한탄한 것과 같이 비록 늦었

지만 우리의 상고사학계가 원점에서 출발해 재정립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말갈이 발해를 건국하고 여진이 금나라를 건국했다면, 뒤집어서 말해 금나라를 건국한(청은 본래 후금) 만주족이

발해를 건국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러한 상황이 온 것은 중국학자들이 숙신을 이루고 있는 구성성분이

만주족인데 거꾸로 만주족을 이루는 구성성분을 숙신으로 보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숙신 곧 주신

(조선)-다시 말해 「산해경」에서 마저 뚜렷이 보이고 있는 大 '단군조선'이 해방이후 강단사학을 점거하고 있는

매국사학자의 식민지 사관으로 인해 미 정립된 나머지 지나학자 마저 조선(숙신)국을 깔보기 때문에 그리된 업보

이다. 참고로 뒤에 말도 안 되는 이러한 견해에 대한 중국인 학자의 연구내용을 소개한다.

명 말에는 만주족이라 불렀는데, 청(淸)나라를 세워 2백 수 십 년 간 중국 전체를 통치했다. 지금에 이르러 다만

나머지는 만주에 토착하고 있어 비교적 순수한 혈통과 풍속을 거듭 보존하고 있다.

 

 

먼저 지나족의 주변민족을 올바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역사관을 도출하기 위해 지나족 구성민족 내지 주변 4

예(裔) 민족들의 역사를 간략히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임 혜상은 역사상 등장하는 다양한 민족 계열을 지나족의 소속 성분 민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부연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시각은 지나족이 한민족 고대사 강역의 시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는 우선 화하(華夏)계를 한(漢)족의 주요 줄기(主幹)이자, 전 중국민족의 주요 줄기(主幹)라 말하고, 이들이

부단히 다른 민족과 접촉 혼합하여 큰 나라가 하나로 동화되었다고 말한다.(與此系接觸混合後大都爲其所同化)

복합민족 국가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계열성분이 그들의 구성성분으로 보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고구려의

맥을 이었다고 말하는 발해조차도 그들은 지나족의 일부라고 당당히 말한다.

동이(東夷)족에서 서이(西夷)족으로, 서이족에서 서하(西夏)족으로, 서하족에서 화하(華夏)족으로 자기정체성을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오늘날의 복합민족 한(漢) 족의 국가를 만들어 낸 지나족은 비로소 화하족

이전의 고리를 잘라내고 화하족을 한(漢) 족의 주요줄기이자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한(漢) 족이 비록 역사상의 이름에 속하지만 발생은 화하(華夏) 이후에 있었다고 말한다. 동시에 지금

대략 사용되는 선례를 따라 화하(華夏)가 다시 보편적인 칭호가 되었으며 한(漢) 이후 이를 대체할 적당한

이름이 별로 없었다.

'당인(唐人)'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 역시 널리 통용되지 않은 것처럼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것 역시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는 한(漢) 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비교적 적당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임 혜상은

한(漢) 이전은 화하(華夏)계로 지칭하고 한(漢) 이후에는 한(漢) 족으로 지칭한다.

반면 화하(華夏)계가 한(漢) 족 구성의 첫 줄기인데 비해 동이계열은 한(漢) 족 구성의 두 번째 줄기라 말한다.

우습지만 이 말은 공자가 한(漢) 족의 첫 째 줄기인 동이족의 역사를 비틀어 단군 조선의 분치 소국에 불과한 요,

순을 정통으로 견강부회하면서 서이(西夷), 서하(西夏)의 화하(華夏)를 첫 째 줄기로 만들면서 막상 근본 줄기인

동이 족을 두 번째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지나 족의 고뇌 어린 역사관이 그대로 반영된 말이 아닐 수 없다.

임 혜상은 동이 족이 중국인에게 광의 적인 의미와 협의 적인 의미가 있음을 말한다.

첫째, 협의적인 의미는 전적으로 현재 동북 삼성의 조선족을 비롯, 산동, 묘족의 근거지인 월 나라 근경 등 중국의

경계 안에 살고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임 혜상은 주로 이들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동이족은 진(秦) 이전, 중국 동부 즉, 지금의 산동, 강소, 안휘 근해 및 회(淮)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지파로는 우이

( 夷), 회이(淮夷), 서이(徐夷), 도이(島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근모이(根牟夷) 등이 있으며, 하· 은· 주 3

대로부터 춘추시대에 이르기까지 화하계와 더불어 접촉이 매우 많아 또한 일찍이 동화되었다.

고서에 말하기를 순(舜)은 동이족이 된다고 했으며, ....제환공을 도와 이적(夷狄)의 사람인 관중을 물리쳤다

했으니 관중은 곧 래이(萊夷)인이  된다고 했다.

임 혜상은 "금인(今人)이 고증하기를 은상(殷商)은 동이계에 속하며, 또 진(秦) 통일 후로부터 동이는 모두

흩어져 민호(民戶)가 되었으며, 이때로부터 화하족과 더불어 완전히 동화되어 한(漢)족을 이루는 제 2의 지엽

민족이 되었다.

동이는 동호(東胡)와 더불어 서로 가까이 거주했는데 언제나 관계가 있는 고로 또한 허선(虛線)으로 이를 구분해

표했다" 하여 이들이 사실상 같은 민족임을 강조했다.    

둘째의 동이족의 광의적 의미는 임 혜상이 생략했으나 모든 동이 제 족의 역사로 별도로 언급했으므로 필자는

이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정에 따라 다양한 견해들을 버무려 종합 설명하고자 한다.    

임은 화하 계가 생겨난 것은 역사 이전의 시대로 이에 대한 학설이 매우 많다고 말하고 서래 설과 같은 외부 민족

이동 설보다 오히려 토착 설이 근사치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들은 신석기 시대 후기에 황하유역에서 생활했는데(은허유적지인 대문구 문명 유적지는 바로 동이족의 거점

지구 산동성의 황하 하류유역이다)
이때 이후 5∼6천 년 동안 타 계열의 족속들과 함께 접촉 혼합하여 확대되었다고 하여 서 량지(徐亮之)의 견해와

궤를 같이 한다.

서량지는 그 알맹이가 동이 제 족임을 말하고 있지만 임의 경우는 우습지만 동이 제족을 동이계와 동호(東胡)계,

숙신계, 흉노계, 묘요(苗 )계, 백월(百越)계, 몽고계, 저강( 羌)계, 등으로  핵분열 시켜

돌궐계, 형오(荊吳)계, 장(藏)계, 라면(羅緬:면전(緬甸:감숙성 문현 서쪽)을 비롯한 베트남쪽 인도챠이나)계,

북탄(  :오랑캐북,오랑캐 탄으로 운남,귀주, 사천의 종족으로 漢나라때  국을 세운 바 있다)계,  화하계 등과

별도로 구분한 다음,

동이계는 만주족과 한(漢)족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고, 반대로 한(漢) 족은 위에 열거한 모든 민족을 그 성분

민족이라 하였다.

이는 혼혈 복합민족인 한(漢) 족의 주변 민족계열과 영토 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안원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