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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

이진경의 노마디즘 (대담)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5.05.15|조회수185 목록 댓글 0

 

 

Q:

선생님, 정말 힘들었죠. 1998~2002년 11월까지 이번 작품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4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저도 한편으론 안타까웠구요.

다른 한편으론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 선생님께, 그리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촉발(affection)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이진경:

 

맞아요. 《노마디즘》으로 인해 그 동안 공들여 다듬었던 나의 신체가 꽤 상했어요. 특히 2002년

5~10월까지는 모든 생각과 일이 이 책에 집중되어 편두통에 시달릴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

습니다.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써왔는데, 이번처럼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글의 양이 6,000매에 이르러서 시간도 엄청 많이 결렸구요.

휴! 나도 그랬지만 휴머니스트도 참 고생 많았어요. 저는 하고 싶은 공부가 참 많은 편인데,

이 책으로 인해 그럴 시간을 미루어야 했다는 점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Q:

책 전체의 원고량이 6,000매 가량 되는데요. 원고량이 가장 많은 파트와 선생님 사유의 흔적이

가장 많이 드러난 장은 어디였습니까?

이진경:

 

이 책은 15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요. 15개의 장이 모두 만만치 않았죠.

그 중에서 찾으라면 《노마디즘》 10장 〈생성, 혹은 되기:동물-되기에서 모든-것이-되기에

이르는 길〉, 또는 12장 〈유목의 철학, 전쟁기계의 정치학〉의 원고량이 가장 많을 겁니다.

두 개의 장 모두 각각 700매 이상 될 겁니다. 아니죠, 나중에 교정지에서 더 추가했으니 한 800매

에 이를 것 같은데요.

근데 글의 양이 그 작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12장 〈유목의 철학, 전쟁기계의 정치학〉에서 이야기한 생성, 유목이라는 개념에 제 사유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Q: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그간 선보인 선생님의 작품들과 좀 다른 면이 보여요.

《노마디즘》에서는 저자의 삶, 철학하는 방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진경의 삶이 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진경:

 

저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분들, 어떤 작품에서도 삶은 드러나게 마련이죠.

하지만 글쓴이의 삶이 드러나는 경우조차도 삶과 사유, 삶과 이론, 삶과 철학을 구별하려 하고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방식으로 철학에 대해 서술하려고 경향이 있다고 봐요.

저의 경우는 삶으로서의 철학, 혹은 철학으로서의 삶, 그런 점에서 철학과 삶이라는 게 분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유하는 철학을 욕망했고, 그것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철학과 정치학만 해도 그래요. 옆길로 잠깐 빠져나가서요.

정치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으로부터 분리된 대행자들, 위임받은 누군가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정치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정치학하고, 철학 혹은 윤리학, 이런 것이 결국은 하나라고 하는 관점에서 철학이라

는 것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것이 사유의 논리, 그러니까 논리가 논리를 쫓아가는 식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들. 문학이나 음악, 미술, 영화의 영역들이나, 아니면 과학의 영역들 그리고 우리가 실제 살아

가는 일상의 영역들과 결부해서, 이런 것들이 만나고 지점들, 서로 섞이고 소통하는 양상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방식으로 《노마디즘》을 쓰려고 했습니다.


Q:

《노마디즘》은 이진경 철학의 변곡점이다 하는 이야길 듣기도 합니다. 좀 쑥스러운 질문인데요.

1980년대부터 2002년 현재까지 선생님의 사유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묻고 싶군요.

이진경:

 

저는 그저 제가 공부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자극받고 싶어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데요. 저는 80년대에는 맑스와 더불어서 공부하고 사유하고 살았죠.

90년대 들어서는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과 함께 철학과 삶 등을 나누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90년대에는 탈주의 철학이라고 표현했고, 탈주의 철학이라고 하는 게 맑스주의적인 삶,

혹은 80년대의 삶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삶의 일부였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이러한 탈주의 철학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형태로 밀고 나가고 싶었고,

그런 욕망이 《노마디즘》이라고 하는 새로운 생성을 낳은 것이죠.

저는 이걸 통해서 역사유물론과 차이의 철학, 맑스주의와 탈근대적인 사유들을 종합려고 시도해

본 것이죠.

Q:

《노마디즘》 도입부(특히 〈차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에서부터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이

보이더군요. 철학은 삶의 문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메시지인데요. 글쎄요.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을 넘어 풍요로운 고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진경:

 

그건 뭐……. 사람들마다 관심사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구요.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1장 리좀과 나무: 내재성, 혹은 외부의

사유〉, 〈2장 무의식과 욕망: 욕망하는 기계에서 욕망의 다양체로〉를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좋을 겁니다.

이 두 개의 장에서 저는 들뢰즈/가타리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쉽게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안티 오이디푸스》에서부터 《천의 고원》으로 이어지는 지평들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맑스주의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들은 들뢰즈/가타리의

차이의 철학이 맑스의 역사유물론과 어떻게 상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0장 차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이나, 〈9장 미시정치학과 선분성: 거시정치와 미시정치〉, 〈12장 유목의

철학, 전쟁기계의 정치학〉, 〈13장 포획장치와 자본주의: 다시, 국가와 혁명에 관하여〉를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분들에게 12장과 13장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

니다.

Q:

저자 서문을 보면 《노마디즘》을 말하면서, 마지막에 들뢰즈 철학의 매뉴얼, 해설서라는 표현을

했는데요. 그렇게 표현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야 할까요?

이진경:

 

제가 알기로는 아직 국내에는 《천의 고원》에 대해서 해설서가 없어요.

번역서도 올 상반기에 발간되었구요.

들뢰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면서, 가장 아끼는 책, 그리고 가장 공들여 만든 책이 《천의

고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들뢰즈와 가타리의 모든 책을 거의 숙독했는데요.

제가 봐도 《천의 고원》에는 들뢰즈의 사유가 집대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들뢰즈의 사유가 응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영역으로 펼칠 수 있는 고리들을

무한히 갖고 있는 주름들이 모여 있어요. 그런 작품이기 때문에 무척 어렵습니다.

이 책을 한 번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오해를 낳고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책이죠.

주름을 모아놓은 응집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을 펼쳐놓을 때 그 가치나 힘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들뢰즈 철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펼치기가 매우 어렵긴 하겠지요.

《천의 고원》은 들뢰즈 철학의 다양한 양상들을 현실적인 양태로―다양한 예들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논리가 아닌 현실적인 양상으로 접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들뢰즈/가타리도 자신들의 책을 책-기계로 써달라고 했죠.

그런 점에서 저는 나름대로 내 자신의 사유의 선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음에도, 남의 책 해설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매뉴얼 내지 해설서를 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

니다.

《천의 고원》에는 하이데거, 레비-스트로스, 라캉, 푸코 등을 포함해서 20세기 사유 전반이 응축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유가 응축되어 있고, 거기에 들뢰즈의 사유가 응축된 책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20세기 후반

의 사유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책입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천의 고원》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해설서나 매뉴얼을 자처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은 철학, 정신분석학, 문학, 신화학, 동물행동학, 경제학, 고고학,

음악, 미술사, 물리학, 수학 등 온갖 잡학이 다 동원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 예술 영역에서는 현재 인문적 상상력이 무척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 분들에게는 어떤 독법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서는…….

이진경: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하고 생산하려는 분들에게는 한 곳에 정착하여 머무는 사유보다는 다양한

외부에 자신을 열어놓는 유목적인 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과 상상력을 퍼올리려 하는 분들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이라고 할 수 있는 〈14장 매끄러운 공간, 홈 패인 공간〉, 〈7장 얼굴의 정치학:얼굴의 권력, 권력의 얼굴〉을 읽어보면 중요한 영감

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개념과 서술을 이해하려면 유목론을 다룬 12장을 먼저 읽는 것이 필요하

구요.

그 외의 영역이라……. 들뢰즈/가타리의 사유와 어떻게 동양의 사유가 이어지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3장 이중분절, 혹은 지질학적 역사유물론〉 〈6장 기관 없는 신체:세 가지 지층,

세 가지 기관 없는 신체〉 〈10장 생성 혹은 되기:동물-되기에서 모든-것이-되기에 이르는 길〉

을 펼치면 좋을 듯해요.

Q:

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고, 관심이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는 이야기군요.

 

이진경:

 

관심이 닿는 장들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관련되는 장들을 다시 찾아가고.

나름대로 하나의 계열을 만들어가면서 읽으면 좋아요.

 

Q:

선생님은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을 어떻게 읽었나요?

이진경:

 

저는 처음부터 읽어나갔어요. 어떤 책인지 알고 본 책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누군가 옆에서 조언

해줄 사람도 없었구요.

그래서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었습니다.

 

Q:

노마디즘》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보다는, 읽을 때마다 자기 삶의 방식이 변하는 즐거움을 느끼

려면(책-기계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 리듬을 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노마디즘》의 리듬을 탄다는 건……?

 

이진경:

 

사람과 조건에 따라서 여러 다른 것이 될 수 있죠.

일차적인 것은 기존의 통상적인 리듬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생소한 개념과 단어들, 생소한 입론들, 역설적인 명제들을 통해서 양식, 상식이라고 불리는 생각

이나 사유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거고. 그것과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마음을

여는 게 제일 먼저일 겁니다.

그런 다음 여기서 제기되는 명제들, 개념들을 따라가 보구요.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것에 적용시켜보면서 이것을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 적용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제는 그 개념들을 사용하면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처럼 개념의 의미를 아는 것은 개념의 용법을 아는 것이죠.


Q:

《노마디즘》에는 무수한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무척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도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함께 이해했으면 하는 개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내재성의 장이라는 개념이 좀 힘들었습니다. 

이진경:

 

그렇지요. 머릿속에 표상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오해하기 쉽습니다.

내재성의 장이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재성은 내부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것들을 내적 본질이나 내적 체계로 환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외부의 사유라는 점이지요.

《노마디즘》의 1장을 〈1장 리좀과 나무:내재성, 혹은 외부의 사유〉를 보면 아시겠지만, 어떤

외부, 나의 본성이나 어떤 것의 본성이 내재한다는 의미의 내재성이 아니라, 그것과 관계를 맺고,

접속하게 되는 외부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나의 어떤 것의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내재성, 혹은 내재적 사유는 외부에 대한 사유이고 외부에 열리는 것이고, 다양

하게 주어지는 외부에 스스로를 여는 것입니다.

내재성의 장은 그런 것들의 관련된 전체, 가능성 전체를 말합니다.

우주 전체가 내재성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내부적인 사유, 내부성의 사유와는 전혀 다릅니다.

초월적인 중심이 없는 관계적인 사유라고 이야기를 하구요.

그런 점에서 관계적 사유를 앞서 발전시켰던 맑스의 사유와 연결될 수 있어요.


Q:

이 책에서 자칫 잘못 이해될 수 있는 개념들을 더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이진경:

 

그러죠. 또 하나 대표적으로 오해할 수 있는 개념이 유목주의와 전쟁기계예요.

유목주의는 앞서 말한 내재성의 장이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유목이란 머물지 않는 것인데요. 정착하지 않는 것이고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해진 본성?본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와 만나는가, 내가 어떤 이웃을

갖는가에 따라 내가 끊임없이 달라진다는 것이구요.

그런 달라지는 변이 자체에 자신을 여는 것이고 다른 종류의 외부들과 만나는 여행이 바로 유목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은 외연적으로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앉아서도 할 수 있어요.

앉아서 다른 외부들과 끊임없이 만나게 될 때 나는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끊임없는 변화?변이를 통해 새로운 창조의 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유목주의입니다.

이것은 내재성이 장 전체에 자신을 여는 것이고, 내재성의 장에서 다른 것들에 손을 내미는 것입

니다.

그러니까 내재성의 장을 앉은 채로 여행하는 것. 수많은 외부들, 새로운 외부들과 접속을 시도

하고 창안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Q:

전쟁기계라는 개념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무척 생소하기도 하구요.

이진경:

 

전쟁기계….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전쟁은 일차적으로는 새로운 것의 창안이에요.

니체의 아곤(Agon)에서 영감을 얻은 무척 서양적인 개념이죠.

기존의 고착된 가치와는 다른 종류의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기존의 가치와 전쟁을 수행하는,

하지만 그 전쟁은 포연 없는 전쟁, 화약 없는 전쟁, 싸우지 않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전쟁기계라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죠.

들뢰즈가 전쟁기계에 관해 말하면서 가장 역설적인 명제를 제시하는데요.

그것은 전쟁기계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적인 능력, 접속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변이 능력을 상실

한 채, 기존의 것들에 대한 혐오와 멸망의 정염만이 남았을 때 전쟁기계는 전쟁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기계가 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흔히 전쟁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것들 CIA, 군대 등이 전쟁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

기계죠.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전쟁기계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전쟁기계입니다.

카프카의 소설들, 니체의 책들, 맑스의 책들, 아니면 새로운 관계를 실험하는 공동체들 등등.

이런 것들이 모두 들뢰즈/가타리 말하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전쟁기계에 가까운 것입니다.   


Q:

그러면 전쟁하는 데 쓰이는 무기, 집단, 조직 등도 전쟁기계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이진경:

 

전쟁하는 전쟁기계도 전쟁기계예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전쟁기계입니다.

창조적이고, 창안하는 능력, 생성 능력이 상실된 것이죠. 들뢰즈/가타리 말하는 유목민의 창안물

로서 전쟁기계라는 것은 책, 철학적인 저작들, 음악작품, 예술작품,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실험들에 훨씬 가깝습니다.


Q:

《노마디즘》의 마지막 15장의 제목이 〈무아의 철학과 코뮨주의〉죠.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책의 결론이었듯이, 이 인터뷰의 마무리도 그 이야길 하면서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아라는 알듯 모를 듯한 개념이 코뮨주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것인가요? 

이진경:

 

15장이 이 책의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않고 있으니, 결론의 일부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무아의 철학과 코뮨주의〉라는 장을 쓴 것은 차이의 철학과 코뮨주의라고 하는 것이 연결되는

지점은 뭘까? 그것들이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아, 무아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하

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아를 통하면 차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고, 생성/접속으로서의 차이라는 개념들이 쉽게

이해될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 더불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거기서

열린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코뮨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의 철학과 코뮨주의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접속의 고리, 접속의 지점들은

무아의 철학이 제공한다고 이해했고, 그것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결론을 대신해서

써넣은 것입니다.


Q:

고맙습니다. 《노마디즘》을 가장 먼저 읽은 최초의 독자였던 편집자에게 가장 절절하게 다가

왔던 구절이 있다.

유목주의는 새롭게 사유하는 자의 이미지다. 새로운 사유는 새로운 개념을 낳고,

그 개념은 새로운 배치를 만든다. 노마디즘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사유하는 자의 모습이다

 

 

 

(lu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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