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주의와 구조주의의 너머로—들뢰즈=가타리
‘68년 5월’과 포스트구조주의
『구조주의의 역사』에서 들뢰즈는 구조주의의 절정이 1966년이라 하고, 그 무렵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당시 파리의 명사는 모두 구조주의자였으며 현대사상 그 자체의 거장사상가들 대부
분은 하나로 통일되는 사람들의 모습에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축구감독마저도 ‘구조주의적으로 재편해서 팀의 성적의 향상을 꾀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열광도 얼마 못가 사그라지고 67년에는 이미 퇴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정타가 ‘68년 5월’이다. 68년 5월은 ‘단지 파리의 학생들의 시위만이 아니다. […] 그것은 또한
구조주의의 사망증명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구조주의자’로 불리던 사상가들은 ‘구조주의’에서 이탈을 표명하게 되었다.
그 한사람이 미셸 푸코였다. 푸코는 1970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함과 동시에 구조주의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사상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푸코의 활동에 동조하면서 ‘안티 구조주의’ 노선을
분명히 표명한 이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페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이다.
그들은 공동으로 『안티 오이디푸스』(1972년)을 집필하고 ‘68년 5월의 정신’을 글로 옮기고 구조주의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들뢰즈는 1925년생으로 푸코보다 한 살 많고, 1930년생인 가타리보다 다섯 살 많다.
들뢰즈는 철학사 연구자였고 흄, 베르그송, 니체, 스피노자에 관한 독창적인 해설서를 출간했다.
또 『차이와 반복』(1968년)과 『의미의 윤리학』(1967년)이라는 본격적인 철학서를 간행하는 등
정통파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가타리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사상가로서 칸트파의 정신의학을 공부함과 동시에 실천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68년 5월’의 일년 후이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작업했고, 그 3년 후
공저를 출간한다. 그것이 『안티 오이디푸스』이다.
이 책은 발매하기가 무섭게 ‘68년 5월의 사상’으로서 젊은 세대들에게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이렇게 구조주의의 해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안티 오이디푸스』가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것이 ‘68년 5월의 사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열쇠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영문판(1977년)에 게재된 푸코의 서문에 있다.
서문에서 푸코는 이 책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티 오이디푸스』를 새로운 이론적 레퍼런스로서 읽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
내 생각에 『안티 오이디푸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읽는 것은 ‘기예’(아트)로서 […] 이 책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보자. 『안티 오이디푸스』는 이론서다. 프랑스에서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처음으로 만들어진
윤리서(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책의 성공은 특정의 독자층에 한정될 수 없다.
즉 반=오이디푸스가 살아있는 스타일이 되었다. 사유와 삶이 하나의 양태를 이루었다)이다.
(『미셸 푸코 사고집성 Ⅷ』)
이 푸코의 조언에 따르면, 『안티 오이디푸스』는 ‘안티 오이디푸스적인 삶의 방식이자 사유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삶의 방식, 사유방식이야말로
프랑스의 68년 5월이 찾아낸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68년 5월을 통해 사람들이 희구하는 삶의 방식과 사유방식을 이론화할 수 있었고
구조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상을 제창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안티 오이디푸스』는 ‘68년 5월’을 사상적으로 파악하여 포스트구조주의의 흐름을
만들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Ⅰ. ‘안티 오이디푸스적 삶의 방식’ 선언
‘68년 5월’이 제기한 문제
『안티 오이디푸스』가 ‘68년 5월의 사상’이기 위해서는 먼저 ‘68년 5월’이 무엇을 문제로 제기했는가를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두 측면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하나는 ‘68년 5월’에서 누가 혁명적인 주체가 되었는가라는 문제이다.
종래의 혁명운동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의 피억압민족이나 계급투쟁의 노동자 등이 혁명적 주체였다.
그런데 ‘68년 5월’은 소비사회의 진행 속에서 완전히 다른 양상이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그 시작은 대학의 남녀 학생기숙사의 자유로운 왕래라는 극히 미세한 문제였다.
이것은 계급투쟁도 아니었고 민족해방투쟁도 아니었다.
이러한 일상적인 요구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과 욕망의 해방이라는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
학생들은 대학과 사회로부터 받는 다양한 속박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구래의 질서를 해체하고자 했다.
이 사고가 바로 ‘68년 5월’의 원리가 되었던 ‘욕망’이다.
실제로 이때 인기 있는 사상가는 신프로이트파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와 빌헬름
라이히(Willhelm Reich)였는데, 그들 이론의 중심은 ‘욕망의 해방’이다.
그런데 ‘욕망의 해방’에 기반한 운동은 어느 시점까지는 고양되지만 사람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질서와 안정이기 때문에 패배하기 마련이다.
즉 사람들은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질서를 욕망한다.
여기서 두 번째의 측면, 즉 ‘68년 5월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이 부상한다.
사람들은 왜 욕망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질서를 선택하는가?
그 이유를 해명하지 않고서는 ‘68년 5월’을 사상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두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이 과제에 대해 『안티 오이디푸스』는
대체 무엇을 말했을까?
원리로서의 욕망
『안티 오이디푸스』를 처음 읽고서 많은 사람들은 그 스타일에 혼 줄을 빼먹는다.
저자들이 대체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일까,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도 처음에 읽었을 때 그와 같은
상태였다.)
신기한 개념이 차례차례 등장할 뿐만 아니라 저자들이 본래 상정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알 수가
없다. 이 책은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것을 말하는데도, 이러한 의문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최초의 인상으로 말하자면, 『안티 오이디푸스』가 왜 그렇게 팔려나갔는지 기이하게 생각될 정도
이다. 그러나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어나가면, 기본적인 메시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욕망을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사상의 전개’라고 말할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이 책에서 ‘68년 5월’의 원리(‘욕망’)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욕망’은 반드시 들뢰즈=가타리의 전문특허라고 말할 수 없다.
‘욕망’은 라캉이나 바르트를 비롯해서 70년대의 프랑스에서 광범위하게 주목된 개념이다.
따라서 문제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저자들이 ‘욕망’을 어떻게 파악했는가에 있다.
‘욕망’을 원리로 삼기 위해 들뢰즈=가타리는 ‘욕망하는 제 기계’라는 기묘한 개념을 제시한다.
즉 ‘욕망’이 ‘제 기계’로서 이해된다. ‘욕망’은 ‘제 기계’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기계로서 작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제 기계로서 작동한다’는 것은 두 개의 모순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제 기계는 각각 상호 연결・접속하여 그에 의해 작동되지만, 또 한편으로 그 연결에는 필연성이
없고 곧 단절된다.
이 양면성은 ‘결속의 부재에 의해 결속된다’라든지 ‘현재 구별되는 한에서 함께 작동한다’라는 모순적인
표명에 의해 정식화된다.
철학사적인 지식으로 이 정식화를 보충하면, 여기서는 원자론적 발상도, 유기체론적 구상도, 그 어떤
것에도 비껴나 있다.
이러한 모순적인 양면성에 의해 이해되는 것이 바로 ‘욕망’이다.
‘욕망’은 다른 것과 결속되는데, 이 관계에 필연성은 없으며 끊임없이 절단된다.
그것을 들뢰즈=가타리는 ‘흐름과 절단’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욕망’은 다른 것과 연결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데(‘흐름’), 동시에 그 연결을 끊임없이 끊어내어
(‘절단’) 별개의 다른 것으로 향하여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낸다.
‘욕망’은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 흐름을 규제(‘코드화’)하는 것은 ‘욕망’의 본질에 반한다.
따라서 ‘욕망’은 본래 ‘탈코드적’이다. ‘욕망’은 그것을 한정해서 의미지우는 일정의 방향으로 이끄는
규제(‘코드’)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욕망’을 규제하려는 질서가 있다면, ‘욕망’은 그것을 파괴하는 아나키적인 활동이 된다.
여기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욕망’에 대한 기본테제가 도출된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다’.
이러한 ‘욕망’ 개념의 포인트는 그것이 결여와 부정을 일절 포함하지 않으며 완전히 긍정적이라는 점
이다.
들뢰즈=가타리에 의하면, 프로이트 이후 ‘욕망’은 ‘결여한 것을 획득하는’ 것으로써 끊임없이 부정적
으로 이해되어 왔다. 샤르트르도, 프로이트와 라캉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여적인 것을 희구하는’ 부정적인 활동을 들뢰즈=가타리는 ‘욕구’라고 부르면서 긍정
적인 ‘욕망’과 구별한다. 즉 긍정적인 ‘욕망’과 부정적인 ‘욕구’라는 이분법인 것이다.
나아가 이 두 개는 단지 구별될 뿐만이 아니다. 그들에 의하면, 긍정적인 ‘욕망’이 본원적이며, 부정적인
‘욕구’가 그로부터 파생된다.
왜냐하면 ‘욕망’은 본래 긍정적이고 조금의 부정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욕망’에 이차원적으로 부정이 끼어들면서 ‘욕구’가 생겨난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의 원리에는 결정적으로 난제가 잠재되어 있다.
‘욕망의 패러독스’
그 문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욕망’이 본원적으로 긍정적이라면 그것으로부터 왜 부정적
인 ‘욕구’가 파생되는 것일까? 혹은 ‘욕망’은 부정적인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다. —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한다면 ‘사람은 왜
자신의 억제를 욕망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본원적으로 혁명적인 ‘욕망’이 부정적으로 파생된 억제를 왜 욕망하는 것일까?
‘욕망’이 원리인 한에서 이 질문은 불가피하다. 이것을 들뢰즈=가타리는 ‘욕망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그들에 의하면, 이 문제(‘욕망의 패러독스’)는 스피노자가 처음 발견했고 라이히가 대범하게 제출했던
정치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 패러독스야말로 68년 5월이 제기한 문제이다.
따라서 『안티 오이디푸스』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서]의 목적은 […] 욕망하는 주체 속에서 어떻게 욕망이 자기 자신의 억제를 욕망하게 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 […]. (『안티 오이디푸스』2장 5절)
실제로 들뢰즈=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몇 번이나 이 질문을 반복한다.
그들은 그때마다 ‘충분히 여유를 갖고 분석할 권리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들뢰즈=가타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답했을까?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참된 욕망’과 ‘거짓 욕망’이라는 구분을 가지고 온다 해도 어떤 해결을 보지 못한
다는 점이다.
욕망은 그 스스로 마치 의도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혁명적이다. […]
욕망적 생산(‘참된 욕망’)이 잠재적으로 사회형태를 날려버리는 것과 같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억제조차 욕망된다면, ‘참된’ 욕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것들을 구별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충분히 여유를 갖고 분석할 권리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틀려서는
안되고, 가령 이것들의 사용법이 대립한다 해도 이것들은 동일한 종합작용이기 때문이다. (앞의 책, 2장 7절)
그러나 ‘참된’ 욕망과 ‘거짓’ 욕망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면, ‘욕망의 패러독스’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들뢰즈=가타리가 제출한 잠정적인 답은 ‘사회의 억제에 의해, 욕망이 자기 자신의 억제・억압을 욕망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욕망’은 본질적으로는 혁명적이지만, 사회의 억압에 의해 결여적인 ‘욕구’와
자기 자신의 억제・억압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해결법은 전형적인 이원론이다.
한편에서 혁명적인 ‘욕망’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정적으로 억제된 ‘사회’가 있으며, 이 둘은 대립
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들뢰즈=가타리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안티 오이디푸스』를 ‘욕망’의 일원론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회’도 또한 ‘욕망’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결국 ‘가장 억압적인 사회조차도 욕망의 소산물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확실히 ‘환원’에 빠쳐 헤맬 수밖에 없다. —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사회’이다.
그런데 ‘사회’를 만들어낸 것은 ‘욕망’ 그 자체이다 라는 식으로. — 반복해서 말하자면, ‘욕망’이 자기
자신을 억제・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욕망’이 어째서 그러한 것을 행하는 것일까?
들뢰즈=가타리와 같이 ‘욕망’의 일원론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
들뢰즈=가타리는 ‘욕망의 패러독스’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한 것일까?
세 개의 해결책은 성공했는가?
들뢰즈=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제시한 방향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이다.
하나는 ‘스키조와 파라노’의 이원론이며, 또 하나는 ‘욕망사관’이며, 마지막 하나는 ‘죽음의 본능’설이다.
과연 이러한 해결책은 그 질문에 대해 충분히 답한 것일까? 하나씩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그 첫 번째에서는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분열증)와 ‘파라노이아’(paranoia)(편집증)
라는 두 개념을 도입한다.
이 용어들은 본래 정신의학상의 개념을 들뢰즈-가타리가 ‘욕망’의 두 개의 극으로 채용한 것이다.
한쪽의 ‘스키조’의 극은 혁명적인 것임에 반해 다른 쪽의 ‘파라노’의 극은 반동적이다.
분열분석[스키조 분석]의 제4의 마지막 명제는 리비도의 사회적 비급(備給)의 두 극을 파라노이아적,
반동적, 파시즘적인 극과 분열기질의 혁명적인 극을 구별하는 것이다. (앞의 책 4장 5절)
그러나 ‘욕망’ 속에서 스키조와 파라노의 이원론을 도입함으로써 ‘욕망의 패러독스’는 해결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스키조적이고 혁명적인 ‘욕망’을 파라노적이고 반동적인 ‘욕망’이 억제・억압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혁명적인 ‘욕망’은 어째서 반동적이고 파라노적인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래서 두 번째의 ‘욕망사관’을 살펴보도록 하자. 『안티 오이디푸스』에서는 ‘욕망’ 개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욕망’과 사회의 보편사적인 전개를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사를 미개・야만・문명의 3단계로 나누고 각각을 원시공동체・전제군주국가・근대자본제에
대응시킨다.
나아가 그것들의 특질은 코드화・초코드화・탈코드화로 드러난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각각의 단계가 아니라 들뢰즈=가타리가 보편적인 역사를 전개할 때의
기본적인 구도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묘사한 보편적인 역사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방향에서 성립한다.
하나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탈코드화로 향하는 ‘욕망의 다양한 흐름’이며,
또 하나는 그것을 언제나 규제하는 사회이다.
본원적으로 혁명적인 ‘욕망’에 대해 그것을 규제하고 질서지우는 사회의 양식에 따라 역사의 제 단계가
구별된다. 여기서는 ‘욕망’을 규제하는 것은 언제나 외부로부터 온다.
그 때문에 역사적 변화는 내재적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가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욕망’과 ‘사회’의 이원론이다.
한쪽에서 ‘욕망’은 끊임없이 탈코드화하는 혁명적인 것임에 반해,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가 그것을 항상
억압한다. 들뢰즈=가타리는 ‘욕망’이 ‘사회’에 의해 어떻게 규제되는지의 시각으로 역사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때 ‘사회’는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 항상 수수께끼에 둘러싸이고 만다.
이러한 이원론을 거부한 것이 들뢰즈=가타리의 원리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죽음의 본능’설은 어떠한가? 그들은 『안티 오이디푸스』 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해결로 남아있는 문제를 우리들이 다시금 다루고자 하는 것은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다루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들뢰즈=가타리는 “대답은 죽음의 본능이다”라고 말한다.
즉 ‘욕망의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것은 ‘죽음의 본능’이다.
그런데 ‘죽음의 본능’이 어떻게 ‘욕망의 패러독스’를 해결한다는 것일까? 들뢰즈=가타리는 명시적으로
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욕망의 다양한 흐름’에 대해 ‘죽음의 본능이 억제장치를 탈취’하여 ‘욕망’을
재코드화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 어떤 것이 상정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욕망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은 죽음의 본능이다’라고 할 때에 실제로는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들뢰즈=가타리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을 읽어왔던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들에게 많은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그것은
오독이고, 우리들은 잘못 읽는 것과 전혀 읽지 않은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앞의 책, 4장 5절)
그러나 들뢰즈=가타리의 변명과는 달리 『안티 오이디푸스』가 ‘욕망의 패러독스’를 해결했는가,
아니 오히려 그것을 방치한 채 끝나버린 것은 아닌가?
『안티 오이디푸스』의 전개
욕망의 패러독스 ⇒ 욕망↔사회 ⇒ ‘스키조와 파라노’론, 욕망사관, '죽음의 본능’설
Ⅱ. 욕망에서 리좀으로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천의 고원』으로
1972년에 발표한 『안티 오이디푸스』는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라는 전체 타이틀의 제1권에 위치한다.
이 저작에는 속편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한참 후에 비로소 속편이 나온다.
제2권 『천의 고원』이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 8년 후인 1980년이다.
그 사이 『리좀』(1977년)이라는 소책자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천의 고원』의 서문이 된다.
『천의 고원』이 출간되고 나서 반응은 어떠했을까?
『천의 고원』이 전개한 테마는 큰 주목을 받았다.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고 매력을 느낀 독자는 속편을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어 하면서도 8년이나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러한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
『안티 오이디푸스』가 타겟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에 비해 『천의 고원』은 그
런 것에 무관심했다. (프랑소와 도스(François Dosse) 『들뢰즈와 가타리 교차적 평전』)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들뢰즈와 가타리 교차적 평전』(2007년)을 쓴 프랑소와 도스에
따라면, ‘지나치게 어렵고’ ‘너무 농밀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책은 『안티 오이디푸스』에 비하면 읽어나가기가 힘들다.
서문의 ‘리좀’과 결론을 빼면 13장으로 구성되는데, 각 장의 연관을 찾아낼 수가 없다.
연대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유는 기본적으로 배제된다.
예를 들어 1914년에서 갑자기 BC1000년으로 건너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독해의 어려움에 비해 메시지는 확실했다.
뭔지 모르지만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책은 구조주의나 사회체제가 밀어붙이는 질서와 안정에 대해 ‘싫어!’라고 거부하고 ‘안티 오이디푸스’
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사유방식을 제창한다. 그것을 표현하는 개념이 ‘욕망하는 제 기계’였다.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이 개념(‘욕망하는 제 기계’)을 『천의 고원』에서 방치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욕망의 패러독스’를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 개념에 호소한다 해도 결국은 패러독스에 빠져서 그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천의 고원』은 ‘욕망하는 제 기계’를 대신하는 개념과 논리를 제시해야만 했다.
『천의 고원』이 제창한 개념과 이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왜 『안티 오이디푸스』만큼 열광적으로 수용되지 못한 것일까?
‘리좀’ 개념의 제시
『천의 고원』에서 주도적인 개념은 무엇인가? ‘이 저작의 통일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들뢰즈는
‘그것은 아마도 《동적 편성(아장스망, agencement)》이라는 (욕망하는 제 기계를 대신하는) 개념’이
라고 답한다(『들뢰즈와 가타리 교차적 평전』).
‘아장스망’이라는 것은 일상적으로 ‘정리’나 ‘배치’ 혹은 ‘조립’을 뜻하는 극히 보통의 단어이다(부언하면
이 단어는 하이데거가 기술론을 전개할 때 기축이 되었던 개념인 ‘게슈텔(Ge-stell)’[조립]을 상기시
킨다).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이 ‘아장스망’을 생물을 모델로 구상한다.
예를 들어, 땅 밑 줄기라는 의미의 ‘리좀’을 생각해보자.
이 개념은 다양성과 비등질성을 원리로 하는 ‘비중심화 리좀’으로 간주되면서 한편으로 ‘서열(중심화)
리좀’의 ‘수목’에 대치된다. 따라서 들뢰즈=가타리가 ‘리좀’을 평가하고 ‘수목’을 거부한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리좀이 차단되어 나무처럼 되면 모든 것은 끝장이고 이제 욕망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욕망이 움직이고 생산하는 것은 언제나 리좀을 통해서니까. 욕망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반드시 내적인 추락
들이 생겨, 욕망을 좌절시키고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리좀은 외부적이고 생산적인 발아를 통해 욕망에게 작동한다.
(『천의 고원』「서문 리좀」, 한국어판 33쪽에서 옮겨옴)
이러한 ‘리좀’적인 존재방식에서 여러 것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장스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리좀’적인 ‘아장스망’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에 있다.
종종 내려지는 해석은 들뢰즈=가타리의 ‘리좀적 아장스망’을 푸코의 ‘권력 네트워크’와 중첩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앎의 의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력이 가능한 조건 […]은 최초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중심점에서, 즉 파생해서 내려오는 제 형태가 그곳을
중심으로 넓혀가야 하는 주권의 유일한 중추에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불평등에 의해 끊임없이 권력의 상태를, 다만 항상 국지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이끌어내는 힘
관계를 흔드는 무대이다. (『성의 역사 Ⅰ 앎의 의지』4장)
분명 푸코의 ‘권력의 네트워크’도 들뢰즈=가타리의 ‘리좀적 아장스망’도 위로부터 강제적으로 움직이는
‘중심적 시스템’이 아니고 다양한 방향으로 넓혀가는 국지적으로 불안정한 ‘비중심적 시스템’이다.
그러나 양자는 그 상태가 완전히 반대이다.
‘리좀적 아장스망’이 해방을 목표로 하는 것에 비해, ‘권력의 내트워크’는 그러한 희망을 깨부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리좀적 아장스망’도 『안티 오이디푸스』의 ‘욕망의 패러독스’로부터 완전히 벗어
난 것은 아니다.
표현이 조금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이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천의 고원』은 『안티 오이디푸스』를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 것일까?
마이크로파시즘
먼저 확인해둘 것은 『천의 고원』에서도 ‘욕망의 패러독스’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욕망은 왜 억압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 억압을 욕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해 『천의 고원』은 어떻게 답했을까?
『안티 오이디푸스』에서는 몇 번이나 되물은 것에 비해 『천의 고원』에서는 아예 다음과 같이 답을
내리고 있다.
이처럼 포괄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마이크로파시즘밖에는 없다. […] 욕망이란 필연적으로 여러
분자적 층위들을 지나가는 복합적인 배치물들과 절대 분리될 수 없으며 […] 욕망은 결코 미분화된 충동적
에너지가 아니라 정교한 몽타주에서, 고도의 상호작용을 수반한 엔지니어링에서 만들어진다.
분자상태의 에너지를 처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욕망이 이미 파시즘의 욕망이 되도록 결정지어지는 유연한
절편성. 마이크로파시즘을 분비하는 것은 좌익 조직으로 끝나지 않는다.
(『천의 고원』「9 마이크로정치학과 절편성」, 한국어판 409-10쪽에서 옮겨옴. ※한국어판에서 마이크로파시
즘을 미시파시즘으로, 마이크로정치학을 미시정치학으로 번역했으나, 본 글에서는 일본어번역을 따르기로
하겠다. 마이크로는 시각의 범위뿐만 아니라 세밀한 구체성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들뢰즈=가타리가 제시하는 관점은 『안티 오이디푸스』와 같이 욕망과 억압을 별개로 분리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관련지을 것인가를 다루지 않는다. 그랬다면 틀림없이 ‘욕망의 패러독스’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의 고원』에서는 오히려 욕망 그 자체가 이미 자기 자신의 억압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욕망은 자기 자신의 소멸을 바란다거나 파괴적인 힘을 가진 것을 바라기까지 한다. 화폐의 욕망, 군대의 욕망,
경찰이나 국가의 욕망, 파시스트의 욕망. 파시즘조차도 욕망인 것이다.
(앞의 책, 「6 어떻게 기관 없는 신체를 획득할까?」)
그렇다고 한다면, 리좀(땅 밑 줄기)과 수목(나무)의 대비는 영속적이지 않다.
‘리좀’은 언제라도 ‘수목’으로 전화하고 또 ‘수목’이라고 해도 ‘리좀’화한다.
예를 들어 해방투사였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권위적인 파시스트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히 접하는
이야기이다.
리좀 가운데에도 수목이나 뿌리의 구조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또한 반대로 수목의 줄기와 뿌리의 일부가 리좀
으로 발아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앞의 책 「서문 리좀」)
이렇게 생각하면, 『안티 오이디푸스』와 같이, ‘욕망의 패러독스’를 고민할 필요가 없을는지 모른다.
‘욕망이 어떻게 억압을 욕망할까?’라고 묻는다면, ‘리좀이 수목으로 끊임없이 전화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욕망의 패러독스’의 해결일까? 오히려 문제 그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즉 ‘리좀은 언제 수목으로 전화하는가?’. 또 ‘수목을 리좀화하기 위해
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천의 고원』은 어떻게 답했을까?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14 평활(平滑)과 조리(條里)」 장을 다뤄보도록 하자.
이 장은 결론 직전에 위치하여 내용적으로는 마지막이라 할 수 있고, 『천의 고원』의 최종적인 주장을
드러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평활과 조리’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천의 고원』도 『안티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로 일련의 중요한 구별, 예를 들면
‘탈영토화’와 ‘영토화’, ‘노마드(유목민)’과 ‘정주화’, ‘분자적’과 ‘모노적’ 등의 대립이 제출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의 대립은 서로 전환되거나 혼합된다.
이 점은 ‘평활과 조리’ 장에서도 변함이 없다. 여기서는 인간이 활동하는 두 공간의 존재방식—매끈한
‘평활공간’과 명확히 구별되는 ‘조리공간’—이 구별되며, 나아가 그것들이 서로 이행하여 합치는 과정
이 전개된다. 이 장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평활(매끈한)공간과 조리(구분되는)공간, —유목민 공간과 정주민 공간, —전쟁기계가 전개되는 공간과 국가
장치에 의해 설정되는 공간, —이 두 공간의 성질은 다르다. […] 나아가 이 두 공간은 사실상 혼합하지 않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평활공간은 끊임없이 조리공간 속에 번역되고 그것을 횡단하는 한편, 조리공간은 언제나 평활공간으로 반전하여
되돌려 보내진다. (앞의 책, 「14 평활과 조리」)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립이다.
한편으로 해방적이고 자유로운 ‘평활[매끈한]공간’, ‘유목민 공간’, ‘전쟁기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조리[구분되는]공간’, ‘정주민 공간’, ‘국가장치’가 있다.
전자는 ‘리좀’ 타입이며, 후자는 ‘수목’ 타입이다.
그러나 문제는 들뢰즈=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전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천의 고원』은 양자의 ‘혼합’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장의 마지막에서 들뢰즈=가타리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우리의 관심은 특히 조리화와 평활화의 다양한 작용에서의 이행과 혼합이다. 공간은 이렇게 행사되는 힘에 구속
되어 끊임없이 조리화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또 그와 동시에 공간은 어떻게 또 다른 힘을 발전시켜 조리화를 통해 새로운 평활공간을 출현시킬 수 있을까?
가장 조리화된 도시조차도 평활공간을 출현시킨다. (앞의 책)
도식. 『천의 고원』의 전개
리좀형 탈영토화, 유목민(노마드), 분자적, 평활공간, 전쟁기계
⇓ 반전 ⇑ 횡단
수목형 영토화, 정주민, 몰적, 조리공간, 국가장치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들뢰즈=가타리는 『천의 고원』에서 자유로운 ‘평활공간’과 억압적인 ‘조리공간’
이 서로 이해하고 결합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이크로파시즘’의 사유와 동일하며 극히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적인 세력(‘전쟁기계’)이 어느 순간 파시스트(‘국가장치’)로 이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국가장치의 ‘조리화된 공간’에 포획된 사람들이 어떻게 혁명적인 ‘평활공간’으로 향하
는가를 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다만 질문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어디서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방을 구하는 혁명적인 이론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어쩌면 국가장치를 강조하는 진영에 유효한 이론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비꼬아보면, 슬라보예 지젝이 『로베스 피에르/모택동』(2007년)에서 말한 것처럼 재밌는 논점이
만들어진다.
이스라엘 국방군의 군사학교는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이스라엘 국방군의 시가전을 개념화하기 위해 들뢰즈=
가타리의 『천의 고원』을 계통적으로 참조하고 그것을 ‘작전이론’으로 이용하고 있다. […]
그들이 의거하는 중요한 구별의 하나는 ‘평활’ 공간과 ‘조리’ 공간인데, 그것은 ‘군사기계’와 ‘국가장치’라는 질서개
념을 반영한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국방군은 경계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작전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 종종 ‘공간을 평활화한다’는
표현마저 사용한다. 또 팔레스타인 인민의 거주 지구는 펜스와 벽, 도랑과 도로를 막는 블록 등으로 포위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조리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Ⅰ 모택동」)
그러나 『천의 고원』은 본래 ‘리좀’적 해방의 이론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목(나무)’적인 억압에 이용되는 것은 무슨 역설이란 말인가?
이 책이 80년에 발표될 때 그렇게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Ⅲ. 관리사회론의 충격
『천의 고원』과 사회적 변화
『천의 고원』이 출간된 1980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큰 전환점에 있었다.
구조주의의 퇴조가 분명하게 자각되었던 것이다.
이 해에 바르트는 급거하고, 알튀세르도 정신착란 중에 아내를 교살했다.
같은 해 라캉의 지도를 받은 파리・프로이트파가 분열하고, 그 이듬해 라캉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다.
또 푸코는 1984년에 『성의 역사』 2권과 3권을 출판한 후 곧 에이즈에 걸려 사망에 이른다.
이렇게 1980년대 전반에 레비-스트로스를 제외하고 구조주의자들 모두가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상 구조주의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 변화는 사상계 전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일찍이 구조주의가 번성할 때에 인류학과 정신분석학, 언어학과 마르크스주의가 유력한 연구분야로 부상했다.
그러나 80년을 맞이할 무렵에는 완전히 상황이 돌변한다.
도스에 의하면, ‘1980년 구조주의의 영광의 시기를 선도한 인류학, 언어학, 정신분석학 모두가 위기, 퇴조,
작열(炸裂), 이론상의 동요의 상황을 맞이했다’(『구조주의의 역사』 4부).
이 상황은 ‘사회에 대한 이의신청 운동’에 대한 비판을 만들어내었다.
‘68년 5월’조차도 이제는 비판될 수 있고, 오히려 자본주의가 평가되었다.
이렇게 되면 퇴조하는 것은 구조주의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좌익사상’ 전반이 역풍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6장을 참조하시오).
그 움직임을 일찍부터 관찰하여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장 프랑소와와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1979년)이다.
리오타르는 이 책에서 서구자본주의의 최근 상황을 ‘포스트모던 상황’이라 규정하고 그것이 구래의 사회
로부터 어떻게 이탈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그 당시 서구선진제국에서는 소비사회의 진전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근대(모던)’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윽고 마르크스주의적인 혁명의 이상은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는 구조주의의 퇴조 후의 프랑스 현대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이 『안티 오이디푸스』만큼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도 이에 기인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변화에 의해 새롭게 나타나는 상황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들뢰즈가 『천의 고원』이후 고투한 것은 바로 이 문제이다.
들뢰즈는 대체 어떠한 문제에 골몰한 것일까?
『기호와 사건』(1990년)에서 들뢰즈는 ‘관리사회론’을 인상적으로 기술했는데, 이 ‘관리사회론’에서
근년의 사회적 변화를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들뢰즈의 ‘관리사회론’을 다룸으로써 『천의 고원』이후의 새로운 사상적 전개를 확인할 수 있다.
『천의 고원』에서 관리사회론으로
들뢰즈=가타리가 『천의 고원』 이후 공동으로 집필한 것이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년)이다.
그 후 1992년에 가타리가 사망하고, 1995년에는 들뢰즈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따라서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천의 고원』으로 이어지는 그 마지막에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연속성이나 다른 사상으로의 파급을 생각해보면, 『기호와 사건』에서의 ‘관리사회론’
(「관리와 생성변화」「추신—관리사회에 대하여」)을 중요하게 언급해둘 필요가 있다.
‘관리사회론’이란 무엇인가?
들뢰즈=가타리는 『천의 고원』에서 ‘리좀’이라는 모델을 따라 ‘아장스망’ 개념을 전개했는데, 거기에는
큰 난문이 도사린다. 즉 해방적인 ‘리좀’은 끊임없이 ‘수목’화되어 ‘국가장치’로 통합되어 버린다.
그들의 개념을 사용하면 ‘탈영토화’는 ‘영토화’되고 ‘노마드(유목민)’는 ‘정주민’이 되며, ‘평활공간’은
‘조리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로부터 탈출(도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기호와 사건』에서 들뢰즈와 대담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네그리는 후에 들뢰즈의 관리사회론을 채용하여 마이클 하트와 함께 『<제국>』(2001년)을 집필하는데, 『기호와 사건』에서는 질문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나에게 『천의 고원』은 매우 중요한 철학서임은 분명하지만, 이 책은 미해결의 문제를 정리한 목록과 같은 측면
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 측면은 정치철학의 분야에서 현저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과 투기, 특이성과 주체, 구성체와 조직체, 도주선과 그 대극의 장치 및 전략, 마이크로와 매크로 등 대항적인
개념이 차례차례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모두 항상적으로 열려있으며 끊임없이 절개(切開)하고 되는
와중에 터무니없는 이론에의 의지와 이단(異端)의 변죽거리는 거친 말투가 느껴집니다.
그러한 전복의 기도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여전히 ‘전쟁기계’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수 없을 때, 자칫 그 비통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기호와 사건』「관리와 생성변화」)
이 질문에 대해 들뢰즈는 스트레이트로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천의 고원』이 보여주는 중요한
방향으로써 세 가지를 든다.
하나는 사회라는 것은 그 ‘모순보다도 도주선을 좋아하고 검토한다’라는 것,
또 하나는 ‘계급보다도 마이너리티를 검토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전쟁기계’의 존재방식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전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자각만 하면 좋았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프롤레타리아 상은 우리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들뢰즈의 회답을 듣고 네그리는 납득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들뢰즈에게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그렇다면 마이너리티로의 생성변화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저항은 현실의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
습니까? 당신의 글을 읽고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언제나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착취 받는 사람들의 저항이 그 효력을 발휘하여 용서할 수 없는 소행을 일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앞의 책)
네그리가 제기한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 푸코가 ‘권력론’을 제시할 때 빠진 난제와 공통한다.
들뢰즈=가타리는 푸코와 달리 해방적인 ‘욕망’이나 ‘리좀’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푸코가 만난 미로와
동일한 미로에 빠지고 만다.
네그리가 계속 질문을 던진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가 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자, 네그르는 방향을 바꾸어 다그치듯이 되묻는다.
푸코론에서 […] 당신은 권력의 행사가 보여주는 세 형태에 철저한 분석을 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세 형태란 우선 ‘군주형’, 그 다음은 ‘규율형’,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을 조종하는 ‘관리형’의
권력이 그것인데요, 이 마지막 형태가 지금 헤게모니를 획득하려고 합니다. […]
마르크스적인 유토피아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로운 개인의 의해 횡단적인 조직의 형상을 드러내고 그 조건
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기술적인 기반이 위치합니다. 지금도 코뮤니즘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커뮤니케이션 사회가 도래한 지금, 커뮤니케이션은 이전만큼 유토피아적일 수 없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앞의 책)
1986년에 출판된 『푸코』에서 들뢰즈는 푸코가 권력론의 미로에서 어떻게 탈출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해석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사실상 『천의 고원』의 난문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들뢰즈는 푸코의 권력론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이해에 도달했다.
그것이 바로 들뢰즈의 관리사회론이다.
포스트규율사회로서의 관리사회
들뢰즈의 관리사회론이 공개된 후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에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들뢰즈가 ‘관리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푸코의 ‘규율사회’와 대비하면서 푸코의 일반적인
이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이 ‘관리사회’의 시대에 당도한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 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규율형으로 부르기 어렵
습니다. 푸코는 보통 규율사회와 그 중심적인 기술인 감시(병원이나 감옥 뿐만 아니라 학교, 공장, 병영도 포함
하여)에 천착한 사상가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푸코는 규율사회란 우리들에게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사회이며 이미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낸 선구자 중 한사람입니다. (앞의 책)
1990년 무렵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읽고 놀라지 않았을까? 그때 많은 사람들은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푸코를 ‘규율권력’의 사상가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우리들의 현대사회도 ‘규율사회’로 보고 있었다.
푸코가 19세기 이후의 ‘근대사회’에 대해 논할 때에도 ‘현대’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이해되었다.
그런데 들뢰즈는 그러한 상식적인 푸코 이해를 한방에 날려 보내고 푸코 자신은 오히려 ‘규율사회’의
종말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들뢰즈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규율사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회로서 ‘포스트규율사회’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규율사회’를 대신해 현대에는 무엇이 등장하는 것일까?
우리들이 관리사회 시대에 당도했을 때 사회는 이미 감시에 의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적인 관리와 즉자
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활개칩니다.
관리사회 분석의 불을 지핀 것은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1914~1997, 미국의 소설가)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감옥, 학교, 병원이 세론을 흔들고 있지요. 그것은 이 제도들이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도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은 제도의 연명을 기도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고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타입의 징벌과 교육과 치료가 어떤 형태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감지하고 있지요. (앞의 책)
이와 같이 규율사회에서 알고자 하는 것은 관리사회에 다름 아닙니다. (앞의 책, 「추신—관리사회에 대하여」)
여기서 들뢰즈가 ‘관리사회’를 말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자본주의의 변화이다.
즉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행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판매와 시장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가리킨다. 이 변화는 소비사회와 정보사회로의 변화에 대응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시장의 획득은 관리의 확보에 의해 시행되며, 규율의 형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리사회에서는 실질적으로는 컴퓨터에 의한 관리가 중요한 작업이 된다.
들뢰즈가 관리사회론을 구상할 당시에는 그의 이야기가 공상적으로 들렸을지 모르지만, 현재에는 이미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굳이 SF를 떠올리지 않고서도 보호구내의 동물과 (일렉트로닉스의 목걸이를 착용한) 기업의 인간 등 열린 환경
에서 성원의 위치를 각 순간마다 알려주는 관리 기구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가타리가 예측했던 것은, 장벽을 해소하는 일렉트로닉스 카드(가능성)에 의해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거리를 떠날 수 있는 마을입니다.
그러나 정해진 날짜와 정해진 시간대에는 동일한 카드라도 거절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벽이 아니라 적법한 자와 불법한 자로 할당되는 각 개인의 위치이며 전세계적인 규모로
변조되는 컴퓨터입니다. (앞의 책)
오늘날의 시점에서 들뢰즈의 관리사회론을 읽으면 그 선진적인 의의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아직 컴퓨터 네트워크가 발전되지 않은 단계인데도, 들뢰즈는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행을 목도하고 그것을 이해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들뢰즈가 ‘관리사회’를 어떻게 넘어서고자 했는가 이다.
관리사회의 너머로
21세기를 맞이할 무렵 관리사회가 현실화되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들뢰즈가 논했을 당시
에는 아직 규율사회와 관리사회의 구별조차 인식되지 못했다.
그래서 들뢰즈는 관리사회의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규율사회와 대비함으로써 그 특징을 해명하고자
했다. 그 하나가 ‘개인’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이다. 최근 컴퓨터 사회를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된다.
규율사회에는 두 개의 극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을 표시하는 서명이며, 또 하나는 집단에서 개인의 위치를 표시
하는 수치와 등록번호입니다. 즉 규율의 측면에서 개인과 집단 간의 양립불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은
집단의 형성과 개인의 형성을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
반대로 관리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수치도 서명도 아니고 숫자입니다. […]
관리사회에서 숫자는 암호로 기능합니다. […] 그 숫자는 정보에 접근하려 할 때 그러나 그 접근이 거절될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집단도 개인도 아닙니다.
분할불가능한 개인(individuals)은 분할에 의해 그 성질을 변화시키는 ‘가능성’(dividuals)이 되며, 집단 또한 샘플,
데이터, 마켓 등의 ‘데이터뱅크’로 변해버립니다. (같은 책)
관리사회에서 개개인은 정보수집을 위한 데이터로서 다양한 단편으로 분할되어 간다.
예를 들어 승객의 데이터로서, 상점의 데이터로서, 음식점의 데이터로서, 금융기관의 데이터로서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마케팅이 관리사회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사회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유비쿼터스로 관리되며, 나아가 그러한 관리는 끝없이 계속
된다.
규율사회에서는 (학교에서 병영으로, 병영에서 공장으로 이행할 때) 언제나 제로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관리사회에서는 어떤 하나로 끝낼 수가 없습니다. […]
규율사회에서는 보여주기식의 방면(放免)(이것은 두 번에 나뉘어 투옥하는 그 사이의 상태입니다)이라도 있지만,
관리사회에서는 절대로 연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항상적인 변이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규율사회와 관리사회는 완전히 다른 사법생활의 상태입니다. (앞의 책)
자기 자신의 생활을 각자 돌이켜보면 들뢰즈의 표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관리사회
에서는 개개인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그 정보는 어딘가로 흘러들
어가 기록 보전된다. 게다가 그 정보는 상호 유통되어 축적된다.
이 시스템에서 현대인은 도망갈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기존의 저항운동의 방식이 절대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예전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자각만 하면 좋았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프롤레타리아
상은 우리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다’는 것은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목표로
하는 것은 ‘규율에 항거하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규율사회의 투쟁은 현재 모델에 맞지 않다. 그렇다면 그 대신 들뢰즈는 대체 무엇을 제시한 것일까?
노동조합은 관리사회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마케팅의 즐거움에 맞설 수 있고, 새로운 저항형태를 현시점에서 이미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수많은 청년들이 ‘동기부여’를 강하게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연수와 평생교육을 받고 싶다고 하지요. 자신들을 무엇에 헌신하고 싶다고 할까요, 그것을 찾아내는 노력은
청년들 자신의 몫입니다. 그들의 선배가 힘들게 규율의 목적성을 찾아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아리를 튼 뱀
[관리사회]은 두더지 소굴[규율사회]보다도 훨씬 복잡합니다. (같은 책)
이 이야기에서 들뢰즈는 그의 관리사회론을 문 닫고 있다. 즉 들뢰즈는 관리사회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
가에 대해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대답은 다음 세대의 숙제로 남겨질 수 밖에 없다.
岡本裕一朗, 2015, 『フランス現代思想史:構造主義からデリダ以後へ』
[프랑스 현대사상사: 구조주의에서 데리다 이후까지], 中公新書, 제4장.
(번역;사막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