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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

맹자 번역본 (2) -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6.06.26|조회수861 목록 댓글 0



*맹자 ;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

 

▣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

 

凡十六章이라』

 

『  모두 16()이다.

 

     『○ 맹자 ; 양혜왕하 ; 1+1

     『○ 맹자 ; 양혜왕하 ; 2+2

     『○ 맹자 ; 양혜왕하 ; 3+3

     『○ 맹자 ; 양혜왕하 ; 4+4

     『○ 맹자 ; 양혜왕하 ; 5+5

     『○ 맹자 ; 양혜왕하 ; 6+6

     『○ 맹자 ; 양혜왕하 ; 7+7

     『○ 맹자 ; 양혜왕하 ; 8+8

     『○ 맹자 ; 양혜왕하 ; 9+9

     『○ 맹자 ; 양혜왕하 ; 10+10

     『○ 맹자 ; 양혜왕하 ; 11+11

     『○ 맹자 ; 양혜왕하 ; 12+12

     『○ 맹자 ; 양혜왕하 ; 13+13

     『○ 맹자 ; 양혜왕하 ; 14+14

     『○ 맹자 ; 양혜왕하 ; 15+15

     『○ 맹자 ; 양혜왕하 ; 16+16

 

*맹자 ; 양혜왕하 ; 1

 

▣ 제1(第一章)

 

 

莊暴見孟子曰 暴見()於王하니 王語暴以好樂이어시늘 暴未有以對也하니 曰 好樂何如하니잇고 孟子曰

王之好樂이면 則齊國其庶幾乎인저』

 

『  장포(莊暴)가 맹자(孟子)를 뵙고 말하였다. “포()가 왕()을 뵈오니, ()께서 저에게 음악(音樂)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저는 여기에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음악(音樂)을 좋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

였다. “왕()께서 음악(音樂)을 좋아함이 심하시면 제()나라는 그 거의 다스려질 것이다.”』

 

莊暴齊臣也庶幾近辭也言近於治라』

 

『  장포(莊暴)는 제()나라 신하(臣下)이다. 서기(庶幾)는 가깝다는 말이니, 다스려짐에 가까움을 말한 것이다.

 

他日見於王曰 王嘗語莊子以好樂이라하니 有諸잇가 王變乎色曰 寡人非能好先王之樂也直好世俗之樂耳

소이다』

 

『  타일(他日)에 맹자(孟子)께서 왕()을 뵙고 말씀하였다. “왕()께서 일찍이 장자(莊子)[장포(莊暴)]』에게

음악(音樂)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였다 하오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왕()이 얼굴빛을 변하고 말씀하였다. “과인

(寡人)은 선왕(先王)의 음악(音樂)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속(世俗)의 음악(音樂)을 좋아할 뿐입니다.”』

 

變色者慙其好之正也라』

 

『  얼굴빛을 변한 것은 그 좋아함이 올바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曰 王之好樂이면 則齊其庶幾乎인저 今之樂()古之樂也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왕()께서 음악(音樂)을 좋아하심이 심하시면 제()나라는 그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 음악(音樂)이 옛 음악(音樂)과 같습니다.”』

 

今樂世俗之樂이요 古樂先王之樂이라』

 

『  지금 음악은 세속(世俗)의 음악이요, 옛 음악은 선왕(先王)의 음악이다.

 

曰 可得聞與잇가 樂樂:악락』과 與人樂樂孰樂이니잇고 若與人이니이다 曰 與少樂樂與衆樂樂

孰樂이니잇고 若與衆이니이다.

 

『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홀로 음악을 즐김과 다른 사람과 음악을 즐김이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남과

더불어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적은 사람과 음악을 즐김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김이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많은 사람과 더불어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獨樂이 不若與人이요 與少樂이 不若與衆亦人之常情也라』

 

『  홀로 즐김이 남과 더불어 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적은 사람과 즐김이 많은 사람과 더불어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함은 또한 사람의 떳떳한 정()이다.

 

臣請爲王言樂하리이다』

 

『  “신()이 청컨대 왕()을 위하여 음악(音樂)을 말씀드리겠습니다.”』

 

此以下皆孟子之言也라』

 

『  이 이하는 모두 맹자(孟子)의 말씀이다.

 

今王鼓樂於此어시든 百姓聞王鍾鼓之聲之音하고 擧疾首蹙而相告曰 吾王之好鼓樂이여 夫何使我至於此極也하여 父子相見하며 兄弟妻子離散고하며 今王田獵於此어시든 百姓聞王車馬之音하며 見羽之美하고 擧疾首蹙而相告曰 吾王之好田獵이여 夫何使我至於此極也하여 父子相見하며 兄弟妻子離散고하면 無他라 不與民同樂也니이다.

 

『  지금 왕()이 이 곳에서 음악(音樂)을 타시면 백성들이 왕()의 종소리, 북소리와 피리소리, 젓대소리를 듣고는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음악(音樂)을 타시기 좋아하심이여! 어찌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해서 부자간(父子間)이 서로 만나보지 못하며, 형제처자(兄弟妻子)가 이산(離散)되게 하는가.’ 하며, 지금 왕()이 이 곳에서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은 왕()의 수레소리, 말소리를 들으며 깃과 들소꼬리를 만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사냥을 좋아하심이여! 어찌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해서 부자간(父子間)이 서로 만나보지 못하며 형제처자(兄弟妻子)가 서로 이산(離散)되게 하는가.’ 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임금께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鍾鼓管촺은 皆樂器也皆也疾首頭痛也聚也요 촂은 額也人憂戚則蹙其額이라 窮也

쭨는 旌屬이라 不與民同樂謂獨樂其身하고 恤其民하여 使之窮困也라』

 

『  종()•고()와 관()•약()은 모두 악기(樂器)이다. ()는 모두이다. 질수(疾首)는 머리가 아픈 것이다.

()은 모임이요, ()은 이마이니, 사람이 근심하면 이마를 찌푸리게 된다. ()은 곤궁함이다.

우모()는 깃발의 등속이다.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홀로 그 자신만 즐기고 백성을 구휼

하지 않아서 그들로 하여금 곤궁하게 함을 말한다.

 

 

今王鼓樂於此어시든 百姓聞王鍾鼓之聲之音하고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何以能鼓樂也오하며 今王田獵於此어시든 百姓聞王車馬之音하며 見羽之美하고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

庶幾無疾病與何以能田獵也오하면 無他與民同樂也니이다.

 

『  지금 왕()이 이 곳에서 음악(音樂)을 타시면 백성들이 왕()의 종소리, 북소리와 피리소리, 젓대소리를 듣고는

모두 흔연(欣然)히 기뻐하는 기색이 있으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행여 질병(疾病)이 없으신가, 어떻게

음악(音樂)을 타시는가.’ 하며, 지금 이 곳에서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이 왕()의 수레소리, 말소리를 들으며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흔연(欣然)히 기뻐하는 기색이 있으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이 행여 질병(疾病)

없으신가. 어떻게 사냥을 하시는가.’ 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與民同樂者推好樂之心하여 以行仁政하여 使民各得其所也라』

 

『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한다는 것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미루어 인정(仁政)을 행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각기 그 살 곳을 얻게 하는 것이다.

 

今王與百姓同樂하시면 則王矣시리이다』

 

『  지금 왕께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신다면 왕노릇 하실 것입니다.”』

 

好樂而能與百姓同之貝天下之民歸之矣리니 所謂齊其庶幾者如此니라』

『○ 范氏曰 戰國之時民窮財盡人君獨以南面之樂:남면지락』로 自奉其身일새 孟子切於救民이라 因齊王之好樂하여 開導其善心하여 深勸其與民同樂하여 而謂今樂猶古樂이라하시니 其實今樂, 古樂何可同也리오 但與民同樂之意則無古今之異耳若必欲以禮樂治天下인댄 當如孔子之言하여 『必用韶舞하고 必放鄭聲:필용소무』이니 蓋孔子之言爲邦之正道孟子之言救時之急務所以이니라』

『○ 楊氏曰 樂以和爲主하니 使人聞鍾鼓管絃之音하고 而疾首蹙촂이면 則雖奏以咸英韶濩:함영소호』라도 無補於治也孟子告齊王以此하시니 姑正其本而已시니라』

 

『  음악을 좋아하면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한다면 천하(天下)의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니, 이른바 제()나라가 그 거의 다스려진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백성들이 곤궁하고 재물이 다함은 인군(人君)이 홀로 남면(南面)의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그 몸만을 받들었기 때문이다. 맹자(孟子)는 백성을 구제함에 간절하였다. 그러므로 제선왕(齊宣王)의 음악(音樂)을 좋아함을 인하여 그 선()한 마음을 개도(開導)해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길 것을 깊이 권하여, 지금 음악이 옛 음악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니, 그 실제는 지금 음악과 옛 음악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다만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는 뜻은 고금(古今)의 차이가 없을 뿐이다. 만일 반드시 예악(禮樂)을 가지고 천하(天下)를 다스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공자(孔子)의 말씀과 같이 하여 반드시 소무(韶舞)를 쓰고 반드시 정()나라의 음악을 추방해야 할

것이다. 공자(孔子)의 말씀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도(正道), 맹자(孟子)의 말씀은 당시를 구제하는 급선무(急先務)이니, 이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음악은 화()함으로써 주장을 삼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종고(鍾鼓)와 관현(管絃)

음악(音樂)을 듣고는 머리를 아프게 하고 이마를 찌푸리게 한다면, 비록 함()•영()•소()•호()를 연주한다 하더라도 정치(政治)에 보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제선왕(齊宣王)에게 이것으로써 말씀하셨으니,

이는 우선 그 근본(根本)을 바로잡으셨을 뿐이다.”』

 

 

*맹자 ; 양혜왕하 ; 2

 

▣ 제2(第二章)

 

齊宣王問曰 文王之方七十里라하니 有諸잇가 孟子對曰 於傳有之하니이다』

 

『  제선왕(齊宣王)이 물었다. “문왕(文王)의 동산이 방() 70()라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전()에 그러한 것이 있습니다.”』

 

『츉蕃育鳥獸之所古者四時之田皆於農隙以講武事이나 不欲馳¨:於稼穡場圃之中이라

度閒曠之地하여 以爲츉라 이나 文王七十里之츉는 其亦三分天下有其二之後也與인저 謂古書라』

 

『  유()는 새와 짐승을 번식시키고 기르는 곳이니, 옛날에 사시(四時)의 전렵(田獵)[사냥]』을 모두 농한기에 해서 무예(武藝)의 일을 강()하였다. 그러나 곡식을 심는 <농토와 채소를 가꾸는> 장포(場圃)의 가운데에서 말을 달리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한가롭고 빈땅을 헤아려 동산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문왕(文王)70() 되는 동산은 그 또한 천하(天下)3분함에 그 3분의 2를 소유한 뒤였을 것이다. ()은 옛 책을 이른다.

 

曰 若是其大乎잇가 曰 民猶以爲小也니이다 曰 寡人之츉는 方四十里로되 民猶以爲大何也잇고 曰 文王之츉는 方七十里®;者往焉하며 雉兎者往焉하여 與民同之하시니 民以爲小 亦宜乎잇가』

 

『  “이와 같이 큽니까?” “백성들이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과인(寡人)의 동산이 방() 40()로되,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김은 어째서입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문왕(文王)의 동산이 방() 70()에 꼴 베고

나무하는 자들이 그리로 가며, 꿩을 잡고 토끼를 잡는 자들이 그리로 가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셨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김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草也요 ®;薪也라』

 

『  추()는 풀이요, (®;)는 나무 섶이다.

 

 

臣始至於境하여 問國之大禁然後敢入하니 臣聞 郊關之內方四十里殺其鹿者如殺人之罪라하니

則是方四十里?於國中이니 民以爲大 亦宜乎잇가』

 

『  신()이 처음 국경에 이르러 제()나라에서 크게 금지하는 것을 물은 뒤에야 감히 들어왔습니다. ()이 그때

들으니, 교관(郊關)의 안에 동산이 방() 40()인데, 동산에 있는 사슴을 죽이는 자를 살인(殺人)의 죄()와 같이

다스린다 하였습니다. 이는 방() 40()로 나라 가운데에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들이 크다고 여김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入國而問禁이라 國外百里爲郊郊外有關이라 ?坎地以陷獸者言陷民於死也라』

 

『  예()에 ‘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금지하는 것을 묻는다.’ 하였다. 서울 밖 백리(百里)를 교()라 하고, () 밖에

관문(關門)이 있다. (?)은 땅을 파서 짐승을 빠지게 하는 것이니, 백성을 죽음에 빠뜨림을 말한다.

 

 

*맹자 ; 양혜왕하 ; 3

 

▣ 제3(第三章)

 

齊宣王問曰 交隣國有道乎잇가 孟子對曰 有하니 惟仁者라야 爲能以大事小하나니 是故湯事葛하시고 文王事

昆夷하시니이다 惟智者라야 爲能以小事大하나니 ()王事?하시고 句踐事吳하니이다』

 

『  제선왕(齊宣王)이 물었다. “이웃나라와 사귐에 도()가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인자(仁者)만이 대국(大國)을 가지고 소국(小國)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탕왕(湯王)이 갈()나라를 섬기시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섬기신 것입니다. 오직 지자(智者)만이 소국(小國)을 가지고 대국(大國)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왕([])이 훈육(?)을 섬기시고,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섬긴 것입니다.”』

 

仁人之心寬洪惻쩊하여 而無較計大小彊弱之私小國雖或이나 而吾所以字之之心能已智者明義理하고 識時勢大國雖見侵陵이나 而吾所以事之之禮敢廢湯事見後篇하고 文王事見詩大雅하고 大王事見後章하니 所謂狄人?句踐越王名이니 事見國語, 史記하니라』

 

 

『  인인(仁人)의 마음은 너그럽고 크며 측달()[인자(仁慈)]』해서 대소(大小)와 강약(强弱)을 계교(計較)하는

사사로움이 없다. 그러므로 소국(小國)이 비록 혹 불공()한 짓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의리(義理)에 밝고 시세(時勢)를 안다. 그러므로 강대국(强大國)에게 침략과 모욕을 당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를 섬기는 예()를 더더욱 폐할 수 없는 것이다. 탕왕(湯王)의 일은 뒤편『[등문공하

(¦!文公下)]』에 보이고, 문왕(文王)의 일은 《시경(詩經)》〈대아(大雅)〉에 보이며, 태왕(大王)에 대한 일은 뒷장에

보이니, 뒷장의 이른바 ‘적인(狄人)’이 바로 훈육(?)이다. 구천(句踐)은 월왕(越王)의 이름이니, 이 사실은 《국어

(國語)》와 《사기(史記)》에 보인다.

 

以大事小者樂天者也以小事大者畏天者也樂天者保天下하고 畏天者保其國이니이다』

 

『  대국(大國)을 가지고 소국(小國)을 섬기는 자는 천리(天理)를 즐거워하는 자요, 소국(小國)을 가지고 대국(大國)

섬기는 자는 천리(天理)를 두려워하는 자이니, 천리(天理)를 즐거워하는 자는 온 천하를 보전하고, 천리(天理)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 나라를 보전합니다.

 

天者理而已矣大之字小小之事大皆理之當然也自然合理曰樂天이요 不敢違理曰畏天

이라 包含하여 킂은 保天下之氣象也制節謹度하여 不敢縱逸保一國之規模也니라』

 

『  천()은 이()일 뿐이니, 대국(大國)이 소국(小國)을 사랑함과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을 섬김은 모두 이()

당연함이다. 자연스럽게 이()에 합하므로 낙천(樂天)이라 말하고, 감히 이()를 어기지 못하므로 외천(畏天)이라

말한 것이다. 널리 포함하고 두루 덮어주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음은 천하(天下)를 보전하는 기상(氣象)이요, 예절(禮節)을 따르고 법도(法度)를 삼가서 감히 방종(放縱)하고 안일(安逸)하지 못함은 일국(一國)을 보전하는 규모(規模)이다.

 

詩云 畏天之威하여 于時保之라하니이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전한다.’ 하였습니다.”』

 

周頌我將之篇이라 是也라』

 

『  시()는 〈주송(周頌) 아장편(我將篇)〉이다. ()는 이것이다.

 

王曰 大哉言矣寡人有疾하니 寡人好勇하노이다』

 

『  왕()이 말씀하였다. “훌륭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여! 과인(寡人)이 병통이 있으니, 과인(寡人)은 용()

좋아합니다.”』

 

言以好勇故로 不能事大而恤小也라』

 

『  용()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국(大國)을 섬기고 약소국(弱小國)을 구휼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對曰 王請無好小勇하소서 夫撫劍疾視曰 彼惡()敢當我哉리오하나니 匹大之勇이라 敵一人者也王請大之하소서』

 

『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왕()은 청컨대 작은 용()을 좋아하지 마소서. 칼을 어루만지고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당하겠는가.’ 하나니, 이것은 필부(匹夫)의 용()이라,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

()은 청컨대 용()을 크게 하소서.”』

 

疾視怒目而視也小勇血氣所爲大勇義理所發이니라』

 

『  질시(疾視)는 눈을 부릅뜨고 보는 것이다. 소용(小勇)은 혈기(血氣)로 하는 것이요, 대용(大勇)은 의리(義理)에서

나오는 것이다.

 

詩云 王赫斯怒하사 爰整其旅하여 촀±3죥하여 荑周祜하여 以對于天下라하니 文王之勇也文王一怒而安天下之民하시니이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왕()께서 혁연(赫然)히 노하사 이에 그 군대를 정돈하여 침략하러 가는 무리들을 막아서 주()나라의 복()을 돈독히 하여 천하(天下)에 보답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은 문왕(文王)의 용()이니, 문왕(文王)이 한번 노하시어 천하(天下)의 백성을 편안히 하셨습니다.

 

大雅皇矣篇이라 赫然怒貌於也衆也라 촀은 詩作按하니 止也라 ±3往也라 죥는 詩作旅하니 ±3謂密人侵阮±3共之衆也厚也福也答也以答天下仰望之心也文王之大勇也라』

 

『  시()는 〈대아(大雅) 황의편(皇矣篇)〉이다. ()은 혁연(赫然)히 노한 모양이다. ()은 이에이다. ()

무리『[군대]』이다. ()은 《시경(詩經)》에는 안()으로 되어 있으니, 저지한다는 뜻이다. (±3)는 감이다.

()는 《시경(詩經)》에는 여()로 되어 있으니, 조려(±3)는 밀()땅 사람이 완()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 공()땅으로 가는 무리를 말한다. ()은 두터움이다. ()는 복()이다. ()는 보답이니, 천하(天下)의 앙망(仰望)하는 마음에 보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왕(文王)의 대용(大勇)이다.

 

書曰 天降下民하사 作之君, 作之師하심은 惟曰其助上帝寵之四方이시니 有罪, 無罪惟我在어니 天下曷敢有越厥志리오하니 一人衡()行於天下어늘 武王恥之하시니 武王之勇也而武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하시니이다』

 

『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하민(下民)을 내리사 그 군주(君主)를 삼아주고 스승을 삼아줌은 상제(上帝)

돕기 때문에 그를 사방에 특별히 총애해서이다. 죄가 있든 죄가 없든 내가 있으니, 천하(天下)에 어찌 감히 그 마음을

지나치게 하는 자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천하(天下)에 횡행(橫行)하거늘 무왕(武王)이 이것을 부끄러워

하였으니, 이것은 무왕(武王)의 용()이니, 무왕(武王)이 또한 한 번 노하여 천하(天下)의 백성을 편안히 하셨습니다.

 

 

周書泰誓之篇也이나 所引與今書文小異하니 今且依此解之하노라 寵之四方寵異之於四方也有罪者我得而誅之하고 無罪者我得而安之我旣在此則天下何敢有過越其心志而作亂者乎衡行謂作亂也孟子釋書意如此하시고 而言武王亦大勇也라』

 

『  서()는 〈주서(周書) 태서편(泰誓篇)〉이다. 그러나 여기에 인용한 것은 지금의 《서경(書經)》 내용과는 약간

다르니, 지금 우선 이에 의하여 해석하겠다. 총지사방(寵之四方)은 그를 사방의 여러 나라 중에 총애하고 특이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죄가 있는 자를 내가 주벌(誅罰)할 수 있고, 죄가 없는 자를 내가 편안히 할 수 있으니 내가 이미 여기에

있은 즉, 천하(天下)에 어찌 감히 그 심지(心志)를 지나치게 해서 난()을 일으킬 자가 있겠는가. 횡행(衡行)은 난()을 일으킴을 말한다. 맹자(孟子)께서 《서경(書經)》의 뜻을 해석하기를 이와 같이 하고, 무왕(武王)또한 대용(大勇)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今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하시면 民惟恐王之好勇也하리이다』

 

『  지금 왕()께서 또한 한 번 노하시어 천하(天下)의 백성을 편안히 하신다면 백성들은 행여 왕()께서 용()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王若能如文武之爲則天下之民望其一怒以除暴亂하여 而拯己於水火之中하여 惟恐王之好勇耳니라』

『○ 此章言人君能懲小忿이면 則能恤小事大하여 以交隣國이요 能養大勇이면 則能除暴救民하여 以安天下니라 張敬夫曰 小勇者血氣之怒也大勇者理義之怒也血氣之怒는 不可有理義之怒는 不可無知此則可以見性情之正이요 而識天理人欲之分矣리라』

 

『  왕()이 만일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행위와 같이 하신다면 천하(天下)의 백성들은 왕()이 한 번 노하여 포악한 자와 난을 일으키는 자를 제거하고 자신들을 수화(水火)[도탄]』의 가운데서 구제해 주기를 바라서, 행여 왕()

()을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이다.

『  ○ 이 장()은 인군(人君)이 능히 작은 분(忿)을 징계하면 소국(小國)을 구휼하고 대국(大國)을 섬겨서 이웃나라와 사귈 수 있고, 큰 용()을 기르면 능히 포악한 자를 제거하고 백성을 구제해서 천하(天下)를 편안히 함을 말씀한 것이다.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소용(小勇)이란 혈기(血氣)의 노여움이요, 대용(大勇)이란 의리(義理)의 노여움이니, 혈기(血氣)의 노여움은 있어서는 안되고, 의리(義理)의 노여움은 없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알면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볼 수 있고,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분별을 알 것이다.”』

 

 

*맹자 ; 양혜왕하 ; 4

 

▣ 제4(第四章)

 

 

齊宣王見孟子於雪宮이러니 王曰 賢者亦有此樂乎잇가 孟子對曰 有하니 이면 則非其上矣니이다』

 

『  제선왕(齊宣王)이 맹자(孟子)를 설궁(雪宮)에서 뵈었는데, ()이 말씀하였다. “현자(賢者)도 또한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雪宮離宮名이라 言 人君能與民同樂이면 則人皆有此樂이요 不이면 得此樂者必有非其君上之心이니 明人君當與民同樂하여 不可使人有得者非但當與賢者共之而已也니라』

 

『  설궁(雪宮)은 이궁(離宮)[행궁(行宮)]』의 이름이다. 인군(人君)이 능히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면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낙()을 가질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아래에서 이 낙()을 얻지 못한 자들이 반드시 그 군상(君上)을 비난하는 마음을 갖음을 말씀한 것이다. 인군(人君)은 마땅히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얻지 못한

자가 있게 해서는 안될 것이요, 비단 마땅히 현자(賢者)와 더불어 함께 할뿐만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不得而非其上者非也爲民上而與民同樂者亦非也니이다』

 

『  <()> 얻지 못했다 하여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자도 잘못이요,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지 않는 자도 또한 잘못입니다.

 

安分恤民皆非理也라』

 

『  아랫사람이 분수를 편안히 여기지 못함과 윗사람이 백성을 구휼하지 않음은 모두 도리(道理)가 아니다.

 

樂民之樂者民亦樂其樂하고 憂民之憂者民亦憂其憂하나니 樂以天下하며 憂以天下然而王者 未之有也니이다』

 

『  백성의 낙()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들 또한 그 군주(君主)의 낙()을 즐거워하고,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들 또한 그 군주(君主)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즐거워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며, 근심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고

이렇게 하고도 왕노릇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樂民之樂而民樂其樂이면 則樂以天下矣憂民之憂而民憂其憂則憂以天下矣라』

 

『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해서 백성들이 그 군주(君主)의 즐거움을 즐거워한다면 즐거워하기를 천하로써 하는 것이요, 백성의 근심을 근심해서 백성들이 그 군주(君主)의 근심을 근심한다면 근심하기를 천하로써 하는 것이다.

 

 

昔者齊景公問於晏子曰 吾欲觀於轉附朝¨6하여 遵海而南하여 放于琅邪하노니 吾何修而可以比於先王觀也오』

 

『  옛적에 제경공(齊景公)이 안자(晏子)에게 묻기를 ‘내 전부산(轉附山)과 조무산(¨6)을 구경하고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가서 낭야(琅邪)에 이르고자 하노니, 내 어떻게 닦아야 선왕(先王)의 관광(觀光)에 견줄 수 있겠는가?’ 하였

습니다.

 

晏子齊臣이니 쵥이라 轉附, ¨6皆山名也循也至也琅邪齊東南境上邑名이라 遊也라』

 

『  안자(晏子)는 제()나라 신하이니, 이름은 영()이다. 전부(轉附)와 조무(¨6)는 모두 산() 이름이다. ()은 따름이다. ()은 이름이다. 낭야(琅邪)는 제()나라 동남(東南)쪽 국경 가에 있는 읍() 이름이다. ()은 유람이다.

 

晏子對曰 善哉問也天子適諸侯曰巡狩巡狩者巡所守也諸侯朝於天子曰述職이니 述職者述所職也無非事者耕而補하며 斂而助하나니 『夏諺曰:하언왈』 吾王吾何以休吾王吾何以助리오 一遊一豫爲諸侯度라하니이다』

 

『  안자(晏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좋습니다, 질문이여! 천자(天子)가 제후국(諸侯國)에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니, 순수(巡狩)란 지키는 경내(境內)를 순행(巡行)한다는 뜻이요, 제후(諸侯)가 천자국(天子國)에 조회 가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니, 술직(述職)이란 자기가 맡은 바를 편다는 뜻이니, 일『[정사]』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리고 봄에는 나가서 경작하는 상태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며, 가을에는 수확하는 상태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도와줍니다. ()나라 속담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님이 유람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쉬며, 우리 임금님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도움을 받으리오, 한 번 유람하고 한 번 즐김이 제후(諸侯)들의 법도가 된다.」하였습니다.

 

陳也라 省은 視也收穫也亦足也夏諺夏時之俗語也樂也巡所守巡行諸侯所守之土也述所職陳其所受之職也皆無有無事而空行者而又春秋循行郊野하여 察民之所足而補助之夏諺以爲 王者一遊一豫皆有恩惠以及民이어늘 而諸侯皆取法焉하여 不敢無事慢遊以病其民也라하니라』

 

 

『  술()은 베풂『[]』이다. ()은 살펴봄이다. ()은 수확이다. ()도 또한 족함이다. 하언(夏諺)은 하()나라 때의 속담이다. ()는 즐거워함이다. 순소수(巡所守)는 제후(諸侯)들이 지키고 있는 바의 토지를 순행(巡行)하는 것이요, 술소직(述所職)은 천자(天子)에게서 받은 바의 직책을 펴는 것이니, 모두 일없이 헛되이 다님이 없는 것이다.

또 봄•가을로 교야(郊野)를 순행(巡行)해서 백성들의 부족한 바를 살펴 보조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라 속담에 이르기를 ‘왕자(王者)가 한 번 유람하고 한 번 즐기는 것이 모두 은혜가 백성에게 미침이 있어, 제후(諸侯)들이 모두 법을 취하여 감히 일없이 태만히 유람함으로써 그 백성들을 해롭게 하지 못한다.’ 하였다.

 

今也엔 不하여 師行而糧食하여 飢者弗食하며 勞者弗息하여 퇱퇱胥讒하여 民乃作慝이어늘 方命虐民하여 飮食若流하여 流連荒亡하여 爲諸侯憂하나니이다』

 

『  지금에는 그렇지 못하여 군대를 데리고 다니면서 양식을 먹어,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며 수고로운 자가 쉬지 못해서 눈을 흘겨보며 서로 비방하여 백성들이 마침내 원망을 하는데도, 왕명(王命)을 거역하고 백성을 학대하며 술 마시고

음식 먹는 것을 마치 물 흐르듯이 하여 우련(流連)하고 황만(荒亡)해서 제후(諸侯)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謂晏子時也衆也二千五百人爲師春秋傳曰 君行師從:군행사종』이라하니라 £』¿之屬이라 퇱퇱은 側目貌 胥相也謗也怨惡也言民勝其勞하여 而起怨謗也逆也王命也若流如水之流 無窮極也流連荒亡解見下文하니라 諸侯謂附庸之國, 縣邑之長이라』

 

『  금()은 안자(晏子) 당시를 이른다. ()는 군대이다. 25백 명을 사()라 하니,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군주(君主)가 출행(出行)하면 사()가 따라다닌다.’ 하였다. ()은 구비(£』¿)의 등속을 이른다. 견견(퇱퇱)

반목(反目)[측목(側目)]』 하는 모양이다. ()는 서로이다. ()은 비방이다. ()은 원망하고 미워함이니,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원망과 비방을 일으킴을 말한다. ()은 거역함이요, ()은 왕명(王命)이다.

약류(若流)는 물의 흐름이 다함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연()•황()•망()은 해석이 다음 글에 보인다.

제후(諸侯)는 부용(附庸)의 나라와 현읍(縣邑)의 장()을 이른다.

 

從流下而忘反謂之流從流上而忘反謂之連이요 從獸無厭謂之荒이요 樂酒無厭謂之亡이니』

 

『  <뱃놀이에>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돌아옴을 잊음을 유()라 이르고, 물길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서 돌아

옴을 잊음을 연()이라 이르고, 짐승을 좇아 만족함이 없음을 황()이라 이르고 술을 즐겨 만족함이 없음을 망()

이라 이릅니다.

 

釋上文之義也從流下謂放舟隨水而下從流上謂挽舟逆水而上이라 從獸田獵也廢也樂酒以飮酒爲樂也猶失也廢時失事:폐시실사』라』

 

『  이는 위 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종류하(從流下)는 배를 놓아 물결을 따라 아래로 내려감을 이르고, 종류상(從流上)은 배를 만회(挽回)하여 물결을 거슬러 올라감을 말한다. 종수(從獸)는 전렵(田獵)[사냥]』하는 것이다. ()은 폐함이다. 낙주(樂酒)는 술을 마시는 것으로써 낙()을 삼는 것이다. ()은 실()과 같으니, 때를 폐하고 일을 잃음을 말한다.

 

 

先王無流連之樂荒亡之行하시니 惟君所行也니이다』

 

『  선왕(先王)은 유련(流連)의 즐거움과 황망(荒亡)한 행실이 없으셨으니, 오직 군주(君主)께서 행하실 바입니다.’』

 

言先王之法, 今時之幣 二者惟在君所行耳라』

 

『  선왕(先王)의 법()과 지금의 폐단 이 두 가지는 오직 군주(君主)의 행할 바에 달려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景公說()』하여 大戒於國하고 出舍於郊하여 於是始興發하여 하고 召大()師曰 爲我하여 作君臣 相說之樂하라하니 蓋徵招(치소)角招是也其詩曰 畜君何尤리오하니 畜君者好君也니이다』

 

『  경공(景公)이 기뻐하여 국중에 크게 명령을 내리고, 교외(郊外)로 나가 머물고서 이에 비로소 창고를 열어 부족한

백성들을 보조해 주고, 태사(太師)를 불러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군신(君臣)이 서로 좋아하는 음악(音樂)을 지으라.

하였으니, 지금의 치소(徵招)와 각소(角招)가 이것입니다. 그 시()에 이르기를, ‘군주(君主)의 욕심을 저지함이 무슨

잘못이랴.’ 하였으니, 군주(君主)의 욕심을 저지한 것은 군주(君主)를 사랑한 것입니다.”』

 

告命也出舍自責以民也興發發倉大師樂官也君臣己與晏子也樂有五聲하니 『三曰角이니 爲民:삼왈각위민』이요 四曰 徵爲事舜樂也其詩徵招角招之詩也過也言 晏子能畜止其君之欲하니 宜爲君之所尤이나 其心則何過哉리오 孟子釋之하사 以爲臣能止其君之欲乃是愛其君者也라하시니라』

『○ 尹氏曰 君之與民貴賤雖이나 이나 其心未始有異也孟子之言可謂深切矣어늘 齊王이 不能推而用之하니 惜哉로다』

 

『  계()는 고명(告命)하는 것이다. 출사(出舍)는 자책(自責)하여 백성을 살핀 것이다. 흥발(興發)은 창름()을 여는 것이다. 태사(太師)는 악관(樂官)이다. 군신(君臣)은 자신과 안자(晏子)이다. 음악은 오성(五聲)이 있는 바, 세 번째를

()이라 하니 백성이 되고, 네 번째를 치()라 하니 일이 된다. ()[()]』는 순()임금의 음악이다.

기시(其詩)란 치소(徵招)와 각소(角招)의 시()이다. ()는 허물이다. 안자(晏子)가 능히 그 군주(君主)의 욕심을

저지하였으니, 마땅히 군주(君主)의 허물 하는 바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것을 해석하여 신하(臣下)가 능히 그 군주(君主)의 욕심을 저지함이 이것이 바로 그 군주(君主)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주(君主)와 백성은 귀천(貴賤)이 비록 같지 않으나 그 마음은 일찍이 다름이 있지 않다. 맹자(孟子)의 말씀은 깊고 간절하다고 이를 만한데, 제선왕(齊宣王)이 능히 미루어 쓰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다.”』

 

 

 

*맹자 ; 양혜왕하 ; 5

 

▣ 제5(第五章)

 

齊宣王問曰 人皆謂我毁明堂이라하나니 毁諸잇가 已乎잇가』

 

『  제선왕(齊宣王)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더러 명당(明堂)을 부수라 하니, 부수어야 합니까? 그만두어야 합니까?”』

 

趙氏曰 明堂泰山明堂이니 周天子東巡守朝諸侯之處라하니 漢時遺址尙在하니라 人欲毁之者蓋以天子復巡守하고 諸侯又當居之也王問 當毁之乎且止乎아』

 

『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명당(明堂)은 태산(泰山)에 있는 명당(明堂)이니, ()나라 천자(天子)가 동쪽 지방을 순수(巡守)하면서 제후(諸侯)들에게 조회 받던 곳이다.” 하였으니, ()나라 때까지도 유지(遺址)가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부수려고 한 것은 천자(天子)가 다시 순수(巡守)하지 않고, 제후(諸侯)가 또 거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마땅히 부수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합니까?’ 하고 물은 것이다.

 

孟子對曰 夫明堂者王者之堂也王欲行王政이어시든 則勿毁之矣소서』

 

『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명당(明堂)이란 왕자(王者)의 당()이니, ()께서 왕정(王政)을 행하고자 하신다면 부수지 마소서.”』

 

明堂王者所居以出政令之所也能行王政이면 則亦可以王矣何必毁哉리오』

 

『  명당(明堂)은 왕자(王者)가 거처하면서 정령(政令)을 내던 곳이다. 왕정(王政)을 행한다면 또한 왕노릇 할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부술 것이 있겠는가.

 

王曰 王政可得聞與잇가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耕者九一하며 仕者世祿하며 關市譏而하며 澤梁無禁하며 罪人을 不쩀하시니 老而無妻曰鰥이요 老而無夫曰寡老而無子曰獨이요 幼而無父曰孤此四者天下之窮民而無告者어늘 文王發政施仁하시되 必先斯四者하시니 詩云 ¡$矣富人이어니와 哀此¢/이라하니이다』

 

 

『  왕()이 말씀하였다. “왕정(王政)을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옛적에 문왕(文王)이 기주(岐周)를 다스릴 적에 경작하는 자들에게 9분의 1의 세금을 받았으며, 벼슬하는 자들에게는 대대로 녹(祿)을 주었

으며, 관문(關門)과 시장(市場)을 기찰(譏察)하기만 하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으며, 택량(澤梁)을 금하지 않았으며,

죄인을 처벌하되 처자(妻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홀아비]』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과()[과부]』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독()[무의탁자]』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父母)가 없는 것을 고()[고아]』라 하니, 이 네 가지는 천하(天下)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文王)은 정사(政事)를 펴고 인()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사람들을 먼저 하셨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부자(富者)들은 괜찮커니와 이 곤궁한 이가 가엾다.’ 하였습니다.”』

 

周之舊國也九一者井田之制也方一里爲一井이니 其田九百畝井字하여 界爲九區하여 一區之中爲田百畝하여 中百畝爲公田하고 外八百畝爲私田하여 八家各受私田百畝하고 而同養公田하니 是九分而稅其一也世祿者先王之世仕者之子孫皆敎之하여 敎之而成材則官之하고 足用이어든 亦使之失其祿하니 蓋其先世嘗有功德於民이라 報之如此하니 忠厚之至也謂道路之關이요 謂都邑之市察也稅也關市之吏察異服異言之人하고 征商賈之稅也°9謂魚梁이니 與民同利하여 不設禁也妻子也惡惡止其身이요 不及妻也先王養民之政導其妻子하여 使之養其老而恤其幼하나니 不幸而有鰥寡孤獨之人하여 無父母妻子之養이면 則尤宜憐恤이라 必以爲先也小雅正月之篇이라 ¡$可也라 ¢/困悴貌라』

 

『  기()는 주()나라의 옛 서울이다. 구일(九一)이란 정전(井田)의 제도이다. () 1()1()이 되니,

토지는 9백묘(百畝)이다. 가운데 정자(井字)를 그어서 9구역으로 경계를 만들어 1구역 가운데에 토지 백묘(百畝)를 만들어서, 가운데 백묘(百畝)는 공전(公田)으로 삼고 밖에 있는 8백묘(百畝)는 사전(私田)으로 삼아 여덟 집안이 각기 사전(私田) 백묘(百畝)를 받고 함께 공전(公田)을 가꾸니, 이것은 9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세록(世祿)이란, 선왕(先王)의 세대에 벼슬한 자의 자손(子孫)을 모두 가르쳐서, 가르쳐 훌륭한 인재를 이루면 벼슬을 시키고, 만일 등용할 수 없으면 또한 이들로 하여금 그 녹(祿)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이는 그 선대(先代)가 일찍이 백성들에게 공덕(功德)이 있었기 때문에 보답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니, 충후(忠厚)함이 지극한 것이다. ()은 도로의 관문(關門)이요, ()는 도읍(都邑)의 시장(市場)이다. ()는 기찰(譏察)이요, ()은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니, 관문과 시장의 관리(官吏)들이 이상한 복장과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기찰 하기만 하고, 상고(商賈)의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 것이다. ()은 저수(°9)[저수지]』를 이르고 양()은 어량(魚梁)[고기 잡는 곳]』을 이름이니, 백성과 더불어 이익을 함께 하고 금지함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다. ()는 처자(妻子)이니, ()을 미워함은 그 자신에게만 그치고 처자(妻子)에게는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왕(先王)이 백성을 기르는 정사는 그 처자(妻子)를 인도해서 늙은이를 봉양하고 어린이를 구휼하게 하였는데, 불행히도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사람이 있어서 부모(父母)와 처자(妻子)의 봉양이 없으면 더욱 마땅히 가엽게 여기고 구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들로써 우선을 삼은 것이다. ()는 《소아(小雅) 정월편(正月篇)》이다. (¡$)는 가()함『[괜찮음]』이다. (¢/)은 곤하고 파리한 모양이다.

 

王曰 善哉言乎曰 王如善之인댄 則何爲이니잇고 王曰 寡人有疾하니 寡人好貨하노이다 對曰 昔者公劉好貨하시더니 詩云 乃積乃倉이어늘 쥜텗于囊이요 ²-用光하여 弓矢斯張하여 干戈戚揚으로 爰方啓行이라하니 居者有積倉하며 行者有糧也然後에야 可以爰方啓行이니 王如好貨어시든 與百姓同之하시면 於王何有리잇고』

 

 

『  왕()이 말씀하였다. “좋습니다. 선생님 말씀이여!”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행하지 않습니까?” 왕()이 말씀하였다. “과인(寡人)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寡人)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옛적에 공류(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노적을 쌓고

창고에 쌓거늘 마른 양식을 싸되, 전대에다 넣고 자루에다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이로써 국가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펴놓으며 『[준비하며]』 창과 방패와 도끼를 가지고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집에 남아 있는 자들은 노적과 창고가 있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은 싼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께서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거든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신다면 왕노릇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王自以爲好貨取民無制하여 能行此王政이라하니라 公劉后稷之曾孫也大雅公劉之篇이라 露積也요 텗는 乾糧也無底曰퀳이요 有底曰囊이니 皆所以盛糧也라 ²-安集也言思安集其民人하여 以光大其國家也斧也鉞也於也啓行言往遷于ª子言 公劉之民富足如此하니 公劉好貨而能推己之心하여 以及民也今王好貨亦能如此則其於王天下也何難之有리오하시니라』

 

『  왕()이 스스로 말씀하기를 ‘재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백성에게 취함이 제한이 없어서 이 왕정(王政)을 행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공류(公劉)는 후직(后稷)의 증손(曾孫)이다. ()는 〈대아(大雅) 공류편(公劉篇)〉이다. ()

노적이다. ()는 마른 양식이다. 밑이 없는 것을 탁()[전대]』이라 하고, 밑이 있는 것을 낭()[자루]』이라 하니, 두 가지는 모두 후량()을 담는 것이다. (²-)은 편안히 모음이니, 백성을 편안히 모아서 국가를 빛내고 크게 할 것을 생각함을 말한다. ()은 날이 아래로 굽은 도끼요, ()은 날이 위로 솟은 도끼이다. ()은 이에이다.

계행(啓行)은 가서 빈(ª 어렵지 않음을 말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기를 “공류(公劉)의 백성이 부유하고 풍족함이

이와 같았으니, 이것은 공류(公劉)가 재물을 좋아하되 능히 자기 마음을 미루어서 백성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이 재물을 좋아하심도 능히 이와 같이 하신다면 천하에 왕노릇 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신 것이다.

 

王曰 寡人有疾하니 寡人好色하노이다 對曰 昔者()好色하사 愛厥妃하시더니 詩云 古公亶父 來朝走馬하사 率西水滸하여 至于岐下하여 爰及姜女聿來胥宇라하니 當是時也하여 內無怨女하며 外無曠夫하니 王如好色이어시든 與百姓同之하시면 於王何有리잇고』

 

『  왕()이 말씀하였다. “과인(寡人)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寡人)은 색()을 좋아합니다.”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옛적에 태왕([])이 색()을 좋아하시어 그 후비(后妃)를 사랑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태왕(大王)]』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러 이에 강녀(姜女)와 더불어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으니, 이 때를 당하여 안에는 원망하는 여자가 없었으며 밖에는 홀아비가

없었으니, ()께서 만일 색()을 좋아하시거든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신다면 왕노릇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

니까.”』

 

 

王又言此者好色이면 則心志蠱惑하고 用度奢侈하여 能行王政也大王公劉九世孫이라 大雅綿之篇也古公大王之本號後乃追尊爲大王也亶父大王名也來朝走馬避狄人之難也循也水涯也岐下岐山之下也姜女大王之妃也相也居也空也無怨曠者是大王好色而能推己之心하여 以及民也니라』

『○ 楊氏曰 孟子與人君言皆所以擴充其善心하여 而格其非心이요 不止就事論事하시니 若使爲人臣者 論事每如此能堯舜其君乎愚謂 此篇自首章至此大意皆同하니 蓋鍾鼓, , 遊觀之樂與夫好勇, 好貨, 好色之心皆天理之所有而人情之所能無者이나 天理人欲同行異情하니 循理而公於天下者聖賢之所以盡其性也縱欲而私於一己者衆人之所以滅其天也二者之間이 不能以髮이로되 而其是非得失之歸相去遠矣孟子因時君之問하여 而剖斤於幾微之際하시니 皆所以人欲而存天理其法似疏而實密하고 其事似易而實難하니 學者以身體之則有以識其非曲學阿世之言이요 而知所以克己復禮之端矣리라』

 

『  왕()이 또 이것을 말씀한 것은 색()을 좋아하면 심지(心志)가 고혹(蠱惑)되고 용도(用度)가 사치해져서 왕정(王政)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왕(大王)은 공류(公劉)의 구세손(九世孫)이다. ()는 〈대아(大雅) 면편(綿篇)〉이다. 고공(古公)은 태왕(大王)의 본래 칭호이니, 뒤에 마침내 추존(追尊)하여 태왕(大王)이라 한 것이다. 단보(亶父)는 태왕

(大王)의 이름이다. 내조주마(來朝走馬)는 적인(狄人)의 난()을 피한 것이다. ()은 따름이다. ()는 물가이다.

기하(岐下)는 기산(岐山) 아래이다. 강녀(姜女)는 태왕(大王)의 후비(后妃)이다. ()는 봄이요, ()는 살 곳이다.

()은 빔이니, 원망하는 여자와 홀아비가 없었던 것은, 이것은 태왕(大王)이 색()을 좋아하되 능히 자기 마음을

미루어서 백성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께서 인군(人君)과 더불어 말씀함에 모두 그 착한 마음을 확충하고 나쁜 마음을 바로잡으려 하셨고, 일에 나아가 일을 논함에 그치지 않았으니, 만일 신하된 자가 일을 논하기를 매양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그 군주(君主)를 요순(堯舜)으로 만들지 못하겠는가.”』

『  내가 생각건대 이 편()은 수장(首章)으로부터 여기까지 대의(大意)가 모두 같으니, 종고(鍾鼓)와 원유()와 유관(遊觀)의 즐거움과 또는 용()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천리(天理)에 있는 바이고 인정(人情)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은 행동은 같으나 실정(實情)은 다르니, 천리(天理)를 따라서 천하(天下)에 공적(公的)으로 하는 것은 성현(聖賢)이 본성(本性)을 다하는 것이요, 인욕(人慾)에 방자해서 일개인에만 사사롭게 하는 것은 중인(衆人)들이 천리(天理)를 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간격은 털끝 만한 차이도 못되나 그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의 귀결은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당시 군주(君主)의 질문으로 인하여 이것을 기미(幾微)의 즈음에서 분석하셨으니, 모두 인욕(人慾)을 막고 천리(天理)를 보전하려는 것이었다. 그 법()이 엉성한 듯하나 실제는 치밀하고, 그 일이 쉬운 듯하나 실제는 어려우니, 배우는 자가 몸으로써 체행한다면 곡학아세(曲學阿世)한 말씀이 아님을 알 것이요,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단서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맹자 ; 양혜왕하 ; 6

 

 

▣ 제6(第六章)

 

孟子謂齊宣王曰 王之臣有託其妻子於其友而之楚遊者 比其反也하여 則凍¥#其妻子어든 則如之何잇고 王曰 棄之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제선왕(齊宣王)에게 말씀하였다. “왕()의 신하 중에 그 처자(妻子)를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가서 놀던 자가 있었는데, 돌아올 때에 미쳐서 본즉 친구가 그 처자(妻子)를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면 어떻게 하시겠

습니까?” 왕()이 말씀하였다. “끊어버리겠습니다.”』

 

寄也及也絶也라』

 

『  탁()은 기탁(寄託)[맡김]』함이다. ()는 미침이다. ()는 절교하는 것이다.

 

曰 士師能治士어든 則如之何잇고 王曰 已之니이다』

 

『  “사사(士師)가 사()를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말씀하였다.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士師獄官也其屬有鄕士遂士之官하여 士師皆當治之니라 罷去也라』

 

『  사사(士師)는 옥관(獄官)이니, 그 관속(官屬)에 향사(鄕士)•수사(遂士)의 관원(官員)이 있어서 사사(士師)가 이들을 모두 담당하여 다스려야 한다. ()는 파면하여 떠나게 하는 것이다.

 

曰 四境之內어든 則如之何잇고 顧左右而言他하시다』

 

『  “사경(四境)의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이에 왕()이 좌우를 돌아보고 다른 것을 말씀하였다.

 

孟子將問此而先設上二事하여 以發之러시니 及此而王能答也其憚於自責하고 恥於下問如此하니 不足與有爲可知矣로다』

『○ 趙氏曰 言 君臣上下各勤其任하고 無墮其職이라야 乃安其身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장차 이것을 물으려고 먼저 위의 두 가지 일을 가설하여 말씀하였는데, 이에 미쳐 왕()이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그 자책하기를 꺼리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함이 이와 같았으니, 그와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각기 그 임무를 부지런히 해서 맡은 직책을 실추시키지 말아야 몸을 편안히 할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양혜왕하 ; 7

 

▣ 제7(第七章)

 

孟子見齊宣王曰 所謂故國者非謂有喬木之謂也有世臣之謂也王無親臣矣로소이다 昔者所進今日에 不知其

亡也온여』

 

『  맹자(孟子)께서 제선왕(齊宣王)을 뵙고 말씀하였다. “이른바 고국(故國)이란 교목(喬木)이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요, 세신(世臣)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친한 신하도 없으십니다. 전일(前日)에 등용한 사람 중에 오늘

도망한 자가 있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다.”』

 

世臣累世勳舊之臣이니 與國同休戚者也親臣君所親信之臣이니 與君同休戚者也言 喬木, 世臣皆故國所宜有이나 所以爲故國者則在此而在彼也昨日所進用之人今日有亡去而知者則無親臣矣況世臣乎아』

 

『  세신(世臣)은 누대훈구(累代勳舊)의 신하이니, 국가와 더불어 좋고 나쁨을 함께 하는 자요, 친신(親臣)은 군주(君主)가 친히 하고 신임하는 바의 신하이니, 군주와 더불어 좋고 나쁨을 함께 하는 자이다. 이것은, ‘교목(喬木)과 세신(世臣)은 모두 고국(故國)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나, 고국(故國)이 되는 이유는 이 세신(世臣)에 있고, 저 교목(喬木)에 있지 않다. 어제 등용한 사람이 오늘 도망한 자가 있는데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친한 신하도 없는 것이니, 하물며 세신(世臣)에 있어서랴!’라고 말씀한 것이다.

 

王曰 吾何識其才而舍之리잇고』

 

『  왕()이 말씀하였다. “내 어떻게 그 재질이 없음을 알아서 버린단 말입니까?”』

 

王意以爲 此亡去者才之人이어늘 我初知而誤用之以其去爲意耳因問何先識其才而舍之邪아하니라』

 

『  왕()의 뜻에는 생각하기를 ‘도망한 자들이 모두 재질이 없는 사람인데, 내 애당초 이들을 알지 못하고 잘못 등용하였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지금 그들이 떠나간 것을 개의치 않은 것이다. 인하여 묻기를 “어떻게 하면 미리 그 재질이

없음을 알아서 버린단 말입니까?” 한 것이다.

 

曰 國君進賢하되 得已將使卑踰尊하며 疏踰戚이니 愼與잇가』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나라의 군주(君主)는 어진이를 등용하되 부득이한 것처럼 해야 합니다. 장차 지위가

낮은 자로 하여금 높은 이를 넘게 하며, 소원한 자로 하여금 친한 이를 넘게 하는 것이니,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

니까.”』

 

 

得已言謹之至也蓋尊尊, 親親禮之常也이나 或尊者親者未必賢이면 則必進疏遠之賢而用之하나니

使卑者喩尊이요 疏者踰戚이니 非禮之常이라 로 不謹也니라』

 

『  부득이한 것처럼 한다는 것은 삼가기를 지극히 함을 말한다. 높은 이를 높이고 친한 이를 친히 함은 예()의 떳떳함이다. 그러나 혹 높은 자와 친한 자가 반드시 어질지 못하면 반드시 소원한 어진이를 등용하여 써야 하니, 이는 낮은

자로 하여금 높은 이를 넘게 하며, 소원한 자로 하여금 친한 이를 넘게 하는 것이니, ()의 떳떳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左右皆曰賢이라도 未可也하며 諸大夫皆曰賢이라도 未可也하고 國人皆曰賢然後察之하여 見賢焉然後用之하며 左右皆曰라도 勿聽하며 諸大夫皆曰라도 勿聽하고 國人皆曰可然後察之하여 可焉然後去之하며』

 

『  좌우(左右)의 신하가 모두 <그를> 어질다고 말하더라도 허락하지 말며, 여러 대부(大夫)들이 모두 어질다고 말하더라도 허락하지 말고, 국인(國人)이 모두 어질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서 어짊을 발견한 뒤에 등용하며, 좌우(左右)

신하들이 모두 <그를> 불가()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며, 여러 대부(大夫)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고, 국인(國人)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서 불가()한 점을 발견한 뒤에 버려야 합니다.

 

左右近臣이니 其言固未可信이요 諸大夫之言宜可信矣이나 猶恐其蔽於私也至於國人하여는 則其論公矣이나 猶必察之者蓋人有同俗而爲衆所悅者하며 亦有特立而爲俗所憎者必自察之하여 而親見其賢否之實然後從而用舍之則於賢者知之深하고 任之重이요 才者得以幸淮矣所謂進賢如得已者 如此니라』

 

『  좌우(左右)는 가까운 신하이니, 그 말이 진실로 믿을 수 없고, 여러 대부(大夫)들의 말은 마땅히 믿을 만하나 아직도 그 사()에 가리울까 두려운 것이요, 국인(國人)에 이르러서는 그 의론(議論)이 공정(公正)하나 아직도 반드시 살피는 것은 사람 중에 세속과 함께 하여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받는 자도 있으며, 또한 독특하게 서서 세속에 미움을 받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스로 살펴보아 그 현부(賢否)의 실제(實際)를 친히 본 뒤에 따라서 등용하고 버린다면, 어진

자에 대해서 앎이 깊고 맡기는 것이 중하고, 재주가 없는 자들이 요행으로 등용될 수 없을 것이니, 이른바 어진이를 등용하되 부득이한 것처럼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左右皆曰可殺이라도 勿聽하며 諸大夫皆曰可殺이라도 勿聽하고 國人皆曰可殺然後察之하여 見可殺焉然後殺之曰國人殺之也라하니이다』

 

 

『  좌우(左右)의 신하들이 모두 <그를> 죽일 만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며, 여러 대부(大夫)들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고, 국인(國人)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서 죽일 만한 점을 발견한 뒤에 죽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국인(國人)이 죽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言非獨以此進退人才至於用刑에도 亦以此道蓋所謂天命天討:천명천토』니 皆非人君之所得私也니라』

 

『  이것은 비단 이 방법을 가지고 인재를 등용하고 물리칠 뿐만 아니라, ()을 씀에 있어서도 또한 이 방법을 써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이른바 하늘이 <벼슬을> 명해주고 하늘이 <죄를> 토벌한다는 것이니, 이는 모두 군주가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如此然後可以爲民父母니이다』

 

『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백성의 부모(父母)라 할 수 있습니다.”』

 

傳曰 民之所好好之하고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라하니라』

 

『  전()[대학(大學)]』에 이르기를 ‘백성의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며 백성의 미워하는 바를 미워함을 이를 백성의 부모(父母)라 한다.’ 하였다.

 

 

*맹자 ; 양혜왕하 ; 8

 

▣ 제8(第八章)

 

齊宣王問曰 湯放桀하시고 武王伐紂라하니 有諸잇가 孟子對曰 於傳有之하니이다』

 

『  제선왕(齊宣王)이 물었다.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유치(留置)하고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였다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전()에 있습니다.”』

 

置也書云 成湯放桀于南巢라하니라』

 

『  방()은 유치(留置)하는 것이다. 《서경(書經)》〈중훼지고(之誥)〉에 “성탕(成湯)이 걸왕(桀王)을 남소(南巢)에 유치했다.”하였다.

 

曰 臣弑其君可乎잇가』

 

『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함이 가합니까?”』

 

桀紂天子湯武諸侯라』

 

 

『  걸()•주()는 천자(天子)였고, ()•무()는 제후(諸侯)였다.

 

曰 賊仁者謂之賊이요 賊義者謂之殘이요 殘賊之人謂之一夫聞誅一夫紂矣未聞弑君也니이다』

 

『  “인()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이르고, ()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이르고,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 이르니, 일부(一夫)인 주()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고, 군주(君主)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害也傷也害仁者凶暴淫虐하여 滅絶天理謂之賊이요 害義者顚倒錯亂하여 傷敗이라 謂之殘이라 一夫言衆叛親離하여 不復以爲君也書日 獨夫紂라하니 蓋四海歸之則爲天子天下叛之則爲獨夫所以深警齊王하여 垂戒後世也시니라』

『○ 王勉曰 斯言也惟在下者湯武之仁하고 而在上者有桀紂之暴則可어니와 不이면 是未免於簒弑之罪也니라』

 

『  적()은 해침이요, ()은 상함이니, ()을 해치는 자는 흉포(凶暴)하고 음학(淫虐)해서 천리(天理)를 끊어버리므로 적()이라 이르고, ()를 해치는 자는 전도(顚倒)하고 착란(錯亂)해서 떳떳한 인륜(人倫)을 상하고 패하므로

()이라 이른다. 일부(一夫)란 민중(民衆)이 배반하고 친척(親戚)들이 이반해서 다시는 군주로 여기지 않음을 말한다. 《서경(書經)》〈태서(泰誓)〉에 ‘독부주(獨夫紂)’라 하였으니, 사해(四海)가 돌아오면 천자(天子)가 되고, 천하(天下)가 배반하면 독부(獨夫)가 되는 것이니, 깊이 제왕(齊王)을 경계해서 후세에 경계를 남기신 것이다.

『  ○ 왕면(王勉)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오직 아랫자리에 있는 자가 탕()•무()의 인()이 있고, 윗자리에 있는

자가 걸()•주()의 포악함이 있으면 가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이는 찬시(簒弑)의 죄를 면치 못한다.”』

 

 

*맹자 ; 양혜왕하 ; 9

 

▣ 제9(第九章)

 

孟子見齊宣王曰 爲巨室인댄 則必使工師求大木하시리니 工師得大木이면 則王喜하여 以爲能勝其任也라하시고 匠人이 ²<而小之則王怒하여 以爲勝其任矣라하시리니 夫人幼而學之壯而欲行之王曰 姑舍女()所學하고 而從我라하시면 則何如하니잇고』

 

 

『  맹자(孟子)께서 제선왕(齊宣王)을 보고 말씀하였다. “큰집을 지으시려고 하면 반드시 공사(工師)로 하여금 큰 나무를 구하게 하실 것이니, 공사(工師)가 큰 나무를 얻으면 왕()은 기뻐하여 <이만한 나무면>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시고, 장인(匠人)들이 깎아서 작게 만들면 왕()은 노하여 <이 작은 나무로는>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서 배움은 장성해서 그것을 행하고자 함이니, ()께서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어떠하시겠습니까?”』

 

巨室大宮也工師匠人之長이요 匠人衆工人也且也言賢人所學者大어늘 而王欲小之也라』

 

『  거실(巨室)은 큰 궁궐이다. 공사(工師)는 장인(匠人)의 우두머리요, 장인(匠人)은 여러 공인(工人)들이다. ()

우선이다. 현인(賢人)이 배운 것은 큰데 왕()이 이것을 작게 하고자 함을 말씀한 것이다.

 

今有璞玉於此하면 雖萬鎰이라도 必使玉人彫琢之하시리니 至於治國家하여는 則曰 姑舍女所學하고 而從我라하시면

何以異於敎玉人彫琢玉哉:하이이어교옥인조탁옥재』잇고』

 

『  지금 여기에 박옥(璞玉)이 있으면 비록 만일(萬鎰)이라도 반드시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조탁(彫琢)하게 하실 것이니,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옥()을 조탁(彫琢)하게 하는 것과는 왜 다르게 하십니까?”』

 

玉之在石中者라 『二十兩:일이십량』玉人玉工也라 不敢自治而付之能者愛之甚也治國家則徇私欲而任賢하니 愛國家如愛玉也니라』

『○ 范氏曰 古之賢者常患人君能行其所學하고 而世之庸君亦常患賢者能從其所好是以君臣相遇自古以爲難하니 孔孟終身而蓋以此耳시니라』

 

『  박()은 옥()이 돌 가운데 있는 것이다. ()20()이다. 옥인(玉人)은 옥공(玉工)이다. 감히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유능한 자에게 맡김은 사랑하기를 심히 하는 것이다. 국가를 다스림에는 사욕을 따르고 어진이에게 맡기지

않으니, 이것은 국가를 사랑함이 옥()을 사랑함만 못한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옛 현자(賢者)들은 항상 인군(人君)이 자기의 배운 바를 행하지 못할까 걱정하였고, 세상의 용군(庸君)들은 항상 현자(賢者)가 자기의 좋아하는 바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이 때문에 <어진> 군신(君臣)이 서로 만나는 것을 예로부터 어렵게 여겼으니,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종신토록 만나지 못함은 이 때문이었다.”』

 

 

*맹자 ; 양혜왕하 ; 10

 

▣ 제10(第十章)

 

齊人伐燕勝之어늘』

 

『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쳐서 승리하였다.

 

 

按史記燕王´6 讓國於其相子之而國大亂이어늘 齊因伐之한대 燕士卒하고 城門하여 遂大勝燕하니라』

 

『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연왕(燕王) (´6)가 정승인 자지(子之)에게 나라를 양보하자, ()나라가 크게 혼란하였다. ()나라가 이 틈을 타 정벌하자, ()나라 사졸(士卒)들은 싸우지도 않고 성문(城門)을 닫지도 않았다.

래서 마침내 연()나라를 크게 이기게 되었다.

 

宣王問曰 或謂寡人勿取라하며 或謂寡人取之라하나니 以萬乘之國으로 伐萬乘之國하되 五旬而擧之하니 人力으론 不至於此니 不하면 必有天殃이니 取之何如하니잇고』

 

『  선왕(宣王)이 물었다. “혹자는 과인(寡人)더러 취하지 말라 하며, 혹자는 과인(寡人)더러 취하라 합니다. 만승(萬乘)의 나라『[()]』를 가지고 만승(萬乘)의 나라『[()]』를 정벌하되 50일 만에 완전히 함락하였으니, 인력(人力)으로는 이에 이르지 못합니다. 취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이니, 취함이 어떠합니까?”』

 

以伐燕爲宣王事與史記諸書하니 已見序說하니라』

 

『  연()나라를 정벌한 것을 선왕(宣王)의 일이라 한 것은 《사기(史記)》 등 여러 책과 같지 않으니, 이미 서설(序說)에 보인다.

 

孟子對曰 取之而燕民悅이어든 則取之하소서 古之人有行之者하니 武王是也니이다 取之而燕民이어든 則勿取하소서 古之人有行之者하니 文王是也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거든 취하소서. 옛 사람 중에 행하신 분이 있으니, 무왕(武王)이 바로 그 분입니다.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거든 취하지 마소서. 옛 사람 중에 행하신 분이 있으니, 문왕(文王)이 바로 그 분입니다.”』

 

商紂之世文王三分天下有其二로되 以服事商이러시니 至武王十三年하여 乃伐紂而有天下하니라 張子曰 此事容髮이니 一日之間天命未絶이면 則是君臣이요 當日命絶이면 則爲獨夫이나 命之絶否何以知之人情而已라 『諸侯期而會者八百:제후불기이회자팔백』이니 武王安得而止之哉시리오』

 

『  상주(商紂)의 세대에 문왕(文王)은 천하(天下)3분함에 3분의 2를 소유하셨는데도 복종하여 상()나라를 섬기다가 무왕(武王) 13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천하(天下)를 소유하였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이 일은 사이에 털끝 하나도 용납할 수 없으니, 하루동안이라도 천명(天命)이 끊기지 않으면 이것은 군신간(君臣間)이요, 끊기면 독부(獨夫)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의 끊기고 끊기지 않음을 무엇으로

아는가?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제후(諸侯)들이 <정벌하기를>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모인 자가 8백이나 되었으니,

무왕(武王)이 어떻게 <정벌을> 중지할 수 있었겠는가.”』

 

 

以萬乘之國으로 伐萬乘之國이어늘 簞食()壺漿으로 以迎王師豈有他哉리오 避水火也如水益深하며 如火益熱이면 亦運而已矣니이다』

 

『  만승(萬乘)의 나라를 가지고 만승(萬乘)의 나라를 정벌하였는데 바구니에 밥을 담고 병에 장물을 담아서 왕()

군대를 환영함은 어찌 딴 이유가 있어서이겠습니까. 수화(水火)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일 물이 더욱 깊어지며 불이 더욱 뜨거워진다면 또한 딴 곳으로 전향(轉向)할 뿐입니다.”』

 

竹器飯也轉也言 齊若更爲暴虐이면 則民將轉而望救於人矣라』

『○ 趙氏曰 征伐之道當順民心이니 民心悅이면 則天意得矣니라』

 

『  단()은 대나무 그릇이요, ()는 밥이다. ()은 전향(轉向)함이다. ()나라가 만일 다시 포학한 짓을 한다면 백성들이 장차 전향(轉向)해서 타인에게 구원을 바랄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

『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정벌하는 방법은 마땅히 민심(民心)에 순응해야 하니, 민심(民心)이 기뻐하면 하늘의

뜻을 얻은 것이다.”』

 

 

*맹자 ; 양혜왕하 ; 11

 

▣ 제11(第十一章)

 

齊人伐燕取之한대 諸侯將謀救燕이러니 宣王曰 諸侯多謀伐寡人者하니 何以待之잇고 孟子對曰 臣聞 七十里爲政於天下者湯是也未聞以千里畏人者也니이다』

 

『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취하자, 제후(諸侯)들이 장차 연()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였다.

선왕(宣王)이 말하였다. “제후(諸侯)들이 과인(寡人)을 정벌할 것을 도모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합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신()이 들으니, 70()로 천하(天下)에 정사(政事)를 한 자는 탕왕(湯王)이 이

경우이니, 천리(千里)를 가지고 남을 두려워했다는 자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千里畏人指齊王也라』

 

『  천리(千里)를 가지고 남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제왕(齊王)을 가리킨 것이다.

 

書曰 湯一征自葛始하신대 天下信之하여 東面而征西夷怨하며 南面而征北狄怨하여 曰 奚爲後我오하여

民望之하되 若大旱之望雲霓也하여 歸市者하며 耕者이어늘 誅其君而弔其民하신대 若時雨降이라 民大悅하니

書曰 0我后하더니 后來하시면 其蘇라하니이다』

 

 

『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탕왕(湯王)이 첫 번째 정벌을 갈()나라로부터 시작하시자, 천하(天下)가 믿어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남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는가.」 하여, 백성들이 탕왕(湯王)이 정벌해 주기를 바라되 마치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이

하여 시장으로 돌아가는 자가 멈추지 않으며 밭가는 자가 변동하지 않거늘, 포악한 군주를 주벌(誅罰)하고 백성들을

위문하시니, 단비가 내린 듯이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다.’ 하였습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님을 기다렸더니, 임금님이 오시면, 소생하게 되겠지!’ 하였습니다.

 

兩引書皆商書仲之誥文也與今書文으로 亦小異一征初征也天下信之信其志在救民이요 不爲異也奚爲後我言湯何爲先來征我之國也虹也雲合則雨하고 虹見()則止動也라 ¶0待也君也復生也他國之民皆以湯爲我君而待其來하여 使己得蘇息也言湯之所以七十里而爲政於天下也니라』

 

『  두 번 인용한 《서경(書經)》은 모두 〈상서(商書) 중훼지고(之誥)〉에 있는 글이니, 지금 《서경(書經)》의

글과는 또한 약간 다르다. 일정(一征)은 첫 번째 정벌(征伐)이다. 천하(天下)가 믿었다는 것은, 그 뜻이 백성을 구제함에 있고 포학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을 믿은 것이다. 해위후아(奚爲後我)는 탕왕(湯王)이 어찌하여 먼저 와서 우리나라를

정벌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이다. ()는 무지개이니,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나타나면 멈춘다. ()은 변동함이다. (0)는 기다림이다. ()는 군주이다. ()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타국(他國)의 백성들이 모두 탕왕(湯王)을 우리 군주라 하고, 와 주셔서 자기들로 하여금 소생할 수 있게 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탕왕(湯王)70()를 가지고 천하(天下)에 정사하게 된 이유를 말씀한 것이다.

 

今燕虐其民이어늘 王往而征之하시니 民以爲將拯己於水火之中也라하여 簞食壺漿으로 以迎王師어늘 若殺其父兄하며 係累其子弟하며 毁其宗廟하며 遷其重器하면 如之何其可也리오 天下固畏齊之彊也今又倍地而行仁政이면 動天下之兵也니이다』

 

『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에게 포학히 하거늘 왕()께서 가서 정벌하시니, ()나라 백성들은 장차 자기들을 수화(水火)[도탄]』의 가운데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여겨, 바구니에 밥을 담고 병에 장물을 담아서 왕()의 군대를 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부형(父兄)을 죽이고 자제(子弟)들을 구속하며 종묘(宗廟)를 부수고 중요한 기물(器物)들을 옮겨간다면 어찌 가()하겠습니까? 천하(天下)가 진실로 제()나라의 강함을 시기하고 있는데, 지금 또다시 땅을 배로 확장하고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천하(天下)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救也係累?縛也重器寶器也忌也倍地幷燕而增一倍之地也齊之取燕若能如湯之征葛이면 則燕人悅之하여 而齊可爲政於天下矣어늘 今乃行仁政하고 而肆爲殘虐하니 則無以慰燕民之望而服諸侯之心이라 是以로 不免乎以千里而畏人也니라』

 

 

『  증()은 구원함이다. 계루(係累)는 묶는 것이다. 중기(重器)는 보기(寶器)이다. ()는 시기하는 것이다. 배지(倍地)는 연()나라를 겸병(兼幷)해서 1()의 땅을 더 증가한 것이다. ()나라가 연()나라 취하기를 만일 탕왕(湯王)이 갈()나라를 정벌한 것과 같이 하였더라면 연()나라 사람들이 기뻐해서 제()나라는 천하(天下)에 정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고 함부로 잔학한 짓을 하였으니, 이렇다면 연()나라 백성의 소망을 위안하고 제후(諸侯)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천리(千里)로써 남을 두려워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王速出令하사 反其하시며 止其重器하시고 謀於燕衆하여 置君而後去之則猶可及止也리이다』

 

『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노약자들을 돌려보내시며 중기(重器)<수송해오던 것을> 중지하시고 연()나라 민중들과 도모해서 군주(君主)를 세워준 뒤에 떠나오신다면, 오히려 <전란이 일어나기 전에> 중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還也라 쭨는 老人也小兒也謂所虜略之老小也尙也及止及其未發而止之也라』

『○ 范氏曰 孟子事齊梁之君하실새 論道德이면 則必稱堯舜하시고 論征伐이면 則必稱湯武하시니 蓋治民을 不法堯舜이면 則是爲暴行師를 不法湯武則是爲亂이니 豈可謂吾君能而舍所學以徇之哉아』

 

『  반()은 반환(返還)이다. ()는 노인(老人)이요, ()는 소아(小兒)이니, 노략(虜略)한 바의 노인(老人)과 소아(小兒)를 이른다. ()는 오히려이다. 급지(及止)는 전란(戰亂)이 발발(勃發)하기 전에 미쳐 중지시키는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가 제()나라와 양()나라의 군주를 섬기실 적에 도덕(道德)을 논하면 반드시 요()•순()을 칭하였고, 정벌(征伐)을 논하면 반드시 탕()•무()를 칭하셨으니, 백성을 다스림을 요()•순()을 본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포악한 정사가 되고, 군대를 출동함을 탕()•무()를 본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난()이 되는 것이니, 어찌 우리 군주(君主)는 불가능하다 하여, 자기의 배운 바를 버리고 순종하겠는가.”』

 

 

*맹자 ; 양혜왕하 ; 12

 

▣ 제12(第十二章)

 

鄒與魯턖이러니 穆公問曰 吾有司死者 三十三人이로되 而民莫之死也하니 誅之則可勝誅요 不誅則疾視其長上之死而하니 如之何則可也잇고』

 

『  추()나라가 노()나라와 더불어 싸우더니, <()나라> 목공(穆公)이 물었다. “내 유사(有司)로서 죽은 자가 33명이나 되지만 백성들은 죽은 자가 없으니, 이들을 베려 한다면 이루 다 벨 수 없고, 베지 않는다면 장상(長上)들이 죽는 것을 질시(疾視)하면서 구원하지 않았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턖은 鬪聲也穆公鄒君也라 不可勝誅言人衆하여 不可盡誅也長上謂有司也民怨其上이라 疾視其死而救也니라』

 

『  홍()은 싸우는 소리이다. 목공(穆公)은 추()나라 군주이다. 불가승주(可勝誅)란 사람이 많아서 다 벨 수 없음을 말한다. 장상(長上)은 유사(有司)를 이른다. 백성들이 그 장상(長上)을 원망하였다. 그러므로 그 죽는 것을 질시(疾視)하면서 구원하지 않은 것이다.

 

孟子對曰 凶年饑歲君之民老弱轉乎溝壑하고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而君之倉하며 府庫充이어늘 有司莫以告하니 上慢而殘下也曾子曰 戒之戒之하라 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하시니 夫民今而後得反之也로소니 君無尤焉하소서』

 

『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흉년(凶年)과 기세(饑歲)에 군주의 백성들이 노약자들은 시신이 구학(溝壑)에 뒹굴고, 장성한 자들은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자가 몇천 명이나 되는데도 군주의 창름()은 곡식이 꽉 차 있으며 부고(府庫)에는 재화가 충만하거늘 유사(有司)중에 아뢴 자가 없었으니, 이것은 윗사람들이 태만해서 아랫사람을 잔해(殘害)한 것입니다. 증자(曾子)께서 말씀하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돌아간다.’ 하셨으니, 백성들이 지금에서야 되갚음을 한 것이니, 군주(君主)께서는 허물하지 마소서.”』

 

飢餓輾轉而死也滿也謂君及有司也過也라』

 

『  전()은 기아(飢餓)하여 전전하다가 죽는 것이다. ()은 충만한 것이다. ()은 임금 및 유사(有司)를 이른다. ()는 허물함이다.

 

君行仁政하시면 斯民親其上하여 死其長矣리이다』

 

『  군주(君主)께서 인정(仁政)을 행하시면 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친히 해서 어른『[관장(官長)]』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仁而求富是以有司知重斂而知恤民이라 君行仁政이면 則有司皆愛其民하여 而民亦愛之矣리라』

『○ 范氏曰 書曰 民惟邦本이니 本固邦寧이라하니 有倉稟府庫所以爲民也豐年則斂之하고 凶年則散之하여 恤其飢寒하고 救其疾苦是以民親愛其上하여 有危難則赴救之如子弟之衛父兄하고 手足之頭目也穆公이 不能反己하고 猶欲歸罪於民하니 誤哉아』

 

『  군주(君主)가 인()하지 못하여 부유해지기를 구하였다. 이 때문에 유사(有司)가 무겁게 세금을 거둘 줄만 알고,

백성을 구휼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군주(君主)가 인정(仁政)을 행하면 유사(有司)들이 모두 그 백성을 사랑해서 백성들 또한 유사(有司)를 사랑할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서경(書經)》〈오자지가(五子之歌)〉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뿌리이니,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다. 창름()과 부고(府庫)를 둔 것은 백성을 위해서이니, 풍년에는 거둬들이고 흉년에는 흩어주어서 굶주리고 추운 사람을 구휼하며 병들고 고생하는 자들을 구제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친애하여 위험과 난리가 있으면 달려가 구원하기를, 자제(子弟)들이 부형(父兄)을 보위하듯이 하며 수족(手足)이 두목(頭目)을 막듯이 하느 것이다. 목공(穆公)은 자신에게 돌이켜 찾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에게 죄를 돌리고자 하였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맹자 ; 양혜왕하 ; 13

 

▣ 제13(第十三章)

 

『¦!文公問曰 ¦!小國也間於齊楚하니 事齊乎잇가 事楚乎잇가』

 

『  등문공(¦!文公)이 물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로, ()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여 있으니,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國名이라』

 

『  등(¦!)은 나라 이름이다.

 

孟子對曰 是謀非吾所能及也로소이다 無已則有一焉하니 鑿斯池也하며 築斯城也하여 與民守之하여 效死而民弗去則是可爲也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이 계책은 내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어이 말하라고 하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못을 깊이 파며 성을 높이 쌓아 백성과 더불어 지켜서 백성들이 죽음『[목숨]』을 바치고 떠나가지 않는다면 이것은 해볼 만한 일입니다.”』

 

無已見前篇하니라 謂一說也猶致也國君死社稷이라 致死守國이요 至於民亦爲之死守而則非有以深得其心者면 不能也니라』

『○ 此章言有國者 當守義而愛民이요 不可僥倖而苟免이니라』

 

『  무이(無已)는 전편(前篇)[양혜왕상(梁惠王上)]』에 보인다. ()은 일설(一說)을 이른다. ()는 치()[바침]』와 같다. 국군(國君)은 사직(社稷)을 위해서 죽는다. 그러므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킬 것이요, 백성들 또한 그를 위해서 사수(死守)하고 떠나지 않는 데 이른다면 이는 그 마음을 깊이 얻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  ○ 이 장()은 국가를 소유한 자는 마땅히 의()를 지켜 백성을 사랑할 것이요, 요행을 바라 구차히 면하려고 해서는 안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양혜왕하 ; 14

 

 

▣ 제14(第十四章)

 

『¦!文公問曰 齊人將築薛하니 吾甚恐하노니 如之何則可잇고』

 

『  등문공(¦!文公)이 물었다. “제()나라 사람이 장차 설()땅에 축성을 하려고 하니, 내 매우 두려우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國名이니 ¦!이러니 齊取其地而城之文公以其己而恐也니라』

 

『  설()은 국명(國名)이니, (¦!)나라와 가까웠는데 제()나라가 그 땅을 탈취하고 성을 쌓았다. 그러므로 문공(文公)이 자기 나라를 핍박한다고 여겨 두려워한 것이다.

 

孟子對曰 昔者大王居ª'하실새 狄人侵之어늘 하시고 之岐山之下하사 居焉하시니 非擇而取之라 不得已也시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옛적에 태왕(大王)이 빈(ª')땅에 거주하실 적에 적인(狄人)이 침략하자, 그 곳을 떠나 기산(岐山) 아래에 가서 거주하시니, 이 곳을 가려서 취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해서였습니다.”』

 

『ª'地名이라 言 大王非以岐下爲善하여 擇取而居之也詳見下章하니라』

 

『  빈(ª')은 지명(地名)이다. 태왕(大王)이 기산(岐山) 아래를 좋게 여겨 선택하여 취해서 거주한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니, 이 내용은 아래 장()에 자세히 보인다.

 

苟爲善이면 後世子孫必有王者矣리니 君子創業垂統하여 爲可繼也若夫成功則天也君如彼何哉리오 彊爲善而已矣니이다』

 

『  만일 선행(善行)을 하면 후세의 자손 중에 반드시 왕노릇 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군자(君子)는 기업(基業)을 창건하고 전통(傳統)을 드리워서 계속할 수 있게 할뿐입니다. 성공(成功)으로 말하면 천운(天運)이니, 군주(君主)께서 저들에게 어찌하시겠습니까? 선행(善行)을 하기를 힘쓸 뿐입니다.”』

 

造也緖也言 能爲善이면 則如大王雖失其地而其後世遂有天下하니 乃天理也이나 君子造基業於前하고 而垂統緖於後하되 但能失其正하여 令後世可繼續而行耳若夫成功則豈可必乎아 『彼齊也:피제야』를 君之力旣無如之何則但彊於爲善하여 使其可繼而俟命於天耳니라』

『○ 此章言人君但當竭力於其所當爲요 不可徼幸於其所難必이니라』

 

 

『  창()은 창조이다. ()은 실마리『[전통]』이다. ‘능히 선행(善行)을 하면 태왕(大王)과 같이 비록 그 땅을 잃더라도 후세에 마침내 천하(天下)를 소유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천리(天理)이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기업(基業)을 앞에서 만들고 전통(傳統)을 뒤에 드리우되, 다만 그 올바름을 잃지 않게 하여 후세로 하여금 계속하여 행하게 할뿐이다.

성공(成功)으로 말하면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저 제()나라를 군주의 힘으로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다면 다만 선()을 행하기를 힘써서 계속하게 하고 하늘에 운명(運命)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은 인군(人君)은 마땅히 당연히 해야 할 일에 힘을 다할 것이요, 기필하기 어려운 바에 요행을 바라서는 안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양혜왕하 ; 15

 

▣ 제15(第十五章)

 

『¦!文公問曰 ¦!小國也竭力以事大國이라도 得免焉이로소니 如之何則可잇고 孟子對曰 昔者大王居ª'하실새 狄人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犬馬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珠玉이라도 不得免焉하여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吾土地也吾聞之也하니 君子는 不以其所以養人者害人이라하니 二三子何患乎無君이리오 我將去之하리라하시고 ª'하시고 踰梁山하사 邑于岐山之下하여 居焉하신대 ª'人曰 仁人也라 不可失也라하고 從之者如歸市하니이다』

 

『  등문공(¦!文公)이 물었다. “우리 등(¦!)나라는 작은 나라라, 힘을 다하여 대국(大國)을 섬기더라도 화를 면할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옛적에 태왕(大王)이 빈(ª')땅에 거주하실 적에 적인(狄人)이 침략하자, 그들을 피폐(皮幣)로써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였고, 개와 말로써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였고, 주옥(珠玉)으로써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였습니다. 이에 마침내 기로(耆老)들을 모아놓고 말씀하기를 ‘적인(狄人)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토지이다. 내가 들으니, 군자(君子)는 사람을 기르는 토지를 가지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여러분들은 어찌 군주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내 장차 이 곳을 떠나겠다.’ 하고는, (ª')땅을 떠나 양산(梁山)을 넘어서 기산(岐山) 아래에 도읍 터를 만들고 거주하시자, (ª')땅 사람들은 ‘인인(仁人)이다. 놓쳐서는 안 된다.’ 하고, 따르는 자가 시장에 돌아가듯 하였습니다.”』

 

謂虎豹鹿之皮也帛也會集也土地本生物以養人이어늘 今爭地而殺人이면 以其所以養人者害人也作邑也歸市人衆而爭先也라』

 

『  피()는 호표(虎豹)와 미록(鹿)의 가죽을 말한다. ()는 비단이다. ()은 모으는 것이다. 토지는 본래 물건을 생산하여 사람을 기르는 것인데, 지금 토지를 다투어 사람을 죽인다면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은 읍()을 만드는 것이다. 귀시(歸市)는 사람이 많아서 먼저 하기를 다투는 것이다.

 

或曰 世守也非身之所能爲也效死勿去라하나니』

 

 

『  혹자는 말하기를 ‘대대로 지켜오는 것이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바치고 떠나지 말라.

고 하나니』

 

又言 或謂土地乃先人所受而世守之者非己所能專이니 但當致死守之요 不可舍去라하니 國君死社稷之常法이니 『傳所謂國滅君死之正:전소위국멸군사지정』正謂此也니라.

 

『  또 말씀하기를 “혹자들은 ‘토지는 바로 선인(先人)이 받아서 대대로 지켜오는 것이니,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목숨을 바쳐 지킬 것이요,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된다.’ 말한다.” 하셨다. 이는 국군(國君)이 사직(社稷)을 위해 죽는 떳떳한 법이니, ()에 이른바 국가(國家)가 멸망하면 군주(君主)가 죽는 것이 올바른 법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君請擇於斯二者하소서.

 

『  군주(君主)께서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소서.”』

 

能如大王則避之요 不能則謹守常法이니 蓋遷國以圖存者權也守正而俟死者義也審己量力하여 擇而處之可也니라』

『○ 楊氏曰 孟子之於文公始告之以效死而已하시니 禮之正也至其甚恐하여는 則以大王之事告之하시니 非得已也이나 無大王之德而去則民或하여 而遂至於亡하리니 則又若效死之爲愈又請擇於斯二者하시니라 又曰 孟子所論自世俗觀之則可謂無謀矣이나 理之可爲者는 不過如此하니 舍此則必爲儀秦之爲矣리라 凡事求可, 功求成하여 取必於智謀之末하고 循天理之正者非聖賢之道也니라』

 

『  능히 태왕(大王)과 같이 할 수 있다면 피할 것이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떳떳한 법을 삼가 지켜야 하니, 나라를 옮겨 보전하기를 도모하는 것은 권도(權道), 정도(正道)를 지키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의()이다. 자신을 헤아리고

능력을 헤아려서 선택하여 대처하는 것이 가()하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문공(文公)에 대하여 처음에는 죽음을 바칠 뿐임을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예()의 올바름이요, 매우 두려워함에 이르러서는 태왕(大王)의 일로써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부득이해서였다. 그러나 태왕(大王)의 덕()이 없이 떠나간다면 백성들이 혹 따라오지 않아서 마침내 멸망에 이를 것이니, 그렇다면 또 죽음을 바침이 나은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또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라고 청하신 것이다.”』

『  또 말하였다. “맹자(孟子)께서 의논하신 것을 세속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모(無謀)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이치로써 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으니, 이것을 버린다면 반드시 소진(蘇秦)•장의(張儀)의 행위를 할 것이다.

무릇 일은 가능함을 구하고, ()은 이룸을 구하여, 지모(智謀)의 지엽적인 것에서 기필을 취하고 천리(天理)의 올바름을 따르지 않는 것은 성현(聖賢)의 도()가 아니다.”』

 

 

 

*맹자 ; 양혜왕하 ; 16

 

▣ 제16(第十六章)

 

魯平公將出할새 嬖人臧倉者請曰 他日君出이면 則必命有司所之러시니 乘輿已駕矣로되 有司未知所之하니 敢請하노이다 公曰 將見孟子하리라 曰 何哉잇고 君所爲輕身以先於匹夫者以爲賢乎잇가 禮義由賢者出이어늘 而孟子之後喪踰前喪하니 君無見焉하소서 公曰 諾다』

 

『  노평공(魯平公)이 장차 밖을 나갈 적에 폐인(嬖人)인 장창(臧倉)이란 자가 청하기를 “타일(他日)에는 군주(君主)께서 외출하시게 되면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갈 곳을 명령하시더니, 지금에는 승여(乘輿)가 이미 말을 멍에 하였으되 유사(有司)가 갈 곳을 알지 못하니, 감히 청하옵니다.” 공()이 말하였다. “장차 맹자(孟子)를 보려고 하노라.” “어째서입니까? 군주께서 몸을 가벼이 하여 필부(匹夫)에게 먼저 예()를 베푸는 까닭은 그가 어질다고 해서입니까? 예의(禮義)는 현자(賢者)로 말미암아 나오거늘, 맹자(孟子)의 뒤 초상이 앞 초상보다 지나쳤으니, 군주께서는 그를 만나보지 마소서.” 평공(平公)이 말하였다. “그렇겠다.”』

 

乘輿君車也駕馬也孟子前喪父하고 後喪母하시니라 過也言其厚母薄父也應辭也라』

 

『  승여(乘輿)는 군주의 수레이다. ()는 말을 멍에 하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는 앞에 아버지를 잃고 뒤에 어머니를 잃었다. ()는 지남『[더함]』이니, 어머니에게 후하게 하고 아버지에게 박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은 응하는 말이다.

 

樂正子入見曰 君奚爲見孟軻也잇고 曰 或告寡人曰 孟子之後喪踰前喪이라할새 是以로 不往見也호라 曰 何哉잇고 君所謂踰者前以士後以大夫前以三鼎而後以五鼎與잇가 曰 否謂棺槨衣衾之美也니라 曰 非所謂踰也負富同也니이다』

 

『  악정자(樂正子)가 들어가 평공(平公)을 뵙고 말하였다. “인군(人君)께서는 어찌하여 맹가(孟軻)를 만나보지 않으셨습니까?” “혹가자 과인(寡人)에게 말하기를 ‘맹자(孟子)의 뒤 초상이 앞 초상보다 지나쳤다.’ 하므로 이 때문에 가서

보지 않았노라.” “무엇입니까? 인군(人君)께서 이른바 지나쳤다는 것은 앞에서는 사()의 예()로써 하고 뒤에서는

대부(大夫)의 예()로써 하며, 앞에서는 삼정(三鼎)을 쓰고 뒤에서는 오정(五鼎)을 쓴 것을 말씀하십니까?” “아니다.

관곽(棺槨)과 의금(衣衾)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아닙니다. 이것은 이른바 지나쳤다는 것이 아니라, 빈부(貧富)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樂正子孟子弟子也仕於魯하니라 三鼎士祭禮五鼎大夫祭禮라』

 

『  악정자(樂正子)는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니, ()나라에서 벼슬하였다. 삼정(三鼎)은 사()의 제례(祭禮), 오정(五鼎)은 대부(大夫)의 제례(祭禮)이다.

 

 

樂正子見孟子曰 克告於君君爲來見也러시니 嬖人有臧倉者沮君이라 是以果來也하시니이다 曰 行或使之止或尼之行止非人所能也吾之遇魯侯天也臧氏之子 焉能使予遇哉리오』

 

『  악정자(樂正子)가 맹자(孟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인군(人君)께 아뢰니, 인군(人君)께서 와서 뵈려고 하시더니, 폐인(嬖人)에 장창(臧倉)이라는 자가 군주(君主)를 저지하였습니다. 인군(人君)께서 이 때문에 끝내 오지 않으신 것입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길을 감은 누가 혹 시켜서이며, 멈춤은 혹 저지해서이다. 그러나 감과 그침은 사람이 능히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나라 임금을 만나지 못함은 천운(天運)이니, 장씨(臧氏)의 아들이 어찌 나로 하여금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樂正子名이라 , 皆止之之意也言 人之行必有人使之者하며 其止必有人尼之者이나 其所以行,

所以止則固有天命이니 而非此人所能使亦非此人所能尼也然則我之豈臧倉之所能爲哉아』

『○ 此章言聖賢之出處關時運之盛衰하니 乃天命之所爲非人力之可及이니라』

 

『  극()은 악정자(樂正子)의 이름이다. ()와 닐()은 모두 그치게 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길을 감은 반드시 사람이 그렇게 시키는 자가 있으며, 그 멈춤은 반드시 사람이 그치게 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게 되는 소이(所以)와 멈추게 되는 소이(所以)는 진실로 천명(天命)에 달려 있는 것이요, 이 사람이 시킬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또한 이 사람이 그치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노()나라 임금을 만나지 못함이 어찌 장창(臧倉)이 능히 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

『  ○ 이 장() 은 성현(聖賢)의 출처(出處)는 시운(時運)의 성쇠(盛衰)에 관계되니, 바로 천명(天命)이 하는 것이요,

인력(人力)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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