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凡九章이라』
『 모두 9장(章)이다.』
『○ 맹자 ; 공손추상 ; 제1장+1』
『○ 맹자 ; 공손추상 ; 제2장+2』
『○ 맹자 ; 공손추상 ; 제3장+3』
『○ 맹자 ; 공손추상 ; 제4장+4』
『○ 맹자 ; 공손추상 ; 제5장+5』
『○ 맹자 ; 공손추상 ; 제6장+6』
『○ 맹자 ; 공손추상 ; 제7장+7』
『○ 맹자 ; 공손추상 ; 제8장+8』
『○ 맹자 ; 공손추상 ; 제9장+9』
*맹자 ; 공손추상 ; 제1장
▣ 제1장(第一章)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하시면 管仲晏子之功을 可復許乎잇가』
『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부자(夫子)께서 <만일> 제(齊)나라에서 요로(要路)를 담당하신다면 관중(管仲)과
안자(晏子)의 공적을 다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公孫丑는 孟子弟子니 齊人也라 當路는 居要地也라 管仲은 齊大夫니 名夷吾니 相桓公하여 큹諸侯하니라 許는
猶期也라 孟子未嘗得政하시니 丑蓋設辭以問也라』
『 공손추(公孫丑)는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니, 제(齊)나라 사람이다. 당로(當路)는 요지(要地)『[요직(要職)]』에 거(居)하는 것이다. 관중(管仲)은 제(齊)나라 대부(大夫)로 이름은 이오(夷吾)이니, 환공(桓公)을 도와서 제후(諸侯)의
패자(큹者)가 되게 하였다. 허(許)는 기(期)『[기대함]』와 같다. 맹자(孟子)께서 일찍이 정권을 얻지 못하셨으니,
공손추(公孫丑)가 가설(假設)하여 물은 것이다.』
『孟子曰 子誠齊人也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대는 진실로 제(齊)나라 사람이로다.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를 알뿐이로구나.”』
『齊人은 但知其國有二子而已요 不復知有聖賢之事라』
『 제(齊)나라 사람은 단지 그 나라에 두 사람이 있음을 알 뿐이요, 다시 성현(聖賢)의 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或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고 曾西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니라 曰然則吾子與管仲孰賢고 曾西쯯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고 管仲得君이 如彼其專也며 行乎國政이 如彼其久也로되 功烈이 如彼其卑也하니 爾何曾比予於是오하니라』
『 혹자(或者)가 증서(曾西)에게 묻기를 ‘그대가 자로(子路)와 더불어 누가 더 어진가?’ 하니, 증서(曾西)가 불안해하면서 말하기를 ‘자로(子路)는 우리 선자(先子)께서 두려워하신 바이다.’ 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관중(管仲)과 더불어
누가 더 어진가?’하니. 증서(曾西)가 불연(쯯然)『[변색]』하며 기뻐하지 않고 말하기를 ‘네 어찌 곧 나를 관중(管仲)에게 비하는가. 관중(管仲)은 군주의 신임을 얻기를 저와 같이 독차지하였으며, 국정을 시행하기를 저와 같이 오래 하였는데도 공렬(功烈)이 자와 같이 낮으니, 네 어찌 곧 나를 이 사람에게 비교하는가.’ 하였다.』
『孟子引曾西與或人問答如此하시니라 『曾西는 曾子之孫주:증서증자지손』이라 蹴은 不安貌라 先子는 曾子也라 쯯은 怒色也라 曾之言은 則也라 烈은 猶光也라 桓公이 獨任管仲四十餘年하니 是專且久也라 管仲이 不知王道而行큹術이라
故로 言功烈之卑也니라 楊氏曰 孔子言子路之才曰 千乘之國에 可使治其賦也라하시니 使其見於施爲라도 如是而已니
其於『九合諸侯하여 一匡天下주:구합제후』에는 固有所不逮也라 然則曾西推尊子路如此하고 而羞比管仲者는 何哉오 『譬之御者주:비지어자』컨대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요 管仲之功은 詭遇而獲禽耳라 曾西는 仲尼之徒也라 故로
不道管仲之事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증서(曾西)와 혹자의 문답을 인용하기를 이와 같이 하셨다. 증서(曾西)는 증자(曾子)의 손자(孫子)이다. 축(蹴)은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선자(先子)는 증자(曾子)이다. 불(쯯)은 성내는 빛이다. 증(曾)이란 말은 즉(則)『[곧]』의 뜻이다. 열(烈)은 광(光)과 같다. 환공(桓公)이 홀로 관중(管仲)에게 맡기기를 40여 년이나 하였으니, 이것은 독차지하고 또 오래한 것이다. 관중(管仲)은 왕도(王道)를 알지 못하고 패술(큹術)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공렬(功烈)이 낮다고 말씀한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자로(子路)의 재주를 말씀하시기를 ‘천승(千乘)의 나라에 그로 하여금
부(賦)『[병(兵)]』를 다스리게 할 만하다.’ 하셨으니, 가령 그가 시행에 능력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이와 같을 뿐이니,
제후(諸侯)들을 규합하여 한번 천하(天下)를 바로잡음에는 진실로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서(曾西)가 자로(子路)를 추존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서, 관중(管仲)에게 비하기를 부끄럽게 여긴 것은 어째서인가? 이것을
말 모는 자에게 비교하면, 자로(子路)는 자신의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요, 관중(管仲)의 공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만나서 잡았을 뿐이다.’ 증서(曾西)는 중니(仲尼)의 무리였다. 그러므로 관중(管仲)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曰 管仲 은 曾西之所不爲也어늘 而子爲我願之乎아』
『 관중(管仲)은 증서(曾西)도 하지 않은 것인데, 그대는 나를 위해서 원한다 말인가.”』
『曰은 孟子言也라 願은 望也라』
『 왈(曰)은 맹자(孟子)의 말씀이다. 원(願)은 바라는 것이다.』
『曰 管仲은 以其君큹하고 晏子는 以其君顯하니 管仲晏子도 猶不足爲與잇가』
『 “관중(管仲)은 그 군주를 <천하(天下)에> 패자(큹者)가 되게 하였고, 안자(晏子)는 그 군주를 이름이 드러나게
하였으니,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도 오히려 해봄직 하지 않습니까?”』
『顯은 顯名也라』
『 현(顯)은 이름을 드러냄이다.』
『曰 以齊王이 由『(猶)』反手也니라.』
『 제(齊)나라를 가지고 왕노릇 함은 손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운 것이다.”』
『反手는 言易也라』
『 반수(反手)는 쉬움을 말한다.』
『曰 若是則弟子之惑이 滋甚이니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시되 猶未洽於天下하여 武王周公이 繼之然後에 大行이어늘 今言王若易然하시니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
『 “그렇다면 제자(弟子)의 의혹이 더욱 심해집니다. 또 문왕(文王)의 덕을 가지고도 백년 뒤에 붕(崩)하셨는데도 아직 천하(天下)에 교화(敎化)가 무젖지 못하여,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이 계속한 뒤에야 크게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왕노릇 하는 것을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문왕(文王)은 족히 법받을 만한 것이 못됩니까?”』
『滋는 益也라 文王이 九十七而崩하시니 言百年은 擧成數也라 文王은 三分天下에 才『(°.)』有其二러시니 武王이
克商하여 乃有天下하시고 周公이 相成王하여 制禮作樂然後에 敎化大行하니라』
『 자(滋)는 더함이다. 문왕(文王)은 97세(歲)에 붕(崩)하셨는데, 백 년이라 말한 것은 완성된 수를 들어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은 천하(天下)를 3분함에 겨우 3분의 2를 소유하셨는데,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겨 마침내 천하(天下)를 소유하였고,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 예(禮)를 짓고 음악(音樂)을 만든 뒤에야 교화가 크게 행해졌다.』
『曰 文王을 何可當也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히 賢聖之君六七이 作하여 天下歸殷이 久矣니 久則難變也라 武丁이 朝諸侯, 有天下하되 猶運之掌也하시니 紂之去武丁이 未久也라 其故家遺俗과 流風善政이 猶有存者하며 又有微子, 微仲,
王子比干, 箕子, 膠鬲이 皆賢人也니 相與輔相之라 故로 久而後에 失之也하니 尺地도 莫非其有也며 一民도 莫非其臣也
어늘 然而文王이 猶方百里起하시니 是以難也니라』
『 “문왕(文王)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탕왕(湯王)으로부터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6, 7
명이 나와서 천하가 은(殷)나라에 돌아간 지가 오래되었으니, 오래면 변하기 어렵다. 무정(武丁)이 제후(諸侯)들에게
조회 받고 천하(天下)를 소유하되 마치 이것을 손바닥에 움직이듯이 하였으니, 주왕(紂王)은 무정(武丁)과의 거리가
오래지 않다. 그 고가(故家)와 남은 풍속과 유풍(流風)과 선정(善政)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으며, 또 미자(微子)•미중(微仲)과 왕자(王子) 비간(比干)과 기자(箕子)•교격(膠鬲)이 있었는데, 이들은 다 현인(賢人)이었다. 이들이 서로 더불어 그를 보좌하였으므로 오랜 뒤에야 나라를 잃었으니, 한 자 되는 땅도 그의 소유 아님이 없었으며, 한 백성도 그의 신하 아닌 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문왕(文王)은 방(方) 백리(百里)를 가지고 일어나셨으니, 이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다.”』
『當은 猶敵也라 商은 自成湯으로 至於武丁히 中間에 太甲, 太戊, 祖乙, 盤庚이 皆賢聖之君이라 作은 起也라 自武丁至紂히 凡七世라 故家는 舊臣之家也라』
『 당(當)은 적(敵)과 같다. 상(商)나라는 성탕(成湯)으로부터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태갑(太甲)•태무(太戊)•조을(祖乙)•반경(盤庚)이 모두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였다. 작(作)은 일어남이다. 무정(武丁)으로부터 주왕(紂王)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7세(世)이다. 고가(故家)란 구신(舊臣)의 집안이다.』
『齊人有言曰 雖有知慧나 不如乘勢며 雖有¯』基나 不如待時라하니 今時則易然也니라』
『 제(齊)나라 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비록 지혜가 있으나 세(勢)를 타는 것만 못하며, 비록 농기구가 있으나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지금 때는 그렇게 하기가 쉽다.』
『¯』基는 田器也라 時는 謂耕種之時라』
『 자기(¯』基)는 농기구이다. 시(時)는 경종(耕種)의 때를 이른다.』
『夏后殷周之盛에 地未有過千里者也하니 而齊有其地矣며 鷄鳴狗吠가 相聞而達乎四境하니 而齊有其民矣니 地不改µ?
矣며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라』
『 하후(夏后)와 은(殷)•주(周)의 전성기에 땅이 천리(千里)를 넘은 자가 있지 않았는데, 지금 제(齊)나라는 그만한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서 사경(四境)에 도달하고 있으니, 제(齊)나라가 그만한 백성을
가지고 있으니, 땅을 다시 더 개척하지 않으며 백성을 더 모으지 않더라도 인정(仁政)을 행하고서 왕노릇 한다면 이것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此는 言其勢之易也라 三代盛時에 王畿不過千里어늘 今齊已有之하니 異於文王之百里요 又鷄犬之聲相聞하여 自國都로 以至於四境하니 言居民稠密也라』
『 이것은 그 세(勢)의 쉬움을 말씀한 것이다. 삼대(三代)의 성할 때에 왕기(王畿)가 천리(千里)를 넘지 못하였는데,
지금 제(齊)나라는 이미 이것을 가지고 있으니, 문왕(文王)의 백리(百里)와는 다르며, 또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서 국도(國都)로부터 사경(四境)에 이르니, 이것은 거주하는 백성들이 조밀함을 말한 것이다.』
『且王者之不作이 未有疏於此時者也하며 民之憔悴於虐政이 未有甚於此時者也하니 『飢者에 易爲食이며 渴者에 易爲飮주:기자역위식』이니라』
『 또 왕자(王者)가 나오지 않음이 지금보다 더 성근 적이 있지 않았으며, 백성들이 학정(虐政)에 시달림이 지금보다
더 심한 적이 있지 않았으니, 굶주린 자에게 밥 되기가 쉽고, 목마른 자에게 음료 되기가 쉬운 것이다.』
『此는 言其時之易也라 自文武至此 七百餘年이니 異於商之賢聖繼作이요 民苦虐政之甚하니 異於紂之猶有善政이라
易爲飮食은 言飢渴之甚에 不待甘美也라』
『 이것은 그 때의 쉬움을 말씀한 것이다. 문왕(文王)•무왕(武王)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7백여 년이 지났으니,
상(商)나라의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이어 나온 것과는 다르며, 백성들이 학정(虐政)을 괴롭게 여김이 심하니, 주왕
(紂王) 때에 오히려 선정(善政)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
밥과 음료 되기가 쉽다는 것은 기갈이 심해서 달고 아름다움을 기다리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孔子曰 德之流行이 速於置郵而傳命이라하시니』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德)의 유행이 파발마로 명(命)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 하셨으니,』
『置는 驛也요 郵는 馹也니 所以傳命也라 孟子引孔子之言이 如此하시니라』
『 치(置)는 역(驛)이요, 우(郵)는 역마이니, 명(命)을 전달하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 이와 같다.』
『當今之時하여 萬乘之國이 行仁政이면 民之悅之 猶解倒懸也리니 故로 事半古之人이요 功必倍之는 惟此時爲然하니라』
『 지금을 당하여 만승(萬乘)의 나라가 인정(仁政)을 행한다면 백성들의 기뻐하는 것이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준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은 옛사람의 반만 하고서 효과는 반드시 옛사람의 배가 되는 것은 오직 지금만이 그러할
것이다.”』
『倒懸은 諭因苦也라 所施之事 半於古人而功倍於古人은 由時勢易而德行速也니라』
『 도현(倒懸)은 곤궁하고 괴로움을 비유한 것이다. 시행하는 바의 일은 옛사람의 반만 하고, 효과는 옛사람의 배가
되는 것은 시세(時勢)가 쉬워 덕(德)의 유행(流行)이 빠르기 때문이다.』
*맹자 ; 공손추상 ; 제2장
▣ 제2장(第二章)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하사 得行道焉하시면 雖由此큹王이라도 不異矣리니 如此則動心이릿가 否乎잇가 孟子曰 否라 我는 四十에 不動心호라』
『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부자(夫子)께서 제(齊)나라의 경상(卿相) 지위에 오르시어 도(道)를 행할 수 있게 되신다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자(큹者)와 왕자(王者)가 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겠습니다. 이와 같다면 마음이 동요되시겠습니까? 않으시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니다. 나는 40세(歲)에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노라.”』
『此는 承上章하여 又設問 孟子若得位而行道면 則雖由此而成큹王之業이라도 亦不足怪어니와 任大責重이 如此면 亦有所恐懼疑惑而動其心乎아하니라 『四十은 彊仕주:사십강사』니 君子道明德立之時라 孔子四十而不惑도 亦不動心之謂니라』
『 이것은 위 장(章)을 이어 가설하여 묻기를 ‘맹자(孟子)께서 만일 지위를 얻어 도(道)를 행하시게 된다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자(큹者)와 왕자(王者)의 업(業)을 이룩하더라도 또한 족히 괴이할 것이 없거니와, 임무가 크고 책임이 중함이 이와 같으면 또한 공구(恐懼)하고 의혹(疑惑)하는 바가 있어서 그 마음을 동요하시겠습니까?’ 한 것이다. 40은 막
벼슬할 때이니, 군자(君子)가 도(道)가 밝아지고 덕(德)이 확립되는 때이다. 공자(孔子)께서 40세(歲)에 의혹하지 않으신 것도 부동심(不動心)을 말씀하신 것이다.』
『曰 若是則夫子過孟賁이 遠矣로소이다 曰 是不難하니 告子도 先我不動心하니라』
『 “이와 같다면 부자(夫子)께서는 맹분(孟賁)보다 크게 뛰어나십니다.” “이것은 어렵지 않으니, 고자(告子)도 나보다 먼저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다.”』
『孟賁은 勇士라 告子는 名不害라 孟賁血氣之勇을 丑蓋借之하여 以贊孟子不動心之難이라 孟子言告子는 未爲知道로
되 乃能先我不動心하니 則此未足爲難也니라』
『 맹분(孟賁)은 용사(勇士)이다. 고자(告子)는 이름이 불해(不害)이다. 맹분(孟賁)은 혈기(血氣)의 용(勇)인데, 공손추(公孫丑)가 이것을 빌어서 맹자(孟子)의 부동심(不動心)의 어려움을 칭찬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고자(告子)가 도(道)를 알지 못하였는데도, 마침내 나보다 먼저 부동심(不動心)을 하였으니, 이것은 족히 어려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曰 不動心이 有道乎잇가 曰 有하니라』
『 “부동심(不動心)이 방법이 있습니까?” “있다.”』
『程子曰 心有主면 則能不動矣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마음에 주장이 있으면 능히 동요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北宮츪之養勇也는 不膚撓하며 不目逃하여 思以一毫挫於人이어든 若撻之於市朝하여 不受於褐寬博하여 亦不受於
萬乘之君하여 視刺萬乘之君하되 若刺褐夫하여 無嚴諸侯하여 惡聲至어든 必反之하니라』
『 북궁유(北宮츪)의 용(勇)을 기름은 피부가 찔려도 흔들리지 않으며 눈동자를 피하지 않아서, 생각하기를 털끝만큼
이라도 남에게 좌절(挫折)을 당하면 마치 시조(市朝)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여겨, 갈관박(褐寬博)에게도 <모욕을> 받지 않으며 또한 만승(萬乘)의 군주에게도 <모욕을> 받지 않아, 만승(萬乘)의 군주를 찌르는 것 보기를 마치 갈부
(褐夫)를 찔러 죽이는 것처럼 생각하여, 무서운 제후(諸侯)가 없어서 험담하는 소리가 이르면 반드시 보복하였다.』
『北宮은 姓이오 츪는 名이라 膚撓는 肌膚被刺而撓屈也요 目逃는 目被刺而轉睛逃避也라 挫는 猶辱也라 褐은 毛布요
寬博은 寬大之衣니 賤者之服也라 不受者는 不受其挫也라 刺는 殺也라 嚴은 畏憚也니 言無可畏憚之諸侯也라 츪는
蓋刺客之流니 以必勝爲主而不動心者也라』
『 북궁(北宮)은 성(姓)이요, 유(츪)는 이름이다. 부요(膚撓)는 기부(肌膚)가 찔림을 당하여 흔들리고 움츠러드는 것이요, 목도(目逃)는 눈이 찔림을 당하여 눈동자를 굴려 도피하는 것이다. 좌(挫)는 욕(辱)과 같다. 갈(褐)은 모포(毛布)요, 관박(寬博)은 헐렁하고 큰 옷이니, 천한 자의 의복이다.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좌절(挫折)을 받지 않은 것이다.
자(刺)는 찔러 죽임이다. 엄(嚴)은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니, 두려워하고 꺼릴 만한 제후(諸侯)가 없음을 말한다.
북궁유(北宮츪)는 아마도 자객(刺客)의 부류인 듯하니, 반드시 이김으로써 주장을 삼아서 마음을 동요하지 않은 자일
것이다.』
『孟施舍之所養勇也는 曰 視不勝하되 猶勝也로니 量敵而後進하며 慮勝而後會하면 是는 畏三軍者也니 舍豈能爲必勝哉리요 能無懼而已矣라하니라』
『 맹시사(孟施舍)의 용(勇)을 기름은 ‘이기지 못함을 보되, 이기는 것과 같이 여기노니, 적을 헤아린 뒤에 전진하며
승리를 생각한 뒤에 교전한다면 이것은 적의 삼군(三軍)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내 어찌 필승을 할 수 있으리오, 두려움이 없을 뿐이다.’ 하였다.』
『孟은 姓이오 施는 發語聲이요 舍는 名也라 會는 合戰也라 舍自言 其戰雖不勝이나 亦無所懼니 若量敵慮勝而後進戰이면 則是無勇而畏三軍矣라하니라 舍는 蓋力戰之士니 以無懼爲主而不動心者也라』
『 맹(孟)은 성(姓)이요, 시(施)는 발어성(發語聲)이요, 사(舍)는 이름이다. 회(會)는 모여 싸우는 것이다. 맹시사(孟施舍)는 스스로 말하기를 “그 싸움에 비록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야 하니, 만일 적을 헤아리고 승리할 것을 생각한 뒤에 나가서 싸운다면 이것은 용(勇)이 없어서 적의 삼군(三軍)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였다.
맹시사(孟施舍)는 아마도 역전(力戰)의 용사인 듯하니, 두려움이 없음으로써 주장을 삼아서 마음을 동요하지 않은
자일 것이다.』
『孟施舍는 似曾子하고 北宮츪는 似子夏하니 夫二子之勇이 未知其孰賢이어니와 然而孟施舍는 守約也니라』
『 맹시사(孟施舍)는 증자(曾子)와 유사하고 북궁유(北宮츪)는 자하(子夏)와 유사하니,
이 두 사람의 용(勇)은 그 누가 나은지는 알지 못하겠거니와 그러나 맹시사(孟施舍)는 지킴이 요약하다.』
『츪는 務敵人하고 舍는 傳守己하며 子夏는 篤信聖人하고 曾子는 反求諸己라 故로 二子之與曾子, 子夏는 雖非等倫이나 然이나 論其氣象하면 則各有所似라 賢은 猶勝也라 約은 要也라 言 論二子之勇하면 則未知誰勝이어니와 論其所守하면 則舍比於츪에 爲得其要也니라』
『 북궁유(北宮츪)는 남을 대적하기를 힘쓰고, 맹시사(孟施舍)는 자신을 지키기를 오로지 하였으며, 자하(子夏)는 성인(聖人)『[공자(孔子)]』을 독실히 믿었고, 증자(曾子)는 자기 몸에 돌이켜 찾았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증자(曾子)와 자하(子夏)와 더불어는 비록 동등한 무리는 아니나, 그 기상을 논하면 각기 유사한 바가 있는 것이다. 현(賢)은 승(勝)『[나음]』과 같다. 약(約)은 요약이다. 두 사람의 용(勇)을 논한다면 누가 나은지 알지 못하겠으나, 그 지키는 바를
논한다면 맹시사(孟施舍)가 북궁유(北宮츪)에 비하여 그 요약을 얻음이 됨을 말씀한 것이다.』
『昔者에 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아 吾嘗聞大勇於夫子矣로니 自反而不縮이면 雖褐寬博이라도 『吾不퀚焉주:오불췌언』이리오 自反而縮이면 雖千萬人이라도 吾往矣라하시니라』
『 옛적에 증자(曾子)가 자양(子襄)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용(勇)을 좋아하는가? 내 일찍이 대용(大勇)을 부자(夫子)에게 들었으니,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갈관박(褐寬博)이라도 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하셨다.』
『此는 言曾子之勇也라 子襄은 曾子弟子也라 夫子는 孔子也라 縮은 直也니 檀弓曰 古者에 冠縮縫이러니 今也衡『(橫)』縫이라하고 又曰 棺束은 縮二衡三이라하니라 퀚는 恐懼之也라 往은 往而敵之也라』
『 이것은 증자(曾子)의 용(勇)을 말씀한 것이다. 자양(子襄)은 증자(曾子)의 제자(弟子)이다. 부자(夫子)는 공자(孔子)이다. 축(縮)은 곧음이니, 〈단궁(檀弓)〉에 이르기를 “옛적에는 관(冠)을 곧게 꿰매더니, 지금은 가로로 꿰맨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관(棺)의 묶음은 곧은 것이 둘이요, 가로가 셋이다.” 하였다. 췌(퀚)는 두려워함이다. 왕(往)은 가서
대적함이다.』
『孟施舍之守는 氣라 又不如曾子之守約也니라』
『 맹시사(孟施舍)의 지킴은 기(氣)이니, 또 증자(曾子)의 지킴이 요약함만 못하다.”』
『言 孟施舍雖似曾子나 然이나 其所守는 乃一身之氣니 又不如曾子之反身循理하여 所守尤得其要也라 孟子之不動心은 其原이 蓋出於此하니 下文에 詳之하시니라』
『 맹시사(孟施舍)가 비록 증자(曾子)와 유사하나 그 지킨 것은 바로 한 몸의 기(氣)이니, 또 증자(曾子)가 자신의 몸에 돌이켜 이(理)를 따라서 지킨 바가 더욱 그 요약함을 얻음만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孟子)의 부동심(不動心)은
그 근원이 여기에서 나왔으니, 아래 글에 상세히 말씀하였다.』
『曰 敢問夫子之不動心과 與告子之不動心을 可得聞與잇가 告子曰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하며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라하니 不得於心이어든 勿求於氣는 可커니와 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은 不可하니 夫志는 氣之帥也요 氣는 體之
充也니 夫志至焉요 氣次焉이라 故로 曰 持其志오도 無暴其氣라하니라』
『 “감히 묻겠습니다. 부자(夫子)의 부동심(不動心)과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을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고자(告子)가 말하기를 ‘말에 대해서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 알려고 구하지 말며,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 하였으니,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는
것은 가(可)하거니와, 말에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 알려고 구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의지(意志)는 기(氣)의 장수(將帥)요, 기(氣)는 몸에 꽉 차 있는 것이니, 의지(意志)가 최고요, 기(氣)가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 의지(意志)를 잘 잡고도 또 그 기(氣)를 포악히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此一節은 公孫丑之問에 孟子誦告子之言하시고 又斷以己意而告之也시니라 告子謂 於言에 有所不達이면 則當舍置其言이요 而不必反求其理於心이며 於心에 有所不安이면 則當力制其心이요 而不必更求其助於氣라하니 此所以固守其心而不動之速也라 孟子旣誦其言而斷之曰 彼謂不得於心而勿求諸氣者는 急於本而緩其末이니 猶之可也어니와 謂不得於言而不求諸心은 則旣失於外而遂遺其內니 其不可也 必矣라 然이나 凡曰可者는 亦僅可而有所未盡之辭耳라 若論其極이면 則志固心之所之而爲氣之將帥라 然이나 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而爲志之卒徒者也라 故로 志固爲至極而氣卽次之하니 人固當敬守其志나 然이나 亦不可不致養其氣라 蓋其內外本未이 交相培養이니 此則孟 子之心이 所以未嘗必其不動而自然不動之大略也니라』
『 이 일절(一節)은 공손추(公孫丑)의 물음에 맹자(孟子)께서 고자(告子)의 말을 외우시고, 또 자기의 뜻으로 판단하여 말씀한 것이다. 고자(告子)가 이르기를 ‘말에 대해서 통달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마땅히 그 말을 버려둘 것이요, 굳이 그 이치를 마음속에 되찾을 것이 없으며, 마음에 불안한 바가 있으면 마땅히 힘껏 그 마음을 제재할 것이요, 굳이 다시 기운에 도움을 구할 것이 없다.’ 하였으니, 그는 이 때문에 그 마음을 굳게 지켜서 동요하지 않기를 속히 한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이미 그의 말을 외우고 단정하시기를 “저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근본을 시급히 하고 지엽을 느슨히 한 것이니, 오히려 가(可)하거니와 말에 대해서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 알기를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미 밖에 잃고 마침내 그 안을 버렸으니, 그 불가(不可)함이 틀림없다.” 하신 것이다.
그러나 무릇 가(可)란 말은 또한 겨우 가(可)해서 미진한 바가 있는 말이다. 만일 그 지극함을 논한다면 의지(意志)는
진실로 마음의 가는 바이어서 기(氣)의 장수가 된다. 그러나 기(氣)는 또한 사람의 몸에 충만 되어 있어서 의지(意志)의 졸도(卒徒)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意志)가 진실로 지극함이 되고 기(氣)가 곧 그 다음이 되니, 사람이 진실로
마땅히 그 의지(意志)를 공경히 지켜야 하나 또한 그 기(氣)를 기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내(內)와 외(外), 본(本)과 말(末)이 서로서로 배양되는 것이니, 이는 맹자(孟子)의 마음이 일찍이 부동심(不動心)하기를 기필하지
않으셨으되, 자연히 동요되지 않으신 바의 대략인 것이다.』
『旣曰 志至焉이요 氣次焉이라하시고 又曰 持其志오도 無暴其氣者는 何也잇고 曰 志壹則動氣하고 氣壹則動志也니
今夫蹶者趨者 是氣也而反動其心이니라』
『 이미 의지(意志)가 최고요 기(氣)가 그 다음이라 하셨고, 또 그 의지(意志)를 잘 잡고도 그 기(氣)를 포악히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의지(意志)가 한결같으면 기(氣)를 동하고 기(氣)가 한결같으면 의지(意志)를
동하는 것이니, 지금 넘어지는 자와 달리는 자는 이것은 기(氣)이나, 도리어 그 마음을 동요하게 된다.”』
『公孫丑見孟子言志至而氣次라 故로 問 如此則專持其志可矣어늘 又言無暴其氣는 何也오하니라 壹은 專一也라 蹶은
顚콟也요 趨는 走也라 孟子言 志之所向이 專一이면 則氣固從之라 然이나 氣之所在傳一이면 則志亦反爲之動이니 如
人顚콟趨走면 則氣專在是而反動其心焉이니 所以旣持其志而又必無暴其氣也라하시니라 程子曰 溱氣者는 什九요
氣動志者는 什一이니라』
『 공손추(公孫丑)는 맹자(孟子)께서 의지(意志)가 최고이고 기(氣)가 그 다음이라고 말씀하심을 보았다. 그러므로
묻기를 “이와 같다면 오로지 그 의지(意志)만 잡으면 가(可)하거늘 또 그 기(氣)를 포악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은 어째서입니까?” 한 것이다. 일(壹)은 전일(專一)함이다. 궐(蹶)은 넘어짐이요, 추(趨)는 달림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의지(意志)의 향하는 바가 전일(專一)하면 기(氣)는 진실로 그 뜻을 따르나, 기(氣)의 있는 바가 전일(專一)하면 의지(意志)가 또한 도리어 동요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넘어지고 달려가면 기(氣)가 오로지 여기에 있어, 도리어 그 마음을 동요함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 그 의지(意志)를 잡고도 또 반드시 그 기(氣)를 포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셨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의지(意志)가 기(氣)를 동하는 것은 10분에 9할이요, 기(氣)가 의지(意志)를 동하는 것은 10분에 1할이다.”』
『敢問夫子는 惡乎長이시니잇고 曰 我는 知言하며 我는 善養吾浩然之氣하노라』
『 “감히 묻겠습니다. 부자(夫子)께서는 어디에 장점이 계십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노라.”』
『公孫丑復問 孟子之不動心이 所以異於告子如此者는 有何所長而能然고하니 而孟子又詳告之以其故也시니라 知言者는 盡心知性하여 於凡天下之言에 無不有以究極其理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니라 浩然은 盛大流行之貌라 氣는 卽所謂體之充者니 本自浩然이로되 失養故로 ¥#니 惟孟子爲善養之하여 以復其初也라 蓋惟知言이면 則有以明夫道義하여 而於天下之事에 無所疑요 養氣면 則有以配夫道義하여 而於天下之事에 無所懼하니 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니라 告子之學은 與此正相反하니 其不動心은 殆亦冥然無覺하고 悍然不顧而已爾니라』
『 공손추(公孫丑)가 다시 “맹자(孟子)의 부동심(不動心)이 고자(告子)와 다름이 이와 같은 것은 어느 것에 소장(所長)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하고 묻자, 맹자(孟子)께서 또 그 이유를 상세히 말씀해 주신 것이다. 지언(知言)이란, 마음을
다하고 성(性)을 알아서 모든 천하(天下)의 말에 그 이치를 궁구하고 지극히 하여, 그 시비득실(是非得失)의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호연(浩然)이란 성대히 유행하는 모양이다. 기(氣)는 바로 이른바 ‘몸에 충만 되어 있다.’는 것이니, 본래는 스스로 호연(浩然)하되, 기름을 잃기 때문에 굶주리게『[부족(不足)하게]』 된다. 오직 맹자(孟子)께서 이것을 잘 길러 그 본초(本初)의 상태를 회복하신 것이다. 말을 알면 도의(道義)에 밝아서 천하(天下)의 일에 의심스러운 바가 없고, 기(氣)를 기르면 도의(道義)에 배합되어서 천하(天下)의 일에 두려운 바가 없으니, 이 때문에 큰 책임을 담당하여도 부동심(不動心)하는 것이다. 고자(告子)의 학문(學問)은 이와 정반대였으니, 그의 부동심(不動心)은 거의 또한 어두워서 깨달음이 없으며 사나워서 돌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敢問 何謂浩然之氣니잇고 曰 難言也니라』
『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합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말하기 어렵다.”』
『孟子先言知言이어늘 而丑先問養氣者는 承上文方論志氣而言也니라 難言者는 蓋其心所獨得하여 而無形聲之驗하니
有未易以言語形容者라 故로 程子曰 觀此一言이면 則孟子之實有是氣를 可知矣라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먼저 지언(知言)을 말씀하셨는데, 공손추(公孫丑)가 먼저 양기(養氣)를 물은 것은 위 글에서 막 지(志)•기(氣)를 논함을 이어서 말했기 때문이다. 난언(難言)이란 그 마음에 홀로 터득하여 형상과 소리의 징험이 없으니, 언어로써 형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께서 말씀하기를 “이 한 마디 말씀을 보면 맹자(孟子)께서 실제로 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其爲氣也 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면 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 그 기(氣)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함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천지(天地)의 사이에 꽉차게 된다.』
『至大는 初無限量이요 至剛은 不可屈撓라 蓋天地之正氣而人得以生者니 其體段이 本如是也라 惟其自反而縮이면 則得其所養이요 而又無所作爲以害之면 則其本體不虧而充塞無間矣리라 程子曰 天人一也라 更不分別이니 浩然之氣는 乃吾氣也라 養而無害면 則塞于天地하고 一爲私意所蔽면 則좲然而¥#하여 知其小也니라 謝氏曰 浩然之氣는 須於心得其正時에 識取니라 又曰 浩然은 是無虧欠時니라』
『 지극히 크다는 것은 애당초 한량이 없는 것이요, 지극히 강하다는 것은 굽히고 흔들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천지(天地)의 정기(正氣)로서 사람이 얻어 태어난 것이니, 그 체단(體段)『[특성(特性)]』이 본래 이와 같다.
오직 그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면 기르는 바를 얻은 것이요, 또 작위 하여 이것을 해침이 없으면 그 본체가 이지
러지지 않아서 충만하여 간격이 없을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하늘과 인간은 똑같아, 다시 분별이 없으니,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바로 나의 기(氣)이다. 이것을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천지(天地)에 충만하고, 한 번이라도 사의(私意)에 가리운 바가 되면 축 꺼져 굶주려서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모름지기 마음이 그 올바름을 얻었을 때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호연(浩然)이란 이 이지러지거나 부족한 때가 없는 것이다.”』
『其爲氣也 配義與道하니 無是면 ¥#也니라』
『 그 기(氣)됨이 의(義)와 도(道)에 배합되니, 이것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
『配者는 合而有助之意라 義者는 人心之裁制요 道者는 天理之自然이라 ¥#는 飢乏而氣不充體也라 言 人能養成此氣면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하여 使其行之勇決하여 無所疑憚이요 若無此氣면 則其一時所爲가 雖未必不出於道義나 然이나 其體有所不充이면 則亦不免於疑懼하여 而不足以有爲矣니라』
『 배(配)는 배합되어서 도움이 있다는 뜻이다. 의(義)는 인심(人心)의 재제(裁制)요, 도(道)는 천리(天理)의 자연(自然)이다. 뇌(¥#)는 굶주리고 결핍되어 기(氣)가 몸에 충만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능히 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양성하면 그 기(氣)가 도의(道義)에 배합되어 도움이 되어서, 도의(道義)를 행하기를 용맹스럽고 결단성 있게 하여 의심하고
꺼리는 바가 없고, 만일 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없으면 그 한 때의 하는 바가 비록 반드시 도의(道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체(體)가 충만 되지 못한 바가 있으면 또한 의구심을 면치 못해서 족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是集義所生者라 非義襲而取之也니 行有不慊於心이면 則¥#矣라 我故로曰 告子未嘗知義라하노니 以其外之也일새니라』
『 이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의리(義理)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의(義)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엄습하여 취해지는 것은 아니니, 행하고서 마음에 부족하게 여기는 바가 있으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굶주리게 된다. 내 그러므로 ‘고자(告子)가 일찍이 의(義)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의(義)를 밖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集義는 猶言積善이니 蓋欲事事皆合於義也라 襲은 掩取也니 如齊侯襲죥之襲이라 言 氣雖可以配乎道義나 而其養之之始에 乃由事皆合義하여 自反常直이라 是以로 無所愧칱하여 而此氣自然發生於中이요 非由只行一事가 偶合於義하여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라 慊은 快也며 足也라 言 所行이 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이면 則不足於心하여 而其體有所不充矣니 然則義豈在外哉리오 告子는 不知此理하고 乃曰仁內義外라하여 而不復以義爲事하니 則必不能集義以生浩然之氣矣라 上文不得於言勿求於心은 卽外義之意니 詳見告子上篇하니라』
『 집의(集義)는 적선(積善)이란 말과 같으니, 일마다 모두 의(義)에 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습(襲)은 엄습하여 취하는 것이니,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3년조(年條)에> ‘제(齊)나라 임금이 거(죥)나라를 엄습했다.’는 습자(襲字)와 같다. 기(氣)가 비록 도의(道義)에 배합되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처음에는 마침내 일마다 모두 의(義)에 합하여 스스로 돌이켜봄에 항상 정직함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이 때문에 마음에 부끄러운 바가 없어서 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자연히 심중에 발생되는 것이요, 다만 한 가지 일을 행한 것이 우연히 의(義)에 합함으로 말미암아 곧 밖에서 엄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겸(慊)은 쾌함이며 족함이다. 행하는 바가 한 번이라도 의(義)에 합하지 못해서 스스로 돌이켜봄에 정직하지 못함이 있으면, 마음에 부족해서 그 체(體)가 충만 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의(義)가 어찌 밖에 있는 것이겠는가. 고자(告子)는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서 마침내 말하기를 ‘인(仁)은 내면에 있고 의(義)는 외면에 있다.’ 하고서 다시는 의(義)를 일삼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반드시 의로운 일을 축적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 글에 ‘말에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 알기를 구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의(義)를 밖으로 여긴 뜻이니, 이러한 내용은 〈고자상편(告子上篇)〉에 자세히 보인다.』
『必有事焉而勿正하여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여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이 有閔其苗之不長而¬者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 今日에 病矣로라 予助苗長矣로라하여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니 以爲無益而舍之者는 不耘苗者也요 助之長者는 ¬者也니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 반드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며 억지로 조장(助長)하지도 말아서, 송(宋)나라 사람과 같이 하지 말지어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벼싹이 자라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뽑아놓은 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고 돌아와서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나는 매우 피곤하다. 내가 벼싹이 자라도록 도왔다.’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았더니, 벼싹은 말라 있었다. 천하(天下)에 벼싹이 자라도록 억지로
조장(助長)하지 않는 자가 적으니, 유익함이 없다 해서 버려두는 자는 비유하면 벼싹을 김매지 않는 자요 억지로 조장(助長)하는 자는 벼싹을 뽑아놓는 자이니, 이는 비단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는 것이다.”』
『必有事焉而勿正은 趙氏, 程子는 以七字爲句하고 近世에 或幷下文心字讀之者亦通이라 必有事焉은 有所事也니 如『有事於컉臾주:유사어전유』之有事라 正은 預期也니 春秋傳曰 戰不正勝이 是也라 如作正心이라도 義亦同하니 此與大學之所謂正心者로 語意自不同也라 此는 言養氣者必以集義爲事요 而勿預期其效하며 其或未充이면 則但當勿忘其所有事요 而不可作爲以助其長이니 乃集義養氣之節度也라 閔은 憂也라 ¬ 拔也라 芒芒은 無知之貌라 其人은 家人也라 病은 疲倦他라 舍之而不耘者는 忘其所有事요 ¬助之長者는 正之不得而妄有作爲者也라 然이나 不耘則失養而已요 ¬反以害之니 無是二者면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리라 如告子不能集義而欲彊制其心이면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이니 其於所謂浩然者에 蓋不惟不善養이라 而又反害之矣니라』
『 필유사언이물정(必有事焉而勿正)을 조씨(趙氏)와 정자(程子)는 일곱 자(字)로써 구절(句絶)을 삼았고, 근세에는 혹 아래 글의 심자(心字)까지 아울러 읽는 자도 있으니, 또한 통한다. 필유사언(必有事焉)이란 종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유사어전유(有事於컉臾)라는 유사(有事)와 같다. 정(正)은 미리 기약함이니, 《춘추전(春秋傳)》에 “싸움은 승리를 미리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 이것이다. 만일 정심(正心)으로 쓴다 하더라도 뜻은 또한 같으니, 이것은 《대학(大學)》에 이른바 정심(正心)이란 것과는 말뜻이 자연히 같지 않다. 이것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자는 반드시 의로운 일을 많이 축적함으로써 일을 삼고, 미리 효과를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혹시라도 충만 되지 못하면 다만 마땅히 종사함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이요, 억지로 작위 하여 자라도록 돕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바로 의로운 일을 많이 축적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절도(節度)이다.』
『 민(閔)은 근심함이다. 알(¬은 뽑아놓는 것이다. 망망(芒芒)은 무지(無知)한 모양이다. 기인(其人)은 집안 사람이다. 병(病)은 피곤함이다. 버려두고 김매지 않는 자는 종사함이 있는 것을 잊는 것이요, 뽑아서 조장하는 자는 효과를 미리 기대하다가 얻지 못함에 함부로 작위 하는 자이다. 그러나 김매지 않으면 기름을 잃을 뿐이나, 뽑아놓는다면 도리어 해치게 되니, 이 두 가지가 없으면 기(氣)가 그 기름을 얻어서 해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고자(告子)와 같이 능히 의로운 일을 축적하지도 못하고서 억지로 그 마음을 제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조(正助)의 병통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른바 호연지기(浩然之氣)란 것에 대해서 잘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도리어 해치는 것이다.』
『何謂知言이니잇고 曰 µ>辭에 知其所蔽하며 淫辭에 知其所陷하며 邪辭에 知其所離하며 遁辭에 知其所窮이니 生於其心하여 害於其政하며 發於其政하여 害於其事하나니 聖人復起사도 必從吾言矣시리라』
『 “무엇을 지언(知言)이라 합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편벽된 말에 그 가리운 바를 알며, 방탕한 말에 빠져 있는 바를 알며, 부정한 말에 괴리된 바를 알며, 도피하는 말에 <논리가> 궁함을 알 수 있으니, 마음에서 생겨나 정사에 해를 끼치며, 정사에 발로되어 일에 해를 끼치나니, 성인(聖人)이 다시 나오셔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르실 것이다.”』
『此는 公孫丑復問而孟子答之也라 µ>는 偏陂也요 淫은 放蕩也요 邪는 邪僻也요 遁은 逃避也라 四者相因하니 言之病也라 蔽는 遮隔也요 陷은 沈溺也요 離는 叛去也요 窮은 困屈也라 四者亦相因하니 則心之失也라 人之有言이 皆出於心하니 其心이 明乎正理而無蔽然後에 其言이 平正通達而無病이니 苟爲不然이면 則必有是四者之病矣니라 卽其言之病而知其心之失하고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而不可易者如此하니 非心通於道而無疑於天下之理면 其孰能之리오 彼告子者는 不得於言이어든 而不肯求之於心하여 至爲義外之說하니 則自不免於四者之病이니 其何以知天下之言而無所疑哉리오 程子曰 心通乎道然後에 能辯是非니 如持權衡하여 以較輕重이니 孟子所謂知言이 是也니라 又曰 孟子知言은 正如人在堂上이라야 方能辨堂下人曲直이니 若猶未免雜於堂下衆人之中이면 則不能辨決矣리라』
『 이는 공손추(公孫丑)가 다시 물음에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신 것이다. 피(µ>)는 편벽 됨이요, 음(淫)은 방탕함이요, 사(邪)는 사벽 함이요, 둔(遁)은 도피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인(因)하니, 말의 병통이다. 폐(蔽)는 가리우고 막힘이요, 함(陷)은 침닉(沈溺)이요, 이(離)는 배반이요, 궁(窮)은 곤굴(困屈)이다. 이 네 가지는 또한 서로 인(因)하니, 이것은 마음의 잘못이다. 사람의 말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니, 마음이 정리(正理)에 밝아서 가리움이 없는 뒤에야 말이 공평하고 올바르며 통달하여 병통이 없으니,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반드시 이 네 가지의 병통이 있게 된다. 말의 병통을 가지고
마음의 잘못을 알며, 또 정사에 해됨이 결정적이어서 바꿀 수 없음을 앎이 이와 같았으니, 마음이 도(道)를 통달하여
천하(天下)의 이치에 의심함이 없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능하겠는가. 저 고자(告子)는 말에 이해되지 못하거든
이것을 마음에 찾기를 즐겨하지 않아서, 심지어는 의(義)는 외면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하였으니, 그렇다면
스스로 이 네 가지의 병통을 면치 못한 것이니, 어떻게 천하(天下)의 말씀을 알아 의심하는 바가 없겠는가.』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마음이 도(道)를 통달한 뒤에야 능히 시비(是非)를 분별할 수 있으니, 마치 저울대를 잡고 경중(輕重)을 비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맹자(孟子)의 이른바 지언(知言)이란 바로 이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맹자(孟子)의 지언(知言)은 바로 사람이 당상(堂上)에 있어야 바야흐로 당하(堂下) 사람의 곡직(曲直)을 구별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만일 자신이 아직도 당하(堂下)의 여러 사람 속에 섞여 있음을 면치 못한다면 이것을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宰我, 子貢은 善爲說辭하고 2牛, 閔子, 顔淵은 善言德行이러니 孔子兼之하시되 曰 我於辭命則不能也로라하시니 然則夫子는 旣職矣乎신저』
『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은 설사(說辭)를 잘 하였고, 염우(2牛), 민자(閔子), 안연(顔淵)은 덕행(德行)을 잘 말씀하였는데, 공자(孔子)께서는 이것을 겸하셨으되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명(辭命)에 있어서는 능하지 못하다.’ 하셨으니,
그렇다면 부자(夫子)께서는 이미 성인(聖人)이시겠습니다.”』
『此一節은 林氏以爲皆公孫丑之問이라하니 是也라 說辭는 言語也요 德行은 得於心而見於行事者也라 三子善言德行者는 身有之故로 言之親切而有味也라 公孫丑言 數子는 各有所長而孔子兼之라 然이나 猶自謂不能於辭命이어시늘 今孟子는 乃自謂我能知言하고 又善養氣라하시니 則是兼言語德行而有之니 然則豈不旣聖矣乎아하니라 此夫子는 指孟子也라』
『○ 程子曰 孔子自謂不能於辭命者는 欲使學者務本而已시니라』
『 이 일절(一節)은 임씨(林氏)가 이르기를 ‘모두 공손추(公孫丑)의 질문’이라 하였으니, 그 말이 옳다. 설사(說辭)는
언어(言語)이다. 덕행(德行)은 마음에 얻어서 행사에 나타나는 것이다. 세 분들이 덕행(德行)을 잘 말씀한 것은 자신들이 덕행(德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말함에 친절해서 맛이 있었던 것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말하기를 “몇 분들은 각기 소장(所長)이 있었고, 공자(孔子)는 이것을 겸하셨으나 오히려 스스로 사명(辭命)에는 능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맹자(孟子)는 스스로 ‘나는 능히 지언(知言)을 하고, 나는 또 양기(養氣)를 잘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언어(言語)와 덕행(德行)을 겸하여 소유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이미 성인(聖人)이 아니겠습니까?” 한 것이다.
여기서 부자(夫子)는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사명(辭命)에는 능하지 못하다고 말씀한 것은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근본『[행실(行實)]』을 힘쓰게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曰 惡『(오)』라 是何言也오 昔者에 子貢問於孔子曰 夫子는 聖矣乎신저 孔子曰聖則吾不能이어니와 我는 學不厭而敎不倦也로라 子貢曰 學不厭은 智也요 敎不倦은 仁也니 仁且智하시니 夫子는 旣聖矣신저하니 夫聖은 孔子도 不居하시니 是何言也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 이 웬 말인가.? 옛적에 자공(子貢)이 공자(孔子)께 묻기를 ‘부자(夫子)는 성인(聖人)이십니다.’하자, 공자(孔子)께서 ‘성인(聖人)은 내 능하지 못하거니와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노라.’ 하시니,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지(智)요,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은
인(仁)이니, 인(仁)하고 또 지(智)하시니, 부자(夫子)는 이미 성인(聖人)이십니다.’ 하였다. 성인(聖人)은 공자(孔子)께서도 자처하지 않으셨으니, 이 웬 말인가?”』
『惡는 驚歎辭也라 昔者以下는 孟子不敢當丑之言而引孔子子貢問答之辭하여 以告之也시니라 此夫子는 指孔子也라 學不厭者는 智之所以自明이요 敎不倦者는 仁之所以及物이라 再言是何言也하여 以深拒之하시니라』
『 오(惡)는 놀라고 탄식하는 말이다. 석자이하(昔者以下)는 맹자(孟子)께서 감히 공손추(公孫丑)의 말을 감당하지 못해서 공자(孔子)와 자공(子貢)이 문답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고(告)한 것이다. 여기서 부자(夫子)는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배움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지(智)로서, 스스로 밝힘이요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은 인(仁)으로서,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이 웬 말이냐고 두 번 말씀하여 깊이 거절하신 것이다.』
『昔者에 竊聞之하니 子夏, 子游, 子張은 皆有聖人之一體하고 2牛, 閔子, 顔淵은 則具體而微라하니 敢問所安하노이다』
『 “옛적에 제가 들으니, ‘자하(子夏)•자유(子游)•자장(子張)은 모두 성인(聖人)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있었고, 염우(2牛)•민자(閔子)•안연(顔淵)은 전체를 갖추고 있었으나 미약하다.’ 하였습니다. 감히 선생님께서 편안히 자처하시는 바를 묻겠습니다.”』
『此一節은 林氏亦以爲皆公孫丑之問이라하니 是也라 一體는 猶一肢也라 具體而微는 謂有其全體로되 『但未廣大耳주:단미광대이』라 安은 處也라 公孫丑復問 孟子旣不敢比孔子면 則於此數子에 欲何所處也오하니라』
『 이 일절(一節)은 임씨(林氏)가 또 이르기를 ‘모두 공손추(公孫丑)의 질문’이라 하였으니, 그 말이 옳다. 일체(一體)는 일지(一肢)와 같다. 구체이미(具體而微)란 그『[공자(孔子)]』의 전체를 소유하였으되 다만 광대(廣大)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안(安)은 편안히 처하는 것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다시 묻기를 “맹자(孟子)께서 감히 이미 공자(孔子)에게
비하지 못하신다면, 이 몇 분들에 대해 어느 곳에 자처하시고자 합니까?” 한 것이다.』
『曰 姑舍是하라』
『 “우선 이들을 버려두라.”』
『孟子言且置是者는 不欲以數子所至者로 自處也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기를 ‘우선 이들을 버려두라.’고 하신 것은, 이 몇 분들이 이르른 경지를 가지고 자처하고자
하지 않으신 것이다.』
『曰 伯夷, 伊尹은 何如하니잇고 曰 不同道하니 非其君不事하며 非其民不使하여 治則進하고 亂則退는 伯夷也요 何事非君이며 何使非民이리오하여 治亦進하며 亂亦進은 伊尹也요 可以仕則仕하며 可以止則止하며 可以久則久하며 可以速則速은 孔子也시니 皆古聖人也라 吾未能有行焉이어니와 乃所願則學孔子也로라』
『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어떻습니까?” “도(道)가 같지 않으니,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워지면 물러감은 백이(伯夷)였고, ‘어느 분을
섬긴들 내 군주가 아니며, 어느 사람을 부린들 내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여,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혼란해도 나아감은
이윤(伊尹)이었고,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
하면 빨리 떠나심은 공자(孔子)이시니, 모두 옛 성인(聖人)이시다. 내 행함이 있지 못하거니와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
(孔子)를 배우는 것이다.”』
『伯夷는 孤竹君之長子니 兄弟遜國하고 避紂隱居라가 聞文王之德而歸之러니 及武王伐紂에 去而餓死하니라 伊尹은
有莘之處士니 湯聘而用之하여 使之就桀한대 桀不能用이어늘 復歸於湯하여 如是者五라가 乃相湯而伐桀也하니라 三聖人事는 詳見此篇之末及萬章下篇하니라』
『 백이(伯夷)는 고죽(孤竹)나라 군주의 장자(長子)이니, 형제가 나라를 양보하고 주왕(紂王)을 피하여 숨어살다가 문왕(文王)의 덕(德)을 듣고 문왕(文王)에게 귀의했었는데,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자, 주(周)나라를 떠나 굶어
죽었다. 이윤(伊尹)은 유신(有莘)의 처사(處士)이니, 탕왕(湯王)이 초빙하여 등용해서 걸왕(桀王)에게 나아가게 하였으나 걸왕(桀王)이 등용하지 못하자, 다시 탕왕(湯王)에게 돌아와 이와 같이 하기를 다섯 번 하고는 마침내 탕왕(湯王)을 도와 걸왕(桀王)을 정벌하였다. 이들 세 성인(聖人)의 일은 이 편의 끝과 〈만장하편(萬章下篇)〉에 자세히 보인다.』
『伯夷, 伊尹이 於孔子에 若是班乎잇가 曰 否라 自有生民以來로 未有孔子也시니라』
『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이 공자(孔子)에 대해서 이와 같이 동등하십니까?” “아니다.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공자(孔子) 같은 분이 계시지 않다”』
『班은 齊等之貌라 公孫丑問而孟子答之以不同也하시니라』
『 반(班)은 등급이 똑같은 모양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물음에 맹자(孟子)께서 같지 않다고 답하신 것이다.』
『曰 然則有同與잇가 曰 有하니 得百里之地而君之면 皆能以朝諸侯有天下어니와 行一不義하며 殺一不辜而得天下는
皆不爲也리니 是則同하니라』
『 “그렇다면 같은 점이 있습니까?” “있으니, 백리(百里)되는 땅을 얻어서 인군(人君) 노릇을 하면 모두 제후(諸侯)들에게 조회 받고 천하(天下)를 소유할 수 있거니와, 한 가지 일이라도 불의(不義)를 행하며,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이고 천하(天下)를 얻음은 모두 하시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같은 점이다.”』
『有는 言有同也라 以百里而王天下는 德之盛也요 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를 有所不爲는 心之正也라 聖人之所以爲聖人은 其根本節目之大者가 惟在於此하니 於此不同이면 則『亦不足以聖人矣주:역불족이성인의』니라』
『 유(有)는 같음이 있음을 말한다. 백리(百里)를 가지고 천하(天下)에 왕(王)노릇함은 덕(德)의 성함이요, 한 가지 일이라도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며,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이고서 천하(天下)를 얻음을 하지 않는 바가 있음은 마음의 올바름이다. 성인(聖人)이 성인(聖人)이 되신 이유는 그 근본(根本)과 절목(節目)의 큰 것이 오직 여기에 있으니,
이에 같지 않다면 또한 족히 성인(聖人)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曰 敢問其所以異하노이다 曰 宰我, 子貢, 有若은 智足以知聖人이니 汚不至阿其所好니라』
『 “감히 그 다른 점을 묻겠습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재아(宰我)와 자공(子貢)과 유약(有若)은 지혜(智慧)가 족히 성인(聖人)을 알 만하니, 이들이 가령 <지혜가> 낮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데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汚는 下也라 三子智足以知夫子之道하니 假使汚下라도 必不阿私所好而空譽之니 明其言之可信也시니라』
『 오(汚)는 낮은 것이다. 세 사람의 지혜가 족히 부자(夫子)의 도(道)를 알 만하니, 가령 <지혜가> 낮더라도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칭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그 말이 믿을 만함을 밝히신 것이다.』
『宰我曰 以予觀於夫子컨대 賢於堯舜이 遠矣로다』
『 재아(宰我)가 말하였다. ‘나로서 부자(夫子)를 관찰하건대 요순(堯舜)보다 훨씬 나으시다.’』
『程子曰 語聖則不異하고 事功則有異하니 夫子賢於堯舜은 語事功也니라 蓋堯舜은 治天下하시고 夫子는 又推其道하여 以垂敎萬世하시니 堯舜之道非得孔子면 則後世亦何所據哉리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을 말하면 다르지 않고, 사공(事功)은 다름이 있으니, 부자(夫子)가 요순(堯舜)보다 나음은 사공(事功)을 말한 것이다. 요순(堯舜)은 천하(天下)를 다스리셨고, 부자(夫子)는 또 그 도(道)를 미루어 만세(萬世)에 가르침을 남기셨으니, 요순(堯舜)의 도(道)가 공자(孔子)를 얻지 않았다면 후세에서 또한 무엇을 근거로
삼았겠는가.”』
『子貢曰 見其禮而知其政하며 聞其樂而知其德이니 由百世之後하여 等百世之王컨대 莫之能違也니 自生民以來로
未有夫子也시니라』
『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예(禮)를 보면 그 나라의 정사(政事)를 알 수 있고, 음악(音樂)을 들으면 그 군주(君主)의
덕(德)을 알 수 있으니, 백세(百世)의 뒤에서 백세(百世)의 왕(王)들을 차등해 보건대 이것을 도피할 자가 없으니,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부자(夫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
『言 大凡見人之禮면 則可以知其政이요 聞人之樂이면 則可以知其德이라 是以로 我從百世之後하여 差等百世之王컨대 無有能遁其情者니 而見其皆莫若夫子之盛也니라』
『 대범(大凡) 사람『[군주(君主)]』의 예(禮)를 보면 그 정사(政事)를 알 수 있고, 사람의 음악(音樂)을 들으면 그 덕(德)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백세(百世)의 뒤에서 백세(百世)의 왕(王)들을 차등 해보건대 능히 그 실정(實情)을
도피할 자가 없으니, 그 모두 부자(夫子)와 같이 성한 이가 없었음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有若曰 豈惟民哉리오 麒麟之於走獸와 鳳凰之於飛鳥와 泰山之於丘²§'에 類也며 聖人之於民에 亦類也시니 出於其類하며 拔乎其萃나 自生民以來로 未有盛於孔子也시니라』
『 유약(有若)이 말하였다. ‘어찌 다만 백성『[사람]』 뿐이겠는가. 달리는 짐승 중의 기린(麒麟)과 나는 새 중의 봉황(鳳凰)새와 언덕•개미둑 중의 태산과 길바닥에 고인 장마물 중의 하해(河海)와 똑같은 것이며, 일반백성 중의 성인(聖人)도 이와 같은 것이다. 종류 중에서 빼어나며, 모인 것에서 높이 솟아났으나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공자(孔子)보다
더 훌륭하신 분은 계시지 않다.’ 하였다.”』
『麒麟은 毛蟲之長이요 鳳凰은 羽蟲之長이라 ²라 出은 高出也요 拔은 特起也라 萃는 聚也라 言 自古聖人이 固皆異於衆人이 然이나 未有如孔子之尤盛者也니라』
『○ 程子曰 孟子此章은 擴前聖所未發하시니 學者所宜潛心而玩索也니라』
『 기린(麒麟)은 모충(毛蟲)의 으뜸이요, 봉황(鳳凰)은 우충(羽蟲)의 으뜸이다. 질(²요, 발(拔)은 특별히 일어남이다.
췌(萃)는 모음이다. 예로부터 성인(聖人)은 진실로 모두 중인(衆人)보다 특이하다.
그러나 공자(孔子)와 같이 더욱 성한 자는 있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맹자(孟子)》의 이 장(章)은 전성(前聖)들이 아직 발명(發明)하지 않은 것을 확충
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마음을 잠겨 완색(玩索)하여야 할 것이다.”』
*맹자 ; 공손추상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孟子曰 以力假仁者는 큹니 큹必有大國이요 以德行仁者는 王이니 王不待大라 湯以七十里하시고 文王以百里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힘으로써 인(仁)의 행위를 빌린 자는 패자(큹者)이니 패자(큹者)는 반드시 대국(大國)을 소유하여야 하고, 덕(德)으로써 인(仁)을 행한 자는 왕자(王者)이니 왕자(王者)는 대국(大國)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湯王)은 70리(里)를 가지고 하셨고, 문왕(文王)은 백리(百里)를 가지고 하셨다.”』
『力은 謂土地甲兵之力이라 假仁者는 本無是心而借其事하여 以爲功者也라 큹은 若齊桓, 晉文이 是也라 以德行仁이면 則自吾之得於心者推之하여 無適而非仁也니라』
『 역(力)이란 토지(土地)와 갑병(甲兵)의 힘을 이른다. 인(仁)을 빌린다는 것은 본래 인(仁)한 마음이 없으면서 그 일을 빌려 공(功)으로 삼은 자이다. 패(큹)는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 같은 이가 이들이다. 덕(德)으로써 인(仁)을
행하면, 내가 마음에 얻은 것을 가지고 미루어 나가서 가는 곳마다 인(仁)이 아님이 없을 것이다.』
『『以力服人주:이력복인』者는 非心服也라 力不贍也요 以德服人者는 中心悅而誠服也니 如『七十子之服孔子주:칠십자지복공자』也라 詩云自西自東하며 自南自北이 無思不服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 힘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자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요, 덕(德)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자는 중심(中心)으로 기뻐하여 진실로 복종함이니, 70제자(弟子)가 공자(孔子)에게 심복 함과 같은 것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서쪽에서 동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에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贍은 足也라 詩는 大雅文王有聲之篇이라 王큹之心이 誠僞不同이라 故로 人所以應之者其不同이 亦如此니라』
『○ 鄒氏曰 以力服人者는 有意於服人而人不敢不服하고 以德服人者는 無意於服人而人不能不服하나니 從古以來로
論王큹者多矣로되 未有若此章之深切而著明者也니라』
『 섬(贍)은 족함이다. 시(詩)는 〈대아(大雅) 문왕유성편(文王有聲篇)〉이다. 왕자(王者)와 패자(큹者)의 마음은 진실 되고 거짓됨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는 것도 그 같지 않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 ○ 추씨(鄒氏)가 말하였다. “힘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자는 사람을 복종시킴에 뜻을 두어서 사람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덕(德)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는 자는 사람을 복종시킴에 뜻이 없으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이래로 왕도(王道)와 패도(큹道)를 논한 자가 많되, 이 장(章)과 같이 깊고 간절하면서 드러나 밝은 것은 있지 않다.”』
*맹자 ; 공손추상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孟子曰 仁則榮하고 不仁則辱하나니 今에 惡辱而居不仁이 是猶惡濕而居下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仁)하면 영화롭고, 인(仁)하지 못하면 치욕(恥辱)을 받나니, 지금에 치욕(恥辱)을
싫어하면서도 불인(不仁)에 처함은, 이는 마치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낮은 곳에 처함과 같은 것이다.”』
『好榮, 惡辱은 人之常情이라 然이나 徒惡之而不去其得之之道면 不能免也니라』
『 영화를 좋아하고 치욕을 싫어함은 사람의 떳떳한 정(情)이다. 그러나 다만 이것『[치욕]』을 싫어하기만 하고,
이것을 얻는 방법을 버리지 않는다면 면할 수 없는 것이다.』
『如惡之인댄 莫如貴德而尊士니 賢者在位하며 能者在職하여 國家閒暇어든 及是時하여 明其政刑이면 雖大國이라도
必畏之矣리라』
『 만일 치욕을 싫어할진댄 덕(德)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만 못하니, 현자(賢者)가 지위에 있으며, 재능이 있는 자가 직책에 있어서 국가가 한가하거든 이 때에 미쳐 그 정사와 형벌을 밝힌다면, 비록 강대국이라도 반드시 그를
두려워할 것이다.』
『此는 因其惡辱之情하여 而進之以彊仁之事地라 貴德은 猶尙德也라 士는 則指其人而言之라 賢은 有德者니 使之在位면 則足以正君而善俗이요 能은 有才者니 使之在職이면 則足以修政而立事라 國家閒暇는 可於有爲之時也니 詳味及字하면 則惟日不足之意를 可見矣니라』
『 이것은 치욕을 싫어하는 마음을 인(因)하여 인(仁)을 힘쓰는 일로써 나아가게 한 것이다. 귀덕(貴德)은 덕(德)을 숭상함과 같다. 사(士)란 덕(德)이 있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현(賢)은 덕(德)이 있는 자이니, 그로 하여금 지위에 있게 하면 족히 군주를 바로잡고 풍속을 좋게 할 수 있다. 능(能)은 재주가 있는 자이니, 그로 하여금 직책에 있게 하면 족히 정사를 닦아서 일『[업적]』을 세울 수 있다. 국가가 한가함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때이다. 급자(及字)를 자세히
음미해 보면 날마다 부족하게 여기는 뜻을 볼 수 있다.』
『詩云 큒天之未陰雨하여 徹彼桑土『(두)』하여 綢繆츐戶면 今此下民이 或敢侮予아하여늘 孔子曰 爲此詩者 其知道乎인저 能治其國家면 誰敢侮之리오하시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음우(陰雨)하지 않았을 때에 미쳐 저 뽕나무 뿌리를 거두어다가 창문을 칭칭
감는다면 지금 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시(詩)를 지은 자는 도(道)를 알 것이다. 능히 자기 국가를 다스린다면 누가 감히 업신여기겠는가.’ 하였다.』
『詩는 ª라 綢繆는 纏綿補葺也라 츐戶는 巢之通氣出入處也라 予는 鳥自謂也라 言 我之備患이 詳密如此면 今此在下之人이 或敢有侮予者乎아 周公이 以鳥之爲巢如此로 比君之爲國이 亦當思患而預防之어시늘 孔子讀而贊之하여 以爲知道也라하시니라』
『 시(詩)는 〈빈풍(ª침이다. 철(徹)은 취함이다. 상두(桑土)는 뽕나무 뿌리의 껍질이다. 주무(綢繆)는 칭칭 감아 집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호(츐戶)는 둥지에 공기가 통하고 새가 출입하는 곳이다. 여(予)는 새가 자신을 말한 것이다. ‘내가 화(禍)에 대비하기를 자세히 하고 치밀함이 이와 같다면, 지금 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감히 나를 업신여길 자가 있겠느냐.’라고 말한 것이다. 주공(周公)은 새가 둥지를 만들기를 이와 같이 함을 가지고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도 또한 마땅히 화(禍)를 생각하여 미리 방비하여야 함을 비유하신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 시(詩)를 읽고 칭찬
하여 도(道)를 안다고 말씀하였다.』
『今에 國家閒暇어든 及是時하여 般樂怠敖하나니 是는 自求禍也니라』
『 지금 국가가 한가하거든 이 때에 미쳐 즐기고 태만하며 오만한 짓을 하니, 이것은 스스로 화(禍)를 구하는 짓이다.』
『言其縱欲偸安을 亦惟日不足也라』
『 욕심을 부리고 구차히 편안하기를 또한 날마다 하되 부족하게 여김을 말씀한 것이다.』
『禍福이 無不自己求之者니라』
『 화(禍)와 복(福)이 자기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結上文之意하니라』
『 위 글의 뜻을 맺으신 것이다.』
『詩云 永言配命이 自求多福이라하며 太甲曰 天作孼은 猶可違어니와 自作孼은 不可活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길이 천명(天命)에 배합하기를 생각함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 하였으며 〈태갑(太甲)〉에 이르기를 ‘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살 길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詩는 大雅文王之篇이라 永은 長也라 言은 猶念也라 配는 今也라 命은 天命也니 此는 言福之自己求者라 太甲은
商書篇名이라 孼은 禍也라 違는 避也라 活은 生也니 書作?하니 ?은 猶緩也니 此는 言禍之自己求者라』
『 시(詩)는 〈대아(大雅) 문왕편(文王篇)〉이다. 영(永)은 긺이다. 언(言)은 염(念)과 같다. 배(配)는 합함이다. 명(命)은 천명(天命)이다. 이것은 복(福)을 자기로부터 구함을 말한 것이다. 태갑(太甲)은 〈상서(商書)〉의 편명(篇名)이다.
얼(孼)은 화(禍)이다. 위(違)는 피함이다. 활(活)은 삶이니, 《서경(書經)》에는 환자(?字)로 되어 있으니, 환(?)은 완(緩)『[늦춤]』과 같다. 이것은 화(禍)를 자기로부터 구함을 말한 것이다.』
*맹자 ; 공손추상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孟子曰 尊賢使能하여 俊傑在位면 則天下之士 皆悅而願立於其朝矣리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현자(賢者)를 높이고 재능이 있는 자를 부려서 준걸(俊傑)들이 지위에 있으면 천하의 선비가 모두 기뻐하여 그 조정에서 벼슬하기를 원할 것이다.”』
『俊傑은 才德之異於衆者라』
『 준걸(俊傑)은 재주와 덕(德)이 보통 사람보다 특이한 자이다.』
『市에 廛而不征하고 法而不廛이면 則天下之商이 皆悅而願藏於其市矣리라』
『 시장에 자릿세만 받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며, 법대로 처리하기만 하고 자릿세도 받지 않으면 천하의 장사꾼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시장에 화물을 보관하기를 원할 것이다.』
『廛은 市宅也라 張子曰 或賦其市地之廛而不征其貨하고 或治以市官之法而不賦其廛하니 蓋逐末者多하면 則廛而抑之요 少則不必廛也니라』
『 전(廛)은 시장의 집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혹은 그 시지(市地)의 자리에 세금만 거두고 화물에 대한 세금은 징수하지 않으며, 혹은 시관(市官)의 법으로써 <분쟁을> 다스리기만 하고 자릿세도 받지 않는 것이니, 말업(末業)『[상공업(商工業)]』을
따르는 자가 많으면 자릿세를 받아서 이를 억제하고, 적으면 굳이 자릿세를 받지 않는 것이다.”』
『關에 譏而不武이면 則天下之旅 皆悅而願出於其路矣리라』
『 관문(關門)에 기찰(譏察)하기만 하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면 천하의 여행자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길로 나가기를 원할 것이다.』
『解見前篇하니라』
『 해석이 전편(前篇)『[양혜왕하(梁惠王下)]』에 보인다.』
『耕者를 助而不稅면 則天下之農이 皆悅而願耕於其野矣리라』
『 농사짓는 자들을 <공전(公田)을> 도와서 경작하게만 하고 세금을 내지 않게 하면 천하의 농부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들에서 경작하기를 원할 것이다.』
『但使出力하여 以助耕公田하고 而不稅其私田也라』
『 다만 <농민들로> 하여금 노동력을 내어 공전(公田)을 도와 경작하게만 하고, 사전(私田)에 세금을 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廛에 無夫里之布면 則天下之民이 皆悅而願爲之氓矣리라』
『 전(廛)에 부(夫)와 리(里)에서 내는 베를 없애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周禮에 宅不毛者는 有里布하고 民無職事者는 出夫家之征이라하니 鄭氏謂 宅不種桑麻者를 罰之하여 使出一里二十五家之布하고 民無常業者를 罰之하여 使出一夫百畝之稅와 一家力役之征也라하니라 今戰國時엔 一切取之하여 市宅之民이 已賦其廛하고 又令出此夫里之布하니 非先王之法也라 氓은 民也라』
『 《주례(周禮)》에 “집이 불모인 자는 이포(里布)가 있고, 백성 중에 직사(職事)가 없는 자는 부가(夫家)의 세금을
낸다.”하였는데, 정씨(鄭氏)『[정현(鄭玄)]』가 해석하기를 “집에 뽕나무와 삼을 심지 않는 자를 벌(罰)하여 1리(里)
25가(家)의 베를 내게 하고, 백성 중에 일정한 생업이 없는 자를 벌(罰)하여 1부(夫)에 대한 백묘(百畝)의 세와 1가(家)에 대한 역역(力役)의 세금을 내게 한다.” 하였다. 지금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일체 이것을 취하여, 시택(市宅)에 있는 백성들이 이미 그 자릿세를 내고, 또 이 부(夫)•리(里)의 세금을 내게 하였으니, 선왕(先王)의 법이 아니다.
맹(氓)은 백성이다.』
『信能行此五者면 則隣國之民이 仰之若父母矣리니 率其子弟하여 攻其父母는 自生民以來로 未有能濟者也니 如此則無敵於天下하리니 無敵於天下者는 天吏也니 然而不王者 未之有也니라』
『 진실로 능히 이 다섯 가지를 시행한다면, 이웃나라 백성들이 그를 우러러보기를 부모(父母)처럼 할 것이니, 그 자제(子弟)를 거느리고서 그 부모(父母)를 공격함은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능히 성사(成事)한 자가 있지 못하니, 이와
같으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으면 천리(天吏)이니, 이렇게 하고서도 왕노릇하지
못한 자는 있지 않다.”』
『呂氏曰 奉行天命을 謂之天吏니 廢興存亡을 惟天所命하여 不敢不從이니 若湯武是也라』
『○ 此章은 言能行王政이면 則寇戎爲父子하고 不行王政이면 則赤子爲仇«]니라』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천명(天命)을 받들어 행함을 천리(天吏)라 이르니, 폐하고 흥하며 보존시키고 멸망시킴을 오직 하늘의 명령대로 하여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탕왕(湯王)과 무왕(武王) 같은 분들이 이것이다.”』
『 ○ 이 장(章)은 군주가 능히 왕정(王政)을 행하면 오랑캐와 적이 부자간(父子間)이 되고, 왕정(王政)을 행하지
않으면 적자(赤子)『[인민(人民)]』가 원수(怨讐)가 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공손추상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인심(仁心)]』을 가지고 있다.”』
『天地以生物爲心하니 而所生之物이 因各得夫天地生物之心하여 以爲心이라 所以人皆有不忍人之心也니라』
『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냄으로써 마음을 삼으니, 태어난 물건들이 인하여 각기 천지(天地)의 생물지심(生物之心)을 얻어서 그것으로 마음을 삼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先王이 有不忍人之心하사 斯有不忍人之政矣시니 以不忍人之心으로 行不忍人之政이면 治天下는 可運之掌上이니라』
『 선왕(先王)이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두어,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사『[인정(仁政)]』를 시행하셨으니,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사를 행한다면, 천하를 다스림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言 衆人은 雖有不忍人之心이나 然이나 物欲害之하여 存焉者寡라 故로 不能察識而推之政事之間하고 惟聖人은 全體此心하여 隨感而應이라 故로 其所行이 無非不忍人之政也니라』
『 중인(衆人)들은 비록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물욕(物慾)이 해쳐서 보존한 자가 적으므로 이것을 살피고 알아서 정사의 사이에 미루어 나가지 못하고, 오직 성인(聖人)은 전체가 이 마음이어서 감동함에 따라
응하므로, 그 행하는 바가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사 아님이 없는 것이다.』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는 今人이 乍見孺子將入於井하고 皆有?쾩惻隱之心하나니 非所以內『(納)』 交於孺子之父母也며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며 非惡其聲而然也니라』
『 사람들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지금에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惻隱)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父母)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향당(鄕黨)과 붕우(朋友)들에게 명예를 구해서도 아니며, <잔인하다는> 명성(名聲)을 싫어해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乍는 猶忽也라 ?À9은 警動貌라 惻은 傷之切也요 隱은 痛之深也니 此卽所謂不忍人之心也라 內은 結이요 要는 求요 聲은 名也라 言 乍見之時에 便有此心이 隨見而發이요 非由此三者而然也니라 程子曰 滿腔子是惻隱之心이니라 謝氏曰 人須是識其眞心이니 方乍見孺子入井之時에 其心?쾩이 乃眞心也라 非思而得이요 非勉而中이니 天理之自然也라 內交, 要譽, 惡其聲而然이면 卽人欲之私矣니라』
『 사(乍)는 홀(忽)과 같다. 출척(?쾩)은 놀라 움직이는 모양이다. 측(惻)은 서글퍼하기를 간절히 함이요, 은(隱)은 아파하기를 깊이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이른바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란 것이다. 납(內)은 맺음이다. 요(要)는 구함이다. 성(聲)은 이름이다. 갑자기 그것을 보았을 때에 곧 이 마음이 봄에 따라 나오는 것이요,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창자『[몸]』에 가득한 것이 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사람은 모름지기 진심(眞心)을 알아야 하니,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에 그 마음이 깜짝 놀라는 것이 바로 진심(眞心)이다. 이것은 생각하여 아는 것도 아니며 힘써서 맞는 것도
아니요, 천리(天理)의 자연(自然)함이다. 교분을 맺기 위해서 하고, 명예를 구하기 위해서 하고, 잔인하다는 악명(惡名)을 싫어해서 그렇게 한다면, 이것은 바로 인욕(人慾)의 사(私)인 것이다.”』
『由是觀之컨댄 無惻隱之心이면 非人也며 無羞惡之心이면 非人也며 無辭讓之心이면 非人也며 無是非之心이면 非人也니라』
『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羞는 恥己之不善也요 惡는 憎人之不善也라 辭는 解使去己也요 讓은 推以與人也라 是는 知其善而以爲是也요 非는
知其惡而以爲非也라 人之所以爲心이 不外乎是四者라 故로 因論惻隱而悉數之하여 言 人若無此면 則不得謂之人이라
하시니 所以明其必有也시니라』
『 수(羞)는 자기의 불선(不善)함을 부끄러워함이요, 오(惡)는 남의 불선(不善)함을 증오하는 것이다. 사(辭)는 풀어서 자기에게서 떠나가게 하는 것이요, 양(讓)은 미루어서 남에게 주는 것이다. 시(是)는 그 선(善)함을 알아서 옮게 여김이요, 비(非)는 그 악(惡)함을 알아서 그르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을 삼는 것이 이 네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논함으로 인하여, 이것을 모두 세어서 사람이 만일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라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였으니, 이것으로 사람이 반드시 가지고 있음을 밝히신 것이다.』
『惻隱之心은 仁之端也요 羞惡之心은 義之端也요 辭讓之心은 禮之端也요 是非之心은 知『(智)』之端也니라』
『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단서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단서이다.』
『惻隱, 羞惡, 辭讓, 是非는 情也요 仁, 義, 禮, 知『(智)』은 性也요 心은 統性情者也라 端은 緖也라 因其情之發하여
而性之本然을 可得而見이니 猶有物在中而緖見於外也니라』
『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정(情)이요,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성(性)이요, 심(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합한 것이다. 단(端)은 실마리이다. 정(情)이 발함으로 인하여 성(性)의 본연(本然)함을 볼 수
있으니, 마치 물건이 가운데에 있으면 실마리가 밖에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人之有是四端也는 猶其有四體也니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는 自賊者也요 謂其君不能者는 賊其君者也니라』
『 사람이 이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음은 사체(四體)를 가지고 있음과 같으니, 이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요, 자기 군주가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
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四體는 四肢니 人之所必有者也라 自謂不能者는 物欲蔽之耳니라』
『 사체(四體)는 사지(四肢)이니, 사람이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이르는 것은 물욕(物慾)이 가리웠을 뿐이다.』
『凡有四端於我者를 知皆擴而充之矣면 若火之始然하며 泉之始達이니 苟能充之면 足以保四海요 苟不充之면 不足以事父母니라』
『 무릇 사단(四端)이 나에게 있는 것을 다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만일 능히 이것을 채운다면 족히 사해(四海)를 보호할 수 있고, 만일 채우지 못한다면 부모(父母)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擴은 推廣之意요 充은 滿也라 四端在我하여 隨處發見하니 知皆卽此推廣而充滿其本然之量이면 則其日新又新이 將有不能自已者矣리니 能由此而遂充之면 則四海雖遠이나 亦吾度內라 無難保者요 不能充之면 則雖事之至近이나 而不能矣리라』
『○ 此章所論人之性情과 心之體用이 本然全具而各有條理如此하니 學者於此에 反求默識而擴充之면 則天之所以與我者를 可以無不盡矣리라』
『○ 程子曰 人皆有是心이로되 惟君子爲能擴而充之하나니 不能然者는 皆自棄也라 然이나 其充與不充은 亦在我而已矣니라 又曰 四端에 不言信者는 旣有誠心爲四端이면 則信在其中矣니라 愚按 四端之信은 猶五行之土하여 無定位하고 無成名하고 無專氣로되 而水火金木이 無不得是以生者라 故로 土於四行에 無不在하고 『於四時則寄王焉주:어사시즉기왕언』하니 其理亦猶是也니라』
『 확(擴)은 미루어 넓힌다는 뜻이다. 충(充)은 가득함이다. 사단(四端)이 나에게 있어 곳에 따라 발현되니, 모두 이에 나아가 미루어 넓혀서 그 본연(本然)의 양(量)을 충만할 줄 안다면, 날로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함이 장차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채운다면 사해(四海)가 비록 머나 또한 나의 범위 안이어서 보전하기
어려움이 없을 것이요, 채우지 못한다면 비록 지극히 가까운 것이라 하더라도 능히 하지 못할 것이다.』
『 ○ 이 장(章)에서 논한 바, 사람의 성(性)•정(情)과 마음의 체(體)•용(用)은 본연(本然)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고 각기 조리(條理)가 있음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자가 이에 대하여 돌이켜 찾고 묵묵히 알아서 이것을 확충한다면 하늘이 나에게 주신 것『[본성(本性)]』을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이 마음『[인심(仁心)]』을 가지고 있으되, 오직 군자(君子)만이 넓혀서 채울 수 있으니, 그렇지 못한 자는 모두 자기(自棄)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우고 채우지 못함은 또한 자신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 또 말씀하였다. “사단(四端)에 신(信)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성심(誠心)으로 사단(四端)을 하면 신(信)이 그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 내가 살펴보건대 사단(四端)의 신(信)은 오행(五行)의 토(土)와 같아서 일정한 위치가 없고 이루어진 명칭이 없고
오롯한 기운이 없으되, 수(水)•화(火)•금(金)•목(木)이 이것『[토(土)]』을 필요로 하여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토(土)는 사행(四行)에 있지 않은 데가 없고, 사시(四時)에는 붙어서 왕성하니, 그 이치가 또한 이와 같다.』
*맹자 ; 공손추상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孟子曰 矢人이 豈不仁於函人哉리오마는 矢人은 惟恐不傷人하고 函人은 惟恐傷人하나니 巫匠亦然하니 故로 術不可不愼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인(仁)하지 못하겠는가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상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상할까 두려워하나니, 무당과 관 만드는 목수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술을 <선택함에>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函은 甲也라 惻隱之心을 人皆有之하니 是矢人之心이 本非不如函人之仁也라 巫者는 爲人祈祝하여 利人之生하고
匠者는 作爲棺槨하여 利人之死하나니라』
『 함(函)은 갑옷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것은 화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본래
갑옷 만드는 사람의 인(仁)함만 못한 것이 아니다. 무당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원하여 사람이 사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목수는 관곽(棺槨)을 만들어 사람이 죽는 것을 이롭게 여긴다.』
『孔子曰 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智리오하시니 夫仁은 天之尊爵也며 人之安宅也어늘 莫之禦而不仁하니
是는 不智也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을에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것이 아름다우니, 사람이 자처(自處)할 곳을 가리되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 하셨으니, 인(仁)은 하늘의 높은 벼슬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 그러나 이것을 막는 이가 없는 데도 인(仁)하지 못하니,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里有仁厚之俗者를 猶以爲美하니 人擇所以自處하되 而不於仁이면 安得爲智乎리오 此는 孔子之言也니라 仁義禮智는 皆天所與之良貴로되 而仁者는 天地生物之心으로 得之最先而兼統四者하니 所謂元者善之長也라 故로 曰尊爵이라 在人이면 則爲本心全體之德하여 有天理自然之安이요 無人欲陷溺之危하니 人當常在其中而不可須臾離者也라 故로 曰安宅이라 此는 又孟子釋孔子之意하여 以爲 仁道之大如此어늘 而自不爲之하니 豈非不智之甚乎리오하시니라』
『 ‘마을에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것도 오히려 아름답게 여기나니, 사람들이 자처할 바를 선택하되 인(仁)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 하셨으니, 이것은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인(仁)•의(義)•예(禮)•지(智)는 모두 하늘이 주신 바의 양귀(良貴)인데, 인(仁)은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내는 마음으로서 얻기를 가장 먼저 하였고, 네 가지『[인(仁)•의(義)•예(禮)•지(智)]』를 겸하여 통솔하니, <《주역(周易)》〈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이른바 ‘원(元)이란 선(善)의 으뜸’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존작(尊爵)이라 말한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는 본심(本心)의 전체(全體)의 덕(德)이 되어, 천리자연(天理自然)의 편안함이 있고 인욕(人慾)에 빠지는 위태로움이 없으니, 사람들이 마땅히 항상 그 가운데에 있을 것이요,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안택(安宅)이라 말한 것이다. 이것은 또 맹자(孟子)께서 공자(孔子)의 뜻을 해석하여 이르시기를 “인도(仁道)의 위대함이 이와 같은데도 스스로 하지 않으니, 어찌 부지(不智)의 심함이 아니겠느냐.” 라고 하신 것이다.』
『不仁不智라 無禮無義면 人役也니 人役而恥爲役은 由『(猶)』弓人而恥爲弓하며 矢人而恥爲矢也니라』
『 인(仁)하지 못하여서 지혜롭지 못하다. 그리하여 예(禮)가 없고 의(義)가 없으면 사람에게 사역을 당하니, 사람에게 사역되어 사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마치 활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함과 같은 것이다.』
『以不仁故로 不智요 不智故로 不知禮義之所在니라』
『 불인(不仁)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예(禮)•의(義)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如恥之인댄 莫如爲仁이니라』
『 만일 이것을 부끄러워할진댄 인(仁)을 행하는 것만 못하다.』
『此亦因人愧恥之心而引之하여 使志於仁也니라 不言智禮義者는 仁該全體하니 能爲仁이면 則三者在其中矣니라』
『 이 또한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인하여 유도하여 인(仁)에 뜻하게 하신 것이다. 지(智)•예(禮)•의(義)를
말하지 않은 것은, 인(仁)은 전체를 포함하니, 능히 인(仁)을 행한다면 세 가지는 그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仁者는 如射하니 射者는 正己而後發하여 發而不中이라도 不怨勝己者요 反求諸己而已矣니라』
『 인(仁)한 자는 활쏘기 하는 것과 같으니, 활을 쏘는 자는 자신을 바로잡은 뒤에야 발사하여,
발사한 것이 맞지 않더라도 자신을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신에게서 찾을 뿐이다.”』
『爲仁由己니 而由人乎哉아』
『 인(仁)을 행함은 자신에게 달려있으니, 남에게 달려있는 것이겠는가.』
*맹자 ; 공손추상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孟子曰 子路는 人告之以有過則喜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과실이 있음을 말해주면 기뻐하였다.”』
『喜其得聞而改之하니 其勇於自修如此하니라 周子曰 仲由는 喜聞過라 令名이 無窮焉이러니 今人은 有過에 不喜人規하여 如諱疾而忌醫하여 寧滅其身而無悟也하니 噫라 程子曰子路는 人告之以有過則喜하니 亦可爲百世之師矣로다』
『 얻어 들어서 고침을 기뻐한 것이니, 자신을 수행(修行)함에 용감함이 이와 같았다.』
『 주자(周子)가 말씀하였다. “중유(仲由)는 과실을 듣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훌륭한 명예가 무궁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과실이 있으면 남이 바로잡아줌을 기뻐하지 않아서 마치 병을 숨기고 의원을 꺼려, 차라리 그 몸을 멸망시키면서도 깨달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아! 슬프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과실이 있음을 말해주면 기뻐하였으니,
또한 백세(百世)의 스승이라 할 만하다.”』
『禹는 聞善言則拜러시다』
『 우왕(禹王)은 선언(善言)을 들으면 절하셨다.』
『書曰 禹拜昌言이라하니 蓋不待有過하고 而能屈己以受天下之善也니라』
『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에 이르기를 “우왕(禹王)이 창언(昌言)『[선언(善言)]』에 절하였다.” 하였으니, 과실이 있음을 기다리지 않고 능히 자신을 굽혀서 천하의 선언(善言)을 받아들인 것이다.』
『大舜은 有大焉하시니 善與人同하사 舍己從人하시며 樂取於人하여 以爲善이러시다』
『 대순(大舜)은 이보다도 더 위대함이 있었으니, 선(善)을 남과 함께 하사,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시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善)을 함을 좋아하셨다.』
『言舜之所爲는 又有大於禹與子路者라 善與人同은 公天下之善而不爲私也라 己未善이면 則無所係吝而舍以從人하고
人有善이면 則不待勉强而取之於己하시니 此善與人同之目也니라』
『 순(舜)임금의 행함은 우왕(禹王)과 자로(子路)보다 더 위대함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선(善)을 남과 함께 하였다는 것은, 천하(天下)의 선(善)을 공적(公的)으로 하여 사사롭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선(善)하지 못하면 얽매이고
인색히 하는 바가 없이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에게 선(善)이 있으면 억지로 힘씀을 기다림이 없이 자신에게 취하였으니, 이것은 선(善)을 남과 함께 하신 조목이다.』
『自耕稼陶漁로 以至爲帝히 無非取於人者러시다』
『 밭 갈고 곡식을 심으며 질그릇 굽고 고기 잡을 때로부터 황제가 됨에 이르기까지 남에게서 취한 것 아님이 없으셨다.』
『舜之側微에 耕于歷山하시고 陶于河濱하시고 漁于雷澤하시니라』
『 순(舜)임금이 미천하실 때에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굽고, 뇌택(雷澤)에서 고기를
잡으셨다.』
『取諸人以爲善이 是與人爲善者也라 故로 君子는 莫大乎與人爲善이니라』
『 남에게서 취하여 선(善)을 행함은, 이것은 남이 선(善)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남이
선(善)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훌륭함이 없는 것이다.”』
『與는 猶許也며 助也라 取彼之善而爲之於我면 則彼益勸於爲善矣리니 是는 我助其爲善也라 能使天下之人으로 皆勸於爲善이면 君子之善이 孰大於此리오』
『○ 此章은 言聖賢樂善之誠이 初無彼此之間이라 故로 其在人者를 有以裕於己요 在己者를 有以及於人이니라』
『 여(與)는 허(許)『[허여]』와 같으며, 조(助)『[돕다]』와 같다. 저 사람의 선(善)을 취하여 내 몸에 행한다면, 저
사람은 더욱 선(善)을 함을 권면할 것이니, 이것은 내가 선행(善行)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선행(善行)을 함에 권면하게 한다면 군자(君子)의 선(善)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 ○ 이 장(章)은 성현(聖賢)이 선(善)을 좋아하는 정성이 애당초 피차(彼此)의 간격이 없다. 그러므로 남에게 있는
것을 자신에게 넉넉히 할 수 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미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 ; 공손추상 ; 제9장
▣ 제9장(第九章)
『孟子曰 伯夷는 非其君不事하며 非其友不友하며 不立於惡人之朝하며 不與惡人言하더니 立於惡人之朝와 與惡人言을 如以朝衣朝冠으로 坐於塗炭하며 推惡惡之心하여 思與鄕人立에 其冠不正이어든 望望然去之하여 若將퐠焉하니 是故로 諸侯雖有善其辭命而至者라도 不受也하니 不受也者는 是亦不屑就已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백이(伯夷)는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벗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벗하지 않으며,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지 않으며,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씀하지 않더니,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며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마치 조의(朝衣)『[조복(朝服)]』와 조관(朝冠)을 입고 진흙과 숯구덩이에 앉은 듯이 여겼으며,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생각하기를 향인(鄕人)과 더불어 서있을 때에 그 관(冠)이 바르지 못하면 망망연(望望然)히 떠나가 마치 장차 자신을 더럽힐 듯이 여겼다. 이 때문에 제후(諸侯)들이 비록 그 사명(辭命)을 잘하여 찾아오는 자가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 또한 나아감을 좋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塗는 泥也라 鄕人은 鄕里之常人也라 望望은 去而不顧之貌라 퐠는 汚也라 屑은 趙氏曰 潔也라하고 說文曰 動作切切也라하니 不屑就는 言不以就之爲潔而切切於是也라 已는 語助辭라』
『 도(塗)는 진흙이다. 향인(鄕人)은 향리(鄕里)의 상인(常人)이다. 망망(望望)은 떠나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모양이다. 매(퐠)는 더럽힘이다. 설(屑)은 조씨(趙氏)는 ‘깨끗함’이라 하였고, 《설문(說文)》에는 ‘동작을 절절히『[급급함]』 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불설취(不屑就)란 나아감을 깨끗하게 여겨 이에 급급해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已)는 어조사이다.』
『柳下惠는 不羞汚君하며 不卑小官하여 進不隱賢하여 必以其道하며 遺佚而不怨하며 촰窮而不憫하더니 故로 曰 爾爲爾요 我爲我니 雖袒À\裸?於我側이들 爾焉能퐠我哉리오하니 故로 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하여 援而止之而止하니 援而止之而止者는 是亦不屑去已니라』
『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군주를 섬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낮게 여기지 않아, 나감에 어짊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리를 다하였으며, 벼슬길에서 누락되어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액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네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몸을 드러낸들 네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유유(由由)『[유유(悠悠)]』하게 그와 더불어 함께 있으면서도 스스로 올바름을 잃지 않아, 떠나려고 하다가도 잡아당겨 멈추게 하면 멈추었으니, 잡아당겨 멈추게 하면 멈춘 것은 이 또한 떠나감을 좋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柳下惠는 魯大夫展禽이니 居柳下而諡惠也라 不隱賢은 不枉道也라 遺佚은 放棄也라 촰은 困也라 憫은 憂也라 爾爲爾로 至焉能퐠我哉는 惠之言也라 袒À\은 露臂也요 裸?은 露身也라 由由는 自得之貌라 偕는 쯂處也라 不自失은 不失其正也라 援而止之而止者는 言欲去而可留也라』
『 유하혜(柳下惠)는 노(魯)나라 대부(大夫) 전금(展禽)이니, 유하(柳下)에 거주하였고 시호를 혜(惠)라 하였다. 어짊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은 도(道)를 굽히지 않은 것이다. 유일(遺佚)은 추방하여 버리는 것이다. 액(촰)은 곤함이다. 민(憫)은 근심함이다. 이위이(爾爲爾)로부터 언능매아재(焉能퐠我哉)까지는 유하혜(柳下惠)의 말이다. 단석(袒À\)은 팔을 노출시킴이요, 나정(裸?)은 몸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유유(由由)는 자득한 모양이다. 해(偕)는 함께 거처함이다. 부자실(不自失)은 올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잡아당겨 멈추게 하면 멈추었다는 것은 가고자 하다가도 만류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孟子曰 伯夷는 隘하고 柳下惠는 不恭하니 隘與不恭은 君子不由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백이(伯夷)는 좁고 유하혜(柳下惠)는 불공(不恭)하니, 좁음과 불공(不恭)함은 군자(君子)가 따르지 않는다.”』
『隘는 狹窄也요 不恭은 簡慢也라 夷惠之行이 固皆造乎至極之地나 然이나 旣有所偏이면 則不能無弊라 故로 不可由也니라』
『 애(隘)는 협착(狹窄)한 것이요, 불공(不恭)은 간략하고 거만한 것이다.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의 행실은 진실로 모두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이미 편벽된 바가 있으면 폐단이 없지 못하다. 그러므로 따를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