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공손추장구하(公孫丑章句下)
▣ 공손추장구하(公孫丑章句下)
『凡十四章이라 自第二章以下는 記孟子出處行實이 爲詳하니라』
『 모두 14장(章)이다. 제 2장(章)으로부터 이하는 맹자(孟子)의 출처(出處)에 대한 행실을 기록함이 상세하다.』
『○ 맹자 ; 공손추하 ; 제1장+1』
『○ 맹자 ; 공손추하 ; 제2장+2』
『○ 맹자 ; 공손추하 ; 제3장+3』
『○ 맹자 ; 공손추하 ; 제4장+4』
『○ 맹자 ; 공손추하 ; 제5장+5』
『○ 맹자 ; 공손추하 ; 제6장+6』
『○ 맹자 ; 공손추하 ; 제7장+7』
『○ 맹자 ; 공손추하 ; 제8장+8』
『○ 맹자 ; 공손추하 ; 제9장+9』
『○ 맹자 ; 공손추하 ; 제10장+10』
『○ 맹자 ; 공손추하 ; 제11장+11』
『○ 맹자 ; 공손추하 ; 제12장+12』
『○ 맹자 ; 공손추하 ; 제13장+13』
『○ 맹자 ; 공손추하 ; 제14장+14』
*맹자 ; 공손추하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孟子曰天時不如地利요 地利不如人和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
『天時는 謂『時日支干孤虛王相之屬주:시일지간고허왕상지속』也요 地利는 險阻城池之固也요 人和는 得民心之和也라』
『 천시(天時)란 시일(時日)의 지간(支干)『[간지(干支)]』에 대한 고허(孤虛)와 왕상(王相) 같은 등속을 말한다.
지리(地利)는 지형의 험(險)함과 성지(城池)의 견고함이다. 인화(人和)는 인심(人心)의 화(和)함을 얻음이다.』
『三里之城과 七里之郭을 環而攻之而不勝하나니 夫環而攻之에 必有得天時者矣언마는 然而不勝者는 是天時不如地利也니라』
『 3리(里) 되는 성(城)과 7리(里) 되는 곽(郭)『[외성(外城)]』을 포위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포위 공격하면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을 때가 있으련마는 그런데도 이기지 못함은, 이는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한 것이다.』
『三里, 七里는 城郭之小者라 郭은 外城이라 環은 圍也라 言 四面攻圍하여 曠日持久에 必有値天時之善者라』
『 3리(里)와 7리(里)는 성곽(城郭)의 작은 것이다. 곽(郭)은 외성(外城)이다. 환(環)은 포위하는 것이다. 사면으로
포위 공격하여 여러 날 동안 지구전(持久戰)을 하면, 반드시 천시(天時)의 좋음을 만날 때가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城非不高也며 池非不深也며 兵革이 非不堅利也며 米粟이 非不多也로되 委而去之하나니 是利不如人和也니라』
『 성(城)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며, 못이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고 예리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것을 버리고 떠나가니, 이는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한 것이다.』
『革은 甲也라 粟은 穀也라 委는 棄也라 言 不得民心이면 民不爲守也라』
『 혁(革)은 갑옷이다. 속(粟)은 곡식이다. 위(委)는 버림이다. 민심(民心)을 얻지 못하면 백성들이 위하여 지켜주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故로 曰 域民하되 不以封疆之界하며 固國하되 不以山谿之險하며 威天下하되 不以兵革之利니 得道者는 多助하고
失道者는 寡助라 寡助之至에는 親戚畔之하고 多助之至에는 天下順之니라』
『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백성을 한계 짓되 국경의 경계로써 하지 않으며, 국가를 견고히 하되 산(山)과 강(江)의 험고(險固)함으로써 하지 않으며, 천하(天下)를 두렵게 하되 병혁(兵革)의 예리함으로써 하지 않는다.’ 한 것이다.
도(道)를 얻은 자는 도와주는 이가 많고, 도(道)를 잃은 자는 도와주는 이가 적다. 도와주는 이가 적음의 지극함에는
친척이 배반하고, 도와주는 이가 많음의 지극함에는 천하가 순종하는 것이다.』
『域은 界限也라』
『 역(域)은 한계이다.』
『以天下之所順으로 攻親戚之所畔이라 故로 君子有不戰이언정 戰必勝矣니라』
『 천하가 순종하는 바로써 친척이 배반하는 바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싸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다.”』
『言 不戰則已어니와 戰則必勝이니라』
『○ 尹氏曰 言 得天下者는 凡鎰民心而已니라』
『 싸우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함을 말씀한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천하를 얻는 자는 모두 민심(民心)을 얻음으로써 일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2장
▣ 제2장(第二章)
『孟子將朝王이러시니 王使人來曰 寡人이 『如就見者也주:여취견자야』러니 有寒疾이라 不可以風일새 朝將視朝하리니 不識케이다 可使寡人得見乎잇가 對曰 不幸而有疾이라 不能造朝로소이다.』
『 맹자(孟子)께서 장차 왕(王)에게 조회하려고 하셨는데, 왕(王)이 사람을 시켜 보내와 말씀하기를 “과인(寡人)이 나아가 뵈려고 하였는데, 한질(寒疾)『[감기]』이 있어서 바람을 쐴 수 없습니다. 아침에 장차 조회를 볼 것이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과인(寡人)으로 하여금 장차 뵈올 수 있게 하올런지요?”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불행히도 병이 있어서 조회에 나갈 수 없습니다.”』
『王은 齊王也라 孟子本將朝王이러시니 王不知하고 而託疾以召孟子라 故로 孟子亦以疾辭也하시니라』
『 왕(王)은 제왕(齊王)이다. 맹자(孟子)가 본래 장차 왕(王)에게 조회하려고 하셨는데, 왕(王)이 이것을 모르고 병(病)을 칭탁하여 맹자(孟子)를 불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 또한 병(病)으로써 사양하신 것이다.』
『明日에 出弔於東郭氏러시니 公孫丑曰 昔者에 辭以病하시고 今日弔或者不可乎이저 曰 昔者疾이 今日愈어니 如之何不弔리오』
『 다음 날 밖으로 나가 동곽씨(東郭氏)에게 조문하려 하시니,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어제 병(病)으로 사양하시고 오늘 조문함이 어쩌면 불가(不可)할 듯합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어제 병(病)이 오늘 나았으니, 어찌
조문하지 않겠는가?”』
『東郭氏는 齊大夫家也라 昔者는 昨日也라 或者는 疑辭라 辭疾而出弔는 與『孔子不見孺悲주:공자불견유비』하시고
取瑟而歌로 同意하니라』
『 동곽씨(東郭氏)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의 집안이다. 석(昔)은 어제이다. 혹(或)은 의문사이다. 병(病)으로 사양
하고 나아가 조문하신 것은, 공자(孔子)께서 유비(孺悲)를 만나보지 않으시고, 비파를 취하여 노래한 것과 같은 뜻이다.』
『王이 使人問疾하시고 醫來어늘 孟仲子對曰 昔者에 有王命이어시늘 有采薪之憂라 不能造朝러시니 今病小愈어시늘
趨造於朝하더시니 我는 不識케라 能至否乎아하고 使數人으로 要於路曰 請必無歸而造於朝하소서』
『 왕(王)이 사람을 시켜 병(病)을 물으시고 의원이 오자, 맹중자(孟仲子)가 대답하기를 “어제에 왕명(王命)이 계셨으나 채신(采薪)의 우환(憂患)이 있어 조회에 나가지 못하시더니, 오늘 병(病)이 조금 나으셨으므로 조정에 달려 나가셨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능히 도착하셨는지요?” 하고는, 몇 사람으로 하여금 길목에서 지키게 하다가 “반드시 돌아오지 말고 조정에 나아가소서” 하였다.』
『孟仲子는 趙氏以爲孟子之從昆弟로 學於孟子者也라하니라 采薪之憂는 言病不能采薪이니 謙辭也라 仲子權辭以對하고 又使人要孟子하여 令勿歸而造朝하여 以實己言하니라』
『 맹중자(孟仲子)는 조씨(趙氏)가 이르기를 “맹자(孟子)의 종형제(從兄弟)로서 맹자(孟子)에게 공부한 자이다” 하였다. 채신(采薪)의 우환(憂患)이란 병들어 나무를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겸사(謙辭)이다.
중자(仲子)는 권사(權辭)『[둘러대는 말]』로써 대답하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길목에서 지키다가 맹자(孟子)를 만나
뵙게 하여, 돌아오시지 말고 조정에 나아가시어 자신의 말을 실증하게 한 것이다.』
『不得已而之景丑氏하여 宿焉이러시니 景子曰 內則父子요 外則君臣이 人之大倫也니 父子는 主恩하고 君臣은 主敬하니 丑見王之敬子也요 未見所以敬王也니이다 曰 惡『(오)』라 是何言也오 齊人이 無以仁義與王言者는 豈以仁義爲不美也리오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면 則不敬이 莫大乎是하니 我는 非堯舜之道어든 不敢以陳於王前하노니 故로 齊人이
莫如我敬王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부득이 경추씨(景丑氏)에게 가서 유숙(留宿)하셨다.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는 부자간(父子間)이요 밖에는 군신간(君臣間)이 인간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간(父子間)에는 은혜를 주장하고 군신간(君臣間)에는
경(敬)을 주장하니, 저는 왕(王)께서 선생을 공경함은 보았고, 선생께서 왕(王)을 공경하시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 이 웬 말인가? 제(齊)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가지고 왕(王)과 더불어 말하는
이가 없는 것은 어찌 인의(仁義)를 불미(不美)하다고 여겨서이겠는가? 그 마음에 ‘이 어찌 족히 더불어 인의(仁義)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서일 것이니, 그렇다면 이것은 불경(不敬)함이 이보다 더 큼이 없는 것이다. 나는 요순(堯舜)의 도(道)가 아니면 감히 왕(王)의 앞에서 말씀드리지 못하노니, 그러므로 제(齊)나라 사람들은 내가 왕(王)을 공경하는 것처럼 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景丑氏는 齊大夫家也라 景子는 景丑也라 惡는 歎辭也라 景丑所言은 敬之小者也요 孟子所言은 敬之大者也라』
『 경추씨(景丑氏)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의 집안이다. 경자(景子)는 경추(景丑)이다. 오(惡)는 탄식하는 말이다.
경추(景丑)가 말한 것은 경(敬)의 작은 것이요, 맹자(孟子)가 말씀한 것은 경(敬)의 큰 것이다.』
『景子曰 否라 非此之謂也라 禮曰 父召어시든 無諾하며 君命召어시든 不俟駕라하니 固將朝也라가 聞王命而遂不果
하시니 宜與夫禮로 若不相似然하이다』
『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이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禮)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부르시면 느리게 대답하지 않으며, 군주(君主)가 명(命)으로 부르시면 말을 멍에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진실로 장차 조회를 하시려다가 왕명(王命)을 듣고서 마침내 결행하지 않으셨으니, 예(禮)와 서로 같지 않은 듯합니다.”』
『『禮曰주:예왈』 父命呼어시든 唯而不諾이라하고 又曰 君命召어시든 在官不俟즞하며 在外不俟車라하니라 言 孟子本欲朝王이라가 而聞命中止하시니 似與此禮之意로 不同也니라』
『 예(禮)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명(命)하여 부르시거든 빨리 대답하고 느리게 대답하지 않는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군주(君主)가 명(命)하여 부르시거든 관청에 있을 때에는 신 신기를 기다리지 않고, 밖에 있을 때에는 수레에 멍에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본래 왕(王)에게 조회하려고 하시다가 왕명을 듣고 중지하였으니,
이 예(禮)의 뜻과 같지 않은 듯하다고 말한 것이다.』
『曰 豈謂是與리오 曾子曰 晉楚之富는 不可及也나 彼以其富어든 我以吾仁이요 彼以其爵이어든 我以吾義니 吾何慊乎哉리오하시니 夫豈不義를 而曾子言之시리오 是或一道也니라 天下에 有達尊이 三이니 爵一, 齒一, 德一이니 朝廷엔 莫如爵이요 鄕黨엔 莫如齒요 輔世長民엔 莫如德이니 惡得有其一하여 以慢其二哉리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겠는가?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晉)나라와 초(楚)
나라의 부(富)함은 내 따를 수 없거니와, 저들이 그 부(富)를 가지고 나를 대하면 나는 내 인(仁)으로써 대하며, 저들이 그 관작(官爵)을 가지고 대하면 나는 내 의(義)를 가지고 대할 것이니, 내 어찌 부족할 것이 있겠는가?’ 하셨으니,
이 어찌 불의(不義)인 것을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셨겠는가? 이것도 혹 한 방법일 것이다. 천하에 달존(達尊)이 세 가지가 있으니, 관작(官爵)이 하나요, 연치(年齒)가 하나요, 덕(德)이 하나이다. 조정에는 관작(官爵)만한 것이 없고,
향당(鄕黨)에는 연치(年齒)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자라게 하는 데는 덕(德)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한
가지를 소유하고서 둘을 가진 사람을 만홀(慢忽)히 할 수 있겠는가?』
『慊은 恨也며 少也라 或作줎하니 字書에 以爲口銜物也라하니 然則慊은 亦但爲心有所銜之義니 其爲快爲足, 爲恨爲少는 則因其事而所銜有不同耳라 孟子言 我之意는 非如景子之所言者라하시고 因引曾子之言而云하시되 夫此豈是不義를 而曾子肯以爲言이시리오 是或別有一種道理也라하시니라 達은 通也라 蓋通天下之所尊이 有此三者하니 曾子之說은 蓋以德言之也라 今齊王은 但有爵耳니 安得以此慢於齒德乎아』
『 겸(慊)은 한(恨)함이며, 부족하게 여김이다. 혹은 겸(줎)으로 쓰니, 자서(字書)『[자전(字典)]』에 ‘입에 물건을
머금은 것이다’ 하였다. 그렇다면 겸(慊)도 또한 단지 마음에 머금은 바의 뜻이니, 쾌(快)함도 되고 만족함도 되며,
한(恨)함도 되고 부족하게 여김도 되는 것은 그 일에 따라 머금은 바가 같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의 뜻은 경자(景子)가 말한 바와 같지 않다.” 하시고는, 이어 증자(曾子)의 말씀을 인용하고 말씀하시기를, “이 어찌 불의(不義)인 것을 증자(曾子)께서 즐겨 말씀하셨겠는가? 이 혹 별도로 일종(一種)의 도리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달(達)은 통(通)함이다. 온 천하에 공통(共通)으로 높이는 것이 이 세 가지가 있으니, 증자(曾子)의 말씀은 덕(德)을 가지고 말씀한 것이다. 지금 제왕(齊王)은 단지 관작(官爵)이 있을 뿐이니, 어찌 이것을 가지고 연치(年齒)와 덕(德)을 가진 이에게 만홀(慢忽)히 할 수 있겠는가?』
『故로 將大有爲之君은 必有所不召之臣하여 欲有謀焉이면 則就之하나니 其尊德樂道가 不如是면 不足與有爲也니라』
『 그러므로 장차 크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군주는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었다.
그리하여 모의(謀議)『[상의(相議)]』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찾아갔으니, 덕(德)을 높이고 도(道)를 즐거워함이
이와 같지 않으면,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大有爲之君은 大有作爲非常之君也라 程子曰 古之人이 所以必待人君致敬盡禮而後에 往者는 非欲自爲尊大也요
爲是故耳니라』
『 대유위지군(大有爲之君)이란 크게 작위(作爲)함이 있는 비상(非常)한 군주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옛 사람이 반드시 인군(人君)이 경(敬)을 지극히 하고 예(禮)를 다하기를 기다린 뒤에
간 까닭은 스스로 높이고 위대하고자 해서가 아니요, 이 때문이었다.”』
『故로 湯之於伊尹에 學焉而後臣之라 故로 不勞而王하시고 桓公之於管仲에 學焉而後臣之라 故로 不勞而큹하니라』
『 그러므로 탕왕(湯王)은 이윤(伊尹)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 왕노릇을 하셨고,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 패자(큹者)가 된 것이다.』
『先從受學은 師之也요 後以爲臣은 任之也라』
『 먼저 따라서 수학(受學)함은 스승으로 삼은 것이요, 뒤에 신하로 삼음은 임무를 맡긴 것이다.』
『今天下地醜德齊하여 莫能相尙은 無他라 好臣其所敎而不好臣其所受敎니라』
『 지금 천하가 토지『[국토]』가 비슷하고 덕(德)『[정치(政治) 상황]』도 비슷해서 서로 뛰어나지 못함은 다름이
아니다. 자기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醜는 類也라 尙은 過也라 所敎는 謂聽從於己하며 可役使者也요 所受敎는 謂己之所從學者也라』
『 추(醜)는 같음이다. 상(尙)은 뛰어남이다. 소교(所敎)란 자기 말을 듣고 따라서 사역(使役)시킬 수 있는 사람을
이르고, 소수교(所受敎)란 자기가 따라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이른다.』
『湯之於伊伊과 桓公之於管仲에 則不敢召하니 管仲도 且猶不可召하니 而況不爲管仲者乎아』
『 탕왕(湯王)이 이윤(伊尹)에 대해서와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 대해서 감히 부르지 못하였다.
관중(管仲)도 오히려 부를 수 없었으니, 하물며 관중(管仲)을 하지 않는 <나에> 있어서랴!”』
『不爲管仲은 孟子自謂也라 范氏曰 孟子之於齊에 處賓師之位하여 非當仕有官職者라 故로 其言如此하시니라』
『○ 此章은 見賓師는 不以趨走承順爲恭하고 而以責難陳善爲敬하며 人君은 不以崇高富貴爲重하고 而以貴德尊士爲賢이면 則上下交而德業成矣로다』
『 관중(管仲)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맹자(孟子)가 자신을 이른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 계실 때에 빈사(賓師)의 지위에 처하여, 벼슬을 담당해서 관직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이와 같으셨다.”』
『 ○ 이 장(章)은 빈사(賓師)는 급히 달려가서 군주의 명령을 이어 받듦으로써 공손함을 삼지 아니하고, 어려운 것으로 책(責)하고 선(善)한 말씀을 개진(開陳)함으로써 경(敬)을 삼으며, 인군(人君)은 숭고하고 부귀함으로써 중(重)함을 여기지 아니하고, 덕(德)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임으로써 어짊을 삼는다면, 상하(上下)가 사귀어져서 덕업(德業)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맹자 ; 공손추하 ; 제3장
▣ 제3장(第三章)
『陳臻이 問曰 前日於齊에 王이 ¤,兼金一百而不受하시고 於宋에 ¤,七十鎰而受하시고 於薛에 ¤,五十鎰而受하시니
前日之不受是면 則今日之受非也요 今日之受是면 則前日之不受非也니 夫子必居一於此矣시리이다』
『 진진(陳臻)이 물었다. “전일(前日)에 제(齊)나라에서 왕(王)이 겸금(兼金) 일백일(一百鎰)을 주시자 받지 않으셨고, 송(宋)나라에서는 칠십일(七十鎰)을 주시자 받으셨고, 설(薛)나라에서는 오십일(五十鎰)을 주시자 받으셨으니, 전일
(前日)에 받지 않은 것이 옳다면 오늘날 받은 것이 잘못일 것이요, 오늘날 받은 것이 옳다면 전일(前日)에 받지 않은
것이 잘못일 것이니, 부자(夫子)께서는 반드시 이 중 하나에 처(處)『[해당]』하실 것입니다.”』
『陳臻은 孟子弟子라 兼金은 好金也니 其價兼倍於常者라 一百은 百鎰也라』
『 진진(陳臻)은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다. 겸금(兼金)은 좋은 금(金)이니, 그 값이 보통 것보다 겸배(兼倍)
『[갑절]』가 되는 것이다. 일백(一百)은 일백일(一百鎰)이다.』
『孟子曰 皆是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다 옳다.”』
『皆適於義也라』
『 모두 의(義)에 맞는 것이다.』
『當在宋也하여는 予將有遠行이러니 行者는 必以쳵이라 辭曰¤,쳵이어니 予何爲不受리오』
『 송(宋)나라에 있을 때에는 내 장차 원행(遠行)이 있게 되었는데, 원행(遠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노자를 주는
것이다. 말하기를 ‘노자를 준다.’ 하였으니, 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쳵은 送行者之禮也라』
『 신(쳵)은 여행자를 전송하는 예(禮)이다.』
『當在薛也하여는 予有戒心이러니 辭曰 聞戒故로 爲兵¤,之어니 予何爲不受리오』
『 설(薛)나라에 있을 때에는 내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말하기를 ‘<선생님이> 경계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병(兵)을 위하여 준다.’ 하였으니, 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時人이 有欲害孟子者어늘 孟子設兵以戒備之러시니 薛君이 以金¤,孟子하여 爲兵備하고 辭曰 聞子之有戒心也라하니라』
『 당시(當時) 사람 중에 맹자(孟子)를 해치고자 하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병(兵)을 설치하여 경계하고 대비하였는데, 설(薛)나라 군주가 금(金)을 맹자(孟子)에게 주어 병비(兵備)를 하게 하고,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若於齊則未有處也하니 無處而¤,之면 是貨之也니 焉有君子而可以貨取乎리오』
『 제(齊)나라에 있어서는 해당됨이 있지 않았다. 해당됨이 없이 준다면 이것은 재물로 매수하는 것이니,
어찌 군자(君子)로서 재물에 농락(籠絡)될 자가 있겠는가?”』
『無遠行戒心之事하니 是未有所處也라 取는 猶致也라』
『○ 尹氏曰 言君子之辭受取予를 唯當於理而已니라』
『 원행(遠行)하거나 경계하는 마음을 둔 일이 없으니, 이것은 해당되는 바가 있지 않은 것이다.
취(取)는 치(致)『[농락을 담함]』와 같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사양하고 받음과 취하고 줌을 오직 의리(義理)에 마땅하게 할뿐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孟子之平陸하사 謂其大夫曰 子之持戟之士가 一日而三失伍면 則去之아 否乎아 曰 不待三이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평륙(平陸)에 가서 그 대부(大夫)『[읍재(邑宰)]』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창을 잡은 전사(戰士)가 하루에 세 번 대오(隊伍)를 이탈한다면 버리겠는가? 그대로 두겠는가?” 하시자, “세 번을 기다리지 않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平陸은 齊『下邑주:하읍』라 大夫는 邑宰也라 戟은 有枝兵也라 士는 戰士也라 伍는 行列也라 去之는 殺之也라』
『 평륙(平陸)은 제(齊)나라의 하읍(下邑)이다. 대부(大夫)는 읍재(邑宰)이다. 극(戟)은 가지가 있는 병기(兵器)이다.
사(士)는 전사(戰士)이다. 오(伍)는 항렬(行列)이다. 거지(去之)란 그를 죽이는 것이다.』
『然則子之失伍也亦多矣로다 凶年饑歲에 子之民이 老羸는 轉於溝壑하고 壯者는 散而之四方者가 幾千人矣오 曰 此非距心之所得爲也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렇다면 그대가 대오(隊伍)를 이탈함이 또한 많다. 흉년(凶年)에 그대의 백성 중에
노약자들은 구렁에 전전(轉輾)하고, 장성한 자들은 흩어져 사방으로 가는 자가 몇천 명이나 되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子之失俉는 言其失職이 猶士之失伍也라 距心은 大夫名이라 對言『此乃王之失政使然주:차내왕지실정사연』이니
非我所得專爲也라하니라』
『 그대가 대오(隊伍)를 이탈했다는 것은 그 직책(職責)을 잃음이 전사(戰士)가 대오(隊伍)를 이탈함과 같음을 말씀한 것이다. 거심(距心)은 대부(大夫)의 이름이다. 그는 대답하기를 “이것은 바로 왕(王)의 실정(失政)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한 것이다.』
『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면 則必爲之求牧與芻矣리니 求牧與芻而不得이면 則反諸其人乎아 抑亦立而視其死與아 曰 此則距心之罪也로소이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지금에 남의 소와 양을 받아다가 그를 위하여 기르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를 위하여 목장과 꼴을 구할 것이니,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그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겠는가? 아니면 또한 서서 그 죽어 가는 것을 보아야 하겠는가?” 그가 말하기를 “이는 저의 잘못입니다.” 하였다.』
『牧之는 養之也라 牧은 牧地也요 芻는 草也라 孟子言 若不得自專인댄 何不致其事而去오 하시니라』
『 목지(牧之)는 그것『[우양(牛羊)]』을 기르는 것이다. 목(牧)은 목지(牧地)이고, 추(芻)는 풀이다. 맹자(孟子)께서 “만일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어찌하여 그 일을 내놓고 떠나가지 않느냐?”고 하신 것이다.』
『他日에 見於王曰 王之爲都者를 臣知五人焉이로니 知其罪者는 惟孔距心이러이다하시고 爲王誦之하신대 王曰 此則寡人之罪也로소이다』
『 타일(他日)에 왕(王)을 뵙고 “왕(王)의 도읍을 다스리는 자를 신(臣)이 다섯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죄(罪)를 알고
있는 자는 오직 공거심(孔距心) 뿐입니다.” 하시고 왕(王)을 위하여 그 말씀을 외우시자, 왕(王)이 “이것은 과인(寡人)의 죄(罪)『[책임]』입니다.” 하였다.』
『爲都는 治邑也라 邑有先君之廟曰都라 孔은 大夫姓也라 爲王誦其語는 『欲以風曉王也주:욕이풍효왕야』라』
『○ 陳氏曰 孟子一言而齊之君臣이 擧知其罪하니 固足以興邦矣로되 然而齊卒不得爲善國者는 豈非『說而不繹, 從而不改주:설이불역』故邪아』
『 위도(爲都)는 읍(邑)을 다스리는 것이다. 읍(邑)에 선군(先君)의 사당이 있는 곳을 도(都)라 한다. 공(孔)은 대부
(大夫)의 성(姓)이다. 왕(王)을 위하여 그 말씀을 외운 것은 왕(王)을 풍자(諷刺)하여 깨우치려고 하신 것이다.』
『 ○ 진씨(陳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께서 한 번 말씀함에 제(齊)나라의 군신(君臣)들이 모두 그 죄(罪)를 알았으니, 진실로 족히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제(齊)나라가 마침내 선국(善國)이 되지 못했던 것은, 어찌 기뻐하기만 하고 연역(演繹)하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맹자 ; 공손추하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孟子謂È?Ã:曰 子之辭靈丘而請士師 似也는 爲其可以言也니 今旣數月矣로되 未可以言與아』
『 맹자(孟子)께서 지와(È?Ã:)에게 이르시기를 “그대가 영구(靈丘)의 읍재(邑宰)를 사양하고 사사(士師)가 되기를 청한 것이 그럴 듯함은 <사사(士師)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이미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말할 수 없단 말인가?”』
『È?Ã:는 齊大夫也라 靈丘는 齊下邑이라 似也는 言所爲近似有理라 可以言은 謂士師近王하여 得以諫刑罰之不中者라』
『 지와(È?Ã:)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다. 영구(靈丘)는 제(齊)나라 하읍(下邑)이다. 사야(似也)는 그의 한 바가 이치가 있음에 근사(近似)함을 말한 것이다. 가이언(可以言)은 사사(士師)가 왕(王)을 가까이 모셔서 형벌이 <도(道)에>
맞지 않는 것을 간(諫)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È?Ã:諫於王而不用이어늘 致爲臣而去한대』
『 지와(È?Ã:)가 왕(王)에게 간(諫)했으나 쓰여지지 않자, 신하 됨을 내놓고 떠나갔다.』
『致는 猶還也라』
『 치(致)는 환(還)『[되돌려줌]』과 같다.』
『齊人曰 所以爲È?Ã:則善矣어니와 所以自爲則吾不知也로라』
『 제(齊)나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지와(È?Ã:)를 위해서 한 것은 좋으나,
맹자(孟子) 자신이 하는 것은 내 이해할 수 없다.”』
『譏孟子道不行而不能去也니라』
『 맹자(孟子)는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데도 떠나가지 못한다고 비난한 것이다.』
『公都子以告한대』
『 공도자(公都子)가 이것을 아뢰자,』
『公都子는 孟子弟子也라』
『 공도자(公都子)는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다.』
『曰 吾聞之也하니 有官守者不得其職則去하고 有言責者不得其言則去라하니 我無官守하며 我無言責也하니 則吾進退
豈不綽綽然有餘裕哉리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내 들으니, ‘관수(官守)가 있는 자가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면 떠나고, 언책(言責)을 지고 있는 자가 그 말을 할 수 없으면 떠난다.’ 하였으니, 나는 관수(官守)가 없으며 나는 언책(言責)이 없으니, 그렇다면 나의 진퇴(進退)가 어찌 작작(綽綽)하게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官守는 以官爲守者요 言責은 以言爲責者라 綽綽은 寬貌요 裕는 寬意也라 孟子居賓師之位하여 未嘗受祿이라 故로
其進退之際에 寬裕如此하시니라 尹氏曰 進退久速을 當於理而已니라』
『 관수(官守)는 관(官)으로써 맡음을 삼는 것이요, 언책(言責)은 말로써 책임을 삼는 것이다. 작작(綽綽)은 너그러운
모양이요, 유(裕)는 너그러운 뜻이다. 맹자(孟子)는 빈사(賓師)의 지위에 처하여 일찍이 녹(祿)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진퇴(進退)의 즈음에 너그럽고 여유 있음이 이와 같으셨던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나아가고 물러감과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남을 의리(義理)에 마땅하게 할뿐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孟子爲卿於齊하사 出弔於¦!하실새 王이 使蓋『(합)』大夫王驩으로 爲輔行이러시니 王驩이 朝暮見『(현)』이어늘
反齊¦!之路토록 未嘗與之言行事也하시다』
『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서 경(卿)이 되시어 등(¦!)나라에 가서 조문(弔問)하실 적에 왕(王)이 합(蓋)땅의 대부(大夫)인 왕환(王驩)으로 하여금 보행(輔行)『[부사(副使)]』을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왕환(王驩)이 아침•저녁으로 뵈었는데, <맹자(孟子)께서는> 제(齊)나라와 등(¦!)나라의 길을 왕복(往復)하도록 일찍이 그와 더불어 행사(行事)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蓋은 齊下邑也라 王驩은 王嬖臣也라 輔行은 副使也라 反은 往而還也라 行事는 使事也라』
『 합(蓋)은 제(齊)나라 하읍(下邑)이다. 왕환(王驩)은 왕(王)의 총애하는 신하이다. 보행(輔行)은 부사(副使)이다.
반(反)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행사(行事)는 사신(使臣)가는 일이다.』
『公孫丑曰 齊卿之位가 不爲小矣며 齊¦!之路가 不爲近矣로되 反之而未嘗與言行事는 何也잇고 曰 夫旣或治之어니
予何言哉리오』
『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제경(齊卿)의 지위가 작지 않으며, 제(齊)나라와 등(¦!)나라의 길이 가깝지 않은 데도
왕복(往復)하도록 일찍이 그와 더불어 행사(行事)를 말씀하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미 혹자(或者)가 그것을 다스렸으니, 내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王驩이 蓋攝卿以行이라 故로 曰齊卿이라 夫旣或治之는 言有司已治之矣라 孟子之待小人에 不惡『(오)』而嚴이
如此하시니라』
『 왕환(王驩)이 아마도 경(卿)을 대리하여 간 듯하다, 그러므로 제경(齊卿)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미 혹자가 다스렸다는 것은 유사(有司)가 이미 다스림을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소인(小人)을 함에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엄격함이
이와 같으셨다.』
*맹자 ; 공손추하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孟子自齊葬於魯하시고 反於齊하실새 止於쵣이러시니 充虞請曰 前日에 不知虞之不肖하사 使虞敦匠事어시늘 嚴하여 虞不敢註하니 今願竊有請也하오니 木若以美然하더이다』
『 맹자(孟子)께서 제(齊)나라로부터 노(魯)나라에 가서 장례를 지내시고 제(齊)나라로 돌아오실 적에 영(쵣)땅에
머무르셨다. 충우(充虞)가 청하기를 “지난날에 저의 불초(不肖)함을 알지 못하시어 저로 하여금 목수 일을 맡게 하셨
는데, 하도 급하여 제가 감히 묻지 못했습니다. 지금에 저으기 묻기를 원하오니, 관목(棺木)이 너무 아름다운 듯하였
습니다.”』
『孟子仕於齊에 喪母하시고 歸葬於魯하시니라 쵣은 齊南邑이라 充虞는 孟子弟子니 嘗董治作棺之事者也라 嚴은
急也라 木은 棺木也라 以는 已通하니 以美는 太美也라』
『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서 벼슬할 때에 어머니를 잃으시고 노(魯)나라로 돌아가 장례 하셨다. 영(쵣)은 제(齊)나라 남쪽에 있는 읍(邑)이다. 충우(充虞)는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니, 일찍이 관(棺) 만드는 일을 감독하여 다스린 자이다. 엄(嚴)은 급함이다. 목(木)은 관목(棺木)이다. 이(以)는 이(已)와 통하니, 이미(以美)는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曰 古者에 棺槨이 無度하더니 中古에 棺이 七寸이오 槨을 稱之하여 自天子達於庶人하니 非直爲觀美也라 然後盡於人心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옛적에는 관곽(棺槨)이 일정한 한도(限度)가 없었는데, 중고(中古)에 관(棺)은 칠촌(七寸)이고 곽(槨)도 이에 걸맞게 하여,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은 다만 보기에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한 뒤에야 인심(人心)에 다하기 때문이었다.”』
『庶는 厚薄尺寸也라 中古는 周公制禮時也라 槨稱之는 與棺相稱也라 欲其堅厚久遠이요 非特爲人觀視之美而已니라』
『 도(度)는 후박(厚薄)의 치수이다. 중고(中古)는 주공(周公)이 예(禮)를 만들 당시이다. 곽칭지(槨稱之)는 관(棺)과
서로 걸맞게 하는 것이다. 견고하고 두꺼워 장구(長久)하고 영원(永遠)하게 하고자 한 것이요, 비단 남들이 보기에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일 뿐만이 아니다.』
『不得이면 不可以爲悅이며 無財면 不可以爲稅이니 得之爲有財하여는 古之人이 皆用之하니 吾何爲獨不然이리오』
『 <법제(法制)에> 할 수 없으면 마음에 기쁠『[흡족할]』 수 없으며, 재력(財力)이 없으면 기쁠 수 없는 것이다.
<법제(法制)에> 할 수 있고 또 재력이 있으면 옛 사람들이 모두 썼으니, 내 어찌하여 홀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不得은 謂法制所不當得이라 得之爲有財는 言得之而又爲有財也라 或曰 爲는 當作而라』
『 부득(不得)은 법제(法制)에 할 수 없는 것을 이른다. 득지위유재(得之爲有財)는 <법제(法制)에> 할 수 있고 또
재력(財力)이 있는 것이다. 혹자(或者)는 이르기를 ‘위자(爲字)는 마땅히 이자(而字)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且比化者하여 無使土親膚면 於人心에 獨無퉬乎아』
『 또 죽은 자를 위하여 흙으로 하여금 <시신(屍身)의> 살갗에 가까이 닿지 않게 한다면, 사람의 마음에 홀로 만족하지 않겠는가?』
『此는 猶爲也라 化者는 死者也라 퉬는 快也라 言 爲死者하여 不使土親近其肌膚면 於人子之心에 豈不快然無所恨乎아』
『 비(比)는 위(爲)『[위함]』와 같다. 화자(化者)는 죽은 자이다. 교(퉬)는 쾌함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흙으로 하여금 그 살갗에 가까이 닿지 않게 한다면, 자식된 마음에 어찌 쾌하여 한(恨)되는 바가 없지 않겠는가.’ 라고 말씀한 것이다.』
『吾聞之也하니 君子는 不以天下儉其親이라하니라』
『 내가 들으니 ‘군자(君子)는 천하를 위하여 그 어버이에게 검박(儉朴)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送終之禮에 所當得爲而不自盡이면 是는 爲天下愛惜此物하여 而薄於吾親也라』
『 죽은 이를 장송(葬送)하는 예(禮)에 마땅히 할 수 있는데도 스스로 다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천하를 위해서 이 물건을 아껴 내 어버이에게 박(薄)하게 하는 것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8장
▣ 제8장(第八章)
『沈同이 以其私問曰 燕可伐與잇가 孟子曰 可하니라 子´6도 不得與人燕이며 子之도 不得受燕於子´6니 有仕於此어든
而子悅之하여 不告於王而私與之吾子之祿爵이어든 夫士也 亦無王命而私受之於子면 則可乎아 何以異於是리오』
『 심동(沈同)이 사적(私的)『[개인적]』로 묻기를 “연(燕)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 하자,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가(可)하다, 자쾌(子´6)도 남에게 연(燕)나라를 줄 수 없으며, 자지(子之)도 연(燕)나라를 자쾌(子´6)에게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벼슬하는 자가 있는데, 자네가 그를 좋아하여 왕(王)에게 아뢰지 않고 사사로이 그대의 작록(爵祿)을 그에게 주거든, 그 선비 또한 왕명(王命)이 없이 사사로이 그대에게서 받는다면 가(可)하겠는가?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沈同은 齊臣이라 以私問은 非王命也라 子´6, 子之는 事見前篇하니 諸侯는 土地人民을 受之天子하고 傳之先君하니
私以與人이면 則與者受者皆有罪也라 仕는 爲官也요 士는 卽從仕之人也라』
『 심동(沈同)은 제(齊)나라 신하이다. 사적(私的)으로 물었다는 것은 왕명(王命)이 아닌 것이다. 자쾌(子´6)와 자지(子之)에 대한 일은 전편(前篇)『[양혜왕하(梁惠王下)]』에 보인다. 제후(諸侯)는 토지와 인민을 천자(天子)에게서 받았으며 선군(先君)에게서 물려받았으니, 만일 사사로이 남에게 준다면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모두 죄가 있는 것이다.
사(仕)는 벼슬을 하는 것이요, 사(士)는 바로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齊人이 伐燕이어늘 或問曰 勸齊伐燕이라하니 有諸잇가 曰 未也라 沈同이 問燕可伐與아하여늘 吾應之曰 可라하니 彼然而伐之也로다 彼如曰 孰可以伐之오하면 則將應之曰 爲天吏則可以伐之라하리라 今有殺人者어든 或問之曰 人可殺與아하면 則將應之曰 可라하리라 彼如曰 孰可以殺之오하면 則將應之曰 爲士師則可以殺之라하리라 今에 以燕伐燕이어니 何爲勸之哉리오』
『 제(齊)나라 사람이 연(燕)나라를 정벌하자, 혹자(或者)가 묻기를 “제(齊)나라에게 연(燕)나라를 치도록 권하셨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자,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니다, 심동(沈同)이 ‘연(燕)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
니까?’ 하고 묻기에 내 대답하기를 ‘가(可)하다’ 하였더니, 저 사람이 <내 말을> 옳게 여겨 정벌한 것이다. 저 사람이
만일 ‘누가 정벌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라면, 나는 장차 대답하기를 ‘천리(天吏)가 되면 정벌할 수 있다.’ 하였을 것이다. 지금에 살인(殺人)한 자가 있는데, 혹자(或者)가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장차 대답하기를 ‘가(可)하다.’고 할 것이다. 저 사람이 만일 ‘누가 그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장차 대답하기를
‘사사(士師)가 되면 죽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에는 연(燕)나라로써 연(燕)나라를 정벌하는 것이니, 내 어찌하여
권하였겠는가?”』
『天吏는 解見上篇하니 言 齊無道가 與燕無異하니 如以燕伐燕也라 史記에 亦謂孟子勸齊伐燕이라하니 蓋傳聞此說之誤니라』
『○ 楊氏曰 燕固可伐矣라 故로 孟子曰 可라하시니 使齊王이 能誅其君, 弔其民이면 何不可之有리오 乃殺其父兄하고
虜其子弟而後에 燕人畔之어늘 乃以是로 歸咎孟子之言이면 則誤矣니라』
『 천리(天吏)는 해석이 상편(上篇)『[공손추상(公孫丑上)]』에 보인다. 제(齊)나라의 무도(無道)함이 연(燕)나라와
다름이 없으니, 이는 연(燕)나라로써 연(燕)나라를 정벌함과 같음을 말씀한 것이다. 《사기(史記)》에도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게 연(燕)나라를 정벌하도록 권하였다.’ 하였으니, 이 말을 전문(傳聞)한 오류(誤謬)일 것이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연(燕)나라는 진실로 정벌할 만하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가(可)하다.’고 말씀하셨으니, 가령 제왕(齊王)이 그 군주를 주벌(誅罰)하고 그 백성을 위로하였더라면 어찌 불가(不可)할 것이 있겠는가?
마침내 그 부형(父兄)을 죽이고 그 자제(子弟)들을 포로로 잡은 뒤에 연(燕)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맹자(孟子)의 말씀에 허물을 돌린다면 잘못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9장
▣ 제9장(第九章)
『燕人이 畔이어늘 王曰 吾甚慙於孟子하노라』
『 연(燕)나라 사람이 배반하자, 왕(王)이 말씀하였다. “나는 매우 맹자(孟子)에게 부끄럽노라.”』
『齊破燕後二年에 燕人이 共立太子平爲王하니라』
『 제(齊)나라가 연(燕)나라를 격파(擊破)한 지 2년만에 연(燕)나라 사람들이 함께 태자(太子) 평(平)을 세워 왕(王)
으로 삼았다.』
『陳賈曰 王無患焉하소서 王이 自以爲與周公孰仁且智니잇고 王曰 惡『(오)』라 是何言也오 曰 周公이 使管叔監殷이어시늘 管叔이 以殷畔하니 知而使之면 是不仁也요 不知而使之면 是不智也니 仁智는 周公도 未之盡也시니 而況於王乎잇가 賈請見而解之하리이다』
『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왕(王)은 염려하지 마소서. 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주공(周公)과 더불어 누가 더 인(仁)하고 또 지혜롭다고 여기십니까?”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이 웬 말인가?”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주공(周公)이 관숙(管叔)으로 하여금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관숙(管叔)이 은(殷)나라를 가지고 배반하였으니, <주공(周公)이> 이것을 알고 시켰다면 이는 불인(不仁)함이요, 알지 못하고 시켰다면 이는 부지(不智)함이니, 인(仁)과 지(智)는 주공(周公)도 다하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왕(王)에게 있어서이겠습니까? 제가 맹자(孟子)를 뵙고 해명해 드리겠습니다.”』
『陳賈는 齊大夫也라 管督은 名鮮이니 武王弟요 周公兄也라 武王이 勝商殺紂하시고 立紂子武庚하고 而使管叔與弟蔡叔쥦叔으로 監其國이러니 武王崩하고 成王幼하여 周公攝政한대 官叔이 與武庚畔이어늘 周公이 討而誅之하시니라』
『 진가(陳賈)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다. 관숙(管叔)은 이름이 선(鮮)이니, 무왕(武王)의 아우요, 주공(周公)의 형이다.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고 주왕(紂王)을 죽이고는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을 세운 다음, 관숙(管叔)으로 하여금 아우인 채숙(蔡叔)•곽숙(쥦叔)과 함께 그 나라를 감독하게 했었는데,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려
주공(周公)이 섭정하자, 관숙(管叔)이 무경(武庚)과 함께 배반하니, 주공(周公)이 토벌하여 죽이셨다.』
『見孟子하고 問曰 周公은 何人也잇고 曰 古聖人也시니라 曰 使管叔監殷이어시늘 管叔이 以殷畔也라하니 有諸잇가 曰 然하다 曰 周公이 知其將畔而使之與잇가 曰 不知也시니라 然則聖人도 且有過與잇가 曰 周公은 弟也요 管叔은 兄也니
周公之過가 不亦宜乎아』
『 진가(陳賈)가 맹자(孟子)를 뵙고 묻기를 “주공(周公)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자, 맹자(孟子)께서 “옛 성인(聖人)이시다.”하고 대답하셨다. “관숙(管叔)으로 하여금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관숙(管叔)이 은(殷)나라를 가지고 배반했다 하니,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다.” “주공(周公)이 장차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 시켰습니까?” “알지 못하셨다.” “그렇다면 성인(聖人)도 과실이 있는 것입니까?” “주공(周公)은 아우요, 관숙(管叔)은 형이니, 주공(周公)의 과실이 당연하지 않은가!”』
『言 周公은 乃管叔之弟요 管叔은 乃周公之兄이니 然則周公이 不知管叔之將畔而使之하시니 其過有所不免矣라 或曰 周公之處管叔이 不如舜之處象은 何也오 游氏曰 象之惡은 已著요 而其志不過富貴而已라 故로 舜得以是而全之어니와 若管叔之惡則未著요 而其志其才가 皆非象比也니 周公이 퇓忍逆探其兄之惡而棄之邪아 周公愛兄이 宜無不盡者하니 管督之事는 聖人之不幸也라 舜은 誠信而喜象하시고 周公은 誠信而任管叔하시니 此는 天理人倫之至니 其用心이 一也니라』
『 주공(周公)은 바로 관숙(管叔)의 아우요, 관숙(管叔)은 바로 주공(周公)의 형이니, 그렇다면 주공(周公)은 관숙(管叔)이 장차 배반할 것을 알지 못하고 시킨 것이니 그 과실을 면할 수 없다고 말씀한 것이다.』
『 혹자(或者)가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관숙(管叔)을 대처함이 순(舜)임금이 상(象)을 대처함과 같지 않음은 어째서 입니까?”하자, 유씨(游氏)가 말하였다. “상(象)의 악(惡)은 이미 드러났고, 그 뜻이 일신(一身)의 부귀(富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은 이로써 그를 온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숙(管叔)의 악(惡)으로 말하면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그 뜻과 그 재주가 모두 상(象)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주공(周公)이 어찌 차마 그 형의 악함을 미리 헤아려 버릴 수 있었겠는가? 주공(周公)이 형을 사랑함은 마땅히 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니, 관숙(管叔)의 일은 성인(聖人)의 불행이다. 순(舜)임금은 진실로 믿고서 상(象)을 기뻐하셨고, 주공(周公)은 진실로 믿고서 관숙(管叔)에게 맡기셨다.
이는 천리(天理)와 인륜(人倫)의 지극함이니, 그 마음 쓰심이 똑같은 것이다.”』
『且古之君子는 過則改之러니 今之君子는 過則順之로다 古之君子는 其過也 如日月之食이라 民皆見之하고 及其更『(경)』也하여는 民皆仰之러니 今之君子는 豈徒順之리오 又從而爲之辭로다』
『 또 옛날의 군자(君子)『[군주(君主)나 대신(大臣)]』들은 과실이 있으면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君子)들은 과실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는구나! 옛날의 군자(君子)들은 그 과실이 해와 달의 일식(日蝕)•월식(月蝕)과 같아서 백성들이 다
그것을 보았고, 과실을 고침에 미쳐서는 백성들이 다 우러러보았는데, 지금의 군자(君子)들은 어찌 다만 이룰 뿐이겠는가. 또 따라서 변명을 하는구나!”』
『順은 猶遂也라 更은 改也라 辭는 辯也라 更之면 則無損於明이라 故로 民仰之하고 順而爲之辭면 則其過愈深矣니
責賈不能勉其君以遷善改過하고 而敎之以遂非文過也시니라』
『○ 林氏曰 齊王이 慙於孟子하니 蓋羞惡之心이 有不能自已者니 使其臣 有能因是心而將順之면 則義不可勝用矣어늘
而陳賈는 鄙夫라 方且爲之曲爲辯說하여 而沮其遷善改過之心하고 長其飾非拒諫之惡이라 故로 孟子深責之하시니라
然이나 此書記事散出而無先後之次라 故로 其說을 必參考而後通이니 若以第二篇十章, 十一章으로 置之前章之後,
此章之前이면 則孟子之意 不待論說而自明矣리라』
『 순(順)은 수(遂)와 같다. 경(更)은 고침이다. 사(辭)는 변명하는 것이다. 과실을 고치면 밝음에 감손(減損)됨이 없으
므로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것이요, 과실을 이루고 변명을 하면 그 과실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진가(陳賈)가 군주에게 개과천선(改過遷善)으로써 권면하지 못하고, 과실을 문식(文飾)하여 비행(非行)을 이루는 것으로써 가르침을 꾸짖으신 것이다.』
『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제왕(齊王)이 맹자(孟子)에게 부끄러워하였으니, 이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음이 있어서였다. 가령 그 신하 중에 이 마음을 인하여 받들어 순히 하는 자가 있었다면 의(義)를 이루 다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진가(陳賈)는 비루한 사람이여서, 장차 군주를 위하여 왜곡하여 변설(辯說)을 늘어놓아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마음을 저지하고, 그름을 문식(文飾)하여 간언(諫言)을 막는 악(惡)을 조장하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깊이 꾸짖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기사(記事)가 흩어져 나와서 선후(先後)의 순서가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반드시 참고한 뒤에야 통할 수 있으니, 만일 제2편『[양혜왕하(梁惠王下)]』의 10장(章)•11장(章)을 앞 장(章)의 뒤와 이
장(章)의 앞에 놓는다면, 맹자(孟子)의 뜻은 논설(論說)을 기다리지 않고도 자명(自明)해질 것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孟子致爲臣而歸하실새』
『 맹자(孟子)께서 신하됨을 내놓고 떠나실 적에』
『孟子久於齊而道不行이라 故로 去也시니라』
『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 오래 있었으나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떠나신 것이다.』
『王이 就見孟子曰 前日에 願見而不可得이라가 得侍하여는 同朝甚喜러니 今又棄寡人而歸하시니 不識케이다 可以繼此而得見乎잇가 對曰 不敢請耳언정 固所願也니이다』
『 왕(王)이 맹자(孟子)를 찾아 뵙고 말씀하였다. “지난날에 뵙기를 원했으나 뵐 수 없었는데, 모시게 되자, 조정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과인(寡人)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뒤로 계속하여 선생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감히 청하지는 못할지언정, 진실로 원(願)하는 바입니다.”』
『他日에 王謂時子曰 我欲中國而授孟子室하고 養弟子以萬鍾하여 使諸大夫國人으로 皆有所矜式하노니 子탍爲我言之오』
『 타일(他日)에 왕(王)이 시자(時子)를 보고 말씀하였다. “내 국중(國中)『[서울]』에다가 맹자(孟子)에게 집을 지어
주고 제자(弟子)들을 만종록(萬鍾祿)으로 길러 여러 대부(大夫)들과 국민들로 하여금 모두 공경하고 법받는 바가 있게 하려고 하니, 자네는 어찌 나를 위하여 말해주지 않는가?”』
『時子는 齊臣也라 中國은 當國之中也라 萬鍾은 穀祿之數也라 鍾은 量名이니 受六斛四斗라 矜은 敬也요 式은 法也라
탍은 何不也라』
『 시자(時子)는 제(齊)나라 신하이다. 중국(中國)은 나라의 한 가운데『[서울]』에 해당한다. 만종(萬鍾)은 녹봉의
수(數)이다. 종(鍾)은 양(量)의 이름이니, 6곡(斛) 4두(斗)가 들어간다. 긍(矜)은 공경함이요, 식(式)은 법받는 것이다.
합(탍)은 어찌 아니이다.』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어늘 陳子以時子之言으로 告孟子한대』
『 시자(時子)가 진자(陳子)를 통하여 맹자(孟子)에게 아뢰게 하자, 진자(陳子)가 시자(時子)의 말을 맹자(孟子)께
아뢰었다.』
『陳子는 卽陳臻也라』
『 진자(陳子)는 바로 진진(陳臻)이다.』
『孟子曰 然하다 夫時子惡『(오)』知其不可也리오 如使予欲富인댄 辭十萬而受萬이 是爲欲富乎아』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러하겠다. 저 시자(時子)가 어찌 그 불가(不可)함을 알겠는가? 가령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십만종(十萬鍾)을 사양하고 만종(萬鍾)을 받는 것이 이것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짓이겠는가?”』
『孟子旣爾不行而去면 則其義不可以復留어늘 而時子不知하니 則又有難顯言者라 故로 但言 設使我欲富인댄 則我前
日爲卿에 嘗辭十萬之祿하니 今乃受此萬鍾之饋면 是我雖欲富라도 亦不爲此也라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이미 도(道)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떠나셨다면 그 의(義)가 다시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자(時子)가 이것을 알지 못하니, 또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다만 말씀하시기를 ‘가령『[설사(設使)]』 내가 부자가 되고자 하였다면 내 지난날 경(卿)이 되었을 때에 일찍이 십만종(十萬鍾)의 녹(祿)을 사양하였으니, 이제 마침내 이 만종(萬鍾)을 주는 것을 받는다면, 이는 내가 비록 부자가 되고자 한다 하더라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이다.』
『季孫曰 異哉라 子叔疑여 使己爲政이라가 不用則亦已矣어늘 又使其子弟爲卿하니 人亦孰不欲富貴리오마는 而獨於富貴之中에 有私龍『(롱)』斷焉이라하니라』
『 계손씨(季孫氏)가 말하기를 ‘괴이하다, 자숙의(子叔疑)여! 자기로 하여금 정사(政事)를 하게 하다가 쓰여지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할 것인데, 또 그 자제(子弟)로 하여금 경(卿)을 삼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누구인들 부귀(富貴)하고자 하지 않겠는가마는, 홀로 부귀(富貴) 가운데에도 농단(龍『[壟]』斷)을 독점하는 이가 있다.’ 하였다.』
『此는 孟子引季孫之語也라 季孫, 子叔疑는 不知何時人이라 龍斷은 岡壟之斷而高也니 義見下文하니라 蓋子叔疑者嘗不用而使其子弟爲卿한대 季孫이 譏其旣不得於此하고 而又欲求得於彼하니 如下文賤丈夫登龍斷者之所爲也라 孟子引此하여 以明道旣不行이요 復受其祿이면 則無以異此矣니라』
『 이것은 맹자(孟子)께서 계손씨(季孫氏)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계손(季孫)과 자숙의(子叔疑)는 어느 때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농단(壟斷)은 강롱(岡壟)『[언덕]』이 딱 끊겨 높은 곳이니, 뜻이 아래 글에 보인다. 자숙의(子叔疑)란 자가 일찍이 쓰여지지 않자, 그 자제(子弟)로 하여금 경(卿)을 삼게 하니, 계손씨(季孫氏)가 그 이미 여기에서 얻지 못하고,
또 저기에서 얻고자 하니, 마치 아래 글에 천장부(賤丈夫)『[졸장부]』가 농단(龍斷)에 올라간 것의 소행과 같다고 기롱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 글을 인용하여, 도(道)가 이미 행해지지 않는데 다시 그 녹(祿)을 받는다면 이와 다를 것이 없음을 밝히신 것이다.』
『古之爲市者는 以其所有로 易其所無者어든 有司者治之耳러니 有賤丈夫焉하니 必求龍斷而登之하여 以左右望而罔市利어늘 人皆以爲賤이라 故로 從而征之하니 征商이 自此賤丈夫始矣니라』
『 옛날에 시장(市場)에서 교역(交易)하는 자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없는 물건과 바꾸면, 유사(有司)『[시장을 맡은 관리]』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분쟁을> 다스릴 뿐이었다. 그런데 천장부(賤丈夫) 한 사람이 있어,
반드시 농단(龍斷)을 찾아 올라가서 좌우로 바라보면서 시장의 이익을 망라하자,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따라서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니, 장사꾼에게 세금을 징수한 것은 이 천장부(賤丈夫)로부터 비롯되었다.”』
『孟子釋龍斷之說이 如此하시니라 治之는 謂治其爭訟이라 左右望者는 欲得此而又取彼也라 罔은 謂罔羅取之也라
從而征之는 謂人惡其專利라 故로 就征其稅하니 後世緣此하여 遂征商人也니라』
『○ 程子曰 齊王所以處孟子者未爲不可요 孟子亦非不肯爲國人矜式者언마는 但齊王이 實非欲尊孟子요 乃欲以利誘之라 故로 孟子拒而不受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농단(龍斷)의 말씀을 해석하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치지(治之)는 분쟁을 다스림을 이른다.
좌우망(左右望)은 이것을 얻고 또 저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망(罔)은 망라하여 취함을 이른다. 따라서 그에게 세금을 징수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가 이익을 독점함을 미워하였으므로, 나아가서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하였으니,
후세에 이로 인하여 마침내 상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되었음을 이른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제왕(齊王)이 맹자(孟子)를 대처한 것이 불가(不可)하지 않았고, 맹자(孟子) 또한 국인(國人)들에게 존경을 받고 법받음이 되기를 즐겨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제왕(齊王)은 실제로 맹자(孟子)를 높이려고 한 것이 아니요, 마침내 이익으로써 유인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거절하고 받지 않으신 것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孟子去齊하실새 宿於晝러시니』
『 맹자(孟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실 적에 주(晝)땅에 유숙하셨다.』
『晝는 齊西南近邑也라』
『 주(晝)는 제(齊)나라 서남쪽에 있는 서울과 가까운 읍(邑)이다.』
『有欲爲王留行者坐而言이어늘 不應하시고 隱¤!而臥하신대』
『 왕(王)을 위하여 맹자(孟子)의 발걸음을 만류하고자 하는 자가 있어, 앉아서 말하였으나, 맹자(孟子)께서 응대하지 않으시고 궤(¤!)『[안석]』에 기대어 누우셨다.』
『隱은 憑也라 客坐而言이어늘 孟子不應而臥也라』
『 은(隱)은 의지함이다. 객(客)이 앉아서 말하는데, 맹자(孟子)께서 응대하지 않고 누우신 것이다.』
『客이 不悅曰 弟子齊『(재)』宿而後敢言이어늘 夫子臥而不聽하시니 請勿復敢見矣로이다 曰 坐하라 我明語子하리라 昔者에 魯繆『(목)』公이 無人乎子思之側이면 則不能安子思하고 泄柳, 申詳이 無人乎繆公之側이면 則不能安其身이러니라』
『 객(客)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제『[제자(弟子)]』가 재숙(齊宿)『[오랫동안 공경함]』 한 뒤에 감히 말씀
드렸는데, 부자(夫子)께서 누우시고 들어주지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뵙지 말아야겠습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앉아라! 내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겠다. 옛적에 노목공(魯繆公)은 자사(子思)의 곁에 <자기의 성의(誠意)를
전달할> 사람이 없으면 <자사(子思)가 떠나가실까 염려하여> 자사(子思)를 편안히 하지 못하였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繆公)의 곁에 보좌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그 몸을 편안히 하지 못하였다.』
『齊宿은 齊戒越宿也라 繆公이 尊禮子思하여 常使人候伺하여 道達誠意於其側이라야 乃能安而留之也라 泄柳는 魯人이요 申詳은 子張之子也니 繆公尊之不如子思나 然이나 二子義不苟容하여 非有賢者在其君之左右하여 維持調護之면 則亦不能安其身矣니라』
『 재숙(齊宿)은 재계(齊戒)하고 하룻밤을 지낸 것이다. 목공(繆公)은 자사(子思)를 존경하고 예우하여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모시고 보살피게 해서, 자기의 성의를 그 곁에 전달하여야 편안히 머물 것으로 여긴 것이다. 설류(泄柳)는 노(魯)나라 사람이요, 신상(申詳)은 자장(子張)의 아들이니, 목공(繆公)이 이들을 높인 것은 자사(子思)만 못하였으나, 이들
두 사람은 의(義)에 구차히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자(賢者)가 군주의 좌우에 있으면서 유지하고 조호(調護)해
주는 이가 없으면, 또한 그 몸을 편안히 하지 못한 것이다.』
『子爲長者慮而不及子思하니 子絶長者乎아 長者絶子乎아』
『 그대가 장자(長者)를 위하여 생각해 주되, 자사(子思)에게 미치지 못하니, 자네가 장자(長者)를 끊은 것인가?
장자(長者)가 자네를 끊은 것인가?”』
『長者는 孟子自稱也라 言 齊王이 不使子來어늘 而子自欲爲王留我하니 是는 所以爲我謀者 不及繆公留子思之事하여
而先絶我也라 我之臥而不應이 豈爲先絶子乎아』
『 장자(長者)는 맹자(孟子)가 자신을 칭하신 것이다. ‘제왕(齊王)이 그대로 하여금 오게 하지 않았는데, 그대가 스스로 왕(王)을 위하여 나를 만류하고자 하니, 이것은 나를 위하여 도모하는 것이 목공(繆公)이 자사(子思)를 만류한 일에 미치지 못하여, 먼저 나를 끊은 것이다. 내가 눕고 응대하지 않는 것이 어찌 먼저 그대를 끊음이 되겠는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孟子去齊하실새 尹士語人曰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면 則是不明也요 識其不可요 然且至면 則是干澤也니 千里而見王
하여 不遇故로 去하되 三宿而後出晝하니 是何濡滯也오 士則玆不悅하노라』
『 맹자(孟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시자,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왕(王)이 탕(湯)•무(武) 같은 성군(聖君)이 될 수 없음을 모르고 왔다면 이것은 지혜가 밝지 못한 것이요, 불가능함을 알고서도 왔다면 이것은 은택을 요구한 것이다. 천리(千里) 먼길을 왕(王)을 만나보러 왔다가 뜻이 맞지 않으므로 떠나가되, 사흘을 유숙한 뒤에 주(晝)땅을 출발하니, 이 어찌 이리도 오랫동안 체류한단 말인가? 나는 이것을 기뻐하지 않노라.”』
『尹士는 齊人也라 千은 求也라 澤은 恩澤也라 濡滯는 遲留也라』
『 윤사(尹士)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간(干)은 요구함이다. 택(澤)은 은택(恩澤)이다. 유체(濡滯)는 오랫동안 체류함
이다.』
『高子以告한대』
『 고자(高子)가 이 말을 아뢰자,』
『高子는 亦齊人이니 孟子弟子也라』
『 고자(高子) 역시 제(齊)나라 사람이니,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다.』
『曰 夫尹士惡『(오)』知予哉리오 千里而見王은 是予所欲也니 不遇故로 去가 豈予所欲哉리오 予不得已也로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윤사(尹士)가 어찌 나를 알겠는가.? 천리(千里) 먼길에 왕(王)을 만나보러 온 것은
내가 하고자 한 것이니, 뜻이 맞지 않으므로 떠나감이 어찌 나의 원하는 바이겠는가? 내 부득이해서였다.』
『見王은 欲以行道也니 今道不行이라 故로 不得已而去요 非本欲如此也라』
『 왕(王)을 만나봄은 도(道)를 행하고자 해서였는데, 이제 도(道)가 행해지지 못하므로 부득이해서 떠나는 것이요,
본래 이와 같고자 함은 아니었다.』
『予三宿而出晝하되 於予心에 猶以爲速하노니 王庶幾改之니 王如改諸시면 則必反予시리라』
『 내 사흘을 유숙한 뒤에 주(晝)땅을 출발하되, 내 마음에는 오히려 빠르다고 여겼다.
나는 왕(王)이 행여 고치시기를 바라노니, 왕(王)이 만일 고치신다면 반드시 나의 발길을 돌리게 하셨을 것이다.』
『所改는 必指一事而言이라 然이나 今不可考矣라』
『 고친다는 것은 반드시 어느 한 일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고할 수가 없다.』
『夫出晝而王不予追也하실새 予然後浩然有歸志하니 予雖然이나 豈舍王哉리오 王由『(猶)』足用爲善하시리니 王如用予시면 則豈徒齊民安이리오 天下之民이 擧安하리니 王庶幾改之를 予日望之하노라』
『 주(晝)땅을 나가는데도 왕(王)이 나를 <만류하기 위하여> 쫓아오지 않으시기에, 내가 그런 뒤에야 호연(浩然)히
돌아갈 뜻을 두었다. 내 그러나 어찌 왕을 버리겠는가. 왕(王)은 그래도 충분히 선(善)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왕(王)이 만일 나를 등용하신다면, 어찌 다만 제(齊)나라 백성만이 편안할 뿐이겠는가. 천하의 백성이 모두 편안할 것이다.
왕(王)이 행여 고치시기를 나는 날마다 바라노라.』
『浩然은 如水之流不可止也라 楊氏曰 齊王은 天資朴實하여 如好勇, 好貨, 好色, 好世俗之樂을 皆以直告而不隱於孟子라 故로 足以爲善이니 若乃其心不然而謬爲大言以欺人이면 是人은 終不可與入堯舜之道矣리니 何善之能爲리오』
『 호연(浩然)은 물의 흐름이 그칠 수 없음과 같은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제왕(齊王)은 타고난 자질이 질박하고 성실하여, 용맹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색을 좋아하고, 세속의 음악을 좋아함 같은 것을 모두 솔직히 아뢰고 맹자(孟子)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충분히 선(善)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 마음은 그렇지 못하면서 거짓으로 큰소리를 쳐서 사람을 속인다면, 이러한 사람은 끝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니, 어찌 선(善)을 행할 수 있겠는가?”』
『予豈若是小丈夫然哉라 諫於其君而不受어든 則怒하여 탣탣然見『(현)』於其面하여 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리오』
『 내 어찌 이 소장부(小丈夫)와 같이 군주(君主)에게 간하다가 받아주지 않으면 노(怒)하여 행행(탣탣)하게 그 얼굴빛에 <노기(怒氣)를> 나타내어, 떠나면 하루종일 갈 수 있는 힘을 다한 뒤에 유숙(留宿)하는 것처럼 하겠는가?”』
『탣탣은 怒意也라 窮은 盡也라』
『 행행(탣탣)은 노(怒)하는 뜻이다. 궁(窮)은 다함이다.』
『尹士聞之하고 曰 士는 誠小人也로다』
『 윤사(尹士)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나『[사(士)]』는 진실로 소인(小人)이다.”』
『此章은 『見聖賢주:견성현』行道濟時汲汲之本心과 愛君澤民짏짏之餘意니라 李氏曰 於此에 見君子『憂則違之주:
우즉위지』之情이요 而『荷튢者所以爲果주:하궤자소이위과』也니라』
『 이 장(章)은 성현(聖賢)이 도(道)를 행하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급급(汲汲)한 본심과 군주(君主)를 사랑하고 백성에게 은택을 입히려는 권권(짏짏)해 하는 남은 뜻을 볼 수 있다.』
『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여기에서 군자(君子)가 근심스러우면 떠나는 실정(實情)을 볼 수 있고 하궤(荷튢)한 자가 과단 함이 되는 소이(所以)이다.”』
*맹자 ; 공손추하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孟子去齊하실새 充虞路問曰 夫子若有不豫色然하시니이다 前日에 虞聞諸夫子하니 曰 君子는 不怨天하며 不尤人이라하시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실 적에 충우(充虞)가 도중(途中)에서 물었다. “부자(夫子)께서 기쁘지 않은 기색이 계신 듯하십니다. 지난날 제가 부자(夫子)께 듣자오니, ‘군자(君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路問은 於路中問也라 豫는 悅也라 尤는 過也라 此二句는 實孔子之言이니 蓋孟子嘗稱之以敎人耳시니라』
『 노문(路問)은 노중(路中)에서 물은 것이다. 예(豫)는 기뻐함이다. 우(尤)는 허물 함이다.
이 두 구(句)는 실로 공자(孔子)의 말씀이니, 맹자(孟子)께서 일찍이 칭(稱)『[말씀]』하여 사람을 가르치신 듯하다.』
『曰 彼一時며 此一時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저 한 때이며, 이 한 때이다.『[그 때는 그 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彼는 前日이요 此는 今日이라』
『 피(彼)는 지난날이요, 차(此)는 금일(今日)이다.』
『五百年에 必有王者興하나니 其間에 必有名世者니라』
『 5백 년에 반드시 왕자(王者)가 나오니,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유명한 자가 있다.』
『自堯舜至湯과 自湯至文武가 皆五百餘年而聖人出하니라 名世는 謂其人德業聞望이 可名於一世者 爲之輔佐니 若皐陶, 稷, 契, 伊尹, 萊朱, 太公望, 散宜生之屬이라』
『 요순(堯舜)으로부터 탕왕(湯王)에 이르기까지와 탕왕(湯王)으로부터 문왕(文王)•무왕(武王)에 이르기까지 모두 5백여 년만에 성인(聖人)이 나왔다. 명세(名世)란 그 사람의 덕업과 명망이 한 세대에 이름날 만한 자가 그『[왕자(王者)]』를 보좌함을 이르니, 고요(皐陶)와 직(稷)과 설(契), 이윤(伊尹)과 내주(萊朱), 태공망(太公望)과 산의생(散宜生) 같은
등속이다.』
『由周而來로 七百有餘歲矣니 以其數則過矣요 以其時考之則可矣니라』
『 주(周)나라로부터 이래로 7백여 년이 되었으니, 연수(年數)를 가지고 보면 지났고,
시기로 살펴보면 지금이 가(可)하다.』
『周는 謂文武之間이라 數는 謂五百年之期라 時는 謂亂極思治하여 可以有爲之日이라 於是而不得一有所爲하니
此孟子所以不能無不豫也시니라』
『 주(周)는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사이를 이른다. 수(數)는 5백 년의 시기를 이른다. 시(時)는 난(亂)이 지극하면
다스려질 것을 생각하여, 일을 할 수 있는 때를 이른다. 이러한 때에 한번 일을 함이 있지 못하니,
이것이 맹자(孟子)께서 기쁘지 않은 기색이 없지 못하신 까닭이다.』
『夫天이 未欲平治天下也시니 如欲平治天下인댄 當今之世하여 舍我요 其誰也리오 吾何爲不豫哉리오』
『 하늘이 천하를 평치(平治)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천하를 평치(平治)하고자 하신다면, 지금 세상을 당하여
나를 버리고『[나 말고]』 그 누가 하겠는가? 내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겠는가.”』
『言 當此之時하여 而使我不遇於齊하니 是天未欲平治天下也라 然이나 天意는 未可知요 而其具又在我하니 我何爲不豫哉리오 然則孟子雖若有不豫然者나 而實未嘗不豫也시니 蓋『聖賢憂世之志주:성현우세지지』와 樂天之誠이 有쯂行而不悖者를 於此見矣니라』
『 ‘이 때를 당하여 나로 하여금 제(齊)나라에서 뜻이 합하지 못하게 하니, 이것은 하늘이 천하를 평치(平治)하고자 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알 수 없고, 그 도구는 또 나에게 있으니, 내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겠는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孟子)께서 비록 기쁘지 않은 기색이 있으신 듯하였으나, 실제는 기뻐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성현(聖賢)의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과 천리(天理)를 즐거워하는 정성이 병행되고 모순되지 않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맹자 ; 공손추하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孟子去齊居休러시니 公孫丑問曰 仕而不受祿이 古之道乎잇가』
『 맹자(孟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 휴(休)땅에 머무셨는데,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벼슬하면서 녹(祿)『[녹봉]』을 받지 않는 것이 옛 도(道)입니까?”』
『休는 地名이라』
『 휴(休)는 지명(地名)이다.』
『曰 非也라 於崇에 吾得見王하고 退而有去志하니 不欲變이라 故로 不受也로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니다. 숭(崇)땅에서 내 왕(王)을 만나 뵙고 물러 나와 떠날 마음을 두었으니,
이 마음을 변하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녹(祿)을 받지 않은 것이다.”』
『崇은 亦地名이라 孟子始見齊王에 必有所不合이라 故로 有去志하시니라 變은 謂變其去志라』
『 숭(崇)은 또한 지명(地名)이다. 맹자(孟子)께서 처음 제왕(齊王)을 만나 뵈었을 때에 반드시 합하지 않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떠날 뜻을 두신 것이다. 변(變)은 떠날 뜻을 변함을 이른다.』
『繼而有師命이라 不可以請이언정 久於齊는 非我志也니라』
『 뒤이어 군대의 출동명령이 있었다. 그리하여 떠나갈 것을 청할 수 없었을 뿐이었지,
제(齊)나라에 오랫동안 머무름은 나의 뜻이 아니었다.”』
『師命은 師旅之命也라 國旣被兵하니 難請去也라』
『○ 孔氏曰 仕而受祿은 禮也요 不受齊祿은 義也니 義之所在에는 禮有時而變이어늘 公孫丑欲以一端裁之하니 不亦誤乎아』
『 사명(師命)은 사려(師旅)를 출동하는 명령이다. 국가가 이미 병란(兵亂)을 입어 떠나기를 청하기 어려우셨던 것이다.』
『 ○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벼슬하면서 녹(祿)을 받는 것은 예(禮)요, 제(齊)나라 녹(祿)을 받지 않는 것은 의(義)이니, 의(義)가 있는 곳에는 예(禮)가 때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손추(公孫丑)는 한 가지로써 처리하려 하였으니, 잘못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