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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

맹자 번역본 (7) - 이루장구상(離婁章句上)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6.06.26|조회수1,247 목록 댓글 0


*맹자 ; 이루장구상(離婁章句上)

 

▣ 이루장구상(離婁章句上)

 

凡二十八章이라』

 

『  모두 28()이다.

 

     『○ 맹자 ; 이루상 ; 1+1

     『○ 맹자 ; 이루상 ; 2+2

     『○ 맹자 ; 이루상 ; 3+3

     『○ 맹자 ; 이루상 ; 4+4

     『○ 맹자 ; 이루상 ; 5+5

     『○ 맹자 ; 이루상 ; 6+6

     『○ 맹자 ; 이루상 ; 7+7

     『○ 맹자 ; 이루상 ; 8+8

     『○ 맹자 ; 이루상 ; 9+9

     『○ 맹자 ; 이루상 ; 10+10

     『○ 맹자 ; 이루상 ; 11+11

     『○ 맹자 ; 이루상 ; 12+12

     『○ 맹자 ; 이루상 ; 13+13

     『○ 맹자 ; 이루상 ; 14+14

     『○ 맹자 ; 이루상 ; 15+15

     『○ 맹자 ; 이루상 ; 16+16

     『○ 맹자 ; 이루상 ; 17+17

     『○ 맹자 ; 이루상 ; 18+18

     『○ 맹자 ; 이루상 ; 19+19

     『○ 맹자 ; 이루상 ; 20+20

     『○ 맹자 ; 이루상 ; 21+21

     『○ 맹자 ; 이루상 ; 22+22

     『○ 맹자 ; 이루상 ; 23+23

     『○ 맹자 ; 이루상 ; 24+24

 

     『○ 맹자 ; 이루상 ; 25+25

     『○ 맹자 ; 이루상 ; 26+26

     『○ 맹자 ; 이루상 ; 27+27

     『○ 맹자 ; 이루상 ; 28+28

 

*맹자 ; 이루상 ; 1

 

▣ 제1(第一章)

 

孟子曰 離婁之明公輸子之巧로도 不以規矩면 不能成方員()』이요 師曠之聽으로도 不以六律이면 不能正五音이요 堯舜之道로도 不以仁政이면 不能平治天下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루(離婁)의 눈밝음과 공수자(公輸子)의 솜씨로도 규구(規矩)를 쓰지 않으면 방형(方形)과 원형(圓形)을 이루지 못하고, 사광(師曠)의 귀밝음으로도 육률(六律)을 쓰지 않으면 오음(五音)을 바로잡지 못하고, ()•순()의 도()로도 인정(仁政)을 쓰지 않으면 천하(天下)를 평치(平治)할 수 없다.”』

 

離婁古之明目者公輸子名班이니 魯之巧人也所以爲員之器也所以爲方之器也師曠晉之樂師知音者也六律截竹爲큞하여 陰陽各六하여 以節五音之上下하니 黃鍾, 大簇, 姑洗, , 夷則, 無射爲陽이요 大呂, 夾鍾, 仲呂, 林鍾, 南呂, 應鍾爲陰也五音, , , , 羽也范氏曰 此言 治天下에 不可無法度仁政者治天下之法度也니라』

 

『  이루(離婁)는 옛날에 눈이 밝은 자이다. 공수자(公輸子)는 이름이 반()이니, ()나라의 솜씨 있는 사람이다.

()는 원형(圓形)을 만드는 기구요, ()는 방형(方形)을 만드는 기구이다. 사광(師曠)은 진()나라의 악사(樂師)로 음악을 잘 아는 자이다. 육률(六律)은 대나무를 잘라 대통을 만든 것으로, ()•양()이 각각 여섯 개여서 오음(五音)의 높고 낮음을 조절하는 것이니, 황종(黃鍾)•태주(大簇)•고선(姑洗)•유빈()•이칙(夷則)•무역(無射)은 양()이 되고, 대려(大呂)•협종(夾鍾)•중려(仲呂)•임종(林鍾)•남려(南呂)•응종(應鍾)은 음()이 된다. 오음(五音)은 궁()•상()•각()•치()•우()이다.

『  범씨(氾氏)가 말하였다. “이는 천하(天下)를 다스림에 법도(法度)가 없을 수 없으니, 인정(仁政)은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今有仁心仁聞이로되 而民被其澤하여 不可法於後世者는 不行先工之道也일새니라』

 

『  이제 <군주(君主)> 인심(仁心)과 인문(仁聞)이 있으면서도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하여 후세에 법이 될 수

없는 것은 선왕(先王)의 도()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仁心愛人之心也仁聞者有愛人之聲聞於人也先王之道仁政是也范氏曰 齊宣王은 不忍一牛之死하여 以羊易之하니 可謂有仁心이요 梁武帝終日一食蔬素하고 宗廟爲犧牲하며 斷死刑必爲之涕泣하여 天下知其慈仁하니 可謂有仁聞이라 然而宣王之時齊國하고 武帝之末江南大亂하니 其故何哉有仁心仁聞而行先王之道故也니라』

 

『  인심(仁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인문(仁聞)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명성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선왕(先王)의 도()는 인정(仁政)이 이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제선왕(齊宣王)은 한 마리 소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양()으로써 바꾸게 하였으니, 인심(仁心)이 있다고 이를 만하고, 양무제(梁武帝)는 하루에 한 번만 먹되 소식(素食)을 하고 종묘(宗廟)에는 밀가루로 희생(犧牲)을 만들어 썼으며, 사형(死刑)을 결단함에는 반드시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 천하가 그의 인자(仁慈)함을

알고 있었으니, 인문(仁聞)이 있다고 이를 만하였다. 그러나 선왕(宣王) 때에 제()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못하였고,

무제(武帝)의 말기에 강남(江南)이 크게 혼란하였으니, 그 연고는 무엇인가? 인심(仁心)과 인문(仁聞)이 있었으나 선왕(先王)의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曰 徒善이 不足以爲政이요 徒法이 不能以自行이라하니라』

 

『  그러므로 말하기를 ‘한갓 선심(善心)만 가지고는 정사를 할 수 없으며, 한갓 법()[제도(制度)]』만 가지고는

스스로 행해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猶空也有其心, 無其政是謂徒善이요 有其政, 無其心是謂徒法이라 程子嘗言 爲政須要有綱紀文章이니 『謹權, 審量, 讀法, 平價:근권』를 可闕이라하시고 而又曰 必有關雎麟趾:관저인지』之意然後可以行周官:주관』之法度라하시니 正謂此也니라』

 

『  도()는 공()과 같으니, 선심(善心)만 있고 선정(善政)[제도(制度)]』이 없는 것을 도선(徒善)이라 이르고, 선정(善政)만 있고 선심(善心)이 없는 것을 도법(徒法)이라 이른다. 정자(程子)가 일찍이 말씀하기를 “정사를 함에는 모름지기 기강(紀綱)과 문장(文章)이 있어야 하니, 저울을 삼가고 양()을 살피며 법()을 읽고 물가(物價)를 공평(公平)하게 함을 모두 빼놓을 수 없다.”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반드시 〈관저(關雎)〉 〈인지(麟趾)〉의 뜻이 있은 뒤에야 《주관(周官)》의 법도(法度)를 시행할 수 있다.” 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씀한 것이다.

 

詩云 率由舊章이라하니 遵先王之法而過者未之有也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잘못되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음은 옛 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선왕(先王)

()을 따르고서 잘못되는 자는 있지 않다.

 

大雅假樂之篇이라 過也循也典法也所行이 不過差, 遺忘者以其循用舊典故也니라』

 

 

『  시()는 〈대아(大雅) 가락편(假樂篇)〉이다. ()은 잘못이요, ()은 따름이다. ()은 전법(典法)이다.

행하는 바가 잘못되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옛 법을 따라 쓰기 때문이다.

 

聖人旣竭目力焉하시고 繼之以規矩準繩하시니 以爲方員平直에 不可勝用也旣竭耳力焉하시고 繼之以六律하시니 正五音에 不可勝用也旣竭心思焉하시고 繼之以忍人之政하시니 而仁覆()天下矣시니라』

 

『  성인(聖人)은 이미 시력(視力)을 다하시고 규()•구()•준()•승()으로써 계속하시니, ()•원()•평()•직()을 만듦에 이루 다 쓸 수 없으며, 이미 청력(聽力)을 다하시고 육률(六律)로써 계속하시니, 오음(五音)을 바로잡음에 이루 다 쓸 수 없으며, 이미 심사(心思)를 다하시고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정사로써 계속하시니, ()이 천하에 덮였다.

 

所以爲平이요 所以爲直이라 被也言 古之聖人旣竭耳目心思之力하시되 이나 猶以爲未足以天下及後世制爲法度하여 以繼續之하시니 則其用하여 而仁之所被者廣矣니라』

 

『  준()[수평기(水平器)]』은 평평한 것을 만드는 것이요, ()[먹줄]』은 곧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는 입힘이다. 이는 옛날 성인(聖人)이 이미 이()•목()•심사(心思)의 힘을 다하시되 그러나 오히려 천하(天下)에 두루하고 후세(後世)에 미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셨다. 이 때문에 법도(法度)를 만들어 계속하시니, 그 쓰임이 다하지 않아

()이 입혀짐이 넓음을 말씀한 것이다.

 

曰 爲高하되 必因丘陵하며 爲下하되 必因川澤이라하니 爲政하되 不因先王之道可謂智乎아』

 

『  그러므로 ‘높은 것을 만들되 반드시 구릉(丘陵)을 이용하고, 낮은 것을 만들되 반드시 천택(川澤)을 이용하라.’ 하였으니, 정사를 하면서 선왕(先王)의 도()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지혜롭다 이를 수 있겠는가.

 

丘陵本高하고 川澤本下하니 爲高下者因之則用力少而成功多矣鄒氏曰 自章首至此論以仁心仁聞行先王之道하니라』

 

『  구릉(丘陵)은 본래 높고 천택(川澤)은 본래 낮으니, 높은 것과 낮은 것을 만드는 자가 이것을 이용하면, 힘을 씀이

적고도 공()을 이룸이 많다.

『  추씨(鄒氏)가 말하였다. “장()의 머리로부터 여기까지는 인심(仁心)과 인문(仁聞)으로써 선왕(先王)의 도()

행함을 말씀하였다.”』

 

是以惟仁者宜在高位니 不仁而在高位播其惡於衆也니라』

 

『  이 때문에 오직 인자(仁者)만이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니, 불인()하면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 이는 그

()[폐해]』을 여러 사람에게 펴는 것이다.

 

 

仁者有仁心仁聞而能擴而充之하여 以行先王之道者也播惡於衆謂貽患於下也라』

 

『  인자(仁者), 인심(仁心)과 인문(仁聞)이 있으면서 이것을 확충(擴充)하여 선왕(先王)의 도()를 행하는 자이다.

파악어중(播惡於衆)은 환()[()]』을 아랫사람에게 끼침을 이른다.

 

上無道揆也하며 下無法守也하여 信道하며 信度하여 君子犯義하고 小人犯刑이면 國之所存者幸也니라』

 

『  위에서는 도()로 헤아림이 없으며, 아래에서는 법()을 지킴이 없어, 조정에서는 도()를 믿지 않으며 관리들은 법도(法度)를 믿지 아니하며, 군자(君子)[정치가(政治家)]』가 의()를 범하고, 소인(小人)이 법()을 범한다면,

그러고도 나라가 보존되는 것은 요행이다.

 

仁而在高位之禍也義理地度也制度也道揆謂以義理度量事物而制其宜法守謂以法度自守官也卽法也君子, 小人以位而言也由上無道揆故下無法守하나니 無道揆則朝信道하여 而君子犯義하고 無法守則工信度하여 而小人犯刑이라 有此六者其國必亡이니 亡者僥倖而已니라』

 

『  이는 불인()하면서 높은 지위에 있는 화()를 말씀한 것이다. ()는 의리(義理)이다. ()는 헤아림이다.

()은 제도(制度)이다. 도규(道揆)는 의리(義理)로써 사물(事物)을 헤아려 마땅하게 하는 것이요. 법수(法守)는 법도(法度)로써 스스로 지킴을 이른다. ()은 관원이다. ()는 바로 법()이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지위로써

말한 것이다. 위에서 도()로 헤아림이 없기 때문에 아래에서 법()을 지킴이 없는 것이니, ()로 헤아림이 없으면 조정에서 도()를 믿지 아니하여 군자(君子)가 의()를 범하고, ()을 지킴이 없으면 관리들이 법도(法度)를 믿지

아니하여 소인(小人)이 형법(刑法)을 범하게 된다. 이 여섯 가지를 갖고 있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니, 그러고도 망하지 않는 것은 요행일 뿐이다.

 

曰 城郭하며 兵甲非國之災也田野不µ?하며 貨財非國之害也上無禮하며 下無學이면 賊民興하여 『喪無日矣:상무일의』라하니라』

 

『  그러므로 말하기를 ‘성곽(城郭)이 완전하지 못하고 병사(兵士)가 많지 못한 것이 나라의 재앙이 아니며, 전야(田野)가 개간되지 못하고 재화가 모이지 않는 것이 나라의 해가 아니다. 윗사람이 예()가 없고, 아랫사람이 배움이 없으면, 나라를 해치는 백성이 나와서 며칠이 못 가 망하게 된다.’ 한 것이다.

 

知禮則無以敎民이요 知學이면 則易與爲亂이라 鄒氏曰 自是以惟仁者至此所以責其君이니라』

 

 

『  윗사람이 예()를 모르면 백성을 가르칠 수 없고, 아랫사람이 배울 줄 모르면 난()[반란]』에 가담하기 쉽다.

『  추씨(鄒氏)가 말하였다. “‘시이유인자(是以惟仁者)’로부터 여기까지는 그 군주를 책하신 것이다.”』

 

詩曰 天之方蹶시니 無然泄泄라하니』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바야흐로 <()나라 왕실(王室)> 쓰러뜨리려 하니, 그렇게 예예(泄泄)하지 말라.’ 하였으니,

 

大雅板之篇이라 顚覆之意泄泄怠緩悅從之貌言 天欲顚覆周室하니 群臣無得泄泄然急救正之니라』

 

『  시()는 〈대아(大雅) 판편(板篇)〉이다. ()는 전복의 뜻이다. 예예(泄泄)는 게으르고 느슨하며 기뻐하여 따르는 모양이다. 하늘이 주()나라 왕실(王室)을 전복시키려 하니, 신하들은 예예(泄泄)하여 급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泄泄猶沓沓也니라』

 

『  예예(泄泄)는 답답(沓沓)과 같다.

 

沓沓卽泄泄之意蓋孟子時人語如此라』

 

『  답답(沓沓)은 바로 예예(泄泄)의 뜻이니, 맹자(孟子) 당시 사람들의 말이 이와 같았다.

 

事君無義하며 進退無禮하고 言則非先王之道者 猶沓沓也니라』

 

『  인군(人君)을 섬김에 의()가 없고 진퇴(進退)함에 예()가 없으며, 말을 하면 선왕(先王)의 도()를 비방하는

자가 답답(沓沓)히 함과 같은 것이다.

 

는 캛毁也라』

 

『  비()는 비방함이다.

 

曰 責難於君謂之恭이요 陳善閉邪謂之敬이요 吾君謂之賊이라하니라』

 

『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인군(人君)에게 책하는 것을 공()이라 이르고, ()한 것을 말하여 사심(邪心)을 막는

것을 경()이라 이르고, 우리 군주는 불가능하다 하는 것을 적()[해침]』이라 이른다.’ 한 것이다.”』

 

 

范氏曰 人臣以難事責於君하여 使其君爲堯舜之君者尊君之大也開陳善道하여 以禁閉君之邪心하여 惟恐其君或陷於有過之地者敬君之至也謂其君能行善道하여 以告者賊害其君之甚也니라』

鄒氏曰 自詩云天之方蹶至此所以責其臣이니라』

『○ 鄒氏曰 此章言 爲治者當有仁心仁聞하여 以行先王之政이요 而君臣又當各任其責也니라』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신하가 어려운 일을 군주에게 책하여, 그 군주로 하여금 요()•순()과 같은 성군(聖君)이 되게 하는 자는 군주를 높임이 큰 것이요, 선도(善道)를 개진(開陳)하여 군주의 사심(邪心)을 막아, 행여 그 군주가 과실이 있는 곳에 빠질까 두려워하는 자는 군주를 공경함이 지극한 것이요, 군주가 선도(善道)를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말하지 않는 자는 그 군주를 해침이 심한 것이다.”』

『  추씨(鄒氏)가 말하였다. “시운천지방궤(詩云天之方蹶)로부터 여기까지는 그 신하를 책하신 것이다.”』

『  ○ 추씨(鄒氏)가 말하였다. “이 장()은 정치를 하는 자는 마땅히 인심(仁心)과 인문(仁聞)을 지니고서 선왕(先王)의 정사를 행해야 하며, 군주와 신하가 또한 마땅히 각기 그 책임을 져야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2

 

▣ 제2(第二章)

 

孟子曰 規矩方員之至也聖人人倫之至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규()•구()는 방형(方形)과 원형(圓形)의 지극함이요, 성인(聖人)은 인륜(人倫)

지극함이다.

 

極也人倫說見前篇하니라 規矩盡所以爲方員之理하니 猶聖人盡所以爲人之道니라』

 

『  지()는 지극함이다. 인륜(人倫)은 해설이 전편(前篇)[등문공상(¦!文公上)]』에 보인다. ()•구()는 방()•원()을 만드는 이치를 다한 것이니, 마치 성인(聖人)이 사람이 된 도리(道理)를 다함과 같은 것이다.

 

欲爲君인댄 盡君道欲爲臣인댄 盡臣道二者皆法堯舜而已矣니 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이면 不敬其君者也요 不以堯之所以治民으로 治民이면 賊其民者也니라』

 

『  군주가 되고자 할진댄 군주의 도리를 다할 것이요, 신하가 되고자 할진댄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하니, 두 가지를

모두 요()•순()을 법받을 뿐이다. ()이 요()를 섬기던 것으로써 군주를 섬기지 않는다면, 그 군주에게 불경

()하는 자요, ()가 백성을 다스리던 것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그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

 

 

法堯舜以盡君臣之道猶用規矩以盡方員之極이니 孟子所爾性善而稱堯舜也시니라』

 

『  요()•순()을 법받아 군()•신()의 도리(道理)를 다함은, ()•구()를 사용하여 방()•원()의 지극함을

다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맹자(孟子)께서 성선(性善)을 말씀하면서 요()•순()을 칭()하신 소이(所以)이다.

 

孔子曰 道二仁與仁而已矣라하시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길은 둘이니, ()과 불인()일 뿐이다.’ 하셨다.

 

法堯舜이면 則盡君臣之道而仁矣요 不法堯舜이면 則慢君賊民而仁矣二端之外更無他道出乎此則入乎彼矣謹哉아』

 

『  요()•순()을 법받으면 군()•신()의 도리(道理)를 다하여 인()할 것이요, ()•순()을 법받지 않으면

군주에게 불경()하고 백성을 해쳐 불인()할 것이니, 이 두 가지 이외에 다시 다른 길이 없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저기로 들어가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暴其民이면 則身弑國亡하고 不이면 則身危國削하나니 名之曰幽쪵면 雖孝子慈孫이라도 百世에 不能改也니라』

 

『  백성을 포악히 함이 심하면 몸이 시해를 당하고 나라가 망하며, 심하지 않으면 몸이 위태롭고 나라『[국토]』가

줄어든다. 그리하여 유()•여()라 이름하면, 비록 효자(孝子)•자손(慈孫)이 있더라도 백세(百世)토록 고칠 수 없다.

 

이요 쪵는 이니 皆惡諡也苟得其實이면 則雖有孝子慈孫愛其祖考之甚者라도 得廢公義而改之

仁之禍必至於此하니 可懼之甚也니라』

 

『  유()는 어둠이요, ()는 사나움이다. 다 나쁜 시호이다. 만일 그 실제를 얻는다면 비록 그 조()•고()를 심히 사랑하는 효자(孝子)•자손(慈孫)이 있더라도 공의(公義)를 폐하고 시호를 고칠 수 없다. 불인()의 화()가 반드시 이에 이르니, 두려워할 만함이 심함을 말씀한 것이다.

 

詩云 殷鑑하여 在夏后之世라하니 此之謂也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 하후(夏后)의 세대에 있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大雅蕩之篇이라 言 商紂之所當鑑者近在夏桀之世라하니 而孟子引之世하여 又欲後人以幽爲鑑也시니라』

 

 

『  시()는 〈대아(大雅) 탕편(蕩篇)〉이다. 상주(商紂)가 마땅히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 가까이 하걸(夏桀)의 세대에 있다고 말하였는데, 맹자(孟子)는 이것을 인용하여, 또 후인들이 유왕(幽王)과 여왕()으로써 거울을 삼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3

 

▣ 제3(第三章)

 

孟子曰 三代之得天下也以仁이요 其失天下也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삼대(三代)가 천하(天下)를 얻은 것은 인()으로써 였고, 천하(天下)를 잃은 것은

불인()으로써 였다.”』

 

三代謂夏, , 周也, , 以仁得之하고 , , •쪵는 仁失之라』

 

『  삼대(三代)는 하()•상()•주()를 이른다. ()의 우왕(禹王), ()의 탕왕(湯王), ()의 문왕(文王)•무왕

(武王)은 인()으로써 얻었고, ()의 걸왕(桀王), ()의 주왕(紂王), ()의 유왕(幽王)•여왕()은 불인()으로써 잃었다.

 

國之所以廢興存亡者亦然하니라』

 

『  나라가 폐()•흥()하고 존()•망()함도 또한 그러하다.

 

謂諸侯之國이라』

 

『  국()은 제후(諸侯)의 나라를 이른다.

 

天子이면 不保四海하고 諸侯이면 不保社稷하고 卿大夫이면 不保宗廟하고 士庶人이면 不保四體니라』

 

『  천자(天子)가 불인()하면 사해(四海)를 보전하지 못하고, 제후(諸侯)가 불인()하면 사직(社稷)을 보전하지 못하고, 경대부(卿大夫)가 불인()하면 종묘(宗廟)를 보전하지 못하고, 사서인(士庶人)이 불인()하면 사체(四體)[사지(四肢)]』를 보전하지 못한다.

 

言必死亡이라』

 

『  반드시 죽고 망함을 말씀한 것이다.

 

惡死亡而樂하나니 是猶惡醉而强酒니라』

 

 

『  지금에 죽고 망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불인()을 좋아하니, 이는 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술을 억지로 마시는

것과 같다.”』

 

承上章之意而推言之也니라』

 

『  이는 위 장()의 뜻을 이어 미루어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4

 

▣ 제4(第四章)

 

孟子曰 愛人이어든 反其仁하고 治人어든 反其智하고 禮人이어든 反其敬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더든 그 인()을 돌이켜보고, 사람을 다스

려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그 지()를 돌이켜보고, 사람에게 예()를 해도 답례하지 않거든 그 경()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我愛人而人親我則反求諸己하니 恐我之仁未至也智敬放此하니라』

 

『  내가 남들을 사랑해도 남들이 나를 친히 하지 않거든 자신에게 돌이켜 찾아야 하니, 이것은 나의 인()이 지극

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이다. ()와 경()도 이와 같다.

 

行有得者어든 皆反求諸己其身正而天下歸之니라』

 

『  행하고도 얻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자신에게 돌이켜 찾아야 하니, 자신이 바루어지면 천하가 돌아오는 것이다.

 

『不得其所欲이니 , , 是也反求諸己謂反其仁, 反其智, 反其敬也如此則自治益詳하여 而身無正矣리라 天下歸之極言其效也라』

 

『  부득()은 자기의 소욕(所欲)[소원(所願)]』을 얻지 못함을 이르니, 예컨대 불친()•불치()•부답() 같은 것이 이것이다. 반구저기(反求諸己)는 반기인(反其仁)•반기지(反其智)•반기경(反其敬)을 이른다. 이와 같이 하면

스스로 다스림이 더욱 치밀하여 몸이 바르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천하가 돌아온다는 것은 그 효험을 지극히 말씀한 것이다.

 

詩云 永言配命自求多福이라하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길이 천명(天命)에 배합하기를 생각함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다.

하였다.”』

 

解見前篇하니라』

『○ 亦承上章而言이니라』

 

『  해석이 전편(前篇)[공손추상(公孫丑上)]』에 보인다.

『  ○ 또한 위 장()을 이어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5

 

▣ 제5(第五章)

 

孟子曰 人有恒言하되 皆曰天下國家라하나니 天下之本在國하고 國之本在家하고 家之本在身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천하(天下)•국()•가()’라 하나니, 천하(天下)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몸에 있는 것이다.”』

 

常也雖常言之而未必知其言之有序也推言之하고 而又以家本乎身也亦承上章而推言之하니 大學所謂自天子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爲本爲是故也니라』

 

『  항()은 항상이다. 비록 항상 말하고 있으나, 그 말에 순서가 있음을 반드시 알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미루어 말씀

하시고, 또 집을 몸에 근본한 것이다.

『  이 장()도 또한 상장(上章)을 이어 미루어 말씀하였으니, 《대학(大學)》에 이른바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맹자 ; 이루상 ; 6

 

▣ 제6(第六章)

 

孟子曰 爲政이 不하니 不得罪於巨室이니 巨室之所慕一國慕之하고 一國之所慕天下慕之하나니 沛然德敎溢乎四海하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정사를 하기가 어렵지 않으니, 거실(巨室)[대신(大臣)의 집안]』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거실(巨室)의 사모하는 바를 일국(一國)이 사모하고, 일국(一國)의 사모하는 바를 천하(天下)가 사모한다. 그러므로 패연(沛然)한 덕교(德敎)가 사해(四海)에 넘치는 것이다.”』

 

 

巨室은 『世臣大家:세신대가』得罪謂身正而取怨怒也麥丘邑人祝齊桓公曰 願主君無得罪於群臣百姓이라하니 意蓋如此向也心悅誠服之謂也沛然盛大流行之貌充滿也蓋巨室之心難以力服이요 而國人素所取信이니 今旣悅服이면 則國人皆服하여 而吾德敎之所施可以無遠而至矣亦承上章而言이니 蓋君子患人心之服矣이요 而患吾身之하나니 吾身旣修則人心之難服者先服하여 而無一人之服矣리라』

『○ 林氏曰 戰國之世諸侯失德하여 巨室擅權하니 爲患甚矣이나 或者修其本학고 而遽欲勝之則未必能勝而適以取禍孟子推本而言 惟務修德以服其心이니 彼旣悅服이면 則吾之德敎無所留촦하여 可以及乎天下矣라하시니라 裴度所謂 韓洪輿疾討賊하고 承宗斂手削地非朝廷之力制其死命:제기사명』이요 特以處置得宜하여 能服其心故爾라하니 政此類也니라』

 

『  거실(巨室)은 세신(世臣)과 대가(大家)이다. 득죄(得罪)는 몸이 바르지 못하여 원망과 노여움을 취하는 것이다.

맥구읍(麥丘邑) 사람이 제환공(齊桓公)에게 축원하기를 ‘주군(主君)께서는 군신(群臣)과 백성(百姓)들에게 잘못을 짓지 마소서.’ 하였으니, 그 뜻이 이와 같은 것이다. ()는 향()함이니, 마음으로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함을 이른다. 패연(沛然)은 성대히 유행하는 모양이다. ()은 충만(充滿)이다. 거실(巨室)의 마음은 힘으로 복종시키기 어려우며, 국민들이 평소 신임을 취하는 바인데, 이제 이미 기뻐하고 복종한다면 국민들이 모두 복종하여 나『[군주]』의 덕교(德敎)의 베풂이 먼 곳까지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  이 또한 상장(上章)을 이어 말씀한 것이니, 군자(君子)는 인심(人心)이 복종하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닦여지지 않음을 걱정한다. 자신의 몸이 이미 닦여지면, 복종시키기 어려운 인심(人心)이 먼저 복종하여 한 사람도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전국(戰國) 시대에 제후(諸侯)가 덕()을 잃어 거실(巨室)이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여, 병폐가 심하였다. 그러나 혹자가 그 근본『[]』을 닦지 않고 갑자기 이기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기지 못하고 다만

()를 취할 뿐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근본을 미루어 말씀하시기를 ‘오직 덕()을 닦아 그 마음을 복종시키기를 힘써야 하니, 저들이 이미 기뻐하고 복종한다면 나의 덕교(德敎)가 멈추고 막히는 바가 없어 천하에 미칠 수 있다.

하신 것이다. 배도(裵度)의 이른바 ‘한홍(韓洪)이 병()을 무릅쓰고 수레에 올라 역신(逆臣)을 토벌하고, 왕승종(王承宗)이 손을 거두고 땅을 떼어가게 한 것은, 조정의 힘이 사명(死命)을 쥐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조정의> 처치(處置)가 마땅함을 얻어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켰기 때문일 뿐이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종류이다.”』

 

 

*맹자 ; 이루상 ; 7

 

▣ 제7(第七章)

 

孟子曰 天下有道에는 小德役大德하며 小臣役大賢하고 天下無道에는 小役大하며 弱役强하나니 斯二者天也順天者하고 逆天者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을 때에는 소덕(小德)이 대덕(大德)에게 사역을 당하고 소현(小賢)이 대현(大賢)에게 사역을 당하며,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에는 작은 자가 큰 자에게 사역을 당하고 약자가 강자에게

사역을 당한다. 이 두 가지는 천리(天理)이니, 천리(天理)를 순종하는 자는 보존되고, 천리(天理)를 거스리는 자는 망한다.”』

 

有道之世에는 人皆修德하여 而位必稱其德之大小하고 天下無道에는 修德하니 則但以力相役而已天者理勢之當然也라』

 

『  도()가 있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덕()을 닦아 지위가 반드시 그 덕()의 크고 작음에 걸맞고, 천하에

()가 없을 때에는 사람들이 덕()을 닦지 않으니, 다만 힘으로써 서로 사역시킬 뿐이다. ()은 이()와 세()[형세]』의 당연함이다.

 

齊景公曰 旣能令하고 受命이면 絶物也라하고 涕出而女於吳하니』

 

『  제경공(齊景公)이 말하기를 ‘이미 <국세가 약하여> 명령하지도 못하고 또 명령을 받지도 않는다면 이는 남과 끊는 것이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오()나라에 딸을 시집보내었다.

 

引此以言小役大, 弱役强之事也出令以使人也受命聽命於人也猶人也以女與人也蠻夷之國也景公羞與爲昏이나 而畏其强이라 涕泣而以女與之하니라』

 

『  이것을 인용하여 소역대(小役大), 약역강(弱役强)의 일을 말씀한 것이다. ()은 명령을 내어 남을 부리는 것이요, 수명(受命)은 남에게 명령을 듣는 것이다. ()은 인()[]』과 같다. ()는 딸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나라는 오랑캐 나라였으므로, 경공(景公)이 그와 더불어 혼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나, 그의 강함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준 것이다.

 

今也小國師大國而恥受命焉하나니 是猶弟子而恥受命於先師也니라』

 

『  지금 약소국(弱小國)이 강대국(强大國)의 소행을 본받으면서 명령받기를 부끄러워하니, 이는 제자(弟子)가 선사

(先師)[선생(先生)]』에게 명령받기를 부끄러워함과 같은 것이다.

 

言 小國이 不修德以自强하고 其般樂怠敖皆若效大國之所爲者而獨恥受其敎命하니 不可得也라』

 

『  약소국(弱小國)이 덕()을 닦아 스스로 강하게 하지 않고, 즐겁게 놀며 태만히 행동하는 것은 모두 강대국(强大國)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하고 본받으면서, 유독 그 가르침과 명령받기를 부끄러워하니 이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如恥之인댄 莫若師丈王이니 師文王이면 大國五年이요 小國七年必爲政於天下矣리라』

 

『  만일 그것을 부끄러워할진댄 문왕(文王)을 본받는 것만 못하니, 문왕(文王)을 본받으면, 대국(大國)5, 소국

(小國)7년이면 반드시 천하에 정사를 하게 될 것이다.

 

因其愧恥之心而勉以修德也文王之政布在方策하니 擧而行之所謂師文王也五年, 七年以其所乘之勢同爲差蓋天下雖無道이나 修德之至則道自我行하여 而大國反爲吾役矣리라 程子曰, 五年, 七年聖人度()其時則可矣이나 凡此類學者皆當思其作爲如何라야 乃有益耳니라』

 

『  이는 그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인하여 덕()을 닦는 것으로써 권면한 것이다. 문왕(文王)의 정사가 방책(方策)

[서책(書冊)]』에 나와 있으니, 이것을 들어 행하면 이른바 ‘문왕(文王)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5, 7년은 타고 있는 세()의 똑같지 않음으로써 차등을 삼을 것이다. 천하가 비록 무도(無道)하나 덕()을 닦기를 지극히 하면 도()

나로부터 행해져서 대국(大國)이 도리어 나에게 사역을 당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5, 7년은 성인(聖人)이 그때쯤이면 가능하다고 헤아리신 것이다. 그러나 무릇 이러한 유()들은 배우는 자가 모두 마땅히 어떻게 작위(作爲)[조처와 시행]』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詩云 商之孫子 其麗이언마는 上帝旣命이라 侯于周服이로다 侯服于周하니 天命靡常이라 殷士膚敏裸將于京이라하여늘 孔子曰 仁可爲衆也夫國君好仁이면 天下無敵이라하시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상()나라의 자손(子孫)이 그 수가 억() 뿐만이 아니지만, 상제(上帝)가 이미 <천명

(天命)을 주()나라에> 명한지라, ()나라에 복종하는구나! ()나라에 복종하니, 천명(天命)은 항상 하지 않는다. ()나라 선비로서 부대(膚大)하고 통달한 자들이 <()나라> 서울에서 술을 부어 제사를 돕는다.’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仁者)에게는 많은 무리가 될 수 없으니, 나라의 군주가 인()을 좋아하면 천하

(天下)에 대적할 이가 없다.’ 하셨다.

 

大雅文王之篇이라 孟子引此詩及孔子之言하여 以言文王之事하시니라 數也十萬曰億이라 維也商士商孫子之臣也大也達也宗廟之祭以鬱鬯之酒灌地而降神也助也言 商之孫子衆多하여 其數但十萬而已언마는 上帝旣命周以天下하니 則凡此商之孫子 皆臣服于周矣所以然者以天命하여 歸于有德故也是以商士之膚大而敏達者皆執裸獻之禮하여 助王祭事于周之京師也孔子因讀此詩而言하시되 有仁者則雖有十萬之衆이라도 不能當之國君好仁이면 則必無敵於天下也라하시니라 『不可爲衆猶所謂難爲兄, 難爲弟:불가위중』云爾라』

 

 

『  시()는 〈대아(大雅) 문왕편(文王篇)〉이다. 맹자(孟子)께서 이 시()와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하여 문왕(文王)의 일을 말씀하였다. ()는 수()이다. 10()을 억()이라 한다. ()는 유()[어조사]』이다. 상사(商士)는 상()나라 자손(子孫)의 신하이다. ()는 큼이요, ()은 통달함이다. ()은 종묘(宗廟)의 제사에 울창주(鬱鬯酒)[울창술]』를 땅에 부어 신()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은 도움이다. ()나라의 자손(子孫)이 많아서 그

수가 비단 10()일 뿐이 아니지만, 상제(上帝)가 이미 주()나라에게 천하를 명하시니, 모든 이 상()나라의 자손(子孫)들이 다 주()나라에 신하로 복종하였다. 그러한 까닭은 천명(天命)이 무상(無常)하여 덕()이 있는 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르므로 상()나라 선비로서 부대(膚大)하고 민달(敏達)한 자들이 모두 강신제(降神祭)를 올리는 예()를 지켜 주왕(周王)의 제사를 주()나라 경사(京師)[서울]』에서 돕는 것이다.

『  공자(孔子)께서는 이 시()를 읽음으로 인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仁者)가 있으면 비록 10()의 많은 무리가

있을지라도 그를 당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국군(國君)이 인()을 좋아하면 반드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것이다.

하셨다. 불가위중(可爲衆)은 이른바 ‘형 되기가 어렵고 아우 되기가 어렵다.’는 말과 같다.

 

今也欲無敵於天下而下以仁하나니 是猶執熱而以濯也詩云 誰能執熱하여 以濯이리오하니라』

 

『  이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으니, 이는 뜨거운 물건을 손에 쥐고서 물로 씻지 않는 것과 같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누가 뜨거운 물건을 쥐고도 물로 씻지 않겠는가.’ 하였다.”』

 

恥受命於大國是欲無敵於天下也乃師大國而師文王以仁也大雅桑柔之篇이라 語辭也

言 誰能執持熱物하여 以水自濯其手乎아』

『○ 此章能自强이면 則聽天所命이요 修德行仁이면 則天命在我니라』

 

『  대국(大國)에게 명령받기를 부끄러워함은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요, 강대국(强大國)의 소행을 본받고 문왕(文王)을 본받지 않음은 이는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는 〈대아(大雅) 상유편(桑柔篇)〉이다.

()는 어조사이다. 누가 능히 뜨거운 물건을 쥐고서도 물로써 그 손을 씻지 않겠는가 하고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은 스스로 강해지지 못하면 하늘의 명하는 바를 들을 수밖에 없고, ()을 닦고 인정(仁政)을 행하면 천명(天命)이 자신에게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8

 

▣ 제8(第八章)

 

孟子曰 仁者可與言哉安其危而利其퀫하여 樂其所以亡者하나니 不仁而可與言이면 則何亡國敗家之有리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불인()한 자와 더불어 말할 수 있겠는가. 위태로움을 편안히 여기고, 재앙을 이롭게 여겨, 망하게 되는 짓을 좋아한다. 불인()하면서도 더불어 말할 수 있다면 어찌 나라를 망하게 하고 집안을 패하게 하는 일이 있겠는가.”』

 

安其危, 利其는 不知其爲危퀫하고 而反以爲安利也所以亡者荒暴淫虐:황포음학』하여 所以致亡之道也라 不仁之人私欲固蔽하여 失其本心이라 其顚倒錯亂至於如此하니 所以可告以忠言而卒至於敗亡也니라』

 

『  안기위(安其危), 이기치(利其)는 그 위태로움과 재앙이 됨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편안하고 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소이망(所以亡)은 황포(荒暴)하고 음학(淫虐)하여 패망에 이르는 방도를 이른다. 불인()한 사람은 사욕에

굳게 가리워져 본심(本心)을 잃는다. 그러므로 전도(顚倒)하고 착란(錯亂)함이 이와 같음에 이르니, 이 때문에 충언

(忠言)으로써 고해 줄 수 없어 끝내 패망에 이르는 것이다.

 

有孺子歌曰 滄浪之水淸兮어든 可以濯我纓이요 滄浪之水濁兮어든 可以濯我足이라하여늘』

 

『  유자(孺子)[동자(童子)]』가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나의 <소중한>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滄浪)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더러운> 발을 씻겠다.’ 하였다.

 

滄浪水名이라 冠系也라』

 

『  창랑(滄浪)은 물 이름이다. ()은 갓끈이다.

 

孔子曰 小子聽之하라 淸斯濯纓이요 濁斯濯足矣로소니 自取之也라하시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小子)들아 저 노래를 들어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하니, 이는 물이 자취(自取)하는 것이다.’ 하셨다.

 

言 水之淸濁有以自取之也聖人聲入心通하여 無非至理此類可見이니라』

 

『  물의 맑고 흐림은 그것을 자취(自取)함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성인(聖人)은 소리가 <귀에> 들어가면 마음으로

통달하여, 지극한 이치 아님이 없음을 이러한 유()에서 볼 수 있다.

 

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하며 家必自毁而後人毁之하며 國必自伐而後人伐之하나니라』

 

『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패가(敗家)한 뒤에 남이 그를

패가(敗家)하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하는 것이다.

 

所謂自取之者라』

 

 

『  이른바 자취(自取)한다는 것이다.

 

太甲曰 天作孼猶可違어니와 自作孼은 不可活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  〈태갑(太甲)〉에 이르기를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거니와,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하여> 살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解見前篇하니라』

『○ 此章言 心存則有以審夫得失之幾요 不存則無以辨於存亡之著禍福之來皆其自取니라』

 

『  해석이 전편(前篇)[공손추상(公孫丑上)]』에 보인다.

『  ○ 이 장()은 마음이 보존되면 득실(得失)의 기미를 살필 수 있고, 보존되지 않으면 존망(存亡)이 드러난 것도

분별할 수 없으니, 화복(禍福)의 유래가 모두 자취(自取)임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9

 

▣ 제9(第九章)

 

孟子曰 桀紂之失天下也失其民也失其民者失其心也得天下有道하니 得其民이면 斯得天下矣리라 得其民有道하니 得其心이면 斯得民矣리라 得其心有道하니 所欲與之聚之所惡勿施爾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걸()•주()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니, 백성을 잃었다는 것은

그 마음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음에 길이 있으니,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다. 백성을 얻음에 길이 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백성을 얻을 것이다. 마음을 얻음에 길이 있으니, 원하는 바를 주어서 모이게 하고, 싫어하는 바를

베풀지 말아야 한다.

 

民之所欲皆爲致之如聚斂然하고 民之所惡則勿施於民이니 켒錯所謂 人情欲壽어늘 三王生之而하고 人情欲富어늘 三王厚之而하고 人情欲安이어늘 三王扶之而하고 人情欲逸이어늘 三王節其力而이라하니 此類之謂也니라』

 

 

『  백성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주기를 취렴(聚斂)[재물을 모음]』하듯이 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바를 백성들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조조()의 이른바 ‘사람의 마음은 장수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삼왕(三王)은 그들을

살게 하고 상하지 않게 하며, 사람의 마음은 부유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삼왕(三王)<백성들의 생활을> 후하게 해주고 곤궁하지 않게 하며, 사람의 마음은 편안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삼왕(三王)은 백성들을 붙들어 주고 위태롭지 않게 하며, 사람의 마음은 몸이 편함을 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삼왕(三王)은 백성들의 힘을 절제하고 다하지 않게 했다.’는 것은 이러한 유()를 말한 것이다.

 

民之歸仁也猶水之就下하며 獸之走壙也니라』

 

『  백성이 인자(仁者)에게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며 짐승이 들로 달아나는 것과 같다.

 

廣野也言 民之所以歸乎此以其所欲之在乎此也니라』

 

『  광()은 넓은 들이다. 백성이 이 곳『[인자(仁者)]』에 돌아가는 까닭은 그들의 원하는 바가 이 곳에 있기 때문임을 말씀한 것이다.

 

爲淵魚者獺也爲叢()는 컎爲湯武民者桀與紂也니라』

 

『  그러므로 못을 위하여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요, 나무숲을 위하여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요, ()•무()를 위하여 백성을 몰아준 자는 걸()•주()이다.

 

深水也食魚者也茂林也라 컎은 食雀者也言 民之所以去此以其所欲在彼而所畏在此也니라』

 

『  연()은 깊은 물이다. ()은 고기를 잡아먹는 짐승이다. ()은 무성한 숲이다. ()은 참새를 잡아먹는

새이다. 백성들이 이 곳을 떠나가는 까닭은 그들의 원하는 바가 저 곳에 있고 두려워하는 바가 이 곳에 있기 때문임을

말씀한 것이다.

 

今天下之君有好仁者則諸侯皆爲之리니 雖欲無王이나 不可得已니라』

 

『  이제 천하의 군주 중에 인()을 좋아하는 자가 있으면 제후(諸侯)들이 모두 그를 위하여 <백성을> 몰아줄 것이니, 비록 왕노릇을 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이다.

 

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爲이면 終身하리니志於仁이면 終身憂辱하여 以陷於死亡하리라』

 

『  지금에 왕노릇 하고자 하는 자는 7년 된 병에 3년 묵은 약쑥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만일 <지금 약쑥을 뜯어> 저축해 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얻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인정(仁政)에 뜻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근심하고 치욕을 받아 죽고 망함에 이를 것이다.

 

 

草名이니 所以灸者乾久益善이라 夫病已深而欲求乾久之艾固難卒辦이라 이나 自今畜之則猶或可及이어니와 不이면 則病日益深하고 死日益迫하여도 而艾終可得矣리라』

 

『  애()는 풀 이름이니, 뜸을 하는 것인데, 말린 지가 오랠수록 <약효가> 더욱 좋다. 병이 이미 깊었는데, 말린 지가 오래된 약쑥을 구하려면 진실로 갑자기 장만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뜯어서 저축해 두면 오히려 미쳐 고칠

수 있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날로 더욱 깊어지고 죽음이 날로 더욱 임박하여도 쑥은 끝내 얻지 못할 것이다.

 

詩云 其何能淑이리오 載胥及溺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어찌 능히 선()할 수 있으리오, 곧 서로 빠짐에 미친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大雅桑柔之篇이라 善也則也相也言 今之所爲其何能善이리오 則相引以陷於亂亡而已니라』

 

『  시()는 〈대아(大雅) 상유편(桑柔篇)〉이다. ()은 선()이다. ()는 즉()[]』이다. ()는 서로이다. 지금에 하는 바가 그 어찌 선()할 수 있겠는가. 곧 서로 이끌고서 혼란과 멸망에 빠질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0

 

▣ 제10(第十章)

 

孟子曰 自暴者는 不可與有言也自棄者는 不可與有爲也言非禮義謂之自暴也吾身能居仁由義謂之自棄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스스로 해치는 자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스스로 버리는 자는 더불어 일할 수 없으니, 말할 때에 예의(禮義)를 비방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이르고, 내 몸은 인()에 거()하고 의()를 따를 수 없다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 이른다.”』

 

猶害也猶毁也自害其身者는 不知禮義之爲美而非毁之하니 雖與之言이라도 見信也自棄其身者猶知仁義之爲美로되 但溺於怠惰하여 自謂必能行이니 與之有爲라도 能勉也程子曰 人苟以善自治則無可移者雖昏愚之至라도 皆可漸磨而進也惟自暴者拒之以하고 自棄者絶之以하나니 雖聖人與居라도 不能化而入也此所謂下愚之:하우지불이』니라』

 

 

『  포()는 해()[해침]』와 같고, ()는 훼()[비방]』와 같다. 스스로 그 몸을 해치는 자는 예의(禮義)

아름다움이 됨을 알지 못하고 비방하니, 비록 그와 더불어 말하더라도 반드시 신임을 받지 못할 것이요, 스스로 그 몸을 버리는 자는 오히려 인의(仁義)가 아름다움이 됨을 알되, 다만 게으름에 빠져 반드시 행할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할 것이니 그와 더불어 일하더라도 반드시 힘쓰지 못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이 만일 선()으로써 스스로 다스리면 옮길 수 없는 자가 없으니, 비록 혼우(昏愚)함이 지극하더라도 모두 점점 연마하여 나아갈 수 있다. 오직 자포(自暴)하는 자는 막고 믿지 않으며, 자기(自棄)하는 자는 끓고『[체념하고]』 하지 않으니, 비록 성인(聖人)과 더불어 거처하더라도 교화하여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이 이른바 ‘하우불이(下愚)’ 라는 것이다.”』

 

人之安人之正路也라』

 

『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宅은 已見前篇하니라 義者宜也乃天理之當行이요 無人欲之邪曲이라 曰正路라하니라』

 

『  인택()은 이미 전편(前篇)[공손추상(公孫丑上)]』에 보인다. ()는 마땅하게 함이니, 바로 천리(天理)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요, 인욕(人欲)의 사곡(邪曲)함이 없다. 그러므로 정로(正路)라 한 것이다.

 

曠安而弗居하며 舍正路而하나니 哀哉라』

 

『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애처롭다.”』

 

空也行也라』

『○ 此章言 道本固有로되 而人自絶之하니 是可哀也聖賢之深戒學者所當猛니라』

 

『  광()은 공()[비움]』이요, ()는 행함이다.

『  ○ 이 장()은 도()가 본래 고유(固有)하되 사람이 스스로 끊으니, 이는 슬퍼할 만함을 말씀한 것이다.

이는 성현(聖賢)의 깊은 경계이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크게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1

 

▣ 제11(第十一章)

 

孟子曰 道在爾()而求諸遠하며 事在易而求諸難하나니 人人親其親하며 長其長이면 而天下平하리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도()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먼 곳에서 구하며, 일이 쉬운 데 있는데도 어려운

데에서 찾는다. 사람마다 각기 그 어버이를 친히 하고 그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평해질 것이다.”』

 

親長在人爲甚邇하고 親之長之在人爲甚易而道初外是也舍此而他求則遠且難而反失之但人人各親其親하고 各長其長이면 則天下自平矣리라』

 

『  친()[어버이]』과 장()[어른]』은 사람에 있어 매우 가까움이 되며, 친히 하고 어른으로 섬김은 사람에 있어 매우 쉬움이 되는데, ()는 애당초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버리고 다른 데서 구하면 멀고 또 어려워서 도리어 잃게 된다. 다만 사람마다 각기 그 어버이를 친히 하고, 그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저절로 평해질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2

 

▣ 제12(第十二章)

 

孟子曰 居下位而獲於上이면 可得而治也리라 獲於上有道하니 不信於友弗獲於上矣리라 信於友有道하니 事親弗悅이면 弗信於友矣리라 悅親有道하니 反身이면 不悅於親矣리라 誠身有道하니 不明乎善이면 不誠其身矣리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래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 길이 있으니,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믿음을 받는데 길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쁨을 받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 길이 있으니, 몸을 돌이켜봄에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기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몸을 성실히 하는데 길이 있으니, ()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

 

獲於上得其上之信任也實也反身反求諸身而其所以爲善之心實也라 不明乎善은 不能卽事窮理하여 無以眞知善之所在也游氏曰 欲誠其意인댄 先致其知니 不明乎善이면 不誠乎身矣學至於誠身이면 則安往而致其極哉리오 以內則順乎親이요 以外則信乎友以上則可鎰君이요 以下則可鎰民矣리라』

 

『  획어상(獲於上)은 윗사람의 신임을 얻는 것이다. ()은 성실함이다. 반신불성(反身)은 자기 몸에 돌이켜 찾아봄에 선()을 하려는 마음이 성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불명호선(明乎善)은 사물에 나아가 이()를 궁구하지

못하여, ()의 소재(所在)를 참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유씨(游氏)가 말하였다. “그 뜻을 성실히 하려고 할진댄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여야 하니, ()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 학문이 몸을 성실히 함에 이르면 어디를 간들 그 지극함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안으로는 어버이에게 순하고, 밖으로는 벗에게 믿음을 받고, 위로는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민심을 얻을 것이다.”』

 

是故誠者天之道也思誠者人之道也니라』

 

『  이르므로 <자연스럽게> 성실히 함은 하늘의 도(), 성실히 할 것을 생각함은 사람의 도()이다.

 

誠者理之在我者皆實而無僞天道之本然也思誠者欲此理之在我者皆實而無僞人道之當然也라』

 

『  성()은 나에게 있는 이()를 모두 성실히 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니, 천도(天道)의 본연(本然)이요, 사성(思誠)

이 나에게 있는 이()를 모두 성실히 하여 거짓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인도(人道)의 당연(當然)함이다.

 

至誠而動者 未之有也니 不이면 未有能動者也니라』

 

『  지극히 성실하고서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으니, 성실하지 못하면 능히 남을 감동시킬 자가 있지

않다.”』

 

極也楊氏曰 動便是驗處若獲乎上, 信乎友, 悅於親之類是也니라』

『○ 此章述中庸孔子之言하니 見思誠爲修身之本이요 而明善又爲思誠之本이니 乃子思所聞於曾子而孟子所受乎子思者亦與大學相表裏하니 學者宜潛心焉이니라』

 

『  지()는 지극함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동()[감동시킴]』은 바로 효험이 나는 곳이니, 획호상(獲乎上), 신호우(信乎友), 열어친(悅於親)과 같은 종류가 이것이다.”』

『  ○ 이 장()은 《중용(中庸)》에 있는 공자(孔子)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니, 사성(思誠)은 수신(修身)의 근본이 되고 명선(明善)은 또 사성(思誠)의 근본이 됨을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자사(子思)가 증자(曾子)에게 들으신 것이요, 맹자(孟子)가 자사(子思)에게 전수 받은 것이다. 또한 《대학(大學)》과 서로 표리(表裏)가 되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마음을 잠겨 두어야 할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3

 

▣ 제13(第十三章)

 

孟子曰 伯夷µ?()하여 居北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歸乎來리오 吾聞西伯善養老者라하며 太公µ?하여 居東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歸乎來리오 吾聞西伯善養老者라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백이(伯夷)가 주왕(紂王)을 피하여 북해(北海)의 가에 살더니,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흥기(興起)하여 말씀하기를 ‘내 어찌 그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 들으니, 서백(西伯)[문왕(文王)]』은 늙은 자를 잘 봉양한다.’ 하였으며, 태공(太公)이 주왕(紂王)을 피하여 동해(東海)의 가에 살더니,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흥기 하여 말씀하기를 ‘내 어찌 그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 들으니, 서백(西伯)은 늙은 자를 잘 봉양한다.’ 하였다.”』

 

, 皆起也라 탍은 西伯卽文王也紂命爲西方諸侯之長하여 得專征伐이라 稱西伯이라 太公姜姓이요 呂氏名尙이라 文王發政必先鰥寡孤獨하시고 庶人之老皆無凍¥#伯夷, 太公來就其養이요 非求仕也니라』

 

『  작()•흥()은 모두 일어남이다. ()은 어찌 아니이다. 서백(西伯)은 바로 문왕(文王)이니, 주왕(紂王)<문왕(文王)> 명령하여 서방(西方)에 있는 제후(諸侯)의 우두머리로 삼아 정벌(征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에 서백(西伯)이라 칭한 것이다. 태공(太公)은 강성(姜姓)이요 여씨(呂氏)이며, 이름이 상()이다. 문왕(文王)은 정사를 폄에 반드시 환()[홀아비]』•과()[과부]』•고()[고아]』•독()[무의탁자]』을 우선하셨고, 서인(庶人)의 노인들도 모두 얼고 굶주리는 자가 없게 하였다. 그러므로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이 와서 그의 봉양에 나아간 것이요, 벼슬을 구한 것이 아니다.

 

二老者天下之大老也而歸之하니 天下之父歸之也天下之父歸之어니 其子焉往이리오』

 

『  두 노인들은 천하(天下)의 대로(大老)인데 문왕(文王)에게 돌아갔으니, 이는 천하의 아버지가 문왕(文王)에게 돌아간 것이다. 천하의 아버지가 돌아갔으니, 그 자제들이 <문왕(文王)에게 돌아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는가.

 

二老伯夷, 太公也大老言非常人之老者天下之父言齒德皆尊하여 如衆父然이라 旣得其心이면 則天下之心이 不能外矣니라 蕭何所謂 養民致賢하여 以圖天下者其意暗與此合이라 但其意則有公私之辨하니 學者又察也니라』

 

『  이로(二老)는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이다. 대로(大老)는 보통사람의 늙은이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천하의 아버지’란 연치(年齒)와 덕()이 모두 높아서 여러 사람들의 아버지와 같은 것이니, 이미 그의 마음을 얻었다면 천하의 마음이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소하(蕭何)의 이른바 ‘백성을 기르고 현자(賢者)를 초치하여 천하를 도모한다.’는 것이 그 뜻이 은연중 이와 합한다. 다만 그 뜻에 공()•사()의 구별이 있으니, 배우는 자들이 또 이것을 살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諸侯有行文王之政者七年之內必爲政於天下矣리라』

 

 

『  제후(諸侯)가 능히 문왕(文王)의 정사를 행하는 자가 있으면 7년 이내에 반드시 천하에 정사를 할 것이다.”』

 

七年以小國而言也大國五年在其中矣니라』

 

『  7년은 소국(小國)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대국(大國) 5년은 그 안에 들어 있다.

 

 

*맹자 ; 이루상 ; 14

 

▣ 제14(第十四章)

 

孟子曰 求也爲季氏宰:구야위계씨재』하여 無能改於其德이요 而賦粟倍他日한대 孔子曰 求非我徒也로소니

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구()가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어 그의 덕()[마음씨와 행실]』을 고치지 못하고 곡식『[세금]』을 취한 것이 타일(他日)보다 배가(倍加)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구()는 나의 무리가 아니니, 소자(小子)들아 북을 울리면서 공토(攻討)[성토(聲討)]』하는 것이 가()하다.’ 하셨다.”』

 

孔子弟子­2季氏魯卿이라 家臣이라 猶取也取民之粟倍於他日也小子弟子也鳴鼓而攻之聲其罪而責之也라』

 

『  구()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염구(­2)이다. 계씨(季氏)는 노()나라 경()이다. ()는 가신(家臣)이다.

()는 취()[취함]』와 같으니, 백성의 곡식을 취함이 다른 날보다 배가(倍加)한 것이다. 소자(小子)는 제자(弟子)이다. 북을 울리며 공토(攻討)한다는 것은 그 죄를 소리로 말하고 꾸짖는 것이다.

 

由此觀之컨대 行仁政而富之皆棄於孔子者也況於爲之强戰하여 爭地以戰殺人盈野하며 爭城以戰

殺人盈城이온여 此所謂率土地而食人肉이라 容於死니라』

 

『  이것을 가지고 본다면 군주가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는데 그 군주를 부유하게 하면 모두 공자(孔子)에게 버림을

받을 자인 것이다. 하물며 군주를 위하여 억지로 싸워서, 땅을 다투어 싸움에 사람을 죽인 것이 들에 가득하며, ()을 다투어 싸움에 사람을 죽인 것이 성()에 가득함에 있어서랴! 이는 이른바 토지(土地)를 따라『[위하여]』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니, 죄가 죽음을 받아도 용서되지 못할 것이다.

 

林氏曰 富其君者奪民之財耳로되 而夫子猶惡之하시니 況爲土地之故而殺人하여 使其肝腦塗地則是率土地而食人之肉이라 其罪之大雖至於死라도 足以容之也니라』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그 군주를 부유하게 한 자는 백성의 재물을 빼앗을 뿐인데도 부자(夫子)[공자(孔子)]』가 오히려 미워하셨으니, 하물며 토지(土地)<빼앗으려는> 연고 때문에 사람을 죽여 간()과 뇌()를 땅에 바르게 한다면, 이는 토지(土地)를 따라 사람의 고기를 먹는 짓이니, 그 죄의 큼이 비록 죽음에 이르러도 오히려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善戰者服上刑하고 連諸侯者次之하고 µ?草萊任土地者次之니라』

 

『  그러므로 전투를 잘하는 자가 상형(上刑)[극형]』을 받아야 하고, 제후들과 <외교(外交)를 잘하여> 연합하는

자가 다음의 형()을 받아야 하고, 풀밭과 쑥밭을 개간하여 <백성들에게> 토지(土地)를 맡겨주는 자가 다음의 형()

을 받아야 한다.

 

善戰如孫ª$, 吳起之徒連結諸侯如蘇秦, 張儀之類라 µ?開墾也任土地謂分土授民하여 使任耕稼之責이니 如李盡地力촗『開阡陌:개천맥』之類也라』

 

『  전투를 잘한다는 것은 손빈(ª$)•오기(吳起)와 같은 무리요, 제후를 연결한다는 것은 소진(蘇秦)•장의(張儀)와 같은 무리이다. (µ?)은 개간함이다. 임토지(任土地)는 땅을 나누어 백성들에게 주어서 밭 갈고 벼 심는 책임을 맡게 하는

것이니, 이회()가 지력(地力)을 다하여 생산력(生産力)을 높이고, 상앙()이 천맥(阡陌)의 제도를 열어 놓은 것과 같은 따위이다.

 

 

*맹자 ; 이루상 ; 15

 

▣ 제15(第十五章)

 

孟子曰 存乎人者 莫良於眸子하니 眸子能掩其惡하나니 胸中正이면 則眸子瞭焉하고 胸中이면 則眸子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에게 보존되어 있는 것『[신기(神氣)]』은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눈동자는 그의 악()을 가리우지 못한다. 가슴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가슴속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善也眸子目瞳子也明也라 쭪蒙蒙하여 明之貌蓋人與物接之時其神在目이라 胸中正則神精而明하고 不正則神散而昏이니라』

 

『  양()은 좋음이다. 모자(眸子)는 눈의 동자이다. ()는 밝음이다. ()는 몽몽(蒙蒙)[가리움]』하여 눈이 밝지 못한 모양이다. 사람이 사물과 접할 때에 그 신()이 눈에 있기 때문에 가슴속이 바르면 신()이 정()하여 <눈동자가>밝고, 가슴속이 바르지 못하면 신()이 흩어져 <눈동자가> 밝지 못한 것이다.

 

聽其言也觀其眸子人焉리오』

 

 

『  그의 말을 들어보고 그의 눈동자를 관찰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첦는 匿也言亦心之所發이라 幷此以觀이면 則人之邪正을 不可匿矣이나 言猶可以僞爲어니와 眸子則有容僞者니라』

 

『  수()는 숨김이다. 말도 또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까지 아울러『[겸하여]』 관찰한다면 사람의 사악함과 바름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말은 오히려 거짓으로 잘할 수 있지만, 눈동자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6

 

▣ 제16(第十六章)

 

孟子曰 恭者는 不侮人하고 儉者는 不奪人하나니 侮奪人之君惟恐順焉이어니 惡得爲恭儉이리오 恭儉豈可以聲音笑貌爲哉리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공손한 자는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한 자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남을 업신여기고 빼앗는 군주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니, 어찌 공손함과 검소함을 할 수 있겠는가. 공손함과 검소함을 어찌 음성이나 웃음과 모양으로써 <꾸며서> 할 수 있겠는가.”』

 

惟恐言恐人之順己聲音笑貌僞爲於外也라』

 

『  유공불순(惟恐)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까 두려워함을 말한다. 성음소모(聲音笑貌)는 거짓으로

외면에만 하는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7

 

▣ 제17(第十七章)

 

淳于曰 男女授受禮與잇가 孟子曰 禮也니라 曰 嫂溺則援之以手乎잇가 曰 嫂溺이면 豺狼也男女授受禮也嫂溺이어든 援之以手者權也니라』

 

『  순우곤(淳于)이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 하고 묻자, 맹자(孟子)께서 “예()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제수(弟嫂)가 우물에 빠지면 손으로써 구원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대답하시기를 “제수(弟嫂)가 물에 빠졌는데도 구원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랑(豺狼)[승냥이]』이니,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음은 예()이고, 제수(弟嫂)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써 구원함은 권도(權道)이다.” 하셨다.

 

 

淳于이요 쥁은 이니 齊之辯士與也取也古禮男女親授受하니 以遠別也하니라 救之也稱鍾也稱物輕重而往來以取中者也權而得中이면 是乃禮也니라』

 

『  순우(淳于)는 성()이요, ()은 이름이니, ()나라의 변사(辯士)이다. ()는 줌이요, ()는 취함이다.

고례(古禮)에 남녀가 물건을 친히 주고받지 않았으니, 이는 남녀의 분별을 멀리『[크게]』하려고 해서이다.

()은 구원함이다. ()은 저울과 저울추이니, 물건의 경중(輕重)을 저울질하여 왔다갔다해서 맞음을 취하는

것이다. 상황을 저울질하여 중도(中道)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예()이다.

 

曰 今天下溺矣어늘 夫子之何也잇고』

 

『  <순우곤(淳于)> 말하였다. “지금 천하가 도탄에 빠졌는데, 부자(夫子)께서 구원하지 않으심은 어째서입니까?”』

 

言 今天下大亂하여 民曹陷溺하니 亦當從權以援之요 不可守先王之正道也라』

 

『  지금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백성들이 함정에 빠지고 물에 빠짐을 당하니, 또한 마땅히 권도(權道)를 따라 이들을

구원하여야 할 것이요, 선왕(先王)의 정도(正道)만을 지켜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曰 天下溺이어든 援之爾嫂溺이어든 援之以手子欲手援天下乎아』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가 도탄에 빠지거든 도()로써 구원하고, 제수(弟嫂)가 물에 빠지거든 손으로써 구원하는 것이니, 자네는 손으로 천하를 구원하고자 하는가.”』

 

言 天下溺惟道可以非若嫂溺可手援也今子欲援天下하되 乃欲使我枉道求合하니 則先失其所以援之之具矣是欲使我以手援天下乎아』

『○ 此章言 直己守道所以濟時枉道徇人徒爲失己니라』

 

『  ‘천하가 도탄에 빠졌을 때에는 오직 도()만이 이를 구원할 수 있으니, 제수(弟嫂)가 물에 빠졌을 때에 손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제 자네는 천하를 구원하고자 하면서 마침내 나로 하여금 도()를 굽혀 <제후왕에게> 영합하기를 구하게 하려 하니, 이렇게 되면 먼저 구원할 수 있는 도구『[()]』를 잃는 것이다. 자네는 나로 하여금 손으로써 천하를 구원하게 하고자 하는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은 자신을 곧게 하고 도()를 지킴이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니, ()를 굽혀 남을 따름은 다만 자신의 지조를 잃음이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8

 

▣ 제18(第十八章)

 

公孫丑曰 君子之敎子何也잇고』

 

『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군자(君子)<직접> 아들을 가르치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不親敎也라』

 

『  친히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孟子曰 勢行也니라 敎者必以正이니 以正이어든 繼之以怒하고 繼之以怒則反夷矣夫子敎我以正하시되 夫子未出於正也라하면 則是父子相夷也父子相夷則惡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세()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올바른 길로써 하는데, 올바른 길로써 가르쳐 행해지지 않으면 노함이 뒤따르고, 노함이 뒤따르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된다. <자식이 생각하기를> ‘부자(夫子)[아버지]』께서 나를 바른 길로써 가르치시지만 부자(夫子)<행실이> 바른 길에서 나오지 못하신다.’ 한다면, 이는 부자간에 서로 <의를> 상하는 것이니, 부자간에 서로 상함은 나쁜 것이다.”』

 

傷也敎子者本爲愛其子也로되 繼之以怒則反傷其子矣父旣傷其子하면 子之心又責其父曰 夫子敎我以正道하시되 而夫子之身未必自行下道라하면 則是子又傷其父也니라』

 

『  이()는 상함이다. 자식을 가르침은 본래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나, 노함이 뒤따르면 도리어 그 자식을 상하게 한다. 아버지가 이미 자식을 상하게 하면, 자식의 마음에 또 그 아버지를 꾸짖기를 ‘부자(夫子)께서는 나를 바른 길로써 가르치시되, 부자(夫子) 자신도 반드시 스스로 바른 길을 행하지 못한다.’ 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이는 또 자식이 그

아버지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古者易子而敎之하니라』

 

『  옛날에는 아들을 서로 바꾸어 가르쳤었다.

 

易子而敎所以全父子之恩하고 而亦失其爲敎니라』

 

 

『  아들을 서로 바꾸어 가르침은, 부자간의 은혜를 온전히 하면서도 또한 가르침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父子之間은 不責善이니 責善則離하나니 離則莫大焉이니라』

 

『  부자간에는 선()으로 책하지 않는 것이니, ()으로 책하면 <()> 떨어지게 된다. ()이 떨어지면 불상()[나쁨]』함이 이보다 더 큼이 없는 것이다.”』

 

責善朋友之道也라』

『○ 王氏曰 父有爭子何也所謂爭者非責善也則爭之而已矣니라 父之於子也如何曰 當則亦戒之而已矣니라』

 

『  선()으로 책함은 붕우간(朋友間)의 도리(道理)이다.

『  ○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아버지는 간하는 자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간한다.’는 것은 책선(責善)이 아니요, 불의()를 당하면 간할 뿐이다. 아버지가 자식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의()를 당하면 또한 경계할 뿐인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19

 

▣ 제19(第十九章)

 

孟子曰 事孰爲大事親爲大하니라 守孰爲大守身爲大하니라 不失其身而能事其親者吾聞之矣失其身而能事其親者吾未之聞也로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섬기는 일 중에 무엇이 가장 큼이 되는가? 어버이를 섬김이 큼이 된다. 지키는 일 중에 무엇이 가장 큼이 되는가? 몸『[몸의 지조]』을 지킴이 큼이 된다. 몸의 지조를 잃지 않고서 그 어버이를 잘 섬긴 자는 내가 들었고, 몸을 잃고서 그 어버이를 잘 섬긴 자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守身持守其身하여 使陷於義也一失其身이면 則虧體辱親하니 雖日用三牲之養이라도 足以爲孝矣니라』

 

『  수신(守身)은 그 몸을 잘 지켜 불의()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 번 그 몸을 잃으면 몸을 훼손하고 어버이를 욕되게 하니, 비록 하루에 세 짐승『[소•양•돼지]』의 봉양을 올리더라도 족히 효()라 할 수 없을 것이다.

 

爲事리오마는 事親事之本也爲守리오마는 守身守之本也니라』

 

『  <섬기는 일 중에> 무엇인들 섬김이 되지 않겠는가마는 어버이를 섬김이 섬김의 근본이요 <지키는 일 중에> 무엇인들 지킴이 되지 않겠는가는 몸을 지킴이 지킴의 근본이다.

 

 

事親孝忠可移於君이요 順可移於長:충가이어군』이며 身正이면 則家齊國治而天下平이니라』

 

『  어버이를 섬기기를 효()로 하면, 충성을 군주에게 옮길 수 있고 순종함을 어른『[상관(上官)]』에게 옮길 수 있으며, 몸이 바루어지면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나라가 다스려져 천하가 평할 것이다.

 

曾子養曾晳하시되 必有酒肉이러시니 將徹할새 必請所與하시며 問有餘어든 必曰有라하시다 曾晳死어늘 曾元養曾子하되 必有酒肉하더니 將徹할새 不請所與하며 問有餘어시든 曰亡()라하니 將以復進也此所謂養口體者也若曾子則可謂養志也니라』

 

『  증자(曾子)께서 증석(曾晳)을 봉양할 적에 <밥상에> 반드시 주육(酒肉)이 있었는데, 장차 밥상을 치울 적에 <증자(曾子)> 반드시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하고 청하였으며, <증석(曾晳)> ‘남은 것이 있느냐?’ 하고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증석(曾晳)이 죽자, 증원(曾元)이 증자(曾子)를 봉양하였는데, <밥상에> 반드시 주육(酒肉)이 있었다. 그러나 밥상을 치울 적에 <증원(曾元)>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하고 청하지 않았으며, <증자(曾子)> ‘남은 것이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 반드시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이는 그 음식을 다시 올리려고 해서였다.

이것은 이른바 ‘구체(口體)만을 봉양한다.’는 것이니, 증자(曾子)와 같이 하면 ‘뜻을 봉양한다.’고 이를 만하다.

 

承上文事親言之曾晳名點이니 曾子父也曾元曾子子也曾子養其父할새 每食必有酒肉이러시니 食畢將徹去할새 必請於父曰 此餘者與誰오하며 或父問此物尙有餘否어든 必曰有라하시니 恐親意更欲與人也曾元은 不請所與하고 雖有라도 言無하니 其意將以復進於親이요 不欲其與人也但能養父母之口體而已曾子則能承順父母之志하여 忍傷之也시니라』

 

『  이는 위 글에 어버이 섬김을 이어서 말씀한 것이다. 증석(曾晳)의 이름은 점()이니 증자(曾子)의 아버지요, 증원(曾元)은 증자(曾子)의 아들이다. 증자(曾子)가 아버지를 봉양하실 적에 밥을 먹을 때마다 반드시 주육(酒肉)이 있었는데

밥을 다 먹고 밥상을 치울 때에 반드시 아버지『[증석(曾晳)]』에게 청하시기를 ‘이 남은 것을 누구에게 주시렵니까?’ 하였으며, 혹 아버지가 이 물건이 아직 남은 것이 있느냐?’ 하고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셨으니, 이는

어버이의 뜻이 다시 남에게 주시려고 하는가 해서였다. 증원(曾元)은 줄 것을 청하지 않으며, 비록 남은 것이 있어도

‘없다.’고 대답하였으니, 이는 장차 어버이에게 다시 올리고 남에게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으니, 이는 다만 부모

(父母)의 구체(口體)만 봉양하였을 뿐이다. 증자(曾子)인즉 부모(父母)의 뜻을 이어 받들어 차마 상하게 하지 못하신

것이다.

 

事親若曾子者可也니라』

 

『  어버이 섬김을 증자(曾子)와 같이 하는 것이 가()하다.”』

 

 

言 當如曾子之養志요 不可如曾元但養口體니라 程子曰 子之身所能爲者皆所當爲無過分之事也事親若曾子可謂至矣어늘 而孟子止曰可也라하시니 『豈以曾子之孝爲有餘哉:기이증자지효위유여재』리오』

 

『  마땅히 증자(曾子)와 같이 뜻을 봉양할 것이요, 증원(曾元)처럼 단지 구체(口體)만 봉양해서는 안됨을 말씀한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자식의 몸에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자식이 당연히 해야 할 바이니, 분수에 지나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어버이 섬김을 증자(曾子)와 같이 하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한데도 맹자(孟子)께서 다만 ‘가()하다.’고 하신 것이니, 어찌 증자(曾子)의 효()를 유여(有餘)[지극함]』하다 하겠는가.”』

 

 

*맹자 ; 이루상 ; 20

 

▣ 제20(第二十章)

 

孟子曰 人足與適也[]間也惟大人이아 爲能格君心之非君仁이면 이요 君義君正이면 이니 一正君而國定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등용한> 인물을 군주와 더불어 <일일이 다> 허물『[지적]』할 수 없으며, <잘못된> 정사를 <일일이 다> 흠잡을 수 없다. 오직 대인(大人)이어야 군주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 군주가 인()해지면 <모든 일이> ()하지 않음이 없고, 군주가 의()로워지면 <모든 일이> ()롭지 않음이 없고, 군주가 바르게

되면 <모든 일이> 바르지 않음이 없으니, 한 번 군주의 마음을 바루면 나라가 안정된다.”』

 

趙氏曰 適過也非也正也徐氏曰 格者物之所取正也書曰 格其非心이라하니라 愚謂 間字上亦當有與字言 人君用人之非를 不足過ú#이요 行政之失을 不足非間이라 惟有大人之德이면 則能格君心之하여 以歸于正하여 而國無治矣라 『大人:대인』大德之人이니 正己而物正者也니라』

『○ 程子曰 天下之治亂繫乎人君之仁與仁耳心之非卽害於政이니 不待乎發之於外也昔者에 『孟子三見齊王而言事:맹자삼견제왕이불언사』어시늘 門人疑之한대 孟子曰 我先攻其邪心이라하시니 心旣正而後天下之事可從而理也夫政事之失用人之非知者能更之하고 直者能諫之이나 非心存焉이면 則事事而更之라도 後復有其事하여 勝其更矣人人而去之라도 後復用其人하여 勝其去矣是以輔相之職必在乎格君心之非然後無所이요 而欲格君心之非者非有大人之德이면 則亦莫之能也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적()은 허물 함이요, ()은 비난함이다. ()은 바로잡음이다.”』

『  서씨(徐氏)가 말하였다. “격()은 물건이 바름을 취하는 것이니,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그 나쁜 마음을 바로

잡는다.’ 하였다.”』

 

『  내가 생각건대 간자(間字) 위에도 마땅히 여자(與字)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인군(人君)의 인물 등용의 잘못을 족히

허물 할 수 없으며 행정(行政)의 잘못을 족히 흠잡을 수 없다. 오직 <신하가> 대인(大人)의 덕()이 있으면 능히 군주의 마음의 부정()한 것을 바로잡아 정()으로 돌아가게 해서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대인(大人)이란, 대덕(大德)의 사람이니, 자기 몸을 바룸에 남이 저절로 바루어지는 자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천하(天下)의 다스려짐과 혼람함은 인군(人君)의 마음이 인()한가 불인()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마음의 나쁨은 바로 정사에 해를 끼치니, 밖에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옛날에 맹자(孟子)께서 세 번 제왕(齊王)을 만나보시고도 정사를 말씀하시지 않으니, 문인(門人)들이 의심하였다. 이에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먼저 그 사심(邪心)을 다스린다.’ 하였다. 마음이 이미 바루어진 뒤에야 천하의 일을 따라서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정사의 잘못과 인물 등용의 잘못은, 지혜로운 자『[신하]』는 능히 고치고, 충직(忠直)한 자는 능히 간한다.

그러나 군주에게 나쁜 마음이 남아 있으면 일마다 고치더라도 뒤에 다시 그러한 일이 있어서 장차 이루 다 고치지 못할 것이요, 사람마다 제거하더라도 뒤에 다시 그러한 인물을 등용하여 장차 이루 다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므로 보상(輔相)[보필]』하는 대신(大臣)의 직책은 반드시 군주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음에 있는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는 바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군주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대인(大人)의 덕()이 있지 않으면 또한 이것을 능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21

 

▣ 제21(第二十一章)

 

孟子曰 有虞之譽하며 有求全之毁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예상하지 못한 칭찬이 있으며, 완전함을 구하다가 받는 비방이 있다.”』

 

()呂氏曰 行足以致譽而偶得譽是謂虞之譽求免於毁而反致毁是謂求全之毁言 毁譽之言未必皆實이니 修己者는 不可以是遽爲憂喜觀人者는 不可以是輕爲進退니라』

 

『  우()는 헤아림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행실이 칭찬을 불러올 만하지 못한데도 우연히 칭찬을 얻는 것을 불우지예(虞之譽)

이르고, 비방을 면하기를 구하다가 도리어 비방을 불러옴을 구전지훼(求全之毁)라 이른다. 비방하고 칭찬하는 말이

반드시 다 진실된 것은 아니니, 몸을 닦는 자가 이것『[훼예(毁譽)]』로써 대번에 근심하거나 기뻐해서는 안될 것이요, 사람을 관찰하는 자가 이것으로써 가벼이 올리거나 물리쳐서는 안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22

 

 

▣ 제22(第二十二章)

 

孟子曰 人之易其言也無責耳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꾸짖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人之所輕易其言者以其未曹失言之責故耳蓋常人之情無所懲於前이면 則無所警於後하니 非以爲君子之學

必俟有責而後敢易其言也이나 此豈亦有爲而言:유위이언』之與인저』

 

『  사람이 그 말을 가벼이 하고 함부로 하는 까닭은 실언(失言)의 꾸짖음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인(常人)

()은 앞에서 징계한 바가 없으면 뒤에 경계하는 바가 없다. 군자(君子)의 학문이 반드시 꾸짖음이 있기를 기다린

뒤에 감히 그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이유가 있어서 하신 말씀일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23

 

▣ 제23(第二十三章)

 

孟子曰 人之患在好爲人師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들의 병통은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함에 있다.”』

 

王勉曰 學問有餘하여 人資於己어든 不得已而應之可也어니와 若好爲人師則自足而復有進矣人之大患也니라』

 

『  왕면(王勉)이 말하였다. “학문(學問)이 유여(有餘)[충분]』하여 남들이 자기에게 의뢰하거든 부득이 응함은 가()하거니와, 만일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한다면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여 다시는 진전이 있지 못할 것이니, 이는

사람들의 큰 병통이다.”』

 

 

*맹자 ; 이루상 ; 24

 

▣ 제24(第二十四章)

 

樂正子從於子敖하여 之齊러니』

 

『  악정자(樂正子)가 자오(子敖)를 따라 제()나라에 갔었다.

 

 

子敖王驩라』

 

『  자오(子敖)는 왕환(王驩)의 자()이다.

 

樂正子見孟子한대 孟子曰 子亦來見我乎曰 先生何爲出此言也시니잇고 曰 子來幾日矣曰 昔者니이다 曰 昔者則我出此言也 亦宜乎曰 舍館未定이러이다 曰 子聞之也舍館定然後求見長者乎아』

 

『  악정자(樂正子)가 맹자(孟子)를 뵙자, 맹자(孟子)께서 “자네도 나를 찾아와 보는가?” 하시니, “선생(先生)은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였다. “자네가 이 곳에 온 지가 며칠인가?”하고 물으시자, “전일(前日)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전일(前日)이라면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시자, “머무를 관사(館舍)를 정하지 못해서였습니다.”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자네는 들었는가? 관사(館舍)를 정한 뒤에 장자(長者)[어른]』를 찾아본다 하던가?”』

 

昔者前日也客舍也王驩孟子所與言者則其人可知矣어늘 樂正子乃從之行하니 其失身之罪大矣早見長者하니 則其罪又有甚者焉이라 孟子姑以此責之시니라』

 

『  석자(昔者)는 전일(前日)이다. ()은 객사(客舍)이다. 왕환(王驩)은 맹자(孟子)께서 더불어 말씀하시지 않은 자이니, 그렇다면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악정자(樂正子)가 그를 따라 왔으니, 몸의 지조를 잃은 죄가 크며, 또 일찍 장자(長者)를 찾아 뵙지 않았으니, 그 죄가 또 심함이 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우선 이것으로 꾸짖으신 것이다.

 

曰 克有罪호이다』

 

『  <악정자(樂正子)가 말하였다.> “제『[()]』가 죄를 졌습니다.”』

 

陳氏曰 樂正子固能無罪矣이나 其勇於受責如此하니 非好善而篤信之其能若是乎世有强辯飾非하여

聞諫愈甚者하니 樂正子之罪人:악정자지죄인』니라』

 

『  진씨(陳氏)가 말하였다. “악정자(樂正子)는 진실로 죄가 없지 못하다. 그러나 꾸짖음을 받음에 용맹함이 이와 같았

으니, ()을 좋아하고 독실히 믿는 자가 아니면 능히 이와 같겠는가. 세상에는 강변(强辯)하여 비행(非行)을 꾸미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더욱 심하게 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또 악정자(樂正子)의 죄인(罪人)이다.”』

 

 

*맹자 ; 이루상 ; 25

 

▣ 제25(第二十五章)

 

 

孟子謂樂正子曰 子之從於子敖來µ,로다 意子學古之道而以µ,호라』

 

『  맹자(孟子)께서 악정자(樂正子)에게 말씀하였다. “자네가 자오(子敖)를 따라 <()나라에> 온 것은 한갓 먹고

마시기 위해서이네. 나는 자네가 옛 도()를 배우면서 먹고 마시는 것에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네.”』

 

但也라 µ,食也요 쾽은 飮也言其擇所從하고 但求食耳此乃正其罪而切責之시니라』

 

『  도()는 다만이다. (µ,)는 먹음이요, ()은 마심이다. 따를 바를 가리지 않고 다만 음식을 구할 뿐임을 말씀한 것이니, 이것은 그 죄를 바로 말씀하여 간절히 꾸짖으신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26

 

▣ 제26(第二十六章)

 

孟子曰 孝有三하니 無後爲大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불효()가 세 가지 있으니, <그 중에> 후손(後孫)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

 

趙氏曰 於禮孝者三事하니 謂阿意曲從하여 陷親一也家貧親老하되 不爲祿仕二也요 不娶無子하여 絶先祖祀三也三者之中無後爲大하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예()에 불효()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부모(父母)의 뜻에 아첨하고 곡진히 따라서 어버이를 불의()에 빠뜨림이 첫째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었는데도 녹사(祿仕)[(祿)을 받기 위한 벼슬]』를 하지 않음이 둘째요, 장가들지 않아 자식이 없어서 선조(先祖)의 제사를 끊음이 셋째이니, 이 세 가지 중에 무후(無後)가 가장 크다.”』

 

이 不告而娶爲無後也시니 君子以爲猶告也라하니라』

 

『  순()임금이 <부모(父母)에게> 아뢰지 않고 장가든 것은 무후(無後)할까 염려해서이니, 군자(君子)가 ‘아뢴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舜告焉이면 得娶而終於無後矣리니 告者禮也요 不告者權也猶告言與告同也盖權而得中이면 離於正矣니라』

 

『○ 范氏曰 天下之道 有正有權하니 正者萬世之常이요 權者一時之用이라 常道人皆可守어니와 非體道者면 不能用也蓋權出於得已者也若父非줥첳요 子非大舜이어늘 而欲告而娶則天下之罪人也니라』

 

『  순()임금이 부모(父母)에게 아뢰었으면 장가들 수가 없어서 무후(無後)로 끝났을 것이니, 아뢰는 것은 예(),

아뢰지 않는 것은 권도(權道)이다. 유고(猶告)는 아룀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저울질하여 중도(中道)에 맞으면 올바름에서 이탈되지 않는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천하(天下)의 도()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으니, 정도(正道)는 만세(萬世)의 떳떳함이요, 권도(權道)는 일시(一時)의 운용이다. 상도(常道)는 사람들이 다 지킬 수 있으나 권도(權道)는 도()를 체행한 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이다. 권도(權道)는 부득이한 데서 나오는 것이니, 만일 아버지가 고수(줥첳)와 같은 나쁜 아버지가 아니요, 아들이 대순(大舜)과 같은 효자(孝子)가 아니면서 아뢰지 않고 장가들려고 한다면 천하(天下)의 죄인(罪人)이다.”』

 

 

*맹자 ; 이루상 ; 27

 

▣ 제27(第二十七章)

 

孟子曰 仁之實事親是也義之實從兄是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의 실제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요, ()의 실제는 형()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仁主於愛而愛莫切於事親이요 義主於敬而敬莫先於從兄이라 仁義之道其用至廣이나 而其實은 不越於事親從兄之間하니 蓋良心之發最爲切近而精實者라 『有子:유자』以孝弟爲爲仁之本하니 其意亦猶此也니라』

 

『  인()은 사랑을 주장하는데, 사랑은 어버이를 섬기는 것보다 간절함이 없으며, ()는 공경을 주장하는데, 공경은 형()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먼저 함이 없다. 그러므로 인의(仁義)의 도()가 그 쓰임이 지극히 넓으나, 그 실제는 어버이를 섬기고 형()에게 순종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으니, 양심(良心)의 발로가 가장 간절하고 가까우면서 정()하고

진실한 것이다. 유자(有子)는 효제(孝悌)로 인()을 행하는 근본을 삼았으니, 그 뜻이 또한 이와 같다.

 

智之實知斯二者하여 弗去是也禮之實節文斯二者是也()之實()斯二者樂則生矣

生則惡可已也리오 惡可已知足之蹈之, 手之舞之니라』

 

『  지()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알아서 버리지 않는 것이요, ()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절문(節文)하는 것이요,

()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즐거워하면 <이러한 마음이> 생겨날 것이니, 생겨난다면 <이러한

행실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그만둘 수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발로 뛰고 손으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斯二者指事親從兄而言이라 知而弗去則見之明而守之固矣라 『節文:절문』은 謂品節文章이라 樂則生矣謂和順從容하여 無所勉强하여 事親從兄之意油然自生如草木之有生意也旣有生意則其暢茂條達自有所謂惡可已也其又盛이면 則至於手舞足蹈而自知矣니라』

『○ 此章言 事親從兄良心眞切이니 天下之道 皆原於此이나 必知之明而守之固然後節之密而樂之深也니라』

 

『  이 두 가지란, 사친(事親)•종형(從兄)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알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보기를 분명히 하고 지키기를 굳게 하는 것이다. 절문(節文)은 품절(品節)과 문장(文章)을 이른다. ‘즐거워하면 생겨난다’는 것은, 화순(和順)하고 종용(從容)[여유 있음]』하여 억지로 힘쓰는 바가 없어도 사친(事親)•종형(從兄)의 뜻이 유연(油然)히 스스로 생겨남이, 초목(草木)에 살려는 뜻이 있음과 같음을 이른다. 이미 살려는 뜻이 있다면, <초목(草木)> 무성하고 가지가 발달됨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오가이(惡可已)’란 것이다. 더욱 성해지면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  ○ 이 장()은 사친(事親)•종형(從兄)은 양심(良心)이 참되고 간절한 것이니, 천하(天下)의 도()가 모두 여기에서 근원 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알기를 분명히 하고 지키기를 굳게 한 뒤에야 절()[예절에 맞게 함]』하기를 치밀히

하고 즐거워하기를 깊이 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이루상 ; 28

 

▣ 제28(第二十八章)

 

孟子曰 天下大悅而將歸己어늘 視天下悅而歸己하되 猶草芥也惟舜爲然하시니 不得乎親이면 不可以爲人이요

順乎親이면 不可以爲子러시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 사람들이 크게 좋아하면서 장차 자신에게 돌아오려 하였는데, 천하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옴을 보기를 초개(草芥)와 같이 여기신 것은 오직 순()임금이 그러하셨다. 어버이에게

기쁨을 얻지 못하면 사람이 될 수 없고, 어버이를 <()> 순하게 하지 못하면 자식이 될 수 없다고 여기셨다.”』

 

言 舜視天下之歸己如草芥하고 而惟欲得其親而順之也得者曲爲承順하여 鎰其心之悅而已順則有以諭之於道하여 心與之一而未始有違尤人所難也爲人蓋泛言之爲子則愈密矣라』

 

『  순()임금은 천하가 자신에게 돌아옴을 보기를 초개(草芥)처럼 여기고 오직 그 어버이에게 기쁨을 얻어 순()하게 하려고 하심을 말씀한 것이다. ()은 곡진히 이어 받들어서 그 마음의 기쁨을 얻을 뿐이요, ()은 어버이를 도()로 깨우쳐서 마음이 도()와 하나가 되어 일찍이 떠나지 않게 함이 있는 것이니 더욱 사람의 어려운 바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범연히 말한 것이요, ‘자식이 된다.’는 것은 더욱 치밀한 것이다.

 

 

盡事親之道而줥첳()하니 줥첳底豫而天下化하며 줥첳底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하니 此之謂大孝니라』

 

『  순()임금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道理)를 다함에 고수(줥첳)가 기쁨을 이루었으니, 고수(줥첳)가 기쁨을 이룸에

천하가 교화되었으며, 고수(줥첳)가 기쁨을 이룸에 천하의 부자간(父子間)이 된 자들이 안정되었으니, 이것을 일러

대효(大孝)라 하는 것이다.”』

 

『줥첳는 舜父名이라 致也悅樂也라 줥첳至頑하여 嘗欲殺舜이러니 至是而底豫焉하니 書所謂『不格姦, 亦允若:불격간』이 是也蓋舜至此而有以順乎親矣是以天下之爲子者 知天下無可事之親이요 顧吾所以事之者未若舜耳於是勉而爲孝하여 至於其親亦底豫焉하니 則天下之爲父者亦莫하니 所謂化也子孝父慈하여 各止其所하여 而無安其位之意所謂定也爲法於天下하여 可傳於後世非止一身一家之孝而已此所以爲大孝也니라』

『○ 李氏曰 舜之所以能使줥첳底豫者盡事親之道하여 ()爲子職이요 不見父母之非而已羅仲素語此云 只爲天下無是底父母라한대 了翁聞而善之曰 唯如此而後天下之爲父子者定이니 彼臣弑其君하며 子弑其父者常始於見其有是處耳라하니라』

 

『  고수(줥첳)는 순()임금의 아버지 이름이다. ()는 이룸이요, ()는 기뻐함이다. 고수(줥첳)가 지극히 완악하여 일찍이 순()임금을 죽이고자 하였는데, 이 때에 이르러 기쁨을 이루었으니, 《서경(書經)》에 이른바 ‘간악(姦惡)[죄악]』에 이르지 않게 하고, 고수(줥첳) 또한 믿고 따랐다.’는 것이 이것이다. ()임금이 이 때에 이르러 어버이를 순()히 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천하의 자식된 자들이 섬길 수 없는 부모(父母)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만 자신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 순()임금만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힘써 효()를 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그의

어버이 또한 기쁨을 이룸에 이르러, 천하의 아버지 된 자들이 또한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화()’『[교화(敎化)]』이다. 아들이 효()하고 아버지가 사랑하여 각기 자기 자리에 멈추어서 그 위치에 편안하지

않음이 없는 뜻이 이른바 ‘정()’이라는 것이다. 천하에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하고 다만 일신(一身)•일가(一家)의 효()에 그칠 뿐이 아니었으니, 이 때문에 대효(大孝)라 한 것이다.

『  ○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순()임금이 능히 고수(줥첳)로 하여금 기쁨을 이루게 한 것은 <()임금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道理)를 다하여 공손히 자식된 직분을 하고, 부모(父母)의 잘못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이었다. 옛적에 나중소(羅中素)가 이것을 말하기를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父母)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요옹(了翁)[진관(陳瓘)]』이 이 말을 듣고서 좋게 여겨 말씀하기를 ‘이와 같이 생각한 뒤에야 천하에 부자간(父子間)이 된 자들이 안정될 수 있으니, 저 신하로서 그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으로서 그 아버지를 시해하는 자들은 항상 <()•부()> 옳지 못한 곳을 봄에서 비롯될 뿐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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