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
▣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
『凡四十六章이라』
『 모두 46장(章)이다.』
『○ 맹자 ; 진심상 ; 제1장+1』
『○ 맹자 ; 진심상 ; 제2장+2』
『○ 맹자 ; 진심상 ; 제3장+3』
『○ 맹자 ; 진심상 ; 제4장+4』
『○ 맹자 ; 진심상 ; 제5장+5』
『○ 맹자 ; 진심상 ; 제6장+6』
『○ 맹자 ; 진심상 ; 제7장+7』
『○ 맹자 ; 진심상 ; 제8장+8』
『○ 맹자 ; 진심상 ; 제9장+9』
『○ 맹자 ; 진심상 ; 제10장+10』
『○ 맹자 ; 진심상 ; 제11장+11』
『○ 맹자 ; 진심상 ; 제12장+12』
『○ 맹자 ; 진심상 ; 제13장+13』
『○ 맹자 ; 진심상 ; 제14장+14』
『○ 맹자 ; 진심상 ; 제15장+15』
『○ 맹자 ; 진심상 ; 제16장+16』
『○ 맹자 ; 진심상 ; 제17장+17』
『○ 맹자 ; 진심상 ; 제18장+18』
『○ 맹자 ; 진심상 ; 제19장+19』
『○ 맹자 ; 진심상 ; 제20장+20』
『○ 맹자 ; 진심상 ; 제21장+21』
『○ 맹자 ; 진심상 ; 제22장+22』
『○ 맹자 ; 진심상 ; 제23장+23』
『○ 맹자 ; 진심상 ; 제24장+24』
『○ 맹자 ; 진심상 ; 제25장+25』
『○ 맹자 ; 진심상 ; 제26장+26』
『○ 맹자 ; 진심상 ; 제27장+27』
『○ 맹자 ; 진심상 ; 제28장+28』
『○ 맹자 ; 진심상 ; 제29장+29』
『○ 맹자 ; 진심상 ; 제30장+30』
『○ 맹자 ; 진심상 ; 제31장+31』
『○ 맹자 ; 진심상 ; 제32장+32』
『○ 맹자 ; 진심상 ; 제33장+33』
『○ 맹자 ; 진심상 ; 제34장+34』
『○ 맹자 ; 진심상 ; 제35장+35』
『○ 맹자 ; 진심상 ; 제36장+36』
『○ 맹자 ; 진심상 ; 제37장+37』
『○ 맹자 ; 진심상 ; 제38장+38』
『○ 맹자 ; 진심상 ; 제39장+39』
『○ 맹자 ; 진심상 ; 제40장+40』
『○ 맹자 ; 진심상 ; 제41장+41』
『○ 맹자 ; 진심상 ; 제42장+42』
『○ 맹자 ; 진심상 ; 제43장+43』
『○ 맹자 ; 진심상 ; 제44장+44』
『○ 맹자 ; 진심상 ; 제45장+45』
『○ 맹자 ; 진심상 ; 제46장+46』
*맹자 ; 진심상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孟子曰 盡其心者는 知其性也니 知其性이면 則知天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性)을 아니, 그 성(性)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心者는 人之神明이니 所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 性은 則心之所具之理요 而天은 又理之所從以出者也라 人有是心이 莫非全體나 然이나 不窮理면 則有所蔽而無以盡乎此心之量이라 故로 能極其心之全體而無不盡者는 必其能窮夫理而無不知者也라 旣知其理면 則其所從出이 亦不外是矣니라 以大學之序言之하면 知性은 則物格之謂요 盡心은 則知至之謂也니라』
『 심(心)은 사람의 신명(神明)이니, 모든 이(理)를 갖추어 있고, 만사(萬事)를 응하는 것이다. 성(性)은 심(心)에 갖추어져 있는 이(理)요, 천(天)은 또 이(理)가 따라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은 전체(全體) 아님이 없으나 이(理)를 궁구하지 않으면 가리워진 바가 있어 이 심(心)의 양(量)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心)의 전체(全體)를 지극히 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는 자는 반드시 이(理)를 궁구하여 알지 못함이 없는 자이니, 이미 그 이(理)를 알면 따라서 나오는 것『[천(天)]』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학(大學)》의 순서로써 말하면 지성(知性)은 물격(物格)을 이르고, 진심(盡心)은 지지(知至)를 이른다.』
『存其心하여 養其性은 所以事天也요』
『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性)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요,』
『存은 謂操而不舍요 養은 謂順而不害라 事는 則奉承而不違也라』
『 존(存)은 잡고 버리지 않음을 이르고, 양(養)은 순(順)히 하고 해치지 않음을 이른다. 사(事)는 받들고 어기지 않는
것이다.』
『®6壽에 不貳하여 修身以俟之는 所以立命也니라』
『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아, 몸을 닦고 천명(天命)을 기다림은 명(命)을 세우는 것이다.』
『®6壽는 命之短長也라 貳는 疑也라 不貳者는 知天之至요 修身以俟死는 則事天以終身也라 立命은 謂全其天之所付하여 不以人爲害之라』
『○ 程子曰 心也, 性也, 天也는 一理也라 自理而言이면 謂之天이요 自µ;受而言이면 謂之性이요 自存諸人而言이면 謂之心이니라 張子曰 由太虛하여 有天之名하고 由氣化하여 有道之名하고 合虛與氣하여 有性之名하고 合性與知覺하여 有心之名이니라 愚謂 盡心知性而知天은 所以造其理也요 存心養性以事天은 所以履其事也니 不知其理면 固不能履其事라 然이나 徒造其理하고 而不履其事하면 則亦無以有諸己矣니라 知天而不以®6壽貳其心은 智之盡也요 事天而能修身以俟死는 仁之至也니 智有不盡이면 固不知所以爲仁이라 然이나 智而不仁이면 則亦將流蕩不法而不足以爲智矣니라』
『 요수(®6壽)는 명(命)의 길고 짧음이다. 이(貳)는 의심함이다. 의심하지 않음은 천리(天理)를 앎이 지극함이요, 몸을 닦고 죽음을 기다림은 하늘을 섬겨 몸을 마치는 것이다. 입명(立命)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을 온전히 보존하여 인위(人爲)로써 해치지 않음을 이른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심(心)과 성(性)과 천(天)은 똑같은 이(理)이다. 이(理)의 입장에서 말하면 천(天)이라 이르고, 품수(µ;受)한 입장에서 말하면 성(性)이라 이르고, 사람에게 보존된 입장에서 말하면 심(心)이라고 이른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태허(太虛)로 말미암아 천(天)이란 명칭이 있고, 기화(氣化)『[음양이기(陰陽二氣)의
조화(造化)]』로 말미암아 도(道)란 명칭이 있고, 허(虛)와 기(氣)를 합하여 성(性)이란 명칭이 있고, 성(性)과 지각(知覺)을 합하여 심(心)이란 명칭이 있는 것이다.”』
『 내가 생각건대, 심(心)을 다하고 성(性)을 알아서 천(天)을 앎은 그 이(理)에 나아감이요, 심(心)을 보존하고 성(性)을 길러서 천(天)을 섬김은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니, 그 이(理)를 알지 못하면 진실로 그 일을 실천할 수 없다. 그러나 다만 그 이(理)에 나아가기만 하고 그 일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또한 자기 몸에 이것을 소유할 수 없다. 천(天)을 알아 요수(®6壽)로써 그 마음을 의심하지 않음은 지(智)가 극진함이요, 천(天)을 섬겨 몸을 닦고 죽음을 기다림은 인(仁)이 지극함이다. 지(智)가 극진하지 못함이 있으면 진실로 인(仁)을 함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智)만 하고 인(仁)을 하지 못한다면, 또한 장차 방탕한 데로 흐르고 법도가 없어서 족히 지(智)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장
▣ 제2장(第二章)
『孟子曰 莫非命也나 順受其正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명(命) 아님이 없으나, 그 정명(正命)을 순(順)히 받아야 한다.”』
『人物之生이 吉凶禍福이 皆天所命이라 然이나 惟莫之致而至者가 乃爲正命이라 故로 君子修身以俟之는 所以順受乎此也니라』
『 인물(人物)이 살아갈 때에 길흉(吉凶)•화복(禍福)은 다 하늘이 명(命)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그것을 이르게 함이
없어도 저절로 이른 것이 정명(正命)이 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몸을 닦고 기다림은 이것을 순(順)히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是故로 知命者는 不立乎巖墻之下하나니라』
『 이러므로 정명(正命)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지 않는다.』
『命은 謂正命이라 巖墻은 墻之將覆者라 知正命이면 則不處危地以取覆壓之禍니라』
『 명(命)은 정명(正命)을 이른다. 암장(巖墻)은 담장이 장차 넘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정명(正命)을 안다면 위험한 곳에 처하여, 담이 전복되어 압사(壓死)하는 화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盡其道而死者는 正命也요』
『 그 도(道)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요,』
『盡其道면 則所値之吉凶이 皆莫之致而至者矣라』
『 그 도(道)를 다하면 만나는 바의 길(吉)•흉(凶)이 모두 그것을 이르게 함이 없어도 저절로 이르는 것이다.』
『桎梏死者는 非正命也니라』
『 질곡(桎梏)으로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 아니다.”』
『桎梏은 所以拘罪人者라 言 犯罪而死는 與立巖墻之下者로 同하니 皆人所取요 非天所爲也니라』
『○ 此章與上章은 蓋一時之言이니 所以發其末句未盡之意니라』
『 질곡(桎梏)은 죄인을 구속하는 것이다. 죄를 범하여 죽는 것은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 있다가 압사하는 것과 같으니, 모두 인간이 취한 것이요, 하늘이 한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章)과 위 장(章)은 아마도 한 때의 말씀인 듯하니, 위 장(章) 말구(末句)의 미진(未盡)한 뜻을 발명(發明)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孟子曰 求則得之하고 舍則失之하나니 是求는 有益於得也니 求在我者也일새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으니, 이 구함은 얻음에 유익(有益)함이 있으니,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在我者는 謂仁義禮智凡性之所有者라』
『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인(仁)•의(義)•예(禮)•지(智) 등 모든 성(性)에 있는 것을 이른다.』
『求之有道하고 得之有命하니 是求는 無益於得也니 求在外者也일새니라』
『 구함에 도(道)가 있고, 얻음에 명(命)이 있으니, 이 구함은 얻음에 유익(有益)함이 없으니, 밖에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有道는 言不可妄求요 有命은 則不可必得이라 在外者는 謂富貴利達凡外物이 皆是라』
『○ 趙氏曰 言 爲仁由己요 富貴在天하니 如不可求인댄 從吾所好니라』
『 도(道)가 있다는 것은 망령되이 구해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요, 명(命)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밖에 있다는 것은 부귀(富貴)와 이달(利達) 등 모든 외물(外物)이 다 이것이다.』
『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인(仁)을 행함은 자신에게 달려있고, 부귀(富貴)는 하늘에 있으니, 만일 부귀(富貴)를
구할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孟子曰 萬物이 皆備於我矣니』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만물(萬物)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
『此는 言理之本然也라 大則君臣父子요 小則事物細微가 其當然之理 無一不具於性分之內也니라』
『 이는 이(理)의 본연(本然)을 말씀한 것이다. 크게는 군신간(君臣間)과 부자간(父子間)이요, 작게는 사물(事物)의
세미(細微)한 것이, 그 당연한 이치가 한 가지도 성분(性分)의 안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反身而誠이면 樂莫大焉이요』
『 몸에 돌이켜보아 성실하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클 수 없고,』
『誠은 實也라 言 反諸身而所備之理를 皆如惡惡臭, 好好色之實然이면 則其行之 不得勉强而無不利矣니 其爲樂이
孰大於是리오』
『 성(誠)은 성실함이다. 자기 몸에 돌이켜봄에 갖추어져 있는 바의 이(理)를 모두 악취(惡臭)를 싫어하고, 호색(好色)을 좋아하는 실제와 같이 한다면, 그 행함이 억지로 힘쓰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순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 즐거움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强恕而行하면 求仁이 莫近焉이니라』
『 서(恕)를 힘써서 행하면 인(仁)을 구함이 이보다 가까울 수 없다.”』
『强은 勉强也라 恕는 推己以及人也라 反身而誠則仁矣니 其有未誠은 則是猶有私意之隔而理未純也라 故로 當凡事勉强하여 推己及人이면 庶幾心公理得而仁不遠也리라』
『○ 此章은 言 萬物之理가 具於吾身하니 體之而實이면 則道在我而樂有餘하고 行之以恕면 則私不容而仁可得이니라』
『 강(强)은 억지로 힘씀이다. 서(恕)는 내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자신을 돌이켜봄에 성실하면 인(仁)이니, 그 성실하지 못함이 있다면 이는 아직도 사의(私意)에 막힘이 있어서 이치가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일에 힘써서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면, 거의 마음이 공정하고 이치가 맞아져 인(仁)이 멀지 않게 될 것이다.』
『 ○ 이 장(章)은 만물(萬物)의 이(理)가 내 몸에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을 체행(體行)하여 성실히 하면 도(道)가 내 몸에 있어 즐거움이 유여(有餘)하고, 서(恕)로써 행하면 사(私)가 용납되지 않아 인(仁)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孟子曰 行之而不著焉하며 習矣而不察焉이라 終身由之而不知其道者衆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행하면서도 밝게 알지 못하며, 익히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행하면서도 그 도(道)를 모르는 자가 많은 것이다.”』
『著者는 知之明이요 察者는 識之精이라 言 方行之而不能明其所當然하며 旣習矣而猶不識其所以然이라 所以終身由之而不知其道者多也니라』
『 저(著)는 앎이 밝음이요, 찰(察)은 앎이 정(精)한 것이다. 자기가 막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 소당연(所當然)을 분명히 알지 못하며, 이미 익히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종신토록 행하면서도 그 도(道)를 알지 못하는 자가 많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孟子曰 人不可以無恥니 無恥之恥면 無恥矣리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은 부끄러움『[염치]』이 없어서는 안되니,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치욕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趙氏曰 人能恥己之無所恥면 是能改行從善之人이니 終身無復有恥辱之累矣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사람이 능히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바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이는 능히 나쁜 행실을
고쳐 선(善)을 따르는 사람이니, 종신토록 다시는 치욕(恥辱)의 누(累)가 있지 않을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孟子曰 恥之於人에 大矣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부끄러움이 사람에 있어서 매우 크다.”』
『恥者는 吾所固有羞惡之心也니 存之則進於聖賢이요 失之則入於禽獸라 故로 所繫爲甚大니라』
『 부끄러움은 나에게 고유(固有)한 바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이것을 보존하면 성현(聖賢)에 나아가고,
이것을 잃으면 금수(禽獸)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큰 것이다.』
『爲機變之巧者는 無所用恥焉이니라』
『 기변(機變)의 공교로운 짓을 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쓰는 바가 없다.』
『爲機械變詐之巧者는 所爲之事가 皆人所深恥로되 而彼方且自以爲得計라 故로 無所用其愧恥之心也니라』
『 기계(機械)와 변사(變詐)의 공교로운 짓을 하는 자는 행하는 바의 일이 모두 남들은 깊이 부끄러워하는 것인데도,
자신은 스스로 좋은 계책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쓸 곳이 없는 것이다.』
『不恥不若人이면 何若人有리오』
『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남『[정상인(正常人)]』과 같지 못하다면, 어느 것이 남과 같은 것이 있겠는가.”』
『但無恥一事가 不如人이면 則事事不如人矣라 或曰 不恥其不如人이면 則何能有如人之事리오하니 其義亦通이니라
或問 人有恥不能之心이 如何오 程子曰 恥其不能而爲之는 可也요 恥其不能而掩藏之는 不可也니라』
『 다만 부끄러워함이 없는 한 가지 일이 남과 같지 못하다면 일마다 남과 같지 못할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그 남만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능히 남과 같은 일이 있겠는가”라고 하니, 그 뜻이 또한 통한다.』
『 혹자가 묻기를 “사람들이 능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정자(程子)가
대답하였다. “능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힘써서 하는 것은 가(可)하고, 능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가리고 감추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맹자 ; 진심상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孟子曰 古之賢王이 好善而忘勢하더니 古之賢士何獨不然이리오 樂其道而忘人之勢라 故로 王公이 不致敬盡禮하면
則不得짞見之하니 見且猶不得짞어든 而況得而臣之乎아』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옛날 어진 군왕(君王)들은 선(善)을 좋아하고 세력을 잊었으니, 옛 현사(賢士)가 어찌 홀로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 도(道)를 즐거워하고 남의 세력을 잊었다. 그러므로 왕공(王公)이 경(敬)을 지극히 하고 예(禮)를 다하지 않으면, 자주 그를 만나볼 수 없었다. 만나보는 것도 오히려 자주할 수 없는데,
하물며 그를 신하로 삼음에 있어서랴!”』
『言 君當屈己以下賢이요 士不枉道而求利니 二者勢若相反이나 而實則相成이니 蓋亦各盡其道而已니라』
『 인군(人君)은 마땅히 몸을 굽혀서 어진이에게 몸을 낮추어야 하고, 선비는 도(道)를 굽혀 이익을 구하지 않아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두 가지는 세(勢)가 상반(相反)되는 듯하나, 실제는 서로 이루어주니, 또한 각기 그 도리를 다할 뿐이다.』
*맹자 ; 진심상 ; 제9장
▣ 제9장(第九章)
『孟子謂宋句踐曰 子好遊乎아 吾語子遊하리라』
『 맹자(孟子)께서 송구천(宋句踐)에게 일러 말씀하였다. “그대는 유세(遊說)하기를 좋아하는가?
내 그대에게 유세(遊說)하는 것을 말해 주겠다.”』
『宋은 姓이오 句踐은 名이라 遊는 遊說也라』
『 송(宋)은 성(姓)이요, 구천(句踐)은 이름이다. 유(遊)는 유세(遊說)하는 것이다.』
『人知之라도 亦¶¶하며 人不知라도 亦¶¶니라』
『 남이 알아주더라도 효효(¶¶)하며, 남이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또한 효효(¶¶)하여야 한다.”』
『趙氏曰 ¶¶는 自得無欲之貌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효효(¶¶)는 자득(自得)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이다.”』
『曰 何如라야 斯可以¶¶矣니잇고 曰 尊德樂義면 則可以¶¶矣니라』
『 “어떠하여야 효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셨다. “덕(德)을 높이고 의(義)를 즐거워하면 효효(¶¶)할 수 있다.”』
『德은 謂所得之善이니 尊之면 則有以自重而不慕乎人爵之榮이요 義는 謂所守之正이니 樂之면 則有以自安而不徇乎外物之誘矣리라』
『 덕(德)은 얻은 바의 선(善)을 이르니, 이것을 높이면 자중(自重)함이 있어 인작(人爵)의 영화(榮華)를 사모하지 않을 것이다. 의(義)는 지키는 바의 정의(正義)를 이르니, 이것을 즐거워하면 스스로 편안함이 있어 외물(外物)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故로 士는 窮不失義하며 達不離道니라』
『 그러므로 선비는 궁(窮)하여도 의(義)를 잃지 않으며, 영달(榮達)하여도 도(道)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言 不以貧賤而移하고 不以富貴而淫이니 此는 尊德樂義가 見於行事之實也니라』
『 빈천(貧賤)하다 하여 지조를 옮기지 아니하고, 부귀하다 하여 음탕하지 않으니,
이는 덕(德)을 높이고 의(義)를 즐거워함이 행사(行事)의 실제에 나타난 것이다.』
『窮不失義라 故로 士得己焉하고 達不離道라 故로 民不失望焉이니라』
『 궁(窮)하여도 의(義)를 잃지 않기 때문에 선비가 자신의 지조를 지키며,
영달(榮達)하여도 도(道)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이 실망(失望)하지 않는 것이다.』
『得己는 言不失己也라 民不失望은 言 人素望其興道致治러니 而今果如所望也라』
『 득기(得己)는 자신의 지조를 잃지 않음을 말한다. 백성들이 실망(失望)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본래 그 도(道)를 일으켜 훌륭한 정치를 이룩할 것을 바랐는데, 이제 과연 그 소망(所望)과 같이 됨을 말한 것이다.』
『古之人이 得志하얀 澤加於民하고 不得志하얀 修身見『(현)』於世하니 窮則獨善其身하고 達則兼善天下니라』
『 옛사람들은 뜻을 얻으면 은택이 백성에게 가(加)해지고, 뜻을 얻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나니,
궁(窮)하면 그 몸을 홀로 선(善)하게 하고, 영달(榮達)하면 천하를 겸하여 선(善)하게 하는 것이다.”』
『見은 謂名實之顯著也라 此는 又言士得己, 民不失望之實하니라』
『○ 此章은 言 內重而外輕이면 則無往而不善이니라』
『 현(見)은 명실(名實)이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이는 또 선비가 자신의 지조를 지킴과 백성들이 실망(失望)하지 않는 실제를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章)은 내면(內面)이 중(重)하고 외면(外面)이 경(輕)하면, 가는 곳마다 선(善)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孟子曰 待文王而後興者는 凡民也니 若夫豪傑之士는 雖無文王이라도 猶興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문왕(文王)을 기다린 뒤에 흥기 하는 자는 일반 백성이니,
호걸(豪傑)의 선비로 말하면 비록 문왕(文王) 같은 성군(聖君)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흥기한다.”』
『興者는 感動奮發之意라 凡民은 庸常之人也요 豪傑은 有過人之才智者也라 蓋降衷秉츺는 人所同得이나 惟上智之資라야 無物欲之蔽하여 爲能無待於敎而自能感發以有爲也니라』
『 흥(興)은 감동(感動)하고 분발(奮發)한다는 뜻이다. 범민(凡民)은 평범한 사람이요, 호걸(豪傑)은 남보다 뛰어난 재주와 지혜가 있는 자이다. 하늘이 내려준 충(衷)『[성(性)]』과 가지고 있는 이성(츺性)은 사람들이 똑같이 얻은 것이나, 오직 상지(上智)의 자품(資µ;)만이 물욕(物欲)의 가리움이 없어서 능히 가르침을 기다림이 없이 스스로 감발(感發)하여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孟子曰 附之以韓魏之家라도 如其自視좲然이면 則過人이 遠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한(韓)•위(魏)의 큰 집안을 덧붙여주더라도 만일 스스로 보기를 하찮게 여긴다면
남보다 뛰어남이 먼 것이다.”』
『附는 益也라 韓魏는 晉卿이니 富家也라 좲然은 不自滿之意라 尹氏曰 言 有過人之識이면 則不以富貴爲事니라』
『 부(附)는 더해줌이다. 한(韓)•위(魏)는 진(晉)나라의 경(卿)이니, 부유한 집안이다.
감연(좲然)은 스스로 만족히 여기지 않는 뜻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남보다 뛰어난 지식이 있으면 부귀(富貴)를 일삼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孟子曰 以佚道使民이면 雖勞나 不怨하며 以生道殺民이면 雖死나 不怨殺者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백성을 부리면 비록 수고로우나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으며, 살려주는 방법으로 백성을 죽이면 비록 죽더라도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程子曰 以佚道使民은 謂本欲佚之也니 播穀乘屋之類是也요 以生道殺民은 謂本欲生之也니 除害去惡之類是也라
蓋不得已而爲其所當爲면 則雖퓆民之欲이라도 而民不怨이니 其不然者는 反是니라』
『 정자(程子)가 말하였다.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백성을 부린다는 것은 본래 백성을 편안히 해주고자 함을 이르니, 곡식을 파종하고, 지붕을 해 이는 따위가 이것이다. 살려주는 방법으로 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본래 백성을 살려주고자 함을 이르니, 해독(害毒)을 끼치는 자를 제거하고, 악한 자를 제거하는 따위가 이것이다. 부득이하여 당연히 해야할 것을 한다면, 비록 백성들의 하고자 함을 어기더라도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지 못한 자는 이와 반대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孟子曰 큹者之民은 驩虞如也요 王者之民은 ??如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패자(큹者)의 백성들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王者)의 백성들은 호호(??)하다.”』
『驩虞는 與歡娛同이라 ??는 廣大自得之貌라 程子曰 驩虞는 有所造爲而然이니 豈能久也리오 『耕田鑿井에 帝力이 何有於我주:경전착정』는 如天之自然이니 乃王者之政이니라 楊氏曰 所以致人驩虞는 必有違道干譽之事하니 若王者則如天하여 亦不令人喜하고 亦不令人怒니라』
『 환우(驩虞)는 환오(驩娛)와 같다. 호호(??)는 광대(廣大)하여 스스로 만족해하는 모양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환우(驩虞)는 조작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내 밭을 갈아 먹고, 내 우물을 파서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엇이 있겠는가.’ 한 것은, 하늘의 자연(自然)과 같으니,
이는 바로 왕자(王者)의 정사(政事)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즐거워함을 이루려면 반드시 도(道)를 어기고 칭찬을 요구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왕자(王者)로 말하면 하늘과 같아서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지도 않으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노하게 하지도 않는다.”』
『殺之而不怨하며 利之而不庸이라 民日遷善而不知爲之者니라』
『 죽여도 원망하지 않으며, 이롭게 하여도 공(功)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날로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면서도 누가 그렇게 만든 줄을 알지 못한다.』
『此는 所謂??如也라 庸은 功也라 豐氏曰 因民之所惡而去之요 非有心於殺之也니 何怨之有리오 因民之所利而利之요
非有心於利之也니 何庸之有리오 輔其性之自然하여 使自得之라 故로 民日遷善而不知誰之所爲也니라』
『 이것이 이른바 호호(??)라는 것이다. 용(庸)은 공(功)이다.』
『 풍씨(豐氏)가 말하였다.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인하여 제거하는 것이요, 백성들을 죽이려는 데 마음을 둔 것이
아니니, 무슨 원망함이 있겠는가,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인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요, 이롭게 해주려는 데 마음을 둔 것이 아니니, 어찌 공(功)으로 여김이 있겠는가. 그 성(性)의 자연함을 도와주어, 스스로 얻게 한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날마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면서도 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夫君子는 所過者化하며 所存者神이라 上下與天地同流하나니 豈曰小補之哉리오』
『 군자(君子)는 지나는 곳에 교화(敎化)가 되며, 마음에 두고 있으면 신묘(神妙)해진다.
그러므로 상하(上下)가 천지(天地)와 더불어 함께 흐르나니, 어찌 조금 보탬이 있다고 하겠는가.”』
『君子는 聖人之通稱也라 所過者化는 身所經歷之處에 卽人無不化니 如舜之耕歷山而田者遜畔하고 陶河濱而『器不苦츕주:기불고유』也라 所存者神은 心所存主處에 便神妙不測이니 『如孔子之立斯立, 道斯行, 綏斯來, 動斯和주:여공자지립사립』하여 莫知其所以然而然也라 是其德業之盛이니 乃與天地之化로 同運쯂行하여 擧一世而甄陶之요 非如큹者但小小補塞其킮漏而已라 此則王道之所以爲大니 而學者所當盡心也니라』
『 군자(君子)는 성인(聖人)의 통칭이다. 지나는 곳에 교화(敎化)가 된다는 것은 몸이 지나가는 곳에는 곧 사람들이
교화(敎化)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예컨대, 순(舜)임금이 역산(歷山)에서 밭을 갊에 농사짓는 자들이 밭두둑을 양보
하였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만듦에 그릇이 고유(苦츕)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에 두고 있으면 신묘(神妙)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두어 주장하는 곳에는 곧 신묘(神妙)하여 측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예컨대, 공자(孔子)의 세우면 이에 서며, 인도하면 이에 행하며, 편안히 하면 이에 오며, 동(動)하면 이에 화(和)함과 같아서 그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 덕업(德業)의 성함이 천지(天地)의 조화와 더불어 함께 운행되어 온 세상을
들어서 도야(陶冶)하는 것이니, 패자(큹者)들이 단지 소소(小小)하게 그 틈과 새는 곳을 땜질하고 보충할 뿐인 것과는
같지 않다. 이는 왕도(王道)가 위대함이 되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孟子曰 仁言이 不如仁聲之入人深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언(仁言)은 인성(仁聲)이 사람에게 깊이 들어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程子曰 仁言은 謂以仁厚之言으로 加於民이라 仁聲은 謂仁聞이니 謂有仁之實하여 而爲衆所稱道者也라 此는
尤見仁德之昭著라 故로 其感人이 尤深也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인언(仁言)은 인후(仁厚)한 말로 백성에게 가(加)함을 이른다. 인성(仁聲)은 인문(仁聞)을 이르니, 인(仁)한 실제가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것을 이른다. 이는 더욱 인덕(仁德)이 밝게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감동시킴이 더욱 깊은 것이다.”』
『善政이 不如善敎之得民也니라』
『 선정(善政)은 선교(善敎)가 민심(民心)을 얻는 것만 못하다.』
『政은 謂法度禁令이니 所以制其外也요 敎는 謂『道德齊禮주:도덕제례』니 所以格其心也니라』
『 정(政)은 법도(法度)와 금령(禁令)을 이르니, 그 밖을 제재하는 것이요, 교(敎)는 도덕(道德)과 제례(齊禮)를 이르니, 그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다.』
『善政은 民畏之하고 善敎는 民愛之하나니 善政은 得民財하고 善敎는 得民心이니라』
『 선정(善政)은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선교(善敎)는 백성들이 사랑하니, 선정(善政)은 백성의 재물을 얻고,
선교(善敎)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
『得民財者는 百姓足而君無不足也요 得民心者는 不遺其親, 不後其君也라』
『 백성의 재물을 얻는다는 것은 백성이 풍족함에 군주가 풍족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요,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 어버이를 버리지 않고, 그 군주를 뒤로 하지 않는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孟子曰 人之所不學而能者는 其良能也요 所不慮而知者는 其良知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은 양능(良能)이요,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은 양지(良知)이다.”』
『良者는 本然之善也라 程子曰 良知, 良能은 皆無所由하니 乃出於天이요 不繫於人이니라』
『 양(良)은 본연(本然)의 선(善)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은 모두 말미암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는 바로 천연(天然)에서 나온 것이요, 인위(人爲)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다.”』
『孩提之童이 無不知愛其親也며 及其長也하여는 無不知敬其兄也니라』
『 어려서 손을 잡고 가는 아이가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그 장성함에 미쳐서는 그 형(兄)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
『孩提는 二三歲之間에 知孩笑可提抱者也라 愛親, 敬長은 所謂良知良能者也라』
『 해제(孩提)는 2, 3세 사이에 어려서 웃을 줄을 알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줄 만한 자이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함이 이른바 양지(良知)•양능(良能)이란 것이다.』
『親親은 仁也요 敬長은 義也니 無他라 達之天下也니라』
『 어버이를 친애함은 인(仁)이요, 어른을 공경함은 의(義)이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온 천하에 공통되기 때문이다.”』
『言 親親, 敬長이 雖一人之私나 然이나 達之天下에 無不同者하니 所以爲仁義也니라』
『 어버이를 친애하고 어른을 공경함은 비록 한 개인의 사사로운 것이나,
이것이 온 천하에 공통되어 같지 않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인의(仁義)가 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孟子曰 舜之居深山之中에 與木石居하시며 與鹿豕遊하시니 其所以異於深山之野人者幾希러시니 及其聞一善言하시며 見一善行하사는 若決江河하여 沛然莫之能禦也러시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순(舜)임금이 깊은 산중에 거처할 적에 나무와 돌과 함께 거처하시며, 사슴과 멧돼지와 함께 노시니, 깊은 산 속의 야인(野人)과 다른 것이 별로 없으셨는데, 한 선언(善言)을 들으시며, 한 선행(善行)을 봄에 미쳐서는 마치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이 패연(沛然)하여 능히 막을 수가 없으셨다.”』
『居深山은 謂耕歷山時也라 蓋聖人之心이 至虛至明하여 渾然之中에 萬理畢具하니 一有感觸이면 則其應甚速而無所不通하나니 非孟子造道之深이면 不能形容至此也니라』
『 깊은 산 속에 거(居)했다는 것은 역산(歷山)에서 밭갈 때를 말한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밝아서, 혼연(渾然)한 가운데에 온갖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한번 감촉(感觸)이 있으면 그 응(應)함이 매우 신속하여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 도(道)에 나아가기를 깊이 한 맹자(孟子)가 아니라면, 형용함이 이에 이르지 못하
였을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孟子曰 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이니 如此而已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하니, 이와 같을 뿐이다.”』
『李氏曰 有所不爲不欲은 人皆有是心也언마는 至於私意一萌而不能以禮義制之면 則爲所不爲하고 欲所不欲者多矣니
能反是心이면 則所謂擴充其羞惡之心者而義不可勝用矣라 故로 曰如此而已矣라하시니라』
『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하지 않아야 하고,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바를 가지고 있음은 사람마다 모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되, 사의(私意)가 한번 싹터서 예의(禮義)로써 제재하지 못함에 이르면,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고,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능히 이 마음을 돌이킨다면 이것이 이른바 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확충하여, 의(義)를 이루 다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을 뿐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孟子曰 人之有德慧術知者는 恒存乎?疾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 중에 덕(德)의 지혜와 기술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는 항상 어려움 속에
있다.”』
『德慧者는 德之慧요 術知者는 術之知라 ?疾은 猶災患也라 言 人必有?疾이면 則能動心忍性하여 增益其所不能也니라』
『 덕혜(德慧)는 덕(德)의 지혜요, 술지(術知)는 기술의 지혜이다. 진질(?疾)은 재환(災患)과 같다. 사람들이 반드시
진질(?疾)이 있으면 능히 마음을 분발하고 성질을 참아서 능하지 못한 것을 더 증익(增益)함을 말한 것이다.』
『獨孤臣孼子는 其操心也危하며 其慮患也深이라 故로 達이니라』
『 오직 외로운 신하와 서자(庶子)들은 그 마음을 잡는 것이 위태로우며,
환(患)을 염려함이 깊기 때문에 통달하는 것이다.”』
『孤臣은 遠臣이요 孼子는 庶子니 皆不得於君親而常有?疾者也라 達은 謂達於事理니 卽所謂德慧術知也라』
『 고신(孤臣)은 먼 신하요, 얼자(孼子)는 서자(庶子)이니, 다 인군(人君)과 어버이에게 사랑을 얻지 못하여 항상
진질(?疾)이 있는 자이다. 달(達)은 사리(事理)에 통달함을 이르니, 곧 이른바 덕혜(德慧)•술지(術知)라는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孟子曰 有事君人者하니 事是君이면 則爲容悅者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군(人君)을 섬기는 자가 있으니,
인군(人君)을 섬기면 용납되고 기뻐하게 하는 자이다.”』
『阿徇以爲容하고 逢迎以爲悅이니 此는 鄙夫之事요 妾婦之道也라』
『 아첨하고 따라서 용납되며, 군주의 비위에 영합하여 기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비부(鄙夫)의 일이요,
첩부(妾婦)의 도(道)이다.』
『有安社稷臣者하니 以安社稷爲稅者也니라』
『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려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社稷)을 편안히 함을 기쁨으로 삼는 자이다.』
『言 大臣之計安社稷이 如小人之務悅其君하여 眷眷於此而不忘也라』
『 대신(大臣)이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기를 계책 함이, 소인(小人)이 군주를 기쁘게 하기를 힘쓰는 것과 같아서,
이에 연연(眷眷)하여 잊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다.』
『有天民者하니 達可行於天下而後에 行之者也니라』
『 천민(天民)인 자가 있으니, 영달(榮達)하여 온 천하에 행할 수 있은 뒤에야 행하는 자이다.』
『民者는 無位之稱이니 以其全盡天理하여 乃天之民이라 故로 謂之天民이라 必其道可行於天下然後에 行之요 不然이면 則寧沒世不見知而不悔하여 不肯小用其道以徇於人也니라 張子曰 必功覆斯民然後出이니 如伊呂之徒니라』
『 민(民)은 지위가 없는 자의 칭호이니, 천리(天理)를 온전히 다하여 하늘의 백성이기 때문에 천민(天民)이라고 이른 것이다. 반드시 그 도(道)가 온 천하에 행해질 만한 뒤에야 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종신토록 알아줌을 받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아서, 조금 그 도(道)를 사용하여 남을 따르기를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반드시 공(功)이 백성에게 덮여질 만한 뒤에야 나가는 것이니,
이윤(伊尹)•여상(呂尙)과 같은 무리이다.”』
『有大人者하니 正己而物正者也니라』
『 대인(大人)인 자가 있으니, 자기 몸을 바르게 함에 남이 바르게 되는 자이다.”』
『大人은 德盛而上下化之니 所謂見『(현)』龍在田天下文明者라』
『○ 此章은 言 人品不同이 略有四等하니 容悅쨻臣은 不足言이요 安社稷則忠矣라 然이나 猶一國之士也요 天民則非
一國之士矣라 然이나 猶有意也니 無意無必하여 唯其所在而物無不化는 惟聖者能之니라』
『 대인(大人)은 덕(德)이 성(盛)하여 상하(上下)가 교화되는 것이니, <《주역(周易)》〈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
에> 이른바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음에 천하(天下)가 문명(文明)해 진다.’는 것이다.』
『 ○ 이 장(章)은 인품(人品)의 같지 않음이 대략 네 등급이 있음을 말씀하였으니, 용납되고 기뻐하는 영신(쨻臣)은
족히 말할 것이 없고,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는 신하는 충성스러우나 아직도 일국(一國)의 선비요, 천민(天民)은 일국(一國)의 선비는 아니나 아직도 의식(意識)이 있으니, 의식(意識)도 없고 기필(期必)함도 없어서 오직 그 있는 바에
사람이 교화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오직 성인(聖人)만이 능하다.』
*맹자 ; 진심상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孟子曰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 함은 여기에 들어있지 않다.”』
『父母俱存하며 兄弟無故가 一樂也요』
『 부모(父母)가 모두 생존해 계시며, 형제(兄弟)가 무고(無故)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此는 人所深願이나 而不可必得者어늘 今旣得之면 其樂可知니라』
『 이는 사람들이 깊이 원하는 바이나, 반드시 얻을 수는 없는 것인데, 이제 이미 얻었으면, 그 즐거움을 알 만하다.』
『仰不愧於天하며 俯不칱於人이 二樂也요』
『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며, 아래로는 인간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程子曰 人能克己면 則仰不愧, 俯不칱하여 心廣體쮐하니 其樂可知라 有息則¥#矣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이 능히 자기의 사욕을 이기면 우러러도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아서, 마음이 태연하고 몸이 펴지니 그 즐거움을 알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쉼이 있으면 굶주려질 것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가 三樂也니』
『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盡得一世明睿之才하여 而以所樂乎己者로 敎而養之면 則斯道之傳을 得之者衆하여 而天下後世將無不被其澤矣라
聖人之心所願欲者가 莫大於此어늘 今旣得之면 其樂이 『爲何如哉주:위하여재』오』
『 온 세상의 밝고 지혜로운 인재(人才)를 모두 얻어서 자기가 즐거워하는 것을 가지고 그를 가르쳐 기른다면, 이 도(道)의 전함을 얻은 자가 많아져서 천하(天下)와 후세(後世)가 장차 그 혜택을 입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에 원하고 하고자 하는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이제 이미 얻었다면,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는가.』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이니라』
『 군자(君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 함은 여기에 들어있지 않다.”』
『林氏曰 此三樂者는 一係於天하고 一係於人이요 其可以自致者는 惟不愧不칱而已니 學者可不勉哉아』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이 세 가지 즐거움은 하나는 하늘에 달려 있고, 하나는 남에게 달려 있고, 스스로 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뿐이니, 배우는 자가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맹자 ; 진심상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孟子曰 廣土衆民을 君子欲之나 所樂은 不存焉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토지를 넓히고 백성을 많게 함을 군자(君子)가 하고자 하나,
즐거워함은 여기에 있지 않다.”』
『地闢民聚하여 澤可遠施라 故로 君子欲之라 然이나 未足以爲樂也라』
『 땅이 개척되고 백성이 모여서, 혜택이 멀리 베풀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이를 하고자 한다.
그러나 족히 낙(樂)으로 삼을 수는 없다.』
『中天下而立하여 定四海之民을 君子樂之나 所性은 不存焉이니라』
『 천하의 한 가운데에 서서 왕자(王者)가 되어 사해(四海)의 백성을 안정시킴을 군자(君子)가 즐거워하나,
본성(本性)은 여기에 있지 않다.』
『其道大行하여 無一夫不被其澤이라 故로 君子樂之라 然이나 其所得於天者는 則不在是也니라』
『 그 도(道)가 크게 행해져 한 지아비라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이를 즐거워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얻은 바의 본성(本性)은 여기에 있지 않다.』
『君子所性은 雖大行이나 不加焉이며 雖窮居나 不損焉이니 分定故也니라』
『 군자(君子)의 본성(本性)은 비록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보태지지 않으며,
비록 궁(窮)하게 거(居)하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分數)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分者는 所得於天之全體라 故로 不以窮達而有異니라』
『 분(分)은 하늘에 얻은 바의 전체(全體)이다.
그러므로 궁(窮)하거나 영달(榮達)한다고 해서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君子所性은 仁義禮智根於心하여 其生色也 첱然見於面하며 촖於背하며 施於四體하여 四體不言而喩니라』
『 군자(君子)의 본성(本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마음속에 뿌리 하여, 그 얼굴빛에 나타남이 수연(첱然)히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며, 사체(四體)에 베풀어져서 사체(四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아 행해진다.”』
『上言所性之分이 與所欲所樂不同하고 此乃言其蘊也라 仁義禮智는 性之四德也라 根은 本也라 生은 發見也라 첱然은
淸和潤澤之貌요 촖은 豐厚盈溢之意라 施於四體는 謂見於動作威儀之間也라 喩는 曉也니 四體不言而喩는 言四體不待吾言而自能曉吾意也라 蓋氣µ;淸明하여 無物欲之累하면 則性之四德이 根本於心하니 其積之盛이면 則發而著見於外者
不待言而無不順也니라 程子曰 첱面촖背는 皆積盛致然이니 四體不言而喩는 惟有德者能之니라』
『○ 此章은 言 君子固欲其道之大行이니 然이나 其所得於天者는 則不以是而有所加損也니라』
『 위에서는 소성(所性)의 분수와 소욕(所欲)•소락(所樂)이 같지 않음을 말씀하였고, 여기서는 마침내 그 깊은 뜻을
말씀한 것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의 네 가지 덕(德)이다. 근(根)은 뿌리이다. 생(生)은 발현(發見)되는 것이다. 수연(첱然)은 청화(淸和)하고 윤택한 모양이요, 앙(촖)은 풍후(豐厚)하고, 가득 차 넘치는 뜻이다. 사체(四體)에 베풀어진다는 것은 동작(動作)과 위의(威儀)의 사이에 나타남을 이른다. 유(喩)는 깨달음이니, 사체(四體)가 말하지 않아도 깨닫는다는 것은 사체(四體)가 내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내 뜻을 깨달음을 말한다. 기품(氣µ;)이 청명(淸明)하여 물욕(物欲)의 누(累)가 없으면 성(性)의 네 가지 덕(德)이 마음속에 뿌리 하니, 그 쌓임이 성(盛)하면 발(發)하여 밖에 드러남이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순(順)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수면앙배(첱面촖背)는 모두 쌓고 많이 하여 이룩되는 것이니, 사체(四體)가 말하지 않아도 깨닫는 것은 오직 덕(德)이 있는 자만이 능하다.”』
『 ○ 이 장(章)은 군자(君子)가 진실로 도(道)가 크게 행해지기를 바라나, 그 하늘에서 얻은 것『[본성(本性)]』은
이 때문에 증가되거나 감손 되는 바가 있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孟子曰 伯夷µ?紂하여 居北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탍歸乎來리오 吾聞西伯은 善養老者라하고 大『(太)』
公µ?紂하여 居東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탍歸乎來리오 吾聞西伯은 善養老者라하니 天下에 有善養老면
則仁人이 以爲己歸矣리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백이(伯夷)가 주왕(紂王)을 피하여 북해(北海)의 가에 거(居)하더니,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분발하여 말씀하기를 ‘내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 들으니, 서백(西伯)은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
하였으며, 태공(大『[太]』公)이 주왕(紂王)을 피하여 동해(東海)의 가에 거(居)하더니,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분발하여 말씀하기를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 들으니, 서백(西伯)은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 하였으니,
천하에 늙은이를 잘 봉양하는 자가 있으면 인인(仁人)들이 자기의 돌아갈 곳으로 삼을 것이다.”』
『己歸는 謂己之所歸라 餘見前篇하니라』
『 기귀(己歸)는 자기의 돌아갈 곳을 말한다. 나머지는 전편(前篇)『[이루상(離婁上)]』에 보인다.』
『五畝之宅에 樹墻下以桑하여 匹婦蠶之면 則老者足以衣帛矣며 五母鷄와 二母³.를 無失其時면 老者足以無失肉矣며
百畝之田을 匹夫耕之면 八口之家可以無飢矣리라』
『 5묘(畝)의 집에 담장 아래에다가 뽕나무를 심어 필부(匹婦)가 누에를 치면 늙은이가 족히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다섯 마리의 암탉과 두 마리의 암퇘지를 새끼칠 때를 놓치지 않게 하면 늙은이가 족히 고기를 잃음이 없을 것이며,
백묘(百畝)의 토지를 필부(匹夫)가 경작한다면 여덟 식구의 집안이 굶주림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此는 文王之政也라 一家養母鷄五, 母³.二也라 餘見前篇하니라』
『 이는 문왕(文王)의 정사(政事)이다. 한 집에서 암탉 다섯 마리와 암퇘지 두 마리를 기르는 것이다.
나머지는 전편(前篇)『[양혜왕상(梁惠王上)]』에 보인다.』
『所謂西伯이 善養老者는 制其田里하여 敎之樹畜하고 導其妻子하여 使養其老니 五十에 非帛不煖하고 七十에 非肉不飽하나니 不煖不飽를 謂之凍¥#니 文王之民이 無凍¥#之老者는 此之謂也니라』
『 이른바 서백(西伯)이 늙은이를 잘 봉양했다는 것은 그 전리(田里)를 제정해 주어, 심고 기름을 가르치며, 그 처자(妻子)를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노인(老人)을 봉양하게 한 것이다. 50세에는 비단이 아니면 따뜻하지 못하며, 70세에는 고기가 이니면 배부르지 못하니, 따뜻하지 못하고 배부르지 못함을 동뇌(凍¥#)라 이른다. 문왕(文王)의 백성이 동뇌(凍¥#)의 늙은이가 없다는 것은 이를 말한다.”』
『田은 謂百畝之田이요 里는 謂五畝之宅이라 樹는 謂耕桑이요 畜은 謂鷄³.也라 趙氏曰 善養老者는 敎導之하여
使可以養其老耳요 非家賜而人益之也니라』
『 전(田)은 백묘(百畝)의 토지를 이르고, 리(里)는 오묘(五畝)의 집을 이른다.
수(樹)는 밭 갈고 뽕나무를 심음을 이르고, 휵(畜)은 닭과 돼지를 기름을 이른다.』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는 것은 처자(妻子)를 가르치고 인도하여 그 늙은이를 봉양하게
하는 것일 뿐이요, 집집마다 물건을 하사해 주고 사람마다 물건을 보태주는 것은 아니다.”』
*맹자 ; 진심상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孟子曰 易其田疇하며 薄其稅斂이면 民可使富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전주(田疇)『[농지(農地)]』를 잘 다스리며, 세금을 거두기를 적게 한다면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
『易는 治也라 疇는 耕治之田也라』
『 이(易)는 다스림이다. 주(疇)는 갈고 다스리는 밭이다.』
『食之以時하며 用之以禮면 財不可勝用也니라』
『 먹기를 제때에 하며, 쓰기를 예(禮)대로 하면, 재물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이다.』
『敎民節儉이면 則『財用足矣주:재용족의』리라』
『 백성들에게 절약과 검소함을 가르치면 재용(財用)이 풍족할 것이다.』
『民非水火면 不生活이로되 昏暮에 叩人之門戶하여 求水火어든 無弗與者는 至足矣일새니 聖人이 治天下에 使有菽粟을 如水火니 菽粟이 如水火면 而民이 焉有不仁者乎리오』
『 백성들이 물과 불이 아니면 생활할 수가 없으나, 어두운 저녁에 남의 문호(門戶)를 두드리면서 물과 불을 구하면
주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은 지극히 풍족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이 천하를 다스림에 백성들로 하여금 콩과 곡식을 물과 불처럼 흔하게 소유하게 하니, 콩과 곡식이 물과 불처럼 흔하다면 백성들이 어찌 인(仁)하지 못한 자가 있겠는가.”』
『水火는 民之所急이니 宜其愛之로되 而反不愛者는 多故也라 尹氏曰 言 禮義는 生於富足이니 民無常産이면
則無常心矣니라』
『 물과 불은 백성들에게 시급한 것이니, 마땅히 아껴야 할 터인데도 도리어 아끼지 않는 것은 많기 때문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예의(禮義)는 부유하고 풍족한 데서 생겨나니, 백성들이 떳떳이 살 수 있는 재산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이 없어짐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孟子曰 孔子登東山而小魯하시고 登太山而小天下하시니 故로 觀於海者엔 難爲水요 遊於聖人之門者엔 難爲言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노(魯)나라 동산(東山)에 올라가시어 노(魯)나라를 작게 여기셨고,
태산(太山)에 올라가시어 천하(天下)를 작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구경한 자에게는 큰 물 되기가 어렵고,
성인(聖人)의 문하(門下)에 유학(遊學)한 자에게는 훌륭한 말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此는 言聖人之道大也라 東山은 蓋魯城東之高山이요 而太山則又高矣라 此는 言 所處益高면 則其視下益小요
所見旣大면 則其小者不足觀也라 難爲水, 難爲言은 猶『仁不可爲衆주:인불가위중』之意라』
『 이는 성인(聖人)의 도(道)가 큼을 말씀한 것이다. 동산(東山)은 노(魯)나라 도성(都城) 동쪽에 있는 높은 산(山)이요, 태산(太山)은 이보다도 더 높다. 이는 처(處)한 곳이 더욱 높으면 그 아래를 봄에 더욱 작아지고, 본 것이 이미 크면 작은 것은 이미 족히 볼 것이 못됨을 말씀한 것이다., 물 되기가 어렵고 말 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인자(仁者) 앞에서는 많은 무리『[적수]』가 될 수 없다.’는 뜻과 같다.』
『觀水有術하니 必觀其瀾이니라 日月有明하니 容光에 必照焉이니라』
『 물을 구경하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이 밝음이 있으니, 빛을 용납하는 곳에는 반드시 비추는 것이다.』
『此는 言道之有本也라 瀾은 水之湍急處也라 明者는 光之體요 光者는 明之用也라 觀水之瀾이면 則知其源之有本矣요
觀日月於容光之隙에 無不照면 則知其明之有本矣라』
『 이는 도(道)에 근본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난(瀾)의 물의 여울이 급한 곳이다. 밝음은 빛의 체(體)요, 빛은 밝음의 용(用)이다. 물의 여울목을 보면 그 수원(水源)에 근본이 있음을 알 수 있고, 해와 달이 빛을 용납하는 틈에 비추지 않음이 없음을 보면 그 밝음에 근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면 不行하나니 君子之志於道也에도 不成章이면 不達이니라』
『 흐르는 물의 물건 됨이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君子)가 도(道)를 뜻함에도 문장(文章)을
이루지 않으면 통달하지 못한다.”』
『言 學當以漸이라야 乃能至也라 成章은 所積者厚而文章外見『(현)』也라 達者는 足於此而通於彼也라』
『○ 此章은 言 聖人之道가 大而有本하니 學之者必以其漸이라야 乃能至也니라』
『 학문은 마땅히 점진적(漸進的)으로 하여야 능히 이룸을 말씀한 것이다. 문장(文章)을 이룬다는 것은 쌓인 것이
후(厚)하여 문장(文章)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달(達)은 여기에 충족(充足)하여 저기에 통하는 것이다.』
『 ○ 이 장(章)은 성인(聖人)의 도(道)가 크면서도 근본이 있으니, 이것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점진적(漸進的)으로
하여야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5장
▣ 제25장(第二十五章)
『孟子曰 鷄鳴而起하여 칕칕爲善者는 舜之徒也요』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선행(善行)을 하는 자는 순(舜)임금의 무리요, ”』
『칕칕는 勤勉之意라 言 雖未至於聖人이나 亦是聖人之徒也라』
『 자자(칕칕)는 부지런히 힘쓰는 뜻이다. 비록 성인(聖人)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또한 성인(聖人)의 무리임을 말씀한
것이다.』
『鷄鳴而起하여 칕칕爲利者는 蹠之徒也니』
『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하는 자는 도척(盜蹠)의 무리이니,』
『蹠은 盜蹠也라』
『 척(蹠)은 도척(盜蹠)이다.』
『欲知舜與蹠之分인댄 無他라 利與善之間也니라』
『 순(舜)임금과 도척(盜蹠)의 분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것이 없다. 이(利)와 선(善)의 사이인 것이다.”』
『程子曰 言間者는 謂相去不遠하여 所爭이 毫末耳라 善與利는 公私而已矣니 才『(°.)』出於善이면 便以利言也니라』
『○ 楊氏曰 舜蹠之相去遠矣나 而其分은 乃在利善之間而已니 是豈可以不謹이리오 然이나 講立不熟하고 見之不明이면 未有不以利爲義者니 又學者所當深察也니라 或問 鷄鳴而起하여 若未接物이면 如何爲善이닛고 程子曰 只主於敬이 便是爲善이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이라고 말한 것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다투는 바가 털끝 만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선(善)과 이(利)는 공(公)과 사(私)일 뿐이니, 잠시라도 선(善)에서 벗어나면 곧 이(利)라고 말할 수 있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순(舜)임금과 도척(盜蹠)의 상거(相去)가 멀되, 그 분별은 바로 이(利)와 선(善)의 사이에 있을 뿐이니, 이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론(講論)하기를 익숙히 하지 않으며, 보기를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이(利)를 의(義)라고 여기지 않을 자가 없으니, 이는 또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 혹자가 묻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만일 사물을 접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야 선(善)이 됩니까” 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다만 경(敬)을 주장하는 것이 곧 선(善)을 하는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孟子曰 楊子는 取爲我하니 拔一毛而利天下라도 不爲也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양자(楊子)는 자신을 위함을 취하였으니, 하나의 털을 뽑아서 천하(天下)가 이롭
더라도 하지 않았다.”』
『楊子는 名朱라 取者는 僅足之意니 取爲我者는 僅足於爲我而已요 不及爲人也라 列子稱其言曰 伯成子高不以一毫利物이라하니 是也라』
『 양자(楊子)는 이름이 주(朱)이다. 취(取)한다는 것은 겨우 족(足)하다는 뜻이다. 자신을 위함을 취한다는 것은 위아(爲我)에 겨우 족할 뿐이요, 위인(爲人)에 미치지 않는 것이다. 열자(列子)가 그의 말을 칭하기를 ‘백성자고(伯成子高)는 일호(一毫)라도 남을 이롭게 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다.』
『墨子는 兼愛하니 摩頂放踵이라도 利天下인댄 爲之하니라』
『 묵자(墨子)는 겸애(兼愛)를 하였으니, 이마를 갈아 발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天下)에 이로우면 하였다.』
『墨子는 名翟이라 兼愛는 無所不愛也라 摩頂은 妄其頂也라 放은 至也라』
『 묵자(墨子)는 이름이 적(翟)이다. 겸애(兼愛)는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다.
마정(摩頂)은 그 이마를 갈고 부딪치는 것이다. 방(放)은 지(至)『[이름]』이다.』
『子莫은 執中하니 執中이 爲近之나 執中無權이 猶執一也니라』
『 자막(子莫)은 이 중간을 잡았으니, 중간을 잡는 것이 도(道)에 가까우나, 중간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한쪽을 잡는 것과 같다.』
『子莫은 魯之賢者也니 知楊墨之失中也라 故로 度於二者之間하여 而執其中하니라 近은 近道也라 權은 稱錘也니 所以稱物之輕重而取中也라 執中而無權이면 則膠於一定之中하여 而不知變이니 是亦執一而已矣니라 程子曰 中字最難識이니 須是默識心通이니라 且試言 一廳則中央爲中이요 一家則廳非中而堂爲中이며 一國則堂非中而國之中爲中이니 推此類면 可見矣니라 又曰 中不可執也니 識得則事事物物에 皆有自然之中하여 不待安排하니 安排著이면 則不中矣니라』
『 자막(子莫)은 노(魯)나라의 현자(賢者)이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중도(中道)를 잃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두
가지의 사이를 헤아려서 그 중간을 잡은 것이다. 근(近)은 도(道)에 가까움이다. 권(權)은 저울과 저울추이니, 물건의
경중(輕重)을 달아서 맞음을 취하는 것이다. 중간을 잡고 저울질함『[권도(權道)]』이 없다면 일정한 중(中)에 교착
되어 변화를 알지 못하니, 이 또한 한쪽을 잡는 것일 뿐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중자(中字)가 가장 알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묵묵히 알고 마음으로 통달하여야 한다.
우선 시험삼아 말한다면, 한 대청에는 대청 중앙이 중(中)『[중앙]』이 되고, 한 집안에는 대청이 중(中)이 아니라,
당(堂)이 중(中)이 되며, 한 나라에는 당(堂)이 중(中)이 아니라, 나라의 한 가운데가 중(中)이 되니, 이러한 유(類)를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
『 또 말씀하였다. “중(中)은 잡을 수가 없으니, 이것을 안다면 사사물물(事事物物)에 모두 자연(自然)의 중(中)이
있어서 안배(安排)하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니, 안배(安排)한다면 중(中)이 못된다.”』
『所惡執一者는 爲其賊道也니 擧一而廢百也니라』
『 한쪽을 잡는 것을 미워하는 까닭은 도(道)를 해치기 때문이니, 하나를 들고 백 가지를 폐하는 것이다.”』
『賊은 害也라 爲我는 害仁이요 兼愛는 害義요 執中者는 害於時中이니 皆擧一而廢百者也라』
『○ 此章은 言 道之所貴者는 中이요 中之所貴者는 權이니라 楊氏曰 禹稷이 三過其門而不入하니 苟不當其可면 則與墨子無異요 顔子在陋巷하여 不改其樂하시니 苟不當其可면 則與楊氏無異라 子莫은 執爲我兼愛之中而無權하니 鄕§_有鬪而不知閉戶하고 同室有鬪而不知救之리니 是亦猶執一耳라 故로 孟子以爲賊道라하시니라 禹稷顔回易地則皆然은 以其有權也니 不然이면 則是亦楊墨而已矣니라』
『 적(賊)은 해침이다. 위아(爲我)는 인(仁)을 해치고, 겸애(兼愛)는 의(義)를 해치며, 중간을 잡는 것은 시중(時中)을
해치니, 모두 하나를 들고 백 가지를 폐하는 것이다.』
『 ○ 이 장(章)은 도(道)의 귀한 것은 중(中)이요, 중(中)의 귀한 것은 권도(權道)임을 말씀한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우(禹)와 직(稷)이 세 번 자기 집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만일 그 가(可)함에
마땅하지 않았다면 묵자(墨子)와 다를 것이 없고, 안자(顔子)가 누추한 골목에 있으면서 그 즐거움을 변치 않았으니,
만일 그 가(可)함에 마땅하지 않았다면 양씨(楊氏)와 다를 것이 없다. 자막(子莫)은 위아(爲我)와 겸애(兼愛)의 중간을
잡아 저울질함이 없었으니, 향리(鄕里)와 이웃에 싸우는 사람이 있어도 문을 닫을 줄 모르며, 한 방에 있는 사람이 싸우더라도 말릴 줄을 모를 것이니, 이 또한 한쪽을 잡은 것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도(道)를 해친다.’고
말씀한 것이다. 우(禹)•직(稷)과 안회(顔回)가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렇게 함은 권도(權道)가 있기 때문이니,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일 뿐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7장
▣ 제27장(第二十七章)
『孟子曰 飢者甘食하고 渴者甘飮하나니 是未得飮食之正也라 飢渴이 害之也니 豈惟口腹有飢渴之害리오 人心이
亦皆有害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굶주린 자는 달게 먹고, 목마른 자는 달게 마시니, 이는 음식의 올바른 맛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해치기 때문이니, 어찌 다만 구복(口腹)만이 굶주리고 목마른 해(害)가 있겠는가.
마음까지도 또한 모두 해(害)가 있는 것이다.”』
『口腹이 爲飢渴所害라 故로 於飮食에 不暇擇而失其正味요 人心이 爲貧賤所害라 故로 於富貴에 不暇擇而失其正理니라』
『 구복(口腹)이 굶주림과 목마름에 해를 받기 때문에 음식에 대하여 가릴 겨를이 없어 그 정미(正味)를 잃는 것이요, 인심(人心)이 빈천(貧賤)에 해를 받기 때문에 부귀(富貴)에 대하여 가릴 겨를이 없어 그 정리(正理)를 잃는 것이다.』
『人能無以飢渴之害爲心害면 則不及人을 不爲憂矣리라』
『 사람이 능히 기갈(飢渴)의 해로써 마음의 해(害)를 받지 않게 한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다.”』
『人能不以貧賤之故而動其心이면 則過人이 遠矣니라』
『 사람이 능히 빈천(貧賤)의 이유 때문에 그 마음을 동요하지 않는다면 남보다 뛰어남이 먼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8장
▣ 제28장(第二十八章)
『孟子曰 柳下惠는 不以三公易其介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유하혜(柳下惠)는 삼공(三公)으로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介는 有分辨之意라 柳下惠는 進不隱賢하여 必以其道하며 遺佚不怨하며 촰窮不憫하고 直道事人하여 至於三黜하니
是其介也니라』
『○ 此章은 言柳下惠和而不流하니 與孔子論『夷齊不念舊惡주:이제불념구악』로 意正相類하니 皆聖賢『微顯闡幽주:
미현천유』之意也니라』
『 개(介)는 분별함이 있는 뜻이다. 유하혜(柳下惠)는 나가서는 어짊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道)로써 하며, 벼슬길에서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해도 고민하지 않으며, 도(道)를 곧게 하여 남『[군주]』을 섬겨서 세 번 내쳐짐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그의 절개이다.』
『 ○ 이 장(章)은 유하혜(柳下惠)가 화(和)하면서도 흐르지 않았음을 말씀하였으니, 공자(孔子)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논하면서 ‘옛 악(惡)함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과 뜻이 서로 유사(類似)하다. 이는 모두 성현(聖賢)이 드러난 것은 은미(隱微)하게 하고, 그윽한 것은 밝혀주는 뜻이다.』
*맹자 ; 진심상 ; 제29장
▣ 제29장(第二十九章)
『孟子曰 有爲者µ?若掘井하니 掘井九휚이라도 而不及泉이면 猶爲棄井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함이 있는 자는 비유하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으니,
우물을 아홉 길을 팠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림이 되는 것이다.”』
『八尺曰칅『(휚)』이라 言 鑿井雖深이나 然이나 未及泉而止면 猶爲自棄其井也니라』
『○ 呂侍講曰 仁不如堯요 孝不如舜이요 學不如孔子면 終未入於聖人之域이며 終未至於天道니 未免爲半塗而廢하여
自棄前功也니라』
『 팔척(八尺)을 인(칅)이라 한다. 우물을 파기를 비록 깊이 했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고 중지하면,
오히려 스스로 그 우물을 버림이 됨을 말씀한 것이다.』
『 ○ 여시강(呂侍講)이 말하였다. “인(仁)이 요(堯)임금과 같지 못하고, 효(孝)가 순(舜)임금과 같지 못하고, 학문(學問)이 공자(孔子)와 같지 못하면 끝내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으며, 마침내 천도(天道)에 이르지 못할 것이니,
반도(半塗)『[중도(中道)]』에 폐(廢)하여 스스로 전공(前功)을 버림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0장
▣ 제30장(第三十章)
『孟子曰 堯舜은 性之也요 湯武는 身之也요 五큹은 假之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요(堯)•순(舜)은 본성(本性)대로 하신 것이요, 탕(湯)•무(武)는 실천하신 것이요,
오패(五큹)는 빌린 것이다.”』
『堯舜은 天性渾全하여 不假修習이요 湯武는 修身體道하여 以復其性이요 五큹則假借仁義之名하여 以求濟其貪欲之私耳니라』
『 요(堯)•순(舜)은 천성(天性)이 혼전(渾全)하여 닦고 익힘을 빌리지 않았고, 탕(湯)•무(武)는 몸을 닦고 도(道)를 체행(體行)하여 그 본성(本性)을 회복하였고, 오패(五큹)는 인의(仁義)의 이름을 빌려 그 탐욕(貪慾)의 사(私)를 이루기를
구했을 뿐이다.』
『久假而不歸하니 惡知其非有也리오』
『 오래도록 빌리고 돌아가지 않았으니, 어찌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
『歸는 還也라 有는 實有也라 言 竊其名以終身하여 而不自知其非眞有라 或曰 蓋歎世人莫覺其僞者라하니 亦通이라
舊說에 久假不歸면 卽爲眞有라하니 則誤矣니라』
『○ 尹氏曰 性之者는 與道一也요 身之者는 履之也니 及其成功則一也라 五큹則假之而已니 是以로 功烈이 如彼其卑也니라』
『 귀(歸)는 돌아감이다. 유(有)는 실제로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훔치고 일생을 마쳐서 참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알지 못하였음을 말씀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그 거짓을 깨달은 자가 없음을 탄식하신 것이다.”라 하니, 또한 통한다. 구설(舊說)에 “오래도록 빌리고 돌아가지 않으면 참으로 소유한 것이 된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성지(性之)는 도(道)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요, 신지(身之)는 도(道)를 실천하는 것이니, 그 성공(成功)에 이르러서는 똑같다. 오패(五큹)는 빌렸을 뿐이니, 이 때문에 공렬(功烈)이 저와 같이 낮은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1장
▣ 제31장(第三十一章)
『公孫丑曰 伊尹曰 予不狎于不順이라하고 放太甲于桐한대 民大悅하고 太甲이 賢이어늘 又反之한대 民大悅하니』
『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이윤(伊尹)이 이르기를 ‘나는 의리에 순(順)하지 못한 것을 익히 볼 수 없다.’ 하고,
태갑(太甲)을 동(桐)땅으로 추방하자,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고, 태갑(太甲)이 어질어지거늘, 다시 그를 돌아오게 하자,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으니, ”』
『予不狎于不順은 太甲篇文이라 狎은 習見也라 不順은 言太甲所爲不順義理也라 餘見前篇하니라』
『 “나는 의리에 순(順)하지 못한 것을 익히 볼 수 없다.”는 것은 〈태갑편(太甲篇)〉의 글이다. 압(狎)은 익히 봄이다. 불순(不順)은 태갑(太甲)의 소행이 의리(義理)에 순(順)하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다. 나머지는 전편(前篇)『[만장상(萬章上)]』에 보인다.』
『賢者之爲人臣也에 其君不賢이면 則固可放與잇가』
『 현자(賢者)가 남의 신하가 되어 그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진실로 추방할 수 있습니까?”』
『孟子曰 有伊尹之志면 則可커니와 無伊尹之志면 則簒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윤(伊尹)의 뜻이 있으면 가(可)하거니와, 이윤(伊尹)의 뜻이 없으면 찬탈인 것이다.”』
『伊尹之志는 公天下以爲心하여 而無一毫之私者也라』
『 이윤(伊尹)의 뜻이란, 천하를 공정히 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아, 일호(一毫)의 사욕이 없는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2장
▣ 제32장(第三十二章)
『公孫丑曰 詩曰 不素粲兮라하니 君子之不耕而食은 何也잇고 孟子曰 君子居是國也에 其君用之하면 則安富尊榮하고
其子弟從之하면 則孝弟忠信하나니 不素餐兮가 孰大於是리오』
『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공밥을 먹지 않는다.’ 하였으니, 군자(君子)가 밭을 갈지 않고 먹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이 나라에 거(居)함에 그 군주가 등용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부유해지고 높아지고 영화로우며, 자제(子弟)들이 따르면 자제(子弟)들이 효(孝)•제(弟)•충(忠)•신(信)을 하니, 공밥을 먹지 않는 것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는가.”』
『詩는 魏國風伐檀之篇이라 素는 空也니 無功而食祿을 謂之素餐이라 此는 與告陳相彭更之意同이라』
『 시(詩)는 〈위국풍(魏國風) 벌단편(伐檀篇)〉이다. 소(素)는 공(空)이니, 공(功)이 없이 녹(祿)만 먹는 것을 소찬(素餐)이라 이른다. 이는 진상(陳相)과 팽경(彭更)에게 고(告)한 뜻과 같다.』
*맹자 ; 진심상 ; 제33장
▣ 제33장(第三十三章)
『王子컓이 問曰 士는 何事잇고』
『 왕자점(王子컓)이 물었다. “선비는 무엇을 일삼습니까?”』
『컓은 齊王之子也라 上則公卿大夫와 下則農工商賈가 皆有所事로되 而士居其間하여 獨無所事라 故로 王子問之也라』
『 점(컓)은 제왕(齊王)의 아들이다. 위로는 공경(公卿)과 대부(大夫)와 아래로는 농공(農工)과 상고(商賈)가 모두 종사하는 바가 있는데, 사(士)는 그 중간에 거(居)하여 홀로 일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왕자(王子)가 물은 것이다.』
『孟子曰 尙志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뜻을 고상히 한다.”』
『尙은 高尙也라 志者는 心之所之也라 士旣未得行公卿大夫之道하고 又不當爲農工商賈之業이면 則高尙其志而已니라』
『 상(尙)은 고상히 하는 것이다. 지(志)는 마음이 가는 바이다. 선비는 이미 공(公)•경(卿)•대부(大夫)의 도(道)를 행할 수 없고, 또 농(農)•공(工)•상고(商賈)의 업(業)을 해서도 안되니, 그렇다면 그 뜻을 고상히 할뿐인 것이다.』
『曰 何謂尙志니잇고 曰 仁義而已矣니 殺一無罪 非仁也며 非其有而取之非義也라 居惡在오 仁是也요 路惡在오 義是也니 居仁由義면 大人之事備矣니라』
『 “무엇을 뜻을 고상히 한다고 이릅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의(仁義)일 뿐이니, 한 사람이라도 무죄(無罪)한 사람을 죽임은 인(仁)이 아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취하는 것은 의(義)가 아니다. 거(居)하는 것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인(仁)이 이것이요, 길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의(義)가 이것이다. 인(仁)에 거(居)하고 의(義)를 따른다면 대인(大人)의 일이 구비된 것이다.”』
『非仁非義之事를 雖小나 不爲하고 而所居所由가 無不在於仁義하니 此는 士所以尙其志也라 大人은 謂公卿大夫라 言
士雖未得大人之位나 而其志如此면 則大人之事體用已全하니 若小人之事는 則固非所當爲也니라』
『 인(仁)이 아니고 의(義)가 아닌 일은 비록 작더라도 하지 않으며, 거(居)하는 바와 따르는 바가 인의(仁義)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선비가 그 뜻을 고상히 하는 것이다. 대인(大人)은 공(公)•경(卿)•대부(大夫)를 이른다.
선비가 비록 대인(大人)의 지위를 얻지 못했으나, 그 뜻이 이와 같다면, 대인(大人)의 일에 체(體)•용(用)이 이미 완전
하니, 소인(小人)의 일로 말하면 진실로 마땅히 할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4장
▣ 제34장(第三十四章)
『孟子曰 仲子는 不義로 與之齊國而弗受를 人皆信之어니와 是舍簞食豆羹之義也라 人莫大焉이어늘 亡『(無)』
親戚君臣上下하니 以其小者로 信其大者가 奚可哉리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진중자(陳仲子)는 불의(不義)로 제(齊)나라를 주더라도 받지 않을 것을 사람들이 모두 믿고 있거니와, 이것은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버리는 의(義)이다. 사람에게는 인륜(人倫)보다 더 큰 것이 없거늘, 친척(親戚)과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없으니, 그 작은 것을 큰 것이라 믿는 것이 어찌 가(可)하겠는가.”』
『仲子는 陳仲子也라 言 仲子設若非義而與之齊國이라도 必不肯受리니 齊人이 皆信其賢이라 然이나 此但小廉耳라 其µ?兄離母하고 不食君祿하여 無人道之大倫하니 罪莫大焉이라 豈可以小廉으로 信其大節하여 而遂以爲賢哉리오』
『 중자(仲子)는 진중자(陳仲子)이다. 중자(仲子)는 설령 의(義)가 아닌 것으로 제(齊)나라를 주더라도 반드시 받기를
즐겨하지 않을 것이니, 제(齊)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어짊을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작은 청렴일 뿐이다. 그
는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며, 인군(人君)의 녹(祿)을 먹지 않아 인도(人道)의 큰 윤리가 없으니, 죄가 이보다 클 수 없다. 어찌 작은 청렴을 큰 절개라고 믿어서 마침내 어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맹자 ; 진심상 ; 제35장
▣ 제35장(第三十五章)
『桃應이 問曰 舜爲天子요 皐陶爲士어든 줥첳殺人이면 則如之何잇고』
『 도응(桃應)이 물었다. “순(舜)임금이 천자(天子)가 되시고, 고요(皐陶)가 사(士)가 되었는데, 고수(줥첳)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桃應은 孟子弟子也라 其意以爲 舜雖愛父나 而不可以私害公이요 皐陶雖執法이나 而不可以刑天子之父라 故로 設此問하여 以觀聖賢用心之所極이요 非以爲眞有此事也니라』
『 도응(桃應)은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다. 그의 뜻은 생각하기를 ‘순(舜)임금이 비록 아버지를 사랑하나, 사사로운 정(情)으로 공의(公義)를 해칠 수 없고, 고요(皐陶)는 비록 법을 집행하고 있으나, 천자(天子)의 아버지를 형벌 할 수는 없다.’ 고 여겼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을 하여 성현(聖賢)의 마음 씀의 지극함을 보려 한 것이요, 참으로 이러한 일이 있다고 한 것은 아니다.』
『孟子曰 執之而已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법(法)을 집행할 뿐이다.”』
『言 皐陶之心은 知有法而已요 不知有天子之父也라』
『 고요(皐陶)의 마음은 법이 있음을 알 뿐이요, 천자(天子)의 아버지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然則舜은 不禁與잇가』
『 “그렇다면 순(舜)임금은 금지하지 않습니까?”』
『桃應問也라』
『 도응(桃應)이 질문한 것이다.』
『曰 夫舜이 惡得而禁之시리오 夫有所受之也니라』
『 “순(舜)임금이 어떻게 금지할 수 있겠는가. 전수 받은 바가 있는 것이다.”』
『言 皐陶之法이 有所傳受하니 非所敢私라 雖天子之命이라도 亦不得而廢之也니라』
『 고요(皐陶)의 법은 전수 받은 바가 있으니, 감히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천자(天子)의 명령이라도 또한 법을 폐(廢)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然則舜은 如之何잇고』
『 “그렇다면 순(舜)임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桃應問也라』
『 도응(桃應)이 물은 것이다.』
『曰 舜이 視棄天下하시되 猶棄킒?也하사 竊負而逃하사 遵海濱而處하사 終身•-然樂而忘天下하시리라』
『 “순(舜)임금은 천하를 버림을 보시되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이 하여, 몰래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를 따라 거처하면서 종신토록 흔쾌히 즐거워하면서 천하를 잊으셨을 것이다.”』
『?는 草履也라 遵은 循也라 言 舜之心이 知有父而已요 不知有天下也라 孟子嘗言 舜視天下를 猶草芥하고 而惟順於父母라야 可以解憂라하시니 與此意로 互相發이니라』
『○ 此章은 言 爲士者는 但知有法而不知天子父之爲尊이요 爲子者는 但知有父而不知天下之爲大니 蓋其所以爲心者가 莫非天理之極, 人倫之至라 學者察此而有得焉이면 則不待較計論量而天下에 無難處之事矣리라』
『 사(?)는 짚신이다. 준(遵)은 따름이다. 순(舜)임금의 마음은 아버지가 있음을 알 뿐이요, 천하가 있음을 알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순(舜)임금은 천하 보기를 초개(草芥)와 같이 하였고, 오직 부모(父母)에게 순(順)하여야 근심을 풀 수 있었다.”하셨으니, 이 뜻과 서로 발명(發明)된다.』
『 ○ 이 장(章)은 사(士)가 된 자는 다만 법이 있음을 알고, 천자(天子)의 아버지가 높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식된
자는 다만 아버지가 있음을 알고, 천하가 큼을 알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니, 그 마음을 삼은 것이 천리(天理)의 지극함과 인륜(人倫)의 지극함이 아님이 없다. 배우는 자가 이를 살펴서 터득함이 있다면 계교(計較)하고 의논하고 헤아리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천하에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6장
▣ 제36장(第三十六章)
『孟子自范之齊러시니 望見齊王之子하시고 췼然歎曰 居移氣하며 養移體하나니 大哉라 居乎여 夫非盡人之子與아』
『 맹자(孟子)께서 범(范)땅으로부터 제(齊)나라에 가시어 제왕(齊王)의 아들을 바라보시고는 위연(췼然)히 감탄하셨다. “거처 기운을 옮겨놓으며, 봉양이 몸을 바꿔놓으니, 크구나, 거처함이여! 모두 사람의 자식이 아니겠는가.”』
『范은 齊邑이라 居는 謂所處之位라 養은 奉養也라 言 人之居處가 所繫甚大하니 王子亦人子耳로되 特以所居不同이라 故로 所養不同하여 而其氣體有異也라』
『 범(范)은 제(齊)나라 고을이다. 거(居)는 처(處)하는 바의 자리를 이른다. 양(養)은 봉양(奉養)함이다. 사람의 거처는 관계된 바가 매우 크니, 왕자(王子)도 또한 사람의 자식일 뿐인데, 다만 거처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에 봉양하는 바가 같지 않아, 그 기(氣)와 체(體)가 다름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孟子曰)』』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張鄒皆云羨文也라』
『 장씨(張氏)『[장식(張쳫)]』와 추씨(鄒氏)『[추호(鄒浩)]』가 모두 연문(羨文)『[연문(衍文)]』이라고 하였다.』
『王子宮室車馬衣服이 多與人同이로되 而王子若彼者는 其居使之然也니 況居天下之廣居者乎아』
『 왕자(王子)의 궁실(宮室)과 거마(車馬)와 의복(衣服)이 남과 같은 것이 많되, 왕자(王子)가 저와 같은 것은 그 거처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하물며 천하의 광거(廣居)에 거(居)하는 자에 있어서랴!』
『廣居는 見前篇하니라 尹氏曰 첱然見於面, 촖於背는 居天下之廣居者然也니라』
『 광거(廣居)는 전편(前篇)『[등문공하(¦!文公下)]』에 보인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수연(첱然)히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가득함은 천하의 광거(廣居)에 거(居)하는 자만이
그러한 것이다.”』
『魯君이 之宋하여 呼於²하니 此는 無他라 居相似也일새니라』
『 노(魯)나라 인군(人君)이 송(宋)나라에 가서 질택(²을 지키는 자가 말하기를 ‘이는 우리 군주가 아닌데,
어쩌면 그리도 음성이 우리 임금과 같은가.’ 하였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거처가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²
『 질택(²명하신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7장
▣ 제37장(第三十七章)
『孟子曰 食『(사)』而弗愛면 豕交之也요 愛而不敬이면 獸畜之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먹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돼지로 사귐이요,
사랑하기만 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
『交는 接也요 畜은 養也라 獸는 謂犬馬之屬이라』
『 교(交)는 접(接)함이요, 휵(畜)은 기름이다. 수(獸)는 개와 말의 등속을 이른다.』
『恭敬者는 幣之未將者也니라』
『 공경(恭敬)은 폐백을 받들기 이전에 이미 있는 것이다.』
『將은 猶奉也니 詩曰 承筐是將이라하니라 程子曰 恭敬은 雖因威儀幣帛而後發見이나 然이나 幣之未將時에 已有此恭敬之心이요 非因幣帛而後有也니라』
『 장(將)은 봉(奉)『[받듦]』과 같으니, 《시경(詩經)》〈소아(小雅) 녹명(鹿鳴)〉에 이르기를 ‘광주리로 받아 받든다.’ 하였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경(恭敬)은 비록 위의(威儀)와 폐백(幣帛)을 인한 뒤에 나타나나, 폐백(幣帛)을 아직
받들지 않았을 때에 이미 이 공경(恭敬)의 마음이 있는 것이요, 폐백(幣帛)을 인한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恭敬而無實이면 君子不可虛拘니라』
『 공경(恭敬)을 하되 실제가 없으면, 군자(君子)는 헛되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此는 言當時諸侯之待賢者가 特以幣帛爲恭敬而無其實也니라 拘는 留也라』
『 이는 당시 제후(諸侯)들이 현자(賢者)를 대함에 다만 폐백(幣帛)으로써 공경(恭敬)을 삼고,
그 실제가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구(拘)는 얽매임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8장
▣ 제38장(第三十八章)
『孟子曰 形色은 天性也니 惟聖人然後에 可以踐形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형색(形色)은 천성(天性)이니, 오직 성인(聖人)인 뒤에야 형색(形色)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人之有形有色이 無不各有自然之理하니 所謂天性也라 踐은 如『踐言주:천언』之踐이라 蓋衆人은 有是形而不能盡其理라 故로 無以踐其形이요 惟聖人은 有是形而又能盡其理하니 然後에 可以踐其形而無¢#也니라』
『○ 程子曰 此는 言 聖人이 盡得人道而能充其形也라 蓋人得天地之正氣而生하여 與萬物不同하니 旣爲人인댄 須盡得人理然後에 稱其名이라 衆人은 有之而不知하고 賢人은 踐之而未盡하니 能充其形은 惟聖人也니라 楊氏曰 天生烝民에 有物有則하니 物者는 形色也요 則者는 性也라 各盡其則이면 則可以踐形矣니라』
『 사람의 형체와 색(色)은 각기 자연(自然)의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천성(天性)이다.
천(踐)은 천언(踐言)『[말을 실천함]』의 천(踐)과 같다. 중인(衆人)들은 이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그 이치를 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형체를 실천할 수 없는 것이요, 오직 성인(聖人)은 이 형체를 가지고 있고, 또 능히 그 이치를
다하니, 그러한 뒤에야 그 형체를 실천하여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성인(聖人)이 인도(人道)를 다 얻어 능히 그 형체를 충만하게 함을 말씀한 것이다. 사람은 천지(天地)의 정기(正氣)를 얻고 태어나 만물(萬物)과 같지 않으니, 이미 사람이 되었다면 모름지기 사람의 도리를 다 얻은 뒤에야 그 명칭에 걸맞는 것이다. 중인(衆人)은 이것을 가지고 있으되 알지 못하고, 현인(賢人)은 실천하되 다하지 못하니, 능히 그 형체를 채우는 것은 오직 성인(聖人)뿐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하늘이 여러 백성을 냄에 물(物)『[사물]』이 있으며 칙(則)『[법]』이 있으니, 물(物)은 형색(形色)이요, 칙(則)은 성(性)이다. 각기 그 법을 다한다면 형체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39장
▣ 제39장(第三十九章)
『齊宣王이 欲短喪이어늘 公孫丑曰 爲朞之喪이 猶愈於已乎인저』
『 제선왕(齊宣王)이 상기(喪期)를 단축하고자 하자,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기년상(朞年喪)이 그만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已는 猶止也라』
『 이(已)는 지(止)와 같다.』
『孟子曰 是猶或이 ?其兄之臂어든 子謂之姑徐徐云爾로다 亦敎之孝弟而已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는 혹자가 그 형의 팔뚝을 비틀거든 그대가 그에게 이르기를 ‘우선 천천히 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그에게 효제(孝弟)를 가르칠 뿐이다.”』
『?은 戾也라 敎之以孝弟之道면 則彼當自知兄之不可戾而喪之不可短矣리라 孔子曰 子生三年然後에 免於父母之懷하니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주:여야유삼년지애어기부모호』아하시니 所謂敎之以孝弟者如此하니 蓋示之以至情之之不能已者요 非强之也니라』
『 진(?)은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다. 효제(孝弟)의 도리를 가르치면 저는 마땅히 형을 비틀어서는 안되고, 상기(喪期)를 단축해서는 안됨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식이 태어난 지 3년이 된 뒤에 부모(父母)의 품에서 면하나니, 재여(宰予)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父母)에게 있었는가.” 하셨으니, 이른바 효제(孝弟)를 가르친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이는 지극한 정(情)이 능히 그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王子有其母死者어늘 其傅爲之請數月之喪이러니 公孫丑曰 若此者는 何如也잇고』
『 왕자(王子) 중에 그 어머니가 죽은 자가 있거늘, 그 사부(師傅)가 그를 위하여 수개월의 상(喪)을 청하였는데,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陳氏曰 王子所生之母死에 厭『(壓)』於嫡母而不敢終喪이어늘 其傅爲請於王하여 欲使得行數月之喪也라 時又適有此事하니 丑問如此者는 是非何如오하니라 按儀禮컨대公子爲其母하여 練冠, 麻衣, ç;緣하고 旣葬除之라하니 疑當時에 此禮已廢어나 或旣葬而未忍卽除라 故로 請之也라』
『 진씨(陳氏)가 말하였다. “왕자(王子)를 낳은 어머니가 죽자, 적모(嫡母)에 압존(壓尊)되어 상기(喪期)를 마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사부(師傅)가 왕(王)에게 청하여 그로 하여금 수개월의 상기(喪期)를 행할 수 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때에 마침 이러한 일이 있자, 공손추(公孫丑)가 묻기를 ‘이와 같은 경우는 시비(是非)가 어떻습니까? 한 것이다.』
『 《의례(儀禮)》를 상고해 보면 ‘공자(公子)는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위해서 연관(練冠)을 쓰고, 삼베옷을 입고,
붉은 동정을 달았다가 이미 장례(葬禮)한 뒤에 벗는다.’ 하였으니, 당시에 이러한 예(禮)가 이미 폐지되었거나,
또는 이미 장사지냈는데도 차마 곧바로 상복(喪服)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청한 것인 듯하다.』
『曰 是欲終之而不可得也라 雖加一日이나 愈於已하니 謂夫莫之禁而弗爲者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는 상기(喪期)를 마치고자 하여도 될 수 없는 경우이니, 비록 하루를 더하더라도 그만두는 것보다 낫다. <앞에서 말한 것은> 금(禁)하는 자가 없는데도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言 王子欲終喪而不可得이어늘 其傅爲請하니 雖止得加一日이라도 猶勝不加하니 我前所譏는 乃謂夫莫之禁而自不爲者耳니라』
『○ 此章은 言 三年通喪은 天經地義라 不容私意有所短長이니 示之至情이면 則不肖者有以企而及之矣리라』
『 왕자(王子)가 상기(喪期)를 마치고자 하여도 될 수 없자, 그 사부(師傅)가 요청하였으니, 비록 다만 하루를 더 하더라도 오히려 더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내가 전에 비판한 것은 금(禁)하는 자가 없는데도 스스로 하지 않는 자를
말했을 뿐이다.』
『 ○ 이 장(章)은 3년의 통상(通喪)은 하늘의 법(法)이요 땅의 의(義)이므로, 사사로운 뜻으로 단축하고 연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지극한 정(情)을 보여주면 불초(不肖)한 자가 그를 바라보고 미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40장
▣ 제40장(第四十章)
『孟子曰 君子之所以敎者五이니』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가르치는 것이 다섯 가지이니, ”』
『下文五者는 蓋因人品高下와 或相去遠近先後之不同이라』
『 아래 글의 다섯 가지는 인품(人品)의 고하(高下)와 혹은 거리의 원근(遠近)과 선후(先後)의 같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다.』
『有如時雨化之者하며』
『 시우(時雨)『[단비]』가 화(化)『[변화]』하듯이 하는 경우가 있으며,』
『時雨는 及時之雨也라 草木之生에 播種封植하여 人力已至로되 而未能自化하니 所少者는 雨露之滋耳라 及此時而雨之면 則其化速矣리니 敎人之妙亦猶是也니 若孔子之於顔曾이 是已니라』
『 시우(時雨)는 때에 알맞은 비이다. 초목(草木)이 자랄 때에 파종하고 잘 북돋아 주어 사람의 힘이 이미 지극하되,
능히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니, 이때 부족한 것은 우로(雨露)의 자양(滋養)일 뿐이다. 이때에 미쳐서 비가 내리면 그 변화함이 빠르다. 사람을 교화시키는 묘(妙)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예를들면 공자(孔子)가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에 대해서가 이것이다.』
『有成德者하며 有達財者하며』
『 덕(德)을 이루게 한 경우가 있으며, 재질을 통달하게 한 경우가 있으며,』
『財는 與材同이라 此는 各因其所長而敎之者也라 成德은 如孔子之於2閔이요 達財는 如孔子之於由賜라』
『 재(財)는 재(材)와 같다. 이는 각기 그 소장(所長)을 인하여 가르친 것이다. 덕(德)을 이룬다는 것은 공자(孔子)가
염백우(2伯牛)와 민자건(閔子騫)에 대해서와 같은 것이요,
달재(達財)는 공자(孔子)가 자로(子路)와 자공(子貢)에 대해서와 같은 것이다.』
『有答問者하며』
『 물음에 답한 경우가 있으며,』
『就所問而答之니 若孔孟之於樊遲萬章也라』
『 그의 물음에 나아가 답한 것이니,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번지(樊遲)와 만장(萬章)에 대해서와 같은 것이다.』
『有私淑艾者하니』
『 사사로이 선(善)으로 다스린 경우도 있으니,』
『私는 竊也요 淑은 善이요 艾는 治也라 人或不能及門受業하고 仁聞君子之道於人而竊以善治其身하니 是亦君子敎誨之所及이니 若孔孟之於陳亢夷之가 是也니라 孟子亦曰 予未得爲孔子徒也나 予는 私淑諸人也라하시니라』
『 사(私)는 저으기요, 숙(淑)은 선(善)이요, 애(艾)는 다스림이다. 사람이 혹 문하(門下)에 미쳐 수업(受業)하지 못하고, 다만 군자(君子)의 도(道)를 나에게 들어서 저으기 선(善)으로써 그 몸을 다스리기도 하니, 이 또한 군자(君子)의 가르침이 미친 것이다. 예를들면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진항(陳亢)과 이지(夷之)에 대해서가 이것이다. 맹자(孟子)께서도 또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공자(孔子)의 문도(門徒)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저으기 남에게서 얻어들어 몸을 선(善)하게 하였다.”하셨다.』
『此五者는 君子之所以敎也니라』
『 이 다섯 가지는 군자(君子)가 가르치는 것이다.』
『聖賢施敎는 各因其材하여 小以成小하고 大以成大하여 無棄人也니라』
『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베풂은 각기 그 재질에 따라, 작은 사람은 작게 이루어주고 큰 사람은 크게 이루어주어,
버리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41장
▣ 제41장(第四十一章)
『公孫丑曰 道則高矣美矣나 宜若登天然이라 似不可及也니 何不使彼爲可幾及而日칕칕也잇고』
『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도(道)가 높고 아름다우나, 마땅히『[의심컨대]』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따라갈 수 없을 듯하니, 어찌하여 저들로 하여금 거의 미칠 수 있다고 여기게 해서 날마다 부지런히 부지런히 힘쓰게 하지
않습니까?”』
『孟子曰 大匠이 不爲拙工하여 改廢繩墨하며 혬不爲拙射하여 變其즠率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큰 목수가 졸공(拙工)을 위하여 먹줄과 먹통을 고치거나 폐하지 않으며,
예(혬)가 졸사(拙射)를 위하여 활 당기는 율(率)을 변경하지 않는다.”』
『즠率은 彎弓之限也라 言 敎人者皆有不可易之法하니 不容自貶以徇學者之不能也니라』
『 구율(즠率)은 활을 당기는 한계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모두 바꿀 수 없는 법칙이 있으니,
스스로 폄하(貶下)하여 배우는 자의 능하지 못함을 따를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君子引而不發하나 躍如也하여 中道而立이어든 能者從之니라』
『 군자(君子)는 활을 당기고 쏘지 않으나, 약여(躍如)하여 중도(中道)에 서 있거든 능한 자가 따르는 것이다.”』
『引은 引弓也요 發은 發矢也라 躍如는 如踊躍而出也라 因上文즠率而言 君子敎人에 但授以學之之法이요 而不告鎰之之妙니 如射者之引弓而不發矢라 然이나 其所不告者가 已如踊躍而見於前矣니라 中者는 無過不及之謂니 中道而立은 言其非難非易라 能者從之는 言學者當自勉也라』
『○ 此章은 言 道有定體하고 敎有成法하니 卑不可抗이요 高不可貶이요 語不能顯이요 默不能藏이니라』
『 인(引)은 활을 당김이요, 발(發)은 화살을 발사함이다. 약여(躍如)는 용약(踊躍)하여 나옴과 같은 것이다. 위 글의
구율(즠率)을 인하여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가 사람을 가르침에 다만 그것을 배우는 법을 전수해 주고, 그것을 터득하는 묘(妙)는 말해 주지 않으니, 이는 마치 활 쏘는 자가 활을 당기기만 하고 발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말해
주지 않은 것이 이미 용약(踊躍)하여 앞에 나타나는 듯한 것이다.” 하였다. 중(中)은 과(過)와 불급(不及)이 없음을 이르니, 중도이립(中道而立)은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음을 말한다. 능한 자가 따른다는 것은 배우는 자가 마땅히 스스로
힘써야 함을 말한 것이다.』
『 ○ 이 장(章)은 도(道)는 일정한 체(體)가 있으며, 가르침은 이루어진 법이 있으니, 낮은 것을 높여서는 안되고,
높은 것을 폄하(貶下)해서는 안되며, 말하여도 능히 드러낼 수 없고, 침묵을 지켜도 감출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42장
▣ 제42장(第四十二章)
『孟子曰 天下有道엔 爾殉身하고 天下無道엔 以身殉道하나니』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에 도(道)가 있을 때에는 도(道)로써 몸을 따르고,
천하에 도(道)가 없을 때에는 몸으로써 도(道)를 따르는 것이니, ”』
『殉은 如殉葬之殉이니 以死隨物之名也라 身出則道在必行이요 道屈則身在必退니 以死相從而不離也니라』
『 순(殉)은 순장(殉葬)의 순(殉)과 같으니, 죽음으로 물건을 따르는 이름이다.
몸이 나가면 도(道)는 반드시 행해야 할 입장에 있고, 도(道)가 굽혀지면 몸은 반드시 물러날 입장에 있어야 하니,
죽음으로써 서로 따르고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未聞以首殉乎人者也로라』
『 도(道)를 가지고 남을 따른다는 것은 내 들어보지 못하였다.”』
『爾從人은 妾婦之道니라』
『 도(道)를 가지고 남을 따름은 첩부(妾婦)의 도(道)이다.』
*맹자 ; 진심상 ; 제43장
▣ 제43장(第四十三章)
『公都子曰 ¦!更『(경)』之在門也에 若在所禮로되 而不答은 何也잇고』
『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등경(¦!更)이 문하(門下)에 있을 적에 예우(禮遇)할 바에 있을 듯한데도 <선생께서>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심은 어째서 였습니까?”』
『趙氏曰 ¦!更은 ¦!君之弟로 來學者也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등경(¦!更)은 등(¦!)나라 군주의 아우로서, 와서 배운 자이다.”』
『孟子曰 挾貴而問하며 挾賢而問하며 挾長而問하며 挾有勳勞而問하며 挾故而問이 皆所不答也니 ¦!更이 有二焉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귀한 신분을 믿고 물으며, 어짊을 믿고 물으며, 나이 많음을 믿고 물으며, 공로가 있음을 믿고 물으며, 저의(底意)를 가지고 묻는 것은 모두 대답하지 않는 것이니, 등경(¦!更)이 이 가운데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趙氏曰 二는 謂挾貴, 挾賢也라 尹氏曰 有所挾이면 則受道之心이 不專하니 所以不答也니라』
『○ 此는 言 君子雖誨人不倦이나 又惡夫意之不誠者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두 가지는 협귀(挾貴)와 협현(挾賢)을 이른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믿는 바가 있으면 도(道)를 받는 마음이 전일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대답해 주지 않는 것이다.”』
『 ○ 이는 군자(君子)가 비록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나,
또 뜻이 정성스럽지 못한 자를 싫어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상 ; 제44장
▣ 제44장(第四十四章)
『孟子曰 於不可已而已者는 無所不已요 於所厚者薄이면 無所不薄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만두어서는 안될 경우에 그만두는 자는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요,
두터이 할 것에 박하게 한다면 박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已는 止也니 不可止는 謂所不得不爲者也라 所厚는 所當厚者也라 此는 言不及者之弊라』
『 이(已)는 지(止)이니, 불가지(不可止)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소후(所厚)는 마땅히 후대하여야 할 경우이다. 이는 불급(不及)한 자의 폐단을 말씀한 것이다.』
『其進銳者는 其退速이니라』
『 그 나아가기를 빨리 하는 자는 그 후퇴가 속(速)하다.”』
『進銳者는 用心太過하여 其氣易衰라 故로 退速이니라』
『○ 三者之弊는 理勢必然이니 雖過不及之不同이나 然이나 卒同歸於廢弛니라』
『 나아가기를 빨리 하는 자는 마음쓰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여 그 기운이 쇠진하기 쉽다.
그러므로 후퇴가 속(速)한 것이다.』
『 ○ 세 가지의 병폐는 이치와 형세의 필연적인 것이니, 비록 과(過)•불급(不及)이 똑같지 않으나,
마침내 똑같이 폐하고 해이한 데에 돌아가고 만다.』
*맹자 ; 진심상 ; 제45장
▣ 제45장(第四十五章)
『孟子曰 君子之物也에 愛之而弗仁하고 於民也에 仁之而弗親하나니 親親而仁民하고 仁民而愛物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물건에 대해서는 사랑하기만 하고 인(仁)하지 않으며, 백성『[사람]』에 대해서는 인(仁)하기만 하고 친(親)하지 않으니, 친척을 친히 하고서 백성을 인(仁)하게 하고, 백성을 인(仁)하게 하고서 물건을 사랑하는 것이다.”』
『物은 謂禽獸草木이라 愛는 謂取之有時하고 用之有節이라 程子曰 仁은 推己及人이니 如老吾老하여 以及人之老니 於民則可나 於物則不可라 統而言之면 則皆仁이요 分而言之면 則有序니라 楊氏曰 其分不同이라 故로 所施에 不能無差等하니 所謂理一而分殊者也니라 尹氏曰 何以有是羞等고 一本故也니 無僞也니라』
『 물(物)은 금수(禽獸)와 초목(草木)을 이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취하기를 때가 있게 하고, 쓰기를 절도 있게 함을
이른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인(仁)은 내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이니,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를 사람에게 하는 것은 가(可)하나, 물건에게 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통틀어 말한다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인(仁)이요, 나누어 말한다면 차례가 있는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그 분수(分數)가 같지 않기 때문에 베푸는 바에 차등이 없을 수 없으니,
이른바 ‘이치는 하나이나, 나뉨이 다르다.’는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어째서 이 차등이 있는가?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이니, 거짓이 없다.”』
*맹자 ; 진심상 ; 제46장
▣ 제46장(第四十六章)
『孟子曰 知『(智)』者無不知也나 當務之爲急이요 仁者無不愛也나 急親賢之爲務니 堯舜之知『(智)』로 而不킂物은
急先務也요 堯舜之仁으로 不킂愛人은 急親賢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알지 않음이 없으나, 마땅히 힘써야 할 일을 급선무로 여기고, 인자(仁者)는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나, 어진이를 친히 함을 급선무로 여기니, 요순(堯舜)의 지혜로 물건을 두루 알지 않음은
먼저 해야 할 일을 급히 여겼기 때문이요, 요순(堯舜)의 인(仁)으로 사람을 두루 사랑하지 않음은 어진이를 친히 함을
급히 여겼기 때문이다.”』
『知者는 固無不知나 然이나 常以所當務者爲急이면 則事無不治하여 而其爲知也大矣요 仁者는 固無不愛나 然이나
常急於親賢이면 則恩無不洽하여 而其爲仁也博矣니라』
『 지혜로운 자는 진실로 알지 못함이 없으나, 항상 마땅히 힘써야 할 일을 급하게 여긴다면 일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어서 그 지혜로움이 클 것이다. 인자(仁者)는 진실로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나, 항상 어진이를 친히 하는 것을 급히
여긴다면 은혜가 무젖지 않음이 없어서 그 인(仁)이 넓을 것이다.』
『不能三年之喪하고 而쳠小功之察하며 放飯流쿁하고 而問無齒決이 是之謂不知務니라』
『 3년상은 잘하지 못하면서 시마복(쳠麻服)과 소공복(小功服)은 살피며, 밥숟갈을 크게 뜨고 국을 흘려 마시면서,
마른 고기를 이빨로 끊지 말라는 것을 따지는 것, 이것을 급선무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三年之喪은 服之重者也라 쳠麻는 三月이요 小功은 五月이니 服之輕者也라 察은 致詳也라 放飯은 大飯이요 流쿁은
長쿁이니 不敬之大者也라 齒決은 齧斷乾肉이니 不敬之小者也라 問은 講求之意라』
『○ 此章은 言 君子之於道에 識其全體면 則心不狹하고 知所先後면 則事有序니라 豊氏曰 智不急於先務면 雖킂知人之所知하고 킂能人之所能이라도 徒弊精神而無益於天下之治矣요 仁不急於親賢이면 雖有仁民愛物之心이라도 小人在位하여 無由下達하여 聰明이 日蔽於上하고 而惡政이 日加於下하리니 此는 孟子所謂不知務也니라』
『 3년상은 복(服)의 무거운 것이다. 시마(쳠麻)는 3개월 복(服)이요, 소공(小功)은 5개월 복(服)이니, 복(服)의 가벼운 것이다. 찰(察)은 자세함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방반(放飯)은 밥을 크게 뜨는 것이요, 유철(流쿁)은 길게 마시는 것이니, 불경(不敬)의 큰 것이다. 치결(齒決)은 이빨로 물어서 마른 고기를 끊는 것이니, 불경(不敬)의 작은 것이다.
문(問)은 강구(講求)함의 뜻이다.』
『 ○ 이 장(章)은 군자(君子)가 도(道)에 대해서 그 전체(全體)를 알면 마음이 좁아지지 않고,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일에 순서가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 풍씨(豐氏)가 말하였다. “지혜를 씀에 있어 먼저 해야 할 일을 급히 여기지 않는다면 비록 남이 아는 바를 두루 알고, 남이 능한 바에 두루 능하다 하더라도, 다만 정신을 피폐하게 할 뿐이요, 천하(天下)의 다스림에는 유익함이 없을 것이다. 인(仁)을 함에 있어 어진이를 친히 함을 급히 여기지 않는다면, 비록 백성을 사랑하고 물건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소인(小人)들이 지위에 있어서 덕(德)이 아래로 도달할 수가 없어, 총명(聰明)이 날로 위에 가리워지고, 악정(惡政)이 날로 아래에 가해질 것이니, 이것이 맹자(孟子)께서 이른바 ‘급선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