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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

공간철학 (3) - 직관의 순수형식(칸트).자연의 근원적 생산성과 자아 근원적 활동 공간(셸링,피히테)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8.06.05|조회수488 목록 댓글 0

직관의 순수형식으로서의 공간(칸트)

Raum als reine Form der Anschauung(space as pure form of intuition)

 

 

칸트(Immauel Kant)는 『순수 이성 비판』의 선험적 원리론(die transzendentale Elementar lehre)의

선험적 감성론(die transzendentale ästhetik)에서 공간을 “감성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Kant,1956;B36)이면서

“아프리오리한(경험에 독립적인) 인식의 원리”(Kant,1956;B36)라고 주장한다.

 

공간에 관한 칸트의 이러한 주장이 독특한 이유는 공간이 뉴턴처럼 실재적 사물, 즉 사물 자체(Ding an sich)도 아니고, 라이프니츠처럼 실재적 사물의 성격(내적 규정 혹은 외적 관계)도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칸트의 공간은 감성에 근거하면서도 직관 일반의 순수한 형식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간적 규정의 대상은 직관을 통해 우리의 주관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즉, 우리에게 인식되는 공간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현상이다.

순수 공간은 사태가 우리에게 현상하는 형식이다.

순수 공간 안에 감성적 직관작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에 관한 연구는 선험적 감성론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칸트는 “감성의 모든 아프리오리한 원리에 관한 학문”(Kant,1956;B35)을 선험적 감성론이라고 부른다.

칸트는 선험적 감성론에서 공간을 형이상학적 논구와 선험적 논구로 나누어 설명한다.

 

공간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구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1) 공간은 경험적이 아니라 아프리오리한 표상이다.

이를 통해 공간은 현상들의 형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가능한 현상들의 보편적이면서 필연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2) 공간은 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이다.

이것은 공간의 부분들을 경험과 상관없이 전체 공간으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공간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구 전체를 두 가지 의미에서 순수 직관임을 밝힌다.

그것은 공간이 한편으로 주어진 현상들을 정돈하는 공간현상의 형식임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공간형식의 부분들로서의 공간적 다양성을 의미하는 직관의 형식들을 포함하는 것이다(김정주,2001,61).

 

우선 칸트에게

 

1) 공간은 “외적 경험에서 추상된 경험적 개념”(Kant,1956;B38)이 아니라 아프리오리한 표상이다. 그리고

2) 공간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므로 “모든 외적 직관의 근저에 있는 필연적으로 아프리오리한 표상”(Kant,1956;B38)을 전제해야만 한다.

 

이 둘을 종합해 보자면, 칸트에게 공간은 경험대상의 지각된 관계로부터 나중에 추상된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아프리오리한 표상이다.

공간표상이 개별적인 것이더라도 공간에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외적 현상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적 경험 자신이 공간표상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칸트에게 3) 공간은 “사물 일반의 관계들에 의한 보편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Kant, 1956;B39)이며 추리된 개념으로 드러나는 지성(Verstand)의 개념과 구분된다. 그리고

 

4) 칸트의 공간은 “주어진 무한의 크기로 표상된다”(Kant,1956;B39-40).

표상방식에 대한 칸트의 이원론에 따르면 개념과 직관은 구별된다.

개념이 개별 대상에 타당한 공통 특징들을 포함하는 일반적 표상인 반면, 직관은 개별 대상의 표상이다.

지성은 개념을 사고하지만, 직관은 개별자를 직관한다.

 

3)에 따르면 공간이 하나이기 때문에, 칸트는 공간표상이 순수 직관임을 밝히고자 한다.

만일 여러 공간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공간의 부분들을 뜻한다.

따라서 공간의 부분들은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은 여러 부분의 단순한 집합일 수 없다.

 

공간의 부분들은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없고, 오직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으로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칸트의 공간이 순수직관을 통해 아프리오리하게 인식된다는 것은 공간을 아프리오리한 조건들로서 인식한다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할 때 경험과 상관없이 그 부분들의 특성도 필연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4)에 따라 만일 무한한 크기의 공간이 구획을 통해 자신 속에 무한한 부분적인 공간표상을 갖는다면, 우리는 공간개념을 가능한 상이한 표상들로부터의 무한한 집합에 포함되어 있는 표상”(Kant,1956.B;40)으로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공간개념을 무한히 많은 표상의 집합을 자신 속에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칸트는 공간을 개념이 아닌 감성적 직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공간은 “외적 직관의 형식이고 각각의 공간의 내적 규정은 전체 공간에 대한 외적 관계의 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Kant,1976;39).

 

칸트는 선험적 논구에서 순수 직관으로 규정된 공간을 아프리오리한 인식의 근원적 조건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공간의 모든 부분은 그 자체로 순수 직관이기 때문에, 기하학의 판단들은 직접적으로 증명되고 직접적 확실성을 가진다.

이를 통해 칸트의 공간은 경험이 가능한 전체 영역에서의 인식의 원천으로 고찰된다.

 

그런데 공간에 관한 선험적 논구에서는 공간에 관한 우리의 순수 직관이 모든 현상의 형식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간에 있어 우리의 순수한 직관이 감성에 근거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칸트의 선험적 논구가 엄밀한 의미에서 선험적이라면 공간표상이 순수 직관인 이유는 근원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감성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공간표상은 우리의 마음에 의존하지 않은 사물 자체에 타당하지 않고 단지 우리의 감성에 주어진 현상에만 타당하다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칸트는 순수 직관의 주관적 근원과 객관적 타당성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공간은 선험적으로 관념적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 실재적인, 즉 현상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타당한 직관으로 규정된다.

공간이 감성에 근거한 감성의 형식이라는 칸트의 관점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점에 반대하는 결정적 근거다.

우선 뉴턴의 공간을 그 자체 내부에 아무런 물체가 없어도 물체들의 저장소로 규정한다.

칸트에 의하면 뉴턴은 공간을 사물 자체의 형식으로서 신의 현존도 포함하는 모든 현존의 필연적 조건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실재적 사물 자체로서의 뉴턴의 이른바 절대적 공간

공간은 그 자체로 범주들에 의해서 수행된 선험적 연역(die transzendtale Deduktion)이기 때문에, 순수한 사유형식에 있어
객관적 타당성을 감성적 직관과 결합한다.

따라서 모든 범주의 종합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자기의식의 종합은 감성적 직관의 형식인 공간과 연관되고 이러한 형식을 아프리오리하게 제시한다. 선험적 연역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 순수 지성개념에 관한 서술이다”

(Kant,1956,B168).

 

공간은 지성의 형식에 관한 서술이면서 감성의 근원적 형식(Kant, 1956, B169)으로 된다.

이렇게 되면 공간의 통일은 자기관계의 산물로 규정되고, 아프리오리하게 직관될 수 있는 공간은 자기의식의 자체의 통일로 규정된다(권기환, 2012; 327).

 

자기의식의 근원적 종합인 선험적 통각(die transzendentale Apperzeption)은 공간의 통일을 보장한다.

페이튼은 『순수 이성 비판』의 선험적 분석론에서의 공간의 통일은 선험적 감성론과 달리 선험적 통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헨리히는 공간의 통일은 이미 근원적으로 주어진 선험적-감성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김정주, 2001: 53).

둘 중 어느 관점이든 이 근원적 종합은 공간을 전체 현상에 있어 그 현존의 체계적 통일을 뜻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방식의 종합은 공간을 수학적 단일성으로 뿐만 아니라, 역학적 단일성을 통해 현상의 보편적 교호작용임을 뜻한다.

공간은 지성에 있어 상호작용(commercium)이고, 직관에 있어 상호관계(communio)로 나타난다.

칸트는 이것을 인과성과 교호관계라는 범주를 통해 총체적으로 규정해서 공간의 통일을 선험적으로 기초한다

(권기환, 2012; 329)

칸트는 모든 경험 현상의 근저에 아프리오리하게 놓여 있는 것을 통해 경험의 기준을 마련해서 우리의 외부 공간에

대상들이 현존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관념론을 비판한다.

그리고 칸트는 우리와 상관없이 외부 공간에 따로 존재하는 대상을 독단적으로 설정하는 실재론도 비판한다.

칸트가 우리의 외부에 있는 공간을 경험적 실재론의 관점에 근거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공간의 내용이 감각적 소재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칸트는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되면 공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능력의 형식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주어진 대상은 공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이 된다.

따라서 공간과 그것에 주어진 대상을 표상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단지 우리에게 현상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칸트의 주장은 관념론일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Kant, Immanuel, Kritik der reinen Vernunft, Hamurg;Felix Meiner, 1956
Kant, Immanuel,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Hamburg; Felix Meiner, 1976.
Kant, Immanuel, 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Berlin, Georg Reimer, 1912(이마누엘 칸트,

최소인 옮김,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 이제이 북스, 2007).
권기환,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 -『개요』에서 칸트와의 방법론적 차이를 중심으로」,

『헤겔연구』 제31호, 2012.
김정주, 『칸트의 인식론』, 철학과 현실사, 2001.

 

 

권기환(홍익대)

 

 

 

자연의 근원적 생산성으로서의 공간(셸링의)

Raum als ursprüngliche Produktion der Natur(space as original production of nature)

 

 

셸링에게 공간은 자연철학에 근거한다.

사변적 자연학(die spekulative Physik)으로서의 자연철학은 “자연을 자립적인 것으로서 정립한다다.”(Schelling,2004:30).

자연은 그 자체로 생산적이기 때문에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이어야 한다.

따라서 셸링은 자연을 주체로서 뿐만 아니라 근원적 생산성으로 간주한다.(Schelling,2004:41).

 

셸링의 의도는 “모든 것을 자연력에서 설명”(Schelling,2004:31)하면서도 자연을 실재론적으로 구성하는 데 있다.

 

그와 같은 설명방식은 기계론적이거나 선험철학의 길이 아니라, 사변적 자연학에 의한 동역학적 길이다.

동력학의 테제에 의하면 첫째, 운동이 정지로부터 나올 수 있다.

둘째, 자연의 정지에도 운동이 있으며.

셋째, 모든 기계적 운동은 근원적 운동으로부터 도출된 이차적 운동이다.

넷째, 근원적 운동은 자연일반을 구성하는 제1요소들인 근원력(die Grundkräfte)으로부터 유래한다(Schelling,2004:32).

이러한 셸링의 동역학적 가정들은 충만한 공간에서도 어떻게 운동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 근본적으로는 무제약자(das Unbedingte)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셸링에 의하면 “무제약자는 존재 자체인데, 존재 자체는 어떠한 유한한 생산물 안에서도 자신을 완전하게

나타내지 않는다.”(Schelling,2001:77).

무한자에서 유한자로의 이행은 자연에서 생기는 현실적 근원행위(die Urhandlung)이며, 공간 역시 이를 통해

서만 창출된다.

셸링에게 무제약자는 생산적 직관으로서의 지적 직관을 통해 직접적으로 파악된다.

셸링에게 지적 직관은 피히테처럼 의식의 주관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무제약자를

체험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셸링이 공간을 “외감이 스스로를 객체가 되게 하는 직관”(Schelling,1992:136)이라고 규정한

것도 의식주체에 의해 구성된 공간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자연철학에서는 잠세력(die Potenz)을 통해 질료와 더불어 존재하는 충만한 공간이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현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이유는 자연현상의 잠세력이 경험세계에 상응한다는 데 있다.

질료는 공간적으로 연장된 크기로서의 경험을 포괄한다.

따라서 “질료의 현존이라는 잠세력”(Schelling,1856:308)을 철저하게 구성하는 일은 자연철학의 과제이다.

질료의 실재적 구성에 의하면 질료란 생산적 활동에 의해 생산된 근원적인 생산물이다.

 

동역학적 관점에 의하면 인력, 척력, 중력과 같은 힘들은 각각의 독립성 안에서 자연을 공간의 특정한 생산

물로 만든다.

두 개의 대립된 힘은 서로 고립된 물체와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의 주체로서의 우주적 자연과도

연관된다.

그렇게 되면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외부로 나가는 힘인 반발력(die Repulsive Kraft)과 내부로

작용하는 힘인 매력(die attraktive Kraft)으로 구성된다.(Schelling,1859:13).

 

힘의 이중성은 사실 모든 생산물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만일 충만한 공간의 질료가 자신의 생산성을 통해 나타난다면, 질료란 반발력과 매력, 그리고 양자의 종합

에서 구성되는 활동적 생산과정이 만들어낸 생산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질료는 잠세력을 통한 충만한 공간에서 발생한다.

잠세력은 특수한 질료의 발생, 즉 질의 발생을 통한 동역학적 과정의 현상방식인 빛으로 나아간다.

셸링에게 공간이란 질료, 빛 그리고 유기체를 관통하는 충만한 장소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무기적 자연에서부터 유기적 자연으로까지 자연의 모든 과정을 잠세력을 통해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셸링의 공간개념은 실재론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만 아니라, 총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공간을 총체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우주 자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우주 자체야말로 가장 충만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생산물로서의 공간을 넘어서서 절대적

동일성에 기초한 무제약자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Schelling, 권 기환 옮김, 2010:55).


<참고문헌>
Schelling, Friedrich Wilhelm Joseph, Erster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 Stuttgart-Bad Cannstatt :

Fromann-Holzboog, 2001.
Schelling, Friedrich Wilhelm Joseph, Einleitung zu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 Oder: Über den

Begriff der spekulativen Physik und die innere Organisation eines Systems dieser Wissenschaft, Stuttgart-Bad

Cannstatt : Fromann-Holzboog, 2004.
Schelling, Friedrich Wilhelm Joseph, System der transzendentalen Idealismus, Hamburg : Felix Meiner, 1992.
Schelling, Friedrich Wilhelm Joseph, System der gesammten Philosophie und der Naturphilosophie insbesondere

(Würzburger Vorlesungen), Stuttgart/Ausburg: J.G. Cotta‘scher Verlag, 1859.
Schelling, Friedrich Wilhelm Joseph, 권 기환 옮김, 『나의 철학체계의 서술』, 서울 : 누멘, 2010.

 

 

 

 

자아의 근원적 활동으로서의 공간(피히테의)

 

Raum als ursprüngliche Tätigkeit des Ichs(space as original activity of I)

 

 

피히테는 『근원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공간을

1) “평면에 의해 연장된 것”(Fichte,1971:125)이라고 정의한다.

2) “공간은 채워진 것”(Fichte,1971;125)으로 규정된다.

 

전자에 의하면 공간은 연속성으로서 사유된 것인 반면, 후자에 의하면 공간은 위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피히테는 아직 공간을 운동과 연관시키지 않고 이론적 설명에 그친다.

다시 말해 피히테는 이 경우에 공간을 단지 의식의 사실로서만 설명할 뿐이다.

피히테에게 공간은 실천철학에서 비로소 운동과 연관된다.

『실천철학』에 의하면 “운동은 단지 공간에서만 가능할 뿐”(Fichte,1971:249)이다.

그런데 이 공간이 결코 충만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충만한 공간에서는 운동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이 공간은 공간일반이 아니라, 규정된 공간으로서, 일종의 놀이 공간(der Spielraum)이다.

공간과 운동의 관계는 『전체 학론의 기초』 이전에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다.

 이유는 피히테가 공간과 운동의 관계를 하나의 원리(ein Prinzip)로부터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실행(die Tathandlung)은 피히테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실행은 의식의 경험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앞서 “모든 의식의 근저에 놓여 있는”(Fichte,1965:255)

자아의 근원적 활동이다.

피히테의 선험철학은 실행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실행을 통해 자아의 실재성을 증명하는 이론이다.

이렇게 본다면, 피히테의 공간개념도 선험적으로 구성된 자아의 근원적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피히테에게 공간이 중요한 것은 공간의 실재성이 아니라, 공간의 관념성 때문이다.

피히테는 “공간의 관념성을 객체들의 증명된 관념성에서 증명”(Fichte,1965:335)하며 공간을 철저한 선험철학을

통해 규정한다.

피히테는 관념적 객체들을 설정하기 위해 공간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피히테에게 공간은 “외적 직관의 가능성에 있어 주관적 조건”(Fichte,1966:204)이면서, 이를 위한 하나의 형식

이다.

따라서 직관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직관의 형식을 구성한다.

여기에서 피히테가 자기직관(die Selbstanschauung)으로서의 지적 직관(die intellektuelle Anschauung)을 자신의 고유한 철학의 원천으로 삼은 이유도 밝혀진다.

지적 직관을 통해 피히테는 공간을 경험적 소재(der Stoff)에 의해 제약된 것이 아니라, “객체의 주관적 형식이고,

객체의 반성을 통해 조건을 지운 것”(Fichte,1994:112)으로 변경한다.

피히테는 『학론의 고유한 것의 개요』에서 공간을 자아와 비아의 작용력(die Wirksamkeit)을 통해 설명한다.

이 작용력이라는 범주는 자아와 비아 사이에서 양쪽의 공통영역을 만든다.

그러나 이 공통영역은 아직 근원적 규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공통영역은 우연적으로 구성되거나 필연적으로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 의하면 공통영역 속에는 대립만이 있을 뿐이고, 후자에 의해서만 공통영역이 근원적 반성을 통해 선험적

으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피히테는 후자를 선택하면서 선험적으로 순수하게 사유된 공간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동역학적 근원 공간(der dynamische Urraum)에서 수학적 공간을 발생시키는 방식에 근거

한다(권 기환,2012:337).

다시 말해 이러한 근원공간이 없이 자아와 비아의 작용력에 의한 어떠한 공간도 생산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피히테의 공간개념이 자아의 근원적 활동에 근거할 경우에, 이것은 이성의 자발성과 생산적 활동에

의한 자유로운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아에 의해 산출된 공간은 우연적 결과일 뿐만 아니라 유아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히테에게 공간은 철저하게 선험적으로 구성된 자유로운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자아의 근원적 활동에

근거해서 발생론적으로 규정된다.


<참고문헌>
Fichte, Johann Gottlieb, Grundlage der gesamten Wissenschaftslehre als Handschrift für seine Zuhörer, Stuttgart-

Bad Cattstatt: Frommann-Holzboog, 1965.
Fichte, Johann Gottlieb, Eigne Meditationen über Elementarphilosophie, Stuttgart-Bad Cannstatt:

Fromann Holzboog, 1971.
Fichte, Johann Gottlieb, Praktische Philosophie, Stuttgart-Bad Cannstatt : Fromann Holzboog, 1971.
Fichte, Johann Gottlieb, Grundriss des Eigentümlichen der Wissenschaftslehre in Rücksicht auf das theoretische

Vermögen als Handschrift für seine Zuhörer, Stuttgart-Bad Cannstatt: Frommann-Holzboog, 1966.
Fichte, Johann Gottlieb, Wissenschaftslehre nova methodo, Hamburg : Felix Meiner, 1994.
권 기환,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개요”에서 칸트와의 방법론적 차이를 중심으로,

『헤겔 연구』 제31호, 2012.

 

 권기환(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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