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철학의 밀접한 관련성, 철학의 수학적 배경
서유럽 문화는 神과 數의 문화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수학은 신과 대화하는 학문이라는 말도 있다.
전자는 오래 전 읽은 김영민 교수의 '서양철학사의 구조와 과학'에서 접한 내용이고 후자는 장우석 교수의
'수학, 철학에 미치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수학, 철학에 미치다'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철학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저자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책이다. 저자는 문제는 결코 주어지지 않으며 설령 주어진다 해도 그것을 인식했을 때 문제가 된다는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수학은 문제화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사유의 본질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진경 교수의 '수학의 몽상'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저자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그것이 어떤 모양을 했든 간에 각각의 개체는 하나라는
점에서 등가적이라는 이진경 교수의 정의를 혁명적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은 인간끼리, 동물은 동물끼리, 생물은 생물끼리, 무생물은 무생물끼리 비교하지 교차
적으로 비교하지는 않는다.
가령 우리는 수학 공간에서 사람을 키가 크든 작든, 나이가 많든 적든, 인종이 무엇이든 하나로 간주한다.
사람과 동물, 무생물은 계산 공간에서만 등가가 아닌지?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다가 존재하지 않게 되거나 존재하지 않다가 존재하든지 할 수는 없다."는 말을 했다.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는 원자 즉 atom이란 단어의 배경을 생각하게 한다.
쪼갤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atom은 만일 쪼갤 수 있다면 결국 무가 남을 것이고(아무것도 존재하지 않
을 것이고) 이는 무에서 무엇인가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되는 아포리아를 피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를 부정한다.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이 세계는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이다.
운동을 불가능하며,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으며, 일정하게
흐른 시간의 길이는 그 절반과 같다 등 네 가지 역설을 제시한 제논이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순수한 이성은 이데아의 세계에 속해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 자체로 지식을 획득해가는
과정은 기억을 찾아가는 회상의 과정이라 보았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들었다.
인간 이성은 숱한 윤회 과정을 거치는 동안 육신에 갇혀 그 세계 즉 감각적 경험 세계의 지배를 받기 쉬운
상태가 되었다.
동굴의 비유는 "뇌는 두개골이라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바깥세상을 직접 볼 수 없는 죄인과 같다."는 말
(김대식 교수 지음 '내 머릿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33 페이지)을 생각하게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를 현상세계 속에 구현하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에 따라 형상 - 질료라는
이론 구도가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우리가 감각하는 현상세계가 참된 세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무한은 어떠한 사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즉 질료이다.
곧 무한은 질료 즉 무엇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만 있으며 형상 즉 규칙 다시 말해 제한이 없어 존재
할 수 없다.
동일률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세계는 변화가 없는 세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삼단논법의 기본적 틀을 최초로 확립했다.
삼단논법은 대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참이라는 구조를 갖는다.
대전제는 논리적 추론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제1 원리라 불린다.
대전제에 대한 지식은 논증과 차원이 다른데 이는 끊임없이 필요한 상위 전제를 따라 논증해야만 한다면
지식은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고대 그리스인들의 철학이 불변의 사유, 존재의 사유로부터 출발하였다면 고대 중국인들은 변화의 사유,
생성의 사유로부터 출발하였다.'(51 페이지)
卽非의 논리 다시 말해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의 논리는 천변만화하는 존재의 실상을 묘사한다.
이는 플라톤,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의 논리와 상반된다.
음양은 현상적으로는 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이런 음양의 존재론적 일원성과 현상론적 이원성을 표현한 그림이 태극도이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존재는 음과 양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64 페이지)
그리스 사상에는 과학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이 공존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은 플라톤 철학과 그리스도교가 결합된 철학이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가 결합된 철학이다.(79 페이지)
변화가 없는 이데아의 세계와 호환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천상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 개념을 이용하면 신이 이 세계의 궁극 원인 즉 창조자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미적분학으로 대표되는 근대 수학의 여정은 수학이 2000년 넘게 둥지를 틀고 있던 불변의 세계, 멈춤의
세계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이는 세계로 진출하여 현상세계를 적극적으로 운영해간 역사이다.
데카르트는 그리스의 철학이 가지고 있던 신비주의적 요소가 그리스도교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오래된
종교적 기운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버전으로 이성주의를 재천명할 강력한 이념의
제공자였다.
데카르트는 과학의 근본 원리인 수학에 포커스를 맞추었다.(95 페이지)
미적분학은 수학의 엄밀성의 대표적인 체계이면서도 매우 다양한 응용력을 가지고 있다.
미적분학은 변화를 다루는 수학이다.
함수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로 다양한 함수관계들이 발견되었으며 이에 따라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체계
적으로 정리, 분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함수는 변화의 규칙이기에 함수를 분석하는 것은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변화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고 변화 결과로서의 총량을 파악하는 것이다.
함수가 주어졌을 때 변화율 즉 접선의 기울기를 구하는 과정을 미분(微分)이라 한다.
두 변수 x와 y 사이에 성립하는 함수 관계식을 구한 뒤 이를 미분해서 0이 되는 점을 찾고 그 주변으로
변화율의 부호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안다면 그 함수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가는지 즉 전개되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분을 하는 이유이다.(118 페이지)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적분이 미분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적분학의 도움 없이 근대과학은 불가능했다.
그런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125 페이지)
17 - 18 세기의 수학자(철학자)들에게 우주는 종종 스스로 돌아가는 시계에 비유되었다.
근대의 기계론은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중세적 의미의 인격신이 아닌 수학적 이성이라는 이름의 무색투명한 신(理神)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신 즉 자연)으로 그가 생각한 신은 이성으로 파악이 가능한 합리적 신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의하면 신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신을 만나기 위해 굳이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
라이프니츠에게 우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필연적 진리는 유한 회수의 논리적 추론을 거쳐 알 수 있는 진리이다.
우연적 진리는 무한 회수의 논리적 추론을 거쳐 알 수 있는 진리이다.(136 페이지)
라이프니츠는 필연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를 구분하면서도 무한한 추론을 도입하여 결국 모두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라이프니츠는 변화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존재자를 상정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형상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낼 수 있는 일관된 패턴 즉 관계의 불변성을 추구했다.(139 페이지)
‘수학, 철학에 미치다’는 개념과 개념, 인물과 인물을 매끄럽게 연결지은 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특히 라이프니츠를 현상 변화의 일관성의 궁극적 근원자로서의 신(이성)을 확고하게 믿음으로써 진리는
인간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한 철학자로 규정지은 뒤 남은 것은 인간이 진리의
구성에 참여하는 것임을 밝히고 칸트를 이야기에 끌어들이는 설명 방식(140 페이지)은 인상적이다.
칸트는 700 + 500 = 1200을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지 않은 (선험적) 종합명제로 보았다.
칸트는 수학의 모든 명제를 선험적 분석명제로 규정했다.(145 페이지)
선험적 종합명제는 선험적이므로 경험이라는 주관적 요소에 의존하지 않아 확실성(필연성)이 보장되고,
동어반복이 아닌 종합명제(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지 않음)이기에 새로운 정보를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가장 이상적 조합이다.(145 페이지)
동어반복이란 말이 나온 것은 ‘백조는 흰새‘란 말에서 보듯 같은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00 + 500 = 1200이 선험적 종합명제임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라는 인간의 행위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것을 보여준 칸트의 모습은 모든 것을 신(理性)의 속성의 구현으로 보는 라이프니츠식의 결정
론적 세계관과 다르다.(145 페이지)
칸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경험과 이성을 조합, 확장해 진리를 구성해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칸트는 시초(세계원인)로서의 신이 존재한다면 현상 세계 밖 또는 현상 속에 존재할 것인데 밖에 존재한
다면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안에 존재한다면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다는 인과의 법칙에 어긋나기에
현상 속에도 밖에도 세계원인으로서의 신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순수이성 비판‘ 참고)
칸트는 신, 영혼 등은 순수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실천 이성의 필요에 따라 요청된다는 말을 했다.
수학의 진리가 객관적 진리가 아닌 인간이 구성해낸 인간의 진리라는 주장은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
았다.
수학의 전 영역이 시각의존적인 기하학에서 논리에 훨씬 더 가까운 수학으로 환원되어 간 것은 기하학
에서 기존의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견된 것과 연관성이 있다.(152 페이지)
브로우베르는 무한은 끝없이 커져가는 열린 상태이지 10개, 20개처럼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닫힌 실체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169 페이지)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연수 전체집합 등 공허한 개념을 인식의 대상인 것처럼 실체화해 놓고 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칸토어의 집합론은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유령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170 페이지)
브로우베르 사유의 핵심은 수학적 존재와 그것의 참, 거짓의 문제를 인간의 인식행위와 결부하여 생각했
다는 점이다.
브로우베르의 수학은 칸트의 철학(진리는 인간이 구성하는 것이라는)을 배경으로 한다.(172 페이지)
수학을 구성하는 개념들과 정리(定理)들을 불변의 객관적 실재로 보는 존재론적 입장을 개념 실재론 또는
플라톤주의라 한다.
유한한 인간이 구성하는 수학을 주장한 브로우베르의 칸트적 수학을 직관주의라 한다.
브로우베르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A에 대하여 ’A 가 성립하거니 성립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주장하는
전통적 논리법칙인 배중률은 그 사용이 유한의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직관주의를 유한의 입장이라 한다.
유한의 입장이란 인간의 입장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176 페이지)
힐베르트에 의하면 수학의 본질은 어떤 전제로부터 결론을 유도해내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학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유도해내는 과정의 논리적 정당성(형식)만을 탐구한다고 보는 힐베르트의
수학관을 형식주의라 한다.(181 페이지)
힐베르트는 수학의 전제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조건으로 무모순성과 완전성(참, 거짓 판별 가능)을 들었다.
괴델은 수학형식체계의 완전성과 무모순성은 유한 번의 단계를 거쳐서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 즉 수학의
형식체계 안에 자신이 자신의 정당성을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수학은 내용을 없앤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187 페이지)
수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자연과학 뿐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예술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로 그
적용범위를 확장하게 된 것은 형식주의라는 철학적 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192 페이지)
데카르트를 계승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등은 인간이 이성을 완벽하게 발휘함으로써 신(절대정신)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칸트는 용감하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쳐대던 이성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신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수학, 철학에 미치다’는 수학과 철학의 밀접한 관련성을 알게 하는 인상적인 책이다.
수학을 알아야 철학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학을 좀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관련서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벤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