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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어원

[스크랩] 랑그와 빠롤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2.09.10|조회수282 목록 댓글 0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 1857-1913)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내려오는 학자 집안에서 자라난 풍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역시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었다. 15세에(우리로 치면 중학생 때) 이미 언어의 일반 체계라는 논문으로 주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21세에는 인도유럽어의 원시모음 체계에 관하여 라는 논문으로 언어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는 고향인 제네바에게 대학 교편을 잡고 고대언어, 문법, 일반언어학을 가르쳤다. 그 중에서도 1907년부터 죽기 3년 전인 1911년까지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유명하였는데, 소쉬르가 죽자 제자들이 그의 강의록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그 책이 바로 희대의 명저 일반언어학강의이다. 이 책이야말로 언어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수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그를 구조주의의 창시자로 만든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모국어인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영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고대 페르시아어, 고대 독일어에 능통하였다. 그가 천재였다거나 언어실력이 뛰어났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그래도 부럽기는 되게 부럽다) 문제는 언어학자인 그가 왜 우리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고, 20세기 철학을 여는 사람들의 대열에 드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릴 만큼 혁명적인 그의 언어학적 방법 때문일 것이다. 그 이전의 언어학이 역사적인 언어를 추적하거나(역사주의 언어학), 대상과 언어의 관계를 규명하는(실증주의 언어학)작업에 관심을 쏟았다면, 그의 관심사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바로 언어 그 자체의 구조와 관계에 관하여 탐구하였다.

   후에 <구조주의 언어학>이라고 이름 붙여졌던 그의 언어학(적 방법)은 언어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류학과 사회학, 심리학 등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구조주의의 사총사’라 불리는 레비스트로스, 라캉, 푸코, 알뛰세 역시 소쉬르로부터 빚진 바 크다.

   어릴 적부터 언어의 열정과 천재성을 보여주었던 언어학자.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언어를 탐구하고 분석함으로써 20세기의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 구조주의의 창시자이면서 영감의 원천이었던 소쉬르를 만날 차례다.



장기놀이

   구조주의 언어학을 알기 위하여 장기놀이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문 1 : 노인정 앞에서 두 노인이 심심풀이 소주내기 장기를 두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말이 부족한 것이다. 초(楚)나라는 졸(卒)이 두개가 부족하고, 한(漢)나라는 마(馬)가 하나 없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답 : 간단하지. 초나라에 부족한 두개의 ‘卒’은 ‘바둑돌’로 대신하고, 한나라에 부족한 한 개의 ‘馬’는 소주마개로 대신하면 된다. 

   왜 : 왜긴, 장기 한 두번 둬 보나. 바둑돌을 卒로 알고, 소주마개를 馬로 알고 두면 그만이지.  


   맞다. 바둑돌이 없으면 길거리에 있는 아무 조약돌이나 집어서 졸을 대신하면 되고, 소주마개가 없으면 십원짜리나 백원짜리로 대신하면 그만이다. 장기를 두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문제.


   문 2 : 장기를 한참 두고 있는데, 한 노인이 궁지에 몰렸다. 오갈 데 없는 ‘장군’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이 노인이 사(士)를 슬쩍 두 칸이나 올려서 ‘멍군’으로 응수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답 : 어떻게 되긴. 개판 됐지. 명색이 내기 장긴데 슬쩍 눈감아줄 수는 없는 법! 장기판이 뒤집어지고 말았지. 

   왜 : 왜긴 士야 한 칸밖에 가지 못하는데 두 칸이나 갔으니 문제일 수밖에. 그렇게 가는 길을 위반하고 막 장기를 두면 어디 장기를 할 수나 있겠나?


   맞다 맞아. 장기알 몇 개 없는 것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규칙을 어기는 것은 문제 중에 문제다. 게임이 안되니까. 자 그러면 이 질문의 원래 취지로 돌아가 장기놀이를 언어라고 생각해보자.

 

규칙과 행위 : 랑그와 빠롤

소쉬르는 언어(language)를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하였다. 위의 장기놀이에 비유하면 <랑그>는 장기놀이의 <규칙>에 해당되는 것이고, <파롤>은 그 규칙에 따라 장기를 두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행위>를 일컫는다.

언어학적으로만 국한시켜서 말한다면, <랑그>란 ‘언어사용에 관한 사회적 규칙이나 관행’을, <빠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개개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뜻한다. 랑그는 그런 의미에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이라면, 빠롤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당연히 <빠롤>이 아니라 <랑그>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체적인 언어행위는 언어규칙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음은 소쉬르가 한 말이다.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 내지 비본질적인 것이다. 언어는 화자(話者) 개인의 자유의사가 아니라, 오히려 개개인이 수동적으로 동화된 산물이다.”


   때문에 소쉬르는 언어의 사회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인 <랑그>의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 언어학의 임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언어현상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과 체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프로이트가 의식 속에 숨어있는 커다란 빙산덩어리인 무의식에 관심을 쏟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빠롤>을 드러내는 근원적인 구조인 <랑그>에 주목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구분은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참고로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이러한 개념의 유사성을 알면 나중에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추상/본질적

      구체/비본질적

  소쉬르

 랑그

 빠롤

  촘스키

 언어능력

(linguistic competence)

 언어수행

(linguistic performance)

  야콥슨

 기호체계 (code)

 전언내용(message)


파란 신호등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한편 소쉬르는 언어 역시 인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기호의 일부분이므로, 언어현상을 <기호학(semiology)>의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하였다. (기호학은 기호(signs; semeia)와 과학(logos)이라는 말을 합성하여 만든 말이다.)

   기호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파란불이면 건너고 빨간 불이면 멈추는 것은, 바로 ‘파란불 = 건넌다’와 ‘빨간불 = 멈춘다’라는 약속 때문이다. 만약에 빨간불일 때 건넌다면 그는 약속을 파기한 것이기 때문에 벌금 오천원(요즘은 더올랐나?)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애당초 약속하기를 빨간 불이면 건너고, 파란불이면 멈춘다라고 정했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파란불에 건너는 사람이 벌금을 물어야할 것이다.

   소쉬르는 기호가 청각이나 시각 등으로 감지될 수 있는 측면(위의 예에서는 ‘파란불’)과 감지될 수 없는 개념적 측면(위의 예에서는 ‘건넌다’)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보고, 전자를 <記票(시니피앙: significant)> 후자를 <記意(시니피에: signfie')>라 하였다. 그러니까 (언어를 포함하여)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다.


 

 

 

 

     +

 

 

 

 

     =

 

 

 

 

   기호

 

 

파란 신호등

   건너다

   기표

 (시니피앙)

   기의

(시니피에)


   위의 신호등의 예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기호는 사회적인 약속에 따라 자의적으로 구성된다.(기호의 자의성) 즉, ‘빨간불 = 멈춘다’는 기호는 필연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이러한 예는 언어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을 나타낼 때, 우리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영어로는 ‘맨(man)’이라고 말하고, 중국에서는 ‘르언(人)’이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 진짜 사람을 나타내는지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임의적으로 그렇게 약속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우리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편 <기호>와 <지시대상> 간의 관계도 자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라는 언어 자체만 놓고본다면 ‘사람의 특징’을 전혀 알 수 없다. 만약에 ‘사람’이라는 말 속에 ‘사람을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사람은 ‘사람’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제 우리는 언어와 사물(현상) 간의 명쾌한 대응관계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언어학자의 입장이 얼마나 허술한 가를, 오히려 언어와 사물간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밥과 이밥의 차이 : 기호의 가치

   우리가 <기호>와 <지시대상> 간의 관계 속에서도 기호의 가치(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쉬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언어를 이루는 구성요소는 그 자체로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즉 요소들 간의 차이(difference)를 통해서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을 쉬운 예로 설명하면, ‘개’와 ‘새’의 가치는 ‘개’와 ‘새’라는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와 ‘새’라는 말의 <음성적 차이>(‘ㄱ’과 ‘ㅅ’의 차이)를 통하여 생겨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념적인 차이>의 대립을 통해서도 가치가 발생한다. 남(南)이라는 개념은 북(北)이라는 개념과 대립함으로써, 남(男)이라는 개념은 여(女)라는 개념과 대립함으로써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음성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나라말은 영어의 ‘엘(L)’과 ‘알(R)’을 모두 ‘리을(ㄹ)’로 표기한다. 그러니까 ‘lice’나 ‘rice’는 모두 ‘라이스’가 된다. 하지만 영어는 이 두 단어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앞의 것은 ‘기생충(蟲)’을 뜻하고 뒤의 것은 ‘쌀(米)’를 뜻한다. 때문에 우리가 미국 사람에게 우리말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고 말한다면, 미국 사람은 대경실색을 할 것이다.  우리는 ‘이(米)밥에 카레를 얹은 것’을 먹은 것에 불과하지만, 미국사람은 ‘이(蟲)밥에 카레를 덮은 것’을 먹는 야만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음성적 차이의 가치가 다르니까 나오는 해프닝인 것이다.


식당 메뉴 보는 법 : 연쇄관계와 계열관계

   나야 가난하게 자란 관계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풀 코스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약식으로라도 격식을 차린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전식(前食) - 메인코스 - 후식(디저트). 내가 가본 싼 식당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메뉴를 가지고 있었다.


       전 식

    메인 코스   

     후 식

야채 수프

크림 수프

 

빵 - 돈까스

밥   생선가스

     비후스텍

     함박스텍

오무라이스

카레라이스

(기타 등등)

 

아이스크림

커피

콜라

사이다


   나는 주로 크림수프에 돈까스, 그리고 후식으로는 커피를 즐겨먹는 편이었다.(왜? 가장 싸니까.) 소쉬르의 언어학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음식타령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연쇄관계(syntagme)와 계열관계

(paradigme)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기호의 가치가 음운적이고 개념적인 차이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말한바 있다. 그런데 그 가치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기호끼리 관계를 맺어야한다. 소쉬르는 기호간의 관계를 수평적인 차원의 관계(연쇄관계)와 수직적인 차원의 관계(계열관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니까 위의 메뉴판을 예로 들면 내가 크림수프 - 돈까스 - 커피를 선택하여 연쇄적으로 먹은 것이 <연쇄관계>이고, 먹지는 않았지만 내가 먹은 것과 같은 계열에 속하는 것(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커피/콜라/사이다)이 <계열관계>이다.  

   문장은 바로 이러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데, 예를 들어 “나는 거리를 걷는다.”라는 문장만 하더라도 ‘나/거리/걷는다’등의 기호가 연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자리에 ‘너’나 ‘그녀’ 또는 ‘우리’ 등 같은 계열의 단어들이 들어가도 문장은 성립된다. 

   기호는 끊임없이 다른 기호와 관계를 맺으면서 가치를 결정한다. 그러니까 기호는 다른 기호와 내적으로 상호 의존/대립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소쉬르는 <연쇄관계>를 현존하는 것으로, <계열관계>를 잠재적인 기억의 계열 속에 있는 부재한 것으로 보았다. 



여름의 의미 : 통시성과 공시성

   이조 세종 때 ‘여름’이라는 말은 ‘열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하면 찌는 듯한 더위의 ‘여름(夏)’이 생각날 것이다. 이처럼 언어의 역사적인 기원과 변화과정을 ‘통시적(通時的)으로’ 살피는 언어학을 ‘역사주의 언어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쉬르 이전의 전통적인 언어학자들이 바로 이러한 태도를 취하였다.

   하지만 소쉬르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가가 아니었다. 현재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쓰는 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모르고 쓰는 경우가 더욱 허다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역사적으로 바뀌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그러한 바뀜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가능하게 되는 보편적인 언어의 규칙과 체계를 현재의 시점에서 밝히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에 대한 접근방식의 이러한 차이를 <通時性(diachrony)>과 <共時性(synchrony)>라는 용어로 구분하였다. ‘통시성’은 역사적인 접근방식이고, ‘공시성’은 시간적 전후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접근방식을 나타낸다.

   물론 소쉬르는 <공시성>을 강조하였는데, 통시언어학자들은 <빠롤>의 역사적인 변천을 연구하는데 몰두한 나머지, 언어의 본질인 <랑그>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빠롤의 역사성은 랑그의 비역사성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보았다.       



언어학의 혁명

   우리는 이상에서 랑그와 빠롤(언어의 본질), 기표와 기의(기호의 구성), 연쇄관계와 계열관계(기호의 상관관계), 통시성과 공시성(언어의 접근방식) 등의 대립항을 통하여 구조주의 언어학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상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조주의 언어학은 개인적이고 비본질적인 <빠롤>보다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랑그>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드러나는 개별의 현상보다는 그 현상이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이고 무의식적인 규칙과 체계에 주목한다는 말이다.

   둘째, 구조주의 언어학은 <기호의 자의성>에 주목한다. 즉 대상과 언어의 일치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부정하고,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언어 그 자체의 영역에서 탐구한다.

   셋째, 언어의 가치(의미)를 대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음운적인/개념적인 <차이>를 통하여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언어는 언어의 형식을 벗어나는 언어 외적 현실이나 대상보다는, 언어의 구조와 관계에 주목한다.

   넷째, 언어는 공시적인 방법으로 탐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언어의 역사적 변천이 아니라 언어의 규칙과 체계를 탐구해야 한다. 언어는 역사적인 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율적이고 완결적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주장은 당시로는 참으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언어를 대상의 묘사로, 대응으로 생각했던 실증주의자들과 주관적 관념을 표현하는 도구로 생각했던 현상학자들에게 당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언어학의 혁명은 단순히 언어학 영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구조주의 언어학이 열어놓은 새로운 방법에 의하여 많은 철학자들이 영감을 얻었고, 구조주의적 방법을 자신의 관심영역에 적용하려고 하였다. 철학자들은 과연 소쉬르를 통하여 어떠한 영감을 얻게 되었을까?

   우선 그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언어현상보다는 그 언어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규칙과 체계를 탐구했다는 점을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높이 샀다. 그들은 이를 사회, 문화, 정치영역에 적용하였다. 후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적 방법을 문화인류학에 적용하여 인류생활의 공통적이고 무의식적인 사회규칙을 탐구하였다.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의 영역을, 푸코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구조주의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었던 주체 중심의 실존주의철학에 대한 비판의 관점을 구조주의적 방법을 통하여 얻으려하였다. 소쉬르의 방법에 의하면, 인간의 인식이나 행위는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역으로 무의식적이고 본질적인 규칙(구조)에 의하여 인간의 인식이나 행위가 결정되게 되게 된다. 그러니까 주체 외부의 주체를 형성시키는 구조를 설정함으로써, 주체를 해체시키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쉬르의 방법은 반인간주의, 반역사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을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주목하였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방법은 기존의 철학이 자신의 세계관을 인간중심, 역사중심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던 것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을 형성하였다.


[출전 : 김경윤의 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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