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눈은 마음의 창
目(눈 목) : 눈, 얼굴, 보다
直(곧을 직): 直은 ‘사방으로 난 길(辵)에서 눈(目)을 들어 똑바로(丨) 본다’는 뜻에서 ‘곧다’는 의미가 생겼다.
見(볼 견): 눈(目·목)을 크게 뜬 사람(인·인)을 그려 대상물을 보거나 눈에 들어옴을 형상화했다.
見은 눈을 크게 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떤 사물이 자연히 눈에 들어옴을 말한다.
見은 주관적 의지에 관계없이 보는 행위를 말할 때 주로 쓰였는데 見이 피동의 문법소로 역할하게 된 이유이다.
親(친할 친): 見은 눈을 크게 벌리고 무언가를 주시하는 모습, 辛은 墨刑(묵형) 등을 새길 때 쓰던 칼을 말한다.
親에서의 見은 눈을 크게 벌리고 다른 이를 보살피는 행위임을 보다 강조하여 상징한다.
이후 소리부였던 辛이 지금의 자형(亲)으로 변했다. 亲는 덤불가시(섶), 잡목, 가시나무 등으로, 密集(밀집)되어
서로 붙어 자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덤불, ‘밀집성’을 나타낸다. ‘감정이 깊고 밀접함'
規(법 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성인(夫·부)의 시각(見)이 바로 ‘법도’이자 규칙임을 웅변했다.
規는 이후 일정한 규격대로 원을 그려 내는 그림쇠를 뜻하기도 했다.
夫(지아비 부): 사람의 정면 모습(大·대)에 비녀를 꽂은 모습을 그려 ‘성인이 된 남자’를 나타냈고,
이처럼 고대 중국에서는 나이 든 성인의 지혜를 최고의 판단 준거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남자(夫)가 보고(見) 판단하는 것, 그것을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따라야 할 사회의 法度(법도)이자
규범
臣(신하 신): 가로로 된 자연스러운 눈과 달리 세워진 모습인데, 이는 머리를 숙인 채 위를 쳐다보는 눈으로
노예를 상징화했다. 갑골문에서 臣은 항복했거나 포로로 잡힌 남자 노예를 뜻하며,
왕실의 노예를 감독하는 노예의 우두머리를 지칭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臣에 신하의 뜻이 담겼고
군주제 시절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던 호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臣은 目(눈 목)이나 見(볼 견)과 같이 눈을 그렸지만 ‘보다’는 의미보다는 굴복과 감시의 이미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民(백성 민): 예리한 칼에 눈이 자해된 모습이다. 옛날 포로나 죄인을 노예로 삼을 때 한쪽 눈을 자해한 것은
주로 성인 남성 노예에 대해 반항 능력을 상실시키고자 그랬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을 경우 단순한 노동은 가능하더라도 거리 감각의 상실로
적극적인 대항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民은 ‘노예’가 원래 뜻이며,
이후 의미가 점점 확대되어 통치의 대상이 되는 百姓(백성)이라는 뜻에서 일반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重(童) - 種 - 睪 - 憲 - 監
重(무거울 중): 눈(目)이 찔려(辛) 시력을 상실한 남자이다. 남자노예(童), 여자노예(妾)
睪(엿볼 택): 幸은 다행히 죽음을 피한 죄인(노예)이다. 이 노예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 睪이다.
憲(법 헌): 모사를 눌러쓴 법관으로 죄에 대한 단죄를 눈과 마음으로 두루 살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監(볼 감): 큰그릇(거울)을 살펴 조짐을 읽는 행위로 점치는 모습이다. 관리(臣)가 백성의 사정을 살피다.
善 - 譱 - 法 - 雚
善(착할 선): 선악을 구분하는 해치(羊)의 눈(目)이다.
譱(착할 선): 해치(羊-법관) 앞에서 시비를 가리기 위해 다투고 있다(誩).
法(법 법): 정의로움을 나타내는 해치(羊)와 순리적으로 흘러가는(去) 물(水)을 함께 그려넣었다.
雚(황새 관)볏이 나고 눈이 크게 그려진 왜가리의 모습
艮 - 匕 (반목하다)
艮(그칠 간): ‘설문해자’에서는 匕(비수 비)와 目(눈 목)으로 구성되어 ‘복종하지 않다.
서로가 노려보며 양보하지 않음을 말한다’고 했다. 갑골문에서는 크게 뜬 눈으로 뒤돌아보는 모습을 그렸고,
금문에서는 눈을 사람과 분리해 뒤쪽에 배치하여 의미를 더 구체화했다.
艮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돌려 노려보는 모습, 부라리며 노려보는 ‘눈’이다.
衣 - 袁 - 睘
夢(꿈꿀 몽): 갑골문에서 침상(爿·장) 위에서 누워 자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는데, 눈과 눈썹이 생동적으로 표현
되었다.
금문에 들면서 宀(집 면)과 夕(저녁 석)이 더해진 (○)으로 변함으로써 밤(夕)에 집(면) 안의 침대(爿) 위에서
잠자는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漢(한)나라 이후 (○)은 도태되고 지금처럼의 夢이 주로 쓰이게 되었다.
睘(놀라서볼 경): 衣는 옷깃을 강조하여 표현되었고,
袁은 장식(土)과 口(넉넉하게 늘어짐)을 강조하여 장신구과 화려하게 달린 멋스럽고 아름다운 의상을 표현했다.
睘은 화려한 의상(袁)을 보고 눈(罒)이 휘둥그레진 모습이다.
虫 - 獨 - 屬
虫(벌레 충,훼): 갑골문에서 세모꼴의 머리에 긴 몸통을 가진 살모사를 닮았다.
虫(충,훼)은 ‘뱀’이 원래 뜻이고, 이후 파충류는 물론 곤충, 나아가 ‘기어 다니거나 날아다니는, 털이 있거나 없는,
딱지나 비늘을 가진’ 모든 생물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자 원래 뜻은 它(뱀 타·사)를 더해 蛇(뱀 사)로 분화했고,
虫(충,훼)을 둘 합해 䖵(벌레 곤), 셋 합해 蟲(벌레 충)을 만들었다.
尾(꼬리 미):는 무릎을 구부린 사람의 모습(尸·시)에 毛(털 모)가 역방향으로 붙여진 구조이다.
원시축제 등에서 동물의 모양을 흉내 내 꼬리를 만들어 춤을 추던 모습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꼬리’라는 뜻으로부터, ‘끝’이나 ‘末端(말단)’이라는 뜻이 생겼고 다시 ‘이어지다’, ‘붙어있다’는 뜻도 생겼다.
獨(홀로 독): 개(犬)는 무리지어 살기보다 혼자 살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홀로’라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도 옛날에는 부족이나 씨족 등의 공동체 생활이 훨씬 더 중요했기에 獨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분화되면서 獨에는 보다 자주적이고,
뜻을 굽히지 않으며, 남에게 쉽게 屈從(굴종)하지 않는다는 부가적 의미가 생겼다.
屬(붙을 속): 소전에서 尾와 蜀으로 구성되었다. 蜀은 獨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리부이다.
首(머리 수): 갑골문의 首는 동물의 머리를 닮았고 금문은 위가 머리칼이라기보다는 사슴뿔을 닮았다. 사슴의 머리’
道(길 도): 새봄이 되면 새싹처럼 새로 솟는 사슴뿔과 큰 길(行)을 표현하여 자연의 순리적 순환을 표현했다.
慶(경사 경): 사슴가죽을 선물로 가져가던 결혼풍습에서 경사로움을 뜻함
頁(머리 혈): 首(머리 수) + 儿(사람 인), 首의 윗부분을 구성하는 머리칼이 없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頭(머리 두): 豆는 굽이 높고 위가 둥그런 제사 그릇을 그려 사람의 머리를 연상하게 만든다.
面(얼굴 면): 갑골문에서 얼굴의 윤곽과 눈(目·목) 하나를 그렸다.
自(코) - 息 - 邊 - 夏
自(코, 스스로 자): 동양인들은 코가 납작해서 그런지 갑골문 처럼 콧대와 콧방물이 갖추어진 정면 모습을 그렸다.
自는 이후 코라는 원래 뜻을 잃어버리고 ‘自身(자신)’을 뜻하게 되었다.
혹자는 중국인들이 自己(자기)를 가리킬 때 코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기 때문에 自가 1인칭 대명사로 쓰였다고도
한다.
중국인들에게 이러한 습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것이 보편적인지 옛날부터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自가 대명사로 쓰이자 원래 뜻인 ‘코’는 소리부인 畀(줄 비)를 더하여 만들어진 鼻로 표현했다.
息(쉴 식): 고대 중국인이 ‘숨쉬기’가 코(自)와 심장(心)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息은 천천히 쉬는 숨을 뜻한다. 이 때문에 息에 ‘숨을 천천히 쉬다’나 ‘멈추다’는 뜻도 생겼다.
邊(가 변): 금문에서 辵(어떤 곳으로의 이동)과 臱(보이지 않을 면)으로 구성되었는데, 臱은 소리부도 겸한다.
臱은 시신의 해골만 따로 분리해 코(自)의 구멍(穴·혈)을 위로 향하게 해 구석진 곳(方·방)에 안치하던
옛날의 髑髏棚(촉루붕)의 습속을 반영한 글자다.
그래서 邊은 시신의 해골만 분리해 구석진 곳으로 옮긴다는 뜻에서 ‘가’나 ‘변두리’의 의미를 갖게 됐다.
夏(여름 하):
耳(귀) - 耶
耳 귀 이,팔대째 손자 잉
聑 편안할 접
聶 소곤거릴 섭,칠 접
聂 소곤거릴 섭
聰(聡)귀 밝을 총
聖 성인 성
우리 얼굴에서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이다. 말보다 듣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조물주의 뜻인가 보다.
두 귀(聑)를 열어놓으니 현명하게 되어 매사가 편안하다. 소리를 잘 가려 듣는자가 현명한 자(聖)이다.
여러 귀(聶)에 소근소근 소문을 낸다는 표현인가 보다. 귀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은밀히 소근대고 있다.
귀에 관련된 재미있는 표현들이 참 많다. ^^
刵 귀 벨 이
取 가질 취
挕 때릴 접
恥 부끄러울 치
敢 감히 감,구태여 감
귀(耳)라는 뜻의 의미소가 의외로 다양한 의미로 쓰임을 받고 있다.
적의 귀를 잘라 전쟁에서의 적을 무찌른 증표로 삼았던 까닭에 귀는 명예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때 귀와(耳)와 볼(心)의 언저리가 붉어지는 모습이 恥에 표현되어 있다.
聟 사위 서
耽 즐길 탐
聯연이을 연,연이을 련
풍문으로 들어 알게된 사람(聟)이 사위라니 표현이 재밋다.
耽에선 오른 손으로 턱을 괴고 궤(几)에 기대고(冘)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 느껴진다.
聯은 양쪽 귀에 딸랑딸랑 귀고리(幺幺)가 매달려(丱)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耶 어조사 야,간사할 사
聘 부를 빙
聞 들을 문
聲 소리 성
職 직분 직
聽 (聴-聼) 들을 청
聾 (䏊) 귀먹을 농,귀먹을 롱
(以下) 하영삼 경성대 교수님의 [한자의 뿌리] 참고자료
直(곧을 직): 辵(行+止:자축거리다) + 目(눈) + 丨(똑바로)
親(친할 친): 亲(가시덤불) + 見(보다.살피다)
規(법 규): 夫(성인남자.가장) + 見(지혜로움)
民(백성 민): 예리한 도구에 찔려 실명한 눈, 노예
艮(어긋날 간): 머리를 돌려 옆을 보다. 노려보다.
夢(꿈 몽): 睡는 졸다, 寢은 자려고 잠자리에 들다, 眠은 눈을 감다, 寐는 수면에 들다(잠자다), 夢은 렘 수면상태
(꿈꾸다)
蜀(애벌레 촉): 머리가 크게 돌출된 애벌레를 그려 이후 蠋(나비 애벌레 촉)으로 분화됨. 獨(홀로 독), 屬(붙을 속)
(1) 눈
冒(무릅쓸 모): 눈 위로 모자를 덮어쓴(冃·쓰개 모) 모습에서 ‘모자’와 ‘덮다’의 뜻,
帽(모자 모): 冒가 冒險(모험)에서처럼·위험(險)을 덮어버리다(冒), ‘무릅쓰다’는 뜻. 帽(모자 모).
盲(소경 맹): 눈(目)을 못 쓰거나 없어(亡·망) 보지 못하는 사람
眇(애꾸눈 묘): 눈(目)이 하나 적은(少·소) 것을 말함
眉(눈썹 미): 눈(目)과 위에 있는 눈썹
盼(눈 예쁠 반): 눈(目)의 검은자위와 흰자위가 분명하여(分·분) ‘예쁜’ 모습.
瞽(소경 고): 구성하는 鼓(북 고)는 음악을, 目은 소경을 상징
瞽는 음악을 연주하는 눈먼 사람을 말하는데, 옛날 瞽史(고사)라는 관직이 있었다. 瞽는 시를 외우거나 간언을
주로 했고
史는 천문을 살폈다. 瞽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은 눈이 먼 대신 청각이 대단히 발달하여 남다른 음악성을 가졌고,
또 눈이 멀어 사물을 볼 수 없었기에 도리어 아무런 욕심이 없어 대단히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얼굴, 머리 : 눈은 面(낯 면)이 얼굴이 눈(目)을 하나 그렸듯이 얼굴의 상징
盾(방패 순)은 방패로 눈 즉 ‘얼굴’을 가린 모습
縣(매달 현)은 눈이 달린 ‘머리’를 끈으로 매단(系·계) 모습
(3) 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보기’
看(볼 간): 손(手·수)으로 눈(目) 위를 가리고 보는 것
見(볼 견): 사람(儿·인)에 눈을 크게 그려 넣어 ‘보는’ 동작
相(서로 상): 눈(目)으로 나무(木·목)를 상세히 살핌
直(곧을 직): 눈(目)의 시선이 ‘곧게’ 나가는 모습
省(살필 성·덜 생): 눈의 시선을 좌우로 돌려 두리번거리며 ‘살핌’, 작은 것도 세심히(少) 살핌(目).
直은 갑골문에서 눈(目)과 세로선(丨:뚫을 곤)으로 이뤄졌는데, 여기서의 세로선은 눈으로 전방의 물체를 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금문 단계에서는 보는 대상을 더욱 구체화하고자 세로선에 점이 더해졌고 다시 가로획으로 변했다.
게다가 사방으로 난 길을 그린 行(갈 행)의 줄임 형태인 辵(자축거릴 척)이 더해졌고 형태가 조금 변해 지금처럼
됐다. 그래서 直은 ‘사방으로 난 길(辵)에서 눈(目)을 들어 똑바로(丨) 본다’는 뜻에서 ‘곧다’는 의미가 생겼다.
植은 木과 直으로 이뤄졌는데, 直은 소리부와 의미부를 겸하고 있다. 나무(木)를 심을 때에는 곧바르게(直)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憲의 자형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금문의 자형을 보면 눈이 선명하게 그려졌고 눈 위로는
투구 같은 모양이 그려졌다. 그리고 아랫부분은 心(마음 심)인데 心은 경우에 따라서는 더해지지 않은 경우도
있어 자형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금문의 자형에 근거한다면 쓰고 있는
冠(관)에 장식물이 늘어져 눈을 덮고 있는 모습이 憲 이며, 이 때문에 화려한 장식을 단 冕旒冠(면류관)이 원래
뜻이고 이로부터 ‘덮다’나 ‘드리우다’는 뜻이 생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巾(수건 건)이 더해진 .은 ‘수레를 덮는 포장’을 말하고 車(수레 거)가 더해진 - 역시 ‘수레의 휘장’을 말한다.
憲은 이후 온 세상을 덮는다는 뜻에서 어떤 중요한 법령을 公表(공표)한다는 뜻도 생겼다.
그리고 憲에 心이 더해진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할 수 있는 그러한 법령이어야 한다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憲法은 ‘온 세상을 덮어 마음으로 복종할 수 있는(憲) 법령(法)’을 말한다.
袁이나 睘은 모두 ‘둥글다’
袁은 둥근 璧玉(벽옥)으로 치장한 옷(衣·의)의 모습을 그렸다. 옷에 장식한 둥근 옥을 그린 모습이다.
‘설문해자’에서는 袁을 긴 옷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지만, 사실은 옷을 장식한 둥근 옥의 모습이 원래 뜻이며
‘긴 옷’은 파생 의미이다. 금문의 다른 자형에서는 玉 옆에 손을 그려 넣음으로써 차림새를 가다듬는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에서 璧玉은 왕권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는 玉 중의 玉으로 여겨졌다.
睘(놀라서볼 경) 대단히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용 옥을 매달아 盛裝(성장)을 한 모습을 ‘놀라워하며 보다’는
뜻이다. 그러자 睘의 핵심 내용물인 璧玉처럼 ‘둥근 玉’을 나타낼 때에는 玉을 더하여 環을 사용했다.
睪, 目은 보다는 뜻을 가지고, 幸은 원래 수갑을 그려 죄인을 상징한다. 그래서 역은 ‘죄수를 감시하다’가 원래
뜻이다.
釋은 ‘자세히 관찰하다’, 짐승의 발자국(변)을 자세히 살펴(역) 변별하듯, 상세하게 풀어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繹 또한 뒤엉킨 실((멱,사)·멱)을 자세히 살펴(역) 풀어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을 풀어내다.
譯은 ‘설문해자’의 풀이처럼 ‘이민족의 말을 풀어내는 것’, 즉 飜譯(번역)을 말한다. 한 언어를 또 다른 언어로 풀어
내는 것은 至難(지난)한 작업으로 대상언어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함은 물론 대응 ‘어휘(言)’를 대단히 ‘섬세하게
살펴(역)’ 選擇(선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見은 눈(目·목)을 크게 뜬 사람(인·인)을 그려 대상물을 보거나 눈에 들어옴을 형상화했다.
見은 눈을 크게 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떤 사물이 자연히 눈에 들어옴을 말한다.
見은 주관적 의지에 관계없이 보는 행위를 말할 때 주로 쓰였는데 見이 피동의 문법소로 역할하게 된 이유이다.
示(보일 시): 제단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정성을 신에게 보여 주듯 ‘내보이다’의 뜻.
視(볼 시): 見과 示가 결합해 어떤 대상을 보여 주거나 보는 것.
望(바랄 망): 발돋움을 하여 달(月·월)을 쳐다보는 것처럼 ‘멀리’ 봄.
監(볼 감): 그릇에 비친 얼굴을 쳐다보는 모습으로 어떤 특정 대상을 자세히 살핌.
覽(볼 람): 見이 더해져 어떤 사물을 두루 살펴봄.
觀(볼 관): 큰 눈을 가진 수리부엉이(雚·관)가 목표물을 응시하듯 뚫어지게 바라봄.
(1) 배움, 깨달음, 인간의 지식
覺(깨달을 각)은 學(배울 학)의 생략된 모습과 見으로 구성되어, 끊임없는 배움(學)이 보는 것에 선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학습을 통해 보이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規(법 규)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성인(夫·부)의 시각(見)이 바로 ‘법도’이자 규칙임을 웅변했다.
規는 이후 일정한 규격대로 원을 그려 내는 그림쇠를 뜻하기도 했다. 規는 소전체에서 夫와 見으로 구성되었는데,
夫는 사람의 정면 모습(大·대)에 비녀를 꽂은 모습을 그려 ‘성인이 된 남자’를 나타냈고,
見은 사람(인·인)과 눈(目·목)을 그려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관찰하는 모습에서 ‘보다’는 뜻을 형상화했다.
그래서 規는 글자 그대로 성인 남자(夫)가 보는(見) 것을 말한다. 여기서 성인 남자는 결혼한 남자를 뜻한다.
결혼하지 못한 남자는 성인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혼은 충동적인 젊은 남자를 판단력 있고 책임감 있는
성숙한 남자로 만든다.
이처럼 고대 중국에서는 나이 든 성인의 지혜를 최고의 판단 준거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남자(夫)가 보고(見) 판단하는 것, 그것을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따라야 할 사회의 法度(법도)이자
규범으로 생각했으며, 그 결과 規에는 法度나 典範(전범)이라는 뜻이 생겼다.
그것은 고대 중국이 정착 농경을 일찍부터 시작한 사회로, 이동 없이 한 곳에 정착해 삶을 꾸려 나갔기 때문에
경험이 중시되었고 경험의 중시는 연장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던 문화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範은 소전체에서 원래 수레(車·거)로 '길을 떠날 때 도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했고,
笵은 대나무로 만든 모형 틀을 뜻하여 서로 다른 글자였다. 하지만 範은 笵과 글자가 비슷하여 자주 혼동해
쓰이면서, 지금은 모범이라는 의미의 범이 쓰일 자리를 範이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笵은 의미부인 竹(대 죽)과 소리부인 氾으로 구성되어, 대나무로 만든 모형을 말했다.
‘통속문’에서는 ‘흙으로 만든 형틀을 型(거푸집 형), 쇠로 만든 것을 熔(鎔·녹일 용), 나무로 만든 것을 模(법 모),
대(竹)로 만든 것을 笵이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笵은 模範에서와 같이 어떤 기물을 만들어 내는 표준, 즉 거푸집이라는 의미이다.
거푸집은 동일한 형태를 찍어내는 표준이 되기에 범에는 표준이라는 뜻이 담겼다.
그래서 範圍(범위)는 표준(範)을 둘러싼(圍·위) 주위를 말하고, 範疇(범주)는 거푸집이라는 틀(範)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을 밭두둑(疇)처럼 구분해 놓은 분류를 말하며, 師範(사범)은 선생(師)의 자질을 만들어 내는(範) 곳을
말한다.
(2) 보다
覸(엿볼 한): 틈 사이(間·간)를 ‘엿봄’
覩(睹·볼 도): 솥에 삶는(者·놈 자·煮의 본래 글자) 내용물을 살피는 모습
現(나타날 현): 玉(옥 옥)에 나타나는 무늬를 보고 있는 모습
覶(자세할 나): 왼쪽 부분이 엉킨 실을 두 손으로 푸는 모습을 그려 엉킨 실을 풀려고 실 가닥을 ‘자세히 살핌’
親은 見은 눈을 크게 벌리고 무언가를 주시하는 모습, 辛은 墨刑(묵형) 등을 새길 때 쓰던 칼을 말한다.
親에서의 見은 눈을 크게 벌리고 다른 이를 보살피는 행위임을 보다 강조하여 상징한다.
보살펴주는 대상은 주로 가족이나 씨족 등이었으리라. 이들은 같이 마을 단위의 공동생활을 통해 보다 親密(친밀)
해져 갔을 것이다.
이후 소리부였던 辛이 지금의 자형(亲)으로 변했다.
亲는 덤불가시(섶), 잡목, 가시나무 등으로, 密集(밀집)되어 서로 붙어 자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덤불, ‘밀집성’을
나타낸다.
親은 親近(친근) 등에서 보듯 ‘감정이 깊고 밀접함’이 원래 뜻으로,
가장 가까이서 보살펴주는 부모, 兩親, 親戚과 같이 혈통이나 혼인 관계를 의미하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3) 만나다
覯(만날 구)는 대나무 등을 얽어 놓은 구조물(冓·구)처럼 서로 교차되고 엉키듯 ‘만남’을 말한다.
冓는 갑골문에서 대나무 같은 것을 서로 얽어 놓은 모습을 그렸다.
이후 의미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木(나무 목)을 더한 構로 나무로 얽은 구조물을,
竹(대 죽)을 더한 篝(배롱 구)로 대로 엮은 광주리를 표현했다.
冓는 구조물이 원래 뜻이며, 冓로 구성된 글자들은 모두 ‘교차시켜 엮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溝(봇도랑 구)는 논에 물(水·수)을 잘 댈 수 있도록 이리저리 구조물(冓)처럼 파 놓은 도랑을, 購(살 구)는
화폐(貝)로 상대와 상대를 엮어(冓) 다른 물건으로 바꾸는 행위를, 媾(겹혼인 할 구)는 혼인(女)이 복잡하게
얽힌(冓) 것을, 遘(만날 구)는 길을 가면서(辵) 서로 교차되어(冓) 만나는 것을, 覯(만날 구)는 서로(冓) 만나서
보는(見) 것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講은 말(言)이 구조물을 엮듯 잘 짜여진(冓) 해설이나 講義(강의)를 말한다.
臣은 가로로 된 자연스러운 눈과 달리 세워진 모습인데, 이는 머리를 숙인 채 위를 쳐다보는 눈으로 노예를
상징화했다.
갑골문에서 臣은 항복했거나 포로로 잡힌 남자 노예를 뜻하며, 왕실의 노예를 감독하는 노예의 우두머리를
지칭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臣에 신하의 뜻이 담겼고 군주제 시절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던 호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臣은 目(눈 목)이나 見(볼 견)과 같이 눈을 그렸지만 ‘보다’는 의미보다는 굴복과 감시의
이미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1) 굴복의 의미
宦(벼슬 환)은 집(宀) 속에 갇힌 눈(臣)을 그려 궁실의 제한된 공간 속에 갇혀 일하는 말단 관리,
즉 宦官(환관)을 말했다.
臧(착할 장)은 한쪽 눈(臣)이 창(戈·과)에 찔린 모습.
반항 능력을 줄이기 위해 한쪽 눈을 뺀 남자 노예를 말했으며 고분고분한 노예라는 의미에서 ‘착하다’의 뜻이
나왔다.
(2) 감시의 뜻
臨(임할 림)은 원래 臣과 人(사람 인)과 品(물건 품)으로 이루어져 눈으로 물건을 ‘살피는’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높은 곳에서 아래를 살피는, 監視(감시)와 다스림의 뜻이 나왔다.
監(볼 감)은 臨에서 品 대신 皿(그릇 명)이 들어갔다. 皿은 청동으로 만든 기물의 총칭인데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놓고 얼굴을 비추어 보던 모습에서 ‘보다’와 監視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鑑(鑒·거울 감)은 청동기를 뜻하는 金(쇠 금)을 더했다.
覽(볼 람)은 원래 뜻을 강조하기 위해 見을 더해 분화한 글자들이다.
그렇다면 覽도 ‘보다’로 풀이되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감시의 의미가 들어 視와는 차이를 보인다.
(3) 기타
臥(엎드릴 와)는 책상에 엎드려 머리를 숙인 사람(人)의 눈(臣)을 그려 ‘눕다’와 ‘자다’는 의미를 그렸다.
그래서 옛날에는 침대에 누워 자는 것을 寢(잠잘 침), 책상(机)에 엎드려 자는 것을 臥로 구분했다.
民主는 백성(民)이 주인(主)이 된다는 말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뜻한다. 백성이 주권을 가지기까지 우리는
엄청난 투쟁과 희생의 역사를 겪어야만 했다. 5·18 민주화 운동도 그의 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한자의 자원으로
살폈을 때 백성(民)은 국가의 주권주체가 아니라 황제 혹은 통치권자에 종속된 노예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금문에서부터 등장하는 民은 예리한 칼에 눈이 자해된 모습이다. 옛날 포로나 죄인을 노예로 삼을 때 한쪽 눈을
자해한 것은 주로 성인 남성 노예에 대해 반항 능력을 상실시키고자 그랬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을 경우 단순한 노동은 가능하더라도 거리 감각의 상실로 적극적인 대항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民은 ‘노예’가 원래 뜻이며, 이후 의미가 점점 확대되어 통치의 대상이 되는 百姓(백성)이라는 뜻에서
일반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童 - 妾
한자에서 童과 臧도 그러한 모습을 반영한 글자다. 童은 금문에서 辛(매울 신)과 目(눈 목)과 東(동녘 동)과
土(흙 토)로 구성되었는데, 辛은 형벌 칼을 뜻하고 東은 발음부호의 역할을 한다. 이후 자형이 축약되어 지금
처럼 되었으며, ‘설문해자’에서 ‘죄인을 노예로 삼는데, 남자는 童이라 하고 여자는 妾(첩 첩)이라 한다’고 했다.
이렇듯 童도 한쪽 눈(目)을 자해하여(辛) 노예로 삼은 모습을 그렸으며, 이후 그 연령 대에 해당하는 ‘아이’를
지칭하게 되었다. 臧 역시 눈(目)의 방향을 바꾸어 그린 臣(신하 신)과 戈(창 과)로 구성되어, 창(戈)으로 눈(臣)을
자해한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臧도 ‘남자 노예’가 원래 뜻이며, 이후 순종하는 노예가 좋은 노예라는 뜻에서
‘좋다’와 ‘훌륭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艮 - 匕 (반목하다)
艮의 자원은 명확하지 않다. ‘설문해자’에서는 匕(비수 비)와 目(눈 목)으로 구성되어 ‘복종하지 않다.
서로가 노려보며 양보하지 않음을 말한다’고 했다. 갑골문에서는 크게 뜬 눈으로 뒤돌아보는 모습을 그렸고,
금문에서는 눈을 사람과 분리해 뒤쪽에 배치하여 의미를 더 구체화했다. 이들 자형을 종합해 보면, 艮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돌려 노려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艮의 원래 뜻은 부라리며 노려보는 ‘눈’
이다. 하지만 艮이 싸움하듯 ‘노려보다’는 의미로 확장되자, 원래의 뜻은 目을 더한 眼(눈 안)으로 분화했는데,
眼이 그냥 ‘눈’이 아니라 眼球(안구)라는 뜻을 가지는 것도 이의 반영일 것이다.
恨(한할 한): 서로를 노려보며(艮) 원망하는 마음(心·심)
狠(개 싸우는 소리 한): 개가 서로 싸우는(艮) 것을 말하는데, 개는 두 마리만 모여도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동물
이다.
限(한계 한): 머리를 돌려 부릅뜬 눈(艮) 앞에 높다란 언덕(阜·부)이 ‘가로막혀 있음’으로부터, 장벽에 부딪힘,
限界(한계)
很(패려궂을 흔): 큰 길에서 눈을 부라리며 반항하는 모습에서 공개된 장소에서조차 반항할 정도로 흉악하고
정도가 ‘심함’
根(뿌리 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생존경쟁을 벌이는 나무의 뒤엉킨 ‘뿌리’의 이미지를 잘 나타냈다.
跟(발꿈치 근): ‘뒤’의 의미를 가져, 발(足·발)의 뒤쪽(艮)을 말하며, 이로부터 발꿈치를 보며 ‘뒤따라가다’는 뜻
堇(노란 진흙 근): 원래 기우제를 지낼 때 제물로 쓸 사람을 두 손을 묶고 목에 칼을 씌운 채 불에 태우는 모습
艱(어려울 간): 艮을 더해 그런 ‘어려움(艱苦·간고)’을 더욱 강조. 서로 양보하지 않아 일어나는 싸움과 ‘곤란’의 뜻
夢 (꿈 몽)
충분한 睡眠(수면), 특히 꿈을 꾸지 않는 熟眠(숙면)은 건강한 삶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기억력을 높이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꿈을 꾸는 상태를 렘(rem)수면이라 하고 꿈을 꾸지 않는 상태를 徐波(서파) 수면
이라고 하는데, 렘 수면상태에서는 꿈을 꾸기 때문에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꿈을 뜻하는 夢은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침상(爿·장) 위에서 누워 자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는데, 눈과 눈썹이
생동적으로 표현되었다. 금문에 들면서 宀(집 면)과 夕(저녁 석)이 더해진 (○)으로 변함으로써 밤(夕)에 집(면)
안의 침대(爿) 위에서 잠자는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漢(한)나라 이후 (○)은
도태되고 지금처럼의 夢이 주로 쓰이게 되었다.
夢의 자형에서 특징적인 것은 눈을 키워 그려 놓은 것인데, 눈의 모습이 見(볼 견)에서와 같이 그려졌다.
見이 눈을 크게 뜨고 무엇인가를 주시하는 모습을 그렸음을 고려할 때, 夢에 들어 있는 눈은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꿈속의 정황을 주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렘 수면상태에서의 움직이는
눈동자와도 관련성을 지닌다.
垂 - 華
睡는 눈을 그린 目(눈 목)이 의미부이고 垂가 소리부이다. 垂는 화사하게 핀 꽃들이 늘어진 모습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늘어지다’, ‘드리우다’ 등의 뜻이 생겼다. 睡가 눈꺼풀이 내려와 눈이 감기는 것을 의미하기에 垂는
의미부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따라서 睡는 ‘졸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잠이 든 것을 寐라고 했다. 寐는 宀과 爿
이 의미부이고 未(아닐 미)가 소리부로 된 구조이다. 이와 유사한 뜻을 가지는 글자가 寢이다.
寢 (누울 침)
寢은 갑골문에서 宀과 帚(비 추)로 구성되었으며 이후 爿이 더해졌다. 그래서 寢은 집(면) 안의 寢牀(침상)을
비(추)로 쓸어 잠자리를 준비하는 모습을 그렸으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아직 睡眠상태는 아닌 것을 말한다.
眠은 目이 의미부이고 民(백성 민)이 소리부인 구조로, ‘눈을 감다’가 원래 뜻이나 永眠(영면)과 같이 ‘죽다’는
뜻도 가진다. 이렇게 볼 때 寢은 자려고 잠자리에 든 것을, 眠은 눈을 감는 것을, 寐는 수면에 든 것을, 夢은 렘
수면상태를, 睡는 조는 것을 말한다.
蜀 屬
‘마의상수(t蟻上樹)’라는 중국 요리가 있다. ‘개미가 나무에 올라가다’라는 이름이라 개미 요리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면에 잘게 다진 쇠고기를 볶아 넣은 것으로, 당면에 올라붙은 다진 고기가 나무에 기어
올라가는 개미떼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蟻(개미 의)는 개미의 총칭으로 곧이곧대로 부지런히 일하는
의로운(義·의) 곤충이라는 뜻이며, 螞(왕개미 마)는 말(馬·마)처럼 길고 큰 머리를 가진 개미를 특별히 지칭한다.
이처럼 곤충을 뜻하는 虫(충,훼)은 갑골문에서 세모꼴의 머리에 긴 몸통을 가진 살모사를 닮았다.
그래서 虫(충,훼)은 ‘뱀’이 원래 뜻이고, 이후 파충류는 물론 곤충, 나아가 ‘기어 다니거나 날아다니는,
털이 있거나 없는, 딱지나 비늘을 가진’ 모든 생물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자 원래 뜻은 它(뱀 타·사)를 더해
蛇(뱀 사)로 분화했고, 虫(충,훼)을 둘 합해 䖵(벌레 곤), 셋 합해 蟲(벌레 충)을 만들었다.
먼저, 뱀류를 말한 것으로, 虺(살무사 훼)는 머리를 치켜든(兀·올) 뱀을, 鍚(도마뱀 척)은 보호색으로 쉽게(易·이)
변하는 카멜레온처럼 생긴 ‘도마뱀’을, 蚓(지렁이 인)은 몸을 구부렸다 펴면서(引·인) 움직이는 ‘지렁이’를 말한다.
또 虹(무지개 홍)은 용(虫)이 물을 내 뿜어 ‘무지개’를 만든다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둘째, 벌레나 곤충을 말한 경우로, 蜀(나라이름 촉)은 머리가 크게 돌출된 애벌레를 그려 이후 蠋(나비 애벌레 촉)
으로 분화했고, 蠶(蠶·누에 잠)은 비단실을 토해내는 하늘(天·천)이 내린 신비한 벌레(虫)를 말하며,
蚤(벼룩 조)는 손(叉·손톱 조, 爪의 옛글자)으로 벼룩을 잡는 모습이다. 또 수놈은 교미를 마치면 죽고 암놈은
알을 낳으면 죽는다는 ‘매미(蟬·선)’는 목숨을 다해(單·단) 자손을 번식시키는 곤충(虫)으로 풀이될 수 있다.
나머지, 蜃(무명조개 신)은 조개(辰·신)에 다시 虫이 더해졌고, 蠆(전갈 채)는 전갈을 말하며, 蠢(꿈틀거릴 준)은
벌레(䖵)들이 봄날(春·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꿈틀대는’ 모습을 그렸다.
獨이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매우 많다. 獨立 運動(운동)도 그러하고 獨也靑靑(독야청청), ‘獨自的(독자적)
으로’, ‘獨特(독특)하다’ 등이 그렇다. 하지만 獨자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홀로’라는 의미 이외의, 부정적인 의미나
긍정적인 의미는 없었던 듯하다. 獨은 犬이 의미부이고 蜀이 소리부이다. 개는 무리지어 살기보다 혼자 살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홀로’라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도 옛날에는 부족이나 씨족 등의 공동체 생활이 훨씬 더 중요했기에 獨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분화되면서 獨에는 보다 자주적이고, 뜻을 굽히지 않으며, 남에게 쉽게 屈從(굴종)
하지 않는다는 부가적 의미가 생겼다.
개의 독립된 생활습성을 반영한 또 다른 한자는 獄이다. 獄은 犾(서로 물어뜯을 은)과 言(말씀 언)으로 이루어져,
개 두 마리가 서로 싸우듯 言爭(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言爭의 결과는 訟事(송사)를 일으키고 결국엔
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獄에 監獄(감옥)이라는 뜻이 생겼다. 소리부로 쓰인 蜀은 갑골문에서 머리부분이 크게 돌출된 애벌레를
그렸다. 해바라기 벌레가 원래 뜻이었으나 四川(사천) 지방을 지칭하는 땅이름으로 가차되어 쓰였으며,
이후 벌레(虫)가 더해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從屬(종속)이나 隸屬(예속)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獨에 대칭되는 의미를 가지는 屬은 소전에서 尾와 蜀
으로 구성되었다.
蜀은 獨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리부이다. 같은 소리부를 가졌기에 獨과 屬의 발음은 옛날에는 같았다.
尾는 무릎을 구부린 사람의 모습(尸·시)에 毛(털 모)가 역방향으로 붙여진 구조이다. 원시축제 등에서 동물의
모양을 흉내 내 꼬리를 만들어 춤을 추던 모습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꼬리’라는 뜻으로부터, ‘끝’이나 ‘末端(말단)’이라는 뜻이 생겼고 다시 ‘이어지다’, ‘붙어있다’는 뜻도 생겼다.
首의 자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설문해자’에서는 소전체에 근거해 윗부분은 머리칼, 아랫부분은 얼굴로
사람의 ‘머리’를 그렸다고 했는데 갑골문을 보면 비슷하다. 하지만 갑골문의 首는 사람의 머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물의 머리를 닮았고 금문은 위가 머리칼이라기보다는 사슴뿔을 닮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설문해자’와는 달리
‘사슴의 머리’를 그렸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청동기 문양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슴은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동물이었음이 분명하다. ‘무늬가 든
사슴가죽’을 그린 慶(경사 경)의 자원에서처럼 사슴 가죽을 결혼 축하선물로 보낼 정도로 사슴은 생명과 관련된
제의적 상징이 많이 들어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사슴은 ‘죽음을 삶으로 되살리고 사람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며
심지어 불로장생도 가능하게 하는’ 동물이라 믿었으며, 옛날 전쟁에서는 전쟁의 승리를 점쳐 주는 존재로 여기
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약재로 쓰이는 사슴의 뿔은 매년 봄이면 새로 자라나는 특징 때문에 생명의 주기적 ‘순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道(길 도)는 이러한 사슴의 머리(首)가 상징하는 순환과 생명의 운행(辵·착)을 형상화한 글자로
볼 수 있다. 금문에서 道는 首와 行(갈 행)과 止(발 지)로 구성되었지만, 이후 行과 止가 합쳐져 辵이 되어 지금의
道가 되었다. 그래서 철학적 의미의 ‘道’는 그러한 자연의 순환적 운행을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 갈 ‘길’이자
‘道’였다. 그리하여 道에는 ‘길’이라는 뜻까지 생겼고, 여기에서 파생된 導(이끌 도)는 道에 손을 뜻하는 寸(마디 촌)
이 더해진 글자로, 그러한 길(道)을 가도록 사람들을 잡아(寸) 이끄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여하튼 首는 ‘머리’라는 뜻으로부터 우두머리, 첫째, 시작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는데 首로 구성된 馘(벨 괵)의
或(혹시 혹, 國의 원래 글자)은 창(戈·과)으로 성(囗·국)을 지키는 모습이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싸움에서 필연적
으로 일어나게 되는 ‘목 베기’를 형상화한 글자이다.
頁은 갑골문에서 사람의 머리를 형상적으로 그렸는데, 위의 首(머리 수)와 아래의 인(사람 인)으로 이루어졌다.
소전체에 들면서 首의 윗부분을 구성하는 머리칼이 없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頁은 ‘머리’가 원래
뜻이며, 이후 ‘얼굴’이나 얼굴 부위의 명칭이나 이와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頁이 책의 쪽(페이지)이라는
뜻으로 가차되면서 豆(콩 두)를 더한 頭(머리 두)가 만들어졌는데, 豆는 굽이 높고 위가 둥그런 제사 그릇을 그려
사람의 머리를 연상하게 만든다.
먼저, 머리나 얼굴의 여러 부위를 나타내는 경우로, 頂(정수리 정)은 못(丁·정, 釘의 원래 글자)의 핵심인 머리부분
처럼 머리(頁)의 가장 윗부분을, 頰(뺨 협)은 얼굴(頁)의 양쪽(夾·협) 부위를 말한다.
題(표제 제)의 얼굴의 바로 정면(是·시)인 이마를 말하며, 이로부터 題目(제목)에서처럼 드러난다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또 須(모름지기 수)는 얼굴(頁)에 달린 수염(彡·삼)을 그렸는데, ‘모름지기’라는 뜻으로 가차되자 다시 髟(머리털
드리워질 표)를 더해 鬚(수염 수)로 분화했다. 顯(나타날 현)은 금문에서 햇빛(日·일)에 실(絲·사)을 말리면서
얼굴(頁)을 내밀어 살피는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드러내다’, ‘밝다’ 등의 뜻을 나타냈다.
둘째, 머리와 관련된 속성을 말했는데, 頌(기릴 송)은 머리(頁)를 조아리며 칭송한다는 뜻인데,
소리부인 公(공변될 공)은 그러한 칭송은 언제나 공정한(公) 것이어야지 사사로워서는 아니 됨을 강조하고 있으며,
預(미리 예)는 머리(頁)를 이리저리 흔들며(予·여) 이것저것 생각하며 ‘예상함’을 말한다.
또 煩(괴로워 할 번)은 머리(頁)에 열(火·화)이 남을 뜻했는데 이후 괴롭고 번거로움까지 말하게 되었고,
碩(클 석)은 바위(石·석)처럼 ‘큰’ 머리(頁)를 말했는데, 머리가 큰 것은 碩學(석학)이란 말에서처럼 슬기롭고
총명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順(순할 순)은 머리를 조아림이 물의 흐름(川·천)처럼 순조롭다는 뜻으로,
순하고 잘 복종함을 말했다.
面(얼굴 면)은 갑골문에서 얼굴의 윤곽과 눈(目·목) 하나를 그렸다. 눈은 사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그 사람의 인상을 가장 잘 나타내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얼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었기에 얼굴의
상징으로 등장했고, 두 개를 중복해 그릴 필요가 없어 하나만 그렸다. 소전체에서는 目을 首(머리 수)로 변화시켜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예서체에 들면서 다시 원래의 目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面은 ‘설문해자’의 해석처럼 ‘얼굴(顔前·안전)’이 원래 뜻이다. 눈과 눈썹, 코와 입이 갖추어진 ‘얼굴’은 한
사람을 가장 잘 대표해 줄 상징적인 부위이다. 그래서 즐거움은 물론 부끄러움(靦·전)도 얼굴(面)에 가장 먼저
나타났던(見·견) 것이다. 이 때문인지 ‘찬쯔(面子·체면)’는 중국인들에게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다.
얼굴은 납작하며 옷으로 가려진 신체의 다른 부위와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이기에 납작한 것이나 사물의
表面(표면) 등의 뜻까지 가지게 되었다. 麵(麪·밀가루 면)은 보리(麥·맥)를 가루 내어 납작하게 만들어 자른 ‘면’을, 偭
(향할 면)은 사람(人·인)의 얼굴(面)을 ‘향함’을 말한다.
한자에서 ‘얼굴’을 지칭하는 글자들이 몇 있는데, 현대 중국어에서는 面 대신 臉(뺨 검)이 ‘얼굴’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臉은 위진 시대나 되어서야 등장한 글자로, 원래는 ‘눈 아래에서 뺨 위까지의 부분’을 지칭하여
‘뺨’을 뜻했고 頰(뺨 협)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또 洗顔(세안·얼굴을 씻다)에서처럼 顔(얼굴 안)도 ‘얼굴’이라는
뜻으로 쓰였지만, 사실은 眉間(미간)을 지칭하여 ‘이마’를 뜻했고 額(이마 액)과 같이 쓰였다.
이렇게 볼 때 臉은 面보다 훨씬 뒤에 등장하였지만 현대에 들면서 점점 面의 지위를 대체해 갔음을 알 수 있다.
또 顔은 顔色(안색)에서처럼 주로 색깔이나 표정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지만, 面은 對面(대면·마주 대하다)이나
面刺(면자·면전에서 지적함) 등과 같이 ‘얼굴’ 자체를 말하는데 자주 쓰인다는 차이가 있다.
自는 코를 그렸는데, 앞에서 본 모습이다. 서양인들은 코를 그릴 때 보통 측면 모습을 그리지만 동양인들은 코가
납작해서 그런지 갑골문 처럼 콧대와 콧방물이 갖추어진 정면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自는 이후 코라는 원래 뜻을
잃어버리고 ‘自身(자신)’을 뜻하게 되었다. 혹자는 중국인들이 自己(자기)를 가리킬 때 코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기
때문에 自가 1인칭 대명사로 쓰였다고도 한다. 중국인들에게 이러한 습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것이 보편적인지
옛날부터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自가 대명사로 쓰이자 원래 뜻인 ‘코’는 소리부인 畀(줄 비)를 더하여
만들어진 鼻로 표현했다.
숨은 생명 유지의 필수 조건이기에 息에는 ‘자라다’나 ‘불어나다’ 의 뜻도 생겼다. 子息(자식)은 아이들이 부모로
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利息(이식)은 원금으로부터 불어난 돈을 말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 消息(소식)은 사라지고(消) 생겨나는(息) 천지만물의 모든 변화를 의미하는 뜻에서부터, 세상일에 대한 동정
이나 사정을 뜻하는 지금의 용법으로 변했다.
코는 얼굴에서 개인적 차이가 가장 심한 부위이기에 개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여기에서 自己(자기)
自身(자신)이라는 뜻이, 自由(자유)는 물론 自然(자연·스스로 그러함)의 뜻까지 생겼다. 그러자 원래의 ‘코’는
소리부인 畀(줄 비)를 더해 鼻(코 비)로 분화했다. 중국인들이 자신을 가리킬 때 우리와는 달리 코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 코를 지칭한 경우로, 辠(罪·허물 죄)는 코(自)를 형벌
칼(辛·신)로 자르던 형벌을 말한다. 또 臬(말뚝 얼)은 사람의 코(自) 높이로 세운 나무(木·목) 말뚝을 말했는데,
옛날 해시계나 과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코는 후각기관이자 숨을 내쉬는 기관이기에 自는 ‘냄새’나 ‘호흡’과 관련되어 있다. ‘코’라는 自의 원래 뜻은 臭와
息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臭(냄새 취)는 후각이 발달한 개(犬)의 코(自)라는 의미로부터 ‘냄새(맡다)’라는
뜻이 만들어졌다. 臭는 원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모든 냄새를 부르는 통칭이었으나, 한나라 이후 나쁜 냄새만을
뜻하게 되면서 香(향기 향)과 대칭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자 원래의 동사적 의미는 口(입 구)를 더한
嗅(냄새 맡을 후)로 분화했는데, 口는 냄새를 구분하기 위해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을 보는 이미지를 반영해
주고 있다.
自 息 邊 夏
息은 금문에서부터 自와 心(마음 심)으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고대 중국인이 ‘숨쉬기’가 코(自)와 심장(心)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喘息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喘이 빠르게 몰아쉬는 숨을 말한다면 息은
천천히 쉬는 숨을 뜻한다. 이 때문에 息에 ‘숨을 천천히 쉬다’나 ‘멈추다’는 뜻도 생겼다. 休息(휴식)은 내몰아 쉬는
숨(息)을 가라앉혀 쉬게(休·휴)하는 것이요, 自强不息(자강불식)은 스스로 노력하여 멈추지 아니함을 말한다.
한편 皆는 지금은 比(견줄 비)와 白(흰 백)의 결합이나 원래는 白이 自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皆는 코(自)를 나란히 하여(比) 함께 숨을 같이 쉰다는 의미로, 함께 숨쉬며 공동의 운명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로부터 ‘모두’나 ‘전부’ 등의 뜻이 생겼다. 여기서 파생된 諧(화합할 해)는 말(言·언)이 잘 어우러지는
(皆) 것을, 偕(함께 해)는 사람(人·인)이 함께 하는(皆) 것을 말한다.
邊은 금문에서 辵과 臱(보이지 않을 면)으로 구성되었는데, 臱은 소리부도 겸한다. 辵은 어떤 곳으로의 이동을 의미
하고, 臱은 시신의 해골만 따로 분리해 코(自)의 구멍(穴·혈)을 위로 향하게 해 구석진 곳(方·방)에 안치하던 옛날의
髑髏棚(촉루붕)의 습속을 반영한 글자다. 그래서 邊은 시신의 해골만 분리해 구석진 곳으로 옮긴다는 뜻에서
‘가’나 ‘변두리’의 의미를 갖게 됐다. 상나라의 후기 수도였던 하남성 殷墟(은허)의 많은 무덤에서는 당시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羌族(강족) 등을 포로로 잡아 목을 자르고 해골만 따로 모아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유적이 자주
발견되는데, 이것이 바로 髑髏棚의 존재를 확인해 준다.
夏는 금문에서 크게 키워 그린 얼굴에 두 팔과 발이 그려진 사람의 모습을 나타냈다. 크게 그려진 얼굴은 고대
한자에서 일반적으로 분장을 한 제사장의 모습이며, 두 팔과 발은 율동같은 동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夏는 춤추는
제사장의 모습이며, 그것은 祈雨祭(기우제)를 위한 춤이었다.
그래서 ‘춤’이 夏의 원래 뜻이다. ‘禮記(예기)’에서 말한 象武(상무)가 武舞(무무)를 뜻한다면 夏약(하약)은 文舞
(문무)를 뜻한다. 祈雨祭는 神(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盛大(성대)한 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夏에 다시 ‘크다’는
뜻이 나왔고, 祈雨祭가 주로 여름철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름’도 뜻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세운 최초의 국가를 夏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큰’ 나라라는 의미에서였다.
마치 우리 민족을 ‘한’ 민족이라 불렀던 것처럼.夏에 집을 뜻하는 (엄,한)(기슭 엄)이 더해진 厦는 ‘큰(夏) 집(엄,한)’
을 뜻한다. 그래서 중국어에서는 빌딩(building)을 ‘따샤(大厦)’라 번역했다.
(풀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