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가치 (글쓴이 : 우리)
우리말을 국제화해야 한다는 한글학회와 다른 단체 등의 말은 글쓴이는 할 수도 없거니와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
한다. 각자 민족은 그들 나름대로의 말을 발달시켜왔는데, 그 말을 지금 우리말로 바꾸게 한다는 것은 필요없는
간섭이다. 따라서 나는 남의 나라 말을 우리말로 바꾸자 할 게 아니라 우리 훈민정음을 세계 공용문자를 만들자는
것이고, 이는 우리 훈민정음 가지고는 세계 어느 민족 말도 못 적을 말이 없으니 가능하고, 또 아주 쉽기 때문에 머리
좋은 놈은 하루 아침에 훈민정음을 다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지금 쓰는 한글이 아니고 꼭 훈민정음이어야 하느냐 하는 것은, 지금 한글은 세종보다 더 잘난 학자들이 훈민
정음을 다 망쳐놓아 우리 글자로 우리말도 다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서문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
易習,便於日用耳
(우리나라 말이 듕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상이 훈민정음 공식 창제 동기이다. 그러나 글쓰는 이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보다도 천재적인 충령은 당시 쓰던 우리의 한자음이 중국음과 거의 같으나 그렇다고 중국인과 대화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즉, 당시 사람들은 한자음을 中國은 듕귁, 朝鮮은 됴션등으로 거의 중국인과 같은 발음은 했으나 그렇다고 통역이
없이는 중국인과 통할 수 없어서 정확한 중국음을 알기 위해 대표적 중국 발음사전인 <홍무정운>을 보아야 했는데,
홍무정운이란 중국 명나라 태조 홍무 8년(1375)에 악소봉(樂韶鳳) 등이 왕명에 따라 펴낸 운서. 양나라의 심약(沈約)
이 제정한 이래 800여 년이나 통용되어온 사성의 체계를 모두 북경 음운을 표준으로 삼아 개정한 것으로,
《훈민정음》과 《동국정운》을 짓는 데 참고 자료가 된 15권짜리 책인데,
충령은 이 책으로는 한자의 음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또 누구에게 가르쳐 알리기도 많은 제한이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즉, 중국인이 하는 발음을 녹음기처럼 녹음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은 이따위 책으로는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충령은 왕세자가 아니었기에 궁궐 밖 상것들과 어울리기가 쉬웠다.
그들은 역시 상것들이나 쓰는 글자를 땅바닥에 그려가며 말했고, 당시 선비들은 이 글자를 언문(諺文)이라 했다.
충령도 물론 그 언문이 쉬우니 알고 있었는데, 한자를 홍무정운으로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마당에 이 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이 불완전한 모음이 붙어있는 언문의 모음을 체계 있게만 고친다면 자신이 생각하던 녹음기와 같은 발음
사전을 만들 수 있으리란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결국 세종은 훈민정음 반포 후 자신의 꿈이었던 그 정확한 발음 사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동국정운(東國正韻)
이다. 즉, 충령은 왕이 된 후에도 겨우 딸이나 아들 등 가족과 그 언문 글자를 자방고전(字倣古篆) 하고 발음 구조를
바꿔 훈민정음을 만든다.
하지만 세종은 옛 조상들이 쓰던 엉터리 발음을 없애지는 않았다, 즉 검둥이, 감둥이가 같이 발음되는 글자를 아래 아
점으로 남긴 것이다.
세계 석학은 말한다. 그렇게 훌륭한 문자가 한 사람의 생애에 한 사람에 의해 창제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라는 그 의문은 바로 세종이 이 언문을 참고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하면 의문이 풀린다.
단,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바로 훈민정음 서문의 予爲此憫然新製二十八字. 즉 새로 28자를 지었다는 말과, 그리고
정인지 서문의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즉 '정음을 지은 것은 조상이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지은
것이다'하는 말과 또 世宗御製訓民正音 등이다.
이것을 오해하면 세종은 전연 무에서 28자를 친히 지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 전 원시한글은 있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많으나, 세종의 字倣古篆(옛 전자를 모방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세종 말씀이나, 또 정인지의 象形而 字倣古篆
(그 형상은 옛 전자를 모방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반론자들처럼 세종 전 언문이 있을 수 없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1. 字倣古篆, 또는 象形而字倣告篆이란 세종 말씀이나, 정인지의 말이 순 거짓인가? 세종이나 정인지는 과연 거짓말
을 한것이가?
2. 최만리 상소문에 옛부터 글자나 언문이 있었다는 말이 다음과 같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세종실록>이 위서인가?
언문(諺文)이 세종 전부터 있었다는 최만리 상소문 중 엣 글자가 있었다는 부분
* 언문은 다 옛자를 근본으로 했으므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하시는데,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것을 모방했다고
하나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은 옛것과 달라서 실로 근거한 바가 없사옵니다.
”(諺文皆本古字非新字也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
* 전 조정 때부터 있었던 언문을 빌려 썼다고 하나 지금 같은 문명의 치세에는 오히려 글자를 분별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데, 뜻을 두어야 하는데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
* 대왕께서 상소문을 다 보시고 최만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말하기를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이 옛것과 다르다 했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소리가 다르지 않더뇨?"
(上覽䟽謂萬里等曰汝等云用音合字盡反於古薛聰吏讀亦非異音乎)
* 지금 언문은 모든 (옛)글자를 합하여 아울러 쓰고 그 소리의 해석만 변경하였으니 (한문)글자의 형태가 아닙니다.
(今此諺文合諸字而並書變其音釋而非字形也)
* 전 조정 때부터 있었던 언문을 빌려 썼다고 하나...(借使諺文自前朝有)
* 하물며 언문은 문자(한자)와는 맹세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전용하는 말일 뿐이옵니다.
(况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이상 세종 전에 언문이 없었다면 세종이 거짓말쟁이인지, 또 세종실록이 위서인지 두 가지만 답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