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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운 음악

한국 전통 음악의 정립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1.01.23|조회수295 목록 댓글 0

삼악(향악,아악,당악)과 민속악 이 한국 전통 음악

 

한국의 전통음악은 상류층의 정악(正樂)과 민간의 민속악(民俗樂)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정악인 궁중음악은 다시 향악

(鄕樂), 당악(唐樂), 아악(雅樂)으로 나뉜다.

 

향악

향악이란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때는 신라 눌지왕(417~457) 때인데, 박제상이 왕자 미사흔을 일본에서 신라로 무사히

귀국시킨 것을 기뻐한 왕이 만들었다는 우식악(憂息樂)이 향악이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아악ㆍ당악에 대치되는 것으로, 이들과 향악을 통틀어 삼악(三樂)이라 한다. 민간음악인 민요나 판소리, 잡가, 농악 등은

향악에 포함되지 않는다. 통일신라시대에 당악(唐樂)이 들어온 이후 전통음악을 당악과 구분하기 위하여 향악 또는 속악

(俗樂)이라고 불렀다. 고려는 송나라와 음악적 교류를 통해 속악뿐만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음악인 아악까지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고려의 궁중음악은 향악, 당악, 아악의 삼각구도로 변한다.


당악의 비중이 컸던 고려에 비해 조선에서는 당악이 아악에 비해 비중이 오히려 낮아지면서 향악과 함께 우방악으로

합쳐지게 되었다. 이후 향악과 당악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 조선 초기에는 새로운 음악이 많이 제정되는데,

처음에는 고려에서 전승된 향악에 가사만 새롭게 붙여 부르다가 세종 때에는 향악과 고취악을 참작하여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향악계통의 음악으로는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된 ‘정대업’, ‘보태평’과 ‘여민락’과 그

파생곡들, ‘영산회상’, ‘수제천’, ‘취타’ 등이 있다. ‘여민락’은 원래 당악계통으로 창작된 것이나 후에 향악으로도 연주

되었다.

 

당악

당악이라는 것이 당나라 음악에서 유래된 것은 전하는 것이 없고, 송나라 사악(詞樂)에서 유래된 보허자(步虛子)·낙양춘

(洛陽春)이 당악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악이 중국 고대 궁중 음악이고, 당악은 당대·송대의 민속 음악이다. 고악보(古樂譜)

의 당악은 일자일음식(一字一音式)으로 되어 일자수음식(一字數音式)의 향악과 달랐으나 오늘날에는 당악이 향악화되어

일자수음식으로 바뀌었다.오늘날 전해지는 당악은 6음계로 되었고, 황종의 음높이가 다(C)음인 점에서 5음계로 되고

황종의 음높이가 내림마(E flat)인 향악과 구분된다. 악기 편성은 당악기만이 편성되는 것이 아니고 향악기와 섞여 편성

되지만 어느 것이나 향피리를 쓰지 않고 당피리를 쓰는 점만은 확실하다. 당악으로 실제 전해지는 것은 보허자 낙양춘 

뿐이고 당악의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는 여민락 만·본령·해령 등이 있다.


정악(正樂)

세종 때 박연의 문집 〈난계유고 蘭溪遺藁〉의 〈청정묘조정악소 請定廟朝正樂疏〉에서 보이는 정악은 우리나라 음악이

아닌 중국계 아악을 말한다. 또 박효관의 〈가곡원류〉의 '정음'은 전통가곡을 뜻한다. 그러나 정악이라는 명칭은 1909년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가 발족하면서 공칭(公稱)되어 제례악,연례악,군례악,풍류,정가,가 있고, 널리 쓰인 것은 1911년

정악전습소에서 비롯되었다. 이때에 쓰인 정악의 뜻은 여창가곡·가사·여민락·도들이, 등 민요·잡가를 제외한 전통음악을

일컬었다. 정악에는 가곡·가사·시조·줄풍류·대풍류·사관풍류 등이 속한다. 정악은 일명 아악이라고도 하며, 과거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음악의 총칭으로 민속악과 대비된다. 여기에는 여민락, 수제천,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등의 옛

궁중음악과 가곡, 가사, 시조, 영산회상 등의 음악이 포함된다.

 

 

민속악(民俗樂)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악. 그 지방의 고유한 역사·민속·생활 감정에서 비롯한 것으로, 서민의 소박한 정서를 솔직히

표현하고 있다. 민속악의 장단은 아주 느린 장단부터 빠른 장단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많고, 정악 장단에 비해 대체로

빠르며, 잔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판소리ㆍ시나위ㆍ무악ㆍ농악ㆍ민요ㆍ잡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민속악 장단은 판소리에서만 북장단을 사용하고, 그 밖의 산조ㆍ잡가ㆍ민요ㆍ무악ㆍ탈춤ㆍ민속놀이 등은 모두 장구를

사용한다. 한편, 판소리나 산조 등에서 진양조ㆍ중모리ㆍ중중모리ㆍ자진모리ㆍ휘모리ㆍ단모리 등은 장단의 빠르고

느림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에는 <육자배기> <몽금포타령> <새타령> <흥타령> <몽금포타령> <새타령> <흥타령>

<쾌지나 칭칭 나네>, <남한산성> <아리랑> <도라지타령> <밀양아리랑> <양산도> <진도아리랑> <심청가><흥보가>

<자진방아타령> <골패타령> 등의 '소리'가 있다.

 

 

위는 사전에서 살펴 본 한국 전통음악의 개요이다. 한국의 전통인 고대의 음악에 대한 기록은 대체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중국측에 의하면 한국(동이)민들이 얼마나 음악을 좋아 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은 굴곡의 우리역사로 인해 없고, 동시대에 공자의 악학(樂學)으로 아시아 음악의 정리,기록된 것이 전부라 하겠다. 

 

이러한 중국의 음악은 유가의 예악(禮樂)사상에 기초한다. 예(禮)는 신분 질서에 입각한 차별을 의미하며, 악(樂)은 사물

을 같게 대해 화합하게끔 해주는 기운을 뜻한다. 예악 사상에 기초한 중국의 아악은 민간음악과 외래음악 속에서 끊임

없이 쇠퇴했다. 이에 반해 조선 국왕 세종은 제후국임에도 주대(周代)의 아악 전통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로 박연(朴淵)

과 대대적으로 아악을 정비하였다.  이로부터 조선의 왕실음악인 제사음악은 종묘제례악으로, 잔치 음악은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여민락(與民樂) 두 종류로 나뉘어 발전한다. 맹자의 대표적인 정치사상인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조선

세종에 의해 음악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전통음악의 체계는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독자적인 음악으로 구축되었다. 세종대왕의 고대 이후 끊임없이

계속 이어온 우리 민족의 우수한 음악전통이 공자가 정비한 '악학'의 기반을 둔 중국에서 전래한 음악이나 삼국시대로

부터 고려조 까지의 전래된 음악이 복잡하고 체계가 미비됨 점을 간파하여, 조선 선대 고대의 전통과 유사한 '주'대의

음악으로 소급하여 기준을 잡아 정비한 노고로 인하여  오늘날 까지의 한국 전통음악으로 정립 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적 고유성 위에 범 아시아적 보편성 을 덧붙여 중국음악과 대별되는 한국적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 중국의 고대음악 관련자들 조차 내한하여, 당악 등의 그들의 음악을 배워 간다 하니 우리의 음악이 아시아 고대

음악을 정립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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