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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학

미술과 문학, 그 관계의 진화에 대한 짧은 연구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4.04.10|조회수82 목록 댓글 0

미술과 문학, 그 관계의 진화에 대한 짧은 연구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의 진화하는 과정을 한번 연구해 보도록 하자.

그 중에서도 특히 미술과 문학이 무혼,결혼,이혼,무혼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직관이란 미술과 문학의 무혼을 형용하는 말이다.

태초의 인간은 판단 추리 등의 사유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했다.

아니다. 그 표현이 틀렸다.

그 표현 자체가 사유작용을 별개로 하거나 사유작용이 없는 직관의 표현이다.

 

태초에 직관이 있었다. 그러므로 직관 속에 이미 판단 추리 등의 사유작용이 있었다. 이 표현이 맞다.

보는 것과 동시에 생각했다. 보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요 생각하는 것이 곧 보는 것이었다.

 

미술이 곧 문학이었고 문학이 곧 미술이었다.    

  

태아생성부터 아기까지의 생장기를 통해 유추해 보면 더 확실하다.

식물도 생각한다는 말도 있으니 정자와 난자도 생각해 보고 만난다고 치자. 우리말에 '생각해 보고'라는 묘한 

말은 이렇듯 생각 속에 이미 보고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보고 나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다.

식물들의 생각은 많은 부분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건 발이 뿌리로 고착되어 그런 느낌을 줄 뿐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뿌리보다 발이 유동성과 가변성이 높아 우연의 확률이 더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우연과 필연이 직관 속에서 하나라면 미술과 문학도 미분화로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분화의 과정을 거친

다면 식물의 생각은 그 정물성 때문에 동물의 생각보다 미술적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동물의 생각은 그 유동

성과 가변성 때문에 식물의 생각보다 문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은 많은 부분 식물을 통해 동물인 자신을 표현한다.

  

생각과 봄의 미분화상태가 분화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태아 생성기는 모태에 뿌리를 둔 식물과도 같다. 

모태 토양에서 태아식물은 눈의 형상(미술)으로 분화되고 귀의 놀람(음악)으로 분화되고 심장의 울림(문학)

으로 분화된다.

그러나 태아의 이러한 분화는 개체의 직관이라는 하나의 큰 종합을 이루기 위한 분화이며 그 과정은 식물의

생각에서 탯줄을 끊고 동물의 생각으로 나아간다.

 

문제는 완전한 분화와 개체의 직관이 완결되기도 전에 미분화의 상태에서 태어나 뿌리로서의 탯줄이 끊긴다는

사실이다. 식물이 갑자기 동물이 되었다고나 할까.

인간만이 유일하게 식물인간으로 태어남으로서 호모사피엔스 즉 통합을 잃은 영원한 분화인간이 된 것이다.

개체 미분화의 충격상태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종합으로 나아가는 분화과정에서 인간은 눈 미술과 손 기술과 

귀 음악과 입 문학의 통합을 위한 영구분화의 업보를 탄생시킨다.       

  

태초의 미술은 엄마와의 눈빛 교감에 해당하는 어떤 낯선 표정, 표시, 표지, 표현들이었을 것이다.

엄마 젖의 낯익음을 획득하기 위한 먹이획득의 낯선 표현이 확장되어 우리가 동굴벽화에서 보는 먹이 주술화가

생성되어 미술은 그야말로 큰(大) 먹이(羊)를 아름답게(美) 해 주는 기술(術)이 되었다.

 

미술이 손 기술을 통해 주술로 표현된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미술의 미분화의 특성으로 미술의 문학성을 유추

해 낼 수 있다. 미술은 문학적 삶을 이미지로 단순화시킨 이야기의 조각이며 문학은 시각적 삶을 말로 단순화

시킨 이미지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아동미술의 특징이 이미지의 환상적 단순화라면 원시미술의 특징 역시 이미지의 주술적 단순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먹이가 동화적 불확실성이나 신화적 혼돈에서 나옴을 드러낸다. 

먹이가 확실하게 질서와 조화에서 나오지 않고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미분화된 불확실한 상태에서 나오는 

이 시기까지를 미술과 문학의 무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미술과 문학의 결혼기로서 문자의 발명과 탄생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큰 먹이를 아름답게 해

주는 기술이 미술과 문학을 탄생시킨 원리 속을 한번 들여다 보자. 젖먹이시절에 비유되는 채집과 작은 동물을 

사냥해 살던 시기는 먹이잉여가 없었다. 

몸이 커가면서 엄마 젖이 모자라자 이유식이 시작되고 완전히 엄마 젖이 떨어지자 엄마아빠가 획득해온 먹이와

스스로 획득한 먹이로 인해 먹이잉여가 생기듯이 큰동물수렵으로 인한 먹이잉여는 도구의 확장과 인지의 발달

로 먹이호환의 생태교란이 발생한다.

이로인해 벤더는 확장되고 먹이는 줄어들어 자연훼손과 탈취가 심해지자 자연에서 나오던 먹이가 인간간의

탈취와 싸움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벤더의 확장으로 인한 인간간의 교감의 증대는 이미지의 환상적 주술적

단순화를 통해 문자를 발명하게 되고 문자로 인한 소통은 문학이 미술을 차용하여 독립함으로서 미술에서

주술이 증발하는 기술과 미술의 독립을 아울러 가져오게 된다.

 

미술과 문학의 독립적 확장인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직관은 판단 추리 등의 사유작용과 감각적 정서를

분리 통합하는 눈과 귀와 입과 손의 분화와 통합인 미술과 음악과 문학과 기술의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그중에서도 문자는 미술과 문학의 결혼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발명이었다. 그 사이에서 난 자식이니까. 

  

미술과 문학의 결혼생활은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가져왔다. 자연에 인간의 이미지 욕망을 마구 휘두르는 행복과

이미지 욕망에 치어 억압받는 불행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모방과 사실의 사랑이 무르익을 때 쯤 느닷없는 기술의

능욕으로 사진이라는 사생아가 태어난다.

 

미술과 문학의 결혼생활은 문자와 사진이 태어남으로 인해 더욱 복잡하게 꼬여간다. 문학은 문자를 편애하여

싸고돌고 미술은 사진으로인한 충격으로 온갖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게 된다. 기술의 폭발적 영향력이 미술의

영혼을 광기의 극점으로 몰고 가 미술은 인상,추상,상징,입체,야수 등 온갖 이미지의 광란을 경험한다. 

더 이상 결혼생활이 불가능해 지도록 미술과 문학은 미분화의 사랑을 잃고 독존과 오만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그 분화의 끝은 결국 해체와 파경이라는 포스트모던 컨템퍼러리시대를 열게 된다.

 

먹이가 인간간의 탈취와 싸움에서 나오는데 대한 회의와 좌절 위에 서서 먹이의 원천인 자연훼손의 살얼음판을

걷는 존재의 가벼움에 문학과 미술은 이혼을 판결받고 허허롭게 스스로의 존재를 날려버린다. 다다,팝아트,

비디오아트,퍼포먼스,설치,개념,비물질 등 일상의 재편집에 지나지 않는 아니 어쩌면 같은 재료로 수 십가지

요리를 만들어내는 일상보다 못한 예술, 그 낯선 발상의 전환을 먹이창출의 미끼로 사용하는 가관이 미술의

중심부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그 극 분화된 고독의 몸부림은 지나온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형식파괴에 존재의 사활을 걸며

개념 비물질의 막다른 골목으로 진입하지 않을 수 없는 미술의 공허한 문학성이 문학의 공허한 미술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 축제의 판타지 진입과 함께 무혼의 미분화 시대를 꿈꾼다. 

 

미술은 이제 빛의 싸움이 아닌 발상의 싸움이 되고 문학은 이제 발상의 싸움이 아닌 이미지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희망이 될 수 있으려면 먹이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에 대한 반성과 먹이원천인 자연이 더 이상 먹이를

잃지 않도록 하는 에너지비평의 지평이 열여야 한다. 예술은 더 이상 먹이 제공자가 아니라 먹이 탈취자임을

만천하에 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과 문학의 무혼은 기술의 뒤통수를 쳐 시장 자체를 괴멸시키며 아름다운 무료다운의 사랑을 영위해 갈

것이다. 황혼은 아름다운 무료다운의 침실이니까.

 

 

(원시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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