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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학

포스트모던 작품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1.05.04|조회수334 목록 댓글 0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상업적 보수주의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쥴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과

데이빗 살(david salle)의 그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작품중에 나타나는 정신분열적 산만함, 애매

상징성, 대상화된 여성, 영웅적인 남성 예술가 등을 비롯해 작가를 창조자로 복귀시키고, 유일무이

손으로 그린 회화, 물신숭배적 오브제의 부착 등의 모더니즘의 특색과 재현․형상 색채로 회귀하려

반모더니즘적 요소가 공존해 있다.

 

쥴리앙 슈나벨은 1979년 메리분(mary boone)화랑에서 첫 뉴욕 전시회를 가진 이래 2 년도 채 못돼

독보적인 미국작가로 부상했다. 1984년에 제작한 대작「숲의 왕 king of the wood」에서 수백 개의

접시들과 벽면에서 몇 인치씩이나 튀어나온 도자기 조각들은 6 개의 판넬위에 붙여졌다. 그 접시들

에는 길게 뻗은 나무가 그려져 있고 외투를 두르고 왕관을 쓴 인물이 칼을 쥔 채 서 있다. 그리고

인물 양쪽엔 커다란 나무 뿌리가 얼기설기 화면 밖으로 도출되어 있다. 입상의 인물은 다이아나 여왕

성소였던 네미라는 숲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금관은 아네에아스에게

빼앗기고 지하세계로 들어가 성스런 나무들로부터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슈나벨이 ‘낭만주의자’임에 반해 살레는 종종 고전주의자로 여겨진다. 슈나벨이 그의 과감한 개인적

양식과 비상한 재주 안에 이미지를 끌어넣으려 하는 반면, 살레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분리 시킨다.

살레에 있어 독창성이란 그가 말하듯「개인적 양식의 문제 바깥에 위치한 것이다.」간단히 말해 독창

성이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레는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살레의 1984년 作(그의 머리)는 연결되지 않는 언어의 집적체를 보여준다. 한쪽엔 프린트된 직물 위에

획이 아래로 그어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상업일러스트레이터의 스타일로 그려진 발가벗은 여인이

뒤편을 향해 있으며, 그녀의 엉덩이 주변에는 네 명의 남자얼굴 윤곽이 각인 되어져 있으며, 빠른

속도로 묘사된 심려하는 듯한 여인과 질료감을 살려 그린 요트를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살레의 작품은 종종 페미니스트에게서부터 그의 농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로 인해

공격과 비난을 받는다. 그의 도색적인 그림은 1985년 제작한 「희귀한 차들」에서 극에 달했다. 하나의

패널에는 가슴이 큰 여자가 의자에 묶여 있고 다른 패널에는 납위에 마구 휘갈겨 그린 메리 포핀스풍의

차림을 한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패널에는 사물이 납속에 가려있는 것처럼 첫

번째 패널에는 밝은 색조의 라디오가 화면의 일루져니즘을 해체하기 위해 그려져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요소를 해체해 가면서 살레는 흡사 실내장식가처럼 조심스럽게 정열해 놓은 사물들로 공간을

매워간다. 실상 살레의 회화는 무질서한 회화에 일시적이나마 혹은 잠재적으로나마 질서를 부여 하고

있다.

 

비판적 저항주의 (시뮬레이션 아트 simulation art)

 

비판적 저항주의의 포스트모던즘의 대표적 작가로는 한스 하케 (hans haacke), 제니 홀저(jenny

holzer), 제프 쿤스(jeff koons)를 들 수 있겠는데, 이들은 모더니즘내의 비판적․저항적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개념미술의 잔재와 60․70년대 대항 문화적 정치 미술의 흔적을 함께 이어받고

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내용과 서술성의 중시, 비순수성, 직접적인 의사소통, 정보사회의 반영 등

특성은 모더니즘 예술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다다이즘 또는 정치성이 강한

아방가르드를 연상시키는 특징들은 모더니즘과의 단절과 함께 지속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

 

시뮬레이션 아트는 1968년 결성된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그룹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1965년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펴고 있는 반자본주의 하이퍼 리얼

리즘의 작가 한스 하케의 작품 주제는 대중의 관심이나 의식을 조작하려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제시

하여 비판하는 것으로 사진을 이용하거나 윤리적인 문구를 인용하여 콜라쥬한 그의 작품이야말로 시뮬

레이션 아트의 선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뉴욕 미술동향은 퍽 다양하고 새로운 움직임들이 있었다. 비판적 저항주의가 미술계내의 이념적

비평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상업적 보수주의는 미술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호대립과

보완이 얼켜있는 복잡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밖의 미국의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와 작품

 

에릭 피슬(eric fischle) 은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적 상황을 정확하게 방영하면서 오히려 그것의

토행성과 황폐삼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준다. 

매스미디어에 투사된 여성 이미지를 해체하는 패러디를 보여주는 신디셔먼(cindy sherman)은「자아가

하나의 구성물」이하는 의식을 작품에 반영한다. 이러한 자아적 초상화에는 소외와 내적인 응시, 자기

고백적인 언어가 있다.

또한 로버트 롱그(rodert longo)는 차용된 이미지의 알레고리적 재현을 통해 현대인의 의식을 표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작가로 흔히 알려진 이들 에릭 피슬, 신디셔먼, 로버드 롱고등의 작품에는 포스트모더니

즘보다는 모더니즘적 특색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독일의 신표현주의회화

 

키르히너의 표현주의가 19c 이후 계속해온 프랑스 미술의 유럽 지배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독일 신표현

주의는 회화는 2차 대전이후 미국미술이 계속해온 세계화단의 중심권적 역할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안셀름 키이퍼(anselm kiefer)는 인간이 없는 황야풍경을 전통적인 투시법으로 그린 일련의 연작으로

알려졌다. 그의 화법은 전통적이지만 내용은 집념적으로 독일의 역사, 그 중에서도 히틀러의 제국시대,

특히 2차대전의 독일 패망과 관련된, 타부시하여 말하기를 꺼려하는 독일의 비교적 가까운 역사, 수수

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제기한다. 그의 기법은 자유분방하며, 지푸라기더미를 붙이기도 하고

물감을 화면 위에 뒤흔들기도 하며, 때로는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앙포르멜 추상에서의 드리핑기법이나,

얼룩화법을 썼다. 게다가 숫자나 글자도 쓰여졌으며 이러한 그림 속의 문자 사용은 조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림을 대신하여 쓰여진 개념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펭크(a․r penk)를 살펴보면 그의 그림은 감정보다는

두뇌로 그린 그림이라는 인상을 준다. 젖가락같이 길다란 검은색으로 그려진 선모인물들이 화면 가득히

메워져서 투시법적인 자연 속의 인간상이 아니라 평면적인 화면 위에 배치된 도안 모티브 같다.

펭크는 자연의 변형이 아니라,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며 현실감이 없는 것이 그의 특성이다.

 

독일의 신표현주의는 민족적 바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국제적인 보편성보다 자기생성의 경험과

지식이 핵을 이루는 감각적인 세계관인 것에 반해 미국의 경우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외적자극에서 유발된 정신분열병적 심리, 관심거리의 오브제를 구성 사용하여 도출된 결과라

하겠다.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이탈리아 미술 비평가 보니토 올리바(bonito olive)는 16c 의 매너리즘과 80년대 미술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산드로 키아(sandro chia),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

cesco clemente)등과 같은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작가의 회화나 조각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키아의 풍만한 인물들의 팽창된 신체, 풍자적이며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효과로 가득찬 클레멘테의

복잡한 은유들, 쿠치의 예술영역에서 드러나는 신비한 몸체가 없는 얼굴들과 얼굴 없는 몸체들, 고전

주의의 벽화와 타피스트리(tapestries)를 연상시키고 모자이크와도 유사함을 보여 주는 팔라디노의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서술적 양식 등의 회화세계에서는 매너리즘의 주요한 특징중의 하나인 의곡

되어진 형태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들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화가들은 매혹적인 것과 기묘한 것, 외설스러운 것을 강조하며,

과거의 신화들을 인용하고,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것을 결합시킨다.

외견상 매너리즘 화가들의 작품특성과 오늘날의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화가들의 작품에는 어떤 대단함이나, 특이한 정신이 없고 덜 필사적이고, 유희적이며 산만하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주장, 극단적인 주제, 생리학적요소, 인간 신체를 가지고 강박관념

을 표현하는 것, 동질성 결여, 회화 구조의 파편화, 서술화, 일반적이지 않은 색페의 선택등의 눈에

뜨이는 유사함이 있기도 하다.

 

특히 자기 발견의 주제들은 80년대 초의 예술분야에서 이들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회화를 획기적인

것으로 만들게 했다.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작가들은 프레스코, 유화, 수채화, 드로잉, 모자이크 등의

전통적인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것은 회와의 종말을 선언했던 이전 세대에 대한 젊은 트랜스

아방가르디아 작가들의 항변이상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트랜스아방가르디아 화가들의 작품 속에는 매너리즘에서는 완벽히 결여된 세계주의적인 요소를 포함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차이는 트랜스아방가르디아의 원초적인 힘의 하나인 아이러니인 것이다.

아이러니는 아방가르드와 포스트아방가르드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사실 80년대

예술은 과거에는 희귀라는 미명하에「새로운」예술로서 기술되는 사실에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건축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나타난 분야는 바로 건축이었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근대건축이 초래한 반 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이며, 기능과 생산성 우위의 전축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건축은, 건축이 재료와 구조의 사용에서 진실해야 하며,

건축의 형태구성이 시대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근대건축의 논리대신에 표현의 수단일 수 있으며. 범

세계적 이기보다는 지역적이며, 규범적인 산물의 것이기보다는 개인적인 창조의 산물일수 있다는

논리를 가진다. 또한 건축의 작업은 창조성보다는 역사의 존재성을 가지며, 동시에 하나의 원리체계가

아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즉 건축행위에 있어서의 다원주의(pouralism)

의 대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 건축인 것이다.

 

결론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 개념, 전개, 특징 등 대략 살펴보았는데 이 이외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용어적

연륜이 상대적으로 짧고 여러 가지 다른 애매한 용어들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여 아직까지는 개념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반모더니즘이나 탈모더

니즘이 아니며 모더니즘 후기 현상은 더욱 아니고 모스트모더니즘은 중요한 면에서는 구분된다.

 

리오타르는「하나의 작품은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이 될 때에만 비로소 모던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는 끝없이

되풀이된다.」고 말하고 이는데 그의 주장처럼 포스트모더니증은 미래와 과거라는 패러독스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고도로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고 해서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양식

이나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오히려 전통은 계승 발전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사상이나 양식들도 많은 변화 과정을 격게 마련이다. 과거의 제시된 문명에 대한 영향력 깊은

주장들이 오늘날까지 계속현대인들의 정신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곳 명확해진다.

과거의 제시한 많은 개념들과 주장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번 재검토 내지 재인식되어 왔다.

만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역사는 영원히 똑같은 모습으로 무의미하게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도 그것이 어느 한 독창적인 인식론이라기보다는 20세기의 서구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재인식 내지 재검토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무정형, 해체주의, 다원주의, 절충주의, 지역적이고 주변적인 것이 부상등의 요소들이 포스트모더니

즘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해도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자체 안에 어떤 것이라도 파괴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수잔 손탁이 말한 바 있는 어떤「통합적인

감각」을 찾아내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피들러가 지적했던 것과 같은「경계선을 넘고 간격을

메우려는」필요성이 절실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한 지적 유행이나 게임은 결코 아니며 현실적인 문제를 호도하기 위한 은폐물은

더욱 아니고 20c 후반을 특징짓는 일종의 시대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인식론적 움직임이 오늘의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돌파구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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