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밖 미술비평 - 김현
매혹적 문체로 서양미술 투시 … 인상비평에 머문 것 아쉬워
한국미술의 발전 궤적에서 자주 간과되는 부분 하나를 꼽으라면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밖’ 대가들의 미술비평
이다. 장르로서 엄격히 자리잡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미술밖 미술비평’은 한국미술, 나아가 세계적 명작의 아우
라를 한껏 응시하면서, 무엇보다 세련된 문체의 글쓰기를 통해 전문 미술평론가들이 미쳐 읽어내지 못한 심미적
시선을 환기해냈다는 점에서눈여겨볼 만하다.
<교수신문>은 그간 자신의 영역 안으로 미술을 흡입해서 새로운 풍경을 창출해온 비평가들, 작가, 학자들의 미술
비평을 복기하면서, 이들의성과, 미술작품을 읽어내는 시선의 심급을 진단하고자 한다. 김우창·김윤식·김현·김화영과
같은 당대의 비평가들, 박정자·박홍규·서경식·이가림과 같은 눈밝은 학자들, 작가 박완서 등을 논의해 나가면서 우리
시대 미술밖 미술비평의 심미적 시선을 조감하고자 한다.
■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미술에 관해 쓴 몇 편의 글들은 우리 미술계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그가 1985년에 발표한 「미술비평의 반성」이 그렇다. 여기서 김현은 “그림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에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자꾸만 작문 교사의 위치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과 더불어 당시 우리
미술비평의 글쓰기 방식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이 우리 미술계에 미친 충격과 그 충격의 여파는 매우 컸다. 하지만 이 애정 어린 비판이 이후 한국미술
비평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또 그가 번역, 소개한 미셸 푸코의 미술담론은 또 어떤가.
가령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는 지금 미술대학이 있는 대학교 도서관에 가장 닳고 허름한 모양
새로 꽂혀 있다. 또한 그가 1990년 초에 월간미술에 기고한 「푸코의 미술비평」은 지금도 푸코와 더불어 미술을
독해하려는 이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글로 자리매김 돼 있다.
이 글들이 1990년대 우리 미술계를 휩쓴 푸코 열풍,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정작 김현이 미술 작품에 관해 본격적으로(?) 쓴 글들은 한국 미술계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무엇보다 김현 자신이 미술에 대한 글쓰기에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그 때문에 그가 미술에 관해 쓴 글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 기인한다. 또 그가 미술에 관해 쓴 글들이 대부분 단장 형태의 짧은 글이라는 점도 감안
해야 한다.
더불어 이 글들이 한국 미술이 아니라 주로 서구 근대 미술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김현 자신의 예술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 지식인
일반의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김현이 미술에 대해 쓴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프랑스 수학기에 쓴 여행기 『김현 예술기행』(열화당,
1976)에 게재한 일련의 글들이다.
여기에는 가우디, 피카소, 고야, 브뤼겔, 고흐, 드가, 앙리 루소, 자코메티, 로댕, 그리고 만화에 대한 글이 포함돼 있다.
이 글들을 지배하는 기본 정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감탄, 감동이다. 김현 자신의 회고를 빌리면 그는 낯선 도시들
에서 “나를 습격하여 나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많은 예술가를 만났고”,
그 만남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이러한 감탄과 감동은 그에게 이 작품들에 대해, 또는 감동하는 자신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낳았다.
과연 이 글들에는 미술 작품에 압도당하고, 충격 받는 순간, 그리고 그로부터 아파하고 고통받는 체험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러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것의 기능이 현실적인 것의 기능을 강화하고 보완시킨다는 것”
(가우디)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고통하는 자의 소리이며 고문하는 자의 소리”(고야)라는 오래
전부터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고, “삶, 그것 때문에 고통하지 않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것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려 하는, 그래서 거기에서 의외성을 발견하기 위해 처참하게 노력하는”(드가) 자신의 초상을
발견케 한다.
구체적 작품분석이나 독해는 부족
특히 저항적인 예술작품과 제도화된 번듯한 미술관의 괴리를 체험하고 번민하는 김현의 모습(자코메티)은 오늘날
대안공간이나 공공미술 같은 새로운 예술 공간을 모색함으로써 그 괴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 미술계의 시도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구체적인 작품 분석과 맞물리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평론가 김현의 매력이란 작품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섬세하고 통찰력 있는 작품 독해를 통해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은가!
미술에 대한 글쓰기에서 그가 품 분석 대신 의지하는 것은 미술가 개인의 전기적 사실, 또는 발레리나 사르트르,
말라르메 등의 글이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있어서의 드가는 발레리의 「드가·춤·데상」이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드가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기실 김현의 글에서 작품에 대한 전혀 새로운 독해나 해석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그는 도처에서 자신이 전문 비평가가 아닌 아마추어이며 그 때문에 미술 작품을 미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할만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발레리나 사르트르, 그리고 푸코 역시 전문적인 미술 비평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작품과의 치열한 만남과
분석에 입각한 이들의 글쓰기는 전문 비평가나미술사가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통찰과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 지성사의 높은 봉우리로 자타가 인정하는 김현이 미술에 대한 쓴글들이 단순한 인상
비평에 머물고 있는 점은 역시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김현 예술기행』에 실린 관련 글들에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고전에 대한 감탄, 감동과 짝을 이루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혐오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흐를 보고나서 느낀 최초의 감정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밑에서 가짜 미친 짓을 하는 수많은 화가들에 대한 증오
였다.” (고흐)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특수 장치를 한 모나리자를 감시원이 내내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앞에서 장터
에서처럼 북적거리고 있는 일본 관광객을 보았을 때의 구역질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드가) 이러한 발언은 글이
집필된 시기가 1970년대 중반임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지나치게 한 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김현 쯤 된다면’ 좀 더 객관적인 자리에 서기 위해 노력하면서 왜 그들이 “가짜 미친 짓”에 열중하며 왜 그들이 “장터
에서처럼 북적거려야 했는지” 말해 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실망은 「만화도 예술인가」라는 글에서
어느 정도 만회된다. 여기서 김현은 동시대 프랑스 만화, 또는 라캉이나 데리다의 글에서 보이는 엄청난 ‘단어 학살’에
경악한다.
그리고 자문한다. “그것은 정말 기벽에 지나지 않을까. 그것은 못된 버릇에 불과한 것일까. 이러한 자문과 더불어
그는 과거 자신이 폄훼했던 만화라는 장르에서 그가 찬양해마지 않는 어떤 부정의 힘, 습관적인 것, 일시적인 것을
부인하는데서 오는 어떤 정신의 힘을 어렴풋하게나마 자각한다.
이러한 자각은 글 말미에 “만화는 대중 예술이 아니라 대중들의 예술”이라는 선언적 발언으로 이어진다.
미술적 체험 담아낸 美文의 독보성
하지만 이후 김현은 이러한 자각이나 인식을 자신의 글에서 더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달리 말해 이후 김현은 미술
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후 외곽으로 물러나 「미술비평의 반성」
이나 「푸코의 미술비평」같은 글을 썼다.
하지만 이후 김현은 이러한 자각이나 인식을 자신의 글에서 더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달리 말해 이후 김현은 미술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후 외곽으로
물러나 「미술비평의 반성」이나 「푸코의 미술비평」같은 글을 썼다.
“엄숙하고 정직하게만 생각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돌아보는 그의 반성의 깊이,
또 「만화도 예술인가」에서 그가 보여준 동시대 대중문화의 기벽과 치기어린 성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오늘의 ‘전문적이지만 고립된’ 우리 미술계의 상황을 돌아볼 때 이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김현 예술기행』에 실린 그의 미술 단장들은 그 자체 아름답다. 미술 밖에서, 아니 미술 내부를 포함하더
라도 미술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절절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한 글은 한국 현대 지식인 사회에서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나의 김현 비판은 투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미술밖 미술비평 - 김화영
역동적 상상력과 심미안 … 난해함은 미덕이 될 수 있을까
20세기 이전의 우리 지성사에서 詩와 書, 그리고 畵는 서로 분리시켜 이야기할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이 무렵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이 詩와 書와 畵의 기량을 모두 갖춘 ‘三絶’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때로 이 가운데 하나에 특출한 기량을 갖춘 자가 있더라도 그가 다른 두 가지 기량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른바 근대화의 진행과 더불어 시와 서, 화의 강제적인 분리가 진행됐다. 먼저 시와 書畵의 분리가 일어
났고, 다음으로 서와 畵의 분리가 발생했다.
이와 더불어 시인, 서예가, 화가라는 근대적인 직업이 등장했다. 물론 최초에 그것은 명확한 분리는 아니었을 것
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시인과 서예가, 그리고 화가의 상호 얽힘은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어진 경계는 단단한 장벽으로 변해갔다.
이제 서와 화를 모르는 시인도 대가가 될 수 있고, 또 시와 서를 모르는 화가도 대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
|
![]() |
||||
| 김화영(맨 아래)의 미술 비평은 그의 글쓰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에두아르 부바(맨위), 미셸 투르니에(가운데)의 사진과 에세이를 통해 사물을 자신의 그물로 깁어 올린다. 오른쪽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작품 ‘Nu, Paris, 1974’을 읽어내는 ‘미셸 투르니에’를 김화영은 그의 문체 안으로 녹아들게 한다. 이 글쓰기의 통로 안에서 유난히 빛나는 것은 ‘낯섦’이다. | |||||
이러한 변화는 물론 다차원적으로
살필 주제다.
‘좋다’, ‘나쁘다’를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러한 분리가
우리 문학, 예술의 상상력을 크게
위축시켰다는 사실이다. 화와 멀어진
시는 관념적인 것이 됐고, 또 시와
멀어진 화는 피상적인 것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 문학, 예술이 분리를
모르던 시절의 상상력이 지녔던
크기와 부피, 질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해 구체적인 것에 다가가지 못
하는 관념성, 보편적인 것에 다가
가지 못하는 피상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문학과 미술의 장벽을 넘어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불문학)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과 번역서, 그리고 산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융, 바슐라르, 그리고
알베르 카뮈, 미셸 투르니에 등과
더불어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문학
상상력의 연구)의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불문학)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과 번역서, 그리고 산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융, 바슐라르, 그리고 알베르 카뮈, 미셸 투르니에 등과 더불어 “세계
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문학 상상력의 연구)의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구체적인 경험공간”(공간에 관한 노트)에 대한 탐색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경험공간을 탐색하는
이에게 이미 그어진 경계들, 곧 문학과 미술, 시각과 청각, 시각과 촉각들 사이에 그어진 경계란 넘지 못할 장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될 수 있는 가능성, 가령 물이 돌이 되고 불이 흙이 될 가능성
이다. 그래서 르네 위그의 『예술과 영혼』역자 후기에서 밝혔듯 그에게 미술이란 “예술 일반을 관류하는 어떤 공통된
상상력의 형식화라는 지평 속에서 보다 거시적으로 파악되어 마땅한 대상”이다. 아마도 영화, 건축, 음악, 문학이 다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공통된 상상력의 형식화라는 지평에 선 사람에게 미술에 대한 발언이 문학에 대한 발언과 서로 얽히고 건축에
대한 독해가 어느 순간 문학에 대한 독해로 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령 우리는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문학동네, 1996)에 실린 한편의 글에서 하나의 색채가 운동으로 전환되고,
그 운동으로부터 ‘시적인’ 것이 돌출되는 아름다운 구절과 만날 수 있다.
|
『뒷모습』에서 김화영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과 교류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을 다음처럼 번역한다. 물론 젖가슴은 참하고 팔은 통통하고 흘러내리는 등의 선은 조화롭다. 그러나 이 초상에서 눈을 끄는 것은 단연, 목이다. 앙드레 지드는 전쟁 전에 독일을 여행하면서 당시 유행에 따라 드러내놓은 사내아이들의 목을 보고 “외설스럽다”고 평한 바 있다. 왜냐하면 몸의 이 부분 - 둥글게 휜 허리와 더불어 몸의 가장 확고한 받침점 중의 하나 - 은 보통 머리털에 덮여 있는데 이처럼 드러내놓은 것은 몸에 대한 일종의 폭력행사니까. 게다가 사진의 모델이 여자라면 더욱 자극적인 폭력이다.
|
“어렸을 적에 나는 처음으로 튜브에 든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연두색에 홀렸던 기억이 있다.
실제 물감을 풀어 색칠을 해보면 도무지 그 아름다움이 마음같이 실현되지는 않으면서 머릿속에서는 항상 가볍게
떠오르는 연두색이 내게는 행복감의 색채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 시작, 출발의 색이 연두색이다. 아니 연두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색이 아니라 초록을 향해서, 푸르름을 향해서 가고 있는, 솟아오르고 있는화살표의 색채인지도
모른다.
이 솟아오름의 순간 속에서 모든 ‘구슬’들은 그 산문적인 무게를 버리면서 ‘하나’가 된다. 새삼스럽게, 인위적으로
꿰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연두색은 한줄기로 솟아오를 뿐이다. 이 솟아오름은 시적인 순간이다. 솟아오름은 순간의
통일이다.” (연두색에 대한 명상)
이렇게 연두색으로부터 시적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경계 내부를 단속하는 내부적인 강령(가령 문학적인 것,
미술적인 것)에 얽매이는 일은 거북한 일이다. 그는 오히려 내부가 외부가 되고 외부가 내부가 되는 상호 얽힘의
순간을 즐거워한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과 에두아르 부바의 흑백사진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뒷모습』(현대문학, 2002)을 번역하면서 그는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이러한 상호 얽힘 내지는 상호대화의 순간이
가장 빛을 발하는 때는 그가 예술의 성을 찾아, 예술가의 방, 집과 마을을 향해 떠난 여행의 체험을 늘어놓는 순간이다.
그에게 있어 ‘방’또는 ‘집’은 강렬한 구체성을 가지고 공간을 환기해내는 단어다. ‘방’이라는 말은 ‘인생’이라는 말
보다도 그에게 더 많은 감동을 준다. 그는 “내가 타인을 알고 싶어하는 욕망은 언제나 방,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이고
한 두 개의 문과 창이 나있는 그의 방에 대한 호기심과 혼동되곤 한다”(공간에 관한 노트)고 말하고 있다.
또 그에게 ‘여행’이란 “변화와 공간의 접촉, 즉 내게 구체적인 삶의 살과 그 변화를 만지고 있다는 실감”이다.
그에게 프랑수아 라블레의 生家 라 드니비에르를 경험하는 일은 라블레의 문학을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르누아르가 만년에 살았던 레 콜레트를 방문하는 일은 르누아르 만년의 작업에 ‘구체적으로’ 접촉하는 일이다.
다시 『바람을 담은 집』의 구절을 인용하자.
“카뉴의 ‘레 콜레트’로 상징되는 만년에 이르면 지중해적 고전주의로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북쪽 지방이 젊은이들의 고장, 운동과 투쟁에 골몰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 머지않아 남쪽의 태양은 그들을 매혹
하고 그들의 신경을 나른하게 만든다. 그들은 ‘영원하고 찬란한 빛’에 눈뜬다.
화가 자신도 남불을 이렇게 찬양했다. ‘이 황홀한 고장에서는 불행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것만 같다.
여기서는 솜처럼 편안한 분위기에 안겨서 산다.’”
그는 이어 르누아르 만년의 작품에서 솜털같이 포근하고 가는 붓자국이 바람에 날리듯 캔버스 전체에 퍼져가는 모양
새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의 집 앞 수백년 묵은 올리브나무에 기대어 빛나는 햇빛과 그가 노래했던 삶의 기쁨을
더불어 만난다.
‘다소간 낯섦’의 의미 혹은 가벼움
그러니까 김화영은 사람들이 폐쇄된 영토를 구축하고 그 영토 내부의 강령을 구축할 때 그 바깥으로 물러나 매순간
“내 몸이 허공 속에서 꼭 그 용적만큼만 차지했다가 다음 순간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비워놓은
내 몸의 용적만큼의 허공과 그 허공의 연속인 터널을 상상하는”(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글쓰기를 해왔다. ‘탈영토
화’니 ‘탈경계’니 하는 화두들이 거의 강령처럼 쇄도하는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명 탁월한, 김화영 만의
성취다. 하지만 오랜 시간 폐쇄된 영토의 구축에 몰두해왔던 우리 문학과 예술에서 이러한 글쓰기는 별다른 것,
또는 난해한 것으로 치부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김화영의 글쓰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소간 낯설게 느껴진다. 이‘다소간 낯섦’이야말로 김화영 글의 매력인
것이다.
그러니까 김화영은 사람들이 폐쇄된 영토를 구축하고 그 영토 내부의 강령을 구축할 때 그 바깥으로 물러나 매순간
“내 몸이 허공 속에서 꼭 그 용적만큼만 차지했다가 다음 순간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비워놓은
내 몸의 용적만큼의 허공과 그 허공의 연속인 터널을 상상하는”(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글쓰기를 해왔다.
‘탈영토화’니 ‘탈경계’니 하는 화두들이 거의 강령처럼 쇄도하는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명 탁월한, 김화영
만의 성취다. 하지만 오랜 시간 폐쇄된 영토의 구축에 몰두해왔던 우리 문학과 예술에서 이러한 글쓰기는 별다른 것,
또는 난해한 것으로 치부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김화영의 글쓰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소간 낯설게 느껴진다. 이‘다소간 낯섦’이야말로 김화영 글의 매력인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여전히 보편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詩와 書, 그리고 畵의 상호얽힘은 충만한 것일까. 언젠가 그는
김원숙의 회화작품을 다룬 글에서 이 작가의 “획득된 순진함과 단순함만이 그냥 그리움처럼 다가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바람을 담는 집』에 실려 있다. 그러고 보니 ‘바람’은 ‘그리움’ 곁에 있는 단어가 아닌가!
미술밖 미술비평 - 서경식
‘에케 호모’, 고통이 빚은 미술기행의 힘 … 감정과 공감의 吐露 넘어설 수 있다면
서경식의 이력은 다소 복잡하다. 그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그 와중에 이른바 재일조선인유학생 간첩단사건(1971년)으로 모국에 유학중이던 두 형(서승, 서준식)이
정치범으로 투옥됐고, 그 때문에 그는 한 동안 가업을 거들고 가족과 함께 두 형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해야 했다. 마흔이 되면서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의 권유로 호세이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몇몇 대학
에서 강사로 활동하다 2000년에 도쿄게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한국사회에서 서경식은 학자로서보다는 에세이스트나 평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6년에 번역된 『난민과 국
민 사이』에서 서경식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저작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하나는 예술, 문학 등 각종
문화현상에 대한 에세이 종류다. 그 가운데 한국에서 번역된 것으로『나의 서양미술순례』, 『소년의 눈물』,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그리고 『시대의 증언자,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재일조선인, 역사인식, 국가, 민족 등에 관한 평론들로『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난민과 국민 사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발품파는 미술기행의 가치 알려
위에서 열거한 여러 저작들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은 저작을 꼽으라면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될 것이다. 1991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되고, 1992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박이엽의 번역으로 출간된
이 책은 서경식 자신의 표현을 빌면 “조국 땅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서경식의 저서다.
그러나 이 책의 의의는 서경식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12쇄까지 발행한 초판에 이어 2002년에 개정판이 나온
이 책은 국내미술 분야 교양서 가운데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한 이 책은 국내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 일반에게 발품을 팔아 미술작품을 찾아다니는 미술기행의 가치와 의의를 알려준 저작이란점
에서도 중요하다. 15세기 벨기에 화가 헤럴드 다비드의 작품으로 시작되는 이 책이 로베르트 캄핀, 샤임 수띤이나
코이소 료오헤이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국내에는 전문가 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폭넓게 소개한 것 역시 평가돼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 책의 각별한 의의는 “미술이 사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실제 미술
작품에 대한 체험 진술과 더불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 탁월한 사회적 비평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이 책에서 다른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와의 절절한 인연에 감동해 눈물을
글썽이는 대신에 반 고흐가 그의 동생에게 보낸 편지 구절을 인용한다. “너는 단순한 꼬로의 화상이 아니다.
너는 나를 매개로 해 아무리 값이 폭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끄떡도 하지 않을 어떤 그림의 제작 그 자체에 스스로
참가한 것이다.”(반 고흐) 서경식이 보기에 고흐와 같은 예술가는 온몸으로 반항하며 가치를 창조하면서 싸우는
인간이다.
그래서 고흐는 당당하다. 하지만 그런 당당함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동생을 쓰러뜨린다. 동생에게 그런 형의 존재는
저주스러운 짐짝이 아닐 리 없다. 현세적인 가치관에서 볼 때 그런 짐짝이 당당하게 나오는 것은 적반하장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적반하장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고흐는 동생에게 “단순한 꼬로의 화상이 아니며…”라고
당당히 말한다.
이 대목에서 서경식은 자신을 돌아본다. 그가 고흐의 편지를 주목한 것은 그 자신이 테오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일
것이다. 투옥된 형들에 대해 그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고통 받는 예술가, 반항하는 예술가, 진정한 투쟁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는 후에 이 구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저는 온몸으로 반항하며 가치를 창조하면서 싸우는 인간과, 단순히 미술로서 감상
하고 있는 인간인 나 사이에 단절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당시 한국의 옥중에서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인간과 나라 밖
에서 먹을 걱정은 안 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대비시킨 것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단절을 언제나 의식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진정한 투쟁의 밖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
니다. 그 단절이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을 해버리면 저는 진정한 투쟁 밖에 인생이 끝날 때까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死神의 숨결과 미의식
『나의 서양미술순례』 이후에도 서경식의 미술에 대한 글쓰기는 계속됐다. 2002년에 김석희 번역으로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판된 『청춘의 사신』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이라는 부제를 달은 이 책은 부제 그대로 혁명과 아우슈비츠, 전쟁의 광기가
휩쓴 시대, 死神의 숨결을 끊임없이 귓전에 느끼면서 끝없는 창조의 싸움을 벌인 작가들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또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2006),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 영희, 2009)에서는 그가
데라씨네(부평초), 또는 디아스포라로 지칭하는 배제된 소수자의 자리, 추방당한 자의 시선으로 작업하는 우리
시대 작가들, 이를테면 시린 네샤트, 니키 리, 잉카 쇼니바레와 조양규 등의 삶과 작품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서경식의 미술에대한 관심은 과거에서 동시대로,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으로부터
고통 일반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이 저작들을 관통하는 서경식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제국주의적 식민지배가 수세대에 걸쳐 야기한 거대한 일그
러짐”을 주시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고통받는 자의 편에서 그 고통을 함께 하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 지배자의 편에서 억압에 동조했던 작가들을 냉철하게 살피는 일이다.
서경식이 보기에 미술은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해주는 역할도 담당하지만 증언, 증인으로서의 역할,
달리 말해 ‘에케 호모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의 역할도 담당한다. 이 가운데 서경식은 후자에 보다 큰 애정을
보인다. 그런데 에케 호모로서의 미술은 보기 싫고 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서경식은 그 보기 싫은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새로운 미의식을 산출하는 일이다. 미의식은 사회적인
관계의 창출이다. 이렇게 증인으로서의미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경식은 리얼리스트다. 하지만 그는 여느 리얼
리스트들처럼 작가들에게 중심과 주변을 분간해 핵심을 잡아낼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중, 삼중의
억압과 부조리한 폭력에 놓인 소수자에게 그 많은 이야기를 단순한 대답 속에 구겨 넣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갈래로 나뉜 것은 여러 겹으로 묻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이렇게 미술과 사회를 항상 더불어 생각하는 서경식의 미술론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논리에 따라 비판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가령 이 기획기사의 제목인 ‘미술밖 미술비평’이라는 말도 그에게는 가치있는 제목으로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폐쇄적인 영역에서 다른 영역과 무관하게 전개되는 ‘미술’은 그에게는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
이다. 오히려 내가 그의 글에 충분히 만족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글쓰기가 보다 구체적인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감정과 공감의 토로로 그칠 때가 많다는 점 때문이다.
가령 그는 『청춘의 사신』에서 일본 쇼오와 시기 전쟁화를 언급하면서 “어떤 예술작품과 마주 했을 때 내가 사상적
으로나 윤리적으로 양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섰을 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내 존재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악마적인 힘을 가진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을 커다란 기쁨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더 분석해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것이 나는몹시 아쉽다. 그가 그 문턱을 넘어
서는 때가 온다면 그 순간은 그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단절을 뛰어넘는 순간이 되리라.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