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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학

제천의식과 한국춤의 원류 - 채희완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6.05.07|조회수142 목록 댓글 0


한국인은 어떻게 놀았는가, 그 신명의 생활 공동체

-제천의식과 한국춤의 원류





陳壽(233-297)가 쓴 『三國志魏璡夷傳』에는 부여, 고구려, , 삼한의 마한 등에서 행한 제천

의식과 농경의례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기사의 항목에 따라서 제천의식의 실상을 그 사회문화사적 배경과 함께 짚어봅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군사, 사법적 기능을 아우른 한바탕 거족적 집단신명의 역동적 복합문화공간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그들은 하늘을 비롯하여 부족의 신이나 여러 신들을 모시고 연일 밤낮없이 음주가무로 놀았던 겁니다.

모든 “제의는 굿에서 나왔다”(J. Harrison)는 세계 공통성을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이들의 ‘나라굿’은 국가의 형태에 따라서 또 거행 시기나 규모에

따라서 그 성격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으니 유의해 봄직합니다.


아울러 이 글에서는 『동이전』에 나오는바 춤에 대한 지극히 짧은 언표를 두고 이를 고맙게 여겨

한국춤의 원류를 추적하는 단초로 삼고자 합니다.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우리춤의 몇 가지 언어관행과 춤사위의 이름을 불러 들여 역사적으로

소급하여 좀 더 진전된 춤 원류 찾기에 나서고자 합니다.

물론 이는 한국춤의 원형추적이겠으나, 상고대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이들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두는 겁니다.


그리고 아쉽기로는 가락국이나, 신라, 백제의 국가의례를 다루지 못한 점입니다.

더욱 아쉽기로는 상고대 ‘나라굿’의 원초적 배경이었음직한 정치로서의 화백(和白), 호혜(互惠)시장인

신시(神市),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風流)는 동이족의 삶과 역사와 사상의 수원지이자 한국 문화

의 모태임이 분명한데도 이를 세밀히 다루지 못한 점입니다.

동이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풍류사상은 천부경의 삼재(三才)사상

이나 홍익사상, 선도(仙道)사상, 샤머니즘 등 한국사상의 원()거처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몸과 한 마음 속에 온 하늘과 우주와 역사가 품겨있다(人中天地一)는 말씀 자체가 한국인의 춤

속에 숨어 언제라도 뿜어 기화신령(氣化神靈)할 수 있는 신명의 뿌리이지요.

고유섭은 일찍이 “한국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매 생활과 예술과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라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생활, 예술, 종교를 연행적 관점으로 옮겨 놓으면 그것은 일, 놀이, 굿이 됩니다.

일놀이굿의 복합체는 단연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은 후대의 팔관회, 연등회, 마을굿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전형적인 일놀이굿의 양태는 ‘두레’의 일­놀이­굿입니다.

공동체의식의 사회적 실현 통로인 ‘두레’야 말로 신명의 생활공동체입니다.

이에 대한 본격 논의도 다른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군요.


이 텍스트(text)는 진수의 『삼국지』의 찬술방식에 대한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인 전해종(全海宗)

「삼국지 동이전 譯註(한국사학 16, 정신문화연구원, 1996)에 따른 것이고, 제천의식의 사회문화

사적 논의는 최광식,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한길사, 1994), 김두진, 『한국고대의 건국신화와

제의』(일조각, 1999), 한국고대사연구회 편, 『삼한의 사회와 문화』(신서원, 1995) 등 역사학계의

성과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제 「동이전」의 원전을 꼼꼼히 살펴보기로 하지요.

 

 

 

 

I. 상고대 제천의식


1. 영고(迎鼓)    

 

以殷正月 祭天 國中大會 日飮酒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解囚徒

“은나라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데 나라 안에 큰 모임이 열려서 날이면 날마다 음주가무 하는데,

이를 영고라 한다. 이 때에 이르러 죄의 유무, 경중을 물어 재판을 열고 죄수를 풀어주기도 했다.

 

은정월은 하()나라 음력 12월입니다. 이때는 납월()로서 짐승을 수렵하여 조상께 제사를 지내는

달이기도 합니다.

은정월에 이런 국중대회를 열었다는 것은 한겨울 해를 마무리하면서 열었다는 것인데, 이는 이후 궁중

의 나례와도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흔히 제천의식은 농경의례로서  추수감사제라고 생각하지만 영고는 수렵의례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마가, 우가, 저가 등 여섯 가지 짐승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관직명칭도 있듯이 이러한 유목민족적 토대

위에서 은정월을 택했고, 송년의 시기, 짐승을 잡아서 선조를 제사지내는 거국적인 국중대회를 열었던

것이 영고입니다. 이른바 송년 나례(儺禮) 잔치이기도 한 것이지요.  

 

有軍事亦祭天 殺牛觀蹄以占吉凶 啼解者爲凶 合者爲吉

“전쟁이 일어나면 역시 하늘에 제례를 올렸다. 소를 희생 제물로 삼아 소를 죽여서 소발굽을 보고

이로써 길흉을 점쳤다. 소발굽이 갈라져 있으면 흉()하다 하고, 소발굽이 합쳐져 있으면 길()

하다고 한다.

 

영고는 단순히 수렵의례로서 나라굿만이 아닙니다. 전쟁 때에도 제례를 통해 하늘의 뜻을 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윗 구절에서는 사법적 기능도 가졌음을 알 수 있지요.

 

<사회상, 시기, 제의대상, 규모, 성격>


부여의 인구는 8만호, 8만 가구였고 한 가구 당 5명을 기준으로 하면 40만명 입니다.

고대국가는 10만 정도이면 하나의 틀을 갖춘 일정한 국가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 부여는 꽤 큰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천’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제례를 드리는 대상이 하늘신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늘신은 무엇인가, 하늘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군왕이 천신 제사를 주관하고 천신과 교감한다는 것은 스스로 왕권을 과시하고 있는 의미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왕이 하늘신에게 제례를 올렸다고 하는 것은 천신의 위력과 왕의 위력이 대등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으로 왕권강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신에 제례를 올릴 수 있을 정도의 국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왕권이 장악되고 있고 안정된 국가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천신과 교통한다는 것은 종교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천신의 위력적, 상징적 의미를 왕권과

결부시켜서 국가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규모가 나라 안의 큰 판이라는 것입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은 국중대회이지만, 예의 무천은 국중대회란 말이 없고, 삼한의 계절굿에

도 국중대회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규모를 얘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고라고 하는 이름에서 우리는 천신맞이로서, 즉 하늘에 북소리를 울려서 신을 일깨우고 맞

이하는 거대한 문화행사로서의 규모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적 기능을 아울러 갖추고 죄의 경중을 물어 죄수를 풀어주는 율령집행의 과정이 결부

되어 제천행사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쟁 때에 점을 치기 위해 소를 죽였다는 것은 단순히 점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소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행사였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소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하늘에게 제례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소의 죽임을 통해서 인간과 신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신에게 가까이 교통을 할 수 있게끔 다리를 놓는다는 것인데, 이때 소의 죽임이

바로 희생양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구세주로서의 속죄양으로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를 죽였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희생의례를 올렸다는 것인데, 그것도 부여의 독특한 한 제례

방식인 것입니다.


영고는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집단적인 신명 판입니다. 연일 음주가무를 하고 음복하며 나눠 먹고

놀면서 공동체적 유대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어느 민족마다 이러한 큰 제의의 굿판을 벌여 놀았다는 것이 예술의 기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재분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제천행사는 정치, 경제, 군사, 사법적 기능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국가 권력 구축과정 속

에서의 큰 축전인 것입니다.


영고는 말할 것 없이 대동굿입니다.

대동은 대동소이에서 대동(大同) 즉 크게는 같고 소이(小異) 즉 작게는 다르다는 것으로 제각기 다른

삶의 내용이 큰 테두리 속에서 하나 되는 것이 우리의 굿입니다.

바로 그것이 국중대회이고 거기서 며칠 낮밤을 뚜드려 먹고 노는 공동체적 집단신명풀이를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뒤에 신라, 고려로 넘어오면서 팔관회, 연등회로 규모가 축소되기는 했습니다만 또

마을굿, 고을굿으로, 생산자 단위에서는 두레굿으로 옮겨 갑니다.

특히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놀이 복합의 두레굿판은 백중놀이를 연상하면 됩니다.

그것은 마한조의 농경의례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2. 동맹(東盟)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시월에 하늘에 제례를 올리는데 온 나라에 큰 모임이 있어 이를 동맹이라 한다.

 

其公會 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 大加主簿頭著幘 如幘以無餘 其小加著折風形如弁

 “그 공식적인 모임에 온 사람들은 모두 다 수놓은 비단의 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스스로 장식을 한다.

고위관리인 대가(大加)나 주부(注簿)는 머리에 책()이라 하는 것을 썼고 이는 중국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고구려인의 책은 뒷머리 부분이 없다. 낮은 관리인 소가(小加)는 절풍(折風)이라 하는 것을 썼

는데 고깔 모양의 모자인 변()과 같다.

 

동맹에 참가하는 관리들은 그 직책에 따라서 의관의 구별이 있었고, 동맹은 따라서 격식을 갖춘 국가

공식적인 의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부여의 영고와 다른 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음주가무의 기사가 없음이 눈에 뜁니다. 그러나 한편 고구려 백성은 가무를 즐겨하

여 해가 지도록 남녀가 모여 가무를 했다는 기록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 가무는 일상생활화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토대가 국중대회에 집단신명으로 발휘된 것이겠지요.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 國中大會 迎隧神還于國東上 祭之 置木隧于神坐

“그 나라의 동쪽에 큰 굴이 있었다. 그것을 수혈(隧穴)이라 한다. 시월에 나라 안에 큰 모임이 열리면

큰 굴속에 있는 수신(隧神)을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 강가로 다시 돌아나와 수신께 제례를 드린다.

나무로 된 수신(隧神)을 신좌(神坐)에 모신다.

 

시월 국중대회인 동맹이라는 제천의식을 벌일 때 나라의 동쪽의 큰 굴속에 있는 수신을 모셔 와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가 위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제례를 드리고 신좌에 앉혀 모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늘신과 함께 수신도 모셔 와서 제천행사와 더불어 제례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수신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수신은 땅의 신, 농업신, 곡물을 관장하는 신, 고구려의 시조인(주몽) 동명왕을 낳은 하백녀 등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나무로 깎은 부인상인 하백녀는 땅의 어머니인 지모신으로, 그것은 고등신(高登神)

과 대비됩니다. 고등신은 하백녀의 아들인 주몽 즉 동명왕을 말하는데,

여기서 보면 제천의식 때 고등신을 모시지 않고 지모신을 모신다는 것입니다.

 

無牢獄 有罪 諸加評議 便殺之 沒入妻子爲奴婢

“고구려에는 감옥이 없고 만약 죄를 지으면 여러 관리들이 의논을 하여 그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처자(妻子)를 몰수하여 노비로 삼는다.

 

其俗節食 好治宮室 於所居之左右大屋 祭鬼神 又祀星社稷

“그 민속을 보면 먹는 것을 아끼고 궁실을 꾸미기를 좋아한다. 거처하는 곳(주거지)의 좌우에 큰 집

을 짓고 귀신에게 제사를 드린다. 또 영성(, 하늘신)과 사직(社稷, 땅의 신과 곡물의 신)에도 제사

를 드린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 신을 모신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인이 천신, 수신, 시조신, 별과 하늘신, 땅과 곡물의 신을 모시는데 이로써 그들의 범신론적

세계관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시조신을 모신다고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라의 체계가 완성돼 있는 것을 뜻하며,

또한 나라의 체제를 완성하기 위하여 지모신의 위력을 끌어 들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그것은 이미 막강한 국가 체제가 정비되었기에 그 위력적인 사실을 공표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겠는데, 용비어천가의 공포 같은 데에서 그 일례를 보게 됩니다.

 

<사회상, 시기, 제의 대상, 규모, 성격>


진수의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시기는 고구려 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고구려가 위나라에 다소 위협적인 존재여서인지 진수는 그의 기록에서 인구(3)와 생산력 면에서

부여에 고구려를 폄하하여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고의 규모나 성격으로 보아 나라가 강인한 정치조직으로 굳건하게 권력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0월의 국중대회는 추수감사제이지만 쌀이 나지 않으므로 잡곡수확의례일 법하고,

북쪽지역 음력 10월이라는 추운 계절임을 미루어 볼 때에는 추수감사제라기보다는 유목 민족의 수렵

의례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한편 천신과 더불어 수신 곧 하백녀를 더불어 모시는 국가의 공식적인 지배계층의 의례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공간에서는 별의 신, 토지신, 곡물신 등 여러 귀신들을 모셔 제사를 올렸

습니다. 범신론적 세계관이지요.

동맹이라는 말은 여러 조직이 튼튼히 결사했다는 뜻도 품고 있고, 고구려의 동명왕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이기에 그를 기리는 국가 행사일 법도 하다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3. 무천(舞天)

 

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又祭虎以爲神

“늘 시월 절기행사로서 하늘에 제례를 드리고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한다. 이를 무천이라 한다.

또 호랑이에게 를 지내고 이로써 을 삼는다.

 

동맹이 수신을 모신다면, 무천은 호랑이신을 모신다는 것이 특이한 점입니다.

그것은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는 부족세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세력이 무천이라는 행사를 통해

권력 구조상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其邑落相侵犯 輒相罰責生口牛馬 名之爲責禍 殺人者償死

“예나라의 읍락이 서로 침범하면 번번이 서로 벌책을 주는데, 사람과 말과 소에 형벌을 내리는 이것

을 일컬어 책화(責禍)라고 한다. 살인한 자는 죽음으로써 갚음한다.

 

<사회상, 시기, 제의 대상, 규모, 성격>


인구 2만호의 예맥은 동족혈연공동체이며 연맹왕권 성립이전의 수장체제(首長, chiefdom)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는 10월의 제천행사로 오곡수확의례에 해당합니다. 제의대상은 천신과 호랑이신 이었습니다.

주야 음주가무의 집단신명을 여기서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천신 상징의 왕권 아래 동쪽 虎神 상징

세력이 권력구조의 한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무천은 책화, 살인자 처형 등 형벌판결과 집행을 동시에 행하는 정치․경제․사법적 기능을 공유하였습

니다.

 

4. 계절굿

 

고대제천의식에 관한 기록 중 삼한 특히 마한에 해당되는 대목이 키포인트입니다.

특히 그 노는 모양이 짧은 글귀이기는 하지만 여실히 적시되어 있어 주목 하게 됩니다.

또 동이족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앙체제, 사회체제인 소도에 대한 언급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 飮酒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

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늘 오월에 씨뿌리기를 마치고 나서 귀신에게 제사를 드린다. 이때 무리가 모여 가무음주를 주야로

그치지 않았다. 그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밟고 몸을 수그렸다 치켜들었다

하고, 손과 발이 서로 잘 어울어 들었는데 그 가락이 탁무(鐸舞)와 비슷하다. 

시월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와 같은 것을 반복했다.

 

 

특히 밑줄 부분은 춤에 관한 언급으로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는 회무

또는 원무, 윤무() 등의 동작선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답지저앙’은 땅을 자근자근 밟는 춤으로, ‘답지’는 땅에 발을 디디는 하체춤의 디딤새를 말하는 것

이며, ‘저앙’은 몸을 구부렸다 폈다하는 상체 동작을 말합니다.

손발이 잘 맞는다는 ‘수족상응’은 춤추는 사람들이 서로 손발이 맞아 잘 어울려 드는 뭇동춤을 연상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탁무’의 형태를 잘 알 수만 있다면 그 춤의 모양을 이내 연상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중국무도사전에 보면 ‘탁무’는 한나라와 위나라의 잡희의 이름으로 ‘탁’을 들고 추는 춤입니다.

‘탁’은 그 모양이 큰 방울과 같고 문()과 연관된 일에는 ‘나무로 된 탁’을 흔들고 무()와 연관된

것에는 ‘쇠로 만든 탁’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장족의 민간춤에 그러한 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보아서 ‘탁무’는 민간의

민속춤이라는 것과 큰 방울을 들고 춘 것이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풍물소고춤과 풍물가락으로 흥겹게 무리져 노는 풍물춤의 원초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信鬼神 國邑 各一人主祭天神 名之天君. 又 諸國各有別邑 各之爲蘇塗 大木 懸鈴鼓 事鬼神.

諸亡逃 至基中 皆不環支 好作賊 其立蘇塗之義 有似浮屠 而所行善惡有異

“귀신을 믿는다. 각 국읍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의 제사를 주재하는데 그를 천군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마다 각기 별읍(別邑)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를 소도(蘇塗)라고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걸어두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가는 자들이 소도 가운데에 이르면 돌려보내지 않

는다. 그래서 모두 도둑질하기를 잘하게 되었다.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 고승의 사리를 모신 불탑)와 비슷함이 있다.

그러나 행하는 바의 선악을 볼 때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여기서 소도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귀신을 제사 드리기 위한 무당굿의 장소라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죄를 짓고 들어가도 잡지 못하는 불가침의 해방구라는 겁니다.  


소도라는 말은 신을 모신 제단인 수두(神壇)라는 우리말의 향찰 표기이며 솟대(새의 토템)를 한자로

표기한 것, 높은 지대라는 솟터, 모든 것이 융합되는 용광로와 같은 솥터 등의 우리말을 한자말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또한 신역(神域),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인데, 그 자체가 하나의 신체(神體)이기도 합니다.

또 그것은 마을의 출입을 관장하는 마을의 경계이고, 문화복합의 용광로 노릇을 합니다.


<사회상, 시기, 제의 대상, 규모, 성격>


삼한 특히 마한은 옛 백제에 해당되는 지역을 일컫습니다. 3한은 작은 50여개의 소동맹국들로 이루

어졌고 마한은 1만 가() 5만명 정도의 대규모 초기국가단계와 수천 가의 작은 수장사회가 혼융

된 소연맹국가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또 여기에는 토착세력과 이주세력이 어우러져 있고 마한, 진한, 변한 세 나라가 각각 분할 통치되어

있으면서도 마한이 가장 강력한 통치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한족(韓族)으로서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었고 백성들은 주로 농경정착민으로

뽕 심어 누에를 치고 초가와 무덤같이 생긴 땅을 판 토실에 살았으며 진한과 마한은 말()이 달랐

다고 합니다.

또한 두건 쓰기를 좋아하며 상투를 밖으로 드러내고 삼베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고 짚신이나 가죽신을

신기도 하고 걷는 모양은 발을 약간 높이 들어서 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변진(弁辰)의 사람들은 몸이 크고 의복이 아주 청결하고 머리를 길게 길렀고 세포(細布)를 짜고 법속

(法俗)이 준엄하였습니다.


제의 대상은 국읍에서는 천신을, 별읍에서는 귀신을 모시는 구분이 있었는데 이러한 여러 신들의 역할

분담으로서의 위계화는 여러 신을 모시는 범신론적 신관(神觀)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샤만 즉 무당과

깊이 연관이 있으며, 소도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5월 씨뿌리기를 마친 후, 10월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행하는 농경의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즉 삼한의 계절굿은 소도신앙을 토대로 한 국가적 계절단위 농경의례이며 농경정착민적 대․소규모의

두레굿 행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청동기문화의 성읍국가에서 철기문화의 중앙집권국가로 나아

가는 길목에 있는 집단신명이었으며 또한 여기서 한국춤의 원형을 추찰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위의 제천의식과 농경의례를 사회상, 시기, 제의대상, 규모, 성격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

 

 

<1>

 

영고

동맹

무천

계절굿

사회상

①인구 8萬戶 (40)

농업생산 위주(오곡 생산으로 쌀을 포함하지 않음) 

③군왕중심 초기 국가 단계

 

①인구3萬戶

②생산력이

③군왕 중심의 초기국가, 군왕, 관직의 분화, 정치종교적 권위 발달

①인구 2만호

②동족혈연공동체

③초기국가단계+수장사회=소연맹국가단계

①삼한은 50여국으로 구성, 韓族의 동질성을 가짐

②마한은 1만여 의 초기국가단계+수천의 수장사회의 혼융된 소연맹국가단계

③토착세력과 이주집단이 어울어져 있으나 마한이 가장 강력한 통치력 지님

④농경정착민

시기

() 정월에 치루어짐(은력 정월은 음력12월을 의미)→농경의례가 아니라 수렵의례 또는 송년 나례임을 시사

 

10월→잡곡수확의례,

수렵의례일 수도 있음

국조신의례 또는 시조신 의  례를 포함.

10월→오곡수확의례

5월 씨 뿌린 후, 10월 가을걷이 마친 후→농경의례

제의대상

제천=천신,(일종의 천신맞이굿)

①천신+수신(국조신, 하백녀로서 부족의 시조신, 생산신, 곡신)

②영성, 사직 등 귀신 제사

천신+호랑이신

(토템신앙, 토착세력)

제귀신(천신과 여러 다른 신을 포함), 신귀신(국읍, 천군:제사장)과 사귀신(별읍, 무당, 소도신앙)

규모

국중대회

국중대회

제천의식

 

성장의례․수확의례 등

계절단위 농경의례

 

성격

①천신맞이굿

②은정월 수렵의례, 또는 송년 나례(납월)

③거국적 축전행사

④형옥판결, 죄수풀어줌

⑤전쟁때 殺牛占을 침, 희생의례

⑥군왕 천신제사 주관, 천신과 교감하는 왕권 과시

⑦연일 가무, 음복을 통해 공동체 유대강화

⑧제의 통해 경제력 재분배  

⑨정치, 경제, 군사, 사법적 기능 포함

①천신맞이굿. 국조신을 동시에 모시는 국가공식적 의례

②잡곡수확의례(또는 수렵의례)

③수신의 해석에 따라 ‘지모신으로 하백녀=부여신(시조신), ‘주몽=국조신’으로 해석할 수 있음. 그 외 영성과 사직을 모심

④귀신께 제례 드리는 소도신앙 잔존

⑤거국적 축전행사

⑥재판, 형벌 동시 집행

⑦군왕 천신제사 주관, 천신과 교감하는 왕권 과시

⑧제의 통해 경제력 재분배

⑨정치, 경제, 사법적 기능 포함

 

①천신맞이굿

②오곡수확의례

③주야음주가무의 집단신명

④천신상징의 왕권 아래 동쪽 호신상징세력의 ‘합병’(또는 장악)

⑤책화, 살인자 처형 등 형벌판결과 집행을 동시에 진행하는 정치, 경제, 사법적 기능 공유

①천신+소도신앙의 결합(제귀신, 신귀신, 사귀신)

②신들의 위계화

③성장농경의례이자 수확의례

④군취가무와 음주주야무휴 등 집단 신명을 통해 공동체 유대강화

⑤청동기문화의 성읍국가에서 철기문화의 중앙집권국가로 넘어가는 언저리에 있는 체계

⑥제의 통해 경제력 재분배

⑦죄를 지어도 거기에 가면 잡지 않아 해방구로서 소도

⑧한국 춤의 원형을 추찰해 볼 수 있는 기록

 



II. 삼국지 위지 동이전 마한조의 해석학적 지평

 

 

여기서는 ‘국중대회’라고 하는 용어와 ‘소도’라고 하는 용어, 그리고 ‘五月下種訖 十月農功畢’ 이라는

행사시기 및 기획 제작적 측면, 또 그 내용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일놀이굿으로서의 집단신명 및

풍류적 측면들을 함께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삼한시대 그 이전 고조선시대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국면들을 요약하고 있는 화백

정치, 신시 경제, 풍류 문예 등을 아울러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화백이라는 직접민주주의의

만장일치제도, 그리고 신시라는 호혜평등의 직접 문물교환인 경제체제, 우주와 자연과 인간 더 나아

가 무기물까지도 서로 생명력을 나누고 서로 감화 받아 드디어 자기완성의 길을 이루는 접화군생(

化群生)의 풍류 문예 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고대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엇비슷하게 진행되었던 세계민속의 보편적인 사실 속

에서 이를 재검토하는 일 등이 해석적 지평을 열어주리라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새삼 아쉽습니다.

 


1. 국중대회와 제천(祭天), 제천신(祭天神), 제귀신(祭鬼神), 신귀신(信鬼神), 사귀신(事鬼神)

 

‘국중대회’란 명사형이 아니라 나라 안에 큰 판이 열렸다는 서술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독립명사로써 쓸 수 있습니다.


제천(祭天), 제천신(祭天神), 제귀신(祭鬼神), 신귀신(信鬼神) 등 약간씩 표현을 달리하고 있는 미묘

한 어감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에 담겨있는 배경적인 차이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해서 얘기하면 제천 즉 하늘에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인간이 하늘로 표상되는 신의 경계에 동참

한다고 하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제천은 인간과 하늘 사이의 수직적 관계만이 아니라 신과 사람이

서로 회통하고 동격을 이루고 있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경과 섬김()이면서 또 동역(同役, 同事)입니다. 그리고 천지인 3사상을 배경으로 한

널리 이로운 세계의 소망풀이입니다.

다시 말해 제천 혹은 제천신이라고 하는 것은 천신신앙인 동시에 神人和同의 하늘 세계의 일에 인간

이 동참하고 동격을 이루는 천신의 의인화, 인간의 천신화입니다.

그것을 맡은 사람은 천군 즉 하늘의 제사장이어서 그가 그런 일을 통해 지배권력을 강화하는 측면이

다분히 있습니다.


제귀신은 다분히 종교적 대상을 상대로 한 의례양식입니다.

그리고 그 의례양식에 포함되어 있는 종교적 교의를 확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간편하게 얘기하면 동북아시아 일대에 퍼져 있는 샤마니즘 신앙의 보편성을 제귀신으로 해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은 하늘과 내통하는 자라는 점에서 왕권의 강화를 위한 한 수단으로 하늘에 제례를 드린다는 것인데

그것의 토대는 두 말 할 것 없이 제귀신이고, 제귀신적 차원이 더 강화된 양태가 제천신이라는 것입

니다.


제귀신 단계가 샤머니즘적이고 농경 의례적이고 청동기적이라면, 제천신은 왕과 하늘이 동격이라는

권력의 강화로서 지배왕권 중심이고 철기문화권으로 전환되어 농경사회가 정착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제천의식이라 하더라도 나라 안 전체가 크게 모이는 국중대회형과 동맹국 단위의 소규모 읍락

단위에서 행하는 농경의례형,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제천의식도 대, 소규모가 있다는

얘기이고 큰 것이 국중대회라면 작은 것은 농경의례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중대회형으로는 영고, 동맹 등으로 왕권세력이 좀더 탄탄히 구축되어 있는 그런 형태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비해 농경의례형은 소동맹국 체제로서 고을의 우두머리가 정치를 장악하는 수장 체제가 혼융

된 마한지역의 것인데, 그것이 바로 농경의례형의 제천의식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를 합쳐서 마한조에서는 신귀신이라 하였습니다.

마한조에서는 농경의례적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요약하면 국중대회는 영고, 동맹에서 보듯이 천신맞이 수렵의례, 또는 잡곡 수확의례의 거국적

종교행사와 삼한지역에서 볼 수 있는 소연맹단위 읍락 농경의례행사로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천신으로 상징되는 왕권과 함께, 고구려의 동맹과 연관돼 있는 수신, 예의 무천과 연관돼 있는

호신 등의 부족시조신이나 소연맹단위 토템 신앙 등의 부족집단세력 사이의 교호관계가 엿보입니다.

영고나 동맹 등은 대규모 국중대회이고 천신맞이 행사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가 크게 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비해 삼한지역은 아직 소연맹국가라는 작은 고을들이 서로 분할, 배치되어 있는 형태로 전자

와는 국가형성 단계의 차이가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소읍락 중심의 농경의례는 국가 단위의 큰 행사를 치루기 이전의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나라의 통합

력은 다소 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역단위로 분권화되어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웃집단 복속과정 속에서 양민과 노비를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그것을 통해 농경사업을 벌여

이익을 많이 얻은 쪽은 봉건지주가 되고, 거기에 대한 직접 생산자로서 농노들 사이에 계층구분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사회복합관계속에서 지방토호와 중앙귀족 간의 대립을 국중대회를 통해 조정, 통합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중대회는 음주가무로 즐겁게 노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정치적으로

조정, 교화하는 통치자의 권력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제천의식은 종교의례를 하면서 형벌․법률을 집행하고 전쟁 때에도 행하는 것으로 보아 정치, 경제,

군사, 사법적 기능을 동시에 관철하고자 하는 지배이데올로기의 강화과정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정일치와 제정분리가 혼융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마한조의 천군이라는 존재와 별읍의 샤먼이라는 존재는 차이가 있지요.

같은 제사장급이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단군 왕검의 경우에도 같은 인물을 두고 두 가지의 경우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단군이라는 말에는 제사장적 역할이 강조되어 있는데 그것은 호남지역에서 무당

을 일컫는 단골의 의미와 같습니다.

일정한 지역을 관할하는 세습무를 단골이라고 하는데 단군과 단골은 같은 뜻으로 곧 제사장을 의미

합니다. 왕검의 경우는 임금이라는 뜻의 향찰표기로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제정일치와 분리는 순차적인 단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정일치에서 분리로 나아가는 것이 발전의 단계라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최근에 와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제정분리로 정착되지만 제정일치에서 분리로 그리고 다시 제정일치로 돌아가는 예도

많이 있습니다. 처용무와 연관이 있는 헌강왕의 경우 제사장의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남산신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이 노는 모습을 보고 춤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

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제사장과 통치자는 밀접한 관계이며 양자는 모두 권력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있는 샤머니즘적 세계관 속의 신들은 서로 대등한 관계라는 것이 임석재 선생의

의견입니다. 조흥윤 선생의 얘기로는 조상신을 중심으로 놓고 신들끼리 서로 병렬적으로 대등하다고

합니다. 다만 그 신이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 때는 나쁜 신으로 취급을 받을 뿐이지 위상에 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모든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한국문화가 지니고 있는 밝음의 모습입니다.

태양숭배의 모습이고 하늘 숭배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최남선은 불함문화(不咸文化)라고 했습니다.

불함은 밝음의 ‘’에 대한 한자식 표기입니다.


‘한’ 은 하나라는 뜻이며, ‘’은 햇살, 생명을 말합니다. ‘’은 솔()이라는 말로 쓰기도 하는데,

소나무는 태양과 견주어진다고 합니다. ‘’, ‘한’, ‘’ 등은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북방유목민족

계열의 문화와 연결됩니다.

영적 초월성을 앞세우는 천손계(天孫係)인 셈이지요. ‘ ’은 어둠, 그늘, 구멍, 동굴, 여성, , 곰 등

의 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이는 남방농경민족계열의 문화와 연결되고 육체적 사유와 함께 곤도(坤道)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한 , ,  ’이 전체적으로 밝은 빛을 얘기한다면 거기에 대응되는 말이 ‘’이고 이 두 가지는 곧

빛과 어둠입니다. 양적인 것과 음적인 것이 동시에 교차되어 한민족의 문화권이 형성되는데 양적인

것이 토대가 되기도 하고 음적인 것이 토대가 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김지하 시인은 한국문화를 이 두 가지 대립되는 것의 이중교호적 결합이라고 하고, 그것이야말로 한국

예술의 가장 적실한 미의식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제천의식에 대한 기록에서 우리는 영고의 북소리가 하늘에 닿아 동맹의 해뜨는 동쪽을 향하여 무천의

하늘춤을 추는 동이족의 거대한 신명공동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2. 소도신앙

 

진한, 변한, 마한 지역의 고대 동이족의 토속적인 원초종교를 일컬어 소도신앙이라 얘기할 수 있습

니다.

이민족(異民族)의 신앙체계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존재해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해서 불교, 유교 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도신앙이 좀 더 진전되어 제천이라고 하는 천신개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드디어 나중에는 국중대회와 같은 큰 행사의 토대가 되고 또 한편 한나라가 서연 통치강화를

위한 건국신화가 만들어지는데 이에 일조했던 신앙체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읍락 중심의 소연맹체제인 성읍국가는 연맹국가로, 그리고 중앙집권국가로의 이행됩니다.

소도신앙을 국가단위로 보면 소읍락 중심의 연맹체제 성읍국가에서 통치권과 더불어서 정신세계를

관장했던 하나의 신앙체계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기 문화가 왕성하게 정착되는 중앙집권국가 이전에 청동기 문화의 농경사회를 주름

잡았던 신앙체제인 셈이지요.


소도라고 하는 한자말은 우리말의 향찰적 표기로 신을 모신 제단인 神壇(신채호)이나 새의 토템으로

서 원거리 통신을 가능케 하는 솟대, 높은 지대라는 솟터, 온갖 문화들이 복합적으로 충돌하는 용광로

와 같은 솥터, 神域(손진태), 제단, 祭場, 神體, 마을의 경계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소도는 소국사회 읍락(별읍)의 토착부족신제사와 자생적 농경의례가 국중대회의 제천의식으로 발전

되어 가는 과정 속에 국가적 사회통합력을 강화시키고 농업생산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청동기문화

와 더불어 치러지는 국가적 농경의례신앙이자, 치외법권의 거룩한 해방구였다는 것입니다.

화백과 풍류와 神市가 서로 한 몸이 되어 큰 판이 벌어지는 그런 곳을 일컬었고, 삼한사회 뿐만 아니라

동맹, 영고, 무천에서도 두루 그 행사의 토대가 되는 토착적 고대종교였다는 것입니다.

(최치원의 「지증대사 비문」)

 

불교는 이러한 소도신앙을 바탕으로 수용이 가능했으며 자연신(하늘, , 토템 등) 숭배 단계에서

지모신이나 시조신 신앙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부추겼던 동이족의 고대신앙 체계가 바로 소도라는 것

입니다.

그것은 이후 국가체제가 완비된 후 가장 먼저 하는 홍보사업이 건국신화 창출인데 그것의 기반이 되

었고, 소도에서 행해지는 제사행위는 샤머니즘의 종교의례와 비슷함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상징인 큰 나무를 세우고 당집을 만들어서 신을 모시는 신성공간은 동이족뿐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만주지역의 신간(神竿), 몽고의 obo 라고 하는 신물과도 엇비슷하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것의 원초적인 모습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점지하고 있다는 마고(麻古)할미일

것입니다.

이는 소도신앙, 제천의례, 제귀신의례보다 더 앞선 형태의 동이족의 원형적인 신앙체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원형적인 한 신앙체제를 일컫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한 유목이동민족과 농경정착민족이 서로 얼켜 들어서 새로운 삶, 새로운 문화의 터전을 마련한 곳을

소도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3. 삼한의 농경의례

 

삼한의 계절굿은 오월하종흘(五月下種訖)이 절기상 단오 즈음인데, 농사의 첫 단계인 씨뿌리기가 끝난

후의 한판 놀음이며, 시월농공필(十月農功畢)은 시월 수확 후의 추수감사의 제례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곧 성장의례이고, 수확의례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농사일을 마친 후 한 판 쉬고 논다는 세시풍속적 의미와, 생명을 낳고 거둬들일 수 있게 해

준 생명의 근원께 감사드리는 천신(薦新) 굿의 의미가 있습니다.


공동농업협동의 두레 조직에서 모든 사물과 생명력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깊은 교감인 접화군생의

굿의 마음이 얽혀 들어 한 판 놀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재판놀이가 결부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는

발상을 유발시킵니다.

영고, 동맹 등의 국중행사에서 재판을 열어 집행한 것처럼 후대에 마을의 민속행사에서도 이러한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통영의 재판 놀이인 사또놀음이 그러합니다. 강릉 단오굿에도 관노놀음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이거나 세시풍속의 민속놀이에 재판놀이의 형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멍석말이와 같은 것도 그러합니다. 재판놀이란 기실 하늘의 뜻, 사회의 뜻, 사람의 뜻을 그르치는 살

()과 액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굿의 현실적 기능일 뿐만이 아니라 놀이적 기능과 그 지향점과 그리고 비전을 세우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여 하나의 치외법권적인 구역으로서 소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죄지은 자에 대해 형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재판놀이의 민중적 최종 판결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4. 집단 신명, 그리고 일상의 성화(聖化)와 열린 마당성

 

行人無晝夜好吟 音聲不絶(부여), 其民喜歌舞 國中邑落募夜 男女群聚相就歌舞(고구려),

俗喜歌舞飮酒 有瑟 其形似筑彈之亦有音曲(변진)

 

“지나가는 행인이 밤낮없이 읊조리기를 좋아해서 노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 나라 백성이 가무를 좋아해서 나라 안의 읍락에서 저녁 으스름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모여 노래

를 부르고 춤췄다. 민속에 가무음주를 좋아해서 현악기가 있는데 그 모양이 중국 악기인 공무와 엇비

슷하다. 이를 연주하는 음곡도 있었다.

 

 

제의를 통해서 엄청난 국가 경제력이 동원되어 이러한 큰 행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낮 없이 먹고 마시고 음복을 통하여 공동체 유대를 강화하고 왕권의 존엄을 과시하였습니다.


또한 동이족이 워낙 잘 노는 민족으로 배냇소리꾼, 배냇춤꾼, 신명이 과한 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은 남미나 아프리카에 못지않게 춤과 노래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밤낮없이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하지요.

동이족으로선 지극히 평상적인 것인데 진수의 눈에는 그것이 오죽했으면 역사의 기록에까지 남겼을

까요.


이러한 굿판은 거국적 거족적 집단신명이 발휘되는 때이고 일상적인 것의 성화, 놀이화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굿터의 선정이나 놀이판의 정화의식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세속공간이 거룩한

공간으로 변전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느 놀이판, 어느 춤판이나 맨 처음에 펼치는 터벌임, 터닦음, 말문열음, 부정거리, 청신맞이가 그러

하지요. 그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일상의 노동이 곧 놀이이고 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의 현실적 장치가 바로 굿판인 것입니다. 일상적, 현실적, 세속적인 것이 거룩한 것과 서로 다르지

않다는 국면을 실체화시킨 것이 고대의 제천의식행사와 오늘날의 마을굿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굿놀이와 일상의 삶이 분리되어 있지만 원초적 의미에서 그것들은 비분리된 것이었으며,

21C 가 지향하는 바도 그러합니다.


21C는 문화 콘텐츠의 시대, 몸의 상상력을 토대로 하여 문화적 마인드가 중심을 이루는 자기 연출의

시대입니다. 가상의 세계가 현실화, 육체화 되는 것을 체험하는 넓은 의미의 살판 굿의 시대입니다.

굿이라는 것은 일상의 성화입니다.

거룩한 것이 지상에 실현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인 것입니다. 21C의 지향점과 집단신명으로서 굿의

육체화, 일상화는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보듯이, 일상의 협동노동

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환희작약’하는 그런 세계이기도 합니다.


‘환희작약’은 금관가야의 수로왕 탄생설화에서 온 백성이 모여 일하는 가운데 새 임금을 맞이하면서

집단신명에 젖어 있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만장일치 직접민주주의의 화백정치,

호혜(互惠)시장인 신시 경제,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문예와 연결됩니다.  

 


III. 한국춤의 원류를 찾아서

 

1. 춤 형용 구절의 재해석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열을 지었다는 것으로 작대무(作隊舞)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리진 뭇동춤으로 이들의 동작선은 풍물굿 대형의 진법이나 강강술래를 연상케 하지요.

직선만이 아닌 원무, 윤무의 방식이었을 것이고 끝내 태극선을 그었을 것입니다.

 

 ②踏地低昻


땅에 발을 디디고 몸을 수그렸다 폈다하는 동작으로, 천지인이 하나가 되어 하늘을 지향하고 빛을

받아들이는 디딤새의 동작입니다.

 

무릎을 굴신하여, 오금을 죽이고 도듬새를 놓는 그것은 우리 춤의 중심동작입니다.

그러한 하체동작을 관장하는 곳은 하단전이며, 생명에너지의 중심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는 원()단전에 해당하는 회음혈인데, 이는 생식과 배설활동을 관장하는 자리

입니다.

그러한 하단전과 회음혈이 신체활동의 중심이 되어 상체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몸동작이 ‘답지저앙’

입니다.


말하자면 하체동작을 토대로 해 놓고 그 위에 상체동작을 얹어 몸짓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디딤새를 더욱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 ‘배김새’입니다.

그리고 그 디딤새의 모양은 ‘비정비팔(非丁非八)’입니다.

 

 ③手足相應


손발이 잘 맞는다는 것으로 여러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손발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은 무리진 사람들이 대형을 이루어 춤추는 모양이 자연스럽고 잘 어울려

든다는 뜻입니다.

저마다 제멋에 겨워 춤추면서도 호흡이 잘 맞는 뭇동춤으로서 그 협화의 자유분방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수족상응’이란 춤추는 사람마다 제각기 잘 춘다는 것입니다.

과연 배냇춤꾼으로서의 자질을 한껏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지금도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연변의 조선족은 어느 종족 못지않게 잘 추고, 잘 노는데, 그 옛날

그러한 내림이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 조금 독특하게 해석한다면, ‘수족상응’이란 오른손․오른발, 왼손․왼발이 상응하는 것으로

오른발이 나아가거나 들릴 때 오른손이 들리거나, 움직이고 왼발이 그러할 때 또 왼손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춤이란 것이 본래 일반적으로 걷는 일상 동작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민속춤의 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류의 깨끼춤과 일춤이 그러합니다. 가령 산대놀이의 깨끼 사위나 봉산탈춤의 외사위가 그러

하지요.

또한 경북지역의 일춤인 ‘몽두리춤’도 그러한데, 이러한 춤동작의 독특함이 저자(진수)가 아는 바

중국춤과는 다른 특이한 동작이었기에 기록까지 남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④節奏有似鐸舞


그 춤의 가락이 탁무와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탁무’는 중국 한나라, 위나라 때 추던 잡희로서 청산악

(淸産樂)의 하나라고 합니다. 나무나 쇠로된 방울을 들고 여럿이 무리져 춤추는 민속춤이지요.

중국의 장족에게는 아직도 탁무가 남아서 연행되고 있다고 합니다만 확인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마한의 계절굿에서 추던 춤은 과연 어떤 춤이었을까요? 어떤 이는 이를 ‘강강술래’로 보고 있으나

(이이화) 여러모로 따져볼만 합니다.

강강술래는 말 그대로 여인들이 강가에서 하는 술래잡기놀이입니다.

‘강강’은 호남의 남쪽해안지역에서 빙빙 도는 모양을 일컫는 독특한 말이라고 합니다.

‘술래’는 순라(巡邏)라고 하지요.


‘강강술래’는 물고 물리는 태극선의 모양으로 나선형을 이룹니다. 그것은 원초적인 세계로 들어감과

빠져 나옴이라는 우주 운행의 순행과정을 묘파하고 있는 춤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들어갈 때의 긴장감과 나올 때의 해방감이 있습니다.

맺고 풂, 긴장과 이완, 환희작약과 그늘짐이 2중교호적으로 펼쳐집니다.


‘강강술래’는 여인네가 흰 소복을 입고 달밤에 물가에서 태극의 회귀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낮이 아닌 밤에 그것도 달밤입니다. 불이 아닌 물로써 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 흰색이며 그리고

여인네의 춤입니다. 이처럼 여성적인 곤도(坤道)의 생생력이 극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강술래의 여성적 이미지는 남녀군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농경의례의 춤으로는 적합

하지 않다고 봅니다.

 

나무나 쇠로된 방울을 들고 추는 ‘탁무’와 엇비슷하다는 지적에서 우리는 풍물 소고춤을 연상하게

됩니다. 풍물을 앞세우고 이들을 뒤따라 열을 지어 춤추는 풍물굿(농악)의 현장을 어렵지 않게 떠올

릴 수 있습니다.

풍물굿은 본래부터 일놀이굿으로서 농경의례와 더불어 유구하게 전승되어온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

니다.

 

2. 한국춤의 원류를 찾아서

 

①덩실덩실, 너울너울

 

우리춤을 묘사하는 언어관행 중에는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이라는 의태어가 있습니다.

‘덩실덩실’, 어떤 동작을 두고 덩실덩실이라고 했을까요?  


춤추는 모습을 여실하게 하여 덩-,-실 하듯 음절을 각각 분절해 발음할 때에는 ‘덩’은 2, ‘실’은

1로 하는 삼분박으로 발음해야 합니다.

즉 이분박으로 춤추는 것이 아니라 삼분박으로 춤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덩실덩실’ 했을 때 춤추는 모양은 몸이 올라갔다가 내려앉는 상하운동 동작을 떠올릴 수 있습

니다.


‘덩실덩실’은 무릎의 굴신을 통하여 회음혈과 하단전이 이끌어내는 오금과 도듬새로써 온몸이 상하

운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상하운동만이 아니라 ‘덩실덩실’할 때 팔 동작이 좌우로 벌여지는 양상도 어감 상 느낄 수 있습

니다.


‘너울너울’은 상하보다는 팔동작이 좌우로 펼쳐져 수평적인 동작이 많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너울너울’도 몸이 상하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도 합니다.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이 다같이 상하운동이고 수평운동이지만은 ‘덩실덩실’에서 수직적인 운동감

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 ‘너울너울’에서는 수평적인 몸 움직임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수직적인 동작과 수평적인 동작이 서로 이중적 교호 관계에 놓여있지만 어떤 것은 수직적인

것에 더 강하게 가 있고, 어떤 것은 수평적인 것이 더 강하게 되어있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에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것입니다.

수직, 수평이 같이 어울려드는 조화롭고 균형관계에 있되 기우뚱하게 어느 한 쪽이 더 강하게 넘나

드는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상체와 하체가 서로 어울려드는, 말하자면 수족이 상응하는

모양을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이라는 용어 속에서 생각해 보게 되지요.


삼한시대에 제천의식을 살펴볼 때 춤 용어 속에 수족상응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수족상응’의 모습

이란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의 복합체가 아닐까요?

물론 그 토대는 ‘답지저앙’입니다. ‘답지’는 땅을 밟고, 땅에 발을 디디고 라는 뜻입니다.

‘저앙’이란 곧 무릎을 ‘굴’해서, 오금을 죽여서, 몸을 가라앉혀서 땅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 다음에

무릎을 펴서 도듬새를 하는 그런 하체 동작의 모양을 갖게 됩니다.

이와 함께 가슴을 펴서 중단전의 활동으로서 수족이 펴지면서 다음 동작이 얹혀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즉 하체를 토대로 해놓고 그 위에 상체를 얹어 가지고 몸짓을 하는 그런 양태입니다.

그것이 또 ‘덩실덩실’이고 ‘너울너울’입니다.

 

춤 움직임의 몸 부위를 이야기할 때 하체동작은 회음혈, 하단전의 활동이고, 상체 중심의 동작은

중단전, 상단전이 관장을 한다고 합니다.

4개의 단전이 동시에 같이 작동하는 예를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에서 우리는 육체적으로 알게 됩

니다. 그것은 오그리고 펼치는 것, 나고 드는 것, 오르내리고, 지펴서 발하는 수렴과 확산의 ‘2중교호적

얽힘’인 것입니다.


우리말에 신나고 신들리고 신오르고 신내리고 신지핀다는 말이 있지요.

‘나고 든다’는 수평이동으로 들락거린다는 것입니다. ‘오르내린다’는 상승과 하강, 수직동작이지요.

‘지핀다’는 불이 지피듯 속에서 타고 올라 바깥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소지가 됩니다.

신명이란 바로 그러합니다.

그것이 동학에서 얘기하는 ‘기화신령’입니다. 몸 안에 있는 신령스러운 존재인 한울님(內有神靈)

바깥으로 기화(外有氣化)함으로써 사람마다 본원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있는(一世

之人各知不移者也), ‘모심()’의 뜻과 발맞춰 있습니다.  


‘덩실덩실’, ‘너울너울’은 상하좌우, 수직과 수평, 사방, 팔방, 시방으로 에너지가 넘나드는 신명난

사람의 춤동작을 일컫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것이야말로 ‘弓弓乙乙’을 옆으로 눕힌 태극선의 모양이지요. ‘궁궁’은 조금 복잡한 단계의 것

으로 원이 3각점으로 돌아가는 삼태극이고, ‘을을’은 2각점으로 돌아가는 이태극입니다.


이태극과 삼태극의 모양으로 동작하는 춤사위의 것으로 ‘너울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너울질’은 파도치는 듯 엎어치듯 제치듯 만물을 출렁이게 하고 또 생성시키는 에너지원으로서 태극의

활동상입니다. 태극이 활동하고 있는 ‘너울질’의 이런 모습이 바로 ‘덩실덩실’이고 ‘너울너울’입니다.

 

우리춤은 생명의 근원에 맞닿아 있는 춤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춤, 하늘의 운행과 더불

어 같이 하는 춤입니다.

그러기에 사()이면서 ‘동사(同事)’입니다. 한편 공경하고 섬기면서도 파트너쉽으로 동무해서 더불어

세상일을 해나가는 것이지요.(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

그리고 그것은 원효의 대중교화처럼 수순중생(隨順衆生)이나 동사섭(同事攝)하는 것과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과 만나지 않는, 생명의 근원과 맞닿아져 있지 않는 춤은 우리춤의 진정한 의미를 포기

한 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것이 많이 훼손되고 변질되었다면 다시 회복되어야 마땅하

겠지요.  


‘회음혈-하단전-중단전-상단전’은 기가 움직이는 자리를 적은 것인데, 회음혈에서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으로 순차적으로 넘어가지 않고 건너뛴다는 것입니다.

회음혈에서 중단전으로, 다시 내려가서 하단전에서 상단전으로, 그리고 다시 회음혈로 내려가는

흐름이 바로 태극선의 라인이죠. 여기에 적합하게 맞추어서 추는 춤은 바로 ‘덩실덩실’, ‘너울너울’로

표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는 ‘덩실덩실’, ‘너울너울’,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몸의 반응대로 추는 춤은 어차피 이런 순서를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궁궁을을’, ‘태극’은 1860년 음력4511시에 수운 선생이 용담정에서 득도하면서 하늘의 뜻을

깨치고 형상을 얻었다는 신비체험의 이야기에서 따왔습니다.

그 때의 그 모양이 ‘궁궁을을’과 같고, 그 내용이 태극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우리춤의 일면을

한번 풀어 보았습니다.  

 

 ②맺고 풂

 

이는 ‘감고 푸는 것’과도 통하는데 끝없는 순환적 진화의 과정입니다.

한국전통춤의 한 특성은 선묘적인 것인데, 그것의 중심이 태극선의 선묘법(線描法)인 것이지요.

맺고 푸는 과정은 역()의 운행과정으로서 인생사의 매듭이자 고리이기도 합니다.

세시풍속도 그러합니다. 명절이란 삶의 반성과 전망이 교차되는 ‘날잡은 날’이고, 삶의 굴곡이 맺고

풀리는 날입니다.

맺고 푸는 것은 동작으로선 엎어지고 제치는 것이기도 하고, 하나의 춤으로서는 전체구성의 틀이

그러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긴장과 이완의 감정곡선을 일컫기도 합니다.

 

 ③발 디딤새로서의 비정비팔(比丁比八)과 배김새


‘비정비팔’은 흔히 ‘非丁非八’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원래 국궁(國弓)의 발 또는 하체의 자세를 일컫

는데, 말뜻대로 정자 모양도 팔자 모양도 아니거나 또는 정자 모양이면서 또 팔자 모양이 합쳐진 자세

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90도 각도의 날카로움과 120도 각도의 부드러움, 벌림과 오므림, 수렴과 확산 등의 ‘이중교

호적 얽힘’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는 국궁이라는 무술 동작의 엄정한 자세가 그대로 춤 동작의 자세임을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엉거주춤한 자세이지만, 바로 그러한 빈틈 많은 자세야말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과녁을 적중(的中)

하는 절대무비의 엄정한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춤도 그러한 디딤새인 것입니다. 솜씨좋은 목수가 대패질을 하는 자세도 비정비팔입니다.

숙련공은 그런 자세로, 춤추듯 일합니다. 마치 노는 것처럼 일하는 데에서 일하는 즐거움은 절로 솟아

나고 일의 능률은 최고로 오릅니다. 일의 자기 소외가 없습니다. 이를 보는 사람마저 절로 신명이 납

니다.


특히 이매방 춤의 발디딤새는 비정비팔의 디딤새가 정확, 무비하기로 이름나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의 자유자재로운 춤사위가 생겨납니다.


‘배김새’는 지신밟기나 매구굿(埋鬼)과 관련이 깊습니다. 남도의 굿거리춤인 덧배기의 중핵대목입

니다. ‘콱배기듯’ 앞발을 들어 지신을 밟듯 강하게 디뎌 놓고 두 팔을 양 옆구리에 부딪쳐 튕겨 나오듯

춤을 춥니다.

어르고 배기고 푸는 것은 배김새의 순차적인 진행입니다. 배김새는 ‘답지저앙’의 강력한 기운을 풀어

냅니다. 흥청대는 듯하나 강인한 돌파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④사방치기


‘사방치기’는 같은 동작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뿌려주는’ 것인데, 그것으로 사방신에게 제례 드리는

형식입니다. 춤판이나 놀이판을 벌일 때 맨 첫머리에 행하는 의식입니다.

이로써 천지만물에게 놀이를 고()하면서 땅다짐, 터벌임을 벌입니다.

삿되고 못된 잡것들, 갖은 액고들이 씻기어 정화되는 ‘판씻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춤판과

놀이판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거룩한 공간으로 바뀌고, 그곳에서 춤추고 노는 것은 거룩한 행위 곧,

일상의 성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판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풍물굿의 인사굿 대목이 그러하고, 탈춤의 벽사의식(辟邪儀式)

춤이 그러하고, 무당춤의 청신(請神)맞이 대목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적인 동작은 동작의 의미를 강화, 심화시켜주고, 의미는 이에 따라 적층됩니다.

마당이란 원형공간에서 이러한 ‘뿌림새’는 둘러앉은 관중에게 공동의 시각, 공유의 인식을 유도, 유발

케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이윽고 이러한 반복적인 동작은 사실과 일상세계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세계로 진입하여 황홀경

(ecstasy)에 빠져들게 합니다.  

 

 ⑤연풍대

 

한국 전통춤의 대부분이 종결부분에 가서는 연풍대 동작으로 이어져 끝을 맺습니다.

이 동작은 한 발을 껑충 뛰어 내디디며 팔사위를 뿌리고는 앉아 맴을 돌면서 일어납니다.

풍물소고춤의 장기인 자반뒤집기를 연상해도 좋습니다. 이는 좁게는 자전하면서 넓게는 공전하는

것이어서, 이 둘이 얽혀 있습니다.

이 또한 수렴과 확산의 ‘이중교호적인 얽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앞의 수많은 직선과 곡선의 동작들은 마지막 연풍대가 감싸도는 큰 틀 속에 품기어 자유로운 정착

감을 얻습니다.

이로써 유목적이면서 정착적인 세계로 진입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단한 회전춤, 윤무()이기에

끝마무리이면서도 끝나지 않아 기제(旣濟)이면서 미제(未濟)의 뜻을 아울러 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또 다시 순환적 진화인 셈이지요.

신명인 기화신령의 세계는 이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한 덩어리로 돌고 돌아 제자리에 와서는 또 새로

운 것이 되어 떠납니다.

(無往不) 원융적 세계이나 굴러 나아가는 이런 세계는 생성적 연기론의 세계입니다.

       


IV. ‘추어지다’

 

좋은 우리춤은 ‘춘다’라기보다는 ‘추어지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추어지다’는 수동태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저절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크게 꾸미지 않은 것이란 뜻이 있겠고, 그래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됩니다.

‘무위(無爲)’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자연이 그러하므로 그러그러하게 흘러서 되어

진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합일로서 자연이 운행되고 있는 모습을 닮은 상태의 것을

의미하지요.


‘무위(無爲)’적인 자연합일(自然合一)은 우리의 자연주의입니다. 그것은 무위는 무위이되 ‘인위적

무위’ 즉, ‘적극적인 무위’입니다. 추는데 추어지는 것으로 나아가 춤의 ‘없음’으로 ‘있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지요. 노경()의 세계가 그러할 것입니다.


‘사라지다’라고 하는 것은 형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살아가다’라는 말의 수동태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살아가다’라는 능동적인 것을 수동태로 하면 ‘살아지다’, 곧 ‘사라지다’라는 겁니다.

50대 후반을 맞이한 윤후명씨가 어떤 소설집을 냈는데 그 주제가 그러합니다.

삶의 근원적인 세계를 천착하는 소설인데 바로 ‘사라지다’라는 우리말을 근저로 해놓고 삶에 본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동형으로 살아감, 추어지는 춤처럼 사라지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춤을 추는데 추어지는 춤을 춘다는 말이 가능하다면, 사는 삶인데 사라지는 삶을 산다는 것도 가능하

겠지요.


‘왜 춤을 추는가’ 와 ‘왜 사는가’는 같은 질문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기에 춤추는 것이지요. 죽은 것은 춤출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살아있음’의 의미 폭만큼 춤의

의미 폭이 생겨납니다. 춤은 여지없이 삶의 자기충일이고, 삶의 궁극을 향한 끝없는 도정입니다.


미국 현대 춤의 대모라고 일컫는 마사 그라함은 절창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마디를 했습니다.

“내가 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춤이 나를 선택했다” 입니다.

이는 춤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춤의 ‘부름’에 이를 받잡고 그리된 것입니다.

지극한 경양의 자긍심입니다.

이렇게 해서 추는 춤은 ‘추어진다’라는 단순한 수동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저절로, 자기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자기 생긴 대로, 욕망하는바 제 마음대로, 제 멋대로

해도 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從心所欲不喩矩), 아무데도 거칠 것 없어 삶과 죽음에서 단번에

벗어난(無碍人 一道出生死), 진속일여(眞俗一如)의 인위적 무위의 경지이지요.



채희완/부산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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