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토의 예술존재론
[논문개요]
단토는 헤겔의 예술종말론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통해 예술의 역사를 예술의 안식적 진보로 규정하면서 , 이 역사는
예술이 자기지식을 획득함으로써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예술이 자기지식을 획득한다는 것은 예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한다는 것이며 , 이는 단순히 철학의
한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철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이 자기 자선에 대해 철학하자마자 예술은 자신의 진보의 역사의 종말에 이른다.
이러한 예술종말론에 대한 논의를 통해 단토는 예술이 철학화되었다는 점을 정식화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해서
예술의 “존재론”을 발전시키는데,
이 존재론은 예술작품을 예술이 가지는 ‘자기관계적 반성성’ 이라는 존재론적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감각적 형식일 뿐만 아니라, 이 형식이 지시하는 의미를 자체내 포함하는 자기관계적 존재로
이해 되어야 한다.
즉 예술작품은 지각 가능한 형식으로서 존재하긴 하지만, 동시에 이 형식은 항상 어떤 무엇에 대한 것임을 포함하고 있다. ‘자기 관계적 반성성 ’이 바로 예술의 본질적 구조를 형성하며 , 이것이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규범적 기준이다.
이것이 바로 단토의 예술에 대한 본질주의적 정의이다.
예술과 비예 술의 존재론적 차이는 바로 이들에 대한 반응의 질적 차이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질적 차이는 예술작품의 지각가능한 속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 술작품이 가지는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해서 발생한다.
어떤 사물이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모르는 경험자는 자기 앞에 있는 사물의 지각가능한 속성만을 기술한다.
하지만 이 사물이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아는 경험자는 이 사물의 지각가능한 속성을 토대로 가능한 의미영역을 찾기
시작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단토의 예술 “존재론”을 통해 그가 1960년대에 제시 한 ‘예술계’라는 개념이 디키의 제도처럼 단순히
예술외재적인 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존재론적 구조 속으로 내재 화될 수 었음을 보여줌으로써, 단토의
예술에 대한 논의를 반본질주의적 예술정의로 해석 하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예술계가 예술외재적인 요소로 머무른다면, 그리고 예술계가 어떤 사물을 예술작품으로 규정하는 근거로 기능한다면,
예술작품에 대한 본질주의적 정의 시도는 불가능하다.
이를 피 하기 위해 단토는 예술존재론이란 개념을 통해 예술계라는 요소를 예술작품에 내재적인 요소로 규정한다.
이를 통해 예술계는 외재적으로 예술작품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존재론적 구조속에 포함되어 았는 것
으로 간주될 수 있다
1. 예술 정의의 문제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는 예술철학이 시작된 이래로 예술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로 설정되어 왔다.
이 문제는 철학의 자명한 과제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고,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는 예술이 정의될 수 있다는 확신이
놓여 있었다.
이 확신이 깨어진 것은 캐롤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 개념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
예술이란 정의될 수 없다는 신-비트겐슈타인주의적 신념”이 힘을 얻게 된 이후의 일이다, l )
보통 예술의 정의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올바르게 사용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예술이란 개념 사용의 필요충분한 조건들이 제시될 수 있다면, 이를 정의의 대상인 예술에 대한 “하나의 완결
된 개념”2)이 제시되는 것이다.
와이츠는 이러 한 “완결된 개념”이 오직 논리학이나
1) Noel Gurol, “Introduction”, in: Theories of Aγt Today, ed. by Noel αrrol, η1e Universityof Wisconsin Press, 2000, 3쪽
2) Morris Weitz, “ Die Rolle der Theorie in der Asthetik”, in: Kunst μηd Kι찌tbegriff,hrsg. von Roland Bluhm, Reinold
Schmucker, Paderbom 2005, 45 쪽.단토의 예술 존재론 (조창오) 337
수학적 개념에만 해당할 수 있으며, 특히 예술과 같은 개념은 “완결된”개념이라기보다는 “열린” 개념으로 보아야 한
다고 주장한다.
와이츠는 예술 정의가 필연적 으로 “자기 당착”(reducrio ad absurdum)3)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예술은 끊임없는 자기 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정의란 예술을 어떤 틀 속에 가두는 것인데, 예술이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카는 형식이라면, 정의와 예술은 상호
배제적이다.
단토는 예술 정의의 문제 에서 ‘예술계’라는 개념으로 반본질주의자로 해석되 기도하고, 이와 반대로 본질주의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논문은 단토의 예술종말론 및 예술의 존재론 개념을 밝히면서 단토를 본질주의자로 해석하고자 한다.
단토는 예술종말론에 대한 논의를 통해 예술의 “존재론”을 발전시키는데 , 이 존재론은 예술이 가지는 ‘자기관계적
반성성’ 이라는 존재론적 구조를 설명한다.
‘자기관계적 반성성’이 바로 예술의 본질적 구조를 형성하며, 이 것 이 바로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규범적 기준이 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단토의 예술 존재론을 통해 그가 초기에 제시한 ‘예술계’ 라는 개념이 디키의 제도처럼 단순히 예술외
재적인 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존재론적 구조 속으로 내재화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단토의 예술에 대한
논의를 반본질주의적 예술정의로 해석하려 는 시도를 비판할 것 이다.
2. 단토의 예술종말론의 개념
1) 철학에 의한 예술의 규정 및 권리박탈
단토는 플라톤에 의한 예술 비판에서 예술에 대한 대표적인 억압적 정의를 발견한다.
플라톤은 교육을 위한 모방의 형식과 서술의 형식을 구별하면서 예술은 모방을 통해 그릇된 환상을 제작한다고 규정한다. 이 환상은 곧 지식이 아니라 믿음과 억측의 영역과 관계 하며, 따라서 예 술은 참된
3) Noel Carrol, 앞으1 글, 6쪽,
지식과 관계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지식을 오염시킨다.
그래서 플라톤은 예술을 국가에서 추방시키려 하는데, 이는 참된 교육에 방해물이될 것이 자병 하기 때문이다.4)
단토는 플라톤을 통해 철학이 자신의 안정적인 영역을 확보했다고 평가한다.
철학은 자신의 탄생에 있어 플라톤의 예술비판이 보여주는 것처럼 예술을 부정적인 것으로 비판하면서, 이러한 예술
과의 거리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다.
현실이 바로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예술이란 바로 현실을 그대로 모방한다는 점에서 그림자의 모방의 영역이며 ,
철학은 바로 현실 뒤에 놓여 있는 진리 자체 를 관조하려고 노력한다.
예술이 이처럼 철학의 수동적 대상이 되어 자선의 정의를 수용 했던 것을 단토는 “예술의 철학적 권리박탈”이라 부른다5)
예술에게서 자신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것은 예술을 하나의 자존적인 식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작업이 단토에 따르면 철학사에서 이루어진 철학에의한 예술 균정의 시도들이다.
이를 통해 예술은 자신이 가진 “예술적 마법”의 힘들을 잃어버리고,6) 철학이 자신에게 준 규정, 즉 현실 모방이라는 규정
속에 스스로 갇혀 버리게 된다.
단토에 따르면 철학은 자신의 역사를 통해 예술에게 부여하는 규정을 교묘히 변경시키면서 예술의 자존적 자유를 빼앗는다.
칸트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개념은 바로 실재와 현상이라는 플라톤적 구별의 정확히새로운 버전이라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예술은 무관심성의 형식이며, 따라서 현실 속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된다7).
철학이 인간적 관심의 영역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파악하고 이를 표현해 낸다면, 예술은 이러한 관심의 내용을 추상한채,
이를 단순히 칸트적 용어를 빌린다면, 상징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즉 표현해내려는 대상은 이성적 이념의 실재화인데, 이 이념을 감성적 형식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이 이념의 충실한
4) Arthur C. Danco, The phiι~ophic.ιJ diseηj싸ηchisement of Art, Columbia University Press,1986, 4쪽 야하.
5) 같은 책, 4쪽.
6) 같은 책, 25쪽.
7) 같은 책, 9-10쪽,
내용은 모두 사상된 채, 그것의 형식만을 표현해 낸다.8)
‘무관심성’의 형식으로 예술을 규정하는 시도는 쇼펜하우어 에게서도 발견된다.
예술은 뇌의 구성적 작동원리인 인과율의 세계 속에서 작용하지 않는다.
물론 의지의 작용에 의해 구성된 인과율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 자체가 아니며, “개별화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가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하나로서의 의지의 최종적인 “객관화”의 세계가 바로 "플라톤의 이념”9)으로, 이 세계는 바로 “도달되지 않는 모범
적 그림 들”,“사물들의 영원한 형상들”이며, 이들이 바로 예술적 형 식의 표현대상이다.1 0)
이로써 단토에 따르면 쇼펜하우어 의 예술은 현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버린다.
헤겔의 예술 규정 또한 그의 예술종말론을 제외한다면 - 이러한 전략의 연속선상에 서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헤겔 에 따르면 예술이란 철학에 의해 수통적인 방식으로 규정되는데 예술은 철학과 통일한 대상인 진리를 표현하려
하지만, 자선의 감각적 형식 때문에 이에 도달할 수가 없다, 11)
예술은 이렇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자신의 규정을 수용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오히려 철학이 스스로 설정한
과제를 도달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2) 단토의 헤겔 해석
단토는 헤겔의 예술종말론이 “역사적으로 참되 다”고 평가한다. 1 2) 그는
8) 같은 잭 30쪽 이 하. 참조· l ‘ Kant, Kγitik der Urteilskraft, Bei!age: Erste Einleitung zndie Kritik der Urtei!skraft Mit
Ein!eitungen und Bibliographie、hrsg. von H. F. Klemme,Mit Sachanmerkungen von P. Giordanetti, Hamburg 2006, 180-187쪽‘
9) A. Schoppenhauer, Dκ Welt ιh Wit.ι αχd Vorstel.싸ηg I, hrsg. von ludger l iitkehaus,Zurich 1999, 1 87쪽
10) A. Schoppenhauer, Die Welt 찌 Wzιe aηd VoγJteι. zmg I, 186쪽.
11) G.W.F. H똥:el、 Gesammelte Wt업&, Bd. 20 (=Eiη;ryklop젊1ie der phi!osophis따, n Wiss ens ch‘ct/tenim Grt“irisse (1830)), Unter Mitarbeit von Udo Rameil, hrsg‘ von WolfgangBonsiepen und Hans-Christian Lucas, Hamburg 1992, 549쪽
12) Arthur C. Danto, Die philosophische Eηtmu;ηdigzmg 따r Kunst, Milne[ :hen 1993, 12'쪽‘(독일판 서문)
헤겔의 예술종말론에 대한 비 판적 해석으로부터 자신의 예술철학을 체계적으로 구성한다.1 3)
단토가 헤겔 해석에서 가장 주목하는 논리는 바로 정신이 대상인식을 넘어 자기인식에 도달할 때, 자신의 최종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정선이 대상인식을 한다는 것은 정신이 주제로서 , 대상인 객체와의 분리 및 대립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리 및 대립적 상태 속에 있는 정신은 객체에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한하다.
이러한 유한한 형식 속에서 정신은 대상 인식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며, 이 인식의 진보가 바로 역사를 구성 하며, “역사는
자기의식 또는 자기지식의 출현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14)
예술은 철학이 동일하게 지향하논 바로 인식 적 진보의 완성이라논 목적에 먼저 도달한다.
인식적 진보란 주객 분리의 극복의 과정이며 , 주객 동일성이야 말로 이 진보의 끝이다.
만약 이 끝이 도달되면 역사는 종말에 이른다.15)
예술의 역사가 철학이 철학사에서 규정한 바대로 그림자의 모방이든 혹은 설재를 불완전하게 담아내는 감각적 표현의
역사라면, 아방가르드 예술은 이 역사를 종결시키는데, 왜냐하면 아방가르드 예술이 파고드는 문제의식은 바로 “예술
자신의 정체성 의 물음과의 씨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16)
단토가 즐겨드는 예인 뒤쌍의 『샘』은 바로 예술이 자기인식, 자기통일성에 도달한 역사적 종말의 순간을 기록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더 이상 예술이 이룩한 인식적 진보, 즉 대상 모방을 자선의 주제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진보의 역사
자체를 뛰어넘으면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는 자기 반성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다.
예술 자체가 스스로에게 순수한 사유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것, 즉 전통적으로 미적 경험에 속하논 정선의 감각적
표현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잃어
13) 단토의 혜 겔해석 에 관련해 다음 논문을 참조 방배 형 , 「단토의 헤겔주의 와 헤겔 미학의 현대성 」, r현대미술학
논문집』 제 14호(2010), 82-11 8쪽 이 논문에선 단토의 미래의 예술 다원주의와 헤 겔 해석 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고
였다.
14) Arthur C. Danco, The philos빼ica! 킹κnfrιηιhisiinent of Art, 107쪽,
15) Arthur C. Danto, The &찌'gur,짜% of the Cmnmoηrplace, Harvard University Press,1981, 56쪽 이하.
16) Arthur C. Danto, The philosophical 킹J쩍dιηchisement of Art, 110쪽.
버리고, 예 술작품이 오직 예술 자신에 대한 물음만을 표현한다면, 예술은 비로소 철학에 의해 부당하게 겪었던 경멸을
극복하게 된다.
예술은 대상표현에서 자기인식으로 뒤바뀌고, 이를 통해 스스로 철학이 되어버린다.
헤겔의 절대적 지식이 “개체와 주체의 분리”17)의 극복에 존립한다면, 철학은 아직 이 지식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의 예술”야 말로 유일하게 이를 완전히 극복했다.
“예술이 자신의 고유의 역사를 내면화하고, 우리 세 기에 일 어났던 것처럽, 자신의 역사를 의식하게 될 때 , 그래서
자신의 고유의 역사의 의식이 그의 본성에 속하게 될 때, 예술은 아마도 어쩔 수 없이 마침내 철학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이제 예술은 사실상 아주 결정적 의미에서 하나의 종말에 도달한 셈이 다.”1 8)
예술은 스스로 철학이 됨으로써, 철학이 전통적 으로 자선에게 가했던 지배적 전략을 폭로한다.
단토에 따르면 헤겔은 한편으로는 철학이 표현하고자하는 내용을 불완전하게 표현한다는 지배적인 철학의 예술 규정을
그대로 반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술이 철학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모든 철학적 전략, “예술의 철학적
권리 박탈”이 모두 거짓임을 분명히 한다.
예술의 철학화를 통해 오히려 철학은 철학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철학은 다름 아닌 “예술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폭로 되기 때문이다.
“예술을 철학의 변형된 형태로 파악히는 역사적 존재의 철학은 철학을 예술의 변형으로 폭로하고, 여기에 바로 헤겔
이론의 위대한 역설이 존재한다‘”19)
결국 이 “위대한 역설”에 따르면 철학은 예술에게 한정된 자리를 마련하여 자신의 지위를 고수했지만,
이는 결국 철학 자신의 결점을 가리기
17) 같은 책, 11 3쪽,
18) 같은 책, 1 6쪽.
19) 같은 책, 1 7쪽,
위한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술이야 말로 철학화됨으로써, 오히려 철학이 독점적으로 강요한 진리인식 요구의 허상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과 철학의 경계가 사라짐에 따라 철학이 예술에게 지정한 “무관심성”, 혹은 현실 속에서 아무런 ‘영향 없음’의
규정이 사라지게 되고, 오히려 예술이 현실에 대해 “위험하다”는 점이 드러나게 된다.
단토의 예술의 종언 테제에 대한 핵심적 해석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예술은 자신의 종말에 도달했는데, 왜냐하면 예술이 자신을 철학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예술이 자신을 인식하는 한, 예술에게는 더이상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이 자신의 정의의 문제와 씨름하자마자, 철학과 예술간의 경계가 사라진 이유는 단토에 따르면 예술과 철학이
근본적으로 실재에 대한 서술, 즉 이 실재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재에 대한 태 도/ 해석을 표현하는 것에서, 즉 대상인식을 주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실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며, 결국 서로 구별되지 않기 때 문이다.20)
단토는 ‘예술이 철학으로 지양된다’는 헤겔의 표현2 1)을 뒤샹의 '샘' 이라는 작품을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이 표현은 통상적으로 해석되듯이, 예술은 철학과 동일한 내용을 표현하려 하지만 스스로가 가지는 감각적 표현형식
때문에 항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최상의 진리표현은 철학만이 해낼 수 았다는 식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단토의 강력한 주장이다.
오히려 이 표현은 ‘예술은 스스로를 철학으로 지양시킨다.’고 해석 되어야 한다.
앞의 해석에서 예 술은 철학에 의해 지 배되 고,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대상에 불과하다면, 뒤의 해석 에서 예술은 하나의
능동적인 주체로 표현된다.
바로 예술은 스스로를 철학화함으로써, 철학에 의해 지배되는 역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다는 것이 바로 단토가
헤겔의 예술종말론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핵심이다.
20) Arthur C. Danto,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83쪽.
21) G.W.F‘ Hegel, Enzyk!opadie tier phi!osophischen Wissensch에en im Grudrisse (l 830),549, 554쪽.
3) 예술종말론의 결과
단토에 따르면 예술이 스스로를 철학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예술은 더이상 어떠한 역사적 진보의 필연성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이 역사 자체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
전체 역사는 바로 예술의 자기인식 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며, 이 토대 위에서 예 술은 철학으로 바캠으로써 , 자신을
탈역사화한다.
탈역사화된 예술은 더 이상 “끊임없는 혁명 의 필연성” 속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예술의 해방을 위해 이러한 “끊임없는 혁명”의 실험을 감행했고, 이를 통해 예술의 진보적 역사의
종말을 가져왔다.22)
탈역 사적 시대에 예술은 “인간적 욕구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23)
즉 예술의 자럽적 고유성이 그 자체로 발전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예술이 진정으로 향하고 있는 “인간적 욕구”를 충실히 표현하면서, 예술은 자신의 진정성을 회복하게 될 것 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의 종말이란 표현은 이미 예술의 진보적, 선형적인 역사를 전제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토는 우선 예술사를 설명하는 세 가지 모델을 제안한다.
하나는 모방론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론, 마지막으로는 “예술종말론” 모델이다,
모방론에 따르면 예술사를 일정한 정도의 묘사의 정확성의 진보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모방론으로 전체 예술사를 포괄할 수 없다.는 데에 놓여 있다.
특히 20세기에 존재했던 수많은 예술운동들, “야수파, 입체파, 미래 주의 , 소용돌이파, 동시파, 추상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표현주의, 추상적 표현주의, ,.신표현주의” 등은 이두 모델 중 모방론 보다는 표현론으로 설명해야 적합하다. 24)
감정의 “표현”으로 예술을 규정 하는 표현론 모텔은 회화보다는 문학과 음악에 대해 더 적합한 측면이 있으며, 선형적인
역사를 구성하는 데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예술을 감정의 표현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것은 이 감정의 원천인 개별 예술가들의 개별적 상태가 중요한 것
22) Arthur C. Danto, The philosophiιιl α'is infraηιhisirneηt of Art, XV쪽.
23) 같은 곳,
24) 같은 책, 108쪽.
이고, 이 들 개별 예술가들 사이에 는 어떠한 연속적 이 고도 선형적인 서사도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25)
이러한 “예술사”의 두 모텔 인 모방론과 표현론에 대해 단토는 자신의 ‘예술종말론’ 모텔을 대비시킨다.26)
이 모탤은 예술의 진보의 역사를 예술 자체 내에 숨겨진 요소, 즉 예술의 자기인식의 정도의 증가의 역사로 해석한다.
예술은 역사속에서 많은 형태화의 시 도를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 인식 에 도달하려고 노력 한다. 27)
그래서 단토에 따르면 예술은 세 단계 를 거치게 된다. 28)
첫 번째 단계 는
예술이 자기인식에 도달하려고 인식의 진보를 꾀한 시기, 즉 예술사이며,
두 번째 단계는 예술의 “끊임 없는 혁명”의 시기, 즉 예술이 자기인식에 도달한 시가이며,
마지막 단계가 바로 “탈역사적인” 시기로, 예술은 역사의 인식적 진보라는 궁극목적을 이미 달성했다.
그래서 예술에게는 어떠한 목적도 주어지지 않으며, 다시말해 예술은 어떠한 목적을 꾀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예술은 인식적 진보의 역사의 종말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 자체 가 종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예술은 “탈역사적 ”이 된다.
즉 자신이 진보의 역사속에서 이룩한 모든 형식 과 내용의 총체 성은 미래의 생산의 원천이 된다.
바로 “탈역사적 ” 예술은 “과거의 생동성의 영향”아래 계속 생 산된다. 29)
예 술계 속에서는 어 한 새로움도 나오질 않는다.
25) 같은 책, 105쪽 이하,
26) 즉 단토에 게 모방론과 예술종말론과는 직접적얀 관계 가 없다 오히려 모방론은 “예술의 철학적 권라박탈”의
기획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모방이 완성되어 예술이 종말에 이르렀다는 관점은 단토가 아나라 벨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벨링의 예술종언론에 대해선, 최병 길, 「벨 팅의 예술종언론과 현대미술의 기술 방법」,『통서 철학연구』 제 5 8호
(2010), 69-97쪽.
27) 같은 책, 204쪽 이 하,
28) 이러한 “예술시대 (Era of Art)'’의 세 단계 구분에 대해서 는 다음에서도 동일하게 시도되고 있다;
박이문,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마술사」, 『마술사학보』, 제 27 집 (2006), 20쪽 이 논문은 “예술시 대 이전의 예술”, “예술시대의 예 술”, “예술시대 이 후의 예술”로 구분한다‘ 다만 첫 번째 단계 인 “예술시대 이전의 예술”에서 예술이
자신에 대한 의 을 확고히 가지고 있지않다는 점만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보다는 오히려 예술이 자신의 정의에 있어
철학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단계로 보는게 더 구체적 이라고 할 수 있다‘
29) Arthur C. Danto, The phi!osophil찌 ιzsenfraηchisement of Art, 83쪽 (“ the aftershock ofa vanished vit와ity”
왜냐하면 “예술의 개념은 이마 내적으로 모두 소진 되었기 때문이다.”30)
3. 단토의 예술존재론
1) 예술의 역사성
단토는 헤겔처럼 예술 정의의 문제를 단순히 초시간적 인 문제로 다루지 않고 예술의 역사성의 문제와 연관시킨다.31)
예술의 역사성에는 세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이 세 단계에 따라 예술은 자신의 고유한 정의를 특수한 방식으로 얻게 된다.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예술의 진보적 역사의 단계로서, 여기서 예술은 철학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의된다.
두 번째 단계는 예술이 종말에 이른 시점이자 모더 니즘의 단계로,32) 이때부터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가 붕괴되고,
새로운 정의 시도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 루어 진다.
세 번째 단계는 바로 탈역사적 시기 로서, 이 전시기 까지는 적어도 철학적 사유에 의해 예술이 규정되었다고 한다면,
이 시기엔 예술이 스스로 “사유” 지점을 점유하고 이를 추동시킨다.
예술이 도달한 “사유”의 지점은 바로 “역사 바깥에” 놓여 있으며, 이 역사 바깥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제껏
철학이 예술에 대해 시도한 무수한 정의들을 아우르
30) 같은 책, 84쪽,
31) 단토에게서의 예술 및 예술 정의의 역사성에 대한 강조를 엿볼 수 있는 논문으로는 이성훈, 「<브릴로 박스>는
예술의 종말을 선호하는가〉 -앤다 워홀과 단토의헤 겔주의 J , 『미 학·예술학연구』 16(2002), 15 7 184쪽‘
32) Arthur C. Danco, After the Eηd of Art.’ @ηteiψoraη/ Art ιηd Pαle of History, PrmcetonUniversity Press, 1997, 29쪽.
33) 앤디 워홀의 1964년 <브렬로 상자> 전시회를 끝으로 이 두 번째 단계가 종결을 맞이한다‘ 장민한, 「아서 단토의 미술종말론과 그 근거로서 팝아트의 두 가지 함의」,『현대마술사연구』 제 17집(2006), 7 5-96쪽
34) Arthur C. Danro, The Tηzη찌urι, tioη of the commoηiplaα, 209쪽,
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예술이 펼치게 될 다양한 현상방식 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예술의 일반적 정의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35)
이러한 “예술의 일반적 정의”는 “완결된 이론”으로서, 모든 단계 속에 있는 예술작품들에 대해 포괄적 으로 타당한 ‘완결성’을 지니면서도, 앞으로 나올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개방성’을 지녀야한다.
이처럼 예술의 정의의 문제와 예술의 역사성, 즉 예술사에 대한 모델사이에는 “내적인 연관”이 존재한다.6)
예술사의 첫 단계에는 예술이 자신의 “안식적 진보”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예술에겐 일정한 목적이 존재하고, 따라서
예술적 다원론이나 “상대주의 ”가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적 “상대주의”가 가능해진 지점은 바로 예술이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씨름한 이후의 단계,
즉 세 번째 단계이다. 37)
2) 예술에 대한 본질주의적 정의
단토는 자신의 예술 정의를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항목을 제안한다.
첫째로 예술작품은 어떤 것 에 관한 것(about)이다. 두 번째로 예술작품은 자신의 의미 를 체화해야만(embody) 한다.8)
워홀의 『브렬로 박스』를 예로 들자면, 이 작품과 실제로 시장에서 구입 할 수 있는 브릴로 박스 사이에는 어떠한 지각
적 구별가능성도 허용하지 않는다. 39)
즉 예술작품으로서의 『브릴로 박스』가 표현하는 형식 과 상품
35) 같은 곳 .이 Arthur C. Danto, The phi/osophi,띠l disenfranchisement of Aγt, 106쪽2 .
37) 같은 곳,
38) Arthur C. Danto, “Art and Meaning”, in: Theoηes of Art Today, ed. by Noel Carrol,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2000, 132쪽
39) 물론 워홀의 브럴로 박스와 시 장에 서 구할 수 있는 브릴로 박스는 공간적 배치나 시간적 지속성 이나 기타 여러 관점
에서 구별될 수 있겠지만, (김 백균, 「단토의 ‘철학하는 예 술’ 개 념 에 대한 비 판적 고찰」, 『미술이론과 현장』 제 10호
(2010),191-192쪽 참조, 이 논문에 션 뒤상의 『샘』과 소변기 사이 의 지각적 차이를 강조하고있다.)
모더니즘 예술은 이러한 구별가능성을 끊엠없이 제 거하려는 설험을 감행 할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침내 예술작품과
상품 사이의 어 떠한 지각적 차이도 제거
으로서의 브렬로 박스가 표현하는 형식은 동일 하다.
이 두 형식은 동일한 지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는 앤더슨을 따라 예술 정의를 “인식론적” 기획 과 “형이상학적”기획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인식론적” 기획에 따른 예술정의는 “정의의 핵심이 예술 판별이라는 실천적 문제를 의마한다.”40)는 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식론적인 예술정의는 예술과 비예 술을 구별 하기 위한 기술적(descriptive) 조건을 자신의 핵심으로 삼는다.
-여기서 예술의 정의는 예술을 판별하기 위한 “인식론적 ”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에 반해 “형이상학적” 기획은 예술정의를 예술과 바예술을 구별하는 실천적인 문제로 파악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술
작품의 존재론을 기획하고, 이것의 존재론적 속성을 통해 예술과 비예술의 구별을 설명한다.
단토에 따르면 예술작품인 『브릴로 박스』와 실제 상품인 브랄로 박스를 구별 할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을 줄 수 있는
예술정의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단토는 예술정의를 형이상학적 기획의 문제로 파악한다.
즉 정의는 바로 “예술작품과 비예술적 대응물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의 물음”과 관계하며 ,41) “존재론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지각적으로는 구별불가능한 대립물들을 구성 할 수 있는 원칙”을 제공해야만 한다.2)
이러한 존재적 차원에 대한 “지식”이야 말로 바로 질적 차이를 보이는 경험을 낳게 된다,43)
단토에 따르면 예술작품으로서의 『브랄로 박스』는 단순히 지각적 체힘을 위한 감각적 사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반성적 ” 대상, 즉 자신이 표현하고 있는 감각적 형식과 더불어 이 형식에 무언가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 고 있다
( aboutness). 상품으로서의 브릴로 박스는 단순히 자신이 겉면에서 표현하는 내용 자체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예술작품으로서의 『브랄로 박스』는 상품이 가지는 동일한 감각적 형태와 내용에 대해 특정한 의미 를 덧붙이고 있다.
이 박스는 자기 자신(표현된 형식)할 수 있는 지점 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가정 할 수 있다.
40) James C. Anderson, “Aesthetic Concepts of Art”, in: Theeηes of Art Today, 67쪽‘
4 1) Arthur C. Danto, The Traη뺑uraαoη of the wmrnonplace, 42쪽,
42) 같은 책, 6 1 쪽,
43) 같은 책, 91쪽,
에 대해 반성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미)를 관계 시키는, 즉 ‘자기 관계적 ’존재이다. 『브릴로 박스』는 단순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색상을 가진박스입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면 단순히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박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박스에 대해 다른 ‘의미’를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다.
즉 브릴로 박스가 단순히 지각되는 형식에 불과하다면,『브랄로 박스』는 이 형식에 대 해 ‘의미’를 가진다.
즉 이 작품은 이 형식이 ‘의미’를 지시한다.
하지만 이 의미는 작품 속에 내재한다는 의미에서, 작품은 자기 지시적이자 반성적이 다.
우리는 이 박스를 보면서, 감각적 사물얀 박스가 어떤 무엇(의미)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이 미 감상 이전에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작품을 작품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브랄로 박스와 『브릴로 박스」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단토는 “미적”(aesthetic) 경험과 “예술적”(arstistic) 경험을 구별하논데,
전자가 감각적 지각이라면, 후자는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경험하는 것을 가리킨다.6)
우리가 지각적으로 구별불가능한 대 상들을 앞에 두고 있을 때, 미적 경험은 이 대상의 감각적 형식을 그 대상으로
하는 지각 경험 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적 경험과 질적인 차이를 가지는 “예술적 ” 경험은 대상들의 감각적 형식이 담고 있는 “의미”(meaning, aboutness)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예술적 경험은 작품을 작품으로 사유해야만 한다.
즉 작품이 보여주는건 감각적 형식뿐만 아니라, 이 형식이 어떤 의미에 대한 것 이
44) 단토의 예 술종말론에서 예술작품의 ‘반성성 ’이라는 본질적 특정을 강조한 논문은 극히 찾아보기 힘들며, 이를 아예
논의에서 제외한 논문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김석진, r 단토의 예술종말론에 관한 고찰」, 『현대사진영상학회 논문집』 7권(2004),109-165쪽4이 Arth1、llf c. I] anto, The Transfigttration of the commonplace, 14쪽2 ‘
46) 하지만 단토는 또한 “미적”이라는 표현과 “예술적”이란 표현을 혼동하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토에게 “감각경험”과 “예술적” 경험은 구별된다는 점 이다- 이에 대한 포팔적 설명으로 Martin Seel, “Two Comments on
Arthur C.Danto’s after the End of Art”, in: Histoη ιnd Theory, Vol. 37, No. 4, Theme Issue37: Danto and His Critics: Art History, Historiography and After the End of Art(Dec., 1998), 102-114쪽
라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이 이해를 통해 예술작품은 스스로를 자기관계적 반성적 존재로서 드러낸다.47)
예술의 자기관계적 반성성이라는 본질적 특정을 통해 우리는 단토가1964년에 제안했던 “예술계” 개념 이 48) 단순히
예술외재적 요소로 해석될 여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안 당시 이 개념은 당연히 예술외재적인 요소로 해석되었으며, 디키의 제도론과 아울러 대표적인 예술의 반본질주의
적 정의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50) 하지만 단토는자신의 ‘예술계’ 개념이 가지 는 예술외재성을 극복하고,51 ) 모든 예술
현상을 예술 내재성의 영역으로부터 설벙하기 위한 기획을 시작하게 되는데 ,
47) 예술작품을 하나의 자기관계적 존재로 간주하는 단토의 입장은 수용미학적 입장과구별될 수 있다.
수용미학적 입장이 의미가 없는 텍스트에 의미를 ‘부과’하는 것이고, 따라서 의미는 외재적이며, 이는 해석을 통해 부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단토의 입장은 오히려 이러한 부과주의적인 해석이론과 달리 ,
이마 예술작품 자체내에 해석의 여러 가능성들이 내재적 인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해석은 작품내에 았는 여러 가능성들 중 하나를 발견하는 작엽이며, 따라서 해석아란 작품 외적인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 자체의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점에서 단토의 입장은 마골리스의 ‘기술’과 ‘해석’의 분리불가능성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마골리스에 따르면 해석은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내재적 가치의 기술과 통일하다 이에 대해선 Joseph
Margolis, ‘"The Devi때t Ontologyof Artworks”, in: Theories of Art Today, 109-1 29쪽 참조
48) Arthur C. Danto, “The Artworld,” The journal of philosophy, Vol. 61, No. 19, 1964‘
49) 이렇게 ‘예술종말론’과 ‘예술거l ’ 개 념간의 밀접한 관련에 주목하지 않는 논문들 중 한 예가 바로 장민한, 「미술비평
에 서 ‘예술계’의 역할 아서 단토의 이론을 중심으로」, 『미학』 제 55 집 (2008), 119-147쪽.
50) 한 예만 든다변, 김동일, 「단토와 부르디외’ ‘예술계’(artworld) 개념에 대 한 두 개의시선」, 『문화와 사회』 제6권
(2009), 107-159쪽 참조 김통일은 “원전성이 란, 예술의본질을 예술의 영역 내부에 두려는 모든 시도틀을 의미한다.” (108쪽)고 주장하면서“단토의 예술계 개념은 지금까지 규정된 원전성의 근거에 외재하변서도, 예술작품의규정의 결정적인 순간에 외부적 이해와 평가를 정당한 방식으로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라고 평가하는데 , ( 109쪽) 이 해석은 단토의
예술 “존재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 롯된 것이다
51) 단토는 뒤양의 r생」 작품을 예로 들면서 자신 의 ‘예술계 ’ 개념을 디키의 제도론과 구별한다- 제도론은 단순히 예술
작품의 본질적 속성을 단순히 제도의 위력에 의한것이라고 간주하지만, 단토에 따르면 일반 소변기가 『샘 』으로 변용
되는 것은 존재론적 변화이다. 즉 r샘』은 일반 소변기가 가지지 못하는 “속성들”을 가진다 이에 대해선 Arthur C. Danto, The Tr.ιη띠gιrιtioη of the ιommoφlace , 90-114쪽,
그 핵심이 바로 1980년 말부터 제기하기 시작한 ‘예술종말론’이자, 이로부터 추론된 예술작품의 “존재론”인 셈이다
예술은 자신이 표현하는 감각적 형식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형식 뒤에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는 예술의 “존재론”
은 바로 단토가 ‘ 예술종말론’을 도입한 이후에나 가능해진 논의이다.
예술작품은 자신의 자기관계적 반성성을 통해 비-예술작품과 “존재론적으로” 구별된다 ‘의미’는 예술작품이 자신의 감각적 형식을 통해 표현하는 내용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예술작품을 감각적 형식과 함께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껏 예술
작품 외재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제도’라든지, ‘ 예술계’, ‘예술이론’등도 예술작품 내재적인 것으로 뒤바뀌게 된다.
즉 예술의 “존재론”의 구조 속에는 예술작품의 감각적 형태뿐만 아니라 ‘ 예술계’ , ‘예술 이론’,‘예술비 평’ 등이 모두 포함
된다.
이러한 예 술작품의 존재론은 예 술종말론과 결합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술종말론이 바로 단토의 이러한 예술존재론을 가능케 한다.
예술이 종말에 이르렀기 때문에 예술은 자가관계적 반성성이라는 존재론적 속성 을 스스로 선언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존재론적 속성은 예술과 비예술을 실천적으로 구별/ 식 별하는 기준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명확히 해 준다.
이 존재론적 속성의 특정은 예술을 한편으로는 비예술과 구별한다는 점에서 규범적이면서 , 다른 한편으로 예술의 앞으로의 계속적인 실험과 시도를 모두 포괄하는 개방적이 다.
존재론적 차이는 대상에 대한 반응의 질적 차이를 가능케 한다.
단순한 사물은 “감각경험”을 낳게 지 만, 예술작품은 “예술적” 경험을 가능케한다.’2)
52) 젤은 와이츠의 논점, 즉 예술에 대한 기준제시의 폐쇄성과 예술이 가지는 개방성의 모순점을 그대로 단토의 정의시도
에 적용한다.
이를 통해 젤은 단토의 예술개념은 본질주의 적 정의에 해당하지 않으며 , 오히려 세계와의 새로운 만남의 방식을 제공
한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적얀 정의를 제시 한 것 이라는 의견을 제시 한다- (Martin Seel,“Two Comments on Arthur C. Danto’s after the End of Art”, 11 2쪽 이하) 하지만 단토의 예술정 의의 특정은 바로 ‘완결성 ’과 ‘개방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
에 놓여 있다
4. 나오는글
단토가 제시하는 ‘예술종말론’ 이 맞다면, 앞으로의 예술작품은 이제 어떤 외관을 가져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어떠한 외관도 새로운 형태 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형식 실험은 모두 예술사 속에서 이루어져 있고, 이미 예술은 이러한 형식 실험 바깥에서 자기 자신 에 대해
질문했기 때문에, 개념적인 큰거에서 예술은 ‘새로운’ 형식 실험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가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관계적 반성성’이 라는 존재론적 구조를 가지는 예술에게 더 이상 형식의 ‘새로움’은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 자신이 표현하는 ‘의미’가 중요하며, 이에 반해 이 의미의 담지자로서 형식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잃어
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단토는 이제 마래에 시도될 여러 가지 예술적 (매체를 포함한)형식 실험이 모두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한 것은 아닌가〉 호로비츠에 따르면 예술이 획 득한 자유 때문에 “우리는 의미의 체화 능력을 상실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단토는 지각적 형식과 의미를 완전히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은 오히려 “예술의 자유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우리는 단토의 예술 “존재론”에서 의마는 반드시 체화되어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해야만 한다.
체화된 의미는 단순한 “재현들”과는 다르다.
의미는 체화되어야 하며, 따라서 이를 위한 미적 형식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단토에게 ‘의미’의 차원과 ‘ 형식’ 혹은 ‘내용’의 차원은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필수요소이다.
이 둘 중 어느 하나에만 강조점이 주어지게 된다면 예술은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단토는 미적 형식이 어떠한 역사적 진보의 필연성의 구속 아래 있지 않으며, 의미는 이러한 형식적 구속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점을
5 3) Gregg M. Horowitz, “Form und Geschicht in “ After the End of Art””, in: DeutscheZeitscb.캠 fiir Phi!os빼ie, Berlin 45 (1997) 5, 759-763쪽.
강조한다.
그렇다고 단토가 미적 형식의 자의성을 강조하는 것일까?54)
즉 의미는 사유의 영역에 속하고, 이것을 위해서 는 어떠한 미적 형식도 가능하기 때문에 미적 형식과 ‘ 의미’의 관계는
자의 적이 되어 버리는가?
물론 브릴로 박스의 예는 우리에게 의마와 미적 형식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상품으로서의 브랄로 박스가 있고, 워 홀의 『브릴로 박스』가 있으며, 이 워홀의 박스를 그대로 따라 만든 비들로의
『브릴로 박스」가 있다.55)
이들 모두는 지 각적으로 구별 불가능하지 만, 어떤 것 에 대한 것인지는 의미론적 차원에서 구별 할 수 있다.
워 홀의 박스는 상품에 ‘대한’것이고, 비들로의 박스는 워홀의 박스에 ‘대한’ 것이다.
‘의미’가 이러한 반성적 대상과의 연관 속에 존재 한다면, 의미와 반성적 대상은 긴밀한 연관 속에 묶여 있다는 것이 분명
하다.
즉 의미는 무엇에 ‘대한’ 것이고, 이러한 반성적 구조 때문에 의미는 이 ‘무엇’에 의존적 이다.
우리는 이러 한 두 가지 비 판점 으로부터 예 술의 존재 론을 구성 하는 두 축인 ‘의미’와 ‘내용’ (혹은 감각적 형태)이 동등한 위치에 았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한다.
‘의미’는 ‘내용’에 대한 것이고, 따라서 ‘의미 ’는 내용의‘특수성’에 대해 존재한다.
‘내 용’은 그 자체로는 일반사물의 ‘내용’ 과 지각적으로 구별불가능하기 때문에 ‘ 의미’를 통해 ‘ 변용’된다.
우리가 이 두요소의 균형 점과 상호의존성 (즉 예술의 ‘자기관계 성’)을 강조할 때 , 비로소 단토가 제기한 예술 존재론에
대한 균형 있는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단토에 따르면 우리는 예술감상을 위해선 어떤 사물이 예술작품이 라논‘지식’을 전제해야 한다.
이 지 식을 우리는 일반적 으로 예술이론이나 예술관습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작품으로 인식하고, 작품의 존재 론을 구성 하는 이는 예술이 론가일 것이다‘
예술이론가의 선행 작업이 없다면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으로 인식도 될 수 없고, 그것으로 기능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 술이론가가 작품을 작품으로 인식하는 규범적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문제 는 ‘예술작품의 ‘존재 론’ 이 먼저 존재하고, 이를 예술
54) 이러한 마적 형 식 의 사소함, 자의성 이 바로 젤의 비판점 이다 Marrin Seel, “TwoCornmems on Arthur C. Danto’s after the End of Art”, 104쪽 이후.
55) 이 예의 출처는 Arthur C. Dama, “Art and Meaning""'1l 서 나온다.
이론가가 후행적으로 기술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이론가의 균정 작업이 먼저 선행되어야 예술작품의 ‘존재론’이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의 문제다.
이 문제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반드시 해명되어야 할 문제이다.
만약 단토가 본질주의자라면 예술작품의 ‘존재 론’이 먼저 존재하고, 예술이론가의 작업은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의 해명을 후속 논문의 과제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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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의 예술 존재론 (조창오) 355
(Abstract)
The Ontology of Art of Danto
Cho, Chang-oh
Danto determines the history of art as the cognitive advance of artthrough critical interpretation of Hegel’s thesis of the end of art. Thishistory comes to the end, as the art acquires his self」knowledge. That artacquires his self-knowledge, means that it asks itself about it’s identity; itdoen’t remain a object of the philosophy, but philosophizes about itself. Assoon as it philosophizes, it comes to the end of the history of the cognitiveadvance.
With the concept of the end of art Danto theorizes philosophizing of art,by which he develops the ontology of art, whi[ h explains an artwork withthe ontological structure of ‘self-related reflectivity of art'. An Artwork hasto be understood not as merely sensible form, but as self-referentiell exsistencewhich entails the meaning in itself which it’s sensible form refer to; anartwork remains in it’s sensible form, which entails it’s aboumess.
This self-related reflectivity of art is the essence of art und the normativecriterion, by which art and non-art are distinguishable. This is Danto’sessentialist definition of art. The ontological difference between art andnon-art causes the qualitive difference of response to art and to non-art.This qualitive difference of response doesn’t depend on perceivable attributesof artwork, but on knowledge about the ontological structure of art.
Whoever doesn’t know that a thing, which is perceived, is not an artwork,describes it’s perceivable attributes. But whoever know that a thing is anartwork, begins to find it’s aboutness over it’s perceivable attributes.
This study criticizes attempts to interpret Danto’s definition of art as ananti essentialist, by arguing, that the concept of ‘ artworld’, which wasproposed by Danto in the 1960's, is unlike Dickie’s institution, not anart-external framework, but it can be internalized in the ontologicalstructure of art. If the artworld were art-external and would function asbasic ground determining a thing as an artwork, attempt to define artessentially were impossible. To escape form this, Danto determines artworldas artwork-internal through the concept of the ontology of artwork.
Artworld doesn’t determine artworld externally, but it can be regarded asinternalized in the ontological structure of artwork.
* Key Words: The End of Art, Ontology of Art, Definition of Art,Danto, Self-Related Reflectivity
大韓哲學會論文集
r哲學liJf究j 第136輯, 2015. 11
조 창 오(울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