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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 향가

현대판 이두 비문 해독 - 안강 근계리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4.11.18|조회수101 목록 댓글 0

 

 

현대판 이두 비문 해독(안강 전투 전사자 위령비문)-안강 근계리 

 

경북 경주시 안강 근계리 입불상을 접견하기 위해 찾은 근계리 암자와 같은 사찰인 용운사 뒷편 입불상

뒷편 야트막한 언덕에 비수가 이상야릇한 모양의 한기의 비가 서있었다.

별반 신경을 쓸 겨를 도 없었다. 근계리 입불상(통일신라시대불상)을 친견하기 위해 왔기에, 관심밖의

비였다. 하지만 비수에 선명하게 새겨놓은 태극기 문양이 애사롭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고.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주지 스님이 황급히 달려와서, 4면 중 3면에 새겨져

있는 문자를 해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정면은 정격한자체로 쓰여진 한문이었고, 측면은 主가 한글이었고 간혹 한자가 사용되어있다.

한글 혼용 한자에 대해 표의식으로 읽어보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주지스님도 자기도 잘 알 없기에 꼭 연구하여 정확한 뜻을 알려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비 제작 년도가 받침대 아래 새겨져 있었다.

단기 4283년(1950년) 음력 7월7일(칠석날)에 안강전투에 희생된 위령비였다. 죽은자의 이름이 받침대에

쭉 새겨져 있었다. 육이오 전쟁 중 , 이 산신령(신라 경순왕과 마이태자 神)에 위탁 봉안 시킨 碑였다. 

근처 형산에 김부(경순왕)과 김충(경순왕아들/마이태자라는설)을 모신 성황사 를 둘러보면 이미 안강과

형산과 제산에는 고려 말 부터 도교적 신앙이 일대에 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위령비도 그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碑 정면 우측에 새겨진 내용을 살펴보자

오른쪽 부터 왼편 세로로 쓰여진

나라임도잇世上의원함을면다핫서고

황천길노갓時代명세기小인이대어

지조흔일다하固나라는은재도孝리오

 

현대어로 해석

 

"나라 임(임금/경순왕)도 /이 세상의 원(願)함을 면(免)다하시고

황천길로 갔시되(時)(代)(갔시었는데)/명색이(名色이) 小人이 되어

지(자기) 좋은 일 다하고(固)/ 나라는 언제 도효(孝)리오(좋으리요)"

 

재미 있는 점은 엄연히 한글로 표기 해도 충분히 될 글자를 한자로 쓴 것에 의문을 가졌다.

오직 한자를 표음문자, 즉 음을 차용한 점이다. 

특히 時代, 固와 孝를 사용한 것은 한자의 은유적인 표의문자를 숨겨놓은 교묘한 용자법이다.

즉 의도적인 용자 법이란 말이다.

그 비밀을 풀이해 보자.

 

한자만 모아보자.

世上時代小人固孝 이다.

글을 쓴 이는 이 정격한문을 이두 형식으로 은유적으로 다시 강조하고 있었다.

"세상사는 동안은 소인들은 오직 굳세게 효도를 하라는 뜻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란 뜻이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좋은 일 했다는 비문의 숭고한 뜻이 내제되어있었다.

비석 정면에 새겨 놓은 한문을 통해 봉안 신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김부(신라경순왕) 마의태자가 안강과 형산과 제산의 龍의 전설 속 신이 되어 전해진 도교적 신앙처란

비석의 내용이 담겨있다.

 

大地峰日月煌諸國의 共同固마의태자根(뿌리)인

嘉善大夫金海敬順大王傳해지고 있는 死(죽은자)救(구원하는)碑石

 

大地峰日月이란 조선태조가 왕권 상징으로 왕좌 뒷편에 그리게 한 "日月五峰圖"와 같은 의미로

천지봉우리와 일월(태양과 달)황제국의 왕권을 상징하는 제국(신라국)을 말하고 있다. 

마의태자뿌리인 용이 되어 형산과 제산 속 신이 된 경순대왕에게 영혼을 봉안하는 위령비이다.

마의태자는 경순왕과 첫째 왕후 소원황후 사이의 장남으로 탄생하여 금강산으로 들어갔고, 차남 김굉,은

불법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해인사 아래 애장왕 때 지은 법수사에 김굉에 대한 자료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의태자를 찾아 금강산으로 갔었다는 일화가

구전되고 있다. 현재 법수사 삼층석탑이 2010년5월3일자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굿뉴스가 전해졌었다.

5월4일 법수사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탐방차 다녀왔었다.

 

좌측 비에 새겨진 내용을 살펴보자

"生이 준니 강物리뿐내 강物리준니 人生仁뿐내" 

요즈음 글로 해석하니  

 

生이 줄으니 강물이 붇네(넘치네)

강물이 줄으니 인생이는 붇네(길어진다)

 

여기서 강물은 큰 시련(전쟁)을 말한다. 강물이 줄으니(전쟁이 끝나니), 인간 생명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이 발발하니(강물이 불으니) 뭇 생명들이 시들고, 전쟁이 끝나니 개인들의 인생이

길어진다. 

1950년 안강전투를 살펴보자. 1950년 6.25일 파죽지세로 밀려내려오는 북한군을 막을 길이 없이 남한

군인들은 무너진다.

낙동강전선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서 낙동강은 피아군들의 붉은 피로 물들인다.

엄밀히 말하면 기계 안강전투는 1950년8월9일부터 9월22일까지 기계와 안강,포항과 경주 북부일원에서

국군1군단 예하 수도사단과 북한군의 치열한 전투였다.

마침내 포항 입구 형산상 양 강둑을 경계로 지금의 양동마을 쪽 산에는 인민군대가 집결하고 반대편엔

국군과 부산에서 실려온 학도병들이 대치하면서 싸웠다.

이 전선이 무너지면 경주와 부산은 함락하고 마는 절대절명의 긴박한 전투였다.

매일 아침 국군쪽에선 학도병 트럭들이 학생들을 풀어놓고 가지만 저녁 무렵에는 형산강엔 학도병과

인민군의 시체만 쌓이고(物로 표현)

형산강은 피로 강물 물들이고 불어나고 있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 안강 전투였다.

형산강 아래 '딱실못'엔 시체와 붉은 피가 넘쳤다고 한다. 

 

여기서 物(물)이란 전사자의 시체를 표현하였다.

'물'이란 음을 '物'로 음차하였다. 또한 仁(인) "이는(仁)"을 음차 하였다.

이 또한 의도적인 한자 차음이다.

한자만 모아보자. 

生物 物 人 生仁

생물, 물건(物),사람(人) 어질게 살아야한다(生人) 는 상징적 게시문이 아닐까.

단기4283(1950년)음력7월7일날 崔圭鎭이란 사람이 발문하였다.

 

 

 

 

김부와 김충은 형산 정상부에 형산성황사에 神으로 돌아왔다

 

제산과 형산에 얽힌 전설 속에 경순왕과 아들 김충의 역할이 들어있다.

이들이 200여년 전에 이 곳 형산 정상부에 목신으로 나타났다.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149ㅡ1 의 형산의 정상부에 법당이 들어섰다.

현판에는 '왕장군 용왕전'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걸려있고 주로 무속인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다.

사찰 명칭도 왕룡사가 아니고 '왕룡사원'이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고 송도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서거하자 신라 유민들은 그를

추모하여 북형산성터에 형산성황사(城隍祀)라는 사당을

건립하고 두 분을 모셨다.

원래는 유덕을 추모하는 사당으로 춘추향제를 올려

넋을 위로하였다. 고려 말부터 기복신앙처로 전락

하였다.

바로 아래 마을 '국당'이란 명칭도 '굿당'이라는 말이

와전되었고 무속인들이 많은 마을이 되었다.

 

본래 사당은 토막식 건물로 조선 말엽까지 있었으나

조선말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연일의 어느 문중에서

이 사당을 철거하고 분묘을 설치하자 성터 밑에

위치한 왕룡사에서 경내로 옮겨 지금까지 모셔오고

있다.

 

김부대왕(경순왕)과 태자 김충의 목상

왕룡사에 있는 목조 문.무인상으로 약 200년 전에 회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동쪽에 문인상, 서쪽에 무인상이 서 있다.

둘 다 오른 손은 옷 속에 감추고 왼손만 밖으로 드러나게 조각이 되어 있으며 얼굴이 목상 길이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신장은 매우 짧다

오른쪽에 있는 문인상은 왼손으로 턱수염을 잡고 큰 관모를 쓰고 있으며, 푸른 옷에 얼굴은 살갗색으로

칠해졌다. 무인상은 투구를 쓰고 왼손에 무엇을 바쳐든 것 같은 형태이며 역시 푸른 옷에 얼굴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경순왕 김부대왕 목상> 

문인상은 경순왕 김부대왕, 무인상은 태자 김충이라고 하고 또는 마이태자로 보는 이도 있다. 

도지정 민속자료 제 73호로 지정되어있다.

 

 

(글돋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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