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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 향가

이두 - 단상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1.03.04|조회수57 목록 댓글 0

 

해,하늘  고구려 인들이 쓰던말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高 : 解(日), 上 : 車

 

여기서 글쓴이의 해석은

高(고)-  높다는 뜻이니 뜻으로 '하늘, 해' 등을 말한다 했고

解(해) - 풀다 등의 뜻이나 여기서는 음을 빌려 '해'라 했으며.

日(일) - 그대로 '해'이고

上(상) - 위의 뜻이고

 

 

까마귀와 검정색이 왜 불길한가?

연오랑

우리 역사에서 까마귀가 귀한 새, 길조로도 많이 등장한다. 이 까마귀가 길조로 나오는 기록은

일월지정(日月之精)으로 일본에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된 '연오랑(延烏朗)과 세오녀(細烏女)', 동명

왕과 백제 온조왕을 각각 동행한 '오이(烏伊)와 오간(烏干)', 신라 관직 명칭에서 나오는 '대오

(大烏), 소오(小烏)' 등이 그 예이다.

 

또 일본 고대에서도 까마귀는 천신의 사자로 나오는데,『속일본서기』제2권 "문무천황조"에서

보면, '오형당'이라는 까마귀 솟대를 일월상(日月像)이나 사신(四神)에 앞서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삼족오는 까마귀가 아닌 '생명'을 상징하는 '태양', 즉 '환숫'의 씨를 누리에서 받는 곰네를

상징하는 우리 민족만의 말로 본다는 것이 위 삼국유사로도 밝혀진다.

 

皁衣仙人

밝달임금 도를 닦고 나라를 지키는 무리가 신라에서는 화랑이라 한다면,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

(皁衣仙人)이었다. 그들은 중들처럼 검소하게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러나 연속극 연개소문에서처럼 조의선인군들은 중들처럼 우견편단(右肩編袒: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만 감싸는 옷차림) 옷을 입은 게 아니라 그냥 검정옷을 입었다,

 

진짜 조의선인 옷을 한 번 보자.

 

 

위 그림은 길림성 무용총 내부벽화로서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그림이다.

왼쪽에 음식상을 놓고 앉아서 주인과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의 손님은 물론 주인까지 조의

선인이다.

 

그렇다면 우선 조의(皁衣)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조의선인을 혹자는 早衣仙人이라고 쓰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반드시 '검을 조(皁)' 자를 써야 한다.

이 검다는 것은 먹물 옷으로 검소한 것을 말하니 요즘 중들의 옷과도 같이 자주 빨면 회색도 된다.

 

車(차, 거) - 차,수례이니 주몽의 설화 '오륜거(五輪車)'를 말한다 했다

 

그러나 신라인들이 해를 의미하여 쓴 글자 중에는  

 

爲良 : 斤烏 >日 , 上 : 가 있었는데

爲(위) - 하다. 한다 등의 뜻이나 한다의 뜻을 빌려 환숫이 곰네땅에 내리른 빛인 한(한민족) 

良(량) - 어질다 등이나 이두에서는 접미사

爲良- 1. 뜻인 '하'에서 감초격 접미사를 붙여 '해'

         2. 환숫이 곰네땅에 내리는 빛인 한(한민족) 

喟(위) - 한숨, 한숨 쉬다의 뜻인데

         1. 음차한 위(上) 

         2. 한숨의 한을  취하여 환숫의 빛이 누리에 내리는 뜻의 한, 바로 우리 한민족의 한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읽기 - 한

 

여기까지는 독자님들고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斤(근) - 도끼, 나무를 베다 등

烏(오) - 까마귀, 검다 등

 

斤烏 - 이 斤烏의 해석은 그 음이나 글자 뜻 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자들의

제자 원리를 안다면 간단하다. 금문상 斤 자의 제자 원리는 도끼로 나무를 쪼개거나 베어 없애는

물건이고, 烏 자는 까마귀, 검정 등이다. 따라서 고구려인들이 斤烏를 해와 같은 뜻으로 쓴 것은,

검은 빛인 '烏를 도끼로 베어 없앤다'는 뜻, 즉 '그늘을 없앤다'는 뜻인데, 한편 '烏인 검불(神市)이

곰네의 땅이니 그 곰네의 땅을 해빛인 환숫이 밝힌다'는 뜻도 있다.(한과 같음)

읽기 - 한

여기까지 말했는데 이왕 말하는 김에 다음 문제도 말하려 한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밝달 도는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선皁衣仙人)이 되어 밝달임금의 도와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동참했는데, 이 조의선인이란 선배 또는 선인이 변한 말이다.

 

先(선) - 먼저 등

輩(배) - 무리 등

先輩 - 먼저 무리이며, 이는 선인( 先人, 仙人 )과 같은 뜾을 취한 말이다.

그렇다면 먼저는 무엇인가?

이는 '소도(蘇塗)'이다.

 

蘇(소) - '희다(白), 깨어나다' 등의 뜻이나, 白은 日인 '환숫의 빛'을 말한다.

塗(도) - 흙, 진흙 등의 뜻이나, 흙은 '곰네의 누리'를 말한다.

蘇塗 - 환숫과 곰네의 누리, 곰네의 누리에서 솟아나는 생명, 솟터

 

* 소도를 더 알아보기 위해 환단고기 > 태백일사 삼한관경 본기 제4의 마한세가 상을 한 번 보자

...이때부터 소도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1)을 보게 되었다. 산 정상에는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이십분의 일의 세를

내었다. 해마다 풍년이요, 언덕과 산에는 노적가리가 쌓이니 백성들은 즐거워 ‘태백환무’2)라는

노래를 지어 전했다...
 (...自時蘇途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山頂皆有四來之民環聚墟落四家同井二十稅一時和年豊露積邱

     山萬姓歡康之作太白環舞之歌以傳...)

1) 산상웅상: <환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 박사나 안호상 박사 같은 대석학들도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2) 태백환무(太白環舞): 태백은 태초부터 '흰 것, 해, 환한 것'을 말하므로 환님(桓因=한한님=

하느님)을 말하고, 환무는 '강강 수월래' 같은 춤이다. 그러니까 그때무터 우리 민족은 강강수월래

가사를 지어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이다.  

 

* 山像雄常
이게 무슨 말인가? <환(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 박사는 자신은 물론 심지어 안호상 박사까지

모르는 소리라고 한다.

이런 대석학도 모르는 소리를 썼다면 이는 분명 이 글을 쓴 십일당 주인 이맥도 그 뜻을 모르는 채

그저 전해 내려오는 대로 쓴 것일 것이다.
우선 <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님의 말을 들어보자.(한단고기 201쪽 참조)

...전략 "안호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산해경1)의 기록을 잘라 말하였으니 참고할 만하다.

즉, '北有樹 名曰雄 常先八代帝 於此取之'라고 雄과 常을 갈라놓고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를 雄

이라 한다. 늘 앞서는 8대의 임금들이 여기서 이를 취해갔다'로 한 것이다.  ...중략... '산 형상의

웅상을 보게 되었다'(可見山像雄常)는 좀처엄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다. 언젠가는 雄常의 참뜻이

한국학에서 밝혀질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임승국님의 참으로 솔직한 표현에

존경이 간다.

1) <산해경(山海經)>: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리서로 고조선 연구에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고서 

 

여기서 그 신비한 '山像雄常'의 뜻을 밝힌다.

이는 천부인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글자 ㄱ, ㄴ, ㄷ...ㅎ 속에 어떤 뜻이 들어

있는가를 연구하여 우리말의 뿌리를 밝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말이다


이 산상웅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先八代帝王, 즉 중국 역사의 창시자로 알려진 삼황오제들이

이 산상웅상을 취해다가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썼을까?
이는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는 물론, 우리 민족신앙의 인식을 달리 해야 하는 문제

이다.

글쓴이의 졸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384쪽 '사람 천부인 △' 중
'남근을 뜻하는 ㅅ'
'남근상을 숭배한 우리민족'
'남근상이 모셔진 소도(蘇塗)'
그리고 396쪽의 남근 형상의 산상웅상(山像雄常)의 내용에서 요약된 내용을 발췌하면 알 수 있다.

 

즉, 山像雄常의 山은 뫼가 아니라 ㅅ은 '서다, 솟다'의 뜻이 있으니 숫이 솟을 수 있는 장정, 즉

'사내 > 산의 숫'이며 사내의 대표가 바로 '환숫'이니, 환숫을 이르는 이두문이다.(丁:산 정)

따라서 山像雄常은 '사내 숫 상'이란 말이고, 이것이 소도마다 모셔져 있다는 말이다.

 

소도의 문헌적 근거

우리의 옛 기록을 보자. 
우선 <환단고기> 중 신라 때 사람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삼성기전 하편(三聖記全下篇)에 보면

다음과 같다.
 
 *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개천(開天=祭天)하시어 생민(生民)에게 교화를 베푸시고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연하시니 무리들이 잘 따랐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이 토지를 개간하고 구리와

철을 채취하여 병사를 조련하고 산업을 부흥시켰다. 그때 구환1)이 모두 삼신(三神)을 한 근원의 조상으로 하여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管境)을 관리하며 벌 주관하는 일을 대중과 더불어 하나로 귀착하게 화백2)을 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생명을 나란히 닦아 영육의 삶을 온전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구환은 모두 삼한(三韓)의 관경3)에 통솔되었으며 천제의 아들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불렀다.
(桓雄天王조(戶攵聿-처음조)自開天生民施化演天經講神誥大訓于衆自是以後治尤天王闢土地採銅

鐵鍊兵興産時九桓皆以三神爲一源之組主蘇塗主管境主責禍與衆議一歸爲和白並智生雙修爲居佺自

是九桓悉統于三韓管境之天帝子乃號曰檀君王儉)

1) 九桓: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서 <이십오사>에는 '구이(九夷)'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고구려나

고려의 뿌리말인 '굴이 > 구리 > 고리'로 '굴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 말은 지금도 남아

'멍텅구리, 장난꾸러기, 심술꾸러기' 등에 쓰인다.

 

다음 檀君世紀 내용 중 제11대 檀君 도해(道奚) 천제(天帝)께서 그 대신들인 오가(五加)에 명을

내린 내용인데,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에 살았던 행촌(杏村) 선생 문정공(文貞公)이 전한 책이다.

이 책은 원래 당시에 살았던 백진사로부터 얻은 것이라는데, 이 백진사네 집은 옛글을 보전하는

것으로써 전통이 알려져 있는 오래된 가문으로 이 책 말고도 여러 권의 사서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 경인원년(BC1891)에 천제(제11대 단군 도해)께서 오가에 명하사 열두 명산의 가장 좋은 곳을

골라 국선소도1)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밝달나무를 둥글게 심고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상2)

으로 모셔 제사 지냈으니 그 이름을 웅상3)이라 한다. -중략-    
(庚寅元年帝命五加擇十二名山之最勝處設國仙蘇塗多環植檀樹擇最大樹封爲桓雄像而祭之名雄常

- 中略-)
1) 국선소도: 국선(國仙)은 祭政이 분리된 후의 '화랑(花郞)', 즉 남자무당인 ‘화랭이’를 말한다.

우리는 보통 화랑은 신라 김유신 때 처음 생긴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엔 환웅(桓雄)도 화랑이고 단군도 화랑이다. 즉,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사장이 바로 화랑이고

이 화랑이, '화랭이'이다.

 

2) 환웅상: 환웅은 ‘환한 숫’이며, ‘숫’은 생명의 창조신인 남근을 말하므로 환웅상은 '거대한

남근상'을 말한다.  

3) 웅상: 웅상은 바로 환웅상과 같은 말로 '수컷상'인데, 이 수컷상에 매다는 북은 고환을, 방울은

씨앗을 말하며, 이것이 현재 서낭당의 서낭나무가 되는데 여기에 울긋불긋한 천 등을 매다는 것은

신성한 음모(陰毛)를 뜻한다.
 
* 단군세기

...겨울 시월에 대시전의 건축을 명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극치를 이루었다. 돌아가신 천제

환웅의 상을 받들어 모셨는데 머리의 광채 번득임이 큰 해와 같고 원광(圓光)이 있어서 우주를

비추(照耀)었다. 밝달나무 아래 환화(무궁화) 위에 앉아있음이 하나의 진신(眞神)에 원심(圓心)

1)이 있음과 같더라. 천부인을 가지고 대원일의 그림을 누전에 걸었는데 ‘크고 밝고 환한 이

(巨發桓)’2)라 불렀다...
(冬十月命建大始殿極壯麗奉天帝桓雄遺像而安之頭上光彩閃閃如大日有圓光照耀宇宙坐於檀樹之

下桓花之上如一眞神有圓心持天賦印標揭大圓一之圖於樓殿立號居發桓..)

1) 환웅의 상을 받들어 모셨는데 머리의 광채 번득임이 큰 해와 같고 원광이 있어서... 하나의

진신에 원심이 있는 것 같더라. 사람의 상을 조각해서 세웠다면 대머리가 아닌 한 어떻게 머리

에서 광채가 날 것이며(後光이면 몰라도), 또 진신에 원심은 무었인가? 이는 분명 남근상이

아닌가?

2) 거발환(巨發桓): ‘크고 밝고 환한 이’를 한자로 적자니 ‘거’는 뜻을 따오고, 발환은 음을 따온

것이다. 고대 우리말의 한문 표기는 거의 이런 식이다.

(서낭나무가 실은 남근상이듯 여기 삼시랑의 당집이었던 대시전 안에 있다는 환웅상은 나무나

돌로 된 남근상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 남근상은 처음에는 노골적인 남근상이었다 하더라도

외래 종교가 들어온 이후 우리말을 비천시하여 우리 생식기 용어가 모조리 욕으로 밖에 쓰이지

않는 우리 풍토로 보아 노골적 남근상도 추상적 남근상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 남근상만 찾아낸다면 이는 국보로 올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천제단 밑 주차장 부근에

있는 돌로 만든 의미심장한 상이 너무 훼손되어 판독하기 힘이 드나 이는 단순한 장승석이나

어떤 묘의 문인석은 아닌 것 같고, 또 장승석이라 하더라도 그 장승의 유래 역시 연구해볼 문제로

남아 있다. 또 그 장승석에는 신지녹도문 같은 그림이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환웅상을

인물화한 것인지 하여간 삼국 이전의 고조선 유물인 것으로 추정되므로 한 번 처음에 있던 장소

부터 추적하여 연구해볼 문제이다.)
  

* 단군세기: 십삼세 단군 흘달
무술이십년(BC 1763)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으며 미혼의 자제들로 하여금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는데 이를 일러 국자랑이라 하였고, 이 국자랑들이 출행시에는

천지화를 머리에 꽂았기 때문에 그때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이라고 불렀다.  

(十三世檀君 屹達戊戌二十年多設蘇塗植天指花使未婚子弟讀書習寫號爲國子郞國子郞出行頭揷天

 指花故時人稱爲天指花郞...)

 

* 단군세기: 십육세 단군 위나
무술 이십팔년(BC1583년) 구환(九桓)의 모든 칸(큰=汗)들이 영고탑에 모여 삼신상제와 그 배위

에게 제사 지냈으니 환인과 환웅치우 밎 단군왕검이었고, 오일 동안 큰 연회를 베풀었는데 대중과

더불어 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며 경을 부르고 마당밟기를 했다. 한편으로는 햇불을 나란히 하고

한편으로는 환무(環舞,강강술래)를 하며 애환가(愛桓歌 환인 환웅등 ‘환한 것’을 사랑하는 노래)

를 불렀는데, 이 애환가는 바로 옛날 하느님을 사랑하는 노래 류이다. 선인들은 환화(桓花)를

가리켜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냥 꽃이라고만 하였다. 애환의 노래가 있는데 이르되 “산에는 꽃이

있네, 산에는 꽃이 있네, 작년에 만 그루 심고 금년에 만 그루 심으니 불함산에 봄이 오면 온

세상은 붉은 빛 천신을 섬기고 태평을 노래하리.”

(十六世 檀君 尉那 戊戌二十八年會九桓諸汗于寧古塔祭三神上帝配桓因桓雄蚩尤及檀君王儉而亨

之五日大宴與衆明燈守夜唱經踏庭一邊列炬一邊環舞齊唱愛桓歌愛桓卽古神歌之類也先人指桓花

而不名直曰花愛桓之歌有云山有花山有花去年種萬樹今年種萬樹春來不咸花萬紅有事天神樂太平...)

 

다음은 이조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인 이맥이 전한 삼신오제본기제일(三神五帝本記 第一)의

내용 중에

 

* ...소도에서 하늘에 제사 지냄은 곧 구려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蘇塗祭天乃九黎敎化之源也...)

 

*  ...소도를 세움에는 다 계률이 있나니 충, 효, 신, 용, 인의 다섯 가지가 그것이다. 소도 옆에

반드시 경당1)을 세우고 미혼 자제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물을 익히게 하였는데, 대개 독서, 활

쏘고 말 달리기와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권술 등(또는 검술) 여섯 가지 기예를 말한다...
(...蘇塗之立皆有戒忠孝信勇仁五常之道也蘇途之側必立扃堂使未婚子弟講習事物盖讀書習射馳馬

  禮節歌樂拳摶(並劍術)六藝之類也...)

1) 경당: 고구려에도 있었던 평민 자제를 위하여 문무일치를 가르치는 교육기관

 

* 이맥의 신시본기 제삼 (神市本記第三)에
 밀기에 이르기를... 산 계곡에 나무를 심고 토단을 만든 것을 신단(神壇)1)이라 하는데 지금

중들은 이것을 제석단으로 혼동하고 있으니 옛것과 다르다. 삼신을 수호하고 인명을 이치로써

하는 자를 ‘삼랑’ 2)이라 하는데, 이 삼랑은 본래 삼신의 시종랑으로 삼랑은 본래 배달(밝달)의

신하이며, 또한 세습해서 삼신을 수호하는 직책인 것이다.    
(密記云...在山谷而植木爲土壇者曰神壇今僧徒混以帝釋壇則非古也守護三神以理人命者爲三侍郞

本三神侍從之郞三郞本倍達臣亦世襲三神護守之官也...)
 

* <고려팔관잡기>에 또한 말하되 ‘삼랑’은 배달의 신하이다. 씨를 뿌리고 재물을 관리하는 자를

업(業)1)이라 하고 교화와 복을 비는 자를 랑(郞)2)이라 하고 무리를 지어 공 이름을 주관하는

자를 ‘백(伯)이라 하니, 즉 옛날에 발표된 하느님의 풍습이다. 대개 강령(降靈)하는 능력이 있어서

예언하는 일이 많은데 신의 섭리를 받아 적중한다. 지금 혈구에 삼랑성이 있는데 성은 곧 삼랑이

머무르던 곳이다. 랑(郞)은 곧 삼신을 수호하던 관직이다.3) 불상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절을 세워

이를 대웅(大雄)이라 했는데, 이는 중들이 옛것을 세습하여 부르는 것이고, 본래 승가의 말은

아니다.4) 또 이르되 “승도나 유생들이나 모두 랑가(郎家)에 예속되어 있다”5) 라고 함을 이로써

알겠다. 
(高麗八觀雜記亦曰三郞倍達臣也主稼種財理者爲業主敎化威福者爲郞主聚衆願功者爲伯卽古發神

道也皆能降靈豫言多神理屢中也今穴口有三郞城城者卽三郞宿衛之所也郎者卽三神守護之官也佛

像始入也建寺稱大雄此僧徒之襲古仍稱而本非僧家言也又云僧徒儒生皆隸於郎家以此可知也....)

 

1) 업(業): 어비>아비(夫, 父). 사내. 사내의 상징물. 거대한 구렁이

2), 3) 랑(郞) 자가 붙으면 왜 모두 화랑, 즉 화랭이(남자무당)인가가 여기서 잘 설명되어 있다.

4) 웅(雄)은 수컷 웅 자이며 환웅(桓雄)의 웅이다. 즉, 생명 창조의 남근을 말하므로 불상(佛像)

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점잖거나 쓸모 없는 것을 ‘부처님 가운데 도막(다리?) 같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불교가 들어와 우리의 소도에 있는 웅상(雄像)이 거룩하다고 여기에 큰 대 자 하나를

더 붙여 대웅전(大雄殿)이라 이름하였으니, 이것을 해석하면 ‘거대한 남근이 있는 전각’이 된다.

물론 환웅의 ‘웅’은 정신적인 숫(남근)으로 생명의 창조섭리를 세운 것을 말한다. 그렇더라도

생사를 같은 것(生死一如)으로 보는 불당에 ‘거대한 숫이 있는 전각’ 이란 의미심상한 미소를

짓게 한다.

(불교국가 중에서 대웅전(大雄殿)이란 전각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즉, 환웅상이

모셔져 있던 당집에서 환웅상을 없애고 불상을 들여놓은 것이 현재 대웅전이기 때문이다) 

5) ‘승도나 유생들이나 모두 낭가(郞家)에 예속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이로써 알겠다’라는 말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문맥이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인데, 즉 당시 승도나 유생들의 풍속은 모두 낭가(郞家), 즉 무당의 집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마한세기(馬韓世記 下) 중에
 ...백성을 위하여 금팔조1)를 만들었으니 남을 죽이면 같이 죽여 다스리고, 남을 상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하며, 도둑질을 하면 남자는 그 자격을 몰수해 그 집의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하며, 소도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두어두고2), 예의를 잃은 자는 군대에 복무케

하며, 게으른 자는 부역을 시키고, 음난한 자는 태형으로 다스리며, 사기치는 자는 훈방하되

스스로 속죄하면 공포하는 것만은 면해주지만 민속은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서 시집 가고 장가

가는데 문제가 있었다.
(...爲民設禁八條相殺以當時償殺相傷以穀償相盜者男沒爲其家奴女爲妃毁蘇途者禁錮失禮意者

服軍不勤勞者徵公作邪淫者苔刑行詐欺者訓放欲自贖者雖免爲公民俗猶羞之嫁娶無所...)

 

1) 금팔조: 최초의 형법으로 제 팔조까지 있었던 모양

2) 소도를 훼손시키는 자는...:법률이 여덟 가지밖에 안 될 때 소도를 훼손시키는 것을 금지

시키고 있으니 이 소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 역시 이맥이 전한 소도경전 본훈 제 오(蘇塗經典 本訓 第五) 중에  
 ...신시의 음악을 공수(貢壽)라 하거나 또는 공수(供授) 또는 두열(頭列)이라 하는데, 무리가

둘러서서 줄지어 합창을 하여 삼신을 기쁘게 하고 나라가 번창하고 민심이 윤택해질 것을 대신

말했다.1)
(...神市之樂曰貢壽或云供授又曰頭列衆回列以唱聲使三神大悅代言國祚吉昌民心允悅也...)

 

1) 지금 무당이 신이 올라 예언하는 말을 공수(貢壽,供授)라 하는데, 이는 신시 때의 환웅등이

화랑이었다는 증거가 여기서 나오며, 이 ‘대신 말했다’는 신(神) 대신 말하는 일종의 예언이다.

 

*  대변경에 이르되 단군 구물(九勿)이 국호를 대부여라 고치고 도읍을 장당경으로 바꾸었다...

천제의 묘정(廟庭)에 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달게 명하고 삼, 칠일을 기한으로 연장자 순으로

술을 마시게 하며 권화(勸化)를 하고 이를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구서(九誓)의 모임'이라

하고 항상 구서의 글1)을 사용했다.
(大辯經云檀君丘勿改國號爲大夫餘改都藏唐京....命天帝廟庭立大木懸鼓三七爲期序齒相飮勸化成

冊是爲九誓之會每以九誓之文....)
1) 구서의 글: 확실치는 않으나 고대 한글인 가림토로 추정된다.

 

 '소도'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 모르는 중국의

<이십오사(二十五史)>를 보면  
 
...평소 오월달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 지어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낮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 인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고 몸을 업드렸다

일어났다 하며 손발로 장단을 맞추는데, 장단은 중국의 탁무(鐸舞?)와 유사한 데가 있다. 시월에

농사 일이 끝나면 역시 이같이 귀신을 믿는데, 나라의 읍마다 각기 한 사람씩 세워 천신을 주제케

하며 그 이름을 천군(天君)1)이라 한다. 또 모든 나라에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름을

'소도(蘇塗)'라 하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2) 귀신을 섬기는데, 어떤 도망자건

그안에 들어가면 대개 싸움을 할망정 돌려주지는 않는다. 그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와

비슷하나 옳고 그름 행하는 바는 다름이 있다.            
(...常五月下種訖祭鬼神群聚歌舞飮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昻手足相應節奏有似鐸

舞十月農功畢亦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蘇塗立大木懸

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而所行善惡有異...)

1) 천군: 무속에서 무당을 만신(萬神) 또는 천군(天君) 이라도도 하는데, 이는 단군(檀君)과 같은

   뜻이다.

2)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뒤에도 수없이 나오지만 환웅은 '숫'을 의미하므로

   환웅상은 남근일 수밖에 없으며, 북 등은 고환을, 그리고 방울은 '알' 즉 '씨앗' 등을 상징한다.  
   이상으로 환웅과 소도와 화랑이 무엇인가 하는 옛 기록을 보았다.

 

따라서 고구려의 조의선인(衣仙人)은 솟터(蘇塗) > 선배(先輩)가 이어진 말이며, 그들은

밝달도 이외에 수박(手搏), 격검(擊劍), 기마(騎馬), 덕견이, 깨금질, 씨름 등 각종 경기를 하였다.

 

선배는 고구려의 10월 제사에 모인 군중 앞에서 무예를 선 보이고 사냥과 가무, 무예 등의 여러

경기에서 승리한 무리들을 선배라 불렀고, 이들이 후에 조의선인이라 하였다.

이들 선인(先人 또는 仙人)선배는 다  이두(吏讀)식 표기이다.

이들은 국가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았다.  

전시에는 이들이 자체 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다.

조의선인은 머리를 박박 깍고 검은 옷을 입었으므로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시킨다.

 

이 조의선인이 신라에서는 화랑도, 풍월도가 되었으니 그 뿌리는 하느님 하나이다. 화랑은 원화

(源花)라는 여성도 있었고, 좋은 가문의 청년 중에 덕행 있는 자를 곱게 치장하여 화랑으로 만든

것에서 보듯이 외모와 몸치장을 중시하여 여성적인 반면 선배는 매우 남성적이다.

 

조의선인의 독특한 외양 때문에 고구려와 전쟁을 하였던 수, 당의 병사들은 이들을 승군(僧軍)

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숭상(崇尙)한 고려의 최영 장군조차 '당이 30만 대군

으로 고구려를 침략하나 고구려는 승군(僧軍) 3만을 내어 이를 대파하였다'라고 조의선인을

찬양하였다. 고려도경(高麗圖經)¹에 나오는 재가화상(在家和尙)은 선배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이 조의선인이 승군으로 착각하게 된 원인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송(宋)나라

휘종(徽宗)이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낼 때 수행한 서긍(徐兢)이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서 기록한 책 때문이다.

 (재가화상(在家和尙) -선화봉사고려도경  제 18 권(宣和奉使高麗圖經  第 十八 卷)

 

재가화상은 가사를 입지 않고 중의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흰 모시의 좁은 옷에 검정색 깁(비단)

으로 허리를 묶고 맨발로 다니는데. 간혹 신발을 신은 자도 있다.

거처할 집을 자신이 만들며 아내를 얻고 자식을 기른다. 그들은 관청에서 기물을 져 나르고

도로를 쓸고 도랑을 내고 성과 집을 수축하는 일들에 다 종사한다.

변경에 경보가 있으면 단결해서 나가는데 비록 달리는 데 익숙하지 않기는 하나 자못 씩씩하고

용감하다.

군대에 가게 되면 각자가 양식을 마련해가기 때문에 나라의 경비를 소모하지 않고서 전쟁할 수

있게 된다.

듣기로는 중간에 글안(거란)이 고려인에게 패전한 것도 바로 이 무리들의 힘이었다고 한다.

이족(夷簇:고려인)의 사람들은 그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아버린 것을 가지고 화상(和尙:승려)

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즉, 조의선인은 중들처럼 우견편단인 가사를 입지 않으며, 중들의 계률도 지키지 않는 무도한 

자들이다.

 

왜 우리가 까마귀와 검정을 불길하게 생각하는가?

위 조의선인을 보면 그들은 앗선을 빼앗은 한나라, 그 뒤를 이은 수나라, 당나라 등 중화민족에게

대항하던 무리들이었고, 따라서 중화족은 이 조의선인뿐 아니라 밝달임금(檀君), 또 그 부모인

환숫(桓雄), 곰네(熊女)의 도까지 이를 갈고 싫어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국 이후, 특히 이조에 들어 와서 선비들은 제 조상을 중화족인 줄 알고 중화의 도만

따르다 보니 연산군 때 이맥도 밝달임금의 도를 알리는 태백일사를  필사했으면서도 그것을

발표하지 못하고 숨겨 후대에 전하게 했다는 말이있다.

 

왜냐하면 이조 선비들은 밝달임금은 고사하고 그 도를 전해 수련하는 조의선인 조(皁) 자만 누가

해도 그는 선비들의 뭇 화살을 받으며 심지어 매국노로 취급되어 삭탈관직을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곰네를 의미하는 까마귀, 검정은 불길한 새이고, 검정마저도 불길한 색이라 하니 따라서

지금 우리도 까마귀와 검정색을 불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까마귀는 효조(孝鳥)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까마귀는 크면 그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 때문이라 한다.

(이글은 우리님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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