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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료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集) - 제4권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3.09.12|조회수241 목록 댓글 0

동국이상국전집 제4권

 

● 서(序)

 

○개원 천보 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43수 병서(幷序)

 

내가 글 읽는 사이에 당 명황(唐明皇)의 유적(遺迹)을 보았다. 개원(開元) 이전에는 정사(政事)에

부지런하고 치도(治道)를 형성하여 그 평화의 업적이 거의 정관(貞觀) 시대에 가까웠으나 천보

(742~755) 이후에는 정사를 게을리하여 겸도(鉗徒)를 총애하고 참사(讒邪)들을 신임하다가 끝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만나 서촉(西蜀)으로 파천(播遷)하기에 이르러 사직(社稷)을 거의 망칠 뻔

하였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그 선(善)의 본받을 만한 것과 악(惡)의 경계할 만한 것을 모으니 풍영(諷詠)에 오르내릴 만하다.

개중에는 임금에게 관계되지 않은 일도 있지만 그 당시의 선악이 다 임금의 영도에 의하여 점염

(漸染)된 것이기 때문에 아울러 모아 읊어 보았다.

그러나 어찌 감히 풍아(風雅)를 보(補)했다고 하겠는가. 그저 새로 배우는 자제(子弟)들에게 보이

려는 것뿐이다.

 

[주D-001]정관(貞觀) 시대 : 정관은 당 태종(唐太宗)의 연호. 당 태종은 영주(英主)로서 이 정관

         연간에 방현령(房玄齡)ㆍ두여회(杜如晦) 등의 현상(賢相)과 위징(魏徵) 등 직신(直臣),

         이정(李靖)ㆍ이적(李勣) 등의 명장(名將)을 등용하여 천하가 태평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정관지치(貞觀之治).

[주D-002]풍아(風雅) : 《시경(詩經)》의 국풍(國風)과 대아(大雅)ㆍ소아(小雅)를 말하는데,

         전하여 바르고 고상한 시문(詩文)의 비유로 쓰인다.

 

[開元天寶詠史詩序]

 

予讀書之間。見唐明皇遺迹。開元已前。勤政致理。太平之業。幾於貞觀。天寶已後。怠於政事。嬖寵

鉗固。信用讒邪。遂致祿山之亂。至播遷西蜀。幾移唐祚。可不悲夫。是用拾善可爲法惡可爲誡者。播

于諷詠。雖事有不關於上者。其時善惡。皆上化之漸染。故幷掇而詠之。豈敢補之風雅。聊以示新學子

弟而已。

 

○금저(金筯)로 강직(剛直)을 표하다

 

《천보유사(天寶遺事)》에 “송경(宋璟)이 재상(宰相)이 되니 조야(朝野)의 인심이 다 귀의(歸依)

하였다. 마침 봄철에 임금을 모시고 잔치하는 자리에서 임금이 평소 사용하던 금저를 송경에게

하사했다. 경은 금저를 받고도 그 영문을 몰라 얼른 사례를 드리지 못하자 임금이 ‘이는 경(卿)의

강직을 표함이다.’ 했다.” 하였다.

 

값진 보물로 어찌 어진 이를 따낼 수 있으랴 / 重價那能賭一賢

금저를 내려 굳은 마음 표할 만하네 / 合將金筯表心堅

어찌 식사하는 중에도 나라 걱정 했을 뿐인가 / 豈惟當食猶憂國

그 뛰어난 경륜 젓가락 빌릴 나위도 없었지 / 畫作謀籌不借前

 

[주D-001]식사하는……없었지 : 당 현종(唐玄宗) 때의 재상 송경(宋璟)의 경륜이 장량(張良) 보다

         훌륭하다는 뜻이다. 젓가락을 빌린다는 말은 한 고조(漢高祖)의 밥상에 놓인 젓가락을

         빌려서 일의 가부를 주결(籌決)하겠다던 장량에게서 나온 말이다. 《漢書 卷40 張良傳》

 

金筯表直

天寶遺事曰。宋璟爲宰相。朝野人心歸美。時春御宴。帝以所用金筯賜璟。璟雖受所賜。莫知其由。

未敢陳謝。帝曰。所賜之筯。盖表卿之直也。

重價那能賭一賢。合將金筯表心堅。豈惟當食猶憂國。畫作謀籌不借前。

 

○여지(荔支)

 

《당서(唐書)》에 “양귀비(楊貴妃)가 여지를 좋아했는데, 반드시 싱싱한 것으로 가져와야만 했다.

그러므로 연도(沿道)에 역마(驛馬)를 놓아 수천 리의 거리를 전송(傳送)해 와도 그 맛이 변치 않은

채 경도(京都)에 도착하곤 했다.” 하였다.

두목(杜牧)의 시(詩)에 “말발굽에 이는 티끌 귀비가 좋아하는데, 여지가 올라온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荔支來]”하였다.

 

옥유와 빙장의 맛 그저 싱싱도 하다 / 玉乳氷漿味尙新

성화 같은 역마 풍진을 일으키네 / 星飛馹騎走風塵

삼천 리를 지척같이 달려왔기에 / 却因咫尺三千里

미인 얼굴에 웃음꽃 한층 더했어라 / 添得紅顔一笑春

 

[주C-001]여지(荔支) : 과일의 이름. 중국 복건(福建)ㆍ광동(廣東)ㆍ사천(四川) 등지에서 생산

         되는 과일로 살은 희고 맛은 달고 즙(汁)이 많으며, 모양은 용안(龍眼)의 열매와 비슷

         하다고 하는데, 당 현종의 비(妃)인 양귀비(楊貴妃)가 이를 매우 즐겨 먹었다고 한다.

         여지(荔枝).荔支唐書云。貴妃嗜荔支。必生致之。乃置驛騎。傳送數千里。味未變。

         已至東편001師。杜牧詩云。一騎紅塵妃子笑。無人知是荔支來。玉乳氷漿味尙新。星飛馹騎

         走風塵。却因咫尺三千里。添得紅顔一笑春。

[편-001]東 : 京

 

○풍류진(風流陣)

 

《천보유사(天寶遺事)》에 “명황(明皇)이 귀비와 함께 주연(酒宴)이 한창 벌어질 무렵에 이르면

귀비에게는 궁비(宮妃) 1백여 명을 거느리게 하고 임금은 중소귀(中小貴) 1백여 명을 거느려 두편

으로 나누어 액정(掖庭) 가운데 배치하고 이름을 ‘풍류진’이라 하는 한편 하피(霞被)와 금주

(錦袾)를 벌여 표기(標旗)를 만들고 쌍방이 서로 겨루게 하여, 패한 자에게는 큰 잔에 술을 따라

벌(罰)하는 것으로 웃음거리를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라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다.” 하였다.

 

깊숙한 액정에서 대결을 벌이니 / 禁掖庭深闢鬪場

금금과 하피가 짙은 향내 풍기네 / 錦衾霞被散濃香

명황이 부질없이 풍류진만 가졌을 뿐 / 明皇謾有風流陣

상양궁(上陽宮) 침범하는 호추를 어쩔 수 없었지 / 未禦胡雛犯上陽

 

[주D-001]호추(胡雛) : 되놈. 여기서는 당 현종 때 역모(逆謀)를 감행했던 호인(胡人) 안녹산

         (安祿山)을 가리킨다.

 

風流陣

 

天寶遺事云。明皇與貴妃至酒酣。使妃子統宮妃百餘人。帝統小中貴百餘人。排兩陣於掖庭中。

目爲風流陣。以霞被錦袾。張之爲幟。攻擊相鬪。敗者罰巨觥。以爲戱笑。人議爲不祥之兆。後果有祿

山之亂。禁掖庭深闢鬪場。錦衾霞被散濃香。明皇謾有風流陣。未禦胡雛犯上陽。

 

○목작약(木芍藥)

 

《이백집(李白集)》서에 “개원(開元) 시대에 목작약을 좋아하기 시작하여 침향정(沈香亭)앞에

심었다. 마침 꽃이 만발하자 임금은 소야거(炤夜車)를 타고 귀비는 보련(步輦)으로 뒤를 따라 구경

했다.” 하였다. 《이백집》청평조(淸平調) 일절(一絶)에 “명화와 미인 둘이 서로 좋아하니, 길이

군왕의 웃음 띤 눈길 사로잡았네.[名花傾國兩相歡 長得君王帶笑看]”하였고, 또《천보유사》에

“임금이 귀비를 가리켜 ‘말할 줄 아는 꽃[解語花]이다.’ 했다.” 하였다.

 

향로는 흠뻑 소야거에 젖었는데 / 香露低霑炤夜車

한 가지 사뿐 새벽 바람에 흔들리네 / 一枝輕拂曉風斜

금원의 복사꽃 오얏꽃 다 무색하건만 / 禁園桃李渾無色

너만이 말할 줄 아는 궁중 꽃과 맞섰구나 / 獨敵宮中解語花

 

木芍藥

 

李白集序曰。開元中初重木芍藥。植沈香亭前。會花繁開。上乘炤夜車。大眞妃以步輦從之。李白集淸

平調。略曰。名花傾國兩相歡。長得君王帶笑看。又天寶遺事云。帝指妃子曰。此解語花。

香露低霑炤夜車。一枝輕拂曉風斜。禁園桃李渾無色。獨敵宮中解語花。

 

○보련(步輦)으로 학사(學士)를 부르다

 

《유사(遺事)》에 “명황이 편전(便殿)에서, 요원숭(姚元崇)의 시무론(時務論)을 깊이 음미하고

있었다. 마침 칠월 십오 일이었다. 궂은비가 계속 내려 진흙이 신발을 덮었는데 임금이 근시에게,

보련을 메고 가서 학사를 불러오라고 하였다. 그때 요원숭이 한림학사로 있었다. 조야(朝野)가 다

이를 큰 영광으로 여겨 부러워했으니, 예부터 어진 이를 대우하는데 이러한 예는 없었다.” 하였다.

 

보련으로 궁전에 맞아 오니 / 步輦迎來玉帝家

아무리 가을비 마구 쏟아져 / 從敎秋雨瀉如河

온 길거리 진흙투성이지만 / 六街泥濘知多少

화전을 걷는 학사화는 아무렇지도 않아 / 未汚花甎學士靴

 

[주D-001]화전(花甎) : 꽃무늬를 놓아 만든 벽돌. 옛날 대궐 안 섬돌에 이 벽돌을 깔았다 한다.

 

步輦召學士

 

遺事云。明皇在便殿。甚思姚元崇論時務。七月十五曰。苦雨不止。泥濘盈迹。上令侍御者擡步輦召學士。

時元崇爲翰林學士。中外榮之。自古急賢。未之有也。

步輦迎來玉帝家。從敎秋雨瀉如河。六街泥濘知多少。未汚花甎學士靴。

 

○벽한서(辟寒犀)

 

《유사》에 “교지국(交趾國)에서 벽한서 한 그루를 진상해 왔다. 그 사신(使臣)의 말대로 금반

(金盤) 위에 올려 전내(殿內)에 놓아 두었는데, 따뜻한 기운이 사람에게 접근해 왔다. 임금이 그

까닭을 묻자 벽한서라고 하였다. 임금이 매우 기뻐하며 그 사신에게 상(賞)을 후히 내렸다.”

하였다.

 

기라(綺羅)의 훈기(熏氣)로도 봄날처럼 따뜻한데 / 羅綺香熏暖似春

임금은 한기(寒氣) 물리치는 진품(珍品)까지 좋아해 / 君王猶愛辟寒珍

인간에 납설이 석 자나 쌓일 적엔 / 人間臘雪盈三尺

어찌 얼어 죽은 빈민(貧民)인들 없었으랴 / 白屋那無凍死民

 

[주C-001]벽한서(辟寒犀) : 한기(寒氣)를 없애 주는 나무의 이름.

 

辟寒犀

遺事云。交趾國進犀一株。使者請以金盤置於殿中。溫溫有暖氣襲人。上問其故。曰此辟寒犀也。

上甚悅。厚賜之。

羅綺香熏暖似春。君王猶愛辟寒珍。人間臘雪盈三尺。白屋那無凍死民。

 

○월궁(月宮)

 

일사(逸史)에 “나공원(羅公遠)이 지팡이를 허공에 던져서 은교(銀橋)를 화현(化現)시키고 명황을

안내하여 월궁에 들어갔다. 이에 선녀 수백 명이 다 하얀 명주옷 차림으로 넓다란 궁정에서 춤추는

광경을 보고 그 곡(曲)을 묻자 예상우의(霓裳羽衣)라고 했다.” 하였다.

 

허공을 가로질러 은교가 화현되니 / 橫空一杖作銀橋

월궁을 보러 하늘을 밟아 올라갔네 / 行趁氷宮度碧霄

춤추는 맵시 귀비에게 자랑하려고 / 欲向玉妃誇舞態

눈 나부끼는 선녀의 옷소매 눈여겨보았겠지 / 細看仙袂雪飄颻

 

月宮

 

逸史云。羅公遠以柱杖擲空。化爲銀橋。引明皇入月宮。見數百人皆着素練。舞於廣庭。問其曲。

曰霓裳羽衣。橫空一杖作銀橋。行趁氷宮度碧霄。欲向玉妃誇舞態。細看仙袂雪飄颻。

 

○금패(金牌)로 술을 끊다

 

《유사(遺事)》에 “안녹산에 대한 임금의 총애가 갈수록 깊어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임금이 혹

독살을 당할까 염려하여 그에게 금패를 내려 술을 끊도록 했으므로 왕공(王公)들이 술을 권할 적에

는 으레 금패를 내보이며 칙명을 따라 술을 끊었다고 했다.” 하였다.

 

개원 천자의 계책 왜 그리 엉성한고 / 開元天子計何疏

칙명까지 내려 화근(禍根)을 감싸다니 / 准勅扶持孕禍軀

그 입부리 이미 날카로와진 그때이니 / 正是護成銛觜日

어느 신하가 선뜻 호추를 해치려 했겠는가 / 朝臣爭肯害胡雛

 

金牌斷酒

 

遺事云。安祿山眷寵旣深。人多嫉之。帝恐遇毒。賜祿山以金牌斷酒。每王公勸飮則示云。准勑

斷酒云。開元天子計何踈。准勑扶持孕禍軀。正是護成銛觜日。朝臣爭肯害胡雛。

 

○갈고(羯鼓)

 

《갈고록(羯鼓錄)》에 “갈고는 모양이 칠통(漆桶)과 비슷하며 그 밑에는 아상(牙床)을 받쳐 놓고

두 개의 막대기로 치는데, 높은 누각과 새벽 경치와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아주 좋은 배경이다.

명황이 이를 가장 좋아하여, 봄비가 막 개고 경치가 아름다울 적에는 손수 갈고를 가지고 난간에

올라 마음껏 치곤 했다.” 하였다. 또《광기(廣記)》에 “작은 전정(殿亭) 안에 버들꽃과 살구꽃

이 피려고 할 적에는 임금이 갈고를 가지고 마음껏 쳤는데, 그 곡(曲)을 ‘춘광호(春光好)’라

했으며 버들꽃과 살구꽃이 활짝 핀 모습을 돌아보고는 손을 들어 가리키고 웃으면서

‘이같은 놀이야말로 나를 하늘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어디 될 말이냐.’ 했다.” 하였다.

 

봄철 새벽 누각에 갈고 소리 요란한데 / 高樓春曉響如雷

분홍색 살구꽃 피기만을 재촉하누나 / 催却微紅杏拆開

일대의 번화가 운우처럼 흩어졌으니 / 一代繁華雲雨散

아상이고 옥삭이고 먼지 속에 묻혔어라 / 牙床玉索委塵埃

 

羯鼓

羯鼓錄云。鼓如漆桶。下以牙床承之。擊用兩杖。宜高樓曉景。明月淸風。明皇尤愛之。春雨始晴。

景物明麗。帝取鼓臨軒縱擊。又廣記曰。小殿亭內。柳杏將吐。上取鼓縱擊。曲名春光好。顧柳杏皆已

發拆。指而笑曰。此一事。不喚我作天公。可乎。

高樓春曉響如雷。催却微紅杏拆開。一代繁華雲雨散。牙床玉索委塵埃。

 

○금롱(金籠) 속의 귀뚜라미

 

《유사(遺事)》에 “매년 가을이 되면 궁중의 비첩(婢妾)들이 조그만 금롱 속에 귀뚜라미를 잡아

넣어 베개맡에 두고 밤마다 그 우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서민의 집에서도 다 이를 흉내내었다.”

하였다.

 

귀뚜라미는 자연에서 우는 소리가 좋아 / 蟋蟀偏宜砌底聽

금롱에서 무슨 별다른 울음 나올쏜가 / 金籠那有別般鳴

질탕한 풍류 인간에까지 새어 나와 / 風流漏洩人間世

궁중의 베개맡 소리를 흉내내었네 / 偸作宮中一枕聲

 

金籠蟋蟀

遺事云。每至秋時。宮中婢妾輩皆以小金籠捉蟋蟀。閉置枕畔。夜聽其聲。庶民之家皆效此也。

蟋蟀偏宜砌底聽。金籠那有別般鳴。風流漏洩人間世。偸作宮中一枕聲。

 

○미인이 입김으로 붓[筆]을 녹이다

《유사》에 “이백(李白)이 편전(便殿)에서 명황을 모시고 조서(詔書)를 짓게 되었는데, 때는

시월이었으나 날씨가 매우 추워 붓이 얼어 글을 쓸 수 없었다. 임금이 궁빈(宮嬪) 열 명을 불러

좌우(左右)에 앉힌 다음 각기 상아필(象牙筆)을 들고 입김을 불어 녹이게 하였으므로 이백이

드디어 조서를 쓰게 되었으니, 그가 받은 은총이 이러했다.” 하였다.

 

어찌 고운 입까지 애쓸 나위 있으랴 / 丹口何須用意呵

임금의 은총이 먼저 더 따뜻해 / 君恩纔煦暖先加

적선의 재사가 본시 꽃봉오리 같지만 / 謫仙才思春葩艶

미인까지 있고 보니 한층 더 높았으리 / 却對紅顔一倍多

 

美人呵筆

遺事云。李白於便殿。對明皇撰詔誥。時十月。大寒筆凍。莫書字。帝勑宮嬪十人。侍於左右。令各執

牙筆呵之。白遂取而書其詔。其受聖睠如此。

丹口何須用意呵。君恩纔煦暖先加。謫仙才思春葩艶。却對紅顔一倍多。

 

○칠보산(七寶山)

 

《유사》에 “명황이 근정루(勤政樓)에 칠보로 일곱 자 높이의 산좌(山座)를 만들어 놓고 여러

학사들을 불러 경의(經義)와 시무(時務)를 강론케 하여, 우승한 이만이 그 산좌에 올라 앉도록

했는데, 장구령(張九齡)의 의론이 마치 바람이 일듯 잇달아 나왔으므로 산좌에 오르게 되었고

다른 사람은 어림도 없었다.” 하였다.

 

경을 강하던 한전에서는 자리를 거듭하였을 뿐이요 / 談經漢殿惟重席

시를 짓던 용문에서도 금포를 도로 빼앗았을 뿐인데 / 落筆龍門只奪袍

개원 시대의 장 학사만이 / 爭及開元張學士

혼자 칠보의 산좌에 올랐구려 / 獨升七寶玉山高

 

[주D-001]경(經)을 강하던……뿐이요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대빙(戴憑)이 경학(經學)

         에 아주 밝았었다. 한번은 정조조하(正朝朝賀)차 백관(百官)이 모두 모였을 적에 임금이

         군신(群臣)에게 명하여, 경(經)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경의(經義)를

         묻게 하되, 만일 뜻이 잘 통하지 못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문득 그 사람의 자리[席]를

         빼앗아서 뜻이 잘 통하게 설명한 사람에게 보태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자 대빙이 경의에

         제일 능통하여 50여 석(席)을 거듭 빼앗아 앉게 되었다는 고사이다.

        《後漢書 卷79 戴憑傳》여기서는 당 현종 때의 장구령(張九齡)이 후한 때의 대빙보다

         훨씬 더 융숭한 대우를 임금으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

[주D-002]시를 짓던……뿐인데 : 당(唐) 나라 무후(武后)가 용문(龍門)에서 노닐 때 군신(群臣)들

         에게 시를 맨 먼저 지은 사람에게 금포(錦袍)를 하사하겠다고 하였다. 이때 좌사(左史)

         동방규(東方虯)의 시가 제일 먼저 작성되어 무후가 그에게 금포를 주었는데, 조금 뒤에

         송지문(宋之問)이 시를 지어 올리자 그를 보고는 무후가 크게 감탄하며 동방규에게

         주었던 금포를 도로 빼앗아 송지문에게 주었던 고사이다. 《新唐書 卷202 宋之問傳》

 

七寶山

 

遺事云。明皇於勤政樓。以七寶粧成山。座高七尺。召諸學士講議經旨及時務勝者得升焉。唯張九齡論

辨風生。升此座。餘人不可階也。

談經漢殿惟重席。落筆龍門只奪袍。爭及開元張學士。獨升七寶玉山高。

 

○수염을 태우다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은 우애가 매우 돈독하여 다섯 군데의 장막을 설치해 놓고 제왕

(諸王)들과 바꿔 가며 거처했으므로 이름을 ‘오왕장(五王帳)’이라 했으며, 설왕(薛王)이 병났

을 적에는 손수 약을 달이다가 실수하여 수염까지 태웠다.”하였다.

 

얄팍해지는 세정 가을 구름과 같아 / 世情漸薄似秋雲

아무리 형제 사이도 남남과 다름없는데 / 兄弟猶爲行路人

명황의 수염 태운 고사를 보니 / 一見唐皇爇鬚事

눈물이 나도 몰래 손수건 적시네 / 臨書不覺淚霑巾

 

爇鬚

明皇雜錄曰。帝友愛至厚。設五幄。與諸王更處。號五王帳。薛王病。親設藥。誤爇其鬚。

世情漸薄似秋雲。兄弟猶爲行路人。一見唐皇爇鬚事。臨書不覺淚霑巾。

 

○의죽(義竹)

 

《유사》에 “태액지(太液池) 언덕에 한 대나무가 있는데, 그 죽순이 끝내 멀리 떨어져서 나지

않고 마치 한군데에 심어 놓은 듯 그 자리에만 빽빽하게 났다. 임금이 제왕(諸王)들에게 ‘사람은

아무리 부모와 형제 사이라도 각기 이탈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 이 대나무는 그 근본을 끝내

이탈하지 않고 있으니, 이를 보는 이는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이르자 제왕들은, ‘예 예’

하였고, 임금은 이에 ‘의죽’이라 불렀다.” 하였다.

 

임금의 우애 돈독한 때문에 / 帝性怡怡篤友于

하늘의 감응도 전혀 틀림이 없어 / 天心感應合如符

짐짓 의죽을 빽빽히 우거지게 했으니 / 故敎義竹生蒙密

서로 떠받는 상체(常棣)의 꽃받침과 무어 다르랴 / 何異相承棣萼跗

 

[주D-001]서로 떠받는……꽃받침 : 상체(常棣)는 아가위나무. 이는 곧 형제간에 우애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경(詩經)》소아 상체(小雅 常棣)에 “활짝 핀

         아가위꽃, 얼마나 곱고 아름다우냐. 이 세상에 누구라 해도, 형제가 제일 좋느니.

         [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하였다.

 

義竹

遺事云。大液池岸有竹。牙笋未嘗相離。密密如栽也。帝與諸王謂曰。人世父子兄弟尙有離心。此竹宗

本未嘗相踈。覩此者可爲鑒勖。諸王唯唯。帝因呼曰義竹。

帝性怡怡篤友于。天心感應合如符。故敎義竹生蒙密。何異相承棣萼跗。

 

○대간무(戴竿舞)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근정루(勤政樓)에 올라 풍악을 갖추고 온갖 기예(技藝)를 벌

이게 했는데, 여우(女優) 대랑(大娘)이 대간무를 잘 추었다. 즉, 머리 위에 긴 장대를 이고 목상

(木床)을 올려놓은 다음 여러 어린애가 붉은 절모(節旄)를 들고 그 위에 올라서면 춤을 추어

음절(音節)을 맞춘다.” 하였다.

 

이날 이 자리에 현준(賢俊)을 가까이했던들 / 此樓當日邇英奇

얼굴에 이경(二更)까지의 피로도 없었으련만 / 玉色曾無乙夜疲

어찌 이같은 온갖 놀이 벌여서 / 胡奈今朝陳百戲

대랑의 머리에 어린애를 이게 되었던고 / 大娘頭上戴孩兒

 

戴竿舞

 

明皇雜錄云。帝御勤政樓。張樂百技。女優大娘善戴竿舞。頭戴長竿施木床。命小兒持絳節立其上而舞。

中音節。

此樓當日邇英奇。玉色曾無乙夜疲。胡奈今朝陳百戱。大娘頭上戴孩兒。

 

○목와(木瓦)

 

《명황잡록》에 “귀비의 아우 괵국부인(虢國夫人)에 대한 임금의 총애가 대단한 터이라 위사립

(韋嗣立)의 집을 탈취하여 그 당(堂)을 넓혔는데 뒤에 다시 위씨에게로 반환되었다. 어느 때 큰

바람에 나무 토막들이 굴러서 당위로 떨어졌으나 기와가 조금도 파손되지 않았기에 살펴보니 다

단단한 나무로 조각된 기와였다.” 하였다.

 

목와를 조각하느라 얼마나 애썼던고 / 雕成木瓦費何如

괜히 남의 집만 보수해 주고 말았네 / 虛葺人家竟未居

이는 위공이 세력에 못이겨 빼앗긴 게 아니라 / 不是韋公被豪奪

하늘이 괵국을 시켜 위공의 집 보수해 준 셈일세 / 天敎虢國理韋廬

 

木瓦

 

明皇雜錄曰。楊妃妹虢國夫人。恩傾一時。奪韋嗣立宅。以廣其堂。後復歸韋氏。因大風折木墮堂上不

損瓦。視之皆堅木也。

彫成木瓦費何如。虛葺人家竟未居。不是韋公被豪奪。天敎虢國理韋廬。

 

○귀비가 옥적(玉笛)을 불다

 

〈양비외전(楊妃外傳)〉에 “귀비가 몰래 영왕(寧王)의 옥적을 불다가 임금의 뜻에 거슬려 쫓겨났

는데 이윽고 다시 부름을 받아 돌아왔다.” 하였다. 장우(張祐)의 시에 “조용한 도원에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한가로이 영왕의 옥적을 제가 불고 있네.[小桃院靜無人見 閑把寧王玉笛吹]”

하였다.

 

봄바람 부는 그윽한 도원에 아무도 아는 이 없으니 / 春風深院沒人知

하얀 팔 걷어 올리고 한가로이 옥적을 부누나 / 皓腕閑將玉笛吹

몰래 영왕에게 접근함이 심상한 짓 아니거늘 / 竊向寧王非細事

그녀를 끝내 사랑하고 있는 임금이 가여워 / 可憐君意未終移

 

[주D-001]영왕(寧王) : 당 예종(唐睿宗)의 장자요 현종(玄宗)의 형으로, 처음에 황태자(皇太子)가

         되었다가 뒤에 영(寧) 땅의 왕(王)으로 봉해졌다.

 

楊妃吹玉笛

 

楊妃外傳曰。妃竊寧王玉笛吹。忤旨放出。已而復召。張祐詩曰。小桃院靜無人見。閑把寧王玉笛吹。

春風深院沒人知。皓腕閑將玉笛吹。竊向寧王非細事。可憐君意未終移。

 

○서룡뇌(瑞龍腦)

〈양비외전〉에 “교지국(交趾國)에서 서룡뇌를 진상해 왔는데 그 모양이 선잠(蟬蠶)과 비슷하였 다.

이를 임금이 귀비에게 주었는데 귀비가 몰래 안녹산에게 주었다.” 하였다.

 

기이한 향 서룡뇌는 귀비에게 준 건데 / 龍腦奇香帝屬嬪

어인 일로 호추 다른 본(本)에는 호노(胡奴)라 했다 가 차지하게 되었나 / 胡雛何事得爲珍

어양의 반기(叛旗)를 그대는 아는지 / 漁陽犯順君知否

귀비가 몰래 그를 좋아한 때문일세 / 都爲楊妃暗許親

 

[주D-001]어양(漁陽)의 반기(叛旗) : 당 현종 천보(天寶) 14년에 안녹산(安祿山)이 어양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龍腦蟬

楊妃外傳曰。交趾貢龍腦。有蟬蠶之狀。帝以賜妃。妃私遺安祿山。

龍腦奇香帝屬嬪。胡雛 一作奴 何事得爲珍。漁陽犯順君知否。都爲楊妃暗許親。

 

○엄공계(嚴公界)

《개원전신기(開元傳信記)》에 “임금이 근정루(勤政樓)에 나와 백성에게 주식(酒食)을 나누어

주는데, 인파가 마구 몰려들어 금오(金吾)가 제지시키지 못했다. 임금이 경조윤(京兆尹) 엄안지

(嚴安之)를 불러 규약을 세우라고 하자 안지가 수판(手板)으로 땅을 그어 한계를 정해 놓고, 이

한계를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것을 ‘엄공계’라 칭하며

온종일 아무도 범하는 자가 없었다.” 하였다.

 

군왕의 호령 천둥과 같아 / 君王號令劇雷馳

아무도 놀라지 않을 이 없건만 / 一震無人不失匙

어찌 도리어 경조윤에게 굽혀 / 何事反卑京兆尹

은근히 안지를 불러 부탁했던고 / 慇懃呼却一安之

 

[주D-001]금오(金吾) : 관명(官名)인 집금오(執金吾)의 준말로, 천자(天子)의 호위병을 말한다.

[주D-002]수판(手板) : 관리가 항시 띠 사이에 꽂고 있다가 임금의 명령이나 또는 임금에게 아뢸

일들을 기록하는 것, 즉 홀(笏)을 가리키는데 진(晉)ㆍ송(宋) 이후에 수판이라고 하였다.

 

嚴公界

開元傳信記曰。帝御勤政樓大脯。人物闐咽。金吾不能制。帝召京兆尹嚴安之。諭令戒約。安之以手

板畫地爲界。犯此者死。人呼爲嚴公界。終日無一犯者。

君王號令劇雷馳。一震無人不失匙。何事反卑京兆尹。慇懃呼却一安之。

 

○기사주(記事珠)

《유사(遺事)》에 “장열(張說)이 재상이 되자 어떤 사람이 구슬 하나를 선사해 왔다. 보랏빛에

광채가 있었고 이름을 ‘기사주’라 하여, 혹 잊은 일이 있을 때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면 심신

(心神)이 문득 명랑해지면서 기억이 죄다 떠오르므로, 장열이 비장해 두고 보물로 삼았다.”

하였다.

 

연공이야 잊는 일 없었으련만 / 燕公遺闕想應無

하찮은 구슬 하나로 기억을 살리려 했는데 / 記事猶憑一紺珠

무슨 일로 후세에 벼슬하는 자들은 / 底事後來居位者

귀 눈 가리고 일부러 바보인 척하는지 / 錮聰塗眼故昏愚

 

[주D-001]연공(燕公) : 당(唐) 나라 현종 때의 재상 장열(張說)의 봉호.

 

記事珠

遺事曰。張說爲宰相。有人惠一珠。紺色有光。名曰記事珠。或有闕忘之事。則以手持弄。便覺心神開

朗。一無所忘。說秘而寶也。

燕公遺闕想應無。記事猶憑一紺珠。底事後來居位者。錮聦塗眼故昏愚。

 

○등자[鐙]를 끊고 채찍을 붙잡다

 

《유사》에 “요원숭(姚元崇)이 형주목(荊州牧)으로 있은 지 3년 만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

는데, 이민(吏民)들이 흐느끼며 말머리를 둘러싸고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등자를 끊고

채찍까지 붙잡았다. 신목(新牧)이 이를 상주(上奏)하자, 조서를 내려 미행(美行)을 칭찬하고 금

(金) 1천 냥을 하사했다.” 하였다.

 

어진 관리 백성을 자식처럼 다루어 / 良牧臨民似母慈

온 고을서 자모(慈母)의 젖처럼 우러렀으니 / 一方如仰乳霑滋

채찍 붙들고 등자 끊어도 시원치 못해 / 留鞭截鐙猶爲淺

자모 잃은 아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 孃去兒留得不悲

 

截鐙留鞭

 

遺事曰。姚元崇牧荊州。三年受代。吏民泣。擁馬遮首不使去。皆截留鞭鐙。新牧奏之。褒詔美之。

賜金一千兩。

良牧臨民似母慈。一方如仰乳霑滋。留鞭截鐙猶爲淺。孃去兒留得不悲。

 

○화요(花妖)

 

《유사》에 “처음에 목작약(木芍藥)이 있어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지에 두 송이가 피었는데, 아침

에는 짙붉고 한낮에는 짙푸르고 해질 무렵에는 노랗고 밤중에는 희어, 낮과 밤으로 그 향기롭고

고움도 각기 달랐다. 임금이 ‘이는 꽃나무의 요정(妖精)이니 의아해할 바가 아니다.’ 했다.”

하였다.

 

작약의 붉고 누름은 아침저녁으로 다르고 / 芍藥紅黃朝暮態

귀비의 미모는 천백 가지 맵시일세 / 楊妃媚嫵百千姿

명황은 꽃나무의 요정만 알고 / 明皇獨識花妖在

사람의 요정 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네 / 愛却人妖自不知

 

花妖

遺事曰。初有木芍藥。一日。忽開一枝兩頭。朝深紅午深碧。暮黃夜白。晝夜香艶各異帝曰。此花。

木之妖。不足訝也。

芍藥紅黃朝暮態。楊妃媚嫵百千姿。明皇獨識花妖在。愛却人妖自不知。

 

○녹의사자(綠衣使者)

《유사》에 “장안(長安)의 부민(富民) 양숭의(楊崇義)의 아내 유씨(劉氏)가 이웃 사람 이감

(李弇)과 간통하면서 함께 숭의를 살해했다. 그 집에 있는 앵무새가 ‘범인은 이감이다.’ 하여

모든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명황이 듣고 그 앵무새를 녹의사자로 봉(封)했다.” 하였다.

 

진제의 궁송은 구실에 불과하고 / 秦帝宮松傳口實

위공의 녹학은 인심만 잃었는데 / 衛公祿鶴喪人心

당황은 이처럼 밝은 거울 보지 못하고 / 唐皇不見分明鑑

조잘대는 앵무새를 다시 사자로 봉했구려 / 又爵喃喃巧舌禽

 

[주D-001]진제(秦帝)의 궁송(宮松) : 진제는 곧 진 시황(秦始皇)을 가리킨 말인데, 진 시황이

         태산(泰山)에 올라가 봉선(封禪)할 적에 폭풍우가 몰아치자 다섯 그루의 소나무 밑에서

         이를 피하였으므로 뒤에 이 소나무들을 다섯 대부(大夫)로 봉(封)한 고사이다.

         《史記 卷六 秦始皇本紀》

[주D-002]위공(衛公)의……잃었는데 : 녹학(祿鶴)은 곧 학(鶴)에게 녹위(祿位)를 준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학을 매우 좋아하여 대부(大夫)가 타는 수레에 태우기까지

         하였는데, 그가 전쟁을 하려 할 적에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학을 시켜 전쟁

         하게 하라. 학은 실지로 녹위(祿位)가 있지만 내야 어떻게 싸우겠는가.” 하였다.

         《春秋左傳 閔公2年》

 

綠衣使者

 

遺事曰長安富民楊崇義妻劉氏。與隣人李弇通。共殺崇義。有鸚鵡語曰。殺者李弇也。遂敗。明皇聞之。

封爲綠衣使者。

秦帝宮松傳口實。衛公祿鶴喪人心。唐皇不見分明鑑。又爵喃喃巧舌禽。

 

○성취초(醒醉草)

 

《유사》에 “흥경지(興慶池) 남쪽 언덕에 풀 몇 포기가 났는데, 자주빛 잎에 향내가 맑았다.

한 사람이 술에 취하여 그 옆을 지나다가 술이 저절로 깨어 버린 일이 있은 뒤로는 취한 자가 그

풀잎을 따서 향내를 맡으면 즉시 깨어나므로 이름을 성취초라 했다.” 하였다.

 

흥경지 남쪽 언덕에 자초가 무성해 / 興慶池南紫草繁

코 찌르는 좋은 향내 난초와 같네 / 淸香撲鼻似蘭蓀

그 풀이 술 깨운다고 자랑 마소 / 莫言此草能醒酒

색에 취한 군왕은 깨우지 못하는걸 / 未解君王色醉昏

 

醒醉草

遺事曰。興慶池南岸。有草數叢。葉紫而苾。因有一人醉過於草傍。不覺失醉態。後有醉者摘草嗅之。

立然醒悟。故目爲醒醉草。

興慶池南紫草繁。淸香撲鼻似蘭蓀。莫言此草能醒酒。未解君王色醉昏。

 

○물오리를 만들고 배를 조각하다

 

《유사》에 “온천(溫泉) 어탕(御湯) 안에 옥련(玉蓮)이 있는데, 물은 그 옥련 밑에서 솟아

나온다. 매번 목욕할 적에는 금수(錦綉)로 물오리와 기러기를 만들고 또 조그만 배를 조각하여

장난거리로 삼았다.” 하였다.

 

옥련화 밑에 더운 물 솟아 나오는데 / 玉蓮花底沸湯流

금수(錦綉)로 물오리와 배를 만들어 띄웠구나 / 紅綉爲鳧更鈒舟

하지만 이곳은 여산이요 변수가 아니어서 / 只是驪山無汴水

천 리를 잇는 금범 놀이는 될 수 없었네 / 未成千里錦帆遊

 

[주D-001]천 리(千里)를……놀이 : 《대업기(大業記)》에 “양제(煬帝)가 강도(江都)에 행행(幸行)

         할 때에 탔던 용주(龍舟)가 비단으로 된 돛과 닻줄이었다.” 하였고,《개하기(開河記)》

         에는 “비단돛이 지나는 곳에는 향내가 백 리까지 풍겼다.” 하였다.

 

綉鳧鈒舟

遺事云。溫泉御湯中。有玉蓮湯。從蓮中湧出。每浴。以錦綉爲鳧鴈浮之。又鈒鏤小舟。以爲戱翫。

玉蓮花底沸湯流。紅綉爲鳧更鈒舟。只是驪山無汴水。未成千里錦帆遊。

 

○촉노(燭奴)

 

《유사》에 “신왕(申王)도 사치를 힘썼으니 그때의 유행이 그러하였다. 매일 밤 궁중에서 제왕

(諸王)ㆍ귀척(貴戚)들과 모여 잔치할 적에는 용단목(龍檀木)으로 동자(童子)를 조각하여 녹의(綠衣)

를 입히고 띠까지 띠게 한 다음 화촉(畫燭)을 들려서 좌우에 벌여 세워 놓고 이름을 촉노라 했으

므로 제궁(諸宮)ㆍ귀척들의 집에서도 다 이를 본받았다.” 하였다.

 

하나의 친왕으로 부와 귀 갖췄으니 / 身是親王富貴俱

주취 속에 날마다 놀아나도 되련만 / 合陳珠翠日歌呼

궁중에 어찌 하많은 시동(侍僮) 없어서 / 宮中豈乏僮千指

용단목 없애 가며 촉노를 만들었나 / 費盡龍檀作燭奴

 

[주D-001]친왕(親王) : 황제(皇帝)의 형제나 황제의 아들을 일컫는 말이다.

[주D-002]주취(珠翠) : 구슬과 비취(翡翠). 이것은 모두 여인의 발식(髮飾)에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전하여 여인의 머리 꾸미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여인을 가리킨 것이다.

 

燭奴

 

遺事曰。申王亦務奢侈。盖時使然。每夜宮中。與諸王貴戚聚宴。以龍檀木彫成童子。衣以綠衣。

繫之束帶。使執畫燭。列立於宴席。目爲燭奴。諸宮貴戚之家皆效之。

身是親王富貴俱。合陳珠翠日歌呼。宮中豈乏僮千指。費盡龍檀作燭奴。

 

○머리털을 베다

 

《개원전신기(開元傳信記)》에 “귀비가 항상 말로써 임금의 비위를 거스르자 임금이 노하여

고역사(高力士)를 시켜 짐차에 태워 사가(私家)로 내보냈다. 귀비가 머리털을 베어 역사에게 주며

‘다른 진귀한 물건은 다 임금이 주신 바이니 드릴 만한 것이 못되고, 이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바이니 첩(妾)의 연모하는 뜻을 드릴 수 있다.’ 하였다. 임금이 그 머리털을 받고는 눈물을

흘리며 바로 역사를 시켜 다시 돌아오게 했다.” 하였다.

 

너무도 깊은 애정 역정으로 바뀌어 / 愛極翻生拂意間

짐짓 싫은 말로 비위를 건드렸지 / 故將侵語屢掁干

칙명 받고 돌아온 귀비 뭐가 섭섭하랴 / 勅還外第妃何恨

칠흙 같은 머리털 환심 사고도 남았네 / 一朶烏雲足市歡

 

剪髮

 

開元傳信記曰。楊妃常有語侵帝。帝怒。召高力士以輜車載之其家。妃剪髮授力士曰。珍異。皆上所賜。

不足獻。惟此父母所生。可以獻妾慕戀之意。上得髮揮涕。遽令力士召歸。

極愛翻生拂意間。故將侵語屢掁干。勑還外第妃何恨。一朶烏雲足市歡。

 

○홍한(紅汗)

 

《유사(遺事)》에 “귀비가 매년 여름철에는 얇은 비단옷을 입고 시녀들을 시켜 부채질을 하여도

그 열(熱)이 해소되지 않고 땀이 나는데 붉고 매끄러운 가운데 향내가 많아, 혹 수건에 씻으면

그 빛깔이 홍도화(紅桃花)와 같았다.” 하였다. 또 《현종유록(玄宗遺錄)》에 “귀비가 마외역

(馬嵬驛)에서 목매어 죽었을 때 고역사(高力士)가 목맨 비단을 가져왔는데 눈물 자국이 다

담혈색(淡血色)과 같았다.” 하였다.

 

연약한 체질 더워도 못이겨 / 弱質難堪夏日遲

옥안의 흐른 땀 연지와도 같았는데 / 玉顔霑汗滴燕脂

어찌 알랴 한 점의 홍도색이 / 那知一點紅桃色

바로 비단에 피 흘린 때인 줄을 / 却是香羅濺血期

 

紅汗

遺事曰。貴妃每至夏月。常衣輕綃。使侍兒交扇鼓風。猶不解其熱。每有汗出。紅膩而多香。或拭之於

巾帕之上。其色如桃紅。又玄宗遺錄云。貴妃縊馬嵬。高力士奏以擁項羅上。視淚痕皆若淡血。

弱質難堪夏日遲。玉顔霑汗滴燕脂。那知一點紅桃色。却是香羅濺血期。

 

○금함(金函)

 

《유사》에 “명황이 국정(國政)을 걱정하고 힘써 바른 말을 다 받아들였고, 혹 풍간(諷諫)하는

소장(疏章)이 있으면 치도(治道)에 우수한 것을 뽑아 금함 속에 넣어 측근에 두고 수시로 꺼내

읽어 잠시도 게을리 한 바가 없었다.”고 하였다.

 

개원이 거의 성대(盛代)를 이룬 것은 / 開元幾致太平期

사념(邪念) 없이 간언(諫言)을 받아들여서네 / 摠爲虛懷納諫詞

금함을 끝내 거울로 삼았던들 / 若置金函長鑑戒

행차가 어찌 서촉(西蜀)에까지 미쳤으랴 / 翠華爭肯幸峨嵋

 

金函

遺事曰。明皇憂勤國政。諫無不從。或有章䟽諷諫。則探其理道。優長者。貯於金函中。日置於右。

時取讀之。未嘗懈忽也。

開元幾致大平期。揔爲虛懷納諫詞。若置金函長鑒戒。翠華爭肯幸峨嵋。

 

○부굴(富窟)

 

《유사》에 “왕원보(王元寶)는 도성(都城) 안의 큰 부호(富豪)로서 금은(金銀)으로 옥벽(屋壁)을

만들고 그 외부는 홍니(紅泥)로 발랐다. 또 집 안에 한 채의 예현당(禮賢堂)이 있는데, 침향목

(沈香木)ㆍ단향목(檀香木)으로 마루를 만들고 무부(碔砆)로 지면(池面)을 깔고 금문석(錦文石)

으로 주추를 만들었으며, 동선(銅線)으로 돈[錢]을 꿰어 후원 꽃길[花徑]에 깔았으니, 이는 비가

와도 미끄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에 사방의 빈객(賓客)들이 마치 자기집 찾아들듯 했으므로

사람들이 왕가(王家)의 부굴이라 했다.” 하였다.

 

왕랑의 부굴 참으로 사치하고 참람해 / 王郞富窟眞奢僭

등씨의 동산인들 어찌 감히 대항하랴 / 鄧氏銅山敢抗當

다만 한 가지 들출 만한 것은 / 惟有一端堪採處

아울러 예현당을 두었음일세 / 箇中兼置禮賢堂

 

[주D-001]무부(碔砆) : 옥돌. 즉 옥과 비슷한 아름다운 돌의 한 가지이다.

[주D-002]등씨(鄧氏)의 동산(銅山) : 등씨는 전한(前漢)의 등통(鄧通)을 말한다. 문제(文帝)가

         등통을 매우 총애하여 그를 부자(富者)로 만들기 위해, 촉(蜀)의 엄도(嚴道)에 있는

         동산(銅山)을 떼어 주어, 거기서 나는 동(銅)으로 돈을 주조해서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에, 등씨의 돈이 온 천하에 퍼졌었다. 《漢書 卷93 佞幸傳》

 

富窟

遺事曰。王元寶。都中巨豪也。常以金銀爲屋。壁以紅泥泥之。又於宅中。置一禮賢堂。以沈檀爲軒檻。

以碔砆甃池面。以錦文石爲柱礎。又以銅線穿錢。甃於後園花徑中。貴其泥雨不滑也。四方賓客。所至

如歸。故時人號曰王家富窟也。

王郞富窟眞奢僭。鄧氏銅山敢抗當。惟有一端堪採處。箇中兼置禮賢堂。

 

○총저(寵姐)가 휘장 뒤에서 노래부르다

 

《유사》에 “영왕궁(寧王宮)에 총저라는 계집이 있어 얼굴이 곱고 노래를 잘 했는데, 외객(外客)

들을 모아 잔치할 적마다 다른 기녀는 다 연석에 나와 있지만 총저만은 아무도 그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하루는 사객(詞客) 이백(李白)이 술이 얼근해진 김에 ‘일찍이 들으니 왕에게 총저가

있어 노래를 잘한다고 하오. 오늘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었고 제공(諸公)들도 권태를 느끼는 모양

인데 왕은 어찌 그녀를 이처럼 아끼시오.’ 하고 농담했다. 영왕이 웃고는 좌우를 시켜 칠보

(七寶)로 된 꽃휘장을 치고 총저를 불러 휘장 뒤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자 이백이 일어나 사례하며,

그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그 목소리를 들었으니 영광입니다.’ 했다.” 하였다.

 

노래하는 꾀꼬리 짙은 버들잎에 가리워 / 嬌鶯歌翳柳陰深

금빛 옷은 못보고 고운 소리만 들었네 / 不見金衣聽玉音

제풀에 한평생 한을 안고 갔으니 / 謾抱平生餘恨去

영왕은 괜히 적선의 간장만 녹이었지 / 寧王空惱謫仙心

 

寵姐隔障歌

 

遺事曰。寧王宮。有女寵姐者。美姿色。善謳唱。每宴外客。諸妓女盡在目前。惟寵姐。客莫能見。

詞客李白恃醉戱曰。久聞王有寵姐善歌。今酒肴醉飽。群公宴倦。王何慳此女。王笑謂左右曰。設七寶

花障。召姐於障後歌之。白起謝曰。雖不許見面。聞其聲亦幸矣。

嬌鸎歌翳柳陰深。不見金衣聽玉音。謾抱平生餘恨去。寧王空惱謫仙心。

 

○염노(念奴)

 

《유사》에 “염노는 얼굴이 곱고 노래를 잘하여 하루도 임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단판(檀板)

을 잡고 자리에 나와 좌우를 돌아볼 적마다 임금이 귀비에게 ‘저 아이는 너무 요염하여 눈매가

사람을 미혹시키며 목청을 굴려 노래할 적에는 그 소리가 마치 아침 놀[朝霞] 위에서 나오는 듯

하여, 종고(鍾鼓)와 쟁우(箏竽) 따위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려도 그 소리를 가로막을 수 없다.’

하였다. 여러 궁기(宮妓)들 중에서 임금의 특별한 귀염을 받았다.” 하였다.

 

임금이 한창 옥환만을 사랑하는 터이련만 / 帝意方專眷玉環

요염한 염노의 얼굴 알아주었네 / 尙知嬌艶念奴顔

은총을 두루 내려 사람들의 비방 막았던들 / 若均寵倖分人謗

저 호추(胡雛)가 어이 감히 난을 일으켰으랴 / 老羯何名敢作艱

 

[주D-001]옥환(玉環) : 양귀비(楊貴妃)의 소자(小字).

 

念奴

遺事曰。念奴者有姿色善歌唱。未嘗一日離帝左右。每執板當席。顧眄左右。帝謂妃子曰。此女妖

眼色媚人。每轉聲歌喉。則聲出於朝霞之上。雖鍾鼓箏竽嘈雜而莫能遏。宮妓中帝之鍾愛也。

帝意方專眷玉環。尙知嬌艶念奴顔。若均寵倖分人謗。老羯何名敢作艱。

 

○한(恨)을 해소시키는 꽃

 

《유사》에 “처음에 금원(禁苑) 안에 천엽도(千葉桃)가 있어 꽃이 만발하자 명황이 귀비와 함께

날마다 그 밑에 앉아 잔치했다. 임금이 ‘원추리꽃[萱花]만 근심을 잊게 할 뿐 아니라 이 꽃도

한을 해소시켜 준다.’ 했다.” 하였다.

 

날마다 미색(美色) 끼고 마음껏 즐겨 / 趁日窮歡擁色嬌

평화로운 세상에 태산이 흔들릴 건 걱정도 않으면서 / 時平莫慮泰山搖

마음속에 조그마한 한만 있으면 / 心頭有底些些恨

문득 요화에 기대어 해소시키려 하네 / 却倚妖花欲自銷

 

消恨花

 

遺事云。明皇於禁苑中。初有千葉桃盛開。帝與貴妃逐日宴於樹下。帝曰。不獨萱草忘憂。此花亦能

銷恨。

趁日窮歡擁色嬌。時平莫慮泰山搖。心頭有底些些恨。却倚妖花欲自銷。

 

○춤추는 말[舞馬]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말 1백 필을 뽑아 춤을 가르쳤는데 좌우부(左右部)로 분류

하여 각기 ‘모가(某家)의 교마(驕馬)’라는 명칭을 붙였고 그 곡(曲)은 ‘경배악(傾柸樂)’이라

하여 10곡이나 된다. 말들에게는 다 금수(錦綉)로 옷을 지어 입히고 금(金)으로 고리[環]를

만들어 갈기 위에 장식했다. 풍악이 시작되면 말들이 머리를 들고 꼬리를 치면서 종(縱)으로 횡

(橫)으로 음절(音節)을 맞췄다. 또 삼중(三重)의 목탑(木榻)을 설치한 다음 말들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빙빙 돌면서 그 묘(妙)를 더욱 다하게 했다. 안녹산이 입경(入京)하여 수십 필을 범양(范陽)

으로 몰아갔고, 녹산이 패한 뒤에는 전숭사(田崇嗣)의 군(軍)으로 들어갔는데, 춤추는 재주를

가진 줄은 알지 못했다. 하루는 큰 잔치를 베풀고 풍악이 시작되었다. 말들이 풍악 소리를 듣고

춤을 추자 말 다스리는 사람[廐人]이, 요괴(妖怪)스럽다 하여 쳐서 죽기에 이르렀다.” 하였다.

 

춤추는 궁녀의 하얀 허리 싫어져 / 厭見宮腰束素回

다시 교마 가르쳐 재주 부리게 하니 / 更敎驕馬巧徘徊

삼중의 목탑 위서 기교 부리다가 / 三層榻上跳呈技

당가를 춤으로 망쳐 놓고야 내려왔네 / 舞破唐家始下來

 

[주D-001]교마(驕馬) : 키가 6척(尺)이 되는 말을 가리킨다.

 

舞馬

明皇雜錄曰。帝敎舞馬四百蹄。分爲左右部。各有名稱。曰某家驕。其曲謂之傾柸樂者十曲。馬皆衣之

以錦綉。絡以金環。樂作。奮首鼓尾。縱橫應節。又設三層木榻。置馬其上。周旋益妙。祿山入京。

取數千匹歸范陽。祿山敗。入田崇嗣軍。不知其技也。一日。大饗樂作。馬聞樂而舞。廐人以爲妖。

擊之至斃。

猒見宮腰束素回。更敎驕馬巧徘徊。三層榻上跳呈技。舞破唐家始下來。

 

○설의랑(雪衣娘)

 

《명황잡록》에 “영남(嶺南)에서 진상한 앵무새를 궁중에 두고 길러 길이 매우 잘들어 사람의

말을 다 깨쳤는데, 이름을 ‘설의랑’ 이라 하였다. 하루는 귀비의 화장대 위에 날아와 앉으며

새매에게 덮치기 당하는 꿈을 꾸었다.’ 하였다. 귀비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가르쳐

주어 지성으로 지송(持誦)했다. 그 뒤에 데리고 원중(苑中)에 나갔다가 과연 몹시 사나운 새에게

죽음을 당하자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 하였다.

 

미인과 앵무새 서로 비슷해 / 美人鸚鵡略相同

귀비 사랑 융숭도 하여라 / 偏受宮妃眷愛豐

사나운 새에게 죽은 것이 그 조짐일세 / 鷙鳥掠殘先有讖

옥안이 오랑캐 티끌 속에 사라져가려고 / 玉顔隨斃虜塵中

 

雪衣娘

 

明皇雜錄曰。嶺南進白鸚鵡。養之宮中。頗馴熟。洞曉人言。號雪衣娘。一日。飛上妃子粧臺曰。

夢爲鷹鷒所搏。妃子授以心經。持誦甚精。後携之苑中。果爲鷙鳥所斃。立塚。

美人鸚鵡略相同。偏受宮妃眷愛豐。鷙鳥掠殘先有讖。玉顔隨斃虜塵中。

 

○귀비(貴妃)를 내보내다

 

《명황유록(明皇遺錄)》에 “어양(漁陽)의 반서(叛書)가 도착하자 육군(六軍)이 부진 상태에

빠졌다. 고역사(高力士)는 ‘온 군중(軍中)이 다 화(禍)의 뿌리가 아직 행궁(行宮) 안에 있다

합니다.’ 아뢰었고, 후원길(侯元吉)은 ‘귀비의 머리를 베어 태백기(太白旗)에 매달아 제군

(諸軍)을 호령하기 바랍니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귀비는 후궁의 귀인(貴人)이다. 쥐[鼠] 를

때려 잡고 싶어도 그릇[器] 깨질까가 염려이거늘 어찌 꼭 머리를 매달아야만 군중이 알겠느냐.’

고 꾸짖자, 역사가 다시 ‘바라건대, 폐하(陛下)는 직접 귀비에게 죽음을 내려 군심 (軍心)을

위로하소서.’하고 아뢰었다. 귀비가 ‘폐하는 임금의 위력으로 어찌 하나의 여인(女人)도 살리지

못합니까? 온 집안이 몰살을 당했는데도 그 화(禍)가 첩(妾)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하고 울부짖었다. 임금이 ‘수만의 입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국충(國忠) 등이 비록

죽었으나 군세(軍勢)가 아직도 부진하고 있으니 귀비는 한번 죽음으로 천하의 비방을 막아 달라’

고 하자 귀비가 ‘폐하는 몇 걸음만이라도 첩을 걷게 해주 소서. 그러면 첩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고 애원했다. 좌우가 귀비를 끌고 나가자 임금은 일어서서 멍한 눈으로 보내었고

귀비는 열 걸음에서 아홉 번이나 뒤돌아보았는데, 임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턱에 고였다.”

하였다.

 

흉흉한 군정 제지하기 어려워 / 軍情洶洶固難違

억지로 미인 보내며 눈물 적시네 / 忍遣紅顔正掩暉

어찌 대당 천자의 존위(尊威)로도 / 豈以大唐天子貴

하나의 궁비를 비호하지 못했던고 / 勢窮莫庇一宮妃

 

送妃子

 

明皇遺錄曰。漁陽叛書聞。六軍不進。力士奏曰。軍中皆言禍胎尙在行宮。侯元吉前奏願斬貴妃首。

懸之太白旗以令諸中。帝叱曰。妃子。後宮之貴人。投鼠尙忌器。何必懸首而軍中方知也。力士奏曰。

願陛下面賜妃子死。以慰軍心。貴妃泣曰。上帝之尊。勢豈不庇能一婦人使之生乎。一門俱族。而延及

臣妾。得無甚乎。帝曰。萬口一辭。牢不可破。國忠等雖死。軍猶不發。妃子一死。以塞天下之謗。

妃子曰。願得帝送妾數步。妾死無憾。左右引妃子去。帝起立目送之。妃子十步九反顧。帝泣下交頤。

軍情洶洶固難違。忍遣紅顔正掩暉。豈以大唐天子貴。勢窮莫庇一宮妃。

 

○우림령곡(雨淋鈴曲)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서촉(西蜀)에 행행(行幸)하여 맨 처음 사곡(斜谷)에 들어섰을

때 장마가 열흘 동안 계속되었는데 잔도(棧道) 안에서 빗방울 소리가 났다. 임금이 마침 귀비를

상념(傷念)하던 터라 그 소리를 취하여 우림령곡을 만들어 한을 나타냈다. 그때 이원 제자(梨園弟

子)들 가운데 장야호(張野狐) 한 사람만이 필률(觱篥)을 다루었으므로 이 곡을 불게 하여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하였다.

 

험악한 잔도에 장마마저 졌는데 / 棧道崎嶇雨潦俱

아직도 귀비의 고움 그리고 있네 / 此時猶念玉妃姝

은근히 우림령곡 손수 지어 / 慇懃自製霖鈴曲

장야호의 필률에 의뢰하곤 하누나 / 觱篥時憑張野狐

 

[주D-001]이원 제자(梨園弟子) : 이원은 배우(俳優)들의 기교(技巧)를 닦는 곳이고 제자란 곧

         연극(演劇)하는 배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 장안(長安)의 금원(禁苑)

         안에 있는 이원에서 제자 3백 명을 뽑아 속악(俗樂)을 가르쳤던 데서 연유된 것이다.

 

雨淋鈴

 

明皇雜錄曰。帝幸蜀。初入斜谷。霖雨彌旬。棧道中聞鈴聲。帝方悼念貴妃。因採其聲。爲雨霖鈴曲以

寄恨焉。時梨園弟子唯張野狐一人善觱篥。因使吹之。遂傳于世。

棧道崎嶇雨潦俱。此時猶念玉妃姝。殷勤自製霖鈴曲。觱篥時憑張野狐。

 

○응벽지(凝碧池)

 

《명황잡록》에 “안녹산이 대궐을 범하자 왕유(王維) 등 몇 사람이 적당에 의해 승사(僧寺)에

구류되었다. 하루는 적당들이 응벽지에서 회음(會飮)하는데 이원제자(梨園弟子) 수백 명을 시켜

풍악을 울리게 했다. 왕유가 듣고 ‘마음 상할사 만호에 야연만 끼었으니, 백관이 언제나 다시

임금을 뵙게 될꼬. 깊은 궁 안에 느티나무 잎 지는데, 응벽지 위에선 풍악 소리 나누나.

[萬戶傷心生野煙 百官何日再朝天 秋槐落葉深宮裡 凝碧池頭奏管絃]’ 하는 시를 지어 벽(壁)에 써

놓았다. 적당이 평정된 뒤에 왕유는 이 시로 말미암아 견책을 면하게 되었다.” 하였다.

 

맑은 금지에 오랑캐 티끌 자욱한데 / 禁池淸浪涴胡塵

왕랑만이 이를 상심해 하였네 / 獨有王郞自慘神

강개한 뜻으로 시를 쓴 건 대단한 담력일세 / 慷慨題詩眞有膽

어쩌다가 적당 가운데 글 아는 자 없었던고 / 賊中寧欠解文人

 

碧池

 

明皇雜錄曰。祿山犯闕。王維等數人爲賊拘執于僧寺。一日。逆黨會飮于凝碧池。以梨園數百人奏樂。

維聞作詩一絶曰。萬戶傷心生野煙。百官何日再朝天。秋槐落葉深宮裡。凝碧池頭奏管絃。書于壁。

賊平。維以此詩免譴。

禁池淸浪涴胡塵。獨有王郞自慘神。慷慨題詩眞有膽。賊中寧欠解文人。

 

○금속보환(金粟寶環)

 

《명황잡록》에 “여우(女優) 사아만(謝阿蠻)은 능파곡(凌波曲)의 춤을 잘 추었다. 궁중과 제이

(諸姨)의 집에 드나들 때 귀비가 매우 후하게 대우해 주었는데, 임금이 서촉(西蜀)에서 화청궁

(華淸宮)으로 돌아온 뒤 그녀를 불러오게 했다. 그녀가 금속보환을 꺼내어 드리며 ‘이는 귀비가

주신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받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하였다.

 

나라 망친 건 귀비의 그 웃음이라 / 國破楊妃一笑姿

서촉의 파천이 그 뉘 탓이던가 / 鑾輿播越是因誰

그래도 당시의 일 뉘우치지 못해 / 不曾懲創當時事

다시 보환 보고 슬퍼하누나 / 更對遺環雪泣悲

 

金粟環

明皇雜錄曰。女伶謝阿蠻善舞凌波曲。出入宮中及諸姨宅。妃子待之甚厚。帝自蜀還。過華淸宮。

令召焉。阿蠻出金粟寶環以獻曰。此貴妃所賜也。帝持翫。不覺墮淚。

國破楊妃一笑姿。鑾輿播越是因誰。不曾懲創當時事。更對遺環雪泣悲。

 

○망월대(望月臺)

《유사(遺事)》에 “현종(玄宗)이 팔월 십오일 밤에 귀비와 함께 태액지(太液池)에 나와 난간을

기대고 달을 구경하다가 달이 제대로 보이지 않자 내심 불쾌하게 여겼다. 이에 측근에게 ‘태액지

서편 언덕에 백 척 높이의 대(臺)를 따로 만들어, 명년에 내가 귀비와 함께 달을 구경할 수 있도

록 하라.’ 명하였다. 그러나 안녹산의 병란을 겪은 뒤로는 다시 설치하지 않고 그 빈터만 남아

있다.” 하였다.

 

좋은 계절에 멋진 행락 그지없으련만 / 良辰樂事喜參差

괜히 높은 대 만들라며 후기를 말하누나 / 虛築高臺指後期

아 저 가을 달만은 / 唯有年年秋夜月

예나 이제나 하늘 가에 걸려 있네 / 一輪依舊掛天涯

 

望月臺

 

遺事曰。玄宗八月十五日夜。與貴妃臨大液池。憑欄望月不盡。帝意不快。遂勑令左右。於池西岸。

別築百尺高臺。吾與妃子來年望月。後經祿山之兵。不復置焉。唯有基址而已。

良辰樂事喜參差。虛築高臺指後期。唯有年年秋夜月。一輪依舊掛天涯。

 

○안녹산의 저택을 짓다

 

《당서(唐書)》에 “임금이 도성(都城) 안에 녹산의 저택을 지을 때 환관(宦官)에게 공사의 감독을

맡기며 ‘공사의 부서(部署)를 잘 짜서 진행하라. 녹산은 눈이 높은 놈이니 나의 경영(經營)을

비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일렀다. 사슬 무늬를 아로새긴 문이 서로 통하고, 대관(臺觀)과

지소(池沼)가 극히 호화스러우며, 역막(帟幕)은 모두 비단으로 하고, 금은(金銀)으로 키[篣]ㆍ

광주리[筐]ㆍ조리(笊籬)까지 만들었으니, 그 시어(侍御)와 복식(服食)이 아마 임금도 여기에서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임금이 근정루에 올랐을 때 악좌(幄坐) 좌편에 금계(金鷄)를 수놓은 큰

장막을 치고 특별 좌탑(坐榻)을 마련한 다음 녹산을 앉혀 그 융숭한 은총을 보였다. 태자(太子)가

악좌에 앉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닙니다.’고 간하자 임금이 ‘저 되놈에게 남다른 상(相)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일부러 제압시키기 위함이다.’ 했고, 또 ‘저 되놈에게 반역의 상이 있다.’고

했다.” 하였다.

 

되놈의 반상을 이미 알고도 / 胡奴反相帝曾知

제거는커녕 되려 총애하다니 / 斥去猶遲更寵爲

온 천하도 하찮게 보는 그 눈인데 / 眼孔已容天下大

그까짓 저택이야 말해 무엇하랴 / 區區第宅若爲支

 

[주D-001]악좌(幄坐) : 임금이 거둥할 때 쉬어 앉도록 장막을 둘러친 곳.

 

爲祿山起第

 

唐書曰。帝爲祿山起第京師。以中人督役。戒曰。善爲部署。祿山眼孔大。毋令笑我爲。鎖戶交䟽。

臺觀池沼華簪。帟幕率緹繡。金銀爲篣筐籬。大抵服御。雖乘輿不能過。帝登勤政樓。幄坐之左。

張金雞大障。置特榻詔祿山坐。以示尊寵。太子諫幄坐非人臣當得。帝曰。胡有異相。我欲猒之。

帝又曰。胡有叛相。

胡奴反相帝曾知。斥去猶遲更寵爲。眼孔已容天下大。區區第宅若爲支。

 

○낙비지(落妃池)

 

양비외전(楊妃外傳)에 “귀비는 촉지(蜀地)에 태어났는데 잘못해서 못[池]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귀비가 된 뒤에 그 못을 ‘낙비지’라 불렀다.” 하였다.

 

태진의 출생지가 본시 아미이긴 하나 / 太眞雖本出峩嵋

임금의 순유를 어찌 기약했으랴 / 玉輦巡遊豈所期

의외에도 행차가 서촉에 닿아 / 一旦行宮西入蜀

예전의 낙비지를 보았으리 / 忍看當日落妃池

 

落妃池

 

楊妃外傳曰。貴妃生於蜀。誤墜池中。後貴呼爲落妃池。

太眞雖本出峩。玉輦巡遊豈所期。一旦行宮西入蜀。忍看當日落飛池。

 

○꿈에 태진원(太眞院)에 노닐다

 

《현종유록(玄宗遺錄)》에 “임금이 고역사에게 ‘내가 귀비를 사별한 뒤로 묘연(杳然)히 꿈에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을 바르게 하고 소선(素膳)을 들면서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했는데, 과연

꿈의 감응이 있었다. 꿈에 한 곳에 당도하니 만학(萬壑)에는 연하(煙霞)가 끼고 천봉(千峯)에는

화목(花木)이 무성하며 차가운 물결이 눈에 가득하고 뛰어난 경치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푸른

연기와 붉은 기운과 〈중략〉 백옥(白玉)이 여장(女牆)에 걸리고 황금으로 ‘동허제일궁(東虛第

一宮)’이라 제자(題字)하였다. 다시 취의동자(翠衣童子)의 안내로 한 원(院)에 당도하니 ‘태일

태진원상비원(太一太眞元上妃院)’이라 제자했고 태진비(太眞妃)는 운모병(雲母屛)으로 가리고

앉아 있어서 그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임금이 ‘그 고운 얼굴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지금 병풍으로 가리는 것은 전날에 서로 사랑하던 정의가 아닌것

같다.’고 애원했다. 태진비가 그제야 몸을 절반쯤 드러냈는데 그녀의 전날 새 단장[新粧]과

방불하고 모습도 비슷했다. 임금이 보자마자 앞으로 뛰어들어 그 손목을 잡는 순간 놀라운 바람이

발밑에서 일어나며 몸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했다.” 하였다.

 

아득한 연하에 자취가 겹겹인데 / 縹緲煙霞紫翠重

선동의 안내로 태진궁에 들어갔네 / 仙童導入太眞宮

장엄하게 단장된 얼굴 어렴풋이 보고는 / 依俙一見嚴粧面

허공에서 떨어지듯 맑은 꿈 깨었어라 / 淸夢驚來若墮空

 

[주D-001]자취(紫翠) : 자줏빛과 푸른빛. 전(轉)하여 산의 경치를 형용한 말이다.

 

夢遊大眞院

 

玄宗遺錄曰。帝謂力士曰。吾自棄去妃子。杳無夢寐。齊心膳素。宜有所禱。果有夢應。夢至一處。

萬壑煙霞。千峯花木。滿目寒濤。驚人絶景。翠煙絳氣云云。白玉掛陴。黃金題字曰。東虛第一宮。

又翠衣童子前導至一院。題曰太一大眞元上妃院。大眞妃隔雲母屛而坐。不見其形。但聞其聲。帝曰。

願得一見天姿。何恨此屛。似非疇昔相愛之意。妃露半身。髣髴新粧。依俙舊色。帝一見踊躍。前執其

手。則驚風起於足下。若墮天云。

縹緲煙霞紫翠重。仙童導入大眞宮。依俙一見嚴粧面。淸夢驚來若墮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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