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역사 사료

(주서 열전) 周書 列傳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2.12.30|조회수66 목록 댓글 0

周書  列傳 (주서 열전)

 

 주대(周代)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당대(唐代)의 영호덕분(令狐德)이 편찬했다. 628년(貞觀 2)에 영호덕분이 최인사(崔仁師)·잠문본(岑文本)과 함께 이 책의 편찬을 맡았으며,

진숙달(陳叔達)·당검(唐儉)도 참가하여 완성했다. 이 책은 북송(北宋) 말기에 손상을 입어 후세 사람이<북사 北史〉에서 보충한 부분이 많으며, 현존하는 〈주서〉는 당대의 원저와는 다르다.
 

周書卷四十九
傳列 第四十一
異域上: 高麗(고구려)·百濟.

 

前言(머릿말)

蓋天地之所覆載, 至大矣; 日月之所臨照, 至廣矣. 然則萬物之內, 民人寡而禽獸多; 兩儀之間, 中土局而庶俗曠. 求之鄒說, 詭怪之迹實繁; 考之《山經》, 奇譎之詞匪一. <周>·<孔>存而不論, 是非紛而莫辯. <秦皇>鞭笞天下,  武於遐方; <漢武>士馬彊盛, 肆志於遠 . <匈奴>旣却, 其國已虛; 犬馬旣來,/$《北史》卷九四[犬]作[天]. 二<張>皆以爲當從《北史》作[天]. 按[天馬] 見《史記》卷一二三《大宛傳》·《漢書》卷九六《西域傳》, 且<漢武帝>有天馬 之歌, 作[天]是.$/ 其民亦困. 是知 海龍堆, 天所以絶夷夏也; 炎方朔漠, 地所以限內外也.  乎時非<秦>·<漢>, 志甚< >·<劉>, 違天道以求其功,  民力而從所欲, 顚墜之 , 固不旋踵. 是以先王設敎, 內諸夏而外夷狄; 往哲垂範, 美樹德而鄙廣地. 雖<禹>迹之東漸西被, 不過海及流沙; 《王制》之自北 南, 裁稱穴居交趾. 豈非道貫三古, 義高百代者乎.

 

대개 천지는 크고, 일월은 넓다. 그러한 연후로 만물을 품으니 사람등는 적고 금수는 많다. 이런 양쪽 사이에 중국의 형세가 있으니 많은 풍속이 밝다. 추나라의 말을 구하니 괴이한

흔적이 많다. '산경'을 고찰해보니, 기이한 말이 한 상자나 된다. 주공와 공자의 존재를

논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지 못하니 말 할 수가 없다. '진황'이 천하를 다스리어, 무를 더럽히어 사방이 멀리하였다. '한 무제'는 선비와 말이 강성하게 되고, 방자한 뜻으로 다스림이 멀어졌다. '흉노'는 이미 물리쳤으나 그 나라는 이미 비어 있었다. 개와 말은 이미 오니 그 백성들 역시 통하지 않았다. 안해와 용퇴를 바로 아니, 하늘이 오랑캐와 중국을

끊었다. 염방이 삭막해지니 땅이 내외에 한정되어졌다. 이에 '진'과 '한'의 배반기에 '영'과 '유'가 성하니, 천도를 어기어 그 공을 구하니, 백성의 힘을 빼앗어, 하고자 함을 나아가니 몰락하여 피를 흘리고, 한결같이 돌아서질 못하였다. 이로부터 선왕들의 가르침이, 안으로는 중국의 여러 제후와 밖으로 오랑캐들에게 분명한 법으로 가니 아르다운 덕이 넓은 땅에 드리웠다. 비록 '우'의 행적이 동서에 미쳤지만, 바다와 사막을 넘지는 않으니, '왕제'에 스스로 북쪽과 남쪽에 가서, 굴에 사는 사람과 사귀고 제도하였다. 어찌 삼고의 이치를 꿰뚤었다

하지 않겠는가? 의가 높아 백대를 가는구나.

 

<有周>承喪亂之後, 屬戰爭之日, 定四表以武功, 安三邊以權道. <趙>·<魏> 尙梗, 則結姻於北狄; 廐庫未實, 則通好於西戎. 由是德刑具擧, 聲名遐 ./$<宋>本[名]作[明]. <張元濟>云:[{昭其聲也}{昭其明也}-按見《左傳》<桓>二年-{聲明}二字可通.]$/ 卉服氈 , 輻 於屬國; 商胡販客, 塡委於旗亭. 雖東 漏<三吳>之地, 南巡阻<百越>之境, 而國威之所肅服, 風化之所覃被, 亦足爲弘矣. 其四夷來朝聘者, 今竝紀之於後. 至於道路遠近, 物産風俗, 詳諸前史, 或有不同. 斯皆錄其當時所記, 以備遺闕云爾.

 

'주'가 어지러움의 위에 올랐는데, 전쟁의 해에 속하여 사방의 무공으로 정하여 삼변이 편안케 하니 도를 분별하였다. '조'와 '위'는 굳셈을 숭상하여 북쪽 오랑캐와 결혼을 하고, 마굿간이 가득차지 않아 서쪽의 오랑캐와 친하였다. 이로부터 덕과 형벌을 갖추어 움직이니 성명이 멀리 미치었다. 초복과 털옷 가죽옷등이 속하는 나라를 엮고, 호인과 장사함을 맡기었다(?). 비록 동으로 '삼오'의 땅을 다스리고, 남쪽으로 '백월'의 경계에 이르나,  나라의 위엄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이 바람이 퍼지는 것과 같아, 역시 그 발자취를 넓히게 되었다. 이에 사방의 오랑캐가 조알을 하러 오니 이제 뒤에 기강으로 아울렀다. 도로가 멀고 가까움이 있어, 물산과 풍속이 앞선 사료에 나타나 있는 것과 혹 같지 않음이 있다. 이에 모두 그 때의 기록을 기록하는 것이니 이로써 전하여 대궐에 남김이 이를 일컷는 것이다.

 

高麗 (고려:고구려)

<高麗>者, 其先出於<夫餘>. 自言始祖曰<朱蒙>, <河伯>女感日影所孕也. <朱蒙>長而有材 , <夫餘>人惡而逐之. 土于<紇斗骨城>,/$《北史》殿本卷九四《高麗傳》作[紇升滑城],《北史》百衲本·《魏書》卷一  《高句麗傳》·《通典》卷一八六高句麗條·《冊府》卷九五六-一一二四二頁-都作[紇升骨城]. 按[骨][滑]同音. [升][斗] 書常相混, 不知孰是.$/ 自號曰<高句麗>, 仍以<高>爲氏. 其孫<莫來>漸盛,/$《魏書》本傳稱[<朱蒙>死, <閭達>代立; <閭達>死, 子<如栗>代立; <如栗>死, 子<莫來>代立]. 《隋書》卷八一《高麗傳》亦以<莫來>爲<閭達>孫, 則是<朱蒙>曾孫. 《北史》本傳百衲本·殿本缺<閭達>一代, 則<莫來>爲<朱蒙>孫, 與《周書》同, 而局本却又有[閭達], 疑據《魏書》補.$/ 擊<夫餘>而臣之. <莫來>裔孫<璉>, 始通使於<後魏>.

 

'고려'는 먼저 '부여'에서 나왔다. 스스로 말하길 시조는 '주몽'이라 한다. '하백'의 여자가 태양의 그림자를 느끼어 그곳에서 아이를 배었다. '주몽'이 자라나 다스림의 재주가 있어, '부여'사람들이 미워하니 이에 쫓겨났다. 땅을 '흘두골성'에 잡고, 스스로 '고구려'라 불렀다. 이에 '고'로 씨를 삼았다. 그 손자 '막래'때에 점점 성하더니, '부여'를 공격하여 이에 신하로 삼았다. '막래'의 후손중에 '련'이 있는데, 처음으로 '후위'에 사신을 보내어 통하

였다.

 

其地, 東至<新羅>, 西渡<遼水>二千里, 南接<百濟>, 北隣<靺鞨>千餘里. 治<平壤城>. 其城,

東西六里, 南臨<浿水>. 城內唯積倉儲器備, 寇賊至日, 方入固守. 王則別爲宅於其側, 不常居之. 其外有<國內城>及<漢城>, 亦別都也, 復有<遼東>·<玄 >等數十城, 皆置官司, 以相統攝.

 

그 땅은 동쪽으로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 '요수'를 건너 이천리이며, 남쪽으로 '백제'에 접하며, 북쪽으로 천여리에 '말갈'과 이웃한다. '평양성'에서 다스린다. 그 성은 동서로

육리이고, 남쪽은 '패수'에 임한다. 성내에는 오직 창고에 그릇을 쌓아두고 대비하는데,

도적이 이르르면, 사방에서 들어와 오로지 수비한다. 왕은 그 곁에 집을 나누어 짓는데,

항상 이에 거처하지는 않는다. 그 외에 '국내성'과 '한성'이 있다. 즉 다른 도읍이다. 다시 '요동', '현토'등 수십성이 있는데, 모두 관리를 두고, 이로써 서로 관리한다.

 

大官有大對盧, 次有太大兄·大兄·小兄·意俟奢·/$《隋書》本傳作[意侯奢], 《北史》作[竟侯奢].$/ 烏拙·太大使者·大使者·小使者· 褥奢· 屬·仙人幷褥薩凡十三等, 分掌內外事焉. 其大對盧, 則以彊弱相陵, 奪而自爲之, 不由王之署置也. 其刑法: 謀反及叛者, 先以火焚 , 然後斬首, 籍沒其家; 盜者, 十餘倍徵贓; 若貧不能備, 及負公私債者, 皆聽評其子女爲奴婢以償之.

 

큰 관리로 '대대로'가 있고, 다음으로 '태대형', '대형', '소형', '의사사', '오졸', '태대사자', '대사자', '소사자', 그리고 '욕살'이 아우르는 '욕사' '예속' '선인'으로 무릇 십삼등급으로 내외사를 나눈다. '대대로'는 강하고 약함의 법칙으로써 뺏았아 스스로 오르는 것이로 왕이 관리로써 두는 것이 아니다. 그 형법에 모반한자는 먼저 불살라 죽인고, 그 후에 목을 베며. 그 집안을 모두 죽인다. 도적질한 자는 십여배로 갑고, 만약 가난하여 준비하지 못하면, 빗을 지개 하여 잘잘못을 살피여 그 아들 딸 모두 노비로 삼아 이에 갚도록 한다.

 

丈夫衣同袖衫·大口袴·白韋帶·/$《隋書》·《北史》本傳作[素皮帶].$/黃革履. 其冠曰骨蘇,/$《北史》本傳倒作[蘇骨].$/ 多以紫羅爲之, 雜以金銀爲飾. 其有官品者, 又揷二鳥羽於其上, 以顯異之. 婦人服裙 ,  袖皆爲 . 書籍有《五經》·《三史》·《三國志》·《晉陽秋》. 兵器有甲弩弓箭戟 矛 . 賦稅則絹布及粟, 隨其所有, 量貧富差等輸之. 土田 薄, 居處節儉. 然尙容止多詐僞, 言辭鄙穢, 不簡親疎, 乃至同川而浴, 共室而寢./$《隋書》·《北史》本傳[乃至]作[父子].$/ 風俗好淫, 不以爲愧. 有遊女者, 夫無常人. 婚娶之禮,  無財幣, 若受財者, 謂之賣婢, 俗甚恥之. 父母及夫喪, 其服制同於華夏. 兄弟則限以三月. 敬信佛法, 尤好淫祀. 又有神廟二所:  一曰<夫餘神>, 刻木作婦人之象; 一曰<登高神>,/$《北史》本傳倒作[高登神].$/ 云是其始祖<夫餘神>之子. 竝置官司, 遣人守護. 蓋<河伯>女與<朱蒙>云.

 

장부의 옷은 동수삼(소매와 윗도리가 통자)과 대구고(허리품이 넓은 바지)이고, 흰색 가죽으로 허리띠를 메고, 황색 가죽으로 신을 신는다. 그 관은 '골소'라고 하는데, 붉은 비단을 포개어 이를 만들고, 금은으로 이를 꾸민다. 벼슬이 있는 자는 또한 새의 깃털을 위쪽에 두 개를 꽂고, 이에 다름을 표시한다. 부인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데, 옷고리와 소매에 모두 선을 두른다. 서적으로는 '오경' '삼사' '삼국지' '진양추'가 있다. 병기로는 갑옷, 노, 활, 화살, 창이 있다. 조세는 명주나 화폐 곡식으로 하는데, 그 있는 곳까지 쫓아가 빈부의 차이를 두어 이에 걷는다. 땅은 척박하고, 거처는 검소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거짓이 많고, 말하는 것은 거칠고 더럽다. 친하거나 소원하거나 가리지 않고 한 내에서 목욕하고 한 방에서 잔다. 풍속이 음란한 것을 좋아하며 이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유녀(기생)가 있으며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결혼하는 예는 재물이나 비단이 없고 만일 재물을 얻는자는 노비로 판다고 이르로, 풍속에서 매우 부끄러워 한다. 부모나 남편이 상을 당하면, 그 옷은 중국과 한가지 이다. 형제일때는 삼개월을 한계로 한다. 불법을 공경하고 믿으며, 더욱이 음사를 좋아한다. 또한 신을 모시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부여신'으로 나무를 깍아 여인네의 모양이고, 하나는 '등고신'으로 말하길 시조 '부여신'의 아들이라 한다. 관사에 함께 두고, 사람을 보내어 지키고 간수한다. 대개 '하백'의 딸과 '주몽'이라 말한다.

 

<璉>五世孫<成>, <大統>十二年, 遣使獻其方物. <成>死, 子<湯>立. <建德>六年, <湯>又遣使來貢. <高祖>拜<湯>爲上開府儀同大將軍·<遼東郡>開國公·<遼東王>.

 

'련'의 오세손은 '성'이다. '대통' 십이년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받쳤다. '성'이 죽자 아들 '탕'이 섰다. '건덕' 육년 '탕'이 또한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고조'가 '탕'을 상개부의동대장군 요동군 개국공 요동왕으로 삼았다.

 

百濟 (백제)

<百濟>者, 其先蓋<馬韓>之屬國, <夫餘>之別種. 有<仇台>者, 始國於<帶方>. 故其地界東極<新羅>, 北接<高句麗>, 西南俱限大海.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治<固麻城>. 其外更有五方: 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西方曰<刀先城>, 北方曰<熊津城>.

 

'백제'의 그 선조는 대개 '마한'의 속국이고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라는 자가 있어 나라를 '대방'에서 시작하였다. 고로 이땅의 경계는 동쪽에 '신라'가 있고, 북쪽은 '고구려'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함께 큰 바다를 경계로 한다.  동서로 사백오십리이고 남북은 구백여리이다. '고마성'에서 다스린다.  그 밖에는 오방이 있는데, 중방은 '고사성', 동방은 '득안성', 남방은 '구지하성', 서방은 '도선성', 북방은 '웅진성'이라 한다.

 

王姓<夫餘>氏, 號於羅瑕, 民呼爲 吉支, 夏言竝王也. 妻號於陸, 夏言妃也. 官有十六品. 左平五人,/$《通典》卷一八五<百濟>條[左平]作[左率].$/ 一品; 達率三十人,/$《隋書》卷八一《百濟傳》[達]作[大].$/ 二品; 恩率三品; 德率四品;  率五品; /$《隋書》本傳殿本[ ]作[杆],《隋書》百衲本·《北史》卷九四《百濟傳》作[ ].$/ 柰率六品. 六品已上, 冠飾銀華. 將德七品, 紫帶; 施德八品,  帶; 固德九品, 赤帶; (李)[季]德十品,/$<宋本>·南本及《北史》本傳·《通典》卷一八五·《冊府》卷九六二-一一三一五頁-[李]都作[季], 今據改.$/ 靑帶; 對德十一品, 文督十二品, 皆黃帶; 武督十三品, 佐軍十四品, 振武十五品, 克虞十六品,/$《隋書》·《北史》本傳[克]作[剋]. 《冊府》卷九六二-一一三一五頁-作[克虞], 注云:[一作喪虞.]$/ 皆白帶. 自恩率以下, 官無常員, 各有部司, 分掌衆務. 內官有前內部·穀部·肉部·內掠部·外掠部·馬部·刀部·功德部·藥部·木部·法部·後官部./$《北史》本傳·《冊府》卷九六二-一一三一五頁-[官]作[宮], 疑是.$/ 外官有司軍部·司徒部·司空部·司寇部·點口部·客部·外舍部·綢部·日官部·都市部. 都下有萬家, 分爲五部, 曰上部·前部·中部·下部·後部, 統兵五百人./$《北史》本傳作:[部有五巷, 士庶居(馬)[焉], 部統兵五百人.] 按本條[統]上當有[部]字.$/ 五方各有方領一人, 以達率爲之; 郡將三人,/$《隋書》·《北史》本傳上有[方有十郡]四字. 《周書》無此四字, 語意不完, 疑誤脫.$/ 以德率爲之. 方統兵一千二百人以下, 七百人以上./$《北史》本傳·《冊府》卷九六二-一一三一五頁-無[方]字. 按無[方]字, 則是指郡將所統兵.$/ 城之內外民庶及餘小城, 咸分(肄)[ ]焉./$《北史》本傳·《通典》卷一八五[肄]作[ ], 是, 今據改


(8937)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