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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료

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2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5.12.24|조회수377 목록 댓글 0


조선기 제5세 가륵

제5세 단군왕검 가륵 인제

仁帝(인제) 휘는 嘉勒(가륵)이고 元帝(원제)의 태자이다. 元年(원년)은 己亥(기해)이고 재위기간은 45년이다.


仁帝諱嘉勒元帝太子也. 元年己亥在位四十五年.

己亥(기해, BC2182) 원년. 帝(제)의 성품은 총명하고 인자하며 성덕이 있었다. 큰아들 烏斯丘(오사구)를 太子(태자)로 삼았다. 5월에 帝(제)는 三郞(삼랑)【納言博士(납언박사)이다】乙普勒(을보륵)을 불러 神王倧佺(신왕종전)의 도리에 대해서 물었다. …이하 번역 생략(환단고기 참조)…


己亥元年. 帝性聰睿仁慈有聖德. 冊長子烏斯丘爲太子. 五月帝召三郞【納言博士】乙普勒, 問神王倧佺之道. 乙普勒交拇加右手, 行三六大禮, 而進言曰.., 神者能引出萬物, 各全其性, 神之所妙, 民皆歸依也. 王者能德義理世, 各安其命, 王之所宣, 民皆承服也. 倧者國之所選也, 佺者民之所擧也, 皆七日爲回, 就三神, 執盟, 三忽爲佺, 九桓爲倧. 盖其道也欲爲父者斯父矣欲爲君者斯君矣欲爲師者斯師矣欲爲子爲臣爲徒者亦斯子斯臣斯徒矣故神巿開天之道亦以神道而求爲福於世上人間而已代天神而王天下弘道益衆無一人失性代天王而主人間去病解怨無一物害命三七計日會全人執戒自是朝有倧訓野有佺戒玄妙自得光明共濟是爲居發桓也施之九桓九桓之民咸率歸一于化也

庚子(경 자, BC2181) 2년. 때에 풍속은 오히려 같지 않고 사투리는 서로 각축을 벌였었다. 비록 眞書(진서)라는 상형문자가 있었으나 10집마다 많은 말들이 통하지 아니하였고 100리를 지나면 글자를 해독하기 어려웠다. 이 해 봄에 三郞(삼랑)【博士(박사)이다.】乙普勒(을보륵)에게 명하여 正音(정음) 38자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인데 그 문자는 다음과 같다.
庚子二年. 時俗尙不一, 方言相殊, 雖有象形表意之眞書, 十室之邑語多不通, 百里之國字每難解. 是年春, 命三郞乙【博士】乙普勒, 譔正音三十八字, 是爲加臨土. 其文曰..,


辛丑(신축, BC2180) 3년. 가을에 神誌(신지)【太修官(태수관)이다】 高契(고 글)에게 명하여 배달나라의 옛 이야기[倍達留記]를 편수하게 하였고 칭하기를 刪修加臨多(산수가림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동양 사학의 원조가 되었는데 神誡(신계) 神訓(신훈) 勅語(칙어) 諭書(유서)에서부터 道德(도덕) 正治(정치) 法律(법률) 風俗(풍속) 習慣(습관) 등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그 책에 들어있다【野勃(야발)이 渤海文(발해문)으로 간행하였다.】.


辛丑三年. 秋命神誌【太修官】高契編修倍達留記, 稱曰刪修加臨多, 是爲東洋史學之元祖也. 神誡神訓勅語諭書及道德正治法律風俗習慣等皆備載此書【野勃以渤海文刊行】

癸卯(계묘, 2178) 5년. 주와 군들을 按察(안찰)하고 학문과 농업을 권장하였다.
癸卯五年. 按察州郡奬學勸農.

甲辰(갑진, BC2177) 6년. 太學(태학)에 있는 太士(태사)인 高辛(고신)【혹은 高信(고신)이라고도 한다.】가 부모의 상에는 3년 服制(복제)할 것을 청하니 帝(제)가 좋다고 하였다. 愛苗(애묘)씨가 무도하여 帝(제)가 병사를 보내 悉段(실단)에서 토벌하였다. 遼陽(료양)[1] 太守(태수) 索靖(색정)의 치적이 좋지 못하여 帝(제)가 진노하였으며 弱水(약수)【지금의 黑水(흑수)이다】로 귀양보내 종신토록 갇혀 지내게 하였으나 후에 그를 용서하여 또한 그 땅을 봉국으로 삼았으니 흉노 선우의 조상이 되었다. 이르기를 摚犁孤塗單于(당리고도단우)라 하는데 즉 하늘【摚犁(당리)】의 아들【孤塗(고도)】大皇帝(대황제)【單于(단우)】라는 뜻이다.[2]


甲辰六年. 太學太士高辛【一云高信】請行父母喪三年服制帝曰善. 愛苗氏無道, 帝遣兵討伐于悉段. 遼陽太守索靖治績不善, 帝震怒命遷流于弱水【今黑水】, 終身棘置, 後赦之仍封其地, 因居而終爲匈奴單于之祖稱曰摚犁孤塗單于卽天【摚犁】子【孤塗】大皇帝【單于】之義也.

乙巳(을사, 2176) 7년 봄…(번역생략) 【발해사에서는 “帝(제)가 聖德(성덕)과 訓意昭明(훈의소명)이 있다고 高興(고흥)이 남긴 遺史(유사)에 있다”고 하였다.】.


乙巳七年. 春, 帝下詔曰, 天下之大本在於心之中正, 而巳[3]人失中正, 則事無成就, 物失中正, 則體乃傾覆人心愈危道心愈微惟精惟一允執厥中勿失中正不失中正然後萬事可得正矣. 但, 爲父當慈, 爲子當孝, 爲君當義, 爲臣當忠, 爲夫婦當以相敬, 爲兄弟當以友愛, 爲幼小當以悌長, 爲朋友當以有信恭儉以持己博愛以接人修學練業啓發智能鑄成德器廣施公益共開世務常尊國敎是遵禮法各守其職勤勉致産國如有事㤀私奉公冒險勇進克扶國家之大業是爾朕與汝臣民皆 拳拳服膺咸有一德實踐至意庶幾一體【渤海史曰.., 帝有聖德訓意昭明▨載於高興遺史】.

丙午(병오, BC2175) 8년. 康居(강거)가 支伯特(지백특)【西藏(서장)이다】에 의지하여 반역하니, 帝(제)는 夫宇(부우)를 보내 그들을 토벌하고 평정하게 하였다. 4월에 帝(제)는 太白山(태백산)에 올라 민가에서 불때서 나오는 연기가 적음을 보고 조세에 차등을 두라고 명령하였다.


丙午八年. 康居據支伯特【西藏】而叛, 帝遣宇平討平之. 四月帝登太白山, 望見民家炊煙少起, 命感租稅有差.

丁未(정미, 2174) 9년. 帝(제)는 龍岡(룡강)에 올라 민가에서 불때서 나오는 연기가 많음을 보고 이내 기뻐하고 노인들에 상을 내렸다.


丁未九年. 帝登龍岡, 望見民家炊煙多起, 帝乃欣悅賞賜耆老.

戊申(무 신, 2173) 10년. 帝(제)는 동쪽으로 巡行(순행)하여 滄海(창해)에 이르러 산과 강들을 보고 말하기를 “아름답고 기이한 산과 강들의 佳麗(가려)함이여”라고 말하고 “나는 장차 도읍을 동쪽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하였다. 濊(예)의 마을이 반란을 일으키자 帝(제)는 余守己(여수기)를 명하여 그 추장 素尸毛犁(소시모리)의 목을 베라고 하였다. 이대부터 그 땅을 素尸毛犁(소시모리)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牛首州(우수주)【春州(춘주)】이다. 그 자손은 해상으로 달아나서 天王(천왕)이라 참칭하였다.


戊申十年. 帝東巡至于滄海, 望見山川曰.., 美㢤奇㢤山河之佳麗㢤. 朕將欲遷都于東方. 濊邑叛, 帝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自此稱其地曰素尸毛犁, 今牛首州【春州】也. 其子孫逃于海上僭稱天王.

辛亥(신 해, BC2170) 13년. 帝(제)는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이번 봄이 바야흐로 한창이고 곡식이 아직 여물지 않았을 때 草木(초목)과 많은 생물이 모두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는데 나는 백성들 중에 혹 鰥寡孤獨(환과고독)들이 곤궁한 상황에 항상 존재하니 우수와 비애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근심으로부터 마음이 풀려서 환하게 웃는 날이 없으니 어찌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夏國(하국)의 민간의 풍문을 조사하여 구원할 사실이 있는지 조사하게 하였다.[4] 속하기를 바라는 자가 심히 많았다.


辛亥十三年. 帝詔曰.., 今春和方畼之時, 草木群生之物皆有其自樂, 朕有百姓或鰥寡孤獨困窮之人常在憂愁悲哀之中無展眉歡笑之日可不憐㢤. 使人査實救之夏國之人聞風. 願屬者甚多.

계축(癸丑, 2168) 15년. 아우 嘉祿(가록)을 阿闍王(아도왕)으로 봉하고 국가를 주고 국가이름을 아사달(阿斯達)이라 하고 당장경(唐莊京)【白岳(백악)】에 도읍하였다. 성을 쌓고 마을을 건설하니 인민들이 많이 모였으니 1,0000호가 되었다.


癸丑十五年. 封弟嘉祿爲阿闍王, 賜國, 號曰阿斯達, 都唐莊京【白岳】, 築城, 設邑. 人民多聚成都, 作一萬戶.

甲寅(갑인, BC2167) 16년. 阿闍王(아도왕)은 韓天寬(한천관)을 太宰(태재)로 하고 吳善(오선)을 都統(도통)으로 삼았다.


甲寅十六年. 阿闍王 以韓天寬爲太宰, 吳善爲都統.

乙卯(을묘, BC2166) 17년. 阿斯達(아사달)의 遺族(유족)인 貊(맥)의 추장이 黃州(황주)를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阿闍王(아도왕)이 吳善(오선)을 보내 토평하였다.


乙卯十七年. 阿斯達遺族貊酋據黃州而叛, 阿闍王遣吳善討平.

戊午(무오, BC2163) 20년. 아도왕이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戊午二十年. 阿闍王築壇祭天

辛酉(신유, BC2160) 23년. 阿闍王(아도왕)은 서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바라보고 또한 永王山(영왕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五浦洞(오포동)에 비를 세웠는데 서쪽으로 순행한 事蹟(사적)을 기록하였다.


辛酉二十三年. 阿闍王西巡觀海, 仍登永王山, 祭天, 立碑于五浦洞, 記西巡事蹟.

壬戌(임술, BC2159) 24년. 모든 汗(한)들에게 정치를 살피고 인정을 베풀며 구휼을 권유하고 농상을 장려하게 하였다.


壬戌二十四年. 命諸汗, 察政, 施仁, 勸諭救恤, 奬勵農桑.

乙亥(을해, BC2146) 37년.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畎部(견부)를 침범하여 帝(제)가 병사를 보내 저지하였다. 阿闍王(아도왕)이 입조하여 형제우애의 도리에 대하여 敍事(서사)하였다.


乙亥三十七年. 夏主相來侵畎部, 帝遣兵禦之. 阿闍王入朝叙兄弟友愛之誼.

丙子(병자, BC2145) 38년. 夏國(하국)의 주상이 風部(풍부)와 黃部(황부)를 침범하니 帝(제)가 병사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丙子三十八年. 夏主相來風部黃部, 帝遣兵禦之.

辛巳(신사, BC2140) 43년. 于部(우부)가 夏國(하국)과 서로 통하여 화합하였다.
辛巳四十三年. 于部與夏國通和.

壬午(임 오, BC2139) 44년. 때에 천하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여 비는 순하고 오고 바람은 고르게 들었다. 하늘에서는 홍수와 가뭄의 재앙이 없었고 곡식은 풍년이 들고 과일은 잘 익어 백성들이 먹고 입는 것에 대한 근심이 없었으므로 이를 일컬어 治平時代(치평시대)라 하였다.


壬午四十四年. 時天下泰平, 百姓安樂, 雨順風調 天無水旱之灾, 穀豊, 果熟, 民無衣食之患,稱之以治平時代.

癸未(계미, BC2138) 45년. 9월에 帝(제)가 죽었다. 태자 烏斯丘(오사구)가 즉위하니 이가 光帝(광제)이다.


癸未四十五年. 九月帝崩, 太子烏斯丘立, 是爲光帝.

 

[1] 환단고기에는 列陽이라고 하였다.
[2] 약수를 黑水(흑수)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흑룡강은 아닐 것이다. 즉, 약수는 흉노의 땅에 있어야만 한다.
[3] 원문은 巳이나 문맥상 己인듯하다.
[4] 왜 이런 기록이 나왔는가?

《규원사화》가륵임금 기록

하국(夏國) 왕이 덕을 잃어 그 신하 가운데 왕위를 넘보고 반역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내 식달(息達)로 하여금 람국(藍國)과 진번(眞蕃)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그를 정벌케 하니 나라의 위세가 더욱 빛났다….중략… 재위 51년 동안 위엄 있는 덕은 사방으로 퍼져서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夏王失德, 其臣有簒逆者, 乃使息達率藍‧眞蕃之民, 以征之, ……在位五十一歲, 威德流被于四表, 國人咸慕其化.

《후한서 동이열전》:

하후씨 태강이 덕을 잃자 이인(夷人)들이 처음으로 배반하였다.[태강은 계(啓)의 아들이다. 사냥터에 머무르면 백일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았으며 백성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예(羿)에 의해 쫓겨났다.] 夏后氏.太康失德, 夷人始畔.[太康, 啓之子也. 槃于游田, 十旬不反, 不恤人事, 爲羿所逐也.]

태강은 하국의 제3대 왕으로 예에 의해 쫓겨난 그 19년은 BC2170년이며 곧 가륵 37년이며 약간의 년대 차이가 보인다.





조선기 제6세 오사구



원년은 갑신년(BC2137)이다. 큰아들 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임금의 아우 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의 汗(한)【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가을에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좋은 이웃나라가 되기를 청하였다. 10월에 帝(제)는 북쪽으로 순행하여 太白山(태백산)에서 三神(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不老草(불로초)를 얻었는데 이것을 인삼이라고 하며 또한 仙藥(선약)이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신선은 죽지 않는 다는 설과 인삼을 채집하는 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괴이하다.

第六世檀帝(제6세 단제)

光帝諱烏斯丘仁帝太子也 元年甲申在位三十八年


光帝(광제)의 이름은 烏斯丘(오사구)이고 仁帝(인제)의 太子(태자)이다. 원년은 갑신년이고 재위기간은 38년이다.

甲申元年

. 冊長子丘乙爲太子. 封皇弟烏斯達爲蒙古里汗【王也】. 其後孫繁衍爲內外蒙古族, 卽元皇之祖也. 秋 夏主相遣使入朝, 請結好隣國之交. 十月, 帝北巡, 祭三神于太白山, 得不老草, 是謂人蔘, 又稱仙藥. 自是, 神仙不死之說與人蔘採摘之事密有關聯頗多恠異也.


甲申(갑신, BC2137) 원년. 큰아들 丘乙(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皇(황)의 아우 烏斯達(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의 汗(한)【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가을에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좋은 이웃나라가 되기를 청하였다. 10월에 帝(제)는 북쪽으로 순행하여 太白山(태백산)에서 三神(삼신)에 제사를 지내고 不老草(불로초)를 얻었는데 이것을 인삼이라고 하며 또한 仙藥(선약)이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신선은 죽지 않는 다는 설과 인삼을 채집하는 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괴이하다.

乙酉二年

. 春遣使于夏國回謝國交. 阿斯達國阿闍王薨在位三十三年, 世子摩耶立是爲期平王【元年丙戌】.


乙酉(을유, BC2136) 2년. 봄에 사신을 夏國(하국)에 보내어 국교에 대하여 回謝(회사)하였다.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阿闍王(아도왕)이 죽었으며 재위기간은 33년이다. 세자 摩耶(마야)가 즉위하니 이가 期平王(기평왕)【원년 丙戌(병술)】이다.

戊子五年

. 鑄圓孔貝錢. 八月夏人來獻方物. 十月朝野之事命書之于石, 公諸民間.


戊子(무자, BC2133) 5년. 圓孔貝錢(원공패전)을 주조하였다. 8월에 夏國(하국) 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10월에 朝野(조야)에 관한 일을 돌에 글로 새겨넣도록 명령하고 민간에 널리 알렸다.

庚寅七月

. 設造船工場于薩水【在遼東今州南河也】之上.


庚寅(경인, BC2131) 7년. 조선공장을 薩水(살수)【遼東(료동)의 지금 州(주) 남쪽 강에 있다】에 건설하였다.

癸巳十年

. 春建乾淸宮二十五年而完成. 東西六百間, 南北百間, 上層可坐萬人, 下層可立四丈高竿.


癸巳(계사, BC2128) 10년. 봄에 乾淸宮(건청궁)을 25년만에 완성하였다. 동서로 600간이고 남북으로 100간이며 윗층은 좌석이 1,0000이며 아래층은 높이가 4길인 솟대가 있다.

庚子十七年

. 畎部黃部來朝 設宴優待.


庚子(경자, BC2121) 17년. 畎部(견부)와 黃部(황부)가 來朝(래조)하였다. 잔치를 베풀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壬寅十九年

. 帝命築平壤城【扶餘】. 城外種柳四圍, 使民心柔順. 夏主相失德, 其臣羿弑之, 奪其位. 帝命息達率藍眞弁三部之兵, 以征之國威益彰. 天下聞之畏服.


壬寅(임인, BC2119) 19년. 帝(제)는 平壤城(평양성)【扶餘(부여)】을 쌓도록 하고 성 밖의 둘레에는 버드나무를 심게하여 민심을 유순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夏國(하국)의 主相(주상)이 덕을 잃어 그 신하 羿(예)가 그를 죽여 주상의 위치를 찬탈하였다. 帝(제)는 息達(식달)에게 藍(람)과 眞(진)과 弁(변) 등 3부의 병사를 이끌고 그들을 정벌하여 국위를 더 밝게 빛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천하가 이를 듣고 두려워 복종하였다.

癸卯二十年

. 蘇奈伐上奏曰.., 治天下之務 正風俗親賢才爲本 當國財强兵士爲要 故並用文武爲長久之策也 國雖大 好戰必亡 㤀戰必危 故古之聖帝明王平天下之道在於恩威並行. 是以戮好而安民則殺之亦可, 伐罪而安國則伐之惟義. 俱文治而施恩則譬如蒼蝇之臭集 而竟致腐敗, 武治而行威則譬如飛霜之垂掩而終無活力 治政之方在於其機能之如何耳. 基下曾不見春生秋殺時序之運又不察日陽月陰消長之化乎. 伏願基下 革新政令 肅淸軍紀 督督勵民志 君臣合體 繼承祖業以成萬代 不萎之神聖國家焉. 帝嘉納 以蘇奈伐爲上將 方民伯爲太宰.


癸卯(계 묘, BC2118) 20년. 蘇奈伐(소나벌)이 임금께 아뢰어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재를 가까이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나라의 재산을 돌보고 兵(병)과 士(사)를 강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文(문)과 武(무)를 병용하는 것이 나라를 오래 유지하는 책략입니다. 나라가 비록 크다 할지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며 망령되이 전쟁을 하면 반드시 위태로우니 그러므로 옛날의 聖帝(성제)와 明王(명왕)들의 천하를 평정하는 도리는 은혜와 위엄을 병행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죽여 백성이 편안하면 살인도 역시 가능하며 다른 나라의 죄를 벌하여 나라가 편안하면 벌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文治(문치)만으로 은혜를 베풀면 이는 파리가 냄새나는 곳에 모여서 마침내 부패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武治(무치)로 위엄만 드러내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드리워 마침내 활력이 없어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니 정치하는 방법은 그 機(기)를 능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基下(기하)께서 일찍이 春生秋殺(춘생추살)의 時序(시서)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또한 기하께서 日陽月陰(일양월음)의 消長(소장)의 변화를 살피지 못하셨습니까? 기하께 엎드려 원하오니 정치를 혁신하시고 군기를 새롭게 바로잡으시며 백성의 뜻을 督勵(독려)하고 君臣(군신)간에 하나됨을 이루서 조상들의 업을 계승하시고 만대에 이루어 不神聖國家(신성국가)가 시들지 않게 하옵소서.”  帝(제)는 嘉納(가납)하고 蘇奈伐(소나벌)를 上將(상장)으로 삼았고 方民伯(방민백)을 太宰(태재)로 삼았다.

乙巳二十二年

. 期平王巡左海, 遇白陽道人, 載車同歸先問政敎


乙巳(을사, BC2116) 22년. 期平王(기평왕)[1]이 左海(좌해)로 순행하여 白陽道人(백양도인)을 만나 수레에 실어 같이 돌아왔다. 그 전에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丙午二十三年

. 期平王登思皇峯望帝都而不勝感歎.


丙午(병오, BC2115) 23년. 期平王(기평왕)이 思皇峯(사황봉)에 올라 帝(제)의 도읍을 바라보고 감정이 복받쳐 감탄하였다.

辛亥二十八年

. 驟雨之際, 龍淵有瑞光照耀, 稱之謂龍化.


辛亥(신해, BC2110) 28년. 소나기가 내릴 때에 龍淵(룡연)에 상서로운 빛이 비추고 빛나니 그것을 일컬어 龍化(룡화)라 하였다.

癸丑三十年

. 命農官方進敎民以稼道


癸丑(계축, BC2108) 30년. 農官(농관)에게 명하여 나라 여러 곳으로 나아가 백성들에게 벼심는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였다.

丙辰三十三年

. 阿斯達博士 魯可律 曰, 山地從脉掘得溫泉. 期平王從其言, 而掘地, 果溫泉湧出.


丙辰(병진, BC2105) 33년. 阿斯達(아사달) 博士(박사) 魯可律(로가율)이 “산과 땅의 맥을 따라서 땅을 파면 온천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평왕은 그 말을 따라 땅을 파서 온천이 용출함으 얻었다.

辛酉三十八年

. 帝西巡發病而還. 六月崩. 太子羊加丘乙立, 是爲平帝.


辛酉(신유, BC2100) 38년. 帝(제)가 서쪽으로 순행하여 병을 얻었으므로 돌아왔다. 6월에 죽었는데 羊加(양가)인 태자 丘乙(구을)이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平帝(평제)이다.


[1] 阿斯達(아사달) 나라의 제2세 왕이다. 아버지는 가륵 단제의 동생인 가록이다.





조선기 제7세 구을



원년을 임술년(BC2099)이다. 큰아들 달문을 태자로 삼았다. 첫째 동생 丘申(구신)을 東藩王(동번왕)으로 삼고 둘째 동생 丘丙(구병)을 南藩王(남번왕)으로 삼고 셋째 동생 丘庚(구경)을 西藩王(서번왕)으로 삼았다. 봄에 帝(제)는 太白山(태백산)을 봉하여 사신을 보내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로 하며금 함부로 경내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1]

第七世檀帝(제7세 단제)


平帝諱丘乙光帝太子也 元年壬戌在位十六年


平帝(평제)의 이름은 丘乙(구을)이고 光帝(광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壬戌(임술)년이고 재위기간은 16년이다.

壬戌元年

冊長子達門爲太子, 封皇弟丘申爲東藩王, 仲弟丘丙爲南藩王, 三弟丘庚爲西藩王. 春, 帝命封太白山, 遣使, 致祭, 令民不敢侵犯境內.


壬戌(임 술, BC2099) 원년. 큰아들 達門(달문)을 太子(태자)로 책봉하였다. 첫째 동생 丘申(구신)을 東藩王(동번왕)으로 삼고 둘째 동생 丘丙(구병)을 南藩王(남번왕)으로 삼고 셋째 동생 丘庚(구경)을 西藩王(서번왕)으로 삼았다. 봄에 帝(제)는 太白山(태백산)을 봉하여 사신을 보내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로 하며금 함부로 경내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1]

癸亥二年

. 五月, 蝗虫大作遍滿田野. 帝親巡田野呑蝗一箇而告三神上帝祝願滅之, 數日下雨盡滅.


癸亥(계 해, BC2098) 2년. 5월에 누리벌레가 크게 일어 밭과 들에 가득찼다. 帝(제)가 친히 밭과 들에 순행하여 누리벌레 한 개를 집어 삼키고는 삼신상제께 고하고 이들을 멸할것을 축원하였다. 수일만에 비가와서 이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甲子三年.

夏主寒浞遣使入朝.
甲子(갑자, 2097) 3년 夏(하)의 주인 寒浞(한착)이 사자를 보내 입조하였다.

乙丑四年.

始用甲子作曆. 命三七計日, 率五加有众, 祭天設敎于臣民. 昔在神巿之世, 有七回祭神之曆. 一回曰祭日神, 二回曰祭月神, 三回曰祭水神, 四回曰祭火神, 五回曰祭木神, 六回日祭金神 七回日祭土神. 其時, 紫府先生測定日月之躔, 次推考五行之數理, 著爲七政運天圖, 成七星曆. 至是, 始作甲子曆, 仍舊制. 以子月爲上月, 是爲歲首, 六甲爲十榦十二枝也. 甲曰淸且伊, 乙曰赤剛, 丙曰仲林, 丁曰海戈, 戊曰中黃, 己曰烈好遂, 庚曰林樹, 辛曰强振, 壬曰流不池, 癸曰蘇羅, 是爲天榦. 子曰曉陽, 丑曰加多, 寅曰萬良, 卯曰新特白, 辰曰密多, 巳曰飛頓, 午曰隆飛, 未曰順方, 申曰鳴條, 酉曰雲頭, 戌曰皆福, 亥曰支于難, 是爲地枝. 天榦與地枝互合相配周, 而復始, 是謂六十甲子也. 按, 古記有十月三日爲上月云者, 實十朔有三日之謂也. 是子月爲歲首 非亥月爲上月也. 有熊氏【古之侯國有熊國君之後】無道而叛, 帝遣蘇奈伐 討平之.
乙丑(을축, BC2096) 4년. 처음으로 甲子(갑자)를 사용하여 曆(력)을 만들었다. 삼칠일을 택하도록 명하고 五加(오가)의 무리를 거느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과 신하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2] 옛날 神巿(신 불)의 세대에 七回祭神(칠회제신)의 曆法(력법)이 있었다. 一回(일회)는 祭日神(제일신)이라 하고 二回(이회)는 祭月神(제월신)이라 하고 三回(삼회)는 祭水神(제수신)이라 하고 四回(사회)는 祭火神(제화신)이라 하고 五回(오회)는 祭木神(제목신)이라 하고 六回(륙회)는 祭金神(제금신)이라 하고 七回(칠회)는 祭土神(제토신)이라고 한다. 그때에 紫府先生(자부선생)은 해와 달의 궤도를 측정하고 다음으로 오행의 수리를 미루어 고찰하였으며, 七政運天圖(칠정운천도)를 지었고 七星曆(칠성력)을 완성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甲子曆(갑자력)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옛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즉, 子月(자월)을 上月(상월)로 하여 한 해의 처음으로 삼았고 六甲(륙갑)을 10 榦(간) 12枝(지)로 하였다. 甲(갑)을 淸且伊(청차이), 乙(을)을 赤剛(적강), 丙(병)을 仲林(중림), 丁(정)을 海戈(해과), 戊(무)를 中黃(중황), 己(기)를 烈好遂(렬호수), 庚(경)을 林樹(림수), 辛(신)을 强振(강진), 壬(임)을 流不池(류불지), 癸(계)를 蘇羅(소라)라고 하는데 이것이 天榦(천간)이다. 子(자)를 曉陽(효양), 丑(축)을 加多(가다), 寅(인)을 萬良(만량), 卯(묘)을 新特白(신특백), 辰(진)을 密多(밀다), 巳(사)를 飛頓(비돈), 午(오)를 隆飛(륭비), 未(미)를 順方(순방), 申(신)를 鳴條(명조), 酉(유)를 雲頭(운두), 戌(술)을 皆福(개복), 亥(해)를 支于難(지우난)고 하는데 이것이 地枝(지지)이다. 天榦(천간)과 地枝(지지)는 서로 짝지어 합하여 주기를 이루어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이것이 60갑자이다. 按(안): 古記(고기)에 10월 3일이 上月(상월)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十朔(십삭)이 있은 후 3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子月(자월, 11월)로서 한 해의 처음이며 亥月(해월, 10월)이 上月(상월)이 되는 것이 아니다.
有熊氏(유웅씨)【옛날 제후국으로 有熊國(유웅국) 君(군)의 후예이다】가 무도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帝(제)가 蘇奈伐(소나벌)을 보내어 그들을 토평하였다.

丙寅五年.

春夏國學士二人持曆書斗建甲子記入朝.
丙寅(병인, BC2095) 5년. 봄에 夏國(하국) 學士(학사) 2명이 력법서 斗建甲子記(두건갑자기)를 가지고 입조하였다.

己巳八年.

夏身毒【卽天竺今印度】國人漂流來泊于東海【今之黃海】濱.
己巳(기사, BC2092) 8년. 여름 身毒國(신독국)【즉 天竺(천축)으로 지금의 印度(인도)】사람이 표류하다가 東海(동해)【지금의 黃海(황해)】가에 정박했다.

庚午九年.

秋立接賓館[3]于東門外.
庚午(경오, BC2091) 9년. 가을에 接賓館(접빈관)을 東門(동문) 밖에 세웠다.

辛未十年.

是歲, 百穀㓙作. 帝命發太倉粟救恤人民.
辛未(신미, BC2090) 10년. 이해에 모든 곡식이 흉작이었다. 帝(제)는 太倉粟(태창속)을 열어 인민은 구휼하라고 명령하였다.

甲戌十三年.

帝命監星官彭宇鑄渾天儀合天度.
甲戌(갑술, BC2087) 13년. 帝(제)는 監星官(감성관) 彭宇(팽우)에게 명하여 渾天儀(혼천의)를 주조하여 만들고 天度(천도)를 종합하게 하였다.

乙亥十四年.

阿斯達期平王薨. 在位五十年. 世子阿斯立, 是爲武成王【元年丙子】.
乙亥(을해, BC2086) 14년. 阿斯達(아사달)나라 期平王(기평왕)이 죽었는데 재위기간은 50년이었다. 세자 阿斯(아사)가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武成王(무성왕)【원년은 丙子(병자)년이다.】이다.

丙子十五年.

監星官皇甫德奏曰, 臣 觀測天文五十年, 推究天體之大綱, 則其最大者北極星卽恒星也. 其次太陽, 又 其次有 水星金星地球星火星木星土星天明星海明星陰明星新明星等行星. 從太陽爲中樞, 而回轉矣. 此地球亦太陽系一行星也日則調和地球之溫度, 助成萬物之生長. 且, 地球之外廓有紅膜包圍地面[4]保全各種氣體, 故 氣體不得發散, 而 在於其範圍之內, 受太陽之熱光, 變化爲風雲雨雹霜雪電雷四時之功各殊, 故地面樓息之人與物法地而效行則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也. 若, 人不能測知自然之理, 則不能循陰陽順四時. 若 不能循陰陽順四時, 則百姓不能適合農期 不得收穫而必不免飢寒矣. 先整曆法使適合于我國氣候者最急之務也. 帝曰然遂新製國曆頒于國中 是我國曆書之始元也.


丙子(병 자, BC2085) 15년. 監星官(감성관)의 皇甫德(황보덕)이 아뢰기를 “臣(신)이 천문을 관측한지 50년이온데 천체의 대강을 미루어 밝혀내보니 그 가장 큰 것은 北極星(북극성) 즉 恒星(항성)이고 그 다음은 太陽(태양)이고 그 다음으로는 水星(수성) 金星(금성) 地球星(지구성) 火星(화성) 木星(목성) 土星(토성) 天明星(천명성) 海明星(해명성) 陰明星(음명성) 新明星(신명성) 등이 행성이 있으며 이들은 태양을 주축으로 하여 회전하고 있사옵니다. 이 지구 역시도 태양계의 한 행성으로서 태양은 지구의 온도를 調和(조화)하며 만물의 생장을 助成(조성)하는 것이옵니다. 또한 지구 외곽에는 紅膜(홍막)이 지구의 표면을 포위하고 있어서 각종 기체를 보전하며 따라서 기체가 발산하지 아니하고 그 범위내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태양의 열과 빛을 받아 변화하여 바람과 구름과 비와 우박과 서리와 눈과 번개와 우뢰가 되어 사시사철의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고 원숙하게 되는 공으로서 뛰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지면의 누각에서 쉬는 사람과 만물은 땅을 법으로 하여 그행동을 본받으니 이는 地法(지법)이요, 하늘에는 天法(천법)이 이와 같이 존재하고, 道(도)에는 또한 이와 같이 道法(도법)이 존재하니 自然(자연)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알아 헤아리지 못하면 음양을 좇아 4계절에 순응하지 못하게 되고, 만약 또 이렇다면 백성들이 농사의 철에 적합시키지 못하여 수확하지 못하니 반드시 추위와 배고픔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력법을 바르게 고쳐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帝(제)는 “그렇다”고 하였다. 드디어 새롭게 나라의 력법이 나라 안에 반포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력법의 시원이다.

丁丑十六年.

帝親幸高麗山【一云古曆山, 今 平安道江東之平壤】至江東十二峯封築三神壇祭天. 周邊多植槿花樹【卽 無窮花】. 七月帝南巡歷風流江【沸流江也】至松壤得病尋崩. 因葬于江東之浿江上大博山【今在平安南道】. 太子牛加達門【一云太慕漱】立是爲文帝.


丁丑(정축, BC2084) 16년. 帝(제)는 高麗山(고려산)【혹은 古曆山(고력산)이라 하는데 지금 평안도 江東郡(강동군)의 平壤(평양)에 있다.】에 親幸하여 江東(강동)의 12봉우리에 이르러 三神壇(삼신단)을 封築(봉축)하고 하늘에 제사들 드렸다. 주변에 槿花樹(근화수)【곧 무궁화이다】를 많이 심었다. 7월에 帝(제)는 남쪽으로 순행하여 風流江(풍류강)【沸流江(비류강)이다】을 거쳐 松壤(송양)에 이르렀는데 병을 얻은 후 얼마 있어 않아 죽었으므로 江東(강동)의 浿江(패강)에 있는 大博山(대박산)【지금 平安南道(평안남도)에 있다】에 장사지냈다. 태자 牛加(우가)인 達門(달문)【혹은 太慕漱(태모수)라고 한다】가 제위에 오르니 이가 文帝(문제)이다.


[1] 이때에 비로소 扶蘇樑(부소량)을 藏塘京(장당경)으로 삼은 것이다. 그 이전의 장당경에 대한 기록은 위사로 볼 수 있다.
[2] 원문에 設로 되어 있으나 說로 번역하였다.
[3] 원문에 (舍官)으로 되어 있다.
[4] 回 윗부분에 丆이 붙어 있는 글자로 面의 이체자이다.




조선기 제8세 달문



원년은 무인년인데 36년동안 제위에 있었다. 맏아들 한율을 태자로 삼았다. 7년은 갑신년이다. 몽고리 사람이 천리마를 바쳤으나 거절하였다. 8년은 을유년이다. 갈모 후가 배반하였으므로 이를 토벌하였다.정해 10년 가을에 夏(하국)의 소강이 사신을 보내 내조하였다. 을축 12년 武成王(무성왕)이 檀聖廟(단성묘)를 秋山(추산) 아래에 세웠다. 경인 13년. 武成王(무성왕)이 백성들에게 8가지의 법규를 가르쳤다.

제8세 단제

文帝諱達門平帝太子也 元年戊寅在位三十六年.


文帝(문제)의 이름은 達門(달문)이고 平帝(평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戊寅(무인)년이고 재위기간은 36년이다.

무인 원년

冊長子翰栗爲太子. 命乙支仙爲首宰, 淵石泉爲上將, 吳漢爲太傳, 陳無竸爲攝司職, 關基乙爲肅政使.


戊寅(무 인, BC2083) 원년. 큰아들 翰栗(한율)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乙支仙(을지선)을 首宰(수재)이 되게 하고 淵石泉(연석천)을 上將(상장)이 되게 하였으며 吳漢(오한)을 太傳(태전)이 되게 하였고 陳無竸(진무경)을 攝司職(섭사직)이 되게 하였고 關基乙(관기을)을 肅政使(숙정사)가 되도록 명령하였다.

갑신 7년

春, 蒙古里人有, 獻千里馬者. 帝曰天子之行有一定之路, 吉行一日四十里, 私行一日五十里, 前揚國旗, 後有隨車, 不可獨行. 朕今乘千里馬獨先行何處耶. 終不受, 乃下詔曰, 朕不受獻馬者, 使四方無有來獻者也.


甲申(갑신, BC2077) 7년. 봄에 蒙古里(몽고리) 사람이 있어 천리마를 바쳤다. 帝(제)는 “천자가 가는 것은 일정한 길이 있어 吉行(길행)은 1일에 40리요 私行(사행)은 1일에 50리이다. 앞에서는 國旗(국기)를 날리며 뒤에서는 수레가 따르니 홀로 다닐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 천리마를 타고 홀로 어디를 앞서가리오.” 마침내 받지 않으시고 “내가 지금 말을 받지 않는 것은 사방에서 와서 바치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을유 8년

葛毛侯叛遣兵討平之.
乙酉(을유, BC2076) 8년. 葛毛侯(갈모후)가 배반하자 병사를 보내 토평하였다.

정해 10년

秋夏主少康遣使來朝.
丁亥(정해, BC2074) 10년. 가을에 夏(하국)의 主(주) 少康(소강)이 사신을 보내 내조하였다.

무자 11년

八夫婁奏曰, 治國平天下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盖人之智能 先 格其物情 知其物理, 然後 漸致發達, 故 格物致知 則可以知民生日用之宜也. 夏葛 冬裘 所以保身也. 飯米 食肉 所以養體也 然則, 修身爲齊家之本, 齊家爲治國之本, 治國爲平天下之道也. 盖, 在常時不可無臨戰之勢, 守己如堅壁高壘, 攻己如猛將精卒, 侵於誘惑者 奇正相交, 隳於懈怠者隱見難測, 一生願得者 敢冒危劇, 爲成一功者 能涉百險, 勝敗翻覆者 不許暫時之弛緩, 虛實因果者 輒起毫末之怠慢, 奚可以秒刻間放心乎. 是以知行不可無堅甲利兵, 意志不可無强弓硬矢, 武裝實力尙有豊足, 隊伍士卒恒存勇氣, 智能謀士 運籌帷幄之中村, 畧主將 指揮於陣營之內, 然後 義勇斯振, 武威宣耀. 大抵 臨戰之地 衛者衛之懲者懲之 的在於凱旋. 此亦一時誇力勵氣而已, 最後勝捷惟是一物而已[1], 何也. 彼 勝敗無常者 在於一時利鈍置之度外者也, 使 七顚八起 九死一生 竟致 必勝 而 後己者 自量其理念之誠實 而在於 忍耐者也. 若有此, 則有何阻險而有何困難乎. 顚沛之中 希望尙存, 猛爆之下 志氣愈高, 心如萬古靑山, 行如千里長程, 所期必在於克成. 然後已[2]也 臣以爲能知修身之道而實行之則治國亦可能也. 帝曰, 善㢤, 八夫婁治國用兵之道得之於修身, 而已[3]拜爲上將, 督勵三軍.


戊子(무 자, BC2073) 11년. 八夫婁(팔부루)가 아뢰어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도리는 明德(명덕)을 밝게 하고 백성을 가까이하며 지극한 선함에 이르는데 있습니다. 대개 사람의 지능은 먼저 만물의 실상을 연구하고 그 이치를 깨달은 후에야 점차 발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물을 연구하고 깨닫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 마땅히 써야 할 바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거친 베로 옷을 해 입고 겨울에는 갖옷을 입는 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밥과 고기를 먹는 것은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즉 몸을 다스리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이고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도리입니다. 대개 항상 전쟁에 임하는 형세가 없는 것은 불가하며, 방어하여 다스리는 것은 견고한 성벽과 높은 성과 같아야 하고, 공격하여 다스리는 것은 매서운 장수와 정예 병사와 같이 하여야 합니다. 유혹됨에 침략을 받은 자는 거짓됨을 바르게 하고 서로 교통하여야 하고, 나태함에 무너진 자는 아무도 모르게 어려움 측량해 봐야 하며, 일생동안 얻고자 하는 자는 위태로움과 혹독함을 감히 무릅써야 하며, 하나의 공이라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능히 100가지 험한 것도 넘어갈 수 있어야 하고, 승패를 뒤바꾸고자 하는 자는 잠시라도 느슨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하며, 허한 것과 실한 것의 원인과 결과는 털끝만한 나태함이 문득 일어남에 있으니, 어찌 한 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있겠나이까? 이것은 지식과 행함에 있어서 견고한 갑옷의 이익을 갖는 병사가 없이는 불가한 것과 같으며 의(意)와 지(志)는 강한 활과 돌화살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과 같습니다. 전투장비와 실력을 반드시 풍족하게 갖추어야 하고 여러 병사들은 항상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지능있는 모사자는 휘장 안에서 궁리하고 계획하여야 하며, 슬기로는 장군은 진영 안에서 지휘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후에야 의용(義勇)이 떨치어지며 무위(武威)가 밝게 빛날 것입니다. 대저 전쟁이 임하는 곳에서 지킬 것은 지키며 징벌할 것은 징벌하는 것은 승리하여 돌아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일시적으로 힘을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최후의 승첩은 오히려 이것에 있는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승패의 무상함을 일시적인 이로움으로 여기고 가소롭게 여기는 도외자(度外者)이며, 또한 칠전팔기(七顚八起)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마침내 승리하지만 후에 자기 스스로 그 이념과 성실을 헤아려보는 인내자(忍耐者)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지니고 있으면 어떤 험한 것이 있더라도 무슨 곤란함이 있겠습니까? 넘어져 이마가 처박혀도 오히려 희망은 존재하며 사납게 터지는 곳에서도 의지는 오히려 높으니, 마음은 만고의 푸른 산과 같고 행함은 천리의 장정과 같으니 계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후에야 신하들이 능히 수신의 도리를 알고 실행한즉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帝)가 “맞다”고 하셨다. 八夫婁(팔부루)는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이용하는 도리를 자기 몸을 닦는 데서 얻었으니 上將(상장)으로 배수를 받아 三軍(삼군)을 독려하였다.

을축 12년

武成王建檀聖廟於秋山下.
乙丑(을축, BC2072) 12년. 武成王(무성왕)이 檀聖廟(단성묘)를 秋山(추산) 아래에 세웠다.

경인 13년.

武成王敎民八條之規.
庚寅(경인, BC2071) 13년. 武成王(무성왕)이 백성들에게 8가지의 법규를 가르쳤다.

신묘 14년

武成王造別宮于韓里.
辛卯(신묘, BC2070) 14년. 武成王(무성왕)이 별궁을 韓里(한리)에 지었다.

병신 19년

麻西子爲人荒滛. 一日, 求美酒, 以進, 帝甘飮而醉, 曰 此傷性之狂藥也. 後世必有以酒亾國敗家者多矣遂斷而遠之.


丙申(병 신, BC2065) 19년. 麻西子(마서자)는 사람을 거칠고 음탕하게 한다. 어느날 좋은 술을 구해 진상하니 帝(제)께서 달게 마시시고 취하셔서 “이것은 성품을 상하게 하는 미치광이 약이구나. 후세에 반드시 술로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패하는 경우가 많겠구나”하시며 드디어 마서자로 만든 술을 끊고 멀리하시었다.

무술 21년

阿斯達大饑, 發倉粟求恤.
戊戌(무술, BC2063) 21년. 阿斯達(아사달)에 큰 기근이 있어 倉粟(창속)을 발하여 구휼하였다.

경자 23년

夏主少康遣使入朝獻書通交.
庚子(경자, BC2061) 23년. 夏(하국)의 主(주)로 있는 少康(소강)이 사자를 보내 입조하고 책을 바쳐 통교하였다.

신축 24년

帝南幸黃山谷, 見有罪人被縛者, 下車泣, 問曰 汝何事犯罪也. 惟天下有罪者應知不少也. 國初三聖之代, 民皆以三聖之心爲心. 寡人爲君, 民各自以己心爲心. 寡人以是爲悲. 盖人智不足而造僞, 力不足而多欺, 財不足而爲盜, 爲民之主者, 使民處乎不安之地, 而何可得一日之安乎.


辛丑(신 축, BC2060) 24년. 帝(제)가 남쪽으로 黃山谷(황산곡)을 순행하다가 죄인이 결박을 당하여 있는 것을 보시고 수레에서 내려 울며 물어보았다. “너는 무슨일로 죄를 범하였느냐? 생각해보니 세상에는 죄를 범하는 자가 응당 적지 아니함을 알겠구나. 국초 三聖(삼성)의 시대에는 백성이 모두 三聖(삼성)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았었는데, 과인이 임금이 되니 백성들이 각기 스스로 자기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으니 과인이 이로 인하여 슬프구나. 대개 사람이 아는 것이 부족하면 거짓을 짓게 되고 힘이 부족하면 속이기를 많이 하고 재물이 부족하면 도적질을 하게 되는데, 백성의 주인된 자로서 백성을 불안한 땅에 살게하면서 어떻게 하루라도 평안히 지낼 수가 있겠는가?”

임인 25년

阿斯達國秋山下淡水大蛤多出爭取之.
壬寅(임인, BC2059) 25년. 阿斯達國(아사달국)의 秋山(추산)아래에 담수에서 대합이 많이 나오므로 그것을 취하려고 다투었다.

갑진 27년.

阿斯達國馬嘶嶺上得紅點白身之馬
甲辰(갑진, BC2057) 27년. 阿斯達國(아사달국)의 馬嘶嶺(마시령) 위에서 붉은 점이 있는 흰 말을 얻었다.

경술 33년.

帝命築扶餘山城.
庚戌(경술, BC2051) 33년. 帝(제)가 명하여 扶餘山城(부여산성)을 쌓았다.

신해 34년

夏主杼來掠東海及三壽等地得一狐有九尾而侵邊帝遣八夫婁拒守之.


辛亥(신해, BC2050) 34년. 夏(하국)의 主(주)인 杼(저)가 동해를 노략질하였고 三壽(삼수) 등의 땅에서 여우를 하나 얻었는데 꼬리가 9개였고 변경을 침략하였다. 帝(제)는 八夫婁(팔부루)를 보내 막아 지키게 하였다.

임자 35년

帝下命會列國諸汗于常春【今長春卽新京】, 執盟貢幣者 大國二 小國二十酋長三百六十 墟落三千三百六十. 大會諸汗, 帝率众祭三神于九月山【在長春弓闕山】, 使神誌發理作告効詞【三神古祭祈祝之文】曰


壬子(임자, BC2049) 35년. 帝(제)는 모든 나라의 汗(한)들을 常春(상춘)【지금의 長春(장춘) 즉 新京(신경)이다】에 모이도록 명령하였다. 모여서 예물을 바친다고 맹세한 자들은 큰 나라는 2이고 작은 나라는 20이며 추장이 다스리는 나라는 360이며 촌락[墟落]이 3360이었다. 모든 汗(한)들이 다 모이었는데 帝(제)는 무리를 이끌고 九月山(구월산)【長春(장춘)에 弓闕山(궁궐산)이 있다.】에서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었고, 神誌(신지)인 發理(발리)로 하여금 告効詞(고효사)【三神(삼신)에게 옛날에 제사지내며 祈祝(기축)하는 문장이다.】짓게 하였는데 아래와 같다.

朝光先受地三神赫世臨桓因出象先樹德宏且㴱諸神議遣䧺承詔始開天王儉受大命懽聲動九桓魚水民其穌草風德化新怨者先解怨病者先去病一心存仁孝四海盡光明眞韓鎭國中治道咸維新慕韓保其左番韓控其南峻岩圍四壁聖主幸新京如秤錘極器極器白牙岡秤榦蘇密郞錘者安德鄕首尾均平位賴德護神精興邦保太平朝降七十國永保三韓義王業有興隆興廢莫爲說誠在事天神
帝乃與諸汗立約曰凡我同約之人以桓國五訓爲永久遵守之案祭天之禮以人爲本爲邦之道以食爲先農者萬事之本祭者五敎之源宜與國人共治爲産先講重族次宥囚俘竝除死刑責禍保境修好會盟專以一施共和之心謙卑自養以爲仁政之始也. (번역생략)
時諸汗皆執盟貢幣而退
때에 모든 汗(한)들이 모여 맹세하고 예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계축 36년.

帝崩 太子羊加翰栗立是爲惠帝.
癸丑(계축, BC2048) 36년. 帝(제)가 죽었다. 太子(태자)인 羊加(양가)로 있던 翰栗(한율)이 제위에 오르니 이가 惠帝(혜제)이다.

  

[1] 원문에는 巳로 써 있다.
[2] 원문에는 巳로 써 있다.
[3] 원문에는 巳로 써 있다.






조선기 제9세 한율


제9세 단군왕검 한율

惠帝(혜제)의 이름은 翰栗(한율)인데 文帝(문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甲寅(갑인)년이며 재위기간은 54년이다.


惠帝諱翰栗文帝太子. 元年甲寅在位五十四年

갑인 원년

冊長子于西翰爲太子. 命吳善勸民農桑救人貧窮.


단군왕검 한율의 원년은 갑인년(BC2047)이다. 큰아들 于西翰(우서한)을 태자로 삼았다. 吳善(오선)을 명하여 백성들에게 농상을 권장하고 사람들을 가난과 궁핍함에서 구제하라고 하였다.

을묘 2년

宮城東有甘泉湧出.
2년은 을묘년(BC2046)이다. 宮城(궁성) 동쪽에 甘泉(감천)이 용출하였다.

기미 6년

阿斯達武成王薨. 在位四十年. 世子朱開立是爲威靖王【元年庚申】.


6년은 기미년(BC2042)이다. 阿斯達國(아사달국) 武成王(무성왕)이 죽었다. 재위기간은 44년이다. 세자 朱開(주개)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威靖王(위정왕)이다【원년은 庚申(경신)】.

계해 10년

方士尹巴奴說以神仙術, 帝曰.., 人間豈有神仙乎, 此妖妄惑世之術不可與君子之道同處. 遂逐方士于海濱而遠之. 海外妖恠之士莫敢復近.


10년은 계해년(BC2038)이다. 方士(방사) 尹巴奴(윤파노)가 神仙術(신선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帝(제)께서는 “사람들 사이에 어찌 신선이 있을수 있느냐? 이것은 요망하여 세상을 미혹케 하는 술법이니 군자의 도리와 같이 있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드디어 방사를 海濱(해빈)으로 쫓아내시고 그를 멀리하시었다. 해외의 요망하고 괴상한 士(사)들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신미 18년

帝會諸汗于遼陽城彰善懲惡.
18년은 신미년(BC2030)이다. 帝(제)께서 모든 汗(한)들을 遼陽城(료양성)에 불러모으시고 선한 것을 밝히 드러내시고 악한 것은 징벌하시었다.

계유 20년

癸酉二十年. 阿斯達國 秋山 柏木 茂森, 走獸飛禽來栖. 有巨鳥, 其目一寸, 足四尺, 翼濶三丈, 捕此鳥而馴致順從故人乘背上旅行十餘里因模制浮空船.


20년은 계유년(BC2028)이다. 阿斯達國(아사달국)의 秋山(추산)에 측백나무는 무성하여 삼림을 이루므로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들이 와서 깃들였다. 큰 새가 있는데 눈은 1 寸(촌)이고 다리는 4 尺(척)이며 날개 사이의 간격은 3 장(丈)이었다. 이 새를 잡아 길들여 순종하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등 위에 타고 10여 리를 여행하였다. 그래서 이를 본따서 공중에 띄우는 배를 만들었다. .

갑술 21년

夏主槐遣使入朝結爲鄰交.
甲戌(갑술, BC2027) 21년. 夏國(하국)의 주인 槐(괴)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고 이웃나라의 친교를 맺었다.

무인 25년

主父溫伯說於帝曰.., 今夏國政法不明, 國勢萎縮, 民窮, 兵弱, 外侵不息. 惟 天帝之邦 國富 兵强, 此時▨擧兵伐夏一征, 而席捲天下 易如反掌 勿失好機. 帝曰.., 無故伐人國不爲君子之道, 且欲奪土地 而 殘害生命亦非仁人所行. 朕不可取也. 夏主槐聞之遣使謝之.


戊寅(무 인, BC2023) 25년. 主父(주부) 溫伯(온백)이 임금께 아뢰어 말하기를 “지금 夏國(하국)의 정치와 법도가 분명하지 아니하고 나라의 힘은 위축되었으며 백성은 곤궁하고 군사는 약하여 외침이 쉬지 아니합니다. 생각해보니 天帝(천제)의 나라는 부강하고 병사도 강합니다. 이때에 병사를 일으켜 夏國(하국)을 쳐서 정벌하면 천하를 석권하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帝(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무고한 사람과 나라를 벌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요 토지를 침탈하여 생명을 잔인하게 해치는 것 역시 인자한 사람이 해야 할 바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국의 주인 괴가 이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감사하였다.

신묘 38년

是歲大饑發太倉救恤百姓.
辛卯(신묘, BC2010) 38년. 이 해에 큰 기근이 들어 太倉(태창)을 발하여 백성을 구휼하였다.

정유 44년

按察州郡勸諭農桑.
丁酉(정유, BC2004) 44년. 주와 군을 돌아보시고 농상을 권유하셨다.

신축 48년

歲饑命租稅減半.
辛丑(신축, BC2000) 48년. 이해에 기근으로 조세를 반으로 줄일 것을 명하였다.

병오 53년

阿斯達國掘地蓄水利用農期灌漑除旱, 又造桔槹水車楊水機便以灌漑, 又制水車㫪米機 測候機 楊時機 渾天儀 排水器 吸水機 等敎民利用.


丙午(병 오, BC1995) 53년. 阿斯達國(아사달국)에서 땅을 파고 水利(수리)를 위하여 (둑을) 쌓고 농사철에 물을 대고 더위를 이길 수 있게 이용하였다. 또한 두레박[桔槹]과 水車(수차)와 楊水機(양수기)를 만들어 물을 대는데 편리하게 하였다. 또한 수차와 㫪米機(용미기)와 測候機(측후기)와 楊時機(양시기) 渾天儀(혼천의)와 排水器(배수기)와 吸水機(흡수기) 등을 백성들에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정미 54년

帝崩太子于西翰立【一云西翰】. 是爲莊帝.


丁未(정미, BC1994) 54년. 帝(제)가 죽자 태자 于西翰(우서한)【혹 西翰(서한)이라고도 한다.】이 제위에 올랐다. 이가 莊帝(장제)이다.





조선기 제10세 우서한


제10세 단군왕검 장제

莊帝(장제)의 이름은 于西翰(우서한)이고 惠帝(혜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戊申(무신)년이고 재위기간은 8년이다.


莊帝諱于西翰惠帝太子也. 元年戊申在位八年.

戊申(무신, BC1993) 원년

큰아들 阿述(아술)을 태자로 삼았다. 90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법을 제정하고 널리 통용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1]  阿斯達(아사달국)의 威靖王(위정왕)이 죽었다 재위기간은 49년이다. 세자 求乙(구을)이 즉위하니 이가 和定王(화정왕)이다【원년은 己酉(기유)년이다.】.


戊申元年. 冊長子阿述爲太子. 制定九十稅一之法廣通有無以補不足. 阿斯達威靖王薨, 在位四十九年, 世子求乙立, 是爲和定王【元年己酉】.

己酉(기유, BC1992) 2년.

이해에 크게 풍년이 들어 한 줄기에 8개의 이삭이 생겼다. 帝(제)는 태자가 되었을 때부터 雄畧(웅략)과 大度(대도)가 있었고 겸하여 德行(덕행)도 있었다. 臣民(신민)이 모두 欽仰(흠앙)하였고, 寶位(보위)에 올랐을 때에도 국정을 잘 다스렸으며, 인재를 잘 등용하였고 장병들을 훈련시켰으며, 천하의 뜻을 다 통합하였다. 阿斯達國(아사달국)의 長壽村家(장수촌가)에서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사람의 몸에 사슴의 발을 하고 성품이 총명하였으니 이름을 鹿足夫人(록족부인)이라고 하였다. 후에 世子妃(세자비)가 되었다【역사에서 기록하기를 황해도 長壽山(장수산)에 鹿足夫人(록족부인)의 행적이 있다고 하였다.】.


己酉二年. 是歲大豊. 有一莖八穗之禾. 帝自爲太子時有䧺畧大度, 兼有德行, 臣民皆欽仰, 及踐寶位, 善治國政登用良材, 敎練將兵, 有綂合天下之志. 阿斯達國長壽村家生女人身鹿足爲性聰明 名曰鹿足夫人, 後爲世子妃【史曰, 黃海道長壽山有鹿足夫人跡】.

庚戌(경술, BC1991) 3년.

達突國(달돌국)의 사신이 내조하였다.
庚戌三年. 達突國使臣來朝.

辛亥(신해, BC1990) 4년.

帝(제)는 옷을 바꾸어 입고 몰래 나라 밖을 빠져나가 夏國(하국)의 지리와 정치와 백성의 실상과 풍속을 정찰하고 184일을 지내고 돌아와서 관제를 크게 바꾸었다.


辛亥四年. 帝微服潜出國境  偵察夏國地理政治民情風俗, 經一百八十四日, 而還大改官制.

癸丑(계축, BC1988) 6년.

支于粟(지우속)[2]을 上將(상장)이 되게 하고 烏干(오간)을 太宰(태재)가 되도록 명하였다.
癸丑六年. 命支于粟爲上將烏干爲太宰.

甲寅(갑인, BC1987) 7년.

三足烏(삼족오)[3]가 날아 동산가운데[苑中][4]로 들어왔다. 그 날개의 폭이 3척이었다.
甲寅七年. 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

乙卯(을묘, BC1986) 8년.

帝(제)가 죽고 태자 阿述(아술)이 제위에 올랐으니 이가 肅帝(숙제)이다.
乙卯八年. 帝崩太子阿述立是爲肅帝.

 

[1] 환단고기에는 20분의 1이라고 하였다. 규원사화에서는 90분의 1이라고 하였다.
[2] 단기고사에는 支干粟(지간속)이라고 하였다.
[3] 단기고사에는 烏(오)를 鳥(조)로 썼다.
[4] 단기고사에는 宮中(궁중)이라고 하였고 그 다음해에 于西翰(우서한) 檀君王儉(단군왕검)이 죽었으니 이는

분명 왕권침탈을 설명한 것이리라. 단기고사의 기록이 맞다면 아술은 우서한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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