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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료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9 (8) -주요 친일단체(1937~1945)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7.05.01|조회수110 목록 댓글 0

Ⅲ. 조선임전보국단


1. 흥아보국단


1) 흥아보국단 설립준비회 개최에 관한 건
경고검비(京高檢秘) 제2372호
사상계검사 차석검사 검사정(檢事正)
1941년 8월 25일
경기도경찰국장
경무국장 앞
경성지방법원검사정 앞
각도경찰부장 앞
관하각서장 앞


흥아보국단 설립준비회 개최에 관한 건
(8월 21일부 경고비제 2155호에 대하여(시국에 대한 반도인 유력자의 동정에 관한 건))


수제(首題) 준비회를 지난 8월 24일 오후 3시부터 관하 경성부 장곡천정 조선호텔에서 개최되었는데 전선 반도인 유지 51명의 참회자(參會者)가 있었고, 오후 9시 15분 무사히 종료하여 산회하였는데, 그 상황은 다음과 같다.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기(記)


24일 오후 3시 주최 측 이동치호(伊東致昊)1), 한상룡(韓相龍), 하산무(夏山茂)2) 등 전선(全鮮) 반도인 유지 51명이 회장(會場)인 조선호텔에 모였다.

내빈으로 국민총력조선연맹사무국총장 가와키시 분사부로(川岸文三郞)의 임석이 있고, 개회에 앞서 조선신궁에 참배하고 이동치호가 일동을 대표하여 옥곶봉존(玉串奉尊) 참배를 바치고 다시 회장에 돌아왔다.

오후 4시 35분 설립준비회를 하산무의 사회로 개회하고 국민의례 후 고원훈이 좌장에 이동치호(伊東致昊) 추천하여 일동이 찬성하였다.

이동치호가 의장석에 도착하여 인사로 “우리들은 반도에 거주하는 국민으로 시국하에 적성(赤誠)을 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므로 대표 각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무엇인가의 방법을 결정하고자 하므로 내임(來臨)을 원하는 상황”이라는 취지를 말하였다. 이어서 고원훈이 경과보고로,


1) 윤치호(尹致昊)의 창씨명.
2) 조병상(曺秉相)의 창씨명.


“현재 우리나라는 초비상시에 있다. 사변 이래 우리 조선인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봉공의 성의를다하여 왔지만 제1선 장사(將士)의 분투에 생각을 경주해야할 때이며, 또한 성전(聖戰) 5년에도 불구하고 반도인이 어떠한 부자유없이 생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충성스럽고 용감한 장병들과 국운의 융성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이러한 때 우리 조선인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진충(盡忠)의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떠한 것을 해야할 것인가.

□□□□□ 석상에서 시국에 활력 및 무엇보다도 현재 상황으로는 중단할 수 없다고 말하고 그 후 가끔 회담하여 연구한
결과를 총독부 지시를 받기로 하고, 이후 지금까지의 경과를 상세하고 설명하여 참석자의 양해를 구한 후에 의사(議事)에 들어갔다.” 요항 별첨한 제1호를 김용린(金庸麟, 박흥식 비서)가 낭독하고 박흥식이 설명하고 좌장이 그것을 일동에게 발표하였다.


현준호(玄俊鎬, 전남) : “흥아봉공단(興亞奉公團)의 명칭은 동아(東亞)를 하나의 단체로 한 감이 잇는데 조선 또는 반도라는 자구를 사용하면 어떠한가.”


임창수(林昌洙, 충남) : “본 훈련소 입소자격자 가운데 사상이 불건전한 자를 입소시키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는데, 자구(字句)에 한정하지 말고 넓은 의미로 변경하는 것은 어떠한가.”라고 질문하자,


고원훈(高元勳) : “명칭은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상이 불건전한 사람을 입소시킬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는데 본단(本團)은 소수의 지도자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사상관계는 별도의 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명학(金明學, 함남) : “본 사업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반도인 상층계급의 신용문제에 있다.

중앙집중주의보다도 지방 분산주의로 하는 것은 어떠한가. 경찰순사교습소 같은 것은 적어도 2,3개월에 인물이 만들어지는데, 초등학교졸업자 150만명 전부를 훈련시키려면 어떻게 1인당 백원의 예산으로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지방 건물 등을 이용하라. 청년에게는 혹 희망을 갖게 하지 않으면 지도는 불가능하며, 청년대와 마찰이 일어나는 일은 없겠지만, 만일 마찰이 있다면 청년층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고원훈 : “먼저 1기만은 중앙에 두기로 하고, 서서히 지방의 적당한 장소에 설치할 예정이다.”


평거희적(平居熙迪3), 평북) : “내 체험으로는 일시적으로 훈련을 받아도 표리가 일체되지 못하고 부족한 감이 있다.

이것들에 의거하여 50만 원으로 하더라도 효과가 염려된다.

중앙단체만으로 하지않고 보육제도와 같이 지방분산하라, 국민학교 교원이나 배속장교를 이용하여 전선의 청년 전부
를 황국신민화하라. 3개년에 3만인 정도의 청년을 훈련하여 어떤 효과가 있는가.”


고원훈 : “총독부의 청년훈련소와는 취지가 다르므로 먼저 중앙에 설치하는 것이다.”


강원기양(江原基陽4), 강원) : “본 취지에는 찬성한다. 지방분산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에서 오직 지도자를 양성해야할 것이다. 일본정신을 체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년정도 입소시키자.”


3) 이희적(李熙迪)의 창씨명.
4) 박보양(朴普陽)의 창씨명.

등등의 의견이 많아서 정리하기가 어려우므로, 좌장이 요항(要項) 및 예산 등은 준비위원회에 위임함이 어떠한가라고 자문하니 일동이 찬성하였다.

다음으로 취의서(별지 제2호)를 김용린이 낭독하니 만장일치로 원안에 찬성 가결하여 준비위원 선임에 들어갔다. 좌장의 명에 따라 하산무로부터 목산봉진(木川鳳鎭)5) 등 60명(별지 제3호)를 지명함에 역원수가 많으므로 소수로 하여 실천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있어 갑론을박하다가 결국 좌장의 지명대로 승인하였다.
발기인의 선정은 준비위원회에 일임하는 것으로 하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하고 한상룡의 선창으로 ‘천황폐하만세’를 봉창하고 오후 6시 40분 폐회하여 만찬을 하였다. 같은 날 8시 10분부터 같은 곳에서 제1회 준비위원회를 이동치호를 좌장으로 하여 개최하였다.

하산무의 동의로 좌장을 위원장으로 만장일치 추천하여, 위원장이 위원 중에서 방의석(方義錫) 등 20명을 상임의원으로 지명하고 강령 및 예산규약 등의 심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문하였는데, 만장일치로 원안을 찬성 가결하여 결정하였다.
이어 박흥식으로부터 경비거출방법으로 각각 재산에 따라 2천 엔이상 2만 엔까지 거출하여 200만 엔을 모을 예정이라는 말이 있었다.
하산무가 발기인은 각도에서 공직자 중등학교교장 등(반도인)을 선임하여 본월 말일까지 사무소로 보고할 것과 발회식은 다음달 중순경 거행할 예정이라는 취지를 말하였다.

내일 지원병훈련소를 견학하는 것에 대해 자문했는데 찬성자가 극히 소수였기 때문에 발회식 당일 견학하기로 했다.

동 8시 15분위원회를 종료하고 영화(일본뉴스, 조선뉴스, 문화영화)를 감상하고 동 9시 15분 무사히 종료하여 산회
하였다.


<참고사항>


지방 참회자(參會者)는 중앙 재주자의 행동에 어떤 야심이 있는 것 같은 의혹을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것 같아서 오히려 2천 원 이상의 거출은 상당히 곤란할 것 같아 내심 불평이 있었지만 공개석상에서는 이것을 발표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 같고, 상당히 불만을 품은 자가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한편 준비회에서는 갑론을박 발기인 측을 신용할 수 없는 듯한 태도가 있지만 만찬석상에서 가와키시 총장이, “협력일치로 모두 찬성하여 본단을 결성하고 다음날이라도 사업을 개시하자”라는 충고적인 격려인사가 있었으므로 일동의 심경은 조금 누구러져서 급속하게 모든 원안에 찬성하게 되었다.

요컨대 민간만의 사업이라고 하면 이것의 수행에 종종 의혹을 잠재적으로 품는 자가 있을 우려도 있으므로 총독부및 총력연맹 등의 적극적인 지도를 더하지 않으면 방도가 다난(多難)하고 혹은 생각지도 않은 방면으로이행할 우려도 있어서 소기의 목적달성은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5) 박봉진(朴鳳鎭)의 창씨명.

<별지 제1호>


흥아보국단(가칭)의 운동요강안


제1 목적과 조직


1. 시국하의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가지고 그 본분을 다하여 임전체제에 대비할 목적으로 하며, 그 운동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황국정신의 앙양
(2) 강력한 실천력의 발휘
(3) 시국인식의 철저와 그 대응결의
(4) 근로보국의 실행
2. 본 운동은 민간의 자발적인 애국운동으로 동지를 규합하여 행할 것.
3. 본 운동은 먼저 3개년을 제1차로 하여 계획하고 이후는 정세에 따라 이것을 결정할 것
4. 본 단은 국민총력조선연맹에 참가하고 동연맹의 □□을 받을 것.
5. 본 단에 단장, 부단장 및 이사를 둘 것
6. 본 단에 총무, 훈련, 사업의 3부를 둘 것.
본단의 본부는 경성에 두고 각도에 소요의 역원을 배치한다.
역원의 원수는 별도로 이것을 정하다.


제2 사업


1. 본단은 전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업을 행할 것
(1) 훈련소의 설치
(2) 계도장(稧道場)의 설치
(3) 필요한 애국사업
2. 훈련실시 요령
훈련소는 동경에 설치하고 흥아보국훈련소라고 명명하고 본과, 특과, 별과의 훈련을 다음 사항에 의거하여 실시할 것.
다만 입소자의 결장, 훈련방법에 대해서는 총독부 당국의 지도를 받을 것.
■ 본과 : 근로보국대원 연성
자격: 사상견실, 신체 강건하고 국민학교졸업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자.
연령: 18세에서 30세
인원: 1회 300명
기간: 30일
회수: 연 10회(연 3,000명 예정)
■ 특과 : 지도자연성
자격 : 사상 견실, 국민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하고 지방에서 중견지도적 인물로서 정신(挺身)활동 가능한 사람.
연령: 25세에서 45세까지(다만 특수한 사정이 있는 사람은 예외로 입소를 인정한다.)
인원: 1회 100명
기간: 2개월
회수: 년 5회(년 500명 예정)
■ 별과 : 특별훈련자의 연성
자격: 특히 본 훈련소에 입소를 희망하는 자
연령: 제한 없음
인원: 1회 50명 이내
기간: 20일
회수: 연 10회 이내(년 500명 이내)
3. 계(稧)의 수업
위치: 경성 남산 부근에 설치
수업 인원: 1회 약 100명 이내
기간: 2일 내지 5일
회수: 항시적으로 실시 예정
4. 필요한 애국운동
국민총력실천운동의 촉진에 기여하기 위해 특별히 다음의 사업에 중점을 둘 것.
(1) 국방자재 및 자원의 공출 및 헌납운동
(2) 청소년학생, 부녀자의 노무총동원운동
(3) 저축의 실행
(4) 기타 애국적 운동


<별지 제2호>


흥아보국단 설립취의서


아국은 지금이야말로 유사이래 미증유의 가장 중대한 시국에 직면하고 있는데 동시에 또한 가장 숭고존엄한 동아공영권 확립의 성업 완수의 한창 때이다.

이때 생(生)을 황국에 누린자는 자는 그 어떠한 사람을 막론하고 그 본분에 따라 그 최선을 다하여 국운의 진전에 기여해야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이러한 가을을 맞이하여 우리 반도민은 과연 이대로의 태세(態勢)에서 좋을 것인가.

물론 우리들은 사변 이래 물심 모두 국가에 바치고 굳이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온 것은 중외가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초비상시를 만나 안온(安穩)하게 이 생을 영위할 수 있는 국가의 은혜를 생각하고, 한편으로 제일선에서 황군의 장병이 폐하의 만세를 계속 높이 제창하면서 조용히 죽음에 나가는 자 몇 만이 되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들은 아직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저히 이 대로는 있을 수 없고 무엇인가 마음의 근저로부터 강하게 느끼는 바가 있다.
이것이 바로 2천 4백만 반도인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강하게 믿는다.

그럼 어떻게하면 좋을 것인가. 가령 우리들은 특별지원병 외에 일반적으로 병역에 복무하는 명예스러운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모두 적성으로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또 체력이 다할 때까지 바쳐 총후봉공에 한층 철저함으로써 충렬(忠烈)한 장병의 분투에 대신하는 것만이 황은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즉 이 실천이행(實踐履行)에 따라서 우리들은 진충보국의 적성을 피력하고 황국신민의 실(實)을 현현(顯現)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하여 반도가 물심양면으로 제일선에 대한 병참기지라는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이 기회를 빼고는 다시없다고 믿는다.

이에 우리들 발기인은 결코 쉽지 않은 한 기구로서 흥아보국단의 설립을 기도하니, 넓게는 반도 2천4백만 제군에게 미충(微衷)을 호소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취지를 찬성하고 근심을 같이 할 뜻을 함께 하도록 하는 강호의 제사(諸士)는 신속하게 참여하고, 이 애국운동의 발전조성에 전폭적인 힘을 다할 것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1941년 8월 24일
발기인 일동


<별지 제3호>


준비위원명부(경칭은 생략함)


경기도 이름

상임 이동치호(伊東致昊)
상임 한상룡(韓相龍)
상임 고원훈(高元勳)
상임 민규식(閔奎植)
상임 김연수(金秊洙)
상임 박흥식(朴興植)
상임 하산무(夏山武)
상임 오천교원(烏川僑源)6)
상임 가산린(佳山麟)7)
상임 금천성(金川聖)8)
박택상준(朴澤相駿)9)
이가진호(李家軫鎬)10)
원촌조(元村肇)11)
상임 김사연(金思演)
상임 오촌승우(梧村升雨)12)
김성수(金性洙)
오긍선(吳兢善)
유억겸(兪億兼)
상임 양원주삼(梁原柱三)13)
상임 이병길(李丙吉)
상임 대산광설(大山光卨)14)
임명재(任明宰)
최남선(崔南善)
서원종린(瑞原鍾麟)15)
상임 금전명(金田明)16)
백산청수(白山靑樹, 시라야마)17)
목하영근(木下永根)18)
정원규복(井垣圭復)19)
상임 금원방광(金原邦光)20)
국산시권(菊山時權)21)
손영목(孫永穆)
이규원(李圭元)
옥천진순(玉川鎭淳)22)
유만겸(兪萬兼)
목산봉진(木山鳳鎭)23)
금영태훈(金永泰勳)24)


충북 이명구(李明求)
남헌(南憲)25)


충남 임창수(林昌洙)
금정갑순(金井甲淳)26)


전북 금전영무(金田英武)27)
최승렬(崔承烈)


전남 상임 현준호(玄俊鎬)
문재철(文在喆)


경북 장원직상(張元稷相)28)
대봉병조(大峯丙朝)29)


경남 금자전간(金子典幹)30)
이은우(李恩雨)


강원 강원기양(江原基陽)31)
환산융준(丸山隆準)32)


황해 발산병덕(鉢山丙德)33)
금전기수(金田基秀)34)


평남 상임 안성기(安城基)35)
김건영(金健永)


평북 평거희적(平居熙迪)36)
이영찬(李永贊)


함남 방의석(方義錫)
김명학(金明學)


함북 장간헌사랑(張間憲四郞)37)
금산소능(金山韶能)38)


<출전: 「興亞報國團設立準備會 開催ニ 關スル件(京高秘 第2372號)」, 1941년 8월 25일,'思想ニ關スル情報綴'(13)>


6) 정교원(鄭僑源)의 창씨명.
7) 최린(崔麟)의 창씨명.
8) 이성근(李聖根)의 창씨명.
9) 박상준(朴相駿)의 창씨명.
10) 이진호(李軫鎬)의 창씨명.
11) 원진상(元悳常)의 창씨명.
12) 이승우(李升雨)의 창씨명.
13) 양주삼(梁柱三)의 창씨명.
14) 서광설(徐光卨)의 창씨명.
15) 이종린(李鍾麟)의 창씨명.
16) 김명준(金明濬)의 창씨명.
17) 김동환(金東煥)의 창씨명.
18) 방영근(朴永根)의 창씨명.
19) 한규복(韓圭復)의 창씨명.
20) 김동훈(金東勳)의 창씨명.
21) 김시권(金時權)의 창씨명.
22) 유진순(劉鎭淳)의 창씨명.
23) 박봉진(朴鳳鎭)의 창씨명.
24) 김태훈(金泰勳)의 창씨명.
25) 남상철(南相喆)의 창씨명.
26) 김갑순(金甲淳)의 창씨명.
27) 김영무(金英武)의 창씨명.
28) 장직상(張稷相)의 창씨명.
29) 서병조(徐丙朝)의 창씨명.
30) 김경진(金慶鎭)의 창씨명.
31) 박보양(朴普陽)의 창씨명.
32) 최준집(崔準集)의 창씨명.
33) 민병덕(閔丙德)의 창씨명.
34) 김기수(金基秀)의 창씨명.
35) 이기찬(李基燦)의 창씨명.
36) 이희적(李熙迪)의 창씨명.
37) 장헌근(張憲根)의 창씨명.
38) 김정석(金定錫)의 창씨명.


2) 구체화하는 우국애민운동(기사)


구체화하는 우국애민운동, 명칭은 흥아보국단


작일(昨日), 본부 연맹 관계자와 발기인 측 원안(原案)을 협의


우국애민(憂國愛民)의 크나큰 생각을 가지고 경성의 유지들이 궐기하여 총후애국운동을 전개시키기로 되어 이동치호(伊東致昊)옹의 관계자들이 그동안 자주 구체적 방침을 협의하였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은데 어제 19일에는 다시 이 관계자 일곱 사람과 총독부 국민총력연맹 측의 관계자들이 모이어 발기인측의 원안(原案)을 중심으로 의논하여 이를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아직 결정까지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대체로 명칭은 흥아보국단으로 하고 취지는 황국정신의 함양과 시국인식을 철저히 시킴과 동시에 근로훈련을 적극적으로 하여 자발적 애국운동으로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하였다.
어제 총독부에서 회의를 열고 발기인회로부터 애국운동의 내용을 제출하고 총독부와 국민총력연대의 후원을 힘입기로 되었는데 이 애국운동을 지도해나가는 단체로서 흥아보국단을 조직하여 훈련연맹에 가입하며 자발적인 애국운동으로서
1. 황국정신을 드러내어 총후봉공에 매진하고
2. 강력적인 실천을 위하며
3. 시국인식을 철저히 해서 멸사봉공의 정신을 가지고
4. 근로보국에 총후의 의기를 보일 것을

을 취지로 하였다.
그리고 이 보국단에는 단장과 부단장을 두고 사업기구로는 총무부(總務部), 훈련부(訓練部), 사업부(事業部)와 3부를 두고 사업으로서는 흥아보국훈련소(興亞報國訓練所)를 신역(神域)인 남산 부근에 신설하고 청소년과 장년층의 훈련과 ‘미소기’와 시기에 적당한 애국사업을 널리 하기로 하고 우선 앞으로3년간을 제1차 사업 기간으로 정하였다.


<출전: 「具體化하는 憂國愛民運動, 名稱은 興亞報國團 - 昨日, 本府,聯盟關係者와 發起人側 原案을 協議」, '매일신보',

1941년 8월 20일>


3) 총후조선의 열의를 반영(기사)


총후조선의 열의를 반영, 2천만이 협심육력(協心戮力)


흥아보국단의 역사적 발족 불원(不遠)


중일전쟁이 일어난 당초에 나타났던 반도인들의 열렬한 애국심은 긴박한 현 시국하에 다시금 나타나 지금 저 반도에는 우러나는 애국의 열정에 불타서 병기의 헌납, 헌금, 폐품의 회수 등 여러 가지 총후 미담과 기□가 나타나고 있는 바인데 이러한 민심에 따라 지난 5일 이동치호(伊東致昊) 씨 이하 민간 유력자가 솔선하여서 민중의 임전체제 강화를 제창하고 미나미(南) 총독, 오노(大野) 정무총감을 방문하고자 그 열의를 피력하였는바 여기에 대하여 총독과 총감은 전폭의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겠다는 격려가 있어 드디어 근근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이 탄생되기로 되었다.

그리고 이 보국단의 결성준비는 국민총력연맹과 긴밀한 연락을 다하여 가면서 지난 23일에 조선호텔에서 전선의 유력자가 모인 다음 구체적 검토가 있었으며 이어서 25일에는 경성 부민관에서 각 방면 각층의 지도자를 망라한 임전체제협의회(臨戰體制協議會)가 개최되는 등 참으로 반도 민중의 자발적 협력실천의 총력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보국단 탄생으로 씩씩한 건설적 진진을 애국의 대목적을 목표로 하고 있느니만치 강력한 □□□이 나타나가지고 □□적은 물론이며 총독부 당국으로서도 이 보국단의 □□하고도 원만한 탄생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절대적인 지원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총력연맹에서 또 적극적으로 협력할것을 천명하고 있으므로 보국단의 참된 사명이 될수록 천리 전선(全鮮)의 방방곡곡에 미쳐가므로 반도백성이 시국인식을 깊이하여 끓어오르는 황국신민으로서의 열의 아래 탄생이 실현되기를 요망하고 있다.

오늘까지의 준비경과는 이 요망에 의하여 순조로운 진척을 보이고 있으므로 반도인들이 바라고 있는 보국단의 탄생도 드디어 멀지 않아 힘찬 출발을 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임전대책협력의 설전대선(舌戰大鮮)에 동원, 오는 9월 4일은 경성에서 제일성(第一聲)날로 중대화하여가는 시국에 대응하여 반도 2천 4백만 민중을 총후전사로 총동원시켜야겠다고 지난 25일 밤 부민관에서 경성의 각체 인사 백여 명이 모여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를 열었다는 것은 기보한 바이어니와 이 자리에서 선정된 위원 35명은 다시 28일 오후 6시부터 경성 호텔에서 제1회위원회를 열고 장차 순서적으로 일으켜 나갈 여러 가지 운동방침에 대하여 협의한 결과 임전대책협의회를 ‘임전대책협력회’로 이름을 고쳐서 이를 상설기관으로 만드는 동시에 반도 민중들의 결의를 □□
질 하기 위하여 전선 각지에 유세(誘說)행각을 하되 그 힘찬 제1성으로 9월 4일의 부민관에서 임전대책연설회를 열기로 되었으며 역시 9월 초순에는 백여 명 위원이 가두로 나가서 ‘꼬마’ 채권을 파는 등 각계 명사들이 일선에 서서 반도의 총후운동을 지도하여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이날 위원회는 이동치호(伊東致昊) 가산린(佳山麟) 이가진호(李家軫鎬) 서원종린(瑞原鍾麟) 씨 등 20여씨가 모인 중에서 처음 국민의례가 있은 다음 이동치호 씨 사회를 맡아 의사를 진행하였는데“반도 민중의 총후 운동을 일으켜 나갈 대책의 방침과 방향은 여러 번 협의한 결과 이미 결성된 터이라, 이로써 이미 임전대책협의회의 목적은 달성하게 되었으니 회의 명칭을 고치자”는 제의에 따라 ‘임전대책협력회’라고 이름을 고치는 동시에 이것을 상설기관으로 하여 장래 민중운동을 지도하여 나갈 기초를 완성하였다. 다음 위원회 진행을 정비하기 위하여 만장일치로써 위원장에는 가산린(佳山麟) 씨를 추대하고 동씨를 보좌하여 책임지고 일해 나갈 상무위원장의 지명으로써
(중략)
이들 11씨가 피선되었다. 다음 일반 민중을 총후 전사로 동원시키기 위하여 전선 각지에 연설회를 열기로 되었는데 그 제 일정으로 9월 4일 오후 6시부터는 부민관 대강당에서 □□과 가□□□로 임전대책 강연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민중을 지도하자면 지도층에서 솔선 실천하므로써 일반에게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9월 초순에는 이등치호, 가산린(佳山麟), 이가진호 씨 등 전회원이 가두로 총 출동하여가지고 1원짜리 ‘꼬마’ 채권을 □□민에게 팔아 저축보국의 지성을 다하기로 결정하고 오후 9시경에 산회하였는데 본 회의 선언(宣言), 강령(綱領), 규약 등은 상무위원회에서 추후 결정 발표하기로 되었다.
□□□□
- 극동(極東)의 결전(決戰)과 오인(吾人)의 열정(熱情) - 이동치호
- 우리는 □□□하였는가 - 가산린(佳山麟)
- 태평양 풍운의 전망 - 신흥우
- 동경(東京) 대판(大阪)은 이렇다.- 신태악
- 승전(勝戰)의 길은 여기에 있다 - 박인덕
- □□□□□□을 보라-□□□
- 30년 전의 회상-서원종린
- □□□□이 말하라 - □□□□


<출전: 「銃後朝鮮의熱意를 反映, 二天萬이協心戮力-興亞報國團의歷史的發足不遠, 臨戰對策協力의舌戰隊全鮮에動員 來九月四日은 京城에서 第1聲」, '매일신보', 1941년 8월 30일>


4) 총력의 임전보국단 합동위원회서 결성 결의(기사)


총력의 임전보국단 합동위원회서 결성 결의, 민(閔) 김(金) 박(朴) 3씨는 기금 20만 원 제공 지난 3일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과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의 두 단체가 천안(川岸) 조선연맹 총장의 알선으로 반드시 2천 4백만 민중이 일심일체가 되어서 같은 국가 목적을 향하여 더욱 실천적이며 강력적인 애국운동을 일으키자면 합동하여서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을 결성하여 발을 맞추어 비상시국에 봉공하겠다고 굳게 결의한 바 있었는데 그동안 준비 위원 13인이 열심히 준비하여 오던 중 작년 11일 오후 4시부터 부내 경성 호텔에 이동치호(伊東致昊), 가산린(佳山麟), 금천성(金川聖) 씨 등 33인이 모여서 최초로 쌍방연합위원회를 열었다. 청산백수(靑山白樹) 씨 외 사회로 이가진호(李家軫鎬) 씨가 회장이 되어서 회는 원만히 진행되었는데 전번 두 단체가 회의에서 결정된 활동안이 이날 두 단체에서 전원이 모인 뒤 원안의 승인을 얻어 내일 결정하게 두 단체가 발을 맞추어 걸어 나가게 된 것은 시국을 위하여 진실로 경하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쌍방 연합위원으로는 재래의 두 단체의 위원이 결단식을 낳게 될 때까지 그대로 유임하고 다시 가산린(佳山麟) 고원훈(高元勳)김연수(金秊秀) □□□ 민규식(閔奎植) □□□ 박흥식(朴興植) 청산백수(靑山白樹) 금천성(金川聖) 박기효(朴基孝) □□□씨등 12인이 상무위원으로써 모든 일을 맡아보기로 되었는데 위원장으로서는 이등치호, 부위원장으로서는 가산린(佳山麟) 씨가 선발 되었다.

더욱 □기할 것은 이날 모임에 있어서 김연수(金秊秀), 박흥식(朴興植), 민규식(閔奎植) 씨는 자발적으로 조선임전보국단의 사업을 위하여 운동자금20만 원을 제공하였다 한다.


미성(微誠)에 불과할 뿐! 20만 원을 제공하고 겸손한 3씨


이날 회의석상에서 대금을 제공할 것을 언명하여 일동에게 큰 감동을 준 김연수, 민규식 씨 양씨(兩氏)는 “많지 않은 돈을 이 단체의 사업에 쓰도록 내어놓았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 고 겸손하면서 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박흥식씨를 화신(和信)으로 찾으니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 두 단체의 위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단시일이나마 여러 가지 파란곡절을 돌파하고서 일심단결이 되어서 지극히 원만스럽게 보조를 같이하게 된 것은 최선의 길이었으며, 동시에 우리들로서도 경하스러운 일이다.

머지않아 발회식을 보게 된 이때에 조선임전보국단의 사업이 2천 4백만 반도 민중 전체에 대한 것이니만큼 우리 세 사람이 너무 많은 금액을 내는 것도 어떠할까 싶어서 의논한 결과 적은돈이나마 내어놓게 된 것이다. 전 조선 유력자들에게 바라건대 권함을 받는 것보다 어디까지라도 스스로 우러나는 애국의 정성으로서 많은 돈을 국가사업에 기부하여 우리 반도 민중으로서 안하면 안 될소기의 목적 달성에 매진함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세 사람이 20만 원을 내어 놓았다는 목적도 결국은 여기에 있는 줄 안다. (사진은 대금을 제공한 민, 김, 박 3씨)


<출전: 「總力의臨戰報國團 合同委員會서 結成決議-閔 金 朴 三氏는 基金二十萬圓提供」,'매일신보', 1941년 9월 12일>


2. 임전대책협의회(협력회)


1) 임전대책협의회 개최에 관한 건


1-1)
임전대책협의회 개최에 관한 건
경고비(京高秘) 제2397호
1941년 8월 27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임전대책협의회 개최에 관한 건


관하 경성부 종로 2정목 소재 삼천리사(三千里社) 사장 백산청수(白山靑樹, 金東煥)39)가 주최한 수제의 협의회는 이미 보고(국장에게만)한 대로 지난 8월 25일 오후 6시 30분부터 경성부민관에서 사장 김동환의 사회로 개최되었다. 여기에는 최린(崔麟, 佳山麟), 윤치호(尹致昊, 伊東致昊), 한상룡(韓相龍), 조병상(曺秉相, 夏山茂) 등 반도인 각 계층의 유력자 12명이 모여 오후 9시 25분 무사히 종료하였다.

이에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통첩 ‘달’)한다.


기(記)


1. 개회사


사장 백산청수(白山靑樹, 시라야마)의 사회로 국민의례를 한 다음, 극동의 급격한 풍운으로 초비상시국에 직면함에 즈음하여 경성의 각 계층 유사(有士)의 참가를 촉구하여 임전대책협의회를 개최한 이유를 말하였다.

신흥우(申興雨)를 의장으로 추거하였고, 의장의 간단한 인사가 있었다.

윤치호는 결의문(별첨 제1호)을 낭독하여 만장일치로 가결하였고, 이어서 장덕수(張德秀)는 황군에 대한 감사 전문(별
첨 제2호)을 낭독하여 만장의 찬성으로 이를 가결하고 의사에 들어갔다.


2. 협의사항


의장은 의제인 ‘임전체제 아래에서의 자발적 황국신민화운동으로의 실천방책에 관한 건’의 내용인(1) ‘물자 및 노무공출의 철저강화책’을 의제로 올리자 최린은 자신의 심경을 말하겠다고 전제하면서 내선일체 및 조선인 2,400만의 황국신민화운동은 조선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로서 이는 온전히 위정자가 이루어야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금에는 위정자는 별도로 치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황국신민이 될 것인가를 항상 가슴 깊이 담고 있다.

또 최근 우국동지 등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말하길 자기 자신은 진정으로 황국신민이 되었지만 이를 그 누구도 알아주는 자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대답하길 그것은 표면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반도인은 모두 황국신민이 되었다는 것만은 공통적이지만 아직 부족한 점도 상당히 있다. 진정으로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서는 현하 시국 하에서 국가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에 따라 순응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당국이 지시하는 사항을 곧바로 실행하면 된다. 내 자신도 일생을 통해 회고해볼 때, 과거의 최린과 현재의 최린은 바꿔져왔다.

과거에는 오로지 권리만을 주장해왔지만, 어떤 동기를 통해 심경이 변하여 낡은 권리 주장을 뒤로 하고 먼저 의무 이행을 통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따라서 우리 조선인은 종래의 권리 주장을 전부 포기하고 의무 이행만을 염두에 둔다면 분명히 자타 모두 진정한 황국신민이 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는 4~5년 전의 비상시와는 내용에서 운니지차(雲泥之差)40)가 있


39) 원문에는 金東模이나 오류로 보아 수정하였음.

는 점을 충분히 유의하면서 의용봉공에 매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정치를 비판하거나 공리심을 앞세워 계산해서는 안 되고, 또 대립 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 윤익선(尹益善)
오늘날은 이론을 반복할 때가 아니다. 긴박한 시국이 되면 구체적 사항을 검토하고 단지 실천만이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 조병옥(趙炳玉)
본 문제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일지사변 처리가 한창 중인데 영미소는 여전히 적성(敵性)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동양인은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 반도인도 내지인에 뒤지지 않는 적성을 피력함으로써 물심양면을 가리지 않고 성전 완수에 한마음이 되어 봉공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 이광수(李光洙, 香山光郞)
일한병합 30년 성전 5년이 되었다. 우리 조선인은 위정당국에 대해 무언가를 받들어야 한다.

하지만 국채의 소화(消化)라는 한 예를 보더라도 아직 너무나도 부족하다.

앞으로는 충분히 황국신민으로서의 각오를 견고히 하고 적성의 피력에 아낌없이 무언이라도 바쳐야 한다고 말하였다.
(2) 국민생활의 최저표준화운동방책
■ 이각종(李覺鍾)
앞에서 권리의무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권리 주장을 하는 데에는 그 수단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요컨대 우리는 도의를 본받아 일본정신으로 귀의하여 살아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문제는 면밀한 조사가 없기 때문에 뭐라말할 수 없지만, 연맹에서 실시하고 있는 상혼의례준칙에 따라 실시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 함상훈(咸尙勳)
평소에 느낀 점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면 (1) 국가가 어떤 방침으로 나오는가, (2) 국민 자체가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인데, 주로 국민 자체가 자숙자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 이극로(李克魯)
정부가 임전대책으로서 어떠한 방침을 정하더라도 당국의 방침에 순응해야 한다. 본 문제를 여기에서 단시간에 이야기한다 해서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말한다면, 선결문제는 유민(遊民), 부유계급, 여자의 박약한 경제적 지식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들의 사회적인 맹성(猛省)을 촉구하고 최저표준에 도달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말하였다.


(3) 전시봉공의 의용화 방책


■ 주요한(朱耀翰)
오늘날의 시국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실행이라는 것을 통감하였다. 오늘날의 전쟁은 사상, 경제, 무력등을 통한 소위 총력전이다. 전쟁은 바로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의용봉공은 논의보다도 실행에 있


40) 사정이 크게 다름을 뜻함.

다. 또한 본 기관을 상설기관으로 삼아 전시봉공의 의용화 운동으로 매진해야 한다.

오늘밤 임전대책협의회를 개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이상으로 각 제안사항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이어서 의장은 본 협의회를 상설적인 것으로 할 것인지 일시적인 것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상설과 일시적 양론이 나왔는데 결국 거수로 결정하기로 하여 만장일치로 상설로 결정하였다. 이어서 준비위원을 선거하여 의장은 전형위원으로서 이종린(李鍾麟), 김동환(金東煥), 장덕수, 이용신(李容愼), 주요한 5명을 지명 선정하였다. 이들은 위원 별실에서 협의하여 다음과 같이 35명을 준비위원으로 천거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사연(金思演)의 선창으로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하고 이진호(李軫鎬)의 발성으로 성수만세를 봉창한 다음, 오후 9시 25분에 무사히 산회하였다.


기(記)
가산린(佳山麟), 신흥우(申興雨), 이가진호(李家軫鎬)41), 한상룡(韓相龍), 이동치호(伊東致昊),42) 오촌승우(梧村升雨),43) 김사연(金思演), 조기간(趙基栞), 서원종린(瑞原鍾麟, 이종린), 이극로(李克魯), 하산무(夏山茂),44) 유억겸(兪億兼), 이성환(李晟煥), 김약수(金若水), 윤치영(尹致映), 임명재(任明宰),45) 원덕상(元悳常), 박인득(朴仁得), 김활란(金活蘭), 박흥식(朴興植), 이병길(李丙吉), 신태악(辛泰嶽), 최두선(崔斗善), 오천교원(烏川僑源),46) 방응모(方應模), 최남(崔楠), 장우식(張友植), 백산청수(白山靑樹),47)박기효(朴基孝), 이용신(李容愼), 이용설(李容卨), 이종욱(李鍾郁), 한규복(韓圭復), 국산시권(菊山時權),48)금천성(金川聖)49)


<별지 제1호>


결의문


우리는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정성을 맹세하고 임전국책에 전력을 다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한다.


41) 이진호(李軫鎬)의 창씨명.
42) 윤치호(尹致昊)의 창씨명.
43) 이승우(李升雨)의 창씨명.
44) 조병상(曺秉相)의 창씨명.
45) 원문에는 ‘任命宰’로 되어있으나 오기로 보아 수정.
46) 정교원(鄭僑源)의 창씨명.
47) 김동환(金東煥)의 창씨명.
48) 김시권(金時權)의 창씨명.
49) 이성근(李聖根)의 창씨명.

발송처
고노에(近衛) 내각총리대신 각하
척무대신 각하
미나미(南) 총독 각하
이타가키(板垣) 조선군사령관 각하


<별지 제2호>


감사전문


시국이 긴박해짐에 즈음하여 조선 2,400만 황국신민으로서 몸과 물질적으로 보국의 정성을 다하고, 그 실천방책을 협의하고자 각 계급 120명이 경성에서 임전대책협의회를 개최함에 즈음하여 삼가 귀관 및 부하 장병의 노고에 대해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표함과 동시에 무운장구와 국위선양을 기원합니다.
1941년 8월 25일
임전대책협의회
발송처
하타(畑) 지나파견군 사령관 귀하
관동군 사령관 귀하
지나방면함대 사령장관 귀하
불인(佛印) 진주 육군최고부대장 귀하
불인 진주 해군최고부대장 귀하


<출전: 京畿道 警察部長, 「臨戰對策協議會開催ニ關スル件(京高秘 第2397號)」,1941년 8월 27일, '思想ニ關スル情報綴'(13)>

1-2)
임전대책협의회 개최에 관한 건
(8월 27일자 경고비 제2397호에 대해서)
경고비(京高秘) 제2397호의 1
1941년 8월 29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경찰서장 귀하


임전대책협의회 개최에 관한 건
(8월 27일자 경고비 제2397호에 대해서)


요지


최린(崔麟, 佳山麟) 외 20명은 8월 28일 임전대책협의회 위원회를 경성호텔에서 개최하였다.

최린을 위원장으로 추대하여 앞으로의 운동방침에 관해 협의한 다음, 위원장은 상임위원으로 김동환(金東煥)외 11명을 지명 선정하고, 이어서 같은 곳에서 상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지난번에 경성의 반도인 측 유력자 등이 모여 임전체제 아래에서의 자발적인 황국신민화운동의 실천방책에 관해 협의한 결과, 준비위원으로서 최린 외 34명을 선거하였다.

이들 위원은 이미 보고한 바와 같이 구체적인 실천운동 방법의 계획에 대해 토의하였는데, 지난 8월 28일 오후 6시 50분부터 관하 경성부 남산정 3정목 소재 경성호텔에서 수제(首題)의 위원회를 개최하였다.

그 상황은 다음과 같고 오후 9시 20분 무사히 산회하였다. 이에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통첩 ‘달’)한다.


기(記)


오후 6시 50분 준비위원 가산린(佳山麟), 윤치호(伊東致昊), 신흥우(申興雨), 김시권(金時權), 이종린(李鍾麟), 신태악(辛泰嶽), 김동환(金東煥), 조기간(趙基栞), 박인득(朴仁得), 김활란(金活蘭), 이가진호(李家軫鎬), 이용설(李容卨) 외 9명(이들 외에 총독부의 한승린(韓承麟)과 이(李) 방송국원이 출석)이 모였다.

윤치호의 개회사에 이어 김동환은 출석상황에 대해 위원 35명 가운데 21명이 출석하였고, 기타 사고로 결석한 김약수(金若水)는 일신상의 이유로 위원을 사임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김동환의 제의로 위원장으로 윤치호를 추천하였고, 일동은 만찬을 가졌다.

여기에서 김동환은

1. 상임위원 선정의 건
2. 9월 1일의 애국일에 위원 등이 가두에 진출하여 소위 채권을 판매할 것
3. 강연회 개최의 건
등을 제의하여 협의한바, 모두 찬성하였다. 이어서 위원장은 김동환의 내천(內薦)에 따라 상임위원을 발표하였다.

신흥우, 김동환, 박인득, 박기효(朴基孝), 신태악, 이용신(李容愼), 김사연(金思演), 이성환(李晟煥), 조기간(趙基栞), 임흥순(任興淳), 노창성(盧昌成) 등 11명을 추천 결정하였다.

이 밖에도 협의회의 명칭을 개칭하자는 논의가 있어 이를 상임위원에게 일임하기로 하였다. 또 이 방송국원은 강연회
를 개최할 시는 이를 중계 방송하여 민중이 열렬한 육성을 잘 듣게 하자고 말하였다.

위원장은 지난번에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이 조직되었는데 오늘 다시 본 협의회가 조직된 것에 대해 일반 민중은
동일한 목적의 두 개의 기관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의가 있지만, 흥아보국단은 주로 청년층을 훈련하고 본 협의회는 전반적으로 국책에 협력하여 혼란이 없도록 하자고 말하며 본 위원회를 마쳤다.
이어서 같은 곳에서 위원장 최린의 사회로 상임위원회를 개최(신흥우, 신태악, 김동환, 조기간, 박인득, 총독부 한승린 등이 출석)하였다.


1. 명칭 개칭의 건에 대해 협의한 결과, 임전대책협력회로 개칭하기로 결정하였다.
2. 선언 강령 규약 제정의 건에 대해서는 기초위원으로서 최린, 신흥우, 신태악, 김동환을 선정하여 기초를 일임하였다.
3. 강연회 개최의 건에 대해서는 9월 4일 오후 6시부터 경성부민관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연사로는윤치호, 최린, 신흥우, 박인득, 신태악, 김활란, 이종린에게 의탁하고, 연제는 임전대책대강연회로 결정하였다.
4. 부서 결정의 건
김동환의 제안에 따라 총무, 재정, 기획의 3부를 두기로 하였다. 총무부장 신흥우, 부원 신태악·김동환, 재정부장 박기효(朴基孝), 부원 이용신(李容愼)·조기간·임흥순(任興淳), 기획부장 김사연, 부원 박인득·이성환·노창성 등을 각각 추천 결정하였다.
5. 기타
(1) 회원자격 심사는 지난 번 협의회에 출석한 자에게 정식으로 입회신청서를 보낸 다음 결정한다.
2) 신문 관계자 초대의 건은 앞으로 신문사 간부급을 저녁에 초대하여 후원을 의뢰한다.

이어서 강연회의 연제는 김동환이 작성하여 오는 9월 1일 저녁 연사 등과 경성호텔에 모여 협의한다.


<출전: 京畿道 警察部長, 「臨戰對策協議會開催ニ關スル件(京高秘 第2397號ノ1)」,1941년 8월 29일, '思想ニ關スル情報綴'(13)>

2) 임전대책협력회서 가두로 채권봉공대(기사)


임전대책협력회서 가두로 채권봉공대, 내일 70명이 11개소에 동원


지난 4일 밤 부민관 대강당에서 연설회를 열고 총후 반도 민중들에게 애국의 지성으로 국가를 위하야 궐기하라고 부르짖은 임전대책협력회(臨戰對策協力會)에서는 또 다시 7일 오후 1시부터 3시간동안 이동치호(伊東致昊), 이가진호(李家軫鎬), 가산린(佳山麟), 한상룡(韓相龍) 씨와 금천(金川) 본사 사장등 회원 17명이 경성부내 11개소로 총동원하야가지고 길 위에서 통행인들에게 1원짜리 꼬마 채권을 팔기로 되었다.

이것은 ‘애국운동은 이름보다도 실천이 귀하다’는 협력회의 운동방책을 실천하는 첫걸음으로 친히 가두에 나가서 민중들에게 자발적인 애국지성을 발휘하도록 지도하는 동시에 저축 보국운동에 협력하라는 것으로 뜻 깊은 일이다.

그래서 이날 채권을 팔 때에는 강제로 하지 않고 일반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손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채권을 사자’는 취지를 철저히 인식시키기로 되었는데 채권 파는 장소와 담당한 회원의 씨명은 다음과 같다.


▲ 종로대(鐘路隊) : 이동치호(伊東致昊) 한상룡(韓相龍) 가산린(佳山麟) 방응모(方應謨) 향산광랑(香山光郞) 백산청수(白山靑樹) 이용신(李容愼) 모윤숙(毛允淑) 영하인덕(永河仁德)
▲ 광화문대(光化門隊) : 박상준(朴相駿) 이성근(李聖根) 민규식(閔奎植) 양주삼(梁柱三) 김성진(金晟鎭) 김동진(金東進) 유억겸(兪億兼) 박영희(朴英熙)
▲ 서대문대(西大門隊) : 신흥우(申興雨) 주요한(朱耀翰) 구자옥(具滋玉) 노창성(盧昌成) 소완규(蘇完奎) 신봉조(辛鳳祚) 고황경(高凰京)
▲ 황금정대(黃金町隊) : 고원훈(高元勳) 박흥식(朴興植) 장우식(張友植) 이종린(李鍾麟) 부부 박창서(朴彰緖) 김택용(金澤勇)
▲ 남대문대(南大門隊) : 김갑순(金甲淳) 조병상(曺秉相) 원덕상(元悳常) 오긍선(吳兢善) 이각종(李覺鐘) 이용설(李容卨)
▲ 본정대(本町隊) : 이진호(李軫鎬) 신용욱(愼鏞頊) 김시권(金時權) 김연수(金秊洙) 임흥순(任興淳)김승복(金昇福) 최정희(崔貞熙) 신태악(辛泰嶽)과 그의 딸
▲ 명치정대(明治町隊) : 김명준(金明濬) 이종만(李鍾萬) 최창학(崔昌學) 이숙종(李淑鍾) 이정섭(李晶變) 이종회(李鍾會)
▲ 경성역대(京城驛隊) : 정교원(鄭僑源) 이돈화(李敦化) 박기효(朴基孝) 송금선(宋今璇) 김사연(金思演) 부녀 손홍원(孫弘遠)
▲ 종로4대(鐘路4隊) : 한규복(韓圭復) 이종욱(李鍾郁) 조인섭(趙寅燮) 이극로(李克魯) 오용택(吳龍鐸)조대하(趙大河) 외 천도교회 일파
▲ 남대문대(東大門隊) : 윤익선(尹益善) 최원섭(崔元燮) 윤치영(尹致暎) 전부일(全富一) 이정재(李定宰) 함상훈(咸尙勳)
▲ 청량리대(淸凉里隊) : 성의경(成義慶) 정인과(鄭仁果) 홍세뢰(洪世雷) 원익상(元翊常) 조기간(趙基栞) 정광조(鄭廣朝, 가족총동원)
▲ 연락본부(連絡本部) : 이성환(李晟煥) 이규재(李奎載, 화신 사교실내 가족 총동원)50)



<출전: 「臨戰對策協力會서 街頭로 債券奉公隊-明日七十名이十一個所에動員」,'매일신보', 1941년 9월 7일>


3) 삼천리사 주최 좌담회, 임전대책협의회, 120인사가 부민관에서 회합
-임전대책협의회 의사록


금일의 조선인전보국단의 모체인 ‘임전대책협력회’는 지난 8월 25일에 본사 사장 김동환(金東煥) 씨의 초청으로 사회 각방면 인사 120여 씨가 부민관에 회합하여 장시간 토의를 거듭한 뒤 영구적인 상설기관으로 만장일치 가결, 결성된 것이다. 이제 이날 밤의 의사(議事)를 초록하건대 먼저 초청의 원문은다음과 같다.


‘임전대책’ 협의회 안내장


삼가 아뢰옵니다.

폐사 ‘삼천리(三千里)’는 이번 귀하를 비롯해 조선의 사상계, 재계, 교육, 종교, 언론, 문화 등 각계 유지 약 200명을 한자리에 모시고 시국이 중대해짐에 따라 ‘임전대책’ 협의회를 개최하여 그 내용을 널리 반도 민중에게 전하여 일대 맹선과 분기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세계대전은 최후적 최대의 장면으로 확대되어 구주 여러 열국은 그야말로 생명을 걸고 사투하고 있고, 우리 일본제국으로서도 언제 어떠한 예측할 수 없는 변국을 극동의 천지에서 맛보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황국 일본의 흥륭은 실로 이러한 난관의 격파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을 깊이 믿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우리 반도 민중은 약적(弱敵) 장개석(蔣介石)의 연약함에 너무 길들여져 천하의 대세를 잘못바라보고 있습니다. 성전 5개년인 지금, 여전히 일부에는 전투적 국민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지 못하고 준순(浚巡)과 도피 회의(懷疑)의 경향이 있는 것을 정말 통탄해마지 않습니다.
장개석은 약한 적이었지만, 다가오는 적은 결코 약한 적이 아닙니다. 광대한 자원과 멈추지 않는 탄욕(呑慾)을 지니고 있는 이들 적성국가가 만일 일을 벌이는 단계가 되면 이번에는 실로 우리 내선 일억 동포는 철혈의 일단이 되어 문자 그대로 몸과 목숨을 걸고 최후의 결전을 싸워야할 것입니다.
지금 온 나라가 보다 큰 전쟁의 준비를 위해 일억 국민 모두가 일어나 임전체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 스스로는 전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애국공채 소화력의 빈약, 생산확충사업에 대한 노무봉사의 원만함, 더구나 국민적 충성과 신념, 기개의 부족으로 인해 암거래, 매점 등의 통제 위반, 더군다나 유언(流言)을 살포하여 나라에 화살을 쏘는 등 정말로 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50) 회원 명단은 '민족정기의 심판'(1949)을 참조함.

이러한 사실을 앞에 두고 선각자인 귀하에게 마음으로부터 호소하고자 합니다. 적기가 습래(襲來)하면 ‘학룡산(鶴龍山)’ 주변으로 가서 자기 혼자 난을 피하거니 물자배급의 궁박(窮迫)을 생각해서 1~2년분의 식량을 남몰래 매점하고, 적이 북쪽에서 오면 나서서 격퇴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남쪽으로 도망가고, 남쪽에서 적이 오면 북쪽으로 도망가려고 계산하는 우매하고 이기주의적인 일부 민중을 귀하의 힘을 통해 맹성시키고 싶습니다.

국가와 더불어 살고, 국가와 더불어 죽겠다는 불퇴전의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귀하의 열성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 반도 민중 모두가 안으로는 스스로를 깊이 수신하는 자가 되고, 밖으로는 몸과 목숨을 군국에 바치는 충용한 국민이 될 수 있도록 아무쪼록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촌각도 주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도의 완전한 병참기지화를 위해, 또 반도의 무장화를 위해 크게 전진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협의회 개최에 즈음하여 다음 시일, 장소에 꼭 임석하시어 협의해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또한 당일은 다음 의안의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준비를 위해 불편하시겠지만 동봉한 엽서에 출결을 회시(回示)해주기 바랍니다.
삼가 아룁니다.


의제


1. 임전체제 하에서의 자발적 황국신민화운동을 위한 실천방책에 관한 건
(1) 물자 및 노무 공출의 철저강화책
(2) 국민생활의 최저표준화운동 방책
(3) 전시봉공의 의용화(義勇化) 방책
(이상)


집회일시
시일 : 8월 25일 오후 6시(시간엄수)
장소 : 부민관 중강당



협의회 출석인사-120명의 씨명
협의회의 당야 출석인사는 120여씨의 다수로써 그 씨명을 기록하면 아래와 같다. (×는 결석자)


윤치호(尹致昊)한상룡(韓相龍)장덕수(張德秀)신흥우(申興雨)유억겸(兪億兼)김성수(金性洙)×박흥식(朴興植)
송진우(宋鎭禹)×김연수(金秊洙)김사연(金思演)민규식(閔奎植)방응모(方應謨)×최 린(崔 麟)양주삼(梁柱三)
정춘수(鄭春洙)정인과(鄭仁果)이광수(李光洙)최남선(崔南善)×

박희도(朴熙道)박기효(朴基孝)장기식(張驥植)박용운(朴龍雲)옥선진(玉璿珍)홍병선(洪秉璇)윤우식(尹宇植)

백낙준(白樂濬)최 남(崔 楠)×윤치영(尹致暎)유광렬(柳光烈)심우섭(沈友燮)안인식(安寅植)조인섭(趙寅燮)
이정섭(李晶燮)이용설(李容卨)이대위(李大偉)조병옥(趙炳玉)김준연(金俊淵)×김용국(金容國)조동식(趙東植)
이종회(李鍾會)이종욱(李鍾郁)민석현(閔奭鉉)조기간(趙基栞)설의식(薛義植)임긍순(任兢淳)박창서(朴彰緖)
임흥순(任興淳)이승복(李昇馥)×이묘묵(李卯默)×장 면(張 勉)박춘금(朴春琴)×박상준(朴相駿)이진호(李軫鎬)
오긍선(吳兢善)×고원훈(高元勳)이헌구(李軒求)서 춘(徐 椿)×한규복(韓圭復)김시권(金時權)김기덕(金基德)
현상윤(玄相允)김동훈(金東勳)박인덕(朴仁德)홍명희(洪命憙)×허 헌(許 憲)×김명하(金明夏)윤석필(尹錫弼)
이충복(李忠馥)황청송(黃淸頌)김기도(金基道)김활란(金活蘭)김성진(金晟鎭)백인제(白麟濟)정교원(鄭僑源)
최창학(崔昌學)여운형(呂運亨)×김명준(金明濬)구창조(具昌祖)조병학(曺秉學)이영준(李榮俊)×강익하(康益夏)×
유영섭(劉永燮)김우현(金禹鉉)원익상(元翊常)엄주명(嚴柱明)노창성(盧昌成)이한복(李漢福)허 택(許 澤)
한학수(韓學洙)주요한(朱耀翰 이석구(李錫九)×한상억(韓相億)×이서구(李瑞求)안종화(安鍾和)김승복(金昇福)
최 동(崔 棟)신용욱(愼鏞頊)이하원(李夏源)박승빈(朴勝彬)박용균(朴容均)구자옥(具滋玉)김여백(金汝伯)

김갑순(金甲淳)×김동진(金東進)이종린(李鍾麟)한익교(韓翼敎)양재하(梁在厦)×김주익(金周益)박영희(朴英熙)
김약수(金若水)정인보(鄭寅普)×소완규(蘇完奎)이승우(李升雨)유진희(兪鎭熙)김병로(金炳魯)×이성환(李晟煥)
이 인(李 仁)×신태악(辛泰嶽)정광조(鄭廣朝)전필순(全弼淳)김형원(金炯元)김은호(金殷鎬)조대하(趙大河)
방규환(方奎煥)장우식(張友植)임명재(任明宰)서정희(徐廷禧)원세훈(元世勳)김항규(金恒圭)홍증식(洪璔植)
함상훈(咸尙勳)권상로(權相老)이훈구(李勳求)이극로(李克魯)손기정(孫基禎)김성권(金星權)나경석(羅景錫)
박창훈(朴昌薰)손홍원(孫弘遠)윤익선(尹益善)정석태(鄭錫泰)조준호(趙俊鎬)이각종(李覺鍾)차재정(車載貞)
원덕상(元悳常)이준렬(李駿烈)원효섭(元孝燮)정현모(鄭顯模)이숙종(李淑鍾)송금선(宋今璇)김성환(金成煥)
송성진(宋星鎭)이관구(李寬求)×이여성(李如星)김인술(金仁述)백관수(白寬洙)×한용운(韓龍雲)이돈화(李敦化)
이상협(李相協)김양수(金良洙)김창제(金昶濟)이병길(李丙吉)×이성근(李聖根)이종만(李鍾萬)조병상(曺秉相)
방태영(方台榮)이정재(李定宰)이용신(李容愼)유진오(兪鎭午)전부일(全富一)최규동(崔奎東)×최두선(崔斗善)×
정노식(鄭魯湜)이규재(李奎載)임영신(任永信)고황경(高凰京)이갑수(李甲洙)장현식(張鉉植)이보석(李輔錫)
전용순(全用淳)현제명(玄濟明)모윤숙(毛允淑)김택용(金澤勇)최원섭(崔元燮)황신덕(黃信德)김종선(金宗善)
임종상(林宗相)염경훈(廉璟薰)조병렬(趙炳烈)박영근(朴寧根)임병기(林炳基)조선용(趙善用)송석하(宋錫夏)
이근택(李根澤)홍세뢰(洪世雷)이춘호(李春昊)이상철(李相喆)박두영(朴斗榮)양원모(梁源模)이긍종(李肯鍾)
김도연(金道淵)임정엽(林正燁)장회근(張晦根)김희준(金熙俊)오용택(吳龍澤)김동성(金東成)성의경(成義慶)


당야(當夜)의 회의


국제정세의 긴박에 호응하여 당야의 공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터질듯이 긴장하고도 엄숙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정각 전부터 우리 사회의 사상계, 교육, 재계(財界), 언론, 종교 등 각 계 인사가 참집(參集)하기 시작하여 총수 20명의 다수를 헤아렸다. 그중에는 윤치호(尹致昊)·최린(崔麟)·신흥우(申興雨)·이광수(李光洙) 씨의 얼굴도 보이고 재계(財界)로는 한상룡(韓相龍)·민규식(閔奎植)·박흥식(朴興植)씨 등의 얼굴도 보이고 이진호(李軫鎬)·고원훈(高元勳)·김시권(金時權)등 전일(前日)의 고관(高官)들의 얼굴도 보이었다.
6시 30분의 정각에 ‘국민의례(國民儀禮)’가 잇은 뒤 김동환(金東煥) 씨가 등단하여 약 10분간, 금일 회합의 의의에 대하여 개회사를 하고, 이어서 제씨(諸氏)의 동기(動機)로 주최 측에 좌장(座長)의 선(選)을 임함으로 씨(氏)는 다시 신흥우(申興雨)시를 당일 의장으로 추대하고 하단(下壇)하다.


임전대책협의회 의사록


신흥우(申興雨 : 高靈興雨) : 여러 선배가 임석(臨席)하신 이 자리에서 저 같은 적은 사람이 의장으로 추대된 것은 실로 황송(惶悚)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번 이 모임의 취지와 목적에 관해서는 주최측인 삼천리(三千里)사 사장 김동환(金東煥) 씨로부터 이미 말씀이 있었으니 약(略)하기로 합니다마는 지금은 내게 있는 것을 다 내여서 국가에 봉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및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긴박한 제정세(諸情勢)에 감(鑑)하여 임전태세에 즉(則)하므로써, 우리의 이상과 생활을 재편성하자는 뜻 밑에서 피차 좋은 의견을 교환하여 이 회를 원만하게, 그리고 유의의(有意義)하게 진행시켜 주셨으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그런데 우선 윤치호(尹致昊) 씨께서 씨(氏)의 동의(動議)로 된 본 협의회의 결의문을 등단하셔서 낭독하시겠습니다.


결의문(決議文) -윤치호(尹致昊)


윤치호(尹致昊 : 伊東致昊) : 결의문을 낭독하겠습니다.
‘우리는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을 맹서(盟誓)하며 임전국책(臨戰國策)에 전력을 다하여 협력하기로 결의함’
이상의 결의문을 사통(四通) 작성하여서 고노에(近衛) 내각총리대신 각하에게와 도요타(豊田) 척무대신 각하에게와 미나미(南)조선총독 각하에게 타전(打電)하기로 제의(提議)합니다.


일동 박수로 동의


신(申)의장 : 다음에는 장덕수(張德秀) 씨의 동의(動議)로 된 본 협의회의 감사문을 장덕수씨가 등단하셔서 낭독하시겠습니다.


감사문(感謝文) - 장덕수(張德秀)
장덕수(張德秀) : 전지(戰地)에서 분투하는 황군의 노고를 감사하는 뜻 밑에서 감 사문을 작성하여 본 협의회로서 전(畑) 지나파견군(支那遣軍) 총사령관, 관동군사령관, 남지파견함대(南支派遣艦隊) 총사령관, 불인진주(佛印進駐) 육군최고지휘관,51) 다섯 분에게 타전하기로 하였는데 그 감사문을 낭독해드리겠습니다.
‘시국의 긴박에 제하여 조선인 2,400만은 황국신민으로서 신(身)과 그 실천방책을 협의하기로 위해 각 계급 120명이 경성에서 임전대책협의회를 개최함에 당하여 삼가 귀관(貴官)과 아울러 부하 장병의 노고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의 의를 표하며, 및 무운장구(武運長久), 국위선양(國威宣揚)을 빌어 마지않음.’
1941년 8월 25일
임전대책협의회


일동 박수로 동의


신(申)의장 : 이제 근본문제인 ‘임전체제하에 있어서 자발적 황군신민화 운동에의 실천방책’에 관하여 협의할 터인데, 최린(崔麟) 씨로부터 이에 관한 총괄적인 연설이 있겠습니다.


극동사태(極東事態)의 긴박과 오인(吾人) -최린(崔麟)


최린(崔麟: 佳山麟) : 지금 새삼스러이 특별한 말씀을 드릴 것은 없으나 평소에 심중에 품었던 심경의 일단(一端)을 피력하려 합니다. 즉 내선일체(內鮮一體)구현화, 다시 말하면 조선인 2400만 명이 황민화 한다는 것은 조선인에게 부여된 큰 과제로서 누구에게나 부딪쳤던 과거의 일이겠으나 그러나 이 과제를 어떻게 잘 풀어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에 관해


51) 불인(佛印)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서는 위정자도 상당히 노력하리라고 배참하나, 따라서 우리 민중의 심경을 피력하는 것도 되리라 생각됩니다.
즉, 우리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은 2,400만 민중의 심중에 공통으로 왕래하는 중대문제로서 여러가지 이론과 비판이 많을 것입니다.
근래 우국동지(憂國同志)들의 말을 듣건대 여러 가지 의견이 많은 모양인데, 첫째, ‘나는 일본인이 되려고 한다’는 일부의 인사(人士)가 있고, 둘째로는 주로 전향객(轉向客)의 말인데 ‘나는 이미 청산해서 깨끗하니 다 됐다.’고 과거로 돌리는 인사도 있고, 셋째로는 ‘나는 이미 다 되었는데 전(前)대로 보아주니 슬프다.’는 즉 위정자나 제3자가 못 알아준다는 슬픔을 토로하는 인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됐다고 하는 마음 속의 것을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즉 표현문제인데, 이를테면 어떠한 일이 황국
신민의 일이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라 하는데 있어서 위정자가 과제를 제시하면 피를 흘려서라도 일하겠다는 인사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 심경을 피력함이 각각 다른 모양인데, 나의 의견으로는 일을 우리로서 선택할 것이 아니라 시국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렵게 구차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힘에 적당하게 함이 무엇보다 요체(要諦)라 생각합니다. 당국은 하라하면 국민은 합시다 하여서 춤과 장단이 맞아 떨어져야 할 것인데, 종종 춤과 장단이 맞지 않는 그러한 현상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정과 힘을 다해서 시키는 대로만 잘만 해 나아가면 훌륭한 봉공(奉公)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 여담이지만 나도 일생을 통해서 본다면 다른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살려면 권리가 있어야 한다. 즉 권리주장이 어느 시기에는 나를 지배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떠한 시기에 이르러 이 사상이 일전(一轉)하였는데, 그것은 사람은 권리로 살 것이 아니라 의무로 살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의 파지(把持)에서 권리주장을 청산했습니다.

종래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권리주장을 의미하는 것이오,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는 의무주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권리의 관념을 포기하고 의무이행으로 내 생활을 재편성해야 하며, 이로써 국가에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충성에는 권리가 없다. 효(孝)에는 의무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과 눈물과 피로써 의무만을 다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국은 매우 절박해왔습니다. 이른바 비상시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상시국이라는 말의 내용은1~2년 전과 지금과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고로 이 초비상시국에 처한 우리에게는 책임이행, 즉 요새 유행어로는 직역봉공(職域奉公) 그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는 것은 천만 돌이 주먹만 못하다는 격으로, 모든 것에 실천과 실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일반에 충성하자면 ‘기회’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인에게 있어서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 기회에 우리가 충성을 다한다면 실로 사방공배의 커다란 공로가 있을 것이라 믿는 바입니다.
이에 있어서 우리에겐 몇 가지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하려 합니다.
① 정치문제를 초월하자. 즉, 정치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② 공리심(功利心)을 청산하자 사람이 공리심이 전혀 없을 수 없으나 그러나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기장(旗帳) 밑에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③ 대립관념을 청산하자. 이 대립행동은 특히 조선인에게 많다고 보아지며, 우리의 결함 중의 하나라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으로 남에게까지 부끄러운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산곡(山谷)의 풀들이 모여서 만리귀해(萬里歸海)하듯이 개인 개인은 한 덩어리가 되어서 국가에 귀착해야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에게는 오직 단결만이 있을 뿐이오, 상극이나마 마찰이 전혀 없어야할 것입니다.
어떠한 단체라든지 어떠한 일에 있어서든지 대립을 청산하고 국가에 귀일하기를 재삼 말합니다.

이상의 삼대 조목을 실행해 나가기를 피차 힘쓰십시다.
(박수)
신(申)의장 : 이제부터 여러분 중에서 의견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분이 나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일본제국과 조선인의 진로 -조병옥(趙炳玉)


조병옥(趙炳玉) : 여러 선배의 현명하신 의견도 많을 줄 압니다마는 제가 잠깐 소감의 일단(一端)을 외람되이 말씀하고자 합니다.
제 생각엔 오늘 협의항목 중에 ‘물자와 노무공출의 강화책’이라든가, ‘국민생활의 최저표준화 운동방책’등은 이 좌석에서 단시간에 협의 결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오, 또 제한된 시간에 각각 명안(名案)이 나서지 않으리라고 사료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는 위원제를 조직하여 이 협의회로 하여금 영구화시켜서 세밀한 연구와 보고가 있음이 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제국의 신민으로서 이 마당에 모였습니다. 전 세계를 통하여 역사적 드라마가 전개되는 현 단계에 있어 유사(有史)이래 처음 위급(危急) 존망지추(存亡之秋)에 입각한 제국의 위정자로서는 조선인이 과연 절대적으로 제국신민으로서 현하 국책에 협동하느냐 않느냐 함에 있어서 조선민중에 대해서 듣고 싶은 대답이 많을 줄로 압니다.

영국(英國)이 대 독일전에 있어서, 인도(印度)민중이 영국의 전쟁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음을 매우 주목하여 인도가 과연 영국에 편입되어 참전하느냐가 중대문제의 하나로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영국은 만일 인도가 참가하면 인도에 자유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민중은 아무 요구도 없이 무조건으로 협동해서 전승해서, 동아공영권 건설에 매진하므로써 위정자에게 안심을 줄 것입니다.
지나사변(支那事變)52)은 단지 ‘지나사변’만이 아니고 세계대전에 연쇄적 관련이 있어서 대는 바야흐로 북태평양 물결과 남태평양 물결이 거칠어지고 있는데, 대성전의 목적이 시베리아(西伯利亞), 만주(滿洲), 중국(支那), 프랑스령 인도차이나(佛印), 태국(泰國),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蘭印), 호주(濠洲) 등을 포용하여 경제적으로 연방제로 하는 동아공영권 확립에 있다는 것은 역사적 필연적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관철된 뒤의 전쟁은 민족적 투쟁에 있는데, 그것은 세계를 이분하여 백색인종과 유색인종의 투쟁인 것입니다.

요컨대 이 모임의 목적은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제국신민으로서 국책에 절대협력할 것, 그리하여 위정자로 하여금 안심하게 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52)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을 뜻함.

애국자와 금일(今日) -이광수(李光洙)


이광수(李光洙 : 香山光郞) : 나 같은 일개 서생이 여러분 앞에 나서서 떠드는 것은 외람된 일입니다마는, 지금은 성전(聖戰) 4년이 지났고 이미 5년에 들어섰으며, 이에 다시 영미(英米), 소련이 적이 되어 대동아공영권의 성업의 완수를 협위(脅威)하여서 시국은 한층 더해 긴박해지고, 따라서 임전체제의 산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때에 우리들은 이미 당국이 일하기를 허하였으니 임금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일할 것뿐입니다.

‘일한합병’ 이후 조선인은 늘 당국을 향하여서 ‘안 준다’는 불만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은 서양식 국가 관념인데 즉 세납(稅納)을 얼마나 바쳤으니 그만큼 국가로부터 무엇을 받아야겠다는 것이 서양식 국가 관념이지만, 일본의 국가 관념은 그와 반대로 기쁘게 모든 것을나라에 바치자는 것입니다. 즉,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즐겨 드리는 것이 일본의 국가정신인 것이외다.

나 같은 인물도 이 일본의 국가 관념을 파악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나 우리는 나라에 바치는 것이 너무 적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중일전쟁에 전지(戰地)에서 산화(散華)된 전몰장병(戰歿將兵)이 10만 6천이나 된다고 군으로부터 발표가 있었는데, 내선(內鮮)53)의 인구비례로 보아 일본인이10만 6천명이 전몰했다면 그중에 조선인이 3만 명은 같이 전사했어야 옳을 일이오, 또한 공평한 일일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조선인이 몇 사람이나 피를 흘려 죽었는가 하니 중위(中尉) 1인, 병졸 2인,제 합 3인이 전사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럽기가 작이 없는 노릇이외다.
그러나 몸을 나라에 바쳐서 피를 흘릴 수 있는 병역(兵役)의 의무가 조선인에게 아직 허해져 있지않기 때문에 몸을 나라에 바치는 일에 있어서는 그와 같이 엄청나게 적은 부끄러운 숫자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는 채권(債券)을 사는데 있어서 4년간 국채발행에서 조선인이 소화한 것이 9분 6리(厘) 3모(毛)라 하니 이 또한 조선 내에 있는 일본인보다 40배나 되는 인구를가진 우리로서는 부끄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째, 우리는 몸을 적게 바쳤고,
둘째, 우리는 물질을 적게 바쳤으며,
셋째, 우리는 마음을 또한 적게 바쳤다고 생각합니다. 임금님과 나라에 마음을 바치는 일은 순서대로 말하고 보면 첫째에 속할 것인데, 이 일조차 적으니 이것은 우리의 정성이 적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이외다.
때는 바로 긴장을 요구하는 때입니다. 영미가 적이 되고, 소련도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蘭印)도 적이라 해도 좋으리만큼 적성(敵性)을 띠고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우리는 있는 힘을 다 내어 놓아야 할 시기인줄로 압니다.

마음과 물질과 몸을 바쳐서 국민 전체가 전쟁태세를 취하지 않아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국하에 우리 조선인의 사명이 매우 크다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노역(勞役)의 필요를 절감하는 동시에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이라 느낍니다. 오는 1942년도에 있어서 몇 백만의 힘이 필요한지 그 숫자는 알 수 없으나 그리고 그 사용처도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생산기관이 전보다 더욱 늘어가고, 또 병정의 출정으로 인하여 인원 부족을 느끼는 때 우리 조선인의 힘을 모아서


53) 일본(내지, 內地)과 조선일 함께 일컫는 말. 이하 내지(內地)는 일본으로 고침.

이 부족 되는 것을 충당시켜야 할 것이며, 국채를 사는 등 이 협의를 통하여 실제 운동의 결실이 잇기를 요망하는 바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 덜 일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힘써서 정말 일본인이 됩시다.

총 매는 영광은 아직 못 가졌다 할지라도 참된 일본인이 되어서 이상의 말씀 드린 실제 운동에 발 벗고 나서면 총 매는 영광까지도 가지는 장래는 필히 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바입니다.


황도정신과 총력 -이각종(李覺鍾)


이각종(李覺鍾 : 靑山覺鍾) : 본 문제에 부딪치기 전에 한 마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이러한 모임은 누구나 다 해야 할 줄 알고 있는 이때, 삼천리(三千里)사에서 이와 같이 모이도록 수고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근래 사변 5년 동안 조선에 미완된 점을 염려하여 유지 방면에서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을 조직한 일이라든가, 또는 이번 협의회까지 조직된 것은 실로 감사하기 짝이 없으며 이러한 회합은 각각 국책에 선히 순응되어 가다는 증명일 것입니다.
그런데 종래의 조선인의 심경의 방황은 아까 최린(崔麟)군도 말씀했습니다마는 권리를 주지 않으니까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말이나 의무를 다하지 않으니까 권리가 없다는 말이나, 또는 이광수(李光洙)군이 말한 나라에 바치는 것이 적다는 말들을 더 한 번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그러한 말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일본적으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은 도의(道義)의 나라입니다. 건국정신으로부터 그러합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뜻을 잘 받들고 윗사람은 또한 아랫사람을 잘 살피는 근본적으로 도의의 정신에서 사는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읽은 뒤에도 그 생활 표현이 일본식 문화에 익숙하지 못했고 또한 도의가 부족했기 때문에 전자에 이광수 군의 발기(發起)로 황도학회(皇道學會)라는 단체도 조직되었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일본사상권 내에 돌입해서 일본적으로 살아야 할 것이외다. 그리하여 대립사상에서 돌아서서 구체적 의견협의로 국민총력연맹(國民總力聯盟)을 통해서 총후보국이 커야 할 것입니다.

제1 항목에 있어서는 주밀한 조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후생성(厚生省)에서 하는 일이며, 제2항목에 있어서는 비상시 혼상의례(婚喪儀禮) 같은 것이 총력연맹을 통해서 장려되고 있는 것이니 총력연맹과 제휴하여 이 일에 매진했으면 합니다.


신(申)의장-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서 다 말씀하시고 싶은 생각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120여 명의 인사가 운집하신 이 석상에서 한 분이 한 마디 말씀만 하신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밤으로는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협의할 본론에 있어서는 실례일 줄 아나 부득이 지명해서 한 문제에 한 분씩 말씀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항목인 ‘물자와 노무공출의 강화책’에 있어서 함상훈(咸尙勳) 씨가 나오셔서 말씀하시겠습니다.


노무공출에 대하여 -함상훈(咸尙勳)


함상훈(咸尙勳) : 이 문제에 있어서 국가는 어떠한 방침을 가져야 하며 국민은 어떠한 일을 해 나아갈까.

통화(通貨)의 팽창이라든가, 물품의 원활이라든가, 소비의 과세 등은 정부 자신이 취할 일이겠으며, 국민으로서는 될 수 있는 한에서 물자 절약을 꾀할 일입니다.
물론 정부는 다 방면으로 일하기 때문에 물자 배급의 원활에 있어서도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관리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다소의 차이 되는 점이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탕배합(砂糖配合)에 있어서도 도시와 시골이 일정하지 못하며, 목탄(木炭)가격에 있어서도 차이 문제가 생기는데, 우리국민은 그러한 것에 불만을 토로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부의 일에 이해와 동정을 갖고 언제든지 자숙하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자숙은 비단 거기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암취인(暗取引)54)이 없어도 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 또한 구입할 수 있도록 피차의 자숙이 무엇보다도 끽긴사(喫緊事)55)라 보는데 이에 있어서는 민간자체에서 이러한 일을 위한 단체조직, 혹은 기관조직이 있기를 요망하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사람은 체면과 유행을 따르는 동물이어서, 한두 가지 비근(卑近)한 예를 들어 말한다면 옛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실례이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지 않고는 외출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노타이’나 국민복으로도 훌륭히 나다닐 수 있는 의식의 하나로 되었으므로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외출 못하는 일이 없는 것이외다. 손님 대접에 있어서도 차나 과물(果物)을 내어 놓는 것이 한 의례와 같이 되어 있어서 내어 놓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연하장을 폐지하듯 전국적으로 폐지하자는 운동을 일으킨다면 이러한 부류의 것, 혹은 그 이상의 것도 많이 폐지하여 허례, 낭비등을 방지하고 및 물자절약에 다대한 성과를 보리라 믿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것은 하자, 저러한 것은 하지 말자는 것을 협의하고 결정하고, 선전하고, 또한 실행에 옮기도록 일하는 민간조직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절감합니다. 물론 정부에서도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힘쓰지만 이 비상시에 정부에만 맡기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는 것은 좀 노력할 문제라 생각하며, 민간 역시 정부에 협력하는 견지에서 그러한 민가조직을 통하여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고 또한 민간에 여론을 일으키고 장려시켜서 당국의 좋은 협력자가 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신(申)의장 : 다음 둘째 항목인 ‘국민생활의 최저표준운동방책’에 관해서 이긍종(李肯鍾) 씨가 나오셔서 말씀하시겠습니다.


국민생활의 최저화- 이긍종(李肯鍾)


이긍종(李肯鍾 : 宮村 薰) : 우선 삼천리(三千里)사의 이 주최를 감사합니다. 임전(臨戰)체제하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당국에 잘 순응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방책론에 있어서는 이미 과거에 우리는 거듭거듭 많은 말을 들었으나 진리는 또 들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응방법의 하나로써 국민생활의 최저표준의 유지는 당면한 문제인데, 전쟁의 여세로 경제가 핍절(乏切)해져서 전에 1개월이면 100원으로 되던 생활비가 지금은 200원이라야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에 생활의 최저표준화 운동이 대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서 당국에서도 상당히 생각하리라 믿는데,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3대 암(癌)이 있다고 봅니다.
그 첫째는 유민(遊民)인데 이는 3대 암중의 하나로 등한시할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유민이란 직업


54) 암거래를 뜻함.
55) 가장 중요한 일.

이 없기 때문에 놀며, 놀기 때문에 생활이 불규칙하며 따라서 의사가 견고하지 못하고 의지가 견고하지 못하니까 쓸데없는 낭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이지만 다방(茶房)에 쓸데없이 드나들게 되며 심심하니까 영화관에 또한 자주 출입하게 되고 그렇게 출입하고 다방 같은데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사람을 만나자니까 자연 분에 넘치도록 좋은 양복도 입고 싶은 소위 사치와 허영에 빠지게 되는데 이러한 암은 아무래도 정치의 힘을 바라지 않고는 제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둘째의 암으로는 ‘부유의 계급’이외다. 옛날에는 부라는 것을 5복의 하나로 매우 추앙(追仰)했었으나 그러한 사상을 예찬하던 시대는 이미 변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부를 의뢰하고 안일과 방종의 생활에 침윤되어 있다는 것은 실로 용서 못할 일로 그들에게 사회적 양심의 가책이 있도록 민간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셋째의 암으로는 ‘여자문제’인데 일본인 여자에 비해서 조선 여자는 경제관념이 매우 박약한 점이외다.

이에 있어선 가정주부의 자각이 무엇보다도 끽긴(喫緊)히 요망되는데, 그 자각의 방안의 하나로는 여자들로 하여금 강연회 등 모든 일에 참가하게 하며 신문과 잡지에서도 주부의 페이지를 확장하여서 주부들에게 가정경제상식 등을 더욱 함양시켜서 가정경제에 주력함이 많아야 될 줄로 생각합니다.

이상 말씀드린 세 가지의 암 퇴치는 국민생활의 최저화운동에 있어서 시급한 문제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신(申)의장 : 다음은 셋째 항목인 ‘전시봉공(戰時奉公)의 의용화 방책’에 대해서 주요한(朱耀翰) 씨가 말씀하시겠습니다.


전시봉공(戰時奉公)의 의용화- 주요한(朱耀翰)


주요한(朱耀翰 : 松村耀翰) : 오늘 저녁,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말씀을 듣는 중 두어 가지 감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자리, 이 시국이 서로 말할 때가 아니고 실행할 때라는 것을 통감한 것입니다.

의사 진행 중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도 역시 어서 실행해야겠다는 데서 출발된 것인 줄로 압니다. 말만 하지 말고 실행하자.
이 시국은 벌써 서로 토론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입니다. 임전대책(臨戰對策)이라고 하면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이지만 어느 의미에 있어서는 어떤 국가가 이미 적이 되어 가지고 싸움을 시작했다고도 볼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근대전은 무력전만을 가리켜 전쟁이라 하지 않고 사상전을 비롯해서 경제전 즉 물자를 주던 것을 안 주는 것이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은 총력전 중에 이미 서 있는것입니다.

이렇게 임전이 아니고 이미 전쟁 중인 이때에 이것이 이렇다 저것이 저렇다 하고 토론만 할때가 아니라 전시봉공(戰時奉公)의 의용화(義勇化) 운동을 할 때라 생각합니다.
공채소화라든지, 최저생활운동이라든지, 좀 더 나아가서 황국신민화운동이라든지 혹은 방공훈련 등제 문제는 벌써 3년 전, 4년 전에 이미 누구나 각오한 일들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이제 새삼스럽게 시간을 없이하면서 떠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협의회에서 협의할 세 가지의 항목 중에 첫째와 둘째는 집어치우고 셋째 항목이 제일 중대한 문제라 사료(思料)합니다.
아까 누구의 말씀과 같이 황군 장병 10만 6천 중에서 우리 조선인의 전몰자(戰歿者)가 불과 3명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공채소화에 있어서도 팔푼(八分) 제공이라 하는데 물론 이것은 사회나 단체에서 조선 사람이 얼마나 샀다는 것을 일본인과 구분해서 명확히 발표하지 못한 이유도있지만 일본인 총계에 비하면 조선인의 공채소화란

1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이러고도 이것을 가르쳐 황민화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실행하지 못한 것을 좀 더 자성해야 할 것이며 의무이행에 팔을 걷고 나서야 할 것이외다.
이 시국에 있어서 우리는 최후의 단계에 임했습니다. 즉, 우리의 피를 요구하는 시기에 임박했습니다.

태평양에 물결이 높은 이때에 실로 우리 조선인의 피를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태평양의 물결은 끓고 있습니다.
적도선(赤道線)의 뜨거운 태양에 끓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군함들이 끓고 있습니다. 시베리아(西伯利亞)에도 또한 때 아닌 찬바람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이때 우리의 피를 요구하지아니할 수 있겠는가.

지도자의 입장에서 볼 때 10년이나 100년 후에 동양인의 동양, 즉 동양인의 낙원이 건설된 때에 그 건설에 조선인의 피가 얼마나 흘려졌느냐, 만일 거기에 조선인의 피가 적게 흘려졌다면 우리의 자손들은 얼마나 부끄러워 할 것이며, 남과 같이 얼굴을 들 면목이 있을까.
나는 얼마 전에 이인석(李仁錫)군의 죽음에 바치는 시를 지어서 읊은 일이 있습 니다. 그 시중에는이러한 구절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세계의
터다짐을 위해
동양 민족의 살아남을 위해
흘리는 피다.
이 피를 통해서
형아! 아우야!
너들의
생명을 찾고자 한다.
이 피는 곧
우리의 죽었던 피가
산 피가 되는 피다.
형아! 아우야!
나는 간다.
너보다 앞서
피를 부린다.
앞으로 너들의 피가
백으로 천으로
만으로 십만으로
뿌려질 줄을
나는 안다.
너들의 피가
대륙에서
대양에서
님을 위해
넘쳐 흐르게 필 줄을
나는 안다.
일억(一億)은 일심(一心)이 되고
대륙은 밝을 것이다.
그때야 말로 우리는 살 것이다.
힘차게
자신있게 기쁘게 살 것이다.56)


이것은 그 시의 절반도 못되는 일부분인데 전체의 뜻은 이인석의 흘린 피가 이인석의 한 개인의 피만이 아니고 2천 4백만의 피가 이인석의 염통을 통해서 흘려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그 뒤를 이어서 자꾸 자꾸 흘려질 것을 그가 먼저 스타트했다는 것입니다.

그 자꾸 자꾸 흘려야 할 대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역(勞役)을 내자, 물론 좋은 문제입니다. 발에, 공장에도 한층 더해 노역을 경주(傾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20세 미만, 또는 40세, 50세 이상 혹은 여자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청년에게 부과된 최대의 시급한 문제는 탄환을 지고, 군량을 지고 총을 메고 전장에 나아갈 일이오.
탄환 속을 막 뚫고 나아갈 때가 왔다고 봅니다. 거기엔 기술적 훈련도 필요하지 않고 오직 전진만 있을따름입니다.
이에 있어서 나는 이 석상에 앉으신 여러분에게 두 가지의 제안을 말하려 합니다.
첫째는 오늘 저녁 120여 명이나 되는 조선의 중심인물이 모인 이 회합을 상설기관으로 조직하여 전조선 전지구상의 조선인에게 전시봉공의 의용화 운동의 주장과 신념을 철저히 이식하게 하고 고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총력연맹도 있어서 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 하겠지만 총력연맹은 총력연맹이고, 우리는 우리의의무를 다하는 기관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조선인의 끓는 열을 전 조선인에게 퍼뜨려서 조선청년의 피 흘릴 것을 약속하는 신체제 훈련, 군사훈련을 해야 할 것이 첫째 제안입니다.
둘째 제안은 의용군을 자발적으로 만드는 훈련을 일으켜야 합니다.


<출전: 「本社主催大座談會 臨戰對策協議會, 百二十人士가 府民館서에 會合, 臨戰對策協議會 議事錄」,'三千里' 第13卷 第11號, 1941년 11월 1일, 46~61쪽>


56) 주요한, 「첫피-지원병 이인석(李仁錫)에게 줌」, '신시대' 제1권 제3호, 1941년 3월에 전문이 실려있다.

3. 조선임전보국단


1) '조선임전보국단개요'(1941)


축사


오늘 여기에 조선임전보국단 발회식을 거행하는데 있어서 소감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지금 제국은 미증유의 대난국에 직면하였다.

이 난국을 돌파하여 동아공영권을 확립하는 것은 황국신민의 중대한 의무인 동시에, 이를 완수하여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정신을 선포해야 할 절대적인 영광을 갖고 있다. 이런 때에 조선반도에서 임전태세를 한층 더 강화할 필요를 통감하는 중견 유식계급 600여 명이 결속하여 일어나 황도정신(皇道精神)을 선양하고, 사상을 통일하고, 생활을 쇄신하여 개로(皆勞)운동을 철저히 함으로써 성업 완수에 공헌하고자 한다는 결의 아래 순수 민간국민운동의 강력한 첫걸음을 여기에 내딛게 된 것은, 긴박한 시국 하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으로서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는 바이다. 바라건대 담담한 그 □심(心) 조선반도 전체에 투철히 하여 이천사백만이 하나가 되어 본 단체 설립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란다.
1941년 10월 22일
조선군 사령관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


조선임전보국단 설립취지서


우리나라는 지금 유사 이래 미증유의 가장 중대한 시국에 직면한 동시에, 또 가장 숭고하고 존엄한 동아공영권 확립의 성업(聖業) 완수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런 때, 삶을 황국에서 누리고 있는 자는 그 누구를 불문하고 그 직분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국운의 전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없는 것이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우리 조선반도 사람들은 과연 지금과 같은 태세 이대로 있어도 좋은 것일까?

설령 우리는 특별 지원병 외에 일반적으로 병역에 복무할 수 있는 명예를 얻을 기회가 없다 하더라도, 적성(赤誠)으로서 정신적·물질적으로, 또 노무적(勞務的)으로 있는 힘을 다해 총후(銃後)의 봉공(奉公)에 한층 더 철저를 기함으로써 충렬한 장병들의 분투에 대해, 한없는 황은(皇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게다가 그와 같이 조선반도가 물심양면으로 병참기지의 진가를 발휘할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억누르기 힘든 애국의 지극한 마음에서 감히 여기에 국민운동의 강력한 한 기관으로서 ‘조선임전보국단’의 설립을 기도(企圖)하고, 널리 조선반도 이천사백만 제군들에게 □□를 호소하고자 하는 바이다. 우리 취지에 찬성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뜻을 같이 하는 강호의 지사들은 속히 달려와 참여하여, 이 애국운동의 발전 조성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줄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1941년 9월 11일
발기인 일동


강령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皇道臣民)으로서 황도정신을 선양하고 사상의 통일을 기한다.
하나. 우리는 전시체제에 임해 국민생활의 쇄신을 기한다.
하나. 우리는 근로보국(勤勞報國)의 정신에 입각해 국민개로(國民皆勞)의 결실을 맺을 것을 기한다.
하나. 우리는 국가우선의 정신에 입각해 국채의 소화, 저축의 장려, 물자의 공출, 생산의 확충에 매진할 것을 기한다.


선서문


우리는 임전체제 하에서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과거에 구애받지 않고 개개의 입장에 사로잡히지 않고 2400만 반도의 민중 전체가 일치 결속하여 성전 완수를 통해 황국의 융흥을 기하고, 성은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을 맹세한다.
1941년 12월 13일
(조선신궁 앞에서)


조선임전보국단 규약

제1조 본 단체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이라 칭한다.
제2조 본 단체는 본부를 경성에 두고 각 도에 지부를 설치할 수 있다. 지부에 관한 규약은 별도로정한다.
제3조 본 단체는 임전체제 하에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취지에 입각해 본 단체의 강령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4조 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행한다.
(1) 국민개로(國民皆勞) 실천 운동
(2) 물자의 공출 및 공납 운동
(3) 국민생활 쇄신 운동
(4) 저축 장려, 국채 소화 운동
(5) 근로보국 도장 설치
(6) *도장 설치
(7) 지도자 단기 이동 강좌 개최
(8) 기타 필요한 애국 운동
제5조 본 단체는 단원 조직을 본 단체의 취지, 강령에 찬동하는 동지로 조직한다.
제6조 본 단체에 다음과 같은 임원을 둔다.
단장 1명
부단장 1명
이사 약간 명(그중 1명을 이사장, 야간 명을 상무이사로 한다)
감사 약간 명
평의원 약간 명
제7조 단장 및 부단장은 이사회에서 이를 천거한다.
단장은 본 단체를 통괄한다.
부단장은 단장을 보좌하고 단장이 사고를 당했을 때는 그 사무를 대리한다.
제8조 본 단체에 고문 약간 명을 두고, 단장이 이를 위촉한다.
고문은 본 단체에 관한 중요 사항에 대해 단장의 자문에 응하거나 또는 의견을 개진한다.
제9조 임원은 단장이 이를 위촉한다.
제10조 이사장은 단장을 보좌하고 본 단체의 사무를 관리한다.
단장 및 부단장이 사고를 당했을 때는 이사장이 그 직무를 대리한다.
제11조 단장, 부단장 및 이사는 이사회를 조직하여 본 단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한다.
상무이사는 단장 및 이사장을 보좌하고 이사장이 사고를 당했을 때는 이사장이 지명한 상무이사가 그 직무를 대리한다.
제12조 평의원은 평의원회를 조직하고 그 회에 부의(附議)된 사항을 심의한다.
제13조 임원에 수당을 지급하거나 또는 실비 변상을 할 수 있다.
제14조 존 단체에 총무, 사업, 전시생활이라는 세 부서를 둔다.
부에 부장을 두고 단장이 이를 위촉한다.
부장은 이사장의 지휘를 받고 부서 업무를 처리한다.
제15조 감사는 본 단체의 경리를 감사한다.
제16조 이사회 및 평의회는 단장이 이를 소집하고 단장을 의장으로 한다.
제17조 본 단체에 유급 직원을 둘 수 있다.
위의 직원은 이사장이 이를 임면(任免)한다.
제18조 본 단체의 경비는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제19조 본 단체의 회계연도는 4월 1일에 시작되어 이듬해 3월 31일 끝나는 것으로 한다.
단, 설립 첫해에는 설립한 날부터 이듬해 3월 31일에 끝나는 것으로 한다.
제20조 본 단체의 사무 처리에 관한 규정은 별도로 이를 정한다.
제21조 본 단체 설립 당초의 임원은 발기인 총회에서 이를 선임한다.
조선임전보국단 지부 규약 준칙
제1조 본 지부는 조선임전보국단 ‘모’도지부라 칭한다.
본 지부의 사무소는 ‘모’(부읍) 내에 설치한다.
제2조 본 지부는 조선임전보국단의 취지 강령을 실천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본 지부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단원을 해당 도내에 거주하는 자로 조직한다.
제4조 본 지부에 다음과 같은 임원을 둔다.
지부장 1명
고문 약간 명
이사장 1명
이사 약간 명(그중 약간 명을 상무이사로 한다)
감사 약간 명
평의원 약간 명
제5조 지부장 및 이사장은 조선임전보국단 단장이 지명한다.
지부장은 본 지부를 통괄한다.
이사장은 지부장을 보좌하고 지부장이 사고를 당했을 때에는 이를 대리한다.
제6조 고문은 지부장이 이를 위촉한다.
고문은 지부장의 자문에 응하거나 또는 중요 사항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다.
제7조 이사 및 감사는 지부장이 이를 위촉한다.
이사는 이사회를 조직하고 본 지부의 실천 사항을 심의하고 이를 처리한다.
감사는 본 지부의 경리를 감사한다.
제8조 평의원은 지부장이 이를 위촉한다.
평의원은 평의원회를 조직하고 그 회에서 부의된 사항을 심의한다.
제9조 이사회, 평의원회는 지부장이 이를 소집하고 지부장을 의장으로 한다.
제10조 본 지부에 총무, 사업, 전시생활이라는 각 부서를 둔다.
제11조 각 도에 부장을 두고 이사 중에서 지부장이 이를 선임한다.
부장은 지부장의 명을 받아 부서 업무를 처리하고, 부원들을 지도 감독한다.
제12조 본 지부에 유급 직원을 둘 수 있다.
위의 직원은 지부장이 이를 임면(任免)한다.
제13조 본 지부의 경비는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제14조 본 지부의 회계연도는 4월 1일에 시작되어 이듬해 3월 31일에 끝난다.
단, 설립 첫해에는 설립한 날부터 이듬해 3월 31일에 끝나는 것으로 한다.
제15조 본 지부의 사무 처리에 환한 규정은 별도로 정한다.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명부


◎경성(無順)


<성명/주소>
이동치호(伊東致昊)57)/경성부 견지정 68
가산린(佳山麟)(佳山 麟)58)/동 명륜동 1정목 45


57) 윤치호(尹致昊)의 창씨명.

한상용(韓相龍)/동 가회정 178
민규식(閔奎植)/동 삼청정 145-6
김연수(金秊洙)/동 성북정 41
고원동(高元動)/동 신교정 6
박흥식(朴興植)/동 가회정 6
이종만(李鍾萬)/동 청운정 108-5
장우식(張友植)/동 필운정 183
장기식(張驥植)/동 신당정 366
박용운(朴龍雲)/동 혜화정 10
김시권(金時權)/동 청운정 52-58
김동훈(金東勳)/동 사직정 285
하산무(夏山茂)59)/동 청운정 108
방태영(方台榮)/동 종로 6정목 121
장현식(張鉉植)/동 명륜정 1정목 81
이보석(李輔錫)/동 가회정 11-101
원효섭(元孝燮)/동 돈암정 308
조준호(趙俊鎬)/동 명치정 동아증권주식회사
손영목(孫永穆)/동 북미창정 선만척식주식회사
김태석(金泰錫)/동 조선광업진흥주식회사
최남(崔楠)/동 계동정 67
박기효(朴基孝)/동 동사헌정 100
이용신(李容愼)/동 사직정 311
임흥순(任興淳)/동 신당정 60
허택(許澤)/동 다옥정 60
이준렬(李駿烈)/동 견지정 대동출판사
정현모(鄭顯模)/동 대동농촌사
방규환(方奎煥)/동 신당정 47
민석현(閔奭鉉)/동 관훈정 4
금산성환(金山成煥)60)/동 죽첨정 3정목 517
전형필(金鎣弼)/동 종로 4정목 121
오용탁(吳龍鐸)/동 명륜정 1정목 44
김성권(金星權)/동 명륜정 2정목 8
58) 최린(崔麟)의 창씨명.
59) 조병상(曺秉相)의 창씨명.
60) 김성환(金成煥)의 창씨명.
장원준(張元俊)/동 종로 4정목 조선연료상회
윤호병(尹皞炳)/동 조선상업은행 종로지점
청교형(靑橋亨)/동 한성은행 남대문지점
유마정우(有馬正祐)/동 한성은행 봉점 영업부
유천우천(柳川又春)/동 한성은행 동대문지점
송하동준(松河東濬)/동 한성은행 용산지점
설의식(薛義植)/동 통의정 35
김규면(金圭冕)/동 장곡천정 상공회의소
이동선(李東善)/동
박영근(朴永根)/동 봉래정(경성고무공업조합)
홍창유(洪昶裕)/동 종로 2정목 24
김기덕(金基德)/동 죽첨정 3정목 3
김승복(金昇福)/동 명륜정 4정목 10
이종회(李鍾會)/동 사직정 311
박창서(朴彰緖)/동 가회정 79
전부일(全富一)/동 다옥정 183
한학수(韓學洙)/동 계동정 146
이석구(李錫九)/동 창신정 동덕고등여학교
조인섭(趙寅燮)/동 황금정 2정목 197 천일제약주식회사
홍세뢰(洪世雷)/동 장사정 32-1
이정재(李定宰)/동 종로 2정목 영보빌딩 내 영보합자회사
최두선(崔斗善)/동 성북정 177
이강현(李康賢)/동 경성방적주식회사
이규재(李奎載)/동 주식회사 화신상회
이기형(李基珩)/동 동
주종훈(朱鍾勳)/동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
한익교(韓翼敎)/동 조선실업구락부
정운용(鄭雲用)/동 한성은행 본점
이봉종(李鳳鍾)/동 동일은행 관훈동 지점
김교철(金敎哲)/동 남대문 지점
이항종(李恒鍾)/동 동대문 지점
이연용(李淵鎔)/동 서대문 지점
정학진(丁學鎭)/동 영등포 지점
이하원(李夏源)/동 수송정 46
안정원(安錠遠)/동 신당정 422
김희준(金熙俊)/동 신교정 6
조병학(曺秉學)/동 장교정 13
이상옥(李相玉)/동 무교정 13
임종상(林宗相)/동 창신정 649
임병기(林炳基)/동 안국정 26
문승탁(文承卓)/동 합동정
조대하(趙大河)/동 명륜정 1정목 33-99
김사연(金思演)/조선국자주식회사
조병갑(趙炳甲)/동 성북정 260
원진상(元眞常)/동 팔판정 52
전용순(全用淳)/동 가회정 1
금강영일(金岡榮一)/동 조선국자주식회사
이근택(李根澤)/동 견지정 백보환주식회사
강익하(康益夏)/동 이화정 2
황청송(黃淸頌)/동 조선기업주식회사
김기도(金基道)/동 남대문통 2정목 1
나경석(羅景錫)/동 종로 2정목 예수빌딩 내
배정기(裵貞基)/동 종로 2정목 영보빌딩 내 삼융합명회사
김광수(金光洙)/동 아현정 대동산업주식회사
김종선(金鍾善)/동 권농정 187
염경훈(廉璟薰)/동 명륜정 1정목 33
신용욱(愼鏞頊)/동 청운정 52
김세평(金世平)/동 명륜정 4정목 206
김명하(金明夏)/동 삼융합명회사
신양극(辛良極)/동 신교정 6
이필상(李弼商)/동 무교정 동양공작회사
박승기(朴承基)/동 동
유영섭(劉永燮)/동 화동정 126
김성호(金聖浩)/동 이화정 25 박춘금 집
이충복(李忠馥)/동 인사정 59(신라옥)
최선익(崔善益)/동 돈암정 391
김영배(金映拜)/동 주식회사 화신상회
문석준(文錫俊)/동 성북정 195-23
강제동(姜濟東)/동 돈암정 299-11
송봉우(宋琫禹)/동 흑석정
김성수(金性洙)/동 보성전문학교
장덕수(張德秀)/동 동
옥선진(玉璿珍)/동 동
김영주(金泳柱)/동 동
유진오(兪鎭午)/동 동
안호상(安浩相)/동 동
유억겸(兪億兼)/동 연희전문학교
이묘묵(李卯默)/동 동
이운용(李沄鎔)/동 동
이순탁(李淳鐸)/동 동
백남운(白南雲)/동 동
정인섭(鄭寅燮)/동 동
강낙원(姜樂遠)/동 동
천성활란(天城活蘭)61)/동 이화여자전문학교
김상용(金尙鎔)/동 동
고황경(高凰京)/동 동
이갑수(李甲洙)/동 동
이갑수(李甲秀)/동 여자의학전문학교
정구충(鄭求忠)/동 동
신숙재(辛淑宰)/동 숙명여자전문학교
오긍선(吳兢善)/동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동
이영준(李榮俊)/동 동
윤일선(尹日善)/동 동
윤치왕(尹致旺)/동 동
최동(崔棟)/동 동
현상윤(玄相允)/동 중앙중학교동
한진희(韓軫熙)/동 동
최규동(崔奎東)/동 중동중학교
김주익(金周益)/동 한성상업학교
이원찬(李源讚)/동 대동상업학교
신흥우(申興雨)/동 배재중학교
이병규(李炳奎)/동 휘문중학교
김도태(金道泰)/동 동


61) 김활란(金活蘭)의 창씨명.

이헌구(李軒求)/동 보성중학교
박격흠(朴格欽)/동 협성상업학교동
백남훈(白南薰)/동 동
장면(張勉)/동 동성상업학교
최태영(崔泰永)/동 경신학교
대산봉훈(大山鳳勳)/동 양정중학교
진헌식(陳憲植)/동 동
임천동식(林川東植)62)/동 동덕고등여학교
금천관(琴川寬)63)/경기고등여학교
신봉조(辛鳳祚)/동 이화고등여학교
이세정(李世楨)/동 진명고등여학교
엄주명(嚴柱明)/동 동
한양호(韓亮鎬)/동 여자상업학교
김용국(金容國)/동 동
복택영자(福澤玲子)64)/동 안국정 37 덕성여자실업학교
배상명(裴祥明)/동 상명실천여학교
궁촌숙종(宮村淑鍾)65)/동 견지정 74 성신여학교
황신덕(黃信德)/동 죽첨정 1941 가정여숙
박인덕(朴仁德)/동 덕화여숙
임영신(任永信)/동 흑성정 중앙보육학교
독고선(獨孤璇)/동 청진정 경성보육학교
금천성(金川聖)66)/동 매일신보사
금본동진(金本東進)67)/동 동
서춘(徐椿)/동 동
정인익(鄭寅翼)/동 동
심우섭(沈友燮)/동 동
김갑순(金甲淳)/동 조선신문사
김동환(金東煥)/동 삼천리사
방응모(方應模)/동 조광사
62) 조동식(趙東植)의 창씨명.
63) 박관수(朴寬洙)의 창씨명.
64) 송금선(宋今璇)의 창씨명.
65) 이숙종(李淑鍾)의 창씨명.
66) 이성근(李聖根)의 창씨명.
67) 김동진(金東進)의 창씨명.

함상훈(咸尙勳)/동 가회정 1-33
양재하(梁在厦)/동 춘추사
박희도(朴熙道)/동 동양지광사
노성석(盧聖錫)/동 종로 1정목 인문사
최재서(崔載瑞)/동 종로 1정목 인문사
고재욱(高在旭)/동 창신정 671
향산광랑(香山光郞, 카야마 미츠로)68)/동 효자정 175
박영희(朴英熙)/동 천연정 69
이석훈(李石薰)/동 남미창정
홍명희(洪命熹)/경원선 창동역전
최남선(崔南善)/부내 연지정
박승빈(朴勝彬)/동 관훈정 197-10
이극로(李克魯)/동 화동정 129 조선어학회
이긍종(李肯鍾)/동 명륜정 1정목 304
선우전(鮮于全)/동 냉천정
이상협(李相協)/동 숭인정 72
김양수(金良洙)/동 사직정 262-21
주요한(朱耀翰)/동 당수정 72
이능화(李能和)/동 수송정 불교중앙총본산
오억(吳億)/동 다옥정 보여관내 국민생활연구소
유광열(柳光烈)/동 내수정 70-97
김형원(金炯元)/동 신교정 6
김인이(金麟伊)/동 내수정 197
정인보(鄭寅普)/동 내수정 94
이태준(李泰俊)/동 이화여자전문학교
김인술(金仁述)/동 종로 3정목 예수빌딩 내 기독교신문사
한용운(韓龍雲)/동 성북정 222
권상로(權相老)/동 명륜정 2정목 195-9
이종욱(李鍾郁)/동 수송정 44 불교대본산 태도사
박택상준(朴澤相駿)69)/동 혜화정 10-7
유진찬(兪鎭贊)/동
안인식(安寅植)/동 명륜정 명륜학원


68) 이광수(李光洙)의 창씨명.
69) 박상준(朴相駿)의 창씨명.

이대영(李大榮)/동
이명세(李明世)/동 종로1정목 44
김우현(金禹鉉)/동 가회정 31-10
양원주삼(梁原柱三)70)/동 필운정 285
정인과(鄭仁果)/동 서대문정 2정목 89
정춘수(鄭春洙)/동 냉천정 31
구자옥(具滋玉)/동 종로 2정목 9 중앙기독교청년회
심명섭(沈明燮)/동 냉천정 31
윤치소(尹致昭)/동 안국정 8
윤치영(尹致暎)/동 안국정 104
김창제(金昶濟)/동 가회정 33-38
홍병선(洪秉璇)/동 서대문정 1정목 77-1
원익상(元翊常)/동 신설정 271-1
서원종린(瑞原鍾麟)71)/동 경운정 88 천도교 본부
정광조(鄭廣朝)/동 동
이돈화(李敦化)/동 상청정 52
오세창(吳世昌)/동 돈의정 57
권동진(權東鎭)/동 계동정
조기간(趙基栞)/동 명륜정 2정목 124
김기전(金起田)/동 경운정 88 천도교 본부
차상찬(車相瓚)/동 낙원정 공생약업회사
대동석규(大東碩奎)72)/동 견지정 시천교당
이정욱(李正郁)/동 동
황정헌(黃正憲)/동 동
대산광설(大山光卨)73)/동 적선정 88
강병순(姜炳順)/동 낙원정 149
강영철(康永喆)/동 공평정 44
최병석(崔秉錫)/동 다옥정 38
심상직(沈相直)/동 인사정 35
오촌승우(梧村升雨)74)/동 수송정 46-22


70) 양주삼(梁柱三)의 창씨명.
71) 이종린(李鍾麟)의 창씨명.
72) 이석규(李碩奎)의 창씨명.
73) 서광설(徐光卨)의 창씨명.
74) 이승우(李升雨)의 창씨명.

윤명용(尹明龍)/동 돈의정 76-2
송천구영(松川求瑛)75)/동 공평정 41
금촌병태(金村秉泰)76)/동 다옥정 32
이종성(李宗聖)/동 돈의정 76-1
덕산백순(德山白洵)77)/동 관수정 7
이동원상(伊東元上)78)/동 견지정 27-19
이용설(李容卨)/동 견지정 118
김성진(金晟鎭)/동 서린정 133
백기호(白基昊)/동 서린정 백내과
백인제(白麟濟)/동 영락정 2정목 85
임명재(任明宰)/동 안국정 163
박창훈(朴昌薰)/동 낙원정 135
박종선(朴鍾璿)/동 견지정 49
정석태(鄭錫泰)/동 다옥정 75
김동익(金東益)/동 종로 2정목 58
유홍종(劉洪鍾)/동 경운정 75
이정백(李楨伯)/동
신필호(申弼浩)/동 인사정 39
고영순(高永珣)/동 공평정 1
이정섭(李晶燮)/동 명륜정 4정목 127-2
노창성(盧昌成)/동 계동정 140
이한복(李漢福)/동 궁정정 40
이서구(李瑞求)/동 현저정 46-739
안종화(安鍾和)/동 옥인정 9-9
김은호(金殷鎬)/동 와룡정 38-1
현제명(玄濟明)/동 신촌정 연희전문학교 내
안석주(安碩柱)/동 태평통 조선연예협회
청산철(靑山哲)79)/동 동
김규택(金奎澤)/동 태평통 조광사
도상봉(都相鳳)/동 경신학교


75) 정구영(鄭求瑛)의 창씨명.
76) 김병태(金秉泰)의 창씨명.
77) 최백순(崔白洵)의 창씨명.
78) 윤원상(尹元上)의 창씨명.
79) 이철(李哲)의 창씨명.

김억(金億)/동 정동정 조선방송국
김영환(金永煥)/동 죽첨정 3정목 3
계정식(桂貞植)/동 이화여자전문학교
송진우(宋鎭禹)/동 원서정 74
김준연(金俊淵)/동 성북정 41
여운형(呂運亨)/동 계동정 140
정노식(鄭魯湜)/동 성북정 91
허헌(許憲)/동 중학정 41-1
김약수(金若水)/동 청진정 일선여관
유진희(兪鎭熙)/동 성북정 동소문의원
서정희(徐廷禧)/동 상왕십리 706-7
홍증식(洪璔植)/동
김항규(金恒圭)/동 소격정 28
차재정(車載貞)/동 낙원정 24
여운홍(呂運弘)/동 종로 2정목 9 중앙기독교청년회
손정규(孫貞圭)/동 운현궁
모윤숙(毛允淑)/동 안암정 86-115
최정희(崔貞熙)/동 삼천리사
홍승원(洪承嫄)/동
박은혜(朴恩惠)/동 제기정 149-4
성원경(成元慶)/동 혜화정 20
이각종(李覺鍾)/동 중학정 1 대동민우회
이상철(李相喆)/동 필운정 146
김광수(金光洙)/동 명륜정 1정목 38-5
윤우식(尹宇植)/동 사직정 214
신태악(辛泰嶽)/동 무교정 98
백낙준(白樂濬)/동 신림정 산-9
조병옥(趙炳玉)/동 인의정 119-1
이승복(李昇馥)/동 계동정 43
구창조(具昌祖)/동 내자정 186
이훈구(李勳求)/동 죽첨정 2정목 65
야촌홍원(野村弘遠)80)/동 삼각정 105
이춘호(李春昊)/동 신림정 131-2


80) 손홍원(孫弘遠)의 창씨명.

양원모(梁源模)/동 공평정 9
임정엽(林正燁)/동 창신정 641
장회근(張晦根)/동 명륜정 1정목 36
김동성(金東成)/동 죽첨정 1정목
조병렬(趙炳烈)/동 돈의정 40
이관구(李寬求)/동 당주정 20
이여성(李如星)/동 옥인정 56
희다의(喜多毅)81)/동 신교정 정학회
최원섭(崔元燮)/동 인사정 신라옥 주식회사
김택용(金澤勇)/동 의주통 1정목 163
김병로(金炳魯)/동 청진정 175
이인(李仁)/동 청진정 175
김용무(金用茂)/동 광화문통 98
소완규(蘇完奎)/동 수은정 162-1
최진(崔鎭)/동 인사정 154
강본오랑(岡本五郞)/동 돈의정 64
이달용(李達鎔)/동 가회정 30
이병길(李丙吉)/동 옥인정 19
이해승(李海昇)/동 홍제외리 201
이규원(李圭元)/동 중림정 155
이홍묵(李鴻默)/동
이중환(李重桓)/동
한상억(韓相億)/동 가회정 10
이가진호(李家軫鎬)82)/동 황금정 3정목 217
서천상훈(徐川相勛)83)/동 서대문정 1정목 174
장간헌식(張間憲植)84)/동 누상정 166-132
청도금차랑(淸道金次郞)85)/동 필운정 174-1
평림린사랑(平林麟四朗)86)/동 원서정 135
김영진(金英鎭)/동 명륜정 2정목 96


81) 박준영(朴駿榮)의 창씨명.
82) 이진호(李軫鎬)의 창씨명.
83) 서상훈(徐相勛)의 창씨명.
84) 장헌식(張憲植)의 창씨명.
85) 김윤정(金潤晶)의 창씨명.
86) 신석린(申錫麟)의 창씨명.

복전겸치(福田謙治)87)/동 계동정 2-45
정원규복(井垣圭復)88)/동 운니정 97
박산용구(朴山容九)89)/동 공덕정 398-8
어담(魚潭)/동 하왕십리정 569
평소수웅(平沼秀雄)90)/동 명륜정 1정목 69
금강부신(金光副臣)91)/동 도화정 59
금전명(金田明)92)/동 명륜정 1정목 36-17
옥천진순(玉川鎭淳)93)/동 가회정 1-73
목하두영(木下斗榮)94)/동 혜화정 5-10
본성수통(本城秀通)95)/동 필운정 90
오천교원(烏川僑源)96)/동 숭인정 72-17
덕산선언(德山善彦)/97)동 혜화정 80-1
유만겸(兪萬兼)/동 제동정 107
이경식(李敬植)/동 가회정 177-4
대지용장(大池龍藏)98)/동 명륜정 1정목 95
광안종철(廣安鍾哲)99)/동 북아현정 1-123
풍원이상(豊原以尙)100)/동 다옥정 10
금해화준(金海化俊)101)/동 안암정 182-7
신산영호(神山永皓)102)/동 종로 5정목 75
조야청의(朝野晴義)103)/동 관철정 247-1
양윤식(楊潤植)/동 서린정 120


87) 이겸제(李謙濟)의 창씨명.
88) 한규복(韓圭復)의 창씨명.
89) 박용구(朴容九)의 창씨명.
90) 윤갑병(尹甲炳)의 창씨명.
91) 김관현(金寬鉉)의 창씨명.
92) 김명준(金明濬)의 창씨명.
93) 유진순(劉鎭淳)의 창씨명.
94) 박두영(朴斗榮)의 창씨명.
95) 주영환(朱榮煥)의 창씨명.
96) 정교원(鄭僑源)의 창씨명.
97) 홍종국(洪鍾國)의 창씨명.
98) 장석원(張錫元)의 창씨명.
99) 안종철(安鍾哲)의 창씨명.
100) 김상회(金尙會)의 창씨명.
101) 김화준(金化俊)의 창씨명.
102) 강영호(姜永皓)의 창씨명.
103) 박승성(朴勝成)의 창씨명.

금산응순(金山應純)104)/동 원정 3정목 45
신본원신(新本元信)105)/동 한남정 73
금정태집(金井泰潗)106)/동 영등포정 570
이경봉(李庚鳳)/동 태평통 2정목 282
중본홍종(中本弘鍾)107)/동 도염정 107-2
삼정주명(三井疇明)108)/동 효제정 109
광산종향(廣山種香)109)/동 청량리정 산10
초내흥수(草內興洙)110)/동 필운정 110
신강창희(神岡昌熙)111)/동 의주통정 2정목 8
송본두용(松本斗用)112)/동 도림정 90
강촌상호(江村相鎬)113)/동 아현정 210-3
강본용표(康本容杓)114)/동 상수일정 21
대산상은(大山相殷)115)/동 청엽정 2정목 90
김광민(金光敏)116)/동 영등포정 34-21
양천재창(梁川在昶)117)/동 삼청정 15
서원굉(西原宏)118)/동 신당정 251
김종량(金宗亮)/동 중학정 10
곽행서(郭行瑞)/종로 2정목 예수빌딩 내 신세기사
주정순(朱貞順)/동 황금정 6정목 자동차부
주윤(朱潤)/동 명륜정 4정목 208
김동혁(金東赫)/동 충신정 187-28
이창용(李創用)/동 장곡천정 조선영화문화연구소


104) 김응순(金應純)의 창씨명.
105) 박원신(朴元信)의 창씨명.
106) 김태집(金泰潗)의 창씨명.
107) 이홍종(李弘鍾)의 창씨명.
108) 박주명(朴疇明)의 창씨명.
109) 이창업(李昌業)의 창씨명.
110) 예흥수(芮興洙)의 창씨명.
111) 강창희(姜昌熙)의 창씨명.
112) 이두용(李斗用)의 창씨명.
113) 차상호(車相鎬)의 창씨명.
114) 강용표(康容杓)의 창씨명.
115) 이상은(李相殷)의 창씨명.
116) 김민식(金敏植)의 창씨명.
117) 양재창(梁在昶)의 창씨명.
118) 한상철(韓相喆)의 창씨명.

김재훈(金載勳)/동 정동정 25 경성음악전문학원
김두기(金斗基)/동 가명학교
김계림(金桂林)/동 종로 2정목 대륙산금합자회사
안국상덕(安國商悳)119)/동 경운정 88
박춘금(朴春琴)/동 이화정 25
이성환(李晟煥)/동 삼청정 35-91
신일용(辛日鎔)/동 혜화정 22-77
김용암(金龍巖)/동 장학정 41-1
한신교(韓愼敎)/동 장수정 181-2
안전정치(安田正治)/동 내수정 70-77
이창환(李昌煥)/동 봉익정 36-1
박충식(朴忠植)/동 화신상회 내
원세훈(元世勳)/동 암근정 168-21
이종은(李鍾殷)/동 동양척식주식회사
중산가백(中山家伯)120)/동 화동정 87-1
대림준모(大林俊模)121)/동 양평정 420-85
평천군오(平川君五)122)/동 화동정 85
대산근섭(大山根燮)123)/동 경운정 88
천본석홍(天本錫洪)124)/동 경운정 88
금강병제(金岡秉濟)125)/동 삼청정 48
천안등명(天安藤明)/동 가회정 1-88
학천완(鶴川浣)126)/동 경운정 88
천전우영(天田宇英)127)/동 명륜정 3정목 113-8
궁전장(宮田藏)128)/동 성북정 184-96
송본명행(松本明幸)/동 소격정 29
평강동수(平岡東洙)129)/동 삼청정 35-142
119) 안상덕(安商悳)의 창씨명.
120) 이인숙(李仁淑)의 창씨명.
121) 최준모(崔俊模)의 창씨명.
122) 이군오(李君五)의 창씨명.
123) 이근섭(李根燮)의 창씨명.
124) 박석홍(朴錫洪)의 창씨명.
125) 김병제(金秉濟)의 창씨명.
126) 박완(朴浣)의 창씨명.
127) 이우영(李宇英)의 창씨명.
128) 이종식(李宗植)의 창씨명.

임문호(林文虎)/동 신설정 71
하본상태(河本相台)130)/동 사직정 96
구미명선(龜尾明宜)/동 명륜정 2정목 67
◎ 경기도(無順)
금영태훈(金永泰勳)131)/인천부
송본청(松本淸)132)/동
박봉진(朴鳳鎭)/개성부
공성학(孔聖學)/동
손홍준(孫洪駿)/동
임헌장(林憲章)/동
김기형(金基炯)/동
국평봉구(國平鳳九)133)/여주읍
박필병(朴弼秉)/안성읍
목천욱상(睦川頊相)134)/동
함풍민훤(咸豊敏烜)135)/평택읍
진전흥일(津田興一)136)/김포읍
김주한(金胄漢)/포천읍
평산정부(平山正夫)137)/가평읍
유인목(兪仁穆)/광주읍
무곡일홍(茂谷一弘)138)/고양군 지도면 토당리
대천광일(大川光一)139)/장단읍
차전준담(車田濬潭)140)/수원읍
이등경섭(伊藤敬燮)141)/시흥읍
129) 김동수(金東洙)의 창씨명.
130) 하상태(河相台)의 창씨명.
131) 김태훈(金泰勳)의 창씨명.
132) 김윤복(金允福)의 창씨명.
133) 이봉구(李鳳九)의 창씨명.
134) 목욱상(睦頊相)의 창씨명.
135) 이민훤(李敏烜)의 창씨명.
136) 이의종(李懿鍾)의 창씨명.
137) 송성진(宋星鎭)의 창씨명.
138) 이응호(李應鎬)의 창씨명.
139) 서병식(徐丙軾)의 창씨명.
140) 차준담(車濬潭)의 창씨명.
141) 윤경섭(尹敬燮)의 창씨명.

유원완식(兪原琬植)142)/이천읍
금우근호(金于根鎬)143)/강화읍
원촌상일(元村常一)144)/부천읍
성낙영(成樂永)/파주읍
덕천용(德泉 溶)145)/양평읍
강대곤(姜大崑)/연천읍
평산충일(平山忠一)146)/용인읍
우봉중구(牛峯重久)147)/양주읍


◎ 강원도(無順)
정등은섭(丁藤殷燮)/춘천읍
강원기양(江原基陽)148)/철원군 읍내
이한복(李漢復)/춘천읍 매일신보 지사
국본정좌(國本政佐)149)/인제군 읍내
금자원섭(金子元燮)150)/회양군 읍내
궁본민광(宮本敏光)/통천군 읍내
장원정기(張元正己)151)/고성군 읍내
고산재동(高山栽東)152)/양양군 읍내
송강세종(松岡世宗)153)/강릉군 읍내
환산융준(丸山隆準)154)/강릉군 읍내
나정용마(蘿井龍馬)155)/삼척군 읍내
김동석(金東錫)/삼척군 읍내
산본찬(山本瓚)/평창군 읍내
142) 유완식(兪琬植)의 창씨명.
143) 김근호(金根鎬)의 창씨명.
144) 원인상(元仁常)의 창씨명.
145) 이필상(李弼商)의 창씨명.
146) 신충식(申忠湜)의 창씨명.
147) 이중구(李重久)의 창씨명.
148) 박보양(朴普陽)의 창씨명.
149) 이진국(李鎭國)의 창씨명.
150) 김원섭(金元燮)의 창씨명.
151) 장명준(張明俊)의 창씨명.
152) 고재동(高裁東)의 창씨명.
153) 박기돈(朴基敦)의 창씨명.
154) 최준집(崔準集)의 창씨명.
155) 박준용(朴準龍)의 창씨명.

평소창호(平沼昶鎬)156)/횡성군 읍내
신영순(申永淳)/횡성군 읍내
홍원의명(洪原義明)/화천군 읍내
금산광일(金山光一)157)/금화군 읍내
대산현홍(大山顯洪)158)/철원군 읍내
금강인관(金岡仁寬)/이천군 읍내
최준용(崔駿鏞)/양구군 읍내
한종열(韓鍾烈)/통천군 읍내
전진한(錢鎭漢)/고성군 장전읍
최양호(崔養浩)/춘천군 읍내
대산세창(大山世倉)/춘천군 읍내
부전하작(富田夏作)159)/통천군 읍내
황본운부(黃本雲夫)160)/고성군 읍내
김병환(金炳煥)/양양군 정손리
조전영상(朝田永常)161)/철원군 읍내
평천덕일(平川德一)162)/동
장영준영(張永俊英)163)/영월군 읍내
장성수계(長城守界)/울진군 읍내
금광덕충(金光德忠)/정선군 읍내
평송의방(平松義邦)/영월군 읍내
신정청우(新井淸友)164)/원주군 읍내
부산선홍(富山善弘)165)/홍천군 읍내
동천하룡(東川河龍)166)/평강군 읍내
이돈의(李燉儀)/강릉군 경포면 선교리
최명규(崔命圭)/강릉군 읍내


156) 윤창호(尹昶鎬)의 창씨명.
157) 김만봉(金萬鳳)의 창씨명.
158) 박현홍(朴顯洪)의 창씨명.
159) 전하부(田夏富)의 창씨명.
160) 황운부(黃雲夫)의 창씨명.
161) 박찬규(朴贊珪)의 창씨명.
162) 이덕일(李德一)의 창씨명.
163) 장준영(張俊英)의 창씨명.
164) 박충모(朴忠謨)의 창씨명.
165) 박한표(朴漢杓)의 창씨명.
166) 박하룡(朴河龍)의 창씨명.

배상효(裵相孝)/고성군 장전읍
최찬익(崔燦翊)/강릉군 주문진
최광식(崔光植)/평강군 서면 화암리


◎ 황해도(無順)


송야행성(松野行成)167)/해주부 북욱정
금강부원(金岡富源)168)/동 남욱정
평산익균(平山益均)169)/동 광석정
금택청(金澤淸)170)/동 남본정
금전기수(金田基秀)171)/동
김상혁(金相赫)/동
김상은(金相殷)/동
김상돈(金相敦)/동 동영정
유훈영(劉壎榮)/동 북행정
최형직(崔馨稷)/동 북욱정
오세호(吳世皥)/동 남본정
오원동(吳元東)/동 동영정
길천성진(吉泉成辰)/연안읍
금강진성(金江鎭聲)172)/금천읍
삼도승일(三島承一)173)/금천군 좌면
평산현덕(平山鉉德)174)/평산읍
신원희(申元熙)/평산군
송원승찬(松原承燦)/신계읍
대산돈정(大山敦正)175)/곡산읍
김병준(金炳駿)/곡산군
중촌창효(重村昌孝)176)/수안읍


167) 손진언(孫鎭彦)의 창씨명.
168) 김경수(金景壽)의 창씨명.
169) 신익균(申益均)의 창씨명.
170) 김형익(金衡翼)의 창씨명.
171) 김기수(金基秀)의 창씨명.
172) 김진성(金鎭聲)의 창씨명.
173) 이승구(李承九)의 창씨명.
174) 신현덕(申鉉德)의 창씨명.
175) 신흥엽(李興燁)의 창씨명.
176) 정창선(鄭昌善)의 창씨명.

국강청덕(國岡淸德)/황주읍
이동희(李東熙)/황주군
윤경혁(尹景赫)/동
김성려(金成麗)/동
조정록(趙鼎錄)/동
화천종준(和泉鍾駿)177)/사리원읍
금촌낙범(金村洛範)/동
송산봉성(松山鳳聖)/봉산군 산수면
강창오(康昌梧)/봉산군 사리원
김형철(金亨喆)/동
양희철(梁熙哲)/동 서종면
금포덕유(金浦德裕)178)/재령읍
금포건유(金浦健裕)179)/재령군
발산병덕(鉢山丙德)180)/동
양원백규(良元伯圭)/동 신원면
금포찬유(金浦讚裕)181)/동
청산정호(靑山正浩)/동
향산청웅(香山晴雄)/동
김홍량(金鴻亮)/안악읍
원효섭(元孝燮)/동
삼정청정(三井淸正)182)/신천읍
이계천(李繼天)/신천군
김종석(金鍾奭)/동
민규식(閔奎植)/동
매천수길(梅田秀吉)183)/송화군 풍해면
송산원석(松山元錫)184)/송화읍
대도구창(大島久昌)185)/옹진읍
177) 이종준(李鍾駿)의 창씨명.
178) 정덕유(鄭德裕)의 창씨명.
179) 정건유(鄭健裕)의 창씨명.
180) 민병덕(閔丙德)의 창씨명.
181) 정찬유(鄭讚裕)의 창씨명.
182) 홍신권(洪信權)의 창씨명.
183) 여구현(呂求鉉)의 창씨명.
184) 오원석(吳元錫)의 창씨명.
185) 장춘하(張春河)의 창씨명.

조규삼(曺圭三)/옹진군
송산수웅(松山秀雄)186)/은율군 장연면
홍광의(洪光義)/동
안전정조(安田政助)/동
덕천선길(德川宣吉)/서흥군 도면
장대익(張大翼)/동
이광익(李光翼)/동
허원(許洹)/동
홍순의(洪順義)/은율군 북부면 가악리
나인협(羅仁協)/경의선 사리원역전 동리
김인흥(金仁興)/안악군 은홍면 보광리
삼경장원(三敬長元)/곡산군 읍내 천도교구
김형국(金衡國)/황주군 읍내 성남리 천도교구
김창현(金昌玄)/곡산군 읍내 천도교구
◎ 충청북도(無順)
김원근(金元根)/청주읍
민영은(閔泳殷)/동
이중갑(李重甲)/동
이희준(李熙俊)/동
이명구(李明求)/동
이춘웅(李春雄)/충주군
박호열(朴鎬烈)/동
정석희(鄭奭熙)/동
장준(張俊)/괴산군
유증수(柳曾秀)/동
이석래(李錫來)/보은군
정수홍(鄭壽弘)/동
최충근(崔翀根)/동
손재하(孫在廈)/영동군
유성연(柳性淵)/동
권중혁(權重赫)/동
이태현(李泰炫)/진천군


186) 전석열(全錫洌)의 창씨명.

이장범(李長範)/동
이호신(李鎬臣)/동
조동환(趙東煥)/음성군
남헌(南憲)/동
안택수(安宅洙)/동
정대용(鄭大庸)/옥천군
정인채(鄭仁彩)/동
정구평(鄭求平)/동
조성구(趙星九)/단양군
안한익(安漢益)/제천군
이규하(李圭夏)/단양군
강문회(姜文會)/옥천군 이원역
원정희(元貞喜)/동 청산면
남상익(南相翊)/진천군
육병옥(陸炳玉)/영동군 심천면
박인서(朴麟緖)/보은군
홍원식(洪元植)/괴산군
정진복(鄭鎭福)/충주군
민경식(閔庚植)/청주읍 본정 3정목
최동선(崔東善)/동 청수정
박기수(朴基洙)/동 본정 3정목
박노태(朴魯泰)/동 대성정
곽진영(郭振泳)/동 석교정
한정석(韓定錫)/동
홍봉희(洪鳳喜)/동 석교정
민중식(閔重植)/동 본정 5정목
구연직(具然直)/동 본정 1정목
김동환(金東煥)/음성군 맹동면 봉현리
◎ 충청남도(無順)
임창수(林昌洙)/대전부 춘일정
금산경(金山敬)187)/동 대동정
풍전번(豊田藩)188)/대덕군 유성


187) 김창수(金昌洙)의 창씨명.

금택교준(金澤敎駿)189)/대전부
조강희(趙岡熙)/동 매일신보 지사
금전영일(金田英一)/동
서덕순(徐悳淳)/공주읍
심재욱(沈載昱)/동
이두녕(李斗寧)/동
박병석(朴炳錫)/공주읍
김용기(金容琪)/논산군
윤길중(尹吉重)/동
무본영일(武本榮一)190)/동
권동병인(權東炳仁)191)/동
윤정(尹政)/동
박영준(朴永俊)/서천군
전본재성(全本在成)/동
풍성수(豊城守)192)/동
석천창일(石川彰一)193)/청양군
이상각(李相珏)/동
금광도수(金光道秀)194)/보령군
이성구(李聖九)/동
송천고명(松川高明)/195)동
미평청(米平淸)196)/서산군
윤준용(尹駿鏞)/동
한창동(韓昌東)/동
심상국(沈相國)천안군
이중화(李重華)/동
지산정(芝山祺)197)/동
188) 강번(姜藩)의 창씨명.
189) 김교준(金敎駿)의 창씨명.
190) 배영춘(裵永春)의 창씨명.
191) 권병인(權炳仁)의 창씨명.
192) 조남천(趙南天)의 창씨명.
193) 김창동(金彰東)의 창씨명.
194) 김도수(金道秀)의 창씨명.
195) 이한명(李漢明)의 창씨명.
196) 나창헌(羅昌憲)의 창씨명.
197) 민재기(閔載祺)의 창씨명.

신안선필(新安善弼)198)/당진군
임천홍식(林川洪植)/동
천전대근(千田大根)199)/부여군
민영위(閔泳胃)/동
청목현범(靑木賢範)200)/동
김준규(金駿圭)/홍성군
교목종환(喬木鍾丸)201)/동
김억규(金億圭)/동
이종덕(李鍾悳)/예산군
서원장평(西原藏平)202)/동
원훈상(元勛常)/아산군
이원범수(梨原範秀)203)/동
남정학(南廷學)/아산군
금정권영(金井捲永)204)/대덕군
유택희룡(柳澤希龍)205)/연기군 조치원
홍순영(洪淳永)/동
금택경차(金澤慶次)/대전부 대흥정
금전대영(金田大英)206)/동 본정
윤건용(尹建鏞)/동 유천정
송방수부(松方秀夫)207)/동 춘일정
중산창헌(中山昌憲)208)/동 춘일정
이동용섭(伊東用燮)209)/동 대흥정
송본국남(松本國南)/동 대흥정
정일덕(鄭一悳)/동 춘일정
초천천일(初川天一)/동 본정


198) 강선필(姜善弼)의 창씨명.
199) 천대근(千大根)의 창씨명.
200) 이현범(李賢範)의 창씨명.
201) 이종환(李鍾丸)의 창씨명.
202) 이종대(李鍾大)의 창씨명.
203) 이범수(李範秀)의 창씨명.
204) 김권영(金卷永)의 창씨명.
205) 유영렬(柳暎烈)의 창씨명.
206) 김대영(金大英)의 창씨명.
207) 방두환(方斗煥)의 창씨명.
208) 오창헌(吳昌憲)의 창씨명.
209) 윤용섭(尹用燮)의 창씨명.

금광유현(金光裕鉉)210)/동 대흥정
금전정환(金田正煥)211)/동 대흥정
손균옥(孫均玉)/동
서진(徐震)/동
송을용(宋乙用)/대덕군


◎ 경상북도(無順)


박중양(朴重陽)/대구부 침산정
정해붕(鄭海鵬)/동 하서정
장직상(張稷相)동 수정
서상일(徐相日)/동 시양정
서병원(徐丙元)동 남정
서병국(徐丙國)/동
이장우(李章雨)/동 상서정
윤상태(尹相台)/동 시양정 서상일 집
이상무(李相武)/동 서성정)
김찬주(金燦珠)/동 명치정
신옥(申鈺)212)/동 봉산정
박노경(朴魯庚)/동 봉산정
대봉병조(大峯丙朝)213)/동 명치정
임상조(林尙助)/동 횡정
고산정의(高山正義)/동 수정
대성준부(大城俊夫)/동 내당동
추곡고명(秋谷高明)/동 금정
명본지융(明本智隆)214)/동 명치정
대산한봉(大山漢鳳)215)/상주군 함창면
조용연(趙龍衍)/동 읍내
수봉채우(秀峰埰雨)216)/경주군 경주읍
210) 김유현(金裕鉉)의 창씨명.
211) 김정환(金正煥)의 창씨명.
212) 신현구(申鉉求)의 창씨명.
213) 서병조(徐丙朝)의 창씨명.
214) 허지(許智)의 창씨명.
215) 김한봉(金漢鳳)의 창씨명.
216) 이채우(李採雨)의 창씨명.

신목황(新木晃)/영양군 영양면
이승노(李承魯)/동 읍내
팔목광치(八本光治)217)/성주군 성주면
이완석(李完錫)/동 대산동
최윤(崔潤)/경주군 경주읍
금자우동(金子雨東)/선산군 선산면
영야희욱(永野喜郁)218)/안동군 안동읍
대동희일(大東喜一)219)/동 동
권오종(權五鍾)/동 동
유시영(柳時泳)/동 동
안영병규(安永炳圭)220)/경산군 경산면
청수구원(淸水久源)221)/동 동
안주홍(安周洪)/동 읍내
대원영길(大原永吉)222)/청도군 청도면
김호태(金昊泰)/동 읍내
임희수(林熺秀)/동 읍내
권중열(權重烈)/안동군 읍내
연성목(延城穆)223)/군위군 효령면
서원정은(西原正殷)/동 읍내
대산원삼(大山元三)224)/문경군 호사남면
조성직(趙誠直)/동 점촌
금산부하(金山富河)225)/영일군 포항읍
강본정호(江本晶鎬)226)/동 흥해읍
금전용주(金田龍周)227)/동 포항읍
송본국평(松本國平)228)/봉화군 춘양면


217) 정재기(鄭在琪)의 창씨명.
218) 권오종(權五鍾)의 창씨명.
219) 권영훈(權寧薰)의 창씨명.
220) 안병규(安炳圭)의 창씨명.
221) 이상진(李相鎭)의 창씨명.
222) 이영길(李永吉)의 창씨명.
223) 이성목(李城穆)의 창씨명.
224) 이규선(李圭璇)의 창씨명.
225) 김두하(金斗河)의 창씨명.
226) 최정호(崔晶鎬)의 창씨명.
227) 김용주(金龍周)의 창씨명.
228) 심동국(沈東國)의 창씨명.

강교원(姜敎元)/동 읍내
정태복(鄭泰福)/동 동
고산하수(高山夏樹)229)/의성군 의성읍
대원국영(大原國永)/동 동
유시균(柳時均)동 읍내
강원청장(江原淸藏)230)/예천군 유천면
등원기생(藤原基生)231)/동 예천읍
김석희(金碩熙)/동 읍내
강송주학(岡松周鶴)/청송군 청송면
조근영(趙根泳)/동 읍내
심상관(沈相寬)/동 읍내
고덕환(高德煥)/김천군 김천읍
배촌선규(裵村善奎)232)/동 조마면
김옥배(金玉培)/동 읍내
심상치(沈相致)/동 읍내
금원태두(金原泰斗)/영주군 영주읍
박승우(朴承祐)/동 읍내
이덕호(李德虎)/동 읍내
이활(李活)/영천군 읍내
이학문(李學文)/동 읍내
문일수(文日壽)/영덕군 읍내
조약슬(趙若瑟)/경부선 외관역전
정운석(鄭雲奭)/고령군 읍내


◎ 경상남도(無順)


김동준(金東準)/부산부
광정태운(廣田泰運)/동
우신출(禹新出)/동
우산희상(友山羲常)/마산부
장재식(張在軾)/동
이현각(李鉉覺)/동
229) 오하수(吳夏洙)의 창씨명.
230) 조병욱(趙秉郁)의 창씨명.
231) 장기생(張基生)의 창씨명.
232) 배선규(裵善奎)의 창씨명.

강천충경(江川忠卿)233)/진주군
부산융성(富山隆盛)234)/동
서상식(徐相湜)/동
이장희(李章喜)/동
정상진(鄭相珍)/동
금성억근(金城億根)235)/의령군 읍내
이우식(李佑植)/동 동
동곡길성(東谷吉盛)236)/함안군 읍내
천곡일실(川谷一實)/동 동
하본호룡(河本浩龍)/밀양군 읍내
하한석(河翰錫)/동 동
안본효식(安本孝式)237)/울산군 읍내
안전개조(安田開兆)/동 동
김택천(金澤天)/동 동
신원길호(新原吉浩)238)/동래군 읍내
김병규(金秉圭)/동 동
기본춘성(杞本春盛)239)/동 동
곽종섭(郭鍾燮)/동 동
하산중환(夏山重煥)240)/김해군 읍내
금자전간(金子典幹)241)/동 동
백남일(白南日)/동 동
궁곡방만(宮谷芳滿)/동 동
금촌길우(金村吉祐)242)/통영군 읍내
김현국(金炫國)/동 동
금촌강홍(金村康弘)/동 동
죽성무웅(竹城武雄)/고성군 읍내
233) 이장희(李章喜)의 창씨명.
234) 최지환(崔志煥)의 창씨명.
235) 김억근(金億根)의 창씨명.
236) 조노제(趙櫓濟)의 창씨명.
237) 안효식(安孝式)의 창씨명.
238) 박길호(朴吉浩)의 창씨명.
239) 유진후(兪鎭厚)의 창씨명.
240) 조중환(曺重煥)의 창씨명.
241) 김경진(金慶鎭)의 창씨명.
242) 김영수(金榮洙)의 창씨명.

박용보(朴容甫)/동 동
최연국(崔演國)/사천군 읍내
회산순주(檜山順柱)243)/동 동
장응상(張應相)/사천군 삼천포
지산우지(芝山又支)244)/남해군 읍내
윤병호(尹丙浩)/동 동
박진평(朴晋平)/동 동
이은우(李恩雨)/하동군 읍내
산본석근(山本錫根)245)/동 동
김석순(金錫舜)/동 동
김경엽(金璟燁)/동 동
광원의풍(光原義豊)246)/산청군 읍내
최열만(崔烈萬)/동 동
풍천일청(豊川一淸)247)/함양군 읍내
정순현(鄭淳賢)/동 동
노준영(盧俊泳)/동 동
동본종락(桐本鍾洛)248)/거창군 읍내
함일로(咸一路)/동 동
신용희(愼鏞禧)/동 동
평전문기(平田文基)249)/합천군 읍내
이경상(李景祥)/동 동
신용구(申鏞九)/진주부 사봉정 천도교구
하기석(河麒錫)/동 창녕군 읍내
하일우(河一宇)/동 천도교구
하준석(河駿錫)/동 창녕면
김길창(金吉昌)/부산부 중도정
김준원(金埈源)/동 동
김장태(金璋泰)/동 수정정
오재일(吳載一)/동래군 읍내
243) 황순주(黃順柱)의 창씨명.
244) 최익수(崔翊洙)의 창씨명.
245) 강석근(姜錫根)의 창씨명.
246) 오명진(吳明鎭)의 창씨명.
247) 노준영(盧俊泳)의 창씨명.
248) 정종락(鄭鍾洛)의 창씨명.
249) 신문기(申文基)의 창씨명.

이면재(李冕載)/부산부 초량동
이귀흥(李貴興)/동 동


◎ 전라북도(無順)


덕산승렬(德山昇烈)250)/전주부 대화정
원천일섭(原川日燮)251)/동 상생정
종도주상(宗島柱祥)252)/동 청수정
이우식(李愚軾)/동 대정정 4정목
원촌병희(元村炳喜)253)/동 대정정 6정목
백천남혁(白川南赫)254)/동 청수정
임택용(林澤龍)/동 대화정
고목창환(高木昌桓)255)/동 대정정 2정목
유정직(柳井直)/동 노송정
풍천석모(楓川碩謨)256)/동 완산정
유창근(柳彰根)/동 대정정
양상경(梁相卿)/동 청수정
김용규(金容奎)/동 완산정
윤훈(尹薰)/동
강동희(姜東曦)/김제군 성덕면
길전장영(吉田長榮)257)/동 청하면
산전연주(山田演柱)258)/동 백구면
임종환(林宗桓)/동 동
조재식(趙在軾)/김제읍 신풍리
조재돈(趙在敦)/동
평문종구(平文鍾龜)259)/군산부 천대전정
강원백(江原伯)/동 동빈정 1정목


250) 최승렬(崔昇烈)의 창씨명.
251) 변일섭(邊日燮)의 창씨명.
252) 송주상(宋柱祥)의 창씨명.
253) 원병희(元炳喜)의 창씨명.
254) 백남혁(白南赫)의 창씨명.
255) 인창환(印昌桓)의 창씨명.
256) 정석모(鄭碩謨)의 창씨명.
257) 장준석(張準錫)의 창씨명.
258) 김연식(金演植)의 창씨명.
259) 문종구(文鍾龜)의 창씨명.

송산홍선(松山鴻善)260)/동 노송정
대평만수(大平晩秀)261)/동 장재정
송강수길(松岡秀吉)/동
삼택승수(三宅勝秀)262)/진안군 진안면
송전미정(松田米正)/동 동
삼목원준(三木元雋)263)/금산군 남일면
정해준(鄭海駿)/동 동
오궁재근(吳宮在根)264)/무주군 무주면
길전수웅(吉田守雄)/동
유동언(柳東彦)/장수군 장수면
동천광수(東川光秀)265)/임실군 임실면
노병춘(魯炳春)/동 동
죽산일랑(竹山一郞)266)/남원군 남원읍
이두용(李斗用)/동 동
이정근(李正根))/동 동
박희옥(朴熺沃)/동 운봉면
매림동기(梅林東器)267)/동 기매면
금전영무(金田英武)268)/순창군 순창면
송본해동(松本海東)269)/동 동
노병준(盧秉準)/동 쌍치면
김희옥(金熙玉)/동
박명규(朴明奎)/정읍군 정읍읍
청산의상(靑山義上)270)/동 동
곽전근(郭塡根)/동 신태인
박석규(朴碩奎)/동 정주읍


260) 서홍선(徐鴻善)의 창씨명.
261) 이만수(李晩秀)의 창씨명.
262) 전승수(全承洙)의 창씨명.
263) 박원준(朴元雋)의 창씨명.
264) 오재근(吳在根)의 창씨명.
265) 박경수(朴庚洙)의 창씨명.
266) 박정식(朴政植)의 창씨명.
267) 이동기(李東器)의 창씨명.
268) 김영무(金英武)의 창씨명.
269) 이해동(李海東)의 창씨명.
270) 박금효(朴錦孝)의 창씨명.

정세환(鄭世煥)/고창군 대산면
평산태수(平山泰洙)/동 고창중학교
신수원(愼秀遠)/동 동
홍해종철(洪海鍾轍)271)/동 부안면
강대식(姜大湜)/동 성송면
신□노(愼□魯)/동
임승화(林承化)/부안군 행안면
이영일(李永日)/동 부안면
김태종(金泰鍾)/동
평문충용(平文忠勇)272)/옥구군 옥산면
안동청(安東淸)273)/동 서덕면
송산청(松山淸)274)/익산군 황등면
유소진문(有蘇鎭文)275)/동 팔봉면
배헌(裵憲)/동 이리읍
조해영(趙海英)/동 성라면
김삼순(金三淳)/동 함열면
윤건중(尹建重)/완주군 참례면
강철모(姜哲模)/전주부
연본창돈(延本昌敦)/동 노송정 천도교
금궁원(金宮元)276)/동 대정정
장병선(張炳善)/동 대정정
이승용(李昇龍)/동 완산정


◎ 전라남도(無順)


현준호(玄俊鎬)/광주부
문재철(文在喆)/동
송화식(宋和植)/동
김신석(金信錫)/동
박준규(朴準圭)/동


271) 홍종철(洪鍾轍)의 창씨명.
272) 문원태(文袁泰)의 창씨명.
273) 노긍식(盧兢湜)의 창씨명.
274) 박지근(朴智根)의 창씨명.
275) 소진문(蘇鎭文)의 창씨명.
276) 김종근(金鍾根)의 창씨명.

국호열(鞠鎬烈)/동
김재규(金在珪)/동
국기현(鞠琪絃)/담양군
정용인(鄭湧寅)/동
김병준(金炳俊)/동
고도재연(高島在涓)277)/구례읍
선태섭(宣泰燮)/동
금전치배(金田致培)278)/광양읍
금곡영준(金谷英俊)279)/여수읍
명창순(明昌淳)/동
김인저(金寅杵)/동
이문헌(李文憲)/동
송강정록(松岡廷祿)280)/순천읍
이영민(李榮珉)/동
성정수(成禎洙)/동
문택호(文宅鎬)/목포부
김철진(金哲鎭)/동
덕산남진(德山南鎭)281)/동
금해선홍(金海善洪)282)/고흥읍
신오휴(申午休)/동
신지우(申址雨)/동
박갑수(朴甲壽)/동
광촌제래(廣村堤來)283)/보성읍
최형호(崔瑩澔)/동
양회인(梁會仁)/화순읍
조철환(曺哲煥)/동
안전광작(安田光作)/장흥읍
안전풍태랑(安田豊太郞)/강진읍
김안식(金安植)/동


277) 고재연(高在涓)의 창씨명.
278) 김치배(金致培)의 창씨명.
279) 김영준(金英俊)의 창씨명.
280) 서정록(徐廷錄)의 창씨명.
281) 차남진(車南鎭)의 창씨명.
282) 김선홍(金善洪)의 창씨명.
283) 이제래(李堤來)의 창씨명.

김충식(金忠植)/동
천진옥(千珍玉)/동
김종현(金宗鉉)/동
윤정현(尹定鉉)/동
천독근(千篤根)/무안읍
율산영철(栗山榮哲)284)/나주읍
김종언(金鍾彦)/동
삼산현린(三山鉉麟)285)/함평읍
이재혁(李載赫)/동
조용남(趙龍楠)/영광읍
정동윤(鄭東允)/영광읍
금천상일(金川相一)286)/장성읍
김원천(金源千)/동
금도광휘(金島光輝)287)/완도
최평산(崔平山)/동
길전순하(吉田舜河)288)/제주도
최원순(崔元淳)/동
서원성일(西原誠一)/동
유인철(柳寅哲)/영암읍
금성민치(金星敏治)/동
정규태(丁奎泰)/곡성읍
횡산준장(橫山俊藏)/진도
허병수(許秉洙)/동
황생주(黃生周)/장흥군 장흥면 교촌리
이림상호(伊林相浩)/강진군 성전면 도림리


◎ 평안남도(無順)


이교식(李敎植)/평양부 설암리
박경석(朴經錫)/동 봉향리
이기찬(李基燦)/동


284) 최영철(崔榮哲)의 창씨명.
285) 신현린(申鉉麟)의 창씨명.
286) 김상일(金相一)의 창씨명.
287) 김상근(金商瑾)의 창씨명.
288) 황순하(黃舜河)의 창씨명.

전덕용(田德龍)/동 수정
김동원(金東元)/동 창전리
이춘섭(李春燮)/동 창전리
손창윤(孫昌潤)/동 계리
박승억(朴承億)/동 기림리
손수경(孫壽卿)/동 수옥리
채필근(蔡弼近)/동 평양신학교
최정묵(崔鼎黙)/동 설암리
김건영(金健永)/동 욱정
김필응(金弼應)/동 수옥리
최정수(崔正洙)/동 상수리
황찬영(黃贊永)/동 경창리
최규봉(崔奎鳳)/동 남문정
최응두(崔應斗)/동 설암리
이상빈(李尙斌)/동 관후리
김항복(金恒福)/동 기림리
한근조(韓根祖)/동 서관리
정지강(鄭志强)/동 신양리
우호익(禹浩翊)/동 인정도서관
김관식(金觀植)/동 장태현교회
김연옥(金淵玉)/동 복향리
김중섭(金仲燮)/동 복향리
한형보(韓亨輔)/동 계리
이병호(李炳浩)/동 반교리
한동찬(韓東燦)/동 육로리
오덕삼(吳德三)/동 신창리
박상희(朴尙僖)/동 기림리
박선철(朴善哲)/동 기림리 우체국
정태원(鄭泰元)/동 교구정
김영기(金寧起)동 경상리
청목정호(靑木貞浩)289)/동 대찰리
이응갑(李應甲)/동 신창리
김병조(金秉兆)/동 수옥리


289) 김정호(金貞浩)의 창씨명.

최명섭(崔明燮)/동 원산고무회사
박경묵(朴慶黙)/동 광성중학교
박승엽(朴承燁)/동 벽암리
윤장엽(尹長燁)/동 위청리
고봉휘(高峯暉)/동 매일신보 지사
이병일(李炳佾)/동
신정범수(新井範洙)290)/동 신리
김인오(金仁梧)/안주군 읍내
궁본화행(宮本和幸)291)/동 읍내
김진수(金晋洙)/강서군 읍내
이종섭(李鍾燮)/진남포부
평소헌(平沼憲)292)/진남포부
위기철(韋基喆)/평원군 읍내
산본창호(山本昌鎬)293)/개천군 읍내
금촌철웅(金村喆雄)294)/동 읍내
풍원효근(豊原孝根)295)/순천군 읍내
금천해룡(金川海龍)296)/맹산군 읍내
대삼천일(大森千一)297)/양덕군 읍내
김상화(金商和)/강동군 읍내
금산수길(金山秀吉)298)/중화군 읍내
이산고언(二山高彦)299)/용강군 읍내
서준석(徐峻錫)/덕천군 읍내
금전형준(金田炯俊)300)/영원군 읍내
김준상(金浚相)/안주군 운곡면 삼화광산
박용완(朴用玩)/맹산군 북창우구개창(北倉郵區改倉)

290) 박범수(朴範洙)의 창씨명.
291) 이관순(李寬淳)의 창씨명.
292) 윤기원(尹基元)의 창씨명.
293) 최창호(崔昌鎬)의 창씨명.
294) 김채설(金采說)의 창씨명.
295) 오효근(吳孝根)의 창씨명.
296) 김해룡(金海龍)의 창씨명.
297) 박천일(朴千一)의 창씨명.
298) 김롱(金瓏)의 창씨명.
299) 김병률(金秉律)의 창씨명.
300) 김형준(金炯俊)의 창씨명.

목촌영성(木村榮成)/영원군 읍내
향촌광남(香村光男)/진남포부 비석리 천도교구
이달흥(李達興)/강동군 읍내 천도교구
천림명도(川林明道)/평양부 설암리
길산호남(吉山虎男)/맹산군 읍내
김광호(金光浩)/안주군 읍내
주간흠(朱幹欽)/평양부 이문리
◎ 평안북도(無順)
최창조(崔昌朝)/신의주부 영정
고병철(高秉哲)/동 미근동
고유일(高有日)/동 제일산업조합
김익진(金益鎭)/동 미근동
백기조(白基肇)/동 진사정
조상옥(趙尙鈺)/동 영정
박용수(朴龍水)/동 진사정 1정목
정원섭(鄭元燮)/동 약초정
최윤섭(崔允涉)/동 영정 5정목
김봉죽(金鳳竹)/동 본정
강이황(姜利璜)/동 진사정
입간공남(笠間公男)301)/동
고일청(高一淸)/의주군 의주읍
신언청(申彦淸)/동 동
김규승(金奎承)/동 동
황관하(黃觀河)/용천군 용암포
김기홍(金基鴻)/동 양서면
김낙유(金洛瑜)/철산군 읍내
오좌은(吳佐殷)/철산군 차련관
홍치업(洪致業)/선천군 읍내
이영찬(李泳贊)/동 동
오현기(吳鉉琦)/동 동
박문규(朴文奎)/정주군 읍내
김기홍(金起鴻)/동 고읍역전


301) 유도순(劉道順)의 창씨명.


이정근(李貞根)/동 남서면
김안도(金安燾)/동 임포면
유원남(兪元男)/박천군 읍내
김수장(金壽長)/경의선 영미역전
백양섭(白陽燮)/태천군 읍내
김병제(金炳濟)/동 동
홍재경(洪在璟)/영변군 읍내
장월섭(張月燮)/동 구장
장용관(張龍官)/구성군 방현면
최창학(崔昌學)/동 동
이찬엽(李燦燁)/운산군 북진읍
왕희순(王熙淳)/동 동
김승훈(金承壎)/희천군 읍내
송계원(宋啓源)/동 동
김화현(金華鉉)/강계군 읍내
전종화(田種禾)/동 동
김의용(金義勇)/동 전천역전
오윤진(吳允珍)/동 읍내
윤하경(尹河敬)/자성군 중강진
김지하(金趾河)/후창군 읍내
한규진(韓圭晋)/동 동흥면
박지을(朴之乙)/위원군 읍내
김문걸(金文杰)/초산군 읍내
차두환(車斗煥)/벽동군 읍내
김태식(金泰植)/동 동
강봉서(姜鳳瑞)/창성군 청산면
박동훈(朴東壎)/삭주군 읍내
이명호(李明鎬)/선천군 심천면 월곡동
평거희적(平居熙迪)302)/신의주부
이용길(李龍吉)/선천군 읍내 천도교구
김상설(金商說)/동 동
김학찬(金學贊)/용천군 읍내 천도교구
김덕잠(金德潛)/신의주부 외마전동


302) 이희적(李熙迪)의 창씨명.

김덕린(金德麟)/희천군 읍내 천도교구
양원섭(楊元燮)/벽동군 읍내 천도교구
원경찬(元京贊)/구성군 읍내 천도교구
백천풍조(白川豊造)303)/정주군 읍내 천도교구
금자일(金子一)/의주군 읍내 천도교구
최안국(崔安國)/경의선 북현역전 농민공제조합
이필준(李弼俊)/용천군 읍내
김경윤(金景潤)/동 동
정윤옥(鄭潤玉)/철산군 읍내
오필은(吳弼殷)/선천군 읍내
고산경식(高山景植)304)/선천군 읍내
주기용(朱琦鎔)/정주군 오산
이윤주(李潤柱)/박천군 읍내
김학준(金學俊)/영변군 읍내
신창균(申昌均)/동 동
송산종호(松山宗鎬)305)/운산군 읍내
김승수(金承洙)/강계군 읍내
송강행웅(松岡幸雄)306)/희천군 읍내
이안제(李安濟)/자성군 읍내
이현풍(李玹豊)/후창군 읍내
금촌영선(金村永善)/희천군 읍내 천도교구


◎ 함경남도(無順)


이희섭(李羲燮)/함흥부
방의석(方義錫)/동
박정연(朴楨淵)/동
청원격만(淸原格晩)307)/동
김명학(金明學)/동
최두선(崔斗先)/동
한림(韓林)/동


303) 백중빈(白重彬)의 창씨명.
304) 최경식(崔景植)의 창씨명.
305) 이종호(李宗鎬)의 창씨명.
306) 나백헌(羅栢憲)의 창씨명.
307) 한격만(韓格晩)의 창씨명.

채용묵(蔡容默)/동
이태완(李泰完)/동
방본태설(邦本泰卨)308)/동
금본안민(金本安民)309)/동
한장경(韓長庚)/함주군
임복순(任福淳)/동
이춘하(李春河)/원산부
삼산학시(三山鶴市)310)/동
남백우(南百祐)/동
강영균(姜英均)/안변군
평천종림(平川鍾林)311)/동
이홍기(李弘基)/동
강기덕(康基德)/덕원군
강세진(康世鎭)/동
박병한(朴炳漢)/문천군
장경찬(張庚瓚)/동
남박중(南博中)/동
서병하(徐丙河)/고원군
김달현(金達鉉)/동
이천강평(利川康平)312)/동
조성용(趙成龍)/영흥군
백남극(白南極)/동
박한영(朴漢榮)/동
우인협(禹仁冾)/동
서원영(西原英)313)/동
한병락(韓丙洛)/정평군
이용협(李龍冾)/동
대원기의(大原基義)314)/홍원군
도상학(都相鶴)/동


308) 유태설(劉泰卨)의 창씨명.
309) 김하섭(金夏涉)의 창씨명.
310) 위정학(魏楨鶴)의 창씨명.
311) 이종림(李鍾林)의 창씨명.
312) 서강석(徐康碩)의 창씨명.
313) 한창원(韓昌源)의 창씨명.
314) 서한종(徐鷴鍾)의 창씨명.

덕포의고(德浦義高)315)/북청군
고도철부(高島撤夫)316)/동
주경묵(朱璟黙)/동
정중섭(鄭重燮)/동
최관호(崔觀鎬)/이원군
정경섭(鄭庚燮)/동
서원범재(西元範在)317)/동
설운용(薛雲龍)/단천군
우정봉(禹丁鳳)/동
김수근(金守根)/동
송원광풍(松原光豊)318)/동
정찬주(鄭贊周)/장진군
임재원(林在苑)/동
안천의광(安川義光)319)/동
풍전홍제(豊田弘濟)320)/삼수군
안정융일(安田隆一)321)/갑산군
대지효선(大智孝善)/신흥군
이능화(李能華)/함경선 차호역전
권승하(權承夏)/동 동
정인관(鄭寅寬)/고원군 상곡면
이춘국(李春國)/북청군 읍내 천도교구
이인숙(李仁淑)/정평군 춘유면 선덕리
문철모(文哲謨)/함흥부 황금정 1정목 천도교구
이재택(李載澤)/동 주길정
이성주(李成周)/동 낙민정
조영희(趙永熙)/북청군 읍내

◎ 함경북도(無順)


장간헌사랑(張間憲四郞)322)/청진부 나남초동정


315) 조영희(趙永熙)의 창씨명.
316) 고철호(高徹浩)의 창씨명.
317) 이범재(李範在)의 창씨명.
318) 심기연(沈基淵)의 창씨명.
319) 주재선(朱在璿)의 창씨명.
320) 조홍제(趙弘濟)의 창씨명.
321) 김재혁(金在赫)의 창씨명.

금산소능(金山韶能)323)/동 나남동 본정
중산부웅(中山富雄)324)/동 포항동
대산경동(大山卿東)325)/동 신암동
송원태용(松原泰龍)326)/동 나남동 본정
상원필현(祥原弼顯)327)/동 신암동
무본성달(武本盛達)/동 포항동
최운학(崔雲鶴)/동 신암동
홍종화(洪鍾華)/동 나남생구정
증산동운(甑山東雲)328)/동 신암정
방락선(方洛先)/동 동
윤석필(尹錫弼)/동 포항동
신종욱(辛鍾郁)/동 동
장채극(張彩極)/동 신암동
이창인(李昌仁)/동 동
남윤구(南潤九)/동 동
채학림(蔡鶴林)/동 동
오쾌일(吳快一)/동 포함동
최석준(崔錫俊)/동
강학병(姜鶴秉)/동 나남동 본정
이항열(李恒烈)/동 신암동
박치목(朴致睦)/동 신암동 이항열 집
김창권(金昌權)/동 포항동학교 곡(谷)
박주량(朴周亮)/경성군 주을
윤병구(尹秉球)/동 동
김일헌(金日憲)/동 읍내
최지환(崔智煥)/동 어대진
문영섭(文泳燮)/동 동
금산익조(金山益造)329)/명천군 명천역전


322) 장헌근(張憲根)의 창씨명.
323) 김정석(金定錫)의 창씨명.
324) 황종국(黃鍾國)의 창씨명.
325) 설경동(薛卿東)의 창씨명.
326) 김태용(金泰龍)의 창씨명.
327) 조필현(趙弼顯)의 창씨명.
328) 조동운(趙東雲)의 창씨명.
329) 김익(金益)의 창씨명.


김수길(金秀吉)/동 동
조야규오(朝野奎悟)330)/길주군 읍내
황태성(黃泰成)/동 동
양재홍(梁在鴻)/동 동
유천충광(柳川忠廣)331)/성진부
여동춘(呂同春)/동
김홍섭(金弘燮)/동
이규송(李奎宋)/동
고산수창(高山秀昌)332)/청진부 신암동
강기형(姜基衡)/동 포항동
신제악(申齊岳)부령군 읍내
최면재(崔冕載)/회령군 읍내
이재하(李載夏)/동 동
김서중(金瑞仲)/동 동
한계륭(韓繼隆)/무산군 읍내
신정민부(新井敏夫)333)/동 동
문천청천(文川淸泉)334)/종성군 읍내
궁본관진(宮本觀鎭)335)/동 동
전촌응구(全村應九)336)/온성읍
이흥재(李興載)/동
최창극(崔昌極)/동
전천치호(全川治鎬)337)/동
이천문영(利川文英)/경원군 읍내
고산성협(高山聖協)/동 동
금판대원(金坂大元)338)/경흥군 웅기
김□근(金□根)/동 동
김창준(金昌俊)/동 동


330) 이종규(李鍾奎)의 창씨명.
331) 유종하(柳鍾夏)의 창씨명.
332) 이수창(李秀昌)의 창씨명.
333) 박시준(朴時俊)의 창씨명.
334) 문영훈(文泳勳)의 창씨명.
335) 이관진(李觀鎭)의 창씨명.
336) 전응구(全應九)의 창씨명.
337) 전치호(全治鎬)의 창씨명.
338) 김대원(金大元)의 창씨명.


김기택(金基王宅/나진부
신종승(辛鍾昇)/동
평산학철(平山學澈)339)/동
장본기욱(張本基郁)/남양역전
목야명복(牧野明馥)/길주군 읍내 천도교구
나상신(羅相信)/청진부 신암동 천도교구
청목종훈(靑木鍾勳)340)/성진부 본정 매일신보 지사
김기철(金基哲)/웅기
김창일(金昌一)/(沈鍾勳)
박재욱(朴在旭)/학성군 학서면 원평동
황수봉(黃洙鳳)/경원군
최창열(崔昌烈)/성진부 쌍포정


339) 신학철(申學澈)의 창씨명.
340) 심종훈(沈鍾勳)의 창씨명.

조선임전보국단 임원 명부(無順)


직 책            성 명                                           구 명               주 소


고문    가와키시 분사부로(川岸文三郞)                                국민총력조선연맹
동             이동치호(伊東致昊)                윤치호(尹致昊)      경성부 견지정 68
동       이가진호(李家軫鎬)                      이진호(李軫鎬)      동 황금정 3정목 217
동                                                       한상용(韓相龍)      동 가회정 178
동       박충중양(朴忠重陽)                      박중양(朴重陽)      경북 대구부 침산동
단장       가산린(佳山麟)                         최린(崔麟)            경성부 명륜정 1정목 45
부단장                                                 고원훈(高元勳)      동 신교정 6
이사장  정원규복(井垣圭復)                     한규복(韓圭復)      동 운이정 97
상무이사고령흥우(高靈興雨)                    신흥우(申興雨)      동 정동정 43
동                                                       김연수(金秊洙)      동 성북정 41
동                                                       민규식(閔奎植)      동 삼청정 145-6
동                                                       박흥식(朴興植)      동 가회정 177
동                                                       김사연(金思演)      동 관철정 142
동           금천성(金川聖)                       이성근(李聖根)       동 신당정 366-12
동      오천교원(烏川僑源)                      정교원(鄭僑源)       동 숭인정 72-17
동      국산시권(菊山時權)                      김시권(金時權)       동 청운정 52-58
동      삼정기의(三井基義)                      박기효(朴基孝)       동 동사헌정 100
동      공산용신(公山容愼)                      이용신(李容愼)       동 사직정 311
동      안흥성환(安興晟煥)                      이성환(李晟煥)       동 삼청정 35-91
동      백산청수(白山靑樹)                      김동환(金東煥)       동 통의정 128-2호
동           원촌조(元村肇)                       원덕상(元悳常)       동 팔판정 52
동           하산무(夏山茂)                       조병상(曺秉相)      
동 청운정 108


동     서원종린(瑞原鍾麟)                       이종린(李鍾麟)       동 성북정 184-22
동     광전종욱(廣田鍾郁)                       이종욱(李鍾郁)       동 수송정 44 불교총본산 태고사
동                                                      방의석(方義錫)       동 누상정 166
이사  광안종철(廣安鍾哲)                       안종철(安鍾哲)       동 북아현정 1-123
동     송산창학(松山昌學)                       최창학(崔昌學)       동 죽첨정 1정목 1
동                                                      이병길(李丙吉)       동 옥인정 19
동                                                      유억겸(兪億兼)       동 가회정 9
동                                                      현상윤(玄相允)       동 계동정 1 중앙중학교
동                                                      방응모(方應謨)       동 죽첨정 3정목 4
동                                                      최두선(崔斗善)       동 성북정 177-30
동    월성종만(月城鍾萬)                        이종만(李鍾萬)       동 청운정 108-5
동    구가자옥(具家滋玉)                        구자옥(具滋玉)       동 청운정 278-3
동                                                      신태악(辛泰嶽)       동 무교정 89
동    금정갑순(金井甲淳)김갑순(金甲淳)동 광화문통 212
동                                                      이규원(李圭元)       동 중림정 155
동                                                      장덕수(張德秀)       동 제기정 149-4
동    정등은섭(丁藤殷燮)                        정은섭(丁殷燮)       강원도 천천읍
동    금전기수(金田基秀)                        김기수(金基秀)       황해도 해주읍 남욱정 309
동    목원광정(牧原廣定)                        이명구(李明求)       충북 청주읍
동    금택경차(金澤慶次)                                                   충남 대전부 대흥정 289
동    금전영무(金田英武)                        김영무(金英武)       전북 순창군 순창면
동                                                      현준호(玄俊鎬)       전남 광주부 호남정 66
동    장원직상(張元稷相)                        장직상(張稷相)       경북 대구부 남산정 47
동                                                      김병규(金秉圭)       경남 동래군 읍*정
동          안성기(安城基)                        이기찬(李基燦)       평남 평양부 수옥정 335-45
동                                                      고일청(高一淸)       평북 의주군 의주읍
동                                                      김명학(金明學)       함남 항흥부 군영통 1-76
동 장간헌사랑(張間憲四郞)                     장헌근(張憲根)       함북 나남초뢰정 72
감사  박택상준(朴澤相駿)                       박상준(朴相駿)       경성부 혜화정 10-7

동                                                      손영목(孫永穆)       동 혜화정 15
동           금전명(金田明)                       김명준(金明濬)       동 명륜정 1정목 36-17
동     금원방광(金原邦光)                       김동훈(金東勳)       동 사직정 185
동                                                      김성수(金性洙)       동 계동정 132
평의원                                                임흥순(任興淳)       동 신당정 60
동     팔번창성(八幡昌成)                       노창성(盧昌成)       동 계동정
동                                                      이창섭(李昌燮)       동 명륜정 4정목 127-2
동     금본동진(金本東進)                       김동진(金東進)       동 신당정 366
동                                                      서춘(徐椿)             동 서린정 100-2
동                                                      함상훈(咸尙勳)       동 가회정 1-33
동    금정보헌(金井保憲)                        김승복(金昇福)       동 명륜정 4정목 10
동          옥강면(玉岡勉)                        장면(張勉)             동 명륜정 1정목 36-1
동                                                      김주익(金周益)       동 북아현정 1
동    복산용탁(福山龍鐸)                       오용탁(吳龍鐸)        동 신암정 499-22
동          천곡정(天谷正)                       조기간(趙基栞)        동 명륜정 2정목 124


동                                                      유만겸(兪萬兼)       동 *동정 107
동                                                      김태석(金泰錫)       동 조선광업진흥주식회사
동                                                      최규동(崔奎東)       동 와룡정 45
동                                                      이병규(李炳奎)       동 혜화정 15
동                                                      민석현(閔奭鉉)       동 관훈정 4
동                                                      장기식(張驥植)       동 신당정 366
동                                                      허헌(許憲)             동 중학정 41-1
동          이협(李協)                             이상협(李相協)        동 숭인정 72
동   덕산고강(德山高康)                        김명하(金明夏)        동 낙원정 57-1
동                                                     안인식(安寅植)        동 명륜정 3정목 4
동                                                     유광열(柳光烈)        동 내수정 70-97
동   목산헌구(牧山軒求)                       이헌구(李軒求)         동 혜화정 1 보성중학교
동   임천동식(林川東植)                       조동식(趙東植)         동 화룡정 15
동   오촌승우(梧村升雨)                       이승우(李升雨)         동 *송정 46
동                                                    소완규(蘇完奎)         동 수은정 162-1
동                                                    장우식(張友植)         동 필운정 283
동                                                    김광수(金光洙)         동 명륜정 1정목 38-5
동                                                    오긍선(吳兢善)         동 죽첨정 2정목 58
동       풍촌유(豊村裕)                         이종회(李鍾會)         동 사직정 311
동                                                    박창서(朴彰緖)         동 가회정 79
동   야촌홍원(野村弘遠)                      손홍원(孫弘遠)          동 삼각정 105
동   양원주삼(梁原柱三)                      양주삼(梁柱三)          동 필운정 285
동   대지용장(大池龍藏)                      장석원(張錫元)          동 명륜정 1정목 95
동                                                   한익교(韓翼敎)          동 사간정 109
동   대산광설(大山光卨)                      서광설(徐光卨)          동 적선정
동                                                   박창훈(朴昌薰)          동 낙원정 135
동                                                   정구충(鄭求忠)          동 종로 3정목 16
동                                                   이준열(李駿烈)          동 견지정 111
동   덕천인과(德川仁果)                      정인과(鄭仁果)          동 홍파정 15
동   천성활란(天城活蘭)                      김활란(金活蘭)          동 대현정 산 1 이화여자전문학교
동   화곡춘수(禾谷春洙)                      정춘수(鄭春洙)          동 냉천정 31
동                                                   박용운(朴龍雲)          동 혜화정 74-30
동   방촌향도(芳村香道)                      박영희(朴英熙)          동 천연정 69
동                                                   조대하(趙大河)          동 명륜정 1정목 312-99
동                                                   정현모(鄭顯模)          동 안암정 181-14
동   이동치영(伊東致暎)                      윤치영(尹致暎)          동 안국정 104
동                                                   이용설(李容卨)          동 견지정 118
동                                                   신용욱(愼鏞頊)          동 청운정 52-21
동   송원승빈(松原勝彬)                      박승빈(朴勝彬)          동 관훈정 197-10
동   영하인덕(永河仁德)                      박인덕(朴仁德)          동 사직정 262-23
동                                                   임명재(任明宰)          동 안국정 163
동   백천기호(白川基昊)                      백기호(白基昊)          동 서린정 111 백내과의원
동                                                   김성진(金晟鎭)          동 서린정 133
동                                                   양재하(梁在厦)          동 부암정 163

동   안전진웅(安田辰雄)                      안종화(安鍾和)          동 옥인정 90-9
동                                                   현제명(玄濟明)          동 연희전문학교
동  궁촌숙종(宮村淑鍾)                       이숙종(李淑鍾)          동 견지정 74-1 성신가정여학교
동                                                   황신덕(黃信德)           동 죽첨정 1정목 41(경성가정여숙)
동                                                   배상명(裵祥明)           동 사직정 311-10 상명실천여학교
동                                                   모윤숙(毛允淑)           동 안암정 861-25
동                                                   최정희(崔貞熙)           동 신당정 304-151
동                                                   정운천(鄭雲川)           동 한성은행 본점
동                                                   김성권(金星權)           동 명륜정 2정목 8
동                                                   성원경(成元慶)           동 혜화정 20
동                                                   박희도(朴熙道)           동 신설정 178
동  학천완(鶴川浣)                             박완(朴完)                 동 경운정 88
동  청산각종(靑山覺鍾)                       이각종(李覺鍾)           동 중학정 1 대동민우회
동  희다의(喜多毅)                             박준영(朴駿榮)           동 신교정 정학회
동                                                   이극로(李克魯)           동 화종정 1119 조선어학회
동                                                   김기덕(金基德)           동 죽첨정 3정목 3
동                                                   이종은(李鍾殷)           동 동양척식주식회사
동  송강세종(松岡世宗)                       박기돈(朴基敦)           강원도 강릉읍 금정
동  이원한복(李原漢復)                       이한복(李漢復)           춘천읍 본정 2정목(매일신보 지국)
동  발산병덕(鉢山丙德)                       민병덕(閔丙德)           황해도 재령군 재령면 신대리
동                                                   김홍량(金鴻亮)            동 *악읍
동                                                   김상은(金相殷)            동 해주부
동                                                   이중갑(李重甲)            충북 청주급 본정 1정목 130
동                                                   민영은(閔泳殷)            동 청주읍
동                                                   김원근(金元根)            동 청주읍 본정
동  강본종덕(江本鍾悳)                      이종덕(李鍾悳)             충남 예산군 읍내
동  김산경(金山敬)                            김창수(金昌洙)             동 대전부 대동정 207
동  말영강희(末永岡熙)                      조강희(趙岡熙)             동 대전부(매일신보 지국)
동                                                  양상경(梁相卿)             전북 전주부 청수정 213
동  덕산승열(德山昇烈)                      최승열(崔昇烈)             동 전주부 대화정
동  장전시선(長田是善)                      장병선(張炳善)             동 전주부 대정정 2정목
동                                                  문재철(文在喆)             전남 광주부
동                                                  송화식(宋和植)             동 광주부 명치정
동                                                  김신석(金信錫)             동 광주부 호남정 75
동  덕산남진(德山南鎭)                      차남진(車南鎭)             동 목포부 북교동 184
동                                                  서상일(徐相日)             경북 대구부 신정 5-4
동  신옥(申鈺)                                  신현구(申鉉求)             동 대구부 봉산정 23
동  대봉병조(大峯丙朝)                      서병조(徐丙朝)             동 대구부 명치정 2정목 129
동                                                  김동준(金東準)              경남 부산부 본정
동                                                  김장태(金璋泰)              동 부산부 수정정
동                                                  이면재(李冕載)              동 부산부 초량동
동                                                  김건영(金健永)              평남 평양부 욱정 11
동  좌천필근(佐川弼近)                      채필근(蔡弼近)              동 평양부 동정 17-18
동                                                  최정묵(崔鼎黙)              동 평양부 벽암리
동  평거희적(平居熙迪)                      이희적(李熙迪)              평북 신의주부
동  강이황(岡利晃)                            강이황(姜利璜)              동 신의주부 진사정 2정목 4-4
동  안천영찬(安川泳贊)                      이영찬(李泳贊)              동 선천군 읍내 본정 299
동                                                  한림(韓林)                    함남 함흥부 군영통
동  덕포의고(德浦義高)                     조영희(趙永熙)               동 북청군 읍내
동                                                  남백우(南百祐)              동 원산부 남산동 109
동  고산호웅(高山虎雄)                     이창인(李昌仁)               함북 청진부 신암동
동  금산소능(金山韶能)                     김정석(金定錫)               동 나남 본정 84
동                                                 윤석필(尹錫必)               동 청진부 포항동


<출전: '朝鮮臨戰報國團槪要',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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