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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9 (9) -주요 친일단체(1937~1945)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7.05.03|조회수300 목록 댓글 0

2) 임전국책협력회의 동정에 관한 건
경고비 제2484호
1941년 9월 3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임전대책협력회의 동정에 관한 건
(9월 2일 전화 보고에 대해서)


임전대책협력회 및 흥아보국단의 합류문제에 관해 지난 9월 2일 국민총력조선연맹 가와키시(川岸)사무국 총장의 알선으로 간담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상황은 다음과 같이 특이한 점이 없이 합류를 결정하였기에 이를 보고(통보 ‘달’)한다.


기(記)


9월 2일 오후 3시 30분 국민총력조선연맹 사무국 회의실에 연맹측에서 가와키시 사무국 총장·도리가와(烏川) 총무부장 외 1명, 총독부측에서 후루카와(古川) 보안과장, 임전대책협력회에서 최린(崔麟),신흥우(申興雨), 김사연(金思演) 외 2명이 모였다. 가와키시 사무국 총장은 흥아보국단의 활동과 임전대책협력회의 행동내용은 대개 동일한 애국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양 단체가 대립하는 것은 장래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음으로 이번 기회에 협력 활동하기 위해 합류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알선하였다.

이에 임전국책협력회 대표자 중에는 약간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이를 양해하고 출석자일동의 찬성으로 양 단체의 합류를 결정하고 오후 4시 30분에 산회하였다.
또한 본건에 관해 흥아보국단도 이미 동의한 상태이고, 양 단체의 위원인 김사연의 제안으로 국민총력연맹에서 합류를 알선한 노고를 치하하였다.


<출전: 「臨戰國策協力會ノ動靜ニ關スル件(京高秘 第2484號)」,1941년 9월 3일, '思想ニ關スル情報綴'(13)>


3) 조선임전보국단의 채권소화운동에 관한 건
경고비 제2553호
1941년 9월 9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조선임전보국단의 채권소화운동에 관한 건


요지


조선임전보국단에서는 위원회 결정에 의거하여 9월 7일 애국특별채권의 매출운동을 실시하였다.

당일 가산린(佳山麟, 최린)과 이동치호(伊東致昊, 윤치호) 외 69명이 출동하여 애국특별채권 8천매(8천원)를 매각하고 무사히 끝마쳤다.
조선임전보국단에서는 지난번 위원회 결의에 따라 결정된 애국특별채권 매출운동을 9월 7일(일요일)관하 경성부 주요 도로 11곳에서 실시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무사히 끝마쳤기에 이를 보고(통보 ‘달’)한다.


기(記)


9월 7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별지에 의거하여 경성부 내의 주요 도로 11개소에서 애국특별채권 가두매출을 실시하였다. 사전에 관계책임자를 당 경찰부에 초치하여
1. 교통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2. 강제 매출을 하지 않을 것
3. 종사 인원은 1곳에 7명 이내로 할 것
4. 소관 경찰서에 사전에 신고할 것
등 본 운동 실시에 대한 주의를 주었다. 종사자는 모두 반도인 상층부에 속하는 실업가, 종교가, 교육가, 기타 유산지도계급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주의를 엄수하고 자진해서 가두에 나서 행인에게 채권의 구입은 애국심의 발로라며 장려하고 모두 별지와 같이 예정 수 전부를 매각하는 좋은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그동안 본 운동에 대한 방해 내지 비방적 언동을 일삼는 등의 사고가 없이 끝마쳤다.

특히 경성방적 전무취체역 최두선(崔斗善)은 매출운동 담임자로서 선정되었지만,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가하고 황금정에 배속하여 종사하였다.


대별(隊別) 배포채권 수 매각 수 비고


종로대 1,500 1,500 잔부(殘部) 없음
황금정대 500 500 잔부(殘部) 없음
본정대 1,000 1,000 잔부(殘部) 없음
남대문대 500 500 잔부(殘部) 없음
경성역대 1,000 1,000 잔부(殘部) 없음
서대문대 500 500 잔부(殘部) 없음
광화문대 500 500 잔부(殘部) 없음
종로4정목대 500 500 잔부(殘部) 없음
동대문대 500 500 잔부(殘部) 없음
청량리정 500 500 잔부(殘部) 없음
명치정 1,000 1,000 잔부(殘部) 없음
계 8,000 8,000 잔부(殘部) 없음


채권소화운동 실시계획서


1. 매출일시 : 9월 7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2. 매출장소 및 종사자(‘○’은 연락원)


(1) 종로대(화신 앞)
이동치호(伊東致昊, 윤치호), 한상룡(韓相龍), 가산린(佳山麟, 최린), 방응모(方應模), 향산광랑(香山光郞, 이광수), 이용신(李容愼), ○김동환(金東煥), 박인덕(朴仁德)
(2) 황금정대(일본생명 앞)
고원훈(高元勳), 이종린(李鍾麟), 박창서(朴彰緖), ○김택용(金澤勇)
(3) 본정대(시노자키[篠崎]상점 앞)
이진호(李軫鎬), 김시권(金時權), 김연수(金䄵洙), 김승복(金昇福), 신용욱(愼鏞頊), ○신태악(辛泰嶽), 최긍희(崔亘熙)
(4) 남대문대(정문 앞)
오긍선(吳兢善), 원덕상(元悳常), 김갑순(金甲淳), ○조병상(曺秉相), 이각종(李覺鍾), 이용만(李容萬)
(5) 경성정거장대(역 앞)
정교원(鄭僑源), 이돈화(李敦化), 김사연(金思演), 박기효(朴基孝), ○손홍원(孫弘遠), 송금선(宋今璇)
(6) 서대문대(우편국 앞)
신흥우(申興雨), 노창성(盧昌成), 구자옥(具滋玉), 소완규(蘇完奎), 주요한(朱耀翰), 고황경(高凰京)
(7) 광화문대(정류소 북측 공지)
박상준(朴相駿), 민규식(閔奎植), 금천성(金川聖), 양주삼(梁柱三), 유억겸(兪億兼), 김성진(金晟鎭), 김동진(金東進), ○박영희(朴英熙)
(8) 종로4정목대(동일은행 앞)
한규복(韓圭復), 조인섭(趙寅燮), 이극로(李克魯), ○오용탁(吳龍鐸), 조사하(趙士河)
(9) 동대문대(정문 앞)
최원섭(崔元燮), 윤익선(尹益善), 윤치영(尹致映), 김복일(金福一), 이정재(李定宰)
(10) 청량리대(역 앞)
정광조(鄭廣朝), 원익상(元翊常), 정인과(鄭仁果), ○조기간(趙基栞), 홍세뢰(洪世雷), 성의경(成義慶)
(11) 명치정대(명치점 앞)
김명준(金明濬), 최창학(崔昌學), 이종회(李鍾會), 이숙종(李淑鍾), ○이창섭(李昌燮)
연락본부(화신백화점 안)
부원 : 이규재(李奎載), 이성환(李晟煥)


<출전: 「朝鮮臨戰報國團ノ債券消化運動ニ關スル件(京高秘 第2553號)」,1941년 9월 9일, '思想ニ關スル情報綴'(14)>

4) 조선임전보국단의 동정에 관한 건


4-1)
경고비 제2569호의 5
1941년 9월 26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조선임전보국단의 동정에 관한 건
(9월 20일자 경고비 제2569호에 대해)


수제(首題)의 건에 관해서는 이미 보고한 바가 있다. 지난 9월 22일 및 24일 경성부 종로 2정목 소재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제3회 및 제4회 상무위원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보 ‘달’)한다.
더불어 당분간 짝수일마다 오전 9시부터 위원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지만, 가와카시(川岸) 연맹사무국 총장이 도쿄에 가서 부재중인바, 조선에 돌아올 때까지 개최를 보류하기로 하였다.


기(記)


제3회 상무위원회
별지 보고에 의함(제1호)
제4회 상무위원회
별지 보고에 의함(제2호)
<별지 제1호>


제3회 상무위원회
■ 일시 : 1941년 9월 22일 오전 9시
■ 출석위원 : 고원훈(高元勳), 금천성(金川聖), 민규식(閔奎植), 김사용(金思溶), 박기효(朴基孝), 김동환(金東煥), 신흥우(申興雨), 이성환(李晟煥)
■ 참석인 : 정교원(鄭僑源)

지방좌담회 개최안(보류된 것)
지명 일시 본단으로부터의 출석자 씨명
경성 10월 4일 윤치호, 한상용, 김연수, 민규식, 박흥식, 고원훈, 최린
인천 10월 7일 위 가운데 3명
개성 10울 8일 위와 같음
■ 토의사항
1. 취지 및 강령규약 통과의 건
기초위원회에서 판정한 취지 및 강령규약을 낭독하였다. 이에 대해 위원 가운데 규약 제4조와 제20조 및 사업요강을 삭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다수의 찬성으로 원안대로 통과하였다.
2. 짝수일 오전 9시 위원회를 10시로 변경한다.


<별지 제2호>


제4회 상무위원회
■ 일시 : 1941년 9월 24일 오전 10시
■ 출석위원 : 윤치호(尹致昊), 고원훈(高元勳), 신흥우(申興雨), 민규식(閔奎植), 김사연(金思演), 박기효(朴基孝), 이용신(李容愼), 이성환(李晟煥)
■ 토의사항
1. 지방좌담회 개최의 건
별지(제3호)안에 의거하여 관계자 일동을 9월 25일 오후 6시 조선호텔에 초대하여 만찬회를 열고 그자리에서 최후로 결정할 것.
2. 발기인 선정위원회 개최의 건
9월 26일 오후 1시부터 본 단 사무실에서 개최할 것(보류할 것)
3. 전임(專任)위원 해임의 건
전임위원 이성환은 일신상의 이유로 전임위원을 그만두고 이후 평위원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더욱이 그는 참고 의견으로서 규약기초위원회 석상과 상무위원회 석상에서 수회에 걸쳐 주장한 규약 제4조와 제20조 및 사업요항을 삭제하지 않는 한, 흥아보국단 시절 그대로 단지 돈만을 모으는 것이 주안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필히 삭제하여 어디까지나 순수한 민간자발적인애국운동의 특질과 그 존재를 명시함으로써 양 단체의 합동 당시의 정신을 충분히 살릴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대해 신흥우는 이러한 주지에 찬성의견을 표명하고, 방청석에 있던 한승린(韓承麟)은 경무국의 의향을 전달하였다. 이에 일동은 본 운동은 연맹과 총독부 당국과의 사이에 지도방침이 일치할 때까지 수일간 모든 행사를 중지해야 한다며 전임위원 사임의 건도 보류하게 되었다.


<별지 제3호>

대전 9월 29일 한규복, 민규식, 금천성(金川聖)
대구 9월 30일 위와 같음
부산 10월 2일 위와 같음
전주 9월 30일 고원훈, 김연수, 박기효


<출전: 「朝鮮臨戰報國團ノ動靜ニ關スル件(京高秘 第2569號ノ5)」,1941년 9월 26일, '思想ニ關スル情報綴'(14)>


4-2)
경고비 제2569호의 6
1941년 10월 8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조선임전보국단의 동정에 관한 건
(9월 26일자 본 호에 대해)


수제(首題)의 건에 관해서는 이미 보고한 바와 같이 위원회를 짝수일마다 개최하려는 예정을 당분간 중지하고 협의사항도 보류하였다. 지난 9월 30일과 10월 2일, 4일, 6일 4회에 걸쳐 관하 경성부 종로 2정목 소재 중앙기독교청년회 안의 사무소와 다른 곳에서 상무위원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상황을 다음
과 같이 보고(통보 ‘달’)한다.


기(記)


제5회 상무위원회 회의록
■ 일시 : 9월 30일 오전 10시
■ 장소 : 국민총력조선연맹 사무국
■ 출석위원 : 이동치호(伊東致昊, 윤치호), 가산린(佳山麟, 최린), 고원훈, 박흥식, 고령흥우(高靈興雨,신흥우), 김사연, 박기효, 백산청수(白山靑樹), 이성환
■ 참석인 : 가와키시 사무총장, 후루카와(古川) 보안과장, 도리카와(鳥川) 총무부장, 노부하라(信原)총력과장
■ 토의사항
강령규약 개정의 건
1. 강령에 다음 1항을 추가한다.
우리는 국방사상의 보급을 도모하고 일조 유사시에는 의용방위의 결실을 올린다.
2. 규약초안 중에서 다음과 같이 정정한다.
제3조 본 단은 전시체제 하에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취지를 받들어 다음 강령을 실천함을 목적으로한다.
제4조 본 단은 앞 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 사업을 실시한다.
1) 국민개로실천 운동
2) 국민생활쇄신 운동
3) 국채의 소화, 저축의 장려, 물자의 공출운동
4) 근로보국도장의 설치
5) 계(禊)조장의 설치
6) 지도자 단기 이동강좌의 개최
7) 기타 필요한 애국운동
제20조 삭제

제6회 상무위원회 회의록
■ 일시 : 10월 2일 오전 10시
■ 장소 : 본 단 사무국
■ 출석위원 : 이동치호(伊東致昊, 윤치호), 가산린(佳山麟, 최린), 고원훈, 민규식, 박흥식, 박기효, 이용신, 고령흥우(高靈興雨, 신흥우), 금천성(金川聖, 이성근), 백산청수(白山靑樹, 김동환), 이성환
■ 토의사항
1. 발단식 일정 변경의 건
10월 22일 오후 3시 부민관 강당
1. 사무원 채용의 건
장세강(張世綱)을 서기로 임명한다.


제7회 상무위원회 회의록
■ 일시 : 10월 4일 오전 10시
■ 장소 : 본 단 사무국
■ 출석위원 : 이동치호(伊東致昊, 윤치호), 가산린(佳山麟, 최린), 고원훈, 박기효, 금천성(金川聖, 이성근), 이용식, 백산청수(白山靑樹, 김동환), 이성환
■ 토의사항
1. 지방간담회 개최의 건
개최장소 : 각 도청 소재지(경기도 제외)
일정 : 10월 8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인원 : 각 도 2명씩 본부에서 파견하여 지방 유력자를 만나 간담할 것
비용 : 일당 1명당 1일 2원으로 한다. 단 인원의 할당은 사무당국에서 기안할 것
2. 발기인 선정위원회 소집의 건
10월 7일 오후 2시부터 본 단 사무소에서 개최할 것
3. 상임위원 증선(增選)의 건
상임위원으로 신태악(辛泰嶽)을 증원한다. 단 전체위원회의 형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공식으로 한다.
4. 보류안건 처리의 건
제안을 철회한다(전무위원 사임의 건).


제8회 상무위원회 회의록
■ 일시 : 10월 6일 오전 10시
■ 장소 : 본 단 사무국
■ 출석위원 : 고원훈, 금천성(金川聖), 신흥우(高靈興雨), 박흥식, 김사연, 박기효, 이성환
■ 토의사항
1. 지방간담회 출장원 선정의 건
춘천 10월 11일 오전 출발 최린, 김사연
대전, 청주 10월 10일 오전 출발 박기효, 이성환
해주 10월 8일 오전 출발 윤치호, 이성환
평양 10월 12일 오후 출발 고원훈, 박흥식
신의주 10월 10일 오후 출발 금천성(金川聖, 이성근), 주요한
함흥, 청진 미정 한상룡, 신태악
대구, 부산 미정 김시권, 김동환
전주, 광주 미정 김연수, 이광수
1. 발기인 선정발표 권한에 관한 건
소위원회의 선정만으로 상무위원회에서의 토의를 생략하고 결정 발표할 것
1. 상무위원회 예회(例會)의 건
지금까지의 짝수일 예회를 중지하고 필요할 때마다 소집할 것


<출전: 「朝鮮臨戰報國團ノ動靜ニ關スル件(京高秘 第2569號ノ6)」,1941년 10월 8일, '思想ニ關スル情報綴'(14)>

5) 조선임전보국단 결성식 거행에 관한 건
경고비(京高秘) 제2569호의 7
1941년 10월 24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조선임전보국단 결성식 거행에 관한 건
(10월 20일자 본 호에 대해)


경성부 종로 2정목 중앙기독교청년회관 내에 사무소를 둔 조선임전보국단은 이미 보고하 바와 같이 지난 10월 22일 오후 4시 20분부터 관하 경성 부민관에서 준비위원 백산청수(白山靑樹, 김동환)의 사회로 결단식을 거행했다.

이어서 간담회를 겸한 만찬회를 무사히 마치고 오후 8시에 산회하였다.

집회자는 경성부 거주 관계자 및 전조선 각 도의 발기인 대표 503명이다. 이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통보‘달’)한다.
더불어 10월 23일은 오전 8시 30분에는 조선신궁을 참배하고, 오후 1시부터 본 단 사무소에서 제1회임원회를 개최하였다.


기(記)


1. 김동환의 개회 선언 이후 일동은 국민의례를 한 다음 준비위원 대리로 최린이 간단한 인사말을하였다.

임시좌장으로 고원훈을 추천하고 장덕수(張德秀)의 긴급 동의(動議)로 황군장병의 노고에 대한 감사전문의 발송을 제의하자 일동은 이의 없이 결정하였다.
1. 이성환이 흥아봉국단과 임전대책협력회341)의 합류에 이른 경과를 보고하자, 타 도에서 온 발기인 대표 가운데에는 임전보국단은 국민총력연맹의 운동과 궤가 하나인 동종 이명의 단체를 결성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하고, 혹자는 본 단의 장래 운동방침을 질문하는 등 지방대표자와 중앙간부 사이의 의지가 아직 충분히 소통되지 않음을 드러내었다.
1. 취지강령 결정의 건
신태악(辛泰嶽)이 취지 및 강령(이미 보고)을 낭독하고 일동에게 찬부를 물은 바, 만장일치로 이의 없이 원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341) 원문에는 임전대책협의회로 되어 있음. 임전대책협력회의 오류.

1. 규약 결정의 건
규약은 사전에 단원에게 배포되었음으로 낭독을 생략하고 일괄 상정하여 만장일치로 이의 없이 원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1. 임원 전형의 건
좌장이 전형방법을 묻고 좌장의 지명에 의한 전형위원 13명을 선정 발표하여 동의를 제출하자 이에 찬성하였다.
좌장이 금천성(金川聖)342), 양상경(梁相卿), 민규식, 서원종린(瑞原鍾麟)343), 이영찬(李泳贊), 원덕상(元村肇), 이명구(李明求), 박흥식, 장직상(張稷相), 신태악, 김명학(金明學), 신흥우, 이기찬(李基燦) 등13명을 지명한 바, 동 위원은 별실에서 협의 선거의 결과 별지와 같이 당선하였다.


1. 단장 인사 및 기타 축사


임원 선거의 결과 단장으로 당선된 최린으로부터 간단한 인사말이 있은 다음, 미나미(南) 국민총력연맹 총재의 고사(告辭, 가와키시 중장이 대독), 조선군사령관(구라시게[倉茂] 보도부장 대독), 경기도지사(후루이치[古市] 내무부장 대독), 경성부윤(대독) 등으로부터 각각 축사가 있었다.

이후 김사연(金思演)의 선창으로 일동은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하고, 윤치호의 발성(發聲)으로 성수(聖壽)만세를 봉창한 다음 오후 5시 35분에 끝마쳤다.
이어서 부민관 중강당에서 만찬을 겸한 간담회를 개최하여 각 도 대표로부터 의견과 요망사항을 들었다.

모두 이구동음으로 앞으로의 방침과 본 단과 국민총력연맹과의 관계, 혹은 도군별 지부설치 등을 언급하였지만 앞으로 충분히 연구하기로 하고 오후 8시에 무사히 산회하였다.

다음날 10월 23일에는 오전 8시 30분에 조선신궁을 참배하고, 오후 1시부터는 본 단 사무소에서 제1회 임원회를 개최하였다.


<별지>


임원 씨명


고문 : 기시카와 분사부로(川岸文三郞), 이가진호(李家軫鎬)344), 박중양(朴重陽), 한상룡(韓相龍)
단장 : 가산린(佳山麟)345)
부단장 : 고원훈(高元勳)
이사 : 김연수(金䄵洙), 민규식(閔奎植), 박흥식(朴興植), 김사연(金思演), 박기효(朴基孝), 이용신(李容愼), 이성환(李晟煥), 김동환(白山靑樹), 원덕상(元村肇), 최창학(崔昌學), 한희복(韓喜復), 방의석(方義錫), 하산무(夏山茂)346), 이병길(李丙吉), 유억겸(兪億兼), 서원종린(瑞原鍾麟, 이종린), 이종욱(李鍾郁), 현상윤(玄相允), 방응모(方應模), 최두선(崔斗善), 이종만(李鍾萬), 구자옥(具滋玉), 신태악(辛泰嶽), 김시권(金時權), 김갑순(金甲淳), 이규원(李圭元), 장덕수(張德秀),


342) 이성근.
343) 이종린.
344) 이진호.
345) 최린.
346) 조병상.

정은섭(丁殷燮,) 김기수(金基秀), 이명구(李明求), 금택경차(金澤慶次), 금전영옥(金田英玉), 현준호(玄俊鎬), 장직상(張稷相), 김병희(金秉喜), 이기찬(李基燦), 고일청(高一淸), 김명학(金明學), 장간헌사랑(張間憲四郞),347) 금천성(金川聖),348) 오천교원(烏川僑源),349) 안종철(安鍾哲)
감사 : 박택상준(朴澤相駿),350) 김성수(金性洙), 손영목(孫永穆), 김동훈(金東勳), 김명준(金田明)
평의원 : 임흥순(任興淳), 노창성(盧昌成), 이정섭(李晶燮), 금본동진(金本東進),351) 서춘(徐椿), 함상훈(咸尙勳), 김승복(金昇福), 장면(張勉), 김주익(金周益), 오용탁(吳龍鐸), 조기간(趙基栞),유만겸(兪萬兼), 이종은(李鍾殷), 김태석(金泰錫), 최규동(崔奎東), 이병규(李秉奎), 민석현(閔奭鉉), 장기식(張驥植),352) 허헌(許憲), 이상협(李相協), 김명하(金明夏), 안인식(安寅植),유광렬(柳光烈), 이헌구(李軒求), 조동식(趙東植), 오촌승우(梧村升雨, 이승우), 소완규(蘇完奎), 옥산우언(玉山友彦),353) 김광수(金光洙), 오긍선(吳兢善), 이종회(李鍾會), 박창서(朴彰緖), 손홍원(孫弘遠), 양주삼(梁原柱三), 장석원(張錫元), 한익교(韓翼敎), 서광설(徐光卨), 박상훈(朴尙薰), 정구충(鄭求忠), 이준렬(李駿烈), 덕천인과(德川仁果),354) 김활란(金活蘭), 정춘수(鄭春洙), 박용운(朴龍雲), 박영희(朴英熙), 조대하(趙大河), 정현모(鄭顯模), 윤치영(尹致映), 이용설(李容卨), 신용욱(愼鏞頊), 박승빈(朴勝彬), 박인덕(朴仁德), 임명재(任明宰), 백기호(白基昊), 김성진(金晟鎭), 양재하(梁在廈), 안종화(安鍾和), 현제명(玄濟明), 이숙종(李淑鍾), 황신덕(黃信德), 배상명(裵祥明), 모윤숙(毛允淑), 최정희(崔貞熙), 문재철(文在喆), 정운용(鄭雲用), 김성권(金星權), 성원경(成元慶), 박기돈(松岡世宗), 이한복(李原漢復), 김홍량(金鴻亮), 민병덕(閔丙德), 김상은(金相殷,) 이중갑(李重甲), 민영은(閔泳殷), 김원근(金元根),이종덕(李鍾悳), 금산경(金山敬, 김창수)355), 조강희(末永岡熙), 양상경(梁相卿), 최승렬(崔昇烈), 장병선(張炳善), 송화식(宋和植), 김신석(金信錫), 차남진(車南鎭), 김동준(金東準), 김장태(金璋泰), 이면재(李冕載), 김동원(金東元), 채필근(蔡弼近), 최정묵(崔鼎黙), 이희적(李熙迪), 강리황(姜利璜), 이영찬(李泳贊), 한림(韓林), 조영희(趙永熙), 남백우(南百祐), 이창인
(李昌仁), 김정석(金山韶能), 윤석필(尹錫弼), 서상일(徐相日), 서병조(徐丙朝), 신옥(申鈺),박완(朴浣), 박희도(朴熙道), 이각종(李覺鍾), 김기덕(金基德), 희다의(喜多毅), 이극로(李克魯)


<출전: 「朝鮮臨戰報國團 結成式擧行ニ關スル件(京高秘 第2569號ノ7)」, 1941년 10월 24일,'思想ニ關スル情報綴'(14)>


347) 장헌근.
348) 이성근.
349) 정교원.
350) 박상준.
351) 김동진의 창씨명.
352) 원문에는 ‘張騏植’으로 표기되었으나 오기로 보아 수정.
353) 장우식(張友植)의 창씨명. 원문에는 ‘玉名友彦’으로 표기되었으나 오기로 보아 수정.
354) 정인과의 창씨명.
355) 김창수(金昌洙)의 창씨명.

6) 임전대책보국단의 활발한 실천운동


반도 2천 4백만 민중이 결연히 일어나 몸을 바쳐 초비상시국에 봉공해야하겠다는 뜻에서 반도인 측 각계 지도자의 자발적인 애국의 지정(至情)에 따라 지난 8월 중에 탄생된 흥아보국단과 임전대책협력회 두 단체는 그동안 각기 민중을 지도하여 임전체제를 확립하고자 힘써왔는데 양 단체가 각기 개성을 달리한다 할지라도 그 최고 목표는 오직 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자는 한 길뿐으로 반도 민중이 한덩어리로 좀 더 강력적인 애국운동을 전개해 가기 위해서는 단연히 합동을 해가지고 한 덩어리의 큰힘을 만들지 않아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지난 9월 3일 오후 천안(川岸) 조선연맹 총장의 알선으로 두단체의 대표자들이 연맹사무소에 모여 토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합동을 결단하여 새 이름으로 조선임전보국단이라고 정하게 되었다. 단체의 발전적 해소와 신 단체의 결성이며 장차 반도민중을 이끌어 애국의 지성을 실천해 나갈 구체적 사업 내용의 협의는 다음의 준비위원에게 일임했었다.


준비위원 : 이동치호(伊東致昊), 한상룡(韓相龍), 신태악(辛泰嶽), 고령흥우(高靈興雨), 김사연(金思演), 백산청수(白山靑樹), 서원종린(瑞原鍾麟), 민규식(閔奎植), 박흥식(朴興植)
그리하여 그 다음날 9월 4일 밤에는 벌써 그 활동이 활발하여 임전대책연설회가 부민관에 열리게 되어 정각도 되기 전 부민은 회장 앞 태평통(太平通) 거리에 장사진을 치고 입장을 다투게 되었는데 이날 밤의 연제와 연사는 다음과 같았다.
□ 극동의 결전과 오인의 각오 - 이동치호(伊東致昊)
□ 읍소(泣訴) - 가산린(佳山麟)
□ 승전의 길은 여기에 있다 - 영하인덕(永河仁德)
□ 동경(東京) 대판은 이렇다 - 신태악(辛泰嶽)
□ 태평양 풍운의 전망 - 고령흥우(高靈興雨)
□ 애국의 지성과 이 기회 - 안흥성환(安興晟煥)
□ 30년 전의 회고 - 서원종린(瑞原鍾麟)
이상 7씨의 사자후는 모두가 애국지성의 감명을 청중의 가슴 깊이 목 박았었다.
4일의 밤의 이 연설회의 뒤를 이어 7일(첫 공일)에는 ‘이론에서 실천으로!’라는 재 목표를 세우고 이동치호(伊東致昊), 가산린(佳山麟) 씨외 각계 각사 70여 명이 거리로 총동원을 하여 채권을 사라는 애국적 실천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70여 명은 경성시내 11군데 요소로 흩어져 각기 채권을 들고 나서서 ‘총후의 봉공은 채권으로부터!’라고 메가폰을 통하여 외치는가 하면 ‘나 한 장만 더 주세요!’하고 앞을 다투어 채권을 사는 등 과연 민중의 애국심에 반향은 커서 채권 소화 가두운동은 불과 한 시가 만에 80원 어치의 업적을내고 말았다.


<출전: 「臨戰對策報國團의 活潑한 實踐運動」, '朝光' 第7卷 第10號, 1941년 10월 136쪽>

7) 임전 애국자의 대사자후(大獅子吼)!! -임전보국의 대연설회 속기록


우리들의 향토 아시아는 과거 수백 년간을 두고 영미(英米)들 열강의 압제하에 착취와 침략을 받아왔다.

중국이 그리하였고, 인도(印度), 태국(泰國), 말레이반도(馬來半島) 모두가 그러하였다.

이에 우리제국은 백만의 황사(皇師)를 멀리 북으로는 소만국경(蘇滿國境)에서 남으로는 중원 400여 주(州)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佛印)에까지 파견하여 포악한 적성(敵性)세력을 구축(驅逐)하고 신질서에 위한 대동아를 건설하고자 성전을 시작한지 이미 5년! 아직도 남북의 풍운은 날이 갈수록 더 긴박하여 국민무장화의 임전체제를 요하는 중대 시국에 직면하였다. 이에 반도의 애국자군은 단연 궐기하여 민간 자발적뜻으로 임전대책협력을 결성하고 9월 4일 경성 부민관(府民館)에서 아래의 연제로 그 제1성을 발하였다.

이 역사적 연설의 속기록을 여기 수록하여 널리 세상에 공하는 바이노라. (사진설명, 좌는 최린(崔麟) 씨, 우는 채권파는 이진호(李珍鎬) 씨(우)와 신태악(辛泰嶽) 씨(중))
□ 개회사 「임전협력회결성에 즈음하여」김동환(金東煥)
□ 극동(極東)의 결전과 오인(吾人)의 각오 윤치호(尹致昊)
□ 읍소(泣訴) 최린(崔麟)
□ 태평양풍운의 전망 신흥우(申興雨)
□ 승전의 길은 여기에 있다 박인덕(朴仁德)
□ 동경(東京) 대판(大阪)은 이렇다 신태악(辛泰嶽)
□ 30년 전의 회상 이종린(李鍾麟)
□ 애국의 지성(至誠)과 이 기회 이성환(李晟煥)


임전보국단 결성에 즈음하여 개회사를 겸하여


김동환(金東煥)


오늘저녁 이 연설회장안에는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약 3,000명 관중이 꽉 들어찼고 또 이 회장 바깥에는 미처 들어오지 못해서 저리 광화문(光化門) 네거리로부터 덕수궁(德壽宮)담장 있는데 까지 열 겹, 스무 겹 진을 치고서 확성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군중이 2,000여 명이나 있으며 더구나 오늘저녁 연설은 모두 다 라디오의 중계방송을 통해서 전 조선 13도(道) 방방곡곡의 조선사람 사는 곳곳을 찾아 모두 다 흐르게 되어, 이와 같이 여러 10만 관중을 앞에 둔 오늘 저녁의 이 임전대책연설회는 유사(有史) 이래 처음이라 할 긴장과 엄숙한 가운데에 열려졌습니다.
이때에 민간에 흩어져 밤낮 우리나라 일본제국의 국가흥망을 심려하고 계시는 우국의 지사 여러분에게 고하고 싶은 것은 발을 맞추어서 조선 사람도 이때에 나라를 위한 철저한 각오와 준비를 가지자함이외다.

우리 모두가 일어서서 이 조선을 지키고 우리나라 일본과 극동을 철혈로서 지키자 함이외다.
그야 그동안 우리도 사변 이래 5개년 동안을 두고 성전(聖戰)에 참가하여 직접 간접으로 피도 흘리고
돈도 바치고 노력도 보태어 드렸지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 냉정히 생각해봅시다.
황군장병 11만 명이 죽었는데 조선 사람은 겨우 세 사람이 죽었고 국채소화의 힘도 일본의 어느 1현(縣)만도 같지 못하고 그밖에 무엇 무엇 모두 다 빈약하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외다.
대체로 우리가 이번 성전에 참가하는데 세 가지 단계를 밟아야 할 줄 압니다. 제1기는 사상전 즉 우리 2천 4백만 조선인이 다 황도정신을 파악한 일본국민이 되는 일로,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일부에 종래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깨끗이 청산하고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서 내선일체의 길에들어섭시다. 그런 뒤 제2기로써 우리는 우리가 가진 돈과 땀을 나라에 바칩시다. 돈으로 애국공채를 사고 전쟁에 필요한 놋그릇, 금(金), 동(銅), 쌀을 바칩시다.

또 땀, 즉 노력을 바칩시다.

국가에서는 지금지하자원의 개발, 양미증식(糧米增殖)을 위하여 국민의 노력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노력을 통하여 국책에 협력합시다.
이렇게 국민정신을 통일하고 그런 뒤 노력과 물자와 돈을 바치고 그러고 난 뒤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를 바치는 일이외다. 우리의 생명을 전장에 바쳐야 하겠습니다. 황군장사(皇軍將士) 모양으로총과 칼을 메고 우리도 전장에 나아가 우리나라 일본제국을 방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결전의 시기외다. 아시아(亞細亞)의 흥망을 결정하고 우리나라 일본의 만년국운을 결정하는 최후의 결전마당에 우리는 일신의 생명과 재산을 모두 나라에 바쳐 궐기(蹶起)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각오와 준비를 우리 모두가 가져 보자는 뜻으로 이제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力會)가 결성되어, 지금부터 전 조선에 새로운 애국운동을 일으키려고 하는 터이니 여러분 다 같이 뼈는 뼈대로돈은 돈대로 물자는 물자대로 한데 뭉쳐 나라에 바치는 이 일에 찬성하여 우리 뜻에 일어나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으로 개회사를 대신합니다.


강령


- 우리는 황국신민으로서 황도정신을 선양하고 사상통일을 기한다.
- 우리는 전시체제에 즉하고 국민생활의 쇄신을 기한다.
- 우리는 근로보국의 정신에 기해서 국민 개로(皆勞)의 실을 거두기를 기한다.
- 우리는 국가우선의 정신에 기해서 국채의 소화저축의 여행, 물자(勵行物資)의 공출생산의 확충에 매진하기를 기한다.
- 우리는 국방사상의 보급을 하는 동시에 일조유사지추(一朝有事之秋)에 의용방위(義勇防衛)의 실을 거두기를 기한다.


임전보국단 설립취지서


우리 제국은 현금 유사(有史)이래 가장 중대한 시국에 직면하고 있는 동시에 또한 가장 숭고 존엄한 동아공영권 확립의 성업완수의 도상에 있다.

이제 황국에 향생(享生)한 자는 누구를 불문하고 각자의 분(分)에 응(應)하여 그 성(誠)을 다하고 국운의 진전에 기여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은 물론이다.

이때를 당하여 우리 ‘반도’356) 민중은 과연 현재의 태세 그대로 나가도 좋을 런지 설령 우리는 특별지원병 외에 일반적으로 병역에 복무하는 명예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나 적성(赤誠)을 가지고 정신적 물질적 또는 노무(勞務)적으로 전력을 기울여 총후봉공(銃後奉公)에 한층 철저하여서 충렬한 장병의 분투에 대응하고 무한한 황은에 만의 하나라도 봉보(奉報)하는 방도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해서 반도가 물심 공히 병참기지됨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이 기회를 놓치고서는 재차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우리 하기한 자등(者等)이 유연히 일어나는 애국의 지정(至情)으로부터 감히 자췌(自揣)함이 없이 이에 국민운동의 강력한 하나의 기관으로서 ‘조선임전보국단’의 설립을 기도하고 널리 반도 2,400만의 제군에게 미충(微衷)357)을 호소하려는 소이이다.

우리의 취지를 찬성하고 우(憂)를 같이 하며 뜻을 함께하는 강호(江湖)의 제사(諸士)는 속히 내참(來參)하여 이 애국운동의 발전조성에 전부의 협력을 해주기를 요망하야 마지않는 바이다.


<출전: 「臨戰愛國者의 大獅子吼!!, 臨戰報國의 大演說會速記錄」,'三千里' 第13卷 第11號, 1941년 11월 1일, 14~17쪽>


8) 결성식 관계 기사


8-1)


애국 양 단체를 합동, 조선임전보국단을 결성, 흥아보국단과 임전대책협력회 발전적 해소


반도 2천 4백만 민중이 결연히 일어나서 한 몸을 바치고 비상시국에 봉공해야겠다는 반도인 측 각계지도자들의 자발적인 애국의지성에 따라 지난 8일에 흥아보국단과 임전대책협력회 등 두 단체의 탄생을 보게 되었고 이들 단체에서는 각기 적절한 계획을 세워 민중을 지도하여 임전체제를 확립하고자 힘써왔다.

그런데 이들의 최고 목표는 오직 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자는 한 길뿐이므로 두 잔체가 합동하여 좀 더 강력적인 애국운동을 일으켜 나가자는 계획이 진행되어 오는 등 3일 드디어 양 단체의합동이 실현되었다.(사진은 양 단체 합동협회 광경)
흥아보국단과 임전대책협력회의 합동은 천안(川岸) 조선연맹 총장의 호의로써 3일 오후 두 단체의 대표자들이 연맹 사무국에 모여서 정성껏 협의한 결과 만장일치로써 두 단체를 합병하야 새로이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을 결성하고 반도 민중의 힘찬 애국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날협의회는 이동치호(伊東致昊) 가산린(佳山麟) 한상룡(韓相龍) 서원종린(瑞原鍾麟) 씨를 비롯한 각 대표자며 연맹 중으로 천안 총장과 오천(烏川) 총무부장 등 10여 씨가 출석한 가운데서 오후 2시부터 부내 북미창정(北米倉町)의 연맹사무국 회의실에서 각 대표가 협의한 결과 ‘두 단체가 각기 다른 개성(個性)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반도 민중을 한 덩어리로 좀 더 효과적이요, 강력적인 애국운동을 일


356) 식민지 조선을 뜻함.
357) 변변치 못한 작은 성의라는 뜻.

으켜나가자면 당연히 합병한 다음 서로 힘을 합쳐 나가야 하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으므로 드디어만장일치로써 합병할 것을 결의하여 다시 한 번 국가에 지성봉공 할 것을 지도자들은 굳게 맹서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합병한 후에 새로이 탄생할 단체의 명칭은 그전 두 단체의 이름을 따가지고 조선임전보국단이라고 결정하였으며 두 단체의 발전적 해소와 신단체의 결성이며 장차 반도 민중을 이끌고 총력운동의 일익으로 애국의 지성을 실천해나갈 구체적 사업내용을 협의 결정할 준비위원으로는,
▲이동치호(伊東致昊) ▲한상룡(韓相龍) ▲김연수(金䄵洙) ▲고원훈(高元勳) ▲하산무(夏山茂) ▲가산린(佳山麟) ▲신태악(辛泰嶽) ▲신흥우(申興雨) ▲김사연(金思演) ▲백산청수(白山靑樹) ▲서원종린(瑞原鍾麟) ▲민규식(閔奎植) ▲박흥식(朴興植) 등의 13씨를 선정하고 모든 것을 이들에게 일임하기로되었다.

이렇게 되어 반도 민중의 적성을 배경으로 신 출발하는 새 단체의 역사적인 발회식도 멀지 않아 거행될 예정인데 지금까지에 두 단체에서 각기 계획을 세워 나오던 사업은 새 단체가 탄생하기까지에는 적당히 종전대로 처리할 터이며 지난 번 흥아보국 단체에서 각도 대표자를 모아놓고 협의한 일이 있으므로 이들에게는 곧 연락을 취하여 양해를 구하기로 하고 오후 5시경 산회하였다


자발적 적성에 감격, 국가의 경사 : 천안(川岸) 총장(總長) 담(談)


별안과 같이 두 단체가 합하여 한즉 강력적인 애국운동을 일으켜 나가기로 한데 대하여 천안(川岸)총장은 ‘반도 민중의 자발적인 애국지성에 감격할 뿐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도 청년을 훈련하자는 흥아보국단이나 노무(勞務)와 물자공출로 반도 민중의 정성스러운 실천운동을 전개하자는 임전대책협력회나 그 최고목표는 국가에 지성봉공하자는 한길뿐이었으므로 두 단체가 이렇게 합병하게 된 것은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각기 계획한 사업도 있는 터에 ‘□’을 위하야 ‘적은것’을 버리고 이 같이 협력하게 된 것은 자발적인 총후적성의 표현인지라 장래 기대 하는바 몹시 큰 동시에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장래 전선 애국반원이 이들의 외침에 호응하야 한 몸을바쳐 국가에 봉공할 것을 생각하면 실로 국가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연맹으로서도 전폭적으로 이에
협력할 방침이다.”


합동정신일치 : 임전대책협력회 가산린(佳山麟) 씨 담(談)


두 단체의 연합위원회에 참석한 가산린(佳山麟) 씨는 회의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국이 더욱더욱 긴박하여지고 있는 이때 우리 조선인들은 국가를 위하야 힘 있는 봉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2천 4백만의 공동의 심리일 것이다.

여기에 있어 흥아보국단이 생기고 임전대책협력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흥아 보국단은 그 단체로서의 개성이 있고 임전대책협력회로서의 개성이있어 각각 독특한 성질이 있으나 양방에 공통된 점이 많다.

이런 경우에 국가를 위한 애국운동은 분산하는 것보다 합체하여 좀 더 힘 있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합동 문제가 일어나 쌍방이 만장일치하여 합동이 성립된 것이다. 이 합동은 쌍방이 각각 백지로 환원한 것이 아니라 쌍방의 성질목적은 그대로 포함하여 합친 것이다. 합동정신은 일치되었으나, 사무적 문제 등 사업의 계획가튼 구체적 문제는 쌍방에서 선출한 위원회에서 협의하게 될 모양이다.


동일 목적에 매진 : 흥아보국단 이동치호(伊東致昊) 씨 담(談)


오늘 두 단체가 합동하야 한 목적을 향하야 힘 있게 나가게 된데 대하야 나는 충심으로 기뻐하는 바이다.

이로서 두 단체의 활동은 한층 더 기운차게 전개되어 2천 4백만 반도 민중에 총력발휘와 총후봉공에 박차를 가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흥아보국단의 사업은 준비위원회에서 맡아가지고 하기로 된 것이다.


<출전: 「愛國兩團體를 合同 朝鮮臨戰報國團을 結成- 興亞報國團과 臨戰對策協力會發展的 解消,自發的赤誠에 感激- 國家의 慶事(川岸總長談), 合同精神一致 臨戰對策協力會 佳山麟氏談, 同一目的에邁進- 興亞報國團 伊東致昊氏談」, '매일신보', 1941년 9월 4일>


8-2)


임전보국단의 결성식(사설)


1
조선임전보국단은 금일 광휘(光輝)있는 결성식을 거행한다. 회고하건대 지난 8일 □□을 □□하는 □□□□의 한 □□에 대응하기 위하여 반도인 의지가 결연히 일어나 각각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과 임전대책협력회를 □□하였고 다시 13일에 들어 이 두 단체가 합동하여 조선임전보국단을 □□한 이래 10월 초에는 준비위원 제씨가 □□ 각지에 □□하여 크게 □□차고 드디어 정식으로 결성식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오인(吾人)은 충심(衷心)으로부터 이 보국단의 □대한 □□을 □□하는 동시에 동□이 진실로반도 2천 4백만 민중을 총동원하여 □□하게 □□력을 □□시키기를 바라는 바이다.


2
중일전쟁을 완수하고 나아가 동아공영권을 확립하여 □□를 중외(中外)에 □□하는 것은 □□부동의□□이다.

이 □□의 실□은 □고의 □□이라.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를 될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 같은 □□의 국제□□을 한 묵과(黙過)할 수 없을 만큼 □□을 □하여 어느 때 돌□적□□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상□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여하한 □□라도 들이치고 초□□□□하려면 안으로 □내의 고도국방국가 체제를 급속히 □하여 어느 때라도 이에 □□□하라 수 있는 □력을 □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니 국민이 열혈(熱血)이 1만이 되어 개□□□의 □□에 불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출전: 「社說: 臨戰報國團의結團式」, '매일신보', 1941년 10월 22일>

9) 반도 지도층부인의 결전보국의 대자사후(大獅子吼)!!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지난 12월 8일 우리 제국은 동아공영권의 방해자요 동양침략의 적인 영미(米英) 양국을 타도하기 위하여 정의의 간과(干戈)를 내여 들게 되었다. 이에 조선지도계급부인의 결전보국대사자후를 특집하여반도부인계에 제공하는 바이다.)


1. 여성의 무장 --- 김활란(金活蘭)
2. 미몽(迷夢)에서 깨자 --- 임효정(林孝貞)
3. 가정의 신질서 --- 임숙재(任淑宰)
4. 국방가정 --- 박순천(朴順天)
5. 총후부인의 각오 --- 허하백(許河伯)
6. 여성도 전사다 --- 모윤숙(毛允淑)
7. 군국(君國)의 어머니 --- 최정희(崔貞熙)

여성의 무장, 이화여전 교장 김활란


지나사변(支那事變)358)이후 우리 여성은 총후(銃後)를 지키는 자로서 미력이나마 다하여왔습니다.
출정군인의 천송(賤送)이며, 유가족의 위문, 혹은 국방헌금 등등, 이루 헤일 수 없는 정도였으나, 지난12월 8일 황송하옵게도 대조(大詔)359)가 환발(渙發)되시와 지금까지의 사변은 대동아전쟁360)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우리 충용(忠勇)한 육해군은 저 폭려(暴戾)한 영미(英米)를 동양에서 구축하려고 분연히 일어난 그날부터는 우리들 여성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들 생활은 지금까지와 같이 총후를 지키고 있다는 소극적 관념으로부터 한걸음 나아가서 총후에 있어서의 전사라 하는 기분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동아전쟁을 말씀하면, 인류역사에 지금까지 없었던 위대한 싸움입니다.

세인들은 미국의 흑노해방(黑奴解放)의 전쟁과, 옛날 유럽인의 피를 끓게 한 십자군의 싸움을 위대했다고 하지만, 그것에 이기면 이겼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대동아전쟁입니다. 왜 그런가 하니 동양인 전부를 저 앵글로 색슨 인종의 침해로부터 구하려하는 거룩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300여 년 간 서쪽 아시아로부터 동쪽 아시아에까지 진출하여 자기들의 무기의 우수함을 다행으로 여겨 점차 세력을 뻗어서 우리 동양의 태반을 삼켜버렸습니다.

어찌 이를 보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때까지든지 그들 악독한 손에 맡겨버리고 있겠습니까. 정의 일본의 나아갈 길은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동양 10억 여 민중


358) 중일전쟁을 뜻함.
359) 조칙(詔勅) 또는 조서(詔書). 제왕이 일반인들에게 알릴 목적으로 작성한 문서를 뜻함.
360) 태평양전쟁을 뜻함.

을 위해 도의(道義)의 싸움은 드디어 벌어진 것입니다.
동양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과를 비교하여 보면, 동양은 도의의 문명이오 서양은 물질과 기능에 지배된 소위 물질문명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그 외형적 화사함에 눈이 현혹되고, 그들의 생활을 부러워한 나머지 그들 자체를 숭배하게 된 일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도의를 가지지 못한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들면, 세계의 인구 약 20억 중 우리 동양은 아시아주만도 그 절반인 10억을 넘습니다.

동양의 보고(寶庫)는 동양인의 손에 의해서만 경영되어도 아직 풍부를 느끼지 못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미영의 무리들이 침입하여 우리들 얼굴 앞에서 꺼덕대고, 또 무지한 남방주민을 속여서 이익을 기도함은 전혀 도의를 떠난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천의(天意)에 의하여 인구가 매일 증가되고 번창하여 갑니다.

그렇지만 면적은 우리들을 포용하기에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들 비도(非道)한 나라와 같이 인의(人意)를 무시하고 무기에 의해 어디든지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이 30년래 불가능했을 리는 없습니다.

참으로 융성한 우리 국운을 보고 덤벼든다면 세계에 두려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도의(道義)의 나라입니다.

이번 성전(聖戰)이 일어나기까지의 경과를 생각해보아도 알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디까지든지 평화스럽게 해결하려고 그야말로 눈물 겨울만큼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여 노력을 거듭했었습니다.
그러나 물욕에 눈이 현혹되어 도의를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어찌 우리의 성의(誠意)가 통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단호히 분기하였습니다. 그들의 그간 동양에서의 정치, 군사적 행동이 천의(天意)와 인의(人義)를 무시한 인위적 침략이었다면 어찌 이 이상 참아오겠습니까. 동양은 그들 식민지로서 즐거움이되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굴하고 따라서 그들의 자유에 맡겨버리기까지 그들에게 떨어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선(祖先)으로부터 도의의 혼은 말없이 알지 못하게 우리들의 체내에 전하여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실력으로써 나서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승리는 항상 정의의 두상(頭上)에 있는 것입니다.

저 우방 독일에 대하여 저들 영미가 취한 태도를 보십시오.
지나간 구주대전(歐洲大戰)361) 후 갖은 수단을 짜내어서 독일의 모든 것을 빼앗아서 금후 어떻게 해서든지 서지 못하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독일혼만은 빼앗기지 않고 20수년간이나 고통을 견디어온 결과, 지금의 굳센 독일을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이 있겠습니까.

저들 영미인은 외형에만 의해서 완전히 세계를 지배했다고 오만한 기분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양 10억의 인류를 그들의 손에서 건지려는 전고(前古) 미증유의 성전은 열려졌습니다.
그 총후에서 싸울 수 있는, 실로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광영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황국신민(皇國臣民)된 고마움에는 감읍할 뿐입니다. 그 심경을 무엇으로 바꾸어서 나라에 봉공(奉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선 정신적 무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들의 혼과 불타는 적성(赤誠)을 드리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여성은 남성과 같이 제일선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쓸 데 없다고.

그러나 제일선의 뒤에 우리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제일선에서는 장병으로 하여금 얼마나 원기를 갖게 하는 것인가를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 부인이 출정하는 자기 아들과 자기 남편에게 '임금


361) 제1차 세계대전을 뜻함.

님을 위해서 일사봉공하여 주십시오. 집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라고 말한 그 일언이 진격 중인 장병에게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의 말입니다. 마음을 분기케 하는 근원입니다.

'이쪽 일은굳게 지키렵니다.'하는 그 마음이 총후를 지키는 우리들의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다에 가면」이라는 노래에 있듯이 「대군(大君) 옆에서 죽더라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설혹 전선과 총후의 장소의 차이가 있다고 할망정 황국신민으로서는 누구나 가져야할 적심입니다.
빈부의 차별이 없이 자기의 온갖 진심을 기울여서 진췌(盡瘁)362)함이 즉, 우리여성의 무장입니다.

이러한 혼이 없이, 그저 물자절약, 헌품, 헌금 등의 외형적만인 봉공은 마치 인간의 형체는 갖추었으되 혼이 없는 인형과 같은 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의 전부를 바쳐서 어떤 고통이든지 달게 받으며 나아가려는 영구적인 근기(根氣)있는 봉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성전, 도의와 동양인류해방을 위한 싸움, 그리고 1억이 하나이 되어 나아간다면 반드시 승리를 얻을 이 대전에 즈음하여 우리들은 자신을 갖고 마음과 혼을 모두 국가에 바칩시다.

그리하여 이 성대(聖代)에 생명을 받은 기쁨과 제국 신민된 특권의 광영에 더욱 분투하지 않으렵니까. (박수)


미몽(迷夢)에서 깨자, 임효정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은 우리 일본제국이 지금 어떠한 나라와 어떻게 싸우고 있다는 형편쯤은 가장 현명하시고 가장 비판력이 빠르다고 자처하시는 분들이매 잘 아실 줄 아옵니다.
매일 두 번씩 보도되는 신문을 읽으시고 또 하루에도 몇 번씩 방송되는 뉴스를 들으시는 여러분으로누구보다도 이 시국을 잘 인식하기고 계시다고 자처함도 결코 무리는 아닐 줄 압니다.

그러나 나 보기에는 아직도 여러분은 몽롱한 꿈속에서 헤매고 계신 것 같습니다.
바깥은 밤사이 일기가 돌변하여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치고 비가 쏟아져 하수도가 넘고 담장이 터져 야단이 났지만은 여러분 방에는 덧문을 꼭꼭 닿고 검은 문장(門帳)을 길이길이 늘였기 때문에 한밤중인줄만 알고 쿨쿨 자고 있습니다.
돈이 있는 부호는 돈에 가려서, 무식한 사람은 무지해서, 소위 인텔리란 지식층은 반들어져서 이 시국을 잘 인식치 못하고 미몽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몽에서 깨엿다면 왜 매점(買占)이 있고 왜 채권을 사지 않고, 왜 6억 저축에 협력을 하지 않고 왜 당신의 아들들을 지원병으로 내어 놓지를 않습니까?
여인들을 만나면 고무신이 없다 광목이 없다, 기름이 없다, 불평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12월 1일부터 비단과 화장품에 세금이 붙는다고 각 백화점과 포목 상문(商門)이 미어지게 장사진을 늘리어 가지고 한 사람이 100원어치 화장품을 샀다는 둥 2, 3천 원 어치씩 비단을 끊었다는 둥 하니 그 무슨 추태입니까? 100원어치씩 화장품을 살 재력이 있는 사람이 세금이 붙은 후에 1, 2원어치씩 사다 쓸 능력은 없습니까?
그리고 이 전시(戰時)에 무슨 화려한 옷이 그리 필요해서 수천 원 어치씩 삽니까?

여러분이 다른 나라의 전시(戰時)생활이 어떻다는 것을 안다면 이상과 같은 추태는 연출치 않을 것


362)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힘을 다함.

입니다.

그러면 잠깐 다른 나라의 전시생활 상태를 봅시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이 한 사람이 얼마든지 의복을 가질 수 있는 생활이 아니고 1인당 몇 점 수 이상은 같이 못하는 법령이 실시되었고 식량에 있어도 퍽 엄격합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체의 준비를 해 놓았다가 폴란드와 개전이 되자 즉시 배급제를 썼는데 그 배급은 전쟁 전에 비해서 육류가 일인당 43퍼센트, 지방이 40퍼센트, 사탕이 20퍼센트로 줄었는데 그중에도 주목되는 것은 그들이 우리네의 차와 같이 노냥 마시는 맥주는 가정에는 한 홉도 배급되지 않고 요리집에 가야 겨우 한 컵 얻어먹게 되는데 그것 역시 물에 탄 것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상당히 부자유한 배급을 받으면서도 시국의 중대성을 잘 인식한 독일국민은 아무런 불만불평도 없고 암취인(闇取引)363) 같은 것도 아니하고 통제 위반행위 같은 것도 없어서 정부로선 계획대로 식량을 착착 저장해
나간다고 합니다.
영국은 독일의 강력한 전시생활에 비해서 퍽 비참합니다. 영국은 본래가 자국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 3개월 반 밖에는 먹을 수가 없고 나머지 8개월 반은 국외에서 가져 와야 합니다.
영국 역시 독일과 개전이 되자 즉시 배급제를 실시했지마는 독일의 엄중한 해상봉쇄로 인해서 국외로부터 식량을 못 가져오게 되어 참으로 역경에 빠졌습니다. 그 실례를 들면 베이컨이 70퍼센트, 버터가 50퍼센트, 계란이 70퍼센트(1개 50전) 종이가 60퍼센트로 전쟁 전에 배해서 5, 60퍼센트나 격감을 했습니다.

그중에도 육류 같은 것은 더 말할 수 없는 형편으로 일주일에 일인당 비프스테이크를 세 쪽씩주는데 그것도 아주 적고 얇은 것인데 일주일 중 3일은 고기 없는 날로 정해 있기 때문에 육류는 아주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전시생활의 참상은 더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는 말할 수 없으나 프랑스의 기근문제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 내외정세를 잘 관찰치 못한데 원인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여러분 중에는 아직도 왜 저축을 해야 하고 왜 채권을 사야하는지 그 이유와 의의를 잘 아시지못하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 뜻을 안다면 단돈 1원짜리 채권을 사지 않는 그 사람이 어떻게 영화구경이나 거리를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돈 쓰는 데는 아깝지가 않습니까?
여러분! 전쟁에는 참으로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대동아전이 시작되기 전 일지사변(日支事變)364)이 시작되어 가지고 1941년도 예산까지 그동안 전비(戰費)가 223억 여 만 원입니다. 일러전쟁(日露戰爭)때는 17억 원을 썼습니다. 지금까지 쓴 돈만 보더라도 얼마나 엄청난 숫자입니까? 그러나 대동아전이 벌어진 오늘날에 있어서는 223억 여 만 원으로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이번 전쟁은 싸움을 하면서 한편 건설을 하기 때문에 생산 확충에도 막대한 돈이 듭니다.


363) 암거래, 암시장을 뜻함.
364) 중일전쟁을 뜻함.

이 막대한 돈을 어디서 누가 판출(辦出)365)하겠습니까?

이것은 1억 국민이 사야하는 국채소화(國債消化)와 저금으로서 충당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라에서 정한 데로의 채권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예산대로의 저축을 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어찌 될 것입니까? 참으로 무서운 결과가 옵니다.

그때는 전쟁은 물론 계속할 수 없고 국민의 생활은 파산에 이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 직조업을 하는 상인이 있다고 가정을 합시다.

만 원을 가지고 광목1천통을 짜서 시장에 내어 놓던 것을 오천 원을 가지고 광목을 짜니 전에 절반인 5백통만 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여전합니다.
물품은 적고 소비자는 많으니 값이 뛰어오를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이것은 구주전쟁(歐洲戰爭)때의 독일의 예를 보면 잘 알 것입니다.
일본돈 1원에 해당하는 한 마르크가 1백 마르크 1천 마르크로 오르다가 마지막에는 10억 마르크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전쟁 전에 했던 생명보험을 만기가 되어서 찾아오게 되는데 전차비 밖에는 아니 되더랍니다.

이것을 소위 통화팽창으로부터 오는 악성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저금과 채권소화에 게으르면 여러분의 가지고 있는 백만 원이나 십만 원 돈은 만 원짜리가 될지 천 원짜리가 될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마땅히 미몽에서 깨십시다. 지금까지 덧문을 꽝꽝 닫고 검은 방장을 길이길이 쳐서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모르고 자던 잠자리에서 깹시다.

우리 일본은 인류의 공적 미국과 영국을 때려 부수고 대동아의 평화를 확보하려고 지난 8일 새벽에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포화를 터뜨린 우리 육해공군은 1만 리 태평양 거친 파도를 헤치며 혁혁한 무훈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의 일본의 최후의 승리는 이미 확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 1천만 반도여성이 깨지 못하고 있다면 승리는 더뎌 집니다. 여러분이 이 대동아전에 한 전사로 출동치 않는다면 우리의 승리는 더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서 전쟁이 끝이었으면 하고 평화를 갈망하면서 왜 협력하지 않습니까?
평화란 일조일석(一朝一夕)이나 일순간에 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평화는 많은 희생과 큰 양보가있는 후에 옵니다.
국제간의 평화는 실력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국의 전의를 꺾을만한 무력적 경제적 실력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일본이 영미와 싸우는 것도 이 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확립시키기 위함입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것입니다.

그것은 인종과 지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모랄’의 문제입니다.

아시아의 정화작용에는 물리적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화학적인 장치
가 필요합니다. 전 아시아 민족의 화합, 이러한 화합물이 되면 얼마나 찬연한 광채를 발하겠습니까?
여러분! 나는 1천 2백만 반도여성에게 외칩니다.

특히 어머니 된 여성에게 외칩니다.

당신의 아들과 딸의 장래를 위해서 분연히 전쟁에 나설 각오를 합시다.
우리 2천 4백만의 피가 이 대동아전에 섞이지 않고는 우리의 행복은 절대로 약속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에 우리는 피를 흘립시다. 우리의 몸을 제물로 바칩시다.


365) 돈이나 물건을 변통하여 마련함.

천황폐하의 적자(赤子)로서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바칩시다.
우리 일본이 꼭 이길 필승의 신념과 우리자손의 장래가 꼭 행복스러울 것을 믿고 결전체제(決戰體制)로 나아갑시다.


가정의 신질서, 숙명여자 전문교수 임숙재


우리 황국은 지금이야말로 정(正)히 세계유구의 평화를 위해서, 아시아 민족해방을 위해서, 팔굉일우(八紘一宇)인 우리 조국의 대 정신을 사해에 선양하기 위해서 고금 미증유인 대 성전 수행에 즈음하여 만났습니다.

1억 국민은 우리 국토 내에 생활하는 국민으로서 생명을 걸고 이 난국을 맞아 일신가(一身家)의 전력을 들어 순국의 지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이르렀습니다.
국가사회가 어떠한 목적 밑에서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것을 수행하는 장소는 가정이오 그 운용은 그 주부가 일함에 있기 때문에 부인의 원동력에는 위대한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부는 가정생활의 중심이므로 이때에 가정생활의 신질서를 수립하여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질서라함은 가정생활을 통하여 국가난국을 돌파하려고, 가족총동원 총력을 발휘하여 정신, 물질,양면생활이 함께 건전한 사상전, 경제전을 승리함에 있는데, 이에는 강한 결심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가정에 무엇을 요구할 것입니까. 우선 물자금전과 건전한 인재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우선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심력이 한 뭉치가 되어 순충보국(純忠報國)의 정신을 더욱 더 발양하고, 물건하나, 돈 한 닢이라도 소비의 합리화를 도모하며 용품을 절약하여 저축하고, 군수용품이 되는 물자는만난(萬難)을 폐하고라도 군국에 바치도록 군수공장에 봉사노력을 산출하도록 노력합시다.

예컨대 금속품, 진유제품(眞鍮製品),366) 모직, 목선품(木線品) 등을 민간에 쓰지 않도록 힘써서 군수품을 되도록 나라에 바치자는 것입니다.

의식주의 생활을 간이화합시다. 우선 백의(白衣)를 전폐합시다.

백의는 방호상으로도 위험하며 또한 슬플 때 착용하는 흉복상복입니다. 그리고 활동상 대단히 불편하며, 또한 비경제적입니다. 우리 2천 4백만 인이 철저하게 색복(色服)을 착용한다면 약 1억 5천만 원이 절약됩니다.
이 돈으로 5만 원짜리 비행기를 산다면 3천대나 살 수 있게 됩니다. 백의는 세탁을 자주하고 풀칠도하기 때문에 거기에 소모되는 활동을 유효적절한 생산적 활동에 돌리기로 합시다.

저고리 고름도 폐지하고 단추를 달고 외출복도 통의로 고칩시다. 긴급을 요하는 전시생활에 있어서 기다란 꼬리치마를 펄럭거리는 것은 예의상으로나 활동상으로나 좋지 못합니다.

부인의 건강으로나 건전한 국민 생활상으로 보아도 꼬리치마는 좋지 못합니다.

더욱 전시생활을 하여야 할 이때에 고가의 의복에 퍼머넌트를 하고 화장을 몹시 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궤 속에 사장하고 있는 기제복(旣製服)을 잘 이용하여 새 의복을 만들지 않도록 힘쓰며, 할 수 없이 새 의복을 만들게 되었을 때에는 스프직물을 튼튼하게 오래 쓰는 묘법을 습득합시다.
음식물에 있어서도 건강은 유지하고 활동력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양을 본위로 하여 그 이상 미식(美食) 복잡한 형식을 그만두고 개인의 난의미식(暖衣美食)을 크게 반성하여 절미(節米)와 대용식(代用食)과 잡곡반등에 습관을 부쳐서 이를 힘써 행합시다. 그리고 부식물의 수를, 또는 양을 줄고, 필요분


366) 놋쇠로 만든 제품.

이외 양을 식상에 내여 놓지 않도록 힘씁시다.

비싼 육류보다도 싼 식물성 단백질, 기타의 영양소를 섭취하도록 하며, 나무 부스러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금합시다.

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장병은 어떤 극한 염열(炎熱)하에서도 불휴불면(不休不眠)의 생활, 물 한 방울도 얻지 못하는 때 천막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먹으며, 건빵 한 조각을 씹는 것도 3일 1식일 때도 있다합니다.

죽음보다도 괴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필사의 결전을 하며 생명을 바치는 덕택으로 평온무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송구한 일이며,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이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지금 미영(米英)대전367)에 있어서 시시각각으로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아니고, 30년 이래 해군이 진지(眞摯)한 전술연마를 거듭한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생각한다면 안온한 생활을 하여온 것이 미안하며 좀 물자 부족한 것을 불평 품으며, 부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
니까.

스스로 분기하고 나아가서 부자유를 체험합시다.

두 벌의 옷이라도 나눠 입고 하루의 식량이라도서로 나눠 먹읍시다.

사리사욕을 취하여 매점하는 일을 전폐합시다.
주거에 있어서도 가정은 가족에게 있어서 단락위안소(團樂慰安所)이기 때문에 청소 정돈으로 미화시킵시다.

피로를 쉬게 하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어서 개로(皆勞)를 힘써 수입을 증가하며, 농촌은 자작자급을 본체로 하며, 도회일지라도 적은 공지라도 이용해서 일평농영(一坪農營)으로 야채를 심고, 따라서근로보국의 결실을 거두며 채권도 사고 저금도 하고, 특히 연말연시의 허례를 폐지하여 그 대신 군에 위문품을 보내고, 또 연시(年始) 인사를 돌아다니는 것을 폐지하여 그 대신 군인 유가족의 위문을 합시다.

특히 어머니로서 최중대한 책임은 자기 아들을 강하고 현철(賢哲)하게 길러 지원병, 혹은 국가 유용인재로 바칩시다.

내선일체가 되어 마음과 힘을 합하여 적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며 상호 친선을 힘써 부인의 일본 정신파악을 함양하고, 및 국가에 대한 존귀한 의무심을 기릅시다.


국방가정(國防家庭), 박순천


먼저 나와서 말씀하신 분이 제가 하려고 준비한 말씀을 다하셨으니 재탕이 되겠습니다.

여러분께 미안합니다. 그러나 보약은 재탕도 과히 해롭지는 않을 듯하니 눌러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임전(臨戰)이라고 하는 말은 최근 처음으로 생긴 말이고 이 말은 전쟁이 끝나는 때에는 이 말도 필요가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5년간이란 긴 시일을 두고 추운 밤과 더운 날을 헤아리지 않고 생명을 바쳐 싸우고 있는 용사의 덕택으로 오늘까지 우리는 어디서 전쟁을 하는가 하리만큼 안전하고 평안히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늘 우리 머리에 언제나 미안 미안하던 사건은 기어코 벌어졌습니다. 12월 8일 아침 나는 학교에 나올 때 여러 사람을 보았습니다.

내 기분인지는 모르나 분연코 여러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돌고 걸음도 전보다 좀 급하게 걷는 듯 했습니다.
사실에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국민된 자 흥망이 국가에 달린지라 어찌 긴장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일이 일어나기 전에 불안이 있지 일단 일이 일어난 후에는 불안이나 걱정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때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고 황군 의 무력을 신임하고 상하 관민이 협력해서 이 난


367) 태평양전쟁을 뜻함.

국을 무난히 돌파할 용력과 방위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병사는 전장에 나가 적과 싸우고 우리는 다 각각 가정에서 경제와 싸워야 될 줄 압니다.
이제는 아주 국방가정(國防家庭)이란 것을 누구의 가정에서든지 인식하고 역력히 엿볼 수 있습니다.

대도시는 물론 농산어촌 어떠한 곳이던 노소를 막론하고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

자에 나타나는 임전(臨戰)기분(氣分), 국방시설에서 보는 모든 것으로 충분이 알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자에 있어서는 배급제도가 생겼습니다.

이 배급제도는 전쟁국가에 있어서 적절한 제도라고 감복합니다.

혹이 배급제를 귀찮아하시는 일도 있을지 모르나 그야 태평시대에 있어서 맘대로 살 수 있을 때야 상관없을 일이지마는 비상시 국가에 있어서 만일 배급제가 없었다고 하면 공정가격이 없었다고 하면 우리가정에서는 시기를 이용하는 장사꾼에게 돈만 빼앗기고 얻는 것은 적을 것이고 생활에 불안과 곤란이 컸을 것이외다. 그러나 이 배급제로 해서 안심하고 살수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는 방공훈련이올시다.

처음에는 방공훈련을 해야 될 것으로 알면서도 모두 싫어하고 그 모양이 우습게 보였습니다.

갑자기 치마를 벗은 부인들은 눈에 좀 보기 서툴렀고 보는 사람은 웃고 보이는 사람은 부끄러워했으나 이제는 방공복을 입고 자기 집과 이웃을 지키는 우리 가정부인들이야말로 출정군인과 같이 당당하게 뽐내고 있습니다.

또 일반도 이제는 국방가정훈련이란 것을 자각한 까닭에 피차 조금도 어색함이 없고 간편하고 만일의 경우 유사시에는 그간 닦아온 방공훈련으로 해서 내 가정은 물론, 우리 이웃까지 안전할 것이며 어떠한 때 적의 내습이 있더라도 우리 가정부인들은 용감히 오려면 오너라 하는 기세와 용단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 방공연습이 시작될 때 어떤 친구 집 마누라의 말이 어제 저녁에는 나가니 ‘이찌니’를 하라더니 오늘은 또 ‘고찌니’를 하라고 하더란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수일 전 어떤 학교 여학생들의 방공연습을 보았습니다.

하도 민첩하고 규율적인 훈련을 보고 정말 안심하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급속도록 진보된 것에 감복했습니다.

가르침의 힘 모든 지도의 힘 모두가 이 비상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기를 이용합시다.
국방가(國防家)에 있어서 누습과 폐풍을 버리고 종래 생활에 혁명을 일으켜 봅시다.
첫째 늦잠 자는 병을 고칩시다. 10시 11시까지 자는 잠을 절약해서 아침 6시로 해봅시다. 제집에서는10면 열두 식구가 일제히 일어나 들썩거리고 먼지를 털고 하는 통에 더 자고 싶은 사람은 누워있을 곳이 없어도 누워 자지 못하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식사는 상하가 다 같은 시간에 한자리에서 해봅시다.

식모고 침모고, 다 한자리에서 하며, 식사시간에까지 인간의 차별을 맙시다.

이런 것이 국방가정에 첫째 취할 일이이외다. 식사가 끝나지 않으면 일의 능률이나 정돈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야 집안 다른 일도 손쉽게 정돈이 됩니다.
또 한 가지는 모든 식구가 제 일은 제 손으로 좀 합시다.
방청소도 식모, 세수물도 식모,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제 일 제가 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우리는 자녀교육에도 물론 제 일 제가 하는 습관을 길러야 됩니다.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남만 시키고 먹기는 기름진 것을 비교적 많이 취하기 까닭에 비만증이 생기고 소화불량이 생기고 누울 병이 많이 생깁니다.

누울래야 누울 짬이 없고 죽으려야 여가가 없어 못 죽는 방법을 취합시다.
분주하고 바쁘게 일하는 그리고 남편양반이 늦잠 자는 버릇이 있거든 주부가 돌아다니면서 먼지털이 먼지를 털어보십시오.

불평을 말하거든 비상시에 그런 버릇 안 된다하시고 그래도 안 되거든 애국반장에게 말해서 애국반장이 가서 먼지털이로 털도록 하시고 남편된 이들도 옷을 찾아 입는 것, 자기 이부자리쯤은 다 자기 손으로 하도록 하시오.
이 시기에 그 병 안 고치면 죽도록 못 고칩니다.
또 한 가지는 의복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있는 것으로 평정될 때까지 빨아 입읍시다.

전에는 신조업(新造業)으로 하던 행세를 이제는 빨아 입은 옷으로 행세를 하도록 합시다.

그러고 유난한 화장이라든지 찬란한 의복은 자각한 가정에서는 신중한 자숙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변 전과 사변 후와 놀라우리만큼 달라졌습니다.

소하고 야릇한 화장 여러 방면에서 날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간혹 미안한 차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은 마치 잔치 집 가서 통곡하고, 초상집 가서 웃고 좋아하는 몰상식자로 남이 흉볼 겁니다.

하루라도 일찍 자숙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고 식량을 절약하시고 길거리에 미신적으로 미역국에 밥 끓여다 버리는 것 아껴두시고 잡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대단히 보기 흉하고 아까운 일입니다. 밥 한 알에 농민의 땀이 몇 방울이나 얽힌 것을 아신다면 엄동(嚴冬)에 먹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하늘이 두려워 감히 그런 일은못 하실겁니다.
이제 제가 말씀드린 것을 간단이 종합한다면 생활 전체를 간단히 하자고 하는 것이며, 둘째는 식량을 절약할 것, 각 가정에서 모든 물자를 활용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방심마시고 마음의 무장이 필요합니다. 밤중에 뛰어 나가도 과물과 불이 어디 있는 것을 정신 차리시고 경거망동 마시고 불이 떨어져도 붙을 때 까지는 시간 여유 있사오니 냉정하고 침착히 국방가정의 사명을 지킵시다.

성전5년간 근본정신이 무엇입니까, 이웃나라에 빼앗긴 인권과 국토권을 회복시키고 공존공영의 동양평화를위하려는 대동아의 건설을 목적한 것이외다.

정의를 위함에는 패할 리 만무하겠지요, 냉정하시고 자중하셔서 국방가정을 알뜰히 지키시며 태평만년 있으시기를 빌고 기다립시다. 인간생활은 전쟁이올시다.

가정도 전쟁입니다. 인간 모두가 다 병정입니다. (끝)


총후부인의 각오, 허하백


여러분은 누구나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과거 4년간 계속해 온 지나사변(支那事變)368)이 아직 끝마치지 않은 때에 또 미영 양국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잘아시는 바와 같이 영미는 인구에 비하여 세계적으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양에까지 손을 뻗치지 않을지라도 좋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극단의 개인주의사상으로부터 출래한 사리사복(私利私腹) 정책은 우리 황색인종에 대하여 심한 압박을 거듭하여 왔었습니다.
이에, 우리 무적황군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중대한 결심을 굳게 한 결과, 이야말로 실로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성전이라는 기장(旗帳) 밑에서 미영 양국에 대하여 포문을 연 것이 지난 12월 8일이었습니다.
그 이래, 여러분도 신문에서, 혹은 라디오 뉴스를 통하여서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우리 황


368) 중일전쟁을 뜻함.

군은 이르는 곳에서 적군을 격멸시켜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에 있어서 우리들 총후의 부인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는 큰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여서 변변치 못한 저까지도 이 자리에 연사의 한 사람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과거에 있어서도 매우 총후의 노력을 하여왔었지만 이번은 그러한 미지근한 생각으로써가 아니고 가장 적극적이오 실천적인 결과를 나타내지 않아서는 안될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하는 것을 이로부터 제가 간단하게 여러분께 말씀하고자 합니다.


1. 건전한 사상


첫째, 건전한 사상을 가져야 할 터인데, 이에 있어서 우선 우리는 경신존황(敬神尊皇)의 염(念)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는 물론, 신사 앞을 지날 때에는 경례할 일과, 애국일의 실행 등, 이리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을 발휘할 일입니다.
과거에 가졌던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나라를 위해서 만이라는 국가주의의 사상을파악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둘 셋 들면 우리들이 식사를 하는 것일지도 자기 한 개인의 생명 지지(支持)를 위해서가 아니고, 이를 먹고 힘을 내어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생각 밑에서 식사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데 있어서도 훌륭히 양육하여 나라를 위해 유용한 인물이 되도록 힘쓰는 헌신적 정신이야말로 일본정신입니다. 이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면 참된 황국신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국가 제일주의의 사상이야말로 건전한 사상이며, 국민 각자가 통일적으로 이 사상을 가져서 비로소일심이 되어 이 전쟁을 훌륭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2. 감사위문


제일선에서 생명을 내어 던지고 싸워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그 고생을 감수하고만 있을 것입니까.

배급을 좀 적게 받는다고 불평을 말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들이 금일 이처럼 행복스럽게 생활하는 것은 제일선에서 생사를 상관하지 않고 싸워준 용감한 장병의 덕택이 아닙니까.

이것을 생각하는 때는 실로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평을 말할 것이 아니고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① 출정군인에게 선물을 보내어 위로할 일. ② 전쟁에서 명예의부상을 받은 장병에게는 하루라도 속히 치료를 받게 하여 갱생(更生)의 길을 걷도록 물질적으로 후원할일. ③ 전사 장병의 유가족에게는 물심 양력면으로 도와서 고락을 함께 할 일.


3. 자원애호(消費節約)


소비절약은 우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극히 손 가까운 것에서부터 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무 한개나 감자 한 개라도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매우 적은 것이라도 이를 버리는 일이 없이, 모든 물자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현대의 전쟁은 경제전과 총력전에서 비로소 승리를 얻는다고 합니다. 이를 안다면 아무리 보잘것없
는 물건일지라도 반드시 그 용도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니, 만일 이러한 태도를 결여했다고 하면 현대국가의 국민된 자격을 상실했다고 볼 것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역설하여 줄 것은 지난 해 사치품금지령이 발령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태연하게 지환(指環)369)을 끼고 네거리로 활보하는 여성을 보게 될 때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청컨대, 총후부인이라는 자각을 가졌다면 이 시기에 일체 이와 같은 사치를 격멸하시기를 바랍니다.


4. 폐물 이용과 재생


이 점은 특히 우리 반도인 가정에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의 문제와 관련시켜서 말한다고 하면 우선 폐품이라는 것 생기지 않도록 할 것, 군수 관계의 물품은 사용금지할 것, 물품을 많이 사들이려고 매점(買占)하지 말 것 등입니다.
매월 애국일에 각 정회(町會)에서 폐물을 회수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폐품이 생기게 되면 잘 모아두었다가 그 기회에 잘 이용시키도록 힘씁시다.
우리들은, 이 전쟁이 아무리 오래 계속된다 하더라도 우리 국내에서 산출되는 물자로서 견디어 나아가야만 된다는 각오를 가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들의 각오여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생활이 다소 사변(事變) 전보다 불편이 있다고 해서 드디어 일본은 물자가 부족해서 곤란을 받고 있다고 혹 생각하실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생산이 증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이유는 여러분이 사변 전까지는 물품을 귀중히 여기던 생각이 부족했었기 때문에 버려두었던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절약하여 두기 때문입니다. 못, 통조림 빈통, 종이 조각 등등을…이것으로 보아도 일심단결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알 것입니다.


5. 근로봉사(勤勞奉仕)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때까지의 우리 반도부인은 고용인을 많이 두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왔었습니다.
이 뿌리 깊은 전통적인 생각은 소위 지식계급의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사람의 힘과 물질의 힘을 모아서 대동아 공영권 건설이라고 하는 목표를 향해서 싸우고 있는 이때에 그러한 허영심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근로적 가풍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전혀 우리 부인의 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부터 어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때는 별문제로 치겠으나, 타인에게 부엌을 맡긴다고 하는 것은 첫째 가족보건에 있어서 위험하며, 둘째로 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때에 주부된 자는 모름지기 부엌으로 혹은 시장으로, 그뿐만 아니라 주부로 내직을 가질 것과, 여자도 물품을 쓰는 자만되지 말고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자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있어서는 가정을 가지고는 일한다는 것은 한 수치와 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마는 지금은 그러한 관념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각 사람이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일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총후의 부인으로서는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를 생각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


369) 가락지. 반지.

다면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노는 일 없이 일하는 것을 한 개의 자랑으로 삼읍시다.


6. 저축장려


이상에 말씀 드린 대로 우리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모든 낭비를 막고 매일 1전이나 10전이라도 모아서 저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격언도 있으나, 이것도 자기 혼자만 실행하고 이웃이 실행하지 않는다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일례를 들어 말씀한다면 한 사람이 매일 10전씩 1만 사람이면 1천 원이 됩니다. 그러나 한 남자가 요리집에 가서 하룻밤에 2천 원을 낭비했다고 가정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들은 자기가 실행하고 그 다음에는 이웃이 함께 이렇게 하여 전 국민이 모두 실행하지 않으면 국채(國債)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있어서 우리학교의 예를 들어 말씀하면 지난 12월 8일 미영에 선전한 날에 2천원을 육해군에헌금한 일이 있습니다.

물론 직원과 생도들이 함께 내여 놓은 돈일지라도 여학교로서는 거대한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아놓으니까 거액이 되었지만 각 사람대로 나눠서 소용했다면 거금이 될 수 없습니다.

생도로부터는 매월 20전씩 직원으로부터는 월급에서 1원씩 떼여 낸 것입니다.

우리학교에서는 매년 이와 같이 하여 이 전쟁이 계속되기까지는 2천 원씩 헌금하기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예에서 불과합니다. 우리들은 각 가정에 있어서도 혹은 애국반에 있어서도 부인의 각오여하에 의해서 가장 많은 저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청컨대 여러분 각자가 서로서로 실행 있기를 빌어서 마지않습니다.


여성도 전사다, 모윤숙


경성에 부민관이 생겨서 반도의 부인만이 이처럼 많이 모인 광경은 처음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아마 오늘이란 이때는 남자에게는 물론이고 여자에게도 무슨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나 기르고 시부모 공경이나 잘 했으면 부녀자로서의 할 일은 다 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렇게 한 장소에 모여가지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하고 전에 없든 생활의 새 강령이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고요한 여러분의 세계가 일조(一朝)에 흔들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의 사상의 변혁을 요구하게 되었고 여러분의 일이 대외적으로 늘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외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얌전하고 사양심 많고 수줍어서 아름다웠던 우리의 전통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우리가 지금 하려는 큰일을 해나갈 수가 없게 되겠으니까 불가 부득이 이 미덕이라고 일컫던
과거의 상아탑을 깨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반도부인에게 큰 변이 일어난 셈입니다. 큰 어려움이 생긴 셈입니다. 그

러나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면 이런 변이 생긴 까닭으로 해서 이 시대에는 우리 반도부인은 산 가치를 발휘할 수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새 세계의 정문앞에 모여선 우리이기 때문에 아니 새 세기를 창조할 기둥이 되어야 할 우리이기에 과거 몇 천 년을 살아온 반도부인보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인간의 일생을 통해서 괴로움이 없는 곳에 낙(樂)이라는 것이 없는 법이고 곤란한 역사의 과정을 짓지 않고는 인류의 향상이라는 것은 볼 수가 없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새로운 생명의 계단에 오르려는 한 국민들은 껍질을 벗어 던지고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과정에 있어서 피치 못할 진통입니다. 굳세게 살려는 인류의 의지의 발로입니다. 우리 대 일본제국은 지금 이 의지에 불타고 있습니다.

옳은 세계에 인류를 인도하려는 정의심에서 창검을 빼어들었습니다.

이런 의미의 전쟁일수록 국민전체가 손을 맞잡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전쟁은 스포츠가 아닙니다. 스포츠라면 먼저 결승선에 들어간 사람 즉 선수자신이 골(goal)을 밟으면 최후의 승리는 오는 것입니다. 많ㅇ은 전쟁에 있어서는 적군의 성벽을 깨어뜨린 것만으로는 최후의 승리를 예언할 수가 없습니다.

뒤에 있는 어머니가 아내가 정신을 차려 나라 안의 살림을 못해주면 피땀을 흘려 정복해 놓은 전과가 수포에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황군(皇軍)은 지금 태평양상에 여러 섬을 무찌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제일선에서 싸우는 훌륭한 전투원을 가진 국민입니다. 생명 그 자체를 폭탄 대신으로 떨어뜨리는 용감 무비(無比)의 병사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용감은 제일선에 선 병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너도나도 국민의 피와 뼈를 가진 사람이면 이 기혼(氣魂)을 가지고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전쟁은 결단코 무력만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입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최고의 군수품을 쌓아두는 세계의 창고입니다.

훌륭한 비행기 억센 군함 많기로 세계에 어깨를 견줄 자가 없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못 쓰는 좋은 군수품 재료를 가지고 온갖 장식을 다해서 세계에 자긍을 느끼던 미국이기에 얼마나 그
힘이 큰가했습니다.

몇 만 톤 몇 천 톤의 군함 만드는 재주, 수 없는 비행기의 조종술은 잘 발달되었다면서 어째서 태평양상에 솟은 적은 섬들의 하나를 지킬만한 병사 한 사람은 가지지를 못했느냐 말입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 안에 한 사람의 정의의 병사가 있었던들 대영국의 자만을 채워주던 그 큰 군함이 넘나드는 큰 물결의 비웃음은 안 받았을 것입니다. 허울 좋은 무력, 허울 좋은 부귀, 힘없는 그들의 문화, 다 부럽지 않습니다.
저 훌륭하다는 적군함 가운데에는 응당 몇 백 년 묵은 술의 창고가 있었을게고 병사의 침실마다에는피곤한 낭만의 꿈이 그대로 엉켜 있었을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들이 개인주의 찰나주의 이기주의인 생물학적 인생관에서 자멸을 공작하는 동안 아시아 한 모퉁이에서는 전체주의의 횃불을 들고 그들의 사상에서 혹은 그들의 정치 밑에서 신음하는 황인종을 구하러 나선 것입니다.

향료의 나라 음악의 나라 영화의 나라 청춘의 나라 기개의 나라 돈의 나라 이 모든 조건을 가지고 우리 동양의 청춘남녀를 얼마나 유혹했습니까?

아니 우리 반도여성들은 얼마나 그 모든 조건을 구비한 나라에 동경을 가졌습니까?
이번에 영미국의 죄상을 듣고 알고 보니까 참으로 황인종으로서는 견디지 못할 괘씸하고 분한 일이여간 많지 않습니다. 이 사탄에 정체(正體)에 같이 춤추는 여자가 한분 동양에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저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입니다.

이 여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동양여성이면서 미국 발바닥을 핥아야 행복감을 느끼는 변태여성입니다.

미국의 온갖 향락성, 개인주의 관념에 잔뜩 물이 먹은 이 여자는 그 생활이 말 못하게 향락적입니다.

송미령의 양말 한 켤레 값이 70원이라면 여러분께서는 놀라시겠지요?
미국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온갖 망령된 사상을 추려서는 남편인 장개석의 머리에 불어넣어 줍니다.

미련하고 둔한 장개석은 송미령의 말에 귀가 솔깃해서 진퇴유곡에서 장기(長期)의 신음을 번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성이 동양에 있어 사태를 어지럽힌다는 것은 같은 동양여성으로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슴에 대화혼(大和魂)의 무형(無形)의 창검을 가져야 겠습니다.
이 지구 위에 번식해 가던 향락주의 개인주의 그릇된 문화의 사다리가 한 층계 두 층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그릇된 정신을 청산시키는 힘은 대 아시아로부터 대일본제국으로부터 싸움 뒤에 있는 국민으로부터 어머니로부터 아내로부터 출발해야겠습니다.

남자만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시어머님놀음 그만하시고, 아씨 새댁놀음 그만하시고, 거름통이라도 달게 메고 나갑시다. 군대에게 승부가 달린것이 아니라 이 새 동아의 전쟁은 우리 여성에게 그 승부가 달렸습니다.

그 이유는 아까 여러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생산은 남자가 하고 소비는 여자가 한다는 일은 한가한 평상시의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자나 아씨나 마님이나 양반이나 상인이나 가문 문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대일본제국의 평등한 국민이면 그만입니다.

가문에서 쫓겨나더라도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는 아내 며느리가 됩시다.

전쟁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하여 공장이 비었으면 공장으로 회사가 비었으면 회사로 들어가서 일합시다. 제1차 대전 때에 독일부인 기자요 또 유명한 켄트루 드바우멜이라는 이의 전시부인들의 보고를 보면 어떤 공장에서는 한 개의 80봉도(封度)370)되는 무거운 폭탄을 한 여자가 매일 35,6개씩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하려고 하면 못할게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의(義)를 위해 버린다는 데야 누가 이것을 막겠습니까?

신념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모두가 일합시다.

비행기 공부도 하고 잠항정371) 부리는 공부도 합시다.

비행기나 잠항정을 못하게 말리는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들입니다.

말리지 마십시오. 하겠다고 하거든 내버려두십시오. 국가비상시를 위해서는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허영심에서가 아니라 여자 비행사도 있어야겠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만류하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 어머니는 자기 딸한 사람의 어머니요, 한 나라의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만큼 전쟁을 방해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옛날 프랑스에서는 오를레앙의 소녀 하나가 피를 흘려 나라를 구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에는 나이팅게일한 여자만이 전선에 나가 공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전쟁에는 한 사람의 잔다르크, 한 사람의 나이팅게일만 가지고는 너무 부족합니다.

여기 앉은 여러분이 아니 반도 1,200만 모두가 오를레앙 소녀의 뜨거운 조국애에 울어야겠고 반도 1,200만이 죄다 나이팅게일의 뜨거운 여성혼을 담아가지고 전쟁마당에 나가야겠습니다.
새 아시아의 탑을 쌓는데 흙 한 줌이라도 갔다가 보태면서 물 한통이라도 길어다 부으면서 우리는 높이 펄럭이는 일장기 밑으로 모입시다. 쌀도, 나무도, 옷도 다-아끼십시오. 나라를 위해서 아끼십시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목숨만은 아끼지 맙시다. 아들의 생명 남편의 생명 다 바치고 나서 우리여성마저 나오라 하거든 생명을 폭탄으로 바꿔 전쟁마당에 쓸모 있게 던집시다. 이제부터 행복의 노예


370) 영국에서 쓰는 무게 단위인 파운드를 뜻함.
371) 잠수정. 항해 속도가 빠른 소형의 잠수함을 뜻함.

가 되지 말고 행복을 창조하는 창조자가 됩시다.

그래서 저 대영제국의 여자여 네 이름은 약한자다 하는 표어에서 벗어나 강한 여성은 아시아로부터라는 새 불멸의 문구를 인류사회에 남겨놓고 갑시다. (박수)


군국(君國)의 어머니, 최정희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더구나 연설은 더 못합니다. 그래서 연설은 하지 못하고 짤막한 이야기 한마디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모질지 못한 여자올시다.

꽃을 사랑하는 것도 너불너불 큼직한 것은 못 사랑하고, 저, 하루아침 모진 서릿발이면 쓰러질 들국화 같은 보잘 것 없는
꽃을 사랑합니다. 크고 너불너불한 꽃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제 힘에 부처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제가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은 증명됩니다.
그러나 저는 요새 와서 점점 강해지려고 노력합니다. 도무지 연약하지 않은 여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불이라도 삼키고 내쏘는 탄환이라도 능히 받을만한 용기와 자신과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제가 용기와 자신과 신념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게 된 동기는 지나사변(支那事變)372)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미영전(日米英戰)373)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가르침도 아니고 어느 스승의 타이름도 아닙니다.

제 아이올시다. 국민 학교 3학년에 다니는 열 살 먹은 아이올시다.
이 아이는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하다가도 궁성요배 싸이렌이 들리기만 하면 벼락같이 벌떡일어나서 동쪽을 향해 엄숙히 허리를 굽이고 섭니다. 또 천황폐하께서나 이런 높으신 이들의 존영(尊影)이 실린 신문 앞에선 반드시 자세를 고치고 머리를 숙입니다. 또 뉴스 영화관에 가서 전쟁 뉴스에 황군이 만세 부르는 장면이 나오면 자기도 같이 만세를 부릅니다. 또 혹시 화면에 높으신 이가 나타나시면 모자만 벗는 것이 아니고 자세를 똑바로 하고 일어섭니다.
그런데 이럴 때 아이가 자기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엄마는 왜 안하느냐 엄마도 같이하자”고 합니다.
솔직한 고백이올시다 마는 저는 처음 얼마 동안은 아이 말대로 못 했습니다. 갑자기 더구나 여러 사람들 있는데서 그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 하는 짓을 말려본 적은 없습니다. 점점 아이 하는 대로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바른길 광명한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올시다.
아이는 어느 날 “엄마 내가 전쟁에 나가 죽으면 울테야?” 하고 물었습니다. 돌연한 이 물음에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요 옳은 길이라 알면서도 꼭 하나밖에 없는 아이! 어느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마는 제게 있어서는 온 세상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오직 하나인 아이올시다. “죽는다”는 이말엔 놀라지 않을 수 없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안 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깐 어리벙벙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다시 “엄만 틀렸어”하고 낙망(落望)하는 얼굴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저는 틀린


372) 중일전쟁을 뜻함.
373) 태평양전쟁을 뜻함.

엄마였습니다.

아이의 말에서 저는 다시 저를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틀린 엄마를 불만해하는 아이를 끌어다 안으며,
“울지 않을 테야 좋은 일하고 죽는데 왜 울까”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엄마 대답에 신이났는지,
“요시, 그럼 엄만 ‘내 아이야 강해졌구나’라고 노래불러주지” 하며 이번엔 금방 전장에라도 내달리려는 듯이 팔을 부르거두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시 아이를 더 꼭 껴안으며,
“노래만할까, 엄만 네가 전쟁에 가서 죽는다면 춤을 추겠어” 하고 참으로 아이와 똑같은 빛나는 얼굴
빛을 아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온통 제 아이의 자랑만 같습니다마는 저는 결코 제 아이 이야기에서만 그친다고 보지않습니다.

이 우리아이 제 아이 이야기가 즉 여기 오신 여러분의 아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아들들이 다 이렇게 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도 다 이렇게 하늘에라도 닿을만한 놓은 기개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과거,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높은 기개와 정신을 잊어버리고 살아 왔습니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친다는 높고 귀한 사상을 오랫동안 파묻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작은 생명들이 제2세들이 새싹을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꺾어 버려서야 옳겠습니까. 분질러 버려야 옳습니까.

아니요. 날마다 밤마다 북돋아 주고 길러줘야 합니다. 바른 길을 찾는 그들을 위해서, 광명을 찾는 그들을 위해서 하늘에라도 닿을만한 높고 귀한 정신을 가진 그들을 위해서 오직 제한 몸을 나라에 바치겠다는 일념에서 사는 그들을 북돋아주고 길러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들의 뜻을 받드는 것이 될 뿐 아니라, 따라서 또 신의 뜻을받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귀하고도 높은 오직 우리의 아들들의 뜻을 받드는 어머니가 되십시다.

신의 뜻을 받드는 여자가 되십시다. 그래야만 우리도 남과 같은 여자구실을 할 것이요 그래야만 우리도 남과 같은 어머니의 구실을 할 것입니다. 온 세상, 푸른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여성들이 다 이러나서 자기의 아들들을 나라에 밭이는데 우리라고 못 바칠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이 못해서 남이 하는대로 못합니까. 눈

이 없습니까. 코가 분질러졌습니까. 똑같은 이목구비를 가졌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못할 것입니까. 여러분은 제발 부디, “엄만 틀렸어”라는 말을 여러분의 아들한테서 듣지 않는 강한 어머니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할 것을 여러분 앞에 맹세합니다. 신 앞에 맹세합니다. 여성은
약하다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하지 않습니까. (박수)


<출전: 金活蘭 任孝貞 任淑宰 朴順天 許河伯 毛允淑 崔貞熙, 「半島指導層婦人의 決戰報國의大獅子吼!!」, '大東亞' 第14卷 第3號, 1942년 3월, 94~118쪽>

10) 일어서라! 부인들! 가정도 전시동원이다, 27일 임전보국단 부인대회


동아 10억의 공존공영을 목표로 하는 태평양전쟁은 서전(緖戰)에서부터 무적황군의 혁혁한 전첩으로 미영 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으나 자원이 풍부한 그들은 반드시 장기전을 꾀하여 경제적으로 최후의 승리를 노리고 있으므로 우리 총후국민은 모두 □□의 단결력을 가지고 ‘경제전사(經濟戰士)’가 되어 최후의 영광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전에 승리하는 첩경은 한집 한집마다 전시생활을 실천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물자를 아끼고 생활비를 절약하여 1전이라도 많이 절약하여 가지고 국방가정(國防家庭)을 건설하여 여기에 주부의 역할은 비상히 큰 것이 있다.

부인의 전장은 실로 가정 안에 있는 것이다.

소비자로서의 부인은 생산자로서의 명예를 확보할 것을 국가가 요청하고 있는 오늘이다.
부인들이여! 일어서라! 임전보국단(臨戰報國團)에서는 반도부인들의 전시동원을 촉진하기 위하여 본사후원으로 오는 27일 오후 1시부터 시내 부민관 대강당에서 부인단원과 남자 단원의 부인을 소집하여 부인 대회를 열고


1. 전시하 생활 쇄신 운동 2, 군사자재 헌납운동의 2대 운동을 □의로서 채택하여 널리 전부 □□의 협력을 □□고 이어 그날 밤 6시 반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부인결전대연설회(婦人決戰大演說會)를 열고 부인 연사들이 등단하여 동성(同姓)의 시국인식을 높이기로 되었는데 한 분이라도 많이 듣고 국방가정을 건설하기 바라는 바이다. □□의 연사와 연제는 다음과 같다.
(이하 6줄 판독불가)


<출전: 「일어서라! 婦人들! 家庭도 戰時動員이다, 二十七日 臨戰報國團婦人大會」,'매일신보', 1941년 12월 24일>


11) 부인대 주최 좌담회(1~2)


11-1)


임전보국단 부인대 주최 좌담회 1 -군국의 새어머니 될 우리의 감격과 포부


임효정(林孝貞) : 오늘 바쁘신데 이처럼 많이 오셔주셔서 감사합니다.

5월 9일에 징병제가 실시가 공포된 후로 새로운 감격이 반도 산하에 넘칩니다.

우리는 다만 감격하는 태도에서만 만족하겠느냐?
감격한 것만으로 우리의 책임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 하고 스스로 물어볼 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천 4백만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더욱이 어머님이 되어있는 우리들의 가슴은 크나큰 책임감에 불타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모인 것은 감격의 단계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황국의 아들을 길러내는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 노릇을 하겠느냐 하는데 대하여 구체적 방침을 의논하자는 것입니다.


김윤정(金允禎) :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우리네 아들은 지금까지 완전한 군인 노릇을 못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우리 조선에도 이 징병제가 실시된다고 공포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자기 본위 개인주의적 입장에서 길러내는 아들을 한 나라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우리 어머니들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아이들 버릇이라든지 가정교육에 대한 태도를 종래와 달리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 받은 교육을 실행해야할 장소 즉 가정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면 아무 효과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학교에 가서 배워 가지고 오는 아이들 보다 집에 있는 그 어머니가 그 교육 정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자기 아들이니 딸보다 떨어지는 교양적 도를 가진 어머니라면 좋은 아들을 길러내지 못할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어머니들의 교양을 우리가 받들고 고쳐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선부인들은 순하고 솔직한 것이 그 천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회에 잘 계몽만 시키면 내지 어머니를 못지않은 훌륭한 어머니가 될 줄 압니다.


임효정(林孝貞) :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 구체적 방침으로 김윤정씨는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김윤정(金允禎) : 일본 신민이면서 국어374)를 모른다면 첫째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의견 같아서는 국민 학교에 의탁을 해서 1주간 몇 번씩 오후에 두어 시간을 내서 국어 강습회를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도 일본식 훈련을 시켜서 앉는 법 같은 것도 잘 연습을 시켰으면 합니다.


박마리아(朴瑪利亞) : 앉는 법도 고쳐야 할까요.


김윤정 : 그럼요 안□□□에도 정신을 통일하는데 큰 관계가 됩니다.


임효정 : 박인덕 씨 말씀하시지요


박인덕(朴仁德) : 지금 김윤정 씨 말씀도 매우 좋습니다.

저더러도 한 마디 제공한다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조선 어머니들께 징병제의 의미를 똑똑히 설명해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아는 사람들은 징병제가 실시된다니까 마음속으로 기뻐하지만 징병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어머니들은 그저 아들이 커서 전쟁에 나가 죽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니 딱합니다. 병정이 되는 것도 일종의 학교훈련입니다.

제일 강한 청년이 병정이 되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러니까 이취지를 철저히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임효정 : 차사백 씨 말씀해 주십시오.


출석자
김윤정(金允禎), 서은숙(徐恩淑), 박인덕(朴仁德) 차사백(車士白) 임숙재(任淑宰), 허하백(許河伯) 홍승원(洪承嫄),

최희경(崔熙卿) 박마리아(朴瑪利亞) 고황경(高凰京) 최정희(崔貞熙) 임효정(林孝貞) 노천명(盧天命) 김선(金善)

모윤숙(毛允淑)
일시 : 5월 25일 오후 7시
장소 : □□□□□□□□


<출전: 「臨戰報國團婦人隊主催座談會 1-군국의새어머니될 우리의감격과포부」,'매일신보', 1942년 5월 31일>


374) 일본어를 뜻함.

11-2)


임전보국단 부인대 주최 좌담회 2 -자장가 들릴 때에도 충군애국의 뜻 담아


차사백(車士白) : 방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먼저들 말씀해주셔서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만은 저도 역시 아이들의 건강 문제라든지 국어보급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조선 아이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다 건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말로만 유감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착착 실행해 나갈 방침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모윤숙(毛允淑) : 차 선생님은 어린이 교육에 많이 힘써 오셨으니깐 잘 아시지만 이들을 먼저 어떤 방법으로 지도해야 할지 그 구체적 방법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차사백 : 네,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어린이의 습관 □성을 연구하는 회를 하나 조직 했으면 좋을듯합니다.

그리고 어린이 상담소 같은 것을 두고 건강 상담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司會者) : 지금까지는 모자회가 없었지요.


차사백 : 없었으니깐 이제부터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최정희(崔貞熙) : 지금 말씀도 그렇습니다. □□ 우리가 방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국어보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국어보급은 내일부터 우리 부인대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모윤숙 : (이하 3줄 판독불가)습니다. 그런데 장소라든지 뭐하게 할 방법이 문제입니다.


김윤정 : 제 생각 같아서는 각 초등학교에 의뢰를 해서 진행해보는 것이 어떨까합니다.


박마리아(朴瑪利亞) : 날마다 잘 모여질까요.


김윤정 : 날마다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1주일에 두어 번 모자회를 열어가지고 한 번은 국어 보급 한 번은 모자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임숙재 : 조선부인들은 대개들 바쁘니까 한 두 번 밖에는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해주면 제일 좋지만 그들도 바쁘니까 잘 해줄지는 모르지요.


최정희 : 그 선생들이 시간이 없으면 우리끼리 □□□□□


홍승원 : 어떻게 시간을 내서 돌아가며 해보지요. 그 의견도 좋습니다만은 내 생각 같아서는 각 가정에 국어 아는 이가 한 두 사람은 있을 터이니까 자기 집 식구를 모아놓고 가르치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각 애국반장이 돌아가며 반원을 모아가지고 가르쳤으면 합니다.

너무 어렵게 하지 말고 쉬운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윤정 : 참 좋은 방법입니다. 애국반원 중에는 회람판 하나 바로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노천명(盧天命) : 저도 그 의견에 찬성입니다. 막연히 떠들어도 국어 보급이 될 수 없으니까.


임숙재 : 애국반 같은 기관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실천해가야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시작해야 한다면 순전히 이로운 방법만이라거나 또 해로운 것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일해일덕은 꼭 있을 줄 알고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위하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선생이 부족하면 각 중등학교 이상 학생들을 동원시켜 가르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각 학교에서 책임지고 학생에게 시키도록 했으면 어떨까 합니다.

아까 홍승원 씨 말씀도 좋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아이들이 혹시 선생님 되는 경우에 그 어머니나 아주머니 즉 어른들이 이제 제자노릇을 잘 할 듯싶지않군요.


사회 : 그러면 다음으로는 우리 어머니들이 어떤 점을 먼저 고쳐야 할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마리아 : 우리 조선 어머니들은 아직 대부분이 자기 아들이 병정이 되는 일을 해득을 못하고 있는데 우선 이 군인 되는 이유와 영광을 잘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제일 나쁜 것을 도적과 병정이라고 한다는데 얼마나 잘못된 관념입니까? 우리 어머니를 처음부터 군인이 얼마나 귀한 몸인가를 잘 가르쳐 가야겠습니다.


고황경 : 저는 어머니가 아니니까 좀 추상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머니 자신이 먼저 황국신민된 신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자장가 속에라도 나라의 관념을 넣어주며 기뻤으면 합니다. 즉 어머니의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서은숙 : 저도 동감입니다. 제 생각에도 (□□□□)와 같은 교육을 시켰으면 합니다. 저는 어미는 아닙니다만은 여대 책임은 있으니까 도와 드리려합니다.(□□)


사회 : □□□□를 김윤정 씨가 고치자 했는데 그런 점은 어떻습니까?


김윤정 : 저는 우선 그런 점에서부터 고쳐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일전 지원병훈련소에 갔을 때 그런 점을 목도하고 와서 그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회 : 다음으로 □□의 교육은 어떻게 할까요? 그동안 구미사상이 들어 가지고 자기 본위의 생활을 많이 했지요


고황경 : 조선 여자의 정조사상이 아름답□이 국체의 고귀함□□ 알아서 거기 대한 미담을 잘 알려주면어떨까요.


허하백 : 죽는 것은 영원히 산다는 이치를 잘 알려줄 필요가 있지요. 조선에서는 어머니들이 잘 입히고 잘 먹여서 길러야 귀히 기르는 것으로 아는 까닭이거든요. 나라의 보배인 아이이니까 나라를 위한 아이를 길러 내지 못하는 어머니는 참으로 부끄러운 어머니일 것입니다.


김선 : 우리가 말하고 쓰고 해서 신문에 내고 연설을 하고 하자면 이것을 듣지 않고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제일로 학교 당국이 학부형과 연락을 해서 소학교 교육을 철저히 할일입니다.


사회 : 예외에 있어서도 일본와 조선은 퍽 다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 (이하 1줄판독불가) 법을 그대로 하시는 사람과 하지 말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윤숙 : 생활을 그대로 두고는 그대로 하기가 어려운걸요. 그러자면 먼저 생활제도를 그대로 두느냐 고치자느냐가 문제가 된 다음에 □문제가 같은데요.


김선 : 건물이나 □□□가 조선 것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임숙재 : 생활과 함께 변하는 것이니까 의식주를 변화기 전에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 : 가령 우리가 쉽게 배울 수 있는 예의는 어떤 것일까요?


허하백 : 식사 때에 하는 예의는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옷은 얼른 변하지 않아질 것입니다.

홍승원 : 한편 예의 작업도 단점을 고쳐갈 필요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조선 어머니들이 먼저 충효의 정신을 잘 닦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사회 : 여러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컨대 이제부터는 모두 조선 부인들은 군국의 어머니, 군국의 아내 군국의 여성으로서 완전히 되어야 할 각오와 결의가 필요하며 동시에 이제부터 모든 것을 살핌으로 옮기며 달음박질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보국단부인대에서 누구든지 실행할 때에는 여러분께서 손수 나와 힘을 써주셔야겠습니다.


출석자
김윤정(金允禎) 서은숙(徐恩淑) 박인덕(朴仁德) 차사백(車士白) 임숙재(任淑宰) 허하백(許河伯) 홍승원(洪承嫄) 최희경(崔熙卿) 박마리아(朴瑪利亞) 고황경(高凰京) 최정희(崔貞熙) 임효정(林孝貞) 노천명(盧天命) 김선(金善) 모윤숙(毛允淑)
일시 : 5월 25일 오후 7시
장소 : □□□□□□□□


<출전: 「臨戰報國團婦人隊主催座談會 2-자장가들릴에도 충군애국의담어」, '매일신보', 1942년 6월 1일>


12) 임전보국단의 발전적 해소


총력연맹의 신발족 따라 임전보국단 발전적 해소, 작일(昨日) 전체역원대회에서 결의 최후의 승리의 저력을 이룰 국민총력의 결집이란 국가적 요청에 의하여 국민총력 여맹은 밑에서부터 뻗쳐오르는 민중의 힘을 충분히 반영할 새로운 구상으로 근근 신발족을 지을 터인데 조선임전보국단에서는 시국의 중대성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고 반도 민중과 총력을 한 곳에 결집시켜 그 힘을 최대한 도로 발휘 하여야겠다는 열의와 의도 아래 어제 29일 전체역원대회를 소집하고 이 석상에서 동 단체의 발전적 해소를 단행하고 그대로 연맹에 합류할 바를 결의하였다.

이로써 전선(全鮮) 각지에서 세포적 역할을 하던 동 단체 소속의 각도 지부 부인대 및 각도 지부 소속의 각 기관도 전부 동시에 해소되는 것은 물론이요, 동 단체 1만 수천의 역원과 단원은 발전적 해소를 단행할 이날부터 총후임무 중차대한 결의를 더욱 굳게 하고 오직 총력연맹을 통하여 태평양전쟁 완수에 총력을 경주하기로 되었다.

새로운 지표를 바라보고 발전적 해소를 결행하는 조선임전 보국단의 전체 역원회는 어제 29일 오후4시 반부터 부내 종로 2정목 기독청년회관대강당에서 열리었다.
이날 막을 닫는 마지막 회합이라 평양·대구·청진·강릉 등 지방 각지에서 지부의 대표자가 상경 참석하였고 본부 측의 가산린(佳山) 단장, 이가끼(井□) 부단장, 기꾸야마(菊山) 이사장을 비롯하여 고원훈(高元勳), 금천성(金川聖), 유억겸(兪億兼), 장덕수(張德秀), 박흥식(朴興植), 임효정(林孝貞) 씨 등 약 40여 역원이 회동하고 신임 야기(入木) 본부 보안과장이 임석한 가운데에 회의는 열리어 먼저 일동기립하여 경건히 국민의례를 마치고 단장 가산린(佳山麟) 씨로부터 이번 전체 역원 소집에 대한 인사가 있엇다.

뒤이어 야스교(安興晟煥) 씨의 그동안 사업 보고를 행하고 기꾸야마 이사장으로부터 국민총력연맹의 기구 개혁에 따라 임전보국단의 발전적 해소와 여맹의 합류에 관한 제안(提案)설명이 있었는데 이 제안에 대하여 신중 협의한 결과 동 해소안을 만장일치로 채결함에 이르렀다.

이와 동시에 해소 성명서 발표의 건에 대하여 기초위원 3명을 선정하고 즉석에서 별항과 같은 성명문을 작성하여 위원 서춘(徐椿) 씨가 이를 낭독하자 박수로서 초안대로 승인하고 동단체의 사무 정리의 청산위원으로 박흥식(朴興植), 김사연(金思演) 등 5씨를 선출 일임하기로 하고 이상으로서 해소절차에 관한 협의를 마치었다.

다시 일동 기립하여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하고 고원훈 씨의 발성으로 천황폐하 만세를 봉창한후 동 오후 5시 50분경 동 대회 마지막 대회는 막을 닫았다. (사진은 임전보국단 해소결의 광경)


성명서


□추(秋) 시국이 더욱 중대함에 비추어 아직 병역의 영예를 짊어짐에 미치지 못한 우리 반도 민중은 총후에서 □분의 성(誠)과 힘(力)을 바쳐 국운의 진전에 기여할 바를 사명으로 본 단체를 결성하고 민간의 자발적 애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래 수만 동지의 공명(共鳴)을 얻어 각도 지부의 조직을 보고 □□적 □□적 또는 노무(勞務)적으로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 왔는바 12월 8일 태평양전쟁의 발발은 국내 정세에 일대 진전을 가져와 □□□□로부터 □□□□에 달하여 남방(南方)의 대전과로서 결전□□는 다시 건설태세와 서로 표리가 되어 병행하게 되었다.

그 위에 금년 5월 8일 저 획기적인 조선징병제의 시행이 발표되어 본단 본래의 취지,사명에 일단의 진전과 비약이 계획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본단은 정세의 진전에 대응하여 새로운 □□에 향하여 구상으로서 나왔는데 이때에 종래 자발적이었던 국민총력연맹이 개조되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중의 열의를 결집한 새로운 총력연맹이 민간단체로서 재발족하려는 데 따라 □□이 □□하는 새로운 구상은 십분 이중에 넘쳐 얻게 되었으므로 본단은 지표를 같이하는 민간운동을 일원화하여 국민의 총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 전시하 가장 절실한 국가적 요구인 것이라는 견지에서 이에 발전적 해소를 하여 총력연맹에 합류함으로써 더욱더 보국(報國)의 성(誠)을 효과 있게 하고자 하는 바이다.
1942년 10월 29일

조선임전보국단


정세 진전에 대응, 민중총력을 일점(一點)에 집결, 가산(佳山) 단장의 해소의 변(辯)


이날 전체 역원회에서 해소결의를 행한 후 가산린(佳山) 단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본단이 해소하게 되는 이유는 성명서에 표명한 바와 같이 현시국하에 제반 정세의 진전에 대응하여 새로운 구상(構想)으로서 나아가려고 하는 때에 총력연맹이 또한 민간단체로서 재출발하기로 되어 우리들은 국민총력을 일점에 집결하여 그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는 견지에서 이번 해소를 단행하고 연맹에 합류하기로 되었다. 이에 따라 본단 소속의 각도 지부 부인대 및 각도 지부 소속의 각 기관도 전부 해소하게 된다. 본단이 결단되어 충분한 활동이 없었던 것은 유감이나 그러나 다소 성적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해소된 이후에도 더욱 임전보국단의 정신을 살리어 보국 운동에 매진하
고자 하는 바이다. (사진은 가산린 씨)


<출전: 「總力聯盟의 新發足 라 臨戰報國團發展的解消-昨日, 全體役員大會에서決議, 情勢進展에
對應 民衆總力을 一點에 集結, 佳山團長의 解消의 辯」, '매일신보', 1942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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