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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료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9 (12) -주요 친일단체(1937~1945)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7.05.05|조회수72 목록 댓글 0

인민전선과 국민전선(신변혁원리의 개요)


(1) 괴물을 둘러싼 2대 진영


공산주의의 괴물이 구라파 천지를 배회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구미의 괴물은 러시아혁명의성취를 통해 세계의 괴물로 성장하고, 지금은 지구 곳곳을 배회하면서 온갖 소동과 괴변(怪變)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도깨비와 같은 ‘괴물의 나라’ 소비에트 연방의 출현은 얼마나 많은 인류에게 두뇌의 평정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가. 또 세계 각 국민은 이 괴물이 뒤덮은 ‘수수께끼의 세계’로 인해 얼마나 긴 기간 동안 고통스러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이 괴물에 둘러싸여 괴로웠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그리고 대규모적인 현실적 고난을 앞으로 맛보아야할 우리 주위의 모든 정세는 매우 긴박하다.
공산주의의 괴물이란 원래 자본주의적 사회의 외부로부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대지의 숲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깨비도 아니다. 19세기 이후 부패한 구미자본주의 사회의 체내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자본주의 자신의 질병 때문이다. 거의 치명적인 이 질병은 구주대전에 의해 심하게 쇠약해진 세계자본주의 체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절단하여 러시아 혁명이라는 형태로 구체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결국 세계혁명의 단서를 열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오로지 세계혁명의 성취와 그 지도를 임무로 하는 공산주의운동의 세계진영으로서 1919년 창립된 코민테른(국제공산주의연맹)의 출현은 그렇지 않아도 전후의 피폐에 편승하여 부흥하던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이후 17년간 코민테른은 독특한 조직방법과 선전선동의 매력을 통해 세계 각 국민의 모든 불평불만 속에 파고들어가 이들 인민 사이에 불타는 투쟁의식과 반역정신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세계 각국의 인민을 자기의 정치적 사상적 지배하에 묶어두려고 획책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이 괴물의 퇴치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왔다.

특히 코민테른의 도전적 공격은 더욱 각국의 반발을 유발시켰다. 공산주의와 대립하여 자국의 국민적 개성과 국가적 독자성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 소위 파쇼국가가 출현하였다.

세계는 지금 공산주의와 파시즘이라는 2대 진영으로 분열하여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비참한 투쟁의 장면에 직면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정세로 인해 코민테른의 소위 세계 공산주의화의 이상은 이제 그 실현이 더 이상 곤란해졌다.

이에 최근 코민테른은 정책을 바꾸어 각국 공산당의 영도 아래 파쇼에 반대하는 모든 인민부분〓자유주의 여러 당파와 제2인터내셔널 세력을 포함하는 소위 ‘인민전선’을 결성하여 파쇼에 대항하려는 새로운 전술을 1935년 제7회 대회에서 결의하였다. 최근 스페인에서 소위 인민전선정권이 성립한 것은그 표현의 하나이다.
한편 파시즘 국가에서는 인민전선에 대항하고자 소위 국민전선을 결성하고, 반공산주의적인 모든 국민부분의 동원을 통해 공산주의에 대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양 전선의 대립상태는구주에서 점점 첨예화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세계정국의 특징으로서 앞으로의 국제관계는 이러한 두 진영의 상극관계를 중심으로 그 동향이 결정될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일본과 독일, 일본과 이탈리아의 방공협정 성립은 이러한 제반 소식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일본이 독일과 이탈리아와 같은 파쇼국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협정은 단순한 국제외교 사정의 표현일 뿐이다.

오늘날 구주에서 볼 수 있는 이데올로기 블록 즉 파쇼 블록에 일본이 가담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독자적인 입장과 이해관계로부터 방공을 강화하기 위해 파쇼국가인 독일 및 이탈리아와 이러한 외교협정을 맺었
을 뿐이다.


(2) 코민테른의 실체


공산주의 세계혁명이라는 커다란 기치를 내걸고 세계 각국을 향해 진군하는 코민테른과 소비에트연방의 양자는 과연 어떤 관계로 맺어졌을까. 코민테른의 최후적 정책〓아마도 이의 최후적인 형태로서의 인민전선전술이 무엇을 진정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일은 오늘날 단계에서의 세계 공산주의운동의 진정한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주대전 중의 기습적 산물로서 소연방이 태어났는지의 여부를 떠나 세계 각국은 소비에트 정권의 실패를 예견했고, 대전의 종결과 더불어소비에트 권력의 붕괴를 도모하던 제2인터내셔널조차도 소비에트 권력의 수립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러한 외부적 압박의 조건이 없더라도 당시 소비에트 민중은 자신들이 내세운 새로운 권력을 잘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피아 모두 확신할 수 없었다.

소비에트 권력의 확립이 기습적 사실이었다고 한다면,20년간이나 이를 유지하고 세계에 건설한 하나의 사회주의국가로서 사회주의적 사회질서와 조직을 확립하였다는 것은 정말로 거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적의 연속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구주 각국에 전화(戰禍)와 전후의 피폐에 뿌리를 둔 소위 직접적 혁명정세가 도래한 것이다. 또 이와 관련하여 혁명정권이 볼셰비즘 독특의 강력한 전술적 전환을 통해 연이어 전개되는 내외의 새로운 정세를 소비에트 정권 확립을 위한 영양(營養)으로 가장 타당하게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중시해야 할 중요한 조건은 소비에트 민중 특유의 우둔함이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환난과 빈곤과 인종(忍從)을 참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 소비에트 정권 확립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복한 것은 두 조직의 힘이었다.

즉 국제적으로는 코민테른의 세계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지도조직이고, 국내적으로는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조직이다.

사회주의 단계에서의 소비에트 연방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형태는 러시아 공산당의 독재를 의미하고, 이는 더욱이 1인의 절대적 독재관이 필요하였다. 코민테른의 경우에는 세계 각국의 프롤레타리아적 요소 및 프롤레타리아의 동맹자인 농민 식민지 민중을 언제라도 소비에트 정권 옹호를 위해 지령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세계적 단일조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였다.

즉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말을 역용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은 소비에트 연방다’는 것을 선언함과 동시에 세계의 자본주의제국의 소연방에 대한 공격에 대비하여 ‘너희들의 조국 소비에트 연방을 옹호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코민테른은 각국의 프롤레타리아 농민을 향하여,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민중을 향하여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라는 슬로건 아래 민족적 내란과 정치적 반란, 경제적 파괴 행동을 선동하였다.

친애하는 향토를 저버리고 그리운 전통문화와 도덕 등 모든 민족적 개성에 거역하는 반역을 결행할 것을 코민테른의 권위로 세계혁명이라는 아름다운 벨소리에 숨어 명령하고 있다.
코민테른은 이를 통해 완전히 소연방의 별동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즉 코민테른은 세계프롤레타리아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기관이 아니라, 소비에트 1억여의 민중의 이익을 위해 아니 소비에트 정권자의 옹호를 위해 10수억의 세계 민중을 향해 피와 자유를 희생하라는 것을 요구하기 위한 기관이다.
과거 10수년간 세계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 농민 식민지 민중은 얼마나 열렬히 그들의 빛나는 조국을 옹호하고자 명예스러운 결의 하에 많은 희생을 지불해 왔는가. 오늘날의 소련 권력의 확립은 실로 이들 세계 민중의 피와 자유의 희생으로 세워진 것이다.
최근 코민테른의 각국 지부 앞으로 보내진 모스크바 본부의 지령 중에는 소련 옹호의 요구 이외에 그들 지부 민중의 개별적 이익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개별적으로 고려되고 있다지만 그것은 거의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의 부분적인 것이다. 그 부분적인 것조차도 중심 강령인 소련 옹호의 제목에 엄밀히 종속되어 있다. 그 내용은 여기에서 발표할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하지만, 사려 깊은프롤레타리아로서 그 지령을 손에 쥔 자는 이를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령의 외관은 예를 들면 개별적 특수의 색채를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상 코민테른 지령의 근본적인 원칙은 항상 소련옹호 중심주의에 있을 뿐, 각 지부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 국가의 실정과 민족적 개성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또 아무리 그 지령의 수행 결과가 지부 민중의 이익에 반하여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에 곤란하더라도 코민테른은 그것들이 단지 소연방의 옹호라는 이익과 일치한다면 그 지령 수행을 위해 지부 국가 민중의 동원을 요구할 뿐이다.
이처럼 코민테른은 완전히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 1919년 창립 당시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리즘의 양심은 언제부터인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단지 탐욕스러운 소련 기관의 일부로서 각국 민중에게는 무겁고 힘든 질곡으로 변해버렸다.
생각해보면 1919년 10수개국의 대표자 등이 모여 코민테른을 창립한 당초의 원칙은 적어도 그 표면상의 체제에서도 세계프롤레타리아 식민지 반(半)식민지 민중의 해방이고, 이들 세계민중 부분의 우군이라는 것을 자임함으로써 세계 민중의 행복을 약속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소련 옹호를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코민테른의 이러한 지도정신은 3·1운동 이후 조선민중의 진보적 요소를 놀랍게도 자극하여 종래의 윌슨이즘에 기대던 민족해방의 염원은 레닌이즘으로 옮겨가 앞으로는 오로지 코민테른에 의해 성취될 수 있을 것으로 확언하였다.

이후 조선의 민중은 코민테른의 명령을 하늘에서 내린 복음과 같이 신봉하고 모든 희생과 노력을 바쳐왔다.
하지만 이제 코민테른의 정체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련 옹호의 기관 이외에 그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코민테른은 더 이상 우리의 기도기관도 우군도 아니다. 그에 대한 모든 기대는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애초부터 망신(妄信)이었고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주사변 이후 소련의 극동정책은 선만(鮮滿)을 하나로 삼아 일본 공격의 저지선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러한 오늘날의 정세에서 소련은 우리에게 공동의 적이지 우군이 아니다.
이에 우리는 종래의 코민테른에 바라던 모든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우리의 독자적인 경지의 개척과 독자적인 지도정신의 수립을 통해 민족갱생의 사명을 다하려는 결의를 견고히 해야 한다.

소위 민족적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실천적 마르크스주의에 오랜 기간 동안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실천과 경험을 통해 그 비구체성과 비현실성이 증명됨에 따라 일시적으로 그 정도로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를 매료시킨 □□□도 점차 그 신통력을 소실할 것이다.


(3) 세계정책의 파산


코민테른 정책의 또 한 가지 중대한 오류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와 그 몰락에 관한 잘못된 견해로부터 도출된 지도정책상의 오산이다.
오늘날 세계자본주의는 1919년 코민테른 창립 전후와는 달리 그 기구와 구성상에 중대한 변화와 현저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경제기구의 본질적 수정과 합리화를 통해 그 자신의 체내에 포장되어 있는 모순을 스스로 양기(揚棄) 극복하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 사회관계의 조정과 개선을 통해 그 전모를 변형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목표를 향해 발전 비약하고 있다.

코민테른의 문서가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몰락 현상은 이제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찾아볼수 없다.

설령 자본주의적 제도가 양기되었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를 자기의 영상에 맞추어 형상을 만드는 자본주의는 이제 각 국민의개성〓역사, 전통 및 생활실정에 적응한 특수적인 것으로 변형되고 있다. 즉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 체계는 각국의 경제적 자립(autarkie)에 의거한 블록적인 단위로 결성되어 더욱 개별적 특수성을 농후하게 발휘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국내적으로는 자본주의 자체의 자동적 변혁에 의해 많은 결함을 보정하여 더욱 그 사회적 적응성을 증대하고 있다.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적 자본가적 생산방법으로는 국민의 개성과 전통을 가장 잘 유지하려는 반(反)자본가적 신세력의 출현과 그 지도 아래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와 제한이 가해진다. 경제상 정치상의 자유주의는 점차 퇴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 국민사회는 자본주의가 지니는 일반적 결함으로부터 구제되고, 각 국민은 그 국가적 민족적 전통과 개성에 적응하는 새로운 사회 이상을 추구하면서 점차 진전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전형(轉形)의 현상은 이를 통해 공산주의 혁명의 예비적 과정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종래의 자본주의가 각 국민의 특수적인 사회적 경제적 근거에 입각한 신체제로 발전 비약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의 전형 작용이 앞으로 어떠한 발전 비약의 과정을 거칠 것인가라는 예측은 잠시 보류하더라도 이러한 여러 특징이 코민테른의 세계정책을 어긋나게 하는데 충분하다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이러한 특질적인 변전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구체적으로 각 민족사회에 대해 코민테른이 아무리 공산주의 공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해도 이는 모두 실패이다.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지금 오늘날의 세계를 러시아 혁명 직후의 정세 하에 있던 자본주의 사회와 똑같이 인식하여 단일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혁명의 과정을 기계와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 이후 직접적 혁명시대를 경험한 구주의 자본주의 국가 및 민중은 이제 자기의 국민적 개성을 각성하여 독일적, 이탈리아적 혹은 스페인적 국가민족생활의 재건을 요구하고 있다.

공산주의 세계혁명에 관한 추상적 원리와 공식이 자국의 현실정세와 자국민의 개성에 적합하지 않는 한, 진보적인 구주
의 프롤레타리아 그 가운데에서도 독일과 이탈리아와 같이 정치적 계급적 과제가 있는 민중이 종래의 행보를 일소하고 그들의 독자적인 생활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향해 매진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전선은 실로 이러한 요구에 따라 결성된 것으로 그 현실성과 적응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시대의 사회변혁에 관한 추상적 원리와 공식은 무조건적으로 모든 구체적 사회에 적용되는 것이아니다.

설령 변혁원리는 추상적 일반적인 것이라도 좋지만 변혁과정 그 자체는 항상 적확하고 구체적인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소비에트 혁명의 양식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러시아적 □□□□□□□□□.
우리는 이번 스페인 동란에서 불행하게도 인류의 가장 서글픈 장면을 발견하였다.

소련은 구주에서의 자기 지반을 구축하기 위해 스페인 민중을 자멸의 길로 내몰았다.

소련은 너무나도 자기의 이익만을 중요시하여 타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지도자는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의 경우는 소련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행위는 고통일 뿐이라고 강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소연방의 존재를 단지 그것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결코 저주하지 않는다.

소연방의 사회주의라는 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소연방 국민과 관련되는 문제로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소련의 사이비 세계정책에 기만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련이 취하는 주의와 정책이 설령 소련에게는 진리일지라도, 그것이 세계 모든 나라에게도 적합하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현명한 코민테른 지도자에게 이러한 과오를 일부러 자행하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레닌 사후의 주관적 변화는 물론 세계 일반의 객관적 정세의 격변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련국내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곤란한 임무와 상대적 안정의 기초 위에 선 세계자본주의 국가의 새로운공세, 즉 구주에서의 각국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실패를 계기로 맹렬히 대두한 파시즘의 공격 등의 정세는 세계혁명 정책수행에서 미증유의 곤란을 수반시켰다. 따라서 소비에트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불안감을 느끼기에 이르렀고, 결국 세계정책의 근간을 보다 일원적으로 소비에트 연방 옹호하는 것으로강화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변화된 세계정책이라는 것이 결코 각국의 국정(國情)과 민정(民情)에 적응하는지의 여부는 원래부터 당연히 고려할 문제도 아니었다. 다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련의 이익 옹호를 위해 편리하도록 이용하면 될 뿐이다.

따라서 소련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를 들어 평시에는 무역시장 개척 등의 경제전을 유리하게 전개하고, 전시에는 쟁의 내란을 선동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시키면서 어부지리를 얻을 필요가 있다. 소위 세계정책이란 것은 바로 이를 위해 세계 프롤레타리아를 움직이게 만드는 입발림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세계 프롤레타리아를 원조하여 혁명을 성취시킬 만큼의 희생을 지불하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대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그렇다.

즉 국민생활의 일부에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결혼과 가정생활을 가족제도의 기조 위로 복구시킨 것처럼 세어본다면 얼마든지 많은 예가 있다.

이것들은 소비에트 정권자에게는 원래부터 과오도 아니고 변절도 아니다.

필요하다면 24시간 이내에 정책을 바꾸는 것조차 결코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격변하는 국내정세에 순응한다.

다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믿고 이를 일관되게 준수하려는 많은 공산주의의 신도야말로 가련할 뿐이다.
그들의 실천적 결과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적 전체주의, 또한 앞으로의 세계혁명의 주장과 인민전선의 전술은 모두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소비에트 연방의 옹호 그 하나만을 위해 다해야 한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농민과 식민지 민중이 진정으로 자신을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면 이러한 장사꾼과도 같은 코민테른과 소련의 당착적인 지도로부터 빨리 자신을 이탈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국가적 민족적 개성을 자각하여 자기 독자적인 진로를 개척해야 한다.


(4) 새로운 변혁원리로서의 대국가주의


이상 인민전선과 국민전선의 개의(槪意) 및 그 비판을 시도해보았다. 이하에서는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자본주의사회 변혁의 새로운 원리인 대국가주의에 대해 검토하겠다.

오늘날 인류사회는 적어도 자본주의 이후의 인류사회는 각 국민과 민족이 서로 흩어져 분산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국가적 장벽에 의해 각자 독립적인 외관을 띄고 있지만, 그것은 봉건시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각 국민생활의 근저에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긴밀한 연계성이 유지되고 있고, 또 절대로 이를 필요로 한다.

반대로 국가적 장애 때문에 인류의 사회생활이 모순의 일면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점조차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인류역사의 각 시대에서는 종족적으로 분산 고립적인 존재였지만, 근대자본주의적 생산방법의 발달에 따라 각 민족의 생활범위는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각 민족 간의 생활은 차츰 민족 및 국가의 장벽을 넘어서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약소민족이 그 독립적 존재를 유지하기 곤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오늘날 세계경제의 특질적인 기초는 이들 약소민족의 개별적 분립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세계 약소민족은 어떤 형식으로든 대국가로 통합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 하에 놓여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이상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국가 그 자체를 부인하면서 세계의 인류가 단 하나의 ‘인류사회’로 귀속할 정도의 물질적 기초나 각 민족 간의 정신적 연계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이를 상상할 수 없다. 이들 여러 민족의 일대국가로의 통합과정의 귀추는 지리적, 경제적, 역사적 및 인종적으로 서로 접근한 기초 위에서만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자본주의는 앞의 각 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무언가 새로운 형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끝없이 바꾸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체계로서 공산주의와 상대하는 파시즘이 있는데(우리는 파시즘을 바라보며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라고 단정한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없앨 수 있는 많은 조건 위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자본주의적 모순을 없애는 과정은 대립적이 아니라 합성적인데, 일견 역설적인 특수 양태 중에 파시즘의 진정한 모습이 담겨있다), 파시즘도 앞에서 말한 공산주의와 같이 각 민족사회에 모두 무조건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경우 섣불리 공산주의의 환영(幻影)이나 파시즘의 □□를 뒤쫓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세계 각 국민에게 일반적으로 적응해야 할 추상적 공식을 발견할 목적으로 하거나 또 그 공식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무용하다. 우리는 다만 우리 사회의 실정에 적합한 개혁을 통해 우리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자본주의 사회변혁에 관한 기존의 여러 이론의 분석과 비판 위에 서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혁 원리로서 대국가주의를 주창한다.
대국가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의 근본적 시정과 공산주의 파시즘에 대한 비판 위에 입각하여 우리 사회생활에 부여된 여러 현실조건을 우리의 민족적 개성에 적응시키고 가장 합리적으로 우리의 이익을 위해 변혁시키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이는 하나의 사회사상 체계로서 독특한 민족적 색채를 모든 부문에서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국가주의는 사회변혁에 관한 공산주의 추상공식을 부인함은 물론,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과도 다른 우리 사회의 독특한 지도 원리이다. 따라서 그 본질은 우리가 지녀야 할 ①전체의식을 기초로 하고, ② 현실적 여러 조건 위에 입각하여 우리 생활을 현실적으로 발전 비약시키는데 필요하고, ③ 도의국가의 성취를 조건으로 한다.


① 전체의식
역사는 모든 국가가 장래에 부흥하려면 필히 그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대국가주의는 개인적인 궤도로 벗어난 자유주의에 반대한다.

우수한 역사전통과 고도의 생활문화를 지닌 민족사회에서는 국민상호간에 우열의 차별적인 측면을 설정하거나 차별을 낳을 소지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다. 모든 국민은 하나의 전체적 생활목표를 중심적으로 긴밀하게 조직해야 한다. 국민 각개의 이익은 긴밀하게 국가의 전체적 이익에 종속되어야 한다.

하나의 민족사회는 단 하나의 의식을 지니고, 단 하나의 사상과 목표를 지닐 뿐이다.

이러한 전체의식만이 국민 각 개인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사회를 강대하게 만든다.


② 현실성
대국가주의는 우리에게 □□에 불과한 민족자결주의와 공산주의의 환영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현실적이어야 한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은 공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인류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서는 각자가 현실을 의심하거나 불가사의한 마음을 품는 것은 치욕이다. 더구나 현실과 유리된 공상을 그리며 자기를 기만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생활에서도 그렇다. 항상 현실에 의거하여 현실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현실은 구체적이고 진리이다. 그렇다고 쓸데없이 현실만을 추수(追隨)하면서 무조건적으로 현실과 타협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활목표에 따라 주어진 현실을 더욱 발전시키고 또한 이를 창조하는 것이 임무이다.


③ 국가형식
국가는 공산주의 이론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계급투쟁의 기관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역사적 현실적 총체의 존재형식인 발달된 민족사회는 항상 총체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다.

그 총체적 존재는 국가형식을 절대적 필요조건으로 한다. 우리가 주창하는 국가는 졸속적 고립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고정적인 것도 아니다. 국가발전의 각 단계에서 필요한 탄력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 3항은 대국가주의 성립의 근거를 이루는 기본적 형식으로 그 기조는 동양적 왕도사상이다.

이왕도사상은 조선민족은 물론 동양 여러 민족의 역사전통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우리 생활은 이를 규범으로서 삼아왔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동아 여러 민족의 개성을 구성하고 있고, 앞으로 우리의 새로운 생활의 기조도 역시 여기에 있어야 한다.
대국가주의는 이 왕도사상을 근대적 여러 조건에 적합 확충시켜 더욱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임무이다.

다음으로 대국가주의는 오늘날 모든 사회의 공통적인 문제인 민족과 계급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① 여러 민족 간의 관계
수개의 서로 다른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포섭되어 복합국가를 형성한 사실은 역사의 각 시대를 통해 많은 사례가 있다. 특히 최근 여러 국민과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조건은 영토 인구 자원 기타 각 부면에 걸쳐 점차 일원적 블록으로 통제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하나의 민족과 국가는 오히려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이러한 이상은 각 민족생활의 행복을 저해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약소민족의 경우, 이는 대체로 국제 충돌의 원인을 만들 뿐이다. 그래서 종족적으로 혈연이 서로 비슷하며 지리적
경제적으로 이해가 서로 공통하고, 문화적으로도 전통이 서로 유사한 수개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단위로 통합되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호부조의 기초 위에 동포적인 협력을 확립하여 보다 풍부한 산업자원, 보다 우수한 종합적 문화체계, 보다 강력한 노동력을 통해 여러 민족〓국민 각자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증진하겠다는 것은 인류가 가장 바라던 바이다. 대국가주의가 이상으로 삼는 민족관계는 대체로 다음과 같아야 한다.


가. 여러 민족의 평등


대국가주의국가로 통합된 여러 민족은 평등의 원칙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민족이나 국가의 구별이나 현재의 문화상의 차이와 같은 조건은 이들 여러 민족을 불평등한 지위로 두어야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여러 민족은 경제생활 사회생활 국가생활 및 문화생활의 각 생활영역에서 평등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국가주의 국가는 한 민족의 정복이나 침략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여러 민족의 행복과발전을 목표로 결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민족 사이에는 우월과 비하의 소격(疏隔)이나 대립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평등이란 국민생활 사회생활상에서의 여러 기회의 민족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 개인생활의 기계적 평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 이러한 대국가주의 국가 실현의 과정에서는 여러 민족의 문화와 기타 실질상의 차이가 사실상 존재하기 때문에 보다 발달된 문화와 능력을 지닌 민족이 그 지도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각 민족이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기까지의 과도적인 현상으로 영구히 민족평등의 원칙을 깨트려서는 안 된다.


나. 이해관계의 일치


권리 의무의 평등은 또 한편으로 이해관계의 일치가 필요하다. 즉 대국가주의 사회에 생활하는 여러민족은 이해관계가 날로 일치되어야 한다. 경제생활 정치생활의 단일화를 통해 여러 민족 사이에 개재되어 있는 이해관계의 모순을 차츰 극복하고, 따라서 이를 통해 모든 의심과 증오, 원차(怨嗟)가 일소될 것이다.


다. 동포적인 협력의 기초 확립


위와 같은 근본적 여러 조건의 성립은 필연적으로 여러 민족 사이에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방면에서의 희생과 봉사를 동반한 동포적인 상호부조의 결과를 가져온다. 즉 각 민족은 공동의 이익을 옹호하여 전체의식에 의거한 공동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협심육력(協心戮力)에 노력할 것이다.

이는 여러 민족 사이에 호흡과 □□을 같이하는 동포적인 우애를 만들어내는 기초를 이루는 근본조건이다.
이러한 동포적인 협력은 여러 민족 사이에 동종동근의 동포 감정을 생성시키는 자연적 결과를 초래하고, 적어도 여러 민족의 알력이나 대립을 야기하는 심리적 불안도 완전히 제거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서 모든 생활현상〓생활양식과 결혼 기타에서 많은 동포현상이 축적되고 여러 민족의 결합은 더욱공고해질 것이다.


라. 민족의 일원화


이상 여러 조건에 의해 성립된 신생활의 영속적 유지의 결과, 동일 국민으로서의 의식〓국민정신은 더욱 심화되어 정신과 물질 양면에서 완전히 일체가 된다. 즉 종래 여러 민족을 구별하던 역사전통과기타 민족적 개성상의 차이의 조건은 차츰 소멸하여 민족은 여기에서 완전히 일원화된다. 물론 이를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원래부터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세(現勢)는 필연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차이조건의 소멸이란 민족 외곽적(外廓的) 구별의 소멸을 말하는 것으로 문화전통 그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토지에 따라 언어풍습은 다르지만 동일민족임을 방해하지 않고 전통문화의 □□부분을 □□ 발전시킴으로써 오히려 전체로서의 문화를 향상시킨다.
또 민족의 일원화는 소위 동화과정과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동화는 문화가 높은 민족이 야만 미개한 민족을 문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인데, 일원화는 문화과정이 거의 동등한 민족이 상호 그 공통성을 인정하여 차이조건을 버리고 종래 여러 민족 사이에 보존되던 좋은 전통부분과 개성, 즉 각 민족 고유의 역사전통·문화·풍습 등 대국가생활에 적합한 부분만이 종합적으로 보존 융합되어 우생학적 발전을 이루고 혼연일체가 되어 커다란 발전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볼 때는 종래의 갑 민족도 을 민족도 아닌 더 우수한 제3 민족이 출현하는 것이다. 민족이란 절대로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성 발전하는 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 대국가주의에 의한 민족문제 해결의 형식조건을 제시했는데, 이것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정신적 조건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하에서 말하는 황도주의 설명을 통해 더 분명해질 것이다.


② 계급대립의 폐절(廢絶)
대국가주의 사회에서는 국가적인 전체의식에 입각하여 모든 사회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각 개인은 단지 국가적 이익에 종속된다. 개인 상호간의 계급적 우열 또는 종속관계는 모든 생활부면에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 자본사회에서와 같은 계급대립의 조건은 예상할 수 없다.
동양적 왕도사상을 국민정신의 기초로 삼는 대국가주의 사회에는 자본사회에서 볼 수 있는 물질중심의 인생관과 개인관계의 규정이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다 고급의 국가 전체의식이 작용하여 국민상호간의 계급적 대립은 자연히 소멸된다.
이상 대국가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여러 조건을 대략적으로 규정하였다. 원래 우리가 말하는 대국가주의라는 것은 그 전제로서 일반적 사회사상이 아니다. 이 사상체계는 조선민족적인 것이고 동시에 일본적인 것이다.
대국가주의의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본적인 여러 구체적 조건과 조선민족 및 기타 적어도 일본의 국가적 생존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는 여러 민족과의 구체적 관계를 바탕으로 고찰해야 한다.


(5) 일본의 특수성과 동아 여러 민족


조선민족의 장래에 대한 고찰에 앞서 일본 전체의 장래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일본은 동아에서 자본주의경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근대적 프롤레타리아를 유력한 국민부분으로 삼는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는 부분적이면서 계급투쟁의 관념적 실천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운동은 최근에 이르러 급격히 그 방향을 전환하면서 더욱 일본적 개성이 농후해져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일반적 분위기로부터 자기를 구별하고 있는 것은 아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많은 부분에 추상적 계급의식 대신에 일본의식으로 불타는 경향은분명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획기적 전환을 의미한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동아에서의 여러민족의 그것에 비해 매우 진보적이었다. (국민혁명 이후 지나의 무산자운동은 상대적으로 아주 활발한 전개를 보였는데, 엄밀히 말해 그 본질은 자본국의 프롤레타리아적 운동이라기보다 선자본주의적 반식민지 민중의 민주주의적 반제운동에 불과하다.) 특히 그 이론적 실천적 지도의 임무는 조선무산자운동에서 중요하게 작용하였고,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완전히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일익을 담당하는 지위에 있었다.
동아 여러 나라에서의 프롤레타리아운동은 대개 코민테른의 영향 아래 있었는데, 특별히 일본은 유력한 지부국(支部國)이었다. 그것이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의 국내적 국제적 정세의 변화를 통해 세계에서의 일본의 국제적 지위의 앙양과 그에 따른 국제외교적 및 국제경제적으로 긴박한 새로운 정세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종래의 지도방침을 일변시켜 이론적 실천적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즉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 속으로 파고들어간 코민테른적인 여러 이데올로기〓기계적 국제주의, 편파적 세계정책, 기타 비(非)일본적 관념은 결국 그 모습을 일본적 개성 속으로 몰입되고 말았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는 지금 자기의 민족적 개성〓일본정신 속으로 자기를 되돌려 이를 더욱 고귀한것으로 발전 앙양시킴으로써 일본 민족과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동아에서의 여러 민족사회의 이익을 위해 그 변혁을 위해 새로운 지도 원리를 희구하고 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최근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새로운 지도 경향은 일본민족의 개성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조건에 근거하는 것으로 이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특수성임과 동시에 동양적 특수성이기도 하다.
근대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징이라는 보편성 위에 세워진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체계는 각 국민의 특수성 때문에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특수는 일반을 이긴다는 공식은 여기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무릇 특수는 일반에 비해 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사회변혁에 관한 운동은 특수적인 것임과 동시에 항상 구체적일 필요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일본주의〓일본정신이란 오늘날까지의 일본민족 역사가 승화된 것이다.

이는 일본민족의 전통을 이루고 있고, 민족적 개성의 근거를 구성하고 있다.

일본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최고의 표현으로서 우리는 황도정신을 볼 수 있다.

황도정신은 그 일반적 기초를 동양의 왕도사상 위에 둔다.

왕도사상은 또 동양 여러 민족의 모든 생활상의 정신적 기초 및 사회생활상의 규범을 이루고 있다.

특히 동양 여러 민족 가운데 일본, 지나, 조선 및 만주 등 여러 민족 생활 역사의 근저에는 이러한 왕도사상이 흐르고 있다. 이는 모든 동양 여러 민족을 일괄하여 구미 기타 여러 민족과 구별하는 가장 근본적인 역사적 사회적 특징이자 특수성이다.
이러한 동양적 특성을 일본적 조건 아래 가장 잘 보존 유지하고 근대적으로 세련되게 발전시킨 것이일본주의이다.

동양적인 왕도사상은 일본의 황도정신을 통해 근대적으로 완성되었다.
황도정신은 멀리 일본의 건국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① 일본의 국체는 세계무비(無比)의 독특한 것으로 황조신칙(皇祖神勅)에 의해 나라를 세우고 만세일계의 천황을 우러르고 있다. 역성개조(易姓改朝) 시마다 동요하지 않고 고금 일관하여 국본(國本)은 항상 안정되어 있다.
② 천황은 국가의 원수임과 동시에 혈족적으로 국민의 모든 씨족의 대종(大宗)이다. 따라서 건국의신을 시조로서 군민(君民)은 동조(同祖)이고 제정(祭政)은 일치한다.
③ 국민은 모두 천황의 적자(赤子)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원칙이다. 소위 일시동인(一視同仁)으로서 계급도 차별도 존재하지 않고 한사람이라도 불평이 없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④ 국민도덕은 생활의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경신숭조(敬神崇祖)를 통해 대본(大本)을 이룬다.

향토국가는 조선(祖先)의 □□으로서 애국관념은 신과 조선에 대한 감사 보은이고, 조선의 유풍(遺風)의 현창이다.

따라서 동포애도 사회봉사도 희생적 정신도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다.
⑤ 모든 물건〓재산은 신이 만든 것으로 국민은 신의 뜻에 맞도록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이를 소유할 수 있다.
이것이 내일의 일본을 말하는 황도주의의 골자이다. 실로 일본정신은 우리가 외치는 대국가주의를가장 잘 구현해야 할 대표적 관념형태여야 한다.
이처럼 오늘날 동양적 왕도사상은 일본의 황도정신으로 대표된다. 동양 여러 민족의 중요한 정신적유산의 하나인 왕도사상은 일본의 황도사상 형태를 띠고 일본민족을 통해 그 물질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만이 동아에서의 우수한 독립국가로서 유일한 안정 세력으로서 모든 아시아 민족을 대신하여 동양 민족이 지닌 좋은 전통부분을 보존 발전시켜온 원인이다.
따라서 근대적으로 재건된 동양 여러 민족의 특징 있는 문화의 □〓물질적 및 정신적 유산은 일본민족의 사회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 점은 일본민족으로 하여금 동아에서의 지도적인 민족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 가장 자연적인 전제여야 한다.
이처럼 일본의 민족사회는 동양적 왕도〓일본적으로 말하면 황도사상이 모든 민족생활의 □□를 이루고 민족적 개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민족생활에 관한 한 모든 사항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다.
코민테른의 일본에서의 활동이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일본민족의 개성의 중추인 황도사상과 맞지 않는 강령을 일본 프롤레타리아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일본민족은 자기의 개성과 자기의 취향에 적합하도록 자기의 운명을 능력에 기대지 않고 자기만의 힘을 통해 변혁하고 재건해야 할 모든 조건을 착실히 구비하고 있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는 자기들의 계급적 해방도 장래의 사회개혁도 모두 이러한 황도사상 위에 입각하여 행하려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일본 프롤레타리아와 일본국민에 관한 한 가장 타당하고 가능한 조건을 자신을 위해 유리하게 원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본인에게는 건국의 유래를 □□□ 고금부터 일관된 황도 본연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소위 변혁도 개혁도 아닐지 모른다.
일본국민의 체내에 이미 존재하는 이러한 특수한 조건은 동시에 동양 여러 민족〓조선 만주 지나 민족의 체내에도 머무르고 있다.
동아의 여러 민족 상호간에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및 전통적으로 아주 긴밀한 이해관계와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여러 민족은 앞으로 종래의 대립적 관계로부터 탈각하고 혼연 융합하여 여러 민족을 모두 하나로 만드는 일대국가 계통으로 통합해야 할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인 여러 조건이 특이한 박력을 통해 성숙되고 있다.

만주사변 이전과 이후에 이들 여러 민족 사이의 이해관계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와 동시에 여러 민족 사이의 우호 친선을 기반으로 하는 결합에도 획기적 변혁이 일어났다.

만주사변 이후 지나와 외몽고를 제외한 동아 여러 민족 사이의 결합에는 이상한 긴장이 가해져 여러 민족에게 일본민족의 동아에서의 지도적 지위와 그 임무를 호의적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러 일본민족과의 보다 깊은 긴밀한 결합과 제휴를 통해 아시아 여러 민족을 약소민족의 지위로부터 구하고 나아가 주어진 물질적 정신적 조건을 여러 민족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이용하기를 희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희구가 아니다.

오늘날 정세를 보면 오히려 필연적인 것이다. 어떠한 극동의 변혁도 그 실천과정으로서 이 이외의 상태는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의 지도적 지위와 임무는 결코 제국주의나 침략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함으로써 진정으로 동아의 약소 소민족은 외부로부터의 침략과 그에 따른 빈곤과 불행으로부터 해방될것이다.
이러한 단계에서의 민족생활은 민족적 평등과 민족 사이의 동포적인 협력과 호조(互助)를 통해 비로소 발전 향상함과 동시에 인류사 발전의 필연적 방향으로 계속하여 나아감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이 동아 여러 민족을 구제하는 유일한 길이자 밝은 일본의 내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6) 내일의 일본과 조선민족


일본은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종래의 개인적 자본주의의 모습은 점차 그 모습이 사라지고, 정치상 경제상 주목할 여러 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일본국민 대중은 이를 가장 신뢰하고 있고, 그 자체도 일본적 개성을 잘 체현하는 우수한 요소의 수단을 통해 착착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내일의 일본’을 추구하는 일본국민의 노력의 과정은 일본민족과 이해관계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조선민족의 지위와 그 생활내용에 어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이는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바이자 본 강연의 목적이다.
위에서 나는 대국가주의의 윤곽을 말하면서 이를 우리 사회변혁의 유일한 원리로 삼았다.

그리고 일본의 특수성 및 동양 여러 민족의 민족적 개성을 규명하고 오늘날 동아의 정세를 통해 일본민족의 동아에서의 지도적 위치와 그 임무를 지적하였는데, 그 임무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주장하는 대국가주의의 실현 그 자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민족을 불행하게 만든 나라의 많은 국민 부분은 불행하다. 이는 개인적 자본주의 시대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로서 일본의 경제가 개인적 자본주의인 한에서는 많건 적건 이러한 결과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봉건적인 혼미한 체제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생활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조선민중은 생활환경의 격변에 따른 응분의 고통을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2천만의 경복(慶福)을 목적으로 한 병합도 충분히 그 근본정신을 철저히 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 오늘날 일본의 경제조직 내지 정치조직은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상 정치상 및 관념상의 모든 분야에는 가장 죄악적인 최후를 지닌 자유주의는 점차 그 모습을
감추고 일본적 개성〓황도사상 위에 선 국가적 전체 이익의 입장에서 경제상 정치상의 여러 기구는 착착 그 개혁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실천은 경제상으로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적 경제조직이 국가적 통제경제조직에게 그 지보(地步)를 양보하여 비로소 국민 대중의 생활은 안정될것이다.
정치상으로도 자유주의의 가장 죄악적인 일면이 폭로되어 일부 자본가를 위해 존재하는 정당정치의 불순 부분이 당연히 소멸되고 진정으로 황도정치의 본령이 발휘되어, 국민은 편안히 정치를 신뢰하고 또 그 지도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진실한 의미에서의 국가의 흥륭 및 국민생활의 지도와 그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황도주의 정치는 실현될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앞으로의 조선은(만주사변이후에 스스로 그 편린을 인정하지만) 완전하게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일본국민으로서의 권리 의무의 평등은 모든 생활분야에 인정되어 동포적인 협력과 상호부조의 협동체로서의 지위로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개혁은 동시에 오늘날 개인적인 자본사회에서 보이는 각 민족 내부의 계급적 차이를 절멸시키고 국민적 결합을 약화시키는 모든 소지는 없어질 것이다. 이는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영역에서 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의 도래에 의해 조선 2천만 형제가 과거 수십 년을 통해 조선민족의 행복과 향상을 위해 바쳐온 피와 땀의 노력은 변질된 형태와 다른 의미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해방되어 조선민족은 빈곤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과거에 반일본적 요소로서 민족자결운동 또는 공산주의운동 등에 분명(奔命)해온것도 요컨대 이러한 반일적 요소로서의 자기완성의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립물의 통일을 향한 과정, 양 민족의 기계적 통일로부터 변증법적 통일을 향한 과정, 결합 이전의 분리 과정으로서의 매개적과정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은 객관적으로 양 민족의 결합상의 모순을 말살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고, 양 민족의 정치상 경제상 및 문화상의 모든 생활 부면에서의 접촉과 교섭을 더욱구체적으로 심화시켜 양 민족의 생활상의 여러 이해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한 노력의 표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까지 우리는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만이 각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사회생활 형태라는 낡은 원칙을 버리지 못하였다. 반만년의 역사와 2천만 민중을 절대불변의 형태로 삼아 단지 이러한 독립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지상의 임무로 삼아왔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적어도 대국가주의 사회를 전제로 하는 오늘날에는 누구라도 그것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오늘날 경제생활상의 여러 조건은 군소민족의 국가적 장벽을 유해시하기에 이르렀고, 서로 공통된 생활 조건을 지닌 다수 민족이 통일적 국가기구를 통해 결합되는 것만이 각 민족의 복리를 추구하는 길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이미 이러한 물질적 기초를 완성한 오늘날에 공허한 한 편의 무늬에 불과한 독립민족이라는 명목에 얽매이는 것은 우리 민족생활의 향상을 의미하지 않고, 또한 앞으로의 진정한 발전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사 발전의 필연적인 방향을 향해 계속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민족부터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일본민족을 지도자로 삼고 그 황도정신을 체득하여 민족생활의 근본적 재건을 도모해야 한다. 또 국민생활의 기초를 보다 견고히 쌓고 보다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대국가주의의 실현을 위해 일본민족과의 완전한 결합을 목표로 삼는 보다 긴밀한 일원화가 필요하다.

이는 양 민족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
또 우리는 이를 동아의 여러 민족을 향해 주창해야 한다. 이는 모두 우리의 향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동아 여러 민족을 빈곤과 박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모든 의구심을 버려야 한다. 여기에서 모든 비겁한 마음을 없애야 한다.’


3) 사상문제의 연구토의


앞의 팜플릿 및 사회 우발의 시사문제 등에 대해 회원이 연구회를 개최하고 이를 회원 이외의 미전향자와 토의 연구시켜 그 비원(非遠)의 시정에 노력하였다.


4) 언론의 시정


언문신문의 논조는 자칫하면 비원을 내장할 때에 사상전향을 비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아일보의 일장기말살사건, 조선일보의 수해구제하사금에 대한 불근신 기사사건 등이 일어났기 때문에 성명을 발표하거나 혹은 직접 관계자를 경고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를 규탄하고 그 시정에 힘썼다.
동아일보에 발송한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명


지난번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1회 세계 올림픽대회에서 우리 손기정 선수가 영예의 월계관을 쓸 수 있었다는 커다란 사실은 모든 조선인을 얼마나 환희의 격랑과 열광적인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가.
손기정과 같은 위대한 선수를 낳은 조선반도〓고토(故土)와 향토인의 이러한 축복의 환희와 흥분은 인정(人情)의 가장 당연한 것으로 스포츠 조선의 약진을 위해 환영할 현상이다. 그런데 손기정 선수의 영예는 결코 우리 2천만 향토인만이 혼자서 누릴 수 없다.

손기정 선수의 우승은 실로 ‘24년만의 모든 일본 국민의 숙망(宿望)을 달성한 것’이고, 작은 키의 동양인의 체질 때문에 만장(萬丈)의 의기를 떨친 전동양적 의의를 지님과 동시에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는 점에서 또한 세계적 의의를 지닌다.
그런데 종종 손기정 선수의 우승이 일부 편협한 민족적 견해의 포회자(抱懷者)에 의해 부당하게도 반국가적 선전의 재료로 악용되어 저열한 민족적 정치적 흥분을 부추기는 기화로 끝나는 경향이 있는것에 정말로 유감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더욱 위대한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먼저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조선인만의 영예로 삼으려는 편협한 태도를 거부해야 한다.

손기정 선수의 출장이 일장기 하에서 이루어졌고 그 경기의 승리가 일장기의 □□과 모든 일본국민의 환호 속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통해 내선 양 민족의 심장과 심장이 이어지고, 공통의 환희와 감격이 얼마나 양 민족의 감정과 정서의 융합을 이루어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내지인 동포가 손기정선수의 승리를 지칭하여 ‘모든 일본국민의 24년만의 숙망(宿望)의 달성’으로 환호하는 태도와 국민적 순정을 이해해야 한다.
일부 인사가 지닌 편협한 견해와 착각적인 인식은 드디어 성장 발달하려는 조선 스포츠의 장래에 커다란 암영을 던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모든 경우에서 조선인의 세계적 국제적인 무대로의 영예로운 진로에 일대 장애를 불러일으키지 않을지 걱정된다.

가장 구체적인 사례로서는 지난 8월 25일자 동아일보(제5657호) 제2면에 게재된 손기정 선수의 사진과 같은 것은 명확히 이상의 기우를 사실화시킨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손기정 선수는 일본선수 자격으로 올림픽 대회에 출장한 것은 지금에 와서 반복할 필요도 없다. 또 그 승리가 일본선수 자격으로 얻어졌다는 것도 세계 모두가 인정하는 바로 여기에서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앞의 동아일보는 사진을 게재함에 있어 고의적으로 일장기의 휘장을 말소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그 동기는 거의 어린이와도 같지만 그 결과는 실로 크다.
동아일보의 이러한 행위는 결코 조선인의 의사도 아니며 스포츠인의 의사도 아니고, 더욱이 손기정선수의 본의도 아니다.

생각건대 이는 천박한 신문 상매매적 사리의 충동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겠는가.
그 편협□□한 태도는 정말로 기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손기정 선수의 빛나는 개선을 맞이하는 우리는 특히 냉정하고 자제력 있는 태도와 순정으로 이를 축하하는 현명함을 지녀야 한다.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축복한 나머지 착각과 탈선을 일으켜 경축해야할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반대로 비극적 사태를 연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원래 스포츠 정신 나아가서는 올림픽 정신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편협한 광태(狂態)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포츠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 국민적 입장에서 이를 맞이해야 한다. 고토(故土) 동포의 환희를 눈앞에서 보면서 이제 개선의 길에 올라선 손기정 선수가 조금이라도 실망과 낙담을 맞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가장 열렬히 기뻐하는 사람 가운데 유력한 한사람이고, 또한 불후의영예를 영구히 보전하는 자의 한사람이다.
이상 피력한 우리가 지닌 태도만이 진정으로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빛나게 만드는 일이자 위대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천하에 밝혀두면서 동포 형제의 성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936년 8월 29일
경성부 중학정 1번지
대동민우회 창립위원회


5) 회원의 구호


취직 알선 4건, 생업 알선 2건, 혼인 매개 1건 등이다.


4. 지나사변에 당면한 활동개황


이번 사변이 발발하자 동 회는 그 본래의 사명을 감안하여 주로 여론의 환기, 민심의 지도에 진력하고 있는데, 그 주요한 활동의 개황은 다음과 같다.


1) 슬로건의 결정 발표 및 삐라의 배포
시국에 관한 여론의 환기와 대중운동 전개의 시작으로서 먼저 조선인의 태도를 결정하고 금후의 동향을 명확히 지시할 필요가 있어 7월 15일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결정 발표하였다. 삐라 3만매를 인쇄하여 회원 20명이 출동하여 이를 각 방면에 배포하였다.


우리의 슬로건


천주(天誅)로서 지나의 각성을 촉구한다.
사변 온중(溫中)의 동포를 보호하라
거국일치와 동포적인 협력을 다하라.
항일은 지나를 망하게 하고, 동아를 죽인다.
일본은 동아의 지도자로서 침략자가 아니다.
지나를 응징하라 그리고 동아를 백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라.
○ 총후의 의무
유언비어를 격퇴하라.
외첩(外諜)을 방지 격멸하라.
우리의 향토를 지키고 하늘을 지켜라.
1937년 7월 19일
대동민우회


2) 시국인식 강연회의 개최


앞의 슬로건을 앙양하고 일반의 시국에 대한 인식을 깊게 만들기 위해 7월 19일 오후 7시부터 경성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조선인이 개최한 시국에 관한 최초의 강연회로서 각 방면의 다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청중이 2천명에 이를 정도로 이상한 감명을 주었다.


당시의 강사 및 연제는 다음과 같다.


개회사 본 회 이사장 안준(安浚)
북지 시국의 발전과 조선인의 각오 본 회 이사 차재정(車載貞)
항일은 과연 지나를 구할 것인가 본 회 이사 주련(朱鍊)
사변의 진상과 황군의 결의 육군소좌 이녹우(李綠宇)
지나사변과 조선인의 입장 오사카아사히 지국장 스즈키 마사후미(鈴木正文)


3) 성명서의 발표


시국인식이 점차 고조됨에 따라 여론이 드디어 환기되는 상황에 이르자, 그 지도이론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어 7월 30일 사변의 본질 및 금후의 동향 침로(針路)를 명시한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서 3천매를 인쇄하여 주로 언론기관, 학교, 교회 등의 지도층에 배포했는데, 경성에서 발행하는 신문지는 모두 이를 전재하였다.

성명


(1)
지난 7월 7일 지나 군대의 불법행위에 의해 야기된 북지사변은 거듭되는 배일행위 중에서도 특별히 노골적인 배일적 도전행위로 이후 지나 측의 불신과 날로 더해가는 전면적 도전행위는 더욱 명료해졌다.
오늘날 일본의 북지에서의 특수지위는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통해 몇 번인가의 사변을 경험하고 수억의 물자와 수십만의 생령(生靈)을 희생하면서 쌓아올린 권익으로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피와 명예의 결정인 북지의 여러 협정을 침범 유린하고 항일과 모일(侮日)을 통해 동양의 평화를 교란시키는 광폭을 일삼고 있다. 어찌 일본정부 및 일본국민이 이를 묵과할 수 있겠는가.

이에 제국은 상하일심(上下一心)하여 최후의 중대한 결의로 사태의 해결에 임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이는 오늘날의 객관적 및 주관적 여러 조건의 당연한 결과이다.

날로 위기가 증대하는 세계정국의 불안과 긴박한 동아의 정세는 일본으로 하여금 이번 사변을 계기로 지나에 대한 국책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관철을 결의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2)
최근 일본의 국가적 흥륭 발전은 종래의 국제세력 균형상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오랜 기간 세계 각 국민 위에 군림하던 백인의 개인주의적, 자본주의적 문명은 지난번 구주대전을 통해 그 근본적 결함과 파탄을 폭로하였다.

최근 만주국의 발흥과 뒤이은 일본의 국제연맹의 탈퇴에 따라 동아에서의 구미인의 제국주의적 침략체계는 더욱 근본적으로 파탄되고 있다. 이렇게 일본이 러일전쟁 이후 동아여러 민족에게 호소하던 동아인의 동아라는 이상의 실현은 착착 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즉 오늘날 일본은 건국 3천년의 전통을 드러내면서 동아문명의 진수를 만들고, 동아 각 민족생활의 정신적인 뿌리를 이루는 황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신일본건설의 기운이 팽배해져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내정에도 약진적인 개혁과 확충이 이루어졌다. 한편 내선만(內鮮滿) 일체의 경륜은 발걸음을 빨리하면서 구체적으로 나타났고, 동아 여러 민족의 공동제휴와 공존공영의 기초가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동아의 안정 세력으로서 평화 확보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속해서 동아를 위협하는 외적을 방어함과 더불어 팽창하는 인구와 넘쳐흐르는 국력발전의 신천지를 개척하여 경제자원의 획득과 생산력의 확장을 통해 내선만을 일체로 하는 민중생활의 향상 충실을 도모해야 한다.

일본은 지나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오로지 정신적 문화적 공명과 경제적 제휴를 요망해마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일본의 대륙정책의 정신적 국방적 정치적 경제적 근거의 정당성으로서 소위 팔굉일우 동아를 일가로 삼아 공통의 안녕복리를 염원하는 것이다. 지나가 만약 진정으로 4백여 주의 화평통일을 도모하고 외침을 막아 국민운동의 완성을 바란다면 혼연히 일본과 제휴하여 그 공동의 사명에 매진함으로써 신주(神州)1) 광복하는 동아인의 동아를 실현할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1) 신국(神國)을 의미함.

(3)
그런데 지나는 지금도 여전히 구미 의존의 전통적 미몽(迷夢)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위 이이제이(以夷制夷)적인 수단에 의해 동아 자신의 문제에 바라지도 않는 구미열국의 간섭을 시종일관 불러오고 있다.

따라서 지나는 오랜 기간 구미의 반식민지 지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고, 지나 민중은 구미자본의 끝없는 착취에 직면하였다. 지나 민중의 자유와 행복은 백인에 의해 완전히 유린당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이 응징하려는 것은 이들 완고하고 불의한 항일 무리로서 이를 통해 다름 아닌 지나4억의 양민을 구제하고자 한다.
(4)
이번 사변을 통해 보더라도 지나 정부는 구미의 간섭을 불러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동아에 관한 한 단호히 구미인의 □□를 허용하지 않는다. 구미가 동아의 실정에 어둡지 않는 한, 구미는 지나 정부의 의도대로 소위 간섭적인 가벼운 정책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러한 사태가 유발되더라도 일본의 동아에서의 지위 및 동아의 현상에 그 어떠한 불리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5)
황군은 이미 움직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지나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만성화된 지나 정권자의 항일 태도는 일반적이고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 근절을 기할 수 없다. 동아의 장래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선량한 지나 민중의 장래의 행복을 위해 철저히 이를 응징해야 한다. 이는 동아의 안정세력으로서, 동양평화의 확보자로서, 동아의 지도자로서의 당연한 임무이자 사명이다.
(6)
이번 사변에 대한 지속적 전면적 해결의 과정은 동시에 일본의 동아대륙정책 완성의 과정이고, 동아 여러 민족의 연계와 친선을 더욱 강화하는 과정이다. 조선은 이제 완전히 일본제국의 동아 세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동양평화의 확보자로서 동아의 지도자로서의 일익의 임무를 분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번에 지나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사변의 적극적 전면적 해결을 주장해마지 않는다.

이번 계기야말로 조선민중이 동아의 우수한 민족으로서 그 사명과 임무를 수행할 시기이고, 의지와 기개를 나타내야 한다.
조선 민중의 이해□□와 흥망성쇠는 실로 일본 전체의 그것과 밀접하게 합체되어 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의 민중에게는 집총의 의무는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총후에서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평등하게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전체의식에 의거하여 국민적 감정과 동포적 순정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사변 극복의 결과가 일본의 승리로 돌아가도록 시기에 따라 국민적 지원과 동포적 협력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각오와 의무의 수행이야말로 모든 조선민중의 향상과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선민중의 국민적 지원과 동포적 협력을 주창하는 명분은 내선인의 이해□□의 필연적 공통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대국적인 견지에서 동아에서의 공동 사명의 자각에 의거하여 당연히 요구되는 국민적 순정의 발로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국민적 의기(意氣)와 희생적 정신이 높이 앙양될 수 있다.


우리의 슬로건


천주(天誅)로서 지나의 각성을 촉구한다! 사변 온중(溫中)의 동포를 보호하라! 거국일치와 동포적인 협력을 다하라!

항일은 지나를 망하게 하고, 동아를 죽인다! 일본은 동아의 지도자로서 침략자가 아니다!

지나를 응징하라 그리고 동아를 백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라!

○ 총후의 의무
유언비어를 격퇴하라!
외첩(外諜)을 방지 격멸하라!
입영 장병과 그 가족을 위문하라!
우리의 향토를 지키고 하늘을 지켜라!
1937년 7월 30일
대동민우회


4) 출정 군인의 송영(送迎)


경성에 거주하는 회원 25명은 역두(驛頭)의 송영반을 조직하고 7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매일 주야교대로 출정 통과부대를 송영하였다.


5) 시사문제연구회의 개최


시국의 발전에 따라 시사문제가 날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견해 및 대중화의 방법 등에 관해 종종 강구할 필요가 있어 경성 거주 회원 32명은 연구회를 개최하였다.
제1회는 8월 7일 저녁 시내 명월관(明月館)에서 개최하였다. 그날은 특히 내선일체의 구현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회원 이외에 신문인 및 내지인 교화단체 녹기연맹의 간부도 참가시켜 토의 연구하였다.
제2회는 같은 달 20일 저녁 시내 열빈루(悅賓樓)에서 개최하고 주로 총독부가 발행한 시사해설 기타 팜플릿에 대해 강평(講評)하고 더불어 경성 및 지방에서의 최근 정황보고에 의거하여 비판을 가하였다.
제3회는 9월 2일 저녁 시내 국일관(國一館)에서 개최하고 특히 내선윤리사상의 이동(異同), 국체명징의 문제 등에 대해 연구하면서 금후의 운동방법에 대해 협의하였다.


6) 출정군인가족의 위문


8월 27일 이후 9월 15일까지 경성에 거주하는 회원 15명을 출동시켜 과자나 수식(手拭)과 같은 간단한 토산을 들고 경성부 내에 거주하는 출정군인가족 209호를 위문하였다.

호별 위문의 결과 특히 구조가 필요한 자는 상세히 조서를 작성하여 참고를 위해 조선군사령부 및 군사후원연맹에 통첩하여 그 응급조치를 강구하는데 자료를 제공하였다. 위문은 내선인 상호의 감격을 불러일으켜 내선일여의 정신훈련에서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7) 격려문의 발송


시국에서의 거국일치는 내선일체에 중점을 두기로 하면서 이번에 반도 민중의 결의를 명확히 밝히고 중앙 당국을 격려하기 위해 8월 27일 총리대신 및 척무성, 육군성, 해군성의 각 대신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이번 지나사변에 대한 정부의 성명 및 단호한 조치에 완전히 공명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바입니다.
반도의 민중은 이번 사변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국민적 자각을 환기시키고 동포적 협력으로 더불어국난을 극복하고자 의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즉 거국일치 애국정신의 고취와 총후의 임무를 다하고자 혹은 국방헌금에, 출정군인의 송영과 그 가족의 위문 내지 방호활동 등에 남녀노소 모두가 분주하고 있습니다.

한편 조선민중의 열성은 더욱이 내지인 동포에게 반영되어 내선 양 민족의 심간(心肝)을 잇고 있습니다.

환희와 우애는 공통의 감격이 되어 더욱 동포감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조선의 신정(新政) 이후 4반세기, 1931년 만주사변 발생 당시에 있어서도 볼 수 없던 정경으로 조선인은 날로 명실 모두 일본국민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는 필경 이번 사변에 즈음하여 정부 및 모든 내지인 동포가 보여준 동포적 우애와 국민적 신뢰를 기초로 한 많은 조치〓조선사단의 파견, 조선재향군인의 소집, 거듭된 군사수송이 조선을 통과한 사실등이 우리 조선민중을 자극하여 강렬한 감격과 혼연한 동포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국민적 감정과 노력을 바칠 기회를 얻은 것에 기뻐하고 당국에 충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조선민중심리의 이러한 비약적 변화는 그 국민구성 과정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자발적인 감정과 노력은 앞으로 더욱 진전 강화하여 자신이 완전한 일본국민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의 지나에 대한 방침을 극력 지지하고 정부 및 모든 내지인 동포가 이번 조선민중에게 보여준 우애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총후의 임무에서 미력하지만 동포적 협력을 다할 것을 모든 조선민중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각하께서는 제국의 사명과 국민의 여망을 감안하여 만전을 다해 우리의 지나에 대한 정책의 근본적전면적 관철에 매진해주시기를 마라마지 않습니다.
1937년 8월 27일
경성부 중학정 1번지
대동민우회 대표이사 안준

8) 시사문제 강좌의 개최


북지사변은 드디어 전지(全支)사변으로 발전하고 그 전면적 추이와 더불어 시국의 열기는 대중으로부터 인텔리로 역류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여 특히 청년 인텔리 계층에 대해 군사, 외교, 재정, 사상방면에 관해 전문적으로 이를 알리고, 장기항쟁 대책에 대한 강구 검토가 시급해졌다.

이에 9월 7일과 8일 양일 밤에 걸쳐 경성 중앙그리스도교 청년회관 강당에서 시국문제 강좌를 개최하였다.

부내의 각 전문학교생이 거의 출석하였고 특히 소련문제 강좌에는 초만 원의 성황을 거두었다. 노트를 휴대하여 필기하는 자가 많았는데 그 관심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강사 및 과목은 다음과 같다.
개회사 본회 이사장 안준(安浚)
소련의 동정과 지나의 장래 조선군사령부 통역관 오카다 마코토(岡田實)
시국의 발전과 조선인의 각오 본회 이사 차재정(車載貞)
최근의 국제정세와 일본의 지위 경성제대 교수 오쿠히라 다케히코(奥平武彦)
시국과 경제문제 오사카아사히 지국장 스즈키 마사후미(鈴木正文)


9) 진중(陣中) 위문


앞에서 서술한 출정군인의 가족위문 상황에 의거하여 조선의 근황을 진중의 병사에게 알려 안도시키고 더욱 사기를 고무 격려하기 위해 9월 26일 다음과 같이 진중 위문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3천매 인쇄하여 조선군사령부에 의뢰하여 출정 황군 각 부대장에게 발송하였다.

□□□□□□□□□□□□□□□□□□□□.
북지사변은 결국 지나사변으로 전국적 발전으로 이어졌고, 시국은 더욱 중대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거국일치 천업회홍(天業恢弘)을 위해 직통해야 합니다.

귀하를 비롯한 충용한 황군 장병 여러분의 분투에 의해 중남 지나에서의 제공권의 확보에 이어 보정(保定)과 창주(滄州)를 함락하는 등 나날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유석폭려(流石暴戾)한 지나도 이제 완전히 굴복하고 있어 국민
일동은 감격해마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히 귀하 조선에서 출정한 장병 여러분의 분투에 대해 심심한 경의와 만공(滿空)의 감사를 바치는 바입니다.

귀하가 출정한 이후 조선의 상세(狀勢)는 미나미(南) 총독이 제창하신 거국일치, 내선일체, 시난극복의 목소리가 방방곡곡에 철저히 퍼지고, 조선의 민중도 뒤늦었지만 국민적 자각과 동포적 순정을 불태워 출정 장병의 환송영, 가족의 위문, 국위선양의 기원, 국방헌금, 마량(馬糧)의 채집헌납 등 빈부계층의 구별 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선의 산하는 지금 애국 일색으로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순진한 소학생 아동 등의 위문문 작성, 가두에 넘치는 부녀자의 센닌바리(千人針)2)에 내선인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감격하는 등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1) 국방헌금은 이미 조선 내에서만 4백만 원을 돌파하였고, 이어서 위문보따리도 수십만 개를 헤아리는 상태입니다.
(2) 또 경기도를 비롯해 각 도에서 계획한 비행기 헌납은 이미 헌금의 예정액을 초과하였고, 불원간 애국 조선의 각 도기(道機)가 여러분이 분투하는 제1선에 보내져 반도 2천만민의 혼이 여러분과 혈전을 함께 할 것입니다.
(3) 또 각지에는 군사후원연맹이 결성되어 관민이 협력하여 출정군인가족의 생활안정과 위문 등 정신적 물질적 양면에서 가능한 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4) 철도 해운 기타 운수기관도 원활히 운행되고 있고, □□에서조차도 부자유스럽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상태입니다. 군사수송에 앞으로도 결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5) 또 여러분 출정군인의 가족은 최근 당 회에서 방문한 상황에 의하면 경성에서의 소부분입니다만,모두 건전하여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군국 일본의 군인 가정으로서 천청(天晴)함에 감탄할 뿐입니다.
(6) 또 종래에는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내지 예수교, 천도교 등으로 평가받는 자들도 이제는 미나미 총독이 제창한 거국일치론에 완전히 합류하여 모두 적극적으로 애국운동에 분주하고 있습니다.

그가운데 당 회처럼 회원의 대부분은 사실 예전에는 반국가적 사상분자로서 코민테른의 오랜 기만정책을 애상(愛想)하다가 최근에 일본정신인 국가주의로 전향한 자들입니다. 이번 사변에 즈음하여 애국의 첫목소리를 외치며 솔선하여 총후의 임무에 작은 힘을 다하고자 분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련이 설령 어떠한 책동을 하더라고, 열국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조선 내의 인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는 모두 귀하를 비롯한 황군의 충용 및 일반 내지인 동포의 애국의 적성이 결국 2천만의 심장을자극하여 감분흥기(感奮興起)한 것입니다. 조선인은 이번 사변을 통해 폐하의 적자로서 국민적으로 각성할 기회를 얻은 것을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일본국민은 동양평화의 기업(基業) 성취를 위해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명을 떠안았습니다. 조선인 2천만도 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 만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대체로 이상과 같습니다. 귀하를 비롯해 제1선 출정 장병을 지키려는 총후의 결속은 더욱 견고해져 아무런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는 내선일체가 되어 협력하고 있고, 여러분은 아무런 염려 없이 전투에만 전념하여 황국을 위해 혁혁한 무훈을 세울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본년은 각 도 모두 천후가 순조로워 농산어촌이 풍작입니다. 농민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민중도 생기가 넘쳐흘러 각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매일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여러분의 분투 소식을 일언일구 빠지지 않고 청취하고 있습니다. 긴장된 시국이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견인지구하여 더욱 애국의 지성을 바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안심하고 방가(邦家)를 위해 분투 노력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1937년 9월 26일
경성부 중학정 1번지
대동민우회
대표 안 준 배상


2) 출정 군인의 무운(武運)을 빌기 위해 천 명의 여자가 한 장의 천에 붉은 실로 한 땀씩 매듭을 뜬 것.경성에서의 출정군인 가정 청취보고(제1회)
(1) 본회는 금년 7월 27일부터 9월 15일에 걸쳐 출정군인가정의 위문을 위해 경성의 209개 가정을 방문하였다.

이것이 제1회이다.
(2) 각 가정은 소수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생활이 안정되어 별반 이상이 없고 대부분 중류 이상의 생활이다.
(3) 각 가정은 시국에 대해 상당히 긴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차분한 상태로 일본이 필히 승리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다. 즉 모든 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단이나 불단 등으로 단지 출정군인의 무운장구를 빌고 있었다.
(4) 또 출정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라도 갖는 공통이자 당연한 책무로서 언제라도 각오하고 있는듯하다. 가족들도 이를 당연히 받아들여 비교적 냉정히 각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방문을 오히려 의외로 생각하여 감사의 말을 건네고 있다.
또 어떤 가정에서는 현관 앞에서 위문의 말을 건넸을 때 마침 전사(戰死) 통지가 도착하였는데, 가족은 이전부터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며 눈썹하나 흔들리지 않고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도 엉겁결에 머리를 숙였다.
(5) 이러한 신념과 각오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이를 표면상으로 나타내지 않고 슬픔과 비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 어느 가정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어떠한 인고결핍도 참아내고 어떠한 노동이라도 굴하지 않고 근로자활하려는 의지에 불타고 있다. 유약한 부녀자까지도 꿋꿋한 응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실로 마음이 든든하다. 우리 일본군이 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6) 출정군인 가족에 대한 원호의 열성은 각 마을 모두 상당히 강조되고 있다. 집주인은 집세를 면제하고 병원은 치료비를 면제함은 물론, 어떤 한 집안을 모두 부양하기도 하고 주변 이웃들이 서로 도우면서 집안일에 부자유가 없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도 눈물나는 사연이 많은데 모두 진심으로 감사하였다.
또 본회가 보낸 작은 위문품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이를 □□□□ 않도록 염려하였다.

(7) 특히 우리의 위문에 대해서는 조선동포이기 때문에 더욱 감격하여 집안 모두가 환영하고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뜻을 항상 전하였다. 어떤 노부인은 우리의 젊은 모습을 보고 출정한 자식을 생각했을것이다.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며 다과를 주면서 환대하기도 하였다.
이들 가정에서는 우리가 국민적 태도와 동포적 성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진정으로 감사하고, 마치 먼 곳에서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척을 대하는 것처럼 맞이해주었다.

이렇게 위문과 인사말을 나누면서 출정자의 안전을 함께 비는 순간에는 혼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혈통이 다른 타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소위 동포감이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대동민우회 사회부


<출전: 「大同民友會の結成幷其の活動槪況」, '思想彙報' 第13號, 1937년 12월, 37~86쪽>


3. 동우회원의 대동민우회 가입에 관한 건
경고특비 제1284호
1938년 6월 4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벙원 검사정 귀하


전 동우회원의 대동민우회 가입에 관한 건


동우회 사건 관계 기소유예자의 동향에 대하여는 항상 주의를 기울임과 동시에 사상 선도에 노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영도(鄭永道)는 지난해 8월 하순, 경성부 중학정(中學町) 1번지 소재 대동민우회(大東民友會)에 가입하고 동 회의 감화를 받아 갑자기 전향하였다. 그는 별도로 이미 보고한 바와 같이구미의 지인에게 이번 사변에 대한 일본제국의 입장을 천명한 통문(通文)을 발송하고, 또 국방헌금, 출정황군의 환송영 등 총후봉국(銃後奉國)에 노력 중으로 그 성적은 아주 양호하다. 이에 비추어 나머지 기소유예자도 소괄 종로경찰서로 하여금 대동민우회와 연락하여 동 회에 가입시키고자 5월 상순 이후 앞에서 말한 정영도를 통해 하여금 김지담(金志淡), 하경덕(河敬德), 김로겸(金魯謙), 유형기(柳瀅基),전영택(田榮澤, 김흥제(金興濟), 차상달(車相達) 등에 대하여 순차적으로 입회를 권유하였다.

 결과 모두 가입해, 이와 동시에 전향 성명서를 발표할 태도를 선명(宣明)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성명서 작성준비 등을 위해 지난 5월 31일 대동민우회 사무소에서는 차재정(車載貞)의 사회 하에 좌담회를 개최하
였다.

여기에는 이각종(李覺鍾), 차재정(車載貞), 김동일(金東日), 안준(安俊), 이효진(李孝鎭) 및 신입회원인 전영택(田榮澤), 김흥제(金興濟), 차상달(車相達), 김지담(金志淡), 하경덕(河敬德), 김로겸(金魯謙),유형기(柳瀅基) 등이 회합 협의한 결과, 전향 성명서는 수 만장을 인쇄하여 각 방면에 배포하기로 하였다.

그 기초위원으로는 김흥제(金興濟), 전영택(田榮澤), 차상달(車相達) 3명을 선임하고 곧바로 기초에 착수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기타 동우회원들도 순차적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하기로 합의하고 산회하였으며 계속해서 주의 중이다.
이상 보고한다.


<출전: 「元同友會員ノ大東民友會 加入ニ關スル件(京高特秘 第1284號)」, 1938년 6월 4일>

4. 「전향문제의 검토」라는 제목의 인쇄물 발송에 관한 건


경고특비 제15호
1937년 1월 9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장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전향문제의 검토」라는 제목의 인쇄물 발송에 관한 건


경성부 중학정 소재 대동민우회에서는 작년 12월 7일 동 회 종신고문 이각종(李覺鍾) 및 조직선전부장 차재정(車載貞)이 합작하여 만든 「전향문제의 검토」라는 제목 아래 사상전향의 유형을 해부한 별지와 같은 논문을 다음 각 소 앞으로 발송하였다. 그 내용은 대동민우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향이라고 기술되어 있어 소위 아전인수적인 느낌도 있지만 일단 수긍할 점이 있어 참고하기 바란다.
이를 보고 통첩(달)한다.


기(記)


경성복심법원 오카모토(岡本) 검사장
경성고등법원 무라타(村田) 건사
총독부 법무국 모리우라(森浦) 행형과장
총독부 법무국 나카야마(中山) 법무과장
총독부 경무국 단게(丹下) 보안과장
총독부 경무국 후루카와(古川) 도서과장
조선헌병대사령부


전향문제의 검토


1. 전향의 극의(極義)


여기에서 말하는 ‘전향’이란 사상적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의 뜻과 같이 하나의 사상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사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오늘날 일반에게 인식되고 있는 소위 ‘전향’이 지시하는 내용은 엄밀히 말해 진정한 의미의 전향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특히 공산주의자의 전향은 그 한계가 아주 애매하여 조선의 공산주의자의 전향의 실정에 비추어 그 진상을 파악하기어렵다.
공산주의운동의 실천적 및 조직적 진영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절연(絶緣) 상태에 있다는 사정만을 들어 곧바로 사상적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내지의 공산당 및 조선의 그것은 당국의 취체가 엄중하여 최근에 이르러 거의 면멸(眠滅) 상태에 빠져 당원의 활동은 강제적으로 중절(中絶)되기에 이르렀다.

당의 영향 아래 있던 여러 대중조직은 궤멸되거나 존재하기 어려워 합법영역에서 계속 존재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들 단체 및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로부터 국민주의로 전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은 소위 ‘반동시대’로 이러한 시기(時機)에 대처하는 공산당의 전술은 ‘퇴각’과 ‘수세’로 대형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내지와 조선의 오늘날의 공산주의운동은 이러한 퇴각과 수세의 잠복상태에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전향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실상이다.

단체 또는 개인이 비합법에서 합법으로 전환을 표명하더라도 이 또한 좌익적 합법전술의한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결코 근본적 이데올로기의 전환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의 전략과 전술처럼 탄력성이 풍부하고 신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리프크네히트(Liebknecht, Wilhelm)3)가 말한 바와 같이 ‘필요에 따라서는 24시간 이내일지라도 당의 강령을 변경할 수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전향을 논할 때 가장 경계할 점은 피상적으로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소위 적응전술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전향을 인식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서는 먼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파악의 과정에대한 고찰이 긴요하다.
공산주의사상의 체계는 하나는 사회과학체계이다. 즉 철학, 경제학, 역사학, 정치학 등 각종 형이상학적 부문과학을 종횡으로 엮은 하나의 종합체계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영국의 경제학과 프랑스의 유물론 그리고 독일의 헤겔철학 등에 대한 검토와 비판 위에서 종합적으로 성립된 것으로, 오늘날 인류가 지닌 최신최예(最新最銳)의 사회과학체계이다. 따라서 오늘날 공산주의자 중에서도 인텔리 계층에 속한 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파악 과정은 아주 과학적인 태도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들은 먼저 공산주의사상을 과학으로서 연구하고 과학적 진리로서 파악한다. 사상이 과학적 체계를 품고 있다는 것은 진리추구의 열정에 불타는 젊은 학생들을 전면적으로 끌어들이는 최대의 매력이다.
이러한 사상체계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과학적 파악을 시도한 자는 비판적 노력을 관념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 한, 그 사상적 청산극복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 계층에 속한 자는 전향을 표명하더라도 단지 ‘활동의 중지’에 머물러 그 이상의 적극적 태도는 기대할 수 없다.

그 대표적 사례는 내지에서의 이론적 학구의 전향표명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천적 체험을 풍부히 지니고 진정으로 구체적 사회개혁의 노력을 계속한 자는 진정한 의미의 사상적 전환이 가능하다. 그들의 추상적 진리를 구체적 조건과 구체적 사물 위에서 전면적 실천을 시도함으로써 진리의 구체적 평가의 표준을 획득할 수 있다. 모든 진리의 표준은 실천에 있다.

실천과이론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진리가 아니다.


3) 독일의 사회주의자(1826~1900). 리프크네히트(Liebknecht, K)의 아버지로 3월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런던에 망
명하여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고, 귀국 후 베벨과 함께 독일 사회 민주 노동당을 창립하였다.


이러한 유형의 전향자로 내지에서는 사토 마나부(佐藤學)를 중심으로 한 일파가 있고, 저선에는 대동민우회가 있다.

이들은 공산주의운동의 활동의 중지를 표명함으로써 관헌의 취체와 추궁을 모면할 방편으로 삼는 비겁한 태도에서 나온 소위 ‘전향’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리 추구의 태도와 사회개혁이정념에 불타 과거의 공산주의적 실천의 경험에 비추어 그 오류와 결함으로부터 탈각하고 구체적 국정(國情)에 적응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여 이론적 실천적인 발전과 비약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전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사상적 방향전환을 이루었다고 말해야 한다.

즉 공산주의적 사회개혁사상으로부터 국가주의적 사회개혁사상으로 하나의 사상으로부터 다른 별도의 사상으로 비약한
것이다.

특히 조선인에게는 계급성과 민족감정이라는 이중의 청산난(淸算難)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지에서의 유업시민(有業市民)으로서 사회에 복귀함으로써 전향을 완성한 것과는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없다.
이하 조선의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전향 상태’를 분해하여 전향의 한계를 천명하고자 한다.


2. 전향자의 유형


여기에서 통칭 사상전향자를 대별하여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잠행운동자
당국의 엄중한 취체와 좌익진영의 궤멸로 인해 종래와 같은 표현전법(表現戰法)으로는 도저히 유지발전을 기도할 수 없음으로 표면상으로는 좌익운동을 일단 청산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교묘한 의장(擬裝) 잠행전법을 통해 개인적 연락 혹은 대중에게 선전조직을 시행하는 전위(前衛)의 결속과 당의 갱생을 위해 획책 활동하는 유형이다. 이들은 외관상으로는 소극형 전향자와 일상 행동에서 아무 다를 바가없고, 일반시민으로서의 생활양태 아래 보호색을 추구한다.

이들은 단지 정세의 유리한 전환과 활동 시기의 도래를 기다릴 뿐, 애초부터 전향자가 아니다. 적절히 관헌에게 전향을 맹세하지만 이를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관헌의 호의와 편의를 연락을 위해 역이용하는 자들도 있다. 이런 유형의 자들은 이름은 전향자이지만 오히려 잠행운동자라고 보는 편이 올바르다.


2) 중간파적 기회주의자형
이러한 유형의 전향자는 앞의 유형과 다음에 말하는 제3유형의 중간에 위치한다. 실천적 행동으로부터는 의식적으로 경원(敬遠) 회피의 태도를 취하면서, 사상에서는 여전히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분위기 속에서 호흡한다. 제재를 피할 정도의 사상자유의 영역에 머무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설필(舌筆)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발산을 시도하고, 은연중에 공산주의운동의 정신적 동정자(Sympathyzer)의 지위를 고지(固持)하는 유형이다. 이들은 이를 통해 일반 민중에 대한 성망(聲望)과 신뢰를 유지하고, 또한편으로 관헌의 회유 상치(償値)를 높이려는 자들로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결코 적지 않다.
이들도 형세가 유리하게 바뀌면 과감히 실천행동의 궤도(軌道)로 옮겨가겠다는 마음자세를 지니고있다.

이러한 유형의 일상생활은 지극히 평온하며 지식층의 문필가가 여기에 속한다.

물론 이 부류에서는 진정한 전향자를 찾기 어렵다.


3) 시민형
이 유형의 전향자는 대개 지식층에 속하지 않는 실천가가 많은 조선 특유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 전입(轉入)하여 활동한 자 또는 깊은 이론의 뿌리를 파악하지않고 부질없이 민중운동에 광분한 자 등이 최근 정세의 불리와 자기정력의 쇠퇴, 가정의 계루(係累)로 인한 생활난 등 사방의 환경에 쫓겨 이론적 비판의 과정도 별도로 경험하지 않고 단지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와 개인생활의 영위를 위해 여생을 보내겠다는 유형이다.

이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대신할 어떠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나 기개를 갖지 못한다. 전향자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적인 탈락자이다.

이들은 순순히 관헌의 지도 유액(誘掖)에 따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다지 큰 위험성은 없다.

이들 중에는 중년 이상인 자들이 많은데, 젊은 계층으로서 이 유형에 속한자는 그 장래를 보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의식에 의한 비판력이 결여되어 교사(敎唆)와 선동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또 종교에 귀의하여 새로운 정신생활로 들어선 자 또는 여성으로서 결혼하여 가정생활에 안주한 자 등은 대체로 이 유형의 전향이라고 보아도 좋다.


4) 의장(擬裝) 시민형
이 유형은 외관상 앞의 세 유형과 아주 비슷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즉 중간파가 다소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에 비해 의장 시민형은 적극적으로

① 관헌에 대해서는 확고히 전향을 약속하여 그 보호 구제를 받고, 일상생활에서도 일단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구래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아 새로운 이상과 목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뇌를 느껴 결국 본래의 의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암암리에 계속하여 대기(待機)의 자세를 취하면서 대중의 우익화 방지에 노력하고, 대중을 향해서는 여전히 공산주의자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세의 불리에 따른 활동 휴지(休止) 시간을 이용하여 후일을 준비하고자 가족생활의 안정과 뒷날의 염려를 줄이려는 노력한다.

② 심경은 이미 주의를 청산하여 오히려 앞의 시민형에 가깝지만, 행동으로 전향을 표명할 용기가 없어 여전히 그 입장을 지속하는 자가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주의자로서 시민으로 가장하는 자, 시민으로서 주의자를 가장하는 자 등이다. 이들은 대개 전향 표명을 꺼려하며 이미획득한 대중적 지반에 항상 무언의 명령과 지도 영향을 행사하려 한다.

물론 이는 이들이 인심의 귀추를 잘못 파악한 결과로써 일단 변국(變局)을 만나면 분명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 이 유형의 대다수는 지방운동자로 이들 가운데는 종래 관헌의 지도와 보호를 이용한 자들도 있다.

이해할 수 있는 지도와 보호는 그 심경을 호전시킬 수 있지만, 일단 생활이 안정되면 오히려 사상이 견고해져 쉽게 바뀌기 어려운 예가 많다.


5) 청산파적 합법주의형
이 유형은 대개 사상적으로 동요하고 더구나 적극성을 띈 자들이다. 즉 과거의 비합법성을 완전히청산하여 현하 정세에 적응하는 합법영역에서의 활동에 만족하는 자들이다.
이 유형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상적 정치적 근저를 여전히 공산주의에 두면서 일시적으로 전술적 합법성을 유지하려는 자와 또 하나는 합법사회주의 즉 사회민주주의로 이행하려는 자들이 있다.
전자는 물론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후자는 인민전선을 운운하는 오늘날 그 내용에 따라서는 혁명적으로 위험하다.

이는 최근 스페인과 프랑스 등지에서 사회당의 현현(顯現)을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민족주의자 분야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즉 표면상으로는 같은 자치를 주장하지만, 독립을 위한 과정적 단계로서 자치를 주장하는 자와 국민적 자치(내선양족합동)를 주장하는 자도있다.

양자는 모두 앞으로 사회민주주의의 경우와 동일한 귀취가 예상된다. 즉 일단 시국이 변하면 양자의 향배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사회당과 매우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6) 신사회 개혁 체계로서의 적극형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사상은 하나의 사회과학 체계이자 생존 약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개혁투쟁의 학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외치며 이를 주장하는 것은 그럴만할 주장이있고 정당한 이론적 근거가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사상이란 하나의 추상적인 사상체계로 구체적 사회 예를 들면 일본의 자본주의에 대한 개혁사상이라고 말할수 있는 구체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결코 숨길 수 없는 결함이다.
자본주의 발달의 양상은 ‘세계를 자신의 영상(影像)과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상세히 검토해보면 각국 자본주의에는 각각의 실정과 국민적 특성에 따라 어떤 독특한 발달의 경로와 양상을 겸비하고 있다.

이는 즉 구체적인 사물이 지니는 구체성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일반적 사상개념은 일반 자본주의의 추상개념을 토대로 구축한 체계로써 일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보편타당성을 지니지만, 구체적 적용의 단계에 들어가면 구체사회의 현실과 공산주의의 추상개념과의 사이에는 중대한 저어(齟齬)가 초래하였다. 이 때문에 각국의 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는 이러한 결함을 막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특히 일본과 조선처럼 구주와 실정이 다른 나라의 지도에서 코민테른은 완전히 실패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일국에서 공산주의운동은 단순한 사상 선전 시기에 머물러 구체적 정치수행의 영역으로까지 발달하지 않는 동안은 항상 순조로운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일단 구체적 행동의 전개 단계에 들어서면 많은 곤란에 직면하였다.

그 원인은 대개 그 나라의 사회실정을 너무나도 무시하면서 추상적 공식을 무조건적으로 적용시키려는 잘못 때문이다. 즉 현실조건은 공산주의의 개념을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부분에만 흡수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일률적으로 공산주의 개념에 현실을 맞추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운동을 실천하면서 심각하게 이러한 결함을 체험한 자로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그 오류를 청산 극복하여 새로운 개혁체계를 발견하고자 시도하려는 이러한 유형이 생겨났다.
이들 유형은 자본주의의 결함도 공산주의의 장점과 단점도 모두 이해하여 그 나라의 실정이 필요로하고 사회의 체질에 가장 적절한 부분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구체적 체계를 구성한다.

예를 들면 사노 마나부의 최초의 전향성명의 요지 또는 대동민우회의 선언 강령과 같이 내용에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지만, 그 본질에서 일본이라는 사회를 개혁하려는 방략이자 사상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이는 일본이라는 구체사회에만 적용해야 하는 것으로 일본의 사회실정과 국민의 전통 기타 일본의 특수성에 입각한 사회 개혁안(改革案)에서 생긴 다른 전향의 형태와는 그 범주가 다르다.
대동민우회의 소설(所說)에 따르면 ‘오늘의 일본’은 ‘내일의 일본’의 건설을 통해 구제될 동양적 왕도주의를 기조로 하는 대국가의 실현은 모든 민족적 계급적 모순과 알력을 극복하는 것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고 조선은 피정복민족이 아니라는 공동목표를 통해 비로소 내선 양 민족은 도의적으로 서로 신뢰하고, 국가의 각 부분도 왕도정신을 더욱 높이 발양함으로써 포섭할 수 있다.

이러한 대국가주의 사상이야말로 모든 개혁사상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계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체계는 공산주의와 민족자결주의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조건이다. 즉 대동민우회의 선언 약법(約法)에서 명시한 것처럼 대국민주의는 일면에서는 대민족주의이자 대문화주의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근상일가(槿桑一家)의 이상은 내선 양 민족이 혼연일체가 되고, 나아가 대민족을 결성하고 대문화를 창조 발양하여 세계 인류의 복지를 위해 공헌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내일의 일본’의 영광과 일본국민의 발전, 아시아 제민족의 행복이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개혁사상의 근저이자 기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사상을 대신할 새로운 사상, 즉 대국가주의 이상을 품고 공산주의운동에 바쳐온 만큼의 정열과 희생적 정신으로 국가의 번영과 동포 민족의 행복을 염원하는 태도야말로 시대의 요구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전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결론


이상 살펴본 바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것을 전향으로 인정할 것인지 문제가 되지만, 그 가운데 적극형, 즉 대동민우회형과 같은 전향은 공산주의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비판과 자기반성의 과정을 경험한 새로운 목표의 건립으로 과학적 사상에서 나온 전환과정으로서 가장 정상적인 경로이다.

특히 조선 사회운동의 역사적 귀결은 여기에서 진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또 대동민우회가 아니더라도 전향을 사회에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다음 행동으로 나서는 소위 전향행동파는 대개 이 유형에 속한다.

따라서 이 유형의 전향자는 새로운 사상의 방향 즉 새로운 인생관, 민족관, 사회관, 국가관 내지 세계관으로 살아나가려는 것이기 때문에 기성의 좌익세력에 대항투쟁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성장발달을 이룩할 수 있다. 전향의 발걸음은 대담명료(大膽明瞭)하고 더욱이 의심의 여지가 없이 곧바로 나아가 공산주의 기타 모든 반국가적 사상 계열을 배격함으로써 종래 좌익의 영향 아래 있던 대중을 정상적인 길로 되돌린다는 적극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염원과 순정에 의거하여 분기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름을 추구하고 후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도 나오는 길이다.
음험한 콤플렉스 아래 기회를 엿보는 의장(擬裝) 전향자나 전향을 매물로 삼아 생활밑천을 구하는룸펜적인 탈락자, 기타 좌익이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현혹하는 일을 상습으로 삼는 무리의 발호는 오히려 진정한 전향자에게 화를 입히고 나아가 국민의 선량한 부분에 해를 입히는 비전향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이들이 존재한 것은 주관적 원인, 즉 종래의 사상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고 도의심을 만족시킬 새로운 목표와 이상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객관적 정세가 전향에 불리하다는 것도 그 원인의일부일 것이다. 세상에서는 출옥 명사(名士)를 일시적으로 신문도 크게 보도했고, 민중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그를 환영하고 향당(鄕黨)은 이를 지사(志士)로 존경하였다. 최근에는 관헌의 취체가 엄중하여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감퇴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은연중에 지반을 보유하고 득의(得意)의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태도 상세(狀勢)를 바꾸지 않고 게다가 관헌의 보호가 더해지면 그들은 무엇이괴로워 전향을 표명하겠는가? 보호에 따른 약간의 간섭이 따른다고 하지만 오히려 또 한편으로 동정을불러일으킬 뿐이고, 전향의 비애만을 생각할 것이다. 사상보호관찰법의 실시가 만약 조금이라도 운용이 잘못되면 위와 같은 폐해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출전: 「轉向問題ノ檢討ト題スル印刷物發送ニ關スル件(京高特秘 第15號)」, 1937년 1월 9일,'思想ニ關スル情報綴'(3)>


5. 동우회사건 관계자의 전향성명서 발표에 관한 건
경고특비 제1284호-1
1938년 6월 4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경성보호관찰소장 귀하
각 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동우회사건 관계자의 전향성명서 발표에 관한 건


6월 4일자 경고특비 제1284호(국 검사정 만) 개제(改題) 전 동우회원의 대동민우회 가입의 건에 대해서 동우회사건 기소유예자 김지담(金志淡), 하경덕(河敬德), 김로겸(金魯謙), 유형기(柳瀅基), 전영택(田榮澤), 김흥제(金興濟), 차상달(車相達) 등은 모두 전향을 표명하고 대동민우회에 가입하였다.

또 동시에 이번에 한걸음 더 나아가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자 기초위원으로 김흥제(金興濟), 전영택(田榮澤),차상달(車相達) 3명을 선임했다는 것은 이전에 보고한 바와 같다. 이후 기초위원들은 계속해서 성명서를 기초 중이며, 이를 별지 복사와 같이 완성안을 만들었으나 다소의 추고(推敲)를 통해 인쇄한 다음각 방면으로 배포하기로 하였기에 계속 주의 중이다.
이상 보고 통보(달)한다.


성명(심의용 초안)


불초(不肖)한 자들이 일찍이 흥사단 수양동우회의 일원이 되었지만, 현재 내외정세의 변화에 비추어종래부터 품어온 주의와 주장에 근본적 결함과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단연코 이를 청산하였다.

이번에 새로이 국민적 자각 아래 대동 민우회에 입회함에 있어 불초한 자들의 거취와 동향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우리가 새롭게 파악한 견해와 주장을 피력하여 오랫동안 알아온 여러 형제에게 호소함과 아울러널리 강호제현에게 참고로 이를 제공하는 바이다.
생각건대 현재 내외정세의 급격한 변전과 일본의 획세적(劃世的) 약진과 발전의 여러 계기는 우리조선민중에게 민족장래의 발전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견해와 자각 하에 민족적인 신운명을 함께 개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불초한 자들은 조선민중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면을 천명(闡明)하고 같은 뜻을 품은 인사들에게 묻는 바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이른바 ‘민족주의’의 관념에 둘러싸여조선민중의 발전과 향상은 오로지 ‘민족자결’에 있을 뿐이라고 굳게 믿으며 과거 우리의 사상적 및 실천적인 모든 노력은 오로지 이 신조를 받들어왔다.

아마도 우리 조선인은 조선의 통치를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만 곡해하고 일본의 진정한 의사와 일본과 조선 두 민족의 동아사적인 새로운 사명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 내 조선통치 상에 나타난 비약적인 모든 현상〓조선민중의 향상발전을주안으로 하는 진지한 시정, 특히 최근 미나미(南) 총독이 강조하는 내선일체의 목소리는 홀연히 우리의 지금까지의 미망(迷妄)을 각성하게 한다. 특히 이번 시국에 즈음한 내지인이 반도 민중에게 보이는동포적인 신뢰와 ‘신일본’의 국가적 대이상 아래 조성된 혁신운동은 오늘날까지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의혹과 두려움, 불안을 충분히 일소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세계 대세의 추이를 바라보건대 많은 약소한 민족군(民族群)은 대국가의 지배하에 필연적으로통합되어야 할 정세에 있다.

현대의 여러 국민의 생활은 개인보다도 사회적으로 민족적 고립보다도 여러 민족의 단합과 합작을 통해 비로소 그 발전과 향상이 기대된다. 한 민족의 이른바 ‘독립’이라는 것은이미 그 해당 민족에게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동적 고립을 의미한다.
하물며 지금 동아의 여러 민족의 지도로서 일본정신의 세계적 선양을 이상으로 신동아사 창조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자 분투하고 있는 신일본의 영광스러운 자태는 이른바 ‘식민지 조선’을 지양하고 조선을 신일본 구성의 유력한 절반으로 삼으려는 획기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자결의 이상은 조선민중에게는 무의미하며 분명히 동아사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무시하는 반동적 관념이다.
지금이야말로 선내일체의 새로운 이상은 드디어 구체화되어 착착 실현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우리는 이를 조선민중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로 인식하고 신일본건설의 국민적 긍지와 포부 아래 그 일익적(一翼的) 임무를 다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민중의 장래에 영광과 발전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황도 일본의 내일의 모습을 생각하여 우리의 지금까지의 그릇된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을 깨끗이 청산하고자 한다.

조선민중의 영원한 행복은 일본과 조선 두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것을 핵심 주체로 삼는 신동아의 건설에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는 바이다.
조선민중의 이해(利害)와 흥망성쇠는 일본 전체의 그것과 완전히 합치되어야 하고, 일본의 흥륭발전 또한 조선민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건데 일본과 조선 두 민족은 동조동근(同祖同根)으로 예전에는 일체(一體)였다. 오늘날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차이의 여러 조건은 앞으로 동일한 국민생활의 발전향상과 동포감정의 철저한 심화에 따라 차츰 소멸하여 머지않아 완전한 하나의 민족으로서 일원화되는 것 또한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민족의 변화발전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여기로 귀결될 것이다.

피와 문화의 연원(淵源)을 하나로 하는 두 민족은 신동아사 창조의 위대한 사명을 앞에 두고 일원(一元)의 민족으로서의 신념을 구체화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지키려는 가장 솔직하고 과감한 의기로 충만 되어 있다. 이는 실로 대동민우회의 근본정신으로서 우리가 앞으로 더 한층 분투 노력해야 하는 사명이다.

이번 지나사변은 이미 다 알다시피 일본의 국가적인 대이상의 표현임과 동시에 아시아 여러민족을 제압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전(聖戰)임이 틀림없다.

이를 믿는다면 앞으로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뎌 거국일체(擧國一體)가 되어 목적을 관철시켜야
한다.
이에 소신을 피력하면서 총후국민의 의식정화에 얼마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출전: 「同友會事件關係者ノ轉向聲明書 發表ニ關スル件(京高特秘 第1284號ノ1)」, 1938년 6월 14일>


6. 대동민우회원의 좌담회 개최에 관한 건
경고특비 제1284호의 2
1938년 6월 28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대동민우회원의 좌담회 개최에 관한 건


6월 4일자 경고특비 제1284호 전 동우회원의 대동민우회 가입의 건에 대해서 6월 14일자 경고특비 제1284호의 1 동우회사건 관계자의 전향성명서 발표의 건에 대해서 경성부 중학정 1번지 소재 대동민우회에서는 지난번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동우회사건 관계자 등을 회원으로 획득하고, 또 한편으로 신회원 등이 전향성명서를 공표하고자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이미 보고한 바와 같다.

이후 계속하여 동 사건 관계자의 입회를 권유한 결과 모두 18명이 가맹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동 회에서는 이들 신입회자의 환영을 겸하여 성명서 발표에 관한 타합 및 회원 상호의 친목을 도모하고 의견을 교한하고자 6월 23일 오후 8시 15분부터 회관에서 다음 23명의 회원이 모여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석상에서는 먼저 이사장 안준(安浚)이 개회사로서 본회 개최의 취지를 말한 다음 출석자를점호하였다.

이어서 안준은 “6월 23일 부민관에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결성되었다.

동 연맹은 학무국의 지도에 속하는데, 대동민우회도 발기단체의 하나로서 총무부장 차재정(車載貞)을 참가시켰다.
그리고 본 회는 모든 것을 연맹에 바치기로 했음은 물론, 본회는 회 자체의 본분을 다함과 동시에 연맹의 일원으로서 보조를 함께 하기로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이후 신입회원에 대해 전향성명서의 설명을요구하자, 유형기(柳瀅基)가 일어나 “우리 신입회원은 성명서를 발표하고자 기초위원 3명(이미 보고)을선정하였고, 여기에 이각종(李覺鍾)과 차재정 양 씨의 원조도 있어 상당히 훌륭한 성명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미 총독부의 검열도 거쳤음으로 이제 와서 내용을 운운할 필요가 없어 약 2천부를 인쇄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어서 발송처 및 우송비용 등에 관해 협의한 결과, 조선·만주·지나 방면은 신입회원의 보고에 의거하여 본회 사무소가 발송하고, 미국 및 하와이 방면은 유형기가 발송하기로 하였다.
또 발송비용은 모두 신입회원이 부담하기로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였다. 위의 협의가 끝나고 더욱이 이종각은 오는 7월 1일 금요일 총독의 정례면회일에 신입회원 3명을 보낼 예정인데 누가 적당한지자문을 구하자, 갈홍기(葛弘基)의 제안에 따라 이각종에게 인선을 일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곽현(郭炫)의 제의에 따라 차재정은 신입회원 일동에게 대동민우회의 소사(小史)로서 동 회의 전신인 백악회(白岳會)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연혁 및 운동의 개황을 설명하고 오후 11시 10분 무사히 폐회 해산하였다.
위를 보고한다.


기(記)


유형기(柳瀅基), 김로겸(金魯謙), 갈홍기(葛弘基), 차상달(車相達), 하경덕(河敬德), 현제명(玄濟明),정남수(鄭南水), 안준(安浚), 김연식(金演植), 곽현(郭炫), 이교진(李敎鎭), 진공섭(陳公燮), 조승환(曺昇煥), 이승원(李承元), 이각종(李覺鍾), 주련(朱鍊), 김동일(金東日), 최봉칙(崔鳳則), 이묘묵(李卯黙), 홍난파(洪蘭波), 김기승(金基昇), 김흥제(金興濟), 차재정(車載貞)


<출전: 「大東民友會員ノ座談會 開催ニ關スル件(京高特秘 第1284號ノ2)」,'思想에關한情報(9)', 1938년 6월 28일>


7. 전(前) 동우회원(同友會員)의 성명서


흥사단-수양동우회의 관계로 오래 종로구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무사 석방된 좌기 18인은 금번에 시국에 자각한 바 있어 대동민우회에 가입하고 이러한 성명서를 세상에 공포하다.


성명


불초 우리들이 일찍이 흥사단〓수양동우회의 일원이던 바 현하 내외정세의 변전에 비추어 종래 품어오던 주의주장에 근본적 결함과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단연 이를 청산하고 이번에 신국민적 자각 하에 대동민우회에 입회함에 있어 불초 우리들의 거취와 동향을 명백히 하는 동시에 우리가 새로이 파악한 견해와 주장을 피력하여 구지제형(舊知諸兄)에게 알리고 널리 강호제현의 일고(一考)에 제공하는 바이다.
생각건대 현하 내외정세의 급격한 변전과 우 일본의 획세(劃世)적 약진발전의 제 계기는 우리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장래의 발전에 대하여 전혀 신견해와 자각 하에 신운명을 개척케 하기를 요구하여마지 아니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종래 ‘소위 민족주의’의 관념에 둘러쌓여 조선민중의 발전과 향상은 단지 ‘민족자결’에 있을뿐이라고 확고하게 믿어 과거의 우리의 사상적, 실천적 제노력은 전혀 이 신조 하에 받들어 왔다.

대개 우리 조선인은 조선통치를 ‘식민지정책’으로 곡해하여 제국의 진의와 내선 양족의 동아사적(東亞史的)신사명을 인식치 못하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래의 조선통치상에 드러난 비약적 제 현상 특별히 최근 미나미(南)총독에 의하여강조되는 바 내선일체의 성(聲)은 홀연히 우리의 미망(迷妄)을 각성케 하는 바가 있다.

특히 이번 시국에 즈음하여 일본인이 반도 민중에 기대하는 바 동포적 신뢰와 신일본의 국가적 대이상 하에 온양(醞
釀)4)되어가는 혁신기운(革新機運)은 금일까지 우리를 포회(抱懷)한 일체의 의구심과 불안을 일소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재 세계대세의 추이를 관찰함에 다수의 약소민족군은 점차로 대국가의 산하에 통합되는 필연적정세에 있다.

제국민의 생활은 개인보다도 사회적으로, 민족적 고립보다도 제민족의 단원합작에 의하여 비로소 그 발전향상을 기약할 수 있으니 일민족의 소위 ‘독립’이라는 것은 이미 도리어 반동적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 동아 제민족의 지도자로서 일본정신의 세계적 선양을 이상으로 신동아건설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분투하고 있는 새로운 해당 민족에게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 오도 일본의 광영 있는 자태는 소위 ‘식민지조선’을 지양하고 조선을 신일본구성의 유력한 부분이 되게 하려는 획기적 제 현상에 비추어 종래 소위 민족자결사상은 이제는 조선민중에게는 무의미하고 동아사 발전의 신방향을 무시한 반동적 관념인 것이 분명하다.
이에 우리는 황도일본의 내일의 자태를 상상하여 우리의 종래 그릇된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은 깨끗이 청산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의 구원(久遠)의 행복은 내선(內鮮)5) 양족을 타(打)하여 일환으로 삼아 대국민일본인을 구성하여 이를 핵심 주체로 한 신동아의 건설에 있음을 드디어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에 조선민중의 이해휴장(利害休藏)은 전혀 일본 전체의 그것과 합치되고 흥륭일본(興隆日本)의 전도 역시 결코 조선민중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회고컨대 내선 양족은 동근동조(同根同祖) 그 근원에 있어서 일체이었다.

오늘 이를 구분할 차이의 제 조건은 원래 이를 묵수(墨守)할 필요가 없다.

금후 국민생활의 발전향상과 동포감(同胞感)의 심화 철저에 따라 그 즉시 소멸하고 마침내 완전한 하나의 민족으로 일원화함이 또한 결코 불가능이 아니다. 분산에서 통일로 발전하여 나가는 인류사회발전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여기에 귀결케 하는 바 있다. 피와 문화의 연원을 같이하는 양족이 신동아사 창조의 위대한 사명을 앞에 두고 완전히 일원화함은 실로 신(神)의 의사로 우리에게 부과한 숙명일 것이다.


4)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은근히 품고 있음.
5) 일본과 조선을 뜻함.


비록 그러하나 민족일원화의 이상은 조급히 완성될 것이 아닌 고로 왕왕히 불가능함과 같이 생각하고 이에 반하여 민족자결주의는 오랜 타력(隋力)에 눌리어 쉽게 실현할 수 있는 듯이 생각하는 일면이 있다.

금일까지 우리들이 민족자결주의에 현혹되어온 것도 필경 이 때문이오 다수인이 민족관념에 미련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시실은 전현 이에 반하여 내선일체 민족일원화의 경향은 가까운때 장족의 진보를 이루어 대세는 우리들의 호불호를 불문하고 더욱 이의 구현화를 요구하여 마지않는다.

그 현실은 필연적이오, 이미 시간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위와 같이 이론적 근거와 현실의 모든 경향을 기초로 하여 내선일체 완전한 일원화로써 조선민중의 나아갈 유일한 방도를 인식하여 신일본 건설의 국민적 긍지와 포부 하에 그 일익적(一翼的) 임무를 달성하는 것만이 진정 조선 민중의 장래의 광영과 발전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실로 대동민우회의 근본정신이오, 우리가 금후 일층 분투노력하지 아니하면 안될 사명이다.

즉 우리는 현재의 일체를 버리고 일체를 얻으려는 가장 솔직 과감한 의기에 충만하여 있다.
지금 지나사변(支那事變)은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일본의 대 국가적 사명의 수행 아시아 모든 민족을 백인 제압의 질곡에서 해방하려는 목적의 성전이니 우리들은 금후 어떠한 희생도 꺼리지 않고 견인지구(堅忍持久) 거국일체(擧國一體)가 되어 목적의 관철을 기하여야 될 것이다.
세상은 이미 적화공산의 참화와 개인주의 공리주의적인 백인 문명의 추악에 염증이 났다. 팔굉일우(八紘一宇) 도의적 결합으로 하는 동양정신 일본주의야말로 진정 동아를 구하고 세계 인류를 지도할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나는 일본 정신의 사도(使徒)로서의 영예와 책좌를 맡은 데 감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후 위와 같은 신념 주장 하에 자분(自奮) 노력하기를 기하는 바이다.
1938년 6월 18일


갈홍기(葛弘基) 김여식(金麗植) 김흥제(金興濟) 김노겸(金魯謙) 김기승(金基昇) 전영택(田榮澤) 정남수(鄭南水 : 英道) 노진설(盧鎭卨) 유형기(柳瀅基) 이기윤(李基潤) 이명혁(李明赫) 이묘묵(李卯黙) 박태화(朴泰華) 차상달(車相達) 최봉칙(崔鳳則) 하경덕(河敬德) 현제명(玄濟明) 홍난파(洪蘭坡)


<출전: 「機密室 -우리 社會의 諸內幕-前同友會員의 성명서」, '三千里' 第10卷 第8號,1938년 8월, 13~28쪽>

8. 동우회사건 관계자의 전향성명서 발표에 관한 건
경종경고비 제5200호의 4
1938년 7월 1일
경성종로경찰서장
경기도 경찰부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부내 각 경찰서장 귀하


동우회사건 관계자의 전향성명서 발표에 관한 건
(6월 25일자 본 호에 대해서)


동우회 사건 관계자의 선도에 관해서는 미리 지시한 바도 있어 예의(銳意) 고려중이며, 경성보호관찰소의 취직 알선 등을 통해 과거의 오류를 점차 청산하여 전향하고 있는데 그 태도가 확연하다.

기소유예자의 한 사람인 정영도(鄭永道)는 석방 직후 대동민우회에 입회하고, 그 지도하에서 구미(歐美)의 지인에게 전향성명을 발표하였는데, 그 반향이 아주 양호하다. 이를 감안하여 다른 관계자에게도 대동민우회에 가입할 것을 종용한 바, 김흥제(金興濟) 외 16명이 흔쾌히 입회하였다. 또한 지나사변 발발 이후 팽배하게 대두한 애국열에 자극 받아 일동 모두가 협의의 결과, 그릇된 사상을 청산하고 신일본 건설의 일익적(一翼的)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부과된 임무라는 성명서를 인쇄하였다.

그리고 이를 각 관계 방면에 발송하고자 기초위원을 선정하고 지난 6월 중순에 일단 성명서를 완성하여 가(假)인쇄하였는데, 내용의 일부가 극히 미온적이라며 반대하는 자가 있었다.

이에 원고를 다시 작성하고 총독부에 출판허가의 수속을 받은 다음 인쇄중인 바, 최근 인쇄가 종료되었다. 인쇄비와 우편료 등은 모두 신입회원이 부담하고, 내선 각지는 물론 미국, 만주, 지나 등에 재류하는 옛 친구와 조선 내의 각단체 혹은 신문사 등에 곧 우송하여 사상전향을 표명하기로 하였다.
이상 보고(통보)한다.
(이하 성명서 생략)6)


<출전: 「同友會事件關係者ノ轉向聲明書發表ニ關スル件(京鍾警高秘 第5200號ノ4)」, 1938년 7월 1일>


6) 위의 성명서 내용과 동일하여 생략했다. 명단에서 인명표기상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위의 한글본(三千里 수록자료)이 더 정확할 것으로 보인다.

9. 이각종(李覺鍾)파 대동민우회의 동정에 관한 건
경고특비 제1371호의 8
1936년 8월 22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이각종파 대동민우회의 동정에 관한 건


8월 9일 타협위원회에서 김경식(金瓊植)파와 완전히 결렬한 이각종파는 앞으로 독자적인 입장에서 백악회(白岳會)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 재출발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8월 11일 오후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경성부 중학정 1번지 이각종의 집에서 이각종, 안준(安浚), 박형남(朴亨南), 김완식(金浣植), 차재정(車載貞), 주련(朱鍊), 장인송(張寅松), 유공삼(柳公三), 김부산(金溥山), 진공섭(陳公燮), 이민희(李旻熙), 사현필(史鉉必), 이승원(李承元) 등 13명이 회합하여 대동민우회 창립준비회를 개최하고, 본 회의 강령 및 약법을 수차례 심의 수정하였다. 특히 신입회원에 대해서는 민우회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엄중 심사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이 심사규정을 만들고, 심사위원으로 이효진(李孝鎭), 차재정,주련, 박형남, 진공섭 등 5명을 선출하였다.

또한 이들은 8월 23일 부내 견지정(堅志町)에 소재한 시천교당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하기고 결정한 다음 폐회하였다.

이후 같은 달 17일에는 이각종의 집에 이각종 이하 12명이 다시 회합하여 창립준비위원회를 개최하고, 안준의 사회로 창립대회 소집에 관해 토의 하였다.

이 결과 창립대회는 준비상의 사정으로 약 1개월 연기하여 오는 9월 중순경에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그동안 창립준비위원은 유감이 없도록 준비에 매진함과 동시에 경성부내에서는 언론,교육, 사회교화, 정치 실업 등 각 기관 및 사상가 등과 교섭하여 본 회의 선언 강령을 선전하고 그 의향을 청취하기로 하였다.

또 지방에서는 이번 달 말경부터 약 1주일간 예정으로 전선 각지(별표)에 창립준비위원이 순회하여 본 회의 선언 강령을 널리 선전함과 동시에 회원을 모집하기로 하고, 순회구역 분담 및 순회원은 상무위원이 결정하기로 가결하였다. 더욱이 본 회의 수신(修身) 고문으로 이각종을 선정하는 한편, 지난 8월 2일 민우회 창립대회의 경위 및 자파(自派)의 태도 등을 등사 인쇄하여 각 회원 앞으로 발송하고, 오는 18일부터 본 회의 선언 강령 약법 및 「대동민우회의 발기에 즈음하여 여러분에게 고한다」는 제목의 인쇄물 및 원조 통문을 선전할 목적으로 조선의 각 부윤, 군수 및 경찰서 앞으로 각각 우송하기로 하였다. 이에 계속하여 주의중이다.
이를 보고 통첩(달)한다.
추신, 위의 4종의 인쇄물은 경무(귀)국에만 첨부한다.

기(記)
경기도 인천, 개성, 수원, 안성
충청남도 대전, 공주, 천안, 당진, 홍성, 강경, 조치원
충청북도 충주, 괴산, 영동, 청주
전라남도 복포, 광주, 남원, 순천, 진도
전라북도 전주, 군산
경상북도 김천, 상주, 안동, 대구, 예천
경상남도 부산, 마산, 진주, 통영, 밀양, 김해
함경남도 홍원, 북청, 단천, 함흥, 정평, 원산, 고산
함경북도 청진, 회령, 종성, 나진, 웅기
강원도 원주, 춘천
황해도 해주, 재령, 연백, 사리원
평안남도 평양, 안주, 진남포
평안북도 의주, 정주, 선천, 신의주


<출전: 「李覺鍾派 大東民友會ノ動靜ニ 關スル件(京高特秘 第1371號ノ8)」, '警察情報寫(副本)', 1936년 8월 22일>


10. 양주삼의 미국귀래담청취좌담회 개최에 관한 건
경종경고비 제8646호
1938년 9월 16일
경성 종로경찰서장
경기도 경찰부장 귀하


양주삼(梁柱三)의 미국 귀래담(歸來談) 청취좌담회 개최에 관한 건


관하 중학정(中學町) 1번지 소재 대동민우회(大東民友會)에서는 이번 달 13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회원 유형기(柳瀅基) 외 14명이 회합하고, 이각종(李覺鍾)의 사회 하에 양주삼의 미국시찰담을 청취하기 위한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양주삼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참고를 위해 보고한다.


기(記)


나는 이번 미국을 시찰했는데 이 나라 재류조선인은 지난번 조선 내에서 우리가 전향한 것에 대해 아주 반대의 뜻을 품고 있다.

나에 대해서는 이완용 이상의 간한(奸漢)이라 칭하며 심지어 타살론(打殺論)을 주장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그래서 미국 체재 중에는 조선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미국인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내가 미국에 여행한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인데, 환송영회가 없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아마 위의 이유로 개최하지 않은 듯하다.

뉴욕(紐育) 재류조선인 약 200명 가운데 동지회 회원은 불과 23명 정도인 모양인데, 현재 하와이에 재류중인 동지회 수령 이승만(李承晩)은 오스트리아 부인과 결혼한 것 때문에 민족주의적 견지에서 이미 실격하여 지금은 완전히 신망을 잃어 볼품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뉴욕 등지에는 조선인 공산주의자가 다수 있어 도미중인 최승희(崔承喜)에게 일본인이 되었다고 칭하며 악선전하고 방해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내지인 측의 환영회 개최에 대해 최승희는 조선인임으로 일본인의 환영회에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방해하고, 현장에서는 심지어 일화(日貨)불매 마크를 반포(頒布)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또 최승희의 무용은 피아노를 사용했기 때문에 미국인 측으로부터 조선 고대의 무용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기만적인 고대무용이라며 신용을 잃고 실패하였다.

이에 지금 최승희의 남편 안 모는 조선고유의 장고를 연습하고 있다.
동지회는 하와이에서 제탄업을 경영하고 기타 각자가 다액의 민재(民財)를 소비함에 따라 신용을 잃어 동지회에 헌금하는 자가 없다. 동지회에서 현재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생도 20명을 수용하는 조선인기독교학원 한 곳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이태승(李泰勝)과 같은 자는 학원 간판 아래에 교회경영을 구실로 미국인으로부터 기부금품을 모집하여 사복(私腹)을 채우고 있다. 앞으로 동지회의 활동은 완전히 좌절될 것으로 여겨진다.
흥사단(興士團)은 동지회보다 약간 우세한 편으로 샌프란시스코(桑港)의 흥사단 회관은 약 4만 달러로 건축하고 별도로 자산 약 1만 달러가 있었지만, 지나요리점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였다.

또 안창호(安昌浩)의 사망으로 지도자를 잃고 정치적 활동에 커다란 지장이 초래한 것 같아 앞으로 별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곳의 공산주의자 등이 상당히 활약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나사변에 대해 미국 재주 지나인 등은 선전술이 교묘하여 신문 관계나 기타 미국인을 이용하여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고 역선전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이 패전하고 앞으로 만주탈환은 물론, 조선도 독립 할 수 있다는 선전에 따라 미국 내에는 완전히 잘못 전해진 전황 뉴스를 믿고 일화 배척 등 배일사상이 고조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거류 내지인 공산주의자도 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은 기현상(奇現象)으로 제국은 왜 해외에서 올바로 선전하지 않는지 기탄해마지 않는 바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김일선(金一仙)이라는 조선인 이발업자가 있다. 그 사람은 지나 지리에 정통한 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군은 지금 구강(九江)으로부터 한구(漢口)로 진격 중으로 장개석(蔣介石) 정권의 몰락은 풍전의 등화와도 같다. 지나인 가운데 유식자 등은 재빨리 자국의 패배를 자각하여 미국으로 피난하는 자가 많다.

또한 미국 재류 지나 민단이 자국 정부에 국방헌금으로 24만 달러를 송금함에 있어 10만 달러를 횡령한 자조차 있다.

요컨대 지나 민족은 여러 곳에서 자국의 자멸상을 연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선전을 통해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인 가운데 환자 등은 이를 알지 못하고 역선전에 편승하여 이에 마취되는 것은 실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바이다.

미국 신문의 논조에 따르면 미국, 영국, 프랑스는 지나사변의 장기전을 매우 바라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구가 함락되자 영국은 자연히 중재에 나서 자국의 이권획득을 도모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일본과 절대로 전쟁할 의사가 없다.

지난번 뉴욕에서 방공연습이 있었을 때, 민중은 크게 놀라 자국은 평화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을 침략하지 않는다며 방공연습의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에 반항하였다.

또 일화 불매설이 들려오지만 사실과 다르다. 미국의 각 상점에는 여전히 일본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주국 문제와 같은 경우도 영국과 미국은 이미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재류 조선인 가운데 조선독립을 몽상하는 것은 환자 중의 환자이다. 요컨대 조선인은 생사를 결정해야할 기로에 직면하고 있다.

즉 내선일체는 생로(生路)를 찾는 것이지만, 이에 반대하는 자는 사로(死路)를 걷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 내선일체가 되어 생사를 함께해야 한다.

나는 당국이 실행하고 있는 내선일체의 선정을 선인으로서 과분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정말로 감격해마지 않는다.

늘날 세계에서 일본에 의지하는 조선인으로서 한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정세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일본인으로서 일등국민의 대우를 받고 있음을 보며 내선일체의 은정(恩政)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을 여행하면 일본인의 일등국민 대우를 자연히 알게 된다. 특히 구라파에서 일본인은 상등국민으로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외국에 입항할 때, 일본인은 곧바로 상륙할 수 있지만, 지나인과 같이 질병이나 기타 이유로 3일간 금족(禁足)되는 실정을 볼 때, 일본국민이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다음으로 미국은 지역이 넓고 부국으로 자유국이지만, 이번에 내가 시찰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도 또한 상당한 고민거리가 있다. 첫째로 곡물의 생산과다 문제로, 재작년에 전국 내에 소맥 4억여만 부셸(bushel)이 과잉 생산되었는데 가격 폭락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소각 처분하였다. 작년분의 잉여품 3억여만 부셸은 정부에서 매상정책을 강구중이다.

또 목면 및 연초의 잉여도 소맥과 같은 상태로 가격이 저렴함에 따라 매각대금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농민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정부가 생산축소 정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생산 과다를 피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둘째로 자동차 과다문제는 오늘날 전국 내에서도 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세계의 자동차 10분의 6을 점유하고 있는 만큼 시가지의 도로는 자동차 주차문제가 고민거리일 뿐 아니라, 자동차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수는 1923년부터 25년 사이의 통계 441,912명으로 작년 1년간에만 사망자 4만 3백여명, 부상자 122만여 명으로 미국의 개국 이후 과거 15년간 전몰한 전사자 부상자 총계 244,357명보다 훨씬 고율을 나타내고 있는 상태이다.

기타 도시에서는 각 호 각 사람마다 냉장설비로 인해 다량의 얼음의 용해수가 생겨 배수문제도 상당한 난문제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공산당 문제는 특히 주목해야한다.

미국은 10여 년 이전부터 공산당 정당이 성립되어 1926년 무렵의 투표권자 수는 1만 여 명에 달하였다.

또 전국 내의 공산주의자는 모두 혁명을 계획하여 그동안의 동맹파업 수는 1931년 810건, 1932년 841건, 1933년

1,690여 건, 1934년 1,800여 건, 1935년 2,600여 건, 작년에는 9개월간 3,757건에 달하였다.

이들은 모두 노자(勞資) 협조의 투쟁을 배격하고 파괴적 질서문란을 획책하는 공작으로, 나아가 이문제는 육해군 측에도 파급되기 쉽다고 미국인 모 선교사는 개탄하고 있다.

미국은 소위 자유국이기 때문에 어떠한 주의라도 그 선전은 허용되어 있다. 한편으로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것에 대해 또 한편으로 공산주의 반대선전도 있다. 하지만 공산당의 활약은 주목해야 한다.

동맹파업 등은 항상 비밀리에 공산당이 지도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 내에서 종래 조선인 문제는 배일(排日)이 사는 길이라고 오인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이번에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그들도 양민(良民)이 될 것으로 믿는다. 장로파의 신사참배문제와 같은 것은 미국의 선교본부에서는 아무런 정해진 방침이 없다. 중간의 총회 등에서 교육적으로 인퇴(引退)를 결정한 것은 선교사의 인식 부족에서 생긴 문제이다.

앞으로 장로파도 오래된 선교사는 점차 귀국하고 새로운 인물이 조선에 올 때는 아무런 이의 없이 신사를 참배할 것으로 사료된다.


<출전: 「梁柱三ノ米國歸來談聽取座談會開催ニ關スル件(京鍾警高秘 第8646號)」,'思想에 關한 情報(10)', 1938년 9월 16일>


11. 대동민우회 간담회 개최에 관한 건


경고특비 제2858호
1938년 12월 19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귀하
각도 경찰부장 귀하
관하 각 경찰서장 귀하


대동민우회 간담회 개최에 관한 건


경성부 중학정(中學町) 소재 대동민우회에서는 지난 12월 14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부내 태평통(太平通) 1정목 경성부 부민관 식당에서 세말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출석자는 별지와 같다. 정각에 일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함께 하면서 다음 요지의 간담을 나누고 오후 9시에 무사히 산회하였다.
이를 보고 통보(달)한다.


기(記)


1. 주련(朱鍊)


조선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현하 시국을 감안하여 군수공업, 중공업, 농업 기타 모든 방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지위에 있음으로 우리 조선인은 진정한 내선일체의 실현에 노력해야 한다.


2. 현영섭(玄永燮)


영국은 자유주의 아래에 세계의 모든 곳에 영토를 차지하는 철저한 침략주의인데, 우리 일본의 팔굉일우주의(八紘一宇主義)는 결코 침략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병합 당시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녔는데, 오류를 자각한 오늘날은 우리의 모든 것을 국가에 바쳐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를다함으로써 국가로부터도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3. 이광수(李光洙)


우리는 병합 당시부터 마음에도 없는 병합을 강행하였다는 불만을 품었고, 또 일본인은 우리를 식민지로 취급했기에

왕왕 반동행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는 이번 형무소에서 많은 것을연구한 결과, 나의 잘못된 고찰(考察)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가령 아시아 문제로서 대아시아를 건설함에 있어 그 통수자로서 누구를 선출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나는 만주인이나 지나인은 그 누구 한사람도 적임자가 없고 오로지 일본인만이 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나는 지금까지 전향을 표명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지금에 이르러 전향이라든가 내선일체를 외치는 것보다 오히려
□□ 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이상, 형식에 흐르지 않고 진실 즉 표리 모두 일본제국신민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굳은 결심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각오 아래 전향을 표명하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의 자손은 내가 걸어온 표리부동의 잘못된 행동을 결코 따라하지 않고 일본신민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4. 이각종(李覺鍾)


내선일체의 완성 이후는 총독정치가 없어져 내지와 동일한 부현(府縣) 정치가 이루어지고, 헌법도 실시되어 참정권도 부여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또 말할 필요도 없이 내선일체가 되어 조선의 독특한 것까지 강제적으로 폐지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5. 조병옥(趙炳玉)


국내의 새로운 문제는 사회, 정치, 경제 기타 모든 방면에 걸쳐 필연적으로 과학적인 새로운 조직을만들 것이다.


6. 주요한(朱耀翰)


세계 각국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간파하고 국민생활의 합리화에 매진하고 있다. 일본국민도 모든 형태를 바꾸어 신생활운동에 전념중이다. 오늘날 우리는 먼저 이번 전쟁의 목적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7. 윤형식(尹亨植)


우리 조선인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행동을 청산하고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최대 이상이다.


8. 권충일(權忠一)


내선일체의 문제는 정치적인 슬로건에 그치지 말고 일상생활화하여 실천운동화해야 한다.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실행할 필요가 있다.

<별지> 출석자


안준(安浚), 이각종(李覺鍾), 차재정(車載貞), 주련(朱鍊), 김동일(金東日), 현영섭(玄永燮), 최봉칙(崔鳳則), 인정식(印貞植), 이석규(李碩奎), 차상달(車相達), 유형기(柳瀅基), 갈홍기(葛弘基)7), 전영택(田榮澤), 하돈덕(河敦德), 윤형식(尹亨植), 조두원(趙斗元), 주요한(朱耀翰), 이광수(李光洙), 김동환(金東煥),조병옥(趙炳玉), 진공섭(陳公燮), 권충일(權忠一)


<출전: 「大同民友會 懇談會 開催ニ 關スル件(京高特秘 第2858號)」,'思想에 關한 情報(11)', 1938년 12월 19일>


12. 대동민우회의 성명


성명

불초(不肖) 등은 일찍이 흥사단(興士團)〓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일원이었을 시절 작금의 내외정세의 변전을 고려해 기존에 품고 있던 주의와 주장에 근본적 결함과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단호히 이를 청산하고 이번에 새로운 국민적 자각 아래 대동민우회(大東民友會)에 입회하게 되었다.

이에 불초등의 거취와 동향을 밝히는 동시에 우리가 새롭게 파악한 견해와 주장을 피력하여 옛 벗들에게 알리고,아울러 널리 강호의 현자들이 일고(一考)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생각건대 작금의 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전과 우리 일본의 획기적 약진과 발전의 계기들은 우리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장래의 발전에 대해 새로운 견해와 자각 아래 새 운명을 개척하도록 요구해마지 않는다.
우리는 종래 이른바 ‘민족주의’의 관념에 사로잡혀 조선민중의 발전과 향상은 오직 ‘민족자결’에 있다고 굳게 믿고 과거 우리의 사상적 아울러 실천적 노력들은 오로지 이런 신조 하에 이루어져 왔다.

왜냐하면 우리 조선인은 조선 통치를 ‘식민지 정책’이라고 곡해하고 제국의 진의(眞意)와 일본과 조선 두 민족의 동아사적 사명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수년간 조선 통치에 나타난 비약적 현상들, 특히 최근 미나미(南) 총독에 의해 강조되고 있는 바의 내선일체의 목소리는 홀연히 우리 미망(迷妄)을 각성시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국 속에서 조선반도 민중에 대한 일본인의 동포적 신뢰와 ‘신일본’의 국가적 대 이상 아래 배양되고 있는
혁신기운은 오늘날까지 우리가 품고 있던 일체의 의심과 불안을 일소하기에 충분하다.
작금의 세계 대세의 추이를 보면 수많은 약소민족들은 점차 대국의 산하에 통합되어야 할 필연적 정세에 있다.

국민들의 생활은 개인보다 사회적으로, 민족적 고립보다 제(諸) 민족의 단원합작(團圓合作)에 의해 비로소 그 발전·향상을 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민족의 이른바 ‘독립’이라는 것은 더이상 해당 민족에게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동적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


7) 원문 오류. 갈홍식(葛弘植)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음.

물며 지금 이때 동아 민족들의 지도자로서, 일본정신의 세계적 선양을 이상으로 삼고 신동아 건설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신일본의 영광스러운 자태는 이른바 ‘식민지 조선’을 지양하고 조선을 신일본 구성의 유력한 부분으로 삼으려는 획기적 현상들을 고려하건대, 기존의 이른바 민족자결 사상은 마침내 조선민중에게 무의미하고 동아사 발전의 새 방향을 무시한 반동적 관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우리는 황도(皇道) 일본의 내일의 모습을 생각함으로써 기존의 우리의 잘못된 민족관, 국가관세계관을 깨끗이 청산할 수 있었다.

조선민중의 영원한 행복은 일본과 조선 두 민족을 하나로 뭉쳐 대국민 일본인을 이루고 이를 핵심 주체로 한 신동아 건설에 있음을 마침내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조선민중의 이해관계, 기쁨과 슬픔은 완전히 일본 전체의 그것과 합치되었다. 흥륭(興隆) 일본의 전도(前途) 또한 결코 조선민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건대 일본과 조선 두 민족은 동근동조(同根同祖), 그 근원에 있어서 일체였다. 오늘날 이를 구분하는 차이의 조건들을 묵수(墨守)해야 할필요는 전혀 없고, 앞으로 국민생활의 발전·향상과 동포감(同胞感)의 심화·철저에 따라 점차 소멸되고, 결국에는 완전한 한 민족으로서 일원화되는 것 또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분산보다 통일로 발전하고 있는 인류사회 발전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여기에 귀결된다.

피와 문화의 연원(淵源)이 동일한 두 민족이 신동아사 창조의 위대한 사명을 앞에 두고 완전히 일원화하는 것은 참으로 신(神)의 뜻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숙명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민족일원화의 이상은 조급하게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종종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데 반해, 민족자결주의는 옛부터 타력(惰力)에 떠밀려 쉽게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민족자결주의에 현혹되어 온 것도 필경 이 때문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 관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는 전혀 반대로, 내선일체와 민족일원화의 경향은 근래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고 대세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더욱 더 이를 구현시키려고 요구하고 있다. 그 실현은 필연적이고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적 근거 및 현실의 경향들을 기초로 하여 내선일체, 완전한 일원화가 조선민중의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인식하고 신일본 건설의 국민적 자부심과 포부 아래 그 일익적(一翼的)임무를 다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조선민중의 장래에 영광과 발전을 약속한다. 이는 실로 대동민우회의 근본정신이자 우리가 앞으로 한층 더 분발하고 노력해야 하는 사명이다.

즉 우리는 지금 일체를 버리고 일체를 얻고자 하는, 가장 솔직하고 과감한 마음가짐으로 충만해 있다.
이번 ‘지나사변’(支那事變)은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의 대국적 사명의 수행〓아시아 민족들을 백인 제압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성전(聖戰)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인내하고 견디며 거국일체(擧國一體)가 되어 목적 관철을 기해야 한다.
세상은 이미 적화공산의 참화와 개인주의, 공리주의적인 백인 문명의 추악함에 등을 돌렸다. 팔굉일우(八紘一宇), 도의적 단결을 이상으로 삼는 동아정신 일본주의야말로 진정 동아를 구하고 세계 인류를 지도할 원리이다.

때문에 우리는 빛나는 일본정신의 사도로서의 영예와 책임을 느낀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신념과 주장 아래 분발하고 노력할 것을 기하는 바이다.
1938년 6월 18일


갈홍기(葛弘基), 김려식(金麗植), 김여제(金輿濟), 김노겸(金魯謙), 김기승(金基昇)전영택(田榮澤), 정남수(鄭南水, 鄭英道), 노진설(盧鎭卨), 유형기(柳瀅基)이기윤(李基潤), 이명혁(李明赫), 이묘묵(李卯黙), 박태화(朴泰華), 차상달(車相達)
최봉칙(崔鳳則), 하경덕(河敬德), 현제명(玄濟明), 홍난파(洪蘭坡, 洪永厚)


<출전: 성명, '基督新聞', 1938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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