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심선택(沈璿澤)
(1) 군자시중(君子時中)
저 심선택은 여러 군자들과 더불어 한 세상에 태어났으며 한 고을에서 살고 있는 바,523) 성기(聲氣)가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가까이 지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다행히도 경학원(經學院)의 명령으로 인하여 여러 군자들과 한 자리에서 모이게 되어, 지난날의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저의 개인적인 영광을 어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 군자들께서는 몹시 바쁘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참석해 주셨는 바, 감사한 마음에 앞서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여러 군자들을 모시고서 한 마디 말씀을 올리려고 하는 것은 바로 경전(經傳) 속에 나오는 하나의 문구(文句)로, 여러 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본 소릉(昭陵)524)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구나 경학(經學)이 근래에 들어와서는 울타리 가에 버려진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으니,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용동시키지 못하고, 세도(世道)에 도움이 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이 있는 바에 온 마음을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중용(中庸)' 속에 나오는 ‘시중(時中)’이라는 두 글자525)에 대해서 여러 군자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중(中)’이라는 것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은 것으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을 말하는바, 바로 천명(天命)의 성(性)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이치가 두루 갖추어져 있으며,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변화가 모두 이것을 말미암아서 나옵니다. 그러니 바로 천하의 큰 근본이며 도(道)의 체(體)인것입니다.
참으로 능히 이를 미루어 확대해 나가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에 이르면, 사물을 응접하는 즈
523) 전라남도.
524) 이미 본 소릉(昭陵) : 이미 본 적이 있다는 뜻이다.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황후인 장손황후(長孫皇后)의 능이다. 태종이 황후를 장사한 뒤 후원(後苑) 안에 관망대를 만들어 놓고 늘 바라보다가, 한번은 위징을 끌고 같이 올라갔었는데, 징이 찬찬히 보며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태종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위징이 “신은 폐하께서 헌릉(獻陵 태종의 어머니 능)을 바라보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이미보았습니다.” 하자, 태종이 울며 조망대를 헐어 버린 고사가 있다.
525) 중용(中庸)……글자 : '중용' 제2장에 이르기를, “중니께서 말씀하기를, ‘군자는 중용을 하고, 소인은 중용을 반대로 한다. 군자가 중용을 함은 군자이면서 때로 맞게 하기 때문이고, 소인이 중용에 반대로 함은 소인이면서 기탄하는 바가 없어서이다.’ 하였다.(仲尼曰 君子 中庸 小人 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한 부분을 말한다.
음에 치우치거나 기우는 바가 없으며, 그 지킴을 잃지 않아 조금이 차이가 나거나 잘못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느 것인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즉 천지가 제자리를 잡음에 만물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시중(時中)을 하여서 중화(中和)의 극도에 이르는 것입니다.
시(時)에는 같지 않음이 있고, 중(中)에는 정해진 체(體)가 없습니다. 고금(古今)은 마땅함이 다르며,하동(夏冬)은 기후가 다릅니다. 옛날에는 마땅하던 것이 오늘날에는 마땅하지 않으며, 여름에는 적당하던 것이 겨울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도(制度)에는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다름이 있으며,의복(衣服)에는 갓옷과 갈옷의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긴 것과 짧은 것은 나무의 형체인데, 긴 것에는 긴 것의 중(中)이 있고, 짧은 것에는 짧은 것의 중(中)이 있습니다.
이에 짧은 것의 중을 가지고 긴 것의 중에 길이를 맞출 수는 없습니다.
큰 것과 작은 것은그릇의 형체인데, 큰 것에는 큰 것대로의 중이 있고, 작은 것에는 작은 것대로의 중이 있습니다.
이에 작은 것대로 중을 가지고는 큰 것의 중에 크기를 맞출 수는 없습니다.
정자(程子)가 이른바 ‘당(堂)은 한 집에서는 중이지만, 한 나라의 중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자막(子莫)이 중을 잡은 것526)은 그렇지가 않아, 하나만을 고집하면서 권도(權道)에 통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사물에 근본이 중하고 말단은 가벼운 것이 있는데, 참으로 중을 잡기만하고서 나아가거나 물러남이 없는 것과 같아, 만물이 그 체(體)를 잃게 됩니다.
이것은 중(中)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사물의 길고 짧음과 크고 작음은 오히려 모두가 그 형체에 따라서 그 가운데에 처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에는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있고, 일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는 데이겠습니까.
만약 다스려진 때의 중(中)을 가지고 어지러운 때에 쓰거나, 정도(正道)에 있어서 중인 것을 가지고 권도(權道)에 쓸 경우,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서 서로 어긋나 모순되게 되어, 적당한 때를 잃고 중도가 아닌 데에 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하면서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위태로운 것을 유지하고자 하며, 어지러움을 바로 잡아서 바른 것으로 돌리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남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북쪽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의 희노 애락(喜怒哀樂)은 어느 때고 적당하지 않은 때가 없어서 혼연히 한 이치가 사물에 흩어져 있는 법입니다. 요순(堯舜)이 공손하게 한 것과 탕무(湯武)가 정벌(征伐)한 것은 모두가 똑같이 그때에 마땅하게 하여,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요순이공손하게 한 것을 가지고 홀로 때에 맞게 한 것이라고 여기고, 탕무가 정벌한 것을 가지고서 때에 맞게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겠습니까.
집 앞의 대문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은 것은 대우(大禹)의 시중(時中)인데, 가령 대우가 누항(陋巷)에 거처하였더라면 이는 시중이 아닌 것입니다. 누항에 거처한 것은 안자(顔子)의 시중인데, 가령안자가 집 대문을 지나가면서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는 시중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은 바로 집 대문
526) 자막(子莫)이……것 : 형세에 따라서 임시변통할 줄을 모른다는 뜻이다. 자막은 노(魯)나라의 현인인데, 중도만 잡았을 뿐, 사정에 따라서 변화할 줄을 몰랐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이르기를, “자막은 그중간을잡았으니, 중간을 잡은 것은 도에 가까우나, 중간을 잡고서도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한쪽을 잡은 것과 같다.” 하였다.
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아야 할 때입니다.
공자(孔子)가 젊어서 노(魯)나라에서 살 때에는 봉액(縫掖)의 옷을 입었으며, 장년이 되어서 송(宋)나라에 살 때에는 장보(章甫)의 관을 썼습니다. 성인의 문장(文章)과 제도(制度)는 그 지방에 가서는 그 지방의 풍속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벼슬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면 벼슬을 하고, 벼슬에서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면 벼슬에서 물러나며, 오래할 수 있으면 오래하고, 빨리 하는 것이 옳으면 빨리 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출처(出處)와 어묵(語黙)은 모두가 때에 합당하여, 어디를 가든 중도에 맞지않는 것이 없습니다.
현재 학문에는 신학문(新學問)과 구학문(舊學問)이 있습니다. 구학문을 하는 자는 윤리(倫理)를 존중하고 도덕(道德)을 밝혀 세로(世路)의 나침반이 되는바, 우뚝하게 높아서 더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혹 이로 인하여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해 사물을 아는 데에 엉성합니다.
오늘날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을 보고서는 마음속으로 그르게 여기면서, 아울러 그 정심한 학술과 부강의 정책까지도 아울러 배척합니다.
이것은 비록 군자의 덕에는 넉넉한 것이지만, 그것을 일러 때에 따라서 중도에 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신학문을 하는 자는 문명의 기초를 세우고 발달한 정책을 주창하여 진화의 선도가 되어 우리들이 의지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혹 이를 인하여 본령(本領)을 몰라서 도덕(道德)에 소원하여, 지난날의 질박한 풍속을 보고는 냉소하면서 혹 윤리 강령까지도 아울러 깨뜨려버립니다.
이것은 비록 때에 따른 용(用)에는 넉넉한 것이지만, 그것을 일러 덕성을 함양함에 있어서 치우치거나 기운 바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반드시 시(時)와 중(中) 두 글자를 합하여 하나로 하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경전을 궁구하고 도를 품은 선비가 되어, 나아가서는 문명을 창도해 이 백성들로 하여금 먼저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하게 하는 도리를 알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공익(公益)을 면려하고 학교에 연결되어, 자제들로 하여금 학문을 함에 있어서 신학문과 구학문을 포괄하게
하고, 몸소 행하면서 실천하여 시대의 과도기에 이롭게 쓰일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신학문과 구학문이 합하여 일치가 될 것입니다. 학문이 하나가 되면 마음이 하나가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면 몸이 하나가 되어서 힘이 강해져, 천하의 모든 일을 비로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남유도창명회(全南儒道彰明會)는 한두 동지께서 세상의 도가 더러워지고 낮아지는 것을 걱정하여 고금(古今)을 참작하여 설립한 것입니다.
이에 높은 관과 넓은 띠를 두른 홍유(鴻儒)와 석사(碩士)들께서 정기적인 모임에 모두 달려 나와, 선성(先聖)의 대도(大道)를 강마하고, 열강(列强)의 문화(文化)를논하며, 또 관청과 학교와 사회의 제도를 두루 보아, 그것들을 절충하여 취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회보(會報)를 발간하면서 신학문을 하는 자와 구학문을 하는 자들로 하여금 뜻에 따라서 투고하여 가슴속에 담고 있는 포부를 펼치게 하였습니다.
이에 팔을 치켜들고 큰소리를 치는 선비들이 풍문을 듣고 일어나, 성경(聖經)과 현전(賢傳)의 은미한 말과 오묘한 뜻 및 서구(西歐)와 북미(北美)의 학술(學術)과 정법(政法)이 모두 갖춰지게 되자, 이를 차례차례 기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유림계의 표준이요, 행정가의 보감(寶鑑)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비들의 추향(趨向)이 의귀할 바가 있게 되었고, 퇴폐한 풍속을 점차적으로 되돌릴 수가있게 되었는바, 부자 간에 송사하는 일이 이에 종식되었고, 형제 간에 싸움을 하는 일이 이에 중지되었으며, 남편은 따사롭고 아내는 순종하며, 어른은 자애롭고 어린이는 공경하며, 농인(農人)과 공인(工人)은 생업에 안정하고, 학교가 울연히 일어나 문옹(文翁)의 교화(敎化)527)와 여씨(呂氏)의 향약(鄕約)528)이 전시대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그 공은 홍수를 막고 맹수를 몰아낸 것보다 아래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오늘날의 시세(時勢)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사업을 함에 있어서 앞으로 진보하고자 하면, 반드시 목소리를 같이 하고 기운을 같이 해야만 만전을 기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각 군의 지회(支會)는 설립하였다는 명목만 있지 설립한 실재는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이웃들로 하여금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크게 문호를 열어놓고서 날짜를 정해 총회를 열고, 그 대체(大體)를 강구하여야 하며, 또 각 면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여 선한 자를 표창하고 불선한 자로 하여금 교화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방법으로 연락이 끊이지 않게 하여 문화 사업을 함에 있어서 나아감만 있고 물러남은 없게 해야 합니다.
아동(兒童)들을 교육하는 것이 모든 일의 근본입니다. 금년 봄에 입학한 상황을 보면, 보잘것없다는 탄식을 면치 못합니다.
비록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방의 유림들이 각자 그 책임을 나누어지고서 권장하고 깨우쳐, 그들로 하여금 머뭇거리지 않고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자제들을 교육함에 있어서는 학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급합니다. 공부자(孔夫子)께서 위(衛)나라에 갔을 적에 염유(冉有)의 물음에 답하기를, “부유하게 해야 한다.” 하고, “가르쳐야 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인께서 하신 말은 짧은 말일지라도 그때그때마다 적중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산업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을 혹시라도 근래에 으레 말하는 것으로 돌리지 말고, 각자 분발하고 가다듬어 청년자제들의 앞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요즈음 말하는 자들은 걸핏하면 금전시대(金錢時代)라고 합니다. 이에 참으로 이익이 있는 곳이면 자신의 몸을 잊고서 달려 나가면서 천 길이나 되는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서 목숨을 잃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비록 금덩이를 산과 같이 쌓아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무게가 어찌 부모께서 남겨주신 자기 몸뚱이보다 더 중하겠습니까. 이것은 불효막심한 것입니다. 사기를 치고 횡령을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것이 어찌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해 쓰면서 입신양명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출전 : 沈璿澤, 「君子時中」, '經學院雜誌' 제26호, 1925년 12월 25일, 60~64쪽>
527) 문옹(文翁)의 교화(敎化) : 학교를 세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문옹이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촉군(蜀郡)의 태수(太守)가 되어 학교(學校)를 세워 문풍(文風)이 크게 떨치게 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 각 고을마다 학교를 세우게 하였다.
528) 여씨(呂氏)의 향약(鄕約) : 여씨는 송나라 때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남전(藍田)에 살던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여대균(呂大鈞), 여대림(呂大臨) 4형제를 말한다. 이들 사형제가 그 고을 사람들과 자치 규범을 정하여 서로 지키기로 약속하였는데, 그 규범은 덕업(德業)을 서로 권하고, 과실(過失)을 서로 규계하고,예속(禮俗)으로 서로 사귀고, 환난(患難)을 서로 구제한다는 등 네 조항이었다. 이것이 후대에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六 善行.
6) 안인식(安寅植)
(1) 동아의 건설과 유도정신
오늘 귀도(貴道)529)의 유도연합회 결성식을 성대하게 마무리하고 그 행사의 하나로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때가 때이니만큼 어떤 문제든 시국과 결부될 수밖에 없고 또 유림여러분의 회합이니 이 모임의 취지를 살펴, 표기한 바와 같이 ‘동아의 건설과 유도정신’이라는 제목 하에 소회의 일단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제목의 순서대로 먼저 동아의 건설에 대해 얘기하고 그 다름으로 유도의 정신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1. 동아의 신질서 건설
동아의 신질서 건설을 언급하기 전에, 우선 동아의 과거의 현상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세계의 대세부터 간단히 언급하겠다.
세계 6대주 가운데 최근 이백 년 간은 구주(歐洲)인의 침략시대이다.
과학지식과 기계문명을 발달시킨 구주인은 각종 음험한 수단과 교묘한 방법 등으로 전 세계에 침략을 감행하면서 그들의 우월감을 공공연히 떠들어댔는데, (그들 중에는-역자) “전 세계의 삼분의 이를열등민족이 점유하고 있어서 천연의 풍부한 자원이 사장되고 있다. (우리는-역자) 이것을 개발하여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우등민족이 이 열등민족을 제압하여 천지의 이로움을 공개하고 (이를-역자) 평등하게 누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역자)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으며, 우등민족의 세습재산으로 우등한 사람이 열등한 사람을 몰아내고 이익을 탈취하는 것은 인류의 금수를 몰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폭언을 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렇게 그들 백인종은 유색인종을 박해하는 일을 마치 양의 무리가 풀을 물어뜯거나 인류가 소와 양을 멋대로 죽이는 것과 동일시해왔다. 실제 사실로 증명을 해보자면, 그들은 구라파주를 근거지로 삼아 남북아메리카의 신대륙을 침입하거나 혹은 전 아프리카를 분할하고, 호주 태평양을(濠太洲) 독점하며 방약무인한 태도를 취해왔다.
최근 약 백년 이래 그들의 모든 세력이 아시아에 집중되면서 우리 아시아주에도 (그들이-역자) 밀어닥쳤다. 우리 아시아는 전 세계 면적의 삼분의 일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인구는 전 세계의 삼분의 일로 실로 광대한 면적과 많은 인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종의 폭력과 협박에 여지없이 유린당했다.
남쪽에서는 인도의 고대제국이 영국의 마수에 걸려 붕괴된 것을 시작으로, 월남교지530)는 프랑스령 인도로 변형되고, 극동에서는 시베리아 및 만주 일대, 북쪽은 몽고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침략지대가 되었으며, 서장(西藏), 신강(新疆)등
도 영국이나 러시아의 세력권내로 들어가게 되어 거의 안전한 지대는 없다시피 되었다.
특히 중국대륙은 사천 년의 문화를 자랑하는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부패하고 민중이 우매하여 그들의 좋은 먹이였을 뿐만 아니라 물□지대라는 이점 때문에 모든 백인종이 차지하고 싶어 하는 공설시장의 각축지가 되어, 사방에서 밀려 든 저기압으로 태풍이 불어 닥치느냐 폭우가 쏟아지느냐 하는 참으로 위험한
529) 충청남도.
530) 한나라 때 지금의 베트남북부 통킹·하노이 지방에 둔 행정구역.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고집이 세고 사리에 어두워 깨닫지 못하는 중국은 (여전히-역자) 쾌락을즐기며 코를 골면서도 근거 없는 자기존대에 빠져 있었다. 이것이 일청전쟁 직전의 중국의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세계는 과연 백인종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아시아는 점점 백인종의 식민지가 되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신음만 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하늘도 뜻한 바가 있어 전 동아시아의 참상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동아평화의 중대한 사명을 일본제국에 부여한 것이다. 일본이 없으면 동양도 없다.
만약 일본제국이 없었다면 동양은 즉시 전멸해버렸을 것이다. 일본제국에 의지하여 동아를 전멸시키지 않겠다는 하늘의 뜻을 짐작하면서도 이 천의(天意)로 말미암아 일본의 사명이 더욱 더 중대함을깨닫고 있다.
일본제국은 도의(道義)를 토대로 세워진 나라답게 최초의 이상이 다른 권력국가와 많이 다를 뿐만아니라,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 정신 아래 군민이 일체가 되어 위로는 만세일계(萬世一系), 만방무류(萬邦無類)의 존엄을 지닌 국체를 받들고, 아래로는 억조일심(億兆一心), 충효도의로 결정(結晶)된 특수한 국민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역자) 건국 2600년의 광휘로운 역사는 세계를 지도할 국가로서의 자격이 충분함을 (말해주고 있으며-역자), 더욱이 메이지 유신이래 동서양문명의 장점을 종합하고 융화하여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발흥(勃興)하고 있는 실력은 동아맹주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게 만들고 있다.
꺾여서 스러져가는 동아의 일각에 그와 같은 위대한 국가가 존재하는 중요한 의의는 국가자체를 보존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황천(皇天)의 특별한 보살핌과 도움아래 동아평화의 주인공으로서 짊어진 사명을 완수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메이지대제께서는 팔굉일우의 건국조서(詔書)를 봉체(奉體)하고 황천이 부여한 사명을 존중해 친인선린(親仁善隣)과 구재휼환(救災恤患)의 동양의 도의를 염려하며 영원한 국시(國是)를 정하시니 (이로써-역자) 동양평화의 대정신이 확립되게 된 것이다.
이 대정신이 최초로 발동된 것은 일청전쟁이다. 일청전쟁이 끝나자 요동반도에 대한 독일 러시아 프랑스 삼국의 악랄한 간섭이 화근이 되어 특히 러시아의 동방침략이 노골화 되자 두 번째로 발동되어 일러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대정신은 확고부동한 것이어서 어떤 희생과 난국이 닥쳐도 이것을 준수고려(逡巡顧慮)할 여지는 없다. 그 후 일어난 청도사건도 이 정신이 발동한 것이며, 특히 만주사변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와 맞서 혼자의 힘으로 이를 돌파하겠다는 용기와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열강(列强)의 중국을 둘러싼 국제적 정세가 더욱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종하고 농락하는 배후의 흑막이 점점 미묘해지고 더 간사해졌다. 하지만 고집이 세고 사리에 어두운 장(蔣)정권의 용공항일(容共抗日)정책과 적화공산(赤化共産)의 친소주의는 동아의 영원한 화근을 양성하며 멸망의 비운을 초래했다. 만약 이를 방임한다면 중국의 사백 개 주는 적화의 소굴이 되고 영미의 책원지(策源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동양평화주의와 동양인을 동양인으로 (존재하게 만드는-역자) 이상은 영원히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다섯 번째로 대정신이 발동하
였는데 이것이 곧 지나사변이다.
1937년 7월 7일 노구교(蘆溝橋)에 울린 포화소리는 지나사변을 야기하고 처음으로 불확대방침이 뜻한 바대로 지켜지지 않아 결국 전 중국으로 파급되어 지나사변을 치르게 된 것이다. 전쟁의 진전에 대해서는 모두 주지하시는 바대로 북부로부터 중부, 남부로 확대되었고, 황군은 육·해·공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며 중국 사백주에 국위를 선양하고, 전쟁 이래 3개월 이내에 북부에 있는 다섯 개의 성을 점거하였으며, 계속해서 상해함락, 남경함락, 무한삼진함락 그 외 사면팔방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실로 질풍노도의 기세로 전진하여, 이 개월 내에 점령지역의 면적이 제국 전 영토의 2배반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장 정권은 사천성531) 한구석에서 이제 막 끊어지려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중국인에게 진정한 화평구국(和平救國)운동도 차츰 힘을 얻고 있으니 전쟁의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제 3국 등이 배후에서 계속 책동을 하고 있어서 장 정권일파가 어리석은 행동을 철저하게 각성하지 않은 이상 전쟁은 지금부터라는 결심을 더 견고히 해야만 한다.
지나사변은 결코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최초에 고노에(近衛)내각이 발표한 성명서대로 중국과의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며, 침략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이다. 동양평화를 국시로 한 동양인의 동양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제국의 입장에서 동종동문(同種同文)으로 서로 가깝게 지내야 하는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형제가 다투는 불상사로 결코 본심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다름 아닌 영미의 마수에 걸린 중국인으로 중국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그 작자들, 즉 소련 귀신이다. 그들은 동양의도덕을 파괴해 중국 전체를 악화시키려고 한다.
환언하면, 영미의존적인 국민당일파와 소련의 충견인공산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을 좀 더 진정한 의미로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황색인종 대 백인종의 전쟁이며 동양인 대 서양인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나사변은 실로 건곤일척의 성업인 동시에 동양인의 흥망과 사활이 걸려있는 전쟁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만 한다. 때문에 지나사변의 목적은전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설에 있으며,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역자) 과거의 모든 불합리하고 인공적인 것을 타파하여 장래에 평화와 행복을 초래할 질서정연한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다.
이것이 소위 동아신질서 건설의 표어가 만들어진 이유로, 이 간단한 일곱 자 안에는 일억 국민이혈성(血誠)을 다해 전 동아를 위해 공헌하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한 이상이 내포되어 있다.
고래의 역사는 전쟁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동서고금을 통해 전쟁은 무수히 많았으나 대부분이 영토적 야심에서 비롯된 침략전과 무력적 시위를 벌인 쟁패전이 곧 전쟁의 원인이었다.
이번 지나사변처럼동아 전 국민을 위한 신성하고 정의로운 전쟁은 고금의 역사에 그 예가 드물다.
즉, 영토적 침략전은 공성약지(攻城略地)로 영토를 취하면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력적 쟁패전은 전승국으로서의 호기를 과시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전쟁은 단순히 이기기만 하면 싸움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지만, 신질서 건설을 목표로 하는 지나사변에 있어서 승리는 그저 기초공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나중의 건설사업은 막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미래의 문제는 물론, 전쟁당시에도 건설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에 황군은 두 세배의 수고를 더 해야 한다. 일례로, 장개석은 집토항전(集土抗戰)이라 하며 전패지에서 고대의 문화 및 유적 그 외 제반시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전부 파괴해 버렸지만, 황군은 입성할 때마다 재와 먼지를 청소하고 파괴된 것을 정돈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황하의 제방이 갈라져서 수백만의 무고한 민중이 수몰당할 처지에 놓이자 황군은 전투를 중지하고 제방공사에 착수했는데 이처럼 곤란한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지나사변은 실로 동아의 옛 세력을 타파하고 신질서를 건설해야 하는 중대한 의의가 있는
531) 원문에는 촉중일우(蜀中一隅)로 ‘촉’은 사천성(四川省)의 약칭이다.
성전이자 정의로운 전쟁이다.
즉 동아가 오랜 백인종의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 일만지(日滿支)를 중심으로 동양인의 동양을 건설하여 영원한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 근본정신이다.
이것이 상술한 바와 같이일본제국이 국시로 삼고 있는 확고부동한 대정신으로, 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앞으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각오해두어야만 한다.
이것이 매일 소리높이 외치는 비상시국이란 것으로, 이 비상(非常)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는 동양이 있어야 일본이 존재한다고 하겠지만, 비상시에는 일본이 있어야만 동양이 존재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내의 경우에도 평상시에는 국민이 먼저고 그 다음이 국가이지만, 비상시에는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고 해석해야만 한다. 이것이 비상이라는 두 글자의 해석이다.
결국 일본을 중심으로 비로소 동아가 안전하게 되는 것이니 전 국민이 국가에 총력을 바쳐서 국가의 대정신을 달성시켜야만 한다. 또한 오늘날의 전쟁은 국가의 총력전이기 때문에 무력전을 중심으로 해서 경제전,사상전도 모두 전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 일선에 있는 장병만 전쟁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총후에 있는 국민 모두가 전쟁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조야상하(朝野上下),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국민인 이상은 모두 전쟁에 참가한 일원으로서 분투노력을 해야만 한다.
묘당(廟堂)에서는 승리를 점치고 있으며, 황군은 충용무비한 전투력으로 백전백승을 올리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직 우리 총후국민의 비상한 결심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관건이다. 지난 세계대전 때 5년동안 독일군대에게는 적이 없었지만 독일국민의 경제결핍과 사상혼란 때문에 결국 대실패를 면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 총후국민은 특히 경계해야만 한다.
우리는 물심양면에서 긴장하는 태도로 견인지구(堅忍持久), 내고단련(耐苦鍛鍊)하고, 노동절검(勞動節儉)의 정신과 실질강건(實質剛健)의 기풍을 양성하여 사상전과 경제전에 대한 대응책을 깊이 연구하고,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이를 실천궁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는 제 일선 장병의 노고를 생각하고 물자가 부족하거나 생활이 곤란해 불평
이 나오면 무엇보다도 황군은 생명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자신도 총력전에 가담한 일원으로서 그 정도의 고난과 곤란을 겪으며 어떻게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실질강건의기풍과 노동절검의 정신이 시난(時難)을 극복할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안일나태의 사상과 사치향락의 기풍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것은 곧 총후국민으로서 정말 비인도적이고 비국민적인 동시에 총력전에 있어서 실패자이며 낙오자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 사람이라도 이 같은 국민이 있다면 성전의 대목적을 달성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이와 같은 중대시국을 맞이하여 안으로는 국민정신을 공고히 하여 단결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동아의 영구평화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정신적 연계를 찾는다면, 동양고유의 정신문화 신운동을 일으켜 국민에게 충효도의의 신념을 함양시켜 도의에 살고 도의에 죽을 각오를 다지게 하고, 나아가 이것을 확대해 만지(滿支)의 모든 민족에게도 공통적 신념을 발휘하여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고 이해와 감정을 탈피하여 대동태평(大同太平)의 이상세계로 휴수동귀(携手同歸)하겠다는 큰 각오와 결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번 유도연합회 결성의 가장 큰 의의로써 본회의 사명이 실로 중대하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유도의 정신에 대해 말해보겠다.
2. 유도의 정신
유도의 정신을 언급하기 전에 우선 개론적인 것을 말하겠다. 사람은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
형형한 일점영대(一點靈臺)에 존재하는 것도 나이고, 앙앙(昻昻)한 칠척구곡(七尺軀穀)을 형성하는 것도 나이다.
전자는 정신의 나라고 하며 후자는 육신의 나라고 한다. 양쪽 모두 나에 속한 것인 이상이것을 선양(善養)하고 조화시켜서 원만하게 발달시켜야만 한다.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 이 둘을합치해야만 비로소 일신의 행복을 다스릴 수 있다. 범위를 확장해 보면, 사회의 원리를 고찰하는 것도 역시 이 이치와 같다.
일신(一身)을 소아(小我)라고 한다면 사회는 대아(大我)이다.
소아의 원리가 그러하다면 대아의 원리도 그러하다.
이렇게 인간생활의 양식에도 당연히 양면의 생활이 있는데, 하나는 정신생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물질생활이다. 정신생활에는 도덕이 필요하며, 물질생활에는 경제가 필요하다.
이 도덕과 경제를 합일조화(合一調和)해 원만하게 발달시켜야만 개인과 사회를 불문하고 건전한 발달과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양자를 원만히 조화시키려면 반드시 주종(主從)본래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해야만 한다. 이 역시 인신(人身)의 원리에 기초해 무형의 정신이 유형의 육제를 지배하는 원리에 합치시켜야만 한다.
따라서 도덕을 주로 삼고 경제를 종으로 한 사회야말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무형의 것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등한시하기 쉽고 잊기도 쉬우며, 유형의 것은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집착하기 쉬워서 욕구도 강렬해진다. 특히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입하고 나서부터 물질편중의 폐해가 극에 달해 사람들의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 앞에 정신도덕이 근본부터 파괴되어 극단의 개인이기주의가 전 세계에 범람해 물질이 중해지고 사람은 가벼워져서, 사람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사람을 사역시키는 역전된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사람들은 금전의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고 심하게는 금전에 순절(殉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게 돈 앞에는 예의도 염치도 인정도 도리도 그 무엇도 없다.
입을 열면 돈타령이고, 학문이든 관직이든 모두 돈을 욕구하는 방편과 수단에 불과하며, 성심실의(誠心實意)도 시정모리배의 그것과 똑같다. 이처럼 물질만능주의에서 가장 고귀한 (행위-역자)는 오직 돈을 쫓는 것으로, (필연적으로-역자) 돈을 소유한 자는 저급한 향락주의에 빠져 사치와 방종과 안일을 능사(能事)로 삼는다.
돈이 없는 자는 사기나 횡령을 마구저지르고 심한 자는 사회투쟁과 공산적화운동까지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데, 이것이 구주대전란 이후에 더욱 격렬한 변화를 초래한 사회현상이었다.
그 근방의 중국이 그러하다.
중국은 사천년의 문화를 자랑하는 공맹 유교도덕의 본원지인데도 불구하고, 소위 민국이 성립된 이래 약 삼십년간 서구
물질주의에 현혹되어 심하게 중독되었다. 중국만큼 동양의 도덕이 극단적으로 심하게 파괴된 곳은 없을 것이다. ‘한가(漢家)사백년의 근본은 태뇌사공자(太牢祀孔子)에 있다’는 역사를 무시하고 중화민국으로 바뀌자마자 바로 공자를 축원하는 전례(典禮)를 철폐하고, ‘예의수치(禮義羞恥)이것을 사유(四維)라한다.
사유가 없어지면 나라는 곧 망한다’고 한 관자(管子)의 말과는 정반대로 예의수치를 운위(云爲)했기 때문에 동양이 멸망하게 되었다고 하며, 민국십년에는 상해 대도시에서 백주에 여자 이백 명을 나체로 행렬하게 해 수치심을 파괴하는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도덕정신과 예의수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유물주의를 고취하여 결국은 공산적화주의가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지나사변을 자초한 주요원인이라 할 것이다.
다행히 흥아유신(興亞維新)의 성업인 동아신질서건설 운동이 우리 동양인에게 새로운 생명과 활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동양 고유의 정신문화의 근원인 유교도덕을 부흥하였으니, 이로써 서양물질주의에 중독 된 이 사회를 구제하는 일도 또 다른 신건설 사업의 중요한 항목임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 반도는 종래 유교를 신봉해 온 관계상 풍속습관이 모두 유교문화로 함양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고 (그만큼 뿌리가-역자) 깊고 튼튼해 없애기 힘들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말엽에 이르러 많은 폐해를 낳은 것은 사실이나 미풍양속으로서 볼 수 있는 부분도 많고 하물며 유교본래의 정신에는 원래부터 결점이 없으니, 지금 과거의 악습을 혁신해 본래의 진면목을 발휘하여 총후국민의 봉공으로서 흥아유신의 성업을 조성(助成)해야 한다. 이번에 전 조선의 관민협력 하에본연합회를 조성(組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도(儒道)의 본령은 아까 대제학각하께서 고사(告辭)에서 말씀하셨던 바와 같다. 유도는 기본적으로 충효를 바탕으로 오륜의 도를 정하고 인의를 대강(大綱)으로서 오상(五常)의 덕을 구비하여 작게는 일신일가를 다스리고 크게는 국가천하를 치평(治平)하는 것이니, 사람이 매일 닦아야 할 필수적인 대도(大道)이며 만고불변의 상전(常典)이다. 이 참된 정신은 교육칙어에 소시(昭示)532)해주신 국민도덕의 표준으로, 유도의 중요한 왕도사상은 제국고유의 황도정신을 선양하는 데 적절한 설명서로, 특히 오늘날의 동아신질서건설 사업은 공부자(孔夫子)의 대통일주의(大統一主義)와 대동태평(大同太平)의 이상을 현시대에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유도의 정신을 논하고 있으니 공부자의 도에서 가장 중요한 인(仁)이라는 한 글자를 설명하고자 한다.
논어에서 58장이나 되는 많은 부분에 걸쳐 인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문(孔門)에게 있어서 얼마나 인이라는 게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릇 인은 중덕(衆德)의 종(宗)으로써 만선(萬善)의 근원이다. 유가에서 가장 중요한 오상(五常-인의예지신)의 덕도 사실 인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송(宋)의 정명도선생 식인편(識仁篇)에도 ‘학자는 모름지기 먼저 인을 알아야 하며,’―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의 도는 극히 광대하고 심원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생존하는 데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유도(儒道)의 참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의도를 연구해야만 한다.
(1) 인의 글자의 뜻, 인의 자체(字體)는 사람(人)과 이(二)로 구성되어 있다. 즉 육서(六書)중 회의(會意)에 속하는 것으로, 사람 인 변에 두 개의 선(線)을 붙였다. 한 선은 자기를 상징하는 것이고 다른 한선은 타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기의 선은 자기의 일신에 멈추지만, 타인의 선은 자기 이외, 지금 시점에서 말하자면 전 인류 20억의 인구가 모두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인류가 사회생활을 영위하려면 반드시 사람과의 교섭이 필요하며, 따라서 자기와 타인 간에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이 인(仁)의 도는 사람사이의 조화를 도모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고 자기의 마
음을 헤아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愛人知己, 推己及人) 인의 정의이다. 애인지기는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는, 즉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타인을 사랑하지 않는 행위는 곧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추기급인(推己及人)은 덕목(德目)에서 용서(恕)를 칭하는 것으
532) 밝게 빛내서 보여주다.
로 용서는 양 방면에서 표현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타인에게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부분과 자기가 원하는 바를 타인에게 베푸는 적극적 부분이 이것이다. 논어에도 ‘己所不欲勿施於人’이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己欲立而人己欲達而達人’로 적극적 용서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자기의 마음으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이다.
또한 인을 구(求)하는 방법 역시 타인과 자기와의 관계를 탐구해야만 얻어진다. ‘樊遲問仁子曰愛人’ 하라고 하신 것처럼 인류애를 떠나 인은 존재할수 없으며, 또 ‘顔淵問仁子曰克己復禮爲仁’라며 나의 사욕(私慾)을 극복하라고 하신 것은 (이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실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道)인 까닭이다.
이 두 가지의 가르침을 종합해보면 안으로는 자기를 극복하고 밖으로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인을 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셈이다.
요컨대 ‘愛人知己, 推己及人’의 충서(忠恕)의 길(道)과, ‘內而克己外而愛人’ 하는 구인(求仁)의 방법은 인의 글자 형태를 완미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상상이 되는 것이다.
(2) 인의 해설, 예로부터 인에 대한 해설은 아주 많았다. 장주(莊周)는 ‘愛人利物之謂仁’이라 하고, 정현(鄭玄)은 인을 ‘愛人以及物’로 칭했으며, 한퇴지(韓退之)는 ‘博愛之謂仁’으로, 주렴계(周濂溪)선생은 ‘德愛曰仁’이라 했으며, 정명도(程明道)는 규모를 좀 더 확장하여 ‘天地萬物一禮之仁’이라 칭했고, 주자(朱子)는 ‘心之德愛之理’라 했다. 또 인은 ‘天地生物之心而人得以爲心者也’로 불렸다. 이처럼 많은 해설이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인류애를 본위로 삼고 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인은 중덕(衆德)의 근본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의 덕목은 곧 이로 인해 생겨난다. 지(知)라는 것은 이 인의 도를 아는 것이다.
의(義)는 인을 적절하게 시행하는 것이며, 예(禮)는 인에 절문(節文)과 도수(度數)를 더하는 것이다.
신(信)은 인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인애(仁愛)가 발동(發動)하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명칭을 갖는다.
이 인애의 마음이 부모에게 표현되는 것을 효(孝)라 하며, 형과 장자(長者)에게는 아우(弟)이며(/), 군국(君國)에 대해서는 충(忠), 부부는 화(和), 친구는 (信), 이처럼 많은 덕목이 전부 인을 근본으로 해서 만
들어진 것이다.
(3) 인의 비유(譬喩), 인의 용어의 유래에서 기인한 가장 적절한 두 가지 비유를 들어서, 인도(人道)가 인류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입증하려는 것이다.
① 인은 인류사회의 혈액과 신경
의서(醫書)에서는 수족마비를 불인(不仁)이라 한다. 정자(程子)는 이 말이 가장 적절하게 이름을 형상하고 있다고 했다. 즉, 이것을 자세히 해석해 보면 사람의 몸 안에는 혈액이 충만하고 신경이 관통하는데, 이 기능이 건전한 자는 자기체내의 어딘가에 있는 말초세포의 극히 미세한 고통에도 뇌가 이를 즉시 감지하며, 또 뇌가 불안하면 곧 바로 전신이 불안해지는데 가령 발끝의 작은 가시라도 뇌가 고통을 느끼고 팔과 다리 모든 기관에 명령하며 이 장해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머리나 눈에 위해물질이 닿으면 수족 전체의 행동은 이것을 방어하고, 수족 일부를 희생해서라도 머리와 눈을 보호하려고 한다. 혈액과 신경이 건강한 체질은 당연히 이 같은 본능을 갖고 있다. 이와 반대로 혈액이 뭉쳐서 신경이 마비되어 반신불수가 된 사람은 몸 안의 기가 서로 통하지 않아 통증을 서로 느끼지 못하는 즉 상호연락구호를 완전히 상실하기 때문에 이것을 위비불인(痿痺不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불인(不仁) 두 글자를 정말 잘 형용하지 않았는가. 인도(仁道)는 곧 인류사회의 혈액이며 신경이다. 인류가 서로 간에 자애적(慈愛的) 측은심이 그럭저럭 통하여 통증과 가려움을 서로 느끼면 이 자애측은의 본능을 발휘하여 공존공영의 길이 완전히 실행될 것이다. 만약 이 정신이 마비되어 불인에 빠지면 모든 병적상태가 발생한다.
가정에서는 부모는 자비를 모르고, 자식은 효를 모르며, 부부는 반목하고, 형제는 투쟁을 할 것이니 이것이 곧 위비불인(痿痺不仁)의 가정이다. 또 사회에서도 풍속이 퇴폐하고 인정이 냉박(冷薄)하여 어른과 아이 사이에 질서가 없고, 친구 간에 믿음이 없고 개인이기주의에 빠져 공존공영의 길을 망각한다면 이것은 위비불인의 사회라고 할 밖에 없다.
특히 최근 외래사조의 험악성(險惡性)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사회환란주의와 사회투쟁주의를 선동하여 소작인 대 지주, 노동자 대자본가 간의 유산 무산의 대응을 비롯해 이해관계를 초월한 교육기관까지도 동맹휴학을 일으키게 해서 소위 인민전선이라는 새로운 숙어를 만들어내고,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로까지 진전시켜서 인류 상호간의 인애의 본능을 철저하게 파괴해버렸다. 이것은 확실히 위비불인의 정도를 넘어 각궁반장증(角弓反張症)이라 부를만한 위험시대라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러한 세도(世道)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② 인은 인류생명의 근핵(根劾)
인은 원래 종자(種子)라는 글자로(字)(果實之劾可種而生者謂之仁) 과실의 핵을 인이라 하는데 도인행인(桃仁杏仁)이 그 일례이다.
이 용어의 의의에 따라 이것을 유추해보면 성인이 이 인도(仁道)에 중심을 둔 까닭은 곧 인이 인류 생명의 근핵이기 때문이다. 인의 마음은 ‘天地好生之德’을 받아 태어난 인류, 천부(天賦)의 양성(良性)으로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다. 즉 측은지심, 불인지심(不忍之心), 혹은 이것을 양심, 본심이라고도 하며 또는 양지양능(良知良能)이라고도 한다.
이 천부로 만들어진 인의 본능은 인류생존에 있어서 생명의 뿌리 혹은 핵이다. 만일 이 마음이 없다면 인류생존의 길은 바로 멸절해버릴 것이다. 때문에 ‘仁則生不仁則死’는 인류사회의 원칙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맹자가 이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맹자는 ‘천자(天子)가 불인(不仁)하면 사해(四海)를 지킬 수 없고, 제후(諸侯)가 불인하면 사직을 지킬 수 없다. 또 경대부(卿大夫)가 불인하면 종묘를 지킬 수 없고, 사서인(士庶人)이 불인하면 사체(四體)를 유지할 수 다’고 하면서, 이어서 ‘죽는 걸 싫어하면서 불인을 즐기는 것은 취하는 걸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는 사람 없고, 불인으로 죽는 자도 없다.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 인이 인류생존원리의 근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상술한 바대로, 인은 인류의 애기애타(愛己愛他)의 본능으로, 인류의 혈액과 신경이며 또한 인류생명의 근핵(根劾)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의 정신이 완전히 발달되어 본래의 양심을 충분히 확충한다면, 사람은 인류애를 위해 서로 애를 쓸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이 이 마음을 갖는다면 맹자가 말한 것처럼 우(禹)·직(稷)·윤윤(尹尹)의 책임감을 반드시 지니게 될 것이다.
하우 씨(夏禹氏)는 치수에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천하에 익사하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자신이 익사시킨 것이라 했으며, 후직은 권농에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천하에 굶어죽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자신이 굶겨 죽인 것과 같다고 했고, 윤윤은 천하백성 중에 필부필부(匹夫匹婦)라도 요순(堯舜)의 혜택을 받은 자가 있다면 자신이 밀어서 구중(溝中)에 빠트린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인심(仁心)을 지닌 정치가라면 당연히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정명도의 말에는 ‘一命之士荀存心愛物於人心有所濟’ 이 있는데, 일명지사란 초임급의 하급관리로 아무리 하급관리라는 낮은 지위에 있어도 애인이물(愛人利物)에 마음만 있다면 반드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급관리의 지위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위치이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힘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마음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의 시인 두보가 서촉으로 피난해 있을 때 거주하던 작은 초옥(草屋)이 폭풍우에 파괴된 일이 있었다.
원래 시인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시료(詩料)로써 ‘茅屋爲風雨所拔歎歌’라는 장단구(長短句)의 시를 지었다.
그 말구(末句)에서 ‘安得廣廈千萬間大庇天下寒土俱歡顔’ ‘어떻게 하면 광하(廣厦)천만 칸을 얻어서 천하의 한토(寒土)를 다 깔고 앉아 더불어 환히 웃을 수 있을까’라고 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안목에서는 자기 자신이풍우를 맞고 있으면서 어찌 타인을 우려할 여유가 있을까, 정말로 우활(迂闊)한 소견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의 고통을 가늠하고 나아가 자신의 고통은 망각한 채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는 인인(仁人)의 행위로 귀중한 인류애의 본심이다.
즉 상하의 계급을 떠나 어떠한 의무이든 이 인애의 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사람이 사람다운 진리를 정각(正覺)하고 동시에 진정한 세계평화의 대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학(仁學)이 없었던 탓에 이 인도(仁道)의 정신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거의 망각되어 과거의 성경현전(聖經賢傳)을 가현호송(家絃戶誦)하면서도 과학녹리(科學祿利)의 말폐(末弊)로 서로 양립할수 없는 계급당쟁의 악습이 사회와 국가를 그르치고 말았다. 특히 시대의 변천에 따라 소위 경전까지도 속지고각(束之高閣)해버린 채 서구물질문명에 현혹되고, 개인이기주의는 인류애의 본심을 상실시키고 정반대인 사회투쟁주의까지 침입하여 인도(仁道)의 정신을 완전히 파괴해 사상계를 혼란시키고 악화시키니, 실로 인인군자(仁人君子)가 심우영탄(深憂永歎)을 금할 수 없는 상태이다.
지금 동아신질서건설 하에 흥아유신의 성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니, 이 같은 호기를 맞이하여 종래에 잘못된 물질이기주의와 모든 외래사상을 철저히 청산하고, 동양고유의 도덕문화를 존중하면서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仁)의 정신을 연구해 여태껏 (해악을 끼쳐온) 물질중독에 해독제를 투여하고 일반사회의 공통의 자양분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이 정신으로 내선일체를 철저하게 실현하여 일시동인 아래, 혹은 우월감이나 시기심 같은 장벽들을철거해, 진정으로 동포형제가 되어 일심동체의 미과(美果)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 정신으로 동아의 영원한 평화를 확립하고, 일·만·지 제 민족의 공동유기체를 조직하여 천하일가(天下一家)와 사해동포(四海同胞)의 이상 아래, 국경과 민족에 얽매인 편협주의를 철폐하고 이해(利害)와 감정으로 인한 모든 충돌을 해소하고 도덕예의를 도야해서 형제로 서로를 인식하여 너와 나를 따지지 않는 평화낙토와 지상천국을 동아의 신대지에 건설하여 공부자(孔夫子)의 이상인 대동태평의 세계를 완전히 실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팔굉일우의 대정신을 봉체(奉體)하는 이유이며, 이것이 제국특유의 황도(皇道) 대정신을 세계에 선양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유교자가 특히 각성해야만 하는 문제에 대해서이다.
우리 유교계의 과거를 검토해보면 말속(末俗)의 폐습이 심각하여, 형식에 얽매여 정신을 유기하고 공론횡의(空論橫議)로 실천궁행의 본질을 망각하고 완루고체(頑陋固滯)하여 현재의 대도(大道)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염세퇴영주의는 공부자의 지성노력주의와 상반되고 계급편협주의와 색목당쟁(色目黨爭)의 악습은 상술(上述)한 인의 정신을 완전히 몰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폐습은 우리 유도를 극단의 쇠운에 빠트렸으니 ‘滅六國者六國也非秦也’라는 논법처럼 유교는 우리 유교인 스스로 망쳐놓은 것이다. 진실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동아신질서건설은 유도를 진흥시키는 데 있어서 천재일우의 호기이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의 폐습을 단호하게 혁신하여 진정한 유도의 면목을 전부 발휘해야만 한다.
특히 이 시국의 진정한 의의를 철저하게 인식하여 흥아유신의 성업을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완전히 달성할 수 있도록 용왕매진해야만 한다.
오늘 여러분 지방의 유도연합회 결성을 기회로 소회의 일단을 피력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 장시간 무사(蕪辭)를 경청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앞으로 여러분의 철저한 활동을 기대하며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출전 : 安寅植, 「東亞ノ建設ト儒道ノ精神」, '經學院雜誌' 제45호, 1940년 12월 25일, 26~41쪽>
7) 이경식(李敬植)
(1) 징병제 실시를 맞이하며
경학원 사성
작년 5월 8일 각의(閣議)에서 드디어 반도의 이천 사백만 민중이 고대하던 징병제를 1944년부터 반도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성지(聖旨)에 참으로 황송하고 감격스러울 뿐이며,내선일체 황국신민화가 이것으로 더 새로운 단계로 비약적으로 진전했다는 의미이니 정말로 기쁜 일이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징병제도는 나라가 세워진 이래 존엄한 국체의 연원(淵源)으로, 군신일체, 국민개병, 즉 천황은 대원사(大元師)로서 육해군을 친히 통솔하시고 신민은 부름을 받아 대군(大君)의 팔과 다리가 되는 것이니, 병역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황국신민의 자격을 얻는 국민최대의 영예이자 의무인 것이다.
이렇게 이 영예로운 징병제도가 드디어 반도에 실시되게 된 이유는, 결국은 시정(施政)이래 삼십여년 동안 역대총독이, 일시동인의 성지를 잘 받들어 반도동포를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으로 만드는 것을 통치의 목표로 정하고, 내선일체를 그 근본이념으로 삼아 모든 시정을 이 대 목적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신 결과이다.
동시에 반도의 동포가 그 통치정신을 충분히 이해하여 해가 다르게 내선일체를 심화하는데 박차를 가해왔고, 그리고 만주사변에 이어 발발한 지나사변 혹은 대동아전쟁 등에서 현저하게 발휘된 (반도동포의) 애국지성이 내외에서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징병제 실시는 단지 반도에 있는 이천 사백만 민중만의 경사가 아니라, (이를) 국가백년의 대계로 삼으니 정말로 모두 함께 경축할 일이다.
반도청년층의 애국열은 1938년부터 실시된 지원병의 성적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이들 중에는 이미 영광스런 제 일선에서 폐하의 충량한 고굉(股肱)으로서 멸사봉공의 충성을 바치며 호국(護國)의 꽃으로 뿌려져 야스쿠니(靖國)의 신으로 추앙받는 자도 있다. 그리고 확실히 요 수년간 반도 민중의 애국열도상당히 높아졌다.
그런데 지원병의 채용자수가 지원자의 수에 비해 너무 적어서 희망을 달성하는 자는 실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때에 반도에 징병제가 실시되니 시국상황으로 보나 반도의 현 정세로 보나 정말로 시기적절한 시책으로 우리는 무척 영광스러워하며 만족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의 이 기쁨을 맞이하며 깊이 명심해야만 하는 것은 주어진 2년의 준비기간 동안 반도의 청년을 내지의 청년과 비교해 조금의 손색이 없도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연성하여 자질을 향상시켜서 부름에 응하는 날 어떠한 유감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공하옵게도 군인에게 하사하신 칙유(勅諭)에서
- 군인은 충절을 다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 군인은 예의를 바르게 해야 한다.
- 군인은 무용(武勇)을 향상해야 한다.
- 군인은 신의(信義)를 중히 여겨야 한다.
- 군인은 검소해야 한다.
고 하셨는데, 장래 국가의 방패와 성이 되고자 하는 청년은 물론 자녀를 교육하는 학부형도, 이 칙어의 취지를 받들어 군인으로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다 확고한 정신으로 수양하고 연성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어의 보급강화, 문맹퇴치, 체력연성, 지조함양, 책임관념 앙양 등 수 많은 시책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한다. (특히) 일반민중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반도 유림층의 책임도 막중하니 제국의 사명을 올바로 인식하고 파악하여 민중을 지도하고, 대동아계획에 협력, 매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출전 : 李敬植(經學院 司成), 「徵兵制の實施に當りて」, '經學院雜誌' 제47호, 1943년 1월 25일, 24~26쪽>
(2) 반도학도에 대한 육군특별지원병제 실시에 관하여
경학원 사성
이번 시국의 정세에 따라 학도의 징집을 연기하는 은전(恩典)이 철폐되었다.
이는 결국 최근의 시국이 긴박해짐에 따라 필승의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군의 입장에서 황군(皇軍)의 간부요원을 충당할 필요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학도들의 진충보국하고자 하는 열의에 부응해 가장 자질이 우수하고 교양이 높은 학도들을 지금의 결전에 바로 도움이 되도록 해서 황군의 결전완수의 힘을 더욱 강화하고 필승에 대한 확신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10월 20일 관계육군성령이 발포되어 반도인 학도도 내지인 학도와 마찬가지로 군에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과거의 조선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영광스런 청년시대를 초래한 것으로, 펜 대신 총을 쥐고 그 뜨거운 피와 교양과 체력 등 모든 것을 바쳐 국가가 위급한 때 부름을 받고 나가는 청년학도의 출발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바이다.
생각해보니,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령이 실시되고부터 5년, 올해 8월에는 해군특별지원병제와 징병제가 실시되고, 이번에 또 대학전문학교의 학도로 적령기가 지난 사람 및 올해 9월 졸업하고 교문을 나서는 사람에게도 군복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니, 올해같이 반도청년에게 여러 가지 영광이 부여된 해는 없는 듯 하다.
이번 제도로 적격자가 된 00명의 환희와 자부심은 논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 이천 오백만 반도동포의 기쁨도 그에 못지않다.
더욱이 이번 제도의 특색은 종래의 지원병처럼 육 개월의 훈련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곧 바로 입영해 현역으로 복무하며 나아가 간부후보생도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점으로, 제국의 병제상(兵制上) 둘도 없는 성사(盛事)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병제사상(史上) 획기적이고도 은정(恩情)이 담긴 새로운 제도이다.
청년학도 특히 그중에서도 대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여 교양과 수련의 공을 쌓은 자에 대한 국가의 기대가 지금처럼 높은 적은 없었으며, 국가에서 내일의 졸업보다는 오늘의 동원을 기대하며 요청하는 것이니, 여러분이 이 국가의 절대적 요망에 부응함과 동시에 후세의 사가(史家)가 그 충성을 대서특필할 만큼 학도병으로서 널리 이름을 드높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11월 11일)
<출전 : 李敬植(經學院 司成), 「半島學徒に對する 陸軍特別志願兵制の實施に就て」,'經學院雜誌' 제48호, 1943년 4월, 36~40쪽>
8) 이대영(李大榮)
(1) 유자(儒者)의 지위와 의무
오늘 강연할 바의 일은 교화(敎化)에 있어서의 대사업(大事業)입니다. 그리고 오늘 모인 곳은 한 고을의 수선지(首善地)533)입니다.
저와 같이 누추하고 천박한 몸이 외람되이 말석을 차지하게 되었는바,
무슨 말을 하여서 여러 군자들께서 한 번 들어주시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유림의 대가들께서 모두 모인 자리에 나와 있으니만큼, 유자의 지위와 의무에 대해 대략이나마 저의 보잘것없는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니 참람 되고 망령됨을 용서하신다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유자(儒者)는 바로 학자(學者)의 칭호입니다.
'주례(周禮)'를 보면, 태재(太宰)의 직 가운데 네 번째에 이르기를, “유는 도로써 백성들을 얻는다.(儒以道得民)”라고 했는데, 그 주에 이르기를, “육예(六藝)가 있어서 그것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자이다.” 하였습니다.
본디 유자라는 칭호는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개 문학(文學)의 도로써 능히 백성들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게 하는 자라야만 비로소 유(儒)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공부자(孔夫子)께서는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성인으로서 뭇 유학자들의 설을 모아 집대성(集大成)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있어온 이래로 백성들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룬 성대함이 공부자와 같은 분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세상 사람들이 공부자의 법을 외우면서 흠모하여 본받지 않는 사람이
533) 수선지(首善地) : 교화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 흔히 성균관(成均館)을 말한다. 여기서는 유학이 성행하는 영남(嶺南) 지방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었다.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이르기를, “교화를 행할 때수선(首善)을 서울에 세워야 된다.”고 하였는데, 수선은 교화의 근원을 말한다.
없었습니다.
이에 드디어 공부자의 가르침으로 유교(儒敎)로 되었습니다.
명(明)나라의 유학자인 송금화(宋金華)의 칠유변(七儒辨)에 이르기를, “음양(陰陽)의 조화를 갖추고 귀신(鬼神)의 은미함을 간직하여,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의 법이 되고 행하는 것은 세상의 법칙이 되면,그런 사람을 일러 도덕(道德)의 유(儒)라고 하는데, 공자가 바로 그런 분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삼황(三皇)534)은 유자로써 황(皇)이 되었으며, 오제(五帝)535)는 유자로써 제(帝)가 되었으며, 삼왕(三王)536)은 유자로써 왕(王)이 되었으며, 고요(皐陶)·기(夔)·이윤(伊尹)·부열(傅說)·주공(周公)·소공(召公)은 유자로써 신하가 되었으며, 공자(孔子)는 유자로써 스승이 되었다. 그 도는 일찍이 같지 않은적이 없었다.
그러나 공자보다 더 성대한 분은 없었다.” 하였습니다.
무릇 유자의 관을 쓰고 유자의 옷을 입고서 공자의 학문을 배운 자는, 학문의 순수하고 박잡함이 어떠한가를 막론하고, 그 지위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사범(師範)이고, 그 의무로 말을 하면 교화(敎化)의 선구(先驅)입니다.
산골짜기로 물러나 글이나 읽고 있는 군자로부터 향당(鄕黨)에서 자신을 닦는 선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한 마디 말이라도 착하게 한 적이 있을 경우에는, 서로 간에 고계(告戒)하면서 전하기를, “아무개께서 이와 같이 하였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하고, 참으로 한가지 일이라도 잘못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역시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서 서로 간에 고하여 말하기를, “아무개께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 짓을 하였으니, 우리들과 같은 자들이야 어찌 책하고 말고 할 것이있겠는가.”라고 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멈춤에 백성들이 그에 따라 선과 악의경계로 삼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참으로 깊이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동방은 신라(新羅)나 고려(高麗) 시대 이후로 유교를 떠받들어오면서 전시대의 뛰어난 분을 이어받고 후세 사람들을 열어주어, 문화의 운세를 점차적으로 쌓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성무(聖廡)에 오를만한 18인의 현인들이 각 시대마다 계속해서 배출되는 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일원(一元)537)의 문명이 그 도수(度數)의 극에 달하게 되었다고 이를 만하며, 그를 인하여 유림계(儒林界)에도 역시 각 세대마다 인물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진유(眞儒)나 홍유(鴻儒)에서부터 문사(文辭)나 장구(章句)를 일삼는 유자에 이르기까지가 비유하자면 마치 황하(黃河)의 물을 마시면서 각자의 양에 따라 맘껏 마시는 것538)과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조예와 성취에 있어서는 비록 크고 작거나 깊고 얕거나
한 것이 같지 않은 차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요컨대 다른 사람의 사표(師表)가 되어서 말세의 세상에 풍속을 도탑게 하는 것은 다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말세의 세상이 됨에 이르러서는, 선비라고 이름을 하는 자들이 혹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실
534) 삼황(三皇) : 고대 중국의 전설상에 나오는 세 황제로, 일반적으로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가리킨다.
535) 오제(五帝) : 옛날 중국의 상고 시대에 있었다고 하는 다섯 제왕을 가리키는데, 그 설이 일정하지는 않으나 대략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을 가리킨다.
536) 삼왕(三王) : 삼대 시대의 성왕으로, 하(夏)의 우왕(禹王), 은(殷)의 탕왕(湯王), 주(周)의 무왕(武王)을 가리킨다.
537) 일원(一元) : 사물의 시초나 만물의 큰 근본을 말한다.
538) 황하(黃河)의……것 : 학문을 배우는 자들이 각자의 역량에 따라서 마음껏 배웠다는 뜻이다.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이르기를, “뱁새는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튼다 해도 한 개의 나뭇가지를 사용할 따름이
며, 두더지는 황하수의 물을 마신다 해도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 법이다.” 하였다.
제로 터득한 것이 없어서 예의(禮義)를 멸시하면서 깔아뭉개고, 혹 행실이 도리에 어긋나서 다른 사람들의 구설수를 야기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유교는 부패하였다.’는 기롱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현재 세대의 등급이 낮아져서 말세의 풍속이 부박해 진 탓에 이륜(彛倫)과 도덕(道德)이 점차 없어지게 되었으며, 미풍(美風)과 양속(良俗)이 그로 인하여 무너지게 되어 어느 사이에 금수(禽獸)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이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는바,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탄식하는 것이 기(杞)나라 사람이나 칠실(漆室)의 부인이 걱정하는 것539)과 같은 정도만이 아닙니다.
그런즉 우리 모든 유자로써 자처하는 자들이 태연스럽게 강 건너 불을 보듯이 하면서 그들을 인도해 이끌어줄 방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유자의 지위에 있어서 어떻겠으며, 유자의 의무에 있어서 어떻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부자 형제가 족히 법 받을 수 있은 다음에야 백성들이 법 받는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가 인에 흥기한다.” 하였습니다.540) 백성들을 이끄는 방도가어찌 집집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깨우쳐 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사방에 푯대를 바르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마땅히 행해야할 도인 것입니다.
성인의 도는 윤리를 밝히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 백성들이 등을 돌려서 윤리를 밝게 알지 못할 것이 걱정된다면,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우애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있는 도를 극진히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인의 도는 인의(仁義)일 뿐입니다. 우리 백성들이 도를 반대로 하여 덕을 어그러뜨릴까 걱정된다면, 백성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어서 먼저 세상에 임하는 도를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노성(老成)한 분들이 고집스럽고 꽉 막혀서 되돌리기가 어려운 것이 걱정된다면, 나에게 있는 시중(時中)의도를 다하면 됩니다. 그리고 신진(新進)의 사람들이 학업을 하는 것을 싫어하여 피하는 것이 걱정 된다면, 나에게 있는 자식을 가르치는 방도를 다하면 됩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는 오직 자신에게 있는 도를 다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따라오는 것이 바람이나 메아리보다도 더 빠른 법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몸을 닦아서 집안을 가지런히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소견이 서로 배치되어, 세도를 걱정하는 것이 심상한 정도만이아니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첫 번째는 구학가(舊學家)들이 완고해서입니다.
두번째는 신학가(新學家)들이 거짓되어서입니다.
구학가들은 신학을 배척하면서 말하기를, “성현들의 책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연구하고, 성현의 말씀을 외우면서 법 받은 다음에야,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다. 저 기하학(幾何學)이나 기술학(技術學)이나 어문학(語文學)이나 산수학(算數學) 따위가 어찌 세도를 높이는 데 보탬이 되겠는가. 우계(虞階)에서 추는 간우(干羽)의 춤541)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합니다.
539) 기(杞)나라……것 : 쓸데없이 자신의 분수에 넘치게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열자' 천서(天瑞)에 이르기를,
“기(杞)나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하늘과 땅이 무너지면 몸을 피해 갈 곳이 없음을 걱정하여 침식(寢食)을잊었다.” 하였다. 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또 '열녀전(烈女傳)' 「칠실녀(漆室女)」에 이르기를, “노 목공(魯穆公) 때 임금은 늙고 태자는 어려서 국사가 몹시 위태로웠는데, 칠실이라는 고을에 사는 어떤 나이 어린 여자가 기둥에 기대어서 탄식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였다.” 하였다.
540) 전(傳)에……하였습니다 : 전(傳)은 '대학(大學)'을 말하며, 이 인용문은 '대학'(전9장)에 나온다.
이에 반해 신학가들은 구학을 멸시하고 비웃으면서 말하기를, “크게는 이학(理學)이나 화학(化學)에서부터 작게는 기계학이나 기술학이 오늘날의 시대에 있어서 급선무가 되는 것이다. 저 인의(仁義)나 도덕(道德)의 설 따위는 도리어 문화를 진보시키는 데 해가 된다. 진(秦)나라에서 한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일542)이 머지않아서 다시 행해질 것이다.”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 간에 배척하기를 얼음과 숯이 함께 할 수 없는 것 같이 합니다.
사람들의 윤리가 이로 말미암아 밝혀지지 않고, 선비들을 추향이 이로말미암아서 정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심하게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만약 위의(威儀)와 도덕(道德)을 숭상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교과(敎科) 가운데 수신(修身)이나 윤리(倫理) 따위의 학문을 어째서 가르친단 말입니까? 그리고 만약 기계학이나 기술학이나 어문학이나 산수학 따위는 쓸모가 없다고 한다면, 성문(聖門)에 육예(六藝)나 사과(四科) 등의 과목이 어째서 있단 말입니까?
요약해서 말한다면, 구학은 체(體)이고, 신학은 용(用)인 것입니다.
체와 용이 서로 보완해 주면서 아울러 행해져 어긋남이 없는 다음에야, 사야(史野)의 탄식543)이 없어서 나란하게 적적히 배합되어 아름다운 영역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몹시 애석한 일
이 아니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지금은 뜻이 있으면서 도(道)를 걱정하는 선비들이 곳곳에서 분연히 일어나 경사(京師)의 유도진흥회(儒道振興會)와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에서부터 전라남도의 유도창명회(儒道彰明會),관동(關東)의 유도천명회(儒道闡明會), 평안남도의 유림회(儒林會)각 각자 여기저기에서 세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사도(斯道)를 창명(倡明)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학교를 설립하여 영재를 기르는 것을 첫 번째 부대사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 역시 신학과 구학이 체(體)가 되고 용(用)이 되므로 어느 한 쪽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견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를 말미암아서 말을 하면, 오늘날의 걱정 가운데에는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과 구학이 배치되는 것은 바로 근본이 되는 걱정입니다. 이에 대해서 만약 병폐를 고치면서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나아간다면, 문채도 있고 바탕도 있어 덕을 온전히 구비한 군자가 장차 어느 곳에나 있게되어, 다른 사람의 의범(儀範)이 되어 나빠진 풍속을 경계시키고 가다듬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효박(淆薄)한 것을 돌려서 순박하게 만들고, 어두운 것을 되돌려 밝게 만들 것이며, 그 나마지 퇴폐하게 되는 걱정 역시 그물눈을 쳐들면 그물눈이 펼쳐져 저절로 일정한 표준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유자들이 의무를 다하고 못하는 것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이곳 교남(嶠南) 지방은 바로 우리 동방의 추로(鄒魯)의 지방입니다.544) 선현(先賢)들의 유풍(遺風)이
541) 우계(虞階)에서……춤 : 우계는 순(舜) 임금의 조정(朝廷)을 가리킨다. 간우는 고대에 춤추는 자들이 춤을출 때 잡고 추는 도구로, 문무(文舞)를 출 때에는 우(羽)를 잡고, 무무(武舞)를 출 때에는 간(干)을 잡는다.
순 임금 때 유묘가 귀순하지 않자 우(禹)가 무력으로 정복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순 임금이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직접 간우를 잡고 춤을 추자, 유묘가 그 소문을 듣고 귀순해 왔다. '韓非子' 五蠹
542) 진(秦)나라에서……일 : 모든 서책을 없애치우고 모든 유학자들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진시황 때 정치에 대하여 비평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모든 서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게 한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이 있었다.
543) 사야(史野)의 탄식 : 사(史)는 겉치레만 잘하는 것을 말하고, 야(野)는 겉모습이 촌스러운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질(質 본바탕)이 문(文 아름다운 외양)을 이기면 야(野)스럽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하다.
문과 질이 적적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답게 된다.” 하였다. '論語' 雍也.
만대토록 없어지지 않았으며, 석덕(碩德)과 기구(耆舊)들이 일상생활 중에 강마한 것이 바로 성인(聖人)의 시중(時中)의 의리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보호해주는 방도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건대, 용렬하며 누추한 몸이니 어찌 감히 자질구레한 말을 떠들어 대어 어쭙잖은 말을 채택해 주시기를 바랄 수있겠습니까.
이상에서 말한 것은 바로 오늘날의 일반적인 걱정거리이지, 귀도(貴道)와 귀군(貴郡)에 실제로 이런 폐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전 : 李大榮, 「儒者之地位及義務」, '經學院雜誌' 제26호, 1925년 12월 25일, 49~52쪽>
9) 정만조(鄭萬朝)
(1) 구학과 신학
본인은 형편없는 자질을 가진 몸으로 외람되이 제학(提學)의 직임을 맡고 있습니다.
이미 학식이 없는데, 어찌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는 일 없이 반년이나 지났기에 단지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만 불어납니다.
그런데도 성묘(聖廟)에 가을 석전제(釋奠祭)를 지내는 날에 일을 돌보는 반열에 참여하였는바, 영광스러움이 극에 달합니다. 더구나 여러 진신(縉紳)들과 여러 유생(儒生)들께서 와서 제사를 도와 예모(禮貌)가 엄숙하여져 옹반(廱頖)545)의 기풍이 울연히 피어오르게 되었으니, 참으로 몹시도 성대한 거조입니다. 예를 마치고 서로 만나보게 되었으매, 감히 한 마디 말을 간략히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오늘날에는 신학(新學)이니 구학(舊學)이니 하는 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문(斯文)의 크나큰불행인 것입니다.
무릇 학교는 삼대(三代) 시대 때에는 다 똑 같았습니다.
삼대 시대 이후로 혹 거행되기도 하고 혹 폐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근일에 이르러서는 그 제도가 조금 갖추어져, 장차 옛날의 정사를 다시 닦게 되었는데, 경학(經學)을 강(綱)으로 삼고 과학(科學)을 목(目)으로 삼으며, 경학을뿌리고 삼고 과학을 가지로 삼아, 강(綱)을 쳐들면 목(目)이 펼쳐지고, 강을 배양하면 목이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서로 어긋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과학을 하는 자들은 경학을 가리켜 진부하다고 한단 말입니까. 심지어는 성현(聖賢)을 모욕하고 부형(父兄)을 모욕하는 자가 있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경학을 하는 자는 과학을 하는 자를 꾸짖으면서 사특함에 물들었다고 하며, 심지어는 자제들이 공부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기까지 합니다.
544) 이곳……입니다 : 교남(嶠南)은 영남 지방을 가리키고, 추로(鄒魯)는 노(魯)나라와 추(鄒)나라로, 노나라는 공자(孔子)가 교화를 편 나라이고, 추나라는 맹자(孟子)가 교화를 편 나라인바, 문풍(文風)이 강한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545) 옹반(廱頖) : 옹반(雍泮)과 같은 말로, 벽옹(辟雍)과 반수(泮水)를 뜻한다. 벽옹은 주대(周代)에 천자(天子)가 세운 태학(太學)을 말하며, 반수는 반궁(泮宮)과 같은 말로, 역시 태학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균관(成均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경(經)이라는 것은 바른 것으로, 단지 육경(六經)의 장구(章句)에 대한 학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의(仁義)와 도덕(道德),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이 모두 경학인 것입니다.
과(科)라는 것은 공문(孔門)의 사과(四科)546)나 '주관(周官)' 사도(司徒)의 육행(六行)이나 육예(六藝)547)와 같은 것이 모두
과학인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혹 세세한 절목이나 자질구레한 규정이 서로 다른 것이 있어, 비록 삼대(三代) 시대 때 제도를 똑같이 했을 때라도 역시 더하거나 줄인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대개 각 시대의 마땅함에 따라 변통한 것으로, 그 본령이나 숭상하는 것이 다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은, 신학과 구학을 서로 나누어 보는 생각을 타파하여, 다시는 이를 입으로 거론하지도 말고 붓으로 쓰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학을 가지고 후진들을 장려하는 도구로 삼고, 과학을 가지고 선성(先聖)에 의귀하는 표적으로 삼아, 한가한 날에 이 당(堂)에서 자주 모여 서로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도움을 구하고, 이택(麗澤)548)하는 유익함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삼대 시대의 다스림을 만회할 수 있으며, 천하의 풍속을 교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는 우리 사문(斯文)에게 있어서 큰 다행일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가지고 우리 무리들을 위하여 오늘 구구하게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출전 : 鄭萬朝, 「舊學及新學」, '經學院雜誌' 제27호, 1926년 12월 25일, 68~69쪽>
10) 정봉시(鄭鳳時)
(1) 오늘날 우리의 급선무
본인이 본도549)의 강사(講士)가 된 지 지금까지 14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문은 얕고 덕은 박하며, 나이는 늙고 병은 많아서 강사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순회하면서 강연하는 한가지 일마저도 역시 해마다 한 번씩 두루 돌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미처 돌지 못한 곳에서는 경학원(經學院)에 강사가 있는 줄도 모르며, 강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
546) 공문(孔門)의 사과(四科) :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네 가지 학과(學科)로,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을 말한다.
547) 주관(周官)……육예(六藝) : 사도(司徒)는 ꡔ주례(周禮)ꡕ 지관(地官)의 대사도(大司徒)를 말한 것으로, 그 직장(職掌)은 나라의 토지의 그림과 그 인민의 수효를 확정하여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돕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대(周代)에는 교화를 맡은 대사도(大司徒)가 고을을 세 가지 일(三物), 즉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를 가르치고, 이 가운데 우수한 자를 뽑아 나라에 천거하여 등용하게 하였다. 육덕은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이고, 육행은 효(孝)·우(友)·목(睦)·인(婣)·임(任)·휼(恤)이고, 육예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이다.
548) 이택(麗澤) : 친구 간에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학문을 강습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태괘(兌卦)에 이르기를,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는 이것으로 붕우 간에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朱熹)의 본의(本義)에 이르기를,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어서 서로 간에 불어나게 하는바, 붕우 간에 강습하는 것은 그 상(象)이 이와 같다.” 하였다.
549) 강원도.
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미 돈 곳이라 하더라도 햇수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역시 강연한 것이 무슨 뜻을 말하였으며, 말한 것이 무슨 일인지조차도 반드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본 강사가 직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입니다. 여러 군자들께서 이를 크게 용서해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지금 경학원의 명령 및 도청의 부탁과 군청의 소개를 받아서 여러 군자들과 더불어 한 자리에서 강론할 수 있게 되었는바, 영광스럽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아주 큽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제가 알고 있는바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무리들이 가장 먼저 강명(講明)해야만 하는 것은 그 조목이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륜(彛倫)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질서(秩序)를 따르는 것이고, 셋째는 사추(士趨)를 바르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민심(民心)을 정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학문(學問)을 권장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산업(産業)을 힘쓰는 것이고, 일곱째는 재용(財用)을 절약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법률(法律)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첫째 조목인 이륜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륜에는 오품(五品)550)이 있습니다. 사람치고 어느 누가 이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합니다. 본 강사가 어찌 감히 “이륜의 도리를 능히 다 한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 간에 권면하는 것을 군자는 귀하게 여깁니다. 이 때문에 감히 한 마디 말을애오라지 여러 분들께 진달해 올리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 인륜에서 살아가는 것은 마치 입는 옷감이나 먹는 곡식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겨울에는 갓옷을 입고 여름에는 갈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음식을 먹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그 생에 대해서만 잘 알고, 그 윤(倫)에 대해서는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날씨가 추운데도 옷을 입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배가 고픈데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면 죽습니다.
살아가면서 그 윤리를 알지 못한다면 죽습니다. 죽는 것은 모두 똑 같습니다.
추워서 죽고, 배고파서 죽는데, 이때 죽는 것은 사람으로서 죽는 것입니다.
윤리를 몰라서도 죽는데, 이렇게 죽는 것은 짐승으로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슬픔을 금할 수가 있겠습니까.
호랑이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은, 부자(父子) 사이와 같습니다.
벌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개미가 자기의 집을 지키는 것은, 군신(君臣) 관계와 같습니다.
큰 물새가 암컷과 수컷의 구별이 있는 것은 부부(夫婦)의 관계와 같습니다. 큰기러기와 기러기가 질서가 있는 것은 형제(兄弟)의 관계와 같습니다. 새가 우는 데 있어서 누구를 부르듯이 하는 것은 붕우(朋友)의 관계와 같습니다.
저 새나 짐승들조차도 오히려 윤리를 압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이 세상을살아가면서 그 윤리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동방은 기성(箕聖)551)께서 가르침을 펴시고 여러 현인들께서 학문을 열어 평소에 ‘예의의 나라’라고 불리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년에 들어와서는 교화가 점차 무너지고 풍속이
550) 오품(五品) : 오륜(五倫), 오상(五常), 오전(五典)의 통칭으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를 말한다.
551) 기성(箕聖) :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기자는 은나라 주왕(紂王) 때의 현인으로, 이름은 서여(胥餘)이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하자, 기자는 동쪽으로 와서 조선왕(朝鮮王)이 되었으며, 조선 사람들에게 예의(禮義)와 전잠(田蠶) 등을 가르쳤으며, 팔조목(八條目)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한다.
점차 퇴폐 되어, 아버지이면서도 그 자식을 자식으로 대하지 않으며, 아들이면서도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 섬기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부부 간에는 서로 이혼을 하는 것이 당연히 해야 할 것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형제간에는 서로 소송을 벌리는 것을 으레 하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붕우 간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말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아아, 슬픕니다. 일직이 추로(鄒魯)였던 나라가 어찌하여 금수(禽獸)의 나라로 되었단 말입니까?
물이면서 근원이 없으면 고갈되고, 나무이면서 뿌리가 없으면 말라죽습니다.
사람이면서 윤리가 없으면 멸망될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우리들은 그것을 밝힐 도리를 강구하여서 무너진 것을 펴지게 하고 없어진 것을 보전하여,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답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다섯 가지의 떳떳한 본성을 다하여서 한 집안의 화기(和氣)를 보전할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어찌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에 있어서 큰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둘째 조목인 질서를 순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질서는, 새에게 있어서 날개가 있는 것과 같으며, 짐승에게 있어서 털이 있는 것과 같으며, 물고기에게 있어서 비늘이 있는 것과 같아서, 저절로 바꿀 수 없는 차례와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라도 혹 이와 반대로 되게 된다면, 모자와 신발을 거꾸로 착용하고, 손과 발을 엉뚱한 곳에 붙인 것과 같게 됩니다. 가생(賈生)552)이 크게 걱정하고 탄식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 동방은 질서의 차별이 지나치게 엄하니, 의당 참작하는 도리가 있어야만 할 것인데, 일찍이 식견이 있는 자가 이에 대해서 논한 것이 있습니다. 근일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질서라는 두 글자가 비로 쓸어버린 듯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어, 젊은이를 능멸하고, 어른을 천시하며, 귀한 자를 방해하고 있는데, 이를 마치 다반사로 보고 있으니, 탄식을 금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질서를 순하게 할 방도를 강구하여 노소(老少)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그 예를 얻게 하고,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 그 분수에 편안하게 하여, 질서 정연하여 문란하지않게 하기를 새의 깃털이나 짐승의 털이나 물고기를 비늘이 차례의 순서가 있는 것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어찌 하늘의 질서와 사람의 질서에 있어서 크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셋째 조목인 사추(士趨)를 바르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비는 원기(元氣)입니다. 원기가 바르지 않으면 백체(百體)가 병들게 되는바, 원기를 기르기를 감히 바른 것으로써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동방은 유현(儒賢)들을 예로써 대우하고, 선비들은 유교를 숭상하였습니다. 인심은 이로써 정하여졌고, 세도(世道)는 이로써 유지되었습니다.
집에는 두 가지 가르침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두 가지 추향이 없어, 상하 대소 간에 오직 유(儒) 하나뿐이었습니다.
비록 그 계급이 가지런하지 않아서 조예가 차이가 있으며, 문호(門戶)가 하나가 아니어서 가는 길이 혹 다르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모두가 유(儒)에 근본을 두는 데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552) 가생(賈生) : 한(漢)나라 사람인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가의가 문제(文帝) 때 박사(博士)가 되어 정삭(正朔)을 고치고, 복색(服色) 바꾸고, 법도(法度)를 제정하고, 예악(禮樂)을 일으켰으나, 모함을 받아 쫓겨나 장사(長沙)로 귀양 갔다. 그 뒤에 다시 소환되어, 선실(宣室)에서 한 문제(漢文帝)와 더불어 귀신의 일을 논하였는데, 그때 문제는 가의를 소원히 대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가의는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회왕(梁懷王) 태부(太傅)로 나갔다가 울분을 못 이겨 33세를 일기로 죽었다.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
그런데 어찌하여 근년 이래로 가르치기는 각각 서로 달리 가르치고, 사람은 각각 서로 달라 따로따로여서, 세운(世運)과 보취(步趣)가 급박한 것이 있게 되고, 시태(時態)와 사상(思想)이 변천된 것이 있게 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도도하게 다시는 유교를 하는 올바른 선비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게 되었단 말입니까? 참으로 탄식스러운 일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그것을 바르게 할 도를 강구하여 이상한 말이나 잘못된 생동을 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정학(正學)으로 들어오고, 샛길로 가거나 굽은 길로 가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정도(正道)로 돌아와, 원기(元氣)를 길러서 채우고 객기(客氣)가 그에 따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어찌 큰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넷째 조목인 민심(民心)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민심은 바로 하늘의 뜻입니다.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따라줍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것으로부터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들이 듣는 것으로부터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하였습니다. 하늘과 백성 사이에 어찌털끝만큼이라도 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관동(關東) 지역은, 토질은 척박하고 땅은 메말라서 사치스러운 마음이 없으며, 풍속은 순후하고 풍속은 예스러워서 방탕한 마음이 없습니다.
오늘날 관동 지방의 백성들은 바로 옛날의 관동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바, 애당초 더 면려할 말을 해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토질이 척박하고 메마르므로 백성들의 생활이 궁박합니다. 궁박하면 함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형세가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다.
그리고 풍속이 순후하고 예스러우므로 백성들의 생각이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으면 완고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치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민심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궁하게 살면서도 범람한 데에는 이르지 않으며, 어리석으면서 완고한 데에는 미치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충심을 보존하게 하고, 우리들이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을 다하도록 하시기바랍니다. 그럴 경우 어찌 하늘과 백성들에게 있어서 크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다섯째 조목인 학문을 권장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아무리 상지(上智)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말미암아서 그 재주를 진보시킬 수가 있으며, 제아무리 하우(下愚)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말미암아서 그 바탕을 변화시킬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그것은 바로 학문이 그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8세가 되면 모두 소학(小學)에 들어가게 하여, 쇄소(灑掃)와 응대(應對)와 진퇴(進退)하는 예절과 예악(禮樂)과 사어(射御)와 서수(書數)의 글로써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의 보통학교(普通學校)가 바로 이 것입니다. 그리고 15세가 됨에 미쳐서는 위로 천자(天子)의 원자(元子)나 중자(衆子)로부터 아래로 공경(公卿)이나 대부(大夫)나 원사(元士)의 적자(嫡子)와 일반 백성 가운데 준수한자들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대학(大學)에 입학시켜, 궁리(窮理)와 정심(正心)과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도로써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의 대학교(大學校)가 이것입니다.
가르침에는 옛날과 지금이 다름이 없으며, 학문에는 신제(新制)와 구제(舊制)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데도 단지 시무(時務)가 같지 않고 교과(敎科)가 다름으로써, 노인네들은 말하기를, “오늘날의 학교는 이상한 학교다.” 하고, 젊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옛날의 학교는 썩은 학교이다.” 하면서, 노인과 젊은 사람이 서로 헐뜯고 신학과 구학이 서로 공격합니다.
그리하여 구학이 아니면 덕성(德性)를 배양할 수가 없고, 신학이 아니면 재지(才智)를 진보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탄식스럽습니다.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학문을 권장할 방도를 강구하여, 부형이 된 자들로 하여금 자제들의 학업을열어주게 하고, 자제가 된 자들로 하여금 부형의 가르침과 인도를 잘 준수해 받들어, 인재(人才)를 양성하고 세교(世敎)를 부식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어찌 학계에 있어서 크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여섯째 조목인 산업을 힘쓰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맹자'에 이르기를, “참으로 떳떳하게 살 수 없는 생업이 없으면 그를 인해 떳떳한 마음이 없어진다.
그럴 경우 방탕함과 간사함 및 사특함과 사치함을 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생업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찌 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관동 지방은 땅을 보면 산이 들판보다 많고, 곡식을 보면 조가 쌀보다 많이 나며, 토질을 보면 척박하고, 백성들을 보면 가난합니다. 이에 이른바 부자라고 하는 자들을 보아도 재산은 천금의 재산이 없고 곡식은 몇 년간 먹을 저축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하는 자들을 보면, 한해 내내 고생을 하여도 가을 추수할 때에 미쳐서는 농사를 짓느라 들어간 빚에 수입이 다 들어가서 빈손이 되고 맙니다.
해마다 이와 같고 사람마다 이와 같으니, 비록 장자방(張子房)553)으로 하여금 대책을 세우고 도주공(陶朱公)554)으로 하여금 계획을 하게 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 바로 우리 관동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애처로운 우리 관동의 백성들이 무슨 수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농사짓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생업을 잃지는 않을 것이고, 생업을 잃지 않으면 생산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저 집집마다 대문이나 기둥에 써 붙여 놓은 춘사첩(春詞貼)555)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거기에는 ‘하늘도 힘써 일하는 집을 궁하게 못한다.(天不能窮力穡家)’라고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세속에서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실로 헛말이 아닙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밭에나가 힘써 농사를 지으면 이에 가을 추수가 있을 것이다.(服田力穡 乃亦有秋)” 하였습니다. 무릇 매년마다 가을 추수를 거둘 것이 있고, 해마다 남는 곡식이 있다면, 가끔씩 홍수나 가뭄이 드는 재앙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부족한 것을 보충할 수가 있어 오히려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뽕나무와 삼과 닥나무와 옻나무는 그 이익이 배가 되는데, 이런 것들은 또 우리 땅에 심기에 알맞습니다.
혹 이런 것들을 밭두둑 가나 울타리 주변이나 경작하는 사람이 없는 땅에 심되, 올해에 몇
553) 장자방(張子房) : 한 나라 때 고조(高祖) 유방(劉邦)으로 하여금 한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도운 명신(名臣)인 장량(張良)으로, 자방은 그의 자(字)이다. 후대에는 지략(智略)이 뛰어난 대표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554) 도주공(陶朱公) : 춘추 시대 월(越)나라 사람인 범려(范蠡)의 별칭이다. 범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섬겨서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 공을 세웠으나, 구천의 사람됨이 환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안락은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하면서 배를 타고 제(齊)나라로 가서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고 재산을 수천만 금이나 모았다. 제나라에서는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정승을 삼고자 하자, 그는 다시 모았던 재물을 다 흩어 나누어 준 다음 도(陶) 땅으로 가서 도주공이라고 자호하고는, 또다시 수천만 금의 재물을 모았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555) 춘사첩(春詞貼) : 입춘(立春)에 기둥이나 대문에 써서 붙이는 글인 천첩자(春貼子)를 말한다.
그루를 심고, 내년에 또 몇 그루를 심고 하면,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한 집의 생업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10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백성들이 생업에 힘쓸 도리를 강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를 근본으로삼고 나무를 심는 것을 보조로 삼아, 농사를 지어 먹고 살고 나무를 심어 옷을 해 입으면서 그것으로 역시 의식을 여유가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어찌 우리 무리들의 산업에 있어서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일곱째 조목인 재용(財用)을 절약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재용은 사람에게 있어서 고혈(膏血)과 같습니다. 사람이면서 고혈이 없을 경우에는 죽게 됩니다.
사람이면서 재용이 없어도 죽게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고혈은 아깝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이를 해치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재용은 아깝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없애치우는 자가 있습니다.
근일에 보면 전통이 있는 대족(大族)의 대대로 전해 내려온 재산이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근검절약하여 쌓아놓은 재산을 도박이나 주색으로 하루아침에 탕진해 버리고는 거지로 전락되는 자가 있기도하니, 참으로 탄식스럽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관동 지방은 검약하는 데 습관이 되어 이런 폐습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이 닥치기 전에 경계시키고,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바로 우리 늙은이들의 책임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재용을 절약하여 쓰는 방도를 강구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나 형이 된자는 아들이나 동생을 가르쳐 반드시 먼저 학교에 들어가게 해서 그 마음을 이끌어주고, 실질적인 생업을 이어 받아서 그 마음을 굳게 잡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이 잠시라도 방종해지지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어느 겨를에 외물(外物)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겨나겠습니까.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재물을 생산하는 데에는 도가 있으니, 생산하는 자가 많고 먹는 자가 적으며, 생산하는 것이 빠르고 쓰는 것이 느리면, 재물이 항상 풍족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능히 이 가르침을 잘 시행한다면, 어찌 재산이 있는 집의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여덟째 조목인 법률을 잘 지키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섯 가지 형벌556)의 종류는 이미 당우(唐虞)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세상의 등급이 날로 낮아져서 법령이 날로 불어나게 되었는바, 쇠털처럼 촘촘한 것으로도 그 많음을 비유하기에는 부족하며, 손끝에 닿는 것으로도 그 저촉하기 쉬움을 비유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법을범하게 되면 종시토록 허물이 되어, 관청에서는 폐기 당하고 사회에서는 배척당하니, 장차 어디에서 용신(容身)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람은 의복과 음식이 사람에게 가해지는 것과 같아서 재차 범하고 또다시 범하게 되어, 죽은 뒤에 이르러서야 법을 범하는 것을 그만 두게 됩니다. 그러니 두려워할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관동 지방은 풍토가 순후하고 민심이 선량하니, 이러한 따위의 악습은 반드시 없을
556) 다섯 가지 형벌 : 시대에 따라서 일정하지 않은데, 요순시대에는 묵(墨), 의(劓), 비(剕), 궁(宮), 대벽(大辟)이었고, 주(周)나라 때에는 들에서 쓰는 야형(野刑), 군중에서 쓰는 군형(軍刑), 향리에서 쓰는 향형(鄕刑),관부에서 쓰는 관형(官刑),나라에서 쓰는 국형(國刑)이었다.
것입니다.
그러나 풍조(風潮)가 미치는 바에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걱정해야 합니다.
바라건대 우리 무리들은 그것을 잘 지키게 할 방도를 강구하여, 아버지나 형이 된 자로 하여금 아들이나 동생들을 가르쳐서 반드시 조심을 하면서 삼가게 하여, 말을 함에 있어서는 위태로운 말을 하지 말고,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위태로운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 법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어찌 이른바 길하고 상서로운 좋은 일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 강사는 이곳 관동 사람입니다. 관동에 집이 있고, 관동에 묘소가 있으며, 관동에 친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친하거나 친하지 않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사랑하는 마음이 도탑고 성기(聲氣)가 통함은 횡성(橫城)이나 원주(原州)나 영월(寧越)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네 개의 군(郡)에서 강연을 하면서 똑 같은 내용으로 말을 하였는바, 횡성에서 듣거나 원주에서 들은 분이나 영월에서 듣거나 평창에서 들은 분들 가운데에는 의당 이 자리에 있으면서 웃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에 이르기를, “다섯 묘(畝)의 땅을 가진 집에서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을 먹은 사람이 비단 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이나 돼지나 개를 기름에 있어서 번식하는 때를 놓치지 않는다면 일흔살을 먹은 자가 고개를 먹을 수 있으며,
100묘의 땅을 가진 자로 하여금 농사를 제때에 맞춰 짓게 한다면 여덟 가구의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상서(庠序)의 가르침을 잘하여 효제(孝悌)의 의리를 가르치면, 머리카락이 반백이 된 사람이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이 한 가지 말로써 양(梁)나라에서 말해주고 다시 또 제(齊)나라에서 말해주고, 다시 또 등(縢)나라에서 말해 주었습니다. 이는 대개 성인(聖人)이 왕도(王道)의 요체에 있어서 이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고 여겼으므로, 여러 차례 말한 것입니다. 저 역시 우리들의 급선무로서는 이것들보다 더 앞서는 것이 없다고 여겼으므로,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말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 자리에 계신 여러 군자들께서는, 이상에서 말한 여덟 가지 조목을 가지고 아버지는 말하고 형은 권면하여, 집집마다 말해주고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관동 한 지방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그 방도를 다하게 하고, 더 나아가 다른 도에까지 미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이륜(彛倫)이 밝아지고, 질서(秩序)가 바로잡히고, 사추(士趨)가 바르게 되고, 민심(民心)이 바르게 되고, 학문(學問)을 부지런히 익히고, 산업(産業)에 힘쓰고,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법률(法律)을 잘 지키는것을 우리 관동에서 모범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어찌 우리 관동에 있어서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출전 : 鄭鳳時, 「今日吾人之急先務」, '經學院雜誌' 제26호, 1925년 12월 25일, 55~60쪽>
4. 경학원의 활동, 기타
1) 경학원 유림 및 강사 관계 자료(1915~1921)
(1) 강사 주의사항
1. 경학원은 정권(政權)을 행사하는 관청이 아니며, 인심을 감화시키는 한 사회적인 기관이라는 것을스스로 이해하여, 모든 인물을 접대함에 있어서 거만에 가까운 태도를 경계하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나 논평을 삼가며 항상 온화함을 스스로 가져야할 것이다.
2. 강사는 평소에 언동을 온공(溫恭)하게 하고 화내며 소리 지르고 나무라는 등의 엄한 기분을 꼭 경계하고, 특히 경로(敬老)자유(慈幼)의 태도를 두텁게 가지며 자신을 가지고 청년과 자제에게 모범을 보이며, 현 세태의 부박(浮薄)한 악풍(惡風)을 교정할 것을 스스로 맡을 것.
3. 순회강연을 할 때, 지방관헌이나 기타 인사가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고 또는 대우의 불만족 등의점이 있을지라도 극력 겸손하여 추호도 원만하지 않고 언동에 모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순회강연을 하는 시기는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농사일이 바쁘거나 한가한 때, 기타 지방의 사정을 참작하여 미리 선정해서 지방관민이 분망 중에 폐가 되지 않도록 혹은 싫증을 내거나 고생이 되지않도록 준비할 것.
5. 순회강연의 주의는 교육에 관한 칙어(勅語)의 취지를 근간으로 성경(聖經)현전(賢傳)의 훈의(訓義)를 이에 대응시켜서 시의(時宜)에 맞추어 적합하게 연술(演述)하도록 한다. 그러나 경의(經義)를 해석할때는 보통문장이나 구절을 인용함에 치우치지 않고 시의(時宜)를 설명함으로서 민풍을 개선하는데 노력할 것.
6. 순회강연의 일정은 예정과 실행이 전연 맞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사정에 따라서는 임시로 천연(遷延)하는 일이 없지 않으나 하루 한 군데가 영향을 주어서 다른 곳에 파급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7. 순회강연의 첫 시작지는 도청 혹은 경무부로부터 통지하여 연착 때문에 해당 지방으로부터 준비할 틈이 없다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을 주의하여 며칠간의 여유를 주든지 혹은 기타 신속한 통지방법을 취하여 가급적으로 편의를 주도록 준비할 것.
8. 순회강연 상황은 실행 후 지체 없이 본원 대제학에 보고할 것. 보고는 상세하게 사실을 위주로하여 (1) 조선총독에게 직접 보고할 것 (2) 일정 및 연설의 요지가 지방관청으로부터 보고가 오는(예를들면 군에서 도, 도로부터 본부(本府) 또는 경찰관서로부터 경무부, 경무부로부터 경무총감부(보고하는등의 것) 내용과 맞지 않는 점이 없도록 주의할 것.
9. 잡지를 매번 5부 씩 송정(送呈)하는데 대해서 이것을 유효하게 애독하는 인사에게 증여하고 그 이름을 본원에 통지할 것.
10. 잡지기고는 반드시 순서에 따라서 제작 송부하고 기타 지방석학의 문장도 널리 소개함으로써 잡지재료를 공급하도록 진력할 것.
11. 9월분부터 조선휘보(朝鮮彙報)(지방판) 1부씩을 본부로부터 제씨(諸氏)께 호를 쫓아 기증할 것을 협의해 두었다.
이것은 총독부 및 각도에서 여러 가지 사업 및 성적을 개괄적으로 기재한 자에 대하여 도착 후는 호마다 숙독 음미함으로써 고경(古經)과 금정(今政)과를 상호 연석(硏釋)하여 강연 및 잡지원고의 제술(製述)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
<출전 : 「講師注意事項」, '經學院雜書類綴' 1915~1921년, 201~202쪽>
(2) 의견서, 유림지도에 관한 건
경발(經發) 제 호
1917년 월 일
경학원 대제학
조선총독 각하
본직은 본원규정 제1조의 목적의 취지를 이행하기 위하여 의견서를 별지와 같이 첨부하여 부탁드리오니 채택 해 주시기를 이와 같이 신청합니다.
의견서, 유림지도에 관한 건
풍교(風敎) 덕화(德化)를 돕고 보완하는 것은 경학을 강구함에 있고, 경학 강구하는 것은 유교를 발전시키는데 있으며, 유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림(士林)을 진흥시키는데 있다. 사림을 진흥시키는 데는 지방향교에 연락과 지도를 하여 경향이 일치하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왕년에 병합할 때, 사심(士心)이 한산하게 되어 나아갈 곳을 몰랐으나, 현금에는 안업(安業)한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인심이 차차 정돈되고 평소에 방황하던 자가 회개하고, 어둠으로 가던 자가 밝은 데를 향하여, 유교를 숭봉하게 되고 이륜(彛倫)을 부식(扶植)하고자 하고 있으며, 각 지방의 인사들은 기쁜 마음으로 출연(出捐)하여 향교를 중수하거나 혹은 모성계(慕聖契) 또는 향교유지회 등을 조직해서 후생을 교육하고 일반 인민의 충효를 지도하고 있다.
메이지천황 폐하의 교육칙어의 본뜻에 복종하고자 하나 위에는 권장하는 사람도 없으며, 아래로부터우러러 의뢰하는 바도 없이 발전하기에는 적기 때문에 지방유지로보터 본원에 대하여 어떤 사유를 보고하고 어떤 방침을 협의해서 본원의 지도를 의뢰하고, 본원과 연락을 청원해도 본원의 규정에는 지방유림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명백하게 지도하지 못하여, 그 자유설계에 맡기면일이 선시(善始)하고 선종(善終)함은 반드시 약속하기 어렵고 또 현재는 여러 종교가 다문(多門)할 때를맞이하여 맹자가 말하는 바의 ‘不之楊則之墨’557)이라고 말한 것처럼 유교에 들어오지 않으면 다른 교에
557) 양주에게 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간다는 뜻으로, 이단에 빠진다는 의미.
가로질러 가는 사태가 없지도 않음으로서 또 ‘來者不拒’558)는 유교의 최대목적인 것이다.
이제 만약에 규정에 구속을 받아서 오고자 하는 자를 거부하면 이것은 앉아서 다수의 경학인사를 잃는 것이 된다.
어찌 아까워하지 않을 것인가. 또 본원의 경학을 강구하는 것은 풍교덕화를 비보(裨補)559)하는 직에 있으며 일반유림을 연락과 지도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는 자를 거부함으로서 다른 교로 가버린다면 이것은 경학에 강구하고 풍교덕화를 비보할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원 직원이 난상회의를 하여 참망(僭妄)불규(不揆)해서 본원규정 및 본원 대제학직무규정 중에 몇 군데의 약간의 글자를 첨보하여 본원규정 제1조의 목적을 이행하고자 선처가 있으시기를 바란다.
[설명서, 지방유림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상태]
<과거> 최초에 지방 각 군 문묘의 재산부터 말한다면 관유(官有)도 다소간 있으나, 순전한 유림의 토지나 금전 등의 납부로써 조성한 이조 5백년 래의 성균관 관하에 있으며, 성묘(聖廟)숭봉과 사림강학등에 대해서 성균관의 지도에 따라서 소재상 황을 밝혀서 볼 수 있으나 첫째 갑오경장 이래부터 사습(士習)이 문란하여 관리방법이 불충분함으로 식자들의 걱정이 많았을 때에 향교재산을 공립보통학교의 비용으로 충당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각 향교의 상황은 몹시 적막하게 되어 경학의 강구는 이것이 태생적인 일에 속하기 때문에 유림의 향교재산이 국유로 귀속하게 된 것을 통감하여 참언(讒言)과 제멋대로 함으로써 시정(施政)의 득실을 준론(峻論)하여 개화는 공자의 도를 망치는 근본이라고 하고, 학교는 자제를 그르치게 하는 곳이라 하며 자제를 입학시키지 않는 경향이 많았다.
<현재> 총독부 시정(始政) 초에는 사심(士心)의 환산(渙散)560) 전에 비교해서 가장 심하나, 그 후 경학원의 설립으로 존성(尊聖)흥학(興學) 쪽에 여러 가지 시설로 그 편의를 도모하여, 본 원 강연이나 지방출장 강연, 도 강사의 각 군 순회강연 및 경학원잡지 간행 등의 효과에 따라서 전 조선의 유림이 각기분발하고 퇴폐한 향교수선을 혹은 한 사람이 전담하고 혹은 몇 사람이 협력해서 혹은 공동출력해서혹은 토지를 기부하며 기금을 적립하는 일 등으로 묘우(廟宇)는 일신하게 되고 향례(享禮)가 정결해서 이쪽 군이 선창하면 이웃 군이 따라서 하며 복구가 되어 갔으며 향교가 각 도를 통하여 적지 않는 이러한 영향은 경학원이 존재하는 연유인 것이다. 그러나 유림 등이 이러한 사업에 용역하고자 해도 혹시
모금방법과 유림 집합에 대해서는 관헌의 단속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본원에 대하여 질문함으로 귀원은 즉 수선(首善)561)의 땅인 지방유림의 향교를 유지하는 등의 일을 귀원에 바라며 여러 가지 지도를 받은 후에 서가취서(庶可就緖)하는 것도 본원에 규정이 없는 바에는 어찌 말로써 응답하겠는가.
때문에 본원 규정 중에 유림과 연락 및 지도 등의 글을 첨부하고자 한다.
각 군의 향교사업 일람표를 별도 목록과 같이 첨부한다.
<미래> 본원에서 각도에 연락하여 지도하는 규정을 정한 후, 몇 년 동안 실지로 이행하면 지방문묘의 수호 및 향사(享祀)거행과 경학 강구가 얼마간 발전하도록 해야 하며, 각 도의 유림이 그 취향을 알
558) 오는 자는 막지 않는다.
559) 도와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다.
560) 군중이나 단체가 뿔뿔이 헤어짐.
561) 으뜸가는 선을 건설함은 서울에서 시작된다. 출전 儒林傳.
고 귀의함으로서 범위 밖으로 횡주(橫走)할 염려가 없으며, 충효 순량한 백성이 되어 풍교덕화에 비익(裨益)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전 : 「意見書 儒林指導二關スル件」, '經學院雜書類綴' 1915~1921년, 145~147쪽>
(3) 경학원 강사 채용의 건
제1안
1920년 7월 14일 시행
총독 앞
학무국장
신태악(申泰岳) 경학원 강사에 임명함.
앞의 자는 함경북도에서 경학원 강사 이학재(李鶴在)가 지난번 사망함에 따라 결원에 대하여 후임자를 인선 중, 앞에 적은 자가 해당 지사의 추천으로, 경학원 대제학도 이의가 없다하여 본문과 같이 발령하시도록 내신을 올립니다.
제2안
이하 각 안이 모두 제1안을 발령하는 데 시행이 필요합니다.
함경북도지사 앞
학무국장 친전(親展)
귀도 경학원 강사 보결로 이전에 추천한 신태악이 피명(被命)됨에 대해서 별지와 같이 사령서를 보내오니 전달하도록 바랍니다.
제3안
경학원 대제학 대리 앞
학무국장 친전
함경북도 경학원 강사 결원에 대하여 미리 내신을 한바 신태악을 7월 24일자 피명하였사오니 또 해당 사령서는 편의상 해당 도지사에게 송부하였으니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1920년 7월 12일
학무국장 앞
경학원 대제학 대리
강사 후보자에 관한 건
이달 7일 학비(學秘) 제81호로써 내의(內議)가 되었습니다. 표제의 건은 본원에서도 이의가 없으므로채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건에 대해서 회답합니다.
1920년 7월 5일
경학원대제학 대리 앞
학무국장 친전
경학원 강사 후보자에 관한 건
함경북도 귀원 강사 결원에 대하여 적임자를 추천하도록 함경북도지사에게 내첩(內牒)한 바, 별지 이력서의 인물 신태악을 적임으로 인정하는 내용으로써 추천이 된 데 대하여 이의가 없으므로 채용수속을 해도 되겠습니다. 회답서 사본을 함께 첨부하며 일단은 내의가 되었습니다.
<별지> 비(秘) 제417호 함북지사 회답 전문 및 이력서를 첨부하여 발송이 필요함.
비(秘) 제417호
1920년 6월 30일
조선총독 앞
함경북도 지사
함북 강사 추천의 건
금년 3월 30일자로 학비(學秘) 제81호의 내첩에 관한 표제의 건은 별첨의 이력의 자가 적임이라고 생각되어 전의(詮議)해 주시기 바라며, 본인의 거주지 경찰서장에게 신원조서를 첨부하였사오니 추천을 바랍니다.
길경(吉警) 비 제1915호
1920년 6월 13일
길주 군수 앞
길주경찰서장
신원조서에 관한 건
동해면(東海面) 석성동(石城洞)신태악(申泰岳)
앞의 자에 대하여 신원을 조사한 바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1. 성행(性行)
성질이 온후하고 독실하며 소행이 양호함.
2. 학식
한국시대에 9품의 진사로 서(敍)한 자로 한학에 뛰어 남.
3. 자산
논 9천평 기타를 합해서 시가총액 1만 2천여 엔을 가짐.
4. 세평(世評)과 신용정도
주변의 신용이 두텁고 현재 도 참사의 지위에 있으나 웅변가로서 정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고 일부 사람들이 다소 비난을 해도 일반백성의 신용이 조금 두터운 편이다.
5. 가정상황
가족이 8명이 있으며 원만하나, 장남 경균(景均, 당 28세)은 사상이 약간 과격해서 때로는 배일적인 언동을 할 우려가 있으며, 때문에 친부 태악과는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음.
6. 건강상태
강건한 편임.
7. 참고사항
본인은 도 참사를 사직할 의사를 가지며, 나이가 많기 때문에 모든 사업에 관여할 욕심이 없다는평이 있음.
(이상)
1920년 3월 30일
함경북도지사 앞
학무국장 친전
함북 강사 추천의 건
귀도 경학원 강사 이학재가 지난번에 사망함에 관하여 이의 후임으로 귀도 유림 중 학식과 덕망을 가지며 세태를 잘 이해하고 봄가을 두 차례의 본원 문묘석전에도 참가하고 또한 가끔 도내를 순강(巡講)하는 등 충분히 그 직책을 다 할 수 있는 자로서, 언제 임명될지 모르므로 자진해서 취직할 예정이없는 자를 물색해서 이력서 및 신원조서를 첨부하여 적임자를 추천해 주시기 바람.
<출전 : 「經學院講士採用ノ件」, '經學院書類綴', 1920년 7월 14일 시행, 471~478쪽>
2) 경회루에서 미나미 총독의 초대연
1939년 10월 15일 오후 3시 미나미 총독은 조선유림대회(朝鮮儒林大會)에 출석하기 위하여 각 도로부터 참가한 각 부, 군 유림 대표자들과 관계자 약 3백 명을 경회루에 초대하고, 주객이 화기애애한 가운데 즐거움을 다 하고 동 4시에 해산했다.
경회루 초대연에서의 총독 인사 요지
하늘 높고 기운이 맑은 좋은 계절을 맞이하여, 오늘 여기에 대제학 각하 주재 아래 경학원 여러분들과 조야의 여러 빈객이 많이 참가하셔서 엄숙한 가운데 성대하게 석전(釋奠)562)의 의식을 마친 것은 함께 기뻐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특히 내일 유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전 조선에서 모이신 유림대표자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경건한 태도로써 오늘의 성전에 참가하신 것은 한층 의의가 깊었다고 믿는 바입니다.
제가 석전에 참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유도(儒道) 발상지인 지나(支那)563)에서 그 도가 쇠퇴한지 오래이며, 또 사변564) 발생 이래 그곳의 민중은 도의를 망각하고 장(蔣)정권565)의 잘못된 정책 아래에서 가는 곳 마다 문묘(文廟)를 파괴하고, 또는 이것을 모멸하여, 또 민중은 그 생활의 안정을 잃고 인심이 황폐하는 것이 심한데 반하여, 오로지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반석과 같이 나라 기초위에 공맹(孔孟)의 도를 더욱 더 왕성하게 하며, 석전도 역시 이 사변 아래에서 봄가을로 변질함이 없이 서로 영위할수 있는 것은, 이것 또한 굉대(宏大)무변(無邊)한 대 능위(稜威)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성대(聖代)의 여택(餘澤)에 참으로 감격됨이 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격을 느낄 때마다, 더욱 더 분기해서 이륜(彛倫)566)도덕의 실천궁행을 중히 여기는 유도의 본의를 천명(闡明)하고, 이것을 일본의 국체에 맞게 진흥시킴으로서, 천은(天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이 이번 석전을 기회로 내일 유림대회를 개최하고,
562) 문묘(文廟)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게 행하는 제례.
563) 중국을 뜻함.
564) 1937년 자신들이 도발한 중일전쟁을 일본은 지나사변(支那事變)이라 명명했음.
565) 장개석(蔣介石)의 국민당 정권을 뜻함.
566)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지켜야 할 도리.
이상과 같은 취지에 따르도록 각각 실행방법을 협의하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제가 마음에 품고 있던바로서, 깊이 대회의 성공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시국 관계로 여러분의 노고를 위로할 각별한 준비도 하지 못했으나, 전 조선의 사도(斯道)567)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을 기회로, 서로 의사소통을 꾀하며, 충분히 환담을 교환할 것을 바라마지 않는바입니다.
1939년 10월 15일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
경회루 총독초대연에서 대제학 답사요지
오늘 경학원 추계 석전제를 거행하였던 바, 총독 각하께서는 정무가 매우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임석하시는 영광을 주시며, 또 이 자리에 우리 관계자 및 전 조선 유림대표를 이러한 성연에 초대 해 주시고 간절한 훈시까지 주신데 대하여, 일동은 오로지 감격할 수밖에 없었으며, 충심으로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되돌아보면, 우리 경학원은 올봄 일부 개혁을 단행하고 종래에는 자칫하면 침체할 경향이 있었던 분위기를 새롭게 하며 유학을 통한 황도정신(皇道精神)의 발양에 더 한 층의 박차를 가해 왔던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더 한 걸음을 나아가, 오늘의 석전제를 계기로 전선유림대회(全鮮儒林大會)를 경학원 주최로 이곳에서 개최하고, 비상시국하의 일반 유림의 각성과 분기(奮起)를 촉구하고자 기도한 바, 이전부터 이를 위하여 깊은 관심을 모아 왔던 총독 각하께서는 재빨리 승인해 주시고, 나아가서 여러 가지 이러한 것이 실현되도록 적극적으로 원조를 해 주시며, 그 덕분에 우리들의 다년간의 숙망이었던 유림대회도 드디어 내일 개최하기로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야 시국의 추이와 함께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도의 진흥은 우리가 당연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으로, 이러한 목적달성에 더 한 층 지도와 편달을 해 주시도록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매우 서투른 말씀입니다만, 일동을 대표하여 한 마디 말씀드리며 감사의 말씀으로 하겠습니다.
또 끝으로 잔을 들어서 각하의 건강을 축하하겠습니다.
1939년 10월 15일
경학원 대제학 자작 윤덕영(尹德榮)
<출전 : 「慶會樓ニ於ケル南總督ノ招宴」, '經學院雜誌' 제45호, 1940년 12월 25일, 1~19쪽>
567) 유도(儒道) 관계자.
3) 미나미 지로(南次郞), 명륜전문학교 기사
본 경학원에 부설된 명륜전문학원은 1930년 4월 창설된 명륜학원을 그 전신으로 하는 것으로서, 그동안 12성상을 거쳐 이미 졸업생도 160여 명을 세상에 내보냈으나 금년 3월 31일자로 다음과 같은 부령(府令)으로서 발전적인 해소를 이루며 4월 1일자로 새로이 재단법인 명륜전문학교로서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원래 당국의 여러 사람이 진력한 선물이나, 한편 또 학무당국의 특히 사회교육과의 열렬한 원조와 간곡한 지도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여기에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이 승격한 명륜 전문학교는 향교재산으로부터의 기부행위에 의해서 재단법인을 조직하고 확고한 기초 위에 경영하기로 되었음으로, 혁혁한 전과(戰果)와 함께 공영권의 건설도 특히 제2단계의 공작에 들어가고자 하는 대동아 경륜의 현 시점에서 황도유학의 진흥에 더 한 층의 박차를 가하며, 동아 여러 나라의 정신문화의 교류에 공헌하게 된 것은 참으로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반도 문화교육계를 위해서도 참으로 경하해 마지않는 바이다.
조선총독부령 제106호
명륜전문학원규정은 1942년 3월 31일 한으로 이를 폐지한다.
1942년 3월 31일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
<출전 : 南次郞, 「明倫專門學校記事」, '經學院雜誌' 제47호, 1943년 1월 25일, 52쪽>
4) 박상준, 회장 훈사(訓辭) 요지
이번 춘계 석전을 거행함에 있어서, 경학원 박사 및 명륜전문학원 평의원 여러분의 참가를 얻으며,또 이것을 기회로 향후 3일간 본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시국극복 및 유도진흥에 관해서 각 대가의 강연을 들어 봄과 동시에, 또한 여러분의 격의 없는 의견발표에 의해서 신체제에 맞는 황도유학의 진수를 천명하고, 이것이 진흥을 북돋우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학덕(學德)이 모두 높고, 각각 지방에서 명망가로서 종래에도 그 도(道)를 위하여 적지 않게 진췌(盡悴)를 해 오신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바이나, 이번 강사 및 평의원으로서 취임하게 되어, 직접 원조를 바라게 되어서 몹시 마음 든든하게 느끼는 것과 동시에 동경 해 마지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유도는 동양도덕의 근원으로서, 인류로서는 하루도 떠날 수 없는 길인 것입니다.
충효인의를 뜻하고, 이륜(彛倫)도덕에 무게를 두는 것은 천고에 닳지 않는 법칙일 뿐만 아니라,특히 현재의 중대 시국에 비추어, 곧바로 동양인이 동양답게 하며, 동아의 영원한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서양사상의 물질주의, 이기주의를 청산하고 동양고유의 정신도덕에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안으로는 충효도의를 고취하고 국민정신을 도야하며, 밖으로 향해서는 동양 민족 공통의 도념(道念)568)을 배양하고, 장차 동아공영권을 위하여 정신적인 연계를 하고자 할 때는 유도의 정신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식자들과 함께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재작년 이래 경성에서는 조선유도연합회를 조직하고, 각 도에서는 도연합회, 각 부군도(島)에서는 각각 유도회를 설치하고 관민협력 아래에 유도의 진흥을 도모 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경학원 및 명륜전문학원 규정 일부개정에 따라서 양원의 인사쇄신을 단행하고, 새롭게 여러분을 마지하게 된 것도 이상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도진흥의 방법으로서는 먼저 과거의 폐습을 혁신하고, 유도 본래의 정신에 되돌아 가야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나,
특히 황도정신에 따르는 새로운 유도로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특히 주의를 요하는 일로서, 바꾸어 말하면 지나식 혹은 폐습이 따랐던 조선 재래의 유도 그대로로서는 안 되는 것이며, 반듯이 황도로 순화시켜서, 시대에 알맞은 유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민총력운동의 일익으로서도, 유도의 독특한 사면을 발휘하여 문교보국의 열매를 거두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상과 같은 점을 잘 해량하신 후, 연일 피로하시리라 생각하나, 시국의 중대성을 감안하여사명이 가볍지 않음을 생각하시어, 한 층 본회를 의의가 있도록 하시고, 또한 다른 날 선전과 지도를맡을 경우의 참고자료로 도움이 될 것을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약간 소감의 일단을 말하면서 훈사를 대신합니다.
1941년 4월 16일
조선유도연합회장 朴澤相駿
합의사항
1. 지방에서의 강연회 개최에 관한 건
2. 향교재산에 관한 건
3. 명륜전문학원 개혁에 관한 건
4. 독행자(篤行者) 표창에 관한 건
5. 황도유학의 확립에 관한 건
6. 기타 필요한 사항
예를 들면, 매일 아침 궁성요배와 정오묵념 등의 솔선 여행에 관한 건
각 군도의 향교를 개방하여 국어보급 및 계몽교육의 실시에 관한 건
국사, 국체(國體), 일본의 선현지사의 언행 기타 적당한 문헌의 권장 도서목록의 조사발표에 관한 건
순회문고의 시설에 관한 건
각 군도의 향교를 일제히 황도유학의 확립의 합의 협의회를 개최할 건 등
<출전 : 朴澤相駿, 「會長訓辭要旨」, '經學院雜誌' 제46호, 1941년 12월 25일, 69~71쪽>
568) 도덕관념.
5) 마자키 나가토시(眞崎長年) 학무국장 인사 요지
오늘 이 자리에서 경학원 및 명륜전문학원 관계자 여러분들과 서로 만나서, 신체제에 맞는 황도유학의 진수를 천명함으로써 향당(鄕黨)을 이끌어서 대중을 지도해야 할 구체적인 여러 방책을 연찬하고토의연구하며 제일선 지도를 발족하게 된 것은 참으로 시의에 맞추어서 우리나라를 위하여 경축해 마지않는 바이다.
생각하건대 현재 시국의 추이와 국제정세의 변천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며, 지금 갑자기 결말을 예견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으며, 이러한 최고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거국적으로 총력을 가다듬어 고도국방국가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때에, 반도유림의 선배로서 전선의 대표인 여러분이 우리 존엄한 국체의 진의(眞意)에 철저를 기하여, 수백만의 유림에 대한 추진력으로서 팔굉(八紘)일우(一宇)의 성스러운 이상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공헌하도록 분기하고 있으나, 이것은 대학도(大學道)가 명시한 명덕(明德)지선(至善)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 반도의 황도 유학확립을 위해서도 기쁜 일인 것입니다.
원래 유학은 옛날부터 동양에서 도덕의 근원으로서, 이륜(彛倫)풍교에 공헌하는 것은 물론, 경세치국의 인사를 배출 해 온 것은 췌언의 필요가 없으나, 시운의 추이는 이제야 바로 일본정신에 의해서 섭취되고 소화되어, 황도 아래에 통합된 황도유학의 확립을 요청 받아야 할 절실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즉 유학은 그 발상지인 지나에서는 그 정신을 잃은 지 오래 되었으며, 정치와 민생이 모두 패도(覇道), 이기(利己)를 최촉하고 있는데 반하여, 오로지 일본에서는 독자적인 발달을 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반도에서는 종래의 지나유학을 직역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일소하고, 황도정신에 따른 일본적인 유학정신을 새롭게 진흥함으로써 현재의 국가적인 요청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효를 설명하는 데는 충으로써 도덕의 중심으로 삼고, 군국(君國)에 한 몸 한 집을 바쳐야 할 신도(臣道)의 기초를 배양함과 동시에, 한 편 황국일본의 역사, 일본에서의 선현, 지사(志士)의 언행에 관한 문헌을 섭렵하여 연구해서 그 사상과 정신을 섭취하는 것이 극히 또한 긴요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상과 같은 취지와 정신을 터득하여 황도정신에 따르는 충효인의(仁義)의 가르침을 간에 삭여서, 실천궁행하여 민중을 이끌 각오와 신념을 새롭게 함으로써 또 여러 강사가 설명하는 것을 경청하여 잘 씹어서 국민총력운동의 추진력으로서 전폭적인 활동을 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새삼스럽게 정려하실 것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소감을 말하면서 인사로 하겠습니다.
1941년 4월 16일
학무국장 마자키 마가토시(眞崎長年)
<출전 : 眞崎長年, 「學務局長挨拶要地」, '經學院雜誌' 제46호, 1941년 12월 25일, 68~72쪽>
6) 지방시국강연회 개최 요강
1. 목적
본 강연회는 일반대중에 대하여 국체관념을 명징(明徵)하고 황도유학의 확립에 기여함과 동시에시국인식을 철저하게 함으로써 국민총력운동의 진전에 공헌이 있게 함으로써 그 목적으로 삼는다.
2. 기간
5월 초순부터 약 1개월간
3. 개최지
각 도내 군부(郡部)의 필요한 지역
4. 주최
도 유도연합회
5. 강사
각 도의 경학원 강사 및 명륜전문학원의 평의원을 하여금 이달 16, 17일 양일간 경학원에서 개최하는 강연타협회에 참가한 자 중에서 도 유도연합회장이 이것을 선발하는 자로 한다.
6. 경비
(1) 강사수당
거마비와 숙박료를 합쳐 1일 10엔 평균으로 하고 그 반액은 조선유도연합회로부터 해당 도연합회에 보조하기로 한다.
(2) 회의장설비 및 기타 잡비
개최지의 군 유도회가 지불한다.
7. 강연회를 마친 뒤의 조치
강연회를 마친 뒤는 그 상황을 상세하게 구신하여 조선유도연합회장 및 조선총독부학무국장에게보고하기로 한다.
이상
<출전 : 「地方時局講演會開催要項」, '經學院雜誌' 제46호, 1941년 12월 25일, 71쪽>
7) 하야시 시게키(林茂樹), 우리의 진군보
조선유도연합회 부회장 하야시 시게키(林茂樹)
전쟁의 양상은 발전하여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지나사변569)이 발전하여 대동아전쟁이 되고,황군장병은 뭍으로 바다로 하늘로, 몹쓸 곳에서 웅대한 작전 아래에, 용전분투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
569) 중일전쟁을 말함.
고, 세계 모든 인류로 하여금 오로지 경이의 눈으로써 지켜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령지역은 일본제국영토의 17, 18배에도 이르며, 그 지역 내의 인구는 10억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영(米英)은 그들이 축적하고 있는 부와 풍부한 자원에 의하여 장기전의 태세를 취하며, 지금은 패전에 허덕이고 있으나, 몇 년 후에는 반드시 승리를 거둔다고 하는 신념 아래에 꾸준히 전비(戰備)를 정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쪽도 서전(緖戰)의 승리에 취하는 일이 없이, 이러한 때에 충분한 각오를 하면서 1억 국민이 참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국가의 총력을 통틀어서 필승의 신념으로써 이것을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 첫째는 이번 전쟁은 총력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번 전쟁이 소위 세계 신질서의 건설, 동아 피압박국가민족에게 각기 그 지역을 얻게 하는 전쟁이며, 그 지역의 광대한 점에서 그 관계국가와 민족이 많은 점에서 소위 세계전쟁이 되는 것으로, 다만 무기만의 전쟁이 아닌 것입니다.
적이나 아군도 그 전력(全力) 즉 총력을 통틀어 먹느냐 먹히느냐의 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력전외에도 경제전이 있으며 사상전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국가의 총력을 통틀어, 전선의 장병과 마찬가지로, 후방의 1억 국민들도 역시 모두 전쟁을 하고 있는 전사인 것입니다.
국가 전체를 통틀어누구 하나라도 전쟁을 하고 있지 않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 둘째는 이번 전쟁은 적 미영을 철저하게 격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지나사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황군570)은 연전연승 지나의 태반을 점령하고, 중경(重京)571) 정권이 날이 갈수록 고성낙일(孤城落日)의 상태가 되어 가면서도 아직도 항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 배후에 미영의 세계제패의 야망에 의한 후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나사변 때는 그 배후세력을 격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어찌할 것인가 미영과는 아직 전쟁을 열어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恨)을 참고 자중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8일, 미영에 대해서 대조(大詔)572)가 환발(渙發)되어서, 적의 모습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과 동시에 세계 인류평화를 위하여 신질서를 건설하고, 동아(東亞) 교란의 화근을 베어 없애며,동아 피압박의 나라와 민족을 하여금 각기 그 지역을 얻게 한다는 전쟁목적도 명료하게 되었으며, 황군장병은 가는 곳마다에 빛나는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반대로 미영이 항상 입에 담고 있는 인도주의와 자유평등의 사상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입에 인도주의를 주창하면서 약소국가와 민족을 압박하고, 자신들의 포식(飽食)과 난의(煖衣)의 의욕을 채우는 방종한 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나라 민족을 노예시하고 착취를 한 없이 하며, 자신의 야망달성에 급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입으로 주창하는 인도라는 말 자체가 울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인도를 말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말하는 바의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유평등하다고 하는, 소위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은 이것 또한 크게 잘못된 사상인 것입니다. 어쩌면 군신(君臣)의 의(義), 부자(父子)의 정, 장유(長幼)의 서(序)라고 하는 것은 결코 태어나면서 평등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구한 건국의 시초부터 군신의 몫과, 군신의 의(義)가 명확하게 되어, 일군만민(一君萬民)의 신념 아래에 국가
570) 일본군을 뜻함.
571)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 정부.
572) 일왕 쇼와의 선전포고.
는 오랫동안 번영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부자(父子) 간에도 이것이 평등 했다면 자식은 부모를 가볍게 여겨서 부끄러운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었다가는 인륜(人倫)이 쓸모없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장유(長幼)의 서(序)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어린 자가 장자(長者)를 존경하는 생각이 없어지며, 모두가 평등하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생활은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그들은 말할 자격이 없으며, 또 그들의 사상을 박멸하지 않으면 베개를 높이 한 채573)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아공영권의 성립도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이 전쟁에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미영주의를 격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셋째는 이번 전쟁은 장기에 걸친다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 말해 온 바를보아서도 이번 전쟁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그 성질에 있어서, 그 목적에 있어서 또 적 미영은 다년간
축적해 온 부(富)와 그 풍부한 자원을 보아서도, 반드시 장기전이 될 것은 명확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최근의 신문에 의하면, 미영은 장기전 체제를 착착 정비하여 몇 년 후에는 반드시 일본에 이긴다고 방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또한 그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1억 국민이 굳은 단결을 하고 필승의 신념으로써 장기전에 대비해서, 국가총력을 통틀어 무력전은 물론, 경제전·사상전에서도 최후까지 이겨서 이기고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일반국민에게 달려 있게 되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과 같은 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임으로, 국민도 또 여간 각오와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방에서 지도자의 입장에서, 또 장로와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유림 여러분의 책무는 매우 중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또 징병제도실시가 발표된 오늘날은 이 이상으로 그 방면의 책무도 가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을 낱낱이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황도유학의 정신을 이해함으로서 대중을 이끌 것. 지나에서 시작한 유교는 일본에 건너와서 일본은 이것을 일본정신에 의하여 일본화하고 황도유학이라고 해서, 본 집인 지나에 있는 것보다 더욱한층 훌륭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황도유학에 관해서는 대제학 각하를 비롯하여 유도연합회의 여러분께서 충분히 문서라거나 강연에 설명되고 있으니 저는 여기에서 그 설명을 생략하지만, 반도의 유학도 모두 이 황도유학에 의해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이 방면의선각자임으로, 그 진수를 궁극까지 추궁하며 빠짐없이 가도(街道)에 진출하여 황도유학의 정신에 의해서 용감하게 일반대중을 지도하며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시국의 정당한 인식을 깊이 함으로써 직역봉공(職域奉公)의 실천을 할 것. 여러분은 향당에서 장로이며 명문출신으로, 향당의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현재의 시국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얼마나 중대한 시기인가를 잘 알고서, 각자의 직무를 관장하는데 있어서 봉공을 하고, 일반의 사표(師表)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징병제도실시의 뜻을 상세하게 밝히고, 황국신민의 연성에 노력할 것. 징병제도의 실시 시기가 가까웠음으로, 반도 민중은 참다운 황국신민이 되는 연성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 연성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좀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반도 민중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이 연성에 정진해서, 하루
573) 고침안면(高枕安眠)의 줄임말. 베개를 높이 한 채 편안히 잔다는 뜻으로 근심이 없는 생활을 말함.
라도 빨리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의 지도와 아울러 일반 민중으로부터 북돋워지는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림 여러분은 이 북돋워지는 민중 힘의 선구자, 인솔자가 되어 관 방침에 따라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지방에 따라서 다르게 되겠지요, 보편적으로 말씀드려서 국어보급 등은 그것의 하나가 됩니다. 총독부에서도 국어보급에는 대단히 무게를 두어서, 모든 경우에 이것을 장려하고 있음으로, 여러분은 지방에서 그곳의 관의 장려의 주지(主旨)에 따르는 국어보급에 충분한 협력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의무라고 믿습니다.
국어가 불충분해서는 황국신민이 되는 첫째 요소가 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국어를 수득해야 할 것은 물론,
지방의 국어전해운동(國語全解運動)에 협력해야 하는 것은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유림여러분의 진군보(進軍譜)가 시국하에 울려 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책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1942년 10월 15일, 경학원 명륜당에서
<출전 : 林茂樹, 「吾人の進軍譜」, '經學院雜誌' 제47호, 1943년 1월 25일, 19~23쪽>
8) 스즈카와(鈴川壽男), 시국과 유도(10월 15일 경학원 추계석전에서)
지금 우리들은 미영(米英)을 격멸하고자 나라를 통틀어 결전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은 말하자면 흥아유신(興亞維新)의 때입니다. 아시아를 일으키는 유신인 것입니다. 10억의 아시아 사람들을 미영의 질곡(桎梏)에서 해방시켜서 아시아인의 아시아를 세우는 그 흥아유신의 결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흥아유신을 위하여 대동아전쟁은 위로는 천황의 능위(稜威) 아래,반드시 빛나는 유종(有終)의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것은 우리들 1억 국민의 국민적인 큰 신념인 것입니다.
흥아유신의 완성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 국민의 확고부동한 심경인 것입니다.
이러한 흥아유신의 한가운데서 우리들이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90년 전의 옛날 우리들의 조상이 성취한 메이지유신의 굉업(宏業)인 것입니다.
또 이 메이지유신을 거슬러 올라가 5백 년 전에 성취한 역사상의 커다란 사적(事蹟)은 켄무(建武)의 중흥(中興)으로서, 모두 이것은 왕정복고(王政復古)의 유신인 것입니다.
우리 국체는 천황 스스로가 정사(政事)를 봄으로써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조국(肇國)이상을 현현(顯現)하는데 있지만, 요리토모(賴朝)의 카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를 창시(創始)한 이래 켄무중흥까지는, 천하의 정치는 무문(武門)의 손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또 메이지유신 이전에도 도쿠가와바쿠후(德川幕府)가 정권을 전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카마쿠라바쿠후와 토쿠가와바쿠후를 넘어트려 천황이 친정(親政)을 하는 세상을 만든 것이 켄무중흥이며 메이지유신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흥아유신은 또다시 조국(肇國)의 이상에 따라서 아시아 민생을 위하여 새로운 아시아를 건설한다고 하는 황국의 대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대 유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켄무중흥이나 메이지유신이 어떻게 해서 성취되었나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켄무중흥은 위로 고다이고(後醍醐)천황을 받들고, 또 메이지유신은 코오메이(孝明)천황과 메이지천황을 받들며, 그 성덕 아래에서 비로소 성취된 것은 참으로 황송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명하신 성천자(聖天子)를 받들어 모시고, 그 아래에 천황을 잘 보필하여 받든 지성진충(至誠盡忠)의 영철(英哲)·지사(志士)들이 곳곳에 산과 같이 우뚝 솟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하여 그들의 켄무(建武)중흥이나 메이지유신에서 많은 영철, 지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들의 진충보국의 대 정신을 양성했느냐 하는 것으로, 즉 자세하게 생각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정말 유교의 교학에 의해서 그들 정신을 도야하고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켄무중흥에 관해서 생각하면, 고다이고(後醍醐)천황의 측근에서 천황의 수족이 되어 대업을 도와 드린 사람, 키타바타케 치카후사(北畠親房), 후지와라 후지후사(藤原藤房), 후지와라 토시모토(藤原俊基), 후지와라 스케토모(藤原資朝), 카잔인 모로카타(花山院師賢), 이러한 사람들은 누구에 의하여 어떤 길을 배웠느냐 하면 그것은 즉 송학(宋學)인 것입니다. 당시의 쿄토에 사련(師練)이라는 승려가 있었으며 그의 문하에 현혜(玄惠)라는 선승(禪僧)이 있었으며 이 사람은 유교를 잘 터득하고 있었는데,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숙독(熟讀)하고, 사서오경(四書五經)에 관해서는 정주학(程朱學)을 연구했습니다.
쿄토의 쿠게(公卿)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이 승려 현혜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대의명분, 충효절의(節義)를 닦은 것입니다.
또 켄무중흥 때 대 충신으로서 황국신도의 귀감이 된 쿠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 공도 깊이 송학에 조예를 가졌다는 것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큐슈(九州)에서 다이낭코오(大楠公)와 함께 그의 일족을 떨쳐서 충의의 길에 순직한 키쿠치(菊地) 씨와 같은이도 유학의 진흥에 크게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가서 메이지유신에 관해서 본다면, 메이지유신 직전에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초야에서 궐기한 지사(志士)들이,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대의(大義)를 높이 부르며, 몸을 바치며 한 세상의 선구가 된 것입니다.
이 초야의 사이에서 궐기한 지사들은, 또 남김없이 유교의 정신에 의해서, 그 일본정신을 도야하고 연마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지방마다 번학(藩學)과 사숙(私塾)이 있었으며, 이러한 공사의 학교,숙사(塾舍)에서는 여지없이 유교를 중심으로 학문을 수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왕과 애국의 열정에
불타는 대 유학자 아사미 케이사이(淺見綗齊), 그는 항상 “적심보국(赤心報國)”이라는 4자를 새긴 4척(尺)의 긴 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이 케이사이(綗齊)가 지은 서책에는 '정헌유언(靖獻遺言)'이 있습니다. 그는 조선의 이율곡 선생의 저서도 애독하고 있어서, 선생의 저서 '성학집요(聖學輯要)' 속의 한 절을 이 정헌유언의 강의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헌유언은 지나574)의 현철(賢哲) 즉 백이숙재나 제갈공명 등 여덟 사람의 사적(事績)문장 등을 집록(輯錄)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번 박택(朴澤)575) 대제학으로부터 들은 것이지만, 대제학은 어릴 때에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애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출사표」 같은 것은 그 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헌유언'은 메이지유신 때 지사의 정신을 앙양하는데 대단히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처는 병상에 누워
있고 아이는 굶주림에 울고, 몸을 받쳐서 곧장 융이(戎夷)를 내쫓고자 하는 오늘 아침에 사별과 생이별
574) 중국을 뜻함.
575) 박상준(朴相駿)의 창씨명.
을 겸하여, 오직 황천(皇天)후토(后土)576)가 알 뿐이다.”라고 하는 유명한 시의 주인공, 안세이노 타이고쿠(安政の大獄)에서 옥사한 우메다 운핀(梅田雲濱), 이 우메다 운핀을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평하기를 “정헌유언으로 말미암은 사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시기에 바후쿠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하시모토 사나이(橋本左內)는 26세의 약관(弱冠)으로 메이지유신의 한 쪽의 중심인물이 되고 있으나, 어떠한 때에도 정헌유언을 좌우(座右)에서 놓치지 않았습니다.
또 조선과 연고가 깊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공들의 선생이었던 요시다 쇼인, 그는 “몸은 비록 무사시(武藏)의 들녘에서 썩을지라도,멈추지 않게 할 것이야 일본 혼”이라는 노래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쇼인도 정헌유언을 스스로 숙독함과 동시에 항상 제자에게 추천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정헌유언이라는 책은, 메이지유신의 지사에게는 커다란 정신의 양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서책이 유교의 근본정신을 체득하고 실천한 사람들의 사적(事績)과 문장을 수록한 것이라는 한 가지 일만 보아도, 메이지유신의 지사정신과 유교와의 관련을 충분히 엿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켄무의 중흥, 메이지유신의 커다란 힘이 된 사람들은 모두 유교정신에 의해서 순수하고무난한 일본정신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즉 이러한 사람들이 황국신민으로서의 길을 닦아 나가는데 도움이 된 유교라고하는 것은 남김없이 우리가 본래의 일본정신이라고 하는 속으로 녹아 들어가서,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유교를 통째로 삼킨 것은 아닙니다.
또 유교의 형체에 사로잡힌 것은아닙니다.
툭하면 유교라고 말하면 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통째로 삼키는 의례(儀禮) 3백, 위의(威儀)3천 등 형식에 사로 잡혀서 그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잘 반성하지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중심인 것입니다. 요시다 쇼인의 선생에 해당하는 사람에 무라타 키요카제(村田淸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대학자인 동시에 대정치가이기도 한데, 특히 유교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무라타 키요카제의 말에 “모든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돌부처를 거친 새끼로 묶은 것 같아서는 안 된다. 즉 융통성이 없고 구애 받는 학문은 그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스로 올바르다고 믿었을 때는 공자, 맹자에 대해서도 철권(鐵拳)을 휘두르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맹의 가르침을 일본정신으로 이해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함으로서 비로소 유교가 진짜 일본 황국의 대 이상을 구현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교의 근본정신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자의 유교를 일본정신으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자의 유교(遺敎)를 일본정신으로 활발한 출발지답게 해야 할 것입니다.
육상산(陸象山)도말했습니다. “학문이 진실로 근본을 안다면 육경(六經)은 모두 나의 주석이다.”라고.
먼저 유교근본을 확인함으로써 우리 일본정신으로, 사서오경도 이것을 우리의 피와 살이 되도록 나아가지 않으면 정말
공맹의 가르침을 체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옛날 도쿠가와(德川)의 중기 시대에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齊)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 문인을 향하여 “가령 공자를 대장으로 삼고 맹자를 부장(副將)으로 삼고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어보았더니, 문인 중에 어느 한 사람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안사이는 “자기는 한쪽
576) 토지의 신. 나라의 신.
의 대장이 되어 곧바로 공맹의 군사를 무찌르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켄무의 중흥이라거나 메이지유신이며, 그들의 존왕(尊王)의 대 정신을 배양한 유교의 힘을 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즉 대동아전쟁을 이겨내고 흥아(興亞)의 유신을 완성하지 안 되는 때인 것입니다.
켄무 중흥에서, 메이지유신에서 국민정신의 커다란 배양력이 된 유교, 유도(儒道), 유학(儒學)이라는 것은, 흥아유신을 완성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국민정신의 진작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유교에 깊이 조예를 가진 분들입니다. 그리고 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 여러분은 이러한 도에 지금 정진하고 있으나, 열심히 연찬을 거듭하여 여러분이 배우는 유도로써 흥아유신 완수의 하나의 커다란 힘이 되도록 노력하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연탄두(硝煙彈頭) 속에서도 항상 독서와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특히 유(儒)로써 그 뜻으로 삼는 것으로, 항상 경서(經書)에 친하며, 여러분의 정신의 연마와 도야를 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왕양명(王陽明)은 영왕(寧王)이 반란을 할 즈음에 남창성(南昌城)에서 강학(講學)에 정진(精進)하고 있었습니다.
선봉(先鋒)이 불리하다는 소식이 왔을 때에 강의를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남김없이 실색을한 것이었으나, 왕양명은 태연하게 강의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뒤에 와서 양명의 군사가 대승을 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감연히 도찰원(都察院)에서 책을 속강(續講)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학문을 강의하며 도에 뜻을 둔 자는 이 정도의 금도(襟度)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카토 키요마사(加藤淸正)는 전진(戰陣) 속에 있으면서도 항상 한 권의 논어를 좌우(座右)에서 멀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중(陣中)에서는 병서(兵書)를 읽도록 해야 할 것이며, 경서를 읽는것은 이상하게 여겨집니다.”라고 말씀드린바, 키요마사는 “병서야 말로 태평할 때 미리 읽어 두어야 한다.
지금은 바로 전쟁 후의 일을 생각하고 치국평천하의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깊이음미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지금 흥아유신의 완성 도상에, 모처럼 독서와 수양을 하시도록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시국 하에서 극히 의의 깊은 이 석전제(釋奠祭)의 당일, 여러분 앞에서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을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정청에 감사드립니다. (문책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출전 : 鈴川壽男, 「時局と儒道」, '經學院雜誌' 제48호, 1944, 22~26쪽>
9) 시라카미(白神壽吉), 벚꽃과 일본정신(4월 15일 경학원 춘계석전에서)
명륜전문학교 부교장 시라카미(白神壽吉)
방금 소개받은 시라카미올시다. 오늘 석전577)에 즈음하여 이 자리에서 그 기념강연을 하게 된 것을
577) 문묘(文廟)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게 행하는 제례.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대동아전쟁의 한 가운데에 있으며, 시절은 바야흐로 벚꽃과 복숭아와 자두가 한꺼번에 피는 성춘(盛春), 저는 ‘벚꽃과 일본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가령 일본인의 본심이나 진심에 꼭 기맥(氣脈)에 들어맞는 것을 구한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먼저 ‘후지산’이 떠오릅니다. 후지산은 참으로 일본인의 본심이나 진심과 꼭 들어맞는 산입니다.
이것과 닮은 모양의 산은 다른데도 있으나 후지산처럼 영묘(靈妙)한 기분으로써 우리 국민정신을 지도하고 있는 영산(靈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어떤 나라에 살고 있어도 일본인은 항상 후지산의 액자나 족자를 걸어두고 그 모습을 우러러 봄으로써 자신은 일본인이라는 기분을새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되는 것은 ‘벚꽃’이며, 이것 또한 소위 나라 꽃으로서 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벚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깊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국민은 우선 달리 없을 것입니다.
산이면 후지, 꽃이라면 벚꽃, 이것이 일본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지는 일본사람이 살고 있는곳 어디에 가도 우러러 볼 수가 있다는 산이 아니며, 벚꽃도 또한 이것을 심는다고 해도 기후·풍토에 따라서 스스로 범위가 한정되는 것으로서, 일본인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벚꽃나무가 심어진다고는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일본인이 사는 곳, 기후·풍토여하에 불구하고 반드시 이것에 따라서 존재하고 왔으며 일본인이 아니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사’(神社)입니다.
우리는 내지(內地)578)에서는 방방곡곡 구석구석까지 반드시 신사를 만들고 신을 모시고 있으나, 해외에 이주하고 있거나 또는 여행하고 있거나 해서 가장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소위 해외신사인 것입니다.
일본인이 살고 있는 곳은 반드시 신사가 조영(造營)되고 있습니다. 대만에는 대만신사, 상해에는 상해신사, 대련에는 대련신사, 신경에는 신경신사, 우리 조선에는 조선신궁이 진좌(鎭座)하고 있으며, 모두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를 주신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신사에 참배할 때의 기분은 국내에서 참배할 때보다도 더 한층 몸도 마음도 바짝 조여지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신사는 국가의 종사(宗祀)로서, 신사야 말로 참으로 일본 만에 있으며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에는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만약에 일본인의 본심이나 일본인의 진심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말한다면, 신사를 건조하여 신을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는 우리나라의 조신(祖神) 중의 대 조신이며, 천조(天祖)인 것이며,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에 대한 숭경(崇敬)이 일본정신의 중핵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뜻은 소위 천양(天壤)무궁(無窮)의 신칙(神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天壤無窮神勅
豊葦原千五百秋之瑞穗國是吾子孫可王之地也○爾皇孫就而治焉行矣寶祚之隆當與天壤無窮者矣
578) 일본을 뜻함.
齊鏡齊穗神勅
吾兒視此寶鏡當猶視吾可與同床共殿以爲齊鏡以吾高天原所御齊庭之穗亦當御於吾兒
神籬磐境神勅
吾則起樹天津神籬及天津磐境當爲吾孫奉齊矣汝天兒屋命太王命宜持天津神籬降於葦原中國亦爲孫奉齊焉
그러한 신칙이 존재하는 것은 일본 만으로 다른 국가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신칙, 이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의 뜻이 우리나라답게 하는 기본이며, 우리 국체의 본의인 것입니다.
우리 황국사(皇國史)는 이러한 신칙을 목표로 하여, 만세일계(萬歲一系)의 황통을 절대 중축(中軸)으로 삼고 진전을 계속하고 있는 바로 그 기록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나라는 신의 나라 만들기에 착수하며, 외람되게도 신의 후예의 통치가 실시되고, 신이 보낸 길은 천양무궁한 것이며, 우리나라는 참으로 신주(神州)이며, 신국(神國)인 것입니다.
미토학파(水戶學派)의 후지타 토오코(藤田東湖) 선생은 이상과 같은 정신을 “天地正大氣”의 환발(渙發)이라고 보고, “正氣者. 道義之所積. 忠孝氣所發”이라고 말하며, 그의 정기가(正氣歌)에,
天地正大氣, 粹然鐘神州.
秀爲不二嶽, 魏魏聳千秋.
注爲大瀛水, 洋洋環八洲.
發爲萬朶櫻, 衆芳難與儒.
凝爲百鍊鐵, 銳利可斷鑿.
蓋臣皆熊罷, 武夫盡好仇.
神州執君臨, 萬古仰天皇.
皇風洽六合, 明德侔太陽. (하략)579)
토우코 선생은 不二嶽·萬朶櫻·百鍊鐵 등의 물건 가운데에 일본정신을 찾아냄과 동시에, “神州執君臨, 萬古仰天皇. 皇風洽六合, 明德侔太陽.”과 우리 국체의 본의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무엇보다도 신사가 가장 우리 일본인의 본심·진심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했으나,하지만 또 앞에 말씀드린 벚꽃도 이것을 잇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선생은 그의 노래에,
시키시마(敷島)580)의 야마토고코로(大和心)581)는 인간을 하여금 아침빛에 향내 나는 산 벚꽃인가.
579) 원문에 ‘하략’이라고 표기되어 있음.
580) 일본을 말함.
581) 일본인의 마음.
라고 영탄(詠歎)하고 있어서, 그 노래의 뜻은 우리 일본정신을 물건에 비유하면, 봄 새벽에 아침 햇빛을 받아서 완연히 피기 시작한 벚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벚꽃과 일본정신과의 기맥의 상통에 대해서,스기우라(杉浦重剛) 선생의 윤리 진강(進講) 초안의 한 절을 빌리기로 하겠습니다.
“무릇 벚꽃은 일본 특유의 명화(名花)로서 외국에는 이러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어디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와 같이 미관(美觀)을 보이는 일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외국인은 물론 벚꽃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지나인582)은 모란을 사랑하고, 서양인은 장미를 사랑하는 것을 풍습으로 하고 있다. 모란의 풍려(豐麗)하고 장미의 농염(濃艶)한 미는 미라고 할지라도, 그래도 우리 벚꽃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가 없을것이다. ……(중략)……583)
시험 삼아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볼 때에, 마치 구름처럼 높이 빼어나고 맑은 것은 우리 국민성이 순결해서 청백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 봄빛과 서로 어울려 화용(花容)이 스스로 온아(溫雅)한 것은 군자 같은 사람의 풍모를 보이며, 꽃에도 잎에도 생기가 충만해서 이슬마저도 쇠퇴하는 빛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원기가 완성해서 진취적인 기상을 나타내는 것 또한 국민정신과 흡사한 것이다.
특히 벚꽃의 낙화할 즈음에는 조금도 미련 없이, 깨끗이 흐트러져서 눈처럼 맑은 것은 다른 꽃에서는 많이 볼 수없는 바, 이것이 우리 국민이 하루아침에 군국의 대사에 즈음해서는 용감하게 직진하여 굳이 목숨을 돌보지 않는 것과 흡사한 것이다. 즉 말을 바꾸어 한다면 희생적인 정신의 발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노우에(井上文雄)가 노래에,
깨끗한 일본인의 마음으로서 다른 곳에서는 피지 않는 벚꽃인가 라고 읊었으며, 이렇게 보아 나간다면 옛날부터 우리 국민이 벚꽃을 사랑하는 깊이는 단순하게 이 아름다움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성과 잘 서로 일치하여, 또한 일본인을 잘 표장(表章)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하 생략)584)
참으로 벚꽃과 일본정신을 완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한 삽화(揷話)를 거듭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180여 년 전의 일입니다만, 내지에 마쓰오카(松岡恕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벚꽃의품종을 조사하여 상하 2권의 책 '벚꽃품종'이라는 서책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야생의 ‘산 벚꽃’으로부터, 사람마을에 심은 ‘동네 벚꽃’, 이른 봄 춘분 경에 피는 ‘춘분 벚꽃’ 등 모두 72품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내지·조선·만주·지나 등에서 소위 반다노 사쿠라(萬朶の櫻)라고 실지로 음미되고있는 ‘요시노자쿠라’(吉野櫻) 일명 ‘소메이 요시노자쿠라’(染井吉野櫻)가 기재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메이지(明治)시대가 되면서 식물학자 사이에 주의를 끌게 되어서 여러 가지를 탐색한 결과, 이름의 요시노는 벚꽃의 명소인 요시노산(吉野山), 소메이 요시노(染井吉野)의 소메이는 에도(江戶)
582) 중국인을 뜻함.
583) 원문에 ‘중략’이라고 표기되어 있음.
584) 원문에 ‘이하 생략’이라 표기되어 있음.
소메이의 식물판매가에서 원목의 묘목이 팔리게 된 것에 기인하게 된 것만큼은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산지에 대해서는 다만 소메이의 늙은이들의 구전(口傳)에 어딘가의 섬으로부터 왔다, 혹시이즈(伊豆)의 오오시마(大島)일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 핫토리(服部)박사의 이즈 오오시마의 식물조사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판명되고, 이어서 메이지 말, 다이쇼(大正) 초경이 되어 조선총독부로부터 반도의 식물조사를 위촉 받은 나카이(中井) 박사가 제주도의 식물조사를 할 때 우연히도 요시노자쿠라의 야생종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즈의 오오시마가 아니고, 섬은 섬이지만 반도585)의 제주도였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며, 또 연고가 깊은 것입니다.
이렇게 반도의 벚꽃이 내지로 건너가서 ‘發爲萬朶櫻. 衆芳難與儔’라고 상찬하며, 또 “꽃은 사쿠라 나무, 사람은 무사”라고 일본정신의 상징이 완전히 되어 전국의 봄을 장식하며, 또다시 조선의 고향에 돌아와서 반도의 벚꽃이라는 벚꽃을 대표하여, 만주로 지나로 진출, 드디어는 대동아공영권 내 구석구석까지 번성해 가는 벚꽃을 생각할 때, 참으로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반도 2천 5백만 동포 여러분! 비상시국 하에, 1억이 한 마음으로 성전완수에 총진군하는 오늘날,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참다운 황국신민으로 되지 못하는 자가 있을 것인가, 혹은 또 반쯤 되지 못하는자가 있다고 한다면, 격언에 “꽃이 웃는다”고 하는 것처럼, 요시노자쿠라에 비웃음을 사서 미안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여러분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유도를 내용으로 하는 유림의 여러분들이며,지방의 명망가이며. 또 유식계급의 사람들이십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께서도 향당에 앞서서, 고이소(小磯) 총독 각하가 절규하고 있는, ‘국체의 본의’에 투철하게 ‘도의조선(道義朝鮮)’을 확립한다고 하는일에 매진하셔서 참다운 황국신민이 됨으로써 진충보국의 ‘수기(修己)’에 힘쓰는 것과 동시에, 향당에대해서 ‘치인(治人)’의 노력에 정진할 것을 간망하며 본 강연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라이 산요우(賴山陽) 선생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노래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꽃보다 밝은 요시노(吉野)의
봄 새벽을 바라다보면
당나라 사람도 고려 사람도
일본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시간 경청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본 강연에 즈음하여 고 스기우라(杉浦重剛)·나카무라(中村)·핫토리(服部)·나카이(中井) 여러 박사의 저술이나 조사보고서 등에서 배운 바가 많았던 것을 말씀드리며,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문책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출전 : 白神壽吉, 「櫻と日本精神」, '經學院雜誌' 제48호, 1944년 4월 10일, 17~21쪽>
585) 조선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