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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료

성호사설에 있는 수로허후(首露許后)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3.08.05|조회수110 목록 댓글 0

성호사설 제18권/경사문(經史門)/수로 허후(首露許后)

 

경사문(經史門) 
 
수로 허후(首露許后)

 

 "삼국(三國)의 즈음에 독(櫝)에서 나왔다느니 알[卵]에서 나왔다느니 한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이미 단정한 설(說)이 있거니와,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면 최치원(崔致遠) 의

《석이정전(釋利貞傳)》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가야산신(伽耶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

(天神) 이비가(夷毗訶)의 감(感)한 바가 되어 대가야왕(大伽倻王)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

왕(金官國王)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의

별칭이요, 청예는 수로왕(首露王)의 별칭이다.” 하였고,

또 석순응전(釋順應傳)에 “대가야국 월광태자(月光太子)는 곧 정견(正見)의 10세손인데 아버지

이류왕(異王)이 신라국의 이찬(伊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에게 구혼(求昏)하여 태자를 낳았다.”

했으니 이류왕은 곧 뇌질주일의 8세손이 된다.

이것은 가락국(駕洛國)의 고기(古記)와는 합치하지 아니한다."

 

  "최치원은 신라 사람인데 남을 위해 전(傳)을 지을 때는 또한 반드시 기록에 의거하여 썼을 것

인데 다만 금란(金卵)의 설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여서인가? 추측하건대, 문화가 아직 발달되지

못한 땅이라 믿을 만한 정사(正史)가 없었고 어리석은 풍속이 귀신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불가

(佛家)에서는 허황한 말을 날조하였을 것이다.

 

신라의 말기(末期)에 불교가 크게 성하였으므로 허황하고 기괴한 말이 제멋대로 유행하여, 혹은

이렇다 하고 혹은 저렇다 하여 다만 갑(甲)의 말이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을(乙)의 말도 또한

증거하기 어려웠으니, 치원의 무식으로 글로 써서 후세 사람을 의혹하고 혼란케 하였다 해서

꾸짖을 것이 뭐 있겠는가?

 

김유신(金庾信)은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인데 신라의 박사(博士) 설인선(薛因宣)이 그 비문을

지으면서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의 후손이라.” 하였고, 신라의 왕실

(王室)도 또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자손이라고 자칭하였으므로 박거물(朴居勿)이 삼랑

사비문(三郞寺碑文)을 지으면서 또한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김유신전에 “신라와 동성(同姓)이라.” 하였다. 신라의 김씨는 알지왕(閼智王) 에서

비롯하였는데 시림(始林) 의 금독(金櫝)에서 나왔으니 김해(金海)의 알(卵) 속에서 나온 이와

무슨 상관이며, 가야산에서 천신(天神)과 감(感)하여 생긴 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며,

또 소호금천씨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동성(同姓)이라고 혼칭(混稱)하였는가?

 

고구려(高句麗) 시조 고주몽(高朱蒙)은 천신(天神) 해모수(解慕漱)의 아들인데 후손 광개토왕

(廣開土王)에 이르러 고운(高雲)이란 사람과 한 조상의 자손이라 하여 서로 종족(宗族)의 정의

(精誼)를 말하였으니, 고운은 고구려의 지파(支派)인데 스스로 고양씨(高陽氏) 의 후손이라고

말하였고 혹자는 고구려는 고신씨(高辛氏) 의 후손이라고 말하였고, 혹자는 고구려의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곧 북부여왕(北扶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인데 그 아버지 우백(優

白)이 두 아들을 두었으니 맏이는 비류(沸流) 요 다음은 온조(溫祚) 라 하여, 그 설이 여러 갈래

이니 장차 어느 것을 믿고 따라야 하겠는가?

 

대개 신라에서는 진흥왕(眞興王)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를 기록하였고, 고구려에서는 비로소

《유기(留記)》 1백 권이 있었는데 영양왕(嬰陽王)에 이르러 요약하여 《신집(新集)》을 만들

었고, 백제(百濟)에서는 계왕(契王)에 이르러 비로소 《서기(書記)》가 있었으니 그 중간에는

도무지 믿을 만한 역사책이 없었다. 우리 동방에 인민이 있은 지 오래이니 아마도 이렇게 많은

기화(氣化)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김해 허후(許后)도 탐라(耽羅) 3녀의 유(類)와 같은 것이다. 가령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바다에 표류하여 우연히 이른데 불과한 것이다. 우리 세종(世宗) 때에 7세 되는 계집아이가 바다

에 표류하여 제주도에 닿았는데 배 안에 거문고 하나 항아리 하나 《자치통감(資治通鑑)》한 질

이 있었다. 세종은 명령하여 궁중에 기르게 하였다. 그가 자라서 왕손 강양군(王孫 江陽君)의

첩이 되었으니 지금의 파곡(坡谷) · 단애(丹厓) 등 제공(諸公)이 모두 그 후손이며 선왕조(先王朝)

때 고기잡이 배가 표류하여 서해안(西海岸)에 닿았는데 배 안에 4세 된 아이가 있었다.

대장 유혁연(柳赫然) 이 집에서 길러 조정에 아뢰어 성(姓)을 어씨(魚氏)로 주었으니 그 배 안에

고기그물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 자손이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변방의 무관(武官)이 많이 났으니 지금의 진해(震海)·진연(震

淵) 등이 그 자손이다.

 

이런 등속이 만약 삼국 때에 있었더라면 반드시 기괴한 말을 보태고 꾸며서 신(神)이 내려오고

귀신의 조화라 하여 한없이 신비스럽고 황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천년

전에 얼마나 많은 것이 있은지를 알지 못하나 지금 사람들은 널리 상고하지도 않고 또 그 후손이

되는 사람들도 우리 할아버지가 실로 이와 같았다고 말하니 이상하다."


[주1]수로 허후(首露許后) : 수로(首露)는 가락국(迦洛國)의 시조. 성은 김(金). 신라 유리왕(儒理王) 19년에

하늘로부터 김해(金海) 구지봉(龜旨峰)으로 내려와서 육가야(六迦倻)를 세운 여섯 형제 중에 맏이라고 전해지고.

허후(許后)는 수로왕의 부인(夫人)으로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왔다 한다. 《類選》 卷九上 經史篇 論史門.

[주01]삼국(三國)의 …… 나왔다 : 이 대문은 신라 탈해왕(脫解王) 9년에 계림(鷄林)의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금궤(金櫃)에서 김알지(金閼智)가 나왔다 한 것.

[주02]알[卵]에서 나왔다 : 이 대문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알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주03]《여지승람(輿地勝覽)》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의 체재에 따라

성종(成宗)의 명에 의해 노사신(盧思愼) 등이 조선 각도의 지리·풍속 그 밖에 특기할 만한 사실을 기록한 책.

중종(中宗) 때 와서 새로 증보(增補)한 것이 있다.

[주04]최치원(崔致遠) : 신라 말기의 학자.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12세에 입당(入唐)하여 황소(黃巢)

          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을 써서 이름을 높였으며 28세(835) 때 귀국, 진성왕(眞聖王) 8년에 아찬(阿

          飡)의 벼슬을 받았으나 곧 은퇴하였다. 시호는 문창후(文昌侯). 저서에 《계원필경집(桂園筆耕集)》이

          있다.

[주05]《석이정전(釋利貞傳)》 : 고운이 지은 신라의 중 이정(利貞)의 전. 이정은 순응(順應)과 함께 당(唐)

          나라에 갔는데, 양(梁) 나라 때 죽은 보지공(寶誌公)의 영혼으로부터 해인사(海印寺)를 지으라는 신언

          (神言)을 듣고 귀국하여 왕명으로 순응과 함께 해인사를 건립했다 한다.

[주06]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 :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 소전씨(少典氏)의 아들. 성은 공손(公孫)인데, 희수

          (姬水)에서 자랐다하여 희씨(姬氏)라고도 한다. 헌원(軒轅)의 언덕에서 출생하였다 하여 헌원씨라고

          한다.

[주07]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 황제헌원씨의 아들. 이름은 효(孝). 호는 금천씨

          (金天氏).
[주08]김유신전 : 《삼국사기》 열전에 보인다.
[주09]알지왕(閼智王) : 계림의 금궤에서 나온 김씨의 시조 김알지를 이름이다.
[주10]시림(始林) : 계림(鷄林)을 이름이다.

[주11]고구려(高句麗) …… 아들 : 이 대문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정을 통하고 버림을 받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태백산 우발수(優渤水)에 북부여왕(北夫餘王) 금와(金蛙)를 만나 그의

          궁중에 유폐되어 오던 중, 어느날 해모수가 햇빛이 되어 유화에 비추어 잉태시켜 알을 낳게 했는데,

          여기에서 태어난 것이 고구려 시조 주몽이라고 전한다.

[주12]고양씨(高陽氏) : 중국 고대 5제(五帝)의 하나.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를 이름. 즉 황제(黃帝)의 손자

          이다.

 

[주13]고신씨(高辛氏) : 중국 고대 5제(五帝)의 하나. 황제(黃帝)의 증손이며 요(堯)의 할아버 지라고도 한다.

[주14]비류(沸流) : 동명왕의 둘째 아들. 북부여에서 남하(南下)한 형 유리(琉璃)가 태자가 되자, 동생 온조

          (溫祚)와 부하들을 이끌고 남하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렀으나 온조와 도읍 문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헤어져 미추홀(彌鄒忽:仁川)에 도읍을 정했다.

[주15]온조(溫祚) : 백제(百濟)의 시조.
[주16]탐라 3녀(耽羅三女) : 태초(太初)에 사람이 없었던 탐라(제주) 땅의 어느 굴속에서 나왔다는 양을나

          (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사람의 아내인데 어느날 동해에 떠오른 무상자 속에서 이 세

          처녀가 나왔다고 한다.

[주17]파곡(坡谷) : 이성중(李誠中)의 호. 자는 공저(公著). 계양군 증(桂陽君 璔)의 현손. 퇴계의 문인. 임진왜란

          때 수어사(守御使)로 왕을 호종(扈從)하였고, 호조 판서(戶曹判書)가 되어 군량 조달에 공이 있었다.

          완창부원군(完昌府院君)에 추봉(追封)되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주18]단애(丹崖) : 이경중(李敬中)의 호. 자는 공직(公直). 이성중의 동생. 퇴계의 문인. 홍문관정자(弘文館正

          字)·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의 상소로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

          었다.

[주19]유혁연(柳赫然) : 숙종(肅宗) 때의 무신. 호는 야당(野堂). 우포도대장(右捕盜大將)·훈련대장(訓鍊大將)·

          공조 판서(工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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