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만큼 다양한 세계의 장례 문화
◁ 목 차 ▷
I. 장례 풍습을 보면 문화가 보인다.
II. 각 종교에 나타난 내세관
1.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 사상
2.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부활 사상
3. 유교 문화권의 혼백(魂魄) 사상과 조상 숭배
III. 문화권 마다 달라지는 장례 형태
1. 화장(火葬)
2. 매장(埋葬)
3. 기타 장례 형식
IV. 탈상과 추모 의례에 나타난 다양한 전이기 숫자
V. 문화마다 다른 죽음의 색
I. 장례 풍습을 보면 문화가 보인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장례의식을 행하는 동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으며, 볼테르 역시 “인간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종(種)으로서, 그들은 경험을 통하여 죽음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죽음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으며, 누군가 죽으면 반드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죽은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경건하고 정성스런 의식을 치렀다. 장례와 제사는 사자(死者)에 대한 공경심과
두려움이 어우러져 시공을 초월한 각 민족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로 자리매김하였고, 인간의 생활풍습 가운데
가장 끈질긴 전승력을 보여주는 관습이 되었다.
장례는 인생의 마지막에 치러지는 통과의례(Passage Rite)이다. 통과 의례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반 즈네프
(Arnold Van Gennep)가 처음 사용한 학술 용어로서, 어떤 개인이 새로운 지위, 신분, 상태를 통과할 때 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나 의례를 총칭한다. 반 즈네프의 분석에 따르면, 모든 통과 의례는 ‘분리 의례’(Rites ofSepa
ration), ‘전이 의례’(Transition Rites), ‘통합 의례’(Rites of Incorporation)등 세 가지로 구성 요소로 나뉠 수
있다.
장례 의례는 민족에 따라 크게 다르며 또 동일 민족 사이에서도 망자의 성(性), 연령,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
진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도 분리, 전이, 통합과 같은 특성들은 세계의 장례 풍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장례는 이승과 분리된 망자의 혼이 일정한 전이기를 안전하게 보내고 사자(死者)의 세계에 통합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삼는다.
이와 더불어 장례는 종교의 기원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이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변화를 겪으면서 느끼게 되는 경외감과 두려움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이다.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가장 급작스럽고 두려운 변화는 바로 죽음이다. 인간은 집단의식을 통해 초자연적 힘과 화해를
추구함으로써 그러한 공포의 감정을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점을 상기해 본다면, 장례는 세계 각 종교들이 설파해 왔던 세계관, 가치관, 윤리관, 인간관 등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세계 각국의 장례 문화를 비교해 보고자
하는 시도의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II. 각 종교에 나타난 내세관
인류는 선사시대 이전부터 이미 육체의 소멸을 완전한 끝으로 보지 않고, 내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시신을
사후세계로 보내기 위한 나름대로의 의식을 거행해 왔다. 이러한 믿음은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들이 죽음 이후
에도 영혼의 생명력이 지속된다는 내세관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내세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느냐의 방식에 대해서는 각 문화 혹은 종교 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순환적 시간관을 공유했던 문화권에서는 주로 ‘윤회’라는 개념에 의존하여 생명의 지속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에 반해 직선적 시간관을 갖고 있었던 문화권에는 대개 ‘부활’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한편 중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에서는 죽은 자의 혼백(魂魄)은 산 자의 정신과 신체처럼 사후 세계에서도 생활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죽은 자도 산 자와 똑같이 의‧식‧주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사회적
지위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1.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 사상
힌두교에서는 우주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주적 에너지의 진보가 이름과 형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베다 경전에서는 이 과정을 설명하여 브라만(Brahman)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에다
표현했다.
따라서 힌두교는 영혼이 죽음과 함께 절멸하거나 탄생과 함께 생겨났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것은 우주
질서의 개념과 모순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혼은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몸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아
갈 뿐이다.
힌두교가 말하는 윤회는 영혼 불멸성의 관념에서 오는 필연적 결과이다. 즉 화신(化身)한 아트만(Atman)이 우리
의 몸 안에서 유년, 청년, 노년의 단계를 거쳐 가듯이 또 다른 몸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시간의 종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세계의 체계가 생겨나고 머물고 멈춰지는 순환적 과정
만이 있을 뿐이다.
힌두교와 불교는 부활과 구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순환적 시간관에 기초하고 있는 양 종교의 교리는 윤회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업보를 짓게 되고, 이것은 모든 번뇌와 고통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양 종교는
구원이 아닌 해방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윤회의 순환 고리로부터 해방될 때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다. 힌두교는 아트만(자아)과 브라만의
합일을 통해 해방을 얻을 수 있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을 가르쳤다. 불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진리의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해탈(解脫)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2.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부활 사상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세 종교는 모두 유일신 하느님을 우주의 창조주로 숭배하며, 아브라함을 신앙의 공통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세 종교는 동양의 종교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
세 종교는 무엇보다도 세계는 창조의 때가 있으므로 끝나는 날도 있을 것이라는 직선적 시간관을 갖고 있다.
기독교는 최후의 날에 예수가 재림하고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고 말한다. 이슬람의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이슬람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기 전 ‘이스라필’(Israfil)이라고 불리는 천사가 내려와 나팔을 분다.
그리고 그 순간 지하에서 잠자고 있었던 죽은 자들의 영혼이 부활하게 된다.
부활은 직선적 시간관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다. 죽음과 함께 종결된 생명의 시간이 또 한번의 지속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살아나는 것뿐이다. 부활은 윤회와 전혀 차원이 다른 개념으로서, 양자의 개념적 차이는
상이한 구원관을낳았다.
불교와 힌두교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해방을 얻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여긴다. 즉, 재생(再生)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염원하는 구원이다. 그에 반해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새롭게 태어
나는 것이다.
또한 불교와 힌두교는 그 해방은 수행자의 자각(自覺)에 의해 성취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점에서 두 종교는 자력
(自力)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은 창조주의 은총에 의해서만 거듭난 삶을 영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점에서 세 종교는 타력(他力)종교라고 볼 수 있다.
3. 유교 문화권의 혼백(魂魄) 사상과 조상 숭배
중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죽은 자는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 진다고 여겨왔다.
사람이 죽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특징은 죽은 자로부터 생명은 유리되지만 신체는 남는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죽은 자로부터 분리되는 이 생명의 요소를 혼(魂)이라고 불렀다. 이 생명의 본질인 혼은 소멸하지
않으며 어떤 변화된 형태로 지속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편 백(魄)이란 혼과 대비되는 것으로 시체 속에 깃든 어떤 생명적인 것을 일컫는다. 한편 중국인들은 죽은
자의 혼백(魂魄)은 산 자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거의 동등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내세관은 유교 문화권의 장례 풍속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혼백 신앙이 조상숭배 신앙과 결합
되면서, 조상의 유체에 대한 대우와 무덤에 대한 관리는 장례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유교 문화권에서 흙으로 무덤을 만드는 토장(土葬) 즉, 매장 문화가 주류를 이룬 것도 조상들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후에도 무난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죽은 자의 양식으로 곡식과
가축이 제공되며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장신구가 부장(副葬)되는데, 이는 사후의 생활에 대한 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III. 문화권마다 달라지는 장례 형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가장 전통적인 형식으로 매장과 화장이 있으며, 드물게는 죽은 사람을 바다에 가라
앉히거나, 방부 처리를 하여 미라를 만들거나, 혹은 영묘(靈廟)나 지하 납골묘와 같은 특수한 건축물 안에 안치
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차이는 그 민족이나 문화의 내세관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와 같이 윤회를
믿는 문화권에서는 주로 화장이 행해진다. 이에 반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과 같이 부활을 믿는 문화권
에서는 매장이 보편적으로 행해진다.
한편 조상들이 사후에도 무난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염원했던 유교 문화권에서는 흙으로 무덤을 만드는 토장
(土葬)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난다.
1. 화장(火葬)
여러 문화권에서 화장은 죽은 사람의 영혼의 해방으로 이해되었다. 시신의 재를 담아 두었던 옹기들이 유럽
각지의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화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는 BC1400년에서 AD 200년 사이에 화장이 널리 확산되었는데, 특히 로마 제국의 지배층에서 선호
되었다. 로마 시대에 유행했던 화장에는 크게 ‘부스툼’(bustum)과 ‘우스트리나’(Ustrina) 두 가지가 있었다.
전자는 매장된 지 오래된 시신을 꺼내 나무장막위에 올려놓고 태워 그 재를 거둔 다음 땅에 묻는 화장 방식
이었다.
한편 후자는 시신을 태운 다음에 그 재를 묻어 무덤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오늘날까지도 화장 풍습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곳은 인도이다. 인도는 약 10억 달하는 인구 중 82%가
힌두교를 믿고 있다. 힌두교도는 죽은 후에 바라나시에서 화장되고, 재는 갠지스 강에서 뿌려지는 것을 지상의
기쁨으로 여긴다. 이것을 생애의 최고 목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힌두교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으로 인해 영혼은 육체를 떠날 뿐이며, 주검은 다만 영혼을 잃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을 위무하고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힌두교도에게 죽음은 오히려 자유롭게 되는 길이며 각 개인의 삶에서 긍정적인 사건이라고 여긴다.
힌두교도들의 화장 풍습은 바로 이러한 내세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빨리 영혼이 들어있는
몸을 태워 버려야 그 영혼이 불길과 함께 천계(天界)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다. 오래전부터 인도인들은 불을
해방과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힌두교에서 호마(Homa)라는 불의 의식은 옛날부터 브라흐만 사제의
중심 의식이었다.
그들은 그 불과 함께 죽은 자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화장의 의미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해체이다. 최초에 우주의 창조가 있고, 최후에 우주의 파괴가 있듯이 창조에서 생긴 몸을 화장하는 것은 우주의
5원소(흙, 물, 불, 공기, 에테르)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파멸이 아니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순환 과정일 뿐이다.
일본의 경우 불교가 토착화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불교식 장례 의식의 침투였다. 10-11세기의 하급
승려들은 죽은 이의 유족을 찾아가 유골의 일부를 산(山) 같은 곳에 묻으면 정토왕생(淨土往生)할 것이라고
전도하고 다녔는데, 이것이 큰 호응을 얻어 오늘날 일본 특유의 납골 풍조가 생기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절을 찾아 참배하고 장례식 또한 불교식으로 행한다.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 94%가
불교식 장례를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죽은 자에게는 불교식의 이름인 계명(戒名)을 붙이기도 한다. 최근 통계 자료에 의하면 일본 국민이 98.89%
가 화장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바로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불교의 화장 문화는 붓다의 시대부터 유래했다. 붓다 자신도 향나무를 겹쳐 쌓아 그 위에 관을 안치하고는 불을
붙여 화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인들은 화장이 끝난 후 고인의 유골을 뼈단지(骨壺)에 담는다. 이때 유족들은
나무와 대나무로 된 젓가락으로 두 사람이 한조가 되어 뼈를 집어 유골을 수습한다. 이러한 풍습은 다른 불교
문화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본인들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 매장(埋葬)
매장은 시신을 지하에 묻는 가장 오래된 장례법 가운데 하나로, 토장(土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과 같이 부활을 믿는 종교들은 대체로 매장을 선호하고 있다. 그들은 최후의 심판 날이 도래함과
동시에 묘지에 있던 영혼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화장을 해서 육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그 영혼은 영원히 안식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또한 태양이 작열하는 척박한 사막의 환경에서 기원한 세 종교는 오래 전부터 불을 경외와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이로 인해 화장(火葬)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대신 매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시신을 땅에다 묻는 것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덧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기독교의 관념은 이탈리아와 폴란드 같은 국가들의 장례 풍속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로마 초기 시절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에는 ‘부스툼’(bustum)과 ‘우스트리나’(Ustrina)라고 불리는 두 가지 화장 방법이 있었던 것
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기독교가 전파된 로마 후기로 갈수록 화장 대신 매장이 지배적인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폴란드 지역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고대 슬라브 시대에는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을 신봉하였기에
육신의 부활이나 시신의 중요성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폴란드 지역에서는 매장과 화장이 병행
되었다.
그러나 966년 로마 가톨릭이 국교로 수용된 이후 폴란드인들 사이에는 기독교의 사생관에 따라 부활에 대한
희망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점차 화장보다 매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15세기 이후부터 매장은
폴란드의 전통적인 장묘방법으로 정착되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들은 아직도 매장을 선호하고 있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화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대교와 이슬람의 경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육체가 자연적 상태로 귀환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란 지역의 경우 ‘페다르수크테’
(Pedar sukht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네 아비는 화장당했다”로서 가장 지독한 욕설 가운데 하나다.
이란의 무슬림들이 화장을 얼마나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란에서 화장을 당하는 사람은 흉악한 범죄자에게만 국한된다.
유대교와 이슬람에서 나타나는 매장 문화의 특징은 시신을 가능한 한 빨리 처리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임종이
있게 되면 시신은 당일에 매장되며, 임종이 오후거나 밤에 있으면 시신은 그 다음 날에 매장된다. 이러한 풍습이
생겨난 이유는 종교 보다는 중동의 더운 기후 탓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열대우림 지역에 살고 있는 인도인들도
대부분 사망 당일에 장례식을 치루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매장하지 않고 시체를 방치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유대교 율법서인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떤 사람이 죽을 죄를 지었으면 그 사람을
죽여서 시체를 나무 위에 매달아 두시오. 그러나 그의 시체를 밤새도록 나무 위에 매달아 두지 마시오. 그를 죽인
그 날에 그를 묻어주시오.”( 신명기 21장 22-23절)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매장을 토장(土葬)이라고 불러왔다. 중국에서의 토장 풍속은 귀신(鬼神)신앙의 발전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중국인들이 상상한 귀신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람의 육체에 함께 거
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 신비한 존재였다.
이러한 귀신신앙은 조상숭배 신앙과 결합되면서 더욱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귀신에 대한 경외심과 조상에 대한
공경심은 장례의 과정 중에서 조상의 유체에 대한 대우와 무덤에 대한 관리의 형태로 표현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죽은 자가 저 세상에서도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난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흙으로
만든 무덤을 만들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치에서 중국의 상위 계층들은 전통적으로 토장과 상극을 이루는 화장을 폄하하고 멸시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된 이래, 중국정부는 지속적으로 화장을 장려하고 있고,
대부분의 중국인민들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사례는 세계관과 내세관의 변화가 장례
풍습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 기타 장례 형식
화장과 매장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는 수장(水葬), 풍장(風葬), 현관장(懸棺葬), 조장(鳥葬) 등 다양한 장례
형식이 있다. 수장은 시신을 물속에 넣은 장례법으로서, 고대 일본에서 많이 행해졌다. 일본신화에서 수장(水葬)
의 예로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히루코(蛭子)이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성교로 태어난 히루코는 태어나면서
부터 거머리처럼 뼈가 없어서 걷지도 서지도 못하는 불구라서 갈대로 만든 배에 실어서 바다로 흘려보내는데,
이것은 원시 내지 고대의 수장의례(水葬儀禮)를 암시하는 사례이다.
한편 풍장은 시신을 들짐승에게 먹히게 하거나 비나 바람에 의하여 자연히 없어지도록 하는 장례법이다.
풍장 중에는 나무 꼭대기나 나뭇가지 사이에 두는 수장(樹葬)이 있고, 시렁 같은 것에 올려놓는 대상장, 동굴
안에 두는 동굴장, 절벽 끝에 놓아두는 애장 등이 있다. 이러한 풍습은 아시아,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일부 원주민 문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동굴장의 예는 오늘날 서아프리카 말리의 반디아가라(Bandiagara) 절벽에 살고있는 도곤인들 사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지역에는 높이가 200미터에 이르는 절벽이 150킬로미터 정도 펼쳐져 있다. 도곤 사람들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절벽에 있는 동굴에 안치한다. 유족들은 먼저 시신을 두 벌의 수의로 감싼 후 나무 들것 위에 꽁꽁 묶은 후
장지로 운반한다.
시신이 안치되는 동굴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수백 년 동안 시신의 안치 장소로
사용되었던 동굴에는 조상들의 유골이 가득 차 있는데, 시신은 이 유골들 사이에 안치된다. 이후 시신을 안치한
사람들은 시신에서 수의를 벗긴 다음 기름 항아리를 시신의 발치에 놓는다. 이는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먼 여행
길을 편안하게 떠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현관장(懸棺葬)은 고대 중국의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장례 풍습으로서, 풍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현관장’은 ‘관을 높은 곳에 매달아 장례한다’는 뜻으로서, 흔히 ‘절벽에 안치했다’는 뜻의 ‘애장’(崖葬)과 ‘관이 배
모양을 띠고 있다’는 뜻에서 ‘선관장’(船棺葬)이라고도 불린다. 현관장은 지역에 따라 그 형태와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그 골격을 이루는 장례형식은 유사하였으며, 심지어는 최근까지도 이 풍속을 따르고 있는 지역이 있다고
한다.
이 풍속에 의하면, 사람이 죽었을 때 관을 평평한 땅이 아닌 절벽이나 암벽에 안장하게 되는데, 이 때 관은 주로
산의 높은 곳에 위치한 바위나 바위가 튀어나온 부분 또는 물이 흐르는 협곡이나 안개가 자욱하게 낀 가파른
절벽 등지에 안장하는 게 보통이었다.
현관장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으나 크게 세 가지 설로 압축된다. 첫째, 원시적 종교설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승천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그들은 산이나 강에 솟아
있는 가파른 절벽이야말로 영혼이 안식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믿게 되었다. 둘째, 조상숭배설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조상의 뼈와 육체를 잘 보관해야 해야 조상신의 보호와 도움을 얻을 수있게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은 자의 시신을 메고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절벽에 올라가서 관을 안장하도록 만들게 되었다.
셋째, 어렵(漁獵)환경설이다. 고대중국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산에 거주하거나 하천에서 낚시를 했던 생활에
대한 어렴풋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의식은 훗날 산이나 강 같은 자연환경에 자신을 의탁하는
관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조장(鳥葬)은 세계의 장례 풍습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 중 하나이다. 조장은 다른 말로 천장(天葬) 혹은 신장
(神葬)이라고도 한다. 현재 이 풍속은 중국의 티베트성,청해성,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티베트족 사이에서 발견된다.
‘조장’ 이란 간단히 말해 죽은 사람을 장지로 옮겨 독수리로 하여금 그 시체를 먹게 하는 것이다. 조장을 거행
하는 티베트의 라마 승려들은 칼이나 도끼를 이용해 시체를 토막 낸 후, 이 것을 가죽부대에 담아 부근의 작은
평지로 가져간 후 다시 펼쳐 놓는다. 그러면 이미 그 옆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던 독수리들이 구름 떼 처럼 몰려
들어 아귀다툼하듯 시체를 쪼아 먹는다.
조장 풍속은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 무척이나 낯설고 심지어는 끔찍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풍습은
티베트 특유의 사회, 자연, 신앙 등의 환경에서 배태되어 온 결과물로서, 그 유래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첫째, 자연숭배설이다. 티베트족은 전통적으로 산과 하천을 신성하게 여겨왔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손대거나
훼손하는 것을 꺼려왔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체를 땅에 묻는 토장(土葬)을 금기시하게 되었다.
둘째, 환경제약설이다. 티베트의 자연환경은 춥고 건조하기 때문에 화장을 할 만큼 충분한 나무가 없고 매장을
하더라도 시체가 잘 썩지 않는다. 셋째는 민간신앙설이다. 티베트족의 전통신앙 중에는 독수리를 조류의 왕으로
여기고 신성하게 숭배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은 독수리가 인육을 먹고 하늘 높이 날아가면 사람의 영혼도
그를 따라 승천하게 된다고 믿는다.
넷째, 인도불교유입설이다. 티베트인들은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서는 수양과 선행에 힘쓰고 죽어서는 남은
육체를 맹수에게 먹여서 마지막 선행을 완성한다고 믿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간을 제사 목적으로 희생하는
인신공양 풍습이 존재한 경우도 있는데,
이에 따라 독특한 시신처리 방법이 발전하기도 했다. 인신공양 풍습은 중남미에 있었던 아즈텍 제국에서 많이
발견된다. 인신 공양되는 방법은 매우 다양했다.
흑요석 칼에 의해 심장이 뽑혀 나오는 희생의식이 가장 많았지만, 봉양하는 신의 종류에 따라 산채로 태워죽이
거나,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결투의식을 통해 몽둥이로 때려죽이거나, 온 몸에 횃불을 묶어
불로 태워 공양하는 방법도 있었다. 화살을 쏘아 공양을 하거나, 그물망 속에 넣어 비비꼬며 잡아당겨 질식·
압사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인신 공양된 시신은 축제와 연회를 통해 아즈텍인 들이 식용으로 소비했고, 해골
들은 정수리 부분의 구멍을 통해 나무 막대기에 줄줄이 꿰어졌다.
IV. 탈상과 추모 의례에 나타난 다양한 전이기 숫자
여러 통과 의례 가운데 장‧상례(葬‧喪禮)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의 제일 마지막에 치러지는 의례라는 점
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의례들은 통과 의례를 거치는 당사자가 어느 정도 의례의 주체 노릇을 하는 것이 예사
이다. 그러나 장‧상례는 이승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부터 치러지는 의례이므로 당사자가 의례를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살아남은 자의 참여와 역할이 자연스럽게 중요해 지게 된다. 따라서
장‧상례는 죽은 자 뿐만 아니라 산자도 함께 통과의례의 일정한 과정을 겪는 또 하나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산 자인 상주와 죽은 자인 망자는 함께 의례의 구조인 ‘분리’, ‘전이’, ‘통합’의 단계를 거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반 즈네프에 의하면, 상중(喪中)에는 상주(喪主)와 망혼(亡魂)은 특별한 연대를 이루며, 함께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먼저 상주는 특별한 옷을 입고 갖가지 추모 집회나 기도 의식 등을 행하며
자신을 일상적인 삶과 분리시킨다. 상주가 이러한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죽은 자와 함께 일정 기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제 막 육체에서 벗어난 죽은 자의 영혼은 이승에서는 분리되었으나 저승에는 완전히 통합되지 못한 전이기에
놓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죽은 자의 영혼은 어느 때 보다도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상주는 영혼과 함께
자리를 지키며 영혼이 저승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상주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전이기는 종교 혹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경우 유교적 전통에 따라 그 기간을 3년 혹은 불교적 전통에 따라 49일로 보았다. 이 기간 동안 상주는
빈소에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올리는가 하면 묘지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상(喪)이 끝날 때까지 시묘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끝나면 상주는 탈상의례를 통해 일상생활로 돌아와 사회에 재통합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죽은 자를 상(喪)이 끝나기 전과 후에 따라 ‘망자’(亡者)와 ‘사자’(死者)로 구분하여 불렀다.
즉, 상례가 끝나기 전까지 죽은 자는 망자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망자의 영혼이 전이기의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히 극복하고 저승에 온전히 통합되면 사자의 위(位)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시묘살이를 하는 3년 동안 상주의 모든 대외적 공식 행사는 금지 되었다.
상주가 만일 관직에 있는 자라면 휴직하고 복상을 신청해야 한다. 또한 부모의 상중에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삼년상 중에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으면 이는 불효로 간주되었다. ‘상중에 결혼
하거나 오락을 즐기는 경우의 법규정’에서 상중에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사스러운 일은 슬픔과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이기 이외에도 한국의 전통 상‧장례 풍속은 ‘3’이라는 숫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저승
사자에 관한 관념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의 민간 신앙에 따르면, 저승사자는 세 사람이 함께 다닌다.
이에 사자 밥을 차릴 때는 세 그릇의 밥과 국, 간장 그리고 먼 길을 갈아 신고 잘 가시라고 세 컬레의 짚신을 차려
놓는다. 경기지방에서는 사자밥으로 밥 3그릇 ․ 무나물 3그릇 ․ 동전 3닢 ․ 짚신3켤레와 사자의 신을 키에 담아서
절구통을 엎어놓고 그 위에 올려놓았고, 강원지방에서는 키에다가 밥 세 그릇 ․ 무나물 3그릇 ․ 짚신 3켤레 ․ 동전
30원씩 3뭉치 ․정화수 1그릇을 사립문 곁에 놓았다. 사자상을 차리는데 3이라는 숫자가 중시되고있음을 알 수
있다.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불교는 죽음과 함께 의식이 사라지지 않으며 후에 다시 재생(再生)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육체를 떠난 망자의 영혼은 엄밀히 말해 죽음과 재생의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때 망자는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비록 육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가고 싶은 곳을 즉시 갈 수 있고 5감의 능력도 갖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중간 상태 즉 전이기가 49일 동안 지속되어 진다고 믿는다. 이 기간 동안 승려나 친지들은
망자를 위해 독경을 하거나 매주 혹은 매일 기도를 올린다. 이 기도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다. 기도를 통하여
망자에게 당신은 중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여러 가지 상들이 나타나 당신을 현혹시키더라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 잘 정진해 보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불교 장례 풍속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의 경우 49일째 되는 날을 망자를 위한 기일(忌日)로 삼는 경우가 많다.
고인의 의복, 유품 등을 친척이나 친지에게 나누어주는 유품분배도 49일까지 마친다. 인도인들은 화장(火葬) 후
열흘간을 망자에게 가장 중요한 전이기로 여기며 매일 천도제를 올린다. 친척들은 조용히 상가를 방문해 같이
있어 주며, 가까운 일가들은 상중에 집안에서 성관계, 음주, 유흥, 음악 등을 삼가며, 남자들은 삭발을 하고 머리
뒷부분에 있는 한 가닥 긴 머리카락만을 남기기도 한다.
장례 의식의 모든 일정은 죽은 자가 천도하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하는 것이며, 열흘간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
는 잔치를 베풀어 참석자들을 대접한다. 이제 산 자는 산 자로, 죽은 자는 죽은 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화장 후 11일째 되는 날, ‘슈라다’(Shraddha)라는 천도제 의식이 치러진다. 천도제와 함께 모든 장례 의식이
마무리 되며, 이때야 비로소 망자의 자식이나 친족들이 수염을 깎거나 이발하는 일 또는 손톱을 깎는 일 등이
허용된다.
인도인들은 천도제 이후 10일-31일 사이를 또 하나의 중요한 전이기로 간주한다. 이 기간 동안 인도인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의 마음으로 조령제(祖靈祭,pitryajna)라는 제사를 지낸다. 육신은 죽어서 조령(祖靈)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조령제가 행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힌두교도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식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존재, 즉 ‘조령(pitri)’이 되기 위한 의식이다.
이때 힌두교도들은 직계의 남자가 제주(祭主)가 되어, 브라흐만 승려를 초청해서 삔다와 물을 죽은 자를 위해
땅 위에 놓고 공양한다. ‘삔다’는 쌀로 만든 작고 둥근 떡으로 죽은 자를 상징하는데, 이때 큰 삔다와 세 개의 작은
삔다를 각각 만든다. 세 개의 삔다는 각각 부(父), 조부(祖父), 증조부(曾祖父)를 의미한다.
가장 큰 삔다를 세 부분으로 자르고 작은 삔다와 합친다. 이것은 내세에서 조상들과 영혼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의례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 유일신 종교가 탄생한 중동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40이란 숫자가 ‘성(聖)/속(俗)’
간의 전이 기간을 상징해 왔다. 구약 성서의 주인공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세월을 보낸 후 이집트의
왕자에서 야훼의 부름을 받은 예언자로 변모했다. 또한 그는 시내산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올린 후에야 십계명을
기록한 두개의 석판을 받을 수 있었다. 모세가 유대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도 40년이었다.
한편 신약 성서에서도 예수의 중요한 행적 때마다 40이란 숫자가 강조된다. 평범한 인간처럼 살던 예수는 광야로
들어가 40일 동안 악마의 시험을 이겨낸 후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사흘 후에 부활했고 그 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다가 승천했다. 이 외에 노아의 방주 사건 때도 40
일 동안 밤낮으로 땅위에 폭우가 쏟아졌으며, 유대인 선지자 엘리야는 야훼를 만나기 위해 40일 동안 밤낮으로
걸어 시내산으로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40일 의례는 오늘날 러시아의 그리스 정교 장례 풍습에서 잘 나타난다.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40일 동안 그의 영혼이 집을 방문한다고 믿어 왔다. 또한 그들은 망자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유족
들이 그를 위해 40일간 꾸준히 기도해 준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인들은 사람이 죽은 지 40
일째 되는 날 ‘소로치느이’(сорочины)라고 불리는 추모제를 거행한다. 러시아 민중 신앙에 따르면, 바로 이날
망자의 영혼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여러 지방에서는 이 날의 의식을 ‘영혼을 보내는 것’(проводы) 혹은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는 것’(окликание)
이라고 불렀다. 40일 추모제를 치르는 모습은 각 지방마다 각양각색이다. 깔루쥐스까야 현에서는 이 날에 반죽
으로 계단을 표현해낸 삐로그(버터를 넣은 튀김 과자)를 교회로 가지고 가는데, 이것은 망혼(亡魂)이 그 계단을
따라 하늘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노브고로드 현에서는 이날 유족들이 망자를 위해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대접한다. 그들은 마치 고인이
집으로 돌아온 듯 행동하며, 그를 위해 여분의 숟가락을 식탁에 남겨 둔다.
무슬림들 역시 고인의 영혼은 죽은 지 40일 동안 무덤의 주변에 머무른다고 믿는다. 이 기간 동안 유족들은
화려한 차림을 피하면서 주로 금요일에 가족과 친지가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꾸란을 독경하는 주기적인 추모
의식을 행한다. 집에서 음주가무는 물론 축제, 결혼식 같은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은 유보되며 붉은색 옷이나
진한 화장, 천박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자주 망자의 무덤 위에서 꾸란을 읽어 주는데, 이는 망혼이 악령에게 잡혀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터키의 경우, 고인이 죽은 지 40일 동안 집안에 촛불을 밝혀 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망혼이 이승으로 귀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집트의 경우 죽은 지40일 동안 고인의 유족들은 매주 목요일 마다 곡(哭)을 한다.
40일이 지난 후 첫번째 금요일은 ‘40날’ (al-Arba'īn)라고 불리며, 이날 고인을 위한 추모의례를 행하고 곡을
마침으로써 탈상을 하게 된다.
V. 문화마다 다른 죽음의 색
오래 전부터 인류는 다양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내면의 심리를 표현해 왔다. 또한 색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물든 옷을 몸에 걸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특별한 성질이 더해 진다고 생각했다. 색은 관념적인 우주와 세계를 상징하기도 했다. 따라서 내세,
천국, 극락, 지옥, 저승 등은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며 각각 특징 있는 색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색채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문화권 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예컨대, 초록색의 경우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행운의 색으로 대접 받는데 반해 서양에서는 요상한 색으로 여겨
진다. 한편 빨강색의 경우 세계적으로 흔히 피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위험을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오히려 경사
스러운 일에 사용된다. 다시 말해, 특정한 색과 그것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의 관계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관습
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수의(壽衣)나 상복(喪服)의 색깔 또한 각 민족마다 천차만별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각 민족이 처한 자연 환경이나 문화 혹은 종교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경우, 대개 흰색은 생명과 부활을 그리고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하는 예가 많았다. 그들은 태곳적부터 태양
광선이 만물의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이유 때문에 흰색을 생명력 그 자체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태양신과 관계있는 신, 부활을 관장하는 신이 걸친 옷은 흰색이었으며, 성수(聖獸)도 흰색, 또 부활을
기원하면서 만든 미라에도 흰색 붕대를 둘렀다.
반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색을 부활하기 전까지 반드시 지나야하는 어두운 세계와 연결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더불어 죽는다는 뜻에서 온몸에 검은 흙을 칠했다. 그리고 미라를 만드는 일을
관장하고 죽은 자를 내세로 이끄는 개의 신 아누비스를 검은 개의 머리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했다.
유럽의 경우도 로마 시대부터 상복으로 검정색 의상을 입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친인척 모두가 ‘루투 니에두’(Luttu nieddu)라고 불리는 검은 색 상복을 입고 검은 색 손수건 혹은 숄을 둘렀다.
참석자들 중에 모친상을 당한 자녀들과 형제자매는 3년간 그리고 사촌은 1년간 이 같은 상복을 계속해서 착용
했다. 한편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경우에는 여생 동안 검은 상복을 입어야 했으며 심지어는 단추도 검은색이
어야 했다.
또한 시칠리아에서는 남자들이 수염을 자르지 않고 목에 검은 줄을 부착하고 다녔으며, 심지어는 당나귀의 목
에까지 검은 줄을 매달기도 했다. 이러한 상중표시는 상을 당한 집의 대문에서 가장 잘 목격할 수 있다.
이 경우 집 앞 대문의 상단에는 검은 베일의 줄이나 ‘나의 아버지를 위해’, ‘나의 어머니를 위해’ 또는 ‘나의 남편
을 위해’와 같은 문구가 적힌 줄이나 끈을 매달아 놓았다.
이에 반해, 한국, 일본, 중국 등과 같은 동양의 전통적인 상복 색깔은 흰색이었으며, 이는 검은색의 서양과
뚜렷이 대조된다.
이와 같은 풍습의 차이는 내세에 대한 양 문명간의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죽음을 ‘생명의 끝’이라고 인식한 반면, 동양인들은 저승을 ‘이승의 연결 세계’로 보았다. 그런 까닭에 동양인
들은 죽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상복도 검은색 대신 흰색을 선호했다.
과거 일본에서는 장례식을 ‘백사’(白事)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상복 색깔이 흰색이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장례식을 거행할 때 흰색 혹은 백목(白木) 도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이 흰색을
선호했던 이유는 하얀 것이 맑고, 깨끗하고, 신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르러 동양의 상복 색깔은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인데, 이는 19세기 이후 서구 문물의
유입에 의한 것이다. 일본이 서양의 상복 문화를 수용한 것은 메이지 30년 1월 천황의 모후(母后)였던 영조(英照)
황태후의 장례식 때부터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유럽식 상복을 입도록 전국에 공시했다. 그리고 이 장례식 이후
검정색 양장과 일본식 검은 옷 몬츠키(紋付)는 나라가 인정하는 정식 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경우는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검은색 상복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1934년 일본 식민 정부는 상례간소화 정책을 반포하
면서 상장(喪章)으로서 검은 리본을 달게 했으며, 이후 서서히 검은색 옷이 상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중국도 서양 의복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상복까지 수용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정부 요인이 사망했을 때 주요
장례 행사에서 참배자들 대부분이 검은 옷에 검은 넥타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문화권에 속하더라도 지역에 상복의 색깔이 다른 경우도 있는데, 그 예로 이슬람권을 들 수 있다. 이집트의
경우, 미망인을 비롯한 상을 입은 여인들은 푸른색 천을 머리에 두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푸른색 손수건을
어깨에 걸치거나 머리 위나 얼굴 앞에서 흔들기도 한다. 이집트에서 푸른색은 조의를 표하는 애도의 색깔이다.
이란의 경우, 상을 당한 사람은 검은 옷을 입어야 하며, 씻거나 면도를 해서는 안 되며, 향수를 사용해도 안 된다.
미망인은 약 1년 동안 검은 옷을 입으면서,먼저 떠나보낸 고인을 추모한다. 1년이 지나면, 여자 친척들은 미망인
에게 색깔 있는 옷감을 선물한다. 이는 추모를 그만 끝내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한편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무슬림들이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를 때는 대개 황색 깃발을
꽂는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종종 황색 깃발을 날리며 달리는 여러 대의 장례행사의 차량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골목 입구에 황색 깃발이 꽂혀 있고 흰 색 천막 끝 부분을 황색으로 장식했으면 초상집이고,
녹색으로 했으면 결혼식 피로연이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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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중동 연구소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