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손탁의 '감수성'
1. On Photography
손탁은 우리에게는 그녀가 1977년에 내놓은 「On Photography」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손탁은 미국의 중류 부르주아 출신 사진작가 다이안 아버스에 주목합니다.
아버스의 사진은 세상의 긍정적인 외양의 뒷면을 파고듭니다.
그녀의 사진은 갖가지 기형인간들이나 혼혈인들, 부랑자들이 뒤섞여 매우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손탁에 따르면 시인(詩人) 월트 휘트먼은 '세계의 존엄과 아름다움은 세계의 그 어떤 미세한 구석에도 깃들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화의 민주적인 전망에 주목하면서, 보편적인 이상이 실현되는 공간인 미국이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시편
(詩篇)'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1920년대 이후 사진가들은 종래의 서정적인 주제를 벗어나 평범하고 품위없는 것들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가들의 이런 경향은 앞서 휘트먼이 가졌던,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인식을 실체화하는 것인데, 동시에 이는 '원래부터 주어진 피사체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하려는 것을 억제할 수 없는' 경향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일상에 따뜻한 정감을 덧입히는 데 반해, 아버스의 사진은 일종의 '반휴머니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녀의 사진은 어설픈 감상(感傷)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세계를 균등하게 다루라는 휘트먼식 철학을 지킨 셈이긴 합니다.
아버스의 사진은 당시 미국 중류 부르주아의 피학증적인 속죄의식을 반영합니다.
결핍된 이들, 구원받지 못하고 구렁텅이에 있는 이들에 대한 속죄의식.
애써 부정하려 하지만 사실 자신들이 세상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방조해 왔음을 알고 있는 데서 연유하는 속죄의식.
균등하고 범속한 세계가 빚어내는 기괴한 영상의 압박.
마조히스트들은 정서적 불감증을 벗어나려고 이러한 자극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느끼는 대신 세상살이에서 아픔을 좀더 덜 느끼기 위해 이러한 영상을 바랍니다.
손탁은 아버스의 사진이 '교양있고 자유주의적 좌파에 속하는 미국인의 대부분에게 공통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어떤 정치적인 기분과 공모관계에 있다'라고 합니다[손탁, 위의 책].
손탁의 「On Photography」의 주된 내용은 물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미지의 범람에 따른 생생한 감각의 결여의 문제입
니다.
하지만 그 책을 관통하는 내용은 60년대 미국진보진영과 중류계급의 윤리의식과 그것이 현대문명의 제 양상과 엮어내는
복잡하고 회고적이고 퇴행적인 문제입니다.
손탁은 사진을 비롯한 영상이 인간을 지육(智育)함으로써 파생되는 양상들에 대해 냉정하게 서술합니다.
1945년 손탁이 열 두 살이었을 때, 그녀는 산타 모니카의 어느 책방에서 우연히 다하우 유태인 수용소의 학살 광경을 찍은 베르겐 벤젤의 사진을 접하게 됩니다.
이 사진은 그때까지 동화 속에 유령이 있고 세상이 즐겁고 명료한 것이라고 여기던 소녀 손탁의 인생을 두 동강이로 나눠
버렸습니다.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무너졌다[손탁, 위의 책]."
하지만 그 충격은 손탁 자신도 밝혔듯이, 수 년 정도밖에는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도처에는 충격적 영상이 이제 '포화점'에 이르렀습니다.
"사진은 무엇인가 낯설고,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 주는 경우에서만 충경을 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름을 할 때 판돈이 자꾸 올라가는 것처럼, 충격을 담은 사진이 자꾸 퍼져 나가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전율을 느끼지 않게 된다[위의 책]."
이 지점에서 손탁은 비판적인 태도를 분명히 합니다.
사진은 하나의 매체에 불과하고, 매체 자체가 진보적이거나 윤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진은 도덕적 입장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의 도덕적인 태도를 강화하고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편집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한 목적에 복무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에 의한 현실묘사는 폭로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은폐시키는 쪽이 많은 것이다[위의 책]."
사진과 영상의 충격적이고 신기한 것, 생경한 것으로 다가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상의 힘과 함께 세계와 사물의 생생함 또한 사라집니다.
2. Camp
수잔 손탁이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복잡하고 방대한 세계입니다.
이 세계를 어떻게 개괄할 수 있을지 사실 막막합니다.
손탁이 문명(文名)을 날리기 시작한 건 그녀가 31세 때인 1964년 <파르티잔 리뷰>에 <캠프에 관한 노트(Notes on 'Camp')>를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캠프'라는 말은, 손탁의 이 글에 대해 모 메이어 같은 퀴어(queer)진영의 평자들이 공격한 것처럼[이영철이 엮은 「21세기
문화 미리보기」에 실린 손탁의 <캠프란 무엇인가>와 모 메이어의 <손탁의 입장에 대한 비판 : 캠프의 담론을 수정한다>], 애당초 동성애적 감성과 실천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탁은 자신의 글에서 '캠프'를 동성애적 영역을 넘어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대적인 어떤 감성을 가리키는 말로 파악했습니다(이에 대해, 모 메이어 같은 이들은 손탁이 캠프라는 말의 의미의 외연을 동성애 정체성의 바깥으로 확장시켜 버린 셈이라고 비판합니다).
손탁에 대해 정리한 강준만 교수는 '캠프'가 원래 호모들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슬랭을 [손탁이]일반화시키고자 시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강준만, 「이미지와의 전쟁」중 <수전 손택과 '감수성의 문화'>].
손탁은 캠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58개의 단상으로 나열합니다.
그녀가 말한 대로 감성이나 취미(taste)는 '체계의 틀 속에 밀어 넣을 수 있거나 서툰 증명도구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손탁, 위의 글].
손탁이 설명하는 캠프는, 역사적으로는 19세기 유미주의의 계승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자연적인 것, 즉 기교와 과장에 대한 사랑입니다.
내용보다 스타일을 강조하고 정치적인 것에 무관심한 것입니다.
댄디(dandy)가 문화의 문제에 있어서 19세기에 나타난 귀족 대용물이듯 캠프도 현대의 댄디즘입니다.
캠프는 대중문화 시대에 어떻게 댄디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캠프 감성의 중요한 요소를 구축한 사람은 (손탁이 그의 단상을 줄곧 인용한)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캠프는 억누를 수 없는, 사실상 통제되지 않은 감성에서 비롯되지 않은 듯한 어떤 것입니다.
성실함이나 고지식함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떤 예술작품이 탄탄한 서술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면 그것은 캠프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들은 대부분 드라마라는 면에서 성공적이기 때문에 캠프가 아닙니다.
반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라도 그의 전형적인 경향에서 다소 비껴난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 1. 2)」은 캠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 아르 누보 미술은 캠프지만 아르 누보에 영향을 준 블레이크의 소묘와 회화는 캠프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캠프가 된 예술은 애초 자신이 캠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자기들 딴에는 진지하고자 했던 것들 중에 캠프를 찾을 수 있습니다(반면 고의로 캠프가 되려 했던 시도들은 대개 부자연스럽고 서툰 결과만을 낳는데 손탁은 히치콕의 영화들 몇몇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르 누보와 바우하우스는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비참여적인, 진지하지 못한,
'유미주의자의' 시각을 시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들 상반된 요소의 공존 - 정치적, 도덕적 내용을 추구하려는 성향과 그럼에도 그것과는 상관없는 듯 드러나는
유미주의적 취향의 공존 - 에 대한 손탁의 예리한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르 누보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모리스의 진지함과 낭만적인 성향에 대해 손탁은 '캠프'라는 용어를 통해, 거의
스쳐 지나가는 듯 하는 중에도 심도깊은 이해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 Against Interpretation
1966년 손탁은 평론집 「Against Interpretation」을 출간합니다(<Notes on 'Camp'도 여기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이 책의 타이틀 에세이 <Against Interpretation>에서 손탁은 예술작품의 내용에만 집착해 그것을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일종의 부르주아적 속물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비평적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손탁은 해석의 속물주의가 문학에서 가장 심하다면서, 음악·영화·무용·건축·회화·조각 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모범적 예술은 실제로 내용이 훨씬 적으며, 도덕적 판단에 대해 더욱 냉담한 것이라고 합니다.
해석하려는 계획은 대개 반동적이고, 마치 자동차나 중공업의 매연이 도시의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처럼 예술에 대한 해석의 범람은 우리의 감수성에 독이 해악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는 육체적 활력과 감각적 능력의 희생 위에 지성만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전형적인 모순에 사로잡혀 있으며,
예술에 대해 지성이 품은 증오가 해석이라는 행위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해석이란 세계 자체에 대한 지성의 복수이며 해석한다는 건 대상을 빈곤화시키고 세계를 위축시키는 것입니다.
현재의 문화의 기반은 일종의 과잉, 생산과잉이고 그 결과 우리의 감각적 경험은 점차로 민감성을 잃고 있습니다.
현대생활의 물질적 충만과 인구과잉 등의 제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우리의 감각적 능력을 둔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금의 비평의 임무는 우리의 감각, 우리의 능력이 처산 상황을 살피고 평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술에 대한 모든 해설과 논의는 예술작품을 - 그리고 보다 포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 그 자체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삼아야 합니다.
비평의 기능은 작품 그 자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지, 작품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해석학' 대신에 감각적이고 (거의) 표면적인 '에로틱스(관능미학)'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손탁의 「Against Interpertation」(일역본) 과 강준만의 「이미지와의 전쟁」을 참조].
4. 해방된 감성?
그녀의 글을 읽고 있자면 그녀는 그야말로 감성이 해방된 인간, 분방한 여성인 듯 보입니다.
실은 그렇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감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그녀의 언어는 대단히 명료하고 정제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매혹적인 건 그녀가 드러내는 '투명한 지성'때문입니다.
즉 감성적일 것을 주장하는 그녀는 결코 감성에 자신을 그대로 내맡기질 않습니다.
그녀에게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기질이 엿보이고, 실제 그녀 자신은 다소 뻣뻣해 보이기까지 할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허버트 미트갱이 1980년에 그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읽고 이런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트갱의 질문 : 당신이 쓴 모든 형태의 저술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손탁 : (즉석에서 무뚝뚝하게)문학과 사회죠.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대답의 내용만으로도 매우 팍팍한 느낌을 줍니다. 미트갱은 그녀가 아침 식탁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마치 중요한 성명서라도 발표하는 것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허버트 미트갱, 「작가를 찾아서 : 세계 대문호 66인과의 만남」].
「Against Interpertation」의 일본어 번역자 다카하시 야스나리(高橋康也)가 이 책에서 비교적 최근인 1994년에 손탁을 도쿄에서 만난 이야기를 짤막하게 덧붙이고 있는데, 슬몃 웃음이 나오더군요. (1994년으로부터)10년여 전 도쿄에서 만났을 때와 비교했을 때, 손탁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신랄하게 파고드는 그 날카로움은 여전했지만 그것에 덧붙여서 일종의 호쾌함과
유머가 갖춰진 것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1994년이라면 손탁의 나이 60이 넘었을 때입니다.
그 나이에야 비로소 유머가 붙었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젊었을 때엔 어땠을지 거꾸로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저는 당신이 이야기하듯 그 농담을 잘 그리고 그대로 전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그 농담을 끝냅니다. [...]
그러나 전 제가 이 농담을 얘기해 줌으로써 당신이 느낀 만큼의 즐거움을 느꼈는지 의구심이 생깁니다.
저 자신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은 기술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전 재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단어들을 가지고 말을잘 둘러댑니다.
그건 단어를 사용하는 제 나름대로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농담은 절대로 저의 것이 아닙니다. [...]
농담에는 농담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펑 하고 나는 소리처럼, 또는 웃음, 재채기처럼 퍼집니다. 그건 오르가즘 같고, 작은 폭발,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나는 여기 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농담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충분합니다. 저는 명랑하고 그 농담을 전해 줄만큼 표현력이 있습니다." - 손탁의 소설 「화산의 연인(The Volcano Lover)」에서)
손탁의 비평활동과 지적 여로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양상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감성과 그것을 견제하고 조직화하는 - 물론 그러기에 앞서 감성과 모순을 일으켜 충돌했을 - 그녀의 어떤 이성적 기제들.
"나는 캠프에 강하게 이끌리지만 동시에 그와 맞먹을 정도로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또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감각이 마음 깊이 녹아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것을 분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탁의 <캠프에 관한 노트>(일역본)]."
하지만 다른 쪽에서 손탁은 '자신이 숭배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글을 쓰지 않으며 글을 쓸 때엔 열성과 당파성을 갖고 쓴다'라고 고백했습니다[강준만, 위의 책].
또 그녀의 사상의 엄격함은 늘 이상하게 그리고 흔쾌히 감각과 취향으로 빠져드는 것에 의해 완화되어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같은 책].
5. 스타일 그리고 나머지
<Against Interpretation>의 도입부에서 손탁은 자신이 그리도 열광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천박한 사람들뿐이다.
세계의 신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 속에 있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의 「거울의 역사」에 인용된 시몬 베유의 글을 인용하면서, 손탁에게서 한 발짝 접을까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거울을 보고는 자신이 바로 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못생긴 여인은 그게 다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손탁은 매우 아름다왔기 때문에 그녀의 젊었을 적 별명은 '전위예술의 나탈리우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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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의 윤리 제시한 지성
행동하는 지식인 수잔 손탁 타계
김윤은미 기자
2005-01-03 01:05:55
미국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이자 문화 비평가 겸 작가인 수잔 손탁(71)이 28일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 문화의 퍼스트 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등 그녀에게 붙어 다니는 현란한 수사법들은
하나의 코드로 자리매김한 그녀의 문화적 위상을 잘 표현해 준다.
수잔 손탁은 1960년대 미국 문단에 등장한 이후 철학과 예술, 문학 비평부터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안목과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을 선보여 영어권 지성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같은 화려한 수사법이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는 문장 하나로 그녀의 경력을 정리해버리면 오히려 그녀
사상의 진면모를 가릴 소지가 있다.
수잔 손탁은 '진지함의 광신자'라는 스스로의 표현에 걸맞게 나름의 독자적인 윤리학의 소유자다.
그녀가 미국 문단의 일반적 경향과는 반대로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미학저서부터 정치 사회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주장하는 '투명성'이라는 윤리적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로 내놓은 문화 비평 에세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그녀는 현대의 해석들이 본 텍스트와는 멀어진 채 이론들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잔인한 호전적 행위'라고 일갈한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반짝임을 보자. 더 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감수성을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투명성'이라는 말 그대로 수잔 손탁은 대상과 접할 때의 생생한 감각을 중시한다.
그녀의 예술 비평들이 4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읽어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그녀의 피부에
와 닿는 듯한 투명한 감각적 경험에 의지해서 독창적으로 사유를 펼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두 번째 에세이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에서 그녀는 포르노그래피를 사회사적/심리학적 현상/예술의 양식으로 구분한다.
심리학적 현상으로 볼 때 포르노그래피의 광대한 유통은 성적 발육 부전의 사춘기적 현상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미숙한 사회의식을 보여주지만, 포르노그래피로 구분되는 적당한 명칭이 없는 문학적 풍조는 인간의 극단적인 의식 상태를 보여
주는 예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그녀의 작품은 알려진바 별로 없지만,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Alice in Bed' 는 수잔 손탁이 쓴 최초의 희곡으로 <여인의 초상> 등을 쓴 유명한 소설가 헨리 제임스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누이동생인 앨리스 제임스를 주인공으로 한 페미니즘적 작품이다.
앨리스는 가부장적 아버지 때문에 오빠들과는 달리 자신이 가진 재능을 오로지 숙녀가 갖추어야 할 '예능' 정도로밖에는
발현할 수가 없었는데, 죽은 후에야 에세이나 일기가 알려지면서 독특한 개성을 인정받은 여성이다.
오빠들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내적인 억압으로 인해 앨리스는 신경증을 비롯
해서 여러 가지 병에 시달렸는데, 손탁의 희곡은 앨리스가 지녔을 법한 환상과 꿈을 픽션으로 그려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투명성'을 온갖 은유가 난무하는 질병의 영역으로 확대한 에세이다.
그녀는 암과 폐라는 질병이 시인·철학자들의 작업에서 어떻게 은유되고 있는지를 살핀다.
질병의 은유는 환자의 상태나 질병의 증상, 장기에 대한 선입견을 참조해서 형성된다.
그래서 실제로는 피를 쏟아대는, 징그럽기까지 한 폐병이 영혼의 병이라는 어이없는 은유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는 질병을 둘러싼 이미지가 질병과의 투쟁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질병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런 그녀이니 만큼 사회 현안에 실천적으로 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잔 손탁은 1988년 서울에서 김남주, 이산하 시인 등 구속된 문인들의 석방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으며, 이란 작가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로 이란 종교당국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미국 문학계의 항의운동을 주도했다.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에 반대하는 뜻에서 전쟁터인 사라예보에 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9.11 사태 후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며 전쟁을 부추기는 부시 정권을 비판하고 미국 국민들에게 사태를 정확하게 바라볼 것을 주장했다.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출간한 유작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이른바 '재난의 상상력'으로 지탱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녀는 전쟁 사진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검열되어 왔는가를 추적하면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고 고통을 추상화하고 미학화하는 이미지들을 질타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