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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 18회. '사비시대의 타임캡슐,백제 대향로'

작성자솔롱고|작성시간13.11.27|조회수75 목록 댓글 0

kbs 역사스폐셜 16회 '사비시대의 타임캡슐,백제 대향로 ' (1999.03.06.)

 

 

18부 : 사비시대의 타임캡슐,백제 대향로

사비시대의 타임캡슐,백제 대향로

방송일: 19990306 조회수 : 4262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역사스페셜 (제 18 회) 99년 3월 6일(토) 방송

[사비시대의 타임캡슐, 백제 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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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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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1면 톱 (15") < 윤전기 보다가 >

93년 12월 23일.

주요 일간지들은 극히 이례적인 1면 톱기사를 게재했다.

정치, 사회 분야의 기사를 제치고 백제 대향로 출토 기사가 1면 머릿기사를 차지한 것이다.

#. 향로 발표

#. 향로 T.U (7") 최초로 발견된 백제시대의 대형향로는 전문가 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 박물관 전시 F.S <보다가>

- 향로 보는 사람들 Tight (24")

이듬해 4월

국립 중앙박물관은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박물관 역사상 최초로 한가지 유물만으로 열린 전시회였다. 12일 동안 찾아온 관람객은 6만 8천 여명.

백제 대향로가 남긴 또 하나의 기록이다.

#. 향로 (10") 백제 대향로는 과연 어떤 유물일까?

향로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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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TITLE 『사비시대의 타임캡슐, 백제 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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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

#. MC 등장

'백제 대향로의 발견은 해방이후 고고학 최대의 성과다.'

'향로의 발견으로 백제의 역사를 다시 써야만 한다.'

향로가 출토된 직후 백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한 말입니다.

백제 대향로는

신문의 1면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또 국립 중앙박물관 역사상 처음으로

한 가지 유물 만으로 특별전시회를 열게 했습니다.

#. CG, 향로 실물 크기로 솟는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이 바로 실물 크기로 재현한 백제 대향롭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모습을 기대하셨을텐데요.

지금 이것은 발굴 직후의 원형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기 때문에 군데 군데 금도금이 벗겨진 구리빛을 하고

있습니다.

#. 향로 F.S 향로는 크게 3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 용 꿈틀 거리는 용의 모습으로 만든 여기가 받침대,

- 연꽃 몸체 그 위에는 막 피어나는 연꽃 모양으로 몸체를 만들었습니다.

향이 담기는 부분입니다.

#. 뚜껑 그리고 향이 피어 오르는 뚜껑과 꼭대기의 새장식, 이렇게 크게 3부분입니다.

#. 향로 + MC 간단하게 훑어 보기만 했어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향로에 빈 공간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뭔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를 한 번 봐 주십시오.

#. 머리감는 인물 Z.O

폭포수가 떨어지고, 그 아래 시냇물에 어떤 사람이 벌거벗은 채로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머리를 감고 있군요.

#. 개 끌고 산책하는

그런가 하면, 여기에는 이런 모습도 있습니다.

예, 어떤 사람이 개를 한 마리 앞세우고 산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군요. (재밌죠?)

#. 낚시하는 사람 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연못가 바위턱에 앉아서 한가하게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있습

니다.

무엇을 낚았을까 궁금하군요.

우리는 그동안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생활모습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향로에는 신기하게도 1300년 전의 백제인의 생활모습이 담겨있습니다.

#. 향로 + MC 향로가 발견되면서 관련학자들이

'백제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향로를 만든 솜씨가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 마치 1300년 전의 백제인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1300년 동안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백제 대향로를 통해서 1300년 전의 백제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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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

#. 부여 박물관 외경

#.'향로' 다가간다 (10") 백제 대향로의 발견은 기적에 비유된다.

#. T.U (13") 13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유물의 손상을 막기위해 진품의 촬영은 극히 제한돼 있다.

#. 복제품 (10") 우리는 진품 대신 복제품을 촬영하기로 했다.

#. 향로 T.U (15") 비록 복제품이지만, 진품의 본을 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미세한 선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닮은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 봉황 머리

#. 뚜껑 PAN (10") 향로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식이 조성돼 있다.

육안으로는 일일이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 접사 카메라 설치 (14")

우리는 특수 카메라를 이용했다.

이 카메라는 촬영 대상의 1밀리미터 앞까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하기 힘든 작은 문양도 영상에 담을 수 있다.

#. 뚜껑 PAN (14") 향이 피어오르는 뚜껑 부분을 근접촬영한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 많은 등장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악사 PAN (13") 가장 윗부분, 새장식 바로 아래에서 다섯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 완함 (10") 악기의 모습은 물론

악사의 표정까지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 뚜껑 PAN (8") 뚜껑부분은 산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 능선 (14") 완만한 능선의 안 쪽에 여러 개의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는 빗금을 새겼다.

실제로 산을 보는 것처럼 부피를 느끼게 한다.

#. 임영주 INT "그러한 산악 형태가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이어져 오지만

..............

새로운 양식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 사람 PAN (14") 향로에는 사람도 등장한다.

#. 명상 산과 산 사이, 또는 계곡 사이를 한가로이 오가면서 도를 닦는 선인들의 모습이다.

#. 기마 인물상 (5") 실제 생활을 묘사하기도 했다.

#. PAN (6") 최초로 발견된 백제시대의 기마인물상은 산과 계곡을 달리면서 짐승을 사냥하고 있다.

#. 호랑이 (5") 기마인물상이 사냥했음직한 호랑이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

#. PAN (5")

#. 멧돼지 (6") 또 계곡 사이로 도망치듯, 고개만 내민 멧돼지도 보인다.

#. 원숭이 / 코끼리 (18")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땅에 살지 않는 동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원숭이와 코끼리가 등장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 이도학 INT "백제 성왕때 겸익이 뱃길을 이용해서

..................

백제인의 세계관 속에서 남방동물의 의미를 찾아봐야"

#. 폭포 / 영지? / 바위 (16")

향로는 백제인들이 살고 싶어했던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 곳은 사람과 동물은 물론., 그들이 깃들어 사는 자연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땅 위의 세상이다.

#. 몸체 PAN (9") 뚜껑과 분리되는 아랫부분은 향이 담기는 몸체에 해당한다.

#. 몸체 TIGHT PAN (8")

끝 부분을 맵시있게 살짝 치켜 올려서 막 피어오르는 연꽃잎의 생동감을 표현했고

#. 몸체 PAN 짐승들 (13")

꽃 잎 위와 사이 사이에는 짐승들을 새겼다. 몸체에는 주로 물과 관련된 짐승이 등장하는 점이

#. 수달 (5") 뚜겅과 다르다.

#. 향로 F.S (5") 향로에 표현된 조화로운 세상은 한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몸짓으로 떠 받들고 있다.

#. 용 Z.I (10")

#. 발 (10") 용은 네 발 중에 세 개는 바닥을 딛고 있고, 나머지 앞발 한 개는 치켜 든 형태로 표현했다.

한 쪽 발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 정양모 INT "용이 이제 받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

거기에 더해서 앞발을 들고 있으니까 힘이 더해지고"

#. 앞 발 없애는 CG (14")

치켜 든 앞 발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균형이 흩어져 불안해 보인다.

- 앞 발 없어지는

- 다시 생기는 백제인들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도 치밀하게 계산했던 것이다.

#. 그림 F.S (4") 복잡하게 만든 용 받침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린 것이다.

#. 발 (10") 용의 몸체와 네 발을 둥근 형태로 배열해서 균형을 잡았다.

#. 연꽃 (8") 발과 발 사이에는 여섯 잎의 연꽃을 새겨 넣었다. 백제장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구름 (5") 나머지 공간은 구름으로 채웠다.

받침의 기능과 비상하는 용의 힘찬 모습을 더해주는 장식이다.

#. 그림 F.S (6")

#. 펼친 그림 (10")

#. 정 양모 INT "실제로 용이라든지 또는 그 위에 봉래산 봉황을 보시면

살아 숨쉬고 있어요.

생명력과 생동감을 지니고 있다."

#. 새 Z.O (10") 백제 대향로.

그것은 단순한 향로가 아니다.

사비시대 백제의 문화 역량이 한 데 모여서 빚어낸 또 하나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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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

#. 향로 펼친 그림 + MC 보다가

1300년 전의 백제인들이 향로에 빚어 놓은 산과 계곡,

상상의 동물과 신선들을 만나본 느낌이 어떠십니까?

화폭위에다가 손으로 그린 것처럼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게 묘사한 그림은 화폭위가 아니고 쇠를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기는 군요.

#. MC + 향로 1300전의 백제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화려하고 특별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 향로 + MC

- 향로 만지면서 거의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정교한 등장물들이 새겨져 있는데요.

마치 단단한 쇠를 떡 주무르듯이 자유자재로 다룬 것처럼 보입니다.

- 산 만약에 조각을 했다면 이렇게 했을 겁니다.

<실제 깎는 것처럼 >

이렇게 튀어나온 산봉우리는 칼로 깍은 다음에 이런 식으로 펴서 만들었을 겁니다.

- 동물, 악사 또 이렇게 돌출된 부분은 따로 조각을 해서 만든 다음에 몸체에 붙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향로의 재료가 청동이라는 데 있습니다.

청동은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오리거나 펴는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향로는 과연 어떤 기법으로 만들었을까요?

백제 장인들의 솜씨를 느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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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 보존과학실 찾아가는 (10")

#. PAN (10") 93년에 출토된 백제 대향로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석이 끝나지 않았다.

그 만큼 많은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 향로 (3")

#. 서가 (10") 그동안의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는 박물관의 특별허가를 얻어서 미공개 자료를 최초로 입수할 수 있었다.

#. X-선 사진 (30") < 현장음 듣다가 >

최초로 공개되는 X선 분석사진은 향로를 만든 방법을 엿보게 해준다.

향로에서는 용받침과 몸체, 뚜껑과 새장식 등 세군데의 연결부분을 제외하고는

단 한 군데도 이어 붙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74개의 산봉우리와 18명의 사람, 백가지가 넘는 등장물들은 주물법을 이용해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 이호관 INT "밀랍형의 틀을 만든 다음에 석고나 진흙을 부어서

................

이렇게 저희들은 봅니다."

#. 새 Z.I (10") 복잡하고 화려한 향로를 주물로 제작했다는 것은

당시 백제의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X선 사진 (12") X선 사진을 분석해 보면 당시의 주물 기법을 추정할 수 있다.

#. 컴작업 (5")

#. 모니터 TIGHT (7") 정교하고 섬세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벽한 형태의 틀이 필요했을 것이다.

#. 실랍법 CG

- 주형만들기 향로의 원형은 부드러운 밀랍을 이용한 '실랍 주조법'으로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 먼저 부드러운 밀랍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산모양의 밀랍을 덧 붙인다.

- 장식 붙이기 산이 완성되면 따로 만들어 둔 장식을 붙이고 틀이 완성되면 그 위에 주물토를 입힌다.

- 가열 그리고 용기에 담아 가열하면 밀랍은 녹아 내리고 주물토 사이에 빈 공간이 남아 거푸집이 완성된다.

- 예열 그런데 쇳물을 붓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온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가스가 생기고 매끈한 형태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백제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열방식을 이용했다.

#. 오문계 INT "기포가 생기는 이유는 거푸집과 쇳물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

그러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시료 담는 (5") 향로를 만들었던 백제시대, 7세기 후반에

#. 컵 내부 (5") 합금기술이 가장 앞선 나라는 중국이었다.

#. 플라스크 (3") 그 당시, 구리에 주석을 혼합하는 기술은 최첨단의 기술이었다.

#. 원자 흡광분석기 (8") 보존과학실 팀은 향로 안쪽에 붙어있는 주물똥을 떼어내

#. 모니터 화면 (7") 합금의 재질을 분석했다.

#. 분석결과 Z.O (5") 향로의 주성분은 구리와 주석으로 밝혀졌다.

백제인들도 당시 최첨단의 합금기술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성분표 PAN (10") 그런데 분석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아연 성분이 검출됐다.

#. 이호관 INT "아연 성분이 아주 미량이지만 나오는데

.................

섬세한 문양을 재현이 됩니다."

#. TIGHT, T.U (8") 향로에 표현된 산의 능선은 마치 손으로 빚은 것처럼

#. 뚜껑 PAN (9")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아연성분이 첨가되면서 부드러운 성질이 생기기 때문에

#. 돋보기 보는 (5") 섬세하고 정교한 문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 현미경 사진 (10") 향로의 표면에는 10에서 20마이크론 정도의 일정한 두께로 정교하게 금도금이 돼 있다.

#. 수은 섞는 (10") 당시의 도금기법은 수은아말감법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곱게 갈아낸 금가루를 수은과 섞는다.

#. 가열 (6") 이를 가열해서 녹이면 금과 수은의 혼합물이 된다.

#. 수은 짜내는 (5") 혼합물을 한지에 넣고 짜면 남아있는 수은은 빠져 나오고 반죽 형태로 남는데,

#. 손으로 바르는 (10") 이것을 청동의 표면에 손으로 직접 골고루 바른다.

#. 가열 (12") 마지막으로 약한 불을 가하면 수은성분은 증발하고 금만 남아서 영롱한 빛을 띄게 된다.

#. 향로 (8") 첨단기술과 최고의 기술이 결합된 백제 대향로.

1300년 동안 땅에 묻혔으면서도 완벽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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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3.

#. MC < 향 피어오르는 멋진 향로 감상하다가 >

백제인들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은 향로가 발견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중에 하납니다.

15세기 초,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는 그 글자체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데요

아연을 섞으면서 부드러운 성질이 생겼기때문에 쇠로 만들었으면서도 마치 손으로 쓴 것처럼 아름다운 글자체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천 년이나 앞선 백제의 장인들이 아연을 섞어서 아름다운 곡선을 연출했다는 사실은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 향로 + MC 지금까지 우리는 향로에 담긴 화려한 그림들과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제작 기법을 알아봤습니다.

이렇게 향로를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알려지지 않았던 백제시대의 모습을 새롭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백제인의 미의식이나 뛰어난 과학기술 뿐만이 아닙니다.

향로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사비시대 백제의 역사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역사가 담겨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먼저 이 향로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그것은 향로에 담긴 역사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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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백마강 팬

- Z.I (10") 향로의 주인을 밝혀낼 단서는

백마강 북쪽 왕흥사 터에서 찾을 수 있었다.

#. 왕흥사 터 (8") 왕흥사는 부여에 도읍을 정한 사비시대에 백제왕실의 사찰이었다.

#. 기단석 기단석만 남은 절터가 백제왕실의 중요한 사찰로 밝혀진 것은

#. 절터 PAN (7") 역사서에 남아있는 단 한 줄의 기록이 실마리가 됐다.

#. 삼국사기 (16") 삼국사기 권 27, 백제 무왕 35년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왕흥사가 낙성되었다. 왕이 배를 타고 절에 가서 행향하였다.'

'행향'이라는 말은 백제 왕과 향로의 관계를 밝혀준다.

#. 이도학 INT "바로 이 행향이라고 하는 것은

...............

백제 국왕의 권위, 권능. 이런 것을 상징해주는 그런 성격도 한꺼번에 지니고 있지 않았겠는가"

#. 쌍영총 벽화 (18") 삼국시대에 향을 피우는 것이 단순히 제사용이 아니라는 사실은

고구려 쌍영총 벽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행렬의 맨 앞에 향로가 있는 것처럼 백제왕의 '행향' 모습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 절터 PAN (5") 그런데 왕의 향로가 도성이 아닌 외곽지역 능산리에서

발견된 사실은 향로의 주인과 용도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 바닥 PAN (8")

#. 바닥 TR (5")

#. 절터 사진 (5") 2년 뒤, 향로가 출토된 지점과 불과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 발굴 사진 (6") 이곳이 백제시대 왕실의 절터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 사리감 (10") 목탑의 흔적이 드러났고, 심초석 부근에서 부처의 사리를 모신 함이 발견됐다.

#. 글씨 (8") 사리감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백제 창왕 13년, 즉 서기 567년에 정해공주가 아버지 성왕을 위해 이 절을 짓고 사리를 바쳤다'는 것이다.

#. 절터 사진 (4") 사리감이 출토되면서 발굴조사는 활기를 띄었고

#. 절터 복원 CG (12") 결국 1탑 1금당이 직선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절터로 밝혀졌다.

그러면서 백제 대향로가 출토된 장소가 이 절의 부속건물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 능 PAN 절 (15") 그런데 절이 있던 장소는

왕릉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고분 바로 옆이다.

왕릉과 절, 절과 향로의 관계는 향로의 주인과 용도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 최몽룡 INT "그것이 바로 능산리 옆에서 나왔다는 것은

.................

결국 우리가 신물로서밖에는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절 CG, 향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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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4.

#. MC 향로는 언제 누가 사용하던 것일까?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는 단순히 제사에서만 사용했던 게 아니라 왕이 참가하는 중요한 행사에서 의식용으로 사용하던 상징물일

가능성과

둘째, 왕능에 딸린 절에서 돌아가신 왕들을 제사지낼 때 사용하던 제기일 가능성.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쉽게도 여기까지 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향로가 사비시대에 제왕이 사용하던 귀한 물건이고 실제 향로를 사용했던 왕은 사리감에

새겨진 글씨에서 밝혀진 것처럼 창왕이후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 가운데 한 왕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백제시대에 왕이 사용했던 귀한 향로가 땅에 묻히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 발굴당시 사진

이 사진을 유심히 봐 주십시오.

1993년 12월 22일 저녁,

향로가 발견될 당시의 광경입니다.

- 사진 TIGHT

얼핏 보면 그냥 흙 속에 묻힌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닙니다.

- 구덩이 CG

향로는 길이 120, 폭 70, 깊이 60cm 정도의 물 웅덩이에서 출토됐습니다.

- MC 앉아서 들여다 본다

웅덩이의 안 쪽을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바닥에 잘게 부순 토기조각이 깔려 있고, 또 기와가 여러 겹으로 덮여 있군요.

그냥 우연히 땅에 묻힌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군요.

#. 사진 + MC 백제 왕이 사용하던 귀한 향로를

누군가 일부러 땅에 파 묻었다는 얘긴데요.

그렇다면 누가, 왜, 왕의 향로를 이곳에 감춰두었을까요?

지금부터 향로가 묻히게 된 미스터리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백제의 감춰진 역사가 드러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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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 발굴현장 PAN (17") 백제 대향로는 하마터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원래 이곳에는 능산리 고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 아궁이 TR (10") 그러나 백제시대의 기와가 대량으로 출토되는 상황에서 조사단은 발굴을 포기할 수 없었고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막바지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향로가 발견된 것이다.

#. 출토지 / 사진 (12") 향로는 아궁이 바로 옆의 물 웅덩이에서 출토됐다.

진흙과 범벅인 채로 진공상태가 됐기 때문에 부식을 막을 수 있었다.

#. 판자 / 기와 (12") 또 웅덩이 안 쪽에 나무 판자로 벽을 잇대어서 만든 흔적과 그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포개진

기와가 드러났는데, 향로의 파손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 보인다.

비록 응급조치지만 이런 인위적인 장치들 때문에 향로는 1300년 동안 완벽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절터 PAN (5")

#. 김 정완 설명 < 현장음 >

#. 유적지 사진 (5") 유적지의 상태를 종합한 결과 이 곳은 공방, 즉

#. 화로 CG (6") 금속제품을 가공하던 장소로 결론이 났다.

#. 박물관 (5")

#. 광배조각 F.S (5") 향로와 함께 출토된 유물의 제작 수준은

#. PAN (11") 왕실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귀한 제품들이다.

#. 금동장식 (6") 이 절에 딸린 공방이 수준 높은 공예품을 만들었고

#. 풍경잎 (6") 기술 수준도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 절터 CG F.S (20")

- 절 PAN 향로를 일부러 목곽 수조에 감춘 사람도 공방에서 일했던 장인 중에 한 사람 이었을 것이다.

수준 높은 공예품을 만들었고, 금동제품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임시로나마 왕의 향로를 잘 보존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했을 것이다.

#. 수조 CG (12") 문제는 왕의 향로를 응급조치로 목곽수조에 보관해야만 했던 상황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 최몽룡 INT "가장 그 신물로서 중심되는 유물, 그것이 이제 서기 660년에

..................

후일을 기약을 하구서 갔을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 나성 PAN (12") 그러나 기약했던 훗날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

서기 663년 사비도성은 당나라 군대에 의해 완전히 불에 타 사라졌다 왕실의 원찰도 그 때 소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 김 정완 설명 <현장음>

#. 구덩이 CG (10") 백제왕의 상징이었던 향로는 잿더미에 묻혔고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 1300년 동안 깊은 잠을 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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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5.

#. MC 서기 663년 백제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백제에 관한 기록이나 유물은 삼국 중에서도 가장 적은 편입니다.

오늘날 백제를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 향로 + MC

기적적으로 발견된 백제 대향로는 사료와 유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백제사 연구자들에게 다양하고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줬습니다.

#. MC + 향로 C.U

#. 봉황, 악사 C.U 향로 윗부분에 묘사된 다섯 사람의 악사가 그 대표적인 경웁니다.

향로에 담긴 이런 구체적인 백제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왕국 백제를 생생하게 다시 만나는 대목인

것입니다.

#. MC 다섯명의 악사가 생생한 표정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요

- 펼친그림 그림을 좀 더 알기 쉽게 펼쳐 봤습니다.

#. 봉황, 악사 물론 이 향로에 등장하는 악사는 현실의 악사가 아닙니다.

전설에 의하면 나라에 태평성대가 열리면 봉황새가 날아들고, 또 천상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한다고 돼있습

니다.

#. 악기 TIGHT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것은 향로에 등장하는 악기만큼은 백제시대에 사용하던 악기를 그대로 본 떠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백제시대의 악기에 관해서는 일본서기와 같은 다른 나라의 역사서에 몇 가지 이름이 보일 뿐 실제 모습

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백제시대의 악기를 토대로 한가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그것은 1300년 전의 백제인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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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 봉황 T.D 악사 PAN (20")

향로의 꼭대기에는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그 주변에 다섯 마리의 새가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향로에 등장하는 악기가 백제시대에 실제로 사용한 악기라면 백제시대의 음악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거문고 (14") 향로의 악기 중에서

현재 사용되는 악기와 가장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은 거문고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악기다.

#. 송방송 INT "거문고로 보는 근거는 악기를 놓고 연주하는 자세가 특이합니다.

..........................

향로에 나오는 현악기는 무릎에 놓았기 때문에 거문고로 봐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비암사 탑비 CG (15") 백제 멸망 직후에 제작된 또 다른 악기 조각에서도

향로의 거문고와 똑 같은 모습이 발견됐다. 향로의 악기는 거문고의 원형이 분명해 보인다.

#. 국악박물관 외경 / 실내 (14")

거문고를 제외한 4개의 악기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연주법을 모르는 악기들이다.

그러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있다.

#. 송혜진 INT "지금 여기 나와있는 다섯 가지 악기는

......................

충분히 유추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 전시실 < 현장음 >

#. 완함 (20") 이것은 '완함'으로 전해지는 악기다.

고구려 벽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당시에 널리 연주되던 악기로 추정된다.

동그란 울림통에 가늘고 긴 목, 3개의 줄을 가진 악기로 미국의 벤죠와 똑 같은 모양이다.

#. 월금 (10") 완함은 조선시대까지 연주했던 월금의 원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월금의 연주법도 전해지지 않는다.

#. 3S

#. 향비파 (6") 비파는 월금이 변형된 악기다.

그렇다면 현재 연주되는 비파의 원형은 월금이고 또 월금의 원형은 완함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배소 (10") 배소라는 이름의 이 악기는 놀랍게도 서양의 팬플륫과 똑 같이 생겼다.

#. 봉소 (10") 배소도 사라진 악기다. 봉소를 거쳐 생황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 생황 (4") 추정된다.

#. 소 (12") '소'는 기다란 형태의 관악기로 지금의 단소나 퉁소의 원형으로 보인다.

입술에 붙이지 않고 떨어뜨려 연주하는 모습이 다르다.

#. 좌고 (10") 냄비처럼 엎어 놓고 치는 이 악기는 좌고다. 형태는 다르지만 연주법은 지금의 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5악사 F.S (4")

#. 송방송 INT "그 다섯 악기가 관악기 2, 현악기 2, 타악기 1

최소한의 실내악 편성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 5악사 PAN (7")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음악을 연주했을까?

이제 음악의 원형을 찾아 볼 차례다.

#. 고려사 악지 (12") 현재 백제시대의 음악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고려사 악지의 기록에 '선운산가', '무등산가', '방등산가', '정읍'등 지역의 이름을 딴 4곡의 제목만 남아있

을 뿐이다.

#. 악학궤범 (12") 그런데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백제음악의 원형을 밝혀낼 수 있는 단서가 보인다.

지금도 연주되는 궁중음악 '수재천'의 또 다른 이름이 '정읍'이라는 것이다.

#. 한 명희 INT "전통음악에서 가장 백미로 손꼽히는 수재천 음악이 있는데요.

................

행여 백제시대 정읍사에서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따라서 정읍은 수재천의 모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가 상정해 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 비파 연습 (7") 우리는 현재 연주되는 '수재천'의 선율을 향로에 등장하는

#. 연습 F.S (4") 다섯 악기로 연주할 수 있게 편곡을 의뢰했다.

#. 악보 Z.I (10")

#. 연습 PAN (7") 백제시대의 악기에 뿌리를 둔 현대의 악기로 백제시대의 '정읍'에 뿌리를 둔 '수재천'을 연주

하면 과연 어떤 음악이 될까?

< 현장음 >

"어때요? 원래 수재천하고 좀 어때요? 느낌이?

"원래 수재천하고 다릅니다."

#. 연주 F.S

#. 향로 백제 대향로는 사라질 수도 있었던

백제문화의 흔적을 되살리는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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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6. <클로징>

#. 향로 보다가 MC등장

지금 들으신 음악은 현재 연주되는 수재천처럼 유려하거나 장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렴풋이나마

백제시대 음악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1300년의 긴 침묵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다가 온 백제 대향로를 통해서 사비시대 백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백제가 멸망을 향해 기울어지던 시기라기 보다는 기름진 평야지대를 터전으로

문화의 완숙기에 접어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여겨집니다.

기적적으로 발견된 향로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백제 대향로는 출토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합적인 학술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물조사에서 이것은 퍽이나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향로에 담긴 의미를 한꺼풀씩 벗겨가는 과정은 곧 잃어버린 고대사의 공백을 메워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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